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길림신문 수기 108] 화림이 누나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7월24일 22시36분    조회:6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누나가 없다. 그래서 청년시절까지는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누나가 있으면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누나 사랑을 한껏 느끼면서 관심도 듬뿍 받고 응석을 부려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팔자에도 없는 ‘누나타령’을 하면서 아무나 누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철도부문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필자 리동주

 

그러던 어느 하루, 우연한 일로 이름도 모르는 처녀를 누나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겉으로만 누나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온 ‘누나’라는 존경의 부름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누나라고 그 처녀를 부르고 나서 한켠으로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속은 꿀물이라도 한사발 들이켠 것처럼 매우 달콤하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때는 바로 1970년 1월 중순경의 어느 날 저녁무렵이였다. 몸에 좀 헐렁해 보이는 솜옷을 입고 머리에는 개털모자를 푹 눌러 쓴 한 낯모를 청년이 우리가 들어있는 집체호를 찾아왔다. 그는 집체호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친구 화림이의 누나였는데 그 역시 연길현 동성용향의 어느 농촌마을에 하향을 내려가 있는 녀지식청년이였다. 이들 화림이 남매는 연길과 룡정 두곳에 갈라져 하향을 하다 보니 남매가 서로 만날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가 내려간 연길시 의란공사 신광대대 집체호에서는 년말 총화가 금방 끝나다 보니 집체호의 녀청년들은 말미를 맡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몇몇 남자들만 남아 있을 뿐이였다.

남자들 뿐인 집체호 사정을 눈치 챈 화림이 누나는 도착하자 마자 말 없이 솜옷과 개털모자를 벗어 놓고는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남자들 살림으로 란장판이 된 집체호 구석구석을 살손을 대가면서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개털모자를 벗으니 화림이 누나는 남자애들처럼 머리를 짧게 리발한 하이칼라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어린 녀자애들이나 녀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짧게 머리를 꾸민 녀자들은 적었던 시절이였다. 구들 한켠에 몰려 앉은 집체호 사내 녀석들은 신기한 듯이 하이칼라를 하여 한결 멋스러운 화림이 누나를 흘깃흘깃 훔쳐보고 있었다. 화림이 누나는 때로는 일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동생벌되는 집체호 사내 녀석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 주기도 했는데 자상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겨울철의 짧은 해가 서산에 지고 곧 땅거미가 지자 집체호 방안은 인차 어둑어둑해졌다. 집안 청소를 마친 화림이 누나는 저녁 준비로 돌아쳤고 친구 화림이는 누나를 도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그때 우리가 들어있는 집체호는 시골식 조선족 초가집이였는데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부엌과 구들이 함께 딸려 있었다.그때는 아직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때인지라 심지를 한껏 돋아 올려도 희미하기만한 석유등잔 신세를 질 때였다. 불빛을 등지고 저녁을 짓는 화림의 누나 모습은 얼핏 보면 영낙없는 사내 녀석 모습이였다.

그때 외지에 나갔다가 방금 집체호에 돌아온 나는 화림이 누나가 집체호에 놀러 온 줄을 감감 모르고 있었다. 집체호에 들어서서 구들에 올라선 나는 “에라, 계집애들은 다 어디로 가고 사내 녀석이 가마목 운전을 하느냐? 눈꼴시여 못 봐주겠다.”하고 말하면서 돌아앉아 이남박에 쌀을 일고 있는 화림이 누나 엉덩이를 악의 없이 걷어찼다. 갑자기 불의의 습격을 받은 화림이 누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물앉으면서 이남박의 물과 쌀이 얼굴과 옷에 덮씌워 졌다. 너무나 뜻밖의 광경에 당황해난 집체호 친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야,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화림이 누나다!”하고 덴겁한 소리를 질러서야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였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버린 물이였다. 세상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어쩔바를 몰랐다. 화림이 누나는 젖은 머리의 물기와 흥건해진 바닥의 물기를 서둘러 행주로 닦으면서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음 띤 얼굴로 연신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였다. “괜찮소, 그저 누나라고 생각하면 되오, 나도 동생으로 생각하고…”

화림이 누나의 넓은 도량과 따뜻한 마음에 나는 더욱 머쓱해졌고 어쩔바를 모른 채 우두커니 두손을 마주 비비면서 송구스레 서있을 뿐이였다. 화림이 누나가 “이런 망할 놈이 있나?! ”하고 차라리 시원하게 호통치고 귀싸대기라도 한대 갈겨주었으면 덜 미안하고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안하고 처참한 기분 속에서도 화림이 누나가 무람없이 누나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인정과 위안을 얻었다. 누나,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부름인가? 나는 기꺼이 누나의 동생이 되여 나도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누나가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즐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일로 화림이 누나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장벽은 허물어지고 마음의 공간이 좁혀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은 배추김치 한접시와 언 배추국 한사발씩 차례진 초라한 저녁식사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맛있고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것 같았다. 식사하면서 집체호 친구들은 모두 나보고 화림이 누나에게 인사를 올리라고 하였는데 나는 용기를 내여 “누나는 얼굴도 이쁘지만 마음씨도 너무 아름다운 것 같소. 정말 미안하오”하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

나는 이렇게 처음으로 낯선 녀자에게 내심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누나라는 존칭을 불러 보았고 화림이 누나는 또 년장자 답게 동생벌 되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유익한 인생조언과 충고들을 밤새도록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기억이다.

세월이 흘러 이젠 그때 그 시절도 아득한 추억 속에서나 돌아볼 수 있는 50여년전의 일로 되였다. 나도 이제는 80고개를 바라보는 로인이 되였다. 집체호를 떠난 후 모두들 살아가는 일에 바쁘다 보니 련락이 끊기였고 다만 풍편에 화림이는 훈춘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만을 오래전에 들었을 뿐이다. 아마 화림이 누나도 생전이라면 이젠 80세를 넘긴 백발의 로인이 되였을 것이다. 그 후로 화림이는 물론, 화림이 누나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 그 시절의 순수했고 열정으로 차 넘쳤던 한단락 추억이 더욱 또렷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가? 순수했던 시절,마음속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존경과 마음을 담아 불러보았던 그 ‘누나’ 라는 부름이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여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화림이 혹은 화림이 누나가 이 글을 보고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들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이로하여 우리들의 추억으로 되찾은 여생이 더욱 아름다워 진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동주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양명금 “늦은 나이에 이렇게 글을 쓰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12일, 룡정시에 거주하는 지체장애인 양명금(60세)은 불편한 몸을 지탱하고 앉아 글을 몇줄 적더니 힘든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적 공부를 많이 했어야 했는데…”   &...
  • 2021-01-28
  • 지난해 12월말 나는 북경에서 서울로 향했다. 당시 한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천 명씩 발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시기였다. 취재를 위해 나는 한국으로 '역행'하게 됐다.   북경 수도국제공항의 로비는 텅 비여있었다. 공항 면세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려객기의 좌석점유률은 절...
  • 2021-01-19
  • 새로운 한해인 신축년(2021년)을 맞으며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에서는 로인들을 위한 설날 떡국잔치를 열엇다. 이번 행사에는 약 백여명의 로인들이 참석해 명절분위기를 한껏 즐겼다.     연길 두만강문화쎈터의 주최로 열린 떡국잔치는 오수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사회를 했다. 이날 행사는 어르신들께 떡국...
  • 2021-01-06
  • 원 연변연극단 배우 최금순의 연극 인생 수많은 연극 속의 인물형상과 텔레비죤드라마 《민들레할머니》 연기로 조선족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 최금순, 그의 70여성상 인생길에는 과연 어떤 달고 쓰고 신 사연들이 깃들어있을가. 필자는 그녀의 삶을 살펴보았다. 연극과의 만남 1946년 금순이가 13살 나던 해에 엄마...
  • 2021-01-06
  • [애심녀성컵]-더 미워질 데 없는 녀자 김경희   나는 스물여덟살 나던 해 언니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였다.   진한 눈섭에 정기 도는 쌍겹눈, 덩실한 코마루, 영준하게 생긴 얼굴에 중점대학 학력까지… 바로 내가 오래동안 마음속으로 그려봤던 리상형이였다. 평생 시집 갈 것 같지 않아 로심초사...
  • 2020-12-22
  • 고중 졸업할 때까지 매달 500원씩 지원키로 지난 4일,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 신입생 맞이 조학금 전달식이 연변제1중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5명의 신입생을 맞이한 연변봄비애심회 수재원은 신입생들을 포함하여 15명의 학생에게 인당 1000원의 조학금을 전달했다. 1999년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259명의 학생을 지원해...
  • 2020-12-09
  •  우리나라 최동단, 중국 로씨야 조선 3국 국경선의 접점에 자리잡고 있는 방천은 현재 유명한 관광지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력사를 거슬러 오르다 보면 방천이 사실 20세기 60년대부터 전국적인 군민공동방위의 본보기로 꼽힌 영예의 과거를 알 수 있다.       군민이 일심협력하여...
  • 2020-11-25
  • [수기] 방천에서의 아버지의 벅찬 나날들 김정일 10월 3일은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가신지 벌써 8년째 되는 날이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가 어디론가 외출 갔다가 얼마후면 돌아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럴 때면 아버지를 위하여 뭘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이야기며 내 눈으로 보았던...
  • 2020-11-17
  • [수기 59] 지지리도 운이 안좋은 나 리기준 나는 삼형제중 막내로 태여났다. 내가 네살 때 친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우리 집은 매우 어렵게 생활했다. 사람들은 쩍하면 우리를 ‘애비 없는 새끼’ 라고 놀려주었고 어머니는 이상한 남자들의 무시를 당하기가 일쑤였다. 2년 후 우리 어머니는 룡정시 금불사...
  • 2020-11-12
  • 80년대초기 중학교 1학년이였던 내가 쓴 동요 이 일본의 어느 한 국제교류협회가 조직한 글짓기콩클에서 우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상장과 선물들이 학교에 도착하여 업간체조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표창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 시기가 바로 중국과 일본간의 친선관계 상징이였던 자이언트판다...
  • 2020-10-13
  •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부모님 산을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빈 박금석 형제분들 올해 추석에도 어김없이 고향을 찾아 조상들의 무덤 앞에 술을 붓고 제를 지내며 고인들의 공적을 기리는 박금석(76세), 박금룡(65세) 형제는 대소과수농장마을을 굽어보며 감회가 깊었다. 최근 들어 빈곤부축사업이 초요건설사업의 주요...
  • 2020-10-13
  •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 하는데 왜 여자인 내가 단풍사랑에 빠졌을가? ...  가을정취가 다분한 국경절연후 막바지날, 가고싶었던 단풍구경 떠나는 기분좋은 날이다. 화창한 날씨에 쪽빛하늘이 하사한 따스한 해볓이 길 떠난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모임장소까지 가는 길은 신바람에 룰라라가 저절로 나온다.&nbs...
  • 2020-10-10
  • 새 집을 짓던 나날들 김삼철 요지음 나는 103평방메터의 화려한 아빠트에서 혼자 생활하느라니 가난했던 1970년대 연변과는 수천리 떨어진 길림성 동북쪽 맨 끝자락의 길림성 유수현 연화조선족향에서 근무할 때 내 손으로 초가집을 짓던 어려운 나날들이 추억의 쪽문을 열고 밀려나온다.   1970년 가을 나는 지인의 ...
  • 2020-10-04
  • 지난 9월4일 가목사조선족학교에서 진달래마을 장학금을 지급했다.  진달래마을 조선족장학단체(이하 진달래마을)가 9월 개학을 맞아 동북3성 8개 지역 14개 조선족학교들에 장학금을 전달, 오래만에 개학을 맞아 열기 띈 학교분위기에 활기를 더 하고있다.       흑룡강성, 길림성, 료녕성, 내...
  • 2020-09-18
  •     교육대계는 교사육성이 핵심   소외된 교사들 교육열기 재점화   현재 전통지역 학생래원의 급격한 감소와 고갈, 페교위기, 교사의 로령화와 청년교사의 부재로 전통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자평나 있다.   이러한 와중에 교육이 살아야 미래가 보인다는 사회풍조가 일면서 학교에 대한 사회적인...
  • 2020-09-14
  • 오승룡동지, 남, 조선족, 1972년 11월 출생, 1990년 10월 사업에 참가, 2005년 4월 중국공산당에 가입, 대학학력. 왕청현사법국 선전과 과원, 인사국 중재과 과원, 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 로임복리과 과장, 부국장, 2018년 7월 왕청현당위 조직부 부부장 겸 로간부국 국장. 선후로 '전 주 법률상식 보급 법에 따라 다스리...
  • 2020-09-11
  • 성송권                                                                                    ...
  • 2020-09-07
  • 위챗 수금기능 24시간 동안 마비되어       월드옥타 청도지회 김금란 회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김홍화씨에게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8월 28일 본지에 “저희 남편 살려주세요” 란 기사가 발표된 후 한민족사회에 큰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수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 2020-09-02
  • 올해 85세인 엄마는 신문과 책 보기를 무척 즐긴다. 해마다 《길림신문》, 《종합참고》, 《장백산》, 《연변녀성》 등 신문 잡지를 주문하여 구독하고 도서 대여증으로 여러 면의 좋은 책들을 수시로 빌려보고 있다. 근년엔 엄마는 다년간 간행물을 읽으면서 배운 많은 지식을 “인젠 나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과...
  • 2020-08-27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