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 낡은 교육제도 개혁 민족언어문자로 교수 중국조선민족의 최고학부 연변대학 창설 ‘8.15’ 해방은 연변 조선민족 앞에 일제침략자에게 빼앗겼던 자기의 말과 글로써 교육을 발전시킬 광활한 전망을 펼쳐 주었다. 예로부터 자식공부를 위해서는 소까지 팔아 뒤를 대준다는 우리 민족이였다. 일제한테 글과 말을 ...
  • 춘경순회공연 가운데서 최음파 소속 중앙쏘베트극단은 이르는 곳마다 공연을 앞세우면서 군중사업을 드세게 내밀었다. 그럴 때면 최음파는 동지들과 함께 당지 교육부문과 레닌소학교, 구락부 등 지방 문화사업, 홍군가속의 춘경생산을 도와 나섰다. 또 지나는 구와 향의 레닌소학교와 소선대 모임장소들에서 군중들에게 춘...
  • 1934년 봄 춘경순회공연   1   1934년 3월초 최음파가 의무음악교원으로 활동하는 람삼단은 쏘베트극단으로 개편된 후 중앙쏘베트극단의 이름으로 중앙혁명근거지내 흥국현과 회창현의 매갱, 서강, 락강, 장부, 주란부, 회창, 답강, 무양(梅坑-西江-洛江-庄埠-朱蓝埠-会昌-踏冈-武阳) 등지를 돌면서 춘경순회공연...
  • 2 필자는 중국 홍군대오에서 활동한 양림, 무정 등 우리 겨레 홍군장병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따라 지난 수년간 여름방학 시간을 타서 강서 남창과 서금, 홍군장정 발자취 련속 답사길에 올라 보았다. 강서 남창을 거쳐 서금으로 간 것은 2009년 7월 10일이였다. 쌍둥이 큰 딸애 설이가 동행하였다. 남창에서 오전 8시반 경...
  • 그런 신분의 오수권이지만 어인 영문인지 쏘베트 제2차 대회의 노래를 쏘베트 제1차 대회의 노래로 착각한 회고 차이를 보이면서 최음파에 짙은 흥미와 연구시각을 가진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사실 오수권외 최음파를 두고 30년대 초반과 중반 중앙혁명근거지 그 시절 최음파와 같이 활동하였던 홍군장령들이나 문...
  • 김하수로인이 들려준 무정장군 이야기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16-08-08 15:11:44 ]   특별기고ㅡ겨레홍군 장정 발자취 따라 (20)   김하수(무정장군의 8촌 동생)  리옥순 부부. 2015년 9월 9일 현지촬영   1   대련하면 선참 아름다운 해변도시라는 깊은 인상...
  • 2 1933년 8월초의 어느 날, 홍군학교 훈련장에서 제6기생 개학식을 가지였다. 홍군학교 정치부 주임과 부교장이 환영사를 드리면서 신입생들이 군사정치학습에 힘써 새로운 노력으로 제국주의국민당의 제5차 ‘포위토벌’을 철저히 분쇄하는 혁명전쟁에 나설 것을 희망하였다. 이날 밤, 최음파 소속 로농극사의 ...
  • 이것이 최음파 소속 로농극사 8.1문예공연이라면 로농극사 소속 람삼극단은 8.1를 계기로 소속 교원과 학생들로 30여명 중앙람삼극단공연대를 무어 1933년 봄과 여름 사이 여러 홍군부대를 찾아 전방순회공연길에 올랐다.  선후 3개월에 걸치는 전방위문공연은 리백소가 친히 이끌었다. 람삼단의 의무교원이기도 한 홍...
  • 그중 한 꼬마배우가 모주석께 몇개 절목을 보여드리자고 제의하였다. 이 제의는 뜨거운 호응을 받아 아름드리 룡나무 아래서 즉석공연이 치러졌다. 주석의 경위원은 깔기 좋은 돌 하나를 옮겨다가 모택동주석이 앉아서 보도록 하였다. 소문이 퍼지자 주변 여기저기에서 당지 군중들이 몰려와 즉석공연지를 달구었다. 기획외...
  • 이 같은 노력을 거쳐 1934년에 이르러 로농극사 분사와 지사기구는 중앙혁명근거지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조직되여 자못 활기를 띠였다. 《홍색중화》보 제83기에 따르면 1933년 5월 설립된 흥국, 박생, 우도, 정주 등 7개 분사에 소속된 사원은 1100여명에 달하였다. 1933년 5월 19일과 20일, 모택동주석이 서금 무양에서 ...
  • 2   중앙로농극사로 보는 엄중한 투쟁은 1932년 7월과 8월 소집된 제1차 회의와 제2차 회의에서 벌써 판을 치고 있었다. 주요한 표현은 극사의 이름문제인데 ‘프로’(普罗), ‘로동자’, ‘8.1’, ‘룩셈부르그’(卢森堡), ‘로농’ 등 이름을 둘러싸고 서로간 쟁...
  • 4   기름은 아예 보기도 어려웠다. 식량이 떨어질 때는 야채를 캐서 때워야 하였다. 등불기름도 없어 철사로 엮은 그물에 소나무가지를 얹혀놓고 태웠다. 이런 등불을 ‘소나무등불’(松光)이라고 하는데 밤에 책을 볼 때 소나무등불을 리용하였다.   학교에서 쓰는 교재도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 등사...
  • 며칠이고 밖으로 돌다가는 동지들과 더불어 잠간 리화촌 집에 들러 새벽밥을 해먹고는 새벽속으로 사라졌다는 박동근, 리초향은 아버지 리남붕한테서 박동근 관련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알게 되였다. 박동근 렬사의 유일한 녀동생 박영화의 두 아들인 리남붕, 리철붕 가족사진. 앞줄 좌1이 리남붕 선생 부인 김정숙, 좌2...
  • 글자수: 3474자 열독시간: 약 13분   엽검영 교장은 학교 구락부가 조직하는 문예만회에서 누구에게 뒤지지 않고 손수 허다한 혁명가곡을 부를 뿐만 아니라 하모니카를 곧잘 불렀다. 홍군학교의 정치부주임 하장공(何长工)은 피리능수였다. 두 사람이 늘 단짝이 되여 하모니카를 부르고 피리를 불면서 성수나게 노래를...
  • 그 나날 《홍색중화》보 제36기, 43기, 45기에 따르면 로농극사는 홍군학교 제3기 졸업생들 외에도 전방으로 나가는 신편 보충사ㅡ홍군학교간부대 정치반 졸업생들 환송공연, 국민당 19로군 봉기전사들을 위한 신편극 공연, 광주봉기 기념대회에서의 연극 《광주폭동》 등 공연을 수차 가졌다.   중앙혁명근거지 문예...
  • 망국노 ‘개간민’이였던 조선인 농민 땅의 주인 되여 중국 력사상 처음 소수민족 신분으로 정치권리 가져 두차례의 군중공작회의 “중국 신민주주의혁명의 근본문제는 농민문제였고 농민문제의 핵심은 토지문제였습니다. 1946년 5월, 중공중앙은 〈토지문제에 관한 지시〉를 내려 토지정책을 조정하며 전면...
  • 그날 해질녘에 적들은 적장 학강대장 등10여명 살상자를 내고 끝내 물러섰다. 우리측에서는 군중들까지 김수원, 림하춘 부친 등 3명의 희생과 수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였다.     우복동전투가 벌어졌던 우복동 4중촌. 오늘의 화룡시 남평진 고산촌의 한 마을. (2019년 9월 17일 현지촬영) 1 1933년 3월, 화룡현...
  • 제12편 홍군음악가 최음파   1. 로농극사 총사 2. 엽검영 교장 3. 람삼단 의무교원 4. 사나운 회오리 5. 1933년 이해 6. 연극 "전투의 여름" 7. 8.1기념활동 8. 홍군학교 교내공연들     로농극사 총사   1   홍군학교 로농극사는 8.1극단이 장정 정주에 머무를 때 중앙쏘베트구역 중앙국 서기이...
  • 이런 활동 가운데서 신문잡지 선전을 보면 쏘베트구역 반제총동맹은 1932년 8월 1일에 《반제전선(反帝战线)》이란 8절지 인쇄본 신문을 꾸리고 매기 4개 면(주.中央苏区革命文化史料汇编. 江西人民出版社 1994年版, 第400页)으로 하였다. 1933년 7월에는 서금 교외에서 쏘베트구역어모구국대표대회(苏区御侮救国代表会议)...
  • 학과도 원래의 보병과, 정치과, 특과로부터 퇀정위훈련반, 상급간부대(上级干部队), 사호대(司号队), 측량반 등으로 늘어났으며 학생양성방향도 홍군의 중고급 군정간부 양성으로 잡고 홍색수도 서금 위수과업도 맡아나섰다. 학교시설과 규모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관련 인재들도 많이 수요되였다.   홍군학교의 이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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