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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혼 안 된다"유언에 첩 들인 신사임당 남편..예술혼 불태운 조선여인2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0월12일 05시22분    조회: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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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전 신사임당 필 조충도.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여류예술가로서 조선 사대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폐쇄적인 조선사회에서 사대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여류예술가도 있다. 바로 율곡 이이(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1504~1551)이다. 

고전은 여성을 차별하던 조선 선비들도 유독 신사임당에 대해서만은 "최고의 예술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한다. 조선 중기 학자 어숙권이 저술한 <패관잡기>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은 동양 신 씨(東陽申氏)가 있는데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포도와 산수는 절묘해 사람들이 안견 다음 간다고 평했다. 아! 어찌 부인의 필치라고 소홀히 다뤄져서야 되겠는가. 또 어찌 부인이 마땅히 할 일이 아니라 하여 책망할 것인가." 

걸출한 남성 화가들이 많았을 텐데도 당대 평론가들은 그녀의 이름을 당당히 안견 다음에 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패관잡기>는 신사임당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녀의 아들이자 조선 선비들의 대스승인 율곡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당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신사임당의 위상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저술한 <근역서화징> 역시 신사임당을 기록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규방에 매인 몸이었지만, 그녀가 살던 당시에도 사대부 사이에서 높은 경지의 예술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아들인 이이가 지은 <율곡집>도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바느질에 능해 수놓은 것까지 정교하고 묘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일곱 살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기 시작해 산수화, 포도화를 그렸는데 세상에서 견줄 자가 없었다. 어머니가 그린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수없이 전해졌다"고 기술했다. 

이이의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진 신사임당의 글씨와 그림을 다시 찾아 갖기를 소원했다. 이이의 후손 중 한명인 이백종은 신사임당의 추초군접도(秋草群蝶圖)를 어렵게 손에 넣어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1607~1689)에게 발제(跋題)를 부탁한다. 그러자 송시열은 이를 보고 "손가락으로 그려낸 것이지만 사람의 힘을 쓰지 않은 것 같다. 그림을 절대로 허술하게 보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당부했다. 

작자 미상의 시화집 <좌계부담>은 신사임당과 관련한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다룬다. 이에 의하면, 그녀의 남편 이원수(1501~1561)는 공부가 충실하지 못하고 행실도 부족한 면이 많았다. 남편이 을사사화의 원흉 중 한 명으로 비난받은 영의정 이기(1476~1552)의 문하에 출입하자 사임당은 이를 극구 만류했다. 아내 덕분에 이원수는 선조 즉위 후 윤원형과 이기가 처벌 받을 때 다행히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신사임당은 명이 그리 길지 못해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죽으면서 남편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내가 이미 네 명의 아들을 낳았으니 다시 장가들지 마세요"라고 부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수는 장가를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사임당은 종신토록 혼인하지 않은 증자(공자의 제자)와 주자(성리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주희)의 예를 들어 만류했다. 결국 이원수는 말문이 막혔다. 신사임당이 죽고 난 뒤 이원수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결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첩을 들였다. 

신라 28대 왕 진덕여왕(재위 647∼654·선덕여왕의 사촌동생)은 뜻밖에도 문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조선 후기 노론, 그중에서도 강경파에 속했던 서포 김만중(1637~1692)은 그녀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고루한 그의 눈으로 보기에 아녀자가 쓴 문장으로서는 수준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 작품의 진위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진덕여왕이 비단에 수놓아 당나라 태종에게 보낸 `송덕시`는 시 전체가 세련되고 우아해서 동방 이민족으로서의 기이한 풍습이 전혀 없다. 그 당시 삼한의 문자가 이와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니 황금으로 중국인에게서 사온 것이 아닐까." 여기서의 `송덕시`는 "훌륭한 당나라가 큰일을 여니, 드높은 황제의 교화가 창성하구나"로 시작되는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을 말한다. 
 

국보 제110호 익제 이제현 초상(일부).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듯 이제현의 손녀 역시 명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진설명국보 제110호 익제 이제현 초상(일부).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듯 이제현의 손녀 역시 명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말 문신이자 학자인 익제 이제현(1287~1367)의 손녀 경주 이 씨도 명문장가로 사대부들에게 명성을 떨쳤다. 이조판서를 지낸 신공제(1469∼1536)가 쓴 <해동명적>에 따르면, 그녀의 외손자 좌의정 홍응(1428∼1492)은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외조모의 시문과 필적이 한 상자 가득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젊었을 적에 쉽게 여겨 잘 보관하지 못했다." 이 씨는 그림에도 능했다. 홍응은 "지금 김유가 소장하고 있는 8장의 그림을 보니 진실로 따라갈 수 없는 경지로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서화수업을 받는 기생들. 일제강점기. 고전은 조선시대 사회적 차별에도 재능을 발휘한 여류예술가를 다수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설명평양기생학교에서 서화수업을 받는 기생들. 일제강점기. 고전은 조선시대 사회적 차별에도 재능을 발휘한 여류예술가를 다수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3절`로 불렸던 황진이는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로 시작하는 시조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그녀는 사대부들에게 그다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김만중은 그녀의 작품을 깎아 내렸다. "기녀 황진이의 시가 `속청구풍아(세조 때부터 선조 때까지 시인들의 작품을 뽑아 엮은 책)`에 실려 있기는 하지만 졸작에 불과하다. 부녀자가 쓴 시여서 사람들이 간혹 외워 전하고 있을 뿐이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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