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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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조선말기 사회 진상은 어떠했는가
2013년 03월 18일 07시 19분  조회:5062  추천:16  작성자: 김문학


김문학《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제3장역사란 何오

2. 조선말기 사회 진상은 어떠했는가

1910년 8월 22일 한국병합으로 조선은 망국한다. 물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이미 실질적으로 조선조의 망국은 시작되었다고 해야 한다. 500여년간 우리 민족의 “국가”로 구실을 해오던 조선조는 철저히 사라져 버렸다.

‘조선왕국의 망국, 왜 조선이 망했는가?’의 진짜 원인을 인식하려면 우선 몇 가지 막연한 통념에서 탈피해야 하며, 그 당시 조선조말기의 사회와 삶의 진상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통념의 하나가 식민지 되기 전의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상 조선 왕조는 대부분 시간 명, 청의 조공관계 시스템에 의한 예속국이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모양새만 갖추었을 뿐 외교국제법의 기준으로 조준해 보면 “비독립국"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중국대륙을 중심, 정점으로 한 동아시적 천하 체제(天下体制)에 예속된 속국으로서, 1904~05년 청일 전쟁을 계기로 이 체제가 붕괴된다.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이 1905년인 것은 바로 중국의 예속에서 이탈된 때를 같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 우리의 통념의 하나는 일제 식민지로 되기 전 조선은 매우 좋은 사회였으며 민족주의라는 관점을 투영시켜 조선의 일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타자의 행위는 절대적으로 부정하려는 점이다.

또한 이런 통념은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이 통념에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가령 이 통념을 뒤집는 증거, 사실이 눈앞에 나타나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조선조, 특히 그 말기 진상은 어떠했을까?

이런 물음에 준비된 답은 결코 긍정적이고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우선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 지배 시스템으로서, 가장 두드러진 사회 특질로서 노예제도가 엄연히 존속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조선왕조 시초부터 말기까지 노예제도는 조선 사회 지배 및 구성 원리의 중추였다. 조선 말기 외국인 관찰가들의 조선 방문기, 조선인론의 숱한 저작, 저술 중에도 조선의 노비라 칭해진 노예가 대단히 많았으며, 그 노예들이 피땀 흘린 노동으로 조선 통치, 사회가 움직이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고려조 초기부터 전해온 노예제도는 500년이 아닌 1000년을 유지해왔다. 15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사회지배원지를 제공한《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아도 노비들을 인간이하 가축식 재산처럼 취급한 비참한 현실을 발견 할 수 있다.

1894년~95년의 갑오경장(甲午更張)은 노비제도를 폐지하고 조선인들이 모두 평등한 인간으로 되도록 한 획기적인 혁명이었다. 일본의 압력, 또는 협력으로 성공한 이 혁명이 일본인 타자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사실은 명치 혁명에 성공한 일본인의 경험이 갑오경장의 성공을 보장해주었다.

다음으로 근대의 큰 표징인 교통도로사정을 살펴보자. 조선왕조 500년간 조선에는 사람이 통과한 안전한 길이 없었다는 증언이 많다. 그래서 새로운 관리가 부임되면, “이번 오시는 길에 진흙탕에 몇 번 빠졌습니까?” 라는 것이 인사말이었다. 간선도로도 우마차, 인력거가 겨우 지날 정도로 대부분 논두렁길이었다고 한다.

당시 중요간선도로인 서울과 의주를 이은 도로는 종주국 청국의 사신이 왕래한 까닭에 유일 도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중요도로도 보완공사가 필요할 때가 많아서 보수경비를 현지에 보내면 3/4은 도중에서 지방 관리들이 횡령했다고 한다. 결국 경비는 상민, 천민, 노비들에서 가렴주구로 거두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모든 하천에 거의 다 다리가 없었으며, 조선왕조 이전에 있던 다리도 부스고 말았다. 이씨 조선이 고려를 반역하여 탈취한 정권이므로 그들의 역습을 경계하여 군대가 진군하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셔버렸다.

가령 다리가 있다 해도 여기저기 구멍이 있어서 현지 사정을 모르는 자가 밤길에 그 다리를 건너다가 구멍에 빠져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때문에 다리(足)와 다리(橋)의 발음이 동음이라고 한다. 매년 강 건너다가 죽은 사람이 많아서 각지에서 진혼제를 지냈다고 한다.

도로사정 하나만 보아도 당시 우리 선조들은 지극히 궁핍하고 빈약한 경제사정하에 “근대화”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삶을 영위했다. 인류생활의 근대화의 표징인 교통이 좋아진 때는 1894년 일청갑오전쟁을 계기로 조선에 철도가 생기고 1896년 경인선 38.9km를 일본기업이 미국인으로부터 매수 한 뒤 1900년 7월 8일 전선이 개통된다.

서울-인천간 5,6일 걸린 것이 2,3시간으로 통했다. 서울 양반들은 처음 보는 기차를 철마(鐵馬)라 불렀으며 별 목적 없이 하루 종일 기차 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은 양반들도 많았다고 한다.

경제, 정치의 근대적 혁명, 개혁을 조선조 정부는 끝내 자주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복거일씨의 말을 빌면 “조선정부에 대해서 실망한 지식인들이 눈길을 돌린 곳은 일본이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조선이 저항할 만한 전범을 보았다.”

출판된《윤치호 일기》를 읽으면 조선조 말기가 정치적으로 무능했으며 부패했고, 현명하지 못하였으며 스스로 자기개혁을 못했다는 사실이 재발견 된다. 조선 말기의 가장 탁월한 개혁파 지식인의 한 사람인 윤치호는그때의 조선을 두고 “아아 슬프다, 조선의 현상이여. 남의 노예노릇 하는 것보다 더 심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어찌 떨쳐 일어나려 하지 않는가!” (《윤치호 일기》송병기역, 1883년 1월 2일자) 라고 통탄한다.

또 일제시기 최일류의 민족 독립가이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 역시 “조선의 실태와 일본의 성공을 보면서 조선에 실망, 체념을 일본에 대해선 우려와 기대를 아울러 갖게 했다.” (복거일)

조선조의 망국은 근대화 조류에 적응하지 못하고 뒤쳐진 그 자신의 원인이 더 컸던 것이다. 결국 일본이 조선조의  근대화를 도와준다는 구실을 준 것 역시 조선조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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