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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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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회귀(回归)
2022년 01월 19일 14시 39분  조회:1189  추천:0  작성자: 살구나무

<송화강>2022년1호


단편소설

 

 

회귀(回归)

 

 

박명선

 

 

 

 

 

 

1

 

아내 미화가 집문을 나서자마자 진우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자고 있은 게 아니였다.자는 척하고 있었다.아침에 아내가 왜 그토록 아프게 잔등을 때려놓고 그 여자와 몸이라는 말을 했는지 속궁리하고 있었다.

안해가 사쿠라이(桜井)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진우는 사쿠라이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사쿠라이가 입사하여 한달이 넘던 어느 날 부장님이 마련한 회식장소가 끝나자 사쿠이가 한잔 더 하자고 하기에 둘이서 어느 이자카야(居酒屋)에 들어갔다.

사쿠라이는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발레리나처럼 체격이 쪽 빠진 이쁜 여자였다.

이 말 저 말 나누다가 그녀가 남편의 불륜 때문에 작년에 이혼했고 여덟 살 난 아들은 남편이 부양하기로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작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는 그녀는 잠시 요코하마 중구(中区)에 있는 어머니 집에서 산다고 했다.

그 날은 아무 일도 없이 헤어졌다.

그러던 아내가 마트에서 일하는 첫날인 지난 토요일 점심무렵이었다.

아내가 아침에 끓여놓은 장국을 덥혀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녀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에요.통화 불편하잖아요?”

“괜찮습니다.”

“저 오늘 츠루미에 이사 왔어요.저의 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을까요?”

아내가 오늘부터 일하는 마트도 츠루미(鶴見)에 있기에 오랜만에 츠루미에도 가볼 겸 집이 어딘가고 물었다.

“동구 광장 맞은켠 낮은 언덕으로 200미터 쯤 올라오시면 길 오른쪽에 보라색 ××맨션이 보여요.503호실이에요.맛있는 걸 해놓고 기다리겠어요.” 

소카(草加)센베이((일본유명과자)를 사가지고 츠루미역 동구를 나온 나는 아내가 일하는 마트가 어느 쪽에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오셨어요?센베이를 사오셨군요.고마워요.”

문을 열고 센베이를 받는 그녀의 젖은 웨이브머리에서 샴푸냄새가 물씬 풍겨왔다.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않아 젖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연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걸 보아 금방 샤워를 마친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떻게 이런 차림새로 손님을 맞이한단 말인가?

“어서 들어오세요.”

집에 들어서니 작은 원룸이었다.

“다른 사람은 없어요?”

그녀와 사이가 가까운 키무라 여직원과 다른 직원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누구랑 오는가고 묻지도 않은 나였다.

“다른 사람한테는 알리지 않았어요.오늘은 우리 둘이에요.어서 앉으세요.” 

밥상에 스시와 사시미,구운 소고기와 과일모듬 그리고 마른 안주들이 놓여있었다.

“오늘 위스키 마실까요?”

“아닙니다.제가 맥주를 사올게요.”

맥주 사러 밖에 나간 척했다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전화를 하고 집에 돌아갈 작정이었다.

“맥주도 사놓았어요.그럼 맥주를 마시죠.”

그녀가 병맥주와 맥주잔을 가져오기에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부인님은 오늘 몇 시에 퇴근해요?”

그 날 저녁 부인이 어디서 일하는가 묻기에 스시점을 그만둔 아내였지만 집 부근 스시점에서 일한다고 대답했었다.오늘부터 츠루미에 있는 마트에서 일한다고 말하려다가 저녁 다섯 시에 퇴근할 거라고 대답했다.

맥주를 따른 그녀가 잔을 부딪쳤다.

“원샷해요.”

그녀가 잔을 굽내자 나도 잔을 비웠다.

“내가 한잔 따르죠.”

맥주를 따르고 나는 집이 참 멋지다고,이사 온 걸 축하한다고 그녀와 잔을 부딪치고 다시 건배했다.

“그래도 거의 1년간은 어머니와 같이 있어 좋았는데 오늘부터는 혼자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적적하고 쓸쓸하네요.”

이럴 때는 어떻게 위안해야 하는가?위안할 것도 없잖은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다시 맥주를 따랐다.

“요리들을 많이 드십시요.이러다가 취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마시고 싶어요.이 소고기를 드세요.스키야키소스를 가져올까요?”

“아닙니다.”

“자,이번에도 건배해요.”

천천히 마시자고 말하려는데 밥상 위에 올려놓은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어머니......근심 마세요......오늘은 손님이 있어요.내일 오전에 놀러오세요.”

그녀가 전화를 마치자 나는 시계를 보며 오늘 약속을 그만 까먹었다고 말하고는 제꺽 자리에서 일어났다.더이상 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미안합니다.지금 가봐야겠습니다.”

“무슨 약속이 그리도 급한가요?”

문을 열려는 나의 허리를 그녀가 뒤에서 끌어안았다.나는 천천히 그녀의 두 팔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그녀를 마주보았다.

“사쿠라이상,이러면 안 됩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저도 알아요.하지만 오늘은 킨(金)상을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아요.제가 나쁜 여자로 보여요?우리 오늘......”

나는 문을 콱 열고 나와버렸다.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곧바로 집에 돌아왔다.

장국을 다시 덥혔다.보글보글 끓는 곱돌장국에 아내가 만든 김치와 짠지들을 곁들여 따뜻한 밥을 먹으니 스시고 사시미고 구운 소고기고 뭐고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더 없을 것 같았다.

아내가 이 일은 모를 것이다.

그럼 엊저녁 러브샷 일로 화를 낸 것일까?......

 

 

 

2

 

봄볕이 따스한 4월 초였다.

미화는 전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엊저녁 일을 돌이켜보았다.

어제 오후 남편이 회사동료들과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하기에 아르바이트를 일찍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손님을 집에 청하기는 처음이었다.퇴근한 남편이 곤도와 후지하라라는 남자 두 명과 사쿠라이라는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정성껏 만든 요리들로 술상을 차렸다.

술상이 끝나서 손님들을 바래주러 밖에 나간 남편이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질 않았다.

손님들을 전철역까지 바래주는 것일까?

설거지를 마친 나는 베란다에 가서 전철역으로 가는 서쪽 큰길을 내다보았다.저 앞 뉘집 담장 옆에서 두 남녀가 포옹하고 있는 모습이 가로등불빛에 안겨왔다.

다름 아닌 남편 김진우와 사쿠라이요시코라는 여자였다.

순간,나는 정수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았다.

더이상 보기 두려워졌다.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나는 벽을 짚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하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천정을 퀭하니 올려다보며 사쿠라이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녀의 권고에 나는 마지못해 남편 옆에 잠간 앉아있었다.그녀는 술상에서 남자들과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성격인지 매너인지는 몰라도 남자들의 비위와 술상 분위기를 잘 맞추는 여자임은 틀림없었다.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자기가 다시 술을 따르겠다면서 차례로 술을 따르더니 이번엔 러브샷하자며 남편의 목에 팔을 감았다.나는 러브샷하는 둘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어 요리를 더 가져오겠다고 말하고는 주방에 들어가 한참 서 있었다.

아무리 성격이 쾌활하고 담대한 여자라 해도 어떻게 내 앞에서 다른 남자도 아닌 남편과 러브샷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회사동료들이 회식할 때는 이럴 수도 있잖을까 생각을 고치고 요리들을 더 가지고 다시 방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이번엔 밖에 나가서 방탕한 쇼를 연출하다니?헤어지기 그리도 아쉬울까?이것들이 애인사이가 아닐까?

남편이 들어오면 밖에서 뭘 했는가,사쿠라이와 무슨 사이인가 따져묻고 싶었지만 술을 마신 남편에게 오늘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두고보리라 속으로 윽벼르면서 방전등을 꺼버렸다.

20분이나 지나서야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

“오늘 수고했소.벌써 자는 거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옷을 벗고 옆에 누운 남편이 안으려고 하자 피곤한 척 돌아누웠고 몸을 더듬어오자 잠결인 척 손을 밀어냈다.언젠가 전차에서 어떤 치한이 엉덩이를 만지작거리기에 손을 탁 쳐버리고 홱 돌아서서 뭘 하는가고 꽥 소리도 질렀지만 남편이 더 건드리지 않기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오늘 아침,남편이 뒤척이는 바람에 이불이 침대에서 흘러내렸다.여느 때와 달리 남편의 몸을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던 나는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어 남편의 잔등을 찰싹 소리나게 때려놓았다.

“그 여자 당신 몸 봤지?”

남편이 눈도 뜨지 못한 채 얼떨떨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 여자라니?”

“그 여자 있잖아.그 여자 당신 몸 알지?”

“아침부터 무슨 허튼소리이고 반말이요?”

“그럼 아직 몰라?”

“뭐욧!”

남편이 버럭 성을 내자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속이 좀 풀린 것 같았다.남편이 성내는 걸 봐선 둘이 아직 애인사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엊저녁에 서로 끌어안고 있는 걸 본 이상 여기서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무슨 방법을 대서라도 둘의 관계를 꼭 알아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알아낼 수 있을까?혹시 곤도와 후지하라는 언녕부터 알고 있은 게 아닐까?

그렇다고 회사를 찾아가서 곤도와 후지하라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처음에 요리들을 날라다주면서 어디서 일하는가 웃으며 물어보기에 그저 스시점에서 일한다고 대답했다.그녀에게 남편은 어디서 근무하는가,애는 몇 살인가 이것 저것 물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문득 그녀가 츠루미에 살고 있다던 말이 생각났다.

츠루미는 가와사키(川崎)에서 한 정거장 거리였다.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트가 면바로 츠루미역 동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그녀의 집이 츠루미역 동구 쪽에 있는지 서구 쪽에 있지는 몰라도 전철역 부근에서 만날 날이 꼭 있을 것이다.만나기만 하면 붙잡아놓고 추잡한 짓거리를 그만하라고 울면서 손을 싹싹 빌 때까지 훈계할 것이다.그 날이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퇴근하면 요코하마역에서 같이 전차를 타고 한몸처럼 붙어있다가 세 정거장인 츠루미역에서 먼저 내리는 그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다시 화가 치밀어올랐다.

대충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나오니 일곱 시가 거의 되었다.

출근시간이 여덟 시이기에 좀 있다가 집을 나가야 했다.

나는 이불을 꼭 덮고 돌아누워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죄인처럼 취조하려다가 냉장고에서 우유와 빵을 꺼냈다.괘씸한 남편 때문에 아침을 굶을 수는 없었다.

아침을 먹고 간단히 화장을 하고 나서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마트는 종업원 급식이 없기에 점심휴식시간에 집에 왔다가기도 불편해서 매일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다시 주방에 들어가 도시락통에 엊저녁에 남은 나머지 밥을 몽땅 퍼담고 요리들도 듬뿍 담았다.남편이 일어나면 몇 젓가락 밖에 남지 않은 요리들만 전자레인지에 덥혀먹겠지 생각하면서 장국은커녕 아침밥도 짓지 않고 집문을 나섰다.

 

 

 

3

 

토요일 아침이라 전차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자리를 찾아앉은 미화는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은행에 근무하던 나는 ××대학 경영학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요코하마 모 증권회사에 취직한 남편의 가족요청으로 3년 전에 일본에 왔다.남편이 몇 년 후에 딸애를 데려오자고 하기에 일곱 살 난 딸애는 본가집에 맡겨두었다.딸애는 올해 열 살,다음 학기면 소학교 3학년생인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일본에 온 이튿날 남편이 나를 데리고 요코하마에 갔다.나는 장에 나온 촌닭처럼 어리벙벙해졌다.아찔하게 치솟은 초고층빌딩들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빙빙 도는 듯한 현기증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실북 나들 듯하는 차량들을 보니 동서남북도 분간키 어려웠다.일본에 오기 전에 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도 배웠지만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 너무 빨라서 영어로 말하는지 일본어로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행인들의 발걸음도 너무 빨라서 일본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저리도 바쁠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일본은 모든 절주가 다 빨라 보였다.여기서 살면 수명이 짧아지는 게 아닌가고 웃으며 남편에게 물었더니 일본인들의 수명이 세계에서 으뜸이라기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한 달 후부터 차츰차츰 여기 생활환경과 언어환경에 적응되기 시작했다.남편이 소개한 도시락점과 스시점 아르바이트는 각각 1년 남짓씩 하다가 그만두었다.도시락점은 후에 들어온 두 일본여인이 첫날부터 내가 못마땅한 듯 이러쿵저러쿵 군소리하면서 무턱대고 중국을 얕잡아보기에 한바탕 욕설을 퍼붓고 즉석에서 그만두었고 스시점은 새로 온 주방장이 자꾸 집적거리더니 어느 날 저녁 혼자 남아서 청소를 하는 나를 끌어안으려고 하기에 장대걸레로 콱 밀어놓고 이튿날 점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전화를 했다.아르바이트는 다시 구해야 했다.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쉽다고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구하기 여간 힘들지 않았다.마트 아르바이트는 한주일 전에 절로 구한 것이였다.상품포장을 하고 상품들을 날라다가 여러 코너에 배열해놓는 일인데 이 일도 쉬운 게 아니였다.

츠루미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에 미화는 정신을 차리고 전차에서 내렸다.

마트를 향해 걸어가면서 거리를 둘러보았더니 오늘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하던 벚꽃은 마치 며칠 후면 스러질 듯이 활짝 피어있었다.

벚꽃을 보고 있노라니 부지중 고향의 살구꽃이 떠올랐다.

나와 남편은 한 고향은 아니지만 모두 작은 진 출신들이었다.후에 ××시에서 서로 알고 결혼하고 딸애도 보았는데 딸애가 한 돐이 지나서 남편이 일본에 갔다.연애할 때 내가 옛집 마당에 살구나무가 있었다고 했더니 남편도 옛집 마당에 살구나무가 있었다고 했다.내가 근무하는 은행 주위에 가로수로 심어놓은 살구나무들이 있었다.은행 정문 바로 앞 살구나무 옆에서 남편이 살구꽃이 필 때 결혼식을 올리자며 나에게 결혼반지를 선물했고 일본에 갔다가 중국에 놀러왔을 때는 그 살구나무 옆에서 어린 딸애를 안고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곤 했다.살구꽃이 피는 봄철이었는데 살구꽃이 벚꽃보다 더 이쁘다고,벚꽃을 볼 때마다 살구꽃이 그립다고 말했다.그래서 그 살구꽃 옆에서 결혼식 날 남편과 찍은 사진과 남편이 중국에 놀러왔을 때 딸애와 셋이서 찍은 가족사진은 지금도 사진첩에 소중히 보관해두고 있었다.

이 몇 년간은 내가 왜서 좋은 직업 버리고 일본에 와서 이따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나 당장이라도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활 날아가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고 딸애가 너무 보고 싶어 중국에 전화를 하고는 엉엉 소리내어 울 때도 있었다.그럴 때마다 남편이 위안해주고 힘이 되여주었기에 남편 한사람만 믿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런데 남편이 지금 나를 배신하고 일본여인을 좋아하고 있잖은가?

사쿠라이(桜井),그러고 보니 벚꽃과 우물이 아닌가!

남편이 이젠 살구꽃보다 벚꽃을 더 좋아하는 것인가?벚꽃이 피어있는 우물가에서 나몰래 우물물도 맛보는 것인가?남자들은 다 이런가?

어느새 마트가 눈앞에 보여왔다.

면접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매일 상냥하게 대해주는 미남인 마트 사장님이 나를 좋아하는 눈치던데 나도 일본남자를 친해볼까?......

 

 

 

4

 

“오하요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엊저녁에는 힘들었겠습니다.”

어제 오후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남편의 회사동료들이 저녁에 집을 방문하기에 좀 일찍 퇴근할 수 없겠는가고 물었더니 그럼 지금 퇴근하라면서 사시미(생선회)세트까지 주던 우치다(内田)사장님이었다.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말을 들으니 얼었던 가슴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미화는 사장님께 다시 인사를 올렸다.

“사장님 덕분에 요리를 갖추기 수월했습니다.정말 고마웠습니다.”

“오늘은 계산대에 나와주세요.직원 한 명이 나오지 못합니다.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계산대에 서기는 처음이었다.대형마트라 계산대가 여섯 개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일본여인들은 지금까지 계산대에 선 적이 없다고 했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오늘 계산대에 선다고 했더니 부럽다며 더 힘내라는 여인들도 있었고 낮은 소리로 수군덕거리는 여인들도 있었다.

사장님이 바코드를 찍는 방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계산대 화면에 나오는 금액을 보고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손님한테 드리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은행에 근무한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다.

아홉 시에 영업이 시작되었다.

비록 앉아있을 시간은 없었지만 한주일간 해왔던 일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매니저가 교대시간이 되었다고 하기에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두 시였다.

미화는 휴식실에 들어가 아침에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고 다시 계산대로 나갔다.헌데 사장님이 계산대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좀 더 휴식하고 나오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리(李)상이 다른 직원들보다 성격이 깐깐하고 빈틈없이 일한다더군요.내일부터 여기서 계속 일해주십시요.”

누구한테서 들은 것일까,아니면 감시카메라로 내가 일하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은 것일까?

“감사합니다.”

사장님이 다른 코너에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미화는 다시 일손을 다그쳤다.

오늘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다.

다섯 시 퇴근시간이 되자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와 큰길을 건너려는데 사장님이 큰길 옆에 세워둔 차에서 내려 집까지 모셔다주겠다기에 전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그랬더니 자기 집이 가마타(鎌田)에 있기에 같은 방향이라며 웃으면서 차에 오르라기에 차에 올랐다.

가마타는 도쿄도(東京都)에 속하는데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와사키에서 한 정거장 거리였다.

미화는 사장님이 나를 데리고 러브호텔에라도 가려는 게 아닐까 가슴을 졸이며 창밖만 주시해보았다.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를 할까요?”

식사라는 말에 미화는 살며시 숨을 내쉬고 부인님이 집에서 기다리지 않는가고 물었다.

“집사람한테 저녁 먹고 집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리상이 저의 가게에서 오래동안 일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달리 생각 마십시요.”

오늘은 늦게 집에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미화는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안 되어 차가 레스토랑이라는 영어간판을 내건 빌딩 앞에서 멈춰섰다.

미화는 사장님을 따라 잔잔한 경음악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사장님이 화장실에 갔다오는 사이에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설치해놓았다.이 시간대에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남편 밖에 없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주문한 사장님이 요리를 더 주문하라고 하자 미화는 이거면 된다고,술은 와인이 좋지 않는가고 묻자 운전하는데 술을 마셔도 괜찮은가고 물었더니 대리기사를 부르면 된다기에 그러자고 대답했다.

웨이트리스가 와인과 요리들을 올리고 멋진 동작으로 와인을 따르자 사장님이 잔을 들었다.

“좋은 가게들도 많겠지만 저의 가게에서 계속 일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자,건배합시다.”

“저를 이렇게 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열심히 일하겠습니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레스토랑 분위기도 좋고 요리들도 맛있고 와인도 맛있었다.

“외국인유학생이 증권회사에 취직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리상의 남편은 참 훌륭한 분이시군요.이력서를 보니 따님이 계시던데 따님은 일본에 데려오지 않아요?”

“몇 년 후에 데려오려고 합니다.실례이지만 사장님은...”

“저는 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이 있습니다.”

“일본에 온 지 3년이 되었는데 일본어를 잘하지 못합니다.미안합니다.”

“아닙니다.발음도 좋으시고 일본어를 잘하십니다.처음 만난 사람은 일본인이라 생각할 겁니다.”

“고맙습니다.제가 한잔 따르겠습니다.”

일본에서의 건배는 중국처럼 술잔을 굽내는 것이 아니였다.

미화는 절반 정도 내려간 사장님의 와인잔에 와인을 조금 따랐다.

“중국 주소와 리상과 남편의 이름이랑 보니 혹시......”

“네,저는 중국 조선족입니다.”

“그렇군요.저의 어머니가 재일한국인이었습니다.일본인인 아버지와 결혼한 겁니다.”

“네?”

미화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도쿄 뿐만 아니라 요코하마와 가와사키에도 재일한국인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머님이 재일한국인이었군요.부인님은 일본인인가요?”

“네,집사람은 일본인입니다.어릴 때 어머니한테서 한국어를 배웠는데 크면서 일본어를 그냥 하다 나니 한국어는 그저 알아들을 정도입니다.작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과 중국에 다녀왔습니다.저도 중국에 가보고 싶습니다.”

“그래요?오늘 사장님을 다시 알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사장님이 웃으며 잔을 마주쳤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사양 마시고 알려주십시요.”

“네.”

“그리고 매니저가 저의 누나입니다.매일 저녁 아홉 시에 퇴근합니다.”

“그런가요?”

미화는 다시 놀랐다.

사장님과 매니저가 그저 같은 성씨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두 분 얼굴이 많이 닮아있었다.매니저는 첫인상부터 좋은 분이었다.오늘 오전에는 에스카레터 옆에서 손님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손님들을 안내하기도 했고 내 옆에 한참 서 있기도 했다.내가 일하는 모습을 사장님이 감시카메라로 살펴보고 있은 것이 아니라 매니저인 누님한테서 들은 것이리라.

와인을 마시며 둬시간 얘기를 나누다가 사장님이 이젠 가자고 하기에 레스토랑을 나왔다.

밖에 나오니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사장님이 택시를 불렀다.

대리기사를 부르겠다고 했는데 왜 택시를 부를까?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자동문이 열리자 미화는 사장님과 같이 뒷좌석에 앉았다.사장님이 대리기사가 늦게 오기에 택시를 불렀다며 집 주소를 묻기에 주소를 알려줬더니 10분도 안 되어 집 부근에 도착했다.택시기사에게 좀 기다려달라고 말하더니 사장님도 같이 내렸다.내일부터 잘 부탁드린다면서 손을 흔들며 다시 택시에 오르는 사장님에게 고맙다고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여덟 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아까는 사장님이 나를 택시에 앉혀가지고 어디로 가려고 할까 다시 두려워했는데 막상 집 부근에서 혼자 내리고 보니 왠지 아쉽고 서운해나면서 기분이 울적해졌다.

밤중에 들어갈 곳은 집 밖에 없었다.

미화는 사장님이 왜 나를 두고 갔을까,왜 어디든지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오늘은 들어가고 싶지 않은 집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5

 

티비를 보던 진우는 아내가 집에 들어서자 웃으며 방에서 달려나왔다.

“오늘은 좀 늦었구만.술 마셨소?”

미화는 눈을 부릅뜨고 남편을 쏘아보았다.

“멋진 남자와 레스토랑에서 술 마셨지.왜 집에 있어?그 여자 집에 안 가?”

“그 여자라니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거요?”

주저하지 말아야 했다.지금 말해야 했다.

미화는 엊저녁부터 마음 속에 억눌러왔던 말을 그냥 반말로 내쏘았다.

“사쿠라이를 말하는 거지.그 여자와 애인사이 맞지?그 여자 그렇게 좋아?”

“오늘은 당신이 참 무섭구만.우리 방에 들어가 얘기하기오.”

방에 들어가 타타미에 앉은 진우는 침대에 걸터앉는 아내를 보고 껄껄 웃었다.

“곤도와 후지하라는 회사선배이지만 동갑이고 사쿠라이는 두 달 전에 다른 회사에서 전근해온 후배요.어제 오후 휴식시간에 곤도가 퇴근하면 요코하마중화가(横浜中華街)에 가서 샤브샤브를 먹자고 하기에 그러자고 대답했소.후지하라가 샤브샤브보다 중국요리가 먹고 싶다고 하자 사쿠라이가 중국요리는 킨상의 부인님이 맛있게 만들 거라고,오늘 부인님의 요리솜씨를 맛보는 것이 좋잖은가 하더군.곤도와 후지하라가 눈치를 살피기에 그럼 퇴근해서 우리 집에 가자고 선뜻 대답하고 당신에게 전화를 한 거요.이젠 츠루미 마트에서 일하는 당신과 츠루미에서 살고 있는 사쿠라이가 서로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요.사쿠라이는 당신보다 두 살 어리오.”

“그 여자 집이 츠루미역 동구 쪽에 있는가요?”

진우는 능청스레 대답했다.

“그건 내가 모르지.”

“그 여자 집에 간 적 없어요?”

“내가 무슨 일로 그 여자 집에 다 가겠소?헌데 왜 반말을 하지 않소?”

미화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 여자 남편은 뭘 하는 사람인가요?”

“모르오.직원들한테서 이혼했다고 들었소.”

“애는?”

“애는 남편이 부양한다더군.”

“그럼 그렇겠죠.가정이 있고 단정한 여자라면 술상에서 러브샷하겠어요?그것도 내 앞에서 다른 남자도 아닌 당신과 말이에요.”

“그러잖아도 러브샷한 자기를 당신이 나쁘게 생각할 거라면서 미안하다며 잘 말해달라더군.”

“평소 술 마실 때도 그 여자가 당신과 러브샷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어제 처음이요.입사해서 한번 회식하고 어제 두번째로 같이 술 마시는데 나도 놀랐지 뭐요.당신 앞에서 미안했지만 러브샷하자는 걸 주인인 내가 안 된다고 거절할 수도 없잖소.”

러브샷 일은 이쯤에서 끝내는 것도 좋을 듯했고 이젠 중요한 걸 물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미화는 물이나 한 모금 마시고 와서 다시 물어보려고 주방에 들어갔다.

쓰레기통 안에 컵라면 한개가 들어있는 걸 보아 남편이 컵라면을 먹은 것 같았다.아침에 조금 남긴 요리들은 랩을 씌운 그대로 식탁 위에 놓여있었고 전기밥가마도 텅 빈 그대로였다.냉장고를 열어보니 햄이며 소세지며 김치며 반찬들도 아침 그대로였다.엊저녁에는 처음에 청주를 마시다가 캔맥주를 마셨다.그럼 동료들이 사온 캔맥주를 다 마셔버리고 온종일 자빠져 자고 있었을까?냉장고 옆에 놓여있는 캔맥주상자를 내려다보니 엊저녁에 남은 캔맥주 세개가 제자리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컵라면 한개로 삼시 세끼를 때울 수는 없잖은가?

오늘 어디에 갔을까?

이것들이 또......

 

진우는 주방에 들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사쿠라이는 월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다.오후에 키무라에게 물었더니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며칠 보살펴야 한다면서 사흘간 청가를 맡았다는 것이었다.

그저께 전화를 걸어온 그녀의 어머니가 어제는 그녀의 집에 놀러갔잖은가?

보나마나 나 때문에 출근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혹시 내가 다시 집을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집을 찾아가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그녀한테서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목요일 오전,그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얼굴색이 안 좋아보였지만 그 일이 없었던 듯이 웃으며 아침인사를 하기에 나도 웃으며 맞인사를 했다.한참 일을 보다가 회사 뒷골목에 있는 덮밥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점심시간이 거의 되자 먼저 회사를 나와 덮밥집에 가서 돈부리덮밥 두개를 시켜놓고 핸드폰을 보는데 그녀가 가게에 들어섰다.

“어머님께서 입원하셨다던데 병세는 괞찮아요?”

“어머니가 입원한 게 아니였어요.그렇게 청가를 맡을 수밖에 없었어요.”

너무나도 솔직한 그녀였다.나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저 때문인가요?”

“아니에요.그 일은 없었던 일로 해주세요.”

덮밥이 올라오자 둘은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퇴근해서 회사 문앞에서 어머니 집에 들러보겠다며 웃으면서 내일 다시 만나자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나는 시름을 활 놓고 퇴근길에 올랐다.

만약 어제 오후 그녀가 아내의 요리솜씨를 맛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에 가자고 대답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그 일은 이미 끝났기에 동료들에게 아내의 요리솜씨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엊저녁에 술상이 끝나서 밖에서 넷이 얘기를 좀더 나누었다.곤도와 후지하라는 멀지 않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곤도와 후지하라가 이젠 가겠다며 자리를 뜨자 그녀와 같이 전철역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멈춰서서 할 말이 있다기에 어느 집 담장 옆으로 다가갔다.

“오늘 킨상과 왜 러브샷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부인님이 보라고 일부러 러브샷한 건 절대 아니에요.제가 요즘 많이 이상해진 것 같아요.부인님이 저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집에 들어가면 부인님께 잘 말해주세요.”

“그건 근심 마세요.”

“저번에는 정말 부끄러웠어요.미안해요.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미 다 지나간 일이고 없었던 일로 하기로 했잖아요.”

집 골목으로 자동차 헤드라이트불빛이 비쳐왔다.그녀가 돌아서자 나도 동네사람들이 얼굴을 알아볼까봐 돌아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차 여러대가 잇따라 지나가는 바람에 한참 말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저를 한 번만 안아줄 수 있어요?”

나는 잠간 망설이다가 그녀를 살며시 껴안았다.   

“이쁜 부인님이 있어 행복하겠어요.저는 행복한 가정을 보면 부러워요.킨상이 앞으로도 그냥 행복하기를 바라요.”

“고맙습니다.사쿠라이상도 좋은 남자를 빨리 만나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아내의 휴일날이면 우리 집에도 놀러오세요.”

“고마워요.”

“이젠 전철역으로 갑시다.” 

나는 그녀를 전철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왔다......  

 

진우는 주방을 살펴보고 베란다에 가서 서쪽 큰길을 내다보았다.

혹시 아내가 여기서 나와 사쿠라이가 포옹하고 있는 걸 보았을까?

오전에 슈퍼에서 오니기리(주먹밥)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곤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테니스를 치자고 하기에 그 길로 테니스장에 갔다가 오후 늦게 집에 들어와 컵라면을 먹고 피곤해서 한잠 자다 나니 다시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아내가 이제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6

 

”거기서 뭘 해요?”

미화는 베란다에 서 있는 남편을 불러서 제자리에 도로 앉혔다.

“오늘은 뭘 먹었어요?”

“아침은 굶었소.밥도 없고 요리도 얼마 없더군.점심은 오니기리를 사서 먹었고 곤도와 테니스를 치고 집에 와서 저녁은 컵라면을 먹었소.이제야 남편이 뭘 먹었는가 근심되어 물어보는 거요?전화도 받지 않더구만.”

“그건 그렇고 엊저녁에는 왜 늦게 들어왔어요?밖에서 뭘 했어요?”

“넷이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사쿠라이를 전철역까지 데려다주었소.곤도와 후지하라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테니스장 부근에 살고 있소.” 

“사쿠라이와는 무슨 일이 없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겠소?”

“내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오기 전에 솔직히 말해요.”

“그 물이나 주오.”

미화는 들고온 물컵을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진우는 단숨에 물을 벌컥벌컥 다 들이키고 허허 웃었다.

“그래도 술보다 이 물이 맛있군.”

“그 물보다 우물물이 더 맛있잖아요?”

“우물물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진우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벚꽃이 피어있는 우물가를 잘 알잖아요.그 우물 안의 물 말이에요.”

“아,벚꽃이 아닌 살구꽃이 피어있는 우물가를 말하는군.연애할 때 우리 집 부모들에게 인사하러 갔다가 살구꽃이 피어있는 우물가에서 내가 길어올렸던 그 우물물을 말하는 것이구만.수돗물보다 시원하고 정말 맛있다고 당신도 말했지 뭐요.”

“핑계를 대겠어요?”

“핑계라니?”

“사쿠라이를 말하는 거에요.벚꽃과 우물이 아닌가요?”

“사쿠라이라?아,당신은 상상력도 정말 풍부하구만.헌데 우물물이 더 맛있잖은가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요?”

“그냥 모르는 척할 거에요?왜 사쿠라이를 끌어안고 있었어요?내가 못 본 줄 알아요?그 우물물이 맛있던가,물맛이 좋던가는 뜻이에요.”

진우는 물컵을 내려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우물물이고 물맛이고 함부로 말하는 거요?나와 사쿠라이는 동료사이일 뿐이지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요.”

“내가 어떻게 믿어요?”

“사쿠라이는 보기와는 달리 불쌍한 여자요.작년에 이혼한 후에 아버지도 돌아가셨다오.잠시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는데 츠루미에 이사 와서 얼마 안 되어 어머니마저 병원에 입원해서 출근도 못하고 있다가 목요일부터 출근했소.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사쿠라이가 어제 우리 집에 와서 당신이 만든 맛나는 요리를 먹고 술도 마시니 너무 기뻐서 나와 러브샷했다고 생각하오.탤렌트처럼 이쁘고 요리도 잘한다며 당신을 칭찬하더구만뭐.”

남편의 말이 그렇듯하게 들렸지만 미화는 바투 들이댔다.

“그만 해석하고 왜 끌어안고 있었는가는 물음에나 대답해요.”

“그럼 이 물이나 더 가져다주오.”

남편이 물컵을 건네주자 미화는 물컵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 사이에 어떻게 대답할까 꿍꿍이를 꾸미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빨리 말해요.”

진우는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건 내가 잘못했다면 잘못한 거요.곤도와 후지하라가 먼저 간 후에 저 앞 뉘집 담장 옆에서 사쿠라이와 얘기를 좀 나누었소.내가 좋은 남자를 빨리 만나라고,당신의 휴일날이면 우리 집에도 놀러오라고 말했더니 고맙다면서 어깨를 들먹거리며 흐느끼는 게 아니겠소?불쑥 이혼한 누이동생이 생각나더구만.그래서 살며시 껴안고 어깨를 다독여주었소.사쿠라이가 여자로 보이지 않더구만.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당신한테 정말 미안하오.”

“진짜 그런 일이었어요?이제 확인해봐야겠어요.”

“사쿠라이의 핸드폰번호를 알려줄 테니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보오.”

“둘이 짜고들었는지 누가 알아요?오늘은 내 옆에서 자지 말아요.거기에 이불을 펴놓고 자요.”

진우는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럴게.오늘 여기서 잘 테니 당신은 침대서 잘 자오.그리고 나와 사쿠라이가 애인사이라면 내가 사쿠라이를 집에 데려올 수 있겠는가를 잘 생각해보오.내가 그런 사람인가는 당신이 알아서 판단하오.까짓 일 가지고 정말 기분 상하게 노는구만.”

진우는 이불장에서 이불과 요를 꺼내 타타미 위에 펴놓고 돌아누웠다.

미화는 잠간 생각에 잠겨있었다.

어쩌면 남편의 말도 맞는 것 같았다.

애인사이라면 그녀를 집에 데려올 수 있을까?애인은 숨겨둔다는 말도 있잖은가?

지금까지 남편이 나한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오늘 내가 듣기 좋게 과장해서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누이동생이 생각나서 사쿠라이를 살며시 껴안았다는,사쿠라이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는 남편을 이해할 만도 했다.시누이도 남편이 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했고 한 돐이 안 된 아들은 남편이 부양하기로 했다.중국에 놀러왔을 때 갓 이혼하고 남방도시로 떠나가는 누이동생을 공항에서 껴안고 눈물을 흘리던 남편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 것일까?

아니,그런 광경을 본 여자들은 다 나처럼 생각할 수도 있잖은가?

침대에 걸터앉았던 미화는 타타미에 내려앉았다.

“일어나요.우리 얘기 좀더 나눠요.”

진우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나 앉았다.

“왜?얘기 끝나면 같이 자자구?”

“좋은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오늘 거짓말을 한 게 아니죠?”

“내가 언제 당신한테 거짓말을 했소?”

“그럼 모두 사실이란 말이죠?”

“암,사실이구말구.”

“지금 사쿠라이한테 전화를 해보겠어요.” 

미화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액정에 부재중 전화 세 통이 현시되어있었다.모두 남편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남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통화버튼을 누르는 척하다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왜 전화를 하지 않소?”

전화를 해서 확인하려는 게 아니였다.남편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중떠보려는 것이었다.

미화는 아닌 보살을 하며 남편을 슬쩍 흘겨보았다.

“밤중에 전화를 하겠어요?”

“그럼 내일 전화를 해보오.내 말을 믿거나 말거나 당신 마음 대로 하오.”

“한가지만 더 물어볼게요.당신은 벚꽃을 좋아해요,아니면...”

“살구꽃을 좋아하지.”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우는 앞질러 대답했다.

“오늘은 이만 됐어요.여기서 잘 자요.”

아내가 욕실에 들어가자 진우는 이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 아내한테 샛빨간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아내의 속을 풀어주려면 이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둘러대야 아내도 동료인 사쿠라이를 나쁜 여자로 오해하지 않을 게 아닌가.그리고 사소한 일을 가지고 가정불화를 일으킬 필요는 없잖은가.금슬 좋은 부부사이로 다시 돌아가야 하잖은가!

다른 남자라면 오늘 어떻게 말했을까?

그 날 사쿠라이의 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내 앞에서 당당할 수가 없었다.

사쿠라이(桜井),한자 뜻풀이를 하면 아내 말 대로 벚꽃과 우물이 맞는데 아내 입에서 우물물과 물맛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천만뜻밖이었다.

아내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런 말까지 다 했을까?어느 여자가 남편이 바람 피우는 걸 좋아하겠는가?

일본에 온 지도 어느덧 8년,3년 전에 일본에 온 아내가 지금 얼마나 고생하는가를 모르는 내가 아니지.이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좋아할 내가 아니지.

벚꽃과 살구꽃?

물론 살구꽃이 벚꽃보다 더 이쁘지!

언제 봐도 살구꽃이 벚꽃보다 더 아름답지!

아,살구꽃,살구꽃...

진우는 스프링처럼 탄력있게 몸을 일으켰다.

창문 옆 책장 안에 있는 사진첩에서 사진 두 장을 꺼내가지고 다시 이불 위에 앉아 사진을 한참동안 눈여겨보았다.

오늘 따라 고향의 살구꽃이 무척 그리워났다.

다른 사람들도 벚꽃보다 살구꽃을 더 좋아하는지는 몰라도 나와 아내는 살구꽃에 애틋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나와 아내는 어릴 때부터 마당의 살구꽃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렸고,살구꽃이 피는 봄철에 결혼식을 올렸고,결혼식 날 아내가 근무하는 은행 정문 앞에서 아내의 머리에 살구꽃을 꽂아주고 기념사진도 찍었고,중국에 놀러갔을 때도 살구꽃 옆에서 딸애 소연이와 셋이서 가족사진도 찍었다.

살구꽃을 사랑하는 부부여서인지 딸애도 살구꽃이 피어나는 화창하고 아름다운 봄날에 태어났잖은가.

오늘은 소연이가 더욱 보고 싶었다.

헌데 욕실에 들어간 저 여자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7

미화는 샤워기를 틀어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까 집 부근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사장님이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만 나를 집이 아닌 러브호텔에 데리고 갔더라면 나는 거절했을까,아니면...

남편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쿠라이를 다시 만나면 그저 예의적인 인사만 하자.그녀도 나를 만나면 쑥스러워할 테니깐 우리 집에 놀러오라는 말도 하지 말자.그리고 사장님과도 이젠 같이 식사를 하지 말자.사장님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재일한국인이었기에 내가 자기 가게에서 오래동안 일해주기를 바란 게 아닌가.여하튼 사장님은 고마운 분이시다......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미화는 부드러운 어조로 남편에게 물었다.

 “그 사진은 왜 꺼냈어요?”

진우는 수건을 머리에 감싼 아내를 한심하다는 듯이 힐끗 올려다보았다.

“살구꽃이 그리울 때면 이 사진 두 장을 보는 나를 아직도 모르는구만.헌데 오늘은 누구랑 같이 저녁 먹었소?”

“저......”

“멋진 남자와 레스토랑에 갔다고 했지.멋진 일본남자들을 많이 친하오.친해도 반드시 내가 모르게 친해야 하오.발각되기만 하면 그땐 끝장이오.”

미화는 얼굴이 화끈 뜨거워났다.

“오늘 사장님이 여러분들이 수고한다면서 몇 명 동료들을 청했어요.식사를 하면서 사장님의 어머니가 재일한국인이었다는 걸 알았어요.사장님은 어려서 어머니한테서 한국어도 배웠다는데 지금은 한국어를 알아들을 정도라 하더군요.”

“아버지는 일본인이겠군.”

“네.”

“아버지가 일본인이니깐 그럴 수도 있겠지.사장님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우리 소연이를 일본에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애들이 너무 어려서 일본에 오면 우리말을 잃기 때문이오.도쿄에 있는 나의 친구 영호와 당신 친구 금희의 애들도 이젠 일본어 밖에 할 줄 모르잖소?애들이 우리말을 잃으면 안 되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서 미화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딸애를 곁에 두고 싶지만 어린 나이에 데려왔다가 앞으로 일본어 밖에 할 줄 모르면 어쩌나 근심되어 남편을 재촉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연이가 이젠 열 살,다음 학기면 소학교 3학년생이니깐 일본에 와도 우리말은 영원히 잃지 않겠군.이 몇 년간은 중학교 조선어문 교원으로 퇴직한 장인과 장모님께서 소연이를 키우시느라 정말 수고 많았소.”

“그럼 소연이를 언제 데려오자구요?”

미화는 드라이기를 화장대에 내려놓고 남편과 다시 마주앉았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당신 결정에 따를게요.”

“그럼 이번 학기가 끝나면 데려오는 걸로 하기오.소연이를 데려오는 수속을 밟을 때 장인과 장모님도 같이 요청할 생각이요.두 분께서 유람도 하시고 온천욕도 하시면 좋을 것 같구만.”

“고마워요.”

“나한테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마오.다른 남자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오.”

“그건 무슨 말씀이에요?”

미화는 남편이 혹시 베란다에서 아까 택시에서 내리는 두 사람을 본 게 아닐까 속이 꿈틀해났다.

진우는 아내를 마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농담도 못하오?”

“이제부터 그런 농담은 하지 말아요.제가 그런 여자 아니라는 걸 잘 알잖아요.”

“당신도 내가 꽃중에서 살구꽃을 제일 좋아한다는 걸 잘 알잖소.지금도 마찬가지요.다른 꽃에 곁눈 파는 내가 아니니깐 시름 놓소.”

미화는 시름이 놓였다는 티를 내지 않고 인차 화제를 돌렸다.

“오늘 테니스는 잘 쳤어요?”

“참 오랜만이었소.테니스 규칙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데도 룰이 있는 거지.”

“그렇죠.부부간이 살아가는 데도 룰이 있는 거죠.서로 반칙은 범하지 말아야 하고 원칙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꼭 지켜야 하는 거죠.”

“당신 오늘 참 이쁘구만.”

“어제는 미웠어요?”

“어제도 이뻤지.수고 많았소.앞으로 다시는 회사동료들을 집에 청하지 않겠소.일본인들이 왜 집에 손님을 청하지 않는가를 알게 되었소.”

“친구들이나 귀한 손님들은 집에 청할 수도 있죠.”

진우는 창문 너머 서쪽 밤하늘을 바라보며 서글프게 웃었다.

“헌데 몇 년 전부터 소연이와 살구꽃이 필 때면 간다고 했는데 소연이가 나를 거짓말쟁이 아빠라고 하지 않을까?”

“다음 학기에 소연이를 데려오면 되잖아요.소연의 생일이 다가와요.그 때 제가 잘 말할게요.일본에서 살아도 고향의 살구꽃은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피어있을 거에요.”

“그렇구말구.아,오늘은 벚꽃 때문에 괜히 진땀을 뺐구만.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에 봉착할 때도 있고 부부간에 서로 의심할 때도 있는가 보오.부부간은 서로 믿고 존중하면서 살아야지.”

“맞아요.우린 영원히 사랑하는 부부죠.어제 일은 그만 잊겠어요.”

“고맙소.우리 제자리로 돌아왔구만.”

“호호호...”

“하하하...”

훈훈한 봄바람이 솔솔 불어들어오는 방안에서 다정한 부부간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박명선

길림성 용정시 출생.연변대학 일본어학부 졸업.요코하마국립대학 교육학 석사과정 졸업.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 회원.중단편소설 다수 발표.현재 광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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