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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중국인에도 영웅… 뤼순 순국지 잘 지킬 것'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4월6일 06시57분    조회: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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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은 이칭타오 뤼순구장
“유해 발굴도 최선 다해 돕고파”
安의사 훈춘 유적도 복원키로

“일제에 저항한 안중근 선생은 한국인에게 영웅이지만 중국인에게도 영웅입니다. 다롄 시민들은 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해 군항제’를 참관하기 위해 방한한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구의 이칭타오 구장을 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뤼순은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26일 순국한 곳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이 구장은 “안 선생이 돌아가신 곳이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다롄과 뤼순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의 이런 마음을 받아들여 선생의 얼이 남아 있는 공간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제는 안 의사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하지 않았고 유해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구장은 안 의사 유해를 찾는 문제와 관련해 “중국 지방정부의 소관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한·중 간 협의가 이뤄진다면 다롄시와 뤼순구는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당국이 북한, 러시아와의 접경 지역에 있는 안 의사 거소(居所) 유적 복원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린(吉林)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琿春)시는 취안허(圈河)촌에 있는 안 의사 거소 유적을 복원하기로 하고 이달 중 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 측과 협의할 계획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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