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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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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조광명 소설의 픽션과 논픽션의 탈경계
2019년 07월 09일 21시 50분  조회:213  추천:0  작성자: jinhua

조광명 소설의 픽션과 논픽션의 탈경계

김영옥

 

1. 머리말

조광명은 ‘시인’, ‘수필가’, ‘소설가’라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족문단에서 조광명이라는 이름은 늘 ‘전위적인 작가’, ‘파격적인 작가’ 라는 수식어가 작품보다도 더 먼저 떠오르게 한다. 

조광명의 시와 소설은 난해하다. 늘 제목조차 낯설고 뜬금없다. 그의 작품은 우선 제목과 언어부터 평범함 혹은 익숙함을 거부한다. 

조광명의 소설은 한없는 가벼움에 몸을 맡겨버린 ‘말장난’이나 ‘기교놀이’인 것인가? 진지함이 없는 가벼움, 삶의 건강함과 공동체적 행복을 위한 고뇌에 찬 리얼리티보다는 세계의 겉면을 빠르게 더듬는 감각적 속도감, 깊이 없는 ‘경박함의 거품’에 지나지 않는 작품들인 것인가?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드는 조광명의 소설들은 어디까지 소설적 허구와 상상력의 산물이고 어디까지 실제 사실인 것일가? 조광명 특유의 ‘낯선 소설’의 특징은 과연 무엇일가?…

조광명의 소설을 살펴보기 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지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 비력사성, 비정치성, 주변적인 것의 부상, 주체 및 경계의 해체, 탈쟝르화 등의 특성을 갖는 예술상의 경향과 태도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류파가 아니라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사조의 견해 그리고 문학과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개방성, 해체, 반항, 변용, 다원성, 이단의 정신 등의 불확정적인 리론들을 전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에서는 ‘뉴리얼리즘’, ‘논픽션소설’ 등으로 나타나서 허구와 사실이 두드러지게 배합됨을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소설은 기존 소설의 관습을 조롱하고 있으며 낯선 소설의 특징을 보인다. ‘일상 속의 욕망의 운동’을 재현하며 나아가 탈현대의 갖가지 삶의 위기적 징후, 이를테면 탈리념과 탈력사주의, 중심의 와해, 경계의 소멸, 불확정성, 현실의 거대한 허구화, 소통의 단절, 일그러진 자아, 루적된 피로, 익명화 등의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지속과 단절,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혼합되기도 한다. 

우에서 요약한 포스트모더니즘소설의 특징으로부터 볼 때 조광명의 대부분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리얼리즘소설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소설의 특징이 뚜렷함을 알 수 있다.

아래에 필자는 2017년도 《장백산》잡지 ‘조광명소설코너’에 실린 6편의 소설을 텍스트로 조광명 소설에 나타난 주요특징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2. 픽션과 논픽션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

2017년도 《장백산》잡지 ‘조광명소설코너’에 실린 소설들로는 제1기의 단편소설 <두 팔을 펼치면 날개인 것을>, 제2기의 단편소설 <겨울낚시>, 제3기의 단편소설 <무등을 켜라>, 제4기의 중편소설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 제5기의 중편소설 <위대한 밥>, 제6기의 중편소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등 6편이다. 조광명의 이 소설들은 대부분 메타픽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소설의 특징을 띠고 있는데 조선족 소설문단에서 거의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가들의 작품을 메타픽션(metafiction)이라고도 한다. 메타픽션은 허구의 일종으로서 허구의 장치를 의도적으로 그리는 것을 가리킨다. 메타픽션은 그것이 픽션임을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알리는 것으로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시한다.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 대한 전복 혹은 비판의 성격이 강하며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기한다.

메타픽션을 자의식적인 글쓰기, 내면적 소설, 내성적 소설, 비리얼리즘소설, 자기도취적 소설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소설의 형식적인 정의가 만약 ‘허구성을 가지고 있고 기승전결의 플롯으로 사건이 움직여야 한다’라면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허구성이나 기승전결의 플롯을 파괴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전개한다. 

조광명의 여섯편의 소설들은 대부분 자의식적인 글쓰기 혹은 비리얼리즘소설이다. ‘픽션과 논픽션 경계의 해체’, 플롯의 해체, 루적된 피로, 익명성, 인간과 인간 사이와 개인과 세계 사이의 소통의 단절과 불균형 등 포스트모더니즘소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중편소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은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의 탈경계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련작소설로도 읽을 수 있는 세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였다. <소설 하나. 똥별 거미-평범한 아침, 픽션과 논픽션과 시와 노래에 관하여>, <소설 둘. 거미를 먹는 녀자-소설을 위한 면접방법>, <소설 셋. 무적의 스파이더 패밀리-다른 한 소통의 방식과 채널> 이 세편은 시인과 소설가 사이, 작가와 사업가 사이, 픽션과 논픽션 사이,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가 완전히 해체된 특징을 보인다. 

이 소설은 일인칭 소설로서 ‘의식의 흐름’ 기법, 언어 특징, 소설의 구조가 독특하다.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고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일상성과 비일상성, 삶의 무게와 가벼움, 진담과 롱담이 수시로 교차한다. 

그중 첫번째 소설 <소설 하나. 똥별 거미-평범한 아침, 픽션과 논픽션과 시와 노래에 관하여>에서는 광주라는 도시의 아침, 관능적인 환경묘사와 계절묘사가 서두부터 현란하게 펼쳐진다. ‘나’는 안해와 함께 다이어트 식단에 맞춘 아침식사를 하면서 안해와 회사 이야기를 꺼낸다. 그 사이에 ‘나’의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오가는 비약적이고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수시로 튀여나온다. ‘나’의 상상력은 마음껏 펼쳐져 빵을 먹으면서 레닌을 떠올리고 구두와 무좀과 짚신 관계를 떠올리다가 모택동, 주은래와 2만 5천리 장정을 떠올리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식사 중 멀리 할빈에 있는 작가 친구와 휴대폰 채팅을 하고 낡은 모자 얘기를 하다가 오래 전 드라마 속 인물인 제공济公의 형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는 ‘거미’들의 이야기, 거미를 기르는 녀자, ‘거미가족’의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일인칭 주인공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환상속에서 의식의 흐름으로 펼쳐진다. 

환상성이라는 말은 언뜻 민담, 신화, 설화, 동화, 만화, 공상 과학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20세기 고전의 반렬에 오른 카프카의 《변신》, 마르께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과 같은 소설에서 환상적 요소들은 리얼리즘만으로는 끝끝내 포착할 수 없는 삶의 불가해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기존 리얼리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본격적인 시도로 환상성이 도입되였다고 볼 수 있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에는 이와 류사한 환상성과 상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소설은 제목 자체부터 로골적으로 ‘황당함’을 보여준다. ‘소설거미’도 ‘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도 너무 황당한 상상이다. 액자소설의 구성도 아닌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현실과 비현실, 현실과 롱담, 현실과 상상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소설 안에 현실과 허구와 상상이 뒤섞여있음을 작가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작품 내용과 주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고금중외 인물들과 어린 시절의 시골이야기, 현대도시의 삶의 무게, 가볍고 경쾌한 위챗대화와 롱담, 의식의 흐름과 자기 고백적 글쓰기까지 작가가 겪은 일이거나 알고 있는 일들을 한 작품에 모두 털어놓으려고 작심이라도 한듯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써내려가고 있다. 

두번째 소설인 <소설 둘. 거미를 먹는 녀자-소설을 위한 면접>은 ‘나’의 회사의 직원 채용 면접에 나온 녀자를 쓰고 있다. ‘반려거미’를 기르는 녀자, 친구와 회사를 공동 경영하다가 친구도 회사도 잃은 독신 녀자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 녀자에 대한 초상묘사가 꼼꼼하고 구체적이다. 시인과 소설가, 회사경영인으로서의 여러가지 신분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인칭 화자 ‘나’는 작가 조광명이기도 하다. ‘나’는 씩씩하고 도시감각을 지닌 세련된 옷차림의 그 녀자를 유심히 관찰한다. 이런저런 리유로 ‘나’는 마음속으로 이미 면접대상으로는 그 녀자를 제외시켰지만 ‘소설을 위한 면접’으로 생각하고 그 녀자와 장황한 대화를 나누며 ‘반려거미’를 사육한다는 그 녀자를 ‘꼬셔보려는’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작가의 심리활동과 인물의 대화중심으로 흐른다. 인물들의 대화가 지나칠 정도로 길게 이어지기도 하며 ‘말장난’, ‘언어유희’가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반려거미’를 기른다는 그 녀자가 거미를 먹는 상상, 그녀를 거미와 동일화시키는 ‘나’의 상상의 한 장면은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하기까지 하다. 

세번째 소설은 <소설 셋. 무적의 스파이더 패밀리-다른 한 소통의 방식과 채널>이다. 제목이 알려주듯이 이 소설은 외부로의 소통이 단절되였다고 해도 내부로의 소통, 가족과의 소통과 패밀리라는 채널은 치유와 힐링의 궁극적 도착지와 공간임을 말해준다. 

초능력을 지닌 스파이더맨, ‘불운한 히어로’와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 힘겨운 히어로 생활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스파이더맨, 외로움과 실수투성이에 천방지축 외토리인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이처럼 다양하고 립체적인 성격을 빗대여 이 소설에서는 가족 사이에도 실수와 다툼과 소통이 잘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서로 양보하고 리해하려는 소통의 마음을 가진다면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며 결국은 ‘무적의 스파이더 패밀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 소설 역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허물어진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은 6편의 소설 중에서 허구와 환상과 현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해체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은 생존을 위해 열심히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은유화한 ‘나’와 수많은 ‘거미’들,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반려거미’, 만능의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거미 등을 중편소설 속에 세편의 련작소설로 엮고 있다. 징그럽게 생겼으나 부지런히 줄을 치는 거미, 고향의 거미, 도시의 사육당하는 ‘거미’, 만능의 스파이더맨으로서의 거미… 현대도시와 현실의 비정함, 삭막한 삶을 살아가는 도시 ‘거미들’의 삶의 단면을 ‘낯선 소설’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따뜻한 공동체의 공간이 아닌 사회이다. 집이나 가족도 더 이상 따뜻하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소통이 단절되기도 하고 수시로 싸움과 해체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현대사회이다. 이 소설에서는 현대인들의 익명성, 불안한 내면세계와 소외의식, 현실의 부조리한 일면을 내적 독백의 형식이나 의식의 흐름으로 나타낸다. 일상적인 세계로부터의 소외,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의 단절, 인간성 상실의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여준다. 카프카의 《변신》이 련상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거미’를 상징과 은유로 소설 안과 소설 밖의 이야기는 결코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현대인들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인간들 사이의 의사소통에로의 열망, 온기와 인간미, 행복을 찾으려는 소망이 나타난다. 그리고 결국은 가족의 화해와 행복을 위한 노력에서 삶의 출구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은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것은 바로 소설의 첫머리에서 보여준 ‘동서고금’, ‘동서남북’을 종횡무진하던 서두와 잘 어울리지 않는 ‘룡두사미’의 결말이다. 이 소설의 신비롭고 ‘거창한’ 서두와 가족의 사소한 일상과 가족애의 재발견이라는 평범한 결말은 신비롭고 ‘거창한’ 결말을 기다렸던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야 할가. 예상 밖의 평범한 결말이여서 ‘허탈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선지 기나긴 편폭에 세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이 중편소설에서 현란하게 춤추던 언어들도, 신비한 제목들도, ‘유식해보이는’ 대량의 외래어들도, 작품 속에 등장했던 위인들의 이름이나 거창한 담론들도 결국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작가의 의도적인 ‘횡설수설’이거나 ‘무의미한 라렬’이라고 느껴진다. 혹은 ‘기법을 위한 기법’이거나 작가의 한낱 ‘득의에 찬 자기 과시’라고 할가…

소설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어쩌면 피로와 허무와 환멸의 일상성 속에 스며있는 환상이라는 새로운 립자를 소설에 도입하여 작가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작품은 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소설을 쓰기 위한 소설’, ‘자아감정 분출을 위한 소설’, ‘자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소설’이라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는 소설이다. 

6편의 소설 가운데서 <두 팔을 펼치면 날개인 것을>, <위대한 밥>도 역시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과 류사한 메타픽션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3. 현대도시의 파편화된 

삶의 양상과 소통의 단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조선족 작가들이 디아스포라와 민족의 뿌리 찾기, 민족의 인구 이동, 재한 조선족들의 삶의 양상 등에 작품의 초점을 맞추거나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전통적인 리얼리즘 창작기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와 달리 조광명의 소설은 민족이나 력사나 디아스포라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현대도시 속의 파편화된 삶의 양상들, 인간의 소외의식과 소통의 단절 등을 소재와 주제로 다루고 있다.

<두 팔을 펼치면 날개인 것을>에서는 현대도시의 삭막함과 현대인들의 강박증을, <겨울낚시>에서는 인생의 추억 낚시를, <무등을 켜라>에서는 삶의 길에서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거나 길을 잃지 말고 가족 곁에 있어야 함을,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는 버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치유와 힐링의 려행을, <위대한 밥>은 모성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은 지치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현대도시의 수많은 ‘똥별’과 ‘거미’들의 삶의 모습, 인간관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를 쓰고 있다. 

그중 단편소설 <두 팔을 펼치면 날개인 것을>에 나타난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홍’의 안해는 심각한 정신적인 병증세를 보인다. 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냄새에 민감하며 곰팡이와 바퀴벌레의 환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안해는 강박증, 결벽증, 의심증, 불면증, 과대망상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 ‘홍’은 아픈 안해를 옆에서 돌보거나 병원에 데리고 갈 여유나 시간도 없이 매일 회사일로 정신없이 바삐 보낸다. 회사일 때문에 관련부문과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실의 더러움, 거짓과 위선, 불법류통 등 비리에 분노한다. 리명박과 박근혜라는 한국 전직 대통령과 동명의 인물도 등장한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는 ‘홍’이 안해와 함께 행복한 미래를 구상하며 마련한 300평방짜리 오피스텔이 있는 새 건물이 붕괴된다. 건물 붕괴와 함께 안해는 옥상에서 추락하고 뒤늦게 도착한 ‘홍’은 추락하는 안해를 살리려는듯 붕괴되고 있는 건물을 향해 두 팔을 펼치고 돌진한다.

‘날개’는 원래 멀리 높이 날기 위한 동적 이미지, 상승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추락하는 날개, 추락하는 안해를 받아안기 위해 펼친 ‘두 팔 날개’이다.

“쉼없이 비는 내리리 / 별이 흘리는 눈물처럼 / 계속해서 비는 말하겠지 /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주인공 ‘홍’이 차를 운전하면서 반복해서 듣는 이 노래는 주인공 ‘홍’의 심경을 잘 대변하고 있다. 날개를 달고 높이 힘차게 날고 싶지만 비상 대신 추락하는 모습, 현대인들의 도시의 삶의 무게와 비애를 노래가사에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소외, 개인과 사회의 단절,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불만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60~70대 두 남녀의 몇십년 만의 재회와 추억을 더듬는 <겨울낚시>, 엄마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위대한 밥>, 불륜에 빠져 방황하는 남자 주인공이 과거 불륜에 빠져 가족을 버렸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결국은 ‘안개길’을 뚫고 ‘무등’을 켜고 귀가한다는 내용의 <무등을 켜라>, 현대도시의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무릉도원 같은 ‘코코타타’로 일탈과 치유의 려행을 떠난다는 내용의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 ‘거미’라는 은유로 현대인들의 삭막한 삶을 보여주는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등 작품들은 소재와 제재와 인물들도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대부분 소설들이 현대도시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외로움과 소외감, 도시의 삶의 파편화, 인간 사이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 소통에로의 열망을 쓰고 있다. 이런 내용과 주제들은 조광명 특유의 시대감각과 언어와 문체, ‘소설을 만드는’ 재능에 의해 ‘새롭고 낯선 소설’로 다가온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던 중편소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은 이 류형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4. 발칙한 ‘말장난’ 혹은 

현란하고 파격적인 언어 

조광명의 6편의 소설들은 우선 소재와 제재의 다양성, 언어와 기법의 파격성, 플롯의 약화 혹은 해체의 특징을 보인다. 격변의 시대의 현대도시에서 겪는 개인의 삶의 무게들과 가족의 의미,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는 ‘남자’와 다시 안개 속 귀가의 길에서 ‘무등’을 켜는 이야기, 몇십년 만에 재회한 60~70대 두 남녀의 겨울낚시와 어린 시절 추억과 현재의 삶을 교차하는 ‘인생낚시’, ‘거미’를 은유로 현대도시의 삶의 일상과 가족, 직장, 인생에 대해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오가면서 ‘거미가 거미줄 늘이듯이’ 종횡무진 마음대로 누비며 만들어진 제목부터 난해한 ‘소설거미’…

조광명의 이 여섯편의 소설들은 어떤 소재의 작품이든 모두 현란하고 파격적인 단어들의 조합과 라렬의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대량의 류행어, 신조어, 인터넷 용어, 외래어가 섞여서 나타난다. 

중편소설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의 첫번째 소설 <소설 하나. 똥별 거미-평범한 아침, 픽션과 논픽션과 시와 노래에 관하여>의 한단락을 살펴보도록 한다.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였다. 온밤 산너머 동굴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정염으로 몸을 불태우다가 더는 참을 수 없어 뜨거운 불덩이 토하려고 나온 뱀처럼 어느새 벌써 산등성이를 스르륵 기여넘은 태양은 ‘이 도시엔 도심 속에 산이 있어서 대부분 곳에서 머리만 들면 산을 볼 수 있다’ 뜨거운 혀를 날름거려 짙푸른 나무잎들을 콕콕 찌르며 희롱하고 있고 나무잎들은 해빛의 롱락질이 즐겁기만 하다는듯 지레 농염하게 물 오른 몸뚱이를 그대로 내맡기고 앗 뜨거, 앗 뜨거, 짙푸른 신음을 느침처럼 흥건하게 흘리고 있었다. 빛과 잎이 한데 뒤엉켜 아침부터 뜨거운 헐떡거림이 연출되는 맞은켠 산등성이의 질펀한 풍경을 베란다 창문 유리 너머로 내다보다가 나는 식탁 앞에 나앉았다. 녀자의 손가방에서 방금 꺼낸 작은 손거울이 반사하는 빛화살 같은 것이 맞은켠 건물에서 한줄기 곧게 뻗어나와 베란다 미닫이 샤시 문을 통과해서 들어와서 아침 식탁 원목 다리에 동그란 빛살 도장을 암팡지게 찍어놓고 있었다. 그 빛줄기 속으로 다리 맨살을 들이밀면 그대로 다리에 나있는 체모가 그을러 연기가 피여오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실내엔 에어컨이 24도를 유지하며 빵빵 돌아가고 있으니까. 시원하다. 멀리 할빈에 있는 친구의 위챗은 령하의 추위를 자랑하고 미지근한 난방 공급을 원망하고 있는데 여기는 아직 뜨거운 불볕더위가 기승이고 에어컨 랭방 타령이다. 

 

소설의 서두에 장황하게 펼쳐진 남방 도시의 어느 ‘지극히 평범한 아침’에 대한 묘사인데 그야말로 관능적이고 감각적이고 화려한 언어들의 향연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현실에서도 사업가이자 소설가인 조광명이기도 하다. 아침 빵과 우유를 먹으면서 ‘나’는 현실과 소설 속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무한하게 펼쳐지는 상상과 련상을 멈추지 않는다. 

 

가죽구두를 오래 신으면 발에 무좀이 생기기 쉽고 짚신을 신은 발에는 절대 무좀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뜨거운 남방의 도시에서 구두를 신으면 무좀에 걸리기 쉽다. 어떤 땐 발이 근지러울 때도 있다. 무좀인가. 시인, 무좀에 걸리다. 혹은 소설가, 무좀에 걸리다. 이런 소설제목이라면 꽤 재미 있는 제목이지 않겠는가. 독자들의 고약한 호기심을 꼬드길 수 있는 미끼 제목이 될 것 같다. 무좀으로 소설 한편 써본다꼬? 그러나 무좀에 대해서 전혀 연구해본 바가 없다. 나는 무좀에 걸린 시인일 수도, 무좀에 걸린 소설가일 수도 있겠다. 대안은 짚신 신는 거. 짚신을 신고 광주 거리를 활보해볼가. SNS에 빨간 스타로 데뷔할지 모른다. 

 

‘가죽구두’와 ‘무좀’, ‘소설제목’과 ‘짚신’, ‘낡은 모자’, ‘모택동’과 ‘레닌’, ‘태양에너지팩’ 등을 떠올리며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후레쉬, 레벨, 젤, 블랙홀, 짚신’ 등 외래어와 전통적인 단어도 소설 중간에 무시로 불쑥불쑥 튀여나온다. 뭐든지 상품으로 변하는 세상, 교수들의 ‘따분한 강의’, 회사 채용인원 면접을 위한 안해와의 무심한 대화들이 ‘나’의 아침식사 자리에서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 무한한 상상 속에서 다시 파격적인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기타 다섯편의 소설들에서도 파격적이고 비약적인 언어들의 조합은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조광명의 시와 수필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언어특징이다.

조광명의 소설은 이야기성보다는 플롯의 해체와 파격적인 언어의 조합이 가장 특징적이다. 리얼리즘소설처럼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사건전개 양상이 뚜렷하지 않고 플롯이 약화되거나 해체된다. 대신 다양한 소재, 다양한 소설에서도 ‘말장난’ 같은 표현들과 인물들의 대화가 자주 나타난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1인칭 소설이든 3인칭 소설이든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화자와 소설인물의 입을 빌린 ‘언어유희’, ‘말장난’이 소설 속에서 란무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기 위한 진지함과 리성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듯한 해학과 자조와 ‘롱담’이 작품들 속에 자주 나타난다.

6편의 소설에는 조광명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인 ‘현란하고 파격적인 언어’의 특징 외에도 시와 노래가사의 삽입, 소설 제목의 파격과 은유, 소설구조의 파격, 소설의 부제의 설정과 소제목들의 라렬 등 실험정신과 작가개성이 느껴지는 특징들이 있다. 이처럼 치밀한 소설 전략이나 실험적인 다양한 소설기법은 조광명의 소설적 재능과 도전정신, 끊임없이 노력하는 창작자세를 보여준다. 편폭 관계로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생략하기로 한다. 

 

5. 다양한 인물류형과 

소설공간의 확대

조선족문단의 대부분 소설들은 중국의 동북3성이거나 한국을 소설배경으로 설정하고 고향농촌의 이야기, 조선족과 한족들의 이야기, 조선족과 한국인들의 관계, 재한 조선족들의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조광명의 소설배경은 주로 중국의 동북3성에서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광주)거나 외국의 이색적인 공간(‘코코타타’)이다.

조광명의 6편의 소설들은 전체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특징을 띠고 있지만 소재도, 인물류형도, 소설기법도 서로 많이 다르다. 작품창작에서 끊임없이 새로움에 도전하는 작가의 실험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소설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난다. 조선족과 한족 외에도 백인과 흑인 등 외국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인물들의 대화 역시 우리 말 외에도 중국어, 영어 등이 섞여있다. 

소설 인물들의 활동무대는 더욱 넓은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대도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공간배경이 소설의 스케일을 확대시킨다. 소설인물들의 이동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개인 승용차, 뻐스, 비행기가 나타나기도 하며 여러 류형의 다양한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넓은 공간을 오가며 만남과 리별, 희로애락을 보여주기도 한다.

<겨울낚시>는 “‘묻지 마’ 겨울데이트”, ‘얼음호수 우에 작은 궁전 하나’, ‘녹 쓸어 삐꺽거리는 몸뚱이인 것을’, ‘미녀와 야수’, ‘아웃복서, 인파이터’, ‘사랑하는 모든 령물을 사랑하여라’, ‘약속할 수 있어 아름다운 인생’ 등 7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추억과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한 이 소설에는 ‘남자’와 문자라는 녀성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복싱선수였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두 인물의 이야기가 대화와 회상의 방식으로 전개된 소설이다. 끊임없이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살아온 남자, 결혼과 가정에 만족하며 살아온 문자였다. 60대에 이르러 몇십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은 도시 교외의 강가에서 겨울낚시를 한다. 서로 어색하던 데로부터 자연스러운 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인생에 대해, 가족에 대해, 꿈과 추억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작가는 우정도 사랑도 아닌 두 사람의 미묘한 ‘낚시데이트’를 결국은 지나온 삶을 돌이키고 미래를 그려보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만남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단편소설 <무등을 켜라>는 ‘불륜이라는 이름의 사랑’, ‘용서라는 이름의 복수’, ‘돌아설 수 없는 길’, ‘갓길에 잠간 멈춰서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라’, ‘안개밭 벗어나니 당신이 기다리고 계셨네’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다. 주인공 ‘남자’의 불륜이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치매증세가 있는 아버지가 실종되였다는 안해의 련락을 받는다. 급히 귀가길에 올랐으나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에 덮인 고속도로에서 ‘남자’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차 안에서 비몽사몽간에 어린 시절 트럭운전사였던 아버지와 가족의 단란하고 행복했던 한때가 떠오른다. ‘남자’의 동생이 어릴 때 불륜에 빠진 녀자를 위해 집을 떠났던 아버지였다. 이젠 늙고 치매증세가 있어서 집에 모셔왔는데 그 아버지가 실종되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남자’도 동생도 오래동안 미워했었다. 그런데 오래동안 잊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아버지의 옛 말씀들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안개 속에 만난’ 사랑하는 녀자한테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애써 누르고 안개가 좀 걷히자 운전대를 잡고 집 쪽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집에서 10키로 더 떨어진 길옆 가로등 아래에 실종되였다던 아버지가 서있었다. 

 

남자는 집 쪽으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 때 남자는 길옆 가로등 밑에 지팽이를 짚고 서있는 어떤 그림자를 발견했다. 아버지다! 남자의 직감이 웨쳤다. 아버지라니? 집에서 10키로는 떨어진 곳인데, 집안에서는 혼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 것도 불편한 몸인데. 남자는 다시 가로등에 비쳐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림자의 얼굴을 보려고 차를 그 그림자 쪽으로 서서히 몰았다.

아버지가 옳았다. 남자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차문을 열고 뛰여내렸다.

-아들아, 니가 살아 돌아왔구나. 돌아왔음 됐다. 그 칠흑 같은 안개 속을 헤매지 않고 잘 헤치고 나와서 다행이다. 고맙다, 아들아.

한손으로 지팽이를 짚은 아버지가 다른 한팔을 벌렸다. 남자는 달려가서 그 팔에 안기듯 두 팔로 아버지를 안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여기까지 나왔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내가 안개 속을 헤맨 걸 알았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내가 이 길을 달릴 줄 알았어요?

-내 다 안다, 아들아. 내가 니 애비잖냐. 니가 내 아들이잖냐…

아버지의 얼굴에서 눈물이 좔좔 흐르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아버지의 옛일에 대한 참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걱정, 아버지를 보면서 드디여 ‘안개 속’을 헤매던 ‘남자’가 ‘귀가’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는 ‘아버지’의 존재, 아버지의 옛날의 불륜과 아들인 ‘남자’의 현재의 불륜을 오버랩시키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되새기게 한다. 

중편소설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는 ‘코코타타’, ‘엠마 쥬’, ‘엠마 크리스탈’, ‘하쿠나 마타타’, ‘사라진 엠마 크리스탈’, ‘하쿠나 마샤샤’, ‘샤바시향 나무’,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 등 8개 부분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코코타타’라는 아름답고 신비한 곳에로의 려행을 쓰고 있다. 

‘코코타타’는 ‘평화의 호수’라는 뜻이란다. 평화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평화 속으로 스며들어 더 아름다운 평화의 하모니를 이루’는 곳, 무릉도원 혹은 리상향이다. ‘나’와 같은 회사 동료이며 ‘코코타타’의 존재를 알려준 ‘엠마 쥬’, ‘코코타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 ‘동행’하게 된 흑인녀성 ‘하쿠나 마샤샤’와 백인 녀성 ‘엠마 크리스탈’과의 대화, 소설의 결말 부분에 ‘코코타타’행 뻐스 운전기사로 나타난 ‘엠마 쥬’와의 만남 등이 이 소설의 큰 흐름이다. “열시간 넘게 나란히 앉아 함께 할 녀자 앞이라 하지만 나는 비행기가 아직 활주로에로의 이동을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약간 들떠져서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내 젊음의 엔돌핀이 혈액 속에서 키들키들 너털웃음을 웃으며 기지개 켜는 소리를 나는 뻐근해지는 가슴으로 들을 수 있었다.”

 

백인녀성과 흑인녀성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여앉은 황인종 남성. 좁은 기내석에 어쩜 서로 다른 세 대륙을 대표할지도 모를 세가지 피부색의 인간이 나란히 앉아 연출할 려행길의 하모니라니∼ 삼인삼색 일남이녀가 함께 하는 비행기 려행이 무척 더 재미있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부분은 일인칭 주인공이 ‘코코타타’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두 외국녀성을 만나는 장면이다. 나중에 이 두 녀성도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나’와 비행기에서 만난 두 외국녀성이 엠마 쥬가 운전하는 ‘코코타타’로 가는 뻐스에 올라서 넷이 함께 ‘하쿠나 마타타’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 Hakuna matata)’는 말 그대로 옮기면 ‘잘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라이온킹》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되였으며 한국에서는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로도 더빙되여 있다. 

지치고 힘든 현실과 그 일탈로서의 먼 ‘코코타타’로의 힐링의 려행, 우연한 만남과 우연의 련속, 함께 합창하는 ‘하쿠나 마타타’… 이 소설은 공간이동의 거리와 폭이 크며 외국인들과 외국 지명, 흑인과 백인 등이 함께 소설 속에 등장한다. 조광명의 소설이 더욱 다양한 인물과 더욱 넓고 새로운 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중편소설 <위대한 밥>은 ‘엄마의 숲’, ‘술병에 기대여 일어서라’, ‘엄마의 밥’, ‘내 엄마가 너무 가벼워 눈물 나네’, ‘밥힘’, ‘집밥’, ‘밥&집’, ‘향기로운 밥춤’, ‘자장가’, ‘마지막 밥’, ‘가훈 그리고 가문의 전통’ 등 11개 부분으로 구성된 3인칭 소설이다. 그러나 아들 ‘순철’의 시점을 중심으로 엄마 ‘복희씨’의 시점, 혼합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엄마 ‘복희씨’의 굴곡 많은 일생, ‘밥’과 ‘집’으로 상징되는 ‘가족’과 ‘엄마가 있는 집’, ‘집밥’의 의미와 강인한 의지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오래 전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딸도 먼저 저세상에 떠나보낸 ‘복희씨’, 딸을 떠나보낸 날 ‘복희씨’는 스스로 죽음을 예감하며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밥’을 먹는다. 그리고 서서히 죽음에로 향하는 엄마를 느끼며 엄마를 안은 채 ‘순철’은 목이 멘다.

이 작품은 6편 가운데서 가장 감성적이고 따뜻한 소설이다. ‘엄마 김복희씨’의 일생과 ‘밥’으로 상징되는 ‘엄마’와 ‘가족’ 그리고 어떤 고난의 순간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는 ‘가훈’과 ‘위대한 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 소설은 6편의 소설 가운데서 인물형상, 서사구조, 플롯 등 여러면에서 전통적인 리얼리즘소설에 가까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련되고 감성적인 언어와 문체, 시점의 다양한 변화와 소설적 구조로 ‘익숙함’이나 ‘식상함’을 벗어나고 있다.

조광명의 작품을 단순한 ‘말장난’ 혹은 ‘언어유희’라거나 ‘기교만 중시하는 작가’라고 한마디로 단언하거나 매도할 수 없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특징의 창작을 고집하지만 가끔은 은유, 생략과 함축, 비약의 방식으로 오히려 더욱 묵직하거나 더욱 여운이 짙은 소설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심한 독자들은 조광명 소설의 밑바닥에 흐르는 따뜻한 인간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6. 맺음말

지금까지 살펴본 조광명의 6편의 소설에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이 나타난다. 날고 싶은 욕망의 표출인 ‘날개’, 어두운 밤 안개 속 길을 밝히는 ‘무등’, 떠남의 상징인 ‘뻐스’, 삶의 기본이자 생존의 원천인 ‘가족’과 ‘밥’, 추억과 인생의 ‘낚시’, 힘들고 외롭고 소외된 세상과 스파이더 ‘거미’… 이러한 은유와 상징은 소설의 다양한 기법과 함께 조광명 소설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조광명의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 특징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가족애도 하나의 중요한 주제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6편의 소설 가운데서 <위대한 밥>, <무등을 켜라>, <두 팔을 펼치면 날개인 것을> <소설거미-이 남자가 소설을 만드는 방법> 등은 언어, 구조, 기법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특징을 띠고 있지만 내용과 주제는 결국은 가족애와 인간애로 귀결되고 있다. ‘가벼운 롱담’이나 ‘말장난’ 같은 언어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문체 속에 진지한 삶의 성찰, 따뜻한 인간애와 가족애가 있다는 점은 조광명 소설의 역설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조광명의 소설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론리 우에 서있지 않다. 비론리적이고 언어와 형식도 파격적이다. 좌절과 고뇌, 비상을 꿈꾸는 인물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울고 웃는다. 그 속에서 현대사회의 물질중심적인 경향과 인간소외 문제, 세상에 대한 작가적 시선과 문학적 탐색이 잘 드러나고 있다. 

조광명의 소설은 획일성과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을 보이고 있다. 종래의 륜리적 가치관, 사유방식을 배반하고 상상력과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조광명의 소설은 독특한 문체와 개성으로 조선족문학의 다양한 발전과 넓은 지평을 열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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