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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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
2008년 11월 22일 18시 16분  조회:1039  추천:30  작성자: 최룡관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


                


   개혁개방이후 우리는 시의 제1차 혁명을 하였다. 제1차 혁명에서 우리는 맹목적인 가송의 시대로부터 자아표현의 시대로 전입하여 류례없던 풍성한 성취를 획득하였다. 당년의 중청년시인들이 제1차 시혁명의 생력군이였고 로일대시인들이 그들을 받쳐주었고 많은 신인들이 자라났다. 비평가들도 적극적으로 시인들을 밀어주어 시의 제1차 혁명에서 기꺼운 성과를 획득하였다.

   우리 시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왔기에 제1차 혁명이란 말을 하게 되는가? 시의 제2차 혁명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필자의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하려 한다.

   시의 제1차 혁명에서 우리는 지령적인 시의 제재를 쓰던데로부터 시인자신이  쓰고싶어하는 시의 제재를 다루었고, 빈소리와 구호를 란발하던 시로부터 이미지를 살리는 시로 전의발전하였고, 문법적이고 론리적이고 상습적인 시언어의 질곡을 제치고 언어의 자유로운 결합을 추진하였고, 단일한 시적주제를 추구하던데로부터 다양한 주제를 추구하는데로 발전하였고, 직설시로부터 상징시로의 이행을 기본상 완성하였고, 단일한 풍격으로부터 여러 가지 다양한 풍격을 추구하는데로 전의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가 시로 되여 비교적 풍성한 성과를 올리였다.

   이러한 성과는 20세기까지에서 얻은 우리의 성과였다. 우리는 지금 21세기 초반에 살고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시의 탐구가 아직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제1차 시혁명에서 얻은 성취에 만족하여 더는 새로운 시적탐구를 하지 않고 있는 시인들이 적지 않은것 같다. 이런 시인들은 자기가 이룩한 성과에  만족하고 있으며 다른 시인들이 자기를 초월하는데 대하여 알게 모르게 저촉정서가 있다. 문하혁명까지의 시가 한때 시혁신의 담벽이 되어 당년의 청년시인들이 그것을 젖히기 위하여 일떠났고 그것을 젖히고 새로운 시를 많이 창출해 내였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제1차 혁명이였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1차 시혁명에서 가장 생기발랄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던 시인들은 김정호, 석화, 리임원, 김학송, 리성비 등 시인들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둔덕우에 세워놓은 금자탑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짓고 있다. 그들은 제1차 시혁명에서의 네 마리 척후병들이였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들은 지금 답보상태에 처하고있는 감이 든다. 문화혁명전의 시가 그들의 장벽이 되었다면 오늘은 그들의 시가 새로운 장벽으로 나서고있다. 이것이 오늘의 연변시단의 상황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여야 하며 이 장벽을 젖혀야 한다. 이들의 시보다 더 생동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시들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제2차 시혁명의 길이라면 길이겠다.

   제2차 시혁명을 통하여 우리 시는 철저하게 연변이라는 울타리를 헤치고 나와 모국인 한국의 선진적인 시인들과 어깨를 겨룰만한 시인들이 나와야 한다. 현상태는 연변이 한국을 모방하고 연변의 시인들이 네 마리 척후병들을 따라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건 위험한 신호이다. 새로운 신생대가 나와야 한다. 네 마리 척후병보다 다른  새로운 척후병들이 나와야 새로운 시의 길을 개척할수 있다. 네 마리  척후병들이 제2차 시혁명에서 그냥 척후병이 되자면 이제까지의 자신을 이겨야 하며 새로운 나로 다시 태여나야 한다. 그것은 너무나 간고한 작업이여서 그들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는것은 어찌보면 무리이기도 하다.

   그들은 80년대의 청출어람이였다. 21세기에 와서는 그들을 바탕으로 하는 청출어람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이와는 관계없고 세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필자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는다. 그들의 아래세대에 희망을 건다. 그들이 누구인가? 필자의 졸견으로 보면 한영남, 김승종, 김영건,  김현순, 김춘택, 김경희, 심예란, 심명주, 박춘월, 허옥진, 허련화 등 시인들중에서  덩지 큰 시인이 나올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누가 되는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 모든 시인들이 아니고 다른 새로운 시인일수도 있다. 그들은 김정호의 <<추억>>을 넘어서야 하며, 석화의 <<나의 장례식>>을 넘어야 하며, 리임원의 <<바람에 길을 물어...>>를 넘어야 하며, 김학송의 <<예감의 새>>를 넘어야 하며, 리성비의 <<백두산>>을 넘어야 한다.

    이 네개의 산을 넘자면 시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리하여야 한다. 그들과 같은 관점으로 시를 생각하면 산을 오르다가 미끌어떨어진다. 시적사유가 그들과 달라야 한다. 시적언어가 그들과 달라야 한다. 시적제재가 그들과 달라야 한다. 그들보다 더 넓고 깊게 사회를 인식하고 시대를 해부하고 시대속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파고 들어가 새로운것을 발견하여야 한다.  그것을 다시 시적예술로 재가공하여 황금량이 있는 시를 써내야 한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제2차 시혁명은 이미 시작되였다. 누가 새로운 눈부신 장벽을 세울것인가! 장벽은 새로운 탐구자에게 속할것이며 새로운 실험자에게 속할것이다.     

                                                        



우리의 거울을 옮겨야

    ㅡ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2)


                  


  문학이 정치의 종속물이였던 시대는 개혁개방과 함께 지나갔다. 이제 문학은 어떤 부속물이 아니며 도구가 아니며 독립체이다. 순수문학의 발전은 정치와 사회의 제약을 받으면서도 받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시대의 순수문학이건 그에 걸맞는 새로운 문학사조가 탄생하여 문학을 리드하는것이지 그 시대의 정치가 문학을 리드하는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정치의 풍토는 문학을 문학사조가 리드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로 말하면 지나간 시대이다.

   해방후 우리가 걸어온 시대를 보면 협의적인 의미에서 두가지 시대를 지나 세번쩨 시대에로 왔다고 할수 있다. 첫번째 시대는  문화혁명까지 시대로서 문학이 정치의 지령에 복종하는 공구시대였고, 두번째 시대는 개혁개방시대로서 문학이 정치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시대였고, 세번째 시대는  상품생산의 거족적인 범란과 함께 문학이 정치의 제약을 받지 않거나 미약하게 받는 시대 즉 문학이 진정으로 독립하는 시대라고 할수 있다. 문학창작은 전례없이 자유로와지고 활발해지였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들어옴에 따라 우리의 문학도 현대문학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대문학은 우리에게 망각되였던 문학이였다. 정치종속물이였던 우리 문학은 현대문학과 장벽을 쌓았고 그것을 수용할수 없었다. 제1차 시혁명에서 우리 시는 현대시의 상징을 초보적으로 받아들여 성과를 올리였다. 사실 상징은 중국에 없었던것도 아니였다. 시가 심상으로 씌여야 한다는것은 중국고전이였다. 그런데 정치종속물로서의 우리 시는 심상을 버리고 전통을 버리였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양사람들이 이미지라는 새로운 기치를 들고 우리 전통인 심상을 너무 현란하게 발전시키였다. 시의 제1차 혁명에서 우리는 이미지라는 한국의 시를 받아들여 우리 시를 초보적으로 상징의 궤도에로 끌어 올리였다. 상징수법으로 하여 생긴 이미지는 심상으로서 사실은 우리의것이였다. 서양에서는 이 상징이라는 류파가 나와 여덟신선이 바다를 넘는 다채로운 활극을 공연하면서 현대시를 구축하였다.

   제2차 시혁명에서 우리도 여덟신선처럼 바다를 건너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한국을 거울로 삼았는데 이 거울을 옮겨야 한다. 한국의 현대시는 서양의 거울을 보고 쓴것이다. 우리의 거울은 서양으로 가야한다. 서양의 거울을 직접보면서 한국과 겨루어야 한다. 서양의 문학은 세계문학의 주류이다. 이 주류를 따라잡는것이 제 2차 시혁명이라고 필자는 말하고싶다. 주류에서 여러 가지 분파가 있는데 필자가 보건대는 의식의 흐름과 초현실주의시를 받아들여야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여야 함도 당연한 일인것 같다. 당신이 어떠한 제재의 시를 쓰는가와는 관계 없이 현대시의 최고봉을 이루었던 이러한 예술수법을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 체질화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제는 파편문체도 들여올 때가 되었다. 파편문체는 이미지의 개성을 가강하고 립체성를 가강하고 흔상성을 가강하는 면에서 불가결의 요소가 아닐가 하는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 시와 표현이 다른 모든 수법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적인것일수록 민족적인것일수록 세계적이라는 협애한 사유의 울타리에서 뛰쳐나가 우리가 써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의 모식을 실험하고 모색하고 탐구하여야 한다. 시험해보다가 나쁘면 돌아서면 되는것이다. 실천해 보아야 한다. 남의 실천을 막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나쁘오 저렇게 나쁘오 하고 비평가들은 랭수를 끼얹지 말고 편집부는 실천자들에게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제2차 시혁명에서 류파가 형성되는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 시는 너무 한곳에 모여 오구작작인다. 시인마다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시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지난날에 김파시인은 립체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박화시인은 주지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남영전 시인은 토템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정몽호시인은 상징시라는 기발을 들었고, 조광명시인은 선시라는 기발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성과를 올리였는데 현시점에서 보면 남영전시인이 따낸 성과가 제일 대단하다. 지난 3월 28일 중국의 저명한 시비평가 쎄맨은 남영전시인을 <<조선족의 아들이다. 더욱히는 중화민족의 아들이다>>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제2차 시혁명에서는 새로운 남영전이 나와야 하며 남영전을 초과하는 시인이 배출되기를 바라는것도 희망사항이다. 시대는 발전하고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제2차 시혁명에 대한 절박감과 사명감을 가지는 시인이면 성공하는 시인으로 될것이다.



 새로운 제재의 개발을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3)


    


    제2차 시혁명에서 새로운 시적제재를 다루는 문제가 나서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의 상품시대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이 박투를 하고있는 시대이다. 과학만능의 시대, 금전만능의 시대, 각종 비리만능의 시대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로하여 빚어지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많고도 많다.

   시인은 이러한것을 주시하지만 이러한 것을 찬송하는 찬송가가 아니다. 시인은 요원한 인류의 리상를 생각하고 인류의 각도에서 력사에 의하여 파묻힌 인간성을 파내여 밝게 닦아서 빛을 뿌리게 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시인이 말하는것은 우주의 섭리이나 인성이지 어느 집단이나 어는 민족이나, 어느 국가의 한시기를 위하여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천지인화(天地人화)나, 인본선 (人本善), 자연의 섭리 같은것을 새로운 이미지로써 새롭게 해석해 보는 작업이다. 시대의 국한성을 받으면서도 받지 않는것이 시인이다. 모종의미에서 말하면 당시대의 거역자가 우수한 시인이였다는것을 력사는 증명하고 있다. 굴원도 그랬고, 두보도 그랬고, 리백도 그랬고, 곽말약도 전기에는 그랬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오늘의 정치를  반대하여 시를 쓰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늘의 시대에 대한 종교적인 찬송가를 금하고 영원성을 가지는 시의 제재를 다루라는 말이다. 남영전시인의 도템시가 그 보기의 하나라겠다. 그의 시적제재는 원시사회의 부락이나 씨족의 혈연관계나 친속관계로 되어있던 사물들을 시의 제재로 삼아 현대의식으로 새롭게 노래하였다. 시인은 그 노래로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였다. 남영전시인은 새로운 제재발굴로 시적제재의 새로운 추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있다고 필자는 인정한다. 이 제재는 민족을 초월하고 국가를 초월하고 인류적인 각도에서 다루어진것이라는데 연구가치가 큰 것이다. 제2차 시혁명에서 어느 시인이 새롭게 이런 제재를 발굴하면 꼭 성공하리하 믿는다.

   지금 우리의 시적제재들은 아직까지도 농경문화의 울타리를 벗어못난것들이 많다. 현대의식과 현대시수법이 침투되지 않고 일상적인 사유로 고향이요, 진달래요, 산이요, 메주요, 매돌이요, 항아리이요, 초가집이요 하면서 어떤 현상의 라렬식으로 시를 쓰는 경향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다룬 시들은 너무 단순하여 깊이가 없고 흔상가치가 없다. 남들이 보고 그저 그렇구나 하는 시들은 모두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시들이다. 감정을 생각나는대로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발설하여 시의 맛을 잃고있는것이다.

   조성일선생이 언젠가 노래하던 시로부터 생각하게 하는 시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던 기억이 있다. 이건 만번 지당한 말씀이다. 생각하게 한다는것은 시를 본다음 사고하게 하고 상상하게 하고 환상하게 하는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현대시는 어떠한것에 대한 단일한 긍정보다 어떠한것에 대한 새로운 다각적인 사색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것은 시적제재를 실존적으로 다루는가 아니면 상상적으로 다루느냐와 관계가 있다. 돌을 돌로만 다룰것이 아니라 돌을 물이나 불과 같은 이질적인 새로운것으로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이 노래하던 시로부터 생각하는 시에로 전의를 하게 되고, 반영으로부터 표현에로의 전의를 하게 된다.

   시는 오늘의 현실을 위하여 나팔을 부는것이 아니라 미래의 지향을 위하여 나팔을 분다. 오늘도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미래는 더욱 불확실하다. 자연의 비밀은 끝이 없이 많으며 인간의 심리는 끊임없이 운동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명확하지 않다. 깊은 물은 바닥이 보이지 않고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고기가 많이 논다. 우리 시는 돌돌 흘러가는 시내물이 될것이 아니라 시퍼렇게 고여서 고기들이 놀수 있는 깊은 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시에 앙금된 황금이 있게 된다. 상상과 환상으로 충만된 깊은 물 --시를 쓴다는것은 바로 이런 깊은 물을 만드는 일이다.



대담하게 순심미가치를  추구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4)

                


   력래로 시에 공능에는  순심미공능, 오락공능, 교유공능, 인식공능, 실용공능 등 다섯가지가 있었다. 이 다섯가지 공능은 서로 침투되면서 대립도 되고 통일도 된다. 그러나 어느 공능이 주도적지위를 차지하고 우세를 차지하는가 하는것은 그 시대의 시의 발전상황에 의하여 결정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현대시가 나오면서부터 다섯가지 공능중에서 심미공능이 다른 공능보다 우세를 차지하였다. 이 우세는 지금까지 그냥 연장되여 오고있다. 해방후부터 문화혁명까지 우리 시는 실용공능의 울타리속에 갇혀있었다. 시가 시로 된것이 아니라 정치도구로 전락되었다. 제1차 시혁명에서 우리는 초보적으로  도구론을 짓부셨다. 왜 초보적이라고 하는가? 아직도 시의 실용공능을 주장하는 시인이나 비평가가 너무 많으며 우세일 정도이다.

  중국의 <<세계명시흔상사전>>(1990년 북경대학출판사. 15쪽)을 편찬한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순심미공능을 강조하는것은 20세기이래의 시가리론의 가장 돌출한 점이다. 이 리론을 강조하는것을 기초로 하여 건립된 시가리론이 조수처럼 밀려왔다. 우미주의, 상징주의 , 형식주의, 신비평가, 심상(意象)파 등은 모두 이 방면의 대표이다. 이 리론을 강조하는것은 시가 형식의 여러 인소의 고찰과 리용에 치우치는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종 시본체론으로서 시가내용의 여러 인소에 대한 중시이며, 외부세계와 련계시키는 그러한 시가리론에  대한 반발이다>> 필자는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현대시는 순심미공능을 중시하며 돌출하게 내세운다. 시의 목적은 시이지 시밖에 다른 목적이 없다. 순심미공능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오락공능이나 교유공능이나 인식공능이나 실용공능들이 보조적으로 따라서는것이다. 또 어느 공능이나 기어코 따라서야 한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다.

   제2차 시혁명에서 우리는 순심미가치를 산생하는 시를 많이 써야 한다. 사실 우리에게 이러한 시들이 없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자가 적으며 질이 낮다. 시인들의 인식이 깊지 못하고 추구가 깊지 못하고 창작되여 나오는 시의 질이 높은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고있다. 우리는 현대시의 여러 가지 장치를 알고 시를 창작할 때 써먹을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루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의 시를 볼 때에도 우렬을 가릴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시라하여도 순심미공능을 위하여 쓴 시가 매우적다는것을 알고 통째로 삼키지 말고 우리에게 필요한 영향만 섭취하여야 한다.

   시는 시인의 심미를 어떤 표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모를가봐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근심한다는 그 자체가 남에게 리용당하는것이다. 시인은 남에게 리용당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을 모른다고 시인자신의 심미관을 표현한 표상을 어떻게  어느 사람이나 다 알수 있으랴. 다 알면 그것은 당신의 심미관인것이 아니라 남의 심미관이거나 아류에 물젖은 심미관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표상이란 이미지이다. 그러기 때문에 시는 시인의 주관적인 사유의 산물이지 어떤 무리의 공동작업의 산물이 아니다.

   근대시와 현대시의 구별이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구별은 시가 표현으로 씌여졌는가 아니면 모방으로 씌여졌는가이고,  다음으로는 시의 공능이 순심미공능을 추구하는가 아니면 실용공능을 추구하는 가이다. 실용공능을 위하여 모방으로 반영한 시는 현대에 존재할뿐이지 현대시라는 지칭을 달수는 없는 근대시이다. 순심미공능을 위하여 표현의 수법으로 씌여졌을 때는 근대시라는 지칭을 달수 없는 현대시이다. 제2차 시혁명의 목적은 근대시를 잘 쓰자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현대시를 잘 쓰자는데 있다.

  

  충격적인 이미지작업을

       -제2차 시혁명을 위하여(5)

                 

  

   충격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것은 제2차 시혁명의 성패를 결정하는 고리이다. 새로운 형의 이미지를 창출하는가 못하는가에 의하여 제2차 시혁명이 성패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형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시인이 나오면 우리는 승리하고 그런 시인이 나오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하게 된다.

   시적으로 말할 때 이미지와 심상(意象)은 같은 함의이다. 심상은 중국시가의 핵심적인 전통이다. 시에서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는것은 실제는 전통을 버리는것이다. 20세기에 와서 현대시는 심상을 화려하게 발전시켰다. 제2차 시혁명에서 우리는 이미지를 화려하게 발전시켜야 할것 같다. 발전시켜야 전통을 계승하는것이 된다. 발전이 없는 전통은 죽은 전통이다.

   주요한 문제는 상상과 언어를 해결하는것이라겠다. 어떻게 상상하고 어떤 언어를 쓰는가에 의하여 이미지가 충격적이 되는가 안 되는가가 결정된다고 필자는 인정한다.

   리처즈는 이렇게 말한바 있다.<<상상력을 적용하는 통합적 마술적 힘은 ...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균형) 혹은 화해로 되어 나타난다.>> 김춘수는 상상이란 <<짝>>을 찾는것이라고 하였다. 조화되지 않고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사물을 짝으로 찾아서 밸런스하는것이 새로운 이미지, 충격적인 이미지라고 말하고싶다. 무엇이 조화되지 않고 반대되는 성질의 사물인가? 물과 불, 돼지와 돌, 사람과 나무, 산과 술, 눈썹과 잠자리.어머니와 벽돌... 일상적인 사유로 볼 때 이러한 사물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것이다. 시인은 이러한것들을 짝을 묶어주고 밸런스하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묘법이라면 묘법이겠다. <<상반되는 성질이나 불조화한 성질의 밸런스>>를 하자면 시인이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사유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강압적인 조합을 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실생활에서 물은 불이다 하고 짝을 맞추면 억지 공사이지만 시에서 이렇게 하는것은 예술이다. 강압조합은 현대시의 특점이며 기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압조합을 떠나서 새로운 이미지, 충격적인 이미지가 생성되려니 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시의 이미지는 일상을 떠나서 공개념을 떠나서 공동적인 감각을 떠나서 새로울수록 좋고 기이할수록 좋고 환상적일수록 좋다. 짝을 찾는데는 금구가 없고 국경선이 없다.

   현대시 사유는 기성의 론리와 개념으로 해석할수 없는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속에서 산생하는 새로운 의식이다. 이 새로운 의식은 먼지나 때가 없는 정갈한 의식이다. 그 의식은 령(0)의 세계이며  령(灵)의 분출이다. 이런 의식에 기대여 이미지가 창출되였을 때라야만이 비로소 충격적인 이미지가 될 것이다. 이미지라는것은 제6감각 마음의 감각으로 만드는 것이며, 제3의 눈과 제 3의 귀로 들었을 떼라야 산생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이 듣지 못한 소리를 듣고 남들이 보지 못한 사물을 보아냈을 때만이 산생되는 언어로 된 그림이다. 그래서 파운트는 일생에서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것을 목표로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이미지 창출은 언어가 따라서야 한다. 시의 언어에서 나무라고 쓰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일상적인 나무를 가리키는것이 아니다. 시의 언어는 원래의 상징성을 떠나서 현대시의 재료로 전환된다. 기성문법의 속박을 받는 언어가 아니다.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는 언어이다. 현대시인은 언어제련사이다. 언어의 광산에서 시어를 제련해 낸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이런 새로운 언어는 시의 집을 짓는데 나무나 흙이나 세면트로 쓰이게 된다. 그것은 시인의 강압적언어조합의 산물이다. 그것은 일상적으로 문법적으로 론리적으로 어울려서는 아니 되는 언어들의 새로운 련계이며 새로운 배렬이며 새로운 표현이다.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강압조합과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기 위한 강압조합은 현대시의 두자루의 보검이다.

   제2차 시혁명에 대한 말을 하자면 아직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주요한 것은 기본상 말하였다고 생각되여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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