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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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소-고연소의 악순환 (高燒-高燃燒의 惡循環) 댓글:  조회:3928  추천:1  2011-08-24
20여일간 음습다우하던 날이 개이자 아침의 하늘은  한가을인양 거뜬 들리고 시원한 하늬바람이 온몸을 쓸며 지나간다.침침하고 무덥던 나날이 돌연히 건드러운 맑은 날씨로 일변하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야릇한 감흥이 피어나고 타분하던 가슴도 확 풀리어 하루 일이 얼마나 가벼웠는지 모른다.   정반되게,저녁에 버릇처럼 보는 CCTV의 뉴스에서는 사천과 중경의 어디가 8월초부터 37℃ 이상의 날씨가 지속되는데 최근은 40℃를 넘어서고 중경시 어디는 43.5℃로 올라가 기상 기록을 쇄신했다는 귓맛이 얼얼한 멧세지가 튕겨나왔다.승용차 안에 놓은 닭알이 익어 번진단다.거기다 남방의 여러 지역들도 37℃이상의 고열에 시달리며 식물이 빠싹 마르고 음료수와 가축의 물 때문에 고역을 치른다는 부연 뉴스를 달아 놓았다.오싹해 나더니 무엇인가 와 소리를 내 목으로 내보냈다.   1982년 8월 항주에 일 보러 갔다 상해에 들럿을 때다. 처음 방문하는 도시라 일정에는 이틀 묵을 계획이었는데 때마침 높은 습도에 대낮 온도가 34℃인데다 밤의 온도 역시 29~30도란다. 낮은 그런대로 찬물을 들이켜고 두툼한 땀수건으로 씻으며 움직거리면 되는데 밤이 되어 선풍기 밖에 없는 방에서  잠을 청하려니 땀구멍이 제어 기능을 완전 상실하여 구슬땀이 줄쳐 내리는데 견디는 별수가 없었다. 내 죽는다고 허겁지겁 야밤에 급탈출 하던 기억이 삼삼 거린다.그 혹서의 시련에 질겁하여 여름철 상해라면 아릿한 여겁이 지금도 맴돌이 친다.건데 43.5℃라! 사람이 그 속에서 산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살림집들은 일제히 에아컨을 돌려대고 대중서비스 업체들과 모든 고층 빌딩들이 찬바람 불어넣기에 숨가쁘다.생산 업체들은 전기 부족으로 애간장을 태운다.일거에 전기 사용량이 대량 증가되는 것이다.전력회사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최대의 마력을 풀어 화력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 한편 초부하 송전을 이기지 못하는 시설들의 미비로 연달아 되는 화재,설비 손상의 주의보도 내린다.등한하면 방치같은 욕설과 비평이 쏟아질 건 당연하다.   일각에서는 황소 영각을 켜는 소리도 은은히 들려 온다. 석탄 업자들은 돈 되는 호기라며 죽어라고 파내어 값을 올리며 돈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에아컨 메이커와 판매업자들은 돈벌이 호황이라 즐거운 비명을 질러댄다. 피서 제품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목돈에 혈안이 된 장사치들은 고가 전략의 머리를 초고속으로 굴려댄다.죽어라고 석탄을 태운다는 반증이다.   인간들이 잘 사는 전제인 석탄, 석유의 소비는 해마다 가파른 상승선을 타고 있다.그가 뿜어놓은 가스는 대기 온도를 급속도로 밀어올리고 그 대책으로  만중이 역시 시름없이 광물 연료의 연소를 되풀이 하는 게 오늘의 사회 생활이다. 이 불가재생 자원량이 급한 내리받이에 떨어져 소진 한계가 불원하다는 아우성도 높아만 진다.   게거드랑,그 앞날이 어디까지일꼬?  인간이 가진 외계온도의 감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이 아둔한 머리로선 알 길이 없으나 오래잖다는 소리만에도 앞이 막연하다.집안을 식히려고,덥히려고, 더 잘 살려고 지구를 달궈 놓는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의 행위가 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는지는 몰라도 가소롭다는 이외는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고소-고연소의 악성적인 순환이다.   최근에 소말리아를 위시한 동아프리카의 세기적 대가물을 맞아 발생한 저참한 광경이 우리와도 멀지만 않은 같다. 극심한 기아로 품속에서 뛰놀던 귀여운  아기의  삶의 끈을 빼앗기고 전률하는 어머니들의 생생한 장면을 보며 이것이 누가 지어낸 걸작인가를 사람들은 차분히 반성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량산하여 지구의 온난을 불러온 반대급부로 폭한,폭서,폭우,폭설,폭풍,구풍,태풍,우박,불가물 같은 푸짐한 을 받고 있는 게 오늘 지구촌의 주인들이다.인류는 자연의 조물주에게 멱살을 단단히 잡혀 있다.무력분쟁,종교분쟁,테러보다 더 무서운 기후재앙이 바로 앞에 보이는 제일의 인류 재난이다.   생산력이 미증유로 발전하여 전대미문으로 잘 살아간다고 사람들은 와그르르 하는데 화석 연료의 연소가 전대미문의 증가 일로인(지구 온도의 상승을 동반하여…) 이 자가당착적 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한 개 나라가 아닌 전 지구인이 일제히 궐기해야 될 일일 것만 틀림없다. 내 후손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앞이 아리까리할 뿐이다. 2011-08-20
2    묘론 찬평(猫論 讚評) 댓글:  조회:4988  추천:6  2011-08-13
묘론 찬평(猫論 讚評)                                                              2011-07-20 최근 인터네트에서 등소평의 백묘흑묘론(白猫黑猫論)을 곡해하고 폄하하는 글들이 오른 것을 보고 거부감을 떨칠 수 없었다. 주요하게 심각한 빈부격차,만연하는 부패악상과 도덕심의 하락,상대적 행복감의 저하 등등 현상을 백묘흑묘론에 원인을 귀착시키면서 개혁개방의 성과를  축소해석하는 것이다.   반대로 묘론의 본의를 왜곡하고 그의 실질과 의의에 대해 뒤틀린 평결을 내리는 유상(謬想)이 일그러진 사회의식과 그릇된 정책의 근원으로 되어 오늘 사회에 만연되는 반사회적, 반시대적인 탐오,회뢰,자원낭비,환경파괴,민생민권의 침해 등등의 부산물을 양산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를 경험하며 살아온 일인로서 력사의 진실을 피력하는 것이 서로간의 인식을 소통시키고 바른 사상을 가지는데 유조하다고 생각하였다.   백묘흑묘론의 유래   지난 세기 50년대 말-60년대 초, 중국은 제도적으로 고착된 탈현실적인 리상주의 리념과 관료주의적 관리 방식에 의해 경제는 엄중한 침체되었었는데 특히 농업 생산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농촌에서는 여러가지 채산 형식이 유행되었어도 특히 가정도급식의 방식이 인기가 높고 유력시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최고 지도층 내부에서는 큰 시비거리여서 다부분 맴버들은 입조심 말조심하며 회피책을 대는 형국이었다.   바로 그때의 1962년7월7일, 등소평은 공청단중앙제3기7중전회의 대표들을 회견할 때 농업생산책임제의 가부 선택에 대하여 대답하면서 어느 것이 그 지방에서 생산을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곧 좋은 형식이다.만약 군중이 그것을 수요한다면 곧 채택하고 비합적인 것을 합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그리고 혁명 전우인 류백승의 란 경구로 형상적인  설명을 가하였다.이것이 저명한 백묘흑묘론의 유래이다.   말의 진의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생산 발전을 저애하는 구식을 개변하고 경제 수준과 군중의 요구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여  생산을 추진해야 한다는 특정된 의미었다. 오늘 보면 그지없이 간단한 말마디도 당시에는 해직당하고 정쟁의 몽둥이 세례를 겪을 각오가 없으면 조련히 던지지 못하는 험언(險言)이었다. 등소평은 감히 내뿜었다. 세계는 등소평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후의 정치 풍파, 특히 (1966년)가운데서 등소평의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사업 풍격은 정치적으로 이단시되어 강서성의 어느 시골의 공장에서 류형 생활을 하게 된다.등용되어 복직한 후 등소평은 붕괴의 변두리에 이른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자기의 이념을 되살리어 최대의 노력으로 가능한 한도내에서 혼란을 정돈하는 용단을 내리었다.하여 재차 정면 공박을 받았는데 최고 지도자까지 백묘흑묘론이란 례화(例話)로 들고 그에게  비판을 가한데다 정치 궁노수들의 밀집한 화살 강공을 받고 또 자리에서 쫓겨나고 전국적인 비판을 받는 원죄를 들쓰는 불우의 변을 당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판이 거셀수록 등소평은 철석간장의 호남아로 득명되고 군계일학의 실재론자로서 더더욱 유명해졌고 민심은 일거에 등소평에게 쏠리었고 세계는 중국의 운명을 등소평의 부침과 연계시키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때부터 백묘흑묘론은 그의 사상의 대명사로 되기 시작하였다.   白猫黑猫설이 론에로의 전환   문화혁명의 종식으로 중국은 새 시대에 진입하였다.그러나 장시기를 거쳐 형성된 경직된 사고방식과 그 정책의 뿌리는 너무도 깊었다.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기로에 이르렀다.   이 관두에 등소평을 대표로 한 개혁의 주력들은 라는 테마의 이론적 대토론을 전국적 범위에서 벌리었다.이는 당시의으로 표현된 개인 숭배를 종말 짓고 미신을 타파하고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사상로선을 확립하는 전민적 사상의 일대 력사적 전환이었다. 위대한 사상해방운동이라 불리는 이 의식형태의 혁명은  1978년 12월에 열린 중공11기3차전회를 위해 리론적,사상적 기초를 다짐으로서 중국공산당은 력사의 항선을 경제 건설을 중심으로 한 개혁 개방에로 돌리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 회의에서 등소평이 선포한 개혁개방의 선언은 중국의 현대사에서 보면 중국공산당의 탄생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을 이은 후 중국의 천재를 개벽하는 하나의 위대한 력사적 사변으로 평가된다.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목표가 확실시 되는 때 중국의 정치,사상 분야에는 재차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하는 사상 혼돈이 발생하고 이데올로기의 론쟁이 다시 벌어졌다.   1992년초,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간결하고 결정적으로 론단을 내리었다. 계획 혹은 시장의 다소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를 정성하는 구별점이 아니다.어느 것이 정확한가 하는 판단 표준은 그것이 사회주의 생산력의 발전에 유리한가,사회주의적 국가의 종합적 실력을 제고하는 데 유리한가,인민의 생활수준 제고에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다분한 철리와 박력있는 촌언는 또 한차례의 이념적 분쟁을 종식하고 사상적 질곡을 부심으로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건설에로!라는 방향을 기치 선명히 확립하고 국가의 건설을 정확한 발전 도로에 진입시켰다. . 이 두 단계를 거치면서 정설화되고 구체화된 명쾌한 유물사관의 산물인 등소평의 리론은 백묘흑묘론을 그 징표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개혁개방을 이끌어낸 묘론의 중심중부(中心中部)는 생산력 향상과 전체적 국력의 향상, 인민의 생활수준 향상, 사회주의 현대화에로의 매진 등으로 요약된다. 백묘흑묘론의 의의   백묘흑묘론은 역사의 수요에 부응하여 기운찬 론리적 힘으로 중국의 낡은 구조를 개축하고 나라의 대문을 전세계로 열어놓는 금열쇠로 작용하였다. 중국 사회는 이미 튼튼한 물질적,정치적,문화적,외교적 기반을 마련하였을 뿐만아니라 세계화로 향하여 나아가는 불가역적인 중국 특색의 발전 도로에 올라섰으며  세계와 공동히 발전하는 견고한 기틀을 잡아 놓았다.   등소평이 20여년 사이에 13억을 이끌고 곤궁을 빠져나간 자체는 인류의 기적이 아닐수가 없다는 것이 세론의 일치한 평가이다.락후한13억 인구대국, 극심한 지역 격차, 복잡한 지리 환경, 정치,경제,문화,외교,민족 등 모순이 얼기설기 교착된 나라에서 이미 달성한 성과만으로 세계가 괄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백묘흑묘론의 발전   중국은30여년의 건설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국제 사회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정보사회,지식사회를 대변하는 문명의 리기(利器)들은 사회의 일사천리 발전을 떠밀고 나간다.시장경제의 기본 구조가 확립되었고 사람들의 정치사상,경제사상,법률사상,문화사상은 전례없는 변화를 가져왔으며 문명 대국의 건설은 장엄한 중반전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잔여가 아직도 넓은 터전을 지키고 있으며 새로 나타나는 다량의 반시대적 우수마발[牛溲馬勃]과  시류를 역행하는 반작용력도 거센 힘을 자랑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실천으로 현란한 옥석혼효(玉石混淆)의 신구물속에서 요용건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뭇사람들이 교아절치(咬牙切齒)하는 부패물도 새 제도의 확립으로부터 발본적인 제거책을 찾아야 한다.   중국은 새로운 시대적 높이에 올라섰다. 지난날의 낙후한 경제와 인민의 물질적 수요간의 절박한 모순이 확연히 해결되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경제,정치,문화,환경개선,자원보호,지속적 발전 등등의 제반에서 균형적,전면적,지속적인 발전을 요하는 력사 시기에 들어섰다.변화에 걸맞는 리론,정책,방침과 조치들이 실천의 무대에 올라야 한다.   대안이라면 백묘흑묘론에 내포된 변증유물론 정신을 계속 지양하여 현시대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경제토대와 상부구조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 리론을 중국 특색에 맞게 독창하여 나라를 끌고가는 것이다.국보간난(國步艱難)의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더없이 어려워도 진행해야 한다.아니라면 역수행주,불진칙퇴(逆水行舟,不進則退)가 된다.   오늘 당중앙이 제출한 과학적 발전관을 관철하는 전민적 노력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민주적이고 번영하는 참신한 사회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상해방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1    한국어의 이형(異形) 댓글:  조회:4480  추천:4  2011-06-28
한국문을 보고 한국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중국의 지명과 인명이 외래어로 취급되어 현지음을 따르고 글과 말,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표기법과 표달이 생기면서 고민을 할 때가 많았다. 례하면 대련(大連)하면  한글에선 혹은 이라 쓰인 경우가 있다.그리고 한 이름을 어떤 때는 한자음으로 어떤때는 중국음으로 기록이 되어 갈피를 잡지 못한다.례하면 상해(上海)는 어떤 때는 고 어떤 때는 이다. 대화에서는 중국어 발음을 어설프게 본뜬데다 이질적인 악센트까지 부착되어 닭알인지 오리알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민망함을 자주 보인다.   언어를 관장하는 어느 거물들의 걸작이겠지만 생계에 쫓겨 다니는 샐러리맨으로서는 겪는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오늘 그때그때 떠오르던 생각을 주워 글로 꿰본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잇대인 나라로서 몇천년을 내려오며 정치,경제,문화로부터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밀접한 교류를 진행하며 서로 침투하면서 각자의 독특한 민족 문화를 창조하여 왔다.이 과정에서 한자는 중국어란 의미를 떠나 자기의 한자음을 가진 완전한 한국어의 일부로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원한 역사적 산물인 한자를 외국어로 취급하는 리유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한국어에서 한자는 거의 전부가  자체의 한자음을 가지고 있다.지금 한국의 절대 부분의 지명과 인명은 대칭되는 한자가 있다.그런데 중국의 지명과 인명만이 현지음으로 읽어 진다면 이는 혼란이외 다른 것은 아니다. 일률적으로 한자음을 쓴다면 더욱 편리하고 역사적 관습에도 부합되고 생산적일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어 현지음을 끌어들이는 저의에 도통 이해가 안 간다.   한자의 한자음에는 함축된 한민족 특색의 력사적,문화적 함의가 있다. 그런데 중국어 지명,인명에서만 한자음을 분리시킨다면 문화의 계승성에 혼선이 생기고 세대로 내려가며 혼돈이 발생하여 한글의 정체성에 큰 흉터를 만들게 된다.   중국의 인명 지명이 원 한국어 한자음으로 표기 되어야 교육과 매체에서 한국어의 순수성이 고양될 수 있다. 일본은 1945자의 당용한자를 당당하게 법적인 형식으로 교육에 침투시켜 자기의 전통적인 한자음을 고수하고 국어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시기에 맞춰 필요한 증감을 진행한다.배워야 할 바이다.   현재 한국어에서 중국의 인명,지명은 중국어 발음대로 한다고 하지만 아주 동떨어진 발음 구조이다.례하면 모택동(毛澤東)은 모저뚱인데 마오저뚱, 등소평(鄧小平)은 떵쑈핑인데 떵쌰오핑이라 말한다.이상한 반상반하 혼혼의 극치이다.일률적으로 원래의 한자음을 쓴다면 이런 미스터리도 어색함도 전혀 없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인들은 한국어에서 이런 쓰임에 상당한 곤혹을 느끼고 있다.한국의 지명,인명은 한자음인데 중국어권의 기타 지역,이명 이름들이 현지발음이니  자꾸 헷갈리는 곤욕을 치른다고 투덜대는 이들이 다부분이다.반대로 한국인이 한자를 배우는데서도 저애가 된다.중한교류에서의 인위적인 장애로 봐야하지 않을가!   우리의 조선어는 특수한 정치,역사,지리 환경에서 보존되고 발전되어 왔다.그는 중국어와의 긴밀한 결합속에서 자체의 우수한 문화적 특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한국어의 체계에서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어 있다.앞으로 국제교류의 발전과 더불어 동족어인 한국어와의 상호보완으로 그 변화도 불가피하겠으나 상황의 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말의 역사적인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민족언어 발전에서의 정신골자라고 본다.   몇 세대의 땀과 심혈로 이뤄진 조선어를 연구하는 전문기관들이 더욱 권위성이 있는 보루로 되고 그가 진정 조선어의 규범성,순결성과 발전성을 수호하는 구심점으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짧은 생각을 적으면서 정통한 어른들의 도움말도 많이 들어보고 싶다. 201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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