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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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필]꿈은 깨고 나니 또 ‘꿈’ 댓글:  조회:229  추천:0  2019-07-15
꿈은 깨고 나니 또 ‘꿈’ 김두필     시간이 야금야금 흘러가면서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때만 해도 하늘의 ‘꿈’이라도 캘 것만 같았는데 어느 하루 아침에 문뜩 명랑한 ‘꿈’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몽’이 나한테 덮쳐왔고 그 어마어마한 여파에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나고 모든 욕구와 욕망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밤에 잠을 자려 해도 헛거미가 찾아들고 자고 나면 땀에 온몸이 흥건해지고 말을 하려 해도 목이 꺽 메여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말을 하려 해도 생각은 뻔한데 말문은 그냥 ‘천근’짜리 열쇄를 잠그었는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어리석고 소 갈 데 말 갈 데를 모르는 자신이 택한 일이 안타깝고 공연스레 남들의 말밥에 오른 자신을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워낙에 일욕심이 많아 비록 정년퇴직은 했으나 직장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딱한 사정을 털어놓자 차마 거역할 수 없었고 착잡한 마음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섰다. 어려운 임무를 맡고 부랴부랴 두루 준비를 찾아간 곳이 바로 연길이고 전에 자주 다니던 익숙한 곳이였다. 중국 조선족출판 력사에서 한페지를 기록할 만한  《본초강목》을 번역하는 일을 돌보는 일이여서 너무나 보람 있고 해볼 만한 일이였다.  어림짐작으로 6백여만자에 달하는 거창한 번역작업인지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전자에 《본초강목》을 선재계획으로 제기하고 나중에 여러모로 힘쓰고 노력한 결과 나라의 자금지원까지 받는 항목으로 지정되여 한창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전공이 번역이지만 이 일을 완성하는데 자신의 실력이 턱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분들의 적극성을 동원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일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았고 꼭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생겨났다. 물론 도움을 청한 분들은 조선족출판에서는 손꼽히는 사람들과 의학도서 번역에 소문이 쟁쟁한 사람들이였다. 이 분들을 믿고 한 2년간 잘해보자… 팀원 중에는 출판사의 전임 사장도 있었는데 우선 그 분부터 먼저 찾았고 나중에 한사람 한사람씩 찾아보았다. 지금 시급히 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일이 얼마나 추진되였는가를 알아보려고 모임을 마련하였다. 모임에서 여러분이 자기 견해를 말하고 나 역시 수준이 미약하지만 같이 고생하겠다는 속심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 때로부터 한국과 국내 관련 단위에 련락하여 의학자료들을 수집하였다. 대학교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하여 한발자국씩 생떼기가 헤염을 치는 판이였다. 한문 고대판본 《본초강목》을 기본으로 하고 현대판본 《본초강목》과 해외의 번역본 《본초강목》을 참조하여 역문을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극상해야 2천자 정도 밖에 번역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참답고 튼실했다. 매일 4∼5시간씩 번역하고 나면 온몸이 지쳐서 해나른해나고 다만 침상에 눕고만 싶어진다. 년말까지 초보적으로 끝내자는 요구와는 한참 멀었다. 내가 연길로 떠난 것은 2012년 6월 17일이니 아예 집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생활적인 면을 보살펴줘야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대로 나는 《본초강목》을 20만자 번역하고 그걸 판본으로 일을 내 나름 대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리고 먼길을 떠나 일하는 사람한테 또 몇몇 싱겁둥이들이 이러쿵 저러쿵 험담을 하고 있다. “아무개는 연길에 가서 편안히 먹고 잘 놀고 있어…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가겠는걸…”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다. 또 곁에 당사자가 없으니 입 나가는 대로 지어내는 판이요. 몇해 전에 조선족장군이 한분 계시였는데 무슨 행사차로 연길로 모시고 갔더니 글쎄 소위 대학을 졸업했다는 인간이 뭐 ‘똥별’과 ‘통별’을 분간할 줄 모르는 자로 망신을 톡톡히 당하도록 꼼수를 했는 게 아닌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소리도 하겠지만 먼길을 떠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한테 한심한 소리를 마구 해대니… 별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자기가 질투하는 사람이 눈앞에 안 보이면 헐뜯기를 좋아하는 판이니 아예 뭐라고 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다만 속만 끙끙 앓고 있었다.  언젠가 직장에서 전 성 우수편집을 선출하는데 나는 스스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재삼 사절하고 사양했음에도 상급에 뻔질나게 쫓아다니며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고자질해서 나를 ‘나쁜 분자’ 버금으로 몰고 가는 판에 다 된 밥에 듬직히 재를 뿌린 격이 되였다.  그런 청기와장사가 속심에 끼여들기 좋아하는 데에 남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둘이 끼여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억지감투를 뒤집어씌우는데야 어느 쇠도깨비인들 견딜 수가 있었을가? 만일 그리 험담하기를 좋아하면 차라리 사처로 뛰여다니며 회사를 위해 돈을 벌든가 무엇이든 해놓고 큰소리를 치고 볼 판이지…  그 해 9월 24일 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견디다 못해 석달 만에 고작 20만자를 번역하고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내딴에는 회사에서 큰일을 하는데 자그마한 보탬을 주려고 나섰던 걸음이 하루 아침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심한 감기가 온 모양인가 했는데 하루 이틀 약을 먹어도계속 몸이 말째여서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아갔더니 웬걸 경풍이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병 이름 경풍이라고… 그 ‘악몽’ 같은 시각에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도 못하고 벙어리 랭가슴 앓듯해야 하는 조급증이 살아나서 금시 미쳐날 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때마침 월요일인지라 주임의사는 전체 의사들을 거느리고 아침조회를 들어왔다. 안해는 그 때라 싶어 말 못하는 나 대신 구구하게 한참 눈물코물 쥐여짜며 이야기했다. 안해가 넋두리하는 와중에 주임의사는 《본초강목》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더니 자초지종을 물어보고는 “이 분은 우리 조선족을 위해 《본초강목》을 번역하러 먼 할빈에서 연길로 왔으니 우린 이 분의 병시중에 전력을 다합시다… 오늘부터 병원에 있는 좋은 약을 마음껏 쓰십시오…”라고 말했다. 주임의사가 각별히 관심해준 덕분에 나의 병은 얼마간의 차도를 보이자 그 주임의사는 나에게 이건 기적과 다를 바 없는 효과라면서 진심 기뻐했고 앞으로도 조심하고 병이 완쾌되면 계속하여 《본초강목》을 번역해 자기한테 꼭 한부를 증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저 눈물이 글썽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연길에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고 했으나 함께 번역을 하는 동료들이 문병을 왔고 가까운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는 통에 나는 미안해서, 안스러워서 퇴원한 지 십여일 만에 부랴부랴 짐을 싸가지고 할빈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또 직장 동료들과 같이 일하던 번역쟁이 친구들이  너도나도 찾아주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준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나는 용케도 건강을 천천히 되찾을 수가 있었다. 젊은 시절에 크게 앓다가 좋아진 다음비실비실 살아간다. 사회에 첫발을 밟아서 본의 아니게 크게 앓음자랑을 했는데 32년 만에 다 나았나 하고 한창 사업을 할라니 또다시 병원신세를 질 줄이야… 하도 마음이 바르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서일가, 아니면 살아남아서 남한테 좋은 일을 하라고 그랬던지 또다시 비실비실 살아났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다 싶이 결국 남을 헐뜯어봐야 잘되는 이 없고 한때 기분이 좀 상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그만일 걸 가지고… 어느 한번 병난 몸으로 길을 무심히 가다가 그 밉상이 문뜩 나타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전에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기오… ” 하는 것이다.  이거라구야 본의도 성의도 없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했다. 바른 대로 말해서 한 10년, 한 20년 전에 진작 자기를 뉘우쳤더라면 그의 인생도 한층 나아졌을 것이 아닌가. 세살짜리 배운 버릇이 팔십까지 간다고 했거늘 그 놈의 못된 버릇을 언제면 다 고칠 수 있을가 걱정된다. 오늘도 잠시 회복된 기분으로 지나온 과거를 회억하면서 이제라도 직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간만 다행인 게 아닐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사람으로 련결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재롱을 부리는 ‘꿈’이 아닌가 싶게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쭈욱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꿈에서 깨고 나서 또 ‘꿈’이 있으면 사람에 따라 그런 대로 이채로울 것이다. 출처:2018 제5호
7    당신은 브랜드 댓글:  조회:597  추천:18  2011-02-12
 수필                   당신은 브랜드 글로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입버릇마냥 달고다니면서 그토록 선호하는것이 브랜드환경과 브랜드상품일것이다. 본의 아니게 혼잡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로 말하면 몹시 애달파하면서도 어느 한두사람의 노력으로 해결할수 없어 안달복달하는 일이 바로 환경오염이요, 가짜상품이요, 저질상품 범람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멋진 승용차에 앉아 신나게 달리면서도 차성능에 차질이 있을가봐 은근히 걱정하고 고급화장품을 사용하면서 혹시 아름다운 피부를 해치지 않을가 주저하고 푸짐한 식탁에서 혹시 료리감에 농약이나 생장소가 들어있을가봐 불안스럽고… 사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환경보호가 잘 되고 상품질이 담보되여야겠는데 욕망과 현실은 늘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있어 백성들은 로파심을 털어버릴수가 없다. 같은 값에 분홍치마라고 하지만 우리는 오래동안 브랜드의 존재를 시인하면서도 생명처럼 귀중히 아끼지 않았던것 같다. 외국으로 수출되는 면화묶음속에 무게를 늘리겠다고 집어넣은 벽돌쪼각이나 돌덩이가 들어있고 북경에서 열리는 중요한 회의에 선물하려고 배치한 모태주운송차가 운행중에 보따리바뀜이 된 사례를 무엇으로 봐야 할가? 유럽이나 발전한 지역에서는 상품질을 천분의 일을 담보로 하며 혹시 천개에서 하나의 불량품이 나오면 물건값의 백배로 배상을 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고있다. 그런판에 동방의 관광객들은 자그마한 물건을 살적에도 로파심으로 전전하며 물건을 고르고 또 고르다스스로 망신을 당하는 일이 많다. 몇년전 독일 벤쯔회사를 견학할 때 있었던 일이다. 백여년전 만든 첫벤쯔발동기는 오토바이용이였으나 지금은 승용차, 트럭, 항공발동기. 기선발동기 등 수십, 수백가지 계렬발동기제품으로 파생되여 아예 발동기세계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게다가 해설원의 익살스러운 해설도 참 흥미로왔다. “우리의 벤쯔 발동기는 이미 개발된지가 백여년 력사가 되며 하늘, 땅, 바다에서 일등입니다. 우리는 5분에 고급벤쯔차를 한대씩 생산하는데 베쯔차 한 대면 많은 우질농부산품을 바꾸어 올수 있습니다…” 질담보를 상품생산의 으뜸으로 여기고 오랜 세월을 참답게 살아온 사람들의 든든한 배심이요, 바른 모습이여서 한결 돋보이였지만 그 자랑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어쩐지 속이 찜찜하였던 기억은 10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계속 아픈 여운으로 남아있다. 고국에서 전자제품산업이나 조선산업, 자동차산업을 세계굴지의 산업으로 일떠세우면서 경제강국으로 일떠선 기적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다. 숭어가 뛰면 방어도 뛴다는 세월에 우리라고 브랜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도리가 없고 마음만 먹으면 해낼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대장간에서 로케트나 전자제품을 생산할수 있다는 뜬구름같은 소리는 아니고 자지방의 우세를 보여주는 자그마한 브랜드라도 만들어내는 창조의 경쟁을 벌이자는 속셈이다. 전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이라고 자랑많은 이 도회지 역시 호랑이 담배 피울적 자랑에 도취되여 20년이 거의 되도록 얼음세계만을 브랜드로 자랑하고있다. 이 도시의 의약제품, 맥주, 쏘세지, 흘레브로는 앞서 가는 도시들의 굵직한 돈줄과는 비교가 안되여 초라해보인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산업에서는 남들에게 한참 뒤떨어져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굳잠에 빠져있는것 같다… 하다면 우리 조선족들에게는 또 무엇이 있는가? 장백산, 선경대, 해란강은 자연이 하사한 명물이고 그밖의 입쌀, 진달래, 사과배, 찰떡, 개고기, 김치로는 너무 부족하여 특색있는 계렬상품개발이 시급하다. 시대와의 뒤떨어진 처지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느껴야 할것 같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전국의 천여개 되는 조선족마을마다 합작화, 농장화로 탈바꿈하고 브랜드농부산품개발에 떨쳐나선다면 한두가지 자그마한 브랜드농부상품(민족음식, 더덕, 도라지, 고사리, 인삼, 오미자, 머루 등 농부산품의 계렬가공상품 …)을 만들어내는것은 시간문제일뿐이다. 또한 그런 우세를 돈줄과 탄탄히 엮어놓는것이 바로 치부방식이요 래일의 브랜드공감대에 우리식의 탄탄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것이 될것이다. 돌하나로 두 마리 새를 함께 잡는것이 특기라고 한다면 브랜드제품개발과 홍보전략에서 훌륭한 솜씨를 보여야할 시점으로 온것 같다. 남의 브랜드를 부러워 침을 흘리지 말고 나의 “브랜드련인”과 손목을 꼭 잡을 욕심으로 세상을 한번 크게 활보해보자. 물론 당신이 바로 브랜드라는것을 항상 명심하면서… 《흑룡강신문》2010.11.18
6    [수필] 자화상그리기 댓글:  조회:760  추천:18  2011-02-11
∙수 필∙ 자화상그리기 (할빈)김두필 우주의 삼라만상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생존법칙을 갖고있어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다운것 같다. 대자연은 하나의 만화경인듯 실로 천자만홍 만화방창 오색령롱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속에 특기를 부리며 살아가는 더부살이풀이 드문히 섞이긴 했어도… 하나의 생존공간을 공유하면서 어우러 살아가는 식물들의 조화모습에 반하여 인간동네엔 어쩐지 심술쟁이가 비틀어놓은듯한 불미한 구석이 엿보인다. 싹터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사그라지는 하나의 생장법칙앞에 자연이나 인간은 동등한 자격자로서 자의든 타의든 자화상그리기숙제를 그림자처럼 한생동안 달고다녀야 하는 버거운 의무가 있다. 모든 생령이 성장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생존행위를 로출과 은페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본래부터 주머니속에서 생명을 시작한 인간은 천성적으로 감추기를 즐기는 습성을 갖고있는것 같다. 일종 부끄러움을 잘 타는 일종 본능적표현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필요수단이라 해야 할지 잠시 말치 않더라도 은근 슬쩍 감추는 알량한 재주가 섞여있다. 물론 한물체의 이중적 생존특성이라 하겠지만 감추어서 고귀한것을 보석이라 하면 드러내서 당당한것이 바로 인격일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알기 쉽고도 힘든 일이 역시 사람을 아는 일일것이다. 물론 바른 마음가짐으로 참된 노력을 경주하면서 부를 창조하고 너그러운 포용과 풋풋한 나눔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이들이 많고 그네들이 주축이 되였기에 전에 꿈만같던 세계화시대도 성큼성큼 다가오고있다. 굴러가는 눈덩이같이 크고 훌륭한 군체에 힘입어 우리 동네는 조화와 풍요를 함께 하고있는것도 현실이다. 이국땅에서 떡굽이를 하도 잘해 달인이 되여 버젓하게 텔레비에 소개되는 한 아줌마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난적이 있다. 그 녀인이 이국땅에서 달인으로 인정받고 홍보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가 하고말이다. 힘들인만큼 수확을 얻기마련인 인생농사에는 동네방네의 성실한 달인, 베테랑들이 많이 참여해야만이 풍년을 기약할수 있고 그에 따라 삶의 향기도 그윽해질텐데 아직 미흡한데가 적지 않다. 상기의 훌륭한이들과 조금 다른 양상의 한 평범한 어린 소녀의 생활모습을 읽으면서 대견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찡해났었다. 어머니가 과로로 난치의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그의 딸 8살 소녀는 눈물로 하소연하며 세상을 통탄한것이 아니라 모진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어머니의 병치료에 보탬하려고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선뜻 넝마줏이에 나섰단다. 일상에서 최하층 취급을 받는 일에 학급에서 공부도 착실히 하여 늘 우수학생으로 꼽히는 소녀가 나섰다는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리해하기 힘들겠지만 소녀는 생계를 위하여 체면도 부끄러움도 다 버리고 고생을 달갑게 감내하면서 매일 새벽시간, 방과후시간이면 넝마줏이에 열심하고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학급의 동학들과 교원들은 그에게 따듯한 관심과 배려를 돌렸으며 누구하나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교원과 동학들이 도움을 받을적마다 그는 필기장에 꼭꼭 기입해두면서 장차 크면 은혜를 꼭 갚겠다고 다짐하였다. 삶을 아끼고 감사할줄 알며 보답을 각오하는 소녀의 당돌하면서도 성숙된 자세이다. 그런 오돌찬 모습과 전혀 대조가 안되는 우리 동네의 어설픈 모퉁이를 되돌아보면서 심히 느껴지는 안타까움을 털어버리기 힘들다. 전에는 탱탱 영근 이삭들이 우글우글했던 동네방네에 20여년간 해외돈벌이로, 연해지구 진출의 여파로 엉성해지고 망가져 진정 탱탱 영근 이삭이 얼마나 남아있을가… 어렵고 고달픈 역경을 이겨내는 그런 인내력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절실히 필요되건만… 또 우리 동네에 정직하고 효성스러운 마음의 꽃들이 얼마나 피고있는지? 인생행로에서 바른 삶을 살아간다는것이 그렇게 중요하건만 오히려 정직이요, 도덕이요 하는 품성을 사정없이 짓밟아버리고 탐욕과 부패의 구덩이에 뛰여든 악인들은 잠시 론하지 않더라도 역시 각양각색 모습들이다… 달속의 계수나무가지라도 꺾어볼듯 “웅심”은 굴뚝 같으나 입방정이나 떨면서 권모술수를 일삼다가 개밥에 도토리신세가 된이들, 힘든 경쟁을 외면하고 약은 참새 방앗간을 지나가듯이 스스로 한물 건너간 속이 빈 갈대들… 늘 감사할줄 모르고 공존공생과 등지고 독존독생만 바라는 외고집쟁이들… 게다가 매일매일 세월을 탓하기에만 열심하고 운명적인 노력에 게으른 백수들까지 셈하면 인간만화경에 재미있는 “희극배우”들이 두루 등장한셈일것이다… 비록 저마끔 특성을 가졌지만 삶의 만화경에 새겨진 모습은 초라해보인다. 자신의 총명과 지혜를 단체의 발전이나 자아완성에 경주하여 존경받는 모습을 스스로 가꾸는것이 아니라 그림의 떡이나 멀뚱히 바라면서 심술궂게 왼새끼나 꼬고있는 가련한 모습들이다. 따지고보면 열심히 노력했더라면 진작 인재로 되고도 남았을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고약한 성품때문에 실패의 쪽걸상에 물러앉은 둔재의 사례가 한두건이 아니다… 그래서 풍요롭고 성스러운 대자연의 천지만물에 비기면 인간의 구겨진 삶의 풍경은 어딘가 보잘것없이 초라해보인다. 백여년의 끈질긴 가족적노력으로 미국땅에서 정부 부장요직에 당당히 오른 한 중국인후예가 참 자랑스럽고 또 부지런함과 성실을 잘 반죽시킨 달인 떡구이아줌마 그리고 넝마줏이 8살 소녀의 야무진 소행도 대견스럽다. 그네들의 인생에 비기면 바른 목표없이 물덤벙 술덤벙 살아온 사람들에게 성찰해야 할 곳이 있는것 같다. 알고보면 인간은 자기의 본질과 속성에 의해 자화상을 그리기 마련이지만 바른 마음에 안받침된 노력을 포기한다면 스스로 “쭉정이”나 가라지를 그리고말것이다… 얌전한 며느리 시아버지 밥상에 마주 앉는다, 새침데기 골로 빠진다는 말은 우리에게 노력을 아끼며 어부지리를 탐내는 소인들을 미연에 경계하라는 충고이다. 달인 떡구이 아줌마나 넝마줏이 소녀의 성실한 소행은 비록 서로 차원이 다르지만 물에 물탄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개울의 미꾸라지처럼 비틀린 심성으로 동네의 기풍를 흐리우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인생채근이 될것이다. 돌풍정치와 왕가난이 낮도깨비보다 더 무서웠던 세월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인생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가난속에서 노력으로 둥글었던 어제가 풍요롭고 자랑스러웠다고 할수 있겠으나 사욕의 터전에 뿌리 내린 욕심과 질투는 문명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고질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옥돌도 닦아야 빛이 나듯이 사람도 수시로 가당치도 않은 욕심을 버리고 샤외를 하듯이 머리속의 “오물”들을 자주 씻어버려야 참된 인생과 끈끈한 인연을 맺을수 있다. 성실한 마음을 화지로, 창의적인 노력을 색채로 삼아 그리는 자화상에는 성공의 꽃무지개가 피여날것이다. 2010년 11월
5    [추모수필] 저 하늘의 별을 보면서 댓글:  조회:611  추천:17  2011-02-11
․ 수 필․ 저 하늘의 별을 보면서 (할빈) 김두필 오늘도 나는 저 하늘의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친구를 보낸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린다. 혹독한 동장군추위을 이기지 못해서 서둘러 갔는지 새해를 앞두고 너무도 일찍 떠나간 친구가 이시각 무척이나 그립다. 매번 가까운 친지나 친구들을 보내고나면 한시기 슬픔에 잠겨 저도모르게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명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그 별무리속에서 친지나 친구들을 지꾿게 찾아내려는듯이 고개를 들어 별무리들을 한없이 바라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달래여본다. (어느 별이 내 친구별일가? 오늘밤 저하늘에서 제일 반짝이는 별이 꼭 내 친구의 별일거야…) 마음으로 찾아야만 찾을수 있는 내 친구별, 그 별을 찾지 않고서는 도저히 친구한테 미안함을 스스로 용서할수가 없는 심정이다. 남들처럼 감정이 풍부해서 추도식에서 눈물이라도 펑펑 쏟았었더라도 미안함이 적었으련만 속으로 흘린 나의 눈물로는 도저히 변명거리가 못된다. 추도식날 친구를 보내면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바가 있었다 추모행렬 맨앞줄에 선 대학의 총장님은 사랑하는 제자를 보내는 일이 몹시 가슴아파 여러번 눈물을 닦는것이였다. 사제간의 정이 얼마나 애틋했으면 장춘으로 회의하러 가는 일도 하루 미루고 추도식에 친히 참석했을가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서 그 두터운 우정이 은근히 부러웠다. 총장님이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를 했다며 나의 손을 잡아주는 순간, 우리는 좋은 친구를 보내는 애닯은 마음을 손힘에 담아 오래동안 잡고잡았다. 나이가 너무 아깝다고, 글재주가 너무 아깝다고, 좋은 글을 많이 쓸수 있는 사람인데, 할 일이 태산같은데 뭐가 급해서 빨리빨리 가느냐고…2백여명을 헤아리는 조객들의 한결같은 말이요, 다함없는 추모의 마음들이였다. 눈물이 많고 애석함이 짙은 배웅길이였다. 그는 열심히 뛰는 친구이자 부지런히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그는 성인잡지를 꾸리고 나는 아동잡지를 꾸리면서 서로 면목을 익히고 가끔 만나게 되였는데 사귀다보니 그는 화룡 서성에서 북대촌, 나는 명암촌으로 이웃하여 살았다는 인연으로 고향친구로 무랍없이 지내게 됐고 나이를 몇살 더 먹었다고 내가 “형님”대접을 받았으나 문학에서는 그는 진작부터 나의 스승이였고 배울바가 많았다. 늘 새물새물 웃는 모습이요 부접성이 좋아 인상이 깊었다. 남들처럼 화끈하지는 않았어도 우리는 늘 마음속에 서로를 소중히 담고있는 친근한 사이였다. “사회와 조선족에 도움이 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자…” 너무나 수수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그의 삶의 신조라 하겠다. 그의 불같은 열성에 감동되여 1999년 그가 《서울신문》의 김기자와 같이 목단강으로 찾아왔을 때 휴식일을 리용해서 동녕과 수분하를 하루동안 동행했던 일이 있었으나 가목사까지 같이 가자는 청을 직장일에 발목을 잡힌 나로서는 받아들일수 없어 난감했었다. 하는수없이 미리 다른 친구한테 안내를 부탁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취재길을 바래주었을뿐이다. 아무튼 우리 사이는 믿음이 조용히 흐르는 끈끈한 인연이였다고 할수 있다. 그뒤로 2002년 “제3회 중국조선족출판문화특별상” 을 수상할 때 그와 나란히 서서 상을 타면서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아름다운 추억이 오늘도 생생하다… 그는 뛰여난 의지력으로 수천리 현지답사를 다니였고 자기 삶의 궤적에 노력을 자욱자욱 깔아준 부지런한 사람이였기에 수필집《서울바람》, 소설집《황야에 묻힌 사랑》, 장편기행《혈연의 강들》, 그리고 《심여추평전》, 《류자명평전》, 《최채평전》등 많은 작품들을 남길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빛나는 발자취와 우리 민족 영령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그의 훌륭한 작품들은 우리 조선족문화사의 금자탑을 쌓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수십년간 발로 뛰는 조사와 연구를 해서 하나의 문화탑을 쌓은 그의 패기와 정열,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서 근본을 잊지 않고 불의와 비정에는 칼날같이 맞서는 배짱이 돋보인다. 어느 한번 위협이나 공갈에 가까운 그 힘든 고통을 혼자 감내할만 한가고 전화로 격려를 했더니 껄껄 웃으면서 힘들긴해도 꼭 이겨낼수 있다고 신심에 찬 목소리를 보내준 사나이였다. 스승을 존경하고 제자를 사랑하고 약한 자를 껴안은 그의 따듯한 인간성과 헌신성… 병근원이 뭔지를 알바 없으나 몹시 힘들었고 지쳤던것 같았다. 우리에게 훌륭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돋보이는 분투정신을 남긴 사람, 사랑하는 친구 류연산씨. 친구를 그리면서 오늘도 조용히 울고 운다. 친구가 남긴 금쪽같은 업적은 계속 빛나겠지만 남겨둔 그 자리를 누가 대신할가 싶어 몹시 애달프다. 친구가 보고싶을적마다 저 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을테니 제발 주소나 알려달라구… 사랑해, 보고파, 나의 훌륭한 친구여! 당당한 중국조선족문학의 빛나는 샛별이 되기에 손색없는 친구의 명복을 고이 빈다. 2011년 2월
4    [수필] 푸른 마음 댓글:  조회:939  추천:24  2009-01-26
푸른 마음김두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부 주필사람은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요즈음 내가 그렇게 되고있지 않나 싶다. 꽃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였던 내가 꽃기르에 흥미를 가지고 남들이 기르기 까다롭다는 꽃도 일부 기르고있으니말이다. 하긴 오염된 공간에서 하나의 자그마한 푸른 공간을 만들어보려는 욕심에서 베란다를 \'자류지\' 로 삼아 남들한테 귀동냥해 들은 상식대로 물도 주고 가끔 비료도 주고 약도 뿌리고 벌레도 잡고하면서… 몇년전 직장동료한테서 무궁화 묘목 두가지를 구해 키우봤는데  노란벌레가 어찌나 구질구질 접어드는지 귀찮아서 아예 밖에 내놓았더니 비바람속에서 밉상스러운 벌레들이 몽땅 너부러지고 여린 잎새가 하나둘 튼실히 자라나서 이젠 제법 나무모양을 갖추고 3년째부터  고운 연분홍꽃을 선물하는것이였다. 말그대로 자연은 만병을 다스리는 명의였다. 하도 대견해서 꽃이 필적마다 명심해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방학에 귀가는 자식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늦깍이로 느껴보는 꽃기르기감수이지만 가끔 헤식은 사람처럼 꽃나무와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명상에 잠기는 기분도 감미롭다. 아마 심심산골에 홀로 살아온 사람들이 고독을 이겨내는 비결이 자연을 친구로 사귀면서 푸름을 가꾸고 푸름을 먹으면서 스스로의 쾌락을 만드는데 있지 않을가 싶다. 결국 나의 꽃, 나의 꽃나무, 나의 베란다공간이니까 온갖 정성을 다 퍼부으며 아끼고 가꾸었다는 말로 된다. 하다면 내가 길거리의 나무나 꽃에 얼마나 정성을 주었던가 한번 스스로에 물었더니 대답이 안나온다. 그저 해치지 않았다는 말외에 대답거리가 없다. 늦게나마 “베란다식물원”을 보면서 반성해보는 마음이다.  어릴적에 상급반 형님, 누나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패말이 길거리나 학교주변의 나무에 걸려있는것을 보면서 모름지기 부러워했다. 그 시절 그것이 상급생대접을 받는 일종 표징으로 되였으니까. 나도 크면 저렇게 이름패말이 나무에 걸린 떳떳한 나무가 한그루 있겠지 하고말이다. 지금도 그런 순박하고 자연미 돈독한 풍경을 재현시킨다면 나무를 해마다 옮기고 해마다 훼손시키는 문명치못한 일이 훨씬 적어질것이고 어릴적부터 푸른마음을 키우며 배려하는 좋은 마당이 우리 신변에 아름다운 화단처럼 자리잡게 될것이다. 귀마저 짜증을 내는 다분한 설교보다 푸른마음을 키우는 모습을 손으로, 발로 가르쳐주는것이 보다 근사할것이다. 애어린 나무들이, 꽃들이, 풀들이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인간들과 어깨 나란히 자랄 때 푸른꿈과 더불어 자연에 감사하는 성품이 차분히 뿌리를 내릴수 있으리라고. 자연에 푸른옷을 돌려주는 시급한 일을 두고 세상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떠들고있지만 그 엄청난 투자를 두고 해결책이 묘연하여 마치 가난한 중이 맥빠진 념불을 하는것처럼 가련해보일뿐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생존을 위하는 일, 바로 민둥산에, 사막에 푸른 옷을 돌려주는 성스러운 일마저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지 않은가 웨치는 사람은 많아도 실천에 나서는 사람은 쌀에 뉘이다. 일전에 공직을 버리고 고비사막에 가서 10년간 나무를 심으면서 부자꿈을 이룬 한 사나이의 사적을 읽고서 감회가 너무 깊어졌다. 나라에서는 괜히 호소만 하지말고 그런 사람들에게 큰상을 주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사람들을 벌을 준다면 우리의 환경은 훨씬 개변될터인데…  자연에 철따라 옷을 갖춰주지 못하더라도 큰맘 먹고 푸른옷 한벌이라도 선물해야 자연의 노여움을 어지간히 풀어줄수 있을텐데말이다. 그래서 한낱 천진한 마음으로 때로 천방야담같은 허황한 생각에 잠겨 몽유세계에서 헤매일 때도 있다. 사막에 인공강우방법으로라도 며칠간 비를 퍼붓고 그 비방울마다에 나무씨며 풀씨며를 달아 사막에 내려보내면 사막록화가 빨리 수 있을것이고…발달한 나라들처럼 해마다 비행기로 풀씨나 나무씨를 사막에 끈질기게 심을수 있었다면 지금쯤은… 유정한 사람들은 무정한 세월에 젊음을 앗기우는것이 안타까와 가끔 절절함을 노래로 호소하군한다.“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돌려다오.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라고. 젊음을 지키려는 고집, 잃은 젊음에 대한 끈질긴 집착… 하지만 유정한 우리가 언제 한번 만신창이 된 자연의 아픔에 관심과 보상을 준적이 있었던가. 잃은 푸름을 두고 안타까와 하는 사람들, 오늘도 푸름을 꺼리낌없이 해치는 왕고집들… 나무들은 대체로 계절따라 옷을 갈아입지만 단벌신사로 지내는 불쌍한 고집통나무도 더러 있다. 그중 소나무는 평생 단벌신사로 살아가는 고집쟁이이다. 비록 계절따라 옷을 갈아입는 멋쟁이들에게  수없이 무시와 조롱을 당하면서도 자신심과 노력으로 그 몸값을 비길수없는 짱으로 다듬고있다. 그런 소나무가족중의 홍송, 백송값이 얼마이고 잡나무값이 얼마인데… 어릴적부터 푸른마음을 키워주는것이 바로 장차 푸른세계를 불러오는 백년대계라고  생각하면서 너도나도 힘을 모은다면 푸른 소망을 이룰 그날이 멀지 않을것으로 기대해본다.
3    [수필]약속 (김두필) 댓글:  조회:865  추천:58  2008-07-08
약속김두필“내 아들 잘 키워 출세시켜줄게…” “내 딸 잘 키워 행복하게 해줄게…” 어릴적에 누구나 부모에게서 자장가처럼 들어오던 말이요 태여나서 처음으로 되는 진지한 사랑약속이였다.  약속이란 정으로 나누는 마음이여서 누구나 세상에 태여나서부터 알게 모르게 약속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마음으로 나누고 정으로 통하는 약속인만큼 허락과 지킴을 만들고 삶의 보람으로 된다. 고슴도치마저 제 새끼는 함치르르하다고 이쁘게 봐주는 판에 장차 실현되든말든 너그러이 행복한 약속을 무더기로 안기는것도 일종 미덕이라 할수 있겠다.  외상이면 소도 깜장소를 잡아먹는다는 세월에 까짓 돈이 안 드는 약속이야 마음대로 푹푹 퍼주면서 인심을 베풀판이지. 부자간에, 모자간에, 형제간에, 친척간에, 친구간에, 련인간에 마치 포도송이에 포도알 달리듯 약속이 주렁주렁…  약속은 성실한 믿음이다. 일부 선진국의 경찰들은 출근할 때 휴대폰을 두개씩 갖고 다니는데 하나는 공가전용이요, 하나는 개인전용이란다. 그들은 공과 사를 가려 휴대폰을 사용할뿐아니라 법규앞에서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수수료나 뢰물을 거절하며 자기 직업에만 “멍청이”처럼 충성한단다. 맡은바 직업에 충성하여 로임도 오르고 승진하면서 깨끗이 일하다가 퇴직해서 년로보장으로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것이 자기 삶에 대한 성스러운 약속으로 되고있다. 참으로 량심적인 약속,  삶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에서 비롯된 도덕성이 체인화된 멋진 모습이다.   약속에서 믿음성이 없으면 허풍으로 남는다. 약속에 신의가 있어야 하는만큼 지나치게 욕심을 따지면 눈이 흐려져 공과 사를 구분 못하게 된다. 백성들을 위해 여차여차하게 잘하겠다고 골백번 약속하던 관리들중 약속을 깬 “인물”이 적지 않다. 승진뒤 약속에는 뒤전이요 오히려 부정축재에 눈이 흐려 “마당손”이 되였으니 해마다 몇백, 몇천명씩… 결국 돌을 들어 제 발등을 까는 추태를 면치 못하고있다. 약속은 어려운 실천이다. 약속실천을 가늠하는 자대를 인류나 자연이 아닌 제3자가 잡고 공정한 재판을 해야겠는데 오히려 가해자인 인류가 그 권리를 갖고있으니 자기의 죄를 승인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추고 변명하고 생억지를 부리는 연기를 거듭하고있다.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오랜 세월 자연의 덕에 살아왔건만 왜서 매일매일 자연을 괴롭혀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까운 살덩이 같은 지구우에 벌집처럼 구멍을 숭숭 내고 광물을 캐는가 하면 원시삼림부터 애숭이삼림까지 몰잡이로 람벌해 산마다 벌거숭이로 만들고 바다에 오수를 콸콸 흘려보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게 한다. 자연에서 수박만큼 가져오고 콩알만큼 돌려줬을가 말가인데 그냥 아닌 보살이다…  그중 사막화가 제일 큰 재난인것 같다. 로씨야대륙, 북아메리카대륙, 우리 나라 서북지역을 공중에서 잠간씩 부감해본적이 있는데 그중 사막화가 심한것이 우리 나라 서북지역이였는데 망망한 고비사막에 아예 풀이나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씨야대륙과 북아메리카대륙에는 풀과 나무가 괜찮게 자라고있어 황사가 야료를 부리지 못했다. 귀로 듣던바가 현실로 눈에 여실히 안겨올 때 스스로 얼굴이 붉어짐을 어쩔수 없었다. 왜 남들은 사막에 풀과 나무를 심어 키울수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고 황사발원지란 불미스러운 딱지를 해마다 달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일년 365일, 매일 나무를 심어도 부족할판에 가랑잎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듯 식수일은 고작 하루를 정했을뿐. 어물어물 넘겨야 할 “약속고개”가 아니건만 사람들은 왜 오리발을 내밀기에 급급하실가.  약속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약속이든 남과의 약속이든 잘 지키려고 애쓴다고 할수 있으나 자연을 잘 보호하겠다는 약속만은 헌신짝 버리듯 무시하고있다. 지난 겨울 기상천외로 열대지방에 폭설이 내려 숱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빚어냈다. 하늘도 “로망”이 들었는지 응당 눈을 펑펑 내려줘야 할 북온대나 한대 지방에는 눈구경조차 안 시켰다. 인조눈으로 스키길을 만들고 눈보루를 만드는 해프닝한 일이 비일비재이다. 하늘의 “로망”을 두고 원성이 자자하지만 그 장본인이 누구인가 한번 생각해보셨는지…       잘살려면 자연히 산업화로 가야겠지만 아무 대책 없이 하늘로 매연을 줄기차게 뿜어대서야 되는가 어디 한번 생각해보셨는지… 오만하고 몰상식한 인간이 자연을 구질구질 노엽히고있다… 북극의 얼음면적이 해마다 줄어들고 남극의 빙설이 매일매일 무너져내리고있으며 요즈음 서울크기만한 얼음덩이가 무너져내려 세계를 놀래우고있다. 뉴욕의 유엔청사앞에 위치한 이딸리아조각가의 작품 “병든 지구”조각상은 환경파괴가 얼마나 우심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병든 지구를 살리려고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있지만 “재난”은 마치 빚더미처럼 해마다 높아가고 해괴한 현상이 판을 친다. 사막화, 황사바람, 엘리노, 태풍, 해일…  그러고보면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나까지 자연과 공존하겠다던 약속을 어느 누구도 지키지 않은 빚쟁인 셈이다. 우리 삶의 원천인 자연앞에서 성실하고 신의를 지키면서 사랑을 베풀었다면 부드러운 자연은 성난 사자로 둔갑하지 않았을것이다. 일상에서 하늘의 별을 따온다는것은 망녕이겠지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것은 변명할나위조차 없는 무책임이요 게으름이다. 내 집이 연기에 그을릴 때, 내 우물에 오물이 흘러들 때, 내 울안의 나무가 도적놈에게 무참히 베여질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였을가… 결국 손톱눈이 아픈것은 알아도 염통이 곪는걸 모른다고 해야 할지, 은혜를 원쑤로 갚았다고 해야 할지? 자연이 린색하고 야박한 인간들에게 내린 벌이야말로 인과보응일것이다… 이제라도 량심적인 약속을 지키면서 자연을 자식처럼 배려한다면 차례지는 징계수위가 봄날처럼 될수 있지 않을가 기대해본다.                                                        2008년 3월 <<연변문학>> 2008년 6월호
2    "개구리"의 꿈 (김두필) 댓글:  조회:1019  추천:55  2008-01-05
<<개구리>>의 꿈김두필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부사장우리는 흔히 고루한 생활에만 얽매여 세상을 모르고 사는 사람을 우물안의 개구리에 비한다. 짐승을 살 찌우려면 시골로 몰아가고 자식을 출세시키려면 벌방으로 보내라는 조상들의 깊은 마음은 《우물안의 개구리》를 만들고싶지 않았던 궁냥에서 비롯되였을것이다. 벌방의 벼농사에 못지 않게 서당꾸리기에, 학교짓기에 정열을 쏟아부은 선인들의 노력이 우리 민족을 오늘까지 이 넓은 땅에서 떳떳한 위치를 확보할수 있는 주추돌이 되여준것이다. 끈질긴 생활의 욕구와 분투, 불타는 교육애와 노력이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뿌리가 된것만은 틀림없었다. 꽁꽁 닫겼던 나라대문이 열리자 조선족가운데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설픈대로 나름대로 장사거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해외진출의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지금 조선족은 어제날 고루한 집단농사의식에만 발목을 잡혀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던 숙맥이 아닌 경제머리가 튼,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였다. 북경, 청도 등에 큰 거주군체가 형성되면서 본래의 거주판도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였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한페지라 할수 있겠다.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민족이라는 미칭이 술 잘 마시고 춤과 노래에 능하다는 거품 같은 영예보다 월등 값지니까. 개구리이야기를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어릴적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소학교 4학년때 한 심심산골에 살았던 나는 매일 10리 길을 왕복통학하면서 저녁마다 등잔불밑에서 코수염을 그리며 숙제를 하였다. 당시 마을복판을 가로지나간 소철로 밤낮없이 목재를 실어나르는 기차가 오갔다. 그런 귀찮은 와중에 우리의 간절한 소망은 언제면 저 철길로 렬차가 통해 걸음을 덜어볼수 있을가 하는 무지개 같은 꿈이였다. 그 꿈의 실현을 학수고대하다가 뒤미처 현성곁으로 이사를 가게 되였다. 올챙이가 우물을 요행 벗어났다싶었는데 느닷없이 들이닥친 《정치세례》때문에 결국 초중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열일곱살에 농촌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였다. 게다가 아버지와 작은 형이 황충떼처럼 날아다니는 《정치감투》의 과녁이 되여 모진 고생을 치르고있으니 갈수록 심산이였다. 자그마한 반항이나 불만도 허용이 안되고 그저 《돌사람》이 되여 죽은듯이 살아야 했다. 하기에 내 뒤통수에 무형의 딱지가 붙어다녔으나 나는 그래도 여린 해빛을 갈구했다. 다리에 자개바람 일도록 열심히 뛰여도 별로 인정받지 못하였고 그저 정신 나간 놈 굽빠진 항아리에 물붓기처럼 헛수고만 거듭했다. 참군이요 학교추천이요 좋은 기회는 엄연히 딴 사람 몫이요 나에게는 모든것이 장벽처럼 꽉 막혀버렸다. 또다시 보따리를 싸야 했고 그뒤로 마음씨 후더운 선배님들의 관심으로 공부길이 빠끔히 열렸다고 할가. 우물은 올챙이나 개구리한테 있어서 부자는 못돼도 배곯지 않고 살아갈수 있는 생존공간인것만은 의심할바 없다. 한때 조상들의 피땀으로 개척되고 걸구어진 땅, 또 그들의 뼈가 묻힌 삶의 터전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꽤 높였던것 같다.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자는건 천만지당한 일이지만 누가 지키고 몇이 지키는가가 제기된다. 몇사람이면 넉넉히 지킬수 있는 땅을 몇십명이 오글오글 모여들어 지킨다면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한테 꿈의 기지개를 마음껏 펼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는데 왜 우물에만 집착해야 하겠는가. 혹시 돌처럼 굳어진 사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1500만 인구가 붐비는 수도권에 고추장, 된장에 절은 사람이 10여만 모여 살고있다는게 참 놀라운 일이다. 기업, 봉사업체만해도 2, 3천개소나 된다고 하니 역시 놀라운 기적이 아닐수 없다.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새로운 문화권, 경제권을 형성한 셈이다. 훌쩍 우물을 벗어난 사람들이니까. 그들에게는 넓은 늪과 바다가 삶의 공간으로 시원히 펼쳐졌다. 마음껏 활개치며 자맥질할수 있는 최대의 공간이다. 메돼지 잡으러 갔다가 집돼지 놓칠가봐 걱정하는 식의 울타리사유를 벗어난 용감한 개척자들이 마련한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내가 잠시 거처를 잡고있는 북경의 한 모퉁이에 조선족부부가 임대경영하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흙토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이지만 머리회전이 빨라 10년전에 수도권진출에 나섰고 지금은 아빠트 사고 승용차까지 굴리며 살아가고있었다. 《부자팀》에 가담한 돈을 벌줄 아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그 집 세대주가 이웃나라 장사를 좀 해보겠다고 열변을 토하기에 담 큰 사람이구나 하고 은근히 믿고 연줄을 달아줬더니 한번 갔다가 파트너를 못만나고 오더니 웬걸 시야비야하며 가재걸음을 치는것이였다. 아차, 내가 사람을 잘못봤구나 하는 후회가 들면서 불현듯 한 소설가가 쓴 《수도권의 촌놈들》이 떠오르는것이였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를 잡을줄 모르는 사람이다.) 우물을 벗어날 용기는 있었지만 밥이나 먹고 살만하니 더 넓은 늪으로, 강으로 나갈 담량은 갖추지 못했었다. 이런 사람들을 가끔 보면서 내 마음은 심란해진다. 우물이 작아서 개구리가 크지 못하는가 했더니 아름차게 큰 늪에서도 크지 못하는 개구리도 있구나 하는 애석한 느낌이 드는걸 무마시킬수 없었다. 절강성 항주출신의 종경후는 18년전에 장사길에 나선 다음 한사람과 손잡고 10만원을 투자하여 식료품공장을 차려 4전짜리 얼음과자로 시장문을 노크했다. 지금은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꼽히는 식품음료생산기업으로 부상했다. 현재 생수, 탄산음료, 의약보건품 등 제품을 생산하고있으며 60억원(인민페)의 자산을 보유했고 국내에서 소비되는 음료 6.25병속에 한병은 그의 회사에서 생산한 음료이다. 회사원이 저그만치 2만여명, 이것이 와하하그룹의 발전축도이다. 그러고보면 확실히 돈을 만들줄 아는 사람이다. 돈을 버는것도 남다른 재간이겠지만  돈을 만드는것은 더구나 재간중의 재간이라는 소리가 《상도》에서 명언처럼 통하는 말이다. 돈을 벌었는가 만들었는가 하는것은 수학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일이니 어떻게 해야 벌고 어떻게 해야 만드는지 각자 나름대로 리해해야 할 일이다. 올챙이가 우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리유,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가 늪에서 더 크지 못하는 리유, 개구리가 됐어도 올챙이적 사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유… 아마 포도송이의 포도알처럼 그럴듯한 리유가 많을테지만 여하튼 스스로 커간다면 그 리유를 따질바가 못된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데 괜히 남의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면 부질없는 참견일수도 있으리라. 누구든 관계없이 우물을 벗어나려는 욕망만은 개구리의 보귀한 꿈이라 할수 있다. 우물안의 개구리든 우물밖의 개구리든 경우에 따라 다 꿈이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하면 그 꿈을 접지 않고 재간껏 꽃피우는가 하는데 성공의 비결이 안받침되여있지 않을가싶다. 고향의 강이나 늪에만 꿈이 있는것이 아니니까 생각을 반추해보는것도 색다른 의미가 있을것 같다. 곤명호, 서호, 동정호에도… 진정 꿈이 있다면 개구리가 올챙이로 뒤걸음치지 말았으면 하고 《싱거운 부탁》 한마디 남기고싶다.                                  2005년 4월  편자주: 본문은 연변문학 2006년 제1호에 발표되였습니다.
1    사랑변주곡 (김두필) 댓글:  조회:871  추천:76  2007-11-25
사랑변주곡                              김두필 (E―mail:dub_kim@hanmail.net )이 세상에 귀맛 좋은 음악이 많고 많은데 꼭 기억해두어야 할 곡 하나가 바로 주선률에 리듬이나 화음 같은 필요보충을 해주는 변주곡이라 하겠다. 사랑변주곡을 들먹이자니 한물 지난 스토리 같아 이상하게 들릴수 있겠지만 일상에서 종종 부딪치는 일이라 그림자처럼 피할수 없다. 성미 거칠고 데면데면한 남성들은 생활에서 주선률을 잘 타지 못해 가끔 녀인들에게 당하기 마련이지만 모양이 개잘량 같게 되더라도 한번쯤 통쾌히 받아들이며 반추해보는것이 좋을상싶다. 자식은 내 자식이 커보이고 벼는 남의 벼가 커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 자식이 의젓해보이는것은 세상리치이나 적당히 삼가해야 자식을 소망대로 잘 키울수 있다는것이 일상도리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자식자랑은 반미친 놈이라고 엄하게 채근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1970년대 초반 한집에 남편은 제대군인, 안해는 고중학력의 교원. 그 시기 마을에서 첫손에 꼽히는 문화집안이요, 게다가 운이 좋게 아들딸 하나씩 두어 복을 쌍으로 안고 사는 행복한 가정이였다. 한때 대학입시를 소망했다가 미역국을 먹은 그녀는 자기가 접은 대학꿈을 자식에게 영낙없이 넘겨주리라 동네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녀는 글을 조금 익혔다고 뜬구름 잡은 기분이여서 동네가 들썽하게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아무리 지켜보아도 《천재》나 《신동》은 아니고 성품이 바르고 자기 공부나 하는 보통애였을뿐이다. 하기야 될성부른 나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조용히 지켜봐주든지 마음을 비우고 착실히 김을 매고 북을 돋구어주었더라면 소망을 보이는 홍송 버금의 백송으로 잘 자랄수도 있었겠는데 말이다.  조선조시대 이름난 서예가 한석봉의 어머니는 저녁에 호롱불을 끄고 아들은 글을 쓰고 자신은 떡을 베는 시합을 하여 아들의 교만성을 바로잡아주었다는 미담이 있다. 자식을 매정할 정도로 엄하게 키우는 한석봉 어머니의 마음인들 오죽했겠냐만 칭찬이 아닌 채근으로 끝내 아들을 큰 인물로 키워냈다.  자식교양에는 울며 씨 뿌린 자 웃으며 수확한다는 말이 통하고 자식의  마음가짐, 성격양성, 의지력키우기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런데 왜 해야 할 일은 외면하고 구질구질 자랑방정에만 황홀해버렸을가. 내 자식자랑은 남이 해주어야 한다는 도리를 모르셨던가봐.  사탕이 달다고 많이 먹으면 이발을 해칠수 있듯이 나중에 그 아들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굴레벗은 망아지가 되여 하라는 공부는 뒤전이고 련애에 푹 빠져 좋은 기회를 놓치고말았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는 없지만 자식한테 옳바른 《스승》이 되여야 하는 의무만은 버릴수 없다. 차라리 꾸지람, 잔소리를 착실히 반죽했더라면 그 아들의 인생그라프는 꿈없는 물거품이 되지 않았을수도 있었을것이다. 아마도 불미스러운 자업자득을 선택한것 같다. 자신은 물론, 자식마저도 공부농사에 실패했으니 얼마쯤이라도 후회할줄 알았는데 자아성찰을 모르고 멋대로 허영심에 들떠있으니 한심한 《그 모양 그대로》이다.  옛말에 안해가 고우면 처가집 말뚝에 절을 한다는 말은 있으나 남편이 고우면 시집 말뚝에 절을 한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 현실에 너무나 유머적인 이야기가 있다. 공연히 남을 허비면서 자기 남편을 천하의 《장수》로, 《모사》로 보았든지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자랑을 늘여놓으며 주위사람들을 몰잡아 무시하는 한 녀성이 있었다. 본래 무심했던 곁사람들이 유심히 살펴보니 그 녀성의 자랑과 실물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런가 하면  남편이 깨알벼슬이라도 하나 하면 대뜸 《부직》이 되거나 《인사과장》이 되여 감놔라 배놔라 하며 제법 능란한 솜씨를 보이는 녀인도 있다. 차라리 남편의 부족점을 가끔 꼬집어주는 안해로, 남편의 자제력, 포용력, 친화력을 키워주는 내조로 나섰더라면 멋진 남편을 가꿨을수도 있었을것이다. 대체로 훌륭한 《안해》를 참모로 둔 남편은 성공할수 있다는 말은 바람처럼 흘려버릴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권주의》가 구름밖으로 날아간 오늘 녀인들의 사회적지위, 특히 경제적지위가 날따라 높아가고 가정마다 민주적이고 조화로운 모습, 서로 돕고 이끌어주는 분위기를 구축하고있다. 그렇다고 위대한 모성애를 자랑소나기로 퍼붓거나 허영풍선으로 띄운다면 자식을《마마보이》로 만들거나 모래성 쌓기가 십상이다. 가득이나 남성교원의 결핍으로 녀성화된 자식을 어미닭이 병아리를 보살피듯 사사건건 싸고 돌면 어디에서 남성다운 오기나 배짱이 자라겠는가. 이제나 저제나 귀한 자식 매로 키우라는 선인들의 덕담이 사실 회초리보다 더 무섭다. 음악에서 변주곡을 조화롭게 연주해야 하듯이 남편에게 예술적으로 바가지를 긁어주었으면 한다. 심하게 긁으면 가정이나 인간사이에 금이 실리겠지만 적중하면 조화제나 힘이 될수도 있다. 《여보, 당신은 할 일이 많은데 허구한 날 마작판에만 매달리면 어떡해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것이 건강이라는데 당신처럼 술을 물마시듯해서 그 신체가 견디겠어요.》 《독불장군이라고 괜히 남들과 성깔을 작작 부리고 잘 지내세요.》  하긴 녀인들한테 물매를 맞을 소리를 왈가왈부했다만 그녀들의 지나친 사랑과 허영속에 수많은 자식들과 남편들이 무능해지고있는것은 무시할수 없는 현실이다. 지나친 사랑은 《무능》이나 《실패》를 초래할수밖에. 한계가 있는 모든 일처리에서 자랑수위를 적당히 낮춰보시라. 그러면 자식교양의 스승,  훌륭한 남편을 키우는 《참모》라는 특허를 누릴수 있다. 좀 귀찮더라도 그 말을 새벽종소리처럼 명심하면서 어디 한번 사랑변주곡을 조화롭게 울려 《출세올림픽》을 한번 시도해보는것도 바람직하다.                                                       2007년 4월                                                                                 <<연변문학>>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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