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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11분》

《11분》 (련재15)
2015년 01월 22일 20시 53분  조회:1537  추천:0  작성자: 세계명작
또다시 침묵, 이번엔 마리아가 말할 차례였다. 그녀가 그를 도와주지 않았던것처럼 그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직업녀성으로서의 날 원하나요?》
《당신이 원하는대로의 당신을 원해요.》

아니, 그는 절대로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되였다. 그것은 그녀가 간절히 듣고싶어하던 대답이였으니까. 또다시, 지진, 화산폭발, 폭풍우, 이제 함정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해질것이다. 그녀는 그를 진정으로 가져보지 못한채 잃고말것이다.

《마리아, 가르쳐줘요. 아마도 그것이 날 구하고, 당신을 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삶을 되찾게 해줄거요. 당신 말이 맞소. 당신보다 겨우 여섯살 우이지만 난 이미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했어요. 우리는 각자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죠. 하지만 우린 둘 다 절망에 빠져있어요. 우리가 평화를 누릴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함께 있는거예요.》

그는 왜 이런 말을 하지? 그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동시에 사실이였다. 단 한번 봤을뿐이지만 그들은 벌써 서로를 필요로 하고있었다. 상상해보라, 사정이 이럴진대 만약 그들이 계속 만난다면 어떤 재난이 벌어질지를! 마리아는 령리한 녀자인데다 책을 읽고 인간을 관찰하며 수개월을 보냈다. 물론 그녀에게도 삶의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령혼을, 자신의 《빛》을 찾아야 하는 령혼을 가지고있었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지겨웠다. 브라질로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는것도 흥미로운 도전이긴 했지만 여기서 배울수 있는것들을 아직 다 배우지 못했다. 랄프 하르트는 많은 장애를 극복한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아가씨, 창녀, 너그러운 어머니에게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청하고있는것이다.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

다른 남자들도 그녀앞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했다. 많은 남자들이 발기가 되지 않아 괴로워했고 어떤 남자들은 어린애처럼 취급받기를 원했고 또 어떤 남자들은 그녀가 자기 안해였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안해에게 여러명의 정부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것만으로도 흥분이 됐기때문이다. 아직 《특별손님》을 만난적은 한번도 없지만 마리아는 인간의 령혼속에 거대한 성적환상의 저장고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중에서 《날 여기서 먼 곳으로 데려가줘》라고 부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대로 그들은 하나같이 마리아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했다.

그들이 가고나면 돈이 쌓이고 기운은 빠졌지만 그 남자들이 그녀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정 사랑을 갈구한다면 섹스는 그 갈구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면 그녀는 과연 어떤 취급을 받고싶어할가? 첫 만남때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할가? 그녀는 진정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랄가?

《선물을 받고싶어요.》
마리아가 말했다.

랄프는 어리둥절했다. 선물? 그는 관례를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화대는 이미 택시안에서 지불했다. 그녀는 뭘 말하는걸가?
마리아는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이 한 남자와 한 녀자가 느껴야 하는것을 리해했음을 때달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거실로 데려갔다.

《침실에는 올라가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등을 몇개만 남겨두고 끄고서 양탄자우에 앉았다. 그리고 그에게 마주보고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거실에 있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불을 피워요.》
《이 여름에 불은 뭐 하러…》

《불을 피워요. 당신은 오늘밤 내가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나가길 원했어요. 내가 지금 하고있는게 바로 그거예요.》
그녀는 그가 또다시 그녀의 《빛》을 보길 바라면서 단호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그것을 본것이 분명했다. 곧바로 정원으로 나가 비에 젖은 장작 몇개를 들고 와 쌓고 신문지에 불을 붙여 그우에 올려놓았으니까. 그리고 그는 위스키를 가지러 부엌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마리아가 말렸다.

《내가 지금 뭘 마시고싶어하는지 아세요?》
《아뇨.》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을 념두에 두세요. 그 사람을 생각하세요. 그 사람이 위스키를 원하는지 아니면 진이나 와인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한테 뭘 원하는지 물어보세요.》
《뭘 마시고싶어요?》
《와인이요. 당신도 와인을 마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와인 한병을 가지고 왔다. 그 순간 불꽃이 이미 장작을 핥고있었다. 마리아는 켜져있던 나머지 등을 모두 껐다. 장작불꽃이 살롱을 비추었다. 그녀는 상대방을 인정하는것, 그가 거기 있음을 아는것, 그것이 관계의 첫걸음이라는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는듯이 행동했다.

그녀가 가방을 열어 며칠전에 수퍼마켓에서 산 볼펜을 꺼냈다. 사실 물건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걸 드릴게요. 농장경영에 관한 생각들을 메모하는데 필요할것 같아 샀어요. 쓴지 이틀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지쳐서 더는 못할것 같을 때까지 공부했죠. 내 땀, 집중력, 의지가 묻어있어요. 이걸 당신께 드리고싶어요.》

그녀는 볼펜을 그의 손바닥우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당신이 갖고싶어할 물건을 사주는 대신 나에게 진짜 나에게 속하는 물건을 당신께 드리는거예요. 선물이죠. 나와 마주보고있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시, 그 사람 가까이에 있는것이 나한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는 방식이예요. 당신은 이제 내가 당신에게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넘겨준 나 자신의 일부를 소유하는거예요.》

랄프가 일어나 서가로 가서는 뭔가를 가지고 와 마리아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 선물로 받은 전기기차의 객차예요. 절대 나 혼자서는 갖고 놀지 못했죠. 아버지는 이게 미국에서 수입한, 아주 비싼 장난감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거실 한가운데에 철로를 설치해줄 때까지 기다릴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오페라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덕분에 이 기차는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지 못한 대신 지금까지도 말짱한 상태로 남아있죠. 난 철로, 기관차, 집들, 그리고 사용설명서까지 모두 창고에 처박아버렸어요. 그 기차는 내것도 아니고 내가 자주 갖고 놀지도 않았으니까. 만약 그것이 내가 선물로 받았던, 그리고 내가 지금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다른 장난감들처럼 망가져버렸다면! 파괴하려는 열정 역시 아이가 세상을 발견하는 방식이요. 그런데 이 말짱한 기차만 보면 그게 너무 비쌌기때문에, 아버지에겐 따로 할 일이 있었기때문에 아니면 아버지가 철로를 조립함으로써 아들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것을 두려워했기때문에 내가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돼요.》

마리아는 벽난로의 불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알수 없는 어떤 감정이 일어났다. 그건 와인때문도 포근한 분위기때문도 아니였다. 그건 선물을 주고받았는 때문이였다.

랄프 역시 불꽃을 향해 돌아앉았다. 그들은 불꽃이 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그들은 와인을 마셨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거기 함께 있었다. 그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에도 말짱하게 남아있는 기차들이 아주 많아요.》
마침내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그중 하나가 내 마음이예요.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철로를 조립해줄 때에만 그것을 갖고 놀수 있었죠. 그런데 그건 늘 때가 맞지 앉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사랑했어요.》
《그래요, 난 사랑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 너무나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선물을 달라고 했을 때 난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버렸어요.》
 
《나로선 리해할수 없는 얘기로군요.》
《어렵지 않아요. 난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한가지 깨달았어요. 그걸 당신에게 가르쳐드릴게요. 선물은 당신에게 속하는 물건을 주는거예요. 중요한 뭔가를 요구하기전에 줘야 해요. 당신은 내 보물을 가졌어요. 내 꿈들중 몇가지를 쓴 볼펜을요. 그리고 나는 당신의 보물을 가졌어요. 당신이 누리지 못한 어린 시절의 한부분인 객차를. 난 이제 당신 과거의 일부분을 지니고있고, 당신은 내 현재의 약간을 간직하고있어요. 그건 너무나 좋은 일이죠.》

그녀는 그것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이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는듯이, 스스로도 예기치 못한 자신의 행동에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있던 웃도리를 집어들고는 그의 뺨에 키스를 했다. 불꽃에 홀린채, 아마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고있었을 랄프 하르트는 전혀 일어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난 내가 왜 그 객차를 계속 간직하고있었는지 알수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모든게 분명해졌소. 그건 벽난로에 불을 피운 어느날 저녁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였소. 이제 이 집은 훨씬 가벼워졌어요.》

그는 철로, 객차, 기관차, 그리고 기관차에서 연기를 뭉게뭉게 피여오르게 하는 알약들을 다음날 고아원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오래된 희귀품이라 값이 많이 나갈지도 몰라요.》

마리아는 이렇게 말했다가 곧 후회했다. 중요한것은 그런것이 아니라 마음을 앓게 하는 어떤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것이였다.
그녀는 입에서 또다시 엉뚱한 소리가 나오기전에 서둘러 그의 뺨에 다시한번 키스를 해주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여전히 불꽃을 뚫어져라 바라보고있었다. 그녀가 문을 좀 열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다.

랄프가 일어서자 그녀는 브라질의 이상한 미신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브라질사람들은 누군가의 집을 처음 방문하고 그 집을 나설 때 절대로 자기 손으로 문을 열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문을 열면 그 집에 두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된다는 미신때문이였다.

《전 다시 오고싶거든요.》
《우리는 옷도 벗지 않았소. 난 당신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당신을 만지지도 않았소. 하지만 우린 사랑을 나누었어요.》

마리아가 웃었다. 그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래일 코파카바나로 당신을 만나러 가겠소.》

《그러지 말아요. 일주일동안 기다려요. 기다리는게 제일 힘든 일이예요. 난 그 기다림에 익숙해지고싶어요. 당신이 내곁에 없어도 당신이 나와 함께 있다는걸 느끼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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