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형련재]중국조선족력사(49)―동만유격근거지의 포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0일 08시35분    조회:5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더 큰 손실 막기 위해 주동적으로 유격근거지 포기

수부원정길에서 항일련군 제1로군 창건의 토대 닦아

처창즈근거지의 포기

1935년 8월 30일, 일본관동군 사령부는 이른바 〈소화 10년 관동군 추계치안숙정 만주국방면협력요망〉을 제정하고 항일무장 ‘토벌’의 중점을 빈강, 길림, 간도, 봉천, 안동 등 5개 성에 두었다. 이 ‘숙청계획’에 따라 일제와 위만주국은 장춘, 열하 일대에서 대량의 군대를 움직여 동만, 수녕에 투입하여 3개월내에 반일무장력을 철저히 소멸한다고 장담했다.

1935년 9월 중순, 일만군은 추계 ‘대토벌’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적들의 ‘토벌’을 분쇄하기 위해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1퇀과 제2퇀은 부대를 여러 갈래 소분대로 편성한 후 안도, 돈화, 몽강 일대에서 기동령활한 유격전으로 적들을 대처했다.

1935년 10월, 적들은 수백명의 일만군을 동원하여 처창즈유격근거지를 포위공격하였다. 토벌군은 오동양차, 송강, 쓰치개 방면으로부터 포위망을 조이며 들어왔다. 근거지 군민들은 제2군 군장 왕덕태의 지휘하에 직사포, 박격포, 경기, 중기 등 중무기로 무장한 우세한 적들과 련속 며칠 동안 접전하였다. 그러나 적이 강하고 우리가 약한 정황에서 근거지를 끝까지 보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아군은 주력부대를 내두산 쪽으로 이동시키고 반일자위대는 근거지 군중들을 데리고 서남차로 빠져나가기로 했다.

1935년 5월 2일, 동북혁명군 제2군 제1퇀 제5련이 반일의용군과 협력해 하발령에서 202호 국제렬차를 습격하여 일본군 30여명을 격사하고 일제 및 만주군 고급관원 17명을 생포했다.

서남차에서 두달 동안 남아 머물러있던 반일자위대와 근거지 군중들은 ‘근거지 인민들을 해산시키고 반일자위대도 유격전으로 넘아가라’는 동만특위와 군부의 지시를 받게 되였다. 근거지 군중들로 놓고 말하면 이것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물과 고기처럼 생사를 같이 하던 부대를 떠나보내고 근거지마저 버린 후 적구로 내려가야 하니 앞이 캄캄해날 수 밖에 없었다. 대회를 열고 근거지 해산의 절박성과 정당성을 인내성 있게 해설하여 군중들은 어렵지 않게 리치를 깨닫기는 했으나 정작 해산을 집행하는 실무적 단계에 들어가서는 적구로 내려갈 수 없다고 나누웠다.

군중들은 풀을 뜯어먹고 짐승가죽을 우려먹어도 좋으니 여기서 죽든 살든 하겠다면서 야단을 쳤다. 적구로 갈 바에는 차라리 유격구에서 굶어죽겠다면서 떠들어댔다. 어떻게 적구에 내려가 왜놈들의 멸시를 받으면서 살겠는가? 안될 일이다!

일부 군중들은 적구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 참군을 요청하였다. 입대 적령기에 들어서지 않은 아동들과 소선대원들도 혁명군을 따라가겠다고 성화를 부리였다. 어떤 아동단원은 데려가기 싫으면 차라리 총으로 쏘라고 하면서 매달려 강짜를 부리기도 했다.

유격구의 해산에 대하여 연변대학 력사학 교수 박창욱선생은 이렇게 지적했다.

“이전에는 인민들이 식량을 군대에 공급하여 전투를 견지하게 하였는데 지금은 군대가 인민들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적들과 싸워 량식을 빼앗아다가 인민들에게 공급하는 형편이 되였습니다. 이것은 혁명군에게 있어서 커다란 보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0개월이나 존속하였던 처창즈항일유격근거지는 적아력량 대비의 현저한 차이로 말미암아 1935년 11월에 해산되였다. 처창즈에 있던 제2군 군부와 일부분 부대 그리고 병기공장, 옷공장, 병원 등 후방기관들이 모두 내두산으로 옮겨갔다.

내두산은 마을 서쪽에 두개의 젖꼭지 모양의 산이 있는 것으로 하여 생긴 이름인데 태고연한 심산밀림 속에 자리 잡은 이 부락을 중심으로 송강과 천지에 이르는 주위 100여키로메터 구간은 무인지경이였다. 그래서 망망한 림해 속에 숨어있는 이 마을을 ‘하늘 아래 첫 동네’라 하였다.

내두산에 진주한 인민혁명군은 로천무대를 가설하고 무기탈취투쟁, 녀성해방 등 내용을 담은 작품과 일제의 만행을 폭로한 작품을 공연하였다. 한편 정치공작원들은 주민들에게 일제를 쳐부셔야 한다는 도리를 선전하였다. 중공안도구위 행동위원회에서는 군중대회를 열고 낡은 구장제를 페지하고 정권의 성격을 띤 농민위원회를 수립하였다.

서부원정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1935년 후반기부터 남북만에로의 간고한 원정을 시작했다.

1935년 8월, 인민혁명군 제2군 정치부 주임 리학충은 제2퇀의 2련과 3련의 150여명으로 서부원정대를 조직하고 처창즈를 떠나 무송을 지나 몽강 지구로 나갔다. 서부원정의 목적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과 련계를 맺은 후 동남만유격구를 한데 련결시켜 료녕, 길림 두 성 변계지대에 유격근거지를 건립, 련합작전을 벌리려는데 있었다.

아군에 의해 전복된 경도선 일본군렬차.

8월말, 서부원정대는 제1군의 강남유격구에 도착, 먼저 1군 제8퇀과 승리적으로 회사했다. 리동광 등 제1군 관병들과 유격구 군중들은 제2군 서부원정대를 열렬히 환영했다. 10월 4일, 몽강현 나이굉 부근에서 제1군과 제2군 간부련석회의를 거행했다. 회의에서 쌍방은 자기 군의 활동지구와 항일투쟁정황을 소개하면서 투쟁경험을 교류했다. 아울러 련합작전하여 안도현소재지를 중심으로 길료변경유격구를 개척할 문제와 전 동북항일정부 및 항일련군 총사령부 건립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상응한 결의를 했다.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과 제2군의 회사로 하여 동만항일유격구를 분할하고 포위하려던 적들의 음모는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두 군의 회사는 또 동만과 남만의 두 유격구를 하나로 이어놓아 유격전쟁 가운데서 밀접히 배합하면서 협동작전하는 데 유리하게 했으며 항일련군 제1로군의 창건에 훌륭한 토대를 닦아놓았다. 동시에 북만지구의 제3, 제4, 제5, 제6군 및 기타 항일무장부대와 련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제2군 서부원정대는 승리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후 몽강을 떠나 1935년 11월 내두산유격근거지로 돌아왔다.

내두산보위전

내두산근거지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일본군은 1935년 겨울, 안도현으로부터 악명이 자자한 리선도 ‘토벌대’와 안도현소재지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박격포부대, 위만경찰, 위만군 등 800여명 병력을 동원하여 내두산을 향해 쳐들어왔다.

그 때 제2군 주력은 적후에 들어가 유격활동을 벌리고 있는 상황이여서 내두산근거지에는 두개 련의 병력과 후근기관 일군들 뿐이였다. 비록 적아간의 력량대비가 현저했으나 절대 물러설 수는 없었다. 군장 왕덕태는 견정하게 최전선에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면서 완강하게 적과 맞서 싸웠다. 적들이 련속하여 진공해왔으나 전사들은 목숨으로 진지를 사수하면서 한차례 또 한차례의 공격을 격퇴시켰다. 첫날 전투에서 적들은 10구의 시체를 남기고 물러났다.

이튿날 적들은 또다시 삼면으로 포위공격해왔다. 군장 왕덕태는 좌우부대에 적들의 공격을 끝까지 버텨내라고 명령한 후, 한개 부대를 인솔하여 정면으로 반격해나갔다. 아군의 드센 반격에 적들은 어쩌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전투가 치렬해지면서 우리 군은 병력이 부족하여 아동단, 녀전사, 부상병까지 전투에 투입시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군중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밥과 물, 탄약을 최전선에까지 날라왔다.

적들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왕덕태는 소분대습격전을 벌리였다. 소분대는 사면으로 적들을 들이쳐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날이 갈수록 적들은 사기가 떨어지고 아군은 투지가 앙양되였다. 시기가 성숙되였음을 간파한 왕덕태는 전방위적인 공격을 명령, 맨 앞장에 서서 전사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들어가 백병전을 벌리였다. 한창 격투를 벌리고 있을 때 아군 소분대는 민첩하게 적들의 등뒤로 달라붙어 번개마냥 습격전을 벌리였다. 하여 적들은 앞뒤로 포위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어쩔수 없었던 적들은 부랴부랴 산 아래로 철퇴해버리고 말았다. 내두산을 한입에 삼켜버리려고 기염을 토하던 적들은 패배의 쓴맛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제일 추운 겨울이라 엄한 추위까지 덮쳐들어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은 적 300여명을 소멸하고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로획했으며 승리적으로 내두산유격근거지를 보위했다. 왕덕태주력부대가 녕안으로 전이해간 후, 적들은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가지고 다시 내두산을 진공해왔다. 1936년 1월 일만군 ‘토벌대’는 미친 듯이 쳐들어왔다. 근거지 군민들은 적들의 두차례 진공을 필사적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군사력의 뚜렷한 차이로 하여 적들의 진공을 더는 격퇴할 수 없게 되였다.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군민들은 주동적으로 근거지를 버리고 무송 방면으로 전이했다.

연변일보 김철호 정리/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18
  • [본사소식 백일정 기자] 5월 12일, 《심양조선족지(속집)》 편찬사업 관계자 10여명이 심양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 모여 그동안의 진척 상황을 료해하고 후속 작업을 토론했다. 이로써 여러가지 원인으로 중단됐던 《심양조선족지(속집)》 편찬사업이 재가동됐다.   소개에 의하면 2017년말부터 심양시조선족련의회의 주...
  • 2020-05-15
  • 인민들 투지높이 투쟁전렬에 나서서 악질 지주와 일제 주구 청산 피의 원한 풀고 피의 대가 받아내 길동군정대학 길동군정대학은 1945년말부터 준비하기 시작하여 1946년 1월 6일, 연길에서 정식 설립되였다. 주보중이 교장을 맡고 옹문도, 강신태가 부교장을 맡았다. 길동군정대학을 세운 목적은 시급히 수요되는 청년 군...
  • 2020-05-14
  • 인민부담 경감시키고 인민생활 향상시키기 위해 가렴잡세 취소 소작료와 리자 인하 공유지 분배 연변철도로동조합 1945년 10월 15일, 연변로동자농민청년부녀(로농청부)총동맹의 지도 하에 연변 철도로동자의 첫 군중단체인 연변철도로동조합(이하 ‘로동조합’으로 략칭)이 조양천에서 조직되였다. 민주추천 방...
  • 2020-05-07
  • 리성실(연안 리씨, 1896년도 출생). 그는 항일전쟁시기 장백현 이도강에서 10여년동안 항일련군들을 도와 량식과 약을 날라주고 비밀리에 정보를 전해준 항일투사였다. 또 해방후에는 이도강촌의 촌장과 부녀회장까지 겸하면서 평생 남을 위하여 살다가 가신 분이다. 소문없이 조용히 이도강에 와 자리를 잡다 조선 평양남...
  • 2020-04-26
  • 조선의용군 여러 갈래 지대 편성 남만 북만 동만서 국민당 반동무장 섬멸 전국 해방전투서 혁혁한 전공을 조선의용군 ‘7.7’사변 전후 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연안에 가서 중공중앙당교 아니면 연안항일군정대학에서 교편을 잡거나 공부하였다. ‘7.7’사변이 일어나자 무정 장군과 중앙당교의 ...
  • 2020-04-02
  • 1960년대, "공업은 대경을 따라배우고, 농업은 대채를 따라배우며, 전국적으로 인민해방군을 따라배우자"는  새로운 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전국 인민이 간고분투하여 락후한 면모를 개변하려고 다짐하는 분위기 속에서 변경에 있는 룡정시 부녀들도 실제 행동으로 농업발전을 지지했다.     1973년, 3...
  • 2020-03-08
  • 려영준 범의 굴 지하아지트로 리용 적 심장 파고들어가 군사정보 정찰 정찰병으로 “소부대에 편입된 후 나는 무선전송수신, 촬영, 제도기술, 정찰기술 등을 배웠습니다. 레시바를 쓰고 대방에서 보내는 전파의 음향을 골라들으며 수자를 쓰는 련습도 하고 세손가락으로 전건을 쥐고 손목을 까딱까딱 놀리며 발신련습...
  • 2019-11-28
  • 당조직 반일단체 새롭게 회복 일제 군사시설 파괴 친일 한간, 주구 청산 항일련군 새로운 투쟁 선고 대량의 소부대 동북에로 파견 “소부대활동은 1941년부터 시작되였는데 남영에 있던 제1로군에서만도 연변에 7개의 소부대를 파견하였다. 소부대의 주요한 활동내용은 첫째로는 이미 파괴된 공산당조직과 반일조직을...
  • 2019-11-22
  • 중공동북당조직 특별지부 설립 항일련군 재편성   야영지에서 폭파 락하산 방화 반땅크 훈련 강행 중공동북당조직 특별지부국 설립 우세한 적들과의 끊임없는 전투에서 막대한 손실을 본 항일련군은 무모한 희생을 피면하고 유생력량을 보존하며 정치, 군사적 자질을 높이는 한편 력량을 부단히 장대시켜 항일투쟁을 ...
  • 2019-11-22
  • 엄혹한 자연 극심한 식량난 간악한 적들과의 치렬한 공방전이 뒤엉킨 간고한 시련에 맞서 제2방면군 역경을 뚫고 홍기하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제2방면군은 이튿날인 1940년 3월 26일, 화룡현 화랜라즈에서 매복전을 벌려 추격해오는 일본군 ‘토벌’대를 공격, 40여명을 소멸한 후 적들을 물리치고 안도현으로 빠...
  • 2019-11-22
  • 진증길 렬사 (자료사진) 9월 29일, 퇴역군인사무부는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에서 중국인민지원군렬사 친인배견식을 가졌다. 6명 지원군렬사의 신원이 확인되여 가족들과 ‘상봉’했다. 신원이 확인된 6명의 렬사 가운데는 길림성의 진증길 렬사도 포함되여있었다. 진증길 렬사의 남동생, 진증길 렬사의 제수와 조...
  • 2019-11-21
  •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일제 ‘포위토벌’로 근거지 상실 제2방면군 홍기하에서 지혜롭게 마에다부대를 전멸 두도류하회의 1939년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동북에 대량의 부대를 증파하여 잔폭한 ‘포위토벌’을 감행했다. 련속적이고 전면적인 진공은 항일련군으로 하여금 엄중한 손실을 받게 하였다. 아...
  • 2019-10-31
  • 추위 기아 병마 일만군의 포위공격 이겨내면서 새로운 유격근거지 개척 위해 고난의 행군 강행 일제의 ‘3성련합토벌’ 1937년 7월부터 시작한 ‘3년 숙정계획’에 근거하여 일제는 5만여명의 병력을 집중하여 삼강지구에 대한 1년 반 동안의 ‘대토벌’을 감행한 후 ‘치안숙정&rsquo...
  • 2019-10-11
  • [70년 기억속의 연변]   1950년, 전쟁의 불길이 두만강변까지 만연되고 미군 전투기가 여러 차례 우리 나라 변경 령공에 침입해 도문, 룡정시에 폭탄을 투하했는데 화룡현 용화구 부암동 및 숭선구 고성마을 등 지역을 폭격했고 우리의 변경소학교를 폭파했으며 중국 변경 지역 주민들을 폭사하고 밭갈이 소를 폭격해...
  • 2019-10-08
  •     (흑룡강신문=하얼빈) 동북아의 방방곡곡에 벼를 심고 흑토지의 깊은 곳에 김치독을 저장해두는 민족, 그야말로 부지런한 민족이다.   렬강들의 백년간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고 더욱이 수많은 영웅의사들을 배출한 민족, 그야말로 완강한 민족이다.   근대 력사상 방랑생활에 온갖 차별과 모욕을 당한 민족,...
  • 2019-09-12
  • 용감무쌍한 6사 전사들 림기응변 신출귀몰하면서 곰골, 홍두산전투 벌려 일제의 ‘동기대토벌’ 분쇄 일제는 림강, 장백현에서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의 련속되는 타격을 받게 되자 창황히 병력을 집중하여 ‘동기토벌’을 감행, 장백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2군 제6사를 포위섬멸하려고 망상했다...
  • 2019-08-23
  • 장백림해에 대량의 밀영을 건설해 유격활동에 돌입 낮이면 적의 세상이다가도 밤이면 우리 세상 되여 림해에 세워진 밀영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군은 적들의 ‘토벌’에 주동적으로 반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는데 1936년말에 이르러서는 장백 일대의 광활한 지역이 공산당과 항일련군의 통제하에 ...
  • 2019-08-12
  • 하리회의서 조선인 공작 회복할 데 관한 결의 채택 중국혁명에 참가하고 있는 조선인 이중사명 제시 조국광복회 결성 ‘조국광복회’ 창립에 대하여 김일성회고록(제4권)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4월말에 모든 준비를 끝마친 우리는 창립장소를 동강 수림으로 내정하고 그 곳으로 자리를 옮겼...
  • 2019-07-30
  • 조선인 항일무장력 조선 혁명력량 및 중국 항일무장력량 이중사명 확인 김일성 등 조선공산주의자들 중한인의 통일된 무장대오 건립을 주장 용맹한 서부파견대 1935년 9월, 일본군은 전면적인 추계 ‘토벌'을 발동했다. 서부파견대는 액목에 온 후 일만군과 여러 차례의 전투를 벌렸다. 9월 중순, 서부파견대는 액...
  • 2019-07-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