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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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유럽려행기[4] 댓글:  조회:4034  추천:0  2019-12-07
서유럽려행(4)        이딸리아수도 로마로 가다     우리는 이 천공의 성을 다 유람하고 오후 1시에 이딸리아의 수도 로마를 향해 떠났다. 로마로 가려면 120여 ㎞의 거리를 가야 하므로 가는길에 가이드는 먼저 로마명칭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로마신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아직 로마라는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 지금의 로마린근 지역에는 알바-롱가(Alba-Longa)라는 도시국가가 있었고 그 곳의 왕은 누미토르(Numitor)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왕의 동생인 아물리우스(Amulius)가 왕인 형을 페위시켜 멀리 내쫒아 버리고 스스로 왕이되였다.     왕이 된 아물리우스는 전왕의 공주 즉 자기의 질녀인 리아 실비아(Rhea Silvia)를 협박해서 신녀( 불교를 믿는 녀자)가 되게 하였다. 신녀가 되면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후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군신 마르스(Mars)가 공주에게 나타나나 실비아와 정을 통한 후 공주는 임신하게 되였다. 후에 실비아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을 로물루스(Romulus), 둘째아들을 리무스(Remus)라 이름지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아무리우스왕은 질녀인 실비아에게 “쌍둥이 아들들을 상자에 넣어 티베르강台伯河에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겁을 주었다. 실비아는 아들을 상자에 담아 강에 버렸다. 아이들을 담은 상자는 물결따라 떠내려가다 강가로 밀려나왔다. 배고파 우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들은 새끼낳은지 얼마되지 않은 늑대가 그리로 지나다가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였다. 얼마후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온 한 목민이 상자에 담겨있는 아이들을 본다. 그는 아이들을 자기집으로 데려가서 아내와 의론후에 자신들의 아들로 키우게 되였다.     그 쌍둥이 아이들이 다 성장한후 어느날 형의 꿈에 마르스가 나타나 그들의 배경을 말해 주며 “쫓겨난 네 할아버지를 복위시켜라”고 말한후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로물루스는 자기 부모에게 자신의 출생비밀을 묻는다. 대략의 이야기를 들은 쌍둥이 형제는 아물리우스 왕을 죽이고 페위된 누미토르를 복위시킨다.     그후 쌍둥이 형제는 현 도성이 좁다고 티베르 강을 중심으로 더 넓고 아름다운 새 도시를 지으려고 나섰다. 그러나 장소선정 문제로 형제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갈등을 겪다가 결국 형이 동생을 살해 하였다. 이후 형은 7개의 언덕이 펼처져있는 티베르강변에 도성을 건립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신도시를 ‘로마’라고 명명했고 한다.      1960년 제17회 올림픽운동회가 로마에서 개최되였을 때 로마올림픽을 상징하는 휘장이 바로 암늑대가 두 남자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였다.  제17회 올림픽운동회 휘장      가이드는 다음으로 수도 로마의 개황에 대해 소개를 하였다.     로마는 이딸리아의 수도이자 라치오주拉齐奥州의 주도로서 테베레 강 연안에 위치해 있다. 로마시의 행정구역 면적은 1,285km2, 인구는 290여만명(2014년)이다. 로마는 2,5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으며 한때는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로마 가톨릭교회의 중심지였으며 그 력사 덕분에 유럽 문명 사회에서는 로마를 가리켜 ‘세계의 머리, ‘영원한 도시’라고 부른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로 로마시는 서서히 교황의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되였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는 교황령(教皇国. 로마 교황이 통치하는 세속적 령역. 1929년 라테란 조약 체결 이후 바띠까노 시국을 이르는 말이다. )의 수도가 되였다고 한다. 이딸리아의 통일 이후 1871년에 이딸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이딸리아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바띠깐노는 원래는 로마의 일부였으나 교황령으로써 독립한  바띠깐노 시국은 하나의 독립적인 국가로 로마시안에 자리잡고 있으며 법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나라이지만 력사, 종교, 문화적으로 이딸리아, 특히 로마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오후 한시에 바뇨레조 진에서 떠난 것이 124㎞의 거리를 2시간 달려 오후 3시에 로마에 도착하였다. 로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콜로세움 斗兽场으로 갔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君士坦丁凯旋门 콜로세움 앞 광장 서쪽에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의 마지막 비 기독교인 황제 콘스탄티누스 君士坦丁大帝1세가 312년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황제 막센티우스(马克森提乌斯306~312년 재위)와 싸워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315년에 세워졌으며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의 중간에 당시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던 군인들이 점령했던 비아 트리움팔리스에 자리 잡고 있다. 개선문은 영원히 남을 기념비로 세워지며 정치적 위력의 과시로 보이기도 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특히 그 기하학적 비례로 눈길을 끈다고 한다. 이 개선문은 높이 21m, 너비 25.7m, 폭은 7.4 m에 달하며 모두 세 개의 아치가 있는데 중앙 아치는 높이가 12 m, 량옆의 아치는 7 m 이다. 이 개선문은 고대 로마 1200년 력사에서 로마의 심장부에 마지막으로 세워진 기념비로 현재 로마에 남아 있는 세 개의 개선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가장 량호하다고 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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