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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유화원 조선족궁정료리강사 신미가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23년2월1일 20시39분    조회: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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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아버지 그리고 아들
 
연변유화원 조선족궁정료리강사 신미가의 이야기
 
 
 

연변유화원직업기술양성학교에서 조선족궁정료리강사로 나선 신미가 교장

연길시 공원로 1877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유화원직업기술양성학교유한회사(延边裕花园职业技能培训学校有限公司) 신미가(申美柯56) 교장은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수강생들을 상대로 조선족전통음식의 초간단 건강식 풀이 강좌를 하면서 가끔씩 아버지와 아들을 곁들여 자신이 강단에 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군 한다. 
 

영상
 
 
〈한정식〉이 대체 뭐길래?
 
1999년 늦가을 연길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 높이 리륙하는 순간, 그녀는 그만 가슴이 섬찍해났다.
 
 (세살짜리 아들애를 남겨 두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
 
살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남들이 한국수속이 어렵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  시작한 일이 너무도 쉽게 비자가 나왔던 것이다. 비자를 손에 쥐였으니 한번 한국행을 해보기로 작심하고 아들애를 막무가내로 남편한테 맡기고 떠난 걸음이다.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아들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였다. 하지만 엎지른 물이라 마음을 다잡으며 서울에 당도하였다.
우주의 오행설에 따라 인체의 오장륙부와 음식의 오색, 오미의 관계를 설명

서울에 도착하여 우선 일감을 찾는 일이 첫 순서였다. 거리에 꽂혀있는 〈벼룩시장〉신문을 뽑아들고 취직자리를 알아 보노라니 〈한정식〉이라는 식당들에서는 이상스럽게 한결같이 괄호를 치고  ‘교포사절’이라고 밝혀 놓았다.
 
〈한정식〉이 대체 뭐길래? 그녀가 알아보니 한정식이란 궁중음식에 유래를 둔  귀족음식으로서 한국의 최상의 음식문화로 손꼽히고 있었다. 그러찮아도 한국에 온 바에는 최상의 음식료리를 배우려던 참이였다. 워낙 고향에서도 그녀가 만든 고추장이며 반찬은 누구나 맛있다고 칭찬들 하길래 작식에는 얼마간 신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늘 엄마에게 이런 음식은 이렇게 저런 음식은 저렇게 하면서 ‘잔소리’를 하도 하길래 당시는 ‘입으로 음식을 하는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런 와중에 저도몰래 배워둔 음식솜씨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교포 사절’이라는 난제를 두고 고민하다가 문뜩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혼자말을 하였다. “그래 남의 가게라도 내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는거야. 자기가 어떻게 마음 먹는가에 따라, 자기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지. 아버지께서는99% 사람들이 다 안된다고 하더라도 단 1%의 기회가 있다면 꼭 잡아야 한다고 하셨어. 그 1%가 어떤 성공의 힘이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하셨지!” 
 

 
정월 대보름날 나물무침 강의를 위해 준비한 마른 산나물들

그녀는 다시〈벼룩시장〉을 펼쳐들었다. 그리고는  간판명이 좋고 느낌이 좋은 한정식 두곳을 골라 잡고 곧추 찾아 떠났다. 첫집 정원을 꿰질러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웬지 분위기가 이상하여 되돌아 나왔다.  두번째 집,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였다. 드넓은 정원에 아늑한 련못이 있고 사이사이 자갈을 깐 레루길 인행도가 집문 앞까지 뻗었는데 량켠에 목련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겨울이 가까운 계절이라 나무들은 앙상하지만 봄날의 풍경이  상상되면서 그녀는 “역시 이 집이야!” 하고 발걸음을 재우쳤다. 
 
문고리를 잡고 안을 들여다 보니  사장님이듯한 품위있는 녀성이 보였다. 일군을 모집한다기에 찾아 왔다고 하자 “교포는 사절입니다.” 하였다. “녜- 알고 왔습니다-” 하며 그녀는 그냥 신을 벗고 사장님의 앞으로 내처 걸어갔다. 
 
오곡밥의 구성과 그 원리에 대하여 

30분을 넘으며 한정식이야기가 계속 되였으나 사장님은 종내 대답이 없었다. 한국인들의 보통인식으로는 조선족들은 같은 민족이지만 중국땅에 살아오면서 입맛이 달라졌고 또 한정식은 한국의 고급음식으로서 검식조차 안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신미가는 갑자기 화두를 돌렸다. “사장님, 사장님은 저를 잘 모르니까 받으려고 하지 않겠지만 한 보름동안만 무료로 써 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에도 사장님의 마음에 안 들면 저는 제발로 걸어나갈 것입니다. 로임은 안 줘도 괜찮습니다. ” 
 
그 말에 사장님은 그녀를 피끗 쳐다보더니 “그럼 오후부터 나오면 안 될가?” 하고 물어왔다. 이미 대답을 받은 마당에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일 수는 없었다. “안됩니다. 제가 돌아가서 준비를 잘하고 래일부터 정식 출근하겠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도착하여 첫 도전을 이렇게 이루어 냈던 것이다. 
 
3일만에 실장의  보조로, 3년만에 실장으로
 
“한국에 가서 저는 제가 먹고 자란 음식에 너무 놀랐습니다. 한정식이라고 들어가 보니 제가 너무나도 일상으로 먹고 자란 음식이 한정식반찬일 줄이야!”
 
그녀는 한국의 최상의 음식문화를 가진 한정식이 결국 자신이 집에서 먹고 자란 음식과 별반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구경조차 못하는  산나물이며 야채들이 고향에는 수십가지도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장백산기슭의 고향은 말그대로 ‘천혜의 땅’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였다.
 
부모님 생각 고향 생각을 하면 그녀는 아주 신이 났다. 자신있게 엄마의 손맛 그대로 살려 무침반찬이며 국을 끓여 식탁에 올려 놓았다. 그랬더니 사장님이며 주방일군들이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3일만에 그녀는 기회를 다잡고 주방실장의 보조로 된다.
 


산나물의 원 맛과 향을 살리는 료리원칙을 강의
 
그제야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는 옛날 훈춘일대의 유족하고 유식한 가문의 장남이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였다. 아버지는 해방후 왕청현 묘령일대에서 일가식솔을 거느리고 생활하면서 그 세월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문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잔소리’라는 방식으로 자식들에게 음식문화를 전수해 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평소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온다”고,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기 힘들다”며 음식에 각별한 중시를 돌리셨다. 자식들에게 절대로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먹이지 않았고 각종 산나물이며 계절음식들을 주로 밥상에 올리도록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셨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잔소리를 싫은 기색조차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식들에게 ‘최상의 음식’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웬지 자신들은 크면서 동네 집에 놀러 다닌 적이 별로 없고 동네 아들이들도 자기 집으로 놀러 오는 법이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집 문화를 접해 본 일이 거의 없고 다만 한족아이들과만 많이 어울렸던 기억이 났다.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장의 보조로 되면서 설거지부터 시작하여 보조역할에 온갖 정성을 몰붓는데 웬지 유일한 교포이면서 나이도 제일 어린 자신에 대한 주위의 은근한 기시와 시기가 느껴졌다.
 
“내 삶의 목표가 있고 방향이 있는 한 그런 것 쯤에는 관심도 없었고 무시해버리면 그만이였어요.” 
 


황소육회
 
그런데 주위의 칭찬이 따르고 찬탄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게 되자 그것이 실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낮에는 쉴 새 없이 돌아치고 밤 이면 어린 아들애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루는 그런 세월이 거의 한해가 되여 갈 때 쯤 실장님이 퇴근을 하면서 힐끗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이였다.  
 
“막내언니야, 난 아들 보러 가!”.
 
“…” 그녀는 대뜸 가슴이 뭉클해났다. 
 
“제 대신 아들을 많이 잘 보고 돌아오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순간부터 그녀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어떻게 아들 둘씩이나 키우는 부모가 자식 갖고 엄마의 아픈 마음을 건드리지?! 당신이 내 심장에 꽂은 한마디 비수때문에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줄 알라! ”
 
그때로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었고 한발 올라서기 위한, 실장을 향한 도전을 감히 강행하였던 것이다.
 


호국수
 
“그뒤로 돌변한 저의 모습에서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와 했지요. 저의 아픈 가슴에 심어놓은 불씨가 아주 활활 타올랐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한정식에 아주 올인을 한겁니다. 한편 ‘당신들이 우습게 여기는 중국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줄거야!’ 하고 윽별렀지요.”
 
 그렇게 3년 세월이 끝날 무렵, 그녀는 끝내 실장으로 발탁되였고 그녀를 거느리던 50대 실장님이 자기 두발로 주방에서 걸어나갔다. 
 
“그때 저는 저에게 애국심도 민족심도 고향심도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의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이 그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였지요.”
 

김밥의 변신
 
그후 실장님이 주방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막내언니야, 우리 술 한잔 할가?” 그때까지 핸드폰 하나 갖추지 않고 술자리 한번 나가 본 적 없이 주방에만 붙박혀 살아온 그녀였다. 
 
마주 앉은 자리에서 실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계급장을 떼고 친구로 한번 대화를 나눕시다.” “하지만 계급장을 떼기 전 실장님께 한마디 여쭤봅시다. 실장님은 저한테 할 말씀이 있으시지요? 언녕 했어야 하지 늦었다는 생각이 안 듭니까?!”
 
 “차라리 한매 때리세요.”
 
“차라리 승인이나 하지 마시지. 모르쇠를 놓으면 고의적이 아니라고 넘어가 줄지도 모르겠구만!”
 
“내가 사과할게요.”
 
“제가 그 사과를  받을가요? 사과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저는 원칙을 어긴 그런 사과는 받지 않습니다. ”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돌아 온 그녀는 오기로 버텨 온 그 힘든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면서 이름할 수 없는 착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때 역시 아버지의 타이름이 귀가에 들리는듯 하였다.
 
 “너를 스쳐지나는 모든 인연은 교과서 같은 인연이다. 세상에 나쁜 인연이 따로 없네라. 나쁜 말을 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너의 앞에 나타난다는 것은 너를 깨우치러 온거야 . 그러니까 모든 인연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중에 실장님은 저의 좋은 친구가 되였고 저에게 좋은 실장자리를 알선해 주면서 다시 함께 일해 보자고 제의를 해오기도 하였지요.”
 
그녀는 걸음걸음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길잡이 같이, 등불 같이 앞길을 환히 비춰주던 아버지가 신 같은 존재로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아버지는 저의 우상이였고 저는 아버지 같은 부모가 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아들은 엄마의 가슴속 심장
 
“남들은 참모를 하자 해도 10년, 20년씩 썩어야 하는데 너는 어쩌면 3년만에 실장이 되다니. 말그대로 하늘의 별을 딴 것이로구나!” 한정식점 사장님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불고기배추전골
 
“물론 저의 노력이 있은 건 사실이지만 사장님께서 저를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시고 플래폼을 마련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저는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좋은 실장자리가 있다 해도 저는 사장님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서울판의 최고 실장님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십시오.” 그녀는 사장님과 마주하고 제의를 올렸다. 
 
사장님은 서울대학을 비롯한 명문대를 나온 녀성 CEO그룹의 회장을 지내는 분으로서 보다 높은 차원의 실력을 향한 그녀의 도전을 속으로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그녀는1년에 한번씩 5성급 호텔이며 한정식, 료리점 실장들이  모여 재능을 비기는 강연행사에 참가하게 되였다.  
 
그녀는 강연에 참가할 때마다 등록부에 언제나‘’‘申美柯’라 한자명을 적어놓았다. 서울판의 내노라는 최고실장님들이 대접시에 식자재로 란을 그려가며 재능을 과시하는데 그 손끝에서 그려지는 선 하나에 혼이 비껴 있었다. 처음부터 그들과 같은 경쟁을 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녀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나만의 특색을 살려  색을 올린 식자재로 매화꽃이랑 그려가면서 작품을 완성하였는데 심사평의에서는 늘 특색으로 긍정받았다. 
 
그녀가 만든 백김치며 간장게장, 갈비찜, 졸임류는 서울 ‘량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그녀가 끊임없이 개발하는 메뉴들은 또 한정식점으로 하여금 문전성시를 이루게 하였다. 그러던 그녀는 또 유능한 음식점실장과 유식한 대학생, 박사생을 상대로 강당에 올라5행설에 따른 음식궁합의 리론을 곁들이며 한정식강의를 시작하였다. 그의 강의는 박수갈채를 받았고 그는 어느덧 “교수님”으로 불리웠다. 
 
“저 같이 고중밖에 졸업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 한국에서 ‘교수님’으로 불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고 또 실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저는 지금도 오른 손을 잘 못 씁니다. 그러나 그것을 상처나 아픔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어려운 세월이 저에게 준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가가 없는 훈장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
 
매운 돼지갈비찜
 
강의료금만 해도 실장의 월급을 훨씬 웃돌아 상당한 대우를 받게 된 그맘 때, 한국행 8년만에 그녀는 갑자기 사직을 제기하고 귀국을 선포한다. 리유는 단 하나, “사춘기 아들이 엄마를 기다린다.”는 것이였다.
 
“역시 아버지의 말씀이 저를 깨우쳤지요. ‘아이에게는 엄마 밥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엄마 밥을 먹고 자란 아이는 저력(底气)이 있다’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대한민국의 그 큰 그룹 강당에 올라서면서도 떨지를 않았습니다. ”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끝내 귀국하여 아들과 마주앉았다. “아들, 아들은 엄마의 가슴속 심장과도 같은 존재야!” 그녀는 핸드폰에 저장해 둔 붉은심장이 후둑후둑 뛰는듯한 사진을 꺼내 아들 앞에 보였다. 사진에서 천천히 시선을 돌리던 아들이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아무리 그렇던들 엄마는 결국 돈 따라 갔었잖아…” 
 
그 한마디에 엄마는 심장이 멈추는듯 했고 사맥이 나른해졌다. 엄마의 사랑을 잃은 아들의 가슴속엔 그토록 깊은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엄마는 려권을 꺼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래, 엄마는 이제부터 보여 줄거야!) 
 


유화원 비빔밥
 
“그때로부터 아들을 위한 삶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루 세끼 해밥을 지어 먹이고 아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리해하기 위해 노력하였지요. 아들도 때로는 ‘누나야’(大姐)”, ‘형님아’(大哥)하면서 부모자식의 관계를 떠나 친구같은 스스럼없는 관계를 맺고 싶어하였어요. ‘엄마’라는 부름에는 웬지 좀 뜸을 들이것 같았지요. 아들의 속으로 들어가는데는 그래도 엄마의 역할이 크더군요. 엄마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지요.. 아이들의 성장에는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고모들도 다 있어야겠구나 실감을 하였습니다.“
 
소학교 4학년을 졸업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초중,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입시까지 치른 신미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곧 아들과 함께 사춘기를 겪고 대학입시를 맞이한 시기라고 한다. 그는 아들과 함께 한 삶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한다. 
내 이름 석자를 건 새로운 도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들은 엄마에게 한가지 건의를 하였다. “엄마, 여태껏 나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은 강의도 못하였는데 이제부터는 얼마든지 해보시지요. ”
 
“그래? 아들이 동의한다면 엄마는 다시 시작할거야.” 엄마는 아들의 허락을 첫자리에 놓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 보려고 어린 아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던 엄마는 언제나 ‘속죄’의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가진 재간이 아들의 상처와 맞바꾼 대가라고 할 때 그저 그대로 머물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평생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면서 업그레이드해 나아가야 하겠지요.”라고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 2021년급 직업녀성문화연구반 수료식에서의 신미가(왼쪽)
 
그녀는 3년 전 자신의 이름자를 내건 직업기술양성학원을 차리고 〈조선족전통음식의  초간단 건강식풀이 강의〉를 시작하였다. 가정음식문화에 뿌리를 두고 조선족전통음식의 기본맛을 강조하는 그의 강의는 결국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본연의 맛을 나름의 건강식으로 풀이하는 것이였다.
 
신미가 교장의 강의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음식점 사장님들이며 건강식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지어 타민족 학원들도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조선족전통음식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역시 어린시절 한족친구들과 어울리며 한어를 잘 배운 것도 한몫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미가 교장은 “우선 우리 민족 전통음식이 얼마나 우수하고 대단한 음식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얼이 슴배여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가정문화를 잘 전수하면서 우리 민족 전통문화를 잘 고수하고 전승해야 하는 것입니다. ”라고 전제를 밝힌다.
 


신씨댁 가정문화의 맥을 잇고 있는 ‘내림약선장’
 
신미가 교장은 “자식은 쉽게 말하면 내 새끼이지만 결국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까. 지금은 얼마나 풍요롭고 좋은 세상입니까? 이 좋은 세월에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아무 음식이나 함부로 먹이며 키워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아들에게 절대로 엄마가 저지른 실수를 범하지 말고 자기 자식은 자기 손으로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당부를 합니다.  또 어쩔수 없이 아버지 얘기가 튀여나오는데요. 아버지께서는 ‘진정한 행복은 가정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했지요.”라고 하며 자신의 인생소감을 대신한다. 
 
전 지구촌이 코로나로 혹심한 몸살을 앓으면서 면역건강이 대세로 뜨고 있다. 신미가 교장은 이 점을 특히 강조하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본연의 맛을 나름의 건강식으로 어느 정도 풀어갈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알아 보는 것이 곧 저의 꿈이며 새로운 도전"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글 김청수
영상, 사진 연변유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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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들 만수무강하세요" 로인절을 맞으며 연변 황관혼례호텔(대표 림룡춘)에서는 8월 14일 150여명 어르신들께 절을 올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황관혼례호텔의 주주들과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평소 같으면 로인절 쇠여드리는 것쯤은 이례적이라 생각하겠지만 올해 로인절은 특별하다. 코로나 여파...
  • 2020-08-14
  • 공장 3층 조망대에서 바라본 풍경구 일각.   견학을 떠나는 학생마냥 부푼 마음을 안은 채 지난 3일에 왕청현 호기식품양조풍경구(이하 풍경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말끔한 통유리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각종 설비들에 발이 잡혔고 널직한 복도를 감도는 갓 짜낸 듯한 진한 간장향기에 코를 킁킁거렸다.   통...
  • 2020-08-14
  •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수확의 황금계절 가을이 물결치며 다가왔다. 시원한 가을을 향수함과 동시에 계절바뀜으로  면역력이 뚝 떨어져  우울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코로나19가  언제 닥쳐올지 장담 못하는 시기에  면역력강화에  엄청 신경을 도사려야 한다. 특히 중로년건강은  가...
  • 2020-08-12
  • 영상 8월 7일 연길에서 있은  “문화강주·관광흥주” 2020년 연변관광상품대회 및 제4차 연길관광상품대회 시상식에서 이레무공해농작물농업전업합작사의 ‘고추장선물세트’가 실물분야 금상수상상품으로 선정되였고 리영위의 작품“米小甜”연변조선족막걸리문화브랜드가 디자...
  • 2020-08-07
  • "스케일링을 하면 이가 깎이잖아요." “스케일링하면 이가 시리다구요.” “극심한 통증이 동반할 때에야 비로서 치과를 찾게 돼요.” … … 이같은 고정관념이 자신의 치아건강을 망치고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이 50중반을 치닫고 있지만 늘 치과에 대한 공포증을 떨칠 수 없었...
  • 2020-08-03
  •     왕청현 동광진 동산마을은 마을의 별미음식인 초두부를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신청하고 계승인이자 빈곤호인 신수향(申秀香)을 선줄군으로 온 동네에 제작공예를 보급하여 팔방에서 찾아온 온님을 맞이하고 있다.       왕청현 동북부의 마반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동산촌은 산좋고...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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