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도 일본 맥주는 잘 팔렸다고 하죠. 한국인들은 그 정도로 일본 맥주를 좋아하는데요. 지금도 일본 맥주는 우리나라 주류 시장의 한 축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국세청에서 발표된 '주류 수출 동향'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에 수출하는 맥주의 56.8%가 한국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맛' 입니다. 일본 맥주는 한국 맥주보다 맛이 진하고 종류도 다양해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들 하지요. 반면, 한국 맥주는 '물 같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혹평을 듣습니다.
한국 맥주가 세계 맥주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많은 기사에서 과도한 규제를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제조시설에 대한 규제 때문에 소규모 업체들이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거나, 비싼 재료로 고품질의 맥주를 만들고 싶어도 가격 인상 전 국세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 아십니까?
일본 맥주도 원래는 맛이 없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일본 맥주가 100년 전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건 바로 '모방' 덕분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자세히 알기 위해선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칭다오 맥주의 역사 속에 일본 맥주가 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열강들은 청나라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었다. 1897년에는 독일군이 쟈오져우만(胶州弯)에 군대를 파견해 상륙했고, 칭다오(青岛)를 조차지(일시적으로 빌린 토지)로 얻게 된다. 이때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즐기기 위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영국과 합작으로 '로망(日尔曼) 맥주 청도주식회사'를 설립하는데, 이것이 지금 칭다오 맥주 공장의 전신이다.
'로망 맥주 청도주식회사'는 생산설비와 원료를 모두 독일에서 직접 가져왔다. 1903년 당시 연간 맥주 생산량은 2,000톤에 달했으며, 여기에서 생산한 맥주는 상하이와 톈진, 다롄 등지에서도 판매됐다. 칭다오 맥주는 1906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맥주 세계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국이 되자, 칭다오의 주인은 일본으로 바뀌게 된다. 일본의 '대일본 밀주 주식회사'는 50만 은화를 투자해 칭다오 맥주 공장을 인수하고 독일의 선진 맥주 공법을 베꼈다고 한다.
일본 맥주와 중국의 칭다오 맥주, 오늘날 두 맥주는 모두 세계에서 인정받는 맛을 자랑합니다. 일본의 베끼기가 소유권 개념이 불분명했던 100년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세계 최고의 맥주 생산국 중 하나가 된 일본의 저력을 무시할 순 없을 것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대놓고 베꼈다가는 '카피캣'이라는 비아냥을 듣기가 일쑤입니다. '카피캣(Copy Cat)'은 혁신 없이 남의 제품이나 기술을 그대로 따라하는 기업을 뜻합니다.
비하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용어인데,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는 '카피캣 전략'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로 통하기도 하죠. 특히 중국의 IT 업계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중국의 위챗, 샤오미, 알리바바, 바이두 등의 출발은 모두 카피캣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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