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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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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평]단편소설 <상냥한 친구들>의 서사적 특징
2019년 07월 17일 09시 39분  조회:21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단편소설 <상냥한 친구들>의 서사적 특징

김영옥

 

1. 머리말

금희의 단편소설 <상냥한>(원제목은 <제3세계의>)은 작가의 현실인식과 력사인식, 민족의식과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 비평의 시각, 디아스포라문학의 시각, 신변소설의 시각, 성장소설의 시각, 리얼리즘 비평의 시각 등 다양한 접근방법에 따른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전쟁과 이민, 주요인물들의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성장과정과 현재의 삶의 양상, 도시화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고향을 떠나 대도시와 해외로의 진출, 인간성 탐구와 인생에 대한 사색, 자아성찰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뇌 등 이 소설에 나타나는 주제의식도 다양하다. 

 

2.  익숙함과 낯설음의 공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문학작품에서 디아스포라, 조선족들의 이민의 력사와 새로운 삶의 터전을 확장해가는 민족의 대이동을 다룬 작품들이 적지 않다. 현재 조선족의 거의 절반 인구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생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 나가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더 많아서 결혼식이나 회갑잔치를 한국에서 치르는 일도 주위에서 자주 듣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류행처럼 번지는 한국에서의 동창모임 역시 결코 낯설지 않은 조선족 사회의 또 하나의 풍경이다. 물론 한국에서의 결혼식, 회갑잔치, 동창모임의 깊은 곳에는 조선족들의 삶의 희로애락과 애환이 자리잡고 있음을 조선족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소설 <상냥한>은 ‘나’의 친구들의 서울 동창모임을 계기로 영란이, 창옥이와 ‘나’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평범하고 사소한 이야기들 속에 ‘나’와 영란이, 창옥이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삶 그리고 다시 30년이 지난 후 지난날에 대한 추억 속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영란이를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은 일인칭 화자인 ‘나’의 시점으로 오랜 친구인 영란과 창옥 두 인물의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요즘 조선족 사회에서는 전혀 낯설지도 놀랍지도 않은 서울 동창모임이라는 설정으로 인물들의 관계와 갈등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되는 ‘나’의 친구 영란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동창모임에 나갈지 말지 망설이다가 결국은 참가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창옥이는 ‘나’와 영란이와 같은 조선족 마을에서 자라고 소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인물이다. 영란이와 창옥이는 동창모임에서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다.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동창모임 때문에 한국까지 갈 수 없기에 영란이와 다른 친구들이 위챗으로 전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아쉬움과 호기심을 달랜다.  

이 소설에서는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영란이와 창옥이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영란이는 키가 작고 여윈 편이며 눈이 서구적으로 큰 녀자, 코날이 서고 크고 륜곽이 선명한 쌍거풀눈을 가진 녀자, 싸구려 캐주얼을 입기 좋아하고 화장도 하는 법이 없다. “가난하고 착하며 자신감이 결여된 조선족 부모에게서 자란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영란은 말수가 적었고 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려고 지나치게 애썼으며 반대로 자신의 욕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는 어딘가 서툴렀다.” 

창옥이는 학생시절에도 “우리 셋 중 키가 제일 크고 입고 다니는 옷도 제일 비쌌으며 성격마저 활달하고 자신감 넘쳤”으며 “아버지의 바람기와 어머니의 히스테리, 부모의 리혼과 학교 중퇴, 유부남과 동거하며 흘러보낸 청춘, 급작스런 결혼, 잇따른 리혼과 이민생활에서의 재혼” 등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오랜만에 동창모임에서 만난 창옥이는 “얼굴피부는 탄력이 약해지고 엉덩이살도 처져버린 아줌마가 되였지만 꼼꼼한 화장과 멋스런 셋팅펌으로 풀어헤친 머리와 럭셔리한 옷차림 덕분에 여전히 친구들 속에서 튀여보이”는 모습이다. 

그날 동창모임에서 영란이는 비록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싫어하던 창옥이와 ‘허그’를 하며 화해한다. 그 이전에 그녀를 더 립체적인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아쉬움과 후회가 들더라고 영란이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영란이한테서 그날 동창모임에 대해 상세하게 듣는다. 그때로부터 다시 30년이 흘러서 영란이는 이미 죽고 ‘나’는 “따뜻한 해빛 한줄기가 비쳐드는 창문가에서” 영란이와 그 동창모임과 옛일들을 다시 추억한다.

이 소설에서는 세 인물의 어린 시절과 학생시절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틈틈이 등장한다. 이 작품이 신변소설 혹은 체험소설의 요소를 지닌 작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중국에 살고 있는 30대 이상의 조선족이라면 누구한테나 익숙한 력사적인 시대, 개혁개방과 시장경제 물결 속에서 글로벌 시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란, 창옥, ‘나’의 이야기는 결국 수많은 조선족들의 이야기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3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영란이와 창옥이를 비롯한 많은 조선족들의 삶을 디아스포라적인 시각으로 그리는데 그치지 않는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영란이와 창옥이의 서로 다른 인생경력과 고달픈 삶을 통한 인간의 보편적인 삶에 대한 사색, 인간성 탐구, ‘유목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조선족들의 삶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삶의 구체적인 공간이 어디든 소설의 주인공들을 포함한 인간의 삶의 보편성과 인생에 대한 물음은 궁극적으로 비슷한 것이라는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3. 식상함과 신선함의 경계

중국은 도시화와 현대화의 발전과정에서 전례없는 격변기를 겪고 있고 전면적인 글로벌 시대에 진입하면서 중·한 관계도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와 더불어 지난 세기 90년대부터는 중국의 많은 조선족들이 집거지였던 동북3성을 떠나 국내외의 방방곡곡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그중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이민을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소설이나 실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 이미 적지 않게 쏟아져나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금희의 최신작 <제3세계>은 우선 소재가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창작특징 역시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영란이와 창옥이라는 두 주요인물의 초상묘사, 행동묘사, 언어묘사가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소설의 플롯이나 줄거리 역시 중간중간 삽입적인 요소를 도입하거나 회상의 방식을 취한다. 내용을 보아도 이 소설의 가장 큰 화제인 동창모임을 중심으로 ‘나’의 조부모 세대의 중국으로의 이민,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라던 고향마을에서의 추억, 소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들이 틈틈이 삽입되여있다. 이는 다른 조선족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미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라서 어느 정도 식상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가 다른 류사한 작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기법적으로든 내용적으로든 ‘낯설게 하기’와 새로움을 시도한 고뇌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우선 최근 조선족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에서의 동창모임을 통해 ‘제3세계’에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조선족들의 삶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소설 중 인물들이 오늘날 보편화된 모바일 인터넷인 위챗과 카카오톡 등으로 국내외의 공간을 뛰어넘는 실시간 교류를 한다는 점이다. 위챗이나 카카오톡 등 모바일 인터넷으로 작중인물들, 주로 중국에 있는 ‘나’와 한국에 있는 영란이는 수시로 대화하고 있다. ‘나’는 또 이 위챗을 통해 영란이나 다른 동창생들이 올리는 동창모임 사진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접하게 된다. 

시간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서울 동창모임 그리고 다시 30년이 흐른 후까지, 조부모부터 ‘나’의 아이들까지 4세대까지 긴 세월을 아우르며 활동무대와 화제의 공간도 조선반도와 중국, 미국, 일본, 한국, 독일 등 넓고 거시적으로 펼쳐진다.

또한 ‘나’와 영란, 창옥이의 조부모가 조선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이민의 력사, 조선족들의 대도시와 한국으로의 대규모적인 이동, 미국, 일본 등 해외로의 진출 등 비교적 중요한 조선민족의 력사와 국내외의 중대사건과 이슈들을 여러 곳에 삽입하고 있다. 

례를 들면 소설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내 친구 영란은 여러 날의 고민 끝에 결국 그 번의 동창모임에 출석하기를 결정했다. 미국은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집정하고 있었으며 중동 등 일부 개별적인 지역을 제외하고는 무력보다 대화를 강조하는, 비교적 평화스러운 시기였었다. 20세기 70년대 태생인 영란은 같은 세기 30년대에 있었던 세계대전의 혼란을 틈타 조선에서 중국으로 이주해온 조부모 덕분에 28살까지 쭉 그곳에서 살아온 경력이 있었다.” ‘나’의 친구 영란이가 동창모임에 참가하기를 결정한 일과 세계적인 정세와 영란이의 조부모의 중국으로의 이민과 중국조선족으로 살아온 영란의 서른살 전의 삶을 이렇게 몇줄로 요약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베를린 장벽’, ‘구쏘련의 해체’, ‘중국과 미국 수교’ 등 세계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들의 키워드가 짧게나마 등장한다. 물론 이런 화제나 내용의 존재가치와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국내외 중대한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가 작품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중인물들의 사소한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나 사춘기 시절 한 남학생을 둘러싼 영란이와 창옥 사이의 에피소드, 동창모임을 둘러싼 인물 사이의 사소한 대화 속이나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이야기 전개 속에서 ‘뜬금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현실인식과 작가의식, 그리고 독자층 확대를 위한 노력의 소산임을 리해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인물형상과 인물간의 갈등을 풍부하게 그리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세부적인 인물묘사와 여러개 에피소드들을 통해 인물형상을 서술식으로 보여줄 뿐 인물들의 개인적인 변화와 인물들간의 갈등이 립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영란, 활달하고 열정적이고 뛰여난 사교능력을 보이는 창옥, 이 두 인물은 시종 어릴 때의 모습과 다름없는 원래의 모습으로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그리고 일인칭 화자인 ‘나’는 시종일관 영란이에게 감정이입된 모습과 창옥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이 두가지 태도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영란이를 끝까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한 약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나이도 들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고 서울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된다는 영란이가 과연 여전히 그토록 나약하고 수동적인 인물인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물론 한국에서 일하다가 실직한 남편, 중국에서 아이를 봐주던 시어머니가 아이의 방학을 맞아 서울에 갔다가 허리를 다쳐서 누워있는 등 영란이의 고달픈 삶이 그 리유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전근대적 녀성의 모습에 가까운 인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창옥이도 세월의 흐름과 파란만장한 인생경력, 외국생활 체험 등을 통해 분명히 어떤 변화를 그려줘야 할 인물일텐데 이 소설에서는 영란이와 마찬가지로 시종 인물성격 변화가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작품의 시간 변화와 공간 이동이 크고 각자 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온 인물들인데 아무리 단편소설이라는 편폭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몇십년 세월을 넘나드는 이야기와 소설의 시간적 배경, 공간배경과 련관시켜보면 좀 평면적이고 굳어진 인물설정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시종일관 영란이와 창옥이의 삶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설정으로 리해할 수도 있으나 소설의 갈등이나 반전, 플롯의 매력을 보여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는 소설의 일인칭 화자로서 영란이의 친구이며 영란이한테 감정이입을 하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지성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영란이의 훌륭한 조력자, 조언자이며 거시적인 시야와 현실인식, 뛰여난 관찰력과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나’ 역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오랜 친구인 영란이한테는 우정과 동정과 충고를 아끼지 않지만 영란이 앞에서 늘 유식한척 장황하게 설교식 대화를 한다. 그리고 일인칭 화자인 ‘나’는 창옥이라는 인물의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부정적인 언어표현이나 태도를 적라라하게 나타낸다. 또한 영란이는 친구이지만 약자를 동정하듯 만만하게 대하고 창옥이라는 인물한테는 혐오와 거부감을 나타내는 등 극과 극의 시선이 지나치게 선명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십년 가까이 치열하게 일하면서 살아온 서울이였지만 그날 서울의 거리는 마치 처음 만난 새로운 거리마냥 몰라보게 아름답고 정겨웠었다. 돼지갈비집에는 그 모임을 주선하고 영란의 휴일날자를 ‘특별히’ 체크해보았던 몇몇 친구들이 벌써 와있었다. 한 친구는 인천의 60평대 아빠트에서 남편과 두 아이와 살고 있다 했고 한 친구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했고 다른 한 친구는 려행사 사장이 되였다고 했다.” 

이는 그날 영란이가 동창모임에 참가하러 가는 길에서 본 서울의 풍경과 동창생들의 삶의 모습들이다. 서울생활 10년이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영란의 고달픈 삶과 즐거운 순간의 모습이 압축된 부분이다. 그리고 개별적인 친구들 모습으로 서울에서 삶을 영위해가는 대다수 조선족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이 소설은 익숙함과 식상함, 신선함, 다양함이 공존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4. 맺음말

지금까지 금희의 단편소설 <상냥한>에 나타난 서사적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 소설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나’의 친구들의 모습, 조선족들의 삶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제3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현실인식과 작가의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영란이와 창옥이의 외모, 성격, 삶의 길을 대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두 주인공은 모두 각자의 고달픈 삶을 살아왔고 또 다른 듯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영란이처럼 착하고 내성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도, 창옥이처럼 열정적이고 개방적이고 활달한 사람도, 한국 곳곳에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다른 동창생들로 상징되는 많은 조선족들도, 중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도 삶의 공간이 어디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결국은 다른 듯 닮은 듯한 고달픈 인생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조선족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을 통해 주제적 의미를 확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노력이 엿보인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에서는 시대와 사회의 격변기를 살아가고 있는 영란이와 창옥이로 상징되는 조선족들의 삶의 현주소와 민족 정체성에 대한 혼란, 인생에 대한 고뇌가 느껴진다. 

물론 이 소설에도 여러 곳에 어색한 표현과 작은 오류들,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우선 장황한 인물성격 묘사와 초상묘사도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소설 첫부분에서 “신장 153센치의 영란은 키가 좀 작은 편”이라든가 “약간 말랐다 싶은 체형에 이례적으로 어딘가 서구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실리콘을 넣지 않았다 그러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코가 날이 섰고” 등등이다. 

또한 이 소설은 조선족 독자층보다는 한국 독자들을 더 의식하고 쓴 느낌이 강하게 안겨온다. 중국 조선족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얘기를 장황하게 설명한다든가, 작중화자와 ‘나’가 중국 조선족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그곳’이라고 쓰는 등 적절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단편소설 <제3세계의>은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소박한 언어와 문체, 작은 소재로 크고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내려는 금희 작가의 노력이 잘 느껴지는 훌륭한 작품이다.    

금희 작가는 이 소설에서 중국 조선족 공동체의 ‘해체’와 국내외로의 ‘진출’ 속에서 영란이와 창옥이 같은 수많은 조선족들의 더 밝은 미래는 어디에 있는지 또 인간의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또한 조선족 사회에 대한 관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류에게 참혹한 상처를 남겨준 전쟁은 다시 벌어져서는 안되며 어떤 경우에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직 평화로운 번영을 위해 상호협력’해야 한다는 작가의식과 큰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이 평론글을 잡지 출간을 앞두고 잡지사에 보낼 때까지 소설의 원제목은 <제3세계의>이였다. 뒤늦게 새로운 제목으로 바뀐 이 소설을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상세하게 해석할 시간이 없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원제목대로라면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제3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양상에 초점을 맞추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목이 <상냥한>로 바뀐 후의 이 소설에서는 그 외에도 강자와 약자의 론리, 금전과 힘의 론리, 인간의 ‘상냥함’과 ‘비정함’의 두 얼굴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다양한 주제와 의미 확대의 가능성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인 듯 싶다. 

출처:<장백산>2017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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