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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세기의 신화》의 서사담론 연구(김경훈) 댓글:  조회:1602  추천:0  2009-05-16
Ⅰ. 서론근대적 개념으로 소설은 텍스트 형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은 언어라고 하는 매개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소설텍스트를 언어적 담론으로 보게 된다. 소설의 언어는 바흐친의 주장대로 다층성과 이질성이 특징이며 이는 인간들의 복잡한 삶의 내용과 관계가 된다. 이처럼 소설은 논리와 감성이 조화된 정치한 의사소통의 체계를 기본 구조로 하기 때문에 소설의 서사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소설의 언어를 대상으로 의사소통의 거대구조 차원과 텍스트의 미세구조 두 차원의 분석이 동시에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 거대구조 차원의 분석은 《소설현상》에 대한 분석이다. 문학을 거대 소통행위로 보는 관점을 문학현상의 관점이라고 한다면 소설을 거대 층위에서 바라보는 소통행위구조를 《소설현상》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서 출판을 하면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중개를 거쳐 독자에게 보급되는데 독자는 이 작품을 읽은 후 여러 가지로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대체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여러 사람한테 전달이 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 하는 것은 그러한 반응이 작가한테 미치는 영향이다. 전통적인 문화의 공간에서 독자의 반응은 크게 문학 애호가를 포함한 일반적인 독자층과 비평가를 중심으로 한 고급적인 독자층으로 층위가 나뉘게 되지만 요즘의 사회적 특성상 작품의 판매 현황과 독자층의 변화에 대한 고려도 독자의 반응을 연구할 때 함께 해야 할 사항이 될 것이다. 아무튼 문학에서의 작가와 독자의 소통의 구조는 일상의 언어적 대화의 소통 구조가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소설의 경우, 작가는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무엇을 뜻 깊게 전달하려고 하고 독자는 자기의 부동한 문화적 배경과 체험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반응은 결과적으로 독자의 체험을 보다 보편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것으로 두텁게 하는 동시에 작가의 창작을 새롭게 영향 주게 된다.그런데 소설의 이러한 외적인 소통 구조와는 달리 소설작품의 내적인 소통구조는 텍스트의 담론구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소설은 그 이야기를 소설가가 직접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을 등장시켜 말해준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즉 소설의 서술과 전달은 서술자의 개입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서술자는 텍스트 표면에 나타나기도 하고 뒷면에 숨기도 한다. 텍스트 표면에 나타나는 서술자의 양상도 여러 가지로 작중인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작중인물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작중인물이 되더라도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조역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에 나오는 서술자의 이러한 역할 분화는 이른바 액자소설에서 잘 나타난바 있다. 소설텍스트의 언어적 층위는 작가, 서술자, 작중인물, 그리고 서술자나 작중인물에 의해 지시되는 텍스트 외적 인물들의 언어로 층위를 이루게 된다. 이들 층위 사이에 나타나는 상호작용은 대화적 속성을 띠게 된다. 소설의 기호론은 소설을 이루는 층위 사이에 나타나는 대화적 속성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 이는 소설의 요소를 독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구조 안에서 요소들 사이의 연관성이 중시하고 이들 요소들 사이의 연관성이 시각의 조정을 통해 어떻게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는 예술적 장치 역할을 하는가를 살펴보는데 있다.소설은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이야기를 함으로써 문제를 이끌어내는 양식이다. 소설내적인 문제 상황에 독자가 동참하게 되는 것은 기호론적 구조의 언어화 즉 담론을 통해서이다. 소설의 언어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담론의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작가-작품-독자》의 층위와 《서술자-작중인물-피서술자》 층위를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담론은 언어학에서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정태적 자료인 언어가 아니라 주체들이 개입함으로써 역동적으로 활성화된 언어를 말한다. 다른 말로는 대화화된 언어를 뜻한다. 대화화된 언어는 텍스트를 고정된 언어매체로만 보지 않고 일정한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인물의 행동 방향까지 제시함을 말한다. 따라서 담론화된 언어는 언어를 통한 이데올로기 실천이 된다.   하나의 소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담론의 주체를 고려해야 함은 물론 이 주체들의 행위범주도 고려해야 한다. 즉 주체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촉발하는 동기를 살펴보지 않고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위의 의미를 알 수 없다.이 논문은 바로 김학철의 《20세기의 신화》를 고백체의 소설로 보고 그 근거를 이 소설 속의 인물의 그러한 행동과 행위의 동기가 작가의 것과 일치한다는 데 두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논문은 김학철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인 《20세기의 신화》에서 구사되는 서사담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는 김학철 연구에서 보편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소설의 내적 질서 내지 형식미에 대한 부분을 보충하고 그의 소설세계의 진모를 밝히는데 기여할 것이다.Ⅱ. 《20세기의 신화》의 서사 담론의 특징소설 텍스트는 다양한 사회적 언술이 예술적으로 문맥화된 결과이다. 소설의 담론은 다양한 계층의 언어를 두루 포함하며 또한 매 개인의 개성 있는 말투를 예술적으로 재조직한 것이다. 이러한 소설적 담론의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장르는 장편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의 언어를 가장 복합적인 층위로 풍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광활한 소설적 공간과 충분한 소설적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편소설이란 장르에서 가능하겠기 때문이다. 담론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소설의 언어는 우선 작중인물들의 시각으로 탈바꿈된 대화이고 다음 서술자의 해석이 가해진 지문 형태의 표현이다. 끝으로 여러 가지 다른 양식의 말들이 여기에 가세함으로써 소설적 담론의 언어 체계는 비로소 다양한 층위에서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1. 투사적 서술체김학철의 《20세기의 신화》의 언어담론의 특징은 단적으로 말해 서술자와 작중인물의 말이 거의 동일한 성격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법을 투사적 서술(投射的 敍述)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기의 감정을 인물의 심리와 행동에 투사함으로써 작가와 인물과의 거리감보다는 내적인 관계를 맺는다. 물론 독자는 이러한 관계를 주로 인물의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점은 곧 서술자의 감정과 인물의 감정이 혼연일체를 이루는 데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독자는 인물의 감정뿐만 아니라 서술자의 감정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되고 매 개 장면과 대화의 내용에서 독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서술자의 관점으로 초점화되게 된다. 결과적으로 독자의 시각은 작품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서술자와 작중 인물의 밀접한 관계는 고백체의 언어적 특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내가 아직 어렸을 때의 일인데 먼촌에 사는 우리 사촌형이란 군이 어른들의 담배 피우는 게 어찌나 부럽던지 어른들 몰래 살담배 한 봉지를 사가지구 굴뚝 뒤루 들어갔더라나. 나중에 우리 고모란 이가 바가지를 들구 잿물인가 뭘 뜨러 갔다가 보구 놀라서 고함을 쳐 식구들이 달려나와 보니까…… 기가 차지. 열네 살 먹은 그 사촌형이 정신을 잃구 나가쓰러진 바루 옆에 크기가 거의 나팔만한 마라초 한 대가 덜어져서 그저 타구 있더라는군. 글쎄 이 무지한 군이 커다란 신문지 조각에다 살담배 한 봉지를 단꺼번에 다 말아가지구 들입다 빨아댔다지 뭐요. 그러니 제놈의 머리가 휭 돌잖구 어째여.》작품의 전편(강제노동수용소)의 시작 부분에서 일평이가 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설의 제9장에서는 굶주림과 병마에 죽음의 길로 자식을 앞세운 채와 심의 비참한 사연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적인 것에 대한 고백은 이 소설에서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많이는 현실적인 것과의 교차로 과거적인 내용이 고백체에 담겨져 있다. 전편의 3장과 4장에서 이어지는 일평이의 과거에 대한 회억과 현실 상황이 교차적으로 서술되는 부분과 10장, 11장에서 작가들의 수난, 그리고 13장에서 18장까지 기아와 아첨쟁이들의 교차적인 모습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과거와 현실의 교차적 출현은 작가의 현실 비판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임은 물론이다. 또 소설의 후편(수용소 이후)에서 일평이와 이선생과의 대화(2, 9), 정숙이와의 대화(3, 12, 13),  심과의 대화(4, 11, 12, 15, 17)채와의 대화(8) 등은 작가의 고백적인 언술에 기대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 후편을 관통하는 고백체에서 가장 대표적인 언술의 사례는 후편의 제16장이다. 이 부분은 주로 이선생한테 보내는 일평이의 편지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바, 바이올리니스트 채의 죽음을 전하면서 그 죽음을 강박한 어두운 시대에 대한 질타로 되어 있다.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바람이 낙엽을 굴리며 돌아다니는 묘지는 쓸쓸하기가 마치 달나라 같았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졸고 있는 병든 까마귀의 꺼칫한 깃이 바람에 거슬리는 것을 보니 어쩐지 보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으스스해지는 것 같았습니다.서산마루에 핏빛의 낙일이 뉘엿뉘엿 가라앉을 무렵 겨우 봉분을 끝내고 술 한잔 없이 봉분제를 지냈습니다. 어떻게 지냈는지 아십니까? 선생님. 고씨가―반동음악가라는 딱지가 붙어다니는 고씨가―무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어요. 망인이 생전에 가장 사랑하던 《찌고이너바이젠》을 마지막으로 들려주자는 것이었지요. 그가 사랑하던 바로 그 바이올린으로 말입니다.  《찌고이너바이젠》의 가슴 설레는 선율이 타는 듯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하고 땅거미가 깃들이는 묘지에 울려퍼질 때 저는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했습니다. 심선생도 눈구석을 눌렀습니다. 하씨는 흐느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쌌습니다.고씨는 바이올린을 울리고 또 울리고, 울리고 또 울리고 수없이 울렸습니다. 마치 무엇에 접한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기진맥진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할 작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심선생이 다가가 고만하라고 어깨를 쳐서야 겨우 멈추고 돌아서는데 그 눈이 혼 나간 사람의 눈같이 공허했습니다.하씨가 바이올린은 임자 곁에 묻어주겠다는 것을 우리가 밀막았습니다. 봉분 앞에서 사르겠다는 것도 못하게 붙들었습니다. 《남편의 손때 묻은 물건이라군 이 바이올린 하나가 남았을 뿐인데 기념으루 남겨둬야 하잖느냐》니까 하씨는 《그래두 바이올린이 없으면 더 고적해할 것 같아서 그런다》며 울음을 터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일견 최서해의 《탈출기》의 기본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강렬한 사회비판적인 성격으로 특징적이다. 서한체는 소설적 구조로 작용할 경우, 화자나 인물의 내면적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의도적인 허구나 과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궁핍에 처한 그러한 인물의 내면을 가장 진실하게 반영한다. 《탈출기》에서의 주인공 《나》와 앞의 예문에 나오는 일평이들은 경제적인 가난과 정치적인 박해라는 점에서는 다를지 모르지만 모두가 주인공을 극도의 궁핍과 곤궁에 빠뜨리는 환경의 억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한 소설적 배경을 갖는다. 그러한 억압은 결국 인물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바, 《탈출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앞의 예문인 제16장의 끝부분에서도 페퇴피의 시를 인용, 삐라 사건과 함께 투쟁에 선뜻 나서리란 다짐을 함으로써 고백체의 언술은 내면 의식의 강조로 마무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액자소설의 구조고백체의 언술로 특징지어지는 이 소설의 담론 특징은 다른 한편, 액자 소설의 구조를 일부 취하고 있음으로써 사회비판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평이가 길섶에 앉아 담배를 얻어피우며 사원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는 대개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철도자살을 한 젊은 색시의 남편은 본래 농사일에 막히는 게 없는 실농군이었는데 불행이 닥쳐오느라고 팔다리의 관절이 붓는 병에 걸려 운신을 못한 지가 벌써 1년이 넘었다. 인민공사의 진료소는 의사도 시원찮고 설비도 불충분하고 또 약도 변변치가 못한 까닭에 치료를 옳게 할 수가 없어서 환자를 시내 주립병원에다 보냈더니 주립병원에서는 진찰을 하고 나서 입원을 시켜야겠는데 300원을 먼저 들여놓는 게 규정이라고 그냥은 받아주지를 않았다. 그러나 한낱 보통사원이 현금 300원을 마련한다는 것은 마당에서 삼을 캐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환자는 운신을 못하고 집구석에 앓아누워 짜증 부리는 것과 한숨짓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답답한 형편에 어린아이는 또 어린아이대로 없는 밥을 내라고 온종일 울고 보채었다. 혀도 제대로 안 도는 것이 눈만 뜨면 제 어미를 잡아뜯으며 《바부 바부》소리를 고집스레 외웠다. 아이의 성화를 받다 못한 어미가 수일 전에 생산대의 ㅂ종자 한 바가지를 몰래 떠내다가 밤저녁에 도적 절구질을 해가지고 어린아이에게 밥을 지어 먹였다.이 일이 탄로가 나자 대대(大隊) 당지부에서는 여사원들을 한 100명 동원해가지고 공유재산을 절취했다는 죄로 색시를 《변론》에 부쳤다. 색시에 대한 변론은 저녁 어슬녘에 시작되어 가지고 닭울녘까지 계속되었다. 이 동안에 ㅂ종자 한 바가지 떠낸 색시는 《도둑고양이 같은 년》이라는 욕설로부터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지주․부농의 앞잡이》라는 정치딱지까지, 《씹을 팔아서라도 훔친 벼종자 값을 당장 물어내라》는 공동(恐動)으로부터 《네년이 그따위 심보를 가지고 이담에 쪽박을 차잖거든 내 이 손바닥에 장을 지지라》는 저주까지…… 아무튼 인간으로서의 들을 수 없는 악담은 하나도 빼놓잖고 다 들었다. 차마 사람의 귀로는 듣지 못할 야비한 욕설과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치이는 끔찍끔찍한 저주의 우박 밑에 젊은 색시는 밤새껏 서 있었다. 백 사람의 입이 퍼붓는 십자포화와 백 사람의 눈이 퍼붓는 집중포화 밑에 젊은 색시는 밤새껏 서 있었다.이런 장소에서는 악독한 욕설을 많이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당의 사업에 충실한 것으로 된다고 지도일꾼들이 뒤에서 부추기는 까닭에 열성분자로 되려는 사람들은 다 사슬에 매인 개처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날뛰었다. 악독한 욕설을 덜 퍼부으면 낙후분자로 인정을 받고 악독한 욕설을 아주 안 퍼부으면 적을 동정하는 미덥지 못한 인물로 지목을 받게 되므로 아무도 감히 입을 다물고 가만있지를 못하였다.이날 밤 변론회가 일단 파해서 색시가 집에 돌아온 것은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집에 돌아온 색시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한숨도 짓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거둘 것 거두고 치울 것 치우고 제 할 일을 다 하였다. 그러던 것이 저녁차 내려올 무렵에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업고 집을 나왔다. 곧장 철길까지 나와가지고 색시는 업은 아이를 내려서 가슴에 꼭 껴안자 달려오는 기차의 바퀴 밑으로 뛰어들었다. 전편의 5장에서 철도자살을 한 젊은 색시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그것도 굶고 있는 어린아이가 불쌍해서 종자 벼 한 바가지를 훔쳤다가 목숨까지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막힌 사연이다. 이 사연은 작품에서 어느 한 노인이 주인공인 일평이한테 들려주고 있고 이를 다시 독자들이 엿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즉 노인의 이야기는 하나의 액자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고 이 사건을 듣는 일평이의 모습은 또 하나의 사건을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인의 이야기는 내부적 사건으로 되고 일평이의 반응은 외부적인 사건이 된다. 이 외에 《인민의 적》으로 판정이 되는 바람에 파혼할 수밖에 없은 일평이와 이혼을 강요당한 채의 이야기(9장), 같은 이유로 강제노동 현장에 끌려온 고향이 산동인 왕의 이야기(12장) 등도 이러한 액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액자의 형식은 보다 객관적으로 사회의 문제성을 드러내고 그 본질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예는 사회비판적 성격이 주요한 소설적 분위가가 되고 있는 이 소설에 적절히 활용된 경우이다. 물론 고백이 아닌 순수 스토리나 플롯으로서의 사건 전개도 일부 삽입되어 그러한 객관성과 사회비판성에 일조하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제6장에서 똥거름을 이고 《농업을 지원》하는 것으로 3`8절을 기념하는 여성들의 행렬을 묘사한 부분이나 제7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수수쌀 소동》등이 일례가 된다.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고백체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의 기본 구조에서 상징적으로 형식화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의 기본 사건이 서술자와 동일한 주인공의 시각에 의해 전개가 된다는 점, 그러한 사건이 주로 주인공과 기타 인물과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이 소설의 기본적인 서사구조이다. 다른 측면에서 전편과 후편이 18개의 장절로 분절되어 있고, 이것이 주로 암담한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서 작가가 의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죽음의식 내지 지옥(18층 지옥)의식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러한 분절이 상징하는 바가 우연의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수용소 안팎이 전혀 다를 게 없이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 바로 그것이라고 하는 작가의 단정에서 그러한 상징성은 충분히 계산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Ⅲ. 결론김학철의 《20세기의 신화》의 서사담론은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고백체의 언술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그의 작품의 사회비판적인 주제를 극대화하는 가장 개성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독백체의 소설의 일반적인 특징인 타자성에 대한 반발로서의 내면적인 의식의 담론화는 이 소설에서 기타 작가가 경험하기 힘들었던 김학철 나름대로의 고아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억압되고 밀폐된 수용소 같은 공간에서 그러한 고아의식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작가의 경우 이 점은 해당 시기에 보편적으로 감행되었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왜곡 상에 대한 회의에서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는 주체민족의 잘못된 시책에 휘둘린 피해의식과 그러한 주체에 영합할 수 없는 소외감 내지 허무감이 무겁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김학철의 이 소설에서 담론의 궁극은 소외된 타자의 위치에 있는 민족에 대한 우환의식이 내면화되어 있고 이러한 궁극적인 담론은 그의 소설 전체를 일관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는바, 그가 우리 민족 공동체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그때 당시부터 벌써 하나의 중요한 사명감으로 출발하여 시도하고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국 이러한 잠재적인 담론이 그의 수필에서 가장 직접적이고도 폭넓게 진행되었음은 더 설명할 나위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학철의 이러한 잠재적인 담론은 개인의 의식 분열과 공동체의 해체 위기에 허덕이는 오늘날의 현실적인 문제를 돌아볼 때, 역사적이면서도 시대적인 담론으로 지속적으로 되풀이해야 될 주제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것이 그의 전반 문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요한 관건임은 물론이다.참고문헌김학철, 《20세기의 신화》, 창작과 비평사, 1996김상태, 《문체의 이론과 해석》, 새문사, 1982바흐친, 김근식 역, 《도스또예프스끼 시학》, 정음사, 1988구인환 외, 《문학교육론》, 삼지원, 1992주석:1)《문학현상》은 문학이 이루어지는 내적 외적 제반 조건을 고려한 현동화 양상을 가리킨다. 즉 작가와 작품과 독자의 역동적인 작용태를 뜻하는 동시에 문학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역사적 조건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구인환 외, 《문학교육론》, 삼지원, 1992 참조)2)1 액자소설은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끌어들여 이야기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서사기법이다.3)지금까지의 김학철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사회역사적인 비평의 방식으로 일관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하게 전개되어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연구 시각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중요한 목적의 하나로 삼고 있다.4)김상태, 《문체의 이론과 해석》, 새문사, 1982 참조.5)바흐친은 작가의 사상이 인물들을 지배하고 작품 안의 세계와 정신의 구석구석에까지 스며들어 모든 것을 통합하는 소설을 독백체 소설이라고 했었다. 바흐친, 김근식 역, 《도스또예프스끼 시학》, 정음사, 1988. 15쪽6)김학철, 《20세기의 신화》, 창작과 비평사, 1996. 이하 예문 같음.7)언술이란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쓴 모든 것을 총칭한 개념으로서 광기의 사례들이거나 법률적인 규정, 역사적 자료 등》을 말한다. 푸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특징적인 언술이 무엇이며, 그 언술을 제약하는 조건은 무엇인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룸으로써 새로운 역사 기술 방법을 제시한다. 8)《이때까지는 최면술에 걸린 송장이었다. 제가 죽은 송장으로 남식구들을 어찌 살리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를,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다가 성공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원한이 없겠다. 이 시대 이 민중의 의무를 이행한 까닭이다.》-《탈출기》에서9)김학철은 오래 동안 국적을 바꾸지 않았었고, 여기에 정치적인 박해를 지속적으로 받으면서도 정의와 진리를 위한 끊임없는 외로운 추구를 거듭해왔는바, 이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외로움 내지 소외감은 극에 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8    시적 소재와 상상력의 관계(김경훈) 댓글:  조회:1396  추천:0  2009-05-16
―남영전의 《토템시》를 곁들여   1. 들어가는 말시 창작에서 시적 소재와 주제의 관계는 기타 문학 장르의 경우와 달리 상상력의 요소를 더욱 강조한다. 시는 제한된 그릇 속에 압축된 정서를 개성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의 유무는 물론, 얼마나 시적인 상상력을 확보하는가 하는 것이 창작에서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상력의 소산으로 우리는 흔히 비유나 은유, 이미지 등 기타 여러 가지 요소를 따져서 시인이 그것을 얼마나 소지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80년대 후반기부터 조선족시인으로서 한족문단에 한문시로 주목을 끌어왔던 남영전 시인이 나름대로 《토템시》들을 의도적으로 내놓아 문단에 새로운 소재를 선보인지도 한참 되었다. 요즘 그의 《토템시》를 두고 주로 개념의 인식적 측면을 둘러싸고 찬반의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해 있다. 시에서 상상력의 요소가 그토록 중요하고 시가 시다운 가장 중요한 요인이 시적 상상력의 구조에 있음을 강조할 때, 이 글은 그러한 개념적 인식의 차원과 달리해서 우선적으로 시다운 점들이 그의 《토템시》에서 어느 정도 내재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이러한 작업은 우리가 특정된 시기와 특수한 요구에 매달리지 않고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작품의 우열을 따지는 올바른 작품 감상, 내지 연구의 결과에 잇닿을 수 있게 할 것이다. 2. 시적 소재와 시인 의식 소재와 시인의 의식은 시인의 대상에 대한 독특한 감수성에서 발생하게 된다. 일부의 경우 집단적이거나 시대 정치적인 요구에 의해 소재에 대한 시인의 의무적인 접근이나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소재와 시인의 의식의 사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수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거 특정된 시기나 시대에서 시인들은 그 같은 집단적인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여 적지 않은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그 시기의 문학사의 주된 내용을 장식하고 있었던 예는 비교적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경우 시인의 시대나 세계에 대한 개인적 인식보다는 집단이나 시대의 정치문화적인 요구가 전면에 부각됨으로써 시대정치적인 요구는 만족시키지만 시라고 하는 장르의 정서적 특성이 특별히 요망하는 개성적인 감수성의 표현은 극력 억제됨으로써 예술성이 적잖게 저하되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 세기 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전반에 창작된 카프의 시 창작이 이를 잘 설명한다. 카프의 많은 시작품들이 경직되고 공허한 구호화된 결과물로 되어버린 것은 시인들이 식민지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삼투하지 못하고 그들의 내면의식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목적의식적으로 노동자 농민의 현실을 반영"하고자 했기 때문이다.물론 식민지 상황이나 전쟁과 같은 극한의 사회상황에서 시 문학이 시인의 개성적인 목소리보다는 민족이나 집단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공리적 압력을 이겨내기란 아주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화시기에서도 그러한 사회 공리적인 압력이 도를 전혀 낮추지 않고 시인들의 붓대를 좌지우지했던 경험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사회 공리적인 압력이 문학의 내적인 발전의 법칙에 위배될 정도로 시인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또 다른 현상은 바로 시인이 스스로 압력을 자초하는 경우이다. 이는 대부분 시인이 사회의 공리적인 요구에 발 빠르게 맞추고자 할 때 나타나는 상황이 된다. "혁명적인 시대"에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대에 들어선 뒤에 그러한 현상은 상업화의 기류와도 관련되어 독자에 대한 문학인의 지나친 의식이 작용함으로써 비롯된다. 좀 더 많은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독자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고, 독자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요구에 맞춰가던 나머지 무분별하게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작품에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긍정할 점은 시민사회, 민주사회의 건전한 기틀 확립에 문화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이지만, 다른 일면 작가적인 사명감이 결여된 무책임한 독자에의 아부 현상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좀 이색적인 상황을 제시하면 독자에 향한 작가의 폭력이다. 대체로 베스터셀러 시기를 지나 독자한테 군림하기 시작한 작가나 낮은 문화 소양의 독자에게 연막을 흩뿌리거나 일종의 우롱을 함으로써 자기 과시와 만족을 얻고자 하는 작가들이 여기에 속한다.남영전의 《토템시》 창작을 돌아보면 앞에서 제시한 많은 경우와 다르다. 그는 정치문화적인 억압의 시대에서 창작을 한 것이 아니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창작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가 토템문화에 관련한 수백만 자 되는 저서를 의도적으로 탐독하고 써냈다는 42수의 《토템시》는 《초기 인간의 아름다움과 착함에 대한 관념을 현실에 융합시켜 토템숭배의 풍만한 생명력이 현실적 의의를 가지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을 다시 회복시키고 다시 주조하여 민족문화의 정신의 성장과 발전을 추진시키고 인류평화와 형제애를 다지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본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잡다한 소재가 《토템》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시화된 구체적인 사례도 적기 때문에 설득력이 부재해 보인다. 지금까지의 대체적인 판단에 따르더라도 《곰》, 《태양》, 《달》 등 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 《토템시》의 소재로 선택한 《백마》, 《까마귀》, 《장닭》, 《양》, 《거북》, 《토끼》, 《두꺼비》, 《개》, 《돼지》, 《제비》, 《사자》, 《고래》 등은 조선민족의 토템이란 증거가 희박한 상황에서, 그리고 어느 민족의 토템이란 증거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무질서하게 나열된 일반적인 자연 대상으로 인식되기 쉽다. 물론 자연 일반의 가장 기초적인 기틀이고 원시인에 의해 자연신으로 인정된 《물》, 《산》, 《불》, 《구름》, 《바람》, 《번개》, 《비》 등 사물까지 망라됨으로써 그야말로 천하의 모든 대표적인 동식물, 자연 일반을 아울렀지만 그것이 민족의 토템으로 어느 정도 인식되고 있는지, 더욱이 그것의 시적인 표현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 조화될 것인지는 사뭇 걱정스런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소재가 시인의 창작적인 선택 범위에 들어있지만 모든 소재가 등가적인 존재로 특정의 주제를 위할 수 없다. 소재는 그것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속성 외에 시인에 의해 2차, 혹은 그 이상의 상상이나 비약을 거쳐 새로운 상징성을 띨 때라야 만이 시적인 소재로서 탈바꿈하게 된다. 《토템》을 주제로 삼고 계열 작품을 쓴다고 할 때, 우리는 작품의 주요한 소재가 토템으로서의 속성이 있는가를 따져야 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시인에 의해 새로운 상징이나 이미지를 띠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①덩굴풀 우거진 검푸른 숲을 지나갈대밭 거치른 음침한 늪을 건너    무궁세월 엉금엉금 걸어나와    쓸쓸한 굴속에서 살았더라쓰고 떫은 다북쑥 씹으며맵고 알알한 마늘을 맛보며    별을 눈으로    달을 볼로    이슬을 피로 삼았더니예쁘장한 웅녀로 변했어라세인이 우러르는 시조모 되었더라―《곰》에서②祖先的白色靈光 正悄悄捕捉黑色的鬼魅黑色的邪惡 祖先的白色溫馨 正緩緩融化重疊的雪山堆積的怨恨 祖先的白色慈祥 正輕輕"撫模可愛的子孫寂寞的心靈(중략)祖先的白色之門鑲在遙遠的太陽上 那永不鎖閉的祖先之門 是子孫世代享不盡的福之源頭―《태양》에서③백의숙녀 둘레둘레 나리꽃 원무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설레이는 원은 하늘에서 내린 달 펄렁이는 사람은 하늘우의 선녀 풍요의 원리는 그래서 밀물이고 녀성의 원리는 그래서 륜회이고 생명의 원리는 그래서 지속됩니다 집요하고 지성어린 그 신앙 그 숙원 은은히 은은히 천지간에 흐릿한 환영으로 빛납니다―《달》에서앞의 예문들에서 《곰》, 《태양》, 《달》 등 주요 소재는 인간으로의 환생, 흰색 이미지, 민속적 풍물 등이 각각 상징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기에 우리의 《토템시》라고 말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기타 《백마》, 《까마귀》와 같은 작품들과 《물》, 《산》 등 작품들은 그러한 민족적인 상징체계가 부재함으로써 우리의 《토템시》로는 물론이거니와 기타 민족의 《토템시》로 보기 힘들게 된다. 여기서 특히 《물》 등 후자의 경우,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공간을 이루는 범인류적인 조건으로서 토템으로 격상해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시 작품의 상징체계는 그것이 《토템시》와 같은 경우, 민족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어야 함은 물론, 시인 개인의 상징체계를 통해 특징 있는 양상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남영전의 《토템시》에서 개인적인 상징체계는 어떠한가?3. 상징체계와 시인 의식 사회적인 상징체계와 시인 개인의 상징체계는 그것이 시인의 감수성을 매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룰 때 새로운 의미를 빚어낼 수 있게 된다. 더욱이는 《토템시》와 같이 사회적인 문화와 관련되는 창작에서 이 양자 간의 관계를 적절히 처리하는 것이 성공적인 시창작의 관건이 된다.앞에서 예를 든 작품은 오래되었으면서도 빛바래지 않은 민족적인 상징이 시적인 언술 속에 적절히 내재되어 있으므로 성공된 창작의 경우가 된다. 하지만 기타의 《토템시》의 경우, 그러한 민족적인 상징체계는 희박해지고 같은 소재의 계열 작품을 수적으로 늘여갈 경우, 개인적 상징이나 비유의 체계도 따분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원인은 우선 너무나 많은 소재를 토템의 범주로 취급하려는 욕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또 하나는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 시인의 시적인 어조가 같은 톤으로 시종된 데서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전자의 상황은 이미 열거한 바이거니와 후자의 경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작품에서 중심적인 소재가 되어 작품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동물의 경우 흔히 일반적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동물적인 속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표현이 자주 드러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든다면,살같이 달려온다 하연 보슴털은 부드런 탄자 넓직한 등허린 편안한 안장 갈망과 숙원 싣고 지성과 신념 싣고 자유의 령지 향해 아름다운 산천과 리상의 언덕 향해 살같이 달려간다 끝없이 씽씽―《백마》에서분노하노라 고함치노라 너절하고 어리석음이 꼴사나와 뒤쫓노라 덮치노라 물어뜯노라 잔뼈 하나 남기잖고……―《범》에서홰를 칩니다 힘찬 목으로 뜨거운 피로 우렁찬 목청으로 날마다 날마다 세세대대로―《장닭》에서是獵者 是追捕禽獸的好幇手 是衛士 是守護主人的精靈―《犬》에서      只因驚愕 從南到北從北到南 爲尋一片淨土 年年遷徙 遷徙 遷徙 遷徙了 幾百年幾千年了―《燕子》에서이러한 일반적인 속성이 주제 해명을 위한 시의 주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음은 이들 계열시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경물시》로 바라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거니와 보다 문화적인 주제로서의 승화를 저애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인 속성에 머무는 현상은 동물 외에 자연을 대상으로 했을 때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었다.   안개 되고 구름 되고 비가 되고 눈이 되고 냇물 되고 강이 되고 호수 되고 바다 되고 뿌리에 줄기에 잎속에 꽃과 열매에 파고들어 인간과 자연을 낳아 기르는 인간의 시원입니다 만상의 시원입니다―《물》에서山之沈黙爲最深沈之沈黙 山之胸襟爲最寬廣之胸襟 山之品格爲最高尙之品格 山爲生靈永恒之歸宿―《山》에서한편, 상징의 체계에서 오래된 비유의 관습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적인 비유의 부분도 엿보인다. 일례로 《양》에서 우리가 너무 자주 표현하는 《희생양》의 이미지가 새로운 의미 부여나 탈바꿈이 없이 그대로 사용된다.   산속에서 산 지키고 산을 아끼는 산중지왕 산중신령사람들의 혼암한 죄 대신해 사람들의 불선한 악 대신해 쫓겨갑니다 황막한 들판으로 눈 쌓인 골짜기로 더더욱 위엄스런 제단 앞에 죽음을 당합니다 기도하는 아침녘에 죽음을 당합니다―《양》에서시인의 시작품에서 일상적인 비유, 상징의 관습이 자주 드러나는 외에 일부 표현의 부분에서 보게 되는 문제점은 전체 계열 시들의 구조가 대체로 대동소이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들리는 원인으로 짐작이 되는데 이것이 또한 시적인 주제의 효과적인 표현에 영향을 미침은 당연하다.   파아란 하늘 조각조각 받쳐들고 무연한 땅 갈래갈래 갈마쥐고 시베리아 마파람 휘감아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중략)먹장구름 몰아내고 덧쌓인 세상 먼지 가시며 땅속의 정기 하늘로 올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회오리칩니다 잎새마다 넓은 지역 가지마다 높은 공간 무연한 록음 뭉게뭉게 펼치면서 환생의 힘을 부릅니다 부활의 넋을 부릅니다 (중략)그 언제나 언제나 창천을 떠이고 대지를 거머쥐고 떳떳이 떳떳이 솟았습니다―《신단수》에서(밑줄은 필자의 것)예문에서 보다시피 의미의 강조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반복으로 시적인 흐름의 유창함에 장애가 발생하며 자칫 공허한 웨침으로도 들린다. 그런데 다른 작품에서 이러한 비효율적인 반복과 상반되는 효과의 구절이 보여 시인 스스로 그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을 보이기도 한다.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이사갑니다 ―《백조》에서 이 구절은 시각적인 부분에서 의미와 주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반복으로 되어 있다.다음의 예문은 일단 번역에서 나타난 오류거나 언어적 차이에 대한 몰리해로 비롯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시라고 하는 장르에 대한 보다 사례 깊은 관심을 요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 발굽은 장업한 신당에서 춤추고 두 뿔은 호신칼로 억세게 솟고 울음은 축전의 창구소리 울린다 때문에 대붕의 날개, 신단수 가지와 함께 숭엄한 왕관에도 우거지고 장려한 전당에도 솟아오른다 때문에 움직이는 교량으로 신성한 비석으로―《사슴》에서(밑줄은 필자의 것)4. 나오는 말소재와 주제의 관계는 시의 경우 시인의 개성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할 때 가장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오늘의 격변하는 현실 속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심미적 요구를 제때에 파악하면서도 시인으로서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않을 때 오늘의 독자뿐만 아니라 내일의 독자에게도 읽히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남영전의 《토템시》에 대한 분석은 문화적인 요소 외에 기타 시적인 기능의 측면에 대한 분석이 함께 할 때 그 전모가 보다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이 글은 우리 시문학의 보다 건전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소박한 염원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주석:1) 1958년의 대약진 시기 시인들이 "자보"했던 수백편, 수천편의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다.2) 요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스타급의 언론가들 중 일부가 여기에 해당 될 것이다.3) 여기서 동물의 일상적인 속성은 물론 개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상징체계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윤동주의 작품을 잠깐 제시하고자 한다.눈우에서개가꽃를 그리며뛰오―개모두 13자밖에 안 되는 작품에서 개와 꽃의 관습적인 ‘대립관계’를 조화롭고 필연적이기까지 한 것(꽃을 그리다)으로 만듦으로써 ‘꽃’에 상대한 ‘개’의 부정적 이미지를 변용하여 작디작은 작품 속에 충만된 미감을 가득 내재하고 있다.
7    건널 수 없는 강(김재국) 댓글:  조회:2219  추천:1  2009-05-16
그녀의 이름은 아야(彩), 물론 그녀는 일본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나는 왜서 그녀의 눈길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해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단순히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나는 언녕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눈길을 다시 따스한 눈길로 되돌려놓을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호감을 사려는 노력같은 것은 진작부터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눈길로 나를 보는 그녀의 마음도 결코 나의 마음만큼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는 마치 급속도로 달리던 두 차가 격돌하면 양쪽이 다 파손되는 이치와 같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이 더 아플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그녀의 말 한마디면 장기쪽같이 우리 라인의 사원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 사장이이라는 빽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 라인의 라인장이였다. 한때 나는 그녀의 눈길과 부딪칠 때마다 <차별>이라는 낫말을 떠올렸다. <차별>은 그녀가 나에게 쓸 수 있는 마지막 핵무기었다. 그녀는 내가 <차별>을 얼마나 싫어하고 증오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멸시의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별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 그녀의 눈길 앞에서 나는 차별받는 쪽에 언제나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에 짓눌려 신음만 하다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몸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양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과는 달리 아침에 그녀를 만나도 <오하요> 하고 인사하지 않았다. 일본인에게 있어서 인사는 필수의 필수이고 기본의 기본이다. 나는 바로 이 필수의 필수, 기본의 기본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써 그녀를 일단 무시해버렸다. 매번 그녀가 나에게로 다가와 지시할 때마다 나는 다른 사원들처럼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이,하이>한 것이 아니라 로보트처럼 뚝 버티고 서서 무표정한 기색만 지어보였다. 처음에 그녀는 나의 그런 급작스러운 대응에 조금 당황해하는 기색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당황한 눈빛은 너무나 빨리 원상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 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훨씬 잔인하고 야멸찼다. 너 정말 나 앞에서 손을 들지 않을거야?! 벼랑끝처럼 가파로와진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이런 강박을 해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미국 학자 비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을 연상했다. 비네딕트의 말처럼 그녀는 한 떨기 예쁜 <국화>이면서도 한자루 섬뜩한 칼이기도 했다. 우리의 냉전이 활화산처럼 폭발하기는 다만 시간 문제였다….. 한때 그녀는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를 대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해빛같이 따스했던 그녀와의 지난 날들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일본인의 이해와 사랑, 그네들과의 교류와 접촉에 항상 목말라했던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감로수와도 같은 존재였고 천사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8백만 일본 신(神)들이 나에게 보내준 유일한 은총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처음 회사로 출근하던 날, 그녀와 나는 묘하게도 회사 주차장에서 만났다. 내가 주차장 한 모퉁이에 바이크를 세워놓고 막 자리를 뜨려 할 즈음,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예쁘게 생긴 여인이 자가용차 도아로 머리를 내밀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왜서 그곳에 바이크를 세우지요?> 나는 일시 어떻게 변명했으면 좋을지 몰라 난감하게 웃기만 했다. <이곳은 주린장이 아니라 주차장인데 왜 바이크를 여기에 세우냐 말이에요> 여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며 다시 소리쳤다. <저─주린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요……> 나는 그때까지 나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그녀를 향해 겨우 변명 한마디 했다. 사실 바이크를 주차장에 세웠다고는 하지만 다른 차들의 주차를 방애할만한 위치에 세운 것은 아니였다. 바이크를 세운 곳이 주차선 밖인 데다가 회사 바람벽 한 모퉁이였으니까. 그러나 그녀 역시 자그마한 어긋남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딱딱한 일본인이였다. 그녀는 운전석에 앉은 채 내가 어서 바이크를 움직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린장이 어디에 있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손으로 회사 건물 뒷쪽을 가리켰다. <저기 은행나무 보이죠? 저쪽으로 곧추 가다가 왼쪽으로 꺾어들면 주린장이 보여요> 은행나무를 가리켜보이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에서 금반지가 빛을 발했다.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니 연푸른 잎새로 단장한 청초한 은행나무가 파아란 봄 하늘을 떠이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그녀에게 인사하고 곧추 은행나무 쪽으로 바이크를 밀고 갔다. 그런데 그날 인사과 미야자키과장이 나를 이끌고 간 작업 현장에서 의외로 그녀를 다시 만날 줄이야. 내가 먼저 어색하게 그녀를 향해 웃었다. 그녀도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미야자키과장이 그녀 앞에 나를 내세우며 느긋하게 말했다. <아야씨, 지난 번에 말했던 중국 유학생이에요. 지금 대학원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데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조금 있는 모양이에요. 일본으로 온지도 몇년 잘 되고 우리 말도 참 잘해요. 오늘부터 매주 사흘씩 우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알아서 잘 가르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합니다> 말을 마치자 미야자키과장은 <간밧떼네>(힘 내세요)하는 말을 나에게 남기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사라졌다. <아야라고 해요> 미야자키과장이 자리를 뜨자 그녀가 나에게 곱싹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킨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그녀를 따라 깍듯이 인사했다. 우리 말의 김씨는 일본 말로 <킨상>이 되기에 그녀는 그 후로 나를 킨상이라고 불렀다.  <이러고 보니 방금 킨상에게 많이 실례했네요>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까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례는 제가 했지요. 허나 그 일로 해서 우린 이미 구면이 되기도 했네요.> 나의 말에 아야가 웃었다. 기계로 정밀하게 가공한 듯한 그녀의 하얀 이가 이뻣다. 나는 속으로 아야는 웃으면 더 이뻐보이는 유형의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녀는 오전 내내 나의 옆에 밀착해 서서 작업 요령을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내가 맡은 일은 각 판매업체들에서 보내온 주문서에 따라 라인에 실려나오는 화장품들을 차곡차곡 상자속에 넣는 작업이였다. 화장품 종류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주문 숫자에 맞게 그것들을 상자에 넣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의 자상한 가르침으로 나는 어렵지 않게 일의 요령을 장악했다. <역시 지식인이 다르긴 다르네요!> 내가 혼자서 척척 일을 해내자 그녀는 손벽까지 치며 환성을 질렀다. 남자로서 여자의 칭찬을 받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녀로 해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즐거워하면서도 나는 결코 그녀의 칭찬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의 오랜 체험을 통해 나는 일본인들의 칭찬이 우리의 칭찬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인은 누구와 대화할 때 상대를 올리추고 치하해주는 것을 하나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날 아야는 일본인의 예의로 나를 칭찬한 것이지 우리의 상식으로 칭찬한 것은 결코 아니였다. 나는 아야의 칭찬에 들뜨려하는 나를 경계했다. 그날 그녀는 나를 데리고 회사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그녀는 내가 출근하는 금,토,일에 회사 식당에서 어떤 음식 메뉴들이 나오고 그 중 어떤 요리들이 맛있다는 것까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킨상은 일본 사시미를 좋아하세요?> 식사하는 도중에 그녀가 문득 이런 물음을 제기했다. <사시미를 좋아하는가>는 내가 일본인으로부터 자주 받아온 질문이었다. <물론 좋아하지요> 나는 내가 왜서 <물론>이라는 수식어까지 덧붙혀가면서 사시미를 좋아한다고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나의 말에 그녀는 <그래요?!>하며 놀라했다.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웃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낫또(納豆)와 우메보시(梅干)는요?>하고 또 물어왔다. 나는 낫또는 좋아하는데 우메보시는 별로라고 했다. <낫또마저 좋아한단 말이에요?> 나의 말에 그녀가 웃음으로 가늘어진 눈을 갑자기 커다랗게 떠보이며 놀란 어조로 되물었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본의 낫또는 삶은 메주콩을 벼짚꾸러미나 보자기에 싸서 띄운 것이기에 우리의 청국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르다면 우리는 청국장을 끓여서 먹지만 그네들은 낫또를 띄운 그대로 먹는 것 뿐이었다. 일본으로 온 외국인에게 와식(일본음식) 중에 가장 거부감이 가는 음식이 뭐냐고 하면 1호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낫또였다. 그런데 그런 낫또를 내가 좋아한다고까지 하니 그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에─!우리 일본 사람들 중에도 낫또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녀는 일본 말 특유의 경탄어인 <헤에─!>를 길게 뽑으며 말했다. 위로 약간 치뜬 그녀의 고운 눈이 나의 앞에서 진주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진주같은 눈에 홀리울 것같은 자신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관서지방 사람들이 낫또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과 함께 자기는 낫또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왜서 좋아하지 않지요?> 그녀는 쿡 하고 웃음을 쏟으며 실처럼 길게 늘어지는 낫또의 찐득찐득한 풀기에 자기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 킨상은 왜 낫또를 좋아하지요?> 나는 그녀의 입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낫또라는 화제에서 어서 도망치고 싶기라도 하듯 더 말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그런 물음을 제기했다면 나는 일본의 낫또와 한국의 청국장의 상사점을 설명하면서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까지 밝혔을런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킨상은 우리 일본 사람이나 다름없네요> 식당 문을 나서면서 그녀가 나에게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이나 다름 없다는 말도 이미 많이 들어왔지만 그녀가 한 그 한마디는 어딘가 빛갈이 다른 것같았다. 그 빛갈이 어떻게 다른지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혹시 그것은 다만 느낌으로만 알 수 있고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라인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나는 그 후에도 자주 회사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말이 점심이지 우리들이 마주 앉은 식탁에는 언제나 맛나는 요리보다는 재미나는 화제가 훨씬 많이 올랐다. 나는 그녀와 말할 때마다 나의 빈약한 일본어가 각별히 풍부해지는 것같은 느낌에 놀라군 했다. 그녀는 나의 머리속에 숨어있는 사어(死語)들을 되살려내는 요술사같았다. 그녀로 해서 나는 점점 대학원으로 가는 날보다는 회사로 출근하는 날을 더 기다렸다. 우리의 대화에 시샘이 나기라도 한듯 회사원들이 이따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농조로 <설마 두분이 국제연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하고 골려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수줍음을 잘 타는 일본 여자답지 않게 태연하게 웃기까지 하면서 <보면 몰라요> 하는 말로 가볍게 맞대응하군 했다. 나는 <보면 몰라요>하는 그녀의 표현까지도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중국에 대해 참으로 궁금증이 많은 여자였다. 무릇 중국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나 다 알고 싶어할만큼 그녀는 중국의 일에 관심을 보였다. 지어 그녀는 나의 입에서 무심결에 튕겨나온 사랑할 아이(愛) 의 중국어 발음 하나마저도 알려고 욕심을 부렸다. 일본어에는 <아이>의 중국어 발음을 대체할만한 발음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처음에 를 일본식 발음으로 <아-이>라고 발음했다. 나는 그녀의 <아이>의 발음을 몇번이나 교정하여 주다가 불쑥 <아이>의 반의어인 증오(한스러울)할 헌(恨)자를 한번 발음해보라고 했다. 이라는 나의 발음을 모방하는 그녀의 입에서 <헨>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본어에서 <헨>은 이상하다는 뜻이다. <이제보니 아야씨는 사랑도, 증오도 잘 못하는 분이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나의 말속에 담긴 이중의 뜻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랑도 했고 증오도 했어요> 그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농담처럼 한 말인데도 그 목소리엔 진실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愛>와 <恨>의 발음만을 반복해서 배워주는 것이 조금 따분하게 느껴져서 나중에는 <我爱你〉(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我恨你>(나는 너를 미워한다)라는 실용적인 말도 배워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혀 짧은 소리로 <愛>와 <恨>을 이상하게 발음하던 그녀가 거의 완벽할만큼 <我爱你>와 <我恨你>를 발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신비해서 몇번이나 그녀더러 그 두마디 말을 다시 발음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어보다는 그녀가 가장 취미를 가졌던 것은 역시 중국에 대한 상식같은 것들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한달 월급은 얼마나 되는가. 중국 사람들은 왜 아이를 하나밖에 낳을 수 없는가. 중국의 상점들에서는 왜서 고객한테서 세금을 받지 않는가. 중국 남자들이 가정에서 밥을 한다는 것이 정말인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모택동 초상을 천안문 앞에 걸어놓는가. 왜서 중국 사람들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가. 중국에서 관광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어떤 곳들이 있는가. 중국 사람들도 이혼을 많이 하는가. 이혼하면 아이는 어느 쪽에서 부양하는가. 그녀의 질문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실태래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중국에 대해 무작정 알고 싶어하는 그녀가 나는 처음부터 싫지 않았다. 아니, 싫은 정도가 아니라 나에겐 오히려 그것이 향수였다. <킨상의 말을 더 듣고 싶은데 참 아쉽네요> 매번 오후 출근 종소리가 울릴 때면 그녀는 항상 이런 말로 우리 대화를 매듭 짓군 했다. 진실보다는 예의를 더 갖추는 일본인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그 말만은 믿고 싶었다. 만약 그녀의 말마저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일본에는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 때 아야의 마음과 나의 마음 속에는 우리의 헤여짐을 아쉬워하고 만남을 기대하는 하나의 작은 진실이 싹트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진실이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과 불륜이라는 말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지 모른다. 나는 다만 우리가 향수하는 온전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 속에 진주처럼 빛을 발하며 들어앉고 있는 진실─이혼한 여자와 집을 멀리 떠난 남자가 서로 인간으로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진실─을 믿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점심시간만을 이용하여 대화하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언제 한번 퇴근 후에 다시 만나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지 않았다. 퇴근을 알리는 회사의 종소리는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렸지만 그녀와 나의 귀가는 항상 어긋났다. 나는 아르바이트였기에 오후 5시만 되면 무작정 퇴근해도 됐지만 그녀는 사원이여서 퇴근시간 뒤에도 회사에 남아 잔업을 해야 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엄마였음에도 그녀는 퇴근시간보다 늘 한시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일주일 중 그녀가 휴식하는 요일은 다만 수요일 하루 뿐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 것은 지난 여름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쏟아붓기 시작한 비는 저녁까지도 끊힐 줄 몰랐다. 비오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바이크를 집에 두고 전차로 출퇴근하군 했다. 그날도 비가 왔기에 나는 전차로 출근했다. 하루 일을 다 끝내고 회사 밖을 나서니 비는 그때까지도 숙어들지 않고 계속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내일 발표할 리포트를 써야 했기에 나는 겁없이 비속에 뛰어들었다. 회사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자면 대개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회사 정문을 나와 10분 정도 걸었을가 할 때, 누군가 뒤를 따라오면서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댔다. 나는 그 경적소리를 나더러 길을 비켜달라는 뜻으로 알고 유보도 섶에 더 바싹 다가붙어 걸었다. <킨상─!> 갑자기 차소리와 빗소리를 꿰뚫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면서 뒤돌아보니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자가용차 안에서 아야가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나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녀는 어서 차에 올라타라고 힘차게 손짓했다. 나는 그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그녀의 차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집이 어디지요?> 그녀가 액셀러를 힘있게 밟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집까지 바래주겠다는 뜻이었다.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라고 하자 그녀 입에서 갑자기 <어머머머……>하는 놀라운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놀라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그 다음 그냥 알려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우니 나더러 한번 맞춰보라고 했다. 혹시 그녀의 집도 모토마치 고소아파트에 있는 것은 아닐가? 나의 머리엔 얼핏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나 내가 들어있는 아파트는 시에서 경영하는 아파트이기에 그녀가 살고 있을리 만무했다. 시영 아파트나 현영 아파트는 외국 유학생이나 수입이 적은 일본인들을 대상하는 일종 복리성적인 주택이였다. <혹시 아야상의 집으로 가자면 꼭 내가 사는 모토마치 고소아파트를 지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가요? 가는 방향이 같으니까 이렇게 놀라는거지요?> 나의 말에 그녀는 또 다시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헤에─?!>했다. <절반은 알아맞췄네요> 그녀는 우선 이렇게 말해놓고 조금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킨상으로서는 어떻게 해도 알아맞추지 못할거에요. 그래서 알려주는건데요. 우리 집은 킨상 집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을 열어젖히면 킨상네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보인다는 말이에요. 어때요. 놀랄만 하지요?> 그녀가 말하는 강이란 오타가와(太田川)를 말한다. 오타가와는 너비가 약 백메터 정도밖에 안되기에 이쪽 기슭에서 대안을 바라보면 건너쪽 사람의 얼굴마저 선명하게 가려볼 수 있다. 만약 오타가와 강이 우리 사이에서 흐르지 않는다면 그녀와 내가 사는 아파트는 이름마저 같은 한 동네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넓지도 길지도 않은 오타가와 강 하나 때문에 그녀와 나는 모토마치쵸와 카미야쵸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동네에서 각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날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꼭 나와 가까운 곳에서 살아야 이유가 없었음에도 나는 마치 우리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아온 일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내가 어디에선가 몇번 본 얼굴 같기도 했다. 어디에서 보았을가? 나는 핸드를 잡고 신나게 차를 모는 그녀의 옆모습을 뜯어보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 다리위? 커피점? 산데이야쌍? 뽀프라? 쎄븐일레븐? 햐카다라면점? 공민관?..... 그녀의 제의로 그날 우리는 내가 사는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있지 않은 <아오이야마>(靑山) 커피점에 들러 커피 한잔씩 했다. 그녀는 아메리카 홋또 커피, 나는 멕시코 냉커피를 각각 주문했다. 우리가 커피점에 들린 이유를 그녀는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가깝게 살아왔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로 하자고 말했다. 함께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도 꼭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이유를 달고 커피를 마시면 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커피에 두 숟가락 분량의 프림을 탄 나와는 달리 그녀는 프림이나 설탕을 타지 않았다. 내가 왜 프림을 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커피의 순수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프림이나 설탕을 타면 커피의 원래 맛이 사라져버린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백여년 동안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 땅에서 유일무이하게 남은 한점의 정토(淨土)를 발견한 듯해서 감동까지 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화할 때와는 달리 그녀와 나는 그날 어색할만큼 말을 적게 했다. 그녀는 중국에 대한 질문을 한마디도 던지지 않았다. 별로 웃지도 않았다.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따금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하고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가끔 수심에도 잠기군 하는 그녀의 모습은 낯설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말은 적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가담가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는 그때까지 내가 미처 몰랐던 슬픈 사연들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그날 자기는 3년 전에 남편과 이혼하고 지금 다섯살에 나는 딸 하나만 데리고 셋집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출신은 원래 동경이였는데 8년 전에 남편과 결혼한 뒤 이곳 지방 도시로 옮겨오게 됐고 지금은 처지가 전도돼서 원래 지방 사람이였던 남편이 동경에서 살고 동경 사람이었던 자기가 지방에서 산다고 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남편과 이혼한 원인까지 들려주었다. 어느 날 친정으로 놀러갔다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홀로 있어야 할 남편 옆에 웬 여자가 누워있더라는 것이였다. <그 여자가 누구였는지 아세요?> 갑자기 그녀가 쓰겁게 웃으며 물었다. <누구였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잔 옆 유리병에 꽂힌 빨간 장미가 슬프게 예뻣다. <대학교 때 나와 한 합숙에서 살았던 동창이였어요─!. 우습지요?> 한참 후 그녀가 말했다. 아픈 사연을 말하는데도 그녀는 얼굴에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물론 냉소였다. 나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남의 말을 하듯 남편의 외도를 쉽게 뿜어내는 그녀의 차가운 입술은 그녀가 이미 과거의 그늘에서 많이 벗어나있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킨상은 행복하겠죠?> 한참 후 그녀가 입술에 댔던 커피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지 불행하다고 해야 할지 한 동안 망설였다. <거의 6년 동안이나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아온 내가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할가요? 누구에게나 다 말할 수 없는 아픔같은 것들은 있는 것 아닐가요?> <물론 그건 그렇지요> 그녀는 나의 아내나 아이가 다 중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그녀도 많이 놀라했지만 그날은6년이라는 나의 말에 서글픈 웃음만 지어보일 뿐이였다. <어서 학업 성취하고 가족에게로 돌아가셔야 하지요>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물론 그래야 하지요>하고 말하면서도 <돌아가셔야 하지요>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말할 수 없는 실의같은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 나를 우리 집까지 바래주었다. 도중에 그녀는 강 넌너 쪽에 있는 자기 집 아파트를 가리켜 보이면서 자기는7층에서 산다고 했다. 7층이라는 말에 나는 <설마?!>했다. 묘하게도 나도 7층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강 하나 사이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7층에서 살기까지 한다는 근사점과 일치점을 놓고 그녀는 금방까지 슬픈 이야기를 했던 여자 같지 않게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나나,나나(7,7)라?, 참 재미나는 숫자인데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왜서 <재미나는 숫자>라고 말하는지 그 뜻을 알 것같았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7.7은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씩 만난다는 <타나바다>(七夕)를 의미한다. 지금도 <타나바다>가 되면 일본의 일부 지역의 젊은 연인들은 연등이 밝게 켜진 아늑한 공원의 수림속에 마주 앉아 밤 깊도록 술을 마셔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야와는 달리 나는 <타나바다>와는 전혀 관계가도 없는, 중일전쟁의 심벌인 북경의 <7.7노구교사변>을 떠올렸다. <7.7>이라는 숫자 앞에서 우리는 견우와 직녀를 떠올리는 일본 여자와 <7.7사변>을 떠올리는 중국 남자로 갈라져 있었다. <아오이야마커피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 일이 있은 후, 나와 그녀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져 갔다. 이전에는 서로 회사 식당에서 만날 때마다 중국 문제만을 화제거리로 삼았었는데 그 일이 있은 뒤에는 화제가 서서히 사적인 생활에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어제는 뭘 했는가?><내일에는 뭘 할 타산인가?>를 묻군 했다. 물론 나도 그와 똑 같은 물음을 그녀에게 던졌다. 나의 사생활을 캐고 드는 그녀가 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녀 또한 내가 물으면 아침에 뭘 먹었고 어제는 어디로 갔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일을 조금씩 확인하고 간섭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에 적당히 다가서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기를 갈망하는 내가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러는 나를 가로막을만한 의지도 없었다. 일본이라는 틀, 대학원이라는 상자 속에서 항상 숨막히게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해오라기 날아예는 바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 산이 솟고 강이 흐리고 들이 펼쳐진 육지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녀가 없던 과거에는 다른 통로들도 많이 보였었는데 그녀가 나의 앞에 나타난 뒤로는 그런 통로들이 다 막히고 오로지 그녀의 통로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점점 나에게로 다가서는 것을 알면서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녀가 도중에서 포기할가바 더 재미나는 화제로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지피군 했다. 물론 그랬다고 해서 내가 꼭 그녀를  육체적으로 점유하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였다. 나는 그때 일본인인 그녀가 나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그녀의 기슭에서 내가 바장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녀와 강 하나를 사이두고 살았지만 나는 언제 한번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오라고 청한 적이 없다. 밤에 함께 강가를 거닐자거나 여느 술집으로 가서 한잔 하자고 청한 적도 없다. 나는 일본인인 그녀와의 접촉을 강하게 원한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가기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중국에는 나의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 아버지, 형님을 묻은 선산이 있다. 회사로 출근하는 이외의 날에는 나는 거의 두문불출하고 논문을 쓰기에 바빴다. 일본같이 민족차별이 심한 곳에서 내가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면서도 나는 그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김사량, 김달수, 김석범, 리회성, 김학영, 이량지, 유미리…..<재일조선인문학의 민족문제연구>라는 나의 논문테마의 주역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중국조선족인 나에게 이런 물음을 제기해왔다. 너는 누구인가? 너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에게 있어서 고국이란 무엇이고 중국이란 무엇인가? 너는 왜서 일본까지 와서 재일조선인문학을 연구하는가? 너는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왜 일본 여자를 원하고 있는가? 똑 같은 고국을 놓고도 너는 왜 북조선보다 한국으로 더 가고 싶어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난센스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때 심각하게 고민까지 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나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면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4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난감하게도 했고 슬프게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해답도 못하는 내가 과연 중국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떳떳하게 밝히면서 살아갈 자격이라도 있는 것는 것일가. 나는 일본에서 많이 파괴되기도 했고 수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파괴되고 어떻게 수립된다고 해도 나는 중국인인 나, 조선족인 나를 물갈이 하듯 갱신해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중국인이요, 조선족인 운명을 짊어지고 이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야는 내가 이런 불투명한 인간인 줄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기만 했다. 혹시 그녀는 내가 이런 모호한 인간이기에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그녀는 나에게 <킨상은 드놀지 않는 남자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나에게 그녀가 왜서 이런 말을 했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야와는 달리 아내는 늘 나를 <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떠돌이를 많이 했던 조상들처럼 나도 한 곳에 안착하지 못한다는 뜻이였다. 아내의 말처럼 내가 정말 나의 몸에 숨어있는 <랑자의 유전자>의 발란으로 일본까지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인 아야와 뿌리도 내릴 수 없는 금단의 길을 함께 걸으려 했던 것도 그 <랑자의 유전자> 때문이였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녀와 있었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날 그녀는 술을 마신 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왜 우느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냥 울고 싶어서 운다고 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 하자 그녀는 왜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느냐며 더 슬프게 울었다. 그녀의 울음과 말에서 취기가 흠뻑 느껴졌다. 한참 후 지금 당장 자기 집으로 와줄 수 없는가고 그녀가 물어왔다. 나는 왜 라는 물음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가볼 수도 있지 않아!) 나의 몸 어디에선가 이런 외침이 울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그녀는 와보면 알 것 아니냐고 했다. 그 다음 오고 안오고는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내가 왜서 그녀 집으로 한밤중에 가야 하는지 모른 채로 집문을 나섰다. 핸드폰으로 그녀 집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그녀의 문고리를 당겼을 때에는 이미 밤 10시였다. 리빙 룸에 홀로 앉아 아야가 그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땅콩이 담겨있는 접시와 호두알이 담겨있는 접시 옆에 자그마한 생일 케익이 조금 몸을 뜯기운 채 쓸쓸하게 놓여있었다. 케익 위에 꽂힌 촛불은 이미 꺼진지 오래된 것같았다. 조금 문이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자그마한 애 하나가 입을 하 벌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애가 바로 아양의 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불렀지요?> 내가 아야에게로 다가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보면 몰라요?!> 아야가 취기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의 앞에 구멍 뚫린 캔 맥주가 북극의 펭귄새처럼 일렬로 서있었다. <오늘 애와 함께 나의 생일을 �어요. 애가 웃고 떠들다가 저렇게 잠드니까 갑자기 내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어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울다가 갑자기 킨상 생각이 나더군요> 아야가 머리에 손가락을 깊이 박으며 습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로 길게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그녀의 눈을 섹시하게 가리워주고 있었다. 아야는 그 머리 카락 사이로 당금 나를 흡수해버릴 듯 탐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보고만 있어요. 킨상도 촛대에 불을 붙히고 나의 생일을 축하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나 오늘 킨상의 축하를 꼭 받고 싶단 말이에요. 킨상의 축하를 받으면 중국의 축하를 받는 것이 되니까. 13억 중국인의 축하를……> 스스로도 자기 말이 우스웠던지 그녀가 밥상 모서리에 머리를 비비며 키드득 웃었다. 손가락에 끼인 그녀의 금반지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 금반지를 보면서 나는 어느 남자가 끼워준 것일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전 남편이 아닌 또 다른 한 남자가 그녀의 생활 속에 뛰여들고 있는 것같은 생각에 나는 말 못할 질투심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이미 타다 만 촛대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억눌린듯 우울하고 막힌듯 답답했던 가슴이 맥주에 의해 일시에 활 열렸다. 그녀는 정신없이 맥주를 마셔대는 나를 말없이 뜯어보다가 흐트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왜 킨상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녀는 그날 처음으로 했다. 처음 하는 말, 처음 듣는 말임에도 그녀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 좋아하지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꼭 듣고 싶으냐며 그녀가 술에 취한 눈으로 윙크했다. <두가지 점이에요.> 그녀가 손가락 두개를 나의 앞에 우습게 뽑아보였다. <첫째는 스케베같은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나 스케베를 좋아하니까.> 스케베란 우리 말로 바람쟁이라는 뜻이였다. <왜 스케베를 좋아하는가면 우선 건강한 남자니까. 그리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건강하구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들기 마련이구 더 많은 여자가 모여드니까 스케베가 된거지요. 스케베 남자는 그래서 여자가 만드는거에요. 이것이 어느 나라 사람들의 논리냐 하면 일본 사람들의 논리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긴 머리채를 흔들며 킥킥 숨이 넘어갈듯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쉬->하며 손가락을 입술 위에 곧게 세웠다. 애가 놀라니 소리를 낮추라는 뜻이였다. <두번째는….> 그녀가 숨을 죽이며 또 웃었다. <두번째는 킨상의 오만한 눈빛이 좋아서에요. 중국에서 왔으면 중국에 어울리는 눈빛으로 일본을 쳐다봐야 하는데 킨상은 뭘 믿구 오만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가 말이에요. 그 오만한 눈빛에 눌려 나는 결국 작아졌고 내가 작아졌기에 킨상을 쳐다볼 수 있게 된거에요. 이건 일본의 논리인 것이 아니라 나의 논리에요>  그 말에 아야는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중국에서도 많이 들어왔던 그 <오만하다>는 말을 일본 여자 입을 통해 듣고 있다는 것이 나에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였다. 중국에서는 그 점을 많이 고치려고 했지만 그날 아야 앞에서는 도리여 오만해서 다행이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야는 그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을만큼 취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나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머리를 밥상위에 박고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잠든 그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다다미 위에 눕혔다. 그 다음 술에 취해 네각을 벌리고 누운 그녀를 걸탐스럽게 훑어보았다. 아야의 육체는 술에 취해 있었지만 나의 남자는 술에 취한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육체를 더듬고 싶어하는 나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치를 끼웠다. 그 다음 그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그녀 옆에서 홀로 서성거렸다. 타들어가는 담배불과 함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욕망도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아야 옆에서 자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결국 술에 취한 여자를 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술에 취한 여자와 하루 밤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등을 끄고 내가 소리를 죽여가며 문어귀에서 신을 찾고 있을 때,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야가 <잠간만요─!>하고 낮게 소리치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다음 무작정 어둠속에 묻혀있는 나에게 안겼다. 아야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서 떨어져나가기까지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가. 두 손으로 나의 얼굴을 덮고 섰던 아야가 손을 떼며 <이젠 가보세요!>했다. 아야는 어둠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날 밤 내가 그녀의 생일 케익 촛대에 붙힌 불은 그 후 그녀와 나를 더욱 활활 타오르게 했다. 아야는 강 하나를 사이 둔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가 서로 똑 같은 7층 아파트에서 산다는 그 절묘한 일치점을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라도 하듯 어느 수요일 날 오전에 나의 핸드폰으로 전화까지 해왔다. 지금 자기가 베란다에 서서 우리 집 방향을 향해 손을 젓고 있으니 나더러 어서 나와 확인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핸드폰을 귀에 댄 채로 베란다로 뛰쳐나가 보니 강뚝 너머에 높이 솟은 아빠트에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그녀의 모습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제가 지금 손을 젓고 있는 모습이 보여요? > 그녀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쳤다. <보입니다. 눈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윤곽은 보여요> 나도 그녀처럼 소리 높이 외쳤다. <눈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은 보인다?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녀가 깔깔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일이지요? 출근도 하지 않고> 손을 젓는 그녀에게 내가 물었다. <오늘이 수요일이 잖아요. 요일도 잊고 사세요?>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제야 오늘이 그녀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가 휴식하는 수요일이면 내가 집에 앉아 논문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재일조선족문학에 관한 논문을 쓴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수요일에 그녀가 전화해오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킨상이 흔드는 손이 마치 중국의 오성붉은기같네요> 그녀가 다시 나를 향해 익살스럽게 소리쳤다. 그 말이 재미나서 나도 그녀를 본받아 <아야상이 흔드는 손은 일본의 일장기같군요>했다. 서로를 향해 흔드는 손을 보면서 <오성붉은기>와 <일장기>를 상상했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비약과 과장에도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파아란 하늘 위에서 둥둥 떠가는 쪼박 구름이 우리가 쳐든 깃발을 향해 웃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그날 무심히 외친 <오성붉은기>라는 말과 <일장기>라는 말이 뜻하지 않게 우리 사이에 엉뚱한 화제를 몰고 올 줄이야. 그것은 아야와 나의 관계 속에 정치가 개입됨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허나 그 때까지 우리는 전혀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장기와도 같은 손>과 <오성붉은기와도 같은 손>을 서로 뜨겁게 흔들어보이기에만 열중했다. 그날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타가와 강은 왜서 그렇듯 맑고 아름답던지. 그리고 그녀와 나 사이를 하나로 이어준 오타가와 다리는 왜서 또 그렇게도 단단해 보이던지. 그 아름다운 강과 단단한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손을 저으며 자기 쪽으로 건너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이 너무 넓어 건너가지 못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다리가 무너질 봐 건너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에 둘은 또 웃었다. <킨상이 건너오면 내가 강뚝까지 마중갈게요> 그녀는 내가 논문 때문에 건너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나도 <아야상이 건너오면 다리목까지 마중갈거에요>했다. 남자 혼자만 살고 있는 집으로 그녀도 올 수 없음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말에 아야는 언제인가 내가 배워준 중국말로 <我恨你─!>했다. 결국 그날 우리는 누구도 누구에게로 건너가지 못한 채 서로 작은 손만을 흔들어보이다가 자기 집으로 저마끔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으로 회사 식당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하던 날, 그녀는 나에게 왜 중국의 국기는 오성붉은기냐는 질문을 문득 해왔다. 내가 별 다섯개는 오대주를 상징하고 붉은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어마나!>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왜 놀라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붉은색이 피를 상징한다면 중국의 국기는 너무나 화약냄새를 많이 풍기는 깃발이라고 이마까지 찡그리며 말했다. <지금은 평화시대인데 국기도 평화시대에 걸맞게 만들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피라니 너무나 끔찍하네요> 나는 원래 그녀의 그 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풀이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한 그녀 자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그녀의 그런 말을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게 나를 앞으로 조금씩 떠밀고 있었다. <그럼 일본의 일장기는 어때요? 일장기 한복판에도 빨간 색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나는 가급적 그녀 앞에서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나의 말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웃는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빨간 색이지만 그건 피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태양을 상징하는 거잖아요. 태양이란 뭐에요? 인간이나 자연만물에 따스함을 주는 신령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일본의 일장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깃발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녀는 그때까지도 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천진한 아이처럼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털어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까지 말하는 그녀를 두고 나는 점점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냥 너를 믿고 해보는 소리야) 나는 그때 분명히 나의 몸 속의 또 다른 한 내가 나를 향해 이렇게 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 권고가 마음에 닿기도 전에 나의 입에서는 어느덧 그녀의 말을 반박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가고 있었다. <일장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일본은 왜서 그 깃발을 휘두르며 과거 그렇듯 많은 아세아 국가들을 침략했을가요? 일본인은 일장기를 평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반대로 침략의 상징으로 생각하는거에요> 느닷없이 들이대는 나의 반론에 그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는 그녀의 입에서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요>하는 말이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새어나왔다.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그냥 쉽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풀이했다는 생각이 찾아들었다. 나는 내가 한 말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엎지른 물인 줄 알면서도…. <정치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어울리지 않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화제를 피합시다. 사실 난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가 변명처럼 어색하게 말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담담히 웃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불안한 침묵이었다. <금방 저의가 정말 실례했습니다!> 갑자기 그녀가 발딱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사죄했다. 머리까지 깊이 숙여가며 <시츠레이시마시다>(실례했습니다)를 외치는 그녀의 눈에서 이슬이 반짝였다. 그녀의 사죄, 그녀의 눈물에 나는 갑자기 한대 얻어맞은 것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냥 해본 소린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독백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알 것 같았다. 일본 사람들은 <실례>라는 말을 우리 말처럼 사죄의 의미로도 쓰고 고별의 의미로도 쓴다. 나는 그녀의 사죄는 후자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혹시 그녀는 정말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안되는 말이였다. 그녀를 놓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금방 내가 한 말이 그냥 농담이였다는 것, 나라 국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말로 그녀의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웬 영문인지 나의 입은 얼어붙은 강처럼 꾹 닫힌 채 좀체로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날 점심에도 여전히 나와 식탁을 마주해 앉아 변함없이 애교를 부렸다. 마치 전날의 불쾌했던 일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듯 얼굴에 밝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를 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날 그녀는 우리의 사생활이 아닌, 중국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에 대해서도 물었고 만리장성에 대해서도 물었고 근간의 상해의 비약적인 발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웃기까지 하면서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을 때, 식사를 마치고 옆을 지나던 우야마씨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킨상은 지난 3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어왔다. 금년에 나보다 다섯살 아래인 우야마씨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청년이였고 언제나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글쎄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일본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피하고 싶었다. 나의 말에 실망을 느꼈는지 우야마씨가 머리를 저으며 <알겠어요. 나로서는 너무 이해되지 않아서 물은거에요>하며 문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우야마씨가 던진 말이 아야와 나 사이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게 했다. 어딘가 썰렁한 느낌이 들었다. <저는 중국에서 일으킨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대단히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 킨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도전적인 어조로 질문했다. 직설적인 표현을 가급적으로 삼가하는 일본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돌한 의사표달이었다. 나는 아야가 왜서 갑자기 그렇듯 흥분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나에게서 당한 일이 분해서 보복이라도 할 셈인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야씨, 나 어제 약속했지 않아요. 이제부터 정치에 대한 화제는 피한다구. 게다가 나는 정치맹(政治盲)이에요> 내가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픽 실소했다.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은 그만큼 일본 상품이 좋다는 반증으로 되는 것이 아닐가요? 그런데 왜서 좋은 상품을 굳이 사지 않으려고들 하지요? 상품에도 무슨 죄가 있나요? 일본을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은 왜 대국답게 크게 놀지 못하지요?> 그녀가 다시 나를 허비듯 입을 열었다. 흥분하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웃으면서 한 그녀의 말 마디마디가 나에겐 칼처럼 느껴졌다. 일본인들이 말한 것처럼 내가 정말 중국에서 <반일교육>과 <애국교육>을 너무나 많이 받아온 때문이였을가. 조선족인 나에게 있어서 중국은 또 무엇인가. <아야씨, 아야씨는 중국인들이 일으킨 그번 운동이 단순한 일본상품 배척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인들이 일본 상품을 여전히 사주면서 그런 운동을 일으켰다면 일본으로서는 그 운동에 담긴 메세지같은 것에 조금은 주목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내가 끝내 한마디 뱉았다. 그녀처럼 나도 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그녀가 상기된 얼굴로 즉각 반문했다. <어떤 메세지인데요?> <물론 일본인들더러 과거의 침략역사를 철저히 반성하라는 메세지겠지요. 요즘처럼 수상이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A급 전범에게 참배한다든지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친다든지 평화 헌법 제 9조를 개헌하려 한다든지 특별히 9.18만주사변 일을 택해서 중국 아가씨들을 매수하여 집단적인 섹스를 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을 그만두고…..> 아야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나는 이미 자제력을 잃고 있었다. 자제력을 잃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였다. 나 속의 다른 한 나였다. 아니, 나 밖의 다른 한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말들을 그녀를 좋아하는 내가 말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오후 출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녀는 그날 이전과는 달리 나에게 아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작업복을 꽁꽁 여미면서 문을 나서는 그녀의 걸음에서 찬 바람이 일고 있었다. 나는 그 찬 바람을 가을바람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그녀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나는 이제 다시는 정치적인 화제로 그녀를 괴롭히지 말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또 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인 쪽으로 걸음을 내디딘 우리는 그 어떤 타력에 의해 앞으로 떠밀려갈 뿐 그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그런 이야기가 결국 우리 사이에 마이너스를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치는 더욱 기승스럽게 우리 사이에 끼여들고 있었고 우리는 또 우리대로 마귀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 이야기에 말려들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번마다 충돌했던 것만은 아니였다. 예하면 그녀도 나처럼 고이즈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었고 나도 그녀처럼 중국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일으킨 과격행위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치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 채 그저 우리 곁을 스쳐지니기만 할 뿐이었다. 그녀와 시야비야하면서 나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물론 그녀도 그런 생각으로 힘들어했다. 나의 입에서 떠올려지는 중국은 어느덧 <우리 나라>로 다가왔고 일본은 <너의 나라>로 밀려났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국과 일본도 <너의 나라>와 <우리 나라>로 각각 분렬됐다. 그런 식으로 말하다 보면 중국은 정말로 나에게만 속하는 나라, 일본은 그녀에게만 속하는 나라처럼 착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시비는 자연히 중국은 다 옳고 일본은 다 틀렸다와 일본은 다 옳고 중국은 다 틀렸다의 흑백논리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는 아야라는 여자와 킨이라는 남자의 밀접한 만남이기만 했던 우리 사이가 어느덧 일본인과 중국인의 만남으로 소원해져갔다. 그 소원함에 불안해하면서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기만 했다. 나는 때로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왜서 밝히고 싶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조선족이기에 중국을 너무 편애해서 말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가. 그러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인이기도 하면서 조선족이기도 한 나의 이중적인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인(한국인)인이나 다 차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비록 이중인이지만 이중으로 받는 차별의 대상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중국조선족이라는 것을 알면 아야는 일본에서의 재일조선인 경우를 생각하면서 즉각 나를 중국 변두리인으로 취급해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입으로는 늘 정치인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행동으로는 정치인들이 판처럼 짜놓은 울안에서 앵무새처럼 자기 나라를 변호하기에만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자기 나라를 변호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언제나 우리 둘 뿐이였다. 그녀의 상처는 언제나 내가 준 것으로 돼있었고 나의 상처는 그녀가 준 것으로 돼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 뿐만이 아닌 비애까지 느껴야 했다. 어느덧 우리는 상대에게 아픔과 슬픔을 주는 악역으로 슬슬 둔갑해갔다. 점심휴식 시간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던 우리는 따로 떨어져서 밥을 먹기 시작했고 1시간의 만남에 아쉬움만 느꼈던 우리는 잠간의 만남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야의 눈에서 이따금 칼날같은 독기가 번뜩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였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아야는 대학교 때 국제정치를 전공했었다. 서로가 그 무슨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국과 일본간에 일어나는 모든 마찰을 걷어안고 티격태격 논쟁을 벌리던 그녀와 나는 지난 마가을에 끝내 서로의 분노를 터치고야 말았다. 그날 그녀는 나의 실수로 잠간 기계가 멈춘 일을 트집 잡아 온 회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야단쳤다. <중국 사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일해요? 킨상은 지금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리세요. 킨상이 지금 일하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 일본이란 말이에요. 킨상이 상품을 잘못 취급하면 중국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본의 체면이 깎인단 말이에요. 알았어요?!> 그녀의 말은 나에 대한 본격적인 전쟁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중국까지 곁들여가면서 마구 폄하는 그녀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물을 배설하듯 되는대로 욕을 퍼붓고 나서 막 자리를 뜨려하는 그녀를 나는 조용히 불러세웠다. <아야씨, 나 한 사람의 실수를 트집 잡아 중국까지 싸잡아 욕해대는 자신이 너무 비굴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야씨가 이렇듯 요사하고 비루한 인간인 줄 몰랐습니다. 좋아요. 내가 이 회사에서 일본의 체면을 깎는 모양인데 이제 이틀만 더 참아줘요. 아야씨를 위해 다음주부터 내가 이 회사에서 영 사라져줄테니까. 이제 됐어요?!> 내가 꽥 소리질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그녀는 한동안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못했다. 사실 다음주부터 회사에서 사라져준다는 나의 말은 그녀를 놀래우기 위한 엄포는 아니였다. 그 때 나는 회사는 물론, 일본을 떠나려고 손에 이미 귀국하는 비행기 티켓까지 쥐고 있었다. 자리에 뚝 굳어진 채 아야가 얼마나 긴 시간 서 있었을가. 멈춘 기계가 다시 돌아가고 사원들이 들썩거리면서 저마다 일하는데도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그때까지 나만 노려보고 있었다. 독기로 섬뜩이던 그녀의 눈빛은 이미 허물어지고 긴 눈초리가 처마처럼 곱게 드리운 눈에서 어느 한 수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잇빨로 지긋이 깨문 입술,  원망으로 가득 찬 눈, 나는 그때까지 그녀 앞에서 주먹을 으슬어지게 쥐고 서 있는 그 순간순간이 견딜 수 없게 힘들고 괴로웠다. 아-! 우리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이구나! 허물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혼자 아프게 독백했다. 나만 노려보고 섰던 그녀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정말 실망했어!>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미친듯이 달려갔다. 내가 일본에서 떠나오던 그 전날은 아야가 휴식하는 수요일이었다. 정작 내일 6년 반이라는 세월을 살았던 일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중국이 옳니 일본이 그르니 하며 정신없이 아야와 자존심 대결을 벌려왔던 그 모든 일들이 한낱 부질없는 짓처럼 생각되어 후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일로 우리의 진정을 생매장한 자신이 나는 용서할 수 없을만큼 미웠다. 나는 그날 일부러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환히 바라보이는 강가를 오래도록 홀로 서성거렸다. 혹시 만에 하나 그녀가 베란다에 서서 이쪽 강 기슭을 바라라도 본다면 그 동안 일본인으로 그녀를 밀어내치기만 했던 지난 과거의 비정을 후회하고 오직 인간 그녀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란다에 잠간이라도 나타나주기를 바랬던 나의 상상을 깨고 그녀는 어느 한 순간 태양처럼 강 기슭에 나타나주었다. 나와 똑 같은 일직선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굳어진듯 오래도록 움직일 줄 몰랐다.                                 2005년 10월 28일                                       북경에서
6    음성양쇠(陰盛陽衰)(장춘식) 댓글:  조회:1170  추천:0  2009-05-16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남들이 나의 안해를 지나치게 춰올리는게 그리 달갑지가 않다. 어떤 모임이나 사교파티같은데서 ꡔ사모님 믿진게 아니요? ꡕ 이렇게 나의 안해를 슬쩍 춰줄 때면 나는 슬그머니 한쪽 죽지가 축 처져내리곤 한다. 사교례절이라고는 하나 이때 내 안해라는 사람의 묘한 웃음---수줍은척하면서도 어딘가 시뚝해지는 그 표정이 가슴 한쪽을 섬찍하게 건드려놓기까지 한다.   솔찍히 말해서 지금의 안해와 사귀고 련애하고 결혼할 때 나는 이 녀자가 나에게 넝쿨채 굴러들어온 호박이라고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하도 밥맛이 없길래 가까이에 있는 랭면옥에 가서 랭면에다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있는데 우연히 말을 걸어와서 맺어진 인연이였다. 동북의 어느 대학교 외국어과를 나와서 북경에 있는 외국회사에 취직하고있다고 하였다.   ꡔ월금이 많겠네? ꡕ   나는 그러루한 회사원의 봉급이 꽤 높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는터라 얼결에 이런 말을 터뜨려놓았다.   ꡔ겨우 5백원인걸요. 먹고 입고 집세 내고나면 별로 남는게 없습니다.ꡕ   저그만치 5백원이란다. 졸업한지 겨우 일년도 채 안되는데 5백원도 ꡔ겨우ꡕ라고 하니 참 요즘 세월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취직한지 7년만에 강사 하나 요행 따내서야 백 몇십원꼴인 나에게는 그 ꡔ겨우ꡕ라는 말이 너무나도 분에 넘친다.   ꡔ난 명색이 강사라고 그래도 요즘 말로는 중급 인테리인셈인데 얼마를 받는지 알아요?ꡕ   ꡔ글쎄 말입니다. 직업마다 다르겠죠. 무료치료같은걸 말입니다. 그리구 선생님은 북경호적에 올라 있잖아요. 북경호적은 만원을 줘도 못산다지 뭡니까? ꡕ   그건 사실이다. 수십수백만이 호적없이 들어와 살아도 수도인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북경호적을 제한한다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호적이 무슨 대수야, 돈만 있으면 어데서나 내노라 하며 사는 이 세월에.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 없었다. 그 만원을  주고도 못산다는 북경호적외에 내겐 아무런 우월감도 없지 않은가. 학문? 어디 가서 입에 올려보아라.ꡔ웃기시네ꡕ다. 나는 시도 조금 쓴다. 하지만 내 시를 읽고 감동될 사람이 이 사회에 몇이나 될가? 또 ꡔ웃기시네ꡕ가 아니면 대접받은줄 알아라. 훈장의 똥은 더구나 개도 안먹는다더라.   맥주도 다 마시고 랭면도 다 먹고 육수까지 후룩후룩 들이킬즈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약간 망설이다가 ꡔ제 세집에 잠간 들렀다가 가시죠? ꡕ 이렇게 제기한다. ꡔ북경에서 조선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ꡕ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아가씨가 매력적이라거나 하다못해 하루저녁쯤 껴안고 자도 무방하겠다는 따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참, 한가지가 좀 끌렸다. 서른살의 로총각에겐 이 아가씨가 너무나도 새파랗다는 점.   내가 자전거를 밀고 나서니 그녀도 자전거를 밀며 뒤따랐다. 나의 골동품자전거에 비해 그녀의 자전거는 너무나도 새것이고 사치하였다.   ꡔ새 자전거로군. ꡕ   ꡔ녜. <태호공주>라고 외국기술제휴로 생산하는거래요.ꡕ   요즘엔 수입품이나 하다못해 기술제휴나 합자기업, 국내 외국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 인기이다. 순 국산품은 싸구려의 대명사쯤으로 되고.   ꡔ이것 보세요. 호적이 없으니까 자전거 등록도 안해주지 뭐예요. 선생님이 부러워요.ꡕ   ꡔ그것때문이라면 내쪽으로 등록해도 무방하겠지. ꡕ   ꡔ참말이예요? 꼭 그렇게 해주시죠? 제가 한턱 낼게요. ꡕ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적어넣는다. 그리고 이�날에는 내 이름으로 자전거를 등록하였고 약속대로 그녀가 한턱 내여 나는 꽤 얼근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다음에는 물론 나의 거처에 와서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맞춤하게 취했겠다, 거기에 학문이 돋보인다느니, 내 시고를 몇줄 읽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해볕도 못보고있는게 참 가슴아프다느니, 교원처럼 신성한 직업은 이 세상 더 없을것이라느니 하며 아가씨가 슬슬 춰주는 바람에 나는 퍼그나 들뜬 마음이 되여 사귄지 며칠 안되는 아가씨에게 그동안 쌓아두었던 학문을 한꺼번에 풀어놓기에 이르렀다. 그후에는 물론 한주일에 한두번 정도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영화구경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드라이브도 하였다. 그러나 련애를 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둬주일가량 데이트 약속이 뚝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몇달간의 데이트는 거개 그녀쪽에서 제의해온것 같았다. 그리움이라는것을 오래만에 느껴보았다. 가슴 어딘가 텅 빈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 짜릿짜릿 아려오는것 같기도 한, 뭉클뭉클 감상에 젖게 하는 감정이 점차 절실해지며 조바심마저 일게 하였다.   두루 불편스레 서성거리며 걱정을 하고있는판에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가? 문득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특별히 정성스레 다듬은 차림이였고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였는데 그 솜씨 또한 여느 전문 분장사 뺨치게 세련된것이였다. 그리고 손에는 먹을것, 마실것들이 한구럭 가득 들려있었다.   식탁이 그럴싸하게 차려졌다. 녀자의 솜씨가 역시 다르구나 하는 감동이 옛날 어머니가 보아준 생일상과 겹쳐져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ꡔ오래만인데 뭘 위해 들가?ꡕ   동시에 나는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ꡔ생각이 나는군. 오늘이 내 생일이군.ꡕ   그녀는 내가 ꡔ내ꡕ를 발음할 때를 기다렸던듯 ꡔ생일ꡕ을 합창한다.   눈물이 핑 돈다.   오래만에 가정의 따스함같은것을 느낀다. 술도 많이 마신다. 그녀가 손보아온 진 안주, 마른 안주도 안주려니와 그 고마움, 기쁨, 그리고 별 할일없이 지내온 30년 인생의 무상함, 슬픈 련정, 목마른 정욕이 다 안주가 되여 취할듯 말듯 둥둥 뜬 느낌이다. 그녀도 꽤 마신다. 말도 많이 한다. 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안주를 씹고 삭이면서 좋은 밤을 보내고있었다.   그녀는 놀이감같은 핸드백속에서 곱게 포장된 종이 박스를 꺼낸다.   ꡔ오늘 마지막 프로예요.ꡕ   손목시계다. 도금이 잘된 스위스제였다. 나는 문뜩 재작년에 출국했다 돌아오면서 사둔 녀자용 손목시계가 생각난다. 꼭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사둔건 아니고 어찌어찌 사다보니 남은 외화로 그걸 사두었었다.   서로 손목시계를 채워준다. 그리고 또 건배를 하고 안주를 씹는다. 술도 안주도 알맞춤해졌을무렵 그녀는 나한테 따가운 록차를 따라놓고 설걷이를 한다. 한동안, 내가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아래다리를 흔들거리며 ꡔ도라지ꡕ를 듣고 ꡔ아리랑ꡕ를 듣고 조용필을 듣고있는 동안 달그랑 절랑 쏴쏴 그릇 부시는 소리가 반주를 하다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조용해진다. 록음기를 끄고 주방쪽에 나가보려는데 그녀가 머리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들어선다. 들어와서는 샐쭉 미소하며 핸드백을 집어든다. 그 미소가 좀 수상쩍다.   ꡔ... 오늘 여기서 자고가도 되죠? ꡕ   나는 아연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꼭 껴안고 놓아주고싶지 않다.   다행히도 그녀는 처녀였다. 술이 얼근한데다 서투른 솜씨로 가지는 정사중에도 그것 한가지만은 잊지 않은건 본능때문이였을가?   그 뒤의 일은 별로 이야기거리가 될게 없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하고있는것처럼 우선 결혼등록을 하고 한동안 동거를 하다가 음력설에는 고향에 돌아가서 버젓이 식을 올렸다.   깨알까지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오붓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ꡔ만원 주고도 못사ꡕ는 북경호적도 중급지식인 정책에 힘입어 돈 한푼 팔지 않고 해결이 되였다. 물론 내가 근무하고있는 대학교 인사부문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그 덕에 그녀는 그 ꡔ겨우ꡕ 오백원 주는 회사에서 엉뎅이를 툭 털고 나와서 봉급이 ꡔ겨우ꡕ 정도를 훌쩍 뛰여넘는, 게다가 반쯤은 딸라를 내주는 ꡔ괜찮은ꡕ 외국회사에 냉큼 취직이 되였다. 조선어, 한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도 어지간히 하는 적임자가 그리 흔치는 않은것이다. 노란자위는 언제나 외국 ꡔ외ꡕ자에 있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수입은 늘어나고 가정기물도 하나 둘 불어갔다. 그러다보니 내가 출국했다 돌아오며 그래도 그때는 최신형이라고 사놓은 가전제품이 인젠 아득한 구식이 되여버렸다.   요즘의 가전제품이라는건 대체로 주방용품이 많아서 주방일이 점차 쉬워지고있다. 그런데 가정살림이 편해질수록 안해라는 사람의 불평은 오히려 더 늘어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신혼생활이 빛이 바래졌으니 여느 가정들에서처럼 인젠 부부싸움도 시작할 때가 되였나부다고 그 싸움을 오히려 가정 생활의 일부로 치부해버리고 체념했었다. 싸우고나서 안해가 눈물 코물 한주먹 두주먹 쥐여짤 때 살살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고 그래도 아직은 재미가 식지 않은 정사를 땀이 후줄근하도록 즐기고나면 이튿날에는 또 아기자기한 부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안해의 요구가 점점 한동안은 물의에 올랐다가 인젠 심드렁히 묵인이 된듯한 한족녀자들의 그것을 닮아가고있었다. 밥을 짓다가도 툭, 한족녀자들은 어쩌고저쩌고다. 그래도 나는 여직껏 닦아온 학문을 총동원하여 조선족 녀성의 미덕이 어디에 있는가를, 왜 녀자는 녀자다와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와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깨우쳐주었다. 하지만 안해의 분명한 도리앞에서는 허리힘이 쭉 빠질수밖에 없었다. 왜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고는 집안일은 녀자 한쪽의 의무가 되는가 하는 도리였다. 나는 자신이 너무나도 구식 사내로 된게 아닌가고, 남존녀비니 대남자주의니 그런 공맹지도쪽으로 죄상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깎듯이 술상을 보아주곤 하여서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에는 돈이 참 좋은 물건이 되였다. 그 개도 안먹는 종이장으로 사람 빼고는 뭐나 다 바꿔올수 있단다. 그러나 때로 그 돈때문에 걱정도 딸려온다. 안해는 그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옮겨앉은다음부터 늘 밤중에 귀가를 하곤 한다. 때로는 외박까지 한다. 이게 살림 하는 꼴인가고 따질라 치면 제쪽에서 오히려 ꡔ돈 벌려니까 그런거죠. 돈이 뭐 절로 지갑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는줄 아세요? ꡕ 이런다. 그런 로고때문인지 봉급 말고도 그녀는 슬슬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걷어들여왔다. 그럴수록 나의 불만도 더해가고.   그러던 어느 날 그 부풀고 부풀어오던 불만의 풍선이 펑 터져버렸다.   일은 량집 부모님들에 대한 부조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벌어졌다. 몇달전에 장인 어른 생신을 앞두고였는데 환갑땐 한창 공부중이라 술 한잔 못부어올렸다며 5백 하나는 부쳐보내야 하겠는데 하고 청을 들었다. 청을 드는것만 해도 고맙다. 딸 하나 대학공부 시키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ꡔ그것 참 잘 생각했군. 인젠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즐겁게 해드려야지. ꡕ 하며 맞장구를 쳤더니 그녀는 별로 반색도 없이 5백원을 송금해보냈다. 말이 5백원이지 벌써부터 준비해놓은 옷감, 선물따위---장인, 잔모님 몫은 물론 처남,처남댁,처조카들 모두에게 한두건씩---를 값으로 치면 거의 천원어치는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쩌다 한번이겠지, 그렇게 막막한 살림도 아닌데 그만한것쯤 뭐 대수냐고 말없이 지나버렸다. 그런데 이 녀자가 보자보자하니 시아버님 환갑이 래일모레인데 백원짜리 두장 달랑 던져주며 ꡔ생각대로 하쇼. ꡕ 이런다. 그래서 그땐 ꡔ시아버님 환갑땐 잘 해드려야지ꡕ 하고 헛말이나마도 아껴두었었군.   그대로는 지나버릴수가 없었다.   ꡔ여보, 당신 시아버님 환갑을 뭐 동네집 령감님네 생신쯤으로나 아는거여? 결혼식날 장인어른 뭐라고 부탁했는데? 시집왔으면 인젠 시집 사람인게지. 그것도 맏며느리가 아니면 말도 안하겠는데 신부상 맏며느리 대접은 기분 좋으라고만 차려준줄 알아? ꡕ   그녀는 내 말이 뉘 하품소리나 되는듯 심드렁해있다가는 알맞춤한때를 기다려 찔 눈을 흘기고는 한다는 소리가   ꡔ걷어치우쇼. 상,상, 참 큰상소리 요란스럽네. 그게 어디 먹으라고 차린 상이예요, 빛 좋은 개살구지. 돈이 없슴다! ꡕ   이랬다.   ꡔ그 저금통장은 뭐 할라고 쓰는건데? ꡕ   ꡔ없다면 없는줄이나 아쇼! ꡕ   점점 콕 막히는 소리만 턱턱 줴친다.   ꡔ이 녀자 보자보자하니, 그래 친정아버님 생신 차려드릴 돈은 있고 시아버님 환갑 차려드릴 돈이 없어? 좀 웃기지 말아. ꡕ   결김에 서방질이라고 하더니 나는 그만 결김에 하지 말아야 옳을 소리를 툭 질러버렸다. 사내녀석 옹졸하다고 서로서로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가는걸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젠 엎질러놓은 물이였다.   그래놓고는 안해가 찔끔찔끔 눈물이나 짤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하, 웃기시네. 이런 모양을 잔뜩 추슬려가지고 빤히 올려다보다가는 ꡔ돈 맘대로 벌어들이쇼. 벌어서 천이든 만이든 하고싶은대로 하쇼. 내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을께요. 돈 벌기가 뭐 식은죽 먹기나 되는줄 알아요? ꡕ   철썩! 귀뺨 하나 날아가 붙고 그녀는 ꡔ앙! ꡕ 하며 침대 구석에 엎어져 쿨쩍거린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되는 손찌검질이였고 또 한 남자에게 남은 마지막 솜씨이기도 하였다.   나는 문뜩 드팀없는 철리 하나를 터득한듯 싶었다. 돈이 량반이다. 학문이든 기술이든, 도덕적 인격이든 사회적 진리이든 돈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앞에서는 다 숙연해질수밖에 없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부부는 돌아서면 서로 남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너무너무 밉강스럽다. 당장 리혼을 하고 ꡔ바이바이ꡕ를 웨치고싶어진다.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여쭈어야 하는가? 그 무서운 산골에서 아들 하나 공부시켜 성공했더고, 대학생며느리를 보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며 즐거워하시던, 그리고는 잔치날밤 내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던 부모님들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는가? 더구나 그렇게 바라시던 학문을 닦은 연고로 녀펴네한테 굽석거리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 그렇게 굽신거리지 않으려고 리혼을 한다면...   꼬박 두시간동안을 쿨쩍거리며 엎드려있는 안해를 노려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키지 않지만 사과를 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화해를 할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리고 내키지 않으면서 애무를 시작한다. 상투적 수단이다. 꼿꼿하던 안해의 몸뚱아리가 점점 나긋해진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 내키지 않으면서 나긋나긋한 몸뚱아리를 범하려고 서두른다. 그런데 연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젠 생식의 몸짓만은 아닌 이상한 몸짓을 얼마간 허둥거리다가 툭 쓰러져버린다. 아차하는 사이 안해는 독스러운 눈길을 찔 갈기고는 저만큼 홱 돌아누워버린다.   그후에도 몇번 악을 써보았지만 내내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래서 아예 안해의 곁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주 신심가득하다가도 안해의 몸뚱아리가 기신기신 다가들어 불덩이가 될무렵이면 나의 연장은 영낙없이 놀란 달팽이마냥 쑥 움츠러들어가버리곤 하였던것이다.   약을 써볼가고도 생각한다. 요즘엔 그러루한 약이 약국마다 지천으로 쌓여있다. 하지만 정작 가격표를 들여다보면 좋다는 약은 눈이 휘딱 까뒤집어지도록 값이 엄청나다. 돈이야...   그래서 나는 또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멋있게 환상이 펼쳐지다가도 학문에 걸리기만 하면 단내나는 한숨 한웅큼으로 푹 김이 빠져버리고 만다. 학문과 돈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것이다.   집 근처에는 옛 북경성의 호성하(護城河)가 한갈래 지나가고있다. 그 옆으로는 원래 포장이 형편없는 도로가 나있었는데 지난 90년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고속도로가 번듯하게 빠져나갔고 오수구덩이던 호성하도 세멘트로 정리되여서 완벽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 고속도로와 세멘트로 정리된 강 사이에 인행도가 한갈래 새로 생겨났다. 비록 강이라는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큰 내물만큼이나 되고 게다가 반은 오수여서 퀴퀴한 오물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래도 쌩쌩 비명을 지르며 허둥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소리외에는 꽤 한적한편이여서 나는 학교에 교수를 나가지 않을 때면 늘 이 강옆의 인행도를 서성거리며 끈적끈적한 스트레스를 부스럼속에 모인 고름 짜듯 쥐여짜곤 한다. 요즘에는 더구나 서성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안해가 외박하는 날에도 그렇고 하루밤의 정사가 실패했을 때도 그렇고 안해의 직장 동료들이 제법 우리집에 모여들어 맥주잔을 떵떵 부딪칠 때도 그렇고...   정사쯤은 안해도 인젠 체념을 했는지 별로 대수로와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니까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안해의 동료가 다녀간후로는 정사라는걸 아예 가져보지 못한셈이다. 해서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건 다행이라 하겠는데 어쩐지 그 친구가 마음에 석연치를 않다. 그날 그는 두툼한 지갑을 툭툭 치며 시뚝해서 백원짜리 지폐 한장을 뽑아들고 맥주를 사오라고 안해를 심부름시켰었다. 주객이 뒤바뀐 꼴이였다. 게다가 맥주잔을 덜렁거리며 내 안해를 춰주는 꼴이 그야말로 꼴불견이였다. 그래도 그쯤은 하루 오후 호성하가의 인행도를 서성거리고나면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문제는 며칠후 그날 함께 래방했던 안해의 녀자 동료가 걸어온 전화내용이였다. 전에도 몇번 래방했던것이므로 그녀와는 꽤 익숙한편이였는데 ꡔ그 동성동본이라는 친구 그저 볼 사람 아녜요. 더러 신경 써두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ꡕ 라고 툭 까놓았었다. 그 친구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아니고 거래하고있는 다른 한 회사의 사장인데 두루두루 일을 만들어가지고는 내 안해를 자주 찾아온다는것이였다. 어쩌면 그 녀자 동료가 녀자들 거개가 있는 서푼짜리 질투때문에 안해를 헐뜯었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날의 꼴불견의 꼴을 당해본 나로서는 그렇게 단순한 아녀자들의 질투로만은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으로 안해를 닦아세웠다.   ꡔ그 친구 당신을 자주 찾아다닌다던데 반한건 아니야? ꡕ   ꡔ그 친구라니 누구 말이예요? ꡕ   ꡔ그 있잖아,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그 친구 말이야. 그쯤 하면 난 시뚝해 해야 도리가 되나? ꡕ   안해는 허리 부러질 소리라며 진짜로 킥킥 웃어제끼며 아예 딴전을 부린다.   ꡔ식초 좀 자그만히 자셔요. 시쿨어서 이가 다 시여나네. ꡕ   ꡔ식초를 먹는다ꡕ는 말은 ꡔ시기한다ꡕ는 말의 한어식 표현인데 요즘엔 그런식으로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지고있다.   나는 이쯤에서는 도무지 그만둘수가 없었다.   ꡔ이건 장난이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당신 요즘 외박이 잦아지고 귀가시간이 늦어져서 걱정중인데 동성동본은 웬 이 부러질 소리냐 말이야? ꡕ   ꡔ카라OK방을 하나 차려주겠다고 그래서 좀 자주 만났어요. 왜 안되나요? 융자금을 얻어주겠다고 그랬거든요. 꼭 카라OK방을 차려놓고말거예요. 어디 가서 20만만 대부를 해오세요. 그럼 당장에라도 래왕을 끊을게요. 곱다고 아첨하며 다니는줄 아세요? 그 신세에 그래도 남자라고 마음만은 살아서... ꡕ   나는 그만 입이 막혀버렸다. 돈과 성, 이 두가지면 나는 치명적이다. ꡔ카라OK방따위 싹 걷어치워! ꡕ 하는 따위 사나이의 호기는 벌써 기가 죽은지 옛날이다. 카라OK방이 돈벌이가 잘된다는걸 요즘 횡재에 초점을 맞추고있는 사람 치고는 모르는 이가 없는 형편인데 정말 안해가 거기에 성공하면 난 뭐가 되지? ꡔ내 시집 출간하는데 좀 선금할수 없겠어? ꡕ 이런 아첨은 퇴자 맞기가 십상이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돈에 눈을 더 밝히는게 ꡔ경제법칙ꡕ이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어도 돈에 눈을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돈이 있으면 성문제도 풀릴것이고 그러면 안해한테 언제나 지고들지 않아도 될것이다.   나는 또 퀴퀴한 냄새가 물큰거리는 오물구덩이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문뜩 이러다가 누가 지폐장이나 지갑같은걸 떨군게 있지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강가는 낮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밤만 되면 꽤 ꡔ호경기ꡕ인편이다. 집이 없는 련인들이 데이트를 하기에도 알맞춤하고 외로운 늙은이들이 서로 빨려들어가지 못해 애태우는 젊은 련인들의 몸짓을 짐짓 지켜보며 정양(靜養)을 하기에도 편리하며 더구나 요즘 부쩍 호경기가 된 암거래도 이런곳에서 더 안전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암딸라거래같은거.   나는 다리 부러졌던 사람이 걸음련습이나 하듯 느릿느릿 강가의 인도를 걷는다. 걸으면서 희끗희끗한것, 거뭇거뭇한것 하나 놓칠세라 두눈을 도사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희긋희끗한거라야 고작 빈 비닐봉지가 아니면 권연곽따위 밤손들의 쓰레기 정도이고 거뭇거뭇한건 고작 돌덩이나 어느 비새는 아빠트 옥상에서 바람에 날려온 펠트지쪼각따위들뿐이다. 어느 한길 되나마나한 측백나무옆에서 똥 한무지 발견한게 발견이라면 발견이라 할가. 이 도시에 아직 로천에서 똥 싸는 녀석이 있다는게 메스껍고 어쩌면 더러 희한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나는 단념을 하지 않고 무슨 악귀의 최면술에나 걸린 사람처럼 자전거를 잡아타고는 가까운 거리를 계속 어슬렁거린다. 원래 교수가 없는 날 내 생활코스라는게 집에서 호성하가의 인도, 그리고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드라이브하는게 전부였는데 거기에 한가지 내용이 불어난셈이다. 남이 떨군 돈을 주어보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   그러나 나에게는 그따위 유치한 행운도 차례지지 않았다.   안해는 여전히 그 모양 그 본새이다. 때로는 제쪽에서야 술냄새를 훅훅 풍기며 밤중에 귀가를 하고 외박도 비일비재다. 구태여 변화라는게 있다면 전에는 늦게 귀가를 하거나 외박 한번을 할 때면 두루 구실을 붙이던것이 요즘엔 제쪽에서 더구나 기고만장하여 ꡔ카라OK방을 할려고 뛰는중이라지 않아요! ꡕ 이렇게 야단을 칠 정도로 일약 승급을 한것일것이다.   이상한 일도 많다. 안해가 곁에 누워있을 때면 싸늘히 식어서 속만 안타깝던 몸이 안해가 외박하는 날이면 설설 끓어오르는건 왜서일까? 어제밤에는 더구나 꿈에서마저 곰같은 녀체에 깔려 흠씬 식은땀을 빼였다. 그렇다고 그 녀체가 안해의 몸뚱아리인건 아니고.   아침에 잠에서 깨여나서도 머리가 뒤숭숭하였다. 뭔가 잘못되여가는 느낌뿐이다.   또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 어처구니가 없는 행운이 떨어질리 없지만 그래도 그쪽에 신경이 씌여질 때에는 뒤숭숭하던 머리가 조금은 조용해진다.   한코스를 다 돌고는 자전거를 타고 두번째 코스를 돈다. 별 수확없이 후줄근해가지고 귀가할무렵 수위실 로파가 한족로파들 특유의 인정미 넘치는 수다스런 목청으로 불러세운다.   ꡔ마침 들어왔구만. 전화 받으시오 ꡕ   안해의 전화다. 또 외박이란다. 전날의 외박은 입치례로나마도 사과가 없다.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친구한테 간단다. 카라OK방 개업이 거의 돼가서 그쪽을 한턱 먹인단다. 적어도 2-3차는 걸쳐야겠으니 아무래도 려관방신세를 져야 할것 같다는 설명이 덧붙었을뿐이다.   나는 물론 이런 경우 내가 참석하도록 배려하지 않는 안해를 탓할수가 없다. ꡔ당신같은 선비님이 나서면 다 되던 일도 튈거예요. ꡕ 안해는 이런 태도다. 설혹 안해가 초청한대도 가고싶지가 않다. 그따위 서로 춰주고 헐뜯고 돈자랑이나 하는 친구들속에 앉아있으면 우선 공기부터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령감이 문뜩 떠오른다.   이상한 령감이다.   인젠 안해가 그런 술자리에 한두번 가는것도 아니고 동성동본이라는 친구와 함께 다니는것도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친구가 알선해주는 일이니 함께 갈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은 몰래 그 뒤를 밟아보고싶어진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다. 안해가 퇴근하기까지는 아직 반시간이 남았다. 외국회사라서 출퇴근시간이 아주 엄수되게 되여있다는걸 나는 안다.   회사는 호텔방 몇개를 세내서 쓰고있다고 한다. 십분쯤 지나니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밀려나오고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대문만 주시해본다.   담배 한개비 피우고났을즈음 안해는 아직도 나의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는 그 백색 ꡔ태호공주ꡕ표 자전거에 올라타며 대문을 빠져나온다.   나는 그 뒤를 따른다. 사복경찰이나 된듯한 느낌이다.   골목길을 오불꼬불 15분쯤 페달을 돌리니 5-6층짜리 벽돌아빠트들이 쭉 들어선 아빠트 단지가 나타난다.   안해는 두번째 아빠트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그녀가 동에 들어설 때 나는 잠간 망설인다. 그러다가 뒤따라 들어간다. 혹 들킬지도 모른다는, 들키면 아무런 리유도 댈게 없다는 걱정을 되록거리면서도 2층까지 따라올라간다. 물론 발자국소리를 죽이면서.   그녀는 4층까지 올라가서 노크를 한다. 그걸 나는 3층에 서서 비스듬히 올려다 본다. 뒤모습이 반쯤 보인다. 3층의 구조를 살펴보니 안해가 노크하고있는 문은 4층 1번일것 같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고 안해가 들어간다음 나는 4층에 올라가서 다시 그 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동을 나오면서 또 동 번호들을 차례로 재확인한다.  난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가? 리혼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갈라서면 정말 남이 되여버리는것일가? 리혼한다고 할 때, 처가집을 생각한다. 결혼식날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다, 부러워하며 축복해주던 동네어른들을 생각한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생각한다. 안해와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가 동을 빠져나올 때 나는 가슴이 뜨금해진다. 역시 그 사내였군. 제멋에 희희닥거리노라 머리만 돌리면 발견해낼 나를 그들은 발견하지 못한채 각각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멍청히 뒤를 따라 나온다. 깊은 생각을 할수가 없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돈이라는 개념과 이 길이 내 일상의 코스가 아니라는것을 떠올린다. 한동안 두리번거리다가(인젠 돈도 쓸데 없겠군.)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코스에 돌아와서 또 서성거린다. 그러나 인젠 돈이 쓸데없겠지. 밤중까지 서성거리다가 또 그 잘 확인해둔 아빠트단지에 들어선다.   안해의 백색 자전거가 보인다.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깊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4층 1번이라는 번호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문을 노크한다. 노크하며 무슨 리유를 댈가를 궁리한다. 아무런 리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될대로 되겠지.   ꡔ누구요? ꡕ   문은 열리지 않고 아직 잠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문 저쪽에서 들려온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여 서두른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한다.   다시 노크를 하며   ꡔ빨리빨리! 큰일났소, 빠리 문 여시오! ꡕ   그쪽에서도 서두르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자 다짜고짜 성큼 들어서며   ꡔ야단났소, 빨리!ꡕ   나는 잠옷바람의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직 닫겨져있는 사이문을 열어 제낀다.   담요로 가리울데만 가리운 내 안해가 아직 무슨 일인지 멋도 모르고 퀭해 나를 쳐다본다. ꡔ무슨 일이기에 야단났다고 그러는거요? ꡕ 이렇게 아직도 정신이 덜 든, 멋도 모르고 서두르는 사내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네깐 년놈들 지력이 안된지.   ꡔ내 안해가 발가벗고 외간사내와 한침대에 누워있다는것만치 야단난 일,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ꡕ   나는 또다시 나의 령감과 림기응변이 뛰여나다는데 놀란다.   리혼은 얼음에 박 밀듯 척척 진척이 되였다.   법적 수속이 끝나는 날, 나는 법원의 대문을 나서자 곧 하늘을 쳐다보았다. 역시 하늘은 푸른 하늘이였다.   ꡔ용서하세요.ꡕ   그녀가 뒤따라 나왔다.   ꡔ미안해요...ꡕ   ꡔ미안할것까지야 뭐. 우린 원래 남이였지 않아? 이제 또 남이 된거야. 녀자와 남자, 그저 그런거야...ꡕ   외롭게 세상에 와서 외롭게 살다가 또 외롭게 가는게 인생이겠지. 나는 뒤의 말을 내 마음속에서만 하였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나는 그 자전거가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나도 다 낡아버린 내 자전거에 올라탄다. 동시에 아까 법원에 들어올 때 경찰과 옥신각신하던 서너명의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자전거주차장에서였다. 나는 원래 그런 거리의 구경거리에는 취미가 없었는데 자전거를 세워놓으려니까 별수없이 한두마디 얻어듣게 되였다. 물론 구경군들은 그 옥신각신을 쭉 둘러서서 구경하고있었다.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모양이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법원대문앞에서 그 위험한짓을 하였을가? 눈알이 팽글팽글 잘 돌아가는 약삭바르게 생긴 젊은이가 주머니를 툭툭 두드리고는 경찰에게 두손을 펴보이고있었다. 아마도 경찰이 감춰둔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하는 모양이였다.   녀석들도 돈때문에 저꼴이 되였구나 생각하며 나는 법원에 들어갔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늘 두리번거리며 누비며 싸다니던 코스에 들어서자 나는 잠간 자전거에서 내려 벅작거리는 로천가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돈에 모든 신경이 곤두선 사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돈이라는게 생겨났을텐데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게 참 이상스럽다. 그러니까 돈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 거리에서 어디 구을러다니는 돈이 없을가고 두리번거린 자신이 참 어처구니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에 올라타려는 순간 난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것처럼 나도 자전거에 남새바구니를 달고다닌다. 좀 유다르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바구니를 자전거핸들앞에 매달아놓는 대신 나는 접었다폈다할수 있게 만든 바구니를 자전거 뒤쪽의 짐실이옆에 매달아놓은게 다르다고 할가. 그걸 펴서 밑에 비닐박막쪽박이나 신문지 한두장을 깔아놓으면 훌륭한 남새바구니가 되는것이다. 아까 법원에 갈 때도 나는 공문가방을 거기에 담아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바구니에 신문지로 꽁꽁 싼 물건이 댕그랗게 놓여있지 않은가, 심장이 뚝 멎는것 같다. 돈이였다. 부랴부랴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리고 아빠트 대문어귀까지 왔을 때 내집에 아직 ꡔ남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성하가의 그 한적한 인도에 간다. 두리번거리며 겨우 다 세여보았을 때, 천원도 더 되였다. 별 괴상야릇한 일도 다 있군. 필요할 땐(물론 아무때라도 있으면 나쁘지야 않겠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거푸 십전짜리 한장 눈에 뜨이지 않던것이 또다시 ꡔ혈혈단신ꡕ이 된 오늘 문뜩 나타난다는건 하나님의 조화랄밖에, 그것도 자그만치 천여원!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그 눈알이 팽이처럼 잘 돌아가던 약삭빠른 젊은이를 떠올린다. 그 녀석이 약삭바르게 림기응변하느라 슬쩍 숨겨둔것이라고 짐작하니 부담감도 별로 없다. 돈이야 똥이 묻어도 향기로운것이니까. 당장 그 돈이 쓰고싶어진다. 우선 식당에 들려서 한끼 먹는다. 전에는 네온싸인이 판들거리고 네면을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식당은 아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못내였었다. 그러나 정작 들어가보니 내 위로는 백원도 소화시킬수가 없었다. 또 자전거를 타고 두리번거리며 싸다닌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을 줏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주은 돈을 쓰기 위해서였다. 문뜩 붉은등이 켜져서 자전거를 멈춰세웠는데 바로 길옆의 전선주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것이 보였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에도 꼭 같은 간판이 하나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쪽에 걸음이 돌려진다. 그 카라OK방때문에 안해와 헤여진게 아닌가?   새빨간 꼬마전구가 간판밑에서 희미한 유혹을 빛으로 전하고있다.   복도가 오불꼬불 지옥으로 가는길 같다. 몇바퀴 에돌다가 역시 지옥의 길같은 계단을 오른다.   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밑에서는 역시 새빨간 꼬마 전구가 가물거리고있다. 아주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머리를 다소곳이 하며 ꡔ어서 오세요.ꡕ 한다. 카운터에서도 그보다는 좀 나이가 들어보이는, 주인인듯싶은 녀인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방안에는 온통 채색의 꼬마전구투성이이다. 음악이 은은하다. 빨간 미니 스카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일부러 패션모델들처럼 엉뎅이를 멋스레 내저으며 사뿐사뿐 오간다. 쏘파에 앉으며 난쟁이 차탁을 마주앉아있는 사내들을 본다. 모두 멋쟁이들이다. 차탁 맞은켠에 앉아서 술을 치는 아가씨들과 치근덕치근덕, 히히닥닥거린다. 나한테도 아가씨가 와서 시켜놓은 맥주를 따라놓고는 서먹서먹 눈치를 살피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별로 속에 찬게 없어 보인 모양이다.   나는 맥주만 줄창 홀짝인다. 그 사이 박수소리가 나고 방 곳곳에 매달린 텔레비가 켜지고 T셔츠를 입은 사내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나는 또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카라OK방이란 이런거였군.   내앞에는 술 쳐주는 아가씨도 없고 함께 술을 마셔주는 사내도 없다.   나는 신사 사내들의 본을 따서 손가락으로 딱딱 둬번 소리를 내본다. 아가씨가 온다.   ꡔ종이 좀 갖다주지? ꡕ   아가씨는 그대로 돌아가더니 OK가요 신청카드를 가져온다. 노래를 부를려고 종이를 요구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 카드에다 시를 쓴다.     별이 색바랜 날     꼬마전구들이 가물거린다     욕망들을 녹여내는 술잔     한컵 또 한컵     나는     외로움을 삼킨다   그리고는 또 맥주를 꿀꺽거린다.   아가씨가 다가온다. 술 치는 아가씨들과는 다른 차림이다. 온통 하얗다. 옷차림도 하얗지만 팔과 다리, 목덜미마저 눈같이 하얗다.   ꡔ잠간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ꡕ   목소리마저 하얗다. 그리고 나긋나긋하다. 손과 팔도 날씬하고 다리와 엉뎅이, 허리와 어깨, 목덜미... 한마디로 날씬하다. 가슴만은 팽팽한줄 알았는데 역시 날씬하다. 아무리 억세게 껴안아도 뼈가 상할것 같지가 않다.   그녀는 우선 내가 방금 써놓은 시를 들여다본다.   ꡔ얼마나 아름다워요... ꡕ   그녀는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눈길도 촉촉하고 날씬하다. 시를 쓴 종이카드를 건네줄 때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내 몸마저 나긋나긋해진다.   나는 또 시를 쓴다.     해질무렵     잔디밭은 아가씨다     나무와 잔디     고독을 감싸는     꽃의 훈향이 그립다   이건 아가씨를 노래한거야 하니 아가씨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는다. 너무너무 아름답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아가씨가 허리를 굽히며 뭔가 마루바닥에 떨어진걸 주을 때 야들야들한 유방이 들여다보인다. 나는 얼굴이 후끈해난다. 동시에 아래도리가 뻐근해진다. 이것도 아이러니야. 그리고는 집에 안해가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의 몸에 붙어있겠지.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욕망은 녹지 않는다. 기껏 마셨을 때 나는 욕망이 녹았는지 얼었는지도 모른다.   계산을 하고 비틀거리며 밖에 나왔을 때 아가씨는 잠간 머뭇거린다. 뻐스가 없을 시간이였다.   ꡔ데려다줄가? ꡕ   지나가는 택시를 요행 잡아탄다.   아가씨가 류숙한다는 아빠트 방에 들어섰을 때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취기와 졸음과 피로가 함께 몰켜든다. 아가씨는 ꡔ커피를 끓여올께요. ꡕ   하고는 주방에 나간다.   눈을 뜨니 이슬 먹음은 화초같이 싱싱한 아가씨가 새물새물 웃고있다. 쏘파에 기댄채 잠간 졸았던 모양이다. 아가씨는 하들하들한 비단가운을 걸치고있다. 카라OK방에서와 같은 채색 등불이 은은하다. 나는 빨려들듯 아가씨를 끌어안는다. 아주아주 녹신하다. 선률같은 등불과 탄력 좋은 침대, 날씬하고 비누향기가 그윽한 아가씨의 몸뚱아리, 4-5년동안 안해와 살을 섞으면서도 나는 한번도 그런 황홀경에 빠져본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무아의 경지다. 내 자신의 몸속에 아직 그토록 꿋꿋하고 탄력적인 정력이 잠재해있었다는데 놀랄 겨를도 없이 음과 양의 묘미와 절경을 만끽하고있었다.   잠에서 깨니 동창이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ꡔ잘 되였어요? ꡕ   아가씨도 깨여있었다.   ꡔ잘 됐다는게 뭐야? 아주 천당에 갔다왔어. ꡕ   그녀는 해죽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박씨같은 그 치아와 입술, 입귀에는 어쩐지 어색함이 은은히 드러나고있었다.   ꡔ그럼 백원만 놓고가세요. ꡕ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윽토록 그녀를 지켜본다.   ꡔ그럼... ꡕ   ꡔ그래요. 그걸로 밥을 먹는 녀자예요. 병은 없으니까 걱정마세요. ꡕ   나는 또 멍청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여 차탁우에 올려놓고 문을 나선다.   결국 그랬었군.   나는 방 번호도 뒤돌아보지 않고 동(棟)을 나선다. 거리에서는 사람의 물결이 흐르고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물결을 이루고있었지만 결국 남자와 녀자, 그렇고 그랬다. 그리고 부연 운무속에 빌딩들, 아빠트들이 우중충히 서있었다.                            1991년  7월
5    “젊다”와 “늙다”의 변증법 (서영빈) 댓글:  조회:1704  추천:0  2009-05-16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은 품사분류에서 언제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원래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가 구별 없이 쓰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날의 시대변화가 몰고 온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 된다고 하겠다.     대체적으로 보면 반대말은 같은 품사에 속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예를 들면 “가다”가 동사이기 때문에 그 반대어가 되는 “오다” 역시 동사에 속하게 되고 “좋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에 그 반대말인 “나쁘다”도 형용사에 속하는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존재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있다”는 동사임에 반하여 “존재하지 아니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없다”는 동사가 아닌 형용사가 된다. 이럴 때 단어의 사용에서 혼동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단어오용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반대말을 이루는 두 단어가운데서 하나는 동사가 되고 다른 하나는 형용사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재미나는 것이 “젊다”와 “늙다”라는 커플이다.     결론부터 보면 “젊다”는 형용사인데 “늙다”는 자동사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에서처럼 꼭 반대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형용사, 하나는 자동사이다. 그것은, 사정에 따라 혹은 젊어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늙어 보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늙어가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고 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는다”는 말은 가능함에 반하여 “젊는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젊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젊어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물주의 뜻이요, 자연의 섭리요, 우주만물의 법칙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국의 어느 유명한 학자 한분은 “내 나이를 단 한 살이라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명성과 부와 지식을 그 대가로 지불하고 싶다”고 공언하였다. 그만큼 나이라는 것은 먹기만 할 뿐 다시 토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 황제들은 장생불로초를 찾아 세계를 샅샅이 뒤졌고, 여성들은 화장술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확인해주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화장술을 무색케 하는 성형수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성형수술은 어느 화장품 광고카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난해 20살이었는데 올해는 18살처럼 보여요”가 아니라 아예 18살로 뜯어고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외모는 뜯어고칠 수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인간의 오장육부를 18살로 뜯어고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18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들이 비아그라의 도움으로 18세의 정력을 잠깐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18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약 기운이 빠지면 40살이 오히려 50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 이치가 이런데도 사람들은 “젊어지는 일”에만 매달려 있다. 언젠가 누가 인간이 젊어질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한다면 그는 단연 빌 게이츠를 초월하여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젊다”라는 형용사를 인위적으로 자동사로 만들어보려는 인류의 이런 피타는 노력은 숭고하고 거룩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가엽기 짝이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젊어지는 기술도 좋긴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늙어 가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늙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없다는 현실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어떻게 늙어 가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젊어지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며 또 누구나 다 경험하게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사고는 하지 않고 되지도 않을 젊음에 연연해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소노 아야코(曾野绫子)의 《계로록(戒老录)》과 같은 작품들이 나와야 할 텐데…     우리말에서는 아이와 어른이라는 말로 인생을 두 시기로 나눈다. 여기에서 어른이라는 말은 첫째로 성인이라는 뜻이고, 둘째로는 시집 장가를 간 사람이라는 뜻이며 셋째로는 한 사회의 권위자나 덕망 높은 인사를 이르는 말이다. 성인으로서의 어른이 가장 기본적인 뜻이라면 시집장가를 간 사람이라는 뜻의 어른은 좀 더 확장된 의미가 될 것이며 세 번째 뜻은 단어의 기본의미에서 의미 폭이 가장 넓게 확장된 것이라고 하겠다. 성인은 나이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시집장가를 가기 전까지는 진정한 어른취급을 받기가 어렵다. 부모가 되어보아야 부모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집장가를 가서 부모가 되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다 어른인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뜻의 어른은 나이만 가지고 되는 어른이 절대 아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많이 있지만 존경스럽고 근엄하고 초탈한 어른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해득실에 연연해하고, 옹졸한 마음가짐으로 젊은 사람들을 재단하고, 현실적인 손익계산 때문에 바른말을 못하는 노인이라면 이미 어른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는 어른들이 많이 있었다. 가문에는 가문의 어른이 있고 동네에는 동네 어른이 있었으며 사회에는 사회의 어른이 있어서 그 어른들이 한 말씀 하면 대체로 결론이 나왔었다. 그분들은 이미 자신의 인생행로를 통해 공정하고 진실하고 합리적인 사유방식을 내면화하였고 그것이 또한 민중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말씀은 늘 호소력을 지녔고 이러한 어른들과 함께하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다. 이러한 어른은 지식의 권위자나 행정적인 세력가가 아니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인격에서 나오는 힘이 있기에 굳이 행정적인 세도나 학문적인 권위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권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이 혹 하나같이 젊어지려고만 노력했던 탓은 아닐까 하고 반문해본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고는 하나 오늘까지도 90세를 넘기는 생은 그리 많지가 않다. 90을 목표로 치더라도 어언 내 나이는 슬슬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점이다. 지금까지 아득바득 위로 올려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내려다보며 사는 인생이라고 하겠다. 인생이 등산길이라면 지금부터는 산에서 내려오는 연습을 할 나이다. 원래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르막길에선 한두 걸음 잘못 디뎌도 큰 낭패는 없지만 내리막길에서 얘기가 다르다. 한발자국만 헛디뎌도 천길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부디 조심할지어다.     산에서 잘 내리려면 무엇보다도 과욕을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보폭을 유지하며 속도조절을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몸에 버거운 짐은 아쉽더라도 버리고 떠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멋있는 하산이 되려면 오르면서 보지 못한 산의 진면목을 보는 혜안을 갖추어야겠다. 그래야 진정 헛되지 않은 등산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돋보기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석구의 《부분이 전체에게》라는 시를 음미하며 유쾌히 하산길에 나설 것이다. 어른이 되지는 못할망정 추한 노인이라는 평은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분이 전체에게          조석구 책과 신문을 자꾸만 멀리 보게 되더니 마흔다섯에 접어들어 드디어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안과의사는 말했다. 원시가 되었다고 했다. 원시는 나에게 말했다. 가까운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넓게 보라고 했다. 그동안 근시로 얼마나 많은 편견과 편협 속에 살아왔느냐고 했다. 나이값을 하라고 했다. 작은 글씨가 안 보이고, 큰 글씨만 보이는 것은 쩨쩨하고 시시하게 살지 말고, 선이 굵고 크게 살라는 것이라고 했다.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라는 뜻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4    왜 마을 운동회가 더 재미있을까- 아마추어의 변(서영빈) 댓글:  조회:1481  추천:0  2009-05-16
한국에 금방 나갔을 때의 일이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어서도 나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출근했었다. 그 날이 그냥 무슨 요일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게 어린이날인지 공휴일인지 전혀 알 바 없는 나로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 날 강의책자를 챙겨들고 캠퍼스에 들어섰다. 캠퍼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별로 신경을 안 쓰고 강의실이 있는 동에 들어서니 강의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복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수위 아저씨한테 물어서야 오늘이 어린이날이라는 것, 어린이날은 공휴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은 ‘아동절(儿童节)’이라 하여 6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놓고 있지만 공휴일은 아닌지라 나는 허탕의 불쾌감보다는 뜻밖의 휴일을 챙기게된 은근한 만족감을 즐기며 연구실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날씨가 왜 그리도 따뜻하고 포근한지,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고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꽃향기를 실은 봄내음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임어당이 그랬던가? 봄날에 독서함은 춘의(春意)에 어긋난다고. 나는 책상 위의 책들을 죽- 밀어놓고 춘의에 따르기로 마음을 정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학교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보니 그 곳에서는 어린이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로 보이는 ‘선수’들이 달리기 경주에 열심이고 그 응원단 사이의 대결도 만만치 않았다. 관람석을 빼곡이 채운 관중들은 가족 단위로 원족이라도 온 것처럼 모두 도시락을 준비하여 놓고 대단한 명절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봄날의 화창한 날씨에는 역시 독서보다 운동회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모든 걱정들을 잊고 지긋이 운동회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아마 겨우 초등학교 일학년이나 되었음직한 꼬마들이 달리기를 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이른바 장애물 경주였다. 그렇다고 여러 가지 장애물을 설정하여 놓은 것은 아니고 다만 몇 십 미터 가다가 한번 씩 땅에서 뒹굴고 나서 다시 뛰는 경기인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어떤 학생들은 뒹굴고 나서는 방향을 혼동해서 자기가 뛰어오던 방향으로 냅다 달리다가 선생님이 옆에서 길을 막고 주의를 줘서야 다시 되돌아서서 달리는데 그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어린이들의 경기만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학부모들의 경기가 더욱 일품이었다. 겨우 60여 미터를 달리는데 마음만 앞서고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허우적거리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린 자녀들이 넘어지지 않는데 한창 나이의 어른들이 뛰다가 넘어지는 건 아무래도 균형감각이나 체질상의 문제 같지가 않았다. 방향을 혼동하는 어린애들의 경우를 동심이라고 한다면 어른들의 경우는 욕심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그 욕심이 조금도 추하거나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른의 지도가 필요하고 어른에게는 동심의 해맑은 거울이 필요한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올림픽보다 더 재미나는 이 어린이 운동회를 보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시골의 마을 운동회가 떠올라다. 어렸을 적 내가 자란 마을은 5백 가구 남짓한 조선족들이 집거하는 평원지대의 마을이었는데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운동회는 그 어떤 명절보다도 즐거운 축제의 날로 기억된다. 마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마을 전체가 술렁대면서 흥분을 잉태한다. 꼬마들은 벌써부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 나가 집안 어른들의 좌석잡기에 급급하고 노인들은 희끗한 수염을 날리며 젊은이들의 옹위 속에 운동장으로 향한다. 마을 아낙들이 한복을 입는 거의 유일한 날도 바로 이날이다. 학교 운동장을 제외하면 온 마을이 텅 비어버려 중학생들의 토마토 서리나 참외 서리도 이날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운동회라고 하여 어떤 특정된 경기종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축구나 배구, 널뛰기, 그네, 씨름 등이 전부다. 때때로 새로운 종목이 신설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자전거 늦게 타기처럼 유희성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어떤 정확한 수치나 숫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관중의 참여도는 과히 열광적이다. 막판에 가면 으레 한두 사람이 술에 취해 심판의 공정성이요 뭐요 하며 시비를 걸게 마련이지만 그것도 웃음 속에서 유야무야되고  만다. 마을 운동회는 꼭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이 그냥 봄철의 모내기가 끝나서 하기도 하고 또 가을걷이가 끝나서 하기도 하고 날씨가 궂으면 한 주일 씩 미루기도 한다. 한해는 우리 고향 출신의 한 유명한 교수가 오랜만에 귀향하자 그의 일정에 맞추어 열기도 했다. 이런 마을 운동회가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를 나는 여태껏 ‘선수’들과의 유대관계로만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이 그 어느 명배우의 연기보다 자기 아들의 어설픈 연기를 더 재미있어 하듯이 나의 이웃이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활약이 바로 마을 운동회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확신하면서 거기에 일말의 의혹도 가져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생동하는 봄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한가롭게 어린이 운동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이 바로 아마추어의 매력이고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너무도 판이한 세계를 상상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아마추어의 세계를 잊고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왜 자기가 이처럼 오랫동안 허탈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흔히 하는 말처럼 프로의 세계는 철저히 돈의 세계이고 과학의 세계이고 승부의 세계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항상 정확한 수치가 개입되고 기계가 개입되며 냉혹한 판정이 개입된다. 프로의 세계에서 인정(人情)이나 관용 또는 용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세계는 유희의 세계, 정서의 세계요 낭만의 세계이다. 어차피 유희인 만큼 승부는 벌써 뒷전이고 중요한 것은 유희 자체를 얼마나 즐겼는가 하는데 있다. 인간의 즐거움이나 재미는 바로 이 유희성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프로 마라톤 선수들의 그 숨막히는 라스트 스퍼트 장면에서 우리는 물론 가슴을 저리는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재미가 아니고 즐거움은 더욱 아니다. 그 감동은 오히려 비극미에 가깝다. 우리 인생에서 재미나 즐거움이 중요한 건 아마 그것이 비극미에서 오는 감동보다 더 원초적이고 더 본질적이며 더 자연적인데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나 유희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동적이 될 수 있고 여유가 있으며 그러한 주동성과 여유가 바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윤활하게 하는 이른바 예술의 모태(母胎)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이란 본래부터 아마추어에 그 기원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이 프로로 되면 자연히 상업화와 연결되면서 과학이 가미되는 반면 낭만이나 유희성은 자기 자리를 잃게 된다. 지난 20세기를 뒤돌아보면 참으로 과학의 세기라고 할만하다. 미국 타임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꼽은 것도 결국은 20세기의 성격을 과학이 대변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막 시작된 새 천년에도 과학은 역시 초고속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과학가들의 예측대로라면 2025년쯤에는 그 공포의 에이즈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며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태아 시에 벌써 각종 면역세포를 주입하여 병에 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때에 가서는 과연 우리의 꿈처럼 인간이 장생불로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중엽에 이르러 인류가 사망하는 제일 큰 병명을 ‘고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을 과학의 힘으로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어느 하나에 너무 치우침이 없이 과학과 낭만, 이성과 감성, 물질과 정서가 적절히 평화공존하는 그런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아쉽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을 운동회나 어린이 운동회 같은 아마추어 모임이 자주 있는 한 적어도 우리는 재미와 즐거움을 좀 더 오래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느라면 21세기의 ‘고독’이라는 이 악성종양에도 어느 정도 면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3    달력과 일력( 서영빈) 댓글:  조회:1370  추천:0  2009-05-16
또 한해가 지나간다.   연초의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만 남아있고 해놓은 일도 없이 또 한해가 지나간다.   며칠 전 조금 이르게 가진 망년회에서 한 스승님은 50세 이후의 세월은 급행열차라 하셨다. 지금까지의 세월도 내 기억으로는 특급열차 같았는데 50세를 전후로 시간이 기하급수로 빠르게 느껴진다니 인생을 일장춘몽에 비유한 선인들의 감회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달력을 보내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력이 하나의 장식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예쁘게 만든 달력이라 해도 별 관심이 없다. 달력은 그냥 달력일 뿐, 여기저기 널려있는 달력을 보면서 거기에서 생명이나 시간의 의미를 추적하려는 사람은 없다.   옛날에는 달력을 쓰지 않고 일력(日历)을 썼다. 하루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언제나 어머님의 새해맞이 쇼핑목록 제1호였었다. 집에서 눈길이 가장 잘 닿는 위치에 정중히 걸어놓고 그 첫 장을 뜯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 일력을 한 장 한 장 뜯어내는 재미에 나는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고 그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면 저도 모르게 미리 몇 장씩 뜯어 내군 하여 어머님의 꾸중을 들을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아버님이 일력을 뜯을 때면 언제나 일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뜯어내시곤 했다. 그때 아버님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버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력의 한 장 한 장은 시간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시간과 구체적인 의미로서의 나의 삶이 만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내 일력에서 내가 뜯어내는 한 장 한 장의 일력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일력은 일기장과도 같은 삶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더구나 출장 같은 일로 며칠씩이나 건너서 한꺼번에 여러 장의 일력을 뜯어내게 되는 경우라면 가볍게 뜯어내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일력에는 오늘만 나타나지 어제와 내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 번 뜯어진 “오늘”은 영원히 일력에서 제외된다. 아직 “오늘”로 변하지 않은 “내일” 또한 일력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일력은 철저하게 오늘의 가치를 고집한다.   그만큼 일력에는 인생과 궤를 같이하는 시간의 무게가 실려있다. 한 장의 일력을 뜯어낼 때마다 하루의 인생이 연소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느낌 -- 그것은 결코 얄팍한 종이장의 촉감이 아니라 생명의 질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달력에는 그러한 생명감이 결여되어있다. 한꺼번에 한 달의 시간이 넘어가지만 찾고싶을 때에는 언제든지 다시 넘겨와서 찾을 수가 있다. 마치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현혹시키는 게 달력이다. 또한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이 공존한다. 매일과 같이 언제나 나에게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처럼 달력은 우리의 시간 신경을 마비시킨다. 달력에 익숙해진 우리는 지나간 시간이 아까운 줄도,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줄도 모른 채 자기최면에 빠져 “어제”와 “내일”을 오늘로 착각하면서 산다.   그것도 모자라 새로 나오는 전자달력에는 아예 자그만치 백년간의 역서가 들어있다. 시간을 세는 단위는 갈수록 커지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생명감은 갈수록 엷어만 지고… 그래서 가끔 가다가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로 살고싶을 때가 있나보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디지털이 더 어울리는가보다. 주로 메일을 통해 새해인사가 많이 오는데 오늘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학생한테서 이런 메일이 와 나를 당황케 한다. “선생님, 아름다운 새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어처구니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해 슬그머니 아내에게 보였더니 아내 왈: “헌 년도 아직 안 갔는데 벌써 새 년이라니...”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세모에 무더기로 들어오는 달력들 속에 혹시나 일력이 없나 살피지만 번번이 헛수고다. 구할 수만 있다면 새해부터는 일력을 걸어놓고 살고 싶다.
2    신사의 호주머니는 쓰레기통(허무궁) 댓글:  조회:1392  추천:0  2009-05-16
쓰레기통에 대해서 쓰고싶어서 쓰레기통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별로 참고될만한 자료가 없었다.정보의 쓰레기시대라고 하더니 쓰레기정보는 하나도 없는게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럴때는 내가 뭐라고 해도 누구나 반박을 하지 못할것이니 나름대로 쓰레기통에 대해서 피력하고저 한다.   쓰레기통이란 쓰레기를 담는 통이다.쓰레기란 쓸모 없는 물건,아니 버려진 물건을 쓰레기라고 할수 있다.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쓸모있건 없건 관계없에 버린 물건은 다 쓰레기인것이 아니다.정확히 말하면 쓸모있었던 물건이 이젠 쓸모가 없게 되여 버려진 물건이 쓰레기다.이를테면 다 마사진 자동차를 버리면 그것은 쓰레기이고 머리카락 한오리라도 밥상우에 떨어지면 그것도 쓰레기다.그것이 버려지기전까지는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것이였던가 관계없이.    한편 원래부터 쓸모없던 물건도 사람의 손을 걸쳐서 버려지면 그것도 쓰레기가 된다.산에 널려있던 마른 나무도 그대로 두면 쓰레기가 아닌데 그걸 가져다 길에 널어놓으면 쓰레기로 된다.가을 락엽도 그대로 두면 쓰레기가 아닌데 사람이 쓸어모으면 쓰레기로 되는 일은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그런 쓰레기가 좋은지 20세기초에 미국의 <<에이트(The Eight; 8인조)>>그룹은 <<쓰레기통 파(애시캔스쿨)>>예술까지 내왔으니 이 또한 더구나 모를 일이다.    쓰레기란 이렇게 인간이 만드는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담는 통을 만들었으니 바로 쓰레기통이렷다.중국에선 과일껍질통(果皮箱)이라고 하는데 이는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였음을 말해준다.아마 그래서 중국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있는지 모르겠다.정확한 의미에서의 쓰레기통은 중국에 없는 것이다.대신 중국에선 과일껍질 널려있는걸 보지 못했다.하필이면 과일껍질에 집착하는 그 원인을 모르겠다.       다음 호주머니에 대해서 쓰고싶어서 나는 호주머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 았더니 우리 말로 호주머니에 대한건 없고 영어로 포켓에 대해 남겨둔 자료가 있었다.    앵글로노르망어의pokete,중세영어의 poket에서 비롯되였다고 야후사전에서 해석하고있었다. 거기의 해석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포켓이 등장하기 전 서양에서는 소매·두건·목둘레 깃을 주머니 대신 사용하였으며 귀족은 오모니에르라는 실크제(製) 작은 주머니, 농민은 마제(麻製)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포켓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때 코드피스라는 주머니 모양의 장식을 남자바지에 달면서부터이다. 17세기에는 남자 웃옷의 몸판과 조끼에 달고, 19세기 중반부터는 바지에도 달기 시직하였다…여성복 포켓은 18세기에 등장하여 주로 주머니를 허리에 차거나 안쪽에 다는 형태였으며, 핸드백이 필수품이 된 뒤로는 보급되지 않았다. 20세기부터 포켓은 의복에 완전히 정착, 오늘날에는 실용성·유행·디자인이 고려되어 형태가 매우 다양화되었다.>>     한글표기법 그대로 인용하여 보기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의 글을 인용하기에 그대로 적는다.    호주머니는 물건을 넣기 위해서 생긴것임이 틀림이 없다.그런데 이제는 패션의 하나로 존재하게 되였다.요지음 한국배우들은 포즈를 취할 때 한쪽 손을 포켓에 찌르고 비스듬히 서는데 그럴 때도 호주머니의 역할이 발휘되고있다. 그러니 호주머닌 이렇게 멋 부리는데에도 쓰이고있다.기실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다니면 신사답지 못하다고 하여 매너를 지키는데서는 역역할 하는 때도 있지만 잘 리용하면 호주머니도 매너지키는데 크게 도움을 줄때도 있는것이 다.쓰레기통으로는 쓰일망정말이다.   다음 나는 신사에 대해 쓰고싶어서 신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우리 말의 신사는 꼬부랑말로 젠틀맨이라고 하는가 보다. 십오세기중엽 영국의 귀족의 수가 전쟁으로 말미암아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후 의회의 빈자리를 채운 젠트리라는 신분집단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지주가 주축이였고 그후에는 여러계층의 성공자들이 망라되여 녀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중한 매너의 상징적인 칭호로 된것이다.지금은 영국신사란말은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통하며 녀성들의 리상형 이기도 하다.그래서 한국엔 백봉신사상까지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4년 8월의 어느날,나는 방금 와세다대학교육학부장으로 부임된 와라가이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료리점에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였다.독일류학생으로서 그는 우선 오랜 시간을 리용하여 붉은 포도주를 골라 주문하고 다음 료리를 시켰다.오랜만의 만남으로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일본경제,중국교육, 서양과 동양사람들의 의식차이 등등 그 화제도 넓었다.그러다가 나는 테블우 그의 앞에 있는 길고 가는 머리카락 한오리를 발견하였다.    <<아,선생님 잠간만…>>    내가 주으려고 하는데 어느새 와라가이선생님이 제꺽 주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디서 생긴 머리카락인지도 묻지 않고 바닥에 버려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머리카락 한오라기인데,그것을 만약 내가 먼저 주었더라면 어김없이 바닥에 던져버렸을것인데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호주머니에 넣는 그 모습이 지금 새삼스레 떠올라 오늘 이 수필을 쓰고싶어졌던것이다. 쓰레기에 대해서,호주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신사에 대해서 쓰고싶어 졌던것이다.      일본에선 쇼와29년(1954년)도에 <<청소법>>이 제정되였다고 한다.국회 의원들이 할일이 없어서 제정한 법은 절대 아니다.그러나 무엇이나 다 법으로 될수 있는것은 아닌줄로 안다.그래도 혹시 일본의 <<청소법>>에 머리카락을 호주머니에 넣어야 된다고 규정하였는지는 이제부터 조목조목 찾아봐야 알것 같다.       2006년1월26일 음력으로는 설3일전 날 도쿄에서
1    기억의 달력과 마음의 달력 댓글:  조회:1369  추천:0  2009-05-16
참말로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을 절감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하긴 인생 오십 지천명이라고 했으니 바야흐로 천기를 알 법도 하겠다. 사십을 불혹의 나이요, 경험 사십대라고도 하였으니깐 그만큼 인생공부도 착실히 한 것이다. 이쯤에 와서는 반백이요,  흰서리요 하는 수식어들이 별로 입에 잘 오르지 않는다. 그냥 문학공부를 할 때는 그것이 유식함을 나타내서 좋았던 것 같은데 인제 그것이 자기 인생을 확인하는 실용어가 되었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체감하였기 때문이리라. 바다를 즐겁게 바라보는 사치한 소비의 여행자와 하루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면서 생존을 위해 공포의 출항을 하는 바다사람의 마음의 차이랄까. 언제부터였던가 일기를 쓰던 걸 절필하였다. 그리고 이미 쓴 일기들을 몽땅 태워버렸다. 그 속에는 소학교, 중학교시절에 썼던 학습 심득필기도 여러 권 들어있었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원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유와 박애를 인간성의 원색적인 질료로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의 추한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념의 노봇이었고 투쟁의 무기였다. 일기는 달력처럼 고스란히 그런 흔적을 남겨두고 쓰라린 추억에 가슴만 아프게 하였다. 그래서 처방을 뗀 것이 망각의 미학이다. 지나간 일, 지나간 인생, 지나간 세월을 영영 망각의 뒤안길에 던져버리려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찢어버리는 일력처럼.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영혼과 함께 하는 영원한 달력이 있다. 생각하는 인간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동경하면서 지난 인생의 경험이든 교훈이든 때때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흔히는 무의식적으로 열리는 추억의 쪽대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사유하는 특수한 동물인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의 섭리인 것 같다. 자연은 삶을 연습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한번쯤 뒤돌아보는 여유를 베풀어준 것이다. 판단의 한계로 늘 실수를 하게 되는 인간은 그런 실수를 기억할 수 있어 ‘동어반복’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즐거웠던 괴로웠던 지나온 인생 여로에 흘린 발자국과 추억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에서 오늘 현재는 영원히 중간 시점이다. 오늘의 선택과 미래의 그림은 그 발자국과 추억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지나온 길은 선형적이지만 뒤돌아보면 거기에도 무수한 갈림길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가야할 길은 언제나 갈림길이다. 과거에 무수한 갈림길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길을 선택했던 경험은 오늘 내일의 길을 선택하는 밑그림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기록된 달력보다 기억된 달력은 영혼에 더 가까이 하고 있고 결국 영혼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만큼 기억의 달력은 영혼이란 여과기를 달고 있고 영혼의 정화에 의하여 기억을 걸러냄으로써 내용이 선택될 수밖에 없다. 더는 기억되지 않는 과거, 더는 추억으로 떠오르지 않는 사건은 내 인생에 무의미한 것이거나 승화된 영혼에 의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간혹 부끄럽던 일,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 안타까웠던 일, 괘씸했던 일, 격분했던 일들이 기억의 달력에 남아있더라도 이미 자각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오늘과 내일을 바르게 선택하도록 영혼의 거울이 비춰주는 계시임에 다름 아니다. 기억의 달력에 영혼의 선택을 받은 내용이 풍성할수록 오늘과 내일의 인생도 더 충실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기억의 달력은 영혼에 여과되는 마음의 달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달리기에 앞서고 늙은이는 경험에 앞선다고 하지 않을까. 늙은이 타령까지 부르고 보니 아직까지 늦깎이 인생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좀은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씩 학생증을 손에 들고 보노라면 대학의 젊은 시절이 눈에 삼삼하여 즐겁기만 하다. 서박의 일력 달력에 대한 글을 보고 생각을 몇 자 적다가 문뜩 작가(서박)의 일화 하나가 떠올라 아래에 이 글하고 크게 관련 없이 뱀 발처럼 그려 넣는다. 그래도 서박의 순진하고 천진하고 깜찍했던 대입 초의 생활모습이라 본인의 기억달력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으면 이제 즐거운 추억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직 손바닥만한 연변 땅도 두루 다 밟아보지 못한 촌놈이 갑자기 10억 인민의 마음의 ‘심장’ 베이징에 가게 되니 그냥 격동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다. 억만이 동경하는 수도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마냥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대도시에 대한 촌놈의 격세지감도 그만큼 크고 강렬하였다. 당연히 이제 함께 생활하게 될 새로운 가족에 대한 호기심도 약간은 떨리는 방어심리를 동반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심리적인 과잉반응은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초기부터 물가의 모래탑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순수하고 편안하고 꾸밈없는 동기들이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천진하면서도 꾸밈없는 모습을 보인 동기가 북극에서 온 ‘꼬마맹장’ 서영빈이었다. ‘꼬마맹장’이라고 하는 건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의 전투적 형상을 떠올려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도 여리고 앳된 모습에 군복을 입고 있었던 영빈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꼼수의 포장이나 계산된 반응이 없이 서영빈이란 원형질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 꾸밈없음에 못지않게 천진함도 둘째가라면 첫째가 없을 정도였다. 첫 방학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새벽, 뭐 과음한 기억은 없는데 아무튼 배가 부담스러워 나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화장실 가려고 이층침대를 내리는데 얼핏 눈길에 영빈의 침대가 비어있었다. 나의 소란에 깨어난 춘식이하고 영빈이 어디 갔냐고 물으니깐 모르겠다고 한다. 그때 무엇인가 아래쪽에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전극’이 있어 내려다보던 둘은 그만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때는 한창 젊은이들이라 이층침대를 오르내릴 때도 침대에 장치한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침대 옆의 턱을 뛰어넘어 책상에 내려서곤 하였다. 그러니깐 책상 위에 내려서는 순간 침대와 책상 사이는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쩜. 글쎄 영빈이가 이불 반은 깔고 반은 감아서 몸에 덮은 대로 침대와 책상 사이의 바닥에서 행복하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가에는 어머니 품속에서 시름없이 달콤히 자는 어린애 같은 웃음꽃을 피우면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후에 영빈이하고 물으니깐 그때 고향집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랬을 테지. 우리의 마음도 그와 다를 바 없으니깐. 이것저것 잡동사니들마저 버릴 수 없는 달력 같은 일기를 폐기처분한 오늘에도 동기들에 대한 기억들은 마냥 인정과 우정과 사랑과 함께 추억의 쪽대문을 열고 삭막한 세계에 갈증을 타는 나의 마음을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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