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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덕진의 문학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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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두막은 비에 운다" 댓글:  조회:1114  추천:0  2017-04-05
단편소설                                                                                오두막은 비에 운다         가을이다. 눈부신 황금빛으로 도배된 들에서 봄, 여름에 쏟은 구슬땀이 고개숙인 오곡으로 무르익고 산에서는 각종 “보배”- 머루며 다래, 버섯들이 어서 오라 손저어 부르는 계절, 풍요가 온 누리에 넘실거렸다. 가을엔 노적가리 쌓는 희열도 좋지만 배낭을 메고 산에 가서 이런 “보배”들을 지고 오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콩은 누기가 있을 때 거둬야 제격이기에 승덕이는 아침 일찍부터 안해 서씨와 함께 물남의 콩밭으로 나가 가을걷이에 살손을 붙혔다. 여름내 잘 자라 늘씬하게 키가 큰 콩은 밭게 달린 꼬투리마다 세알、네알씩 꽁꽁 품은것이 얼핏 보아도 두짐 밭에서 800근 정도 수확할수 있을것 같았다.     농사가 잘되니 기분이 좋았다. 딱딱딱, 딱딱딱… 귀맛좋게 콩대가 부러지는 소리에 성수가 나서 허리쉼 한번 하지 않고 땀 흘리며 일에 만부하를 건 그들은 11시가 남짓하여 3분의 2 정도의 콩을 베여놓았다. 그리곤 갖고간 도시락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또 걸싸게 일에 달라붙었다. 하루종일 콩밭에 머리를 박고 부지런히 몸을 혹사한 보람으로 그들은 오후 5시쯤 물남 콩밭 가을걷이를 완전히 끝낼수 있었다. 집체화때 같았으면 셋이서도 끝을 보기 어려울 가을걷이를 둘이서 해재꼈다는 자부감에 승덕이는 은근히 흐믓해났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는듯 하여 승덕이가 하늘을 쳐다보니 서쪽하늘가가 어둑어둑 흐려오고있었다. 비가 내릴 징조다. 점심 도시락을 쌋던 꾸레미와 쟁기를 챙겨 든 승덕이네 부부는 다그쳐 집으로 돌아왔다. 점차 하늘에 검은 구름이 짙어가고 땅거미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저녁식사를 기분좋게 치른 승덕이는 해나른해진 몸을 쉬우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얼마 안되여 후두둑 후두둑 비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난 승덕이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어둠이 깔린 밖에서는 비살이 보기좋게 땅에 꼰지며 내리고있었는데 가슴마저 후련해났다. 하늘도 전혀 무심하지는 않는가보다. 기름개구리를 포획하는 철이라 은근히 기다려지던 반가운 비다. 창문을 닫고 자리에 돌아온 승덕이는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당신 산으로 가려고 그래요?” 곁에 누워 잠이 든듯하던 안해가 눈을 살풋이 뜨며 물었다. “양, 가봐야겠소.” 승덕이가 옷섶을 여미며 대답했다. “낮에 힘들게 일했는데 저녘엔 쉴거지 그래요.”     “괜찮소. 당신이나 시름놓고 푹 쉬오.”     “여보, 나도 같이 갈가?”     밤중에 남편을 혼자 산으로 보내는것이 마치 강가에 애를 내놓듯 걱정되여 안해는 따라 나설 잡도리를 하였다.     “안되오. 당신은 우리 집의 ‘1급 보호대상’이란걸 잊었소?”     변변치 않은 몸으로 하루종일 남편을 따라 콩가을에 바삐 돈 안해를 밤중에까지 산속으로 끌고 다니며 “부려먹을”수는 없었다. 승덕이가 “1급 보호대상”이라고 하면서 안해를 만류하는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서씨는 재작년 겨울 소수레를 몰고 나무하러 떠나는 승덕이를 따라 산에 갔다가 나무를 꽉 박아실은 소수레가 번져지면서 승덕이를 덮치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선뜻 자기의 몸으로 수레를 떠받쳤다. 그 덕에 승덕이는 한차례 봉변을 면하였지만 대신 서씨는 허리를 크게 다쳤다. 안해의 소행이 고맙기도 하고 갸륵하기도 하여 승덕이는 여러곳에 수소문하여 어혈을 풀고 기를 통하게 하는데 효험이 있다는 웅담과 사향을 구해왔는가 하면 고명한 로중의를 찾아가서 중약도 지어왔다. 승덕이가 지극정성을 다한 보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못하던 안해가 인젠 바깥출입도 하고 경한 일도 할수있게 되였다. 만약 안해가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에도 틀림없이 승덕이를 따라 비속을 누비며 충실한 협조자가 되여주었을것이다. 사실 그들 부부는 일밭에 가도 산에 가도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녀 사람들로부터 한쌍의 “원앙새”로 불리웠다. 3년전, 그러니까 서씨가 허리를 다치기전 해였다. 가을아씨가 섬섬옥수로 그려놓은 걸작이런듯 울긋불긋 타오르는 단풍이 산야를 붉게 장식하는 어느 청량한 날, 승덕이는 안해와 함께 산으로 머루따러 떠났다. 단둘이서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자가용”- 소수레에 앉아 산으로 가노라니 마치 신혼려행을 떠난듯한 기분이였다.     음메, 음메… 풋살이 오른 황소도 신이 났는지 머리를 내저으며 골안이 들썽하게 영각소리를 냈다. 반시간만에 닿은 곳은 마을에서 7-8리 상거한 금전골이였다. 소를 풀밭에 매여놓고 앞치마를 찾아 두른 두 사람은 산으로 향했다. 비탈진 곳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니 울긋불긋 단풍이 든 머루덩굴 잎새사이로 까맣게 익은 머루가 보였다. 나무가지를 헤치고 급히 다가가보니 머루가 숨박꼭질하듯 단풍잎새의 여기저기서 빠금히 얼굴을 내밀고있었다. 마수걸이라 기분좋게 따고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나무사이에도 머루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찬찬히 여겨보니 나무뿐만 아니라 땅우에도 머루가 새까맣게 덮여있어 마치 검정보를 씌워놓은듯 하였다.     “어머, 머루가 엄청나게 많네요.” 제꺽 탐스러운 머루 한송이를 따들고 흔상하던 안해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잠깐, 사진 한장 찍어줄게. 찰칵!”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머루와 안해가 화사하게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방불케 하는지라 승덕이는 두 손으로 사진찍는 시늉을 해보였다.     “진짜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아마 사진전에 내놓아도 짝지지 않을걸.” 승덕이가 자못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사진제목은 뭐라고 달건가요?”     안해가 못내 궁금한듯 승덕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음,‘머루부업’아니,‘머루따기’! 그래, 이 제목이 좋아.”     마음에 와닿는 제목을 생각해낸 승덕이는 한껏 들떴다. “‘머루따기’? 좋을것 같아요. 평범하면서도 인상적이예요.” “아이 낳기전부터 포대기를 갖춘다고 우리야말로 진짜사진을 찍기전에 제목부터 달아놓았구만. 허허허…”     “그러게요, 호호호…”     둘은 가슴을 열고 활짝 웃었다. 그 소리에 산이 화답하였다.     “자, 아- 하세요.”      안해가 손에 들고있던 머루송이에서 한알을 똑 따서 승덕의 입에 살짝 넣어주었다. 승덕이도 뒤질세라 제꺽 한알을 따서 안해의 입에 넣어주었다.     “달콤새콤한게 꿀맛이네요.” 두 사람은 애들처럼 서로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날 그들은 머루를 60근이나 따가지고 내려와 공소합작사에 팔았다. 30원, 당시로 말하면 솔찮은 수입이였다. 집체화때 같으면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이였으련만 호도거리덕분에 처음으로 큰 돈을 쥐게 된 그들의 얼굴엔 기쁜 나머지 환한 미소가 피여났다. 호도거리생산책임제가 실시된 이후 나타난, 인심을 흥분시키는 새로운 기상이라고 여긴 승덕이는 “머루따기”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서 현지일보사에 투고하였다. 운이 좋게 그 글은 신문에 실렸을뿐만 아니라 년말에 수상의 영광까지 지녔다. 또 일보사에서 꾸리는 계간지 《통신원》에 게재되여 글쓰기 초학자들의 지침서로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승덕이가 어디가나 늘 안해를 “꼬랑대(꼬리)”처럼 달고 다닌다고 비웃었지만 그들 부부는 나름대로 고락을 함께하는 부부의 정감을 느낄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오늘 저녁만큼은 안해를 집에 남겨두고 가는수 밖에 없었다. 안해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어쩔수 없었다. 아무리 남편의 “꼬랑대”일지라도 밤중에 험산 산속으로 데리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봉당에 내려가 장화를 찾아 신은 승덕이는 그물이 든 배낭을 챙겨들고 밖에 나섰다.  사위는 먹칠한듯 캄캄하여 곁에서 누가 귀뺨을 때려도 모를 지경이였다. 게다가 길까지 질척질척하여 걷기가 여간 말째지 않았다. 가끔 웅뎅이를 만나 휘청거리기도 했다. 이럴 땐 장님이 따로없다. 오직 감각으로 길을 찾아 걸을수 밖에는. 하지만 자칫 다른 사람에게 그물터(기름개구리그물을 치는 곳)를 뺏길가봐 승덕이는 부지런히 걸음을 재우쳤다.     숨이 턱에 닿아 그물터가 있는 남산골어구에 이르니 다행이 아무도 왔다간 자취가 없었다. 승덕이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하긴 그가 먼저 이곳을 점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기 저어할것이다.     배낭을 끄르고 그물을 꺼낸 승덕이는 익숙한 솜씨로 어둠을 더듬으며 그물을 펴기 시작했다. 물살이 급한 곳은 구멍막기에 각별히 류의해야 한다. 그물과 땅 사이에 틈이 생기면 기름개구리가 자칫 빠져나갈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온 저녁 고생이 물거품이 된다.     그가 찬물에 뻣뻣해지는 손가락을 겨우 놀리며 다섯개의 그물을 다 늘여놓고 시계를 보니 8시반 남짓하였다. 그러니 그물 다섯개를 늘여놓는데 한시간반이 소요된 셈이였다. 장화는 명색뿐이지 안에서 물이 질척거려 신으나마나하였다. 말 그대로 신안에다 배를 띄울 지경이였다. 장화를 벗어 물을 털어내고 다시 신었다. 그리고는 비가 많이 내려야 기름개구리도 잘 내린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깊이도 너비도 가늠하기 어려운 미지의 함정같은 어둑컴컴한 하늘에서는 여전히 굵은 비줄기를 퍼붓고있었다. 비걱정은 아니해도 될상 싶었다.     기름개구리잡이도 한철, 별 재미다. 새벽녘 그물에서 풀쩍풀쩍 뛰는 아기주먹만큼 큰 기름개구리들을 주어낼 때면 그야말로 온 세상을 다 가진것 같아 장밤 비속에서 질척질척 골안을 누비던 고생도 까맣게 잊은채 얼굴에 희색이 만면한다.     몇년전까지만 하여도 운이 좋은 날에는 하루저녁에 암컷50-60마리, 수컷 100여마리씩 잡을수 있었다.     한번은 승덕이가 넘마우골로 기름개구리잡이를 떠난적이 있다. 소를 안해한테 맡겨놓고 주먹밥 하나만 달랑 허리춤에 찬 승덕이는 아침 5시좌우에 집을 나선것이 8시 남짓 해서야 넘마우골에 당도하였다. 승덕이는 사위를 한번 휘 둘러보고는 개미잡이를 하는 곰처럼 궁뎅이를 하늘을 향해 쳐들고 엎디여 돌을 하나씩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넘마우골은 중-쏘 두 나라 국경지대에 있었는데 구로씨야시절 로씨야로부터 소금, 해산물 등 생필품들을 등에 지고 수레에 싣고 넘나들던 륙로여서 지금까지 “넘마우(재)골(로씨야로 넘는 골)”로 불리우고있다.     승덕이가 찬물에 꽁꽁 얼어드는 손을 입김으로 불어 녹이며 돌을 번져도 기름개구리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곳에 이르니 물이 한뼘 정도 깊었는데 화강암 모래판에 납죽한 돌들이 드문드문 깔려있었다. 산이 커야 그림자도 크다고 돌들이 작은지라 승덕이는 크게 희망을 품지 않았다. 허지만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아야 아는 법이다. 그는 행여나 하는 심정으로 물가에 놓인 작고 납죽한 돌을 골라 두 손을 량쪽으로 살며시 밀어넣었다. 순간 손끝에 뭉클하고 매끄러운 감각이 전해왔다. 정신이 번쩍 든 승덕이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움켜잡아 꺼내보았다. 이… 이건? 승덕이는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의 손에 잡힌것은 배때기가 누르스름하고 붉은 기름개구리, 그것도 한마리가 아니라 두놈이였다.     한꺼번에 두마리씩이나 잡아낸 승덕이는 사기가 부쩍 올랐다. 그의 손이 또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도 암컷 두마리를 포획하였다. 의외의 수확에 승덕이는 종래로 느껴보지 못했던 희열을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생산대일에 하루종일 녹초가 되게 일해봐야 한공수에 1원도 안되는데 기름개구리 한마리 값이 그에 맞먹으니 이거야말로 횡재가 아닌가. 그는 또 물속에 손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도 두놈이 잡혀 나왔다. 승덕이는 마치 콜롬보스가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였다.     “여섯마리!”     승덕이는 저도 모르게 웨쳤다     “여덟마리!”     기적이 따로 없었다. 바로 이것이 기적이였다. 승덕이는 짜릿한 손맛에 열광하였다.     “열여섯마리!”     “열여덟마리!”     “스무마리!”     허지만 열한번째는 빈손이였다. 허탕을 친것이다. 보아하니 인젠 잡을만한것을 모조리 잡아낸 모양이였다. 아쉬운대로 승덕이는 열번까지 웨치고 더는 웨치지 못했다.     승덕이는 기름개구리가 든 그물주머니를 들여다봤다. 금을 가득 담아놓은듯 싯누렇고 븕은것들이 눈뿌리를 뺐다. 몽땅 암컷들이였다. 그것도 운이 따르는 수자인 쌍십수20마리였다. 여직껏 기름개구리잡이를 해왔지만 한곳에서 이렇게 많이 잡아보기는 처음이다. 이것들을 팔면 소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놈의 한 학기 학잡비와 김장할 때 쓸 소금을 살 돈을 충분히 마련할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에 승덕이는 흐뭇해났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넋을 잃고 앞을 바라보고있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리는상 싶었다. 승덕이는 정신을 도사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허지만 그후로는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짐승들의 작간인가?)     승덕이는 게두덜거리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이 그물에 든 기름개구리를 훔쳐가지 못하게 지켜야 했던것이다.     허우적거리며 어둠속을 헤치고 그물터로 가보니 비소리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는 한동안 못 박힌듯 서서 주위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다가 비닐로 지은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싱그러운 풀냄새, 습기냄새가 물씬 풍기는2평방메터 되나마나한 오두막안은 다소 어둡고 침침했다. 하지만 집안처럼 안온하게 느껴져 친근한 감을 주었다. 이 오두막은 그가 얼마전에 지은것인데 좀 엉성하기는 하지만 항만이 되여 비바람속에서 그를 보호해주고있었다. 승덕이는 비옷에 달린 모자를 머리뒤로 젖히고 나무토막우에 걸터앉았다. 조금 지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팔베개를 베고 새우잠이라도 한숨 잤으면 좋으련만 기름개구리를 훔쳐가는 도적들이 심심찮게 출몰하여 한시라도 방심할수 없었다.     밖에서는 이따금씩 휙휙 바람이 스쳐지나면서 짜르륵 모래알을 한웅큼 쥐여뿌리듯 비방울이 비닐박막을 후려쳤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제 며칠이면 가을걷이를 끝낼수 있을가고 골똘히 생각을 더듬고있던 승덕이는 갑자기 밖에서 또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긴급정황”이 나타난것이다. 마침내 기름개구리도적이 들이닥쳤다고 생각한 승덕이는 신경이 칼날처럼 곤두섰다. 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몽둥이를 손에 움켜쥐고 오두막문을 나섰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방향은 동쪽이였다.     승덕이는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인기척이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민첩하고 령민한 그의 행동은 정찰병 못지 않았다. 저쪽에서는 아직 이쪽 동정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철버덕철버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이동해오고있었다. 드디여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불과 4-5메터 밖에 안되였다.     “게 누구요?”     승덕이가 정적을 깨고 먼저 물었다. 일단 대방의 신분부터 확인해야 다음 행동을 취할수 있었던것이다.     “… …”     대방도 승덕이를 의식했는지 움찔 멈춰섰다.     “왜 대답이 없소? 게 누구냐니까?”     승덕이는 퉁명스럽게 다시 한번 물었다.     “거기 문이아버지 아니세요?”     뜻밖에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승덕의 음성을 꽤나 익숙히 알고있는 모양이였다.     “혹시… 은희 아니요?”     승덕이도 짚이는데가 있어 어투를 바꾸어 부드럽게 물었다.     “네, 저예요.”     두 사람은 말없이 둬발작씩 서로를 행해 다가섰다.     “아니, 은희가 이 밤중에 어떻게 여길?…”     은희가 혼자인것을 확인한 승덕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오긴 집에서(남편) 같이 왔는데 서로 헤여져서 각자 다른 곳을 살피기로 했어요…”     은희는 떠뜸거리며 변명삼아 말했다. 은희의 말을 듣고난 승덕이는 짐작이 갔다. 며칠전에도 그는 산을 내리다가 은희를 만났었다.       그가 왜 산으로 왔는가고 묻자 은희는 남편과 함께 기름개구리그물터를 살펴보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 병권이도 기름개구리잡이에 무척 흥취가 있는 편이였다. 하긴 값이 좋아 잘만 하면 떼돈을 벌수 있으니 누군들 마다하랴. 그러니 오늘 저녘에도 비가 내리자 둘이 기름개구리그물을 치러 왔다가 갈라진것이 분명했다.     은희는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몹씨 추워하는것 같은데 괜찮겠소?”     승덕이가 관심조로 물었다.     “그… 글쎄 그…그만 옷을 야… 얇게 입어서 …”     은희는 이를 덜덜 쫗으면서 떠듬거렸다.     “저기 오두막으로 들어가서 몸을 녹이오.”     승덕이는 한 밤중에 외진 산속에 나타난 유부녀를 오두막안으로 끌어들이는게 좀 저어되였지만 이 상황에서 어쩔수 없었다. 그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었다.     은희는 잠간 머뭇거렸다. 그냥 승덕이를 따라 오두막으로 들어가면 경박한 녀자로 보일가봐 주저되였던것이다.      이때 하늘에서 갑자기 쏴- 소낙비를 퍼부었다. 하늘도 네가 어쩌나 골려주려는듯 은희와 지꿎은 장난을 치고있었다. 은희는 더 고려할 새없이 쫓기듯 허둥지둥 오두막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오두막안은 비좁았다. 거의 붙어앉은 두 사람은 처음엔 좀 어색해하다가 체면이 배 부르겠냐싶어 서둘러 비옷을 벗고 밀착해 앉았다. 무엇보다도 언 몸을 녹이는것이 급선무였기에 둘이 붙어앉으면 열량이 빠져나가는것을 막을수 있었다.     은희는 계속 떨고있었다. 보아하니 이 상태로는 문제가 해결될것 같지 않았다.     승덕이는 은희를 끌어안으려고 기중기 같이 긴 두 팔을 뻗었다. 지금 이 시각 이렇게 하는것만이 은희를 추위에서 해탈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였다. 그러나 감히 남의 안해의 몸에 손을 댈수 없었다. 그는 결국 들었던 팔을 도로 움추려뜨렸다.     은희는 계속 떨기를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얼굴색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대로 두었다간 촉한에라도 걸릴것 같았다. 승덕이는 더는 그냥 내버려둘수 없어 주저없이 두 팔을 뻗어 그녀를 지긋이 껴안았다. 은희는 대뜸 승덕이의 몸에서 전해지는 야릇한 남자의 체취와 훈훈한 열기를 느낄수 있었는지 한동안 지나자 은희는 진정이 되여 떨기를 멈추었다. 그제야 승덕이는 그녀의 몸을 안았던 팔을 풀었다.     “제가 싫은가봐요?”     여직껏 승덕에게 몸을 기대고있던 은희가 서운한듯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아니…”     승덕이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는 문이 아버지 좋은데요.”     은희는 아주 저돌적이였다. 그녀는 유부녀를 넘어서 한 남자를 좋아하는 녀자의 애틋한 마음을 토로하면서 두 팔로 승덕이를 와락 껴안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댔다.     “… …”     승덕이는 어정쩡해서 은희에게 몸을 맡긴채 묵묵부답이였다.     “지난 해 봄 3.8부녀절때 녀자들이 문이아버지를 보고 뭐랬는지 아세요?”      은희가 불쑥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귀가 솔깃해지는 말을 했다. 다른 녀인들의 말을 빌어 자신의 속심을 드러내려는 속셈인것 같았다.       “뭐, 흉을 봤겠지.”      승덕이는 짐짓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흉이라니요? 오히려 너무 멋지고 당당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더군요.”     은희는 그때의 정경을 떠올리며 다소 흥분되여 말했다. “허허허, 비행기를 태우는군. 내가 뭐 백마왕자라도 되는가?”     승덕이는 못 믿겠다는듯 빈정거렸다.     “아이, 엉큼한 사람같으니라구, 남은 진심으로 말하는데 일부러 딴청 부리네.”     은희는 눈을 할기죽거리며 승덕이의 뒤잔등을 꼬집었다.     《3.8》부녀절때의 일이란 바로 지난 봄의 오락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날, 생산대에서는 녀성들의 명절을 경축하는 의미에서 반날동안 일체 생산활동을 중지하고 마을회관에서 부부동반오락회를 가졌다. 오락회는 30여명의 남녀가 참여한 가운데 윷놀이, 춤, 노래 등 다양한 행사로 치러졌다. 사회는 승덕이가 맡았다.     “실실이 휘늘어진 버들방천에 꾀꼴새가 있다면 흥겨운 우리네 오락장소에는 민숙이가 있습니다. 아래에 꾀꼴새도 울고 갈 고운 목청을 가진 민숙씨의‘봄 노래’를 듣겠습니다. 여러분 박수-”     원래 말주변이 좋고 향문예선전대에서 활약한적이 있는 승덕이는 넘치는 유머와 재치있는 솜씨로 오락회의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고기가 물을 만난듯 제법 사회자다운 자세로 오락판을 들었다놓으면서 흥을 돋군 승덕의 덕분에 모두들 기쁘고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그날 함께 오락회에 참가했던 안해도 집에 돌아와서 “당신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라고 추켜세우면서 뿌듯해하였다…    이때 먼곳에서 우뢰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더니 이윽고 섬광이 번쩍 빛나며 오두막안을 새파랗게 밝혔다. 꽈르릉 땅! 세상을 두동강낼듯한 굉음에 대지가 부르르 진동했다.     “어머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소나기소리에 질겁한 은희는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승덕이의 품에 와락 안겼다.     쏴- 탄력받은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물은 곬을 이루며 줄줄 흘렀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있었다. 이 시각 그들에게는 아무말도 필요없었다. 어찌보면 오늘 하늘이 그들을 은밀한 곳에서 만나도록 기회를 주었는지 모른다. 아니, 은희가 승덕이를 일부러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은희의 혼인은 그다지 미만하지 못하였다. 은희네 친정집은 사흘갈촌에서 100리 상거한 태평촌에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 현성에서 고중을 다니다가 여의치 못한 가정형편으로 중퇴하여 귀향한 은희는 촌에서 부녀주임사업을 맡아하였다. 당시 태평촌은 물론 린근 마을에서까지 막 피여나는, 단발머리에 물찬 제비처럼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를 일등색시감으로 점찍고있었다. 하여 여기저기에서 혼사말이 많이 들어왔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마음의 준비가 안된 은희는 결혼보다도 자기의 전도에 대해 더 신경을 썼다. 허지만 “녀자는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가는것이 출세하는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거역할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청혼하는 총각들중에는 비록 농민이지만 초중을 졸업하였거나 고중을 졸업한 괜찮은 청년들이 많았다. 허지만 은희는 “농민”이라는 딱지를 떼여버리려고 우선 로동자나 국가간부쪽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선택한 사람이 바로 향우전국의 직원 마병권이였다.     그런데 정작 결혼하여 한 가마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살면서 지내보니 마병권은 속이 여물지 못하고 어리숙하여 어딘가 좀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리숙한 사람은 안전성은 있어도 주견이 없고 순발력이 없다. 이런 사람은 발전을 도모하려 하지 않고 극히 무기력하여 아무런 일도 해내기 어렵다.     뒤늦게야 은희는 자기가 국가의 봉록을 타먹는 로동자라는데만 눈이 멀어 사람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혼인의 실패를 의미하는것이였다. 평생 마병권과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안개속을 헤매듯 앞날이 막연하고 허무했다.     백마왕자를 만나 아이낳고 아기자기하게 살려고했던 은희의 꿈은 산산히 깨여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리혼녀”라는 딱지까지 달면서 리혼할 용기는 없었다. 호미난방이라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게 된 그녀는 은근히 가슴을 허비는 고통에 모대기였다. 친정집 엄마한테 실토정을 해봤지만 돌아온건 욕뿐이였다.     며칠동안 고민과 갈등에 모대기던 끝에 그녀는 결국 옥에도 티가 있듯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어쩌면 로동자와 농민이라는 뛰여넘을수 없는 벽이 은희로 하여금 막부득이한 선택을 하게 하였는지 모른다. 그녀는 이미 엎지른 물이 된 이상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만족하면서 살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무너지려는 자신을 간신히 추슬렸다.     당시는 호도거리를 하기전이였는데 은희가 일터로 나가면 사람들이 이쁘고 야무진 그녀를 보고 “장미꽃이 소똥에 꽂혔다”면서 못내 아쉬워하였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 말은 돌고돌아 마침내 마병권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지 않아도 안해가 어느날 갑자기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나갈가봐 전전긍긍하던 마병권은 고민에 빠졌다. 워낙 위인이 소심하고 어리숙하여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술로 자신을 달래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말수가 적고 부처님처럼 얌전하던 마병권은 술이 잦아지더니 걸핏하면 실없이 안해한테 생트집을 잡으면서 말썽을 부렸다. 렬등감, 의처증이 불러온 보복성 소행이였다. 부모와 친지들이 보다못해 여러차례 따끔하게 닦아세웠지만 그 식이 장식이였다. 밥이 좀 타도 트집, 안해가 밖에 나갔다 좀 늦게 귀가해도 트집이였다. 한번은 저녁식사때 어디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들어온 마병권이 게스츠레한 눈으로 은희를 보며 “물, 더운 물을 가져와!”하고 호령했다. 은희가 사발에 물을 떠다주자 입을 대여보던 병권은 “따갑지도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물을 가져오란 말이야!”라고 윽박질렀다. 은희가 다시 공손하게 미지근한 물로 바꿔오자 입을 대여보네마네하고는 “앗, 뜨더워!”하고 펄쩍 뛰며 사발에 담긴 물을 은희의 얼굴에 확 끼얹었다. 난생처음 이런 치욕을 당한 은희는 밸이 울컥 치밀었다.     “왜 행패를 부려요?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이러는가 말이예요?”     “씨팔, 덜돼먹은 년이 악다구니질은… 그 주둥이를 썩 다물지 못할가?”     은희는 남편이 자기를 잃을가봐 두려워서 그런다는걸 알고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남편의 부족한 부분도 감싸주면서 살려고 하였던것이다. 그런데 날로 우심해지는 생트집때문에 더이상 견딜수 없없다. 결국 은희는 보짐을 싸들고 친정집으로 가고 말았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알린다고 마병권은 안해를 떠나보내고 불없는 야장간처럼 썰렁한 집에서 독수공방하려니 적막과 고독이 몰려왔다. 그렇게 한달 동안 구질구질한 홀아비생활을 하고나서야 그는 자신의 불민한 처사를 통탄하게 되였다. 결국 마병권은 가시집에 달려가서 안해한테 손이야발이야 빌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의 사전에서 “마병권”이란 이름 석자를 지우기로 결심한 은희는 그의 애원을 듣는척도 하지 않고 법원에 리혼소송을 제기하였다.     안해가 리혼을 제기하자 마병권은 당황한 나머지 단가마에 오른 개미처럼 안절부절 못하였다. 리혼이라니? 절대로 안될 일이였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은희만은 놓칠수 없었다. 마병권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글을 잘 써서 신문에 발표하는 승덕이를 찾아가서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은희에 대한 자기의 진심을 전달할수 있게 편지를 써달라고 했다.     그의 반성에서 진정성을 보아낸 승덕이는 이틀밤 품을 들여 만장같이 글을 써서 병권에게 주었다. 편지는 이튿날로 은희에게 전달되였다. 남편에 대한 실망과 원망으로 고통속에서 모대기고있는 은희의 심정을 꿰뚫어보기나 한듯 절절한 필치로 쓴 편지는 반성과 용서 그리고 안해에 대한 사랑이 철철 흘러넘쳤다. 편지는 마치 따스한 봄바람처럼 꽁꽁 닫혔던 그녀의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열어 젖혔다. 특히 “바늘이 있는 곳에 실이 있듯이 나한테 당신이 없으면 안된다는걸 절실히 느꼈소. 비록 부족한 남편이지만 버리지 말아주오”라는 구절과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얼굴이 다시는 눈물로 얼룩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소. 사랑하오.”라는 마지막 구절은 련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면서 진한 감동을 주었다.     비록 마병권이 은희를 구박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안해를 잃을가봐 전전긍긍하는 사람한테 나타나는 정신적 우환이지 진심은 아니였다. 그리고 리혼해봤자 두 사람이 다 상처를 입게 되는것은 자명한 일이였다. 마병권한테 다소 부족점이 있기는 하였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닌 이상 숙명이거니 생각하고 살아갈수 밖에 없었다. 자고로 팔자도망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은희는 법원에 제기했던 리혼소송을 철회하고 남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영영 발길을 돌리지 않을줄로만 알았던 은희가 다시 돌아오자 입가진 사람마다 뒤에서 수군덕거렸다. 특히 승덕이가 써준 편지의 내용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였다. 도대체 어떤 감언리설로 은희의 마음을 돌려세웠을가고?     어느날, 은희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민숙이가 찾아와서 마병권의 청탁으로 승덕이가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순간 은희는 깜짝 놀랐다. 신문에 가끔 글을 발표하는 승덕이가 남들의 편지를 대필해준다는 말은 들은적이 있지만 그 당사자가 자기가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사실 승덕이는 글을 잘 썼을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구수하게 잘했다. 그는 밭머리에서 또는 술장소에서, 아무튼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만 하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는데 퍼내도 퍼내도 마를줄 모르는 샘물처럼 끝없이 쏟아져나왔다.《삼국연의》,《수호전》,《서유기》,《안나 까레리나》등 고전소설과 세계명작들을 얼음강판에 표주박 굴리듯 하여 감탄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여느 사람들과 달리 지식이 풍부하고 성숙된 승덕이를 보면서 은희는 은연중 맘속으로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였다. 물론 승덕이도 마을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은근히 자기한테 호감을 나타내는 은희의 속심을 모르는바는 아니였다. 봉이눈의 예쁜 색시가 새물새물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면 심장이 당장 튀여나올듯 쿵쿵 뛰고 야릇한 충동을 느끼군하였다.     은희가 마병권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지 며칠이 지난 어느 해빛찬란한 점심, 승덕이와 은희는 꿈처럼 마을앞 강변에서 서로 만났다. 승덕이는 들에 매여놓았던 소에게 물을 먹이고있었고 은희는 강가에서 토닥토닥 빨래를 하는중이였다. 승덕이가 소에게 물을 다 먹이고나서 자리를 뜨려는데 빨래를 하던 녀인이 주춤 일어섰다. 은희였다. 둘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움찔 놀라 잠간 멍해졌다. 오늘따라 은희는 옅은 도라지꽃색 바탕에 흰색 작은 꽃무늬가 돋친 원피스를 입고있었는데 바지를 입었을 때보다 한결 잘 어울리고 우아하였다. 더우기 잔물결이 해볕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이 한떨기의 도라지꽃을 방불케 하였다.     “누군가 했더니 문이아버지구만요.”     은희가 먼저 웃음을 머금고 아는체했다.     “강변에 웬 선녀가 내렸나 했더니 은희구만, 허허허.”     승덕이는 넉살좋게 은희의 말을 받았다.     “아이, 쑥스럽게… 놀리지 마세요.”     “난 느낌대로 말했을뿐이요.”     “저… 문이아버지한테 할 말이 있어요.”     은희는 얼굴에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지고 새초롬해졌다.     “뜬금없이 할 말이 있다니? 어서 말해보오.”     “듣자니 문이아버지가 저의 남편한데 편지를 써주었다면서요?”     “그랬던가?....”     승덕이가 쑥스러운듯 뒤더수기를 만졌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분이라고 해도 어떻게 남의 부부간의 일까지 간섭할수 있어요?”     은희가 억울하다는듯 말했다.     “아- 그런 일이였구만.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고 남의 딱한 사정을 보고 어찌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하겠소? 사실 결혼이라는건 서로가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결혼은 무덤이라고 하지 않소.”     “무덤이라구요? 호- 그 말이 맞는것 같아요.”     은희는 길게 한숨을 톱았다.     “허지만 그 무덤을 지옥으로 만드냐, 천당으로 만드냐 하는것은 두 사람한테 달린거요. 나는 두 사람이 아기자기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편지를 써준것뿐이니 원망하지 말아주오.”     “아이, 지옥이고 천당이고 저는 몰라요. 후과는 전부 걱정도감인 문이아버지가 책임지세요.”     은희는 짐짓 앵돌아져 고운 눈을 샐죽 빨더니 땅벌처럼 톡 내쏘고는 빨래감을 챙겨가지고 배틀배틀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멀리 사라져가는 은희의 가냘픈 뒤모습을 바라보며 승덕이는 저도 모르게 말할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후로 두 사람은 별로 만나지 못했다. 헌데 오늘저녁 비 내리는 오두막안에서 이렇게 렵기적인 상봉을 하게 될줄이야?     승덕이는 은희의 숨소리가 급촉해짐을 느꼈다. 따라서 승덕의 심장도 이상하게 높뛰기 시작했다. 세상과 동떨진 호젓한 오두막, 녀자의 몸에서 방출되는 “음전기”와 남자의 몸에서 방출되는 “양전기”가 서로 부딪쳐 강한 자기마당을 구축하면서 서서히 “합선”되여가고있었다. 후끈한 열기를 몰고 다가온 은희의 도톰한 입술이 승덕이의 입술과 스스럼없이 겹쳐졌다.두 사람은 칡넝쿨처럼 엉킨채 서로를 애무하였다. 나중에는 은희의 몽실몽실한 젖무덤까지 지긋이 밀착해왔다.     승덕이는 숨이 가쁘고 정신이 아찔해났다. 그는 은희를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온몸이 물 먹은 햇솜처럼 해나른해지면서 도무지 통제불능이였다. 은희의 풍만한 육체를 온몸으로 느끼며 승덕이는 전률했다.     승덕의 목을 껴안았던 은희의 손이 서서히 허리께를 파고 들었다. 순간, 승덕이의 눈앞에 재작년 겨울 산에서 번져지는 나무수레를 몸으로 막아 남편을 구하던 안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였다. 승덕이는 본능적으로 은희를 밀치고 후다닥 일어났다. 그러자 은희가 의아해하면서 승덕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 …”     승덕이가 대답이 없자 은희는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귀밑으로 쓸어넘기며 힘없이 말하였다.     “저도 이러면 나쁜 녀자라는걸 알아요. 허지만 한번쯤 당신의 녀자가 되고싶은걸 어떡해요?”     은희는 자제력을 상실한 자신의 외람된 행위를 반성하면서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묻어온 승덕이에 대한 애모뿐 감정을 토로했다. 그녀는 마침내 오열을 터뜨리며 조용히 어깨를 들먹였다. 야속했다.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는 승덕이가 야속하고 엄연히 남편이 있는 녀자로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자신이 야속했다.     이때 먼곳으로 도망친줄 알았던 소낙비가 다시 굵은 비줄기를 쏟아부으며 나무숲이며 골안을 휩쓸더니 미구에 투닥투닥 오두막을 박살내듯 두드려댔다. 그 기세에 오두막은 삐걱삐걱 몸부림쳤다. 비는 세상의 어지러운것, 추악한것들을 모조리 씻어내리려는듯 갈수록 세차게 퍼붓고 거기에 바람까지 가세하여 성깔을 부렸다. 광분하는 비, 오두막은 비에 울고있었다.     아직도 승덕의 몸에서는 은희의 체취가 살아숨쉬고있었다. 몸부림치는, 사랑에 불타고있는 녀인의 향기에 한껏 취해보고싶었지만 결코 승덕이는 리성을 잃지 않았다.     “솔직히 나도 예쁘고 녀성다운 은희를 가지고싶소. 허지만 내가 은희를 건드리지 않는것은 나한테 생명이상으로 나를 아끼는 안해가 있고 또 나도 그녀를 무척 사랑하기때문이요.”     승덕이는 이렇게 허두를 떼고나서 담배 한대를 피워물더니 평온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송씨가문의 외동자로 태여나서 조실부모한 나는 맘씨 후더운 삼촌네 집에서 자라면서 행운스럽게 현성중학교까지 졸업했소. 그리고 귀향하여 4년만에 농촌문예선전대에서 서씨 성을 가진 처녀를 알게 되였고 마침내 우리는 까치가 우는 마을앞 버드나무아래에서 백년가약을 맺았소.     우리집은 상중농이고 그 처녀네 집은 빈농인데다 아버지가 생산대대의 부기원이였소. 당시는 성분제일론을 부르짖던 때라 처녀네 부모들은 딸을 상중농인데다 량친마저 없는 나한테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소. 하긴 어느 부모인들 금이야옥이야 애지중지 키운 딸이 부나비처럼 불구덩이에 뛰여드는것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소. 하지만 그 처녀의 고집도 말 아홉필이 끌어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딸이 죽는다산다 야단치는 바람에 결국 부모들은 두 손을 들고 말았소.     그후 결혼하여 지금까지 안해는 갖은 고생을 다하였소. 서발막대를 휘둘러도 거칠것 없는 나한테 시집와서 집체의 생산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집짐승을 치고 산부업을 하고… 정말 손이 곰발이 되게 일하였소.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벽돌집도 안해가 피땀으로 일구어놓은것이요. 더욱 잊지 못할것은 재작년 겨울 산에서 나무수레가 번져져 내가 다칠 위험에 처하였을 때 안해가 서슴없이 자기의 몸으로 수레를 떠받쳐 나를 구해준 일이요. 이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체를 다른 사람한테 바칠 때만이 가능한것이요. 한마디로 헌신적인 사랑인거요.”     승덕이는 지금까지 누구한테도 들려준적 없는, 가슴속 갈피갈피에 고이 간직하여 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호- 결국 사랑은 헌신이라는 말씀이네요. 문이엄마가 부러워요.”     은희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세상에 풍파를 겪지 않는 부부란 없소. 은희가 병권이한테 믿음을 주면 그도 헌신적으로 은희를 사랑해줄거요.”     “정말 그럴가요?”     “남자의 마음은 남자가 더 잘 아는 법이요. 병권이가 어리무던해서 남들에게 숙보여 그렇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소. 우직한 사람일수록 진심인거요.”     “하긴 곰처럼 미련한 구석이 있어 그렇지 맘씨가 착하고 부지런해요.”     “허허허, 언제는 나무라더니…”     “피, 문이아버지야말로 미련하고 우직한 사람이예요. 나만 경박한 녀자로 만들어놓구선… 바보!”     은희는 주먹으로 승덕의 어깨를 콕 쥐여박았다.     “인젠 비가 약해진것 같으니 그물터로 가보기오.”     승덕이는 주섬주섬 비옷을 걸치고 밖에 나섰다. 그러자 옷매무시를 바로잡은 은희도 따라 나섰다. 둘은 어둠속에서 말없이 각기 먼곳을 응시하였다.     “어이- 어이-”     홀연 바람을 타고 저쪽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권이가 은희를 찾는것 같구만.”     승덕이가 소리나는 쪽을 보며 말했다.     “그런것 같네요.”     은희도 소리나는 쪽을 주시하며 대답했다.     “병권이가 이쪽으로 오기전에 어서 가보오.”     “네, 알겠어요.”     은희는 비옷을 여미더니 어둠속을 뚫고 걸어갔다. 그녀는 몇걸음 못가서 다시 몸을 돌려 승덕이를 바라보았다. 비록 어둠속이였지만 승덕이는 애수에 젖은 그녀의 눈을 방불히 보는것만 같았다.     “어이- 어이-”     병권이가 은희를 찾는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어이- 어이-”     은희도 목소리를 가다듬어 화답하였다.     승덕이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은희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새벽 네시쯤 되여 비도 완전히 끊고 날도 휘붐히 밝았다. 몽환의 세계인듯 남쪽으로부터 기여오른 우유빛 안개가 서서히 산봉우리를 뒤덮으며 밀물처럼 흘러내려와 그림같은 운무의 바다를 펼쳤다. 이것은 해양성기후가 연출하는 연해산간지대의 특이한 풍경이였다.     인젠 그물을 거둘때가 되였다 승덕이는 초조와 기대가 엇갈리는 심정으로 그물을 하나하나 털었다. 어떤 그물에서는 기름개구리 20여마리가 나왔고 어떤 그물에서는 네댓마리가 나왔다. 온밤 비속을 헤매며 골안을 누빈 보람으로 다섯개의 그물에서 80여마리의 기름개구리를 포획하였다.     “허허, 괜찮은데…”     밤을 패운 탓으로 초췌해진 승덕의 얼굴에는 느긋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기름개구리와 그물이 든 배낭을 메고 산을 내리는 승덕이는 몸은 비록 피곤했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웠다. 그는 골어구에서 은희를 만났는데 남편 병권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있었다. 승덕이는 은희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잠을 설쳐 해쓱해진 그녀의 얼굴에 모름지기 처연한 빛이 감돌고있음을 보아냈다. 그 눈빛의 뜻을 잘 알고있는 승덕이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보니 세상 “바보”는 자기같았다.     朱德振  电话:1384331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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