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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을 기다렸습니다. 70년을 그리워했습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21일 09시56분    조회: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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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증길 렬사 (자료사진)


9월 29일, 퇴역군인사무부는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에서 중국인민지원군렬사 친인배견식을 가졌다. 6명 지원군렬사의 신원이 확인되여 가족들과 ‘상봉’했다. 신원이 확인된 6명의 렬사 가운데는 길림성의 진증길 렬사도 포함되여있었다. 진증길 렬사의 남동생, 진증길 렬사의 제수와 조카 두명 모두 4명의 가족이 뒤늦게나마 친인과 상봉했다.

진증길 렬사의 유해는 2014년에 첫패로 돌아온 437명 재한 지원군렬사 유해중의 하나이다. 진증길 렬사는 6명의 렬사들 가운데서 가장 일찍 희생됐다. 1950년 희생 당시 진증길은 20세였다.

10월 25일, 도문시 월청진 마패촌에 살고 있는 진증길 렬사의 맏 제수 김춘금을 만나 진증길 렬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진증길 렬사의 제수 (오른쪽)와 조카.

◆명절 밥상에 밥 한공기 수저 한모 더 놓아

“설명절과 추석 때면 어머님은 늘 밥상에 아주버님 몫으로 밥 한공기와 수저 한모를 놓으셨습니다.”

진증길 렬사의 맏 제수 김춘금(86세)은 진증길과 한마을에서 자랐다. 김춘금은 “시아주버님은 마을에서 손꼽힐 정도로 인물이 좋았습니다. 성격이 좋고 나이 어린 동생들을 늘 양보했습니다. 생산대에서 활동이 있을 때면 노래도 곧잘 불러습니다.”라고 회억했다. 김춘금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진증길 가정에는 자녀가 많아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설이 되거나 추석이 되면 어머니는 늘 밥상에 아주버님 몫으로 밥 한공기와 저가락 한모를 놓으셨습니다. 청명, 추석 때면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 직접 가지 못하고 나와 남편이 대신하여 뒤산 렬사기념비에 가서 시아주버님을 추모했습니다.”라며 김춘금은 “시아주버님의 사진은 늘 같은 곳에 걸려있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사진을 꼭 잘 간직하고 벽에 잘 걸어놓으라고 당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연기가 되여 날아오르면 아들 전사한 곳 볼 수 있을가…”

진증길 렬사의 아버지 진봉석은 신체가 좋지 않았고 진증길 렬사의 어머니 황봉금은 홀로 네 아들을 키우면서 힘들게 생활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진증길은 맏아들로 일찍 가장역할을 했고 어렸을 때부터 농사일을 하면서 생계를 도왔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2년 후, 남편이 세상을 뜨자 홀로 남은 진증길 렬사의 어머니는 늘 큰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949년 해방 후, 진증길이 해남도에서 부쳐온 편지가 집으로 날아왔다. 동북에 와서 생산에 참가하겠다는 내용이였다. 편지를 받고 가족들은 그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그 편지가 진증길이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되였다는 것을.

그 뒤로부터 진증길은 감감무소식이였고 1953년 진증길 렬사의 삼촌이 전쟁에서 부상당해서 집에 돌아와서야 진증길의 희생 소식을 전해들었다. 진증길 렬사의 삼촌 진봉만의 말에 따르면 당시 진증길 렬사는 반장이였고 함께 전투에 투입되였다가 희생되였다고 한다. 진봉만은 조카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기 손으로 조카의 시신에 간단히나마 흙을 덮어주었다고 한다.

1955년, 해당 부문에서 진증길 렬사의 렬사증을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렬사증과 함께 보내온 것은 진증길이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채 찍은 사진 한장이였다. 렬사증과 큰아들이 남긴 유일한 사진을 부둥켜안고 진증길 렬사의 어머니는 무릎을 치며 통곡하던 나머지 쓰러지고 말았다. “어머님은 시아주버님을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다. 자식들이 볼가봐 큰아들이 그리울 때면 뒤마당이나 굴뚝 뒤에 숨어서 이름을 부르면서 한참씩 울군 했습니다.”

1997년 진증길 렬사의 어머니는 한을 품고 세상을 뜨면서 당시 농촌에서 화장하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였지만 화장터에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연길에 가서 화장해달라. 연기가 되여 화장터의 높은 굴뚝으로 하늘에 날아올라서야 우리 큰아들이 죽은 곳을 볼 수 있을가…”

진증길 렬사의 둘째동생 진호산 (자료사진)

◆“70년을 기다렸습니다. 70년을 그리워했습니다.”

진증길 렬사의 동생 진호산(82세)의 기억 속에 형님은 여전히 흑백사진 속의 젊은 모습이였다. “형님은 장남이였기에 우리 형제는 모두 형님의 말을 잘 따랐습니다. 그는 입대 후 료심전역, 도강전역에 참가했고 해남도에 갔습니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에 받은 편지는 형님이 1949년에 해남도에서 부쳐온 것이였습니다.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였습니다.”

올해 청명, 해당 부문으로부터 련락을 받고 심양으로 출발하기 전날 진호산은 고이 보관해두었던 지원군 군복을 꺼내 입어보면서 감개무량해했다. 1956년에 진호산도 형님을 따라 지원군에 입대했던 것이다. “나도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형님과 같은 지원군 군복을 입은 모습을 꼭 형님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전우이자 형제입니다.”

항미원조렬사릉원의 영렬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에서 형님의 이름 세글자를 찾은 진호산과 가족들은 눈물이 글썽해졌다. 형님의 이름 석자 앞에서 진호산은 장엄하게 거수경례를 올린 다음 쉰 목소리로 한글자 한글자 힘주어말했다. “형님, 70년을 기다렸습니다. 끝내 형님을 만날 수 있게 되였습니다. 70년을 그리워했습니다. 드디여 만나게 되였습니다. 또 보러 오겠습니다.”

이날 활동배치에 따라 진증길 렬사의 가족들은 지하에 들어가 진증길 렬사의 관곽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진증길 렬사의 관을 본 진호산은 한달음에 달려가 관을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진호산은 “형님이 집에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희생된 전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라고 말하고나서 “우리 집은 2대에 걸쳐 8명이 참군했습니다. 나의 딸과 조카, 조카딸은 모두 군인입니다.”라며 우량한 혁명전통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한자를 잘 읽지 못하는 김춘금과 김춘금의 딸을 도와 퇴역군인사무부에서 보낸 위문편지를 읽어주었다. 위문편지 내용을 처음 접하는 그들의 눈시울이 또 한번 붉어졌다. 위문편지의 한단락으로 글을 마무리하련다.

“진증길 렬사는 희생된 기타 무수한 혁명선렬들과 마찬가지로 새 중국의 가장 빛나는 이름이고 중화민족의 가장 빛나는 좌표이다. 그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세운 공훈과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력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영원히 억만 인민들의 마음 속에 명기될 것이다!”

연변일보 한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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