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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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깎이우며', 외 17수
2021년 10월 11일 09시 55분  조회:15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머리를 깎이우며', 외 17수

한영남 



 

머리가 더부룩했어
목덜미를 자꾸 간질이고
귀를 참월하게 덮어버리고
머리가 불편할 정도로 더부룩했어
미장원에 갔지
이쁘장한 아가씨가 물었어
어떻게 잘라드릴가요
뭐 아무렇게나 보기 좋게 두루
횡설수설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 말들이 잘려나갔어
가볍게 한숨 쉬고
잠자코 들이대고 있었지
근데 말이야
머리를 잘리우는데
아버지 머리카락이 날리겠지
검지는 않고 완전 멋진 은발도 아닌
그냥 희부우연 그런 회색빛 머리카락들이
맥없이 무릎에 툭툭 떨어지겠지
떨어졌다가 바닥에 뒹굴겠지
평생 스스로 머리 깎으신
내 아버지 허옇게 녹슨 머리카락

 

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
-레핀과 그의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에 부쳐
 

사품치는 송화강기슭에서
바이올린의 새된 비명소리도
첼로의 배밑바닥 깊은 흐느낌도
파도의 날카로운 호령에 잠재워졌으니
이제
트럼벳은 불지 않기로 했다
아름다운 미풍에 하느작이는 태양도와
장엄한 파도파도파도파도의 송화강이 그만
서로 사타구니를 틀어박고 누워버린 이 기슭에서
우리는 수채화의 아련한 빛이거나
수묵화의 회색빛 살결은 찾지 말아야 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고 해도
저렇게 하염없는 태양도를 건너다보며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의
그 넉넉하면서도 시커먼
근육의 고함소리에 귀를 맡겨버려야 한다
글쎄 와봐라 파도여
어디 덤벼라 절망이여
아무래도 트럼벳은 불지 않는 것이 좋겠지
드럼으로도 부셔버리지 못하는 이 악장
외로운 하모니카는
<모스크바 교외의 밤>이나 흥얼거리라지
트럼벳은
전설의 트럼벳은
불지 말아야 한다

 

춘삼월
 

춘삼월
따슨 볕 그립다

아직은 긴 그림자
손 내밀면 차거운 아지랑이

달래만치나 싱싱하고
개나리만치나 멀리서 캐득거리는

숨소리가 건방지기 시작한다
아직은 강도 산도 몸이 풀리지 않았다

춘삼월
그대 품을 느낀다

 

 

살아가는 이야기
 

한잔의 술과
한개비의 담배가
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인가
세월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갑갑답답함을 새기기에는
우리의 술이
우리의 담배가
너무 무색하고 있거늘
한잔의 술과
한개비의 담배가
과연 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인가
황금의 웃음과는 너무 거리가 먼 우리들의 일상
부스러진 북어조각만치나
짓뭉개진 시래기먼지만치나
으깨여진 벌레먹은 사과조각만치나
값도 없고 쓰잘 데도 없는 우리들의 찝찔한 일상
소금만치 짜도 소금만치 쓸모는 없는 우리들의 못난 살이
초라한 행색을 서로 비웃으며
우리들이야
우리들에게야
딱 안성맞춤인 이
한잔의 술과
한개비의 담배가
그렇게도 사치더란 말이냐

 

점적주사를 맞으며
 

 

저 한 방울 링거가
내 몸통속에 들어가서
생명으로 되여줄 수 있을가

아픔의 독소를 몰아내고
건실한 세포로 자리잡을 수 있을가

기침을 발로 차버리고
책상다리를 하는데
힘이 되여줄 수 있을가

한 방울씩 무심한듯 흘러내리는 링거에
생명의 의미를 공손하게 부탁해본다

 

 

어느 날 그 친구한테 발각된다면
 

살다가 살아가다가 혹시
어느 길모퉁이에서 그 친구한테 발각된다면
어디서 무얼 했노라 주절거리지 않으리라
살아온 그 굽이굽이 아프던 사연들을 
굳이 떠들어 아픔을 나누지는 않으리라
만약 그래도 자꾸 궁금해한다면
그 친구와 서로 말없이 마주바라보리라
분명 그 친구한테도 깊이 갈앉은 슬픈 사연이
눈물처럼 두런거리리라
거기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에 
공감은 하더라도 값싼 눈물은 흘리지 않으리라
혹시 그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말인가를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어깨를 내여주리라
그러나 서뿔리 말은 하지 않으리
시시한 위안따위로 
그 친구의 깊은 아픔을 달래줄 아무도 
이 세상에는 없으니
그 친구와 살아온 자초지종을 수런거리지는 않으리
집이나 직장같은것도 주절거리지 않으리
그저 그 맑은 눈동자를 찬히 들여다보다가 
힘주어 손을 꾹 쥐여주고는 돌아서리라
한참을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걷다가 
그 친구가 이젠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거든
얼른 뒤를 살펴보고 
그리고 눈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리라
우리는 누구도 서로의 아픔앞에서는 
울 권리도 없으니
혹시 길가에서 어느날 그 친구한테 발각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그 친구한테 계좌번호 따위도 말해주지 않으리
그저 가장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다가
그 친구의 행복만을 속으로 빌며 돌아서리
그냥 그대로 돌아서서 입술을 깨물리

 


우리가 강아지만할 때

 

어둠을 밀어내며
빨다가 뱉은듯 말숙한 달이
동녘 저쯤 웃는듯 마는듯 걸리면
케이블방송에 실려 커다란 함지를 인
엄마가 돌아오셨다
가시에 스치고 나무그루에 걸리며
볼품없이 해진 엄마의 손에서
밤새도록 우정금, 고비, 닥지싹, 민들레들이
여러 자름자름한 그릇들에 갈려 담기곤 했다
엄마의 때묻은 얼굴이 무척이나 안타까운듯
초불은 더욱 작아지고
먼데 다듬이소리가 한층 높아갔다
-뒤집 분이가 시집갈 준비를 하나보다
엄마의 목소리는 거의 잠겨있었지만
우리의 귀에는 언제든 또렷이 들려왔다
아직 우리가 강아지만할 때였다

 

 

골목이 젖었다

 

P거리를 너무 급하지 않게 지나
L거리에서 약 백미터쯤 건숭건숭 걷다가
오른쪽으로 픽 틀어져 들어가면
허름한 골목 하나가 나진다
어디서라도 쉽게 볼수 있는
흔하디흔한 골목
평소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서
늘 한적하기만 했던 골목
언젠가 계집애 하나가
강아지에게 쫓겨
내처 들어오다가 다행히 이 골목 젊은이에게
구원된적도 있는 골목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찾아주는 사람도 적지만
어쩌다가 고만고만한 사연들이 모여
매일처럼 시름겨운 이야기를 두런거릴것 같은
P거리를 너무 급하지 않게 지나
L거리에서 약 백미터쯤 건숭건숭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바로 나지는
허름한 골목 하나
오늘 비도 오지 않았는데 그만
흠뻑 젖어버렸다

젖은 골목에
사람 찾는 전단지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뼉다구인생

 

알맞춤하게 넣어진 물과
알맞춤하게 넣어진 우거지와
알맞춤하게 풀어진 된장과
비비고 문대고 제법 들썽이며
국물 들쓴채
며칠이고 우려지다

마침내 어느 오전나절
어느 기름진 손에 의해
멍멍이의 심심풀이로
그 발치에 던져지다

굽이진 곳이며
소용돌이친 곳이며
깊숙이 속으로 패인 구멍까지
얄팍하고 물많은 개의 혀에
이리저리 구석구석 핥이우며
온몸이 흐느적이다

예전에는
기름과 살과 가죽에 싸여
싱싱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뼉다구는
드디여 개에게조차 버려지다

단즙도 없고
살부스러기도 남지 않고
냄새마저 다 빨리운채
나무토막보다 더 담담하게
하얀 속살로 남은
뼉다구

뼉다구에게도 달리던 꿈은 있었다
뼉다구에게도 날고싶던 꿈이 있었다
뼉다구에게도 무지개같은 찬란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버려져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는
뼉다구
뼉다구는 긴 세월 
다시 태여날 꿈을 재워야 한다
다시 태여나 어느 살이 되고 피가 될
비상의 꿈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지금 뼉다구는 누워있다
발길에 툭툭 차이며
뼉다구는 이 아침 
검은 대지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본다

 


사월사랑

 

바람이 불고
꽃은 아직 피지도 못했다
사월인데 잔디는 미처 깨나지 못했고
달래만 양지쪽 언덕밑에서 픽픽 웃고있었다

사월이 줄줄 흐르는데
사정없이 눈발 날리고
어느때보다 춥고 추운
오므리고 사는 춘사월

사월이고
달래알이 툭툭 굵어지고
땅속 잔디뿌리들이 끝도 없이 길어지고
모질이도 기다려지는 화사한 봄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살이

 

평생을 살아야겠는데 그 하루 비가 내리고
내 평생이 하루인 것을 하늘은 몰라버려라

다음에 태여나면 
꿀벌처럼 붕붕거리고
나비처럼 팔랑거리고
제비처럼 멋져보리라

다음 생에도 하루살이로 태여나면
그날은 부디 해가 화사하게 웃어주어
그 하루 부서지게 사랑하다 가리라

평생을 살아야겠는데 이 하루 비가 내리고
내 평생이 하루라는 걸 하늘은 잊어버려라

 

 

물덩이들의 반란

 

물들이 
물덩이들이
왈칵왈칵 내 목구멍을 헤집는다
내 목의 겨불내를 닦아주기 위해서
얼마쯤 머뭇거리거나 서성거려주어야 하는데
녀석들은 추호의 주저도 없이 
살겠다는듯이 내 위장속으로 란폭하게 쓸려들어간다
내 목구멍을 한껏 벌려버리고는
잘 줴기진 물덩이들이
제법 단단해가지고
한사코 아우성치며 빨리듯 들어간다
물은 
물들은 이런것이 아니겠는데
부드러운 물들이여야 하는데
물덩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힘을 자랑한다

분명 나를 아프게 한 물덩이들이
사랑스럽다

 

 

화장실 투항병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나는 투항병이 된다
공손히 앉아서
정신을 가다듬고
배설물의 순조로운 배출을
열심히 기도한다
먹을것 제대로 먹은 날들은
요란한 소리로 시끄럽고
먹을것 제대로 먹지 못한 날들은
잘 나가주지 않아서
입으로 소리를 함부로 낸다
내 소화계통은 왜 나를 
늘 이토록 비참하게 만드는걸가
들쑥날쑥으로 
변기만을 번거롭게 하는 나는
언제 한번 
정식을 대접해보지 못한 죄때문에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종이말이를 백기처럼 들고
투항병이 된다

 

 

바다는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는다

 

살다가
지치고 힘 빠지고 맥없을 때
바다를 찾는다
언제라도 너넘실 너넘실 술렁이는 바다
저만치서부터 파도손 쳐들고 반겨주는 바다
멸치 고등어 고래 새우 미역 다시마...들을 다 품어주고도
오히려 넉넉한 바다
바다가에 앉아 바다의 휘파람소리 들으면
바다는 언제나처럼 내게 다가와
그동안 이야기들을 수런거린다
인간세상에서는
서로 만나면 어디서 왔냐고 왜 왔냐고
언제 갈거냐까지 체크하지만
바다는 언제 봐도
내게 어디서 왔냐조차도 묻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에 가면 나는
편안한 바다에 누워
바다를 짊어진채 하늘에 풍덩 뛰여든다

 

 

그건 내 눈물이다 마시지 마라

 

마시지 마라
마시지 마라
그건 내 눈물이다

시원하다거나 달콤하다거나 구수하다거나
그런 표현들과는 제법 거리가 먼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웃음이 나오도록 그렇게
지지리 촌스럽고 투박하고 바보스러운

행여 마음 여린 사람은
안스러워 돌아설것만 같은 

그러나 그것은
내 초라니 인생을 달인 내 눈물

그래도 마시지 마라
그건 별 쓰잘데없는 내 눈물이다

 

 

마른 눈물 한접시

 

어느날 흐르는 눈물이 말라
내 앞에 놓인 접시에도
소금 한줌 놓인다면
아직은 짠맛 모르는 누군가에게 드리겠습니다
상처의 이름이 아닌
사랑의 이름이 아닌
세월의 이름으로 드리겠습니다
살아가면서 바보처럼 울지 아니하도록 
아프지 아니하도록
기도하며
내 앞에 놓인 소금 한접시
내 눈물이 말라비틀어진 소금 한접시

누군가에게 그냥 소금으로 남겠습니다

 

 

내일에 눈길 걸어두고

 

세월 눅눅한데
나 혼자만 아프다고 생각했다

깨면 꿈인것을

씹어삼킬건
아픔뿐 아닌것을

멀리 하늘에 눈길 걸어두고
헛기침 한번쯤 하며

래일은 어떤 하루일까

기다리지 말아야지
망설이지 말아야지

바람 서늘한데
나 혼자만 기도한다고 슬퍼했다

 


너의 고통에 소금을 뿌리면, 그러면 용서가 될까

 

기억한다는 것은
용서할수 없다는 것

행여
너의 고통에 소금을 뿌리면
그러면 용서가 될까

긴 눈물이 휴지말이처럼
끝없이 풀려나와도
아픔은 쉽게 가셔지지 않는 것

지금, 용서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으리
기억이 남아있는 한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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