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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 중국조선족력사(69)-적들의 심장 속에 들어가(1)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28일 08시59분    조회: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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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영준 범의 굴 지하아지트로 리용

적 심장 파고들어가 군사정보 정찰

정찰병으로

“소부대에 편입된 후 나는 무선전송수신, 촬영, 제도기술, 정찰기술 등을 배웠습니다. 레시바를 쓰고 대방에서 보내는 전파의 음향을 골라들으며 수자를 쓰는 련습도 하고 세손가락으로 전건을 쥐고 손목을 까딱까딱 놀리며 발신련습도 하였는데 퍽 흥미로왔습니다.”

6월 14일(2005년), 기자가 소부대활동을 취재하러 연변일보사 로기자 한태악선생과 함께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를 찾아갔을 때 그는 아직 병환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했지만 그 때의 상황을 금방 벌어진 일인듯이 얘기해주었다. 90세인 로항일전사의 기억력은 아주 비상했다. 당시의 상황과 전우들 이름, 날자까지도 낱낱이 기억해내면서 이야기를 펼치는데 무척 생동했고 비장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하고 기억력이 좋았던 때라 몇달 동안의 훈련을 거쳐 무선전기술을 거의 장악하게 되였습니다. 1분 동안에 60자의 속도로 송수신할 수 있었습니다. 촬영기술도 괜찮게 장악했는데 원거리 단거리 임의대로 찍을 수 있었지요.”

병환으로 몸동작이 조금 불편해보였으나 정찰계기들을 다루는 동작을 손짓으로 형용까지 하는 려옹의 얼굴은 무척 흥분되여있었다.

드디여 상급의 명령을 받고 1941년 3월, 려영준은 박장춘과 함께 일본군군사기지정찰을 목적으로 중쏘국경을 넘게 되였다. 이번 임무는 로흑산일대의 일본군군사시설에 대한 정찰이였다.

키 넘는 갈대밭을 헤치면서 국경선에 다달으니 산중턱에 구름이 감도는 해발 1000메터 되는 중국의 산이 앞을 척 막아섰다. 두 정찰병은 갈밭에 몸을 숨긴 후 망원경으로 적정을 탐지하면서 넘어갈 길을 찾았다. 백설이 덮인 국경선에 어둠의 장막이 드리웠다. 두 정찰병은 흰 천으로 전신을 위장한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수분하 하류를 건넌 후 가파로운 산비탈에 달라붙었다. 어찌나 험한지 두발자국 올리디디면 한발자국씩 미끄러져 내려오는 통에 이들은 밤새껏 톺아서야 겨우 산을 넘을 수 있었다.

벌써 먼동이 훤히 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등뒤엔 적의 망원초, 산아래엔 적의 보초막이 있지 않는가. 지금 이들은 적들의 턱밑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였다. 이미 날이 밝았으니 더는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두사람은 방법없이 가랑잎을 뒤집어쓰고 계곡에 숨어 하루해가 지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드디여 해가 지고 어둠의 장막이 산을 덮었다. 가랑잎 속에서 살금살금 기여나온 두사람은 발자취를 죽이면서 로흑산을 바라고 갈길을 좁혔다.

로흑산은 산속분지였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부락은 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고 정거장과 일본군병영은 남산 기슭에 들어앉아있었다. 두사람은 일본군영 뒤산에까지 바싹 기여들어가 매복했다. 놈들이 조기체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들리였다. 로흑산의 아침이 밝기 시작했다. 아닌게 아니라 병영으로부터 놈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더니 병영장에 줄을 서서 조기체조를 하느라고 야단이였다. 이렇게 련속 이틀이나 적병영 앞산에 매복해있으면서 적의 동정을 살폈다. 매일 아침 조기체조를 나오는 놈들은 150여명 뿐이였다. 병종은 기병과 보병이였다. 경찰서는 부락 안에 있었는데 순사놈들은 밤낮없이 쏘다녔다. 두 정찰병은 낮에는 산에 매복해있으면서 로흑산일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밤에는 산을 내려 철교와 신작로다리의 길이, 너비, 높이, 교각둘레와 교각간의 거리를 쟀다.

나흘 동안 로흑산일대를 까근히 참빗질한 두사람은 정찰임무를 원만히 완수하고 기지로 돌아가 로흑산의 모형까지 만들어 바쳤다.

적들의 턱밑에서

한달 남짓 지난 4월, 새로운 임무가 또 하달되였다. 동녕에 가 적의 또치가내부구조를 정찰해오라는 것이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적의 심장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아오라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지휘관은 떠나기전에 동녕은 왜놈들의 주요한 군사기지이기에 이번 정찰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귀띔해준 후 모형도를 보여주면서 주공방향까지 제시해주었다.

“또치까 안으로 들어가자면 우선 일곱갈래의 방어선을 뚫어야 하오. 지금까지 동녕남북산에다 왜놈들이 또치까를 구축했다는 것만을 알지 그 내부구조를 정찰해온 사람은 하나도 없소.”

“나와 장춘이는 쏘련홍군이 장고봉사건 때 로획한 일본군 군복을 갈아입었습니다. 나는 대위 견장을 단 군복을 입고 장춘이는 중위견장을 단 군복을 입었습니다. 센또보시(일본군 전투모)까지 꾹 눌러쓰고 반들반들한 가죽집에 넣은 권총까지 척 차니 제법 일본놈으로 변해버리더군요. 좀 격에 맞지 않은 것은 발자취를 감추기 위해 군화 대신 지하족을 신은 것이였지만 각반까지 다리에 감고 보니 과연 그럴듯했습니다.”

동녕에 도착한 후 처음 부딪친 방어선은 여섯층 높이로 늘인 가시철조망이였다. 박장춘이 가시쇠줄을 한손으로 쥐여들자 려영준은 그 밑으로 기여들어가 박장춘이의 손에서 가시쇠줄을 받아쥐였다. 두번째 방어선은 반땅크호였다. 두사람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지도 않고 풍덩풍덩 뛰여내려갔다. 너비는 5메터 가량 되였다. 박장춘이가 맞은켠 흙벽에 몸을 딱 붙이고 손으로 어깨를 툭툭 쳤다. 려영준은 훈련장에서 하던 대로 박장춘의 어깨를 날렵하게 밟으면서 번개같이 우로 올라가 배를 땅에 딱 붙이고 엎드린 후 두팔을 내리드리워 장춘이를 끌어당겼다. 세번째 방어선은 여섯층으로 된 가시철조망에다 빈 통졸임통을 주렁주렁 달아맨 방어선이였다. 자칫하면 놈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판이였다. 두사람은 좌우측 말뚝 중간으로 기여갔다. 려영준이가 먼저 한손으로 가시쇠줄을 살짝 올리들었다. 통졸임통이 덜렁거리지 않았다. 가시쇠줄이 들린 밑으로 박장춘이 배를 땅에 붙이고 살살 기여들어간 후 려영준의 손에서 가시쇠줄을 받아쥐였다. 이렇게 세번째 방어선을 넘어서니 이번엔 땅에 촘촘히 늘여놓은 쇠줄옹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물샐틈없는 방선이였다. 두사람은 발자국을 늘게 떼면서 옹노 사이를 요리조리 더듬어 들어갔다. 다섯번째 방어선인 철조망까지 넘어들어가니 또치까로 통하는 교통호였다.

밤은 괴괴하고 사위는 무시무시하였다. 중심또치까에서 쏘아올리는 신호탄이 이따금 밤하늘에서 번쩍번쩍 했다. 아직 놈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것 같았다. 두사람은 허리를 구부정하고 교통호를 따라서 또치까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에서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가 났다. 놈들이 일어나면 반격해야 하기에 려영준은 비수를 빼들고 만단의 준비를 하고 박장춘은 호주머니에서 실을 꺼내여 또치까의 내경과 화구규격, 포신구경, 출입구규격, 천장두께 등을 잰 후 얼마간의 콘크리트쪼각을 떼여 챙긴 후 려영준을 슬쩍 건드렸다. 볼일을 다 봤다는 신호였다.

북산또치까정찰을 맞힌 두사람은 이번에 남산또치까를 향해 걸었다. 그런데 앞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적병이였다. 생사판결할 때라고 생각한 두사람은 권총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교통호 한쪽 벽에 납작 붙었다. 까딱하면 결사전을 펼친 판이였다. 말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니 총을 멘 두 그림자가 점점 앞으로 흔들흔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신경은 칼날처럼 번득거렸다. 그런데 놈들은 두사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였다. 손을 뻗치면 잡힐 만큼한 거리에서 슬쩍 스치고 지나쳐버리는 것이였다. 얼마나 아짜아짜했는지 모른다. 두사람의 이마로는 식은땀이 흥건히 배이기까지 했다.

두사람은 앞의 방법 대로 남산또치까로 들어가 내부구조를 정찰해가지고 국경선을 무사히 넘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놈들이 쏘련을 진공하자 왜놈들도 쏘련을 침공할 목적으로 쏘만국경지대에 많은 군대를 이동시켰다. 지휘부에서는 급변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각 소분대에 새로운 전투임무를 하달했다.

“그 때 나와 박장춘은 무전기를 가지고 로흑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적정을 무전으로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에 부딪치게 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이들은 일본군 1000여명이 자동차에서 내려 병영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러니 병력이 1000여명 증가되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무리 산에서 망원경으로 내려다보아도 병력이 증가된 것이 알리지 않았다. 1000여명 불었으니 원래 병력과 합치면 2000여명 되여야 할텐데 의연히 1000여명 뿐이였다. 무슨 도깨비감투끈인가. 적군의 똑똑한 수자를 정확하게 장악하기 위해 두 사람은 일본군으로 변장한 후 밤에 적병영에 접근했다. 두사람은 정거장 쪽으로 움직이는 적들의 긴 대렬을 목격하게 되였다. 정거장에 도착한 적들은 군용화물차바곤에 기여오르는 것이였다. 일본군을 만재한 군용차는 금창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왜 갑자기 밤에 이동하는 걸가?)

두 정찰병은 의문을 가득 품은 채 산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부릉부릉 하는 군용자동차의 엔징소리에 정신을 차린 두 정찰병은 망원경으로 적병영을 주시해보았다. 이게 웬 일인가. 1000여명의 병력을 실은 군용차가 또 도착한 것이였다. 어제저녁처럼 1000여명 적군은 정거장에 나가서 군용화물차에 오르는 것이였다.

“우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병영에 접근하고 지어 정거장홈에까지 들어가면서 끝내 놈들의 군사비밀을 알아내고 말았습니다. 그건 사실 놈들의 잔꾀였습니다.”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는 호방한 웃음을 날리면서 그 때의 정경을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이런 식으로 병력이 증가되면 로흑산은 일본놈천지로 되고 말겠지요. 그러나 일본놈 병력은 조금도 늘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며칠 동안 아침마다 1000여명씩 들어오는 일본놈들은 저녁에 실어내갔던 놈들이였기 때문입니다. 놈들은 남들 다 자는 저녁에 눈을 속여 병력을 실어내갔다가는 낮이면 버젓이 끌어들이는데 기실 당지의 백성을 속이기 위한 허장성세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황을 무선전으로 상급에 보고한 후 계속 로흑산에 있으면서 동녕에서부터 훈춘현 춘화까지 새로 닦은 군용도로의 너비를 재기도 하고 비행장과 포진지에 들어가 정찰하기도 하면서 활동을 전개해나갔습니다.”

범의 굴 지하아지트로

그런데 박장춘이 갑자기 앓아눕게 되여 정찰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였다. 려영준은 박장춘을 야영훈련소에 호송해간 후 혼자서 로흑산으로 돌아와 정찰활동을 계속 견지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다닐 때에는 서로 의지하고 말도 주고받을 수 있어 외롭지 않았댔는데 혼자이니 무척 고독하기만 했다. 또 두사람이면 적들의 눈을 쉽게 속여넘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여서 여간만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혼자서 일본군 군복을 입고 다니자니 위험한 때가 많았다.

“범의 굴을 지하아지트로 사용한 이야기가 참 생동하던데요.”

범의 굴 이야기가 나오자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는 깊은 감회에 잠기는 것이였다.

“그 범의 굴은 참 우연히 발견했댔지요.”

하루는 놈들의 전호를 정찰하고 산을 넘어오다 아침밥을 지어먹으려고 릉선의 움푹한 곳에 삭정이를 모아놓고 불을 피우고 있는데 건너산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건너다보니 왜놈순라기병들이였다. 려영준은 삭정이에 달린 불을 밟아 끈 후 부리나케 수림 속으로 들어갔다. 말잔등에 앉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던 놈들은 무슨 기미를 알아차렸는지 려영준이가 불을 피우던 곳으로 내려왔다.

(발각되였구나!)

목표가 드러난 줄로 안 려영준은 단숨에 10여키로메터를 냅다 뛰였다. 어디로 어떻게 뛰여왔는지 모른다. 머리를 쳐들고 바라보니 더는 빠져나갈 수 없는 험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깊은 골짜기의 막치기였던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온밤 정찰하느라고 배가 몹시 고팠댔지만 지금은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그저 바위틈에라도 숨어야 한다는 일념에 이곳 저 곳 살폈다. 마침 커다란 바위기슭에 동굴 하나가 있었다. 들여다보니 굴어구에 범 한마리가 죽어서 해골이 된 것이 있었다.

(아, 범의 굴이구나!) 순간 온몸이 오싹해나면서 머리가 쭈뼛이 일어서는 것만 같았다. 굴 안에서 당장이라도 “따웅”하고 범이 아가리를 짝 벌리면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권총을 뽑아든 려영준은 탄알을 절컥 재워가지고 굴어구에 비켜섰다. 한창 있어도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이번엔 돌맹이 한개를 굴 안에 들여뜨리고 귀를 기울였다. 역시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뒤를 돌아다보니 추격해오는 놈들도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들어가보자.

려영준은 발끝걸음으로 살금살금 범의 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2~3메터 들어가니 굴은 2층으로 되여있었다. 빙 둘러보니 30명은 실히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굴이였다. 금방까지의 무시무시한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어쩐지 아늑하게까지 느껴졌다. 갑자기 배에서 “꾸르룩” 하고 소리가 났다. 그제서야 배가 아플 정도로 허기가 밀려왔다는 것을 느꼈다.

삭정이를 한아름 주어가지고 우층에 올라간 려영준은 밥을 끓여먹으면서 밖을 주시했다. 혹 밖에 나갔던 범이 돌아오지나 않을가, 추격해오던 적들이 쳐들어오지나 않을가 하여 장탄한채로 총을 곁에 바싹 놓고 신경을 도사리였다.

하루가 지났다. 범도 오지 않고 왜놈들도 오지 않았다. 지형을 살펴보니 이 굴은 로흑산에서 20여키로메터 떨어져있었다. 그런데 죽은 범뼈가 그냥 있는 것으로 보아 당지사람들이 이런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그 후 그 범의 굴을 지하아지트로 리용하여 포탄골 장동무랑 태평골 송로인과랑 련계하면서 왜놈들의 군사정보를 수집하여 본부에 보고했지요. 하지만 누구도 내가 범굴에 거처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찰하러 나갈 때에 꼭 밤에 나가고 정찰을 마치고 들어올 때에도 밤을 리용해 돌아오면서 감쪽같이 행동했기 때문이지요. 전보를 칠 때에는 밖에다 안테나를 매고 줄을 끌어들여다가 무전기에 련결하였으며 송신이 끝난 후에는 인차 안테나를 걷어들였습니다.”

이렇게 몇달 동안 혼자서 정찰임무를 완수한 려영준은 겨울이 되여서야 본부로 돌아갔다.

연변일보 김철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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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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