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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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꿈은 깨고 나니 또 ‘꿈’
2019년 07월 15일 09시 35분  조회:22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꿈은 깨고 나니 또 ‘꿈’

김두필

 

 

시간이 야금야금 흘러가면서 어언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때만 해도 하늘의 ‘꿈’이라도 캘 것만 같았는데 어느 하루 아침에 문뜩 명랑한 ‘꿈’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악몽’이 나한테 덮쳐왔고 그 어마어마한 여파에 숨도 바로 쉬지 못했다. 눈앞이 캄캄해나고 모든 욕구와 욕망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밤에 잠을 자려 해도 헛거미가 찾아들고 자고 나면 땀에 온몸이 흥건해지고 말을 하려 해도 목이 꺽 메여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졌다. 말을 하려 해도 생각은 뻔한데 말문은 그냥 ‘천근’짜리 열쇄를 잠그었는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어리석고 소 갈 데 말 갈 데를 모르는 자신이 택한 일이 안타깝고 공연스레 남들의 말밥에 오른 자신을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워낙에 일욕심이 많아 비록 정년퇴직은 했으나 직장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딱한 사정을 털어놓자 차마 거역할 수 없었고 착잡한 마음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 나섰다. 어려운 임무를 맡고 부랴부랴 두루 준비를 찾아간 곳이 바로 연길이고 전에 자주 다니던 익숙한 곳이였다. 중국 조선족출판 력사에서 한페지를 기록할 만한  《본초강목》을 번역하는 일을 돌보는 일이여서 너무나 보람 있고 해볼 만한 일이였다. 

어림짐작으로 6백여만자에 달하는 거창한 번역작업인지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전자에 《본초강목》을 선재계획으로 제기하고 나중에 여러모로 힘쓰고 노력한 결과 나라의 자금지원까지 받는 항목으로 지정되여 한창 추진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심장병으로 타계했다…

전공이 번역이지만 이 일을 완성하는데 자신의 실력이 턱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가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분들의 적극성을 동원하고 지혜를 모은다면 일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았고 꼭 해낼 것 같은 자신이 생겨났다. 물론 도움을 청한 분들은 조선족출판에서는 손꼽히는 사람들과 의학도서 번역에 소문이 쟁쟁한 사람들이였다.

이 분들을 믿고 한 2년간 잘해보자…

팀원 중에는 출판사의 전임 사장도 있었는데 우선 그 분부터 먼저 찾았고 나중에 한사람 한사람씩 찾아보았다. 지금 시급히 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고 일이 얼마나 추진되였는가를 알아보려고 모임을 마련하였다. 모임에서 여러분이 자기 견해를 말하고 나 역시 수준이 미약하지만 같이 고생하겠다는 속심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그 때로부터 한국과 국내 관련 단위에 련락하여 의학자료들을 수집하였다. 대학교 때 배운 지식을 토대로 하여 한발자국씩 생떼기가 헤염을 치는 판이였다. 한문 고대판본 《본초강목》을 기본으로 하고 현대판본 《본초강목》과 해외의 번역본 《본초강목》을 참조하여 역문을 다듬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극상해야 2천자 정도 밖에 번역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참답고 튼실했다. 매일 4∼5시간씩 번역하고 나면 온몸이 지쳐서 해나른해나고 다만 침상에 눕고만 싶어진다. 년말까지 초보적으로 끝내자는 요구와는 한참 멀었다. 내가 연길로 떠난 것은 2012년 6월 17일이니 아예 집사람까지 데리고 와서 생활적인 면을 보살펴줘야 걱정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 대로 나는 《본초강목》을 20만자 번역하고 그걸 판본으로 일을 내 나름 대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리고 먼길을 떠나 일하는 사람한테 또 몇몇 싱겁둥이들이 이러쿵 저러쿵 험담을 하고 있다. “아무개는 연길에 가서 편안히 먹고 잘 놀고 있어… 그런 줄 알았으면 내가 가겠는걸…”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다. 또 곁에 당사자가 없으니 입 나가는 대로 지어내는 판이요.

몇해 전에 조선족장군이 한분 계시였는데 무슨 행사차로 연길로 모시고 갔더니 글쎄 소위 대학을 졸업했다는 인간이 뭐 ‘똥별’과 ‘통별’을 분간할 줄 모르는 자로 망신을 톡톡히 당하도록 꼼수를 했는 게 아닌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의 소리도 하겠지만 먼길을 떠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한테 한심한 소리를 마구 해대니… 별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이는 자기가 질투하는 사람이 눈앞에 안 보이면 헐뜯기를 좋아하는 판이니 아예 뭐라고 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다만 속만 끙끙 앓고 있었다. 

언젠가 직장에서 전 성 우수편집을 선출하는데 나는 스스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재삼 사절하고 사양했음에도 상급에 뻔질나게 쫓아다니며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고자질해서 나를 ‘나쁜 분자’ 버금으로 몰고 가는 판에 다 된 밥에 듬직히 재를 뿌린 격이 되였다. 

그런 청기와장사가 속심에 끼여들기 좋아하는 데에 남의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둘이 끼여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억지감투를 뒤집어씌우는데야 어느 쇠도깨비인들 견딜 수가 있었을가? 만일 그리 험담하기를 좋아하면 차라리 사처로 뛰여다니며 회사를 위해 돈을 벌든가 무엇이든 해놓고 큰소리를 치고 볼 판이지… 

그 해 9월 24일 나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견디다 못해 석달 만에 고작 20만자를 번역하고 끝내 쓰러지고 말았다. 내딴에는 회사에서 큰일을 하는데 자그마한 보탬을 주려고 나섰던 걸음이 하루 아침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내 생각에는 심한 감기가 온 모양인가 했는데 하루 이틀 약을 먹어도계속 몸이 말째여서 하는 수 없이 병원을 찾아갔더니 웬걸 경풍이란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병 이름 경풍이라고…

그 ‘악몽’ 같은 시각에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도 못하고 벙어리 랭가슴 앓듯해야 하는 조급증이 살아나서 금시 미쳐날 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때마침 월요일인지라 주임의사는 전체 의사들을 거느리고 아침조회를 들어왔다. 안해는 그 때라 싶어 말 못하는 나 대신 구구하게 한참 눈물코물 쥐여짜며 이야기했다. 안해가 넋두리하는 와중에 주임의사는 《본초강목》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더니 자초지종을 물어보고는 “이 분은 우리 조선족을 위해 《본초강목》을 번역하러 먼 할빈에서 연길로 왔으니 우린 이 분의 병시중에 전력을 다합시다… 오늘부터 병원에 있는 좋은 약을 마음껏 쓰십시오…”라고 말했다.

주임의사가 각별히 관심해준 덕분에 나의 병은 얼마간의 차도를 보이자 그 주임의사는 나에게 이건 기적과 다를 바 없는 효과라면서 진심 기뻐했고 앞으로도 조심하고 병이 완쾌되면 계속하여 《본초강목》을 번역해 자기한테 꼭 한부를 증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저 눈물이 글썽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연길에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고 했으나 함께 번역을 하는 동료들이 문병을 왔고 가까운 친구들이 자주 찾아오는 통에 나는 미안해서, 안스러워서 퇴원한 지 십여일 만에 부랴부랴 짐을 싸가지고 할빈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또 직장 동료들과 같이 일하던 번역쟁이 친구들이  너도나도 찾아주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준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나는 용케도 건강을 천천히 되찾을 수가 있었다.

젊은 시절에 크게 앓다가 좋아진 다음비실비실 살아간다. 사회에 첫발을 밟아서 본의 아니게 크게 앓음자랑을 했는데 32년 만에 다 나았나 하고 한창 사업을 할라니 또다시 병원신세를 질 줄이야… 하도 마음이 바르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서일가, 아니면 살아남아서 남한테 좋은 일을 하라고 그랬던지 또다시 비실비실 살아났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다 싶이 결국 남을 헐뜯어봐야 잘되는 이 없고 한때 기분이 좀 상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그만일 걸 가지고… 어느 한번 병난 몸으로 길을 무심히 가다가 그 밉상이 문뜩 나타나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전에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기오… ” 하는 것이다.  이거라구야 본의도 성의도 없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했다. 바른 대로 말해서 한 10년, 한 20년 전에 진작 자기를 뉘우쳤더라면 그의 인생도 한층 나아졌을 것이 아닌가. 세살짜리 배운 버릇이 팔십까지 간다고 했거늘 그 놈의 못된 버릇을 언제면 다 고칠 수 있을가 걱정된다.

오늘도 잠시 회복된 기분으로 지나온 과거를 회억하면서 이제라도 직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간만 다행인 게 아닐 수 없다.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사람으로 련결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재롱을 부리는 ‘꿈’이 아닌가 싶게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쭈욱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꿈에서 깨고 나서 또 ‘꿈’이 있으면 사람에 따라 그런 대로 이채로울 것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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