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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했을 때 일을 더 많이 못한것이 후회 됩니다”
2020년 07월 01일 05시 08분  조회:279  추천:0  작성자: 오기활
지난 4월 27일, 필자는 “도문시 월청진 집중촌(원 홍광향농안촌)의 로아매가 무한보위전영웅들에 1만원을 헌금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집중촌 전임 당지부서 한진길(74)의 안내하에 로영애(73)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그런데 필자가 22년만에 만난 당년의 “꼬리없는 암소”로 불린 로영애는 2급지체장애자로 ”앉은뱅이”가 되여 집중촌의 파가이주로 전기와 물공급이 때없이 정지되는 “2호동네”에서 텔레비도 못보며 고독하게 지냈다.
 “심장병으로 주원치료를 받다가 금방 출원하였습니다.” “병자는 약보다도 사람을 더 귀해 합니다”
생각밖으로 우리를 만난 로영애는 이렇게 말하며 넉넉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의며 기뻐하였다.
            
 혁명렬사의 유복녀
로영애는 도문시 일광산기슭에 자리한 중개지팡에서 일광산의 기를 받고 태여난 혁명렬사 로동률의 유복녀다.
 그의 아버지(로동률)는 결혼하자 10일 만에 참군한후 항미원조전선에서 장렬히 희생였고 그의 할아버지 또한 몇년사이에 둘째아들까지 잃다보니 생가슴을 앓다가 손녀(로영애)의 이름을 짓고 며칠후에 사망했다.
그러다보니 동네방네에 “중개지팡(동네이름)로씨네는 한집에무복한 4녀자가  산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에 성질이 과한 할머니가 더는 어쩔수 없이 “한구들에서 세 과부(할머니, 큰어머니, 어머니)가 살지 못한다며 제일 나어린 청상과부 어머니(태옥순)를 멀리 외딴곳으로 개가 시켰다.
이렇게 기억도 없는 나이에 엄마와 생리별을 한 로영애는 나이가 들면서부터 희생된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고저 학교에서 단체로 조직해 보는 영화가 “전투편”이라고 하면 곧바로 집에 달려가서 한 장밖에 없는 아버지의 어슴푸레한 사진을 가지고 와서 영화를 보면서 영화속에서 사진의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찾느라고 눈정신을 팔았다고 한다.
 
책가방만 메고 다닌 허망돌이 
“나에겐 아무런 학졸업증도 없습니다.”고 고백하는 로영애의 간추린 과거사다. 로영해는 소학교에 다닐때에 륵막염에 걸려 책가방을 멘 “허망돌이”로 지내다가 룡정고아원에 이송된후 14살에 도문에 돌아오니 학습성적이 안된다며 전일제중학교에 받지 않는데서 단 렬사후대라는 조건으로 민반(半工半?x)학교인 도문진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그런데 당년에 “떡판학교”(일을 많이 하기에 늘 떡을 쳐 먹는다고)라고 불린 도문진중은 이름이 학교이지 내내 일만 하는 학교였는데 일례로 학교건물까지 학생들로 운영하는 학교벽돌공장에서 생산한 벽돌로 학생들로 학교를 지었다.
그때 남보다 실팍한 로영애는 학교단지부선전위원으로 대홍벽돌공장(大红砖厂) 공장장의 책임을 3년간이나 맡고 죽을둥 살둥을 모르고 일을 했다. 심지어 학교에서는 부업을 하느라고 학생들을 3개월이나 동원하여 왕청현 하마탕에 가서  길닦이부업을 시켰다. “후 ㅡ “하고 긴 한숨을 짔는 로영애는 생각할수록 “일생에서 제일 큰 원한이 학교공부를 못한것이라 반추한다.
 
독한할머니와 일방통 남도치의 아래서
사회에 진출한후 로영애는 “녀자가 나돌면 절대 안된다”는 엄격한 할머니의 단속과 매일 초저녁이 되면 비자루를 내 흔들며 “ 8시 전에는 꼭 집에 들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호통하에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시집갈 나이가 되자 “너는 내가 키웠으니 꼭 내말을 들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위엄에 감히 어쩔수 없어 아무런 대구(对口)도 못하고 할머니의 독단적인 주선으로 22살 나이에 최근에 외시에서 이사를 왔다는  “남도치총각”과 결혼 하였다.
결혼후 남편(배동섭)은 당신은 과수기술원부터 시작하여 대장, 회계 등 하고픈 일은 다하면서도 일방적으로 “한집에서 둘이 다 나돌면 안된다”는 엄포로 하여 혁명렬사의 후대라는 믿음으로 사회에서 맡겨주는 사업과 임무를 “지하공작”으로 남편의 눈을 속여야 했다.
“그때 남편의 압력이 오죽했으면 내가 1973년에 당지부에 처음 올린 입당신청서도 남편의 눈을 피하느라고 쌀뒤주속에 숨겨 두었겠습니까?!”.
로영애가 남편의 “단속”에서 해방되기는 1988년 8월 28일에 입당 한 후부터였다.
90년대의 신문인물
로영애는 지난 90년대의 상당한 신문인물이였다.
 이하는 필자가 22년 전에 “연변일보“에 보도한 기사이다.
12월 19일, 필자는 도문1호선공공뻐스에서 도문시 홍광향 농안촌의 부녀주임 로영애(53세)를 만났다. 우연하게 기자를 만난 로주임은 수인사를 나누자바람으로 새해의 신문주문을 화제로 하였다.
“졸업증도 없고 합격증도 없는 내가 농촌에서 신문까지 안보면 어떻게 정책을 알겠습니까?”
 “나는 1973년에 촌부녀주임사업을 맡은 후부터 해마다 연변일보, 동북과학기술보, 가정신문... 등 신문잡지를 주문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학교졸업증도 없고 공무원합격증도 없는 농촌간부들이 신문을 안보면 머리가 텅비고 군중들과 얘기를 할 밑천이 없어서 “벙어리”신세가 된단다.
로영애는 당보를 통해 당과 나라의 방침정책을 학습하고 과학기술신문잡지를 통해 농업기술을 배우면서 광범한 부녀들을 치부의 길로 이끄는 선두자였다.
그는 1989년에 전 주에서 제일 처음으로 도문시 축목국과 손잡고 “농안촌양돈협회”를 조직해 과학양돈을 농안촌의 기둥치부산업으로 부상시켰다.
비록 그에게는 소학교졸업증마저 없다지만 그가 꾸준하게 신문잡지를 통해 당의 방침정책과 과학농법을 배우며 앞장서 농민들을 치부의 길로 이끌었기에 그에게는 “연변조선족자치주 10대녀걸”,  “길림성 3.8홍기수”,  “길림성로동모범”이란 당당한 “자격증”이 있다.
 상품경제시대에는 “졸업증”을 내걸고 투정질만 하는 간부, 자리만을 치키면서 일을 해 못 내는 간부를 대중들은 외면한다.  
알은 못 낳고 날마다 “꼬꾸댁”거리며 울기만하는 암탉은 기필고 나중에 주인의 버림을 당하고 만다 (연변일보, 1998.12.7.)
               명불허전
1988년에 남편의 “구속”에서 해방되여 가물에 단비를 맞은 로영애는 하는 사업마다 “안된다”와 “못한다”와는 인연이 없이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으로 거의 하는 일마다에 번창하였다.
 3년간의 알찬 노력으로 로영애는 1991년에 “도문시10대표병”으로 당선된것을 시작으로 90년대에는 “길림성로동모범”, “길림성3.8홍기수”, “연변조선족자치주 10대녀걸”이 등 굵직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았다.
 그야말로 노력의 뿌리는 쓰지만 노력의 열매는 그처럼 달았다.
오늘도 “당원은 정년이 없다”는 로영애는 지금 비록 “앉은뱅이”로 되였지만  당소조장(당원 22명)의 책임을 맡고 쌍지팡이와 택시차에 의거하여 로당원방문, 적극분자배양, 당원서류정리 등 당무사업으로 무척이나 다망하였다.
그는 지난해 3월 24일까지 7명의 당원을 발전시킨 뒤를 이어  올 7.1에 또 새로운 당원을 발전시킬 계획으로 지금 자료준비에 한창이였다.
 “예비당원고찰자료와 신입당원자료준비로 또 한(한진길)서기를 못살게 굴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로영애는 여러가지 서류들을 한서기의 앞에 내놓으며 도음을 청했다.  .
     무한보위전에 만원을 기부
 이 몇달간 로영애는 코로나19와 사투하는 무명영웅들의 사적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고 한다.
“생각해 보세요.우리 아버지 년대는 전쟁년대로 총을 들고 적들과 싸우며 나라와 가정을 보위하고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평화시대로 서로가 부러움 없이 모두가 만족하게 사는 시대입니다. 이런 화평시대에 행복한 가정을 떠나서 생명을 무릅쓰고 코리나와 싸우는 의무일군들의 정신이 얼마나 보귀합니까?” 무한보위전에서 희생된 부모들과 그들의 후대를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섭니다.”
“나는 학비를 2원씩 낼 때부터 나라의 신세로 살아 왔습니다.  내가 이때에 나라의 빚을 갚지지 않으면 언제 갚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로영애할머니는 신체때문에 다니면서 방독물품을 사서 무한보위전에 기부할수 없어서 안타깝게 보내던차 지난 2월 27일에 당지부에서 당원들에게 무한보위전에 헌금할수 있다고 호소하자 이틑날(28)에 급히 택시를 불러 은행에 가서 현금을(만원) 찾아 가지고 도문시홍십자협회책임자한테 맡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지난해에 사별한 남편의 사진을 정중히 모신 유상앞에서 “내가 무한보위전선에 현금 만원을 기부 했는데 잘 했습두? 못 했음두?”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잘 했다!”며 희죽히 웃더라고, 그리고 두 아들에게 토론을 안하고 기부를 했다며 미안하다며 뒤늦게 알렸더니 둘째는 “어머니가 참 잘했다”고, 큰아들은 “좀 더 기부했더라면 좋았겠습니다”며 어머니에게 엄지를 보이더란다.
실로 그 엄마에 그 아들이였다.
 아름다운 인생마무리
인터뷰는 일문일답으로 마감 했다.
문: 지금까지 인생에서 제일 기뻤던 일은?
답: 학생때 입단과 사회서 입당한 것이다,
문;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답: 첫째는 남한테 부담을 주지 않는 것, 다음은 나누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일전에 시부련회를 찾아가서 앞으로 불우이웃돕기활동이 있으면 동참할것이니 꼭 제때에 알려달라고 단단히 부탁했다.
문: 돌이켜 보면 미안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다면?
답; 사회혁명을 한답시고 가정혁명을 잘 못한 것이다. 우리 아들이 둘다 리혼을 했다(리혼은 불법이 아닌데 말이다ㅡ 편자)
문: 아쉬운 일이 있다면?
답; 첫째는 공부를 못한것이 평생 아쉽고 둘째는 내가 아들로 태여 났다면 사회에 좀 더 많은 일을 했을것인데...
문: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답: 내가 성한 몸으로 마음대로 다닐때 일을 많이 못한 것이다
이 밖에 “이제부터는 자기몸을 알고 일(당소장)을 하세요”는 필자의 권고에 “그래도 조직에서 이런 페인을 믿고 신부름을 시키니 늘 기쁘게 생각하며 만족해 합니 생각한다”고 했다.
  
아직까지 나라의 빚을 채 갚지 못했다는 혁명렬사의 후대,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를 하려는 로영애의 인생마무리에 머리가 숙여진다.
 
오늘의 금상첨화라고 할가. 돌아오는 길에서 한진길이 “로영애가 도문본보기(图们好人)로 평선되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니까 필자가 오늘 만난 한진길과 로영애는 당년엔 “길림성로동모범”이요 오늘엔 사회의 훌륭한본보기였다.
부록: 한진길은 집중촌당지부서기로 33년, 현임 도문시 신민사회구역 기층당지부서기로 11년을 지내고 있다
 오기활 
길림신문 2020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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