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그 날의 그 ‘거칠은 손’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7일 09시10분    조회:13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부부로 살아오는 데는 비방 하나가 있는데 바로 잊을 수 없는 추억- 그 날의 그 ‘거칠은 손’과의 악수이다.

1972년 음력설, 돈화은행에서 사업하던 나는 설 쇠러 조양천 부모집으로 나왔다. 휴가가 끝나기 전날 옆집아주머니가 자기네 가문에 훌륭한 처녀가 있다며 무작정 나를 끌고 동불사로 갔다. 인물도 체격도 마음도 다 좋은데 집이 너무 가난한 것이 흠이라며 맏아들 노릇하는 김봉선이라는 처녀와 대면시켜주었다.

처음 그녀와 악수를 나누는 순간 나는 감짝 놀랐다. 마치도 나무뿌리를 잡아쥔 감각이였다. 온몸이 ‘찡’해났다. 은행에서 붓을 놀리는 28살 총각의 두부살 같은 손과는 너무나도 큰 대조였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그 손이 그녀에 대한 소개를 실증해줬다.

‘고생을 많이 했기에 행복을 읽을 줄 알 것이고 돈만이 아닌 사랑을 앞세울 녀자이구나.’

그리하여 나는 그 손부터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와 사귀였다. 그 ‘찡’하던 자극이 우리를 이어놓았다.

한번은 그녀가 간단한 선물을 부쳐왔는데 코바늘로 뜬 목깃이였다. 그 손으로 떴다고는 믿기 어렵게 곱게 뜬 것이였다. 그리고 그 뒤 날아오는 편지마다에는 고운 글발이 꽉 차군 하였는데 ‘그 손으로 썼을가?’ 하며 나는 읽고 또 읽군 했다.

봉선의 그 손도 또박또박 글공부할 때는 포동포동했을 터이고 가늘고 기다랗게 바이올린을 켤 수 있는 손가락이였을 테고 곱던 그 손을 탐내는 총각도 많았을 것이다

학교를 나와 농촌단련을 할 때부터 그 손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단다. 부녀주임이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 밥 지으라고 종을 치고 집집이 깨워주어야 했고 기운 장갑 얻어끼고 대채식 농사일에 언 흙덩이 다루어야 했으니 그 손부터 변하게 되였다.

맏딸이다 보니 아버지 병구환에 애쓰다가 여의고, 다섯식솔의 호주 노릇을 하며 겨울에는 소수레를 끌고 산에 올라 땔나무를 찍어오던 손이다. 곱게 자리잡아야 할 처녀의 손이 때이르게 생활의 세파를 겪으며 남자들 손 넘치게 억세게 자리매김하였다.

1년간의 련애생활을 거쳐 1973년 1월 나는 나를 ‘찡’하게 만든 ‘미운 손’ 가진 봉선이를 안해로 맞아들여 그 손이 내 손으로 되였다. 뭇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자고 다짐하며, 마음도 돈도 더 큰 고생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결혼 후 안해는 돈화의 식료품상점에서 그 손으로 5키로그람짜리 작두칼을 다루며 언 돼지고기를 찍어 팔았고 생활보탬을 위해 엄동설한에 눈 속의 사탕무우 다듬기도 하다 보니 그 손이 사탕무우보다도 더 험하게 거칠어졌다. 식료품공장의 종이사탕 감기 부업 때에도 손은 거칠어도 솜씨만은 너무 재여 수십명 녀성들 중 제일 많이, 제일 빨리, 제일 곱게 감는 사람이 되여 “조선족녀성이 다르다”는 평판도 받았다. 그러나 손가락끝이 사탕에 닳아 피가 터지는 고통까지 겪었다.

안해는 생활에 보태려고 밤시간을 타 세멘트공장의 세멘트포대 나르는 일도 찾아하였다. 50키로그람 되는 뜨거운 세멘트포대를 창고로 옮겨다 쌓는 일을, 뜨거운 열에 땀범벅, 세멘트먼지에 눈알만 판들거리는 먼지범벅이 되여 한포대에 10전을 버는 일, 남성들도 당해내기 어려운 일을 자식을 위해, 동생들을 위해, 남편의 부담을 덜려고 해내였다.

목기공장에 다닐 때에도 그 손은 여느 남자 못지 않게 막히는 일 없었다. 통나무 굴리기, 널판자밀차 밀기, 나무구슬 깎기… 림업국 묘포장에서 나무 심기, 나무 뽑기를 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돼지풀도 한임씩 이고 왔다. 돼지풀 진에 ‘미용’된 거칠은 손은 색갈마저 변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보일러 석탄재 속의 콕스를 주었으며 겨우내 식량보탬으로 10포대의 감자를 깎은 손이다. 식솔이 많고 로임이 적다 보니 생활난은 컸지만 그 날의 그 ‘찡’하던 추억이 나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힘을 주고 또 주었다.

지난 세기 70년대, 그 손은 이처럼 험한 일들을 면치 못했다. 그토록 험하게 당하는 손이건만 그 세월에는 저녁에 20전짜리 ‘조개약’을 쓱 바르면 그만이였다.

남편을 살리려고 김이 나는 태반을 구해다 그 손으로 씻고 삼복의 찜통에서 화로불을 피워놓고 가공했으며 밤 새우며 식구들 털실옷 떠입히고 자기 아이들 옷은 기워입히며 친척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새 옷견지 사입혔다. 시동생의 생일에 3원을 부쳐주라고 하였는데 안해는 그 손으로 5원을 부쳤다.

그 손으로 회계실무를 배워내였기에 은행구좌행표를 떼거나 로동자들의 로임 발급으로 많은 돈을 다루었지만 한번도 차실이 생긴 일이 없었다.

그 손으로 1986년에 입당지원서을 썼고 주먹을 굳게 쥐고 당기아래에서 선서하였다.

거칠은 그 손으로 아이를 문질러주면 너무너무 시원하여 곧잘 잠들었고 그 손으로 나와 애무하면 나도 너무너무 즐거웠다. 고무장갑 한짝 없어 맨손으로 양념을 다루어 열 나는 손을 밤새껏 찬물에 불구며 담근 김치는 해마다 일찍 거덜났고 그 손으로 주물러 만들어주는 안주는 그렇게도 맛있었다.

그 손으로 시어머니 등 밀어드렸고 미음을 떠넣어드렸으며 대소변 시중도 알뜰히 하였다. 또 그 손으로 며느리 출산간호를 하여주고 사위가 좋아하는 료리도 즐겨 볶았다.

그 손이 있었기에 아들딸 출세하고 손군들도 총명하게 잘 자란다. 그 손의 보살핌에 남편이 나이보다 젊게 살아가며 고부간 소문 높게 화목했으며 형제들이 다정하고 사돈간에 형제처럼 지내고 동네에서도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산다. ‘찡’하게 놀랍도록 ‘거칠은 손’과의 악수가 언제나 우리 삶의 힘이 되였다.

우리 둘은 두 손 마주잡고 사교무를 배워냈으며 금강산 유람길도 손잡고 함께 톺았고 조선 원산 앞바다에서 물장구도 쳤다. 일본 아까와온천에서 둘이 두 손 꼭 잡고 1박2일의 귀족대우생활의 즐거움도 만긱하였다. 무거운 짐에는 언제나 함께 내미는 우리 두 사람의 두 손이다.

안해가 지역사회 주임 겸 당지부서기 사업을 하는 7년간 그 손은 더욱 쉴 새 없었다. 손은 거칠어도 마음만은 부드러워 서민들의 아픔을 덜어주려고 동분서주하며 상급에 보고서를 써올리고 그 손으로 길가에 쓰러진 로인을 인중 안마하며 구급하고 전국 문명도시건설에서‘5호문명가정’의 영예를 따냈으며 거칠어진 그 손으로 ‘자치주민족단결진보모범’ 상패를 받아안았다.

지금도 안해의 손은 쉴 새가 별로 없다. 빨래질, 장판 닦기, 밥짓기… 손에 물 마를 새가 없고 아직도 해야 할 일 많다며 두 손을 비비며 자아안마한다. 영원히 퇴직휴양할 줄 모르는 안해의 ‘거칠은 손’은 행복을 키우고 재부를 모으며 기적을 쌓는다. 인젠 험한 일은 없으니 손바닥 장알은 풀어졌어도 굳어진 손마디는 그루박았고 손등에는 때이르게 불청객이 찾아와 고운 검버섯이 내리여 수놓아졌다.

지금도 때때로 고단히 잠든 안해의 그 거치른 손을 살며시 잡아볼 때면 처음 잡아보던 그 날의 그 ‘찡’함이 생생히 감각된다.

살아오다 보면 고달플 때도 있었고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 ‘찡’하던 첫날의 악수에서 놀라던 일이 떠오르면 모든 일이 다시 사랑으로 변하군 한다. 그 날의 그 감각이 나를 45년 지켜주었고 우리의 혼인을 떠밀어주고 있다. 이 생애에는 사라질 수 없는 너무도 보귀한 ‘거칠은 손’ 추억이다. 그 추억이 우리 사랑의 시작이였고 그 추억으로 45년 손잡고 나란히 걸었으며 그 추억이 우리의 석양을 진붉게 진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그 날의 그 추억 속에 우리는 꼭 잡은 두 손으로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금은보화를 관리하고 두 손 함께 내밀어 손군들의 명문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아보며 시대를 따르는 ‘잉꼬’부부로 살아가리라!

회혼례의 술잔도 함께 받아마시자는 약속을 지키며 이 세상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도록 열심히 풍요롭게 로후를 장식하며 오래오래 살리라!

언젠가 내가 이 세상 먼저 간다면 봉선이는 그 손으로 내 눈을 쓸어줄 것이고 만일 당신이 먼저 간다면 나는 우리 사랑이 시작되고 애정이 슴배여 굳어진, 나를 ‘찡’하게 놀래운 그 거치른 손부터 잡아주리라.

나는 인젠 손이 거친 녀자면 좋은 녀자라는 관념까지 선다.

나는 ‘거치른 손’에 반한, ‘거치른 손’을 가진 봉선의 남편이다.

짜릿하던 그 날의 ‘거치른 손’ 잡던 추억은 우리 행복을 쌓아가는 비방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2016년 5월 13일, 장장 13시간 하늘을 날아 우리 일행은 마침내 상해로부터 프랑스 빠리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가눌새도, 구겨진 옷을 갈아 입을 새도 없이 부랴부랴 관광버스에 올라 유럽려행 첫 코스 개선문을 향한 마음은 흥분에 들떴다. 빠리의 거리는 상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상해 륙가주(...
  • 2022-05-17
  • 최선 다해 삶을 살아가는 녀강자 고향이 흑룡강성 가목사인 정계화(1967년생)는 부모형제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정계화는 아버지가 장기환자인,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3남매 중 맏이로 태여났다. 호도거리를 시작하면서 정부에서는 대부금을 내주며 ‘전문호’로 될...
  • 2022-05-17
  • 올해 봄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본지방을 마음대로 리탈하지 못하는 방역지침을 따라야 하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타지방으로 가지 못하고 가까운 일광산, 후안산 진달래꽃 구경으로 만족해야 했다. 요즘은 그 진달래꽃도 어지러이 락화하는지라 어디로 구경갈 데도 마뜩잖던 차에 등산애호가인 윤선생이 4월 30일...
  • 2022-05-10
  • 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어느 휴일, 나는 강변을 거닐다가 우연히 연 띄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연이 자유로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연줄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 조금 날다가 휙 돌아치며 땅에 곤두박질하는 ‘물고기 연’이 있는가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일락 말락 까만 점으로 되자 급히 연줄을 ...
  • 2022-05-10
  •   [료녕신문 최수향 기자] 5월 8일, 대련아리랑예술단 전체 단원 31명은 80세 이상 장수로인 5명을 모시고 뜻깊은 어머니날 경축모임을 가졌다.   이날 대련아리랑예술단 성원들은 예술단의 장수로인 리복록, ...
  • 2022-05-10
  • 빈곤퇴치 난관공략 촌주재사업팀 일군에서 전염병퇴치 ‘따바이(大白)’가 되기까지 연변주청소년사업발전쎈터 부주임 김명길은 그야말로 ‘전문역행자’이다. 이 동북 조선족 ‘90후’는 “어디에서 나를 필요로 하면 나는 어디에 간다.”고 말했다.   3월초, 연변 훈춘에서...
  • 2022-05-07
  • 김향자 촬영작품 《고향•넋》 전시 포스터 4월 16일, 연변녀성촬영가 10인 초청작품전의 첫 행사로 김향자(61세)의 《고향•넋》작품전시가 연길백화청사(8층) 하건나(哈根娜)커피청에서 정식 개막되였다. 녀성의 달 3월을 겨냥하여 준비한 작품전이건만 코로나사태로 미뤄진 행사라 모처럼 이루어진 모임에서 주...
  • 2022-04-22
  • [수기 103]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4-15 20:40:27 ] 클릭: [ ]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강인한 힘으로 인생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손에 손 잡고 가자는 말도 있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동조의 뜻이다. ...
  • 2022-04-17
  • [수기] 마음의 가책 김영숙 (룡정시북안소학교) “앗…” 종합 실천활동 시간에 애들과 함께 채색 종이를 오리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그만 부주의로 가위에 왼손 식지가 찔리웠다. 깊게 난 상처는 아니지만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솟아나왔다. 애들은 울상이 되여서 “선생님, 괜찮습니까? 빨...
  • 2022-03-29
  • 3월 8일 오전, 료양현 흥륭진 홍광조선족촌은 촌사무실 앞마당에서 ‘3.8’부녀절 경축행사를 가졌다.     “오늘 우리 ‘시골’ 동네에서도 ‘3.8’절 경축행사를 가졌수다” 문정숙 촌서기 겸 촌주임의 가득 들뜬 말이다.      현재 홍광조선족촌...
  • 2022-03-10
  • [수기] 집 찾아 돌아온 오리 김순옥 몇년전 나는 그림 같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새 아빠트에 입주했다.  아빠트단지에 들어서면 유난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 오리 조각상이 있다.  매번 오리 조각상을 볼 때마다 지나간 추억이 새록새록...
  • 2022-02-25
  • [수기] 부러움 없이 보냈던 동년시절의 설 김춘선 나의 동년시절은 남진골, 차창에서 보냈다. 남진골은 화룡현 덕화향의 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페허로 되였다. 남진골에서 출생한 내가 세상 물정을 알게 되였을 때는 아마도 대여섯살부터인 것 같다.   1958년 7월 화룡 차창에서 형제들과 함께 기념...
  • 2022-02-24
  • [생활수기] 코바늘에 깃든 이야기 - 최범수 갓 결혼하고 첫 딸애를 본 나는 마냥  즐거워 늘 행복 속에 잠겨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출근했다. 금방 걸음마를 탈가말가하는 딸애는 그렇게도 귀엽기만 했다...
  • 2022-02-24
  • [생활수기] 손자에게서 배우는 재미 - 리삼민 ‘강산이 일곱번 바뀌’는 사이, 뜻밖의 사연으로 얼굴이 뜨거워질 때가 많았지만 외손자가 나에게 준 교훈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외손자의 이름은 김...
  • 2022-02-17
  •  [수기] 행복을 찾아가는 길 김영실(연길시건공소학교) 전 지구촌을 휩쓰는 코로나19 때문에 정상적인 교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하며 복새판을 부리다 보니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갔다.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보노라니 분명히 어려운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행복했던 순간들...
  • 2022-02-17
  • 장백산 아래 어느 로부부가 들려준 ‘길’에 담긴 이야기     장백산 아래에 사는 김은호, 남영자 로부부가 고향에 들어선 고속철역 앞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길부터 먼저 닦으라”는 말이 있다. 지난해 12월 24일 장백산고속철이 개통식을 가진던 날, 안도현 현성과 200여리 떨어진 ...
  • 2022-02-10
  • 수기ㅣ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정영수 나에게는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며칠전 친구모임을 가졌는데 설전에 단동 친구네 별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지정한 날자에 심양에서 승용차 두대에 몸을 싣고 출...
  • 2022-02-07
  • 과거에는 많은 친척들이 모여 함께 설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눠 먹던 풍경과 달리 코로나19 사태로 직계가족만 모여 조용하게 명절을 보내는 추세가 반영되면서 장을 봐서 일일이 조리해야 하는 음식보다는 간편하고 간단하게 료리할 수 있는 반성품,간편식이 인기이다. 1월 31일, 3년째 반성품  ‘땅추(当厨)&rs...
  • 2022-02-07
  • 연변가정연구소 문화봉사자팀은 지난 1월 16일 그들의 전문 교육장인 연길태원호텔에서 제2기평생교육강좌 수료식을 ‘마지막 수업’으로 15년간 이어온 평생교육강좌를 마쳤다. ‘문화봉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온 15년의 성장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문화봉사자팀 일동은 우선 “20여년간 하루...
  • 2022-02-03
  • 바로 지금이다. 그대 곧 시작하라!   김훈       며칠전 한국에 있는 지인이 전화로 문안을 전하면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보람찬"일거리"를 찾았다고 했다.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예술무대에서 유명세를 탔던 별호가 “수러우”인 리옥희 배우다.. 지인이 찾은 보...
  • 2022-01-28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