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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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여세추이(与世推移)는 사는 길 댓글:  조회:2955  추천:0  2015-05-29
기한 속에서 태여나 몸부림치며 살아오다 녹신해진 우리를 개피(Gappy)세대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실로 60년대 동네 어느 집에 라디오가 있다면 최고부자 이하는 아니었고 쇠줄을 단 유선방송을 보고 좋아 죽겠던 회억도 아름답게 남아있다.70년대는 벤또 만한 반도체를 들고 다니는 것도 상당한 멋쟁이 행세었다.30년전 집전화를 가설하니 뿌듯하였었는데 20년 전에 목침만한 핸드폰을 들고 거들거리던 친구들이 지내 씨만했다.10년 전 지능핸드폰(스마트폰)이 나오더니 볼품없이 어줍짢은 물건이 통신도구를 훌쩍 뛰어넘어 사업,홍보,교제,독서,공부,통신이 결합된 현대 생활의 신기한 상징물로 되는데 세월의 변화를 종잡을 수 없다. 어제는 정보시대라더니 난데없이 디지털(數字)에다 디지털을 불러대니 탈빈곤 전쟁에서 머리를 굳힌 세대는 느낄 여유도 없이 흐리멍텅 현기증의 시련을 받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에서 소요 물품을 주문하고 지불까지 완성하여 택배업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쇼핑 다니는게 딱 질색이란다.앉아서 사고 앉아서 받고 게다가 물건이 눅겠다 서비스도 좋겠다 오죽 좋으랴.사이트를 보면 지구의 뒷등도 마주보는 이웃일 뿐 먼촌 친척이 아니다. 국경은 희미해 지고 무수한 기업들과 개인들이 시공간 제한이 없이 지구 전역에서 자신만의 터전을 만든다.아직도 니 죽고 내 사는 혈투가 끝없어도 격렬한 리합집산(离合集散)의 싸움 속에서 사람 사이의 가름막이 얇아지고 알륵을 융합에로 선도하는 력사적 격동이 일고 있음이 틀림없다.정보기술(IT)과 디지털(DT)기술의 발전이 천지개벽의 암장(岩浆)을 녹여내고 사회는 대변혁은 림계상태라고 코를 세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인터넷 기반의 전자상거래는 전통적인 유통업에 직격탄을 날린다.유명세를 타던 백화점이 매상이 푹 떨어지어 깊은 고민이고 가게들이 속속 장사를 접으며 부동산 임대업자들은 어이없어 두두벌거린다.컴과 핸드폰에 의한 구매가 유행되는 센 바람에 방대한 유통체제는 휘청거리며 엄동을 맞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약간 멀리에선 생산구조에 혁신이 일고 생산자-소비자의 직거래로 하여 새 생활방식의 싹이 우후죽순처럼 키돋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핸드폰 말단에서 은행계좌의 조회,송금,결제가 이뤄지고 모든 은행 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전통적인 은행업은 새로운 형태로 두각을 내밀어야 한다.요즘엔 인터넷상의 간편하고 수수료 없는 송금과 결제가 이뤄지면서 실리와 편리를 바라는 고객들의 더욱 새로운 양식의 서비스가 기대되고 있다. 하여 경제 명맥인 은행은 쪽도 못쓰고 사이버 은행의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책이 없는 독서가 생활화된다.가는 곳마다 핸드폰을 들고 독서하는 진풍경이 일어난지 오래다.수만 페이지의 백과사전도 씨디(光盤-CD)한장이면 충분히 수록되고 수천만 권의 장서(藏书)가 몇장 씨디에 기록되고 있다.종이책들이 외면당하고 이동 정보기기로서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기록 전달과 보존을 완수한다.출판시장,도서시장과 문화시장은 진통을 참아서라도 구시대적 구투구체(旧套旧体)를 교체야만 한다 팩스기,전화기,녹음기,타자기 등등 사무도구는 물론 가전을 포함한 모든 기계들에 원거리 제어가 가능해 진다. 요즘엔 와이파이(wi-fi),위쳇(wechat),인공지능(AI),클라우드컴퓨팅(云计算)등등 이상한 말이 속출하고 있는데다 인터넷 시대를 넘어 사물인터넷(IOT-物联网) 시대에 들어선다는 고함소리도 들린다.이동 가능 모든 기계는 자기만의 인터넷주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18000km 떨어진 집의 밥을 간단한 클릭(点击)으로 짓는다는 짐작이 거짓말이 아니된다.기존 산업체들이 그 더블펀치(連打)에 어쩔수없이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고신기술은 핸드폰 액정면에서 생면부지 인간들끼리 자유롭게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상대의 위치마저도 정확히 파악하면서 만남의 장을 만들게 한다.임의의 시간대에 리념과 나라 제한이 없는 다양한 형태의 가상사회가 우후죽순마냥 탄생하며 전 지구가 급속히 다원화되는 모습이 확산되고 있다. 신기술은 확실히 정치,경제,사상,이념,사고방식,사회구조와 생활방식마저 송두째 개변시킬 태세이다. 이것은 사회 진보의 발단이다.맑스주의 유물사관의 기본적 의미는 생산관계 및 상부구조 전 령역은 생산력 발전의 수요에 따라 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던 과학은 사람의 의지를 불문하고 자기의 고유 법칙대로 나가고 있다.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 발명이 사회 대변혁의 시작이었다는 사실(史实)이 새삼스럽다. 력사 발전을 적극으로 맞아오면 력사의 선구자이고, 주동적으로 순응하면 력사의 주인공이고, 어영부영 뒤따르면 력사의 추수자이고, 편안히 안주하면 력사의 보수자이고, 가로막고 역동(逆动)하면 력사의 반동파이다.과학적 론리를 뒤따르고 과학적 무장을 부여잡아야 살아 남는다.물론 취사선택(取舍选择)은 각자의 선택일 것이지만 이게 여세추이(与世推移)를 부르짓는 리유이다. 바늘 끝에 전자눈을 달아놓는 세월인데 울끈불끈 근육을 자랑하며 금강도끼를 휘둘러 힘을 과시해 뭘하랴.뿌린 바늘에 눈이 찔리면 그만이다.실로 시대인가. (끝) 2015-05-27 연변일보
34    맴을 도는 사람들 댓글:  조회:3047  추천:0  2014-11-26
삶의 필수요소인 의식주행흡(衣食住行吸)은 삼척동자도 알고 남는 사실이다.이 오보(五寶)에 부족이 있으면서 잘산다고 부르짖는다면 적어도 적지않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요즘 금의옥식의 풍요를 누리면서 멎진 자가용에다 호화사치를 과시하며 흥야망야하는데 행선지 가기가 날로 어려워지는 그 시시비비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혹심한 교통체증으로 길 위에서 번갈(煩渴)을 앓고 있는 사람들, 전에는 러시아워 때에만 볼 수 있던 도로 경색이 이슬아침부터 보리저녁까지 지속한다.어기적거리는 차속도는 걸음이 부러운 살풍경인데 교통버스、공무용、자가용、 택시들이 교착되어 골똑 찬 길에서 탑승자들이 애간장을 태우는 맹랑한 장면이 매일 보는 일과이다.툴툴대는 운전자, 안달떠는 직장인,탑승자 만빵인 버스에서 무가내하로 감내해야하는 진절머리는 로상의 미스터리(mystery)다.빈발하는 사고가 시시로 차의 발을 묶는데다가 얌체 차들이 곡예술 피우듯 종횡무진하는 마법(魔法)을 연출하여 기절한 이들의 쌍시옷 섞인 욕설은 단골말이 되었다.하루하루 깊어가는 행로 수심은 고속도 일로로 나가고 있다. 승차난은 교통체증의 난치 이 되어버렸다. 버스 운행시간의 지연으로 배차간격이 늘어나고 와야 할 버스들이 연착되어 정류장마다 객들이 줄지어 늘어서는데 서로 밀고닥치는 승차 경합이 상습화되고 있다.그러하니 택시차도 저속이 붙어 띠염띠염 보이는데 눈을 비비며 겨우 찾아 행선을 알려주면 뚜이부치(對不起) 인사에 손사래 보내기가 다반사이다.막히는 곳이니 안 간다!이다.버스 승차난.택시 잡기난으로 행인들이 맴돌이치는 장면이 간데족족 펼쳐진다. 주차가 전쟁이 방불하다.공극(孔隙)의 틈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차를 박아넣는데 불법 주차라는 개념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보도주차고 개구리주차고 마다하지 않는다.그런데다 가끔 교통 관리자들이 불쑥 뛰어나와 벌금 고지서를 부착하는데 성급한 친구들은 어디도 차가 바다인데 왜 나만이 처벌이냐고 당당한 시비를 주문하면 서슬푸른 법규를 코밑에 들이대고 잔말 말고 돈 내노세욧! 틀거지 차린 소리다. 노기등등하여 어이없다가도 주억주억 수긍한다. 차량의 무작정 증가와 주차 공간의 절대부족 이 대항성 모순에 해법이 따로 없을가! 고향 친구들과 이 도시의 보행난을 하소연했다가 헛대포란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침소봉대(針小棒大) 표현도 있겠으나 실로 걸을 공간이 없다시피 하다.원래 어지간한 거리는 걸음으로 해결이 되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보행로 거의가 주차장이 되다보니 모걸음 배틀걸음이 지겨워 부득이 차로를 걸어야 하는데 쌩쌩하는 차에 치일가 신경을 도사려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어디어디서 차에 치였다는 멧세지도 불쑥거리며 수시로 홍보되는데 보행로에서 량반걸음을 하던 세월이 신화시대였던 것만 같다. 최근 매체들이 도로 경색의 심각성을 종종 말밥에 얹고 있다.선진국들도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라며 어정쩡한 솜방망이질로 뭉뚱그리기도 하는데 제발 선병자(先病者)의 전철을 밟지않도록 실효성 있는 미연의 방지책을 조명해 낸다면 좋겠다.식으로 후행손님만 된다면 영원히 낙후하게 된다.남보다 더 선진적 체제를 확립해야 웅변이 된다.란마같이 얽힌 난제들이 산적할 것이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풀어야 하고 점진적일지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민초들의 불편이 방치된다면 뭐가 뭐라해도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 해야 마땅하다. 맑은 햇빛,신선한 공기,깨끗한 물, 원생태 자연,인간본연의 생활 등 웰빙(Well-being)으로부터 날로 멀어가는 현대 문명, 혼탁한 공해 속을 살아가는 대중, 이 아이러니(irony)는 우리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대중교통을 중심으로 공공버스,자전거,보행 등 대중교통이 최적화로 이용되도록 명철한 정책과 정술(政術)을 수립하고 자가용 증가를 무작정 방임하는 구태의연한 가치관도 혁고정신(革故鼎新)해야 한다.웰빙을 숭상하는 사회적풍토,그 상부구조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안전망,변화에 동승하는 관리 메카니즘(Mechanism)이 바로 이 시대의 인 것이다. 시간에 짓쫓기어 창황망조(蒼黃罔措)하는 시민들, 이들에게 행의 쾌적을 찾아 줄 대안은 없을 것인가.인간이 중심이라는 이인위본(以人爲本)에 담긴 의미는 제한된 자원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최대한 충족시킨다는 슬로건이다.이 외침이 공념불이 되지 말도록 하고 길라잡이들이 최대출력을 내고 실행 모델이 되게 하는 기치로 되었으면 좋겠다.넓다란 도로에 펼쳐진 차풍년만 보지 말고 그 그늘에서 맴도는 서민들의 일촌간장(一寸肝臟)은 누군가가 헤아려 봐야 할 것이다. (끝) 흑룡강신문 2014-12-06
33    연경기종 댓글:  조회:2755  추천:1  2014-11-19
 은 글줄에서 보기 드문 사자성어이나 목을 빼들고 발뒤축을 들고 멀리 보라는 뜻으로서 사람들이 선견지명(先见之明)의 예지가 있어야 한다고 타이르는 생동하고 직유적인 경구(警句)이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대이동과 90년대 초부터 발진한 한국행은 력사의 전진운동이었지만 우리는 민족 터전이 사막화되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였다.이것은 대체로 사회진보에 동반하는 진통으로서 새 시대로 나가는 통행료로 봐야하지만 개중에서 아이들을 글공부 초입부터 타민족 학교에 보내어 민족어의 배움길을 원천 차단하는 부모의 처사는 모범(冒犯)으로서 한숨을 자아내는 시빗거리로 되었다.오늘 이 애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고배를 마시고 나서야 주춤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도 심심찮게 보이고 들리군 한다.자기 피붙이니 나름대로 룡꿈은 따로 있겠으나 자식의 인생에 복수불반(覆水不返)의 랑비를 조성하는 도전(徒钱)으로 봐야 마땅할 것이라 늘 설득하고 싶다. 경제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가치관、생활방식과 사회구조는 충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오늘의 인류는 후정보사회의 디지털 시대라 부르짖으며 핸드폰의 간단한 터치로 사업과 일상사를 툭탁 처리하고 컴퓨터 클릭 한 방으로 세계의 뭔가를 반반 들춰내는 약진 시대에 들어섰다.이 세월의 특점이라면 매개인에게 뢰동부화(雷同附和)하는 삶이 아닌 선명한 개성과 창의성을 소유하기를 혹심하게 강요하는 것이며 도식(图式)적이고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다종다양한 문화 문명과 공존할 수 있는 유능한 인적자원을 꼭 수요하는 것이다.한민족의 경제와 문화 여파가 세계를 향해 반달음박질로 광역화(广域化)되고 그 분지(分枝)인 조선족 문화의 가치도 평가절상으로 반등(反腾)하는 사실은 조선족이 이 국제화 시대의 선두주자로 될 필요조건을 구비하고 있음을 예고한다. 조선족 인구의 급감과 후계자의 감소 및 산지사방으로의 류실은 인재 공급부족의 타이트마켓(Tight market-紧俏市场)을 바야흐로 형성시키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그런데도 작금량일(昨今两日)에만 눈을 박고 앉은자리를 뱅뱅거리며 애들을 간선길에서 곁골목으로 방향을 돌려놓는다면 미래의 기회를 상실하는 참회를 불러올 것은 명약관화이다.줄기차게 발전하는 중국의 세계화적 변화와 가변성 미래를 무시한다면 향상을 바라는 애들이 인생길에서 모진 고민과 방황을 거듭였다는 사례가 너무도 많다.글로벌 시대에 대처할 준비가 허술한 부모들은 우리 문화의 가치가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다는 력사 변증법을 되새겨 봐야 마땅하다. 중국의 발전은 민족특색이 선명한 조선족을 수요한다.이러한 민족적 파워와 매력은 우리가 중국의 우수 민족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서 선행적 요건이다.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열린 세상의 앞날을 분명히 제시하고 중국 공민으로서 떳떳이 사는 조선족의 나갈길을 가르쳐야 한다.조선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태산이고 할 일도 산적(山积)하다는 사실과 전도양양이라는 기성사실(既成事实)을 가르치자면 어렵지도 않다. 천생의 문화적 특질을 주입해야 해야 할 대신 포기 쪽으로 핸들을 돌린다면 사회는 손해고 애들은 피해고 자기는 조지약차(早知若此)의 후회 삶을 사는 둔박한 짓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조선족 거주지가 동북아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정학적인 우세는 우리에게만의 절대적 기회이다.이 지역의 미래에 대비하여 주변의 나라들과 많은 선진국들은 언녕 화려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으며 발생 가능한 변수들을 파악하면서 나름대로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당연히 현지에서 조선반도와 긴밀한 혈연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족 사회에 흠모와 기대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우리 매개인은 도래하고야 말 력사적인 새 변천에 대응할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진정 자기 문화의 주인이 될 때 이 찬란한 미래를 만끽할 자격당사자가 된다는 확신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조선어를 대화나 통역 차원의 협애한 생계 수단으로만 간주한다면 너무 짧은 토막생각이다.언어가 핵심을 이룬 민족문화의 터전은 세계화 물결 속에서 조선족의 교두보이고 새 시대로 도약하는 디딤돌로 되고 있다는 전략적 부가가치를 직시(直视)해야 한다.선진 문화를 기반으로 한 폭넓은 시야와 식견은 미래 사회에서 기어이 작용할 보귀한 마인드들이다.조선족 문화의 계승와 번성은 자신의 번영이고 나라의 공헌이고 인류문화의 보고(宝库)에 재부를 더하는 플러스로 된다는 점도 되풀이한다. 후대의 몸에 슴배인 문화의 물머리를 돌릴 때 복일가 화일가 복불복(福不福) 여부를 곰곰히 짚어봐야 하지 않을가.다양한 변화와 창조교육을 주창하는 다원화 세월에 민족의 개성화로 세계 앞에 나선다면 인격 가치가 배가(倍加)한다는 시류도 정시해야 할 세상사이다.아이들의 창발력과 창조력을 잠재우고 인생의 립지조건(立地條件)을 축소시키는 무지의 소치(所致)는 그만둬야 할 것이다. 급변(急变)、 급속(急速)과 급선회(急旋回)로 특징짓는 오늘의 세상은 디지털 의 시대로 일변하여 나라의 국경선도 급급히 무색해 지고 있다.자식을 가진 어시라면 명견만리(明見万里)의 예언가로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의 20년 쯤 앞이야 똑바로 봐야 할 게 아닐가! (끝) 2014-11-18일 연변일보
32    조선족의 정신 인프라(infra-기초시설) 댓글:  조회:3888  추천:1  2014-06-03
                                                                                                              대련/김인섭   2014-05-06  '눈물도 배가 불러야 난다.'는 옛말이 어투루 내던진 지날말이 아닌 같다.요즘 조선족 사업가들과 마주하면 담화의 내용이 확연히 달라짐을 감지하게 된다.예전의 자리는 늘 사업담으로 말판을 만들어 갔었는데 이젠 성업도 하고 기반도 단단히 다졌으니 자부의 희열을 표출하면서도 사막화 일로로 나가는 조선족 사회를 바라보며 랭철한 반성과 사색을 심심찮게 던져내고 있다. 여태껏 가난의 탈피와 재부의 축적에 도정신하며 살았다면 이젠 민족의 정신인프라 구축으로서 새로운 민족적 도약을 실현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선족은 정확한 자아관(自我觀)을 수립하고 자아상(自我像)을 확실히 파악하면서  민족사회의 재기를 도모하고 새 목표를 실현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수립해야 한다.조선족 사회의 부산한 현실은 신구 체제의 전환 과정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상으로서 반드시 지나야 할 고빗길이고 성숙사회가 되는데서의 통과의례이며 사회 격변기의 재분화、재조합의 합법칙적 력사단계이다.우리에게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와 중한 두 나라 문화에 물젖은 독특한 우세와 오래동안 구축된 경제 문화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특히 중한 수교 이후 이 자산은 막대한 자본으로 전화되어 향후 발전을 위한 튼실한 물질적 기반을 구축하는 원동력으로 되었다.국제사회의 공력(共力)이 동아시아에로 대이동하는 현 시점에서 중화경제권을 배경으로 하고 한국과 일본과 조선까지 포함하는 동북아 지역을 무탈하게 래왕할 수 집단인 조선족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부상되고 있다.우리의 이 전례없이 넓어지는 오늘 새 비약을 자신한다면 그 리유가 너무도 충분하다.   우리는 자문화를 트팀없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이것은 조선족이 무한한 발전을  실현하는 기본 조건이다. 허나 이러한 전승(傳承)은 부조전래(父祖傳來)의 전부를 마구잡이로 고수하는 승계가 아니고 타문화로부터 끊임없이 를 섭취하여 자기의 을 보강하는 개방적인 계승과 발전이어야 한다. 급변을 거듭하는 조석으로 변하는 정세의 수요에 부응하여 업그레이드(승화)된 민족 문화의 플랫홈(platform-승강장)을 현대적 감각에 알맞게 건설하고 여세추이(與勢推移=與世俱진)의 참신한 문화사회를 재건함으로 발전의 새시대를 열어가야 한다.우리들이 창조한 기존의 물질 자산이 선진문화와 결합할 때 그는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배가(倍加)의 가치로 전화되어 민족의 위상을 곱절로 폭등시킨다 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주 민족으로서의 우리는 타민족과의 영합과 단합에서 눅진한 뉴대를 끈끈히 다져야 한다.이것은 우리가 조선족 사회를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데서 무상의 자본이었으며 미래에도 우리 자산의 교환가치를 갑절로 증폭시킬 보귀한 재산이다.타민족은 우리들이 영원히 공생공영해야 할 이웃이고 동도동지(同道同志)이며 우리 상품의 단골 매입자들이고 우리를 민족을 홍보하는 최고의 선전관(宣傳官)들이다.우리가 그들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최상의 신뢰를 심어줄 때가 민족사회의 발전과 리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계기로 된다.   미래 조선반도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조선반도의 정세는 음청(陰晴)을 되풀이하면서 다사다단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러면서도 긴장이 완화될 때면 평화통일의 열망을 고조시키고 그 긴장이 대발할 때면 통일조선의 갈망을 더더욱 들쑤시는 피타게 안타까운 현실이다.여하간 동족상잔과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전체 겨레들이 한자리 모임을 학수고대한다는 일심(一心)만은 일맥상통하며 세인들의 기대도 한결만 같다.이란 천리와 력사의 조류는 막을 수 없다는 진리도 의심할 바 없다.우리는 이 미래를 정시해야 해야 한다. 우리는 동북아를 주름잡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전반에서 약동하는 민족으로 될 정신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   조선족의 언어, 즉 민족어와 중국어는 학교뿐만이 아닌 인민 전체가 그 질적인 수준을 부지런히 제고해야 할 제일 문화자본이다.더우기 민족언어에 대한 문화화 소양을 갖추도록 열의를 올려야 한다.이것은 민족의 발전에서 전제조건이며 비할바 없는 장점이기도 하다. 중국어에 대한 요구가 높아 질수록 조선어의 더 높은 수준을 박절히 수요하고 있으며 능란한 언어구사 능력의 중요성도 갈수록 불거지고 있다.현재  우리는 세인이 부러워하는 이중언어화자(二重言語話者)이지만 새 시대는 대량의 삼중언어화자(三重言語話者)들과 다중언어화자(多重言語話者)들이 더욱 수요하게 되는데 조선족은 이상하게 가능한 탁월한 기반이 있다.   민족 후대의 육성에 혼신의 힘을 부어야 한다.출산의 대대적인 저하와 삶터의 급격한 이동으로 인한 인구의 현상은 대략 10년 이후가 되면 틀림없이 인재의 갈급증(渴急症)이란 부병(負病)으로 이어진다.세계화 물결의 도도한 흐름과 중국의 력사유물론적 개혁이 가져오는 불가역적 변화로 하여 다중지능,다중문화,다중언어의 조선족 인재를 대량적으로 수요하게 될 력사시기가 눈앞에 박두하고 있다.인구수의 대량적인 감소를 대비하여 전체 후대들을 고품질 인재 집단으로 구성시킴으로서 량적인 부족을 미봉할 플랜(plan)이 지금부터 비상대책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외면적인 조선족 사회는 아닌 말로 하면 불성모양이 되어 된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해도 이것은 과거 시대에 형성된 결합조직에 대한 생리기능의 재조절이고 신장기(伸長期)의 성장통(成長痛)으로서 결코 쇠락이 아니고 더우기 퇴락은 아니다.이 현실은 우리에게 시대의 변화에 동승하여 새로운 도약을 시도해야 할 때라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일신월성(日新月盛)하는 우리 나라에는 조선족이 살아갈 비옥한 터전과 샛맑은 샘물과 청신한 대기가 있는데다 활짝 열린 세계무대까지 있다.   시대의 분수령 앞에서 참신한 도전정신으로 자기의 터전에 백화를 만발시켰을 때 우리는 중국 땅의 우수한 민족 구성원이 되고 세인이 흠모하는 모습으로 세계 민족의 대렬에 우뚝 설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끝)  
31    치타슬로(cittaslow)를 엿본다. 댓글:  조회:3252  추천:0  2014-03-11
                                                     치타슬로(cittaslow)를 엿본다.                                                                                                2104-02-19 세간에서는 호의호식하며 잘 산다는 언설이 넘쳐난다.그런데 아이러니(irony)라면 육신의 어느 구석에도 간단없이 흘러드는 물과 공기에 유해물이 가득하고 먹거리에 독이 있고 토양도 심한 오염되었다고 아우성이다.불가재생 자원의 소모에 가속이 붙고 돈이 된다면 전통과 문화 전부가 저쪽이란다.이상기후가 생명을 호시탐탐 노리는데 웃기는 작태들이 곤댓짓하며 떵떵거리니 지긋한 포문(飽聞)에 귀가 뜨거워 요즘은 늘 치타슬로를 넘보게 된다.   치타슬로(cittaslow))는 라는 뜻으로서 영어에서 슬로시티(slow city)라는 이탈리아어 표현이다. 여기 슬로시티는 라는 뜻이다. 이는 1986년 패스트푸드(fast food:卽席食)에 반기를 들고 첫걸음을 내디딘 슬로푸드(slow food:餘裕食)의 철학을 지역 전체에 확대시킨 사회운동이다.   1999년 10월 이탈리아의 포시타노를 비롯한 네 개의 소도시의 시장들이 모여 현대적인 개발 대신 을 만들어 행복한 삶을 이뤄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란 의미를 부여한 의 창립을 선언했다. 현재 16개 나라와 나라의 110여 도시(혹은 지역)가 의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 등록시켰는데 한국에서 네 곳과 중국의 남경시고순현아계진(南京市高淳县桠溪镇)도 국제련맹의 인증을 받았다는 소문이다.   현대사회의 속도라는 가치관을 벗어나 느리게 사는 미학을 정착시키려는 것이 바로 슬로시티의 발전 리념이다. 그들은 오늘도 무한경쟁의 생산 지상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진지하게 펼치고 있다.그들은 지역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토속적이며 독특한 맛과 멋을 자랑하는 음식의 진면목을 재조명하여 전래된 지역특성을 보존하며 전통적인 문화와 력사를 보전하고 발전시켜 후세에 전달하는 것을 지고무상의 책무로 간주하고 있다.   치타슬로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효율은 자연에 위반되며 생존균형을 위협하는 요소로서 치부한다. 더불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개연성을 가진 대규모적 경제활동과 사회적 통념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그 실현을 위하여 회원 도시는 인구 5만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인들의 가치기준이고 동양인의 관념에 반하는 마인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인증된 도시나 지역에서의 관광이나 산업은 특유의 브랜드로 인식되어 소득이 증대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는 길보(吉報)가 전해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치타슬로가 성공 모델이 될 것인지 두고 볼일이다. 우선 유럽의 풍토에서 살아가는 가 동양의 지리(地理)에서 보호벽이 세워질 것인가가 의문스럽다.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는 900년 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로서 내부 전체에서 차량통제는 물론이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도 수 백 년 전 마차길이 그대로 보호되어 있다.그들은 또한 건물의 신축보다 기존 건물의 보존에 상당히 집착한다. 우리가 이처럼 옛 모습을 지키려 한다면 제도적인 장치가 뿐만아닌 주민들이 용납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도 없다.   좌우지간 불가재생 자원이 급감하고 자연과 전통이 파괴되고 인간이 이룩한 현대 문명이 부메랑(boomerang)이 되어 인간 생존을 위협하는 현상이 가심화되어 염증(厭症)이 날로 심해진다.어떤 이유를 들이 대도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거나 력사를 외면하는 행동이 능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이런 현실에서 치타슬로가 내건 기치에 난해한 모순은 있더라도 귀가 솔깃하여 곁눈질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족 사회가 위태롭다.민족의 정체성과 기존의 환경 그리고 전통과 문화도 퇴색을 재촉하고 있다.이는 합법칙적 변화의 일면도 있지만 경제적 락후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민족사회의 동시 발전을 외면한 원인도 있을 것이다.지금 현재도 외면 당하지 않나 눈길을 보내게 된다.우리는 자기를 보존하는 견지(見地)에서라도 치타슬로의 운동으로부터 어떤 계발을 받아야 되지 않을가.아무튼 누군가가 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신비한 사업에 도전한다면 필자는 열광하는 성원자로 되려 한다.   과학적 발전관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오늘이다.현대 문명의 표지가 화려한 건물 속에서 흥청망청 먹어대고 써대는 것인지 다시 수지타산을 해야 된다.행복한 생활이란 넘음이 넘치는 과소비일가 아니면 자원、환경과 전통을 애지중지하는 조금 빠듯한 살림일가? 이것을 덮어놓고 어느 어리석은 각주구검(刻舟求劍) 호고가(好古家)의 퇴행적 감정 기복이라고 몰아붙인다면 좀 억울할 같다. (끝)   슬로시티국제사이트:  www.cittaslow.net 한국슬로시티사이트: http://www.cittaslow.kr/new/index.asp 중국슬로시티사이트: http://chinacittaslow.com/index.php?_m=frontpage&_a=index
30    송년(送年) 넋두리 댓글:  조회:3177  추천:2  2013-12-31
송년(送年) 넋두리                                      (대련)  김인섭     2013-12-19 다사다난(多事多難)하고 도로무공(徒勞無功)하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하릴없이 세월에 떠밀리어 또 한 해의 끝자락에서 어스렁거리고 있다는 허전감이 감돌아친다.   젊은 시절엔 앞에 보이는 뭔가를 잡으려 내 뛰기만 하면서 년말년시를 무심히 지나치다가 많은 세월을 보낸 오늘엔 할 일이 산적(山積)한데  나이테만 늘어나고 걸을 길은 짧아 진다는 생각에 히뜩히뜩 뒤를 돌아보게 된다. 육신에 남은 시간 흔적을 보면서 맘속에 남아진 시간의 일력을 다시 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보고봐도 갈증이 나고 회한이 가득해 진다.   세상에 거칠 것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 자만에 빠져 내달리며 거만한 행동을 되풀이했던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치기(稚氣)를 다스리지 못해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인간의 리치나 자연의 섭리마저 외면했던 자기가 무척 낯설게 투영된다.실로 많은 아픔과 고난이 찬 길에서 혼쭐나며 지나왔다.가지가지 오착을 경험하고 크고작은  우여곡절도 겪으며 때로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다 일어서기도 했었다. 흔히 말하기를 아픈만큼 성숙한다는데 이 위인은 무엇 때문에 숱한 고배를 마시고 시련을 감내하면서도 얻음의 슬기를 갖추지 못했냐는 감수가 특히 진하게 남는다..   세속에 부대끼며 살려면 욕심을 줄이고 번뇌도 내려놓고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수없이 듣고 배웠다. 그 덕으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는 얼마간의 뭔가도 해놓은 같으나 턱없는 명리(名利)라도 따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지동지서로 헤매이기도 했다.이토록 진창에서 허우적 거리며 간혹은 실패의 함정도 어물쩍 피하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그런데도 해마다 송년 정산을 하고 보면 되풀이 되는 허탈과 아쉬움만 남았었는데 소견머리 없었던 자기를 곰곰히 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큰 것과 많은 것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리라.그 욕기의 충족을 위하여 아득한 목표만 바라보고 줄달음치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가 일수였던 자신이다.지난날을 뒤집어 보면서 황홀한 도원경에 도취는 되더라도 오늘에 해야 할 사사건건의 일 전부를 하나도 빠짐없이 정성들여 했을 걸 그랬다고 자탄하기도 한다.큰 일에만 집착하여 작은 일들을 무시해 버린다면 성공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잃는 것이다.시시각각 발부리를 잘 살펴야 하고 매 한 가지 일들을 소중히소중히 챙기며 나가야 한다.누군가가 라는 잠언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미롭다. 성과를 거두려면 만드는 전부를 명품으로 제조해야 한다.성공이란 당신의 가치에 대한 외부 세계의 인정이다.매 한 번의 청소,매 한 차례의 보고,매 한 페지의 서류 작성에서 최대의 정성을 넣어 으뜸의 제품으로 만들어 타인에게 유용한 사용가치를 창조할 때 당신은 미래를 얻는 것이다.어떠한 작은 일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하는 품격을 양성하고 발휘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성공자의 기본 자세이다.무수한 최고 품질의 부품들이 최고 엔진을 만들어낸다는 도리는 명기해야 할  명리(命理)임을 명심해야 했을 터인데 이 위인은 부실할 정도로 홀시했었다.    살아가면서 나름대로의 원칙이나 가치관에 따라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그러나 자기의 론리나 뜻이 불변의 진리라고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자칫하면 아만과 독선의 수렁에 빠지어 남들과 배타적인 립장에 서게 된다.이것이 바로 누구의 노력을 무효화시키는 단초이다. 고집을 공존의 자세로 탈바꿈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혜안을 갖추어야 한다.바로 고집의 승화라는 것이다.정직한 비평가의 쓴소리에서 그 참된 리치를 발견하고 그를 존중하는 것이 자기의 소중한 명분을 지키는 첫 방어선임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껴진다.   오늘 사회의 성향은 림기응변적인 융통성을 일반적으로 선호한다. 는 말이다. 여기에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하는 바를 이루면 된다는 저급한 뜻이 숨겨져 있다. 급하더라도 돌아가야 할 길이 있고 지켜야 할 법도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편법을 사용해도 무탈하다는 비륜리적인 발상이다.눈앞의 실리를 위하여 사회의 계률과 금도(襟度)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독소에 령혼이 물들어 정의를 늘 도외시하였던 어느 누구이다. 정도(正道)가 있음에도 얄팍한 술수로 줄타기를 하던 내 모습을 다시 보니 눈이 감긴다.   누군가에 군림하려고 덤벙대며 오만하던 내가 얼마나 치졸(稚拙)했던지 다시 끄집어내 본다. 독선을 초월하여 냉철한 자기 절제와 겸양을 전제로 조화적인 하루하루를 보냈더라면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란 참회가 되풀이 된다. 터무니없는 련민과 집착의 세월을 보내면서 조금만 자성의 눈을 떴더라면 이 회한이 남았을가.   석양은 서산을 향하여 속절없이 기울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많은데 발길은 무겁게만 느껴진다. 내 인생에 얻은 것이 무엇이던가! 이젠 이 력년령(曆年齡)이면 오금도 못쓰고 사회의 변두리에서 텃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이런저런 생각이 헷갈리어 곤혹 속에서 허둥대고 있음을 이실직고한다.이 때늦은 고해성사와 철없는 넉두리가 하다못해 내 후손들의 반면교사라도 되어 인생행로에서 몇 푼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란다는 진실한 마음을 피력한다. (끝)  
29    반 포 지 효(反哺之孝) 댓글:  조회:3437  추천:4  2013-08-17
2013-06-21 지난6월18일 연변일보에 기재된이란 기사에서 왕청현 대흥구 류정파출소 소장-조흥군씨가 10여년간 독거 로인을 배려하였다는 보도가 잔잔한 명상을 불러왔다.   그 옛날 다자식 대가족의 시절에는 삶의 질이란 말 자체도 없었고 의식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만도 형언할 수 없이 렬악하였다.하지만 부모나 년로한 어른들만은 정신적 지주나 지도자로 추앙 받으며 존경과 섬김의 대상으로 되었던 미풍량속이 서슬이 퍼렇게 엄존하였으니 효성은 가정이나 사회를 올곧게 지탱하는데서 선결되어야 할 필요 조건이었다.그런 시대이니 부모들에 대한 로후의 부양은 자연히 자녀들의 몫이었고 누구도 지극한 의당사(宜當事)로 받아 들였다.   그런데 오늘은 물질적으로 윤택해 지고 있는 데 대비해 전통적 가정 구조가 붕괴되고 있으며 로인들의 복지 문제는 점차 갖가지 말거리를 량산하고 있다.무자녀 무의탁 로인들은 사회가 껴안아야 할 사안이라 의논의 대상에서 제외되나 자녀와 별거하는 독거 로인을 필두로 심신이 불편한 로인들이 어쩔수 없이 운명의 배치만 기다리는 답답한 현상이 날로 증폭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는 전민이 마주해야 할 회피 불능의 과제물로서 정부와 매 사람의 생활권 안팍에 놓여있다.   사회 급변의 삭풍이 몰아치며 산업화 물결이 대가족제→핵가족제로의 이행을 세차게 떠밀면서 효친이란 이 천직천분(天職天分)은 어떡하냐는 수많은 난해(難解)한 난건(難件)을 우리 앞에 던져주고 있다. 부모에게 지성을 바치는 효자에 대한 찬사,효성을 드리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떠돌이 자식들의 아쉬운 소리들이 무성한가 하면 어시들의 존재를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부류들 등등 시대적 화젯거리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이 가지각색 사정들이 속출하는게 원인인가 지난 시대에 들어보지 못하던 까마귀의 효도란 뜻으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사자성구가 행간에 자주 비집고 오른다.   예로부터 까마귀는 흉조로서 악마의 상징으로 인심 속에 자리를 틀고 있다.그런데 어느 옛날 학자가 쓴 책의 내용에 따르면 까마귀도 새끼 시절에는 당연히 어미가 키울 것이나 어미가 늙어 거동이 어렵게 되면 자란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인인가 까마귀의 반포지효(反哺之孝) 옛말이 그들을 자오(慈烏)로 반전시키는 싹들을 키워내고 있음을 군데군데서 감지하게 된다. 현재는 생물적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대적 관점으로부터 까마귀도 익조라고 호소하는 학자들의 리론이 뒷바침되면서 그 본능으로부터 봐도 까마귀는 효친봉선(孝親奉先)적인 인자한 령물이라 인식하는 사람이 차차 많아진다.이젠 까마귀를 효조(孝鳥)라 불러서 욕사발이나 뒤집어 쓸 세상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우리 민족의 출산율은 세계의 최하위 수준이다. 젊은이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비해 로인 인구의 상대수는 가파로운 증가세를 보임으로서 미구에 심각한 불균형이 대두할 상황이다.사회학자들은 65세 이상의 인구가 7% 이상인 사회를 고령사회,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 사회라고 규정한다. 출산의 저조로 인구가 격감하고 그 유동이 가심해 지는 상황에서 로인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에계 떠넘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사회가 함께 짊어져도 늘 허점과 공백이 생기는 어쩔수없는 현실이다.그늘진 구석을 돌아보면 늘 힘없는 로인들이 바이없이 적막하게 살아가는 민망스런 모습이 비일비재하다. 힘겹던 세월을 떠받쳐온 이 로인들을 착실히 공양하지 않는다면 까마귀보다 못하다는 핀찬을 누군가가 들어야 할 게 아닌가!   세찬 치부욕 항진(亢進)이 금전만능주의를 부추겨 전통적 가치관 전부를 깔보는 척박한 풍토가 위세를 부리는 세상이다. 허나 사회가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져도 로년자에 대한 효는 여전히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지난날엔 자식의 경로(敬老)가 로후 복지의 중심이였다면  오늘엔 자녀,정부,사회가 3위 일체의 방식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는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이런 때 사람심을 바탕으로 보여준 조흥군씨의 경로미행(敬老美行)은 새 시대 반포지효의 축도가 아닌가고 주목하여 보았다.그는 어느 구석진 두메산골에서 범인선사(凡人善事)의 빛을 뿌리며 사회 경로당(敬老堂)의 무대에 우뚝 서 있다.   조흥군씨는 남의 집 노인마저도 그토록 사랑하였으니 집안 로인이라면 더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는 속담을 인용해 본다.이 관용어가 옳은 말이라면 조흥군씨에게 나랏일을 맞겨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겠다. (끝)  
28    엄 타 소 견 (嚴打 所見) 댓글:  조회:3850  추천:2  2013-08-07
엄 타 소 견(嚴打 所見)                                                   (대련)김인섭   2013-07-01 매체들에서 보고듣다 보면 어떤 위법 범죄가 급증하고 사회가 불안해 지면 강력히 응징하라는 의미로서 엄타(严打)라는 극언(极言)을 심심찮게 등장시킨다.아마 어떤 악행이나 비행이 만연하니 발동하는 긴급조치일 것으로 본다.그런데 간단한 철리로 풀어보면 이번이 엄타(严打)라면 이전은 틀림없이 슬쩍 친다는 관타(宽打)였을 것은 당연하다.같은 사건에 대하여 같은 법조목에 따라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때는 쇠방망이로 족쳐대고 어느 때는 솜방망이를 들이댄다거나 그때는 안 치고 오늘에야 두두린다는 론리인데 그 타당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엄타란 사회의 체제 전환이나 기타 특정한 시기에  법률질서가 바로 잡히지 못하여 반사회적 행위가 만연하거나 돌발적 사태가 일어나 행정 질서가 혼란해 지는 경우 사회의 여러 방면의 력량을 동원하여 신속히 대처하여야 할 때 사용되는 필요한 수단이다.여러 나라들에서 늘 이슈화되는 이 부득이한 선택은 특수한 법적인 절차로 진행되는 정치 색채가 농후한  비상조치이다.바로 이러한 방식을 일상적 법률 집행에  적용하다면 이것이 합법성,공정성,정의성,일관성이란 법제의 리념에 부합되는가, 법률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가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법이란 사회의 기본적 틀이고 사회 관리의 핵심적 도구이며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동일한 사실에 동일한 규준으로 적용되어야 할 뿐 그때는 느슨하고 이때는 엄하게 임의적으로 적용한다면 적어도 완전한 법이 아니된다. 법률에서 엄하다는 의미는 모든 법위반 행위에 물매를 안기라는 뜻이 아니고 사건의 경중대소를 물론하고 엄격히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바로 엄격히 법에 준하여 경범죄는 경처벌로, 중범죄는 중처벌의 원칙이 관철되어야 한다.때를 선택하여 전체를 가중처벌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두들긴다면 이는 사실을 기초로 하고 법률을 준칙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리탈이 아닌가는 시비가름을 해야 한다.   법제의 기본요구는 는 것이다. 법위반 행위는 대소를 막론하고 발견하여 처리하고、 발견되면 처리하고、 발견하는 족족 처리해야 한다.우리에게 수요되는 것은 간헐적인 엄타가 아니고 경상적이고 일관적인 법 집행이고 법률에 규정된 관엄상제(宽严相济)의 방식을 재치있게 적용하여 매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평시에 무심히 지나다 심각해진 후 소나기식 단속을 진행하여 범죄 사슬의 면역을 키워주던 사실과 심심찮게 발생하는 오심(误审) 안건의 교훈에서 보다싶이 회오리바람식 처사가 남기는 역작용을 간과해서는 결코 안된다.   석자 얼음이 하루의 추위에 어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위법 행위가 루적되었다면  엄격히 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과제가 제출되지만 반드시 여지껏 무책임한 법집행이 없었을가 하는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엄타의 제기법을 엄격한 법집행과 법기관의 엄격한 자아성찰로 바꾸어야 한다.더우기 평시에 방심하다 엄타를 거쳐 실적을 쌓아놓고 그것을 공로부에 기입한다면 이것은 선후주차와 본말이 전도된 사시이비(似是而非) 처사가 아닐가 짚어봐야 마땅하다.사전에 엄격하였다면 엄타가 필요없을 것은 불보듯 빤할게 아니겠는가.사건의 발생이나 그 확대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집법 부문의 중대한 의무란 이 점은 기본적 상식으로 명기해야 할 바이다.   법률을 세우는 주목적의 하나는 그 집행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다.즉 닭을 잡아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살계혁후(杀鸡吓猴)이다.위법 행위는 발생 초기에 법적 처리를 진행한다면 행위인은 처벌을 면하거나 중처벌을 면하게 되고 사회는 손해의 최소화되게 된다.위법 요소들이 아직 싹일 때 잠초제근(斬草除根)하였다면 이는 법률의 최대 효과를 보았다는 것이다.매 한 차의 투명하고 공정한 집법 행위는 생동한 법률 수업이라는 것과 준법 의식이 박약한 들에게는 최고의 보강약이라는 것은 언녕부터 전해지던 진리일 것이다.   요컨대 법은 준엄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닭 잡는 칼로 소를 잡아도 안되고 소잡는 칼로 닭을 잡아도 안된다.어느 법률 사업자가 이 두 자루의 쌍수검(双手剑)을 재치있게 써나가는 검법(剑法)을 몸에 지니고 법률 무대에서 걸출한 검술(剑术)을 연출한다면 그는 바로 인민의 강산을 지키는 검객(剑客)으로, 법률 리념이 성숙한 집법자로 추앙 받을 것이다.   (끝)      
27    호랑이도 파리도 다 때려라! 댓글:  조회:4045  추천:2  2013-04-01
                                                                  호랑이도 파리도 다 때려라!                                                                                                                                      2013-03-31 지난 1월 22일 제18기중앙기률검사위원회2차전회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부패를 징계함에 있어서 호랑이건 파리건 한방망이에 때리라고 력설함으로서 반부패 전선에 후련한 훈풍을 일으켰다.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큰 건이나 작은 건이나를 막론하고 사실을 근거로 법률을 준칙으로 해야하며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해야 한다는 법제의 기본원칙을 재천명한 것이다.이는 우리나라의 반부패 현실에 안성맞는 비론(比論)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서 큰 놈과 작은 놈은 항상 어울려 생존하며 큰 부패와 작은 부패는 생장의 토양이 동일한 것으로서 그들 사이에는 찰떡궁합의 상생관계가 존재한다.그들은 서로 결탁하여 련동하며 공공재산으로 사복을 채우고 서로 야합하여 자기들의 튼튼한 방어망을 구축하면서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법제에 대항하고 있다.이런 엄연한 사실은  범과 파리를 한꺼번에 답새기지 않으면 틀림없이 심각한 사회적 위험를 몰아오게 될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큰 것은 작은 것 속에 있고 작은 것들이 모이어 큰 것을 이루듯이 큰 부패란 무수한 작은 부패의 고밀도집합이고 거물급 부패분자도 무수한 작은 부패의 집적으로 이뤄진다.큰 부패가 없는 작은 부패가 없으며 작은 부패를 방치하면 기필코 큰 부패를 량산을 초래한다.그러므로 큰 부패를 치게되면 반드시 작은 부패를 때리게 되고  작은 부패를 파고들면 자연히 큰 부패가 적발되게 된다.부패를 치는 과정은 크고작은 부패를 동시에 치는 과정이 되어야 할 뿐이다.이 객관적 규률성이 범과 파리를 같이 잡아야 하는 철학적 근거가 된다.   부패 안건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전부가 작은 사건이 그 발단으로 되며 일정한 시간을 거치면서 작은 건들이 합류되어 이뤄진 것이다.작은 부패가 제멋대로 자라나고 루적되면서 큰 사건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패는 발견하는 족족 처리하고 작고큼를 막론하고 즉시에 법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부패 범죄를 최소화하고 방지하는 장원한 목표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부패는 어느때어디서를 막론하고 동시에 얻어맞는 대상이 되어야 천만지당하다.이것은 호랑이와 파리를 동시에 쳐야 하는 극단적인 필요성이다.   량변과 질변의 법칙으로부터 살펴본다.어떠한 큰 부패 안건이나 모두 작았던데로부터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성질이 변하여 범죄로 구성되고 그는 또 부단히 다른 작은 부패를 만들어 낸다.부패 분자들의 전부가 이 과정을 걸어온 웅변적인 사실은 부패를 다스림에 있어서 큰 것을 잡는다고 작은 것을 무시해도 안되고 작은 것을 잡는다고 큰 것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방증한다.부패의 과정으로부터 봐도 범과 파리는 똑같이 마땅한 징벌을 받아야 한다.   일정한 시기의 일정한 조건에서 부패의 타격 중점은 부단히 변화한다.호랑이가 득실거리면 그를 먼저 죽이고 파리가 득실거리면 우선 그 소멸에 나서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단계에서의 사업 중심을 말하는 것일 뿐 어느 쪽을 소흘히 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반대로 큰 것을 치는 것은 작은 것을 더 힘있게 치는 계기가 되고 작은 것을 치는 것은 큰 것을 소멸하기 위한 필수적 단계로 될 뿐이다.그러므로 언제나 대소경중과 경중완급을 잘 구별하며 주요모순을 틀어쥐고 입체적으로 타격하며 전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부패를 징계함에 있어서 호랑이도 치고 그의 몸체에 붙은 파리도 쳐야하며 그가 숨겨논 파리도 잡아야 한다. 범을 안치면 사회에 재앙이 생기고 파리를 안치면 범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미래의 큰 범을 길러내는 악과를 빚어낸다.범과 파리는 늘 서로 대방을 자기 존재와 번식의 조건으로 삼는다. 진정으로 범을 친다면 자연히 파리를 치게 되며 파리를 치게되면 불가피 범을 치게 된다.이것은 범과 파리를 동시에 치게 되는 필연성다.   법제원칙의 관철, 법제권위의 확립, 법제교육의 실효화를 위하여 반드시 범과 파리를 동시타격해야 한다.법제의 관철은 철저성,일관성,정확성,투명성을 요구하는바 이 과정은 법제의 권위를 수립하는 과정이고 유권자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이 된다.만약 법률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그는 대뜸 공신력을 상실하고 사회에는 법제와 도덕적 기준에서 혼선이 발생하여 부정세력이 득세하고 인심은 이지러진다. 사회건설의 목표를 실현을 위하여 반드시 대소 부패를 한몽치에 뭉개쳐야 한다.   호랑이도 파리도 얼러치는 반부패는 인간사회의 영원한 과제이며 전사회의 절절한 희망이다.이 성스런 사업은 해당 기관의 힘으로만 역부족인바 반드시 전체 인민의 참여를 고무하고 보장해야 한다. 인민의 민주권리가 남김없이 발휘되고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는 투명한 시민사회의 제도적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만이 반부패의 결정적인 대책이다.이때가 되면 호랑이는 애시당초에 둥이채로 부서지고 파리도 음지에서 산란하기 직전에 소멸되는 법치사회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끝)  
26    권력을 새장에 가둬라. 댓글:  조회:4223  추천:1  2013-03-17
  이것은 지난1월 22일 중기위제2차 전회(中紀委第2次全會)에서 습근평 주석이 부패의 정곡에 창부리를 겨냥한 금언(金言)다. 공권력의 람용(濫用)、란용(亂用)、망용(妄用)、오용(誤用)의 방비책을 일언페지(一言蔽之)로 개괄한 이 한마디 실증적 론단은 권력부패의 싹쓸이를 갈망하는 인민들에게 권력의 정위(正位)를 재인식시키고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권력이란 사회의 통제와 관리에서 필수적 공구이고 핵심적 수단이다. 그를 새장에 가둔다는 함의는 우선 권력과 권좌(權座)는 모두가 새장속에 있어야 하고 권력을 쥐었으면 반드시 법율이란 날줄과 도덕이란 씨줄로 짜여진 조롱(鳥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더 말하면 권력가는 새장이라는 관객의 속에서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보이며 극히 제한된 은사(隱事)외의 모든 것을 들의 시야에 투영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리하여 귀인들은 이 가상공간 속에서 대중의 호불호(好不好)  평판과 권선징악(勸善懲惡)、입송축출(入送逐出)의 대접을 받는 것이다.   새장 속, 혹은 밖이라는 부동한 환경에서 권력의 작용은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실례로 새장에 같인 권력에 귀중한 목재를 맞긴다면 그것은 현인군자들 손에서 청사에 길이 남을 건물의 건축재료로 되지만 새장 밖의 권자에게 맞긴다면 벼락 맞은 소고기 격이 되어 도둑창고를 짓기에 드러난 거저먹기 상등품이 되어버리며 사회에는 혼탁이 일어나 살 재미가 없어진다.생선을 고양이에게 맞긴 셈이다.권력이 새장 속에 있으면 인민에게 복신을 모셔오고 새장 밖에 있으면 화신(禍神)을 불러온다.이 극명한 차이는 현대사회의 어디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새장을 트는 세공사(細工師)는 누구이고 그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헌법에는 고 명시한다.이는 새장 리론의 기본적 법률 근거이다.인민은 이 신성한 권리로 법률을 하고 적임자를 선택하여 집행권을 주는 동시에 위임권,사정권(査正權),감독권,질의권,파면권을 가지게 된다. 이 공공권력의 산생은 사회 대다수가 자원적으로 거기에 복종한다는 사회적 념원의 개괄적인 표현이다.이런 행위가 집행법으로 규범화 되면 강제성이 확립되고 매개 유권자들의 지켜야 할 의무로 전화한다. 그러므로 권력이 새장에 넣는 것은 인민의 민주권리의 행사이고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는 행위는 수권자(受權者)의 신성한 사명이다.   인간의 본질을 살펴본다.인간은 욕망이란 무형물의 집합체이다.이 욕망은 천생적으로 매개 사람을 자기중심이게 한다. 이 욕망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삶을 포기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 욕망의 실현과 억제 이것이 인간 생활의 시종을 관통한 중심선이며 인간 실존의 딜레마이다.사회란 바로 리익사회 즉 개인의 리해타산을 기초로 결합된 공동체란 말이다. 인간이란 이런 물직적 존재이기에 누구던지 사회적 제약을 리탈하고 타인의 침해에 대해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현실적 위협이 없게되면 무절제한 욕망은 그의 행위를 자신의 욕망에 부합되게 행하도록 펌프질하게 된다.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사상을 결정한다는 말이다.그러므로 감독과 견제를 일탈한 권력은 구조적으로 만만불측(萬萬不測)의 행위를 야기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새장 속의 충복들을 둘러본다.그들은 공적인 사업에서 영예를 따내고 인생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현인군자들로서 새장은 그들의 더없는 창조의 장이고 자아실현의 장일 것이며 사회에는 더없는 행운일 것임이 틀림없다.구경군들의 고무, 찬반 평가와 경고는 그들의 체질을 다져주는 비약(秘藥)이고 병을 치료하는 성약(聖藥)으로 되기 때문이다.허나 이들이 새장밖에 있다면  아집과 독선에 빠져 좌충우돌하면서 에너지를 랑비하거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공공재부를 가로채고 사복을 채우거나 한다.많은 경우 알게 모르게 호인이 악인으로 변하기도 한다.그러기에 진정 인민을 위해 복무하려는 권력자는 기꺼이 새장 속으로 들어간다. 새장은 유능한 사람을 더 총명하게 하고 리상을 실현하게 하는 최호의 광활한 활동 무대이다.   세인이 저주하는 공권력의 부패를 본다. 권력을 새장에!라는 의미는 습근평 주석의 말대로 를 건립하는 것이다.부패란 결국은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고 사회에 독소를 퍼뜨려 복합공해를 일으키고 사회발전의 동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러나 랭엄한 새장 속에서는 각종 무서운 금계(禁誡)의 속박으로 악행을 최소화 할 뿐만 아니라 속이 음특하던 사람들도 맡겨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감독,평가,고무,비평,상벌의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악인에서 호인으로 전화할 수 있다.새장은 인간 교육의 성당이다.    새장은 거대한 경기장으로서 여기서는 모든 권력자들의 재능과 품성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매개인은 능력이나 됨됨이나 사회공헌의 여부에 따라 유권자들의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고 남던지 쫓기던지 걸맞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이 안의 모든 사람들은 사업이란 경기속에서 우수한 자는 살아남고 렬후하거나 뒤지면 등외상을 받고 아쉬운대로 퇴장해야 한다.잘하면 그만큼의 호대접을 받고 뒤지면 푸대접을 받아야하는 기능은 새장의 독특한 강점이다.결국 새장은 권위자의 시험장이고 천리마를 발견하는 최고의 마당이다.새장은 권력자들의 무릉도원일 수 밖에 없다   권력을 새장속에 가두는 기능은 결국 인민의 민주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발휘시키는 현대 인류의 이상적인 사회적 장치이다.공권력이 새장 밖에 있으면 민주권리가 새장안에 있게 되고 사회의 공공리익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더 말하면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면 민주권리가 활개를 치고 민주권리가 새장에 들어가면 권력이 무소불위 행사를 하게 된다.권력과 민주권리의 대립과 통일은 어느 사회를 물론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기본모순의 하나이며 그의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개혁개방은 13억의 인구대국에서 진행되는, 부동한 리익과 리념의 상쟁이 넘쳐나는 거창한 사업이다.이 는 격랑 속에서 암초를 에돌아 나가야 하며 매 한번의 방향전환은 엄청난 회전반경을 수요할 뿐만 아니라 자체의 거대한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 이 인류 력사상 미증유의 바닷길 위에서 권력이 새장 속에 들어가 진정으로 효과적인 작동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개혁개방의 고급 단계가 아닌가 지레짐작해 본다. (끝) 2013-02-24  
25    새해 복 더 많이 받으세요 댓글:  조회:3653  추천:1  2013-02-11
새해 복 더 많이 받으세요   늦었다고 말하자니 아쉽습니다.   멀리 지나버린 기억은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만드십시오.   한 해를 보내며 후회도 있겠지만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천지에 감사한 경의를 가지십시오.   행복할 줄 아는 지혜의 가슴에 기쁨과 사랑을 가득 채우시고 굳건한 자기가 되십시오.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지 않게 하시고 요지부동하는 두 다리를 가지십시오...   가시는 곳마다에 원하시는 단꿈을 꽃피우시고 형안(炯眼)을 번쩍이며 대명천지로 가십시오.   -壬辰年 세모에 癸巳年을 기원하다-
24    좀 알고 먹고 적게 먹자. 댓글:  조회:3756  추천:0  2013-01-25
좀 알고 먹고 적게 먹자.   김인섭   2013-01-08     돈을 벌어야 살아가는 세월에 인목(人目)이 피눈이 되고 세상이 바닥나기로 이런 한심한 일도 있다니 허탈감을 못견디고 한참 혀를 찼다.   엇저녁 CCTV의 토픽포커스(焦點訪談) 시간이다.좀 한다하는 식당들에서 대량 팔리는 고급 료리라는 상어지느러미(鱼翅) 반찬이 거의가 가짜라는 기자들의 현장 취재였다. 그 원재료 원가가 30원/봉지인데 여섯 사라를 만들어150~190원씩으로 팔아버린단다.상가의 웨이트리스들이 환영광림(歡迎光臨)하고 양금채 소리를 지르며 메뉴를 들이대면 허영을 뽐내는 신사숙녀들이 최고라는 감언리설에 깜쪽같이 얼리우고 돈을 뿌린다는 귀신이 하품할 일이다.   제일 보신제라는 이 먹거리의 영양은 돼지발쪽,닭껍질,물고기껍질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되려 인체에 해로운 여러가지 중금속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다.그런데도 장사치들은 소비자들의 불감증과 일그러진 소비습관과 사회관리 미비의 틈새를 교묘하게 헤집고 들어 수월수월하게 팔고도 톡톡한 마진을 올리는 판국이다.업계내에선 공개된 비밀로 된지도 한참이라며 빤빤스럽게 고백하는데 눈도 깜짝 안 하는 천연스런 모습에 보는 사람이 무색할 지경이다.   근간에 식품의 안전 문제로 매체가 쉴새없이 시끌버끌하는데도 수그러지는 조짐이 안 보인다.가짜식품,독식품,독고기,독야채,독우유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에 첨가제의 과량으로 집어넣고 사용금지된 호로몬제와 항생제도 주저없이 쳐넣고 암을 유발한다는 화학제품마저도 돈이 된다 싶으면 마구 퍼넣는다고 소문이 파다하다. 현대 기술로 무장한 상인들의 묘수에 의해 무수한 미식옥식이 되어 식탁에서 몸매를 과시하는데 당장 죽지만 않는다면 인간생명의 몇 할 정도 앗아가는 것쯤은  씁쓸해 하는 별사람들이다.   인간의 이 백화현상(白化現象)을 바라보며 불법이요,부덕이요,부패요 고함지르며 톡톡한 내리조기기도 현재진행형인데 끊임없이 당하기만하는 서민들은 아연하기만 하다.서민들의 순백한 마음과 과시욕에 손이 근질거리는 신사숙녀들은 사냥물이 된 줄도 모르고 분수없이 먹어대니 장사치들은 태평스레 고가호가(高價呼價)를 해댄다는 배곱이 웃을 일이다. 요 고약한 짓거리들에 입가진 사람이면 뿌드득 이를 가는데 감소세커녕 오히려 더 증가세 일로인 이상한 일이다.   거리에 나가면 벼라별 음식가게가 줄느런하고 먹을 것들이 지천이고 천지이다.발전을  대변하는 인간의 왕성한 식욕과 먹음새 기호와 생활양식에서 엄청나게 신장한 경제력과 시대적 변화가 감지하게 된다.그렇지만 다채로운 식생활로 사람의 미각기(味覺器)가 즐거워지고 체격이 향상되었어도 운동량의 수직 하강과 영양의 대폭 과잉으로 먹은 만큼 질병이 겉잡을수 없이 늘어나는 현실이다.거기다 유해식품이 대대적으로 가세되어 과거 듣기만해도 눈이 뒤집히던 난치병,불치병이 성인병,류행병으로 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는 오늘이다.   고기,생선이나 단맛이 없으면 밥이 목에 걸리는 사람들에게서 현대병으로 불리는 고혈압,당뇨병,심장병,백혈병 환자들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원인은 소식결식(小食缺食)이 아니라 과식다식(過食多食)과 불량식품에서 오는 것이다. 건강의 비결은 담박하고 조금 모자라게 맑게 먹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더더구나 유독,유해,가짜식품이 줄을 잇는 세태라 건강을 챙기려면 수고가 들더라도 골라먹고 자그만치 먹어야 한다고 늘 말하는데도 인간의 각성은 퍼그나 뒤지는 같다.   세상이 천지개벽했다고 외쳐도 인간의 몸통은 아직도 1만년전 구석기시대의 육신이다.인류가 오늘 같은 만복포식(滿腹飽食)의 식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진화하려면 10만 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학자들이 말한다. 그 유전자를 그대로 가진 현대인들은 소모가 따르지 못하는 고영양 음식을 매일같이 먹어대고 넘쳐나는 칼로리는 고스란히 몸속의 병으로 전화한다는 과학적 호소이다.하물며 공해 음식이 잔뜩 위장속에 들어가는데야….   말이 길어지니 빗나가는 같다.재언이지만 알맞게 먹고 되도록 적게 먹고 깨끗이 먹는 것이 최상의 식복(食福)이 아닐가 생각해본다.부언한다면 알고 먹고 작작 먹는 것이 우리 백성들이 식품시장의 구겨진 상혼(商魂)을 다스리는 최상의 무기가 아닐가 되풀이해본다.   (끝)
23    견지망월、견월망지(見指忘月、見月忘指) 댓글:  조회:9414  추천:3  2012-12-24
견지망월、견월망지(見指忘月、見月忘指)                                          2012-12-21 묵은해가 희열이 조금 섞인 감구지회 속에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며 저물고 있다.지천명이 되면서부터 사세(辭歲)가 되면 내내 혼돈과 불안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는데 올해도 한가지로 마찬가지다. 들썩거리며 헤매이던 인생사가 투영된 한 해 걸음을 돌아보니 로고무공(勞苦無功)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여느 해보다 한결 초라하다.   증년(增年)하면서 차차 더 먼 뒤를 본다더라.요즘은 지나온 인생사(人生事)의 편린들을 뒤적이며 이 삶이 어쩌면 이리도 피곤하고 은 늘상 적자만인 오그랑장사였는가는 묵념에 잠기군 한다.부지세상 빨가숭이로 인생길에 올라 어섯눈을 떠서부터는 제딴에 거드럭대며 며 휘돌아다니다  때로는 남의 흉내도 본따면서 무언가 이루려 피와 땀에다 살까지 바쳐왔다.그래도 사배공소(事倍功少)의 심상과 실망의 연속이던 그 날들을 돌아보며 그 실착이 어디었던가 때 늦은대로 어불싸 같은 반성이나마 해 본다.   요즘엔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사자성구에 내포된 철학적 리치를 곰곰히 음미했다.견지망월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 좀 더 말하면 타인의 카리침의 진의(眞意) 소흘히 한다는 뜻이다.류추하여 견월망지(見月忘指)라 조어(造語)한다면 달을 찾으면서 남의 가리킴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전자는 가르침에 엇나가는 덜렁쇠이고 후자는 가리침을 외면하는 고집쟁이라는 말이 된다.이렇게 보니 어쩐지 부평초 인생을 사는 내 인간상이 여기에 신통히도 안성맞을 성싶다.   이를만큼 빼어남이 없는 무명색(無名色) 주제꼴에 세월을 미당기며 맞이했던 세상살이 시절은 아집의 노예가 되어 앞으로만 치닷던 도전의 세월이었다.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만의 늪에서 신기루 같은 성취의 야망에 사로잡혀 밤새우며 나를 잊엇던 욕망의 세월이 아니었던가.또 알량한 경험과 어설픈 지식을 무기로 여기저기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자기본위에 집착한 업보였는가 늘 백사지판(白沙之板)에 내뿌리워 나뒹군 것이 차례지는 였다.   소탐대실이라 할가 리기주의라 할가,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풍진세계의 형형색색의 유혹에 넘어가 사회의 정의와 공리를 일탈하는 행위들이 오늘 뒤돌아보니 진짜로 너저분히 널려있다. 참된 리치가 아닌데도 되레 그것을 바른일、바른길이라 억지를 부리며 덜먹게 나아갔으니 뭇사람들의 삿대질 뒷욕은 꼬리표 같이 따랐을 건 빤하다. 친호,친구,친척들의 작은 정리(情理)에 이끌려 정의를 잊고 대도를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몰상식한 탈선행위로 뭇사람들의 찬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환하다.   이순의 문턱을 디디고 되생각하니 세상만사는 지위의 높낮음이나 지식의 다과나 빈부의 차이 같은 부질없는 편가름이나 불신의 벽을 뛰어넘어 어느때 어디서나 한결같이 포용,존경,겸허를 바탕으로 하는 화합과 공존을 공동체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뉘우침이 자꾸 어른거린다.더 생각해보니 세상을 사는 원초적 시비를 가름하는 일에서마저도 안개 속을 헤매듯 종잡지 못한 내가 태날 때부터 어디가 좀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라는 같다.   살아오면서 부모、형제、선배、고친、절친들의 수많은 충고와 쓴소리를 많이 들어왔으나 이 위인은 내치기가 일수였고 귓등으로 흘리기가 례사였다.그래도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는 옹색한 처지는 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었지만 오늘의 내 인생 편력이 이 모양새로 남의 눈에 각인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되게 편찮다.그 때 그 말을 들었더면 하는 자아비판도 늘 되풀이 된다. 타인의 교시에 내포된 평범한 리치마저 깨닫지 못했다는 뼈저린 성찰이 로년이 되어서야 나온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덧없는 세월이라 했던가.묵은해가 력사의 뒤안길에 뭍히고 새해의 초일(初日)도 동천(東天)으로 발돋음하고 있다.지난날의 모든 것은 세월의  앙금속에 묻는다 하더라도 견지망월과 견월망지의 진솔한 의미만를 새겨보며 나를 포함한 모두가 선현들의 명언을 항시 어천만사(於千萬事)의 지침으로 삼기를 소원한다. 여기는 나 같은 풋내기들에게 걸음마다 행동거지를 명심해야 됨을 넌지시 알려주는 따끔한 충고가 배어있다.이래서 쪽도 못쓰고 나이 하나를 꿀꺽 삼키며 내 아이들에게도 이 철학을 설교하였다.   삶은 실전일 뿐 련습이 없다. 살아보니 자기에 대한 세평과 타인의 비평에 늘 귀를 기울이며 차문(借問)하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에서 백익무일해(百益無一害)일 것임이 틀림없다. (끝)  
22    조선족만의 강점 댓글:  조회:5432  추천:2  2012-11-29
조선족만의 강점 김인섭  2012-06-17 도시에서 오래 살며 조선족 인재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느 대학의 60대 후반의 교수이다.지난 세기 70년대 말에 동경대학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조선어、중국어、일본어、영어가 류창하고 로씨야어도 상당한 수준이다.교학、과학연구、정보수집,、대외교류 등 면에서 언어를 무기로 화려한 역할을 일으켜 뭇사람들의 흠모를 자아내고 있다.   또 하나, 40대의 박사과정을 끝낸 대학 교수이다.조선어,중국어,일본어가 류창하고 영어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교학 이외에 일본、한국의 학자들과 합작하여 많은 연구 성과를 올려 과학기술부,교육부,료녕성 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큼직한 영예들을 받아 안았다.언어가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다음 하나 30대 후반이다.대졸 후 일본에서 10년간 근무하다 대련지사의 법인대표로 파견 받았다.그는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과 합작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출중한 성과를 올려 지역의 일류 일본독자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역시 중일한 3개 언어가 류창하고 영어 역시 상위 수준이다.   40대 초반인 친구는 한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 자수성가하여 한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상당한 규모의 회사로 발전시켰다.처갓집에서 단돈 300원을 빌어가지고 도시에 들어와 말단 사원으로부터 회사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그의 친구들은 맨주먹으로 성공한 모델이라고 이란 별호를 달아 주었다.중일한 3국어와 비지니스영어 합격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고중까지 조선족학교를 다니고 일본어가 류창하다는 것이다.또 언어를 많이 다루며 보니 영어 공부는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여러가지 언어가 서로 참조가 되면서 영어기능도 단시간에 확보할 수 있다는 일치한 견해이다.물론 노력이 전제로 되겠지만 일본어를 배우면서도 영어를 배우는 충분한 여유가 생긴다는 방증이다.   한족이 일본어를 선택하는 주요 리유는 일어에 한자와 한어 어휘가 많기 때문이다.한국인이 일어를 선택하는 이유의 하나는 두 언어가 교차성이 강하고 어순이 같고 일본어의 난점인 동사의 활용을 쉽게 리해하고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재 세 나라의 경제、문화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언어의 근접성이다.   그렇다면 조선어를 장악한 조선족은 일본어 공부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장점을 동시에 거뜬하게 가지고 있다.일본인들은 조선족의 일어 수준을 경이롭게만 생각한다.자기들 나라에서 웬만한 수준의 조선족을 한 명 고용하면 중국인 통역과 한국인 통역 두 사람을 고용한 효과를 릉가한다는 것이다.동일한 조건이라면 조선족은 타민족보다 일본어 배우기에서 가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명증이다.   타민족 일본어생들의 말이다.한족인 자기들은 좋은 성적을 따려고 죽도록 노력해야 되는데 조선족들은 빈둥거리며 노라리를 치다가도 시험만 치면 우리를 릉가하는데 괘씸할 정도로 잘 한다는 말이다.회화에서는 애초에 상대가 안된다며 툴툴거린다.한국의 일본어 전문생들도 조선족의 일본어 수준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다.   미국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자기들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는 중국어、일본어、한국어、아랍어 순인데 조선족들은 이 중 세개를 알고도 영어수준 역시 상당하다는 찬탄이다.제들은 하나의 외국어를 아는 것만으로도 늘 장하다고 뽐내는데 당신네 사람들이 이 어려운 언어 3개에다 영어까지 잘 구사한다는 사실은 귀신이 하품을 할 우주의 신비란다.   조선족은 조선어를 잘 해야만 배운 중국어 가치가 한 배로 증폭한다. 다른 면을 차치하고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 적어도 일본어가 누구보다 배우기 쉬운 여건이 제바람에 움튼다. 기성세대들은 조선어와 중국어가 조선족의 최대의 무기라는 점을 명념(銘念)하고 일본어 공부에서도 상대가 없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후대들에게 강조해야 한다.결정은 본인일지라도…   약동하는 중국,생기발랄한 한국,튼튼한 경제실력과 과학기술의 저력을 보이는 일본,이 3국간의 교류의 장은 조선족이 우선 자리매김할 부유로운 고지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이것이 또한 조선족의 드센 경쟁력이다.우리는 언어 우세만으로도 세계의 광활한 문화 천지를 자유래왕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질을 지닌 민족이다. (끝)  
21    코리안드림의 승화 댓글:  조회:5000  추천:2  2012-11-23
코리안드림의 승화                                                 김인섭         2012-05-13 이란 후진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면 떼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몽환경에 도취된 상태를 이르는 90년대 초반의 신조어이다. 이 말은 전쟁 직후의 한국인들이 미국이 대몽을 이룰 땅이라며 네오내오없이 도미(渡美)를 시도하던 의 파생어라는 설이 근리(近理)일 것으로 본다.     1992년8월의 중한 수교는 조선족 사회의 중대한 전환이었다.두 나라 국경의 장벽에 구멍이 뚫리고 래왕의 다리가 놓임으로 하여 신비롭기만 하던 한국은 조선족에게 있어서 황금 산맥이 뻗은 무릉도원으로 홀변하였다.거기에 한국민의 포용이 가세되어 한국행 이목지욕(耳目之慾)은 토네이도마냥 세차게 일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숱한 사람이 기회를 노리는데 생사마저 도외시한 담력과 교묘한 수단에 귀신도 곡하며 도망 갈 정도였다.지겨운 가난속에서 한국이 고난 탈출의 최단의 지름길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금전만능과 적자생존의 가혹한 론리가 살판치는 랭혹한 세월에 이 철심(鐵心)을 품고 있었기에 사랑하는 고향과 자식을 뒤로하고 타국에서 온갖 고통과 서러움을 감내할 수 있었던 우리 겨레들이었다.   근 20여년의 꿈 펼치기 작전의 된고비를 지나 우리의 사회도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외적으로, 다수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도시에 아파트 쯤은 사놓고 애들을 공부시키고도 용돈의 충당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내적으로, 한민족 사회와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세계속에서 자기 삶을 영위하는 마인드를 갖춘 보다 건강한 문화적 모습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코리안드림이 초급단계를 지나 단순한 돈벌이로부터 미래의 세계와 조화롭게 공생하는 가치관으로 성숙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 꿈꾸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한국은 여전히 희망의 땅이다. 단적으로 조선족 사회는 불가피적으로 한국과 직결되며 등변화선을 이루게 된다.현실적으로 한국의 해외동포정책, 한국에서의 조선족의 역할,한국민이 조선족에 대한 시각,조선족이 한국에 대한 인식, 조선족의 한국에로 이동은 실시간으로 련동되며 동시적인 변화를  보인다.이 경향의 대두는 우리에게 여세추이(與世推移)의 철학으로 지난날의 득과 실의 을  잘 해보며 코리안 드림을 한 단계 승화시키는 차분한 성찰의 절대적 필요성을 넌지시 알려준다.   가난에 찌들었던 지난날, 기성 세대들이 피땀으로 한국의 땅에 삶의 기반을 구축하여 조선족 사회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면 오늘은 우리의 뜰안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놀라운 것은 급한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인구통계수자와 해체 직전이라는 공동체의 궁상맞은 모습이다. 따라오는 공동체의 재건,후대의 교육,문화의 부활 등 력사적 짐은 우리에게 무겁게 떨어진다.빈곤 해탈을 위한 대탈출과 대이동은 시대적 몸부림으로 봐야 하지만 새 시대의 분기점에 선 우리에게는 분실된 귀중품을 다시 색출하고 다듬질해야 하는 강도 높은 로동이 요구된다. 아니라면 갱무꼼짝하고 민족이 사라진다는 멸종의 대접을 받게 되는 한계상태이다.   개중에서도 절박한 부분이 교육이다.인구의 급감으로 민족 교육이 위재조석(危在朝夕)인데다 학부모들의 불견식으로 다량의 애들을 타민족 학교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한민족 사회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마저도 끊어버리는 게 남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이다.그 거친 처사의 은 친자식이지만 나라는 찬란하던 한 민족의 자원을 잃어가고 민족은 후계를 잃어가는 짙은 그늘 속에 잠기고 있다. 이들에게 후대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코리안드림을 업그레이드시키자고 호소한다면 씨알이나 먹힐가? 진짜 한근심이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광명한 앞을 봐야 하다.한국인과 조선족은 문화적 이질감으로 남스럽던 단계를 어렵사리 뛰어넘었다.지금은 동질성을 토대로 이질성을 수용하며 적극적인 부분을 활용하는 새 기류가 숙성되고 있다.해외의 한민족들 속에선 조선족 사회가 중국 사업의 성패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는 리성적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중국인들이 우리 민족과 문화의 가치를 추앙하는 시각이 날로 높아 간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이 비전을 밝게하는 두터운 사회 기반이다.조선족에게 있어서 바로 지금이 당찬 문화민족으로서 중화민족의 무대로의 찬란한 복귀를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다.민족의 화원을 찬란히 꾸려가는 호시절이 지금이다.   한국에서, 다국어에 능통하고 두 나라 문화에 익숙한 조선족 후예들이 산업계에서 인기를 일구월심 높혀가는 참신한 기상이 일고 있다.두 문화를 꿰찬 우세로 두 나라간의 교류에서 겨룰 대상이 없는 독점적 우세가 있기 때문이다. 일진일신(日進一新)하는 세계화의 마당에서 140여개 나라에 7000만 동포를 둔 광활한 천지인데  여기서 우리 후대들이 뿌리가 들리고 퇴색한다면 숱한 사람을 웃겨도 한참은 웃길 일이다. 우리 후계들이 중국내 한민족의 튼실한 교두보로 우뚝서기 위하여 그들에게 활무대를 지어주고 조선족 문화를 고양하면서 후계자로 자라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역시 기성세대의 몫임을 명기해야 한다.   란 속담을 음미하며 우리 터전를 키우는 이 문화라고 인유(引喩)해 본다. 우리는 이 를 기껏 관개하여 생신한 새천지를 개척하고 건실한 자손들을 길러내자.우리가 생계전쟁의 시대를 거뜬히 넘어 신조류 문화민족으로 거듭난다면 조선족이 중화민족의 우수 민족으로,글로벌 한민족의 차이나(China) 구심점이 된다는 꿈은 결코 일장춘몽은 아닐 것이다.  (끝)    
20    삐뚜렁소리에 바른소리 댓글:  조회:4639  추천:6  2012-11-18
삐뚜렁소리에 바른소리 김인섭 2012-03-28 2012年3月26日 저녁,CCTV 핫이슈담론(焦點訪談) 시간에 백암송(白巖松) 아나운서가 말문을 열었다. 3월 23일 에서 18세 되는 청년이 흉기를 들고 란동을 부려 일사삼상(一死三傷)의 참안을 빚었다는 찌르릉한 뉴스였다. 지극한 사소지사로 인명에 칼부림을 들이대어 메체가 물론 만민이 우끈하고 불안의 나락에 떨어졌다.한심한 것은 턴센트사이트(騰訊網TENCENT)에서 사건의 앙케트 조사로 동 사건에 대해 희비 양자택일의 코너를 만들었는데 참가자 6161명 중 기쁨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4018명인데 65%란다.어떤 말빠른 친구는 (应该举国欢庆啊!鞭炮响起来!小酒喝起来!音乐开起来!)는 을 올렸는데 36100개의 중에서 하나지만 쾌재를 부르며 맞장단 OK를 친 심술보들이 5172명이란다.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람이 생벼락을 맞았는데도 깨고소해 하는 세상이다,한참은 노이로제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 사망자 학교에서 추모회를 여는 동시에 위생부 고관이 범법자를 엄벌하라고 호소했다는 기사가 보이기에 리플란을 번졌더니 3만여개의 리플이 쏟아지는데 아닌 게 아니라 거개가 야멸찬 쓴소리고 간혹 반론도 뒤섞이어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데 내용은 대체로 병원이 환자를 볼모로 돈 짜내기에 혈안이고 죽는 사람에게도 약바가지를 가차없이 씌우는데 왜 이건 외면하고 분개한 사람만 그르다는가?는 주문이다. 상상 극치인 병원 부패부터 징벌하라는 요청이었다.그 진의를 음미해 보니 비아냥거려도 죽음에 대한 찬사는 아니고 는 삐뚜렁소리었다. 병원에 가면 약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터무니없는 돈을 털리우고 가난하면 병원 엄두도 못내는데 의사가 약으로 뒷돈을 챙기고 사례금을 꿀꺽하고 돈이 없으면 짐승 취급을 받는 등등, 병원의 비리에 대한 소문이 항간의 풍경이 된지 오래다.테레비,신문 지상에서 일부 병원의 비리를 적발한지 한두 번이 아니다.우선 사실의 진부는 차치하고 참사 앞에서 만민이 이런 악평을 내놓는다는 자체는 누구도 한 번 쯤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가 싶다.장엄한 생명 찬가가 울려야 할 성역인데 대중의 안목에 음지로 되었다면 슬쩍 넘어 갈 일이 켤코 아니다. 의료 부패는 소수인에게 발생한다고 자위(自慰)하는 부류들도 꽤 있었다.시야비야를 떠나 례를 들어 보자.당신 밥공기의 밥이 10000 알이라 할 때 4999알이 변질한 밥알이라도 소수이다.당신의 소수란 무슨 개념의 소수인가? 그 밥에 썩은 밥알이 10개라면 0.001%인 극극소수인데 당신이 그 밥을 그냥 먹을 것인가?당신의 육신이 이 쯤한 병균과 독이 대수롭지 않은 초특급 체질이면 몰라도 완전히 썩은 밥이라 와락 쏟아버릴 것이다.이것이 인간사이다. 물론 동 사건은 의료 분규가 아닌 악성 형사 사건인 만큼 범법자의 치죄는 물론이고 무책임한 네티즌들도 시비의 판가름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귀책사유를 당사자의그름으로만 치부말고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원연과 근인,현상의 내인과 외인 전부를 미시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옮음직 하다. 제도의 미비,공정공평의 이상(異常),인문정신의 부족,사회신임의 결손,빈부격차의 확대,자률정신의 결여,법률의식의 약화,의료분야의 부패 등 다수 요소들이 복합한 결과일 것이다.아까운 생명의 타계,노축암(怒蹴巖) (분한김에 바위를 찬다.) 만용을 부린 유치한 범죄자,몽니부리는 네티즌들의 가시 돋친 말 속에서 우리는 차분히 성찰해야 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가! 이 철학으로 사건의 종횡을 조감한다면 가해자,피해자와 전민은 나란이 피해자 반렬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보기가 비싸고 어렵다는 난제를 푼다고 외친지도 오래다.물론 국가의 대량적인 자금 투입과 정부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병원을 법제화된 민주 감독의 시야에 놓인, 련민과 사랑이 넘치는 청정세계로 탈바꿈하고 자격 미달자는 즉시 수시로 몰아내는 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다. 좋은 제도가 있으면 악인도 호인이 될 수 있고 제도가 부실하면 호인도 악인으로 쉽게 변질한다. 생명의 수호천사 앞에서 암만 우직한 울뚝배기도 가해 공격의 예봉은 움추릴 것이다. 곤봉을 찬 경비원을 잔뜩 늘리고 감시카메라를 은밀히 장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참신한 의료체제의 확립, 오직 이것만이 위생사업 발전의 탄탄대로이다. 어느땐가 해맑은 이 체제 구조가 건립된다면 병원은 전민의 성당이 되고 병원직이 숭봉하는 성직이 되고 의사는 하느님의 사자로 추앙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민의 갈망이고 력사의 필연이다.세상을 들썽한 이번 사건 처리가 간단한 범죄자의 치죄로 끝내는 룡두사미식 마무리가 되지 말고 인민병원의 지붕에서 찬란한 인간애 기발이 휘날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  
19    <코리안드림>찬 댓글:  조회:4477  추천:1  2012-11-17
찬 Korean dream 赞 김인섭 2010-12-15 요전, 이모사촌누나 부부가 한국의 노무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집의 노모를 배안하려 왔다.그런데 자형은 들오자 바람으로 노인의 손을 잡고 늘키기 시작하는데 한참 동안 어깨를 들먹이며 를 되풀이한다.방랑에 걸맞는 구명도생의 삶을 접고 돌아와 감구지회에 젖어있는 자태가 가긍하여 곁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사람이 체면이 있어야지 남자답잖게 이게 머야?는 생각에 나는 되려 심드렁해 났다.   저녁에 술잔을 나누면서 주고받는 회고담에서 지난날 생활고로 받은 강타에 멍든 가슴을 열어놓고 간신간신하게 살아오던 삶의 길을 훑어 볼 수 있었다.   18년 전, 자형은 파산 직전인 어느 향진기업(농촌기업)의 공장장을 떠메고 사업하다가 초미의 부족자금을 해결하는 구급책으로 자택담보차관을 한 것이 빌미로 되어 둥지를 잃는 맹랑한 처지로 급전하였다.막다른 벼랑에서 부부는 적수성가(赤手成家)의 재출발로 보따리장수로부터 돈이 된다는 일이면 다 덤비면서 기가재기(起家再起)에 도전하였다.그러나 칠전팔기의 사고팔고를 해도 지워진 빚에다 이자까지 얹힌 짐짝 해탈이 예삿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불의의 강타와 지리한 곤경속에서 자형은 알콜로 일그러진 속내를 달래며 비칠거리는 차수가 날따라 늘었던 과거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누라가 묻어논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이 고비판에서 육친의 구구스러운 고생 장면을 보며 누나집 식솔들은 끈질기게 이혼을 부추기며 아직은 늦지 않으니 새길을 선택하라고 집요한 권고에다 핍박까지 들이대며 몰아쳤다는 들으니 첫소리다. 그러나 머리서방은 못 버린다는 누나만의 송죽지절은 변함이 없었다.그는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기어이 남편과 손잡고 참신한 가정을 꾸려간다는 단호한 결의로 타인들의 강권을 내쳐버리었다.   자형이 대책없이 헤매이고 있는데도 그를 과녁으로 파상공격을 되풀이 하는 때 집의 노인이 무슨 생각이였는지 는데 그래도 부부간이 금슬이 좋으면 차차 잘 살 날이 올 것이니 믿어주라는 한마디 충언을 던졌다는 것이다. 로인이 무심중에 내뱉은 한 마디는 궁지에서 몸부림치는 자형에게 더 없는 축복이었고 삶의 용기를 부추기는 금언이 되어 큰 편달이 되었단다. 오늘 노인을 만나니 들이쌓인 설움이 암장같이 분출해 못 막겠더란다.   고난속의 부부는 이체동심으로 고생줄을 타다가 어린 아들을 자취시키고 빚더미를 지더라도 한국에 가 돈을 번다는 지독한 비원을 굳히었다.생명의 전부를 걸어놓는 각오로 코리안드림팀들의 전렬에 가담한 것이다.입국 초기에는 쌀알을 훔치는 생쥐처럼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침불안석으로 나날을 보냈다.천우신조인가!? 때를 맞춰 노무현 대통령께서 따뜻한 시책을 펼치면서 활개를 죽 펴게 되었고 착한 사장님들도 관심과 동정을 베풀어주시면서 앞길을 안내하시고 수땜을 해 주시었다.어둡기만 하던 앞길은 트이었다.열심히 일만 하면 더 바라볼 것도 없었다.   원래 그들은 더 체류할 심사였으나 결국 아들의 채근에 끌려 노무현 영전의 참배를 대단원으로 가족 단란의 귀향을 단행하였다.사랑하는 아들과의 재회가 12년 만이다.저간에 10대 초반이었던 아이는 옥죄는 고독과 신고를 이겨내고 대학문을 나와 열심한 회사 생활로 자생자결이 꺼뜬한 제살이 길에 들어섰다. 게다가 국가중점대학의 고학력 색시를 데리고 대도시의 덩실한 아파드 단지에 자택까지 마련해 놓고 팽글거리는 딸애까지 두고 있었다.심신이 지쳐진 시부모를 맞아 놓고 며느리는 자기들에겐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으니 로인들은 건강하게 잘 살기만하면 된다고 우줄거리는가 하면 달마다 시간을 맞춰 생활비와 보건비를 쪽쪽 바친다는 곧이 들리지 않는 자랑인데 슬그머니 뒷조사를 하였더니 불궈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젠 뭔가 더 바라는 것도 없고 과거지사를 말하자 해도 목만 멘다는 내외의 말이다. 가슴에 박힌 것이란 생계를 이유로 두고 떠난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설음이고, 결혹식마저도 두 손으로 치러주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은 부부의 20개 손가락으로 풀 수 없는 가슴속 회한이란다.가리산지리산하는 나날에 따뜻한 손길을 벋쳐주신 노무현씨와 대책없이 헤매이는 내외간을 받아주시고 지켜주신 사장님의 은정은 맘속에 정히 갈무리해 둘 것이란다.   코리안 드림의 대망을 안고 이 땅의 겨레들이 한국 땅에서 무더기로 전전한다는 소리를 들은지도 오래지만 감동적인 실체험은 처음이다.   한국에서 체류하는 어느땐가 이 애주가, 호주가(豪酒家)에다 골초 흡연가인 남편이 문뜩 금연단주(禁煙斷酒) 거장으로 되였더란다.누나는 어디가 불편한 게 아니냐 의심하면서도 우둥푸둥하게 말짱한데 간대로야 하고 불문에 부쳐버렸다.   어느 날 남편의 집물을 정리해 주러 숙소에 가 이것저것 뒤지다 무심중에 뭐가 적힌 노트가 보이기에 번져보니 는 글발이 눈에 비치었다.누나는 심중을 덮어놓고 한참 관찰하니 실로 회사 회식이든, 연회석이든, 친구 모임이든 모든 식사 장소에서 술 한 방울 안 대고 담배 한 고치 안 태우더란다. 대고 싶은 욕망도 이젠 깡그리 사라졌다 하길래 거짓말도 빨갛게 한다고 은근히 관찰했더니 실로였다는 돌돌괴사(咄咄怪事)이다. . 이 전설 같은 실화를 코리안 단꿈의 텃마당에서 참사랑이 엮어내었다.만약 누가 가능하다면 이 사랑의 소산물을 의 제목으로 미문을 만들어 두면 좋겠다고 별궁리도 해 보았다.   참말로, 남편의 실명은 만산(萬山)이고 마누라의 실명은 송죽(松竹)이다.오늘,남가일몽에 심취한 저 땅의 조선족 프롤레타리아들이 만수가 휘감은 천산에 도열한 창송취죽[蒼松翠竹]마냥 한결같이 짙푸른 빛을 내뿜는 그 날을 바라본다. (끝)  
18    수요와 필요 댓글:  조회:4233  추천:2  2012-11-17
                                                        김인섭  2012-10-31 사이트를 뒤져보다 나를 답답하게 하던 기사 몇 건을 라렬해 본다.   몇십 년을 고위급에서 우뚤거리던 친구가 권력오용에다 천문수자의 돈을 꿀꺽하고 녀색에까지 푹 찌들어 버젓한 를 쓰고 권좌에서 곤드두박질 쳤다는 스캔들이다.매체는 는 화려한 슬로건에 기대어 허궁치기 딴전을 부리며 무소불위 행세를 해 왓다고 대서특필하였다. 만민의 심기에 재를 뿌리는 들썩하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수호(搜狐) 사이트①의 기재이다. 과학자들의 고찰에 의하면 연해 지역에 물부족이 심각한데 52개 도시중 극도부족이 18개이고 엄중부족이 10개이고 과부족이 9개이고 상당부족이 9개이고 전체의 90%가 정도부동하게 물이 모자란단다. 거기다 가심화 일로만 걷고 있다는 부연 설명인데 원인은 물자원의 랑비와 물의 오염이다.   역시 이 사이트②에 내지에서 백혈병 환자가 급증하는데 그 요인은 물,공기 등 환경 악화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이라는 기사가 실렸다.환자 증가수가 원래의 4만명으로 부터 지금은 년8만명을 훌쩍 웃돌고 있다는 주장이다.병원의 혈액과는 보편적으로 만원을 이루고 고액치료비의 부담으로 환자와 가족의 애간장을 안달복달 태우고 있다.   매체는 어젯날보다 얼마나 장성했고 잘 산다는 뉴스로 늘 꽉 찬다.발전을 하였으니 그럴 법도 한데 번영한다는 화려한 뒷뜰에 이런 징그러운 일들이 줄느런하니 잘 산다고 포식한 배를 슬슬 만지는 우리가 차분히 성찰을 해 볼 일이 아닌가 생각이 맴돈다.말이 있은지도 오랜 소문들인데 결코 슬쩍 지나칠 범사가 아닐 것이다.   하나는 사회 공복의 자리에서 야단독장(惹端獨場)을 치며 인민이 내준 권력의 마당을 부정축재、부화방탕의 환락가로 만든 방탕아이다.그 다음은 수자원을 무절제로 랑비하고 더럽히며 돈을 번 대가로 후대의 터전을 오물천지 불모지로 만드는 들이다 .이 다음은 물과 공기에 유해물을 토해내고 식물에 독물을 뿜어 팔아버리는 밀살 들이다.여기의 원흉은 생물적 욕망을 원색적인 발로이다.   잘 산다는 명제를 되풀이 해 본다.공직자가 충신이 된 공동체에서 청정한 물과 청신한 대기를 마시며 살 때 이것이 행복한 시민사회이다.흥청망청 먹어대며 무한정 욕심만을 부리며 자원을 랑비하고 환경을 더럽힌다면 이것은 동물적 욕구 만족일 뿐 인간의 복된 살림이 결코 아니다.   적자생존의 가혹한 정글법칙을 고취하여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떼돈을 벌어 부자인 것이 아니다. 발전과 행복의 기반이란 사회성원들지간의 공생공영의 뉴대가 확립된 데 있고, 진정한 부자적 현대화는 수요되는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어떻게 값지게 쓰고 불필요한 것을 어떻게 최대한 줄이느냐 하는데 있다.   과학적 발전이란 명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방탕한 오직행위, 자원랑비의 생산행위,건강파괴의 경제행위는 엄정한 징계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현실속에 있어야하고 전 사회는 햇살이 쏟아지는 당양지지(當陽之地)로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조화사회 건설의 대전제이다. 공생공영과 필요를 무시하고 자기의 수요만을 추구하는 무한경쟁의 세상에는 진보가 아니라 공도동망(共倒同亡)만이 유일한 탄탄대로이다. (끝)       주: ①2012-10-27일, SOHU(搜狐)사이트     ②2012-10-29일  위 사이트
17    촌지주기 촌극(寸志 寸劇) 댓글:  조회:4171  추천:2  2012-11-10
촌지주기 촌극(寸志 寸劇)                                                       김인섭 2012-10-02 9월10일은 교사절, 중소학교 부모측은 주나안주나의 고민에,교사측은 받나안받나는 걱정으로 허덕이며 부형과 선생들 사이에서 촌지를 수수(授受),사양,거부,반납하는 촌극이 음으로 양으로 년례행사처럼 벌어진다. 아무튼 교사를 존중하는 념원을 표시하는 절중한 선물을 제외하면 이 시비총중의 촌지는 학부모들이 교사를 도덕의 시험장에 밀어넣고 항간에 시야비야를 불러오는 엄연한 현실이다.   촌지(寸志)의 어원은 일어인데 일본어사전에서 의미는 작은 정성,변변찮은 선물,자기의 뜻 혹은 선물의 겸사말이다.한국어에서는1. 어떠한 특별한 혜택을 받기 위해 뇌물로 주는 금품인데 흔히는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2.자그마한 정성을 표시하는 선물.3.속으로 품은 작은 뜻이라 해석된다.시대의 산물인가 그 본래 뜻은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낯가림 선물이었으나 현재는 뢰물에 가까운 부정적인 뜻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변의 어느 사이트에서 는 설문 코너에 들러보았다.오늘 현재로 찬반이 48:52 비례인데 반대편은 일색으로 반기를 드는데 대비해 찬성편은 대개가 남들이 다하니 수중축대(隨衆逐隊)로 받아도 무관하다거나, 소수이니 문제 없다거나, 선생들은 월급도 적은데 좀 받으면 뭐냐 등 반숭건숭의 대답일 뿐 가표를 던진 누리군은 없었다.확실한 것은 참가자 전체가 아니곱살스레 보는 시선이라는 점이다.인간의 최고 희망이라는 후대육성의 성역에 고행(高行)이 고스란히 넘쳐야 할 대신 촌지라는 부조리가 불문률로 되었다니 정토락원에 탁수가 흘러든다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요즘의 촌지는 답례품의 성격을 떠나 걷잡을 수 없이 체적증대의 상승선을 긋고 있다.촌지를 넘기는 부형들의 요구는 자기 자녀를 다른 애들보다 더 잘 봐달라는 대가성이고, 거부했으면 모를까 받은 쪽의 교사는 그 촌지의 두께에 따라 부모의 요구에 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할 처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결과물은 교육이란 이 성당의 의 위반을 대가로 이 애들에게 소위 가 돌아간다는 것이다.더 말하면 덕육,지육,체육,미육이 겸비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학교,가정,사회의 의 엄중히 위반하고 애들의 건전한 성장을 무시하는 탈선행위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수해자는 자식이 되고 사회는 수치계산이 안되는 무형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부모측에서 본다면 촌지는 도리어 자식을 잘 키우려는 자기 희망을 릉멸하고 애에게 특수심리,투기심리,라태심리,개인주의 사상을 키워주는 우둔도깨비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서릿발 같이 휘둘러야 할 교사의 교육채찍을 무력화시키는 촌지가 바로 부모의 이다.진정 부모라면 돈봉투로 자녀의 공부、진학、편안을 사려는 비분의 욕심을 버리고 장점은 표양받고, 잘못은 벌을 받고, 곤난은 극복하는 의지를 길러 주도록 해야 마땅하다. 이 인생의 대목을 넘지 못하는 어린싹들의 앞날이 암울하지 않을가 지레짐작을 해본다.   물론 촌지 의미의 변질은 사회적 요인과 직결이 된다고들 말한다.그러나 더 정확하다면 학부모의 이기심과 교사의 사명감 부족이 빚어낸 합작품으로 봐야 마땅하다. 암만 어디가 변해도 후대들의 요람이 오염되는 변화는 없어야 할 것이다.학부모들이 교정에 촌지를 살포하고 혼돈속에서 교사들이 신성한 신분을 잃는다면 이 오리무중 속에서  애들은 면역이 떨어지고 겉보기는 강골이나 속내평은 섬섬약골인 의지결여증(意志缺如症) 로 자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력설하지만 촌지의 본색을 되살리고 뢰물에로의 악변을 두절하기 위하여 사회적방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교원들의 자률정신 수립이 전제가 된다.허나 제도의 미비와 교사의 도덕 높낮이만을 가지고 가타부타 한다면 과분히 편파적인 시비이다. 학부모들이 인민교사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변질된 촌지를 찔러주는 을 금지해야 한다.부모들이 촌지의 한계선를 잘 분별하고 진정 교사를 존경하면서 그 위상에 손해가 가지않도록 분촌을 잘 따지는 지혜를 수립해야 한다.   훌륭한 스승이 뛰어난 학생을 양성한다는 란 말이 있다.선생은 학생들의 제일 훌륭한 본보기이고 정신적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존엄성과 륜리성에서 부족의 빈구석이 비친다면 학생들은 들을 말을 잃게 된다.아무튼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 숭고한 모습으로 서려면 촌지의 시련도 가파른 고개를 넘듯이 넘어야 할 같다. (끝)  
16    조물주의 <잘잘못> 댓글:  조회:4441  추천:1  2012-11-07
                                                   김인섭  2012-09-03 일전에 급한 용무로 충남의 대전시로 갔었다.   대낮인데도 찌는 듯한 더위에 질려 호텔에 드러누워 심심소일로 텔레비를 돌렸다.바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CMB대전지방방송의 이란는 실화 방송이었다. 사건은 지역의 어느 농촌에서 80대 후반의 부부가 60이 넘은 지체장애자 아들을 데리고 어렵사리 보내는 화면이다.   운신이 불편하고 몸놀림이 어설픈 아들은 울바자 안쪽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아버지는 아들의 먹을 것을 위하여 밭일과 잡다한 일로 하루종일 시간을 흘리신다.완벽한 곱사등인 로체를 이끄시며 일만 하시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미스터리이다.할머니는  아들을 수시로 보살펴야 함으로 집 근처를 전전하시며 채소밭을 다루지 않으면 산나물 채집과 마을의 파치물들을 모아서 푼돈을 만들어 살림에 보태며 쓸쓸한 나날을 보내신다.가난이 우환일 따름이지 궁기에 잔뜩 찌든 촌살림의 리면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뉴대가 얼기설기 얽혀 있음이 확연히 꿰비친다.   동네의 뭇사람들은 아들은 장애자센터에 보내고 로인들은 로인복지센터에 가시면 얼마나 편하시냐 간곡히 권고해도 딱 잘라 거절한단다.저런 아들을 거기 보내고  남의 놀림을 당하고 빈축이나 사면 그걸 어떻게 눈 뜨고 보는가는 것이다.그래도 얼마간 되는 구제금에다 노력을 좀 보태면 아들이 하루라도 시름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얘기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진담일 것이다.비애와 사랑이 헷갈린 하소연을 하시는 할머니,그 초점을 잃은 우묵한 눈에서 내리사랑의 찬란한 빛줄기가 흐른다.   자기는 원래 처자가 있었는데 의외의 사고로 잔페가 되니 안해는 가버리고 아이들도 서울에 있다고는 하는데 평시의 련락은 없고 간혹 일이년에 한 번 정도나 얼핏 왔다 사라지면 고작이라는 장탄식이다.애들이 그립잖은가는 물음에 아들의 막연한 대답이다.   난감한 일가였다.울적하게 보고 있는데 문뜩 해괴하고 야릇한 생각이 불쑥 떠올라 가슴을 헤집고 들었다.조물주께서 이 땅에 인간을 하사하신 은정은 더 이를데 없지만 하시는 바에야 차라리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늙고 세상도 먼저 하직하도록 만들어 주셨더라면 너와 나와 갑남을녀들은 영원히 티없는 부모의 사랑만 받으며 살아가고 부모공양의 부담을 떠안고 있을 번민이 없었을 것이다.어느 누구는 부모를 어떠어떠하게 대접한다는 비아냥거리는 야유 소리를 들을 걱정도,누구는 여차여차하게 어시를 박대한다는 항간의 찬 시선을 들쓸 근심도 싹싹 없어질 것이다.로인들에 대한 가족의 부양 기능이 나날이 쇠약해지는 풍진세상인데 사회는 경로라는 난제에 부심할 일도 없고, 거금을 쏟아 경로원 따위를 지을 필요도 전혀 없다.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에서 막대한 부담이 덜어질 것도 불보듯 빤하다는 명약관화(明若觀火)가 아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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