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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11분》

《11분》 (련재20)
2015년 01월 26일 23시 11분  조회:1333  추천:0  작성자: 세계명작


마리아가 친구로 여기는 사람은 필리핀아가씨 니아밖에 없었지만 평균 서른여덟명의 아가씨가 주기적으로 코파카바나에 드나들었다. 그들이 클럽을 거쳐가는 평균 기간은 최소 6개월, 최대 삼년이였다. 그들은 결혼신청을 받거나 타업소의 스카우트제의를 받아 나가기도 했고 더이상 손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아가씨에겐 밀랑이 다른 곳을 한번 알아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각자의 손님을 존중하고, 정해진 아가씨를 향해 곧장 가는 남자들에게는 유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것이 관례였다. 이를 어기는것은 불공정할뿐만아니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지난주, 콜롬비아아가씨가 가방에서 면도날을 꺼내 세르비아아가씨의 잔우에 올려놓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단골인 은행간부의 초대를 계속 받아들이면 얼굴을 그어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세르비아아가씨는 그건 그 손님 마음이라고, 그가 자신을 선택하면 자기도 어쩔수가 없다고 응수했다.

그날 저녁, 그 손님이 클럽에 들어와 콜롬비아아가씨에게 인사하고는 세르비아아가씨가 앉아있는 테블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함께 음료를 마시고 춤을 추었다. 세르비아아가씨가 《봤어? 그가 날 선택했어!》라고 말하듯 콜롬비아아가씨를 흘끗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너무 심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그 눈길에는 많은것이 담겨있었다. 내가 너보다 더 예쁘기때문에. 지난주에 나와 함께 나갔을 때 좋았기때문에, 내가 더 젊기때문에 그가 날 선택한거야. 콜롬비아아가씨는 잠자코 있었다. 두시간후 세르비아아가씨가 돌아왔을 때 콜롬비아아가씨는 가방에서 면도날을 꺼내여 세르비아아가씨의 귀 근처를 그어버렸다. 깊지는 않게, 위험하지는 않을 정도로. 그날 밤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줄 흉터를 남길 정도로만. 두 아가씨는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고 피가 번졌고 겁을 먹은 손님들은 하나둘 클럽을 떠났다.

경찰이 도착하자 세르비아아가씨는 선반에서 잔이 떨어져 깨지는 바람에 얼굴을 베였다고 진술했다. 코파카바나에는 선반이 없었다. 그것은 침묵의 법칙, 이딸리아 창녀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오메르타(마피아 계통의 조직에서 외부인에 대해 지키는 침묵의 계률)였다. 사랑에서 죽음이 이르기까지, 베른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는 베른가 나름의 해결방식이 있었다. 베른가에는 베른가의 법이 있었다.

경찰도 오메르타를 알고있었다. 그들은 그 아가씨가 거짓 진술을 하고있다는것을 알았지만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녀를 체포해 재판을 하기로 한다면 재판기간동안 그녀를 먹여살려야 할테니 스위스 납세자들에게 부담만 주는 꼴이였다. 밀랑은 신속한 출동에 감사한다고 말하고는 이 모든것이 오해이거나 경쟁업소의 허위제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철수하자 그는 두 아가씨를 불러 자신의 가게에 두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말했다. 요컨대 코파카바나는 가족적인 업소라는거였고(마리아로서는 그 말을 리해하기 힘들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평판이 있다는거였다.(이 말은 그녀를 더욱 더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다툼이란 있을수 없었다. 첫째 규칙은 손님을 존중하는것이고 둘째 규칙은 《스위스은행》처럼 철저히 비밀을 지키는것이였다. 이곳의 고객들은 당좌계정뿐만아니라 생활의 건전성에 따라 선별되는, 은행 고객만큼이나 엄격하게 선별된 신뢰할수 있는 사람들이였다.

드물긴 하지만 화대지불을 거부하거나 아가씨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을 하는 손님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코파카바나를 개장한 이래 이 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밀랑은 받아도 되는 손님과 받지 말아야 할 손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가 어떤 기준에 따라 손님들을 분류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아가씨는 아무도 없었다. 아가씨들은 때로는 그가 잘 차려입은 손님에게 다가가 오늘밤 클럽이 만원이고(텅 비여있는데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거라고(달리 말하면 두번 다시 오지 말아달라고) 말하는것을 보기도 했고 운동복차림에 면도도 하지 않은 남자들을 반갑게 맞으며 샴페인을 권하는것을 보기도 했다. 코파카바나의 사장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수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좋은 거래가 성립되려면 쌍방이 만족해야 한다. 손님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거나 회사에서 요직을 맡고있었다. 코파카바나에서 일하는 녀자들중 몇몇 역시 결혼을 했고 자식이 있었으며 학부형모임에 드나들었지만 직업을 들킬 위험은 전혀 없었다. 학부형들중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본다 하더라도 침묵을 지키지 않을수 없을테니까. 오메르타는 그런 식으로 작동했다.

이곳에는 동료애는 있어도 우정은 없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지 않았으니까. 동료들과 드물게 간간이 나눈 대화에서 마리아는 회한도, 죄책감도, 슬픔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종의 체념과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세상과 대결을 벌이는듯한 묘한 도전의 눈길이 있을뿐이였다. 일주일만 버티면 아무리 신출내기라도 《프로》로 간주되여 결혼을 옹호하고(창녀는 가정의 안정에 위협이 될수 없었다.)일과 시간외의 약속은 잡지 말고 손님이 털어놓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되 자신의 의견을 함부로 피력하지는 말고 손님이 오르가즘을 느낄 때 함께 신음소리를 내고 길에서 경찰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취업카드 유효기간을 넘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정해진 날자에 건강검진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직업의 륜리적 법적 측면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창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은 클럽이 손님들로 북적이지 않을 때에는 늘 마리아의 손에 책이 들려있는것을 보았다. 곧 그녀는 그 그룹내에서 《지식인》으로 통했다. 처음에 다른 아가씨들은 그녀가 어떤 련애소설을 읽고있는지 궁금해 흘끗거리다가 책 주제가 경제학, 심리학, 그리고 최근에는 농장경영 등 심각하고 재미없는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가 차분히 공부를 계속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마리아에겐 단골이 많았다.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도 마리아는 매일저녁 일을 나갔기때문에 밀랑의 신임과 동료들의 시샘을 받았다.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그 브라질아가씨는 야심이 많고 거만하며 오로지 돈버는 일만 생각한다고 수군거렸다. 너희들도 똑같이 돈때문에 여기서 일하는게 아니냐고 물어보고싶기도 했지만 돈버는 일만 생각한다는 지적이 아주 틀린건 아니여서 그만두었다.
어쨌거나 험담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한쪽귀로 흘려버리고 정해진 날자에 브라질로 돌아가는것과 농장을 사는 일 두가지 목표에 몰두하는편이 나았다.

얼마전부터 그녀의 머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랄프 하르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부재하는 사랑을 즐길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모든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것을 조금은 후회하고있었다. 하지만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잃을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녀는 그가 《특별손님》이라고(혹은 《특별손님》이였다고)밀랑이 알려줬을 때 자기 가슴이 얼마나 빠르게 뛰였는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걸가? 그녀는 배반당한 녀자처럼 뜨거운 질투심을 느꼈다.

삶을 통해 누군가를 소유할수 있다고 믿는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그럴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것이라는걸 마리아는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질투는 어쩔수 없는것이였다. 질투에 대한 거창한 리론을 갖고있고 그것이 연약함의 증거임을 아무리 잘 알고있는 사람도 그러한 감정을 결코 억누르지 못할터였다. 

가장 강한 사랑은 자신의 연약함을 내보일수 있는 사랑이다. 아무튼 내 사랑이 진실이라면(기분전환 혹은 나 자신을 속이고 이 도시에 온 이래로 한없이 늘어나고있는 자유시간을 보내기 위해 택한 수단만이 아니라), 자유가 질투와 그것이 촉발시키는 고통을 극복할것이다. 고통 역시 자연스런 과정의 일부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목표달성을 원한다면 매일 일정량의 고통이나 불편을 감수해야만한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그 불편때문에 의지가 약해지지만, 시간이 가면 그 불편 역시 궁극의 충족을 얻기 위한 하나의 단계라는것을 리해하게 되고 고통 없이는 아무리 련습해도 바라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고통에 집착하는것, 그 고통에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부여하고 늘 념두에 두는것은 위험하다. 다행히도 마리아는 그런것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 랄프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그는 왜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가. 기차역과 억제된 욕망이야기를 지어낸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하는것은 아닐가. 사랑한다고 털어놓았다는 리유로 앞으로 영원히 나를 피할 작정은 아닐가. 하고 묻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토록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벽난로, 와인, 그와 함께 의논해보고싶은 생각, 또는 그가 언제쯤 그녀를 만나러 올지 알고싶은 달콤한 욕망 등 랄프 하르트와 관련된 긍정적인 추억이 떠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웃으면서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거꾸로 자신의 마음이 그가 보고싶다고, 혹은 함께 있을 때 왜 그에게 그런 바보같은 말을 했을가, 하고 불평을 늘여놓기 시작하면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아! 그래. 네가 생각하고싶은게 고작 그거야? 아주 좋아, 넌 너 좋을대로 해. 난 더 중요한 일에 전념할테니까.》

그러고는 계속해서 책을 읽거나 자신을 둘러싸고있는 색갈, 사람, 특히 소리, 자신의 발소리, 자동차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주위에서 들려오는 대화의 파편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졌다. 오분후 부정적인 생각이 다시 나타나면 마리아는 받아들여진 동시에 정중하게 거부되여야 하는 그 기억들이 상당히 오래동안 멀어질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중 하나는 두번 다시 랄프를 보지 못할거라는 가정이였다. 약간의 연습과 많은 인내로 마리아는 그것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어놓는데 성공했다. 그녀가 제네바를 떠나게 되면 그곳은 그녀에게 하나의 얼굴, 촌스럽게 자른 긴 머리칼과 아이처럼 천진란만한 웃음과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진 한 사내의 얼굴로 남을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후 누군가 그녀에게 젊은 시절에 가본 그곳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사랑할수 있고 사랑받을수 있는 곳》이라고 대답할수 있는것이다.

코파카바나에 손님이 없던 어느날, 마리아의 일기.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교제하다보니 그들이 섹스를 다른 마약들과 똑같은 용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잊고,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마약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역시 유해하고 파괴적이다.

누군가가 섹스든 마약이든 뭔가에 취하고싶어한다면, 그 행위의 결과는 그의 선택에 따라 더 행복할수도 덜 행복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것이 문제일 경우에는 《제법 좋은》과 《최고》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 손님들이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섹스는 아무때나 이루어질수 있는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계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는 두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계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것을 리해해야 한다.

모든것이 중요하다. 치렬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는 섹스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것은 뭔가가 넘쳐나기때문이다. 그의 잔이 다 채워져 넘쳐흐르기때문이다. 불가피하기때문이다. 삶의 부름에 응해야 하기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오로지 그 순간에만 통제력을 상실할수 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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