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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역과 시 / 김기덕[한국] 댓글:  조회:907  추천:0  2019-02-02
주역과 시 /김기덕     8. ䷇ 수지비(水地比)   수지비는 위에 水(☵:坎)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모양으로 물과 땅이 친하여 서로 돕는 관계를 이룬다. 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형상으로 서로 의지하며 돕는다는 뜻이 있다. 比는 하괘가 坤(땅)이니 순하고 어질며, 상괘는 坎(물)이라서 아래로 흐르니, 땅 위에 물이 있는 것 같이 서로 밀접하게 친한 것을 말한다. 덕망 높은 군주를 위해 어진 신하들이 보필하며 친함으로 서로 협력하는 상이다. 64괘는 배치의 관계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시의 소재나 주제의식을 잡고 시를 쓰고자 할 때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유사적, 인접적, 상징적인 사물을 찾은 뒤 적절한 배치관계를 찾고, 정해진 배치관계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바로 64가지인 64괘인 것이다. 이 64가지를 다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기존에 쓰던 주제의 통일적인 중천건괘의 방법이나, 중지곤괘의 방법 등을 비롯하여 몇 가지만 익혀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을 통한 시쓰기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활용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64가지를 다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본 책을 교재로 삼아서 시를 쓰면 굳이 외울 필요도 없다. 또한 주역적 시쓰기가 공식처럼 경직되어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괘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으니, 이러한 변화는 시인의 의지에 따라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부분이다. 효로 풀면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주제와 정서의 음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 다섯 번째 배치에서 변화를 꾀한 뒤 여섯 번째 배치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승전결식의 방법이다. 다섯 번째는 轉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환을 이루었다가 다시 주제의식으로 모아지는 통일된 내용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음)는 약하고 부드러운 존재이나 슬픔, 아픔 등을 끌어와, 人(⚏:노음)에서 음의 감정을 더욱 발전시켜 가다가 天(⚍:소음)에 와서 내적 아픔이나 설움, 절망 등의 음의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표현하면 첫 문장의 배치는 坤(☷)괘로서 땅을 상징한다. 유순하고 후덕하여 모든 것을 품는 어머니와 같은 정서이다. 둘째 문장의 배치는 이러한 여성적인 감정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마음을 보듬어주고 모아주는, 따뜻함과 갈등의 승화가 있는 정서의 시쓰기 방법이다.    比는 人자가 두 개 나란히 서있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정답게 협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수지비(水地比)는 땅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대지는 물을 안아주고 물은 땅을 적시며 친애하고 협력하여 생성하고 화육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형성하듯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감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 긍정적 표현이다. 수지비의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으로 땅 위에 높은 산이 있는 상이다. 배합괘는 ䷍ 화천대유(火天大有)로 인군자리에 올라 천하를 얻는 상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 지수사(地水師)로 무리를 모아야 함을 상징한다. [출처] 8.수지비|작성자 김기덕   9. ䷈ 풍천소축(風天小畜)   풍천소축은 天(☰:乾)이 아래에 있고, 위에 風(☴:巽)이 있는 괘상으로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유약한 음이 위에 있어 아래의 강건한 양을 그치게 하여 쌓으니 소축이다. 소축은 작게 쌓아 올라간다는 뜻으로 畜은 밭에 물건을 높이 쌓아 까마득하다는 뜻이다. 양실한 물건을 쌓아올림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바람으로 인해 위가 약간씩 흔들리니 많이 쌓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소축은 안으로는 강건한 乾이 있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巽이 있어서 외유내강의 덕을 갖추고 있다. 강함을 상징하는 모든 양효 가운데 오직 하나인 음효가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막아 모두를 축적하지 못하고 일부만 축적하는 상이다. 효를 가지고 시를 만들면 첫 번째에서 세 번째 배치까지 양효로 구성되어 가볍고 메마른 감정 위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의 배치를 해주는 방법이다. 가운데에 음의 감정을 배치함으로써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뭉클한 감동이 느껴질 수 있도록 어둡고 탁한 분위기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양)는 한 여름이나 오후와 같이 생기가 있고 기쁨이 있다. 人(⚍:소음)은 봄의 정취와 같다. 또한 해가 뜨는 아침과 같이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퍼지게 하여 天(⚌:노양)에서 한낮과 같은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식이다. 시가 전체적으로 밝으나 무게감을 두어 내면의 아름다운 상처를 한가운데 보석처럼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처음의 배치는 天(☰)괘로서 밝고 명랑하고 강건함으로 자칫 공허감을 줄 수 있는 남성적 감정 다음에 巽(☴)을 배치하여 부드럽고, 섬세하여 귀여운 여동생과 같은 감정을 배치함으로 잔잔한 여운이 남도록 쓰는 방법이다. 주역적 시쓰기의 특징은 색깔의 배치이다. 소재에 따라,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색깔을 배치함으로 정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시 창작이다. 양의 색은 밝고 화려하며 따뜻하다. 음의 색깔은 어둡고 탁하며 차갑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에도 이런 다양한 색깔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깊이 및 의도의 정확성을 분명하게 나타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밝게 칠한다면 중천건(䷀)이 될 것이고, 전체를 어둡게 칠한다면 중지곤(䷁)이 될 것이다. 그 외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칠하느냐에 따라 각각 64괘의 모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체가 밝은 시만 좋은 시는 아닐 것이다. 전체가 어두운 시가 치열한 시는 아닐 것이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배치가 더욱 낯설고 개성적인 시의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풍천소축의 호괘는 대칭적, 대조적 기법의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마주보기적 배치인 ䷉ 천택리(天澤履), 배합괘는 하나의 통일된 시각의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 착종괘는 여성적 시각의 밝은 표현인 ䷫ 천풍구(天風姤)이다. [출처] 9. 풍천소축|작성자 김기덕   10. ䷉ 천택리(天澤履)   천택리는 위로 天(☰:乾)이 있고, 아래로는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하늘이 연못에 비치듯 하늘의 이치를 밟아 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履는 회복함(復)을 주장하는(尸) 뜻이 있으니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뜻을 따라 예를 회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履는 하괘가 兌(연못)이므로 안으로 함께 기뻐하고, 상괘가 乾(하늘)이므로 밖으로 굳건히 실천하는 모양이니, 기뻐하고 화합함으로 행하는 중정의 도가 있다. 또한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못이 있으니 상하의 나뉨과 귀하고 천함의 구별이 있어 예로 회복을 실행하는 괘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배치를 양의 문장으로 한 다음,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였다가, 그 이후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표현해주는 방법이다. 하늘의 구름과 달과 별들이 음의 물속에서 반사되듯이 표현된 방법이다. 데칼코마니적인 방법이기도한 이 기법은 하늘의 차원과 물속의 차원이 다르며, 정신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가 다르듯이 상하의 복합적 배치, 또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배치와 같은 마주보기적인 거울 기법이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노양)는 호수에 비친 풍경처럼 맑고 깨끗하며 명랑하다. 人(⚎:소양)은 겉은 기쁘고 생기에 차있지만 속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하고 병들어 있다. 天(⚌:노양)은 청명하며 움직임이 있고 크다. 하늘은 맑고 땅은 생기에 가득 차있어서 양의 색깔로 채워지지만, 인간은 내면의 슬픔을 어쩌지 못한다. 팔괘로 풀면 기쁨이 가득한 兌(☱)괘가 밑에 있고, 강하고 밝은 덕이 위에 있어 서로 비추며 마주보는 유사성이 있다. 처음엔 하늘의 단락이 있고, 다음에 하늘을 비추는 연못의 단락이 있어서 유사성의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는 시쓰기 방법이다. 천택리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태양은 하늘에 있고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는 원리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밤이 새면 낮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혼란이 없고 뒤바뀜이 없다. 시쓰기에서 두 개의 유사성이 결합하여 호수의 하늘과 같이 서로를 조명해 줄 때 하늘엔 하늘의 원리가, 호수에 호수의 원리가 질서를 유지하며 독단적인 내용을 갖고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유사하지만 다른 내용을 형성하고,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천택리의 응용을 위해 천택리의 성격이나 재질의 구분은 호괘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으로, 반대편에서 본 입장인 도전괘는 ䷈ 풍천소축(風天小畜), 반대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합괘인 ䷎ 지산겸(地山謙), 상‧하의 입장변경을 표현하는 착종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다. [출처] 10. 천택리|작성자 김기덕   11. ䷊ 지천태(地天泰)   지천태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하늘(☰:乾)이 있는 모양으로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열려 나오는 상이다. 하늘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고 땅의 기운은 위로 올라 교합하여 태평한 세상이 된다. 泰는 父, 母, 子의 세 사람을 뜻하며, 부정과 모혈로부터 어린 생명이 탄생함을 의미한다. 안으로는 乾의 굳세고 건장한 덕이 있고 밖으로는 坤의 순한 덕이 있으니 외유내강의 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서 서로 통하니 형통하는 상으로 정월괘이며 새봄이 되는 때를 이른다. 음효와 양효가 각기 셋으로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배치되고 있어 안정된 모습이다. 효로 살펴보면 양의 문장이 첫째, 둘째, 셋째로 나오고 다음에 음의 문장이 넷, 다섯, 여섯 번째 나오는 형식으로 음과 양이 대조를 이루는 방식이다. 만약에 얼굴을 표현한다면 돌출된 이마나 코, 광대뼈와 같은 곳을 양적으로 밝고 강하게 표현한 후 입이나 귓구멍, 콧구멍 같은 곳을 음적으로 어둡고 연약하게 표현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게 하면서도 통합된 의미를 모을 수 있도록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한다. 이러한 음과 양의 대조를 통해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노양)는 여름이나 한낮의 표현과 같이 강렬하며 극적인 표현을 의미하며, 人(⚍:소음)은 강하고 극적이던 표현이 약하고 부드러워지면서 겉과 속이 표리를 이루는 표현을, 天(⚏:노음)은 겨울이나 한밤중 같은 부정적이며 차가운 대조의 표현을 이루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면 강하고 굳세며 정신적인 의미의 乾(☰)이 밑에 있고, 나약하고 부드러우며 육체적인 의미의 坤(☷)이 위에 있는 형상으로 형이상적이면서도 형이하적인 면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시쓰기이다. 천택리는 유사성을 통해 서로 마주보는 데칼코마니적인 기법이라면 지천태는 대조적인 것이 서로 마주보면서 있는 형상이기도 하며, 인간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지천태의 표현은 땅의 기운이 하강하고 하늘의 기운이 상승하는 형상으로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이며, 상하가 서로 화합하여 하나로 모이는 이치와 같다. 속의 강한 뜻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기법이기도 하며 핵심에는 군자를 변두리에는 소인을 배치한 것과 같은 대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동시에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 사물과 그 안의 상징성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를 인과관계로 끌고 가고자 한다면 지괘를 선택해야 한다. 지괘는 뽑은 괘중에서 노양은 음으로, 노음은 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노양과 노음이 변한 괘가 바로 지괘이다. 노양과 노음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괘는 없는 것이며 당분간 본괘가 지속될 것임을 나타낸다. 지천태의 호괘는 이질적인 관계의 연결을 만드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조화와 상생의 ䷋ 천지비(天地否)이다. [출처] 11. 지천태|작성자 김기덕   12. ䷋ 천지비(天地否)   천지비는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어 상하로 막혀 머물러 있을 뿐 소통이 되지 않는 상이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띠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질 뿐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否를 보면 만물은 호흡과 생명활동을 구멍으로 하는데, 그 구멍(口)이 막혀(不) 곤궁한 모습이다. 위의 乾(☰)은 실하나 아래에 坤(☷)이 허하니 서로 교합하지 못하고 만물이 닫혀 있는 상이다. 하늘과 땅이 통하지 않고 아비와 자식이 갈등하며, 임금과 백성의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반목, 질시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천태와 매우 유사하지만 지천태는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말하지만 천지비는 갈등과 반목, 부조화를 내면에 깔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셋째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고 꼼꼼하며, 어둡고 탁하며, 비천하고 낮은 의미를 갖지만, 넷째, 다섯째, 여섯째의 내용들은 엉성하고 명랑하며, 움직임이 있고, 밝고 맑으며, 높고 귀한 의미를 가짐으로 내면과의 갈등을 표출하고 상하의 부조화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시는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지지만 반대적인 입장에서의 접근이나 시각차를 나타내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지극한 슬픔에 빠져 있지만 하늘은 기쁨으로 충만한 상이다. 人은 그 가운데에서 강한 척 하지만 불안과 좌절을 격고 있는 모양이다. 계시가 없는 신앙인과 같으며, 꿈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주인이 없는 애완동물과 같은 형상이다. 시적인 형식에 있어서도 상하의 상관관계를 갖지 못하고 배반관계, 또는 대치관계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신적 질서인 天이 인간세상인 땅에 관여하지 않고 동물적 질서인 땅은 인간 영혼의 교감이 있는 하늘에 구하지 않음으로 답답한 정서적 고립을 이루고 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否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이다. 하늘과 땅이 막히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막혀버린 관계이다. 천지비는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인데, 이것은 내심은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기만과 속임수가 있다.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간에 의미의 연결을 이루지 못하고 정반대의 파국으로 치닫는 부정적 배치관계를 갖고 있다. 주제의 통일을 중시하는 시쓰기에서 단락 간에 의미가 상충한다면 통일성은 깨어질 것이다. 마인드맵에서 서로 반대되는 가지의 방향으로 뻗어감으로 의식이 확장되듯 천지비의 시쓰기는 가지에서 둥치 쪽 방향으로 주제의식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확장되고 퍼짐으로 난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천지비의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이루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균형을 이룬 ䷊ 지천태(地天泰)이다. [출처] 12. 천지비|작성자 김기덕   13. ䷌ 천화동인(天火同人)   천화동인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火(☲:離)가 있는 모양으로 하늘에 해가 떠올라 만물이 생동하며 서로 모이는 형상이다. 同人의 의미는 사람들이 뜻을 하나로 하여 함께하는 것을 말하는데, 유일한 음인 六二(효의 두 번째 음효)를 중심으로 양들이 모이게 된다. 내면은 밝고 외면은 강건한 덕이 있으니 밝은 지혜로써 힘차게 도를 행하는 괘이다. 남과 내가 하나가 되는 형국이며, 세상의 모든 사물과 내가 하나를 이루어 교감을 갖는 관계에 놓여 있다. 두 번째에 놓인 음의 효는 나를 상징하며 나를 중심으로 모든 양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양으로 시에서는 서정적 시쓰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정적 시쓰기의 특징은 나라는 존재의 주관적 감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오고 요리하며, 서정적인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천화동인의 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쓰기 형식이다. 효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六二의 나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감성의 소유자이다. 이런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를 밝고 아름답게 쓰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양의 시각이 담겨 있다. 시인의 존재는 약간 우수에 잠길 수 있어도 그의 메시지는 세상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세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따뜻한 세상을 담고 있다. 그 문장들이 나를 향해, 곧 글 쓰는 시인을 향해 주제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는 땅에서 새싹이 움트는 형상이다. 밝게 확장되어가고 성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人(⚌:노양)은 긍정적이며 행복한 상황을 의미하며, 天(⚌:노양)도 역시 맑고 투명하며 소망으로 가득 차있다. 마인드맵 천 ‧ 인 ‧ 지의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갈 때 긍정적이며 건강한 의식으로 확장해야 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하늘에 해가 떠있는 상이다. 그래서 색깔이 밝고 환하다. 천지는 광명으로 가득 차있고 만물은 생기가 넘친다. 시인의 순수한 내면을 통해 밝고 아름답게 세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과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불은 서로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同人은 남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뜻이 같은 것들, 즉 유사한 것들을 모아 하나의 주제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곧 주제의 통일을 의미하며 사물의 유사성과 인접성을 통해 접속하는 방법이다. 천화동인의 호괘는 음의 대상을 양적인 표현으로 이끄는 ䷫ 천풍구(天風姤)이고, 배합괘는 남성적 시각의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음의 배치인 ䷆ 지수사(地水師)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태양처럼 밝고 환한 ䷍ 화천대유(火天大有)이다. [출처] 13. 천화동인|작성자 김기덕   14. ䷍ 화천대유(火天大有)   화천대유는 위에 火(☲:離)가 있고 아래에 天(☰:乾)이 있는 괘상으로 해가 중천에 뜬 모양으로 크게 소유함을 이른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밝은 상으로 모든 만물을 밝히는 상이다. 六五(효의 다섯 번째 음효)의 음이 왕위에 올라 상하의 여러 양들과 응하니 크게 형통하는 괘상이다.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상으로 대유는 크게 있다는 뜻이다. 하늘 높이 솟은 태양처럼 세상만물을 비추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모양으로 태양이 없이는 세상에 생명이 하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만큼 고마운 것이 없으며 태양만큼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화천대유는 태양처럼 크게 이 세상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의 위치인 五爻가 음이고 모두 양으로 되어 있는 괘이다. 임금인 五爻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밝고 아름답게 쓰는 시로 경축시나 칭송시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왕 같은 사물, 왕 같은 대상이 음으로 가득 차 있어서 긍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다섯 번째 여성적이며 우울한 심정을 나타낸 후, 그리고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밝게 끝내는 시쓰기의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삼재인 地는 初爻인 양과 二爻인 양이 만나 노양(⚌)이 되었다. 初爻인 地는 흙, 땅, 지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형이하적인 사물이나 물체를 끌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二爻인 地도 지옥이나 어둠과 같은 세계일지라도 양적인 형이상적 실체의 접근이 필요하다. 人은 三爻인 양과 四爻인 양으로 이루어진 노양으로 형이하적인 동물적, 육체적인 접근과 영혼, 정신적인 형이상적 접근을 긍정적이고 밝게 함으로써 양적인 힘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天은 五爻의 음적인 문장이 오고 六爻엔 양적인 문장이 옴으로써 어둡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지만 그 속에서 영혼의 세계인 천국과 극락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팔괘로 보면 상괘인 외괘는 火(☲:離)이고 하괘인 내괘는 天(☰:乾)으로 이루어져 하늘 위에 해가 떠있는 형상이다. 외괘는 오후, 외적인 것, 쇠퇴, 해체, 성장, 얼굴, 객체, 대상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외괘가 태양과 같으므로 밝고 긍정적이며 행복한 접근이 필요하다. 내괘는 오전, 내적인 것, 도래, 창조, 탄생, 몸, 주체, 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내괘는 강건하고 광명하며 건조한 의미인 天이므로 적극적이며 지배적인 힘을 띠어야 한다. 화천대유의 시쓰기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왕과 같은 사물이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 칭송이나 찬양과 같은 형식으로 밝고 아름답게 쓰는 방식이다. 지상 최대의 태양과 같은 존재인 시적 대상을 향해 신을 모시듯 격조를 높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화천대유의 변화를 살펴보면 호괘는 양적 묘사에서 마지막 음의 묘사로 뒤집는 ䷪ 택천쾌(澤天快)이며, 배합괘는 정답고 조화로운 표현인 ䷇ 수지비(水地比), 도전괘, 착종괘는 서정적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출처] 14. 화천대유|작성자 김기덕   15. ䷎ 지산겸(地山謙)   지산겸은 地(☷:坤)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있는 괘상으로 높은 산이 땅보다 아래에 있으므로 겸손함을 상징한다. 겸은 산같이 높은 덕을 내면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땅 같은 자의 아래에 있으니,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말고 남을 존중함이 필요하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태이므로 시쓰기에서도 자신의 의도대로 쓰지 않고 독자의 의도에 맞추어 쓰는 방법이다. 독자의 의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모든 시가 그렇지만 특히 독자가 상상하며 유추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九三만 양이고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괘이므로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쓰고, 세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을 쓴 후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써야 한다. 겸괘에서의 핵심은 九三이다. 九三이 다른 존재에게 겸손해야하지만 다른 존재들도 역시 九三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것은 곧 시에서 시의 핵심을 세 번째 문장에 오게 하는 것이다. 이 핵심은 음 중에서 양이며, 슬픔 중에서 기쁨이며, 어둠 중에서 빛이며, 절망 중에서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산은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양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내면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상으로 풀면 天(⚏), 地(⚏)는 음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상태이지만 시인만은 내면의 강함(⚍:소음)으로 새싹처럼 고개 내밀고 있다. 고개 숙인 새싹들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게 내면을 감춘 모습엔 희망이 담겨져 있다. 또한 부드럽고 순한 여성적인 정서 속에 남성적 강함이 숨겨져 있는 모습이다. 시인 자신의 의도나 감정도 숨겨져서 객관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어머니를 의미하며, 유순함과 서남방과 소, 신체 중의 배를 상징하는 땅(곤괘)이 위에 있고, 산을 의미하며, 소남(小男), 정지, 동북쪽, 신체 중의 손, 개를 상징하는 산이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아래는 산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하며, 위는 땅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첫째 단락은 막힘과 단절, 심리적 답답함을 표현해야 하며, 둘째 단락은 유순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여성적인 정서로 이러한 단절과 막힘, 삶의 아픔과 절망을 포용하며 순응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고난 속에서 참고 인내하는 어머니와 같은 자세의 시쓰기이다.    보름달은 기울고 초승달은 커가는 것이 세상이치이고, 높은 곳의 흙은 깎이어 낮은 곳으로 퇴적되며, 물은 평면을 유지하려고 아래로 흐르는 것이 세상 원리이듯이 위대한 시인은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물을 표현해야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고 감탄하며 들뜰 것이 아니라 벌레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쓸 때 그 시는 산을 품은 땅과 같은 큰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절망하며 흐느끼는 세상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내 입장을 숨기고 그들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지산겸의 시쓰기이다. ䷎ 지산겸(地山謙)의 호괘는 자연스런 감정표출을 의미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다른 하나의 시각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 뇌지예(雷地豫), 배합괘는 데칼코마니적 기법인 ䷉ 천택리(天澤履), 착종괘는 절해고도의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다. [출처] 15. 지산겸|작성자 김기덕   *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   단락의 변화에서 다룬 것이 본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지괘이다. 여기에서의 단락 변화는 내용의 새로운 흐름 전개를 말하며, 바라보는 시각의 또 다른 방향이나 새로운 차원을 말한다. 본괘는 쓰고자 하는 시의 본질적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에 대해 시를 쓴다면, 선풍기의 모양이나 성격, 기능, 작동법, 디자인, 바람의 세기, 가격 등과 같은 선풍기의 기본적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는 방법이다. 호괘는 시적 대상에 대한 내면성이나 내면적인 재질 ‧ 부품이 갖는 정신적인 상징성에 대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선풍기에 대해 예를 들면 더위를 식혀주는 성질이나 시간에 맞게 돌아가고 꺼지는 자기조절, 내부적인 모터의 회전에 대한 상징성 등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호괘는 단순히 내부에 있는 부품이라고 해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의미하는 형이상적인 것, 또는 상징적인 것을 말한다. 도전괘는 반대편에서 본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의 감춰진 모습이나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 또는 상대적인 측면에서 본 시각에서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선풍기의 감춰진 뒷모습이나 선풍기와 상관없는 책의 입장이나 에어컨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을 가지고 쓰는 방법이다. 배합괘는 반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처한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바라보고 접근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선풍기를 시적 대상으로 잡았다면 히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든지, 겨울의 상황에서 선풍기를 묘사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착종괘는 상하의 입장을 바꾸는 방법으로 거꾸로 보기의 일종이다. 선풍기에 대해서 본다면 거꾸로 놓고 선풍기의 모양이나 쓰임새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역전된 시각, 내려다보기나 올려다보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괘는 흐름의 종료,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의 존재 결과나 진행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결과를 말한다. 인과관계라고도 할 수 있고, 결론적인 도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이러한 여러 각도로 접근하면서 단락을 바꾸고 묘사, 표현한다면 글쓰기의 정해진 룰과 같은 하나하나의 괘들이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64괘의 방법이 다섯 가지의 변괘를 만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출처]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16. ䷏ 뇌지예(雷地豫)   뇌지예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괘상으로 땅을 뚫고 초목이 밖으로 움터서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豫는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모양이니 순히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다. 豫는 오직 한 개인 양효가 모든 음효와 호응하는 형태여서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이면 형통하는 괘이다. 하늘과 땅도 자연의 도리에 따라 순응하고 움직이듯 나라도 도리에 순응하면 크게 발전함을 의미한다. 시에서는 하나의 시각으로 사물을 표현함을 의미한다. 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듯, 강의 시각으로 세월을 보듯, 바람의 시각에서 낙엽과 인생을 보듯 하나의 주체적인 사물을 통해 활유적, 상징적으로 접근하는 표현 방법이다. 효의 시각에서 살펴보면 뇌지예(雷地豫)는 九四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다. 九四는 재상, 대신, 간부급 및 교생, 몸통, 몸의 앞부분, 형, 40대의 위치를 의미한다. 또한 九四는 사물의 중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관점을 중심으로 쓰되 나머지 효가 모두 음이므로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부연한다면 음의 문장은 右, 地, 母, 女, 柔, 靜, 下, 偶, 重, 濁, 暗, 後, 末, 逆, 小, 卑, 枝, 老, 哀, 惡, 慾, 病, 死, 緻密, 消極的, 陰凶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문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노음)과 땅(⚏:노음)이 모두 노음인데, 사람만 소양(⚎)이다. 이는 천지만물이 음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상을 보는 사람 또한 음의 상태지만, 내면의 음을 감추고 양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양적인 시각이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사물의 시각을 빌려 음의 세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 온 震은 二陰 속에 一陽이 처하여 문이 열려있는 모양으로 一陽이 밖으로 강건히 움직여 변화를 이루는 상이다. 우레가 진동하는 형상이며, 땅 속의 초목이 움트는 상이다. 오행상 양목에 속하며, 물상으로 발(足), 용, 큰길 등을 상징한다. 아래에 온 地는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지극히 유순하고 광활하며 습하다. 안이 비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모양으로 만물을 생육, 번성시키는 땅을 의미한다. 어머니, 오장육부를 담은 배, 유순한 소 등이 여기에 속하며, 평탄한 대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땅 위에 울리는 우레와 같은 모양으로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지각을 뚫고 힘차게 땅 위로 오르는 기상을 갖고 있다. 현실의 미성숙을 내면의 강함으로 극복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힘을 느끼게 해야 한다. 뇌지예(雷地豫)의 변괘에서 인과관계로 가자면 지괘를 살펴보아야 하고, 내면의 변화는 호괘인 ䷦ 수산건(水山蹇)으로, 반대 입장은 도전괘인 ䷎ 지산겸(地山謙)괘로, 반대상황은 배합괘인 ䷈ 풍천소축(風天小畜)괘로, 상하의 입장변경인 착종괘는 ䷗ 지뢰복(地雷復)괘로 확장하여 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6. 뇌지예|작성자 김기덕   17. ䷐ 택뢰수(澤雷隨)   택뢰수는 위에 澤(☱:兌)이 있고 아래에 雷(☳:震)가 있는 형상으로 아래에서 震이 움직임에 따라 위에서 연못물이 즐겁게 일렁이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隨는 때를 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해가 동에서 떠서 남을 거쳐 서에서 지듯이 해의 운행에 따라 만물이 좇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에는 움직이는 성질이 있고 밖으로는 기뻐하는 덕이 있으니 실천에 옮겨서 기쁜 결실이 있게 되는 괘이다. 효의 위치를 보면 음과 양이 반반으로 섞여 있는데,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시작하여 두 번째, 세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표현된 후,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표현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룬 다음, 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는 형식이다. 시의 정서를 통일시키는 데 있어서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어떻게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음과 양의 관계는 배치의 관계로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의 관계는 음영을 표현한 미술의 빛과 어둠의 기법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빛이 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고, 어둠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빛이 존재해야 하듯 배치관계에서의 음양의 조화를 통해 언어적 그림의 선명한 감정전달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천 ‧ 인 ‧ 지가 모두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地(⚍:소음)는 내면은 강하고 외면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형이상적인 땅의 모습보다는 현실적인 땅의 모습에 치중되어 있는데, 天(⚍:소음)도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하늘보다는 현실적인 하늘이 강조되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人(⚎:소양)은 현실적인 면보다는 이상적인 면이 강하고, 종교나 제의에 치우쳐 있다. 이는 현실을 표현하면서 정신적인 고뇌와 신적인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밑에는 우레가 진동하며 초목이 움터 나오는 형상인데, 위에는 연못이 출렁이며 기쁨을 누리는 형상이다. 팔괘의 두 단락으로 보면 첫째 단락은 생동하며 초목이 움트는 것 같은 활동성을 표현하고, 둘째 단락은 연못의 물이 춤추며 기뻐하는 것 같은 이미지의 표현이다. 택뢰수는 강한 자가 유순한 자를 따르는 형태인데, 유순한 자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우레가 못 속에 잠겨 있는 상으로 이는 평화와 안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요함은 애수와 석양의 따사로움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물결이 일며 생성과 발전의 분위기가 5월의 풀향기처럼 감도는 싱싱하고 젊음이 가득한 고요함이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택뢰수의 호괘는 점점 커지는 확장적, 상승적 묘사인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순탄한 논리의 배반적 기법인 ䷑ 산풍고(山風蠱), 착종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연결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출처] 17. 택뢰수|작성자 김기덕   18. ䷑ 산풍고(山風蠱)   산풍고는 山(☶:艮)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위치해 있는 상으로 산 아래 바람이 불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형상이다. 蠱는 그릇(血) 위에 세 마리 벌레가 있는 모양으로 그릇을 좀먹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巽은 한 음이 생하는 모양이고 艮은 두 음이 자라는 모양이니 음이 성하는 가을의 때와 같다. 안으로는 순하고 밖으로는 그침의 덕이 있으니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이다. 효로 살펴보면 백성이나 신입사원, 신입생, 10대와 같은 初爻가 음으로 시작하고, 재상, 간부, 몸통, 40대와 같은 四爻,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 50대와 같은 五爻가 음으로 이루어진 산풍고는 병들기 쉬운 인생의 고비를 상징하고 있다. 10대의 사춘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따라 인생의 미래는 달라진다. 또한 40대, 50대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로 인해 병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병적 허무와 정신적 공황기의 절망적 감정을 시의 내부에 심음으로써 벌레 먹은 듯 감정적 천공을 만드는 시쓰기이다. 즉 양의 바탕 위에 음의 요소를 구멍 뚫듯 배치하는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과 땅(⚎)은 같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만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은 형이상적인 천국, 영혼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땅 또한 지하의 형이상적인 세계인 지옥, 어둠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人의 세계만 물질적, 육체적인 지향성을 갖고 있다. 이는 건전한 정신세계의 병들음이며, 푸른 잎의 구멍과 같다. 하나의 동질적 바탕 위에 이질적 요소의 구멍 뚫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艮)인 一陽二陰이 위에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치는 상인데, 小男, 집지키는 개, 작은 길, 작은 돌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는 一陰이 二陽 아래 엎드려 숨어 있는 모양으로 공손 ‧ 겸양하여 자신을 낮추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長女, 노끈, 닭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산 아래 바람이 부니 낙엽이 떨어지는 형상이다. 첫째 단락은 나무나 풀과 같이 부드럽고 순탄하며, 땅에 뿌리내리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단락은 이러한 순탄함이 막히면서 절망과 좌절의 아픔이 짓누르는 듯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순탄한 논리의 배반이 군데군데 역설적으로 도입됨으로써 아름다운 단풍잎이 아니라 벌레 먹어 구멍이 뚫려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젊은 시기를 보내고 노년의 후회와 허무, 삭막함을 표현하는 시쓰기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산풍고의 변괘 중 호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배합괘는 ䷐ 택뢰수(澤雷隨), 착종괘는 ䷴ 풍산점(風山漸)이다. [출처] 18. 산풍고|작성자 김기덕   19. ䷒ 지택림(地澤臨)   지택림은 위에 地(☷:坤)가 있고 아래에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땅에 못물이 고여 모든 만물을 기르는 상이다. 臨은 모체 속에서 양이 자라, 나올 때가 임박한 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기운을 받아 수태한 후 품성을 갖추어 만물이 나오는 상이다. 안의 兌는 기쁨의 상이고, 밖의 坤은 순한 모양이니 기뻐하면서 순하게 나아가는 형상이다. 절기로는 한겨울인 12월이며, 새로운 한 해가 임박하는 때이다. 復괘는 양이 처음 나오는 괘로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때라면, 양이 하나 더 자라 땅의 문이 열리는 때이고 곧이어 만물이 생겨나는 형상이다. 귀한 양으로 復(䷗)에서 더 발전하여 백성에게 임하니 크게 형통하고 이로운 것이다. 효로 이 상을 풀이하면 初爻와 二爻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효들은 모두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이다. 이 모양은 여러 개의 음이 꽃받침처럼 받쳐주고 그 속에서 양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양의 문장은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양의 모양을 띠어야 하고 나머지 음의 문장들은 이 두 문장을 뒷받침하는 꽃받침과 같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양의 문장은 꿈이나 이상과 같은 것이며, 음의 문장은 이 꿈과 이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양의 문장은 형이상적이요, 음의 문장은 형이하적이어서 두 개의 양의 문장에 초점을 두고 나머지 문장은 배경적인 구성을 하는 시쓰기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이며, 天도 노음(⚏)이다. 땅에 속한 나무나 짐승, 곤충들은 생기로 가득 차 있지만, 하늘은 아직 흐리고 기온이 풀리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생기를 찾지 못하고 절망과 좌절 속에 있다. 하늘과 인간은 침체되어 있지만 땅만은 새로운 봄을 준비하며 부지런히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땅의 위대함을 통해 사람과 하늘이 회복되어 가는 희망적 시쓰기 기법이다. 팔괘로 보면 땅(☷) 속에 못(☱)이 있는 모양으로 깊은 연못을 상징한다. 깊은 연못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영감과 교훈을 준다. 깊고 푸른 연못의 맑은 물을 보면 청춘이 즐겁고 인생에 희망이 샘솟는다. 아직 땅은 어둡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땅 속에서 숨 쉬는 연못은 희망을 비춰준다. 깊고 심오한 영감으로 현실의 어둠을 극복하고 맑고 고요한 심성의 깨달음으로 희망을 찾는 모양이다. 첫 단락은 삶의 기쁨과 깨달음의 고요가 거울 같은 수면처럼 차분하게 나타나야 하고, 둘째 단락은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암울한 현실과 미완의 세계를 그려야 한다. ䷒ 지택림(地澤臨)은 바닥에 생명처럼 솟아나는 원천이 있다. 고요히 정지하여 있지만 물은 항상 새롭다. 그래서 부패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격돌하지도 않고, 순조롭고 자연스러우면서 묵은 것과 새것을 교체하면서 변하지 않는다. 음의 문장 속에서 양의 문장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제시하며 기쁨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지택림의 변괘 중 호괘는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배합괘는 형이상적인 시를 의미하는 ䷠ 천산둔(天山遯), 도전괘는 군자의 교화가 세상을 감화시키는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산문시적인 ䷬ 택지취(澤地萃)이다.   20. ䷓ 풍지관(風地觀)   風地觀은 風(☴:巽)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있는 상으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만물이 이를 따라 흔들리는 형상이다. 觀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두루 살피는 모양이니 시적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접근으로 마치 황새가 창공을 날면서 먹이를 찾는 것과 같다.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덕이 있는 모양이니 군자가 마음을 비우고 극한 경지로 들어가 관찰하고 연구하는 괘이다. 또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모든 초목이 흔들리는 모양이니 군자의 교화가 세상에 감화를 일으키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다섯 번째 문장과 여섯 번째 문장이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는 형태이다. 觀의 살핀다는 의미처럼 음의 시각으로 시적 대상을 자세히 관찰, 세밀하게 묘사하다가 결말 부분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슬픔이나 절망, 고통과 같은 음의 성격으로 진행되다가 희망이나 꿈을 불어 넣는 식의 양의 결말로 끝부분을 마무리하는 시의 형태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삼재 중 地는 ⚏(노음)으로 겨울이나 한밤중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어두운 현실이나 암담한 미래와 같은, 현실적인 사실이나 사물의 위치, 상태 등이 지극히 쇠퇴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人도 마찬가지로 ⚏(노음)으로 상황뿐만 아니라 시인이나 시의 주체적 인물이 음의 극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이나 절망, 고독의 감정을 가지며 지극히 음의 세계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天에서 ⚌(노양)으로 급반전함으로써 세상의 변화와 심리적, 정신적인 변화의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바람이 부는 형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의미를 가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쓰기의 형태로 관조적인 시쓰기이다. 몰입이 되어서 사물의 내면과 일치하는 치열함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지켜봄으로써 어둡고 답답한 현실의 음적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나누는 관조적 묘사를 의미한다. 풍지관의 바람은 얼핏 폭풍이나 태풍과 같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날려버리는 사나운 바람을 연상하거나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매섭게 나무 끝을 불어가는 삭풍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풍지관은 그러한 사납고 어지러운 바람이 아니라 풀잎도 꽃봉오리도 즐겁게 어루만져 주는 봄바람이거나 햇살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신록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희망적 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풍지관의 변괘 중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 지택림(地澤臨), 배합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착종괘는 ䷭ 지풍승(地風升)이다.   21. ䷔ 화뢰서합(火雷噬嗑)   火雷噬嗑은 火(☲:離)가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雷電이 합하여 빛나고 두 물건이 서로 함께하여 합하니 火雷噬嗑이다. 噬는 씹는 것이요, 嗑은 다물어 합하는 것이니 입 속의 물건을 씹어 합하는 의미가 있고,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물건이 들어 있는 괘의 모양을 하고 있다. 상괘의 離는 번개이고 하괘의 震은 우레로서 번개치고 우레가 따름으로써 서로 모여 합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침이 지나 한낮이 되는 때이며, 봄철이 지나 여름이 되는 시기이니 만물이 통하는 이치가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빨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과 같이 핵심적 요소(시적주체)가 오고 다섯 번째는 음의 문장, 여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문장이라고 명명된 부분은 꼭 하나의 문장만을 의미하지 않고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의미의 통일체를 말한다. 즉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음과 양의 시각으로 씹듯이 밀도 있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소음(⚍)으로 이루어져 내면은 강하지만 외면은 부드럽고 약한 모양을 갖고 있다. 人과 天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속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외면은 강하고 밝은 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의 의식은 외향적인 하늘과 내향적인 땅의 가운데에서 합하여져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번개가 치고 그 뒤를 천둥이 따르듯이 시인의 의식 속에 하늘과 땅이 합하여 통합된 주제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번개가 친 다음에 우레가 있는 모양을 이루기도 하고, 하늘에서 번개가 치자 땅에서 우레가 울리는 형상이다. 하지만 시쓰기에서 첫째 단락이 우레의 의미를, 둘째 단락이 번개의 의미가 있는 의미의 배치를 갖기 때문에 이는 역인과적 관계를 의미하며 결과 후 과정을 쓰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하지만 이들의 섞임은 음식물을 씹었을 때처럼 잘 섞여야 한다. 윗니 아랫니가 음식을 끊고 씹으며 서로 맞닿아 조화를 이루듯이 剛强을 상징하는 양괘인 震과 유화를 상징하는 음괘인 離가 합력하는 긍정적인 시쓰기이라고 할 수 있다. 火雷噬嗑의 호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의식의 절제를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배합괘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인 ䷯ 수풍정(水風井), 착종괘는 다양한 묘사와 풍성한 의식의 ䷶ 뇌화풍(雷火風)이다. [출처] 21. 화뢰서합|작성자 김기덕   22. ䷕ 산화비(山火賁)   산화비는 山(☶:艮)이 위에 있고 火(☲:離)가 아래에 놓여 산속에 불이 있는 모양이다. 생장의 과정을 마치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山火賁이다. 賁는 종자가 다 여물어 열매 맺는다는 뜻으로 열매(貝)가 많이 매달린(卉) 모양으로 ‘빛나다, 꾸미다, 열매 맺다’라는 뜻이 있다. 안으로 밝고 화려함에도 밖으로 그치는 덕이 있으니 꾸밈의 소박한 절도를 지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순리에 따르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와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산화비의 여섯 효를 압축하면 ☲(火)의 형태를 갖는데, 이는 내면의 아픔을 감추고 밖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시쓰기이다. 그래서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중간에 음의 감정을 내비침으로 전체적으로 내면의 고통은 안으로 숨기고 밖으로는 이러한 진실을 꾸밈으로 더욱 아픔을 절제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내면적인 절제의 정한적 요소와 형식적인 절제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배치를 통한 절제된 내면을 나타내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강한 내면을 감추고, 유약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감정적 호소가 되어야 한다. 이 감정적 호소는 낭만주의적인 쏟아놓음이 아니라 절제 속의 호소여야 한다. 이의 구체적인 방법은 땅의 사물적 효는 양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땅의 정신적 효는 음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양적 사물 속에서 음의 감정 및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이 人의 소음(⚍)에서도 계속되다가 마지막 단계인 天의 배치에서 음적인 감정을 뒤엎고 양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희망적인 색채를 띠게 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이 불을 가두고 있는 형국이다. 불은 밝히 드러내고자 하는 감정이며, 여러 가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과잉적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산이 막고 있다. 산은 그친다는 뜻과 가로막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산화비(山火賁)의 모양을 통해 풀이해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이다. 그래서 의식이 절제되어야 하고 슬픔이나 절망의 음적 감정이 수면에 잠긴 채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와 같은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화비의 변효 중 호괘는 감정표출의 시인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 화뢰서합(火雷噬嗑), 배합괘는 절망적 현실을 표현한 ䷬ 택수곤(澤水坤), 착종괘는 하이퍼적 기법인 ䷷ 화산여(火山旅)이다. [출처] 22. 산화비|작성자 김기덕   23. ䷖ 산지박(山地剝)   산지박은 산(☶:艮)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놓여 땅 위에 높이 솟은 산이 아래가 깎여 무너지는 모양이어서 山地剝이라고 한다. 剝은 근본 종자를 의미하는 彔(근본 록)을 刂(선칼 도: 칼, 낫 등)로 베어 열매를 거둠을 이른다. 剝은 안으로 유순히 행하고 밖으로 두터이 드러내지 않으니, 음에 의해 박락(剝落) 되는 때를 알아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 때를 기다려 머무는 덕이 있다. 박괘는 늦가을로서 음이 극성해지는 상강 절기에 해당하니, 낙엽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때이며, 대지가 비바람에 침식되어 높이 솟아 깎이는 모습이다. 시에서는 높은 산에 홀로 선 듯한 고독과 절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시이다. 또한 외로움이나 사회적 왕따, 궁지에 몰린 자와 같은 절해고도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부터 다섯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다가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법이다. 전체 분위기에서 양의 문장은 중심이 되는 의식이지만 사라져야 할 의식, 아쉬움의 표현인 의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음의 감정은 살고 마지막 남은 양의 감정은 떨어져 나가는 낙엽처럼 아름답지만 허무한 것이다. 이 양의 감정은 아쉬움이며, 허무이며, 또한 다음해를 기약하는 결실이며 씨앗이기도 하다. 지속되는 음의 감정이 종국적인 양의 감정을 밀어내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시기로 보면 한겨울이고, 때로 보면 한밤중이며, 정신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음의 기운이 人(⚏:노음)에서도 지속되다가 天(⚎:소양)에서 언뜻 양의 기운이 나타나지만 한밤의 유성과 같이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함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이는 강물 위에 살얼음과 같으며 튕겨져 나가기 직전의 샴페인 병마개와 같은 상태이다. 그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몰 직전의 잔광을 그리는 것과 같거나, 엄동설한 직전의 가냘픈 햇살과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솟아 있는 산의 형상을 갖고 있는데, 柔가 剛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소인의 세력이 강대해져 바른 정치를 하려 해도 되지 않는 상황과 같이 음적 정서가 팽배해져 양적인 정서가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양마저 변질시켜버릴 듯한 기세다. 짝수, 땅, 어머니, 여자, 부드러움, 고요함, 아래쪽, 우측, 무거움, 탁함, 어두움, 끊어짐, 들어감, 나중, 끝, 반대, 작음, 천함, 가지 등과 같은 음의 배치를 이룬 후 마지막 연에서 양의 문장을 배치하여 극적인 상황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지박의 변괘인 호괘는 여성적 감정의 표현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배합괘는 양적 시각의 막판 뒤집기인 ䷪ 택천쾌(澤天夬), 착종괘는 독자의 의도에 맞추는 ䷎ 지산겸(地山謙)이다. [출처] 23. 산지박|작성자 김기덕   24. ䷗ 지뢰복(地雷復)   지뢰복은 地(☷:坤)가 위에 놓이고 雷(☳:震)가 아래에 놓인 괘상으로 땅 속에서 양이 생기기 시작하여 회복하는 모양을 이루니 地雷復이다. 復은 종자인 한 양(日)이 깊은 땅 속에서 서서히 움터 나오는(⼻, 行, 也) 뜻을 가지고 있다. 내면에는 움직임이 있고 외면으로는 유순함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움직여 나아감이 순조로운 모양을 이루고 있다. 復卦는 동짓달(음11월)괘로서 음이 극성한 때이다. 땅 속에서 초목이 발아하는 모습인데,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를 가지며, 서두르지 않고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 사람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初爻만 양이고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모양으로 첫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는 방법이다. 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작은 양의 새싹이 움트는 형국으로 절망 중에 희망을 묘사하는 시이며, 혼탁함 속에서 근본을 찾고자 하는 시이다.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소생하는 봄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정신, 현실, 의지를 표현하는 시쓰기로 새로운 시작의 모양을 뜻하고 있다. 사상으로 표현하면 땅에 속한 물질적인 존재의 미미한 변화만 감지될 뿐, 땅의 형이상적인 형태나 人의 형이상적인 면이나 형이하적인 면들은 모두 음의 상황이다. 또한 하늘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하늘이나 추상적인 하늘이 모두 음의 상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하늘도, 사람도, 땅도 다 어두운데 땅 속에서만 미미한 생명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불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며, 시의 제목이나 주제의식에 맞는 하늘적인 요소(눈에 보이는 sky든 정신적인 이상세계든)와 사람과 연관된 삶이나 관념, 또한 땅에 속한 모든 사물과의 차원적인 관계에서 땅의 사물적 요소만이 양으로 표현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양의 사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양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의 사물이다. 팔괘로 보면 우레의 에너지가 땅 속에 살아있는 것이 復의 괘상이다. 겹겹이 쌓인 여러 음효 밑에 다만 한 개의 양효가 있는데,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고 있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몰 직전의 잔광과 같은 산지박의 시쓰기의 정반대로 극한의 벽을 뚫고 빛이 보이는 새벽과 같은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한 줄기의 어린 광선이지만 그것은 장차 천지를 지배하며 음기와 암흑을 정복하여 퍼져가는 광명이다. 첫째 단락은 변화하고 생동하는 우레의 형상을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암흑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땅의 형상을 그림으로써 잠에서 깨어나는 천지만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지뢰복의 변괘 중 호괘는 여성적 정한의 감정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 산지박(山地剝), 배합괘는 음적 대상도 아름답게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착종괘는 환유적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이다. [출처] 24.지뢰복 |작성자 김기덕   *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   효의 입장에서 시의 형식을 보면 여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효가 꼭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효가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내용적 연결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섯 개의 효가 압축되어 세 개의 효로 구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重天乾(䷀)은 乾(☰)으로, 重地坤(䷁)은 坤(☷)으로, 山澤節(䷨)은 離(☲)로, 雷風恒(䷟)은 坎☵과 같이 압축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개의 문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세 개의 문장도 乾(☰)은 양(⚊)으로, 坤(☷)은 음(⚋)으로, 離(☲)는 음(⚋)으로, 坎(☵)은 음(⚋)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배치의 형태를 참고하여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하나의 시 전체를 천 ‧ 인 ‧ 지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는 차원의 구분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한 우주만물의 차별적 시각이다. 이 천 ‧ 인 ‧ 지 속에 우리가 쓰고자 하는 모든 시적 대상들이 다 들어 있다. 그 대상을 차원에 따라 구분하여 시의 배치에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과 재배치의 효율성은 논리마인드맵 기법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마인드맵 기법은 둥치에서 줄기, 줄기에서 가지, 가지에서 잎이나 열매로 분화되듯이 주역적 시쓰기에서는 태극에서 양의, 양의에서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분화되는 과정을 공부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태극이 양의, 사상, 팔괘, 육십사괘가 되듯이 하나의 문장이 두 문장, 두 문장이 네 문장, 네 문장이 여덟 문장, 여덟 문장이 육십사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반대로 육십사 개의 문장이 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두 문장이 될 수도 있으며, 여덟 개의 문장이 두 개의 문장, 네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밀한 법칙이 존재하고 그 법칙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사상의 기본적 요소는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이지만 이 네 가지의 상이 육십사괘에서는 천 ‧ 인 ‧ 지의 여섯 개의 효 구조로 배치되기 때문에 세 개의 단락을 형성한다. 이 단락은 표면적인 단락과 이면적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 ‧ 서 ‧ 결이나 서론 ‧ 본론 ‧ 결론의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 팔괘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육십사괘는 乾 ‧ 兌 ‧ 離 ‧ 震 ‧ 巽 ‧ 坎 ‧ 艮 ‧ 坤의 팔괘가 중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팔괘는 세 개의 효로 이루어져 세 개의 문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이 세 개의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육십사괘는 다시 팔괘가 될 수 있고, 팔괘는 사상이 될 수 있고, 사상은 하나의 태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로운 확장과 분화, 팽창이 가능하고, 또한 수축과 압축, 절단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십사괘의 설명과정에서 문장이나 단락으로 표현된 것들은 정확무오한 문법적 해석을 통한 명칭이 아니라 보다 확산되고 재조명된 유연한 명칭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처]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25. ䷘ 천뢰무망(天雷无妄)   천뢰무망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雷(☳:震)가 와서 하늘 아래 우레가 울리는 모양으로, 뇌성벽력이 울리면 누구나 하늘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듯이 천도를 따라 바르게 행하므로 无妄이다. 无妄은 하늘의 마음을 갖고 여색을 멀리하며 본성 그대로 행한다는 뜻이 있다. 본성을 회복하면 망령됨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위에 있는 하늘은 강건하고 아래에 있는 우레는 진동하니 강건하게 나아가는 덕을 갖춘 상으로, 하늘과 같이 공정무사하고 강건한 도로써 본연의 마음을 지켜 하늘에 순응하는 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한 후 나머지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 문장은 모두 양으로 배치하는 형식이다. 망령됨이 없이 하늘의 뜻을 따라 쓰는 방법으로 시인의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하늘의 큰 진리를 쓰고자 하는 방법이다. 자칫 관념적으로 치우치기 쉬우나 절대적으로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와 人(⚎:소양)이 대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서 서로의 생각이나 표현이 통일을 이루기가 어려우나 天(⚌:노양)이 밝고 강건하므로 하늘의 뜻을 따라 행하면 다툼이나 거침이 없고 통일된 주제 의식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의 전개가 형이상적이고 관념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물을 끌어와 배치관계를 이미지적으로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사물의 속성이나 시인의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보다 넓은 보편적 진리나 원리를 생각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은 우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가 많고 흔들림이 많은 것이지만 생기가 가득한 단락이다. 두 번째 단락은 지적이고 강건하며, 하늘의 큰 이치가 담긴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레는 땅을 의미하고, 안을 의미하며, 물질적인 형이하를 의미하지만 乾은 하늘을 의미하고, 밖을 의미하며, 형이상을 의미한다. 형이상적인 단락과 형이하적인 단락이 대치를 이루나 형이상적인 단락이 시의 주제성을 이끌고 중심역할을 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따르는 시쓰기이다. 천뢰무망은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가 위에 있고 우레를 의미하는 진괘가 아래에 있어 우레가 하늘에서 크게 진동하고 있는 모양을 상징한다. 이는 하늘의 엄한 뜻이며 세상을 호령하는 하늘의 명령인 것이다. 하늘의 시각에서 세상과 인간을 향해 우레 같은 의미의 시를 표현으로 나타내 주어야 하는 시이다. 天雷无妄의 변괘 중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꾀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시 ䷙ 산천대축(山天大畜), 배합괘는 대지를 뚫고 나오는 나무의 기상을 간직한 ䷭ 지풍승(地風升), 착종괘는 강렬한 남성적 정서에 대한 여성적 정서의 조화를 이룬 ䷡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출처] 25. 천뢰무망|작성자 김기덕   26. ䷙ 산천대축(山天大畜)   산천대축은 山(☶:艮)이 위에 있고 天(☰:乾)이 아래에 있어 물건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높이 쌓이는 모양이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는 뜻으로 아래의 하늘은 大 ‧ 玄, 위의 산은 田의 모양이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그침이 있으니 산에 하늘의 도가 밀려와 크게 쌓이는 이치가 있다. 흙이 크게 쌓여야 큰 산을 이루고 사람도 학문과 경험이 쌓여야 큰일을 행할 수 있듯이 글을 씀에도 크게 쌓은 사람과 쌓은 것이 없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효를 분석해보면 첫째, 둘째, 셋째 효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강하고 튼튼한 받침대를 형성하듯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감정과 정서, 의지의 표현이 긍정적이고 강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유약한 음이 합하여 모이는 형식이다. 하늘의 양기가 아래로 내려 모이는 것이 대축이다. 또한 밑의 세 양은 흐르는 강물과 같지만 위에 있는 두 개의 음이 가로막음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마지막 상구는 막혔던 것이 넘침으로 한 순간 세상을 범람하게 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산천대축의 효를 통한 시쓰기는 初九, 九二, 九三의 격앙된 감정이 六四, 六五에서 절제되고 응축되어 고인 내적 감정이 마지막 문장에서 승화되어 흘러넘치는 시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양(⚌)으로 강하고 건실한 힘이 넘친다. 人은 소음(⚍)으로 내면은 강하지만 외적인 표현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래서 유약한 감정이 넘치려 하지만 天이 이러한 감정을 억제하고 누르면서 강하고 희망적인 승화의 과정을 나타낸다. 大畜은 장애요소가 클수록 큰 감정을 싹틔우고 큰 감정이 승화되어 보다 더 큰 감동을 만들어 내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산 속에 들어 있는 하늘이다. 산 같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하늘의 큰 뜻이다. 이러한 큰 뜻은 인생의 풍상을 견디고 산같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많이 쌓여 있다. 깊은 내공을 쌓고 그 내공을 풀어내는 시쓰기이다. 산이 그 속에 하늘의 큰 에너지를 받아 축적하고 있는 상태이다. 산은 현실이나 사물적인 것이지만 하늘은 이것들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이며, 형이상적인 상징성을 의미한다. 산 속에 감추어진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 요구되는 방법이다. 비행기를 타고 밀림지대를 날아보면 나무의 바다, 풀의 바다가 펼쳐진다. 대해의 물굽이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과 나무들을 키우는 산의 힘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산이 기르는 힘,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상징적인 접근 방법이다. 山天大畜의 變卦 중 호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이어주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인 ䷘ 천뢰무망(天雷无妄), 배합괘는 산문형식의 시인 ䷬ 택지취(澤地萃), 착종괘는 철학적, 종교적 시각인 ䷠ 천산돈(天山遯)이다. [출처] 26. 산천대축|작성자 김기덕   27. ䷚ 산뢰이(山雷頤)   산뢰이는 山(☶:艮)이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며, 인체로는 턱의 형상으로 위턱은 그쳐있고 아래턱은 움직임으로써 물건을 씹어 몸을 기르는 상이 山雷頤이다. 頤의 의미를 풀이하면 臣(신하신)은 六二부터 六五까지의 음효를 의미하며, 頁(머리혈)은 上九 양효가 머리가 되어 뭇 효를 기른다는 뜻이다. 上九 양효가 위턱이 되고 初九 양효가 아래턱이 되며, 중간의 음효들이 이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頤는 음식을 씹어서 몸을 기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수양하여 자신을 기르고 남을 기르는 修己治人의 의미를 가진다. 효로 풀이하면 아래턱과 위턱을 의미하는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빨을 상징하는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식이다. 이는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도 있게 먹듯 艮으로 그치고 아래의 震으로 동하며, 가운데는 비어있는 입의 모양이다. 마음을 비우고 언어를 절제함으로 시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산뢰이는 대나무와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강하고 단단함이 표면을 감싸고 있지만 내부는 텅 비어서 가볍고 휘어질 수 있는 덕이 있다. 강직함과 절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비우고 푸른 정신으로 꼿꼿한 선비정신과 같은 기질의 시쓰기이다. 또한 속이 빈 피리의 소리와 같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인내와 의지가 담긴 양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서 피리는 강하지만 그 소리는 구슬프고 가냘프듯 시의 형식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 산뢰이는 ☲의 상으로 땅과 하늘은 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만 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형이상적인 정신세계와 형이하적인 물질세계가 양적요소로 생기가 가득하지만 시인 자신만 음의 감정에 충일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음의 감정은 슬픔과 절망에 찬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죽임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空의 세계와 같은 것이다. 비어 있음으로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 물질과 정신 속에서의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내면 비우기와 같은 시이다. 팔괘로 보면 산뢰이는 턱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맨 아래와 맨 위의 양효는 잇몸과 같고 그 안에 있는 네 개의 음효는 이빨처럼 보인다. ☶(산)은 위턱, ☳(우레)는 아래턱과 같은데, 산은 그친다는 뜻으로 움직이지 않는 위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레는 움직인다는 뜻으로 씹을 때 움직이는 아래턱과 같은 이치를 담고 있다. 이렇게 씹음으로써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기른다는 의미의 산뢰이는 물고기를 기르는 바다와 같고, 나무를 기르는 숲과 같으며 새를 기르는 하늘과 같은 것이다.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남에게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기르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워 쓰는 시가 山雷頤의 방법이다. 산뢰이의 호괘는 ䷁ 중지곤(重地坤)이며, 배합괘는 처음의 의도가 새롭게 변함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 착종괘는 음적 요소들이 주변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시인은 양에 가득찬 시쓰기의 ䷽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출처] 27. 산뢰이|작성자 김기덕   28. ䷛ 택풍대과(澤風大過)   택풍대과는 澤(☱:兌)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있는 상으로 兌(西方金)에 의해 아래의 巽(東方木)이 金克木을 당하여 멸실되며, 本과 末이 虛하여 전도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大過의 大는 큰 하늘을 의미하며, 過는 지나감을 뜻하니 天道가 변하는 중천과도기를 의미한다. 대과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는데, 하나는 큰 허물이 있음을, 다른 하나는 지나간다는 뜻이다. 대과에는 하늘의 도가 크게 변함을 의미하는 뜻이 담겨 있어서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때로 정신문명에서 물질문명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오늘날과 같은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 대과는 강한 양이 중간에 끼어 있어서 견실함이 있으나 아래와 위가 허한 음으로 이루어져 본말이 전도되는 상으로, 過는 나아가는 과정(辵:쉬엄쉬엄 쉬어갈 착)이 지나쳐 입이 삐뚤어짐(咼:입이 삐뚤어질 괘)을 의미하여 변하는 속도가 빠름을 말한다.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작품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과 끝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음의 문장에 비해 양의 문장이 많음으로 인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진리의 비진리, 참에 대한 거짓, 논리에 대한 비논리, 의미에 대한 무의미의 추구와 같은 형식으로 의외성이 있거나 비틀기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흙, 땅, 지구 등의 형이하적인 요소 중 음의 요소를 취하되 地의 형이상적인 지옥, 어둠의 세계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를 취함으로 개인적인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 또한 人은 노양(⚌)으로 동물적, 육체적인 형이하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영혼의 형이상적인 면까지 양적인 문장, 해석으로 접근되어 있다. 거기에 天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天의 세계를 제외한 우주적인 형이하의 세계를 양의 세계로 표현하고 다가감으로 지나친 개인적 해석과 주관적 감정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大過卦는 양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이니 시인의 감정과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주관적으로 치우친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적 무리가 따를 수 있으며 균형적 배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불균형의 형식을 가질 수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바람(☴:巽) 위에 놓인 연못(☱:兌)과 같은 모양으로 물 위에 거센 바람이 불어 어지러운 풍파를 일으켜 놓은 듯한 혼란과 불안의 상태이다. 또한 형상이 네 개인 양효와 위아래로 갈라져 있는 두 개의 음효로 되어 있어서 음양의 조화를 잃고 있다. 예를 들면 남녀관계에서 첫효는 사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격이요, 육효는 삼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사랑하는 격이니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듯 시에서도 균형과 조화보다는 불균형과 부조화, 그리고 지나친 자기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택풍대과의 변괘 중 호괘는 ䷀ 중천건(重天乾)이며, 배합괘는 ䷚ 산뢰이(山雷頤), 착종괘는 주변 사물로 인해 힘을 얻는 ䷼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출처] 28. 택풍대과|작성자 김기덕   29. ䷜ 중수감(重水坎)   중수감은 위와 아래에 모두 물(☵:坎)이 중첩한 상으로 거듭 험난한 데 빠져 있는 모양이다. 坎은 흙이 파여 구덩이를 이룬 모양으로 어렵다는 뜻과 물이 흐름으로써 흙이 쓸려 파이게 되는, 흐르는 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은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이나 위와 아래의 중에 양이 거하여 중심을 잡아줌으로 양의 강건함이 물 흐르듯 하여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 주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과 셋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또한 넷째, 여섯째 문장도 다섯째 문장이 중간에서 양의 문장으로 기둥 역할을 함으로써 주제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즉 음의 문장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형을 꾀하더라도 중심 문장인 양의 문장에서 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잡아 주고, 사고를 한 점으로 모아 줌으로써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人은 노음(⚏)으로 자신의 지나친 감정에 빠져 있는 상태이지만, 天(⚍:소음)과 地(⚎:소양)가 중심을 잡아 줌으로써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人(⚏:노음)의 음적 상상력이 天과 地의 양에 의해 제한되어서 주제의식이나 시적 의도에 갇힘으로써 정서적 안정, 내용적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도 물(☵:坎)이요, 아래도 물이므로 두 가지 물이 하나로 잘 섞이는 상태이다. 그래서 첫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이 의미상 크게 달라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의 모양을 살펴보면 단락 속에 하나의 핵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이 핵은 주제적 묘사일 수도 있고, 으뜸 되는 철학일 수도 있고, 가장 강렬한 표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핵을 가진 단락의 중첩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이미지를 집약할 수 있다. 중수감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며, 배합괘는 음이 중심을 잡아주는 ䷝ 중화리(重火離), 도전괘와 착종괘는 부도전괘인 ䷜ 중수감(重水坎)이다.     30. ䷝ 중화리(重火離)   중화리는 상과 하에 불(☲:離)이 거듭된 모양으로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형상이다. 離는 짐승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모양으로 새(隹)와 산짐승(离) 등이 그물에 걸림을 뜻하며,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돌아감과 같이 ‘떠나다’, ‘환하다’, ‘흩어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안팎으로 밝고 환한 세상을 이뤄 만물을 기르는 모양이다. 시간적으로는 밝은 한낮의 때이며 중천을 의미한다. 괘의 모양을 보면 중수감과 반대의 상황이며, 음과 양의 역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중수감의 해석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중수감은 왕성한 음의 감정을 모아 양의 문장이 기준을 잡고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重火離는 강한 양의 감정을 음의 문장이 중심을 잡고 음의 감정으로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는 방법이다. 양의 감정은 자칫 들뜨기 쉽고 긍정적이며 순응적이어서 평범할 수 있으나 음의 비판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요소가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세워 비범하게 해 주는 시쓰기이다. 효의 시각에서 보면 양의 문장들 가운데 음의 문장을 놓아 차분한 감정의 전개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확장하고 퍼져가고자 하는 양의 성질을 응집시켜 집중시키는 역할을 음이 해 줌으로써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에 따른 통일성 있는 시쓰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아도 人(⚌)의 노양이 天과 地의 음에 막혀 절제되고 함축되는 의미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離는 불탄다는 뜻으로 해와 달은 하늘에 걸려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은 땅에 정착하여 자라고 있다. 그럼으로 천지는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광명의 세계가 된다. 날마다 새로운 빛, 한결 같은 정열, 젊음과 생명이 약동하는 밝은 세계를 그리되 그 안에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어둠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불이 타는 불 속에는 재가 생기고 구멍이 생기듯이 눈부시게 빛나기만 하면 가까이 할 수 없다. 밝고 아름답기만 한 사물 속에서 어찌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진정한 생명의 글은 밝은 빛 속의 그늘이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중수감이나 중화리의 글쓰기는 주제의 통일이나 핵이 되는 묘사를 통해 시적 감정을 통일시키는 기법이다. 중화리의 변괘 중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배합괘는 ䷜ 중수감(重水坎), 착종괘, 도전괘는 부도전괘인 ䷝ 중화리(重火離)이다. [출처] 30. 중화리|작성자 김기덕   31. ䷞ 택산함(澤山咸)   택산함은 산(☶:艮) 위에 못(☱:兌)이 있는 모양으로 산의 양기는 아래로 향하고 못의 음 기운은 증발하여 위로 올라가 서로 통하는 형상이다. 산과 연못의 기운이 상통하고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상이니, 咸은 서로 느껴 함께하는 뜻이다. 咸은 서로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로 합하는 ‘다 함’의 뜻을 갖고 있다. 感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咸은 보다 포괄적인 뜻으로 모든 음양의 기운이 서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자연적으로는 하늘의 양기는 산을 거쳐 땅으로 내리고 땅의 음기는 못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 교통함을 의미한다. 인간적으로는 소남과 소녀가 느끼는 것으로 교합을 의미하며, 수도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도통하는 것이 咸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셋째에서 다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다가 다시 마지막에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음과 양이 교합하여 감정을 주고받듯 서로 상통하는 감상적인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 人은 노양(⚌)으로 이루어지고 天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는 음적이어서 받아들이고, 人은 양적이어서 발산하고, 天은 강함을 순하고 부드러움으로 조화시켜 서로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하늘의 성기인 산이 아래에 있고 땅의 성기인 못이 위에 있는 상으로 서로 기운이 통하는 상태이다. 시쓰기에서도 사람과 세상 모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용적으로는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것을 의미하며, 기법적으로는 활유적인 기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세계가 통할 수 있는 시쓰기로 지적인 배치가 아니라 정서적인 배치를 이루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咸은 感과 같다. 즉 느낀다는 의미로 음과 양의 두 에너지가 감응하고 협력하여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택산함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적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항구한 이치를 발견하고 쓰는 시인 ䷟ 뇌풍항(雷風恒), 배합괘, 착종괘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巽)이다. [출처] 31. 택산함|작성자 김기덕    뇌풍항(雷風恒)   뇌풍항은 雷(☳:震)가 위에 있고 유순한 風(☴:巽)이 아래에 있어서 함께 순응하여 움직인다. 천지의 법칙은 항구하여 그치는 일이 없다. 하나가 마치면 하나가 시작된다. 해와 달은 하늘의 항구불변의 원칙을 얻었고, 춘하추동의 사계절은 항상 변화하며 있기 때문에 영원한 순환을 계속할 수 있다. 성현도 그 도를 지켜 항구해야 비로소 천지교화가 가능할 것이다. 항구한 것을 깊이 관찰함으로 천지만물의 실상을 볼 수 있듯,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맞는 시쓰기가 바로 뇌풍항이다. 恒은 천지간(二)의 日, 月(日)이 서로 짝하되 끝없이 왕래 순환함으로써 영구히 주야를 밝히듯, 서로의 마음을 합하여 부부로서 항구한 도를 갖춤을 의미한다. 안으로 음목이 뿌리박고 밖으로 양목이 뿌리를 뻗어 장구히 생장하는 모양이며, 인사적으로는 장남이 위엄을 보이고 장녀가 공손히 집안일을 주장하는 상으로 부부의 도를 이루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에 음의 문장이 오고 양의 문장이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온 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음의 문장이 와서 음과 양의 조화와 균형을 통한 항구적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뿌리를 박고, 人(⚌)은 성장하고, 天(⚏)은 씨앗을 맺음으로 항구적인 법칙을 말하고 있다. 항구한 법칙의 원리를 통해 변함없는 진리의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우레와 바람은 만물을 흔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잠시도 머무르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은 움직임으로, 곧 살아 있음으로 그 상태를 지속할 수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지되고 고정된 것이 계속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시,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영원할 수 있다. 그것은 사고의 정지와 고정이 아닌 변화와 새로움이며 형식의 낯설게 하기이다. 뇌풍항의 호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 택산함(澤山咸), 배합괘, 착종괘는 위에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주는 ䷩ 풍뇌익(風雷益)이다. [출처] 32. 뇌풍항|작성자 김기덕   33. ䷠ 천산돈(天山遯)   천산돈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山(☶:艮)이 있는 모양으로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하늘이 부여한 명을 지키는 상이다. 遯은 돼지(豚: 돼지 돈)와 같이 어리석은 체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를 닦는(辵-쉬엄쉬엄 쉬어갈 착: 점차 움직여 나아감) 의미가 있다. 괘상에서도 아래의 두 음(소인)이 자라 점차 네 개의 양(군자)을 핍박하는 형상이다. 遯은 안으로 산과 같이 굳건한 절개와 자제를 행하고 밖으로는 하늘과 같이 강건한 도로써 소인을 교화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에서 보자면 천산돈은 소인배적인 생각, 즉 형이하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형이상적인 생각으로 뻗어감을 의미하는 형이상시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시는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인식과 철학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시로 철학적, 종교적 경향을 지니게 된다. 형이상시의 중요한 특징은 기상(奇想-conceit)을 중심으로 한 구조인데, 기상은 두 가지 사물이나 개념을 교묘하고 대담하게 연결하여 뜻밖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시 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 문장이나 둘째 문장은 형이하적인 사물을 끌어오지만 셋째에서부터 여섯 번째까지는 끌어온 사물과 연결되는 추상적 이미지를 배치시키는 방법이다. 밑에 두 개의 음효는 형이하적인 것이며 사물적인 요소이지만 이 요소들이 억눌리면서 형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대체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현실적인 생각, 범속한 것이나 비천한 것을 의미하는데 人과 天은 노양(⚌)으로 성에 속한 것이나 정신적인 것,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사물의 평범성을 땅에서 취하여 시인의 고결한 정신을 통해 새로운 정신세계를 창출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질적이고 비천한 것은 억제되고 정신적이고 고결한 것은 상승하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산인 첫째 단락과 하늘인 둘째 단락의 배치를 통해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방법이다. 천산돈은 선비적 은둔사상의 발로가 되었다. 은둔 속에 세상을 피해 자신만의 도를 닦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곧 물질이나 사물 그 자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철학, 새로운 추상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의 시쓰기 방법이다. 천산돈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의 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강한 남성적 출발에 여성적 마침을 가짐으로 음양의 균형을 꾀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배합괘는 생수처럼 솟는 원천의 시인 ䷒ 지택림(地澤臨), 착종괘는 웅장한 스케일의 ䷙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출처] 33. 천산돈|작성자 김기덕   34. ䷡ 뇌천대장(雷天大壯)   뇌천대장은 아래에 天(☰:乾)이 있고 위에 雷(☳:震)가 울리는 모양으로,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크게 움직여 씩씩한 상을 나타내고 있다. 大壯의 大는 하나(一)가 둘(人)로 늘어나 커지는 것이며, 壯은 문무를 겸비한 장부(士)가 방패(爿: 널빤지, 방패)를 들고 전진함을 뜻한다. 하늘 위에 뇌성이 울리는 괘상으로 양기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시기적으로는 2월(음)로서 양기가 성장하여 초목이 움터 나오려는 때이고 방위로는 동방인 묘에 해당하니 출문하는 의미가 있다. 시에서는 너무 강렬한 의식의 일방적 진행은 시적 정서를 떨어뜨리고 양적 요소에 치우침으로 구호적 성격이 되기 쉽다. 이러한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끝에서 여성적인 정서를 끌어와 남성적 이미지의 상쇄를 꾀하는 방법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엔 음효를 배치함으로써 상승된 격정적 감정을 눌러주고 차분한 이미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에서 마무리를 어둡고 부정적인 색깔로 처리함으로써 밝은 모습으로만 뻗어가려는 흐름을 끊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노양(⚌)으로 물질이나 심리상태가 모두 양이다. 이런 양적 요소에 노음(⚏)인 天을 배치하여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정으로 끝을 맺었다. 이는 상반된 감정을 끌어와 불타듯 왕성한 의지적 이미지를 억누름으로 보다 더 양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하늘 위에서 우레가 울고 있다. 크게 뻗어가는 상이며 번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뻗다보면 교만해지고 또 가벼워질 수 있는 상태에서 음적 요소로 끝맺음으로 무게와 깊이를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천대장의 변괘 중 호괘는 양의 일관된 진행에 대한 마지막 뒤집기의 ䷪ 택천쾌(澤天夬)이며, 배합괘는 군자의 교화와 같은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의 ䷘천뢰무망(天雷无妄)이다. [출처] 34. 뇌천대장|작성자 김기덕   35. ䷢ 화지진(火地晉)   화지진은 땅(☷:坤) 위로 불(☲:離)이 나온 모양으로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올라 나아가는 일출과 같다. 晉은 밝은 기운(日)이 地間(二)에 나타나 환히 밝힘을 가리키니 ‘나아가다’, ‘눈동자’의 뜻이 있다. 晉은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므로 해가 땅 위에 떠올라 세상을 두루 비추는 일출의 모양이니, 본래의 성품을 밝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효로 풀이하면 地의 첫째, 둘째, 셋째 문장은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의 세 음은 어두운 땅과 같은 현실을 의미한다. 이 어두운 땅, 이슬 젖은 눈물의 땅을 태양이 떠올라 밝게 비추듯이 地의 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이룬다. 이 음의 문장이 있은 다음 네 번째로 양의 문장이 와서 어둠을 가시게 하고 젖은 눈물을 말려 주게 된다. 다섯째 문장에서는 아직 덜 마른 땅처럼 음이 남아 있고,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밝고 희망적으로 배치함으로 힘을 내 정진하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어둠과 눈물의 땅이지만 人에서 소양(⚎)은 내적 어둠을 묻고 밝은 빛으로 나타남으로 희망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天도 마찬가지로 소양(⚎)으로 차츰 어둠을 걷고 밝아지는 느낌의 방식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晉은 進과 같다. 밝은 태양이 지평선 위에 나타나 순차적으로 하늘에 올라 大明의 세상을 이뤄가는 기상이다. 하늘로 오르는 태양은 아침의 태양이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만물을 따뜻하게 감싸는 꿈과 희망의 시가 바로 火地晉이다. 화지진의 변괘 중 호괘는 꿈과 희망을 밝히는 화지진의 내면은 슬픔과 고통의 극복임을 의미하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배합괘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염원의 ䷄ 수천수(水天需)이고, 도전괘 및 착종괘는 절명시나 비탄시의 ䷣ 지화명이(地火明夷)이다. [출처] 35. 화지진|작성자 김기덕   36. ䷣ 지화명이(地火明夷)   지화명이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불(☲:離)이 있는 상으로 해가 져서 땅 속으로 들어간 모양으로 밝음이 어두움에 묻힌 상태이다. 明夷의 明은 日과 月의 會意字로서 해와 달이 주야로 밝힘을 의미하며, 夷는 大+弓 으로 큰 활로 인해 상처를 입음을 의미한다. 明夷는 안으로는 밝으면서도 밖으로는 유순함으로 행하는 상이다. 시에서는 밝은 감정을 숨기고 우수와 고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음으로 배치하여 해와 달이 사라진 암흑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절명시나 비탄적 감정의 시로 꿈과 희망이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음(⚍)으로 안으로는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밖으로 밝게 표현하지 않고 어둡고 음침하게 표현함으로 음적인 감정표현이 된다. 또한 天은 노음(⚏)으로 음적인 감정이 발전 심화됨으로 어둠은 더욱 어둡게, 슬픔은 더욱 슬프게 표현되어 절망적인 비탄의 감정이 지배하게 된다. 팔괘로 풀이하면 첫째 단락은 해나 달 같은 밝음이 오지만 두 번째 단락에서 지하에 갇히게 됨으로 기쁨이나 행복은 사라지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만 남아서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밝은 감정도 어둡게 몰아가는 방법으로 감정의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고난을 참고 견디는 모양으로 인내하고 견디는 고난극복의 상이다. 明夷는 태양이 땅 속에 들어간 상태, 고난에 처한 상태이며, 밝은 것이 패하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보다는 어둡고 험한 세상을 표현하고, 그 속성에 맞는 사물의 배치를 이루어 절망적으로 나아가는 시쓰기이다. 지화명이의 변괘 중 호괘를 살펴보면 ䷧ 뇌수해(雷水解)이며, 배합괘는 ䷅ 천수송(天水訟), 도전괘, 착종괘는 ䷢ 화지진(火地晉)이다. 변괘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변괘는 본괘에 대한 다른 방향의 시각이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본괘라는 하나의 사물이 있다면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밑에서 보고, 속에 들어가서 봄으로 그 사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시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 [출처] 36. 지화명이|작성자 김기덕   37. ䷤ 풍화가인(風火家人)   풍화가인은 안으로 불(☲:離)이 있고 밖으로 바람(☴:巽)이 불어 바람을 타고 불이 성하는 모양이며, 밖에서 들어와 안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아래의 離(☲)는 밝은 생명력을 뜻하는 人이요, 위의 巽(☴)은 안을 가지런히 정돈함을 의미하니 齊家의 家에 해당한다. 또한 장녀(巽)가 위에서 가사를 이끌고 중녀(離)는 아래에서 밝게 응하니 가인이다. 가인은 집안을 바르게 하는 괘이다.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제 몸을 먼저 닦아야 하듯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가인의 시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이다. 효로 살펴보면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의 반복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장의 배치는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다가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양과 음이 섞여서 갈등과 고민, 번뇌의 모양을 이루다가 天(⚌)에서 긍정과 화합과 깨달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는 속과 성이 섞인 세상의 삶에서 성을 깨닫고 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적인 성향의 자기성찰적인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家人은 집안사람이란 뜻으로 가족을 의미한다. 바람과 불을 가정의 심볼로 표현했는데, 불이 타면 바람이 생기고 바람은 다시 그 불을 부채질하여 확대 발전된다. 이는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바른 길이 시작되고 국가와 사회로 뻗어가 큰 발전을 이룸과 같다. 시에서는 가정의 바른 도는 수신에서 시작되듯이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으로써 시의 큰 발전은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풍화가인의 시쓰기는 내면으로 돌아가 근본을 살펴봄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풍화가인의 변효 중 호괘는 비정석적, 비상식적인 부조화의 배치인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어긋남에 의해 강조되는 시인 ䷥ 화택규(火澤睽), 배합괘는 강한 감정표출의 ䷧ 뇌수해(雷水解), 착종괘는 불을 때듯 하는 간절한 시의 ䷱ 화풍정(火風鼎)이다. [출처] 37. 풍화가인|작성자 김기덕   38. ䷥ 화택규(火澤睽)   화택규는 연못(☱:兌)이 아래에 있고 불(☲:離)이 위에 있는 모양으로 밖의 불은 위로 타오르고 안의 연못물은 아래로 고여서 서로 어긋나게 나아가는 상이다. 괘상으로 볼 때 離는 日行을 뜻하고 兌는 月行을 가리키는데, 일행도수에 비해 월행도수가 어긋나는 것이 규이다. 나무를 구부리고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세상에 보임은 睽卦에서 取하였다고 한다.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에서 어긋남에 의해 시가 강조되고 강렬해져 깊은 감동을 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칭적, 또는 대조적인 표현 기법을 통해 감동을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도입부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문장만 양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이 와서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이 교차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서로 어긋나는 반대 방향의 시각, 표현을 통해 도입부에 제시한 표현을 강조하고 의미를 확장시키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확실한 주제적인 표현을 내걸고 그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표현을 人(⚎)이나 天(⚎)에서 대조적, 대칭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의미의 확장을 꾀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처음의 주제적 표현을 강조해 주는 시쓰기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연못(☱)은 불과 물의 관계처럼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은 위로 솟아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의 향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다. 이는 강한 반발심을 의미하며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睽라는 한자의 뜻이 ‘사팔눈’, ‘노려보다’, ‘등지다’의 의미이듯 삐딱한 시각, 거꾸로 보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가 ‘삐딱하게 보기’이며, ‘거꾸로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시인들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음과 양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끌어오거나, 오행의 상극의 관계를 알고 사물을 끌어온다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 또는 ‘반대적인 접근’, ‘대칭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시의 정서나 의미를 강조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화택규의 변괘 중 호괘는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 배합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정서의 ䷦ 수산건(水山蹇), 착종괘는 대결구도적 배치의 ䷰ 택화혁(澤火革)이다. [출처] 38. 화택규|작성자 김기덕   39. ䷦ 수산건(水山蹇)   水山蹇은 水(☵:坎)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처한 모양인데, 험한 것을 보고 안에서 그쳐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를 어기고 전진한다면 큰 난관에 빠지므로 경계하여 蹇이라 하였다. 蹇의 의미를 살펴보면 외괘인 坎은 北方水로서 추운 겨울철에 해당하여 寒이고, 내괘인 간은 그치는 것이므로 발(足)이 얼어붙어 나아가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시에서 蹇의 상황은 큰 난관에 부딪혀 절망에 빠져있는 감정을 의미하며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음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그리고 다섯째는 양의 문장이 온 후 여섯째는 음의 문장이 오는 형식이다. ‘첫째 문장’이나 ‘둘째 문장’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문장의 개념은 표면상의 한 문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상, 내용상의 문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첫 번째’라고 표현했더라도 두 개, 또는 세 개의 문장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蹇의 여섯 효는 山戰水戰의 험난한 역경을 겪은 괘상이며, 산 위에서 비를 만나는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삼효와 오효가 양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효는 산의 꼭대기, 곧 높은 이상과 같은 것이고, 오효는 자아를 상징하므로 높은 이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은 절망적이기 때문에 그 절망감은 더욱 큰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한겨울과 같으며, 人과 天은 소음(⚍)으로 새싹을 기다리는 봄과 같다. 이는 한겨울의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봄을 열망하지만 현실은 아직 얼어붙은 동토의 극심한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시에서도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듯이 봄을 기다리는 한겨울의 삭막한 감정이 더욱 절박한 것과 같은 절망적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산과 물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험난한 형국으로 첫째 단락은 山(☶:艮)으로 막힘이 있는 정서의 답답함을, 둘째 단락은 水(☵:坎)로 구덩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표현하는 절망적 표현기법이다. 수산건의 변괘 중 호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 뇌수해(雷水解), 배합괘는 ䷥ 화택규(火澤睽), 착종괘는 ䷃ 산수몽(山水蒙)이다. [출처] 39. 수산건|작성자 김기덕   40. ䷧ 뇌수해(雷水解)   뇌수해는 위로 움직임이 있는 우레(☳:震)가 動하고, 아래에는 험한 물(☵:坎)이 있어 움직임으로써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외괘인 震은 밖으로 움직여 나오는 것이니 童牛의 뿔(角) 형상이다. 내호괘인 離는 伐兵의 상으로 刀가 나오며, 中虛하여 심성이 유순한 牛로 나타나기도 한다. 解는 험한 내적 과정을 지난 후 밖으로 순순히 풀려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괘인데, 시에서는 가슴에 맺혔던 감정을 밖으로 술술 풀어내는 감정표출의 시를 의미한다. 일부는 측상의 시, 배설의 시라고도 하지만, 여기에는 감정의 절제와 언어의 조탁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적절한 묘사가 필요하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째는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며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뇌수해의 모양을 보면 이효와 사효의 양이 열린 입과 같고, 삼효는 입안의 여자 혀와 같은 형상으로 쏟아내는 감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안에 맺힌 것들이 풀려 나오는 형상이지만, 아직 天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는 天(마음)에 맺힌 감정들이 人(언어)과 地(행동)로 표출되고 있는 과정을 나타내 주고 있다. 팔괘롤 풀이하면 뇌수해의 우레는 움직이는 것이고 물은 험난한 것이므로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상징한다. 봄 우레에 봄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레가 울고 봄비가 내리면 얼었던 세상이 풀리며 온 세상에 초목이 피어나듯이 해는 풀리는 감정을 의미한다. 첫째 단락은 坎으로 고난이나 심적 갈등에 대한 표현을 의미하며, 두 번째 단락에서는 변화에 대한 도약적 감정의 표현을 통한 감정표출의 시이다. 뇌수해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서적 안정을 이룬 높은 성취도의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큰 난관의 ䷦ 수산건(水山蹇), 배합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 ䷤ 풍화가인(風火家人), 착종괘는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이다. [출처] 40. 뇌수해|작성자 김기덕   41. ䷨ 산택손(山澤損)   산택손은 산(☶:艮) 아래 연못(☱:兌)이 놓인 상황으로 아래에 있는 연못의 기운이 발하여 산에 덜어주는 상이다. 윤택한 못의 기운이 산속의 풀과 나무와 짐승들에게 생기를 공급하고 활력을 주듯 안을 덜어서 밖에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損은 물건의 수효(員:수효원)를 손으로 헤아려 덜어주는 뜻과, 어린 생명(具)이 모태(口) 밖으로 나오는 것을 손(手)으로 받아내는 뜻이 있다. 시에서는 힘과 용기를 주거나 위로를 줄 수 있는 찬양시, 헌시, 칭송시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損은 아래 백성의 것을 덜어 위(政府)를 더해 주어 백성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위를 의미하는 부모나 선배, 선생님이나 상사, 떠받드는 애인 등으로 덜어 주는 정신적 감정의 표현이 바로 산택손의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양효가 오고 셋째, 넷째, 다섯째 문장엔 음효가 왔다가 마지막 여섯째 문장엔 양의 문장 배치로 끝맺는 형식이다. 첫째, 둘째 문장에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의지적인 장점이나 강점을 배치하고, 삼, 사, 오효에서 열악한 현실이나 부정적 현실을 끌어와 대치시킨 후 마지막에서 찬양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쁨과 힘을 줄 수 있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인데, 이는 넉넉함이고 풍요함을 의미한다. 한낮의 태양과 같은 뜨거운 열기이며, 한여름과 같은 왕성함이다. 地의 이 왕성함이 노음(⚏)인 人이나 소양(⚎)인 天에게 덜어 줌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損의 형상은 澤(☱:兌)의 삼효가 음효로서 그 모습이 마치 아래에서 삼효를 떼어내어 위의 山(☶:艮)에 있는 사효, 오효의 음에 보태어 주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봉사하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산택손의 반대인 풍뢰익(䷩)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 주는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단락은 기쁨과 풍요함이며, 둘째 단락은 막힘과 부족함이 있어 채워지는 느낌의 시쓰기 방법이다. 산택손의 변괘 중 호괘는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도전괘는 꿈과 희망의 시인 ䷩ 풍뢰익(風雷益), 배합괘, 착종괘는 감상적이며 정서적인 교통을 이루는 ䷞ 택산함(澤山咸)이다. [출처] 41. 산택손|작성자 김기덕   42. ䷩ 풍뢰익(風雷益)   풍뢰익은 바람(☴:巽) 아래 우레(☳:震)가 일어나는 모양으로 바람은 아래로 내려오고 우레는 위로 올라가 서로 부딪히며 만물이 크게 동요, 진작하여 유익함이 생기는 상이다. 益은 초목을 고무 진작시켜 가지가 무성히 성장하는 상인데, 震은 양목으로 뿌리부터 줄기를 뻗어나가는 것이요, 巽은 음목으로 가지에 꽃과 열매가 열리는 모양이다. 益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하여 성의와 노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태양이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이 원하는 열과 빛을 보내어 생성 발전시키듯이 고난에 처한 사람이나 아랫사람, 아니면 서민이나 죄인, 불우한 현실의 사람들을 위해 희망이나 빛이 될 수 있는 시를 풍뢰익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이지만 둘째, 셋째, 넷째 문장이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아래쪽이 부족함을 상징하지만, 다섯째, 여섯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옴으로 넉넉함을 덜어주며 희망적인 결말을 가져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쇠퇴해 가고 있는 상황이며, 人은 노음(⚏)으로 지극히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여기에 天이 노양(⚌)으로 강하고 왕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아래쪽에 힘을 더해 줌으로 유익함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보면 위의 바람은 동남방을 의미하며 순조로움을 상징한다. 동남방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만물을 싹틔우며 이롭게 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우레는 움직임이고 변화여서 쉽게 받아들이고 유익해짐을 상징한다. 첫 단락은 震괘로 아랫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즐겁게 하고 감동받게 할 수 있는 표현이나 메시지라면, 둘째 단락의 風은 그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결실을 이루게 하는 손길이며 유익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풍뢰익의 변괘 중 호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주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損), 배합괘와 착종괘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한 ䷟ 뇌풍항(雷風恒)의 시쓰기이다. [출처] 42. 풍뢰익|작성자 김기덕   43. ䷪ 택천쾌(澤天夬)   택천쾌는 연못(☱:兌)의 기운이 증발하여 하늘(☰:乾) 위에 있는 모양으로 여섯 번째 효인 음이 아래 다섯 양에 의해 처단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夬는 아래로 하늘의 강건한 덕이 있고 위로는 연못의 기쁨이 있어서 마지막 남은 문제를 척결함으로써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시적으로 하나의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양적인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 버림으로 강렬한 마무리를 갖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 다섯 번째 문장까지는 한 시각의 일방적인 묘사나 철학적 접근이 마지막 문장에서 뒤집어지거나 새로운 결론, 또는 생경한 표현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모두 노양(⚌)으로 강한 이미지의 표현, 또한 긍정적 접근이 이루어지지만 天에서 소음(⚍)이 옴으로 지속되던 긍정적 감정을 감추고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낯설게 하기,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확실한 강조의 표현으로 마무리함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澤天夬(䷪)는 모든 양효 위에 한 개의 음효가 위치하고 있어 모든 선을 누르면서 악의 세력이 높은 지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태이다. 夬는 ‘결단한다’, ‘결행한다’는 뜻인데, 악의 발효를 배려하기 위해 궐기하고 준비하는 상태와 같다. 이는 하괘인 天(☰)과 상괘인 못(☱)으로 나뉘어 두 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 것 같지만, 실은 다섯 개의 양과 한 개의 음으로 나뉘어 형식적, 또는 실질적 두 단락으로 구분되는 형식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째 단락은 긍정적 진행의 묘사가 이루어지고 두 번째 단락에서 이를 뒤집는 간략한 문장, 또는 한 문장의 핵심을 찌르는 반어적 결론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택천쾌의 변괘 중 호괘는 힘 있고 밝은 시인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음적인 대상을 밝고 강한 남성적으로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배합괘는 고고함의 경지인 ䷖ 산지박(山地剝), 착종괘는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 천택리(天澤履)이다. [출처] 43. 택천쾌|작성자 김기덕   44. ䷫ 천풍구(天風姤)   천풍구는 하늘(☰:乾) 아래 바람(☴:巽)이 부는 모양으로, 가장 아래에 처한 一陰이 다섯 양을 쫓고 있는 형태이고, 또한 음이 처음 상태로 음을 거느리는 后가 되는 상을 의미한다. 姤는 안으로는 유순한 가운데 밖으로 강건함이 있으니 위의 강건한 乾父의 명을 좇아 아래에 巽長女가 그 도를 따르는 괘로서 하늘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만물에 두루 파고드는 상태이다. 절기로 보면 夏至인 한여름으로 음력 5월경이며, 하루는 가장 환한 정오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여성적인 음의 시작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효가 음인 여성적 시작을 의미하는데, 둘째 효부터 여섯째 효까지 양의 효로 이루어졌으므로 여성적인 음의 시작이지만 절망이나 고통, 분노와 같은 것이 아닌 밝고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시각의 모성적 따뜻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의 대상을 양적으로 표현하는 시쓰기이다. 그렇다면 음의 문장과 양의 문장은 어떻게 만들고 구분할 수 있을까? 첫째는 음적인 사물들의 결합이며, 둘째는 음적인 상태나 감정, 분위기의 형성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보면 이마, 콧날, 치아, 광대뼈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이지만, 콧구멍, 귓구멍, 입과 같은 부분은 음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 ‧ 음적 요소와의 결합을 통한 양의 문장, 음의 문장이 있다. 또한 여기에 양적 ‧ 음적 감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양의 문장, 음의 문장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이’는 양적 요소이지만 어떤 감정이나 상태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음이 될 수 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다. “이가 반짝였다.”라는 문장은 양적 요소에 양적 상태가 결합되어 양의 문장을 만들어 주지만, “이가 부러졌다.”라는 표현은 양적 요소와 결합했지만 상태가 음적 요소이므로 음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하기 때문에 양적인 요소라 해도 그 안에는 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장의 음과 양의 구분은 사물적 요소보다는 상태나 감정적 요소에 의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사상에서 天, 人, 地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형식적 의미의 단락일 수도 있으나 天(성) - 人(성과 속의 공존) - 地(속)의 차원이나, 천(형이상) - 인(공존) - 지(형이하)의 구분과 같은 내용적인 단락이 될 수도 있다. 姤의 地는 소양(⚎)으로 밝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人과 天은 모두 태양(⚌)으로 한낮과 같은 밝은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음산하고 무서운 바람이 아니라 밝고 환하며, 초목을 생장시키는 유익한 바람이다. 그러므로 천풍구의 시는 밝고 아름다운 감정의 유익하고 정감 있는 접속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姤는 만난다는 뜻이다. 한 柔가 다섯의 剛을 만난 형태로 많은 남자들 사이에 한 여자가 있어서 조종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주도하에 매사가 진행되며, 남성 못지않게 강한 여자의 입김에 세상이 휘둘리게 되는 상이다. 이는 시에서 여성적인 시각의 주도적 진행을 의미하며 남성적인 강하고 밝은 분위기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천풍구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밝고 강한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양의 진행을 뒤집어 의외의 음적 결말을 맺는 ䷪ 택천쾌(澤天夬), 배합괘는 본성을 회복하고, 근본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착종괘는 양 가운데에 음을 배치하여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출처] 44. 천풍구|작성자 김기덕   45. ䷬ 택지취(澤地萃)   택지취는 땅(☷:坤 ) 위에 물이 고여 연못(☱:兌)이 된 모양으로 사방의 물이 두루 합하여 모이는 것을 말한다. 萃의 뜻을 보면 병졸들이 모이듯 초목(艹)이 무성하게 우거져 어우러진 의미가 있고, 읽을 때에는 췌가 아닌 취로 발음한다. 萃는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기쁨의 덕이 있어 물이 대지를 흐르며 합쳐져 마침내는 큰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는 시쓰기에서 대하를 이루는 듯한 흐름의 산문시를 의미하며, 형식이나 틀이 없이 이미지의 숲을 이루는 방법이다. 물은 물끼리 모여 흘러가듯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야 하며, 정서의 동질적인 결합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서사적 구성도 택지취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택지취의 효를 살펴보면 초효에서 삼효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실질적인 리더인 사효와 오효가 양으로 구성되어 강력한 힘의 구심점을 이루어 나아가는 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핵심은 사효, 오효이며, 강한 주제의식으로 집중된 시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다양한 사물적 요소일 수도 있고, 흩어진 생각의 단편들일 수도 있다. 人(⚎)에서 모아져 표출되었다가 天(⚍)에서 강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여운을 남기듯 끝맺음을 하였다. 천 ‧ 인 ‧ 지의 의미는 넓게 보면 세상만물을 상징한다. 하늘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물도 다 끌어올 수 있고 결합, 배치가 가능하다. 또한 작게 보면 사람의 얼굴과 같은 것이다. 눈썹 위로부터 이마는 天이요, 눈썹부터 코끝까지는 人이요, 인중부터 턱까지는 地로 구분하여 초년, 중년, 말년으로 관상을 보듯 그 응용의 세계는 무한하다. 팔괘로 풀이하면 취는 모이는 것의 상징이다. 아래에선 유순하고 위에서는 즐거워한다. 강건한 군주와 유순한 신하가 도리를 지키고 서로 호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인재가 모이고 복된 것이 모여온다. 시에서도 다양한 사물과 다양한 사고들이 하나의 핵심 주제로 모여 장구한 흐름을 만드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의 흐름을 이루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이다. 모이는 데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자석에 쇳가루가 모이듯 시인의 강한 정서의 힘에 이끌린 사물과 의식들의 일관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택지취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점차적으로 사고의 확장과 차원의 상승을 추구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땅 속에서 싹이 움트는 형상인 ䷭ 지풍승(地風升), 배합괘는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 산천대축(山天大畜), 착종괘는 기뻐하며 순하게 나아가는 모양인 ䷒ 지택림(地澤臨)이다. [출처] 45. 택지취|작성자 김기덕   46. ䷭ 지풍승(地風升)   지풍승은 땅(☷:坤) 속에 초목(☴:巽)이 뿌리를 박고 움터오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升은 안으로 순하고 밖으로는 유순함이 있어 음도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음물이 점차 쌓여 오르는 상이다. 아래의 巽은 나무를 의미하는데, 바람이 안으로 파고들 듯 땅 속에 뿌리를 내리는 모양이다. 위의 곤은 초목을 생육시키는 땅이니 땅 속에서 싹이 움터서 나오는 형상이다. 시에서의 기법은 희망적 감정이나 현실의 꿈을 상징하는 씨앗을 내면에 싹틔우고 암담한 현실, 또는 절망적 상황의 대지를 뚫고 나오는 기상이 있는 배치의 시쓰기이다.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인데,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다. 이 씨앗들이 땅(☷)에 숨겨져 아직은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살짝 모습만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핵심적인 의식이 모여 있는 문장으로 화분(음의 문장들) 속에서 살짝 고개 내밀기 시작한 새싹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地(☷)는 화분의 흙과 같은 존재로 덮어주고 감추어주는 역할을 하며, 핵심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화분은 크게 보면 전 지구적인 땅이며, 소우주적인 몸이며, 영원한 세계로 향한 우리의 정신적 토대를 의미한다. 地風升의 시적 분위기는 땅 속에 나무가 있어 싹이 트고 마침내는 큰 재목이 되는 상으로 구이, 구삼의 두 효가 바르고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전체적인 시의 성장을 이루게 하는 형식이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면 地는 소양(⚎)으로 땅 위로 솟아오르는 강한 힘이고, 人의 소음(⚍)은 솟아오르고자하는 힘을 억누르고 있는 상이다. 天은 노음(⚏)으로 이러한 의식이나 상황을 덮고 있는 존재로 아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다. 웅비하는 시의식의 감춰짐이나 내면의 배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升은 땅을 의미하는 坤卦가 위에 있고 바람(나무)을 의미하는 巽卦가 놓여서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로 종순한 태도로 순리에 따르는 상이다. 아직은 어리고 약한 새싹이라서 사나운 비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머잖아 의젓한 나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발전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시가 바로 지풍승의 시이다. 지풍승이 변화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을 살펴보면 호괘는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을 추구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대하를 이루듯 흐르는 산문시인 ䷬ 택지취(澤地萃), 배합괘는 강건한 도로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 천뢰무망(天雷无妄), 착종괘는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시쓰기의 ䷓ 풍지관(風地觀)이다. [출처] 46. 지풍승|작성자 김기덕   47. ䷮ 택수곤(澤水坤)   택수곤은 위에 연못(☱:兌)이 있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연못의 물이 마른 모양으로 곤궁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困卦는 剛爻가 柔爻에 의해 가려져 험난함을 나타내는데, 못에 물이 없어 곤궁한 상황으로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시에서도 곤궁한 상황, 절망적 현실 묘사의 방법으로 희망적인 것을 과거나 미실현의 단계에 놓고 절망적인 요소를 현재나 현실 진행단계로 놓아 음적인 요소가 양적인 요소를 지배, 또는 덮어버림으로써 현실의 절망을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채송화, 맨드라미 웃음 짓던 토담은 허물어지고, 꿈에 부풀던 항아리들은 깨어져”와 같은 구절에서 양의 요소들이 음의 요소에 의해 허물어지고 깨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음효와 양효의 대조적인 상황에서 음이 양을 덮어버림으로 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양의 문장을 포위, 덮어버림으로 음적인 상황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인 地는 소양(⚎)으로 음을 기반으로 해서 양이 뻗어 나오고 있는 상이다. 둘째 단락인 人 또한 소양(⚎)으로 음의 토양에서 양이 자라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인 天에서 소음(⚍)이 되어 지금까지 기반이 되었던 양적인 요소들이 부정되고 음적인 요소로 변함으로써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감정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감정으로 변화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곤괘는 연못 아래에 있는 물로 물이 마른 연못을 상징한다. 困은 곤란, 곤궁, 곤고한 상태이니 口(상자) 속에 木(나무)이 들어 있는 상이다. 나무는 두텁고 넓은 땅에 뿌리 내리고, 높고 시원스런 공간으로 줄기를 펴고 가지를 뻗으면서 막힘도 거리낌도 없이 자라는 것인데, 형틀에 갇힌 형상을 이루어 곤고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감정을 통해 물이 마른 연못의 곤고함 같은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택수곤의 變卦들을 살펴보면 호괘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있는 ䷤ 풍화가인(風火家人), 도전괘는 음양이 교차한 맑은 샘물 같은 시의 ䷯ 수풍정(水風井), 배합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착종괘는 절제된 시어, 함축적 운율의 시쓰기인 ䷻ 수택절(水澤節)이다. [출처] 47. 택수곤|작성자 김기덕   48. ䷯ 수풍정(水風井)   수풍정은 나무(☴:巽) 위에 물(☵:坎)이 있는 모양으로 아래로 井자의 나무를 놓아 샘물이 위로 솟아오르는 우물의 형상이다. 井은 안으로 겸손하고 밖으로 과감히 행하는 덕이 있으며, 땅 속의 물을 끌어올려 두루 우물물의 혜택을 베푸는 괘이다. 땅을 깊이 파야 맑은 샘물이 나오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게 하여 정신과 육신이 청정함으로 만사를 통하니, 시에서도 마음을 맑게 하여 깊은 샘을 파듯 심오한 정신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우물과 같은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이며,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이 형식은 첫째 음의 문장, 둘째 양의 문장, 셋째 음의 문장인 ☵의 형태로 압축될 수도 있다. 시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이다. 음과 양이 교차한 감정의 직조를 통해 맑은 샘물 같은 시를 쓰고자 하는 방식이 바로 수풍정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 人과 天은 소음(⚍)으로 음과 양이 하나씩 교차하고 있다. 이는 섞어 짜기와 같은 직조의 모양이다. 나무로 우물 정자의 침목을 만들 듯 음과 양의 문장이 교차를 이루어 샘물과 같은 진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생 ‧ 로 ‧ 병 ‧ 사 ‧ 애 ‧ 오 ‧ 욕, 이 모두가 기쁨과 슬픔으로 섞어 짠 삶이듯 세 개의 단락이 감정의 교차, 표현의 교차, 욕망의 교차를 이루며 심오한 인생의 철학이 있는 시를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井은 우물이다. 한 고을은 옮길지라도 우물은 옮길 수가 없다. 줄기차게 샘솟는 근원이 땅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담고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갈증을 해소하게 하고 생명을 키워 준다. 이러한 우물처럼 시는 누구나 읽고 깨달음을 얻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물의 생명력처럼 시 속엔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수풍정의 시쓰기는 영혼의 우물파기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두레박을 통해 맑은 물을 퍼 올리듯, 또한 나무(☴)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줄기를 통해 물을 끌어올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 결실하는 시이다. 수풍정의 특색은 진리의 샘물과 같은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과 양의 섞어 짜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꽃이나 열매와 같은 긍정적 향기나 삶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후련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풍정의 변괘 중 호괘는 어긋남의 대칭적, 대조적 기법인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음의 요소가 양을 지배하는 절망적 상황의 ䷮ 택수곤(澤水困), 배합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 신 ‧ 구의 조화, 남녀의 조화와 같은 상반된 관계의 조화를 의미하는 ䷔ 화뢰서합(火雷噬嗑), 착종괘는 흩어놓기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이다. [출처] 48. 수풍정|작성자 김기덕   49. ䷰ 택화혁(澤火革)   택화혁은 연못(☱:兌)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연못 속에 불이 들어있는 상이다. 위의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래의 불은 위로 타올라 水 ‧ 火가 서로 대결하는 상태이다. 물은 불을 끄려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 하는 가운데 상대를 고쳐 변하게 하니 革이다. 革은 안으로 밝고 밖으로 기쁨이 있으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른 괘로 곡식이 익어 결실하는 때를 의미한다. 시에서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으로 더 넓은 사고의 확장과 이미지의 다양성 추구를 위한 것이다. 하늘을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어두운 땅을 배치한다든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기 위해 야수를 배치하는 기법과 같은 것인데,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의 전체적인 조화와 새로움을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택화혁을 효로 접근해 보면 첫 문장은 강한 양의 문장으로 위로 올라가 革하려는 강한 이미지이나 뒤에 음의 문장이 옴으로 상비관계를 이룬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와서 革하려는 시적의식이나 이미지의 창출에 강한 힘을 보탠다.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배치되는 음의 국면을 전개시킴으로 강렬한 시심을 표출하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革은 기존의 보편적인 이미지나 정서, 보편적 의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와 天은 소음(⚍)으로 내적인 양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숨어 있는 象이다. 地와 天은 시적 대상이 되는 세상만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적 소용돌이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모양은 바로 보편적인 사물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地와 天에 비해 세 번째, 네 번째 효인 人은 강한 양이 두 개인 노양(⚌)이다. 여기에서의 노양은 강한 변화의 욕구이며 새로운 시각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 새로운 변화의 강한 양적 의식을 부여하는 상이 택화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와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모든 시쓰기가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대조적인 기법을 통한 혁명적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49. 택화혁|작성자 김기덕   50. ䷱ 화풍정(火風鼎)   화풍정은 아래에 나무와 바람(☴:巽)이 놓여 위로 불(☲:離)을 피우는 모양이다. 괘체로 보면 巽下絶(첫째 효의 끊어진 음효)은 아래의 갈라진 솥발과 같고, 離虛中(다섯 번째 효의 음효)은 빈 솥의 형상이니 화풍정이다. 火風鼎은 안으로는 순순히 따르며 받아들이는 덕을 이루고 밖으로는 환히 밝히니, 스스로를 가다듬어 밖을 밝히며 솥 안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형상이다. 시에서는 음적인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그 소재를 푹푹 삶고 고아서 맑고, 영양가 있게 우려내는 솥과 같은 시쓰기이다. 화풍정은 치열한 시의 불때기를 의미하며, 사골을 고듯이 깊은 뜻을 우려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 귀하게 삶은 음식은 제일 먼저 신께 드렸듯이 그 안엔 기도와 같은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어려운 현실이나 부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두 번째 문장에서부터 네 번째 문장까지 양의 문장을 놓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의 마음으로 재해석해 초월적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다섯 번째 문장에서 다시 한 번 음의 문장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지만, 여섯 번째 문장을 통해 음의 세계를 극복하고 양의 세계를 구축함으로 강렬한 희망적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화풍정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펄펄 끓는 절규와 간절함이 필요하다. 그 절규와 간절함이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무의미의 이미지 나열 또한 피해야할 부분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天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서 내면의 소극적인 의미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여, 人(노양:⚌)의 강렬함이 삶아지고 드러날 수 있도록 솥과 같은 배치를 이루어야 한다. 天과 地의 초점은 人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 초점은 태풍의 눈과 같은 것이며 블랙홀과 같은 흡입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양은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물들이 시인의 긍정적 의식에 집중되어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鼎은 솥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나무로 불을 때서 삶고 익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단락인 巽(☴)은 바람과 나무를 상징한다. 불을 때기 위한 준비단계이며, 본격적인 주제의식을 삶기 위한 도입적 요소이고, 중심에 대한 진입과정이다. 두 번째 단락은 첫 번째 단락에서 진일보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본격적인 불때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불때기는 고기를 삶는 것이며, 쇠를 녹이는 것이며, 감정을 들볶는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단락이 계층을 이루어야 하고, 감정의 진일보가 있어야 한다. 즉 두 개의 단락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불과 나무와 바람은 서로 호흡이 맞는 팀 멤버와 같아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요 상보적인 존재들로 하나의 시적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팀워크가 필요한 협력체이다. 화풍정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버리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인 ䷰ 택화혁(澤火革), 배합괘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의미처럼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 착종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출처] 50. 화풍정|작성자 김기덕   51. ䷲ 중뢰진(重雷震)   중뢰진은 아래 위가 모두 우레(☳:震)로 이어진 괘로 우레가 거듭 쳐서 만물을 크게 요동시키며 발전시키는 象으로 땅 속에 숨어 있던 초목의 싹이 밖으로 움터 나오는 모양이다. 진은 해 뜨는 동방을 의미하며 동방의 기운으로 만물이 움터 나옴을 의미하는 괘이다. 시에서는 새싹이 나듯 중첩된 우레의 모양(☳ ☳)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방법이다. 또한 중심 사물이나 개체가 제시되고 그 아래 의성어나 의태어, 세부적인 표현이 전개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구리가 개굴개굴”에서 ‘개구리’는 시의 중심 이미지인 첫 효인 양이고, ‘개굴개굴’은 두 번째, 세 번째 효인 음과 같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거인 나무가 쓰러져 잠들어 있다. 코를 골 때마다 귀를 닮은 잎들만 들썩거릴 뿐,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깨워도 꿈쩍하지 않는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면 중심사물인 ‘거인나무’는 첫 효인 양과 같으며, 중심사물인 거인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나가는 귀를 닮은 ‘잎’이나, 바람이 흔들어 깨우는 ‘가지’의 묘사는 六二, 六三 효인 음과 같은 것이다. 효로 분석해 보면 첫 효는 새싹이 움트는 나무의 몸체일 수도 있고 새싹이 나오는 땅일 수도 있다. 둘째, 셋째 음의 효는 새싹과 같은 것으로 몸체에서 파생되는 세부적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서 파생된 보조적인 의미나 개념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레(☳:震)는 움직임이고 변화이고 잘게 쪼개짐이다. 중심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 대한 변화, 새로운 뻗어감이나 분화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음(⚍)으로 양의 기운이 땅 속으로 뻗어가는 뿌리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人은 소양(⚎)으로 내면의 의식이 양의 기운을 따라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象이다. 天은 물방울과 같은 개체들이 가득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심 이미지의 분화, 확산을 의미하며, 중심사물이나 개체에 대한 구체적 표현이나 지엽적인 접근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우레가 거듭거듭 겹쳐오는 것이 중뢰진의 괘상이다. 두 개의 단락이 반복적일 수도 있고, 별개의 묘사일 수도 있지만,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주된 대지의 이미지에 종된 새싹들이 피어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천둥은 고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전쟁의 어마어마한 포탄소리를 듣지 못한 그들에게는 천둥이야말로 최고의 공포였을 것이다. 우레는 오늘날의 포탄과 같은 것이다. 수류탄이 터지듯 하나의 양의 효에서 분화되는 음의 파편들을 연상케 한다. 이는 하나의 상징적 사물에서 분화, 확산되는 상징성이기도 하다. 상징성으로 폭탄이 터지듯 확산하는 의미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뢰진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배합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착종괘는 ䷲ 중뢰진(重雷震)이다. [출처] 51. 중뢰진|작성자 김기덕   52. ䷳ 중산간(重山艮)   중산간은 아래 위가 모두 山(☶:艮)인 괘로 산이 거듭 중첩된 상이다. 艮은 안팎으로 거듭 그치는 덕이 있어 첩첩산중과 같이 어려운 모양을 이른다. 그러나 제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고 때를 알아 처사하면 허물이 없다. 艮은 동북 방향에 속하니 아침 해가 솟는 뿌리에 해당하므로 만물의 종시가 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시에서 重山艮은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이다. 논술과 같은 비문학에서는 결론이 뒤에 있는 미괄식 글쓰기와 같고, 시에서는 핵심표현이나 주제의식이 담긴 문장,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표현을 뒤에 쓰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형성되어 뒤쪽으로 갈수록 의미나 표현이 강하고 확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음의 문장과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반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논증적인 관계로 본다면 귀납법적인 형식의 전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음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음적인 요소는 감정이나 사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궤의 모양으로 볼 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예시와 같으며 뒷받침 문장과 같다. 人의 소음(⚍)은 강한 핵심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졌다가 天의 소양(⚎)에 와서 내적인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며 강한 핵심을 표현해 주고 있다. 팔괘로 본다면 산이 겹쳐져서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그치는 상을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단락을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낼 수도 있으며, 작은 봉우리와 같은 중간 점검 후 더 큰 봉우리 같은 최종 결론적인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그침이라는 것은 결론이며, 핵심이며, 최종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그침이 여러 겹을 이룰 수도 있고, 여러 계단처럼 계층을 이룰 수도 있다. 중산간의 변괘 중 내부적 정황이나 성격, 심리, 사건의 내막을 말해주는 내부적 시각의 호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본괘의 단락에 대해 정반대적인 내용이나 묘사를 의미하는 도전괘는 ䷲ 중뢰진(重雷震), 아이러니나 역설적인 표현을 의미하는 배합괘는 ䷹ 중택태(重澤兌), 잘라서 새로운 조합을 통해 바라보는 착종괘적 표현은 ䷳ 중산간(重山艮)이다. [출처] 52. 중산간|작성자 김기덕   53. ䷴ 풍산점(風山漸)   풍산점은 바람(☴:巽)이 위에 있고 산(☶:艮)이 아래에 놓여 산 위에 나무가 점점 자라는 象이다. 漸은 산 위에 바람이 불어 초목과 금수가 미동하며 점진하는 괘상이며, 人事로는 여자가 집안(☶:친정)에서 부덕을 쌓은 후 혼기(☴)가 이르러 시집가는 모습이다. 또한 입춘 절기로부터 입하 절기로 나아가는 봄의 과정이니 만물이 땅 속으로부터 나와 점차 자라는 때를 이른다. 漸은 시에서 정신에 뿌리박은 하나의 시상이 점점 자라는 과정을 거쳐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이 와서 하나의 계단을 이루고, 다시 음의 문장이 와서 수평을 유지했다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양의 문장이 와서 비약적 상승을 꾀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더욱 정확한 발전형태를 볼 수 있는데, 地의 노음(⚏)에서 人의 소음(⚍), 天의 태양(⚌)으로 그 기운이 상승하면서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단계별로 상승하는 점층적인 표현과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점차 소멸해가는 점강적인 기법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방황’을 “나무들의 가지가 흔들린다./ 사람들이 어깨가 떨린다./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친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단계별로 차원과 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렇듯 漸은 점점 더 발전하고 강해지는 시적 표현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풍산점(䷴)은 산 위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 산에 심겨진 나무는 눈, 비,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자라게 된다. 급하게 자란 나무는 태풍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비약, 과장적인 건너뛰기를 지양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철학적 시상을 키우거나 표현의 밀도감을 더해 가는 언어의 드로잉이다. 풍산점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고, 도전괘, 배합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 뇌택귀매(雷澤歸妹), 착종괘는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인 ䷑ 산풍고(山風蠱)이다. [출처] 53. 풍산점|작성자 김기덕     54. ䷵ 뇌택귀매(雷澤歸妹)   뇌택귀매는 위에 우레(☳:震)가 있고 아래에 연못(☱:兌)이 놓인 상으로 兌의 少女가 위 震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궤이다. 귀매는 안으로 기뻐하며 밖으로 움직임이 있는 모양으로 어린 소녀가 위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형상으로 서방에 속한 兌가 동방에 속한 震에게 시집오는 과정이다. 시간상으로는 저녁을 지나 아침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결혼은 이질적인 가정의 풍속이나 가문 간의 문화적, 혈연적인 연결 관계를 맺어주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효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질적인 관계에서 셋째와 넷째 문장이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김으로 이질적인 전체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세 번째 효와 네 번째 효는 이질적인 관계를 묶어 주는 끈이나, 붙여 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분이나 다른 차원의 사물을 이어 주기 위해서는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암수의 코드와 같은 연결점을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天은 노음(⚏)이라서 상대적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나 人이 소양(⚎) 이어서 地의 노양은 인의 음이 끌어당기고, 天의 노음은 人의 양이 끌어당김으로 서로를 완충시키고 새로운 의식과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사관계 간의 접속이 아닌 상이한 관계 간의 접속이며 반대적, 대립적인 관계 간의 연결, 그리고 아주 먼 유사성의 사물이나 사건들 간의 연결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이한 것들 간의 연결을 꾀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미세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며, 연결의 끈을 찾아야 한다. 팔괘로 본다면 아래의 연못과 위의 우레는 서로의 유사관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연못의 셋째 효인 소녀와 우레의 첫째 효인 장남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결혼을 하는 상이다. 하나의 단락과 또 하나의 단락이 크게 유사한 내용이 없지만 그 단락 속의 한두 줄의 문장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접속,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관계는 병치의 관계와는 다르다. 병치는 유사한 사물이나 상황의 단어나 문장을 병치시킴으로 건너뛰기를 하는 방법이지만, 뇌택귀매의 방법은 이질적이고 비전도적인 관계의 사물이나 상황을 풀칠하여 붙이듯 접속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풀 역할을 하는 것은 주제나 제목, 또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수화미제(水火未濟)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하는 ䷴ 풍산점(風山漸), 착종괘는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 택뢰수(澤雷隨)이다. [출처] 54. 뇌택귀매|작성자 김기덕   55. ䷶ 뇌화풍(雷火豊) 뇌화풍은 아래에 火(☲:離)가 있고 위에 雷(☳:震)가 있어 번개가 친 후 우레가 울리는 상으로 밝음으로써 움직여 나아가 행하는 까닭에 風大하여진다. 괘상으로는 번개(☲)가 친 후 뇌성(☳)이 상응하는 상으로 同聲相應의 이치를 이른다. 이는 마치 수탉이 홰를 치면 모든 닭들이 따라서 함께 우는 이치니 서로 응하여 합하다 보면 풍성해지는 법이다. 시에서 뇌화풍은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있다. 다양하지만 통일성이 있어야 하고, 통일성이 있지만 하늘과 땅, 인간 사이의 여러 이야기나 묘사들이 접목되어 풍요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와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서로 상응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 첫째의 양과 둘째의 음이 상응하고, 셋째, 넷째의 양이 다섯째, 여섯째의 음과 상응관계를 이루어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하늘과 사람, 땅이 모두 제각각으로 다양하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어 풍요함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地는 소음(⚍), 人은 노양(⚌), 天은 노음(⚏)으로 천 ‧ 인 ‧ 지가 제각각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함이 하나로 묶여 풍요함을 나타낼 수 있는 글쓰기이다. 자칫 여러 종류의 나열만 나타낼 수도 있지만 부챗살처럼 여러 조각이 하나의 주제나 큰 틀의 이미지로 모아져 다양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아래에 번개가 먼저 있은 후 위에 우레가 놓여 나중에 천둥이 뒤쫓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하늘에 번개만 친다면 그 무서움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번개 후에 우렁찬 천둥이 울릴 때 그 무서움은 배가되듯이, 번개 같은 하나의 단락에서 상응하는 천둥 같은 두 번째의 단락을 통해 풍대함을 갖게 해 주는 방식이다. 그 풍대함의 표현이 빛과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빛만 밝은들 이 둘의 조합보다는 그 풍대함은 적을 것이다. 뇌화풍의 글은 바로 이런 상승효과를 노린 다양함의 조합이며 효율적인 표현의 협공이라고 할 수 있다. 뇌화풍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의 ䷦ 화산여(火山旅), 배합괘는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 착종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인 ䷔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출처] 55. 뇌화풍|작성자 김기덕   56. ䷷ 화산여(火山旅) 화산여는 山(☶:艮)이 아래에 놓이고 火(☲:離)가 위에 위치하여 산 위에 불이 붙은 象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이 산등성이의 불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旅는 안으로 그치는 절제가 있으며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니, 해와 달이 일정하게 주야왕래하며 사시를 운행하는 현상이다. 시에서 旅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이다. 태양의 뜨고 짐은 일정하지만 굿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듯이 일정한 원칙이 있지만 그 원칙 속에서의 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시쓰기이다. 산 위에 부는 바람에 따라 산에서 산으로 건너뛰듯이 정서적, 상징적 표현의 이동을 꾀할 수 있다. 만물의 도나 인생의 삶 역시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떠날 수 없는 불역의 방도가 있듯 변화무쌍하지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형식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음, 음, 양, 양, 음, 양으로 원칙이 있지만 음양의 변화를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의 노음(⚏)과 人의 노양(⚌)이 큰 변화를 이루는데, 여기에 天의 소양(⚎)이 둘에 상응한 원칙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있는 象이다. 人은 인간적이며 정서적이지만 地는 사물적인 것을 의미한다. 사물에 따른 인간적인 정서의 큰 변화를 天의 원리, 즉 형이상적인 원리가 지주가 되어 人과 地를 포괄하고 있는 모양이다. 天의 형이상적인 원칙 아래 인간의 정서나 육체, 삶은 地의 사물적인 것과의 많은 거리, 상이성 등을 좁혀 人에서 地로, 地에서 人으로의 변화와 건너 뜀, 오고감의 관계를 이루어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旅는 산(☶:艮) 위의 밝은 불(☲:離)을 의미한다. 불도 밝게 널리 비추는 것인데 산 위에만 있지 않고 확산되고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 旅다. 첫째 단락은 그침이 있는 산이다. 그침은 원칙이며, 대전제이며, 결론적인 마침이다. 둘째 단락은 확산적인 불이다. 이 불은 사방으로 퍼져가는 욕망이고, 열정이고, 진리이다. 불의 변화된 몸짓은 이리저리 옮겨 붙는 상징적 접속이고 배치이다. 하나의 원칙을 세운 보리 줄기에서 많은 뿌리들의 표현과 이미지가 뻗어나가듯이 旅의 글쓰기는 옮겨 붙는 불의 배치적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화산여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 뇌화풍(雷火豊), 배합괘는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하는 ䷻ 수택절(水澤節), 착종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을 이루고자하는 ䷕ 산화비(山火賁)이다. [출처] 56. 화산여|작성자 김기덕   57. ䷸ 중풍손(重風巽)   중풍손은 상하로 거듭 바람(☴:巽)이 부는 象으로 바람이 서로를 따라 합하듯 공손한 덕으로 한 몸을 이루는 모양이다. 巽은 안팎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겸손의 마음이 바람과 같이 안으로 파고드는 형상으로 시에서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이다. 바람(☴)은 장녀를 뜻하는데, 장녀가 겹쳐짐으로 강조된 여성성을 상징하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의 문장은 두 양의 문장을 리드하는 여성적 감성이며, 시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지침이 되고 있다. 두 양의 문장 또한 음의 문장을 따르며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극히 부드럽고 순화된 언어의 문장을 이루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사물의 밝은 부분을 선택하여 人을 소음(⚍)의 마음으로 여성화함으로써 하늘의 밝은 뜻을 드러내는 형상을 갖게 하고 있다. 天은 양의 강한 추상성, 또는 형이상의 차원을 이루고 人과 地는 서로 받아들임으로 순화되고 하나 되어 己+己+共의 뜻을 이룬다. 팔괘로 풀이하면 바람(☴)이 겹쳐있다. 巽은 장녀를 의미하며, 나무나 풀을 상징하고 들어감을 뜻한다. 장녀는 여성성을 의미하며, 나무나 풀은 바람에 흔들리는 여심과 같으며, 들어감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외적인 사회성보다는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규방적인 정서를 의미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이 똑같은 여성적 정서를 통해 이루어지며 서로의 관계가 하나의 시적 대상에 대한 유사적 접근을 형성하고 있다. 중풍손에 대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 중택태(重澤兌), 배합괘는 새싹이 나듯 ☳☳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 중뢰진(重雷震), 착종괘는 ䷸ 중풍손(重風巽)이다. [출처] 57. 중풍손|작성자 김기덕   58. ䷹ 중택태(重澤兌)   중택태는 위와 아래가 거듭 연못(☱:兌)을 이루어 큰 연못을 이룬 괘로서, 물이 고여 일렁이듯 밖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象이다. 兌는 방위상으로 서방이고 계절상으로는 결실기인 가을철을 의미하니 풍요와 기쁨이 가득한 것을 상징한다. 상하로 기쁨이 가득하니 안팎으로 기쁨을 함께 누리는 모양으로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린 소녀를 의미하여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이 노니는 때를 상징한다. 또한 ☱는 구멍이 열린 象으로 口舌, 무당 등을 뜻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바로 중택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의 양(⚌)은 충만한 물의 형상이며, 셋 번째 효인 음(⚋)은 물결이 출렁이는 파도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 음은 음의 문장으로 해석되기보다는 춤추는 파도와 같은 문장으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다. 흥을 돋우는 추임새나 후렴구, 또는 문장과 같은 것으로 덩실덩실 춤추는 동작의 글쓰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이루어졌고, 人은 소양(⚎), 天은 소음(⚍)으로 구성되어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은 맨 아래에 놓이고 그 다음 강한 것이 그 위에 오르고, 더 가벼운 것이 맨 위로 올라와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비중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연못 속에도 앙금은 가라앉고 기쁨은 밖으로 표출되듯, 삶의 앙금은 가라앉히고 기쁜 감정, 즐거운 시상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도 기쁨이며, 둘째 단락도 기쁨이 가득한 글쓰기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감정이라고 해서 배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적 언어의 나열을 이룬 기쁨과 환희의 들뜬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 장구하면서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내적 희열의 몸짓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중택태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며, 도전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배합괘는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착종괘는 ䷹ 중택태(重澤兌)이다. [출처] 58. 중택태|작성자 김기덕   59. ䷺ 풍수환(風水渙)   풍수환은 위에 바람(☴:巽)이 오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물 위에 바람이 부는 상으로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흩어지는 괘이다. 손순한 덕으로 안의 중심을 지키면서 밖으로 그릇된 것을 흩어내는 이치가 있고, 배를 띄움에 있어 조류와 바람의 이치를 이용하는 의미도 있으나 詩에서는 각각을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넷째에서 음이 겹치고,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이 겹치고 있으나 배치만 음적이고 양적인 요소의 중복일 뿐 반드시 내용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에 상관없이 이미지를 배치하여 이미지의 확산, 사고의 확장, 통일된 주제의식 등을 흩어놓고 분산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해 보면 地는 소양(⚎)이고, 人은 노음(⚏), 天은 노양(⚌)으로 천 ․ 인 ․ 지가 각각 다른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天과 人과 地가 각각 다른 이미지, 다른 사고, 다른 표현의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반드시 주제를 일치시킬 필요가 없지만, 제목에 따라 확장의 폭을 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개의 단락으로 형성된 표현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내용을 갖게 됨으로 아주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현을 만드는 방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물 위에 부는 바람의 상으로 바람이 물결을 흩어놓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로 모아지고 뭉쳐지게 하는 주제의식이나 통일된 이미지에 대한 의도적인 분해, 흩어놓음, 산만하게 하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연관관계가 없는 것들을 배치시킨다면 시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풍수환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頤는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재물이나 덕을 두루 베풀어 흩어야 하니 이것이 기르는 道라고 할 수 있다. 도전괘는 ䷻ 수택절(水澤節)이다 渙은 흩어지는 것이니 흩어지다 보면 어딘가에 걸려 멈추기 때문에 節이 되는 것이다. 배합괘는 渙의 반대인 ䷶ 뇌화풍(雷火豊)이고, 착종괘는 ䷯ 수풍정(水風井)으로, 渙은 흩어지는 것이지만 井은 두레박으로 샘물을 끌어올리는 象이라서 시의 다양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출처] 59. 풍수환|작성자 김기덕   60. ䷻ 수택절(水澤節)   수택절은 물(☵:坎)이 위에 있고 연못(☱:兌)이 아래에 놓인 象으로 차면 넘쳐흐르게 하고 비면 고여 모이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한다. 節은 서방을 거쳐 북방에 이르는 괘상으로 저녁을 지나 밤이 오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는 때라서 일을 마치는 마디를 의미한다. 신체의 관절, 초목의 마디, 24절기 등이 모두 節의 이치이며, 절도, 절제 등을 뜻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양, 양, 음, 음, 양, 음으로 통일된 절제를 가지고 있다. 내호괘 震(☳)은 대나무가 뻗는 象이요, 외호괘 艮(☶)은 마디를 맺는 象이다. 시의 전체적 형식에 절도가 있고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함축적 끊음이 있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 며, 天은 소음(⚍)인데, 天 ․ 人 ․ 地가 각각 다른 모습을 이루어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대나무가 마디를 이루어 뻗어가듯 한 단락마다 함축적 절도를 이루고 있어서 압축된 표현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에 가두어진 물을 의미하는데, 흐르는 성질의 물을 가두어 하나의 형태를 만들듯 유려한 언어의 흐름을 막고 꼭 필요한 형태의 이미지를 절도 있게 그리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네모질 수도 있고, 동그랄 수도 있고, 길쭉한 타원형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못의 모양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이다. 연못의 물은 언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연못을 그리는 방법이다. 언어의 절제와 함축적 표현이 필요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수택절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시작하고 마치는 주기를 뜻하니 이로 말미암아 節의 度數가 있게 된다. 도전괘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도 있는 ䷺ 풍수환(風水渙)이며, 배합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인 ䷷ 화산여(火山旅), 착종괘는 ䷮ 택수곤(澤水困)으로 못 속의 물이 아래로 스미어 땅이 마르니 곤궁한 象이다. [출처] 60. 수택절|작성자 김기덕   61. ䷼ 풍택중부(風澤中孚) 풍택중부는 위에 바람(☴:巽)이 놓이고 아래에 연못(☱:兌)이 있는 象으로서 안으로 기뻐하고 밖으로 부드럽게 행하니 중심이 미더운 모습이다. 孚는 마치 어미닭이 알 속에 들어있는 어린 새끼(子)를 부화시키기 위해 발톱(爪)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품고 있는 뜻이 들어 있는데, 中孚의 象은 강한 양에 의해 유약한 음이 안으로 길러지는 모양으로 부모의 품에서 어린 생명이 자라나는 현상을 상징한다. 시에서 풍택중부는 자연이나 주변 사물, 또는 상황에 의해 시인 자신이나 인간의 유약한 마음에 대한 에너지 공급과 같은 시쓰기이다. 그런 만큼 자연이나 주변 사물은 강하게 그려지고 시인 자신이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표현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중간에 있는 셋째, 넷째 문장만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외부적인 자연이나 사물은 강하고 크지만 시인이나 다른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로 표현되어 자연이나 외부적 사물에 의해 힘을 얻고, 꿈과 희망이 키워지는 형태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는 노양(⚌)이고 天도 노양(⚌)인데, 人만 노음(⚏)으로 人은 절망과 어둠에 처한 상황이지만 주변의 地와 天은 광명한 태양과 같아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또한 풍택중부는 가운데가 빈 배와 같은데, 가운데가 비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는 마음을 비운 사람과 같아서 세상의 바다를 건너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을 비운 시쓰기도 중부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 위에 부는 바람이다. 기쁨이 가득한 연못 위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은 기쁨을 배가시키며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하다. 주변 환경이나 사물에 의해 힘을 얻는 배치가 중부이며, 힘과 위로를 얻는 시쓰기이다. 풍택중부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기르는 양육의 공이 있는 상이다. 頤는 上下의 두 양이 안의 음들을 기르는 것이요, 중부는 안의 두 음이 허한 상태로 양들을 미덥게 좇는 것이다. 배합괘는 ䷽ 뇌산소과(雷山小過)로 소과는 산 위에 나무가 자라는 象으로 일단 그쳤다가 조금씩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착종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로 本未가 허약해 엎어지는 象을 이루고 있다. [출처] 61. 풍택중부|작성자 김기덕   62. ䷽ 뇌산소과(雷山小過)   뇌산소과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山(☶:艮)이 놓여 있는 상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움직이는 힘이 있으므로 일단 멈추었다가 나아가게 되니 소과이며, 二陽四陰의 괘로서 陰(小)이 과도하니 小過가 된다. 小過의 互卦가 大過임을 미루어 볼 때 모든 것이 소과하는 가운데 대과를 이루니 하루가 30번 거듭하여 한 달이 되고(小過), 한 달이 12회 거듭하여 한 해를 이룸(大過)과 같다. 소과는 작은 일은 가능하고 큰일은 가능하지 못하여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올라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마땅한 듯하면 좋은 상황이다. 시에서는 시인 주변에 음의 배치가 많지만,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작 시인은 희망이 가득한 상태의 글쓰기이다. 절망적 상황,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어머니와 같은, 슬픔과 고통의 현실을 덮는 눈의 부드러운 빛깔이 색칠하는 것 같은 표현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며,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음적 요소가 강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소과는 六二와 六五의 柔가 중을 얻고, 강은 中正을 얻지 못했으니, 큰일은 할 수 없고 작은 일은 가능하듯 시의 흐름이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작고 소심한 감정의 전개를 이룸이 특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天은 노음(⚏)이며, 人만 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만물은 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만 양으로 이루어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네 음이 두 양보다 많은데다 음이 중을 얻고 양은 중을 잃었으니 음이 형통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양을 추구하려 하나 세상과 하늘의 이치는 음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렵고 막힘이 있는 모양이다. 첫째와 셋째 단락은 음의 단락을 이루고, 둘째 단락만 양의 단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음적 배치의 강세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뇌산소과는 상괘와 하괘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지향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의 마음이 괴리하고 있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고 소인배들만 기를 펴고 있어서 악이 선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과잉의욕을 버려야 하고 확대 전진을 시도하지 말아야 하므로 소극적, 여성적 내용의 시쓰기이다. 또한 이 괘는 나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효인 삼, 사효는 새의 몸을 의미하며, 나머지 음효는 각각의 좌우 날개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나는 새는 위로 오를 수 없다. 그것은 대기의 압력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순조로워서 땅의 인력에 편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역리하여 거스르지 말고 순순히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글쓰기이다. 뇌산소과의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인데, 대과는 크게 나아가는 뜻이 있는 양의 지나침이요, 일월의 운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합괘는 ䷼ 풍택중부이며, 착종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다. 산뢰이는 一陽이 始發하여 一陽이 終止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는 상이다 [출처] 62. 뇌산소과|작성자 김기덕   63. ䷾ 수화기제(水火旣濟)   수화기제는 물(☵:坎)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있는 象으로 물은 달을 상징하며 불은 해를 상징하여 日月이 서로 만나 밝게 비추는 水昇火降을 이루고 있다. 또한 卦體의 모든 효들이 제 위치에 바르게 처하고 서로 응하니 旣濟이다. 효의 正位를 따진다면 초효는 양, 이효는 음, 삼효는 양, 사효는 음, 오효는 양, 상효는 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수화기제는 모든 효들이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음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에서는 감정과 지성의 조화, 격정과 인내의 조화, 어둠과 밝음의 조화, 남과 여의 조화와 같은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시쓰기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으로 정 위치에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 위치라 함은 상식적이며, 윤리적이며, 원칙적인 관계를 말하며, 합리적인 배치 및 조화로운 색채의 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마음의 정서적 안정과 편안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형식으로 완성도가 높은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과 天이 똑같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음은 內剛外柔의 성질로 시에서는 강한 감정의 절제적 표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단락,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의 흐름에 차이가 없으며, 안정적이고 심도 있는 감정의 표현을 이룰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수화기제는 물을 의미하는 坎卦가 상괘로 놓이고, 불을 의미하는 離卦가 하괘로 되어 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물은 위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아래로 향해 있고 불이 밑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위로 향하고 있어서 서로 만나 교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과 불의 기운이 합쳐져 물건을 삶고 익히듯이 기제는 각기 정당한 위치를 얻고 서로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쓰기에서도 정석적인 배치를 통해 타당한 관계를 만들고 정서적, 지적 관계를 충실히 엮어 감동을 배가시키는 시쓰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화기제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 모든 괘가 ䷿ 화수미제(火水未濟)를 이루고 있다. 기제는 모든 효가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내괘는 불이고 외괘는 물로 이루어져 먼저는 밝으나 나중은 험난한 일이 생김을 의미하듯 수화기제의 변괘는 모두 서로 화합치 못하는 화수미제로 이루어져 있다. 정석적 시쓰기에서 변형된 것은 다 변칙적인 시가 됨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출처] 63. 수화기제|작성자 김기덕   64. ䷿ 화수미제(火水未濟)   화수미제는 위에 불(☲:離)이 놓이고 아래에 물(☵:坎)이 놓인 象으로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흘러 서로 사귀지 못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모든 효가 정상적인 제 위치를 얻지 못하고 부정한 상태에 있으므로 未濟(일이 아직 끝나지 않음)이다. 효의 정 위치는 초양, 이음, 삼양, 사음, 오양, 상음의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초음, 이양, 삼음, 사양, 오음, 상양의 관계를 이루어 완전히 상반된 모양을 갖고 있다. 이는 시에서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三陰三陽이 모두 바른 위에 처하지 못하고 있다. 내괘가 坎水이므로 험난한 데 빠져 건너지 못하는 형국이며, 외호괘도 坎水이므로 橫流하는 상이다.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향하는 성질로 상극을 이루고 있지만 물이 불을 끄고 불이 물을 하늘로 오르게 하듯 그 속에 또 다른 상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시쓰기에서도 반역적인 관계, 뒤집는 관계, 도전적, 역전의 배치를 통해 의미를 강화시키고 표현을 도발적, 충격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天과 人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양은 內柔外剛, 內貧外富적인 모양으로 심리와 표현의 격차, 의지와 도전의 격차를 만들며, 배치의 관계가 상이하고 비범하며 생경한 상태를 말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이 같은 형태를 이루며, 의식적인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무언가 새로운 조합과 새로운 정비 및 시작이 필요한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불이 물 위에 있는 상태로 위치가 적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이 괘의 형태는 주역의 논리에 한 개도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다. 천지와 일월에 이르기까지 제 위치를 얻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뒤죽박죽된 관계를 의미하며 아직 미완성을 상징한다. 주역의 법칙은 영원히 미완성이며 인생도 영원히 미완성이다. 또한 시도 영원한 미완성이며, 영원한 미스테리인 것이다. 시의 정석은 없다. 사고의 원칙은 없다. 완벽한 시를 쓴 것 같지만 실은 거기서부터 시는 걸음마 단계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 사물의 배치에 정석은 없다. 불완전한 배치, 비뚤어진 배치가 곧 시의 시작이며 사고의 중심인 것이다. 화수미제의 변괘는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모두 수화기제이다. 기제는 미제를 낳고 미제는 기제를 낳아 끝없이 운행한다. 주역 上經의 머릿괘인 乾 ․〮 坤은 도전괘, 호괘, 착종괘가 모두 불변이고 다만 서로 배합관계만 이루므로 乾坤이 부동의 본체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기제, 미제는 상호 끝없이 변동하여 오가니 건곤은 不易의 몸이요, 기제 ․ 미제는 交易의 本이라 할 수 있다. [출처] 64. 화수미제|작성자 김기덕     *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64괘의 시쓰기 방법을 제시했다. 64가지의 시쓰기 방법에서 변효의 방법까지 더하면 실상 시쓰기의 방법은 320가지의 방법으로 나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좋은 시를 쓰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의 방법으로라도 제대로 시를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시인일 것이다. 현 시대의 시인들은 저마다 자신에 맞는 방법으로 시를 쓰면서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둔 시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일방적인 설득의 시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일방적이던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들이 이제는 쌍방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시도 일방적인 자기감정의 전달에서 벗어나 쌍방소통을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방적인 전달의 시는 주제의 통일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독자가 먼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는 주제성보다는 회화성이 중요하다. 언어로 그린 그림을 보고 독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은 색의 배치이며, 사물의 구도인 것이다. 이러한 구도를 만들고 색을 다양하게 배치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쓰기의 방법이 필요하고, 배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주역적 방법은 배치의 변화이다. 주역적 시쓰기는 배치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구도를 잡고 천변만화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기의 흐름에 따라 천지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치를 밝힌 주역을 해석하고 괘의 모양에 따라 언어를 배치함으로써 시인이 의도하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법에 대해 예가 될 수 있는 시를 제시할 수 있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기존의 시에선 이 방법들을 뒷받침할 만한 적합한 시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예시를 쓰면서 이론을 정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증명되지 않은 시창작법처럼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론을 먼저 정리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들은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시를 쓰는데 채워질 것이다. 또한 이 이론에 공감하는 많은 시인들이 나타나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미비한 점들을 채워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작성자 김기덕 [출처] [스크랩] 주역과 시 / 김기덕|작성자 옥토끼  
3    타로를 위한 시쓰기 / 김기덕 [한국] 댓글:  조회:1583  추천:0  2018-01-20
타로를 위한 시쓰기 / 김기덕    1. 마법사(THE MAGICIAN) 카드를 통한 이미지의 구성     메이저 아르카나의 첫 번째인 마법사 카드는 좋은 두뇌, 손재주, 말재주를 상징하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음을 의미한다. 모두가 홀딱 반할만한 말재주로 사람을 사로잡으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자신감에 차있는 젊은이를 말한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영민한 두뇌로 인해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상태이다. 이러한 해석을 만들 수 있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마법사 카드의 이미지 조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카드의 위쪽과 아래쪽엔 장미 줄기가 뻗어 있고 꽃들이 피어있다. 이 싱싱한 장미는 젊음과 청춘을 의미한다. 만개한 꽃들은 한창 전성기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쪽에 장미 속에 서너 개의 백합은 순결과 고상함을 의미한다. 붉은 색 계열의 네모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잔과 칼과 지팡이, 그리고 펜타클이 놓여있다. 황토색의 사각 탁자는 땅을 의미하며, 세상을 말한다. 또한 나의 관심사이며, 아직 모서리가 남겨진 인생의 미완을 의미한다. 컵은 감정, 영감, 정신세계와 무의식을 상징하고 있으며, 완즈인 지팡이는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불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하여 활동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칼은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를 의미하며, 매혹적이지만 냉혹한 감성을 말한다. 카리스마는 대단하지만 믿음이 부족하고, 욕망이 대단하여 돌진하는 강한 활동력을 의미한다. 또한 펜타클은 땅과 물질적 기반, 물질적 세계, 실제적인 문제나 직업, 돈을 의미한다.   이러한 네 가지의 사물이 청년의 앞에 있는 현실의 탁자, 세상의 탁자에 놓여있다. 청년은 이 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을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꿈이 가득하다. 탁자의 다리는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검은 색은 부패와 소멸, 좌절과 절망이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 즉 세상은 절망의 기둥으로 세워진 탁자인 것이다. 언젠가 그 탁자가 무너질 때가 있겠지만 아직 현실은 튼튼하다. 이 카드의 배경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노란색의 의미는 황금, 번영, 여름, 봄, 날카로움, 영적임, 명랑, 환희, 경고 등을 의미한다. 또한 태양을 상징하여 중국에서는 황제만이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도 고귀한 색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유다의 옷으로 상징되어 악당, 겁쟁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카드에서의 상징은 태양처럼 꿈과 희망이 가득할 수도 있지만 겁쟁이처럼 가볍고 경솔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정중앙에 서있는 청년은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있는데, 손에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가 들려있다. 이 지팡이는 마술사의 권위를 상징하며, 이 지팡이를 대는 곳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한대가 그려져 있다. 그의 상상력, 창조성은 무한하다. 흰옷에 붉은 외투를 걸쳤다. 흰옷은 순수와 순결, 성스러움을 상징하며, 붉은 외투는 열정과 권위를 상징한다. 그의 허리에는 뱀 모양의 흰 허리띠가 띠어져 있다. 뱀은 지혜인데, 허리에 둘러져 욕망과 정신의 중간에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석과 시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이다. 시는 이미지의 배치이다. 이미지의 배치 속에서 상징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컵과 지팡이와 칼, 그리고 동전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미지 배치의 묘미이다. 세상은 탁자로 상징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물들이 같은 공간에 배치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칼이 청년의 손에 들려있다면 마법사의 이미지는 달라질 것이다. 이는 마법사이기 이전에 장수와 같은 이미지로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배경이 노란색이 아니라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면 창조성이 충만한 희망적 세계가 아니라 절망적 세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배치 변화에 의해 상징의 세계는 다양하게 바뀔 것이다. 시에서도 이미지의 배치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느냐에 따라 시인이 의도하는 상징의 세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미지의 배치인 것이다. 일반적인 시인들은 자신의 시적 주제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할까를 염두에 두고 시를 쓴다. 그러다보니 이미지는 끌어오지 못하고 관념어를 쓰게 되는 것이다. 관념어를 쓰게 되면 상징의 세계는 깨지게 된다. 곧 상징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시는 예술성이 없는 시가 될 수밖에 없다. 시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저급독자를 위해 상징적 이미지의 사용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상징적 이미지를 포기하고 저급독자에게 다가서는 순간, 시는 설명적으로 바뀌게 된다. 설명적인 시는 독자의 상상력을 막고 단순한 자기 결론을 독자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것을 읽는 독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생각의 벽, 사고의 고정관념을 만들게 된다. 시는 자신의 의도 플러스 독자의 또 다른 해석이다. 작자의 의도가 100% 반영된다고 해도 독자가 200%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지로 구성된 시이어야 한다. 관념으로 구성된 시는 작자가 100%의 의도를 집어넣었다면 독자도 아무리 크게 느낀다 해도 100%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로 구성된 시는 작자가 100%로 의도했다면, 독자는 200%, 300%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데 있어서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어떤 이미지를 끌어오느냐이다. 주제를 생각하고 시 쓰기를 하든, 아니면 소재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시 쓰기를 하든, 먼저 시를 쓰기 위한 생각의 알맹이와 인접한 이미지, 유사한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이다. 마법사에서 칼은 탁자 위에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는 인생의 청년기이며, 꿈과 희망이 넘치는 출발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칼을 손에 배치한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칼을 머리 위에 있는 무한대 대신에 배치했다면 희망적이기보다는 전쟁과 살상을 꿈꾸는 절망적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를 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의 주제성이나 상징성이 달라진다. 중세시대의 그림을 오늘날에도 똑같이 시에 그릴 수는 없다. 과거의 상징물들을 오늘날의 상징물들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해진 공식과 같은 컵과 지팡이, 칼과 펜타클과 같은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대체할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의 카드가 하나의 문장이거나 단락이듯이 그 문장이나 단락을 타로카드의 이미지처럼 시에서도 이미지로 구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 이미지의 구성 속엔 바로 상징의 세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출처] 1. 마법사(THE MAGICIAN) 카드를 통한 이미지의 구성|작성자 김기덕   2. 여사제(THE HIGH PRIESTESS)   여사제는 검은 기둥과 흰 기둥 사이에 있다. 이 두 개의 기둥은 양면성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음과 양, 진실과 거짓 등과 같은 양면성의 사이에 앉아있다. 중용의 세계,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꿈꾸는 세계에 있다. 흰 기둥의 J는 Jachin(권력, Strength)을 의미하며, 검은 기둥의 B는 Boaz(국가, Establish)말한다. 이 두 개의 기둥 뒤에는 석류가 열려있다. 이는 풍요로운 생산을 의미하는데, 힘 있는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결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여사제와 같이 배치시켰기 때문에 이 여사제의 생각이거나, 기도, 꿈을 상징한다. 그리고 석류와 같이 그려진 나무의 모습은 마치 켜진 촛불과 같다. 이는 경건한 세계를 의미하며, 정신적인 성숙과 결실을 말한다. 이 여사제의 가슴에 그려진 십자가는 종교심을 상징한다. 옷은 주름이 져있지만 십자가는 구겨지지 않았다. 이는 흔들림 없는 신앙을 의미한다. 여사제가 걸친 가운은 푸른 하늘색이다. 그리고 땅에 드리워진 치마는 흰 구름과 같은 색이다. 치마에 걸친 초승달은 구름이 걸친 초승달과 같아서 시간의 흐름, 지나가는 세월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 초승달은 커지는 것이다. 초승달의 색깔은 황금색으로 그렸다. 이는 석류의 색깔과 같은 색으로 꿈과 결실,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여사제의 치마에 걸려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여사제, 성숙하는 여사제를 의미한다. 초승달은 상승하는 것이다. 만약 머리 위에 초승달이 걸려 있다면 금세 사라져버릴 것이겠지만, 치마에 걸려 있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치마의 아랫단은 물결과 같이 그려져 있다. 물결은 흐르는 것이다. 세월과 마찬가지로 지나는 것이고, 흐르는 시간과 같은 것이다. 여사제의 얼굴은 노련미가 없는 젊은 얼굴이다. 이는 미성숙, 아직은 삶의 연륜이 부족하지만 지혜와 총명함을 가지고 있다. 여사제가 손에 들고 있는 Tora는 유대인의 경전으로 신비주의적인 지식보다는 실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담고 있다. 즉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흔히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며, 히브리어로 가르침, 혹은 법을 뜻한다. 이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사람을 의미하며,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과 같은 모자를 썼고, 모자 중앙에는 보름달이 떠있다. 이 두 개의 뿔은 지혜의 날카로움, 확실한 자기주관과 엄격한 사고를 의미하며, 공격적인 지식의 예리함도 갖추고 있다. 보름달은 정확한 때를 의미하기도 하며 세상을 비추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토라를 믿고 신을 의지하는 의지자임을 암시한다. 초승달은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발아래 두었고, 보름달은 지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정점인 머리에 배치했다. 여사제는 풍요로움이 가득한 비밀의 정원 문을 지키고 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정절을 지키고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이 여사제는 행동가가 아니라 침착한 사색주의자 임을 알 수 있다. 바닥에 황금색은 희망적이며, 꿈이 가득한 상황을 표현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카드에서 많은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나하나의 그림 속엔 상징이 담겨 있어서 점을 치기 위해 카드를 뽑은 사람이 많은 암시를 받듯, 시도 읽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그림을 떠올리며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을 때 독자들은 시에 매료될 것이다. 어쩌면 우연히 만난 오늘의 시 속에서 영감을 받고 희망을 얻어 내일을 살 수 있는 생명시가 될 수도 있다. 절망과 좌절에 빠진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읽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시, 미래의 운명을 보여줄 수 있는 시를 쓴다면 시는 오늘날과 같이 천대받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타로 점을 치며 하나의 그림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타로의 묘미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카드를 뽑는 제비뽑기 같은 과정을 통해 운세를 맞춰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은 또 다른 강력한 기운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는 운명론적인 생각에서 타로는 존재해 왔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경험했으리라. 자다가 어느 날 문득 성경을 폈는데 그 성경구절이 자신에게 신이 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기억을. 어느 날 문득 시를 읽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시, 어려운 삶을 보듬어주는 시가 된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러한 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상징성을 담은 이미지의 시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여사제라는 하나의 그림 속에서 많은 의미를 발견했듯이 하나의 시 속에서 시인이 의도한 의미는 물론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까지도 독자들이 발견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정서로 받아들여 힘과 위로를 주고, 미래의 삶에까지도 암시를 줄 수 있는 시를 써야할 것이다. [출처] 2. 여사제(THE HIGH PRIESTESS)|작성자 김기덕 3. 여왕   포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여왕이 추수를 앞둔 들판에 앉아 있는데,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포도는 다산과 많은 생산을 의미한다. 포도 안에는 포도주와 같은 물질적 향락과 정신적인 쾌락이 공존한다. 포도의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은 것은 누리게 됨을 의미한다. 추수를 앞둔 들판은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다. 모든 수고가 끝나고 이제는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이 하늘의 황금색과 대비되고 있다. 역시 하늘의 노란색도 마찬가지로 풍요로움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여왕의 뒤로 상록수의 숲이 보인다. 상록수는 변함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풍요가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상록수 뒤로 활엽수의 숲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곡식을 거두는 계절이지만 아직 잎은 푸르다. 이는 이러한 풍요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같이 암시하고 있다. 숲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여왕의 발아래로 떨어진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생명을 살리고 키울 수 있는 양식이다. 물줄기는 마르지 않고 넉넉하게 흘러 곡식이 익은 들판을 적시고 여왕의 주변을 적시고 있다. 현재는 풍요롭고 안락한 가운데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진주목걸이를 하고 황금레이스의 옷을 입고 있어도 그녀의 눈은 우수에 젖어 있다. 더 큰 영광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으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에 쓴 열두 별의 면류관은 장차 올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열두 별은 열두 제자를 의미하며, 구원받을 자가 얻을 영광을 상징하고 있듯이 여기서의 열두 별 또한 이 여왕이 꿈꾸고 기다리는 영광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침대 밑에 있는 하트, 베개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며, 잉태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자의 면류관은 자식이며, 자식을 통해 과거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열두 별의 면류관과 이 모든 풍요는 자식의 유무와도 큰 관련성을 갖고 있다. 여왕의 이마에는 월계수관이 씌워져 있는데 이도 고대 올림픽의 승자에게 월계수관을 씌워줬던 것처럼 승자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황금봉은 권위를 상징하며. 의자 위에 놓인 쿠션과 방석은 붉은 색인데, 이것도 권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체 그림을 통해 볼 때 현재의 풍요와 권위 속에서도 여왕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 풍요와 영광은 지속될 수도 있고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침대의 잉태와 무관하지 않으며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느냐와 큰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 카드는 욕망의 끝없음을 의미하지만, 지나친 욕망으로 인해 쇠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부와 풍요를 즐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타로의 그림과 시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주제의식을 강조하여 쓰던 시에서는 이미지보다는 전달하고자하는 주제의식 때문에 사건이나 감성의 흐름을 중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승전결과 같은 의식의 변화, 감정의 진전이 이루어져야했다. 그 변화와 진전은 계단을 오를 때와 같이 납득할 수 있는 선의 보폭이 필요했다. 그래서 죽 시를 읽으면 이해가 가능했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의식의 순차적, 시간적 흐름에서 단절된,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고도의 집중된 의식의 집합을 통해 다양성과 무한변화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몽타주 기법이 쓰이고 있다. 이 몽타주 기법은 이미지들의 결합이며, 적절한 배치이다. 이미지들 간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상징성은 달라진다. 하나의 타로카드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점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많은 상징적 요소가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보는 방향,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로 나누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침대 위에 베개가 있다면 동침을 생각할 수도 있고, 휴식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왕이 입고 있는 옷의 포도는 여성적인 성숙을 상징할 수도 있고, 다산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미지는 상징을 확장시킨다. 설명적이나 관념적인 접근을 통해 시의 문장을 쓰게 되면 상징성은 축소되고, 단순화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람들은 단순화된 타로카드의 그림을 통해 인생을 해석하고 예언하려했을까? 거기에는 다양한 해석과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상징성이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은유나 상징을 통해 사실 그 이면에 숨겨진 뜻을 전하고자 하는 글이다. 그렇다면 숨겨진 뜻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시는 예술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시도 단순한 자기감정을 전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타로카드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많은 이야기 꺼리가 있는 풍요로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이미지들의 배치관계는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읽고 생각하게 하는 시, 소설이나 연구서 같은 한 권의 책이 압축된 시를 쓰기 위해선 고농도의 이미지들이 적절히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오른손에 높이 들고 있는 황금 봉을 왼손에 들고, 밑으로 향해 있다면 권위의 상징에서 추락하여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썼다면 장차올 영광보다는 고난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에는 많은 언어가 담겨있다. 이미지 속에는 생각이 많은 벙어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는 독자를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많은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를 쓰야 할 것이다. [출처] 3. 여왕|작성자 김기덕   4. 황제   타로의 네 번째 카드는 황제이다. 황제는 지배, 안정, 성취, 남성적 권위, 행동력, 의사, 책임감이 강함을 의미한다. 또한 한 명의 남성이 왕관을 머리에 쓰고 옥좌에 앉아 황홀을 들고 있는 그림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낸다. 먼저 4라는 숫자는 4방위(동·서·남·북), 4원소(지·수·화·풍), 4성질(온·건·습·냉), 수학의 사칙연산(+·-·×·÷) 등을 나타내어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권력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황제카드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색깔은 주황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빨강과 노랑을 합친 주황은 붉은 색의 정열과 노란색의 영적 숭고함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오랜지색은 호사와 화려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불교 승려의 장삼처럼 금욕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오랜지색과 빨간색이 섞인 주황은 영원불변을 상징하기도 하여 왕의 권위가 확고부동함을 나타낸다. 또한 황제는 부정적인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다. 강한 남성성과 주도권을 의미하는 반면 사태를 외면하고 상황을 기피하려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황제는 수많은 사람을 거느려야하기 때문에 책임에 대한 과중한 압박감이 있다. 따라서 황제의 표정은 밝지 않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누군가에게 대적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황제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몸을 한껏 뒤로  젖힌 자세에서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이 카드는 유대 왕(구세주)이 태어날 것을 풍문으로 들은 헤롯왕의 모습으로 권좌에 대한 불안감과 유아살해의 만행을 저질렀던 포악함의 이미지를 함께 담고 있다. 어쩌면 이 견해는 자신의 지배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당시 평민들의 심리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멸의 황금빛 목걸이를 두른 황제는 한쪽 손에 십자가 홀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면 누군가 싸우려는 기세이다. 배경으로 나오는 돌산은 인간의 포부와 야망, 정복을 의미한다. 또한 돌로 된 왕좌는 권위의 단단함, 강한 지배력을 의미하며, 앙크 십자가는 지식의 열쇠, 힘, 권위의 상징이다. 보주는 창조적 힘을 상징하는 여성에너지와 남성에너지에 대한 소유와 지배력을 상징한다. 왕관은 권위와 왕권을 상징하며, 갑옷은 내적인 단단함과 강함, 그리고 보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염은 연륜 있는, 많은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나타내며, 숫양은 독단적이고 강인한 힘과 고집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방향에 대한 해석은 권력, 상황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는 막강한 리더십, 탄탄한 미래, 인정받는 실력자를 의미하며, 냉혹한 현실과 막중한 책임감, 믿을 수 있는 신뢰와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에 대한 역방향은 무기력한 존재를 나타내며 의지가 약하고 낭비가 심하며, 허세를 부리는 자를 의미한다. 미숙하고 마음이 약하며 망설임이 많은 사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타로는 상징적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그림카드이다. 시에서도 상징적 기법의 시를 쓸 수 있는데, 이미지를 이용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를 써야 한다. 타로카드의 그림 대신 시에서는 이미지어의 사용을 통해서 상징성을 나타내어야 하는데, 이런 이미지어들이 시를 해석하는 키워드 역할을 하게 된다.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최은묵의 키워드라는 시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키워드/최은묵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두레박으로 소문을 나눠 마신 자들이 전염병에 걸린 거목의 마을   레드우드 꼭데기로 안개가 핀다. 안개는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의 지도   아이를 안은 채 굳은 여자의 왼발이 길의 끝이었다.   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잎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채워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이다.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키워드’를 보면 상징적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타로카드가 상징적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듯이 이 시도 상징적이 이미지들로 시를 구성하여 다양한 해석과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시의 첫 문장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에서 ‘죽은 우물’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죽은 우물을 건져낸 것은 상징적인 기법인 것이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른다는 표현이나,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 지도”, “배설을 끝낸 평면”,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 등과 같은 표현은 상식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이다. 이는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결합된 문장이기 때문에 타로카드에서 이미지를 통해 하나하나 해석해 나가듯 이미지어의 결합들을 풀어나가야 알 수 있는 시이다. 이미지 속에는 이미 원형적인 상징성이 들어 있다. 물론 개인적이거나 공중적인 상징성이 들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상징성은 독자와의 소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시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물 속에 담긴 원형적인 상징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게 쓰려면 사물에 대한 상징성의 연구가 필요하다. 위 시에서 사용한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원천을 의미한다. 죽은 우물은 병든 사회, 꿈을 상실한 인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치료하려고 뒤집어서 살을 바르지만 부식되지 않는 갈까마귀 떼들이 땅으로 내려 온다. 살은 생명의 요소라서 더 이상 같이 썩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죽음의 사자와 같은 갈까마귀떼는 부식되지 않고 내려온다. 부식은 금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화학작용이다. 갈까마귀는 생물이지만 금속적 요소를 가지고 표현한 것은 언어적 결합에 있어서 어색할 수도 있으나 삭막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흰개미 또한 상징적 시어라고 할 수 있다. 개미의 종류에는 불개미, 침개미, 검정개미, 혹개미, 주름개미, 왕개미 등등의 많은 종류가 있지만, 왜 하필 흰개미라고 했을까? 흰색은 보호, 순수, 정직, 계몽, 깨끗함과 연결되며, 또한 생기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불개미라는 표현을 썼다면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흰개미의 서민적 의미가 지하의 세계와 더불어 소외계층을 의미해주고 있다. 우리가 타로카드를 해석할 때처럼 상징적 이미지들로 조합된 시를 해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공감되기 어렵고, 독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를 왜 써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피카소 같은 화가는 공감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린 걸까? 예술에는 독자와의 자연스런 소통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지만, 고도의 지적인 사람만이 느끼고 소유하고자 하는 지적유희가 있다. 특권층만이 누리고자하는 물질적 고품격의 세계와 같은, 고도의 상징체계를 통해 감추어진 의미의 세계를 누릴 수 있는 고차원의 지적인 유희의 쾌감을 누리고자하는 예술적 욕망이 깔려있다. 타로카드를 이용한 상징시쓰기의 기법은 이러한 고도의 지적유희를 성취시키고자하는 고급독자들을 위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은묵의 키워드를 분석해보면 우물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우물은 생명을 말하는 것으로 시의 문장마다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를 심어놓고 있다. 살이나 두레박, 레드우드, 아이, 여자, 길, 눈물, 물길, 실뿌리, 피부 등등이 모두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들로 문장마다 키워드를 심어놓고 있다. 매우 난해한 시 같으나 이렇게 유사한 상징적 요소들을 배치함으로써 문장의 내용들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처럼 황제의 타로카드에도 왕관, 돌산, 황홀, 수염, 갑옷, 숫양, 왕좌, 보주, 주황색 등등의 상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상징물들을 통해 시를 쓰게 되면 언어의 상징성 때문에 서로가 다 이어지고 통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사물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시는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언어의 색깔을 잘 파악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의 색을 표현하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 그리고 명사의 활용에서 나타나는데 그 예를 들면, 왕관이라는 사물에서 ‘왕관이 떨어졌다’와 ‘왕관을 썼다’와는 희망적 색깔과 절망적 색깔과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형용사로 살펴보면 ‘빛나는 왕관’과 ‘퇴색한 왕관’을 볼 수 있다. 명사적인 차이를 보면 ‘보석 왕관’과 ‘플라스틱 왕관’ 등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타로카드를 활용한 시쓰기를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상징물들을 찾고, 이 상징물들과 유사상징물을 찾아야 한다. 황제의 상징물은 공식과 같은 것이다. 이 공식에 대입될 수 있는 다른 상징물을 찾아야 한다. 먼저는 배경을 찾아야 한다. 배경이 없는 사건과 사물의 조합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물을 배경으로 잡는다면 황제카드의 상징물들과 유사한 사물들을 배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홀-태양, 수염-갈대, 갑옷-물결, 숫양-고사목, 왕좌-절벽, 보주-달, 주황색-노을, 왕관-배, 돌산-능선 등으로 상징적 유사관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유나 은유적인 표현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짝을 이루는 이 상징물들을 활용하여 직유적, 은유적 관계의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태양 같은 황홀’, ‘수염 같은 갈대’ 또는 ‘숫양 뿔의 고사목’, ‘달의 보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예술성은 다양한 시각과 복합적 상징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단순성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상징성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하늘의 황제는 독수리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황제는 고래나 상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와 유사한 사물을 끌어와 배치시킨다면 좀 더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황홀-태양-독수리의 눈동자, 수염-갈대-털, 갑옷-물결-발톱, 숫양-고사목-부리, 왕좌-절벽-허공, 보주-달-별, 주황색-노을-하늘, 왕관-배-날개, 돌산-능선-구름 등과 같이 유사한 상징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셋으로 짝이 이루어지면 문장을 만들기도 쉽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지게 된다. 황제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를 써도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 황제를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끌어와야 이 시는 살릴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배경이 중요하다. 황제는 과거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이 과거적 인물을 현재적인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선 현재적 공간으로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만든 공간을 강물과 연결시켜서 절벽이 있고 산이 있고, 강물이 흐르는 자연적 공간이다. 이 공간을 도시와 연결시켜서 상징성을 만든다면 우리의 삶 가까이 끌어올 수 있다. 그리고 황제는 과거의 황제가 아니라 타로카드의 황제이며, 집안의 황제이며, 직장의 황제이며, 나라의 황제인 자존감을 주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공식적인 배치를 통해 완성된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는 내 개인적인 역량의 작품이며, 잘 되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고 쓴다면 보다 명징한 상징적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자기가 왜 썼는지도 모르고 쓴 모호한 시들이 너무 많다. 이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책임 있는 시를 써야 한다.      황제의 비밀   카페나 호주머니, 낡은 가방 속 그 어디에도 황제는 있다.   황홀을 든 태양의 눈동자가 물결 위를 지날 때마다 갈대들은 허리를 꺾었다.   갑옷 속에 감추어진 불안의 발톱이 물결을 할퀴며 건져 올린 안개의 거리는 마차소리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고사목의 뿔들이 내걸린 절벽, 죽음의 부리만이 서로를 쪼아댄다.   피로 번진 노을이 암투의 커튼을 드리운 하늘가 숨겨진 욕망이 치솟는 곳은 어디든 마천루다.   달의 보주를 차지하기 위해 밤마다 강물 위로 별들은 폭죽처럼 쏟아졌었지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 왕관이 녹슨 세월을 흘러 정박하는 곳 아무것도 믿을 수 없던 독수리는 늘 땅으로 추락했다.   날을 세운 바위들만 송곳처럼 삐져나온 안개 속 철탑의 도시 뿔을 단 사람들이 황제가 되어간다. ​ ​아기의 울음이 헤롯의 칼과 방패를 삼킨 후 스카이라운지나 전광판, 갤러리, 그 어디에도 황제는 없다. ​ 대관식을 마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로 떠난다.   (김기덕/시 전문) [출처] 4. 황제|작성자 김기덕 5. 교황   교황은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로 한 손엔 황금색 지팡이를 다른 한 손은 축복의 표시로 세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어 신뢰감이 강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 황금색은 권위의 상징으로 신과 버금가는 연결자로서의 존귀함을 의미하는데,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다. 이 십자가는 삼중십자가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의미한다. 또한 세 개의 손가락을 편 것은 삼위일체를 의미하며, 머리에 쓴 삼중왕관도 신적 권위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또한 하늘, 땅, 사람 세 가지가 어우러짐을 뜻하기도 한다. 교황 발밑에 있는 두 개의 열쇠는 천국의 열쇠와 땅의 열쇠를 상징한다. 천국의 열쇠는 황금열쇠, 땅의 열쇠는 은열쇠로 되어 있는데,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베드로의 후손인 교황이 황금열쇠를 갖게 되어서 황금열쇠로 나타냈다. ​       실용적인 지혜와 신이 내린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는 열쇠 또한 십자가처럼 크로스해서 그림으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양털로 짠 Y자형의 하얀 띠인 팔리움은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다. 어깨 위에 걸친 팔리움은 선한 목자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교황의 권력을 강조하기보다는 주교관처럼 겸손함을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교황의 말씀을 듣고 서 있는데, 두 제자를 의미한다. 제자들의 옷엔 장미와 백합이 수놓아 있는데, 장미는 정열과 사랑을 의미하며, 백합은 순결과 순종을 의미한다.     제자는 법률과 규칙, 전통을 의미하며, 대머리는 지식이 충만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원칙만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기둥이 좌우에 두 개인 것은 빛과 어둠, 선과 악, 남자와 여자와 같은 모든 대비를 의미한다. 그 기둥 사이에 교황은 위치해 있다. 이는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절대로 심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의 푸른색 옷은 신의 무한한 지혜를, 붉은 겉옷은 신의 권위를 상징한다. 교황의 발아래 있는 체크무늬는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것으로 세상을 발아래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고 있는 신발은 흰색인데, 발은 행위를 의미하여 그 행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해야함을 상징하고 있다. 숫자 5에 교황을 놓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 숫자 5는 다섯 손가락처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5는 예수의 몸에 난 상처를 의미하기도 하며, 5일 동안 세상의 완성과 동서남북과 중앙의 배치로 인한 오방의 안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우주의 기를 상징하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이 있다. 5의 다른 의미를 살펴보면 인, 의 예, 지, 신의 오상과 간, 심, 폐, 비, 신의 오장이 있고, 쌀, 보리, 조, 콩, 기장의 오곡이 있다. 인간의 오복인 수, 건강, 부, 덕, 고종명 등이 있다. 어쨌든 인간의 완성적 존재인 교황을 5번에 둠으로써 신성을 입은 최고의 권위를 상징했다. 지금까지의 해석을 통해 그 뜻을 살펴본다면 의식, 연민, 동정심, 친절함, 용서, 영감, 예속상태, 행동력 없음, 소심함, 고지식함, 정신적인 리더 등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던 상대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거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다는 의미가 있다. 계약이 맺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늘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만약에 이 카드가 거꾸로 뽑혔다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화려함이나 사치가 가득한 사람이 되거나, 친절하지만 두려운 사람, 게으르고 못난 사람, 현재 상태를 벗어나길 거부하는 비개혁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까지 타로카드에서 쓰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지들은 살아있고 혼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우리가 의도하는 시심을 나타낼 수 있다. 타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질문을 정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질문의 답을 얻기는 어렵다. “나의 인생에 대해서?”, “앞으로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와 같은 질문의 답은 사실상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내일 면접을 봐야할까?”, “어느 대학에 입학할까?”와 같은 구체적 질문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에서도 시를 쓸 때 구체적인 대상설정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이미지이어야 하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사물이나 명징한 대상이 먼저 선택되어야 한다. 지금 내가 슬프니까 막연히 ‘슬픔’을 가지고 시쓰기를 시작할 수는 없다. 슬픔이 담긴 사물이나 이미지, 정황,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그 대상을 먼저 정하지 않는다면 구체적 질문을 정하지 않고 타로점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미지, 정황, 스토리를 정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시를 쓰게 되면 관념적인 시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현재의 많은 시인들이 테크닉의 발달로 언어를 꼬는 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언어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미지의 활용은 되지 않고 있다. 확실한 시적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 안에 자신의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이미지의 배치가 필요하다. 타로카드 다섯 번째인 교황을 통해 우리는 많은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이 교황카드 안에 배치된 이미지는 교황, 왕관, 기둥, 황홀, 열쇠, 팔리움, 붉고 푸른 옷, 백합과 장미, 체크무늬, 십자가 등 몇 안 되는 사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시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정한 시적 대상에 필요한 이미지들을 끌어오고 그 이미지들을 적절히 조합하기 위해선 먼저 확실한 시적 대상 설정이 필요하다. 그 시적 대상은 반드시 이미지가 있는 대상이길 바란다. [출처] 5. 교황|작성자 김기덕   6. 연인들   여섯 번째 카드는 연인들이다. 여자의 등 뒤에 있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그녀를 유혹했던 뱀과 진실의 나무이다. 나무는 삶과 죽음, 부활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무는 풍요와 지식, 보호, 창조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뒤에 있는 나무는 지식의 나무로 선악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무를 감고 있는 것은 하와를 유혹한 뱀으로 선악과를 먹게 된 이브의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다. 우측에 있는 남자는 아담인데, 아담 뒤의 그림은 사막에서 불타올랐던 여호와의 가시떨기나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고, 신의 현현이다. 곧 남자의 뒤에 있는 나무는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으며, 재생, 원초, 완전성을 의미한다. 생명나무의 12개의 불꽃은 태양의 순환주기 12개월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남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신의 사자이다. 천사를 보며 여자는 뱀의 유혹에 따를 것인가를 생각하고, 남자는 신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옷을 입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은 상태가 아니라 그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천사의 양쪽 날개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상징한다. 사랑이란 긍정적으로 행복과 기쁨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유혹과 파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직 유혹에 빠지지 않았지만  갈등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붉은 색의 날개는 불타는 정열을 나타내며, 머리 위로 비치는 태양은 사랑의 긍정적인 행복과 기쁨을 나타내지만, 천사의 아래쪽에 있는 구름은 사랑의 부정적인 의미로 슬픔과 아픔을 상징한다. 뾰족이 솟은 산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또한 구름은 물을 상징한다. 주역에서 택산함(䷞)은 산 위에 연못이 있는 형상으로 남녀의 교접을 의미한다. 산의 정기는 위로 치솟고, 물의 정기는 아래로 내려와 서로 교합함으로 사랑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의 상징이다. 천사의 보라색 옷은 고귀함의 상징이며, 신의 예지와 자애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수난의 그리스도 옷 빛깔이 되기도 한다. 땅의 녹색은 사랑의 결실로 인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번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은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영원성과 맑고 깨끗함, 무한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연인들에게는 무한한 희망과 꿈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할 길은 평탄치만은 않다. 우리의 시각으로 카드를 보면 우측에 남자가 있지만, 천사의 입장에서 보면 좌측에 남자가 서있다. 좌측은 양을 상징한다. 양은 홀수, 아버지, 남자, 강함, 움직임, 위쪽방향, 좌측, 맑음, 밝음, 근본, 큼, 귀함, 줄기 등과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우측의 여자는 음을 상징한다. 음은 짝수, 땅, 어머니, 여자, 부드러움, 고요함, 아래쪽, 우측, 나중, 끝, 반대, 작음, 천함, 가지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특히 사랑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불행할 수도 있는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다. 정방향의 해석은 사랑에 빠지게 됨을 의미하며, 유혹에 흔들림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사람과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며, 재판의 승리나 사랑의 승리로 인한 기쁨을 의미한다. 역방향의 해석은 준비가 덜 되어 사랑에 실패하게 됨을 의미하며, 실수로 창피를 당하거나 손실을 상징한다. 사랑의 상처로 힘들고 괴롭게 됨을 의미하고 있다. 타로카드에서 구체적인 질문을 정했다면 이제는 카드를 뽑아야 한다. 초보자들은 카드 뽑기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카드의 선택은 순전히 직감에 따라야 한다. 카드의 중간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해도 좋고, 바닥에서 선택해도 좋다. 하지만 카드를 일부 살짝 들어낸 후 적당히 꺼내어 배열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시에서 카드를 선택하는 것은 시적 대상을 잡는 것이다. 나무를 대상으로 잡든, 봄을 대상으로 잡든, 대상을 선택한 후 그 대상으로부터 이미지를 뽑는 것이다. 위의 연인들 카드에서 태양, 날개, 구름, 보라색 옷, 뱀, 선악과, 생명나무, 산, 남자, 여자, 대지 등과 같은 이미지를 뽑듯 하나의 시적 대상을 정하고 이미지를 뽑는 과정이 바로 카드의 선택과정인 것이다. 만약에 산이라는 시적 대상을 정했다면 산에 속한 이미지 나무, 돌, 계곡, 능선, 낙엽, 꽃, 열매, 산짐승 등등의 이미지를 뽑아야 하는데, 이러한 이미지를 뽑기 위한 대상, 즉 산을 먼저 정하는 것이 카드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시적 대상을 뽑을 때에는 이미지가 있는 대상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타로카드처럼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무수히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로카드를 뽑는 것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뽑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나의 의지가 아닌 어떤 기운의 흐름에 의해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타로카드의 선택에 초월적인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에 끌려 어떤 시적 대상을 선택할 때는 정서적 공감과 지적 합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많거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시적 대상을 끌어오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을 것이다. 타로기법에서 시적 대상을 정하고 시를 써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을 읽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을 읽는 힘이 있을 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밀하고 깊은 부분까지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의 결합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 ‘사막의 연인’은 타로카드의 여섯 번째인 연인에서 이미지를 뽑은 후, 그 이미지를 오늘날의 카페로 끌어와 이미지를 교차시켰다. 연인의 이미지는 아담, 하와, 태양, 구름, 선악과, 뱀, 생명나무, 산, 천사, 초원 등이 있다. 여기에 카페의 이미지를 찾으면 에스프레소, 남자, 여자, 생크림, 탁자, 카펫, 잔, 혀, 조명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연인의 긍정적인 색깔보다는 부정적인 색깔로 이미지화하여 표현하기 위해 타로카드의 정방향의 표현보다는 역방향의 표현을 선택하다보니 사막을 끌어왔다. 그리하여 사막의 이미지 인 모래, 가시, 오아시스, 바람, 선인장 등을 끌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뽑은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아담과 하와-남자와 여자, 황무지-카페, 생명나무-장미, 태양, 달 등으로 대치시켰다. 또한 뱀의 혓바닥-꽃잎, 누드-옷을 입은 모습, 사막-에덴, 오아시스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분위기, 흐름, 감정, 색깔 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연인(戀人)   아담과 이브가 바람뿐인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퇴색된 열두 개의 생명나무 불꽃이 일 년 열두 달 검은 장미로 피어났다.   생크림을 핥는 뱀의 혓바닥 위로 노을이 지고 꽃잎이 떨어진다.   선악을 알기 전의 남녀는 누드였다. 서로를 알고 난 후부터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몸에서 붉은 가시들이 솟아났다.   녹색의 초원이 놓인 탁자 위로 에스프레소가 쏟아지자 황무지가 펼쳐진다. 사막을 오가던 말들이 선인장이 되어 모래 속에 뿌리박고 피보다 진한 꽃을 피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동산엔 열두 개의 태양과 열두 개의 달이 뜨고, 보라색 옷을 입은 천사가 양팔저울에 해와 달의 열매를 달았지.   구름이 치마끈을 풀고 능선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면 산은 잔이 되고, 잔엔 옥수로 가득했던 눈물을 안 후,   다시 누드로 돌아갈 수 없는 아담과 이브가 라이브 카페의 난간에 앉아 마시는 치사량의 검은 입술이 머그잔을 타고 흘러내린다.   카펫 위엔 엉겅퀴가 자라고, 독버섯이 피어난다. 구둣발에 짓밟힌 오아시스가 뱀처럼 몸을 말며 서로의 발뒤꿈치를 문다. [출처] 6. 연인들|작성자 김기덕   7. 전차 (1)   이륜의 전차를 탄 젊은 왕의 모습인 타로 일곱 번째 카드인 전차는 명확한 목적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걸음을 내디딘 장면으로 해석된다. 전차는 승리, 전진, 이동, 자신감을 상징하지만, 전차는 변화와 인과법의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변화와 인연, 인과법을 의미한다. 왕의 양쪽 어깨에 있는 초승달과 얼굴 모양의 장식은 앞으로 겪어야 할 선택의 이중성을 보인다. 초승달은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초승달이 얼굴과 배치됨으로 내면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머리에 쓴 왕관의 8방향의 별은 승계 받은 권력의 상징인 태양이다. 이 태양이 8방향으로 표현된 것은 사방팔방으로 그의 권력이 미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젊은 왕은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추억을 회상하지 않는다.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전진할 것이다. 그의 푸른 옷은 권력을 상징하며, 전차 위에 내려놓은 손은 그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어진 것임을 말한다.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도시는 대립되는 전쟁이나 내적 갈등을 상징한다. 휘장에 그려진 별들은 그가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별이 각각 크기가 다른 것은 그 사건이 크고 작은 많은 종류라는 걸 말한다.  이 전차를 끄는 스핑크스는 인간의 머리와 가슴을 하고 날개를 단 사자로 이집트와 그리스 전통에서 신성한 장소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검은 색과 흰색의 두 스핑크스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이렇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스핑크스들이 이 전차를 끌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스핑크스는 악행과 덕행을 상징하며, 세상의 이원적 요소들을 의미하고 있다. 동양철학의 음과 양이며, 사랑에 있어서의 사랑과 증오이다. 세상은 이 이원적 요소들의 대립과 갈등 속에 형성되며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카드의 정방향을 뽑았다면 성공과 승리, 사랑, 정복, 원군, 행동력, 적극력, 돌진력, 개척정신, 독립, 해방을 의미하지만, 역방향의 카드를 뽑았다면 실패와 좌절, 이별, 폭주, 부주의, 제멋대로 함, 독단력, 방약무인, 초조, 호전성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배경으로 칠 해진 노란색은 긍정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노란색은 예로부터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중국 제왕의 의복 색깔과 황궁의 기둥이 노란색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의 옷도 황금실로 수놓은 곤룡포였다. 또한 신성과 충성, 관용과 아량, 고귀한 성품과 지혜, 합리적 사고, 정신적 성숙, 수확 등과 같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개인이나 사회에 있어서 황금시대, 황금시절 등과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7이라는 숫자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길한 숫자여서 그런지 수메르 신화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이는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큰 별이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일곱 개여서 그럴 것이다. 7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무지개색이나 칠삭둥이, 북두칠성 등의 영향이 클 것이다. 종교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칠일 동안 만드셨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도 일곱 번째로 예수님을 배치시켰다. 동양적 사상으로 살펴보면 천, 인, 지 3에다가 동, 서, 남, 북 4가 더해져 완전 숫자로 여기고 있다. 전차를 타로카드 7에 놓은 것은 행운의 상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차 앞에 그려진 날개는 전진과 상승을, 팽이는 순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 장에서는 타로카드를 뽑을 때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뽑아야 하는 것처럼 시를 쓸 때도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뽑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대상은 이미지가 있는 사물이나 사건, 정황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이번엔 이렇게 타로카드를 뽑되 몇 개의 카드를 뽑을 것인가? 뽑은 카드들에 대한 배치를 어떻게 하며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카드의 배열법은 카드를 펼치는 방법으로 스프레드(spread) 또는 레이아웃(layout)이라고도 한다. 즉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위치에 카드를 배열하는 것이다.   1 카드 배열법 카드를 섞은 후 그 중에 한 장만 뽑는다. 가장 기초적인 배열법인데, 메이저와 마이너를 모두 섞은 다음 한 장만 선택하여 뽑는다. 그리하여 이 뽑은 한 장의 카드를 통하여 자신이 얻고자 하는 답을 찾는 방법이다. 시에서도 1 카드 배열법처럼 하나의 단락으로 시를 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된 시는 그 내용이나, 시점, 주제의 통일, 이미지의 통일 등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카드 배열법 카드를 세 장 내려놓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배열법으로써 초보자는 물론 능숙한 사람들까지도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카드는 잡은 순서에 따라 일관성 있게 배열해야 한다. 해석은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의미로 진행되는데, 시에서도 기, 서, 결과 같이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내용적으로도 과거, 현재, 미래가 되든, 아니면 하나의 대상에 대한 세 방향의 시각이든, 각각 다른 차원의 상징적 연결이든 상관없다. 유사성의 세 가지 사물이나 정황, 스토리를 배치시키는 것도 3 카드 배열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순차적 배열법(평면적 배열법)       순차적 배열은 이야기가 진행되듯이 내용이나 사건, 의미의 진행 또는 진전을 이루는 방법으로 평면적인 관계를 만든다.   비순차적 배열법(입체적 배열법)   비순차적 배열법은 입체성을 살리는 방법으로 유사 상징적 대상들로부터 뽑은 이미지를 무작위로 가져다가 배치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이미지를 무작위로 가져다가 배치해도 통할 수 있는 것은 유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상징성을 가진 이미지들이 다 통할 수 있는 것은 그 해석의 여지가 폭넓기 때문이다.   5 카드 배열법 5 카드 배열법은 다섯 장의 카드를 뽑아 각 위치별로 배치한 후 해석하는 방법으로 시에서는 복잡한 이미지의 결합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단락을 만들든, 다섯 개의 구멍으로 사물을 보든, 다섯 개의 유상상징물들을 교차시키든 상관없지만, 그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다섯이라는 수에 철저할 필요는 없다. 여러 시각과 여러 상징물들의 결합, 다층적 의미 등등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결합하여 복잡한 예술적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10 카드 배열법이라든지, 켈트 십자가 배열법 등이 있는데 이는 복잡한 방법으로 시에서는 장시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7. 전차|작성자 김기덕   8. 힘 (1)   타로카드 8번 힘은 여인이 사자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르는 그림이다. 미녀와 야수 같은 그림으로 진정한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음을 상징한다. 꼬리를 내린 수사자는 혀를 내민 채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의해 온순해져 있다. 하지만 사자의 내성은 감추어진 발톱처럼 포악하고 위험하다. 언제 달려들어 물을지 모른다. 수사자는 동물적 본능을 의미한다. 또한 대자연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사자로부터 산과 계곡과 나무와 풀들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의 힘이 뻗어 나오고 있는데, 이는 강력한 힘의 대자연이 창조적 여인에 의해 순화되고 길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사자의 동물적 본능은 이성적인 힘에 의해 조절되고 다루어짐을 상징한다. 여인은 여왕이나 왕비의 옷이 아닌 서민적인 옷을 입었다. 여왕이나 왕비의 권력이 진정한 힘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봉이나 지팡이를 들지 않은 맨손이다. 이 맨손은 완력을 쓰지 않고 마음으로 다스릴 때 어떤 강한 것도 굴복시킬 수 있음을 상징한다. 몽둥이나 채찍을 들었다면 이 사자는 물으려고 대들었을 것이다. ​사람관계에서도 법이나 힘으로 억누르려한다면 강한 반발과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으로 다스린다면 스스로 굴복하고 애정으로 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여인은 또한 흰옷을 입고 있다. 흰옷은 순수하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그 만큼 악의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여인의 머리와 허리에서 화초가 자라고 꽃이 피어난다.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애정과 순수한 감정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감을 상징한다. 여인의 머리 위에는 뫼비우스의 띠가 그려져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지혜와 지식, 경험을 상징한다. 이 뫼비우스의 띠는 무한대를 그리고 있다. 그 만큼 많은 지혜가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타로카드 8번인 힘에서 상징하고 있는 것은 힘은 사자와 같이 폭력과 완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부드러움에서 나오며, 지혜와 풍부한 경험 속에서 진정한 힘이 나옴을 상징한 그림이다.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과거 자연에 대한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자연재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닥쳐올 자연재해를 미리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것도 역시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는 힘의 무한성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리는 겨울의 힘이 강한 것이 아니라 눈과 얼음을 녹이고 온 세상에 새싹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이 진정한 강함임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래 8번에 있는 힘은 11번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8번 카드와 11번 카드가 지금도 맞바꿔져 사용되기도 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1번 카드 마법사에서 한번 나오고, 11번째 카드 힘에서 두 번째 나온 후 21번 카드 세계에서 두 개가 한꺼번에 나온다. 타로카드 1~9까지는 정신세계 영역인 것이 10번 카드 운명에서 일단락 된 후, 11~20까지 현실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21번 세계에서 두 뫼비우스가 동시에 하나로 엮어짐으로 두 세계의 통합을 의미한다. 배경으로 칠해진 노란색은 따뜻함과 긍정의 의미이다. 따뜻한 미소처럼 강한 것은 없다. 따뜻한 미소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 긍정적 마인드처럼 추진력 있는 힘도 없다. 눈에 보이는 총과 칼이 무서운 힘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부드러움이 또한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의미는 역량의 크기가 큼을 말하거나,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성과 자제력이 있음을 의미하며, 실행력, 지혜, 용기, 냉정 및 지구전이 필요함을 상징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어리광 및 소극성, 무기력, 임무전가, 우유부단함을 상징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서정성에 있었지만, 이제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성은 평면적인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시를 만든다. 그 입체성 안에 많은 방들이 있어서 다양한 물건을 숨겨 둘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감추어 둘 수 있다면, 어장에 많은 고기를 기르듯 정신적, 지식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진정한 힘은 감성의 전달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데 있다. 그러한 힘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다층구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층구조는 유사성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미지 간의 결합만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층구조는 반드시 상징성과 철학성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이미지가 만드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유사한 이미지들은 심층적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수평적 구조를 만든다.   꽃 여자 향수       이 관계를 집합으로 표시한다면 꽃∩여자+여자∩향수+향수∩꽃=꽃∩여자∩향수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집합의 관계는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이며,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며, 다양성,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건물을 짓는 다면 위쪽으로 뻗어가는 것보다 옆으로 확장해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강물   도시 세계       또한 위의 그림과 같은 관계를 집합으로 표시하면 강물⊂도시+도시⊂세계+강물⊂세계=강물⊂도시⊂세계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는 여집합의 관계로 복층적 관계를 만들며, 심오한 차원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이러한 요소를 찾고 복층적 관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개념적 요소를 알아야하며, 그 개념적인 요소는 이미지가 아닌 관념성 및 철학성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강물의 안개를 시적 이미지로 끌어왔다면 도시에서의 안개, 세계에서의 안개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같은 안개이지만 그 안개의 의미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찾는 것이 복층적 관계를 만드는 일인데, 이러한 연관관계를 찾기 위해서는 이미지 간의 연관관계보다는 의미의 연관관계, 철학성 및 관념성의 연관관계를 알고 연결시켰을 때만이 심층적인 깊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안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안개와 유사한 이미지를 찾는다면 연기나 구름 등과 같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이미지의 관계는 심층적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강물에서의 안개, 도시에서의 안개, 세계 속에서의 안개, 내 마음 속에서의 안개를 찾았을 때 심층적인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똑같은 안개이지만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다른 의미의 똑같은 이미지를 찾고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관념성, 즉 철학성이 필요한 것이다. 위에 있는 타로카드 8번의 힘에 그려져 있는 사자는 맹수성, 폭력성, 완력성, 육체성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맞는 상징적 요소를 찾는다면 폭군, 남자, 왕, 자연, 바다, 감정 등과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사성에서 연결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가지고 있는 관념성에서 뻗어나간 사고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자의 유사성은 꽃이나 천사와 같은 것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폭군 같은 사자를 달랠 수 있는 부드러운 여성성이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폭군을 달랠 수 있는 여성성, 왕을 달랠 수 있는 여성성,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여성성, 바다를 잠잠케 할 수 있는 여성성,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이성과 같은 관념성으로 연결 관계를 찾아야 한다. 야수와 미녀의 관계는 가정과 사회, 세계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미녀와 야수를 통해 세상과 사회와 가정, 내 마음 속의 야수성과 여성성을 함께 복층적으로 그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층적 상징관계를 그려주는 것은 유사한 이미지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철학성, 관념성의 상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타로카드 8번 힘의 손, 화관, 드레스, 여인, 뫼비우스의 띠, 꼬리, 이빨, 발톱, 사자, 벌판 등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봄과 겨울, 미녀와 야수, 가정의 남편과 아내, 폭군과 여인 등의 관계를 나타낸 시이다.   미녀와 야수   화관을 쓴 여인이 눈보라의 꼬리를 감춘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마와 목덜미를 간질이는 손에선 쇠사슬이나 망치보다 강한 쇳물이 흘러내리고 발톱을 숨긴 사자가 고개를 흔들며 얼음의 눈빛을 떨군다.   긴 혀를 빼문 태양이 핥아대는 거리엔 하루 종일 푸른 잎들이 돋아나와 갈기를 흔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설산의 이빨 폭군의 뇌성은 밤에 더욱 빛났었다.   흰 드레스에서 쏟아지는 꽃잎들로 벌판엔 초록빛이 물들고 가시뿐인 사내들의 몸에선 새싹이 돋아난다.   성해 속에 감추어진 이빨들이 물어뜯던 유리창마다 햇살 같은 눈웃음이 물방울로 맺힌다.   허리에 두른 꽃잎들 속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빙판을 녹이며 강물로 흘러가는 꽃향기 갈색 사자의 세포마다 새싹이 움트고 초록빛 갈기를 휘날리던 사내의 전성기는 여인의 손끝에서 왔다.   뫼비우스 머리띠를 한 여인이 꽃잎으로 피어나는 밤 얼어붙은 도시의 벌판을 지나온 발가락마다 으르렁으르렁 발톱들이 잘려나간다. [출처] 8. 힘|작성자 김기덕   9. 은둔자   타로카드 9번째 은둔자는 별이 들어있는 등불을 높이 든 늙은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설산 위에 서있는 그림이다. 은둔자는 고독과 현인, 현자를 상징하며, 정신과 마음의 정화와 치료를 의미한다. 노인이 오른손에 든 별이 들어있는 등불은 세상을 밝히는 지혜를 상징한다. 등불 속에 들어있는 별은 꺼지지 않는 불이다. 바람과 같은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별의 빛깔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고귀함을 의미하며, 차원이 높은 영적 고매함을 뜻한다. 이 노인은 오른손에 등불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이는 세상 멀리까지 비추기 위함이다. 몽매한 세상을 밝히고자하는 현자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왼손에 든 지팡이 또한 황금색인데, 이것도 고귀함의 상징이며, 크고 긴 지팡이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가졌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팡이가 짧고 가늘었다면 이는 자신의 몸을 의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겠지만, 크고 긴 지팡이는 자신을 의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영적 깨달음의 지팡이인 것이다. ​또한 이 늙은 남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고 있다. 세상을 보고 있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인 세상에 치우친 자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얀 수염의 노인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는 조언을 하고, 정신적이며, 조용하고, 영웅과 같은 존재로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영혼을 인도하는 신인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를 연상케 하는 이 노인은 현자이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고독하며, 반성적, 또는 성찰적이다. 사려 깊음과 신중함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긴 수염은 지성과 연륜, 지도자, 권위자, 세상을 탈속한 신선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맨발의 이 노인은 긴 회색 옷을 입고 설산 위에 서있다. 맨발은 고행, 무소유를 의미하며, 긴 회색 옷은 승복이나 수도사의 옷을 연상케 한다. 승복은 청빈한 삶, 흑과 백의 초월, 원융의 색이기도 하며, 무소유, 신성, 경외감을 상징한다. 자유의 색, 아름다움을 숨겨놓은 색이라고도 한다. 또한 회색은 검정도 하양도 아닌 기회주의자, 중립자, 자연물에 대비한 인공물, 존재감이 없는 회색분자, 우울, 노인의 색깔을 의미하기도 한다. 설산은 고행의 세상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가운 현실을 상징하며, 얼어붙은 마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설산의 꼭대기에 서있음은 성숙된 차원의 사람임을 나타내주고 있으며, 지성의 최고도에 있음을 의미한다.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이며, 인간 세상과는 어느 정도 격리된 초월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추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카드의 배경은 온통 파란색으로 되어 있다. 파란색은 맑게 개인 하늘, 넓은 바다, 희망과 미지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신선함을 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한다. 청순, 청아하며, 깨끗함의 상징이다. 천국을 의미하며, 안전, 정적인 신뢰, 명예와 세련미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 성공이나 꿈을 상징하며, 자립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수심과 비애, 우울, 미숙함, 차가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은둔자 카드는 주역의 천산돈(䷠)과 같다. 천산돈은 위에 하늘(☰:乾)이 있고, 아래에 산(☶:艮)이 모양으로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하늘이 부여한 명을 지키는 상이다. 遯은 돼지와 같이 어리석은 체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를 닦는 의미가 있다. 遯은 안으로 산과 같이 굳건한 절개와 자제를 행하고 밖으로는 하늘과 같이 강건한 도로써 소인을 교화하고, 소인배적인 생각, 즉 형이하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형이상적으로 종교적, 철학적 성향을 띠게 된다. 은둔자를 왜 타로카드 9번에 놓았을까? 9는 한자리수 중 가장 큰 숫자이다. 완전, 완성, 전체성을 상징한다. 균형, 질서, 최상의 완전을 표현한 거룩한 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속세로부터 초월된 의미가 있으며, 무한과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만큼 은둔자는 개인적 완성, 속세와의 단절, 무한한 이상을 추구하는 의미가 숫자 9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해석은 조언, 신중, 배려, 독립, 지혜, 은신, 상담, 지식, 근심, 현명함, 판단의 자유, 경고, 경계, 신중히 관찰함, 자기부정, 후퇴, 퇴화, 역행, 취소, 감정을 억누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 역방향은 폐쇄성, 소극성, 무계획, 오해, 비관적, 경솔함, 성급함, 무모함, 미성숙, 바르지 않은 충고, 우울함, 실패, 일의 지연 등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타로카드를 활용한 시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의 색깔을 맞추는 것이다. 언어의 색깔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백색과 흑색의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색은 감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밝은 색은 기쁨과 환희, 희망, 꿈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해주지만, 어두운 색은 절망, 좌절, 고통, 슬픔, 역경 등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시쓰기에서 슬프다느니 기쁘다느니 말하기 전에 언어의 색깔을 표현해주면 그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미지의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에는 다 색깔이 담겨있다. 그 색깔은 한 가지의 색이 아니라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동시에 같이 공존한다. 예를 들면 나무라고 하는 이미지 속에는 여러 이미지가 들어 있겠지만, 크게 밝은 색과 어두운 색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푸른 잎들이 반짝이는 나무’ 라고 한다면 이 나무의 이미지는 밝은 색을 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쓰러져 말라비틀어진 나무’ 라고 한다면 이 나무의 이미지는 어두운 색을 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이미지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색깔은 감정적인 색깔인 것이다. 시는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글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설명적인 언어로 구성된 시는 일차원의 평면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는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시이다. 생각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독자들은 이러한 시를 읽고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의 생명은 상징성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복층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술작품에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고도의 예술성을 구현한 특수층들을 위한 예술이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은 같이 갈 수도 있지만, 어느 정점을 지나면 함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대중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요즘의 예술작품들은 복잡해지고 상징화 되어가고 있다. 미술작품을 보더라도 복잡해지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더욱 추상화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대에 가상세계의 현실적 출현과 맞물려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풍경화 같은 그림만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한 그림들은 식상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예술적인 감각을 갖고 보다 심오한 예술적 쾌감을 추구하는 세대들에게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없게 되었다. 풍경화는 정서의 환기,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편안과 위로의 마음은 줄지언정, 예술적인 깊이와 쾌감을 주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유독 시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시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의 기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정서적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시는 복잡해서는 안 되고, 고도의 상징성을 가져도 안 되고, 난해해도 안 된다는 생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독자들이 외면한 현실을 개탄하며.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독자에게 방향타를 맞춘 시의 뱃머리는 대양을 향하지 못하고 뭍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상황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들이 식상한 감정들만 반복적으로 양산해내고 있다. 시에는 왜 고급독자는 없고 수준이하로 평준화 되었는가. 복잡한 추상화들이 화랑에 내걸려 사람들을 상상의 나라로 이끌며 꿈꿀 수 있게 하는데, 시는 복잡하다는 의식으로 외면당하고 내팽개쳐져야 하는가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속에 시는 복잡하면 안 된다는 의식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자위하며,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안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의식,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이 우리 시에도 필요하다. 시는 의식의 표현이다. 표현은 이미지의 실현이며, 이 이미지는 감각적이어야 한다. 이 감각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각적인 비중이 가장 많이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시대, 영상의 시대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도 시각적인 이미지를 살려야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색깔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색깔을 팔레트에서 섞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들 듯 사물들을 조함하여 자신이 원하는 언어의 색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캔버스에 붉은 색만 칠해놨다면 그림을 감상하는 감상자들은 나름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붉은 색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혁명이나 피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녁노을이나 용광로, 불속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걸 일일이 설명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붉은 색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설명해서 자신의 의도를 말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의도는 창작자와 독자가 꼭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 상상력을 단절시키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고, 혼이 있다. 그 이미지 속엔 곧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성을 살려서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색감을 표현한다면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예술적 세계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타로카드 은둔자에서 우리는 등불이나 지팡이, 설산, 수염, 맨발 등과 같은 이미지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 이 이미지들 속에 들어있는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색깔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등불은 밝은 색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환한 색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지혜나 지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지팡이 또한 앞길을 예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밝은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카드에도 이 둘은 황금색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쓰면서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하게 될 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색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별이 들어 있는 등불’은 밝고 희망적인 색이다. 하지만 ‘불 꺼진 등불’은 같은 등불이지만 세상을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등불인 것이다. 그래서 밝은 색이 아니라 어두운 색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감정으로 언어를 통해 그리는 그림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밝은 색, 즉 기쁨이나 행복, 평안, 환희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를 밝은 색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색, 슬픔이나 좌절, 아픔, 고독, 고통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를 어두운 색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 절벽에 선 나무 김 기 덕   바다로 향해 가는 불빛들의 검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뼈만 남은 어깨엔 눈과 비와 바람을 채색한 누더기뿐.   바람의 난간에 선 맨발 실금 하나 사이로 생존과 파멸이 공존하고 있었다. 뜬구름 접어서 종이비행기로 날려준 바람 줄을 나는 놓지 못하는 걸까.   절벽에 매달려 힘줄이 불거진 나무의 발은 평생 수직의 길을 걸어왔다. 담쟁이 더듬거리던 길로 나의 발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못 박혀 직각의 모서리를 걸었다.   날개 접은 종이비행기들의 풍문이 떠다니며 벼랑 끝으로 낙엽들을 몰아갔다.   달은 지프라이터에 갇혀 초승달로 사그라지고 담배 불빛 깜박이던 옥상에 올라 마지막 어둠을 태우던 눈빛들   절벽에 매달려서야 창틀의 위대함을 알았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유리창을 껴안고 절벽에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내 몸 하나도 붙들지 못했던 옹벽   바위를 껴안던 지네발 같은 뿌리가 뽑혀 내 척추로 이식되던 밤 신경마다 흐르고 있는 이빨들의 강을 보았지.   무너질 수 없다고 이를 앙다문 뼈들이 빌딩처럼 일어선 절벽에 매달린 절규.     10. 운명의 수레바퀴   타로카드 10번째인 운명의 수레바퀴는 카드 위에 TARO라고 쓰인 거대한 수레바퀴가 있고, 그 위에 칼을 들고 있는 스핑크스가 보인다. 그 오른쪽엔 아누비스가, 왼쪽엔 티몬이 있고, 카드의 네 귀퉁이에는 사람, 독수리, 사자, 황소가 책을 보고 있는 그림이다. 수레바퀴는 순환을 의미한다. 윤회나 계절의 변화, 시작과 끝을 의미하며, 시간의 변화, 운명, 금전, 전환기, 예측할 수 없는 결과, 지구의를 상징한다. 사진이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의 방향타나 비행기의 방향타, 자동차의 운전대도 같은 상징적 존재이다. 수레바퀴의 중앙 꼭대기에 칼을 들고 앉아있는 스핑크스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판단을 의미한다. 정확함은 수레바퀴의 정중앙에 앉아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음을 상징하며, 칼은 그 판단이 예리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스핑크스의 색깔은 하늘색이다. 하늘색은 맑고 바른 정신을 의미한다. 흑심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바를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지혜로움, 위엄, 경고, 신비주의, 수수께끼 등을 상징한다. 스핑크스는 원래 전지의 신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지로 인한 잘못된 판단은 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다. 왼쪽엔 뱀이 거꾸로 추락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뱀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며, 나락으로 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뱀을 아래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뱀은 인간을 타락케 한 존재이다. 본능적이며, 성적이며, 욕망을 상징한다. 오른쪽에서 등으로 바퀴를 밀어 올리는  아누비스는 죽은 자의 수호신이며,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시체 방부처리를 하는 신이기도 하며, 지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누비스의 방향은 위쪽을 향해 있고, 상승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수레바퀴 안에 그려진 네 개의 선들은 중세 연금술사들이 믿고 있던 세상의 구성요소 4원소 소금, 수은, 유황, 공기를 의미하고 있다. 이 그림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스핑크스와 티몬, 아누비스인데, 윤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스핑크스는 인간의 죄에 따라 판단을 하고, 뱀은 그 판단에 따라 나락으로 떨어드리고, 아누비스는 죽은 영혼을 다시 저승으로 옮김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심판을 나타내주고 있다. 카드의 네 귀퉁이에는 책을 읽고 있는 네 형상이 그려져 있다. 먼저 위쪽엔 사람과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위쪽은 신에 가까운 단계, 아래쪽은 짐승의 단계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황금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다 같이 구름 속에 있다. 구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인생의 모호함이 담겨있다. 또한 네 귀퉁이의 사자가 바람을 붙들고 있는 성경상의 표현을 통해본다면 구름 속에는 바람이 들어있고, 비가 들어있다. 바람은 변화이고, 환란이고, 고통이고, 능력일 수도 있다. 그것은 구름 속에 담긴 비와 바람의 능력 때문이다. 이 네 형상들이 갖고 있는 것은 책인데, 책은 진리를 의미하며, 법칙, 원리, 철칙을 의미한다. 좌측 위에 있는 사람은 물병자리를 의미하며, 정신적인 부분을 상징한다. 우측의 독수리는 직관력과 통찰력을 의미하며, 전갈자리를 나타낸다. 좌측 아래에 있는 황소는 의지력을 상징하며, 황소자리를 나타낸다. 우측의 사자는 추진력, 실천력을 의미하며, 사자자리를 나타낸다. 이 네 상징물은 동서남북, 춘하추동을 의미하며, 주역의 건곤감리와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아직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변화하게 되며, 새로운 다음단계로 전환하게 된다. 운명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여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굴곡이 있고, 온대로 다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10번에 놓은 것은 숫자 10이 10>1+0=1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10은 근원, 신, 탄생, 중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전환, 행운, 기회, 변화, 결과, 운명, 인연, 성장, 순리, 전환기, 완성, 문제해결 등을 의미한다. “행운의 별은 당신 머리 위에 있다. 또한 이전에도 이후에도 당신은 행복을 맛볼 것이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으면 지금이 기회이다.” 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카드이다. 역방향은 상황의 악화, 이별, 사고, 하강기, 시기상조, 불리한 입장, 궁핍함, 실연, 어긋난 사랑. 불운, 방해, 단절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금전 보유량이 증가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마음은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은 타로카드의 해석을 통해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한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들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내가 밝고 기쁘게 시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의 색깔을 밝게 표현해야 하지만, 어둡게 시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들의 색깔을 어둡게 바꾸어주어야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수레바퀴, 스핑크스, 아누비스, 뱀, 독수리, 사람, 사자, 황소, 구름, 책, 칼 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해석할 수 있는 암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을 내 맘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 이미지들의 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이미지들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명사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다른 이미지의 명사를 사용하여 원하는 이미지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명사와 명사의 연결 관계를 통해 직유, 또는 은유적 연결을 만들어 줌으로 감정의 색깔을 덧입히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수레바퀴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이 수레바퀴를 밝게 표현하려면 ‘부챗살 같은 태양의 수레바퀴’나, ‘부챗살 태양 같은 수레바퀴’의 표현은 수레바퀴를 밝은 색으로 채색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수레바퀴를 어둡게 표현한다면 ‘살이 부러진 녹슨 세월의 수레바퀴’, 또는 ‘살이 부러진 녹슨 세월 같은 수레바퀴’로 표현한다면 수레바퀴를 어두운 색으로 바꾸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색깔은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 준다. 슬픔과 고통, 좌절을 쓰려면 이러한 이미지를 어둡게 변화시켜주면 된다. 자신의 감정을 밝게 표현해 주려면 이미지의 색깔을 밝게 표현해 주면 된다.   밝은 색 이미지                    어두운 색 이미지 스핑크스 - 하늘색 스핑크스         칼의 스핑크스 뱀 - 꽃 같은 뱀                          악마의 뱀 독수리 - 황금 독수리                  저승사자 같은 독수리 구름 - 솜사탕 구름                     먹물 같은 구름 사자 - 불꽃 갈기의 사자              마른 풀잎 갈기의 사자 황소 - 구릿빛 황소                     지푸라기 황소   둘째는 형용사로 바꿀 수 있는 표현 방법이다. 시에서 가급적 형용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직접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에 시의 상징성이 떨어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형용사, 부사는 시의 표현문장에서 가급적 빼기를 권한다. 더욱 부사는 문장을 표현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빼어야 한다. 그리고 부사를 쓰려면 다른 이미지로 바꾸어 표현해 주어야 한다. ‘빨리 달리는 말’과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부사 ‘빨리’를 빼고 ‘바람 같은 말’과 같이 바꾸어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형용사는 필요에 따라 사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붉은 말’, ‘검은 말’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용사를 사용해 이미지의 색깔을 바꾸어준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밝은 색                             어두운 색 스핑크스 - 파란 스핑크스            검은 스핑크스 뱀 - 어린 뱀                              독한 뱀 독수리 - 용감한 독수리               겁먹은 독수리 구름 - 흰 구름                           터진 구름 사자 - 눈부신 사자                     파리한 사자 황소 - 살찐 황소                        어룽진 황소   세 번째로는 동사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상승적, 희망적, 긍정적인 동사들은 모두 밝은 색깔의 언어들이기 때문에 살아 생동하는 이미지로 바꾸어준다. 하지만 하강적, 절망적, 부정적인 동사들은 어두운 색깔의 동사들이기 때문에 소멸적, 축소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밝은 색                                  어두운 색 스핑크스 - 스핑크스가 날아간다          스핑크스가 추락한다 뱀 - 뱀이 고개를 쳐든다                     뱀이 고개를 움츠린다 독수리 - 독수리가 하늘로 오른다         독수리가 죽어간다 구름 - 구름이 떠오른다                      구름이 눈물을 흘린다 사자 - 사자가 초원을 달린다               사자가 쓰러진다 황소 - 황소가 노래한다                      황소가 운다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이미지의 색깔을 변화시켜주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려해서는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언어의 색깔을 맞추어 이미지를 표현해 주면 그 안에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감정들이 담기기 때문에 폭넓은 표현이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면 독자는 그 이상 상상할 수가 없다. 자신이 10의 분량을 전하고 싶었다면 10 이상을 독자가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직선적인 표현 속에는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치료나 미술심리연구에 관한 이론들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의 마음의 병을 읽고 치료의 방법을 찾는 학문들이 대부분이다. 어떠한 색을 썼는가만으로도 그 아이의 심리를 알고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듯이, 언어에도 색깔을 맞추어 문장을 만들면 그 색깔에 따라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시적 작자가 의도하는 방향의 의미를 유추할 수가 있다. 이미지의 색깔을 맞추어 시를 쓰면 상징성이 커지기 때문에 상상력의 여지가 많아진다. 그리고 작자가 독자에게 주입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상상하고 유추하며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를 쓰게 된다. [출처] 10. 운명의 수레바퀴|작성자 김기덕   11. 법(JUSTICE)   붉은 옷에 녹색 망토를 걸친 왕이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앉아 오른 손에는 양날의 검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카드는 전통적인 법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칼을 사용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판결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 판결은 전통적인 것이어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왕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옛날에는 붉은 염료가 비쌌기 때문에 귀족, 또는 왕족이 입는 옷이었다. 동양에서는 가장 고귀한 색이 황색이고, 두 번째로 고귀한 색이 붉은 색이었다. 서양의 경우는 자주색이 가장 고귀한 색이고, 그 다음 붉은 색이 두 번째로 고귀한 색깔이었다. 자주색이 황제의 옷이고 붉은 색이 귀족, 왕족의 색이었다. 빨간색은 피와 연결되어 폭력과 잔인성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생명과 정열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왕이 입은 붉은 법의는 권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보랏빛 휘장도 법의 권위와 무게감, 신뢰감 등을 의미하고 있다. 보라색은 외고집, 심술, 비사교적, 자기중심적, 투쟁을 나타낸다. 이는 자신의 판단에 누구의 말이나 행동에 흔들림이 없음을 상징한다. 보라는 여성을 상징하는 빨강과 남성을 상징하는 파랑과의 조합으로 생긴다. 또한 따뜻한 색의 빨강과 차가운 색의 파랑이 만나 중성적 요소를 나타낸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할 것을 암시한다. 보라색은 귀함과 아웃사이더의 두 가지 의미가 강하다. 달팽이 만 마리에서 손수건 한 장을 물들일 만큼의 보라색을 얻을 수 있었다니 희소한 색이어서 그 가치가 더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는 부귀와 권력을 상징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우울과 허영, 동성애 등을 상징한다. 두 개의 기둥은 좌우의 선과 악, 애정의 사랑과 증오 등을 나타내며, 두 기둥의 색깔에 차이가 없음은 편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양면을 똑같이 생각하며 다루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오른손에 들린 양날의 칼도 이중성, 양면성에 대한 공평을 나타내고 있다. 칼은 집중력, 지배의 상징이며, 결단력, 이성적, 분석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왼손에 든 양팔저울은 평행을 이루고 있다. 좌로나 우로 기울지 않은 저울의 모습을 보임으로 완벽한 평행, 공정성, 균형과 조화, 냉철한 판단력을 상징하고 있다. 머리에 쓴 왕관은 뛰어난 지혜를 의미하며, 상황판단 능력이 대단함을 나타내준다. 이 왕은 지혜가 출중했던 솔로몬 왕을 상징하며, 그의 냉철한 판단력을 나타내주고 있다. 눈가리개를 안 한 이 왕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만든 법의 작용보다 성스러운 정의를 의미하며, 오류나 편견이 없는 신성의 법칙을 상징한다. 이 왕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은 즉각 칼을 사용할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판결이 임박했음을 상징한다. 이 카드의 정방향을 해석하면 이치에 맞는 정의, 조화, 평등, 올바름, 미덕, 명예, 순결, 적당한 보상 등을 상징한다. 마음에 들건 아니건 최후의 결과는 공정할 것이다. 균형, 평형, 침착, 냉정함을 아울러 상징한다. 역방향의 뜻은 선입관, 잘못된 고소, 편협적이고 엄격한 재판, 조금의 동정도 용납지 않는 판결 등을 의미한다. 이 카드의 그림은 하나같이 정의와 공정성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상징성 때문이다. 이 상징성은 사물에 담긴 정신, 혼과 같은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의미는 사물을 새롭게 만들며, 살아있는 존재로 생명력을 갖게 한다. 움직이지 돌과 담과 철기둥까지도 살아있는 존재다. 그 안에는 자석과 같은 기를 가지고 있으며, 표면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상징적, 이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호흡하며 움직이는 목숨이 있어서 활동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부패하고 있는 시체까지도 실은 냄새를 풍기며 분해되는 활동 속에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생물학적인 생존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역할과 존재의 상징성 속에 만물은 살아 활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시인은 죽은 것들을 살리고, 살아있는 것들을 조합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 사물 속에 담긴 정신을 찾는 것이며, 상징성을 통하여 혼을 부여하는 작업인 것이다. 하나의 시 속엔 인간의 정서와 혼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 정서와 혼이 관념적으로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왜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관념성은 시인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한정시키고 의미의 폭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관념으로 이루어진 글은 전달문이며, 설명문과 같은 것이다. 관념으로 이루어진 문장 속에서 시적, 예술적인 표현을 읽을 수는 없다. 시는 고도로 압축된 알집 속의 추상화처럼 많은 생각들로 집적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언어를 피하고 상징적 생명으로 가득 찬 사물이나 이미지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엔 혼이 담겨있다. 우리 인간은 육체라는 물질 속에 정신, 또는 혼이 담겨있다. 육체라는 표면적인 구조물 속에 숨겨진 존재가 담겨있는 이중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육체는 현실적이며, 가시적이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내면엔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이고, 비감각적인 정신이 존재하듯이 하나의 이미지에도 표면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 존재하지만, 그 내면엔 초월적이고 비감각적인 상징성이 담겨있다. 이러한 이중구조가 분리된 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 식물과 생기의 분리, 스크린과 빛의 분리 와 같은 것을 또 다른 죽음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 속에도 새로운 이중구조가 생성되고,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생명은 바로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상징성으로 존재하는 생명인 것이다. 혹자들을 중심으로 상징성을 배제한 이미지만 가지고 시를 쓰고자하는 운동이 있었다. 기호시, 사물시와 같은 것들인데, 이러한 시는 이미지만 있고 상징성이 없기 때문에 죽은 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에서 아무리 관념성을 제거한다고 해도 그 이미지 속에 담긴 상징성은 나무속에 나이테처럼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완전한 상징성을 제거한 이미지만의 시를 쓰기는 불가능하며, 쓴다손 치더라도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감응을 줄 수가 없게 된다. 신이 창조한 존재물들에는 다 의미가 있고, 존재가치가 있다. 짐승이 남긴 분비물마저도 분해되어 거름이 되고, 곤충들의 먹이가 되어 살아있는 활동을 한다. 하물며 시인이 창조한 창조물이 이미지만 있고 그 안에 상징성이 없다면 죽은 것이며,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호시나 사물시처럼 이미지에서 관념성을 배제하고자 쓴 시도 그 안에는 아직 관념성, 즉 상징성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인 자신의 주관적 상징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호하게 함으로 독자들의 다양한 상징성을 살리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읽는 독자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고, 상징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상징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그 길은 복잡하고 미묘하여 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어떤 상징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길로 인해 더 이상의 새로움이 없는 죽은 존재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의미한다. 빨간 신호등은 죽은 상징으로 더 이상 새로움이 없고, 기호화한 것이다. 무관념의 이미지들만을 쌓아서 탈관념의 시를 쓰려고 한다는 것은 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돌만으로 탑을 쌓는다 해도 그 탑에는 이미 상징성이 담겨있다. 죽은 나무로 십자가를 만든다면 이미 그 안에 상징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상징성은 이미지의 정신이고 혼이기 때문에 이미지만 존재할 수 없다. 정신과 혼이 없는 이미지로 시를 쓸 수도 없겠지만, 쓴다 해도 죽은 시를 쓰는 것이다. 시인은 사물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자이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하나의 돌이나 보석까지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언어의 이미지도 빨간 신호등처럼 오래 쓰다보면 언젠가는 새로움이 사라지고 기호화하여 생명력을 잃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들에게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여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또한 뚜렷한 존재가치를 찾지 못했던 이미지들 속에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여 살아갈 수 있는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타로의 이미지를 연구하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를 쓰고자 하는 타로 시쓰기의 기법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1. 법(JUSTICE)|작성자 김기덕   12. 매달린 남자   타로카드 12번은 T자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남자의 그림이다. 성경상의 베드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시련의 시기, 움직일 수 없는 입장, 괴로운 체험, 과도기를 의미한다. 또한 거꾸로 매달린 점으로 보아 새로운 시작, 새로운 관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이해를 의미한다. 형틀에 매달린 시간은 고통을 의미한다. 사형수를 의미하는 그림은 반성의 시간을 의미하며, 재앙이나 갈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틀은 T자형의 나무로 되어있다. 십자가의 형틀은 원래 T자형이었다고도 한다. T자형의 형틀엔 푸른 잎들이 자라고 있다. 이 형틀은 죽음의 형틀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형틀이다. 그래서 이 형틀에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얻어 새롭게 될 것을 암시한다. 형틀에 매달린 왼쪽 다리를 묶은 줄도 연약하게 보인다. 머지않아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다. 이것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새롭게 탈출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한 쪽 다리가 매달린 이 남자의 다리는 4자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 4자는 육체의 죽음, 표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다리의 붉은 타이즈는 희생적 죽음과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열적 활동을 예고한다. 즉 희생을 통한 영혼의 자유와 성숙을 의미한다. 상의의 푸른 옷은 지식이 충만하며, 지혜가 가득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다 희망적인 삶을 말한다. 형틀에 매달린 발에는 황금색 신발이 신겨져 있다. 발은 행실을 의미하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의미한다. 황금색 신발은 새롭게 변화하여 밝은 미래로 향해 갈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바르게 행동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매달린 남자의 손은 뒤로 하고 있다. 손을 앞으로 내밀지 않음은 나서지 않을 것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을 것을 상징한다. 매달린 남자의 머리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반짝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가져서 엉뚱하지만 항상 재밌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희생, 인내, 시련극복, 성장의 시기, 자기희생, 때를 기다림을 의미한다. 또한 태도변화, 고정관념의 변화, 회개, 후회를 의미한다. 올바른 판단이라도 때에 따라 침묵해야하며, 인내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지혜가 있어 손해는 보지 않지만, 지금은 활약할 시기가 아님을 상징한다. 역방향은 불가항력의 시기, 겸허함이 필요한 시기, 남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불륜이나 비밀이 탄로 남을 의미하며, 무의미한 희생이나 처벌을 상징한다. 때로는 자신이 행동해야할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원하지 않으면 떠나야 하는 상황을 상징한다. 매달린 남자의 그림은 T자 형틀, 거꾸로 매달린 남자, 4자형의 다리, 붉은 타이즈, 푸른 옷, 신발, 빛나는 머리, 발을 묶은 끈 등의 이미지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조합되어 있지만, 이 조합된 이미지들을 통해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내면에 관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시의 관념은 시적 표현에 있어서 배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미지를 강조하며, 설명적이 아닌 표현을 강조하다보니 관념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시에 있어서 직접적인 관념의 표현은 지양되어야 한다.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관념어를 직접적으로 쓴다면 예술적인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미지만의 시는 존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지 속엔 이미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옥구슬이라는 이미지 속엔 이미 귀함과 순수함과 같은 관념의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을 제거하고 시를 쓰고자했던 기호시 운동이나, 디카시, 탈관념을 중시한 하이퍼시 등의 운동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완벽하게 이론에 맞게 구현하기 어려운 시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의 관념적 표현을 배제함으로써 이미지가 충만한 회화적 현대시의 길을 열 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대시는 이미지의 결합과 유사이미지의 건너뛰기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꾀하여 왔고, 다초점적인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특히 하이퍼시는 큐비즘적 다양성과 리좀적인 사고의 확장, 현실과 이상과 같은 대립 점들의 건너뛰기를 통해 작자가 주입하고 리드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생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했다. 이러한 시들은 다층적인 표현을 통해 관념이 제거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유사한 이미지들을 접속시키고, 유사한 상황과 이야기를 연결시켜 사고의 확장을 꾀하여왔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결과물로 나온 시들은 복잡하고 다양했지만, 마음에는 감동과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음미하고 생각해 볼만한 깊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에서의 철학성, 상징성은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고 정신적인 의미나 깨달음, 마음의 감동이 없다면 그 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자가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질적 수준이 안 되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더욱 문제는 그 깊이마저 없다는 점이다. 그 깊이는 다층적 상징성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들의 연결 관계에서 유사성에 집중하여 심층적 깊이를 만들지 못하고 평면적 다양성, 즉 흩어놓기의 기법이 됨으로 지저분하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서의 심층적 사고의 깊이를 읽기는 어려웠다. 시를 읽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지만, 집중한 만큼의 효과, 시적 쾌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고급독자들마저도 회의감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는 이미지만을 중시하고 관념을 배제함으로 인간이 표면적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느끼는 원초적 내면의 쾌감을 무시하게 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미지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표면적인 자극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자극이 표면에 그치지 않고 내면까지 연결되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화가가 캔버스에 노란색만 칠해놨다면 그 노란색을 보고 감상자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유채밭이나 은행잎이 떨어진 길 등과 같은 저마다의 이미지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다양한 연상만으로 감동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유채밭에서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이나 은행잎이 떨어진 길에서의 이별 같은 구체적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한 개인의 체험적 슬픔이나 기쁨 때문에 노란색의 그림만으로도 감동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지만으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구체적 사건이나 의미로 인해 감동, 즉 관념성으로 인해서 감동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에서 관념성을 무조건 제거할 것이 아니라 관념을 이용한 이미지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 쓰기에 있어서의 관념의 활용   현대시는 평면적인 시 쓰기가 아니라 입체적인 시 쓰기라고 했다. 건물로 말한다면 1층짜리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아니라 10층이나 100층과 같은 빌딩을 짓는 것이다. 이러한 빌딩을 짓는 데에는 일층자리 집을 짓는 것과는 공법부터가 다르다. 다층으로 갈수록 콘크리트에 철근을 넣든지, 철골을 써야한다. 시도 평면적인 시가 아니라 입체적인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다층적 사고를 엮어줄 수 있는 상징적 철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철골은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안개에 대한 유사 이미지를 찾는다면 연기나 구름, 입김, 가스와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는 수평적인 관계는 만들 수 있어도 심층적인 관계를 만들기는 어렵다. 안개에 대한 심층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안개의 관념성, 즉 답답함이나 소통부재와 같은 관념성이 철골을 이룬 안개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찾아야 한다. 강가의 안개, 도시의 안개, 국가의 안개, 세계의 안개, 마음의 안개, 정신의 안개와 같은 다양한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발견은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관념의 상황적 변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같은 관념의 상황적 변화는 입체적인 공간성을 만들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삼차원의 공간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많은 차원의 공간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심층적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수백 미터 암반을 뚫고 생수를 뽑아 올리는 데는 관정이 필요하다. 이 관정을 통하여 암반 속에 들어있는 생수를 끌어 모아 지상으로 뿜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해 주는 관념인 것이다. 강가의 안개가 도시의 안개, 국가의 안개, 세계의 안개, 내 마음의 안개가 된다고 했는데, 만약 파도라면 도시의 파도, 나라의 파도, 세계의 파도, 내 마음의 파도와 같이 일률적으로 나간다면 더 이상의 다양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강가의 안개에서 도시의 안개로 확장했다면 도시의 안개적 요소는 다 안개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가의 안개와 연결될 수 있는 도시의 안개에 대한 상징적 요소는 대모나 폭력배의 활동, 경기의 침체, 정치의 불안, 환경적 저해요소인 매연이나 황사, 도시인들 간의 소통부재 등의 셀 수 없이 많은 안개적인 요소가 다 접속 가능한 안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안개 요소들을 끌어와서 직접적 이미지로 쓸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깔며 보이지 않게 내면으로 그려줄 수도 있는데, 이는 투명한 유리건물과 같이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존재인 것이다. 시에서는 이런 잠재적인 존재들이 많을수록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가의 안개나 도시의 안개, 세계의 안개와 같은 변화도 있겠지만, 과학적 안개, 예술적 안개, 종교적인 안개 등등의 많은 안개를 끌어올 수가 있을 것이다. 과학적, 예술적, 종교적, 도시적, 세계적 등과 같은 구분은 커다란 구멍과 같은 것으로 그 안의 많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고 접속시켜 활용할 수가 있는 구분된 창고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창고 안에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이미지에 대한 무수히 많은 상징적 이미지들이 담겨 있어서 맘먹은 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이미지에 대한 유사이미지를 찾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적 대상인 이미지에 대한 유사이미지를 찾는 것과 시적 대상인 이미지의 관념성을 중심으로 한 상징적 이미지를 찾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에 대해 시를 쓴다면 태양의 유사이미지 불꽃, 눈동자, 심장 등과 같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이미지로는 깊이 있는 시를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유사성이 너무나 표시가 나기 때문에 시의 모호성을 살리거나 고도의 상징적 구조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태양의 관념성, 즉 열정이나 밝음, 영광, 희망 등과 같은 관념성을 중심에 놓고 내 마음의 태양, 가정의 태양, 도시의 태양, 국가의 태양, 세계의 태양을 종교의 태양, 예술의 태양, 철학의 태양 등등의 많은 태양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태양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님, 직장, 돈, 지식, 명예, 종교, 예술, 건강 등등의 많은 태양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태양이라면 정치적 지도자, 상징적인 탑, 숲이나 공원, 발전시설 등등의 많은 이미지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를 끌어오든, 아니면 암묵적 배경으로 깔고 사용하든지 하여 포괄적인 상징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작품 최은묵의 키워드도 바로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는 관념어 생명이다. 이 관념어 생명에 대한 이미지 우물, 피부, 아이, 여인, 길, 나무, 눈물, 물길, 실뿌리 등을 찾고, 그 이미지의 연결을 통하여 암담한 현실 속에서의 참 생명을 추구한 시이다. [출처] 12. 매달린 남자|작성자 김기덕     13. 죽음    타로카드 13번 죽음은 백말을 탄 검은 기사가 장미와 백합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들고 있다. 두 벽 사이에서는 태양이 떠오르고, 말 앞에는 교황이 서서 기도하고 있다. 땅에는 황제가 쓰러져 있고, 어린아이가 꽃을 들고 있다. 그 뒤쪽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외면하고 있다. 멀리 강물이 흐르고 돛단배가 떠간다. 땅은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백말은 새로운 시대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백마 위에 탄 검은 기사는 흑사병과 같은 질병이며, 재앙과 전쟁, 죽음을 상징한다. 그가 든 검은 깃발은 전염병이나 전쟁, 죽음의 기세가 클 것임을 상징한다. 검은 깃발 안에 그려진 십자군 원정대의 흰 장미와 백합은 물과 불의 결합, 십자가를 의미하며, 반대되는 것들의 통합을 의미한다. 해골은 수많은 희생을 뜻하며, 새로운 시대를 몰고 오는 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죽음의 신을 상징하는 해골의 기사는 삶의 투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 아래 쓰러진 황제는 교권에 의해 추락한 황제의 권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버려진 왕관처럼 아무리 강한 힘도 언젠가는 죽음 수밖에 없는 종말을 예고한다. ​황제는 보수적인 인물을 의미하며, 기득권의 몰락, 포기를 상징한다. 흰말 앞에 선 교황은 흰말이 당도하고자 하는 목적적 존재이다. ​이는 종교로 황권을 무너트리고 교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의도가 그림에 담겨 있다. 교황은 신의 축복이며,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말의 머리 쪽에 있는 두 탑 사이의 태양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종말 이후의 재탄생을 상징하며, 부활을 뜻하고 있다. 말 앞에 있는 어린아이는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의미하며, 변화할 미래를 상징한다. 손에 든 꽃다발과 머리에 꽂은 꽃은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어린아이는 말을 바라보며 환영하는 신진세력이다. 어린아이 뒤에서 외면한 여인은 타로카드8번에서 사자를 다스리던 여인이다. 이 여인은 운명을 억누르던 여인이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기성세대를 의미한다. 멀리 보이는 강물은 세월의 흐름을 말하며, 그 강물 위에 있는 배는 한 배를 탄 시대적 존재를 의미한다. 황금색 땅과 교황의 옷 색깔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세상에 팽배한 황금만능주의와 그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종교의 세속화를 상징한다. 13이란 숫자에 죽음이라는 카드를 놓은 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 12명을 상징하며, 최후의 만찬과 같은 마지막을 의미한다. 13일의 금요일을 서양에서는 기피하는 날로 인식했던 것도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의미하는 13과 십자가에 박은 못(金)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 13과 못을 의미하는 금이 겹친 날을 특히 불운의 날로 생각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파멸, 결말,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새 시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의미가 있다.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이 끝남을 의미한다. 역방향은 새로운 시작, 변화, 상속을 의미한다.   타로를 이용한 시 쓰기에 있어서 적절한 칼라의 사용과 이미지의 배치는 시의 생명적인 요소이다. 위의 그림에서도 흰말과 검은 기사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검은 깃발과 흰색의 백합과 장미의 그림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 위에 탄 기사와 말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표현했고, 깃발의 흑과 백 역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표현했다. 말의 발굽 아래 황제가 쓰러진 것은 쇠퇴와 멸망이며, 말 앞에 교황은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말의 발 앞에 아이는 새롭게 자라날 성장의 시기를 의미하며, 외면한 여인은 기성세대이다. 멀리 강물이 흐르고, 돛단배가 떠간다. 그리고 성벽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태양의 아래쪽은 아직 어둠이 묻어있다. 태양이 막 떠오르는 것에 비해 땅은 너무 환하고 황금색이다. 그리고 교황의 옷과 같은 색이다. 이는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세상과 속화된 종교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황의 힘으로 세상이 밝아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미지의 배치는 참으로 치밀하고 의도적이다. 만약에 말이 검은 색이고 기사가 흰색이었다면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교황이 쓰러져 있고, 황제가 말 앞에 서있다면 그 시대성 또한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태양과 땅이 황금색이 아니고 붉은 색이었다면 피로 물든 세상이 될 테지만, 황금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피로 정복된 세상이 아니라 고귀함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버려진 황제의 왕관과 지팡이니 손을 모은 교황의 모습 등, 이미지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시에서도 이미지의 배치는 많은 상징적 관계를 나타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지 간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중심이미지에 대한 수직적 이미지인지, 수평적 이미지인지를 파악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중심이미지는 시를 쓰고자 하는 핵심이미지로서 마인드맵의 둥치와 같으며,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막에 대해 쓰고자 한다면 사막은 중심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중심이미지는 사막뿐만이 아니라 사막에 속한 모든 이미지는 중심이미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막의 모래나 바람, 선인장, 낙타, 오아시스 등은 모두 중심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중심이미지 사막에 대한 하나의 몸체이며, 함께 따라가는 부속물이다. 사막에 속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주변 정황이나, 사막에 대한 묘사는 가능하나 사고의 입체성이나 의미의 심층적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사막에 대해 시를 쓰고자 할 때 이러한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것은 시 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그림의 기본이 정물화나 풍경화 인 것처럼, 시에서도 사막에 속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1차원적인 이미지이다. 즉 이어진 하나의 선처럼 모두가 사막에 속한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그림은 나타내줄 수는 있겠지만, 깊은 의미나 환기된 상징성을 나타내주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층적 상징성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미지의 배치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사막이 없는 곳에서 사막을 만들어줄 때 입체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 사막 같은 것을 나열한들 입체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막이 없는 곳에서 사막을 만들었을 때 입체성이 생긴다는 것은 사막이 추상성으로 갔을 때 입체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음의 사막, 도시의 사막, 하늘의 사막, 역사적 사막 등과 같은 것은 실재 사막이 없지만, 사막을 만듦으로써 그냥 입체성이 아닌 심층적 입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마음의 사막은 메마른 사랑의 강이나, 갈라진 마음의 틈, 건조한 눈빛 등과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시의 사막에서 이미지를 찾으면 아스팔트길이나, 콘크리트 광장, 빌딩의 사구, 황사의 유리창, 스모그의 하늘, 낙타를 닮은 느림보 차들,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 등 모두가 도시의 사막을 이루는 이미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사막도 살펴보면 구름이나, 매연, 황사, 새떼, 행성들, 은하수 등도 다 하늘의 사막을 만들 수 있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의 배치는 이미지를 통해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사막에 대해 시의 방향을 잡고 이미지를 배치하여 입체적 사고의 건물을 짓고자 할 때 사막에 속한 모래나 바람이나 오아시스와 같은 이미지들은 건물의 기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기초 위에 마음의 사막, 도시의 사막, 하늘의 사막, 연인 간의 사막, 역사적 사막, 종교적 사막을 세웠을 때 심층적인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막과 유사한 이미지의 배치관계는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산만해질 수 있어서 너무 많이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타로카드 13번 죽음의 이미지에서 볼 때 말 앞에 있는 어린아이나 여인의 설정 같은 이미지의 배치는 사실성과는 관계가 없지만, 주제성, 즉 목적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시에서도 주제성, 목적된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비현실적인 이미지의 배치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가위 김 기 덕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조각난 모래 바람은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였다.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다.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책장을 오리면 태양처럼 떠오를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가득한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속 하늘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랐다.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던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창가에서 그믐달이 코를 골고 있었다. 새벽은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갔다.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출처] 13. 죽음|작성자 김기덕   14. 절제   타로카드 14번 절제는 붉은 날개의 천사가 흰옷을 입고 손에 든 두 개의 컵으로 물을 따르고 있다. 머리는 황금같이 빛나고 한 발은 연못 속에, 한 발은 땅을 밟고 있다. 연못가에는 수선화가 피어있고, 연못에서 난 길은 두 산 사이로 나있는데, 길 끝엔 왕관처럼 빛나는 불꽃이 있다. 이 그림의 뜻은 절제와 균형, 중용, 조절, 비율이 맞게 뒤섞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붉은 날개의 천사는 미카엘 천사로 태양의 천사이며, 전쟁의 수호천사이다. 붉은 날개는 불처럼 분명한 신의 의지를, 그의 빛나는 머리는 진리의 빛을 의미하며, 깨달음을 의미하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정신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신성, 태양을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천사가 입은 흰옷은 순결함을 의미하며, 가슴에 있는 삼각형의 문양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두 개의 컵을 손에 들고 컵 속의 물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물은 융통성을 의미하며, 순리를 상징한다. 두 개의 컵은 고인 물과 신성한 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남성과 여성, 음과 양, 영혼과 육체, 의식과 무의식 등과 같이 대칭, 또는 대립을 의미하는 물이다.  ​서로의 물을 교환함으로 절충점 찾기, 정화작업, 균형과 조화, 교감을 의미한다. 물고기가 없이 맑은 물은 순결한 마음을 상징하며, 발은 추구하는 진리를 상징한다. 물에 담근 발은 무의식, 정신세계를 의미하며, 땅을 밟고 있는 발은 의식,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발이 두 곳을 다 밟고 있기 때문에 융통성을 의미하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상징한다. 수선화는 자기애, 자기주의, 고결, 신비, 자존심 등의 꽃말을 갖지만, 여기에서는 수련과 자기정화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연못에서 시작된 길은 산과 산 사이로 나서 왕관과 같은 태양빛을 향하고 있다. 이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갔을 때 빛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 산은 포도주와 물, 뜨거운 물과 찬물, 감정과 욕망의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의 중용의 도를 추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왕관과 같은 불꽃은 세상을 두루 살피는 신의 불꽃이다. 곧 목표나 이상을 의미하며, 영광의 빛, 성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타로카드 14번은 이미지들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 컵과 컵, 천사의 후광과 왕관의 빛, 산과 들, 또는 두 개의 산, 물속의 발과 땅의 발, 연못과 땅 등 모두가 대칭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대칭적 관계에서 치우침이 없는 양면성의 추구를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만이 절제가 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시를 씀에 있어서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이미지에만 치우쳐도 가벼워지며, 관념에만 치우쳐도 싱거워지는 것이다. 시는 막힘이 없는 소통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시 쓰기의 방법이 이미지의 배치와 접속의 관계를 말해왔지만, 기계적인 이미지의 접속만으로 시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 이미지 안에 담긴 관념성과 철학성을 보고 이미지를 끌어오고 조합을 시켜야 한다. 하나의 시를 쓰는 과정은 세상과의 소통이며, 사물 하나하나와의 결합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신과의 통섭이다. 타로카드는 점을 치는 도구이다. 점을 치는 도구는 신성한 것이며, 단순히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신령함이 같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로카드를 뽑을 때 단순히 재미로 뽑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적절한 카드를 뽑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은 우리의 내부에서 나오는 예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외부적인 절대적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타로카드를 가지고 점을 보는 순간만큼은 초원적인 순간이며, 영적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고도의 영감이 교감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창조자이다. 여호와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신 것은 언어 속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세상엔 빛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어로 빛을 창조한 것이다. 빛의 재료는 곧 언어이다. 그러므로 빛과 언어는 무관한 관계가 아니며,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빛은 언어가 될 수 있으며, 언어는 빛이 될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처럼 세상 모든 만물이 신의 언어로 지어졌다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언어가 될 수 있고, 언어는 다시 세상만물이 될 수 있는 순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세상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현실로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속엔 이미지가 들어있다. 언어 속엔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아니면 추상적이든 비추상적이든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사물 속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관념적이든 이미지적이든 상징의 언어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는 서로 공통적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언어가 세삼만물이 되고 세상만물은 또 다시 언어가 될 수 있는 상호교환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는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로 언어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즉 관념적인 요소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물적인 요소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관념적 설명이나 단지 언어에 그치는 요소들의 집합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신과 마찬가지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창조하는 것도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한 것처럼 언어로 이루어진 사물적인 존재의 현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언어는 상호교환성이 있음을 알았듯이 사물과 사물 간에도 상호 교환성이 존재하며, 언어와 언어 간에도 상호 교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나노의 세계로 가면 결합과 분해가 가능해진다. 우리 인간의 몸도 나노의 물질로 분해되고 결합할 수 있다면 순간이동도 가능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도 언어 간의 상호 접속과 새로운 배치를 통해 무한한 의미의 변화를 이룰 수가 있는 상호교환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호 교환성은 물질적, 표면적, 형식적인 결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신적, 내면적, 실질적인 결합의 관계를 만든다. 시인은 이러한 모든 사물과의 상호소통과 교접, 임신과 출산, 분리와 결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를 갖지 않으면 혼이 담긴 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신이 내재한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이러한 세계를 읽고 느끼며, 깨닫게 하기 위해서 신적 차원, 아니 신과 사물, 인간이 우주만물과 혼재된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시인의 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째 하늘까지도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14. 절제|작성자 김기덕   15. 악마   염소 이마에 그려진 펜타클은 실용적이며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박쥐는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마녀, 악마로 상징되어왔다. 낮에는 숨기고 밤에만 펴는 어둠의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의 오른손은 중지와 약지를 벌린 저주의 각인을 하고 있다. 떳떳하지 못한 돈이나 관계를 의미하며, 왼손은 횃불을 거꾸로 들고 있는데, 이는 신을 부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악마의 발은 몸집에 비해 작게 그려져 있다. 이는 나중에 강한 욕망으로 인한 빚더미에 앉거나 돈관리가 안 됨을 의미한다. 악마의 발밑에는 옷을 입지 않은 남녀가 쇠사슬에 목이 매어있다. 옷을 입지 않은 남녀는 성적인 타락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욕망이나 유혹으로 인해 헤어나오지 못함을 의미한다. 머리에 난 뿔도 욕망이나 욕심을 상징하며, 쇠사슬은 구속, 집착, 중독을 의미하는데, 느슨해서 마음먹으면 풀고 나올 수 있으나 스스로 풀고 나올 수 있는 의지가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남자의 꼬리는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꼬리에 악마가 횃불을 대어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불꽃은 욕정의 불꽃이며, 남녀관계의 지나친 욕망인 것이다.      여자의 꼬리에는 포도가 달려있는데, 포도는 다산을 의미한다. 본능을 의미하는 꼬리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그 처신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타로카드 15번 악마는 6번 연인과 관계가 있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6번 연인으로 표현되고, 선악과를 먹은 후 인간의 모습은 15번 악마로 표현되어 있다. 숫자 15는 1+5=6의 관계로 6번 유혹, 선택의 관계에서 15번 상통, 연합, 통합, 재편, 신장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6번 연인은 정신적인 의미이며, 15번은 육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로카드 15번 악마의 정방향은 타산적이며, 야심, 권력을 상징한다. 또한 유혹에 약한 것을 의미하며, 게으른 성격을 의미한다. 이기주의, 속박, 향상심 결여, 불륜, 폭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역방향의 해석은 야심, 권력, 반성 등을 의미하며, 개방되어 있거나 출구가 보이는 현실적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관계를 끊어야 할 때이거나 이별, 이혼 등을 의미한다.   타로카드는 몇 개의 상징적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림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시쓰기에 있어서도 이러한 상징성을 살리고 상황에 따라서 많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미지의 결합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해석은 참으로 다양하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힘이고, 이미지 속에 담긴 생명성 때문이다. 주역에서 우주가 아무리 큰 것이나 태극 안에 있고,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라도 태극을 그 안에 갖고 있다고 했다. 太는 하나(一)에서 둘(人)이 생기고 그 둘이 사귀어 자식(•)을 낳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든 만물은 태극에서 탄생하였지만, 그 안에는 각각 태극의 존재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태극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분해해 봐도 거기엔 음의 전자와 양자가 존재하듯이 아무리 큰 우주도 태극이요, 아무리 작은 입자도 태극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 만물이 창조되었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태극은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만물에는 신의 정신이 깃들고, 살아있는 혼이 존재한다. 우리가 느끼는 생물학적 살아있음이 생존이 아니라 무궁한 세월 속에서 광물질까지도 변화생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러한 살아있는 존재를 느껴야 한다. 내가 산이 되고 바위가 되고 물이 될 수 있는 소통과 변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살아서 서로 소통하고 유체이탈하며 몸을 맞바꿀 수 있는 빙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고등동물을 놓고 그 주변에 하등동물을 배치하는 것과 같은 사실적 시각으로는 이미지의 조합을 이룬 그림을 그리기는 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극은 모든 사물을 낳았고, 모든 사물은 태극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산이 될 수 있고, 산이 나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몸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태극이요, 우주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태극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소우주요, 세상 우주는 대우주인 것이다. 시쓰기는 인접이든, 유사든, 상징이든 서로 관계된 사물을 끌어오고, 그 사물 간의 상동성을 이용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위해 포괄적, 확장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는 글쓰기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시쓰기는 나와 우주와의 소통인 것이다. 그 소통은 유체이탈, changing of body and mand의 기법이며, 정신과 혼을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죽은 것들, 의미 없는 것들, 그리고 의미는 있으나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들을 위해 새롭게 혼을 불어 넣으며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창조를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의 인간 우월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먼지 하나까지도 수평적 관계로 바라보고 생명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 속에서 신의 소리를 듣고, 혼의 부르짖음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의 휘파람소리를 듣고, 풀과 나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그 사물 안에 담긴 혼의 존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혼의 존재를 볼 수 있을 때 시를 쓰고자 하는 내가 그 혼과 맞바꿔 나무의 혼이 되고 풀의 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시를 쓸 때 그 시는 살아있는 시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울리고, 혼을 울리는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 악마의 중독 김 기 덕     염소가 검은 상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열어보였다. 젖이 가득한 젖꼭지에서 강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 뿔들은 왕관처럼 반짝였고 이마에 새겨진 모조품 별에선 가식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박쥐의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오른손엔 못 자국이 선명했다. 중지와 약지를 땐 저주의 각인에 혀를 끼우고 왼손에 들었던 횃불로 바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 악성 루머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스스로 검은 상자에 매달린 중독성의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자동조절 되지 않는 나의 몸에서도 고열이 일었다. 통증으로 웅크렸던 배를 독수리의 발톱이 휘젓자 거친 호흡으로 흔들리던 종잇장이 찢겨나갔다. 꺼낸 폐를 독수리가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물고 숲을 흡입했다. 노을이 빠져나간 얼굴에선 어둠이 흘러나왔다. 달의 내장을 꺼낸 굴뚝들은 목에다 구름을 뱀처럼 두르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구멍 난 튜브 속에서 지독한 황사와 매연, 미세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의 목구멍에서도 뱀의 혓바닥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랐다. 독수리가 홀연히 날아간 후에야, 검은 상자 위에 염소가 목의 쇠사슬을 풀었다. 재가 된 사람들이 마른 풀처럼 공중에 떠다녔다. 한 모금의 백색연기였다. [출처] 15. 악마|작성자 김기덕   16. 탑   타로카드 16번 흔들리는 탑은 번개 맞은 탑이 무너지고 불이 나면서 사람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 것으로써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지나친 교만과 물욕, 권력욕으로 주어진 재난을 의미하며, 겸손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탑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교만해져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탑을 쌓았으나 신께서 무너뜨리고 언어들을 흩어놓음으로써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재난은 이유가 있는 재난으로써 자초한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악마의 구속이 깨어짐을 의미하기도 하며, 영감, 자유, 실재를 상징한다. 탑은 강금, 환각의 장소를 의미하며, 속박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얻음을 의미한다. 탑은 하나의 아성과 같은 것으로 야욕과 착각의 성이며, 정신적인 감옥, 벗어나지 못할 틀을 의미하기도 한다. 탑의 꼭대기는 왕관의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높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며, 욕망과 오만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성을 파괴한 번개는 외부적인 강박이나 압력, 물리적 강압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지속되던 상황이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 변화는 부정적 결과인 사고나 재난으로 찾아온다. 쌓아가던 노력이나 공력이 종말을 고하게 되며, 많은 상실과 손해가 따르게 됨을 의미한다. 성에서 떨어지는 불꽃은 22개인데, 22의 숫자는 메이저카드의 숫자를 의미한다. 또한 10행성의 12개의 별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떨어지는 사람은 남과 여인데, 여자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남자는 왕관을 쓰고 있어서 이것도 역시 오만과 권위에 가득 차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권위의식과 오만에 가득 차게 되면 반드시 추락하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감옥이나 아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탑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고 주변에 구름이 모여 있는 것도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을 상징하고 있다. 탑 밑을 고이고 있는 뾰족한 돌들은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들이 아니라 날카롭고 강한 마음의 소유자들임을 상징한다. 타로카드 16은 1+6=7로써 7번 전차카드와 수비학적으로 연관이 있어서 권력과 많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해석은 파산선고나 실연 통보를 의미한다. 사기를 당하여 집안이 폭삭 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정리해고를 당하여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하거나, 지위의 하락, 사랑의 파국, 급변, 파산, 안정된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역방향의 카드가 나오면 불가능적인 상황을 의미하며, 손해나 위기, 폭행, 모욕, 비난이나 압박을 받게 됨을 상징한다. 스트레스의 급증이나 숨겨진 진실의 폭로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을 의미한다.   타로카드 16번 탑은 상승이미지와 하강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산과 탑, 구름, 하늘, 왕관 등은 상승이미지이며, 번개와 떨어지는 남녀, 불꽃 등은 하강이미지이다. 이미지를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특징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이미지들은 상승적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하강적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내면에 음과 양이 존재하듯, 밝고 어두움이 같이 공존하듯이 상승적 이미지와 하강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낙엽이 하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춤추는 낙엽으로 표현한다면 결코 하강적 이미지에만 국한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모든 이미지의 느낌을 조정하고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상승적인 삶, 하강적인 삶, 그리고 머물러 있는 삶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승적인 삶은 성장이나 성공, 깨달음과 같은 것으로 현재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지향성을 갖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성공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거나, 천국에 가기 위해 종교에 심취해 있다거나, 사랑으로 인해 기쁨과 환희가 충일해 있다면 이 것은 모두 상승적인 상태나 감정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바벨탑을 쌓았던 행동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곤 한다. 하지만 하강적 삶은 실망이나 낙심, 절망적 상황을 의미한다. 별똥별이 떨어지듯 인간의 죽음이나 상실, 실패와 같은 것으로 자신이 현재 처한 위치에서 낮아지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아무리 높은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방향성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면 하강적 삶인 것이며, 하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하강적 이미지는 지상이나 나락,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육체적, 정신적 종말을 향하고 있다. 수평적 삶은 특별한 변화가 없는 밋밋한 반복을 의미하며, 성장도 실패도 없는 잠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삶을 방향성을 가지고 구분하는 이유는 이미지의 사용상 방향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나타내 줄 수 있다면 시를 쓰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지의 사용에 있어서 색깔을 구분하고, 그 색깔을 이용하여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방향성, 사물의 방향성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희극과 비극의 씨줄과 날줄로 짠 옷감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희극과 비극의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리는 그라프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슬프다느니, 기쁘다느니 말하지 말고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그림으로 그라프와 같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의 하루 삶은 상승과 하강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만 보면 주식의 하루 상황을 다 알 수 있다. 우리의 감정에도 곡선이 있다. 상승하든 하강하든 그 곡선을 주시하여 본다면 하루의 모든 삶을 들여다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을 가지고 이미지를 그린다면 ‘태양이 뜬다’, ‘태양이 솟는다’, ‘태양이 빛난다’ 등은 태양의 상승적 이미지이나 ‘태양이 진다’, ‘태양이 가라앉는다’, ‘태양이 시든다’ 등과 같은 표현은 하강적 이미지일 것이다.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놓인 밧줄을 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신의 모습처럼 상승했다가도 어느 순간 동물만도 못한 존재로 추락하는 게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상승과 하락의 관계를 알고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관념성에서 벗어나 이미지로 충만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리는 탑 김 기 덕 ​ 벽돌들은 구름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를 밀쳐내며 부서져 내렸다. 조각난 족속과 언어들이 굴러 떨어진 계곡엔 낮선 눈들이 채워지고, 돌 틈마다 방언들이 피어났지. 융기와 침강을 반복해 온 꽃의 단층들. 창밖에선 구름이 천둥소리를 내며 빗방울로 무너졌어. 고함과 그릇 깨지는 소리로 조각 나기 시작한 방안은 어둠이 밀려와 빛의 휘장이 찢겨졌지. 기둥이었던 그녀가 빠져나간 후 기울기 시작한 허리뼈. 가슴을 열고 바람을 들이려했던 심장의 창문마다 불꽃 연기가 피어올랐어. 하늘을 닮고 싶었던 나의 푸른 옷들이 찢겨져 내리던 잎새.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빨간 장화가 벗겨진 하늘가엔 발목이 시린 나목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 날개가 되지 못한 붉은 망토가 노을 속에 너울거리던 저녁을 기억해. 시계탑 앞에 모였던 펭귄들도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는 시간의 퍼즐을 맞추다 길을 잃었지. 떼어진 간판들도 눈처럼 비처럼 거리를 적셨지. 어둠이 쓰러진 밤, 내 몸의 장기와 기관들도 꽃의 성벽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해. 감각의 천장을 만들며 하늘 떠받치던 뼈들이 땅으로 꺼져가. 추락하는 수직의 화살들, 젖은 새가 날개를 접으면 바벨탑은 또 가을, 새로운 언어와 족속을 남기고 무너질 거야. 허물어진 어미의 성에서 기어나오는 어린 거미들. 내 몸의 자궁이 열린다. [출처] 16. 탑|작성자 김기덕   class="fil5 pcol2b" v:shapes="_x0000_i1032">17. 별   타로카드 17번 별은 파란 하늘 중앙에 큰 별이 떠있고, 주변에 7개의 작은 별들이 그려져 있다. 나신의 여자가 연못에 한 발을 딛고 두 손에 든 항아리의 물을 쏟는다. 대지엔 꽃들이 피어나고,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다. 중앙에 있는 황금색의 커다란 별은 큰 꿈을 의미하며, 큰 목표나 영적 직관력을 의미한다. 별의 황금색은 이 여인의 머리색과 같은 색으로 연결되어 있다. 별빛이 머리의 색과 같이 빛남은 하늘의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또 연결되어야함을 나타내고 있다. 주변에 있는 흰색의 일곱 개 별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희망적 미래를 상징한다. 북두칠성의 일곱 개의 별과 같은 것으로 큰 별보다 작은 꿈들이나 이성적 상태 등을 의미한다. 또한 내면의 단편적 무능을 커다란 별인 영적 직관을 통하여 일깨워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신의 여인은 이러한 꿈과 희망의 영적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두 손에 든 항아리로 물을 뜨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옷을 입지 않은 나신은 자신, 그리고 자아를 의미한다.   ​  물을 뜨는데 몰두한 모습은 넓은 세상을 두고 자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현실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이다. 물은 정화, 인내를 의미하며, 일이나 놀이, 자아, 차가운 이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물을 두 개의 항아리로 떴다가 부었다가를 반복한다. 이는 자기의 세계에 빠져 원대한 꿈과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여인의 등 뒤에서 새가 초록빛 나무 위에 앉아 속삭인다. 새는 하늘을 나는 존재로 영적인 존재이며, 신령한 존재인 것이다. 별과 하늘과의 연결 관계로 새는 이 여인에게 충고를 한다. 하지만 새의 속삭임을 이 여인은 듣지 않는다. 열심히 물을 퍼서 쏟는 대지는 푸른 초원으로 펼쳐져서 생명이 가득하다. 세상은 이러한 자기 몰입과 열심히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물을 담는 행위는 감정의 조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격앙된 상태의 감정에 물을 끼얹어 냉정한 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이성적 행위, 자기몰입을 통한 자신만의 이상추구로 인해 해야 할 더 큰 일을 잊어버리고 사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물을 퍼내는 작업은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남의 것을 약탈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연애 상대를 바꾸는 의미도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의미는 상상했던 것이 이루어지거나, 파산에서 벗어남의 의미가 있으며, 소원성취, 희망의 미래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의 큰 가능성, 계시나 영적 호기심을 상징하며, 충분한 감성적 본능, 순수를 의미하기도 하여 이성이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해낼 수 없는 일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타인에게 사기를 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거짓으로 돈을 뜯거나 과대포장, 말로만 해결, 힘든 현실,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타로를 이용한 시쓰기는 이미지 속에 내재된 상징성을 활용하여 이미지 간의 조합, 배치를 통해 시인이 나타내고자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관념적 단순한 개념에서 보다 확장된 종합적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 ‘슬프다’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물’이나 ‘이슬’ 등과 같은 이미지를 불러온다면 슬픔의 관념적 감정보다 확장된 눈물의 상징적 의미들이 독자에게 폭넓은 감정을 갖게 한다. 시적 방법으로 오랫동안 활용되어 온 은유적 기법은 ‘A=B이다’와 같은 형식을 갖는다. 또한 A는 C, D, E, F…… 등의 다른 존재로 치환을 하게 된다. 오규원 시인은 “오랜 기간 시인들은 시적 대상에 대한 의미화 작업을 해오며 시적 대상을 명확히 하는 일을 해온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시적 대상을 파편화하고, 덧칠하는 작업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존재의 언어는 왜곡되지 않는 ‘사실적 현상’을 통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은유의 세계에서 환유의 세계로 전환되어 한다고 말한다. 환유는 한 낱말 대신 그것과 가까운 다른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하여 다른 사물을 끌어오고 환치시키는 것이지만, 환유는 인접성을 통하여 사물을 끌어오는 방법이다.   그 마을의 주소는 햇빛 속이다 바람뿐인 빈 들을 부둥켜안고 허우적거리다가 사지가 비틀린 햇빛의 통증이 길마다 널려있는 논밭 사이다 반쯤 타다가 남은 옷을 걸치고 나무들이 멍청이 서서 눈만 감았다 떴다 하는 언덕에서 뜨거운 이마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소름끼치는, 소름끼치는 울음을 우는 햇빛 속이다   (오규원/ ‘그 마을의 주소’ 일부)       그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 식탁이 하나 의자가 둘 그의 방에는 조리대가 하나 가스레인지가 하나 수도꼭지가 하나 조리대가 붙은 벽면 보이지 않는 화장실 하나 그의 방에는 낡은 냉장고 하나 방바닥에 놓인 전기밥솥 하나 비닐로 만든 간이 옷장 천장에는 동그란 형광등 하나 (오규원/ ‘그의 방’ 일부)   위의 두시를 비교하면 그 마을의 주소는 은유적으로 쓴 시이고, 그의 방은 환유적으로 쓴 시이다. 오규원은 은유적인 시보다는 환유적인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언어적 측면이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두 시를 비교해보면 그의 방은 너무 사실적이고, 생각의 여지가 많지 않다. 관념이 배제되고 이미지만으로 쓴 시이며, 환유적인 기법으로만 써서 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한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외곡되지 않은 언어, 그 자체로 순수한 이미지의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는 것이 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는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 만큼, 사물자체가 사실적이든, 본질적이든 간에 언어자체만으로서 존재하고 쓰이기는 어렵다. 오래전부터 시인들은 인간과 언어를 분리하고자 노력해 왔다. 사물과 관념의 분리를 통해 언어 자체가 사물이 되는 즉물적인 언어를 시에서 사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즉물적인 언어들의 나열을 통하여 시를 썼지만, 그 시에선 살아있는 존재성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인접성을 통하여 현상자체가 된 언어들을 끌어오다 보면 이미지의 나열이 될 수가 있다. 그림으로 말하면 사실화나 풍경화에 가깝게 된다. 관념을 모두 걸러내고 이미지만 가지고 쓰고자하는 디카시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디카시는 말 그대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이 시를 쓰고자 하는 기법인데, 사실적인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관념성을 배제하고 현상자체, 사물만을 보여주고자 하는 기법이었다.       할(喝)!/나석중 ​ 자꾸 뒤돌아보았다 너무 어이없는 놈이라고 크게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엔 디카시가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함축적인 시를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디카시는 사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반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처음에 생경한 느낌을 주었지만, 인간의 감정과 정서, 깨달음을 표현하는 시의 본질적 시각에서는 독자에게 감응을 줄 수가 없었다. 요즘 사실적인 풍경화를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풍경화나 정물화는 또 다른 세계의 복사에 가깝다. 이 복사는 한꺼번에 수십 장, 수백 장 베낄 수 있는 눈코 없는 계란 같은 존재다. 위의 시처럼 방에 침대가 있고, 식탁이 있고, 의자가 있고 등등의 표현은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복사물 같은 것이다. 시는 언어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의 파편화나 덧칠하기와 같은, 사물의 편협한 해석을 피하고 보다 확장된 의미의 이미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상징적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즉물적 언어의 독자성을 위해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는 시는 생명 없는 사물의 나열에 불과할 수 있다. 시는 인간중심으로 선회해야 한다. 현대는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의 복잡성으로 인해 그 만큼 인간의 심리도 복잡다변화 되었다. 이러한 인간 심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다양한 사용이 불가피하다. ‘A=B이다’와 같은 일대 일의 유사성도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인접한 것만을 끌어오는 환유적인 기법도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유사성, 인접성, 상징성의 복합적인 기법이 필요하고, 사실적 묘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사고의 건너뛰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실의 공간뿐 아니라 가상공간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성, 즉물성, 파편화 되지 않는 사실적 현상들만을 추구한다면 시는 움직임이 없는 사물로 고착될 수 있다. 그 안에는 예술적 생명력이 없다. 시가 예술적 활동이라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예술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적 요소는 입체적 의미를 가져야 하며, 조화와 균형, 아름다움과 같은 미학 속에서 사고의 심층적 깊이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입체적 의미는 단순하고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해야 한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글이나 단번에 터득될 수 있는 경지라면 그것은 예술성이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방에 침대가 하나, 식탁이 하나, 의자가 하나라는 것과 같은 표현은 거의 생각할 거리가 없는 평면적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보는 것마다 이름을 지을 때, 그 언어는 즉물적인 언어였다. 그 즉물적인 언어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쪽이 환유적 시나, 디카시, 하이퍼시, 즉물시 등등의 시가 있다. 이러한 시들은 언어의 독자적 존립 쪽에 그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시는 언어의 독자적 존립, 즉 사물 자체의 가공 없는 존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사물을 통해 효율적, 확장적, 예술적,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느냐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17. 별|작성자 김기덕   타로카드 18번 달 (1)   타로카드 18번 달은 파란 하늘에 여러 모양의 달이 떠있고, 달 아래에서 개와 늑대가 울고 있다. 연못에선 가재가 달을 향해 길을 떠나려고 하나 길은 너무나 멀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변화와 불안감을 나타낸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의 모습을 합친 달의 모습은 다양한 변화를 나타낸 것이며, 눈 감은 사람의 어두운 표정은 불안감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달은 뒷면을 숨기고 앞면만 보여줌으로써 이중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달은 밤, 어둠, 음, 무의식을 의미하며, 여성적 감정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달이 밝으면 늑대에게 발각될 것이고, 어두우면 길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늑대와 개의 두 마리 동물은 미약한 자극이나 별것 아닌 사건을 의미한다. 개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모습이나 의식을, 늑대는 감춰진 내면과 보이지 않는 적을 상징한다. 그래서 개는 의식을, 늑대는 본능이나 무의식을 상징한다. 달 옆의 두 개의 탑은 남성과 여성의 공존, 이중성, 대칭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연못에서 나온 가재가 가고자 하는 길은 꼬불꼬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은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태를 상징한다. 연못에서 나온 가재는 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 하는 내면의 모습이다. 가재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탑의 길을 따라 가야하는 먼 여정의 두려움과 불안을 나타내고 있다. 연못은 감정을 의미하는데,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동요, 무의식의 동요를 일으키는 연못의 물결은 가재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도록 부추기고 있다. 물은 감정과 무의식을 상징한다. 숫자 18은 1+8=9의 의미로 완성, 승화, 이상, 휴머니즘, 끝을 상징한다. 타로카드 9는 은둔자인데 달의 얼굴은 은둔자를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적이 되거나, 상황변화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문들이 상처를 주거나, 나쁜 결과, 불안, 현실도피를 의미하며, 기만,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작은 사건, 불안한 생활, 회사의 감원위기, 집중력 약화, 과거에서 벗어남, 희망, 직감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시는 발견이다. 하늘에서 별을 발견하듯, 일상의 평범 속에서 특별한 진리나 원칙, 새로운 이미지의 결합, 특별한 깨달음, 사물의 재해석과 같은 발견이 필요하다. 남들이 감히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고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시는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시의 가치는 새로움에 있다. 그 새로움은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은 방법이며, 인간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어야 한다. 일상적인 사물이나 현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상징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고, 새로운 상징성의 창조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많은 상징적 요소로 표현될 수 있다. 볼을 간질이는 손, 불을 키우는 부채질, 귓불을 할퀴는 손톱, 돛단배를 미는 덩치 큰 사내의 팔뚝 등과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바람에 대한 상징성의 다양한 해석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람에 대한 유사성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표현의 깊이도 덜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발견은 바람 속에 잠재하여 있는 다양한 상징성을 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상징성에는 죽은 상징성과 살아 있는 상징성,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죽은 상징성은 오랜 동안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누구나 다 알게 되고, 통속적으로 사용될 때 그 사물의 상징성은 죽은 상징인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의미한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누구나 다 정지하게 되고,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이 빨간 신호등의 상징성은 이미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움이 없다. 새로움이 없는 상징성은 죽은 것이다. 이미 널리 통용되어 기호처럼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생명성이 없다. 둘째로 살아 있는 상징성은 지금 현재 사용되고, 어느 정도 상징성이 살아있어서 의미를 확장해주고, 사고의 전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상징성을 의미한다. “나는 거울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라는 문장을 썼다면 거울은 자아성찰이나 반성의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두루 쓰이고 있지만 이미 굳어진 것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지금 사용이 가능하고, 시에서 사용이 되고 있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붉은 양수가 터진 바다에서 태양이 태어나고 있었다.” 라고 표현했다면 붉게 물든 바다는 아이를 낳기 위한 양수를 상징하며, 태양은 귀하게 태어나는 아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은 그 동안 다른 시인들이 사용했던 이미지이며,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상징성인 것이다. 사물의 이러한 상징성을 살아있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성은 지금까지 통용되지 않았던 상징성을 새롭게 탄생시켰을 때 이를 태어나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가치는 창조의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상징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창조했을 때 그 시는 참신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자이다. 시대를 앞서고, 평범한 사고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언어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언어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상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남들이 다루지 않은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 돼지고기로 요리한 음식은 아무리 새롭게 해도 대부분 다양한 종류의 요리로 먹어본 음식이기 때문에 새로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베리아 눈밭에서 자란 순록을 요리로 선택한다면 재료 그 자체로 새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재료는 과거적인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현대의 시인은 오늘날을 사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대변하고 현실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샘은 어디가나 있는 흔한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샘이 사라지고 수도문화로 바뀌었다. 이러한 삶의 변화 속에서 샘을 끌어와 시로 쓴다면 그 속에는 새로움이 있을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움은 새로운 지식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시인들은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적인 철학과 삶의 원칙들에 매이지 말고 보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주역은 B.C.3000년경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리고 2천년이 넘게 지나 오늘날에 이르다보니 경의 문구들이 오늘날과 맞지 않고 비유 또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주역을 삼사십년 했다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경구를 달달 외우다시피해왔다. 그래서 과거적으로 해석하고 과거적으로만 바라보니 오늘날에는 주역이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괘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지수사는 땅 속에 물이 고인 상태를 말하는데, 군중이 모인 형상으로 과거에는 군사들이 전쟁을 위해 모이거나, 농번기에 농사일을 위해 모이는 경우 외에는 평민들이 모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군중들이 모여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지수사괘가 나오면 전쟁으로 해석해 왔지만 이제는 전쟁으로 해석해서는 맞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리 수천 년을 경서로 간직해 왔지만 오늘날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과거를 토대로하여 시를 쓰더라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가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꾸던 낙원의 삶이 오늘날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삶속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과거의 농경적인 삶을 그리며,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함으로 시를 쓸것인지 답답하다. 시인은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 과거의 훌륭한 시인들이 시대의 몽매함을 깨우고 미래를 내다보며 시를 썼듯이 오늘날의 시인들도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인간성 상실의 절망과 무가치해지는 허무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예술적 시각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무한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창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터진 신발 밑창에서 땅과 연결된 문을 발견했다 발을 움직이자 나무뿌리 틈으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지냈으니 눌린 것들의 소란은 도무지 위로 오르지 못했던 거다   나무 밑동이 전해주는 야사(野史)나, 자식들 몰래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 대개 이런 소리들은 바닥으로 깔리는데   누워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퇴적층의 화석처럼 생생하게 굳어버린, 이따금, 죽음을 맞는 돼지의 비명처럼 높이 솟구치는, 발자국을 잃고 주저앉은 소리들   소나무는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잎으로 콕콕 찍어 땅 속에 저장하고 땅에 발자국 한 번 남기지 못한 채 지워진 태아는 소리의 젖을 먹고 나무가 된다는 걸, 당신은 알까   낡은 라디오 잡음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뿌리 곁에 밑창 터진 신발을 내려놓았다l 서서히 땅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리들을 다 비워낸 문은 새로운 이야기로 층층이 굳어지고 나무들은 땅속에 입을 둔 채 소리들의 발자국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땅의 문」 전문/최은묵 시인   위의 시는 최은묵 시인의 「땅의 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최은묵 시인은 찢어진 신발 밑창에서 땅의 문을 발견했다.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상징성을 발견한 것이다. 찢어진 신발에 대한 시는 여러 편 발견할 수 있으나, 그 찢어진 신발의 밑창을 통해 땅의 문을 발견하고 땅의 문을 통해 들리는 영혼들의 소리를 표현한 시인은 없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접할 때 뒤통수를 맞은 듯 전율하게 된다.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이는 내 봄날의 모래바람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지.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졸린 책장을 오리면 태양은 다시 떠오를까.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나를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찌든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한 귀퉁이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가위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라냈어.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지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등 돌린 창가에서 그믐달이 새벽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아침이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   흐린 유리창을 오리면 무지개가 뜨던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가위로 오린 풍경」전문/김기덕 시인   위의 시 「가위로 오린 풍경」은 가위에 대한 큐비즘적 접근이 이루어진 시이다. 가위는 색종이를 오리고 헝겊을 오리는 가위뿐만이 아니라 꿈에 눌리는 가위와 가위 바위 보의 가위, 시간의 가위, 하늘에 뜬 그믐달과 같은 이미지의 가위, 기억을 잘라올 수 있는 상상의 가위 등의 다양한 가위를 시 한편에 담았다. 가위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접근은 가위에 대한 새로운 상징성의 발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의 새로움은 사물에 대한 상징성의 새로운 발견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접근, 다촛점의 바라봄이 없이는 접근하기가 불가능하다. 요즘 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는 시가 말장난에 그쳐서가 아니라 새로운 상징성의 창조와 다양한 상징성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상징성과 다양한 상징적 접근에 대한 이해와 그 사용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정체된 사고를 새로운 상상적 사고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물에 대한 한방향의 바라보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을 만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봄이 필요하다. [출처] 타로카드 18번 달|작성자 김기덕   19. 태양 (1)     타로 카드 19번째는 태양이다. 태양은 하늘에 강렬한 태양이 떠있고, 백말을 탄 어린 아이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태양은 24개의 햇살이 그려진 황금색으로 활력의 근원이며, 행복을 의미한다. 또한 금전운이 좋으며, 부의 상징이다. 태양이 하늘에 떠서 환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존재를 상징하며, 어디에서든 중심인물이 됨을 의미한다. 24개의 햇살은 24절기를 의미하기도 하고 24시간을 의미하는데, 만족할만한 결과, 완벽한 승리를 상징한다. 하지만 태양은 하늘에 홀로 떠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외로움이 있게 됨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상에 선자는 고독하고 외로운 결정을 하게 된다. 그 누구와도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백말을 탄 어린아이는 원하는 결과물을 말하며, 능력 이상의 성과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풍요와 성장할 것을 의미하지만, 어디든지 떠나야할 역마살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이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창은 방심하면 다칠 수 있는 위험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함을 상징한다. 창에 달린 붉은 휘장은 열정, 자신감을 상징하며 승승장구할 것을 의미한다. 위로부터 휘장이 물결을 이루듯 내려온 것은 윗사람으로부터 힘을 얻고 도움을 받게 됨을 상징한다. 또한 아이가 타고 있는 백말은 움직이는 돈이나 도움, 명예, 성취를 의미한다. 백마는 아이를 등에 태우고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것은 일을 이루기 위한 큰 도움을 의미하며, 자산과 같은 것을 상징한다. 아이의 뒤에 세워진 벽돌담은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에 이 담이 검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장벽이나 위험을 상징할 것이다. 이 담은 아이를 위해 쳐진 보호벽이며, 안전과 더불어 무모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긍정적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담 뒤에 있는 해바라기는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해를 쳐다보지 않고 해에 대해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자만으로 기고만장하게 되면 주위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담 너머에 해바라기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기타 세력을 등에 업지 말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태양에 대한 정방향의 해석은 행복을 누릴 것을 의미하며, 목적한 바를 성취하게 됨을 상징한다. 만족한 결과를 의미하며, 활약기를 상징하고, 진보와 발전, 강력한 체력, 그리고 큰 기쁨을 상징한다. 반대로 역방향의 카드는 일등은 아니지만 대학에 들어 갈만한 성적을 얻는다든지, 승진은 안 되지만 원만한 직장생활, 아이는 없어도 행복한 부부생활, 뛰어나진 않아도 노력하는 부부 등과 같은 정도의 큰 결과를 얻지는 못해도 소규모의 결과는 얻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불행이나 외로움, 계획의 취소 등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얻게 됨을 상징한다.   시에서 태양과 같은 존재는 독자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반짝이는 문장일 것이다. 시 속에 단 한 줄이라도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문장이 있다면 그 시는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핵심적인 주제의식이고, 말하고자하는 철학성이나 참신한 이미지의 공감적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선 사물을 통한 통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깨닫고, 간직하고 싶은 금언과 같은 생명력이 충만한 문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장은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기던지, 아니면 예술적 차원의 표현이든지, 아니면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어머니의 채취 같은 것이어야 한다. 시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이러한 문장으로 갈고 다듬으면 더욱 좋겠지만, 문장 모두를 다 그렇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이라 해도 금석의 문장으로 만드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 시에서 언어의 조탁은 고대로부터 추구되어온 필수 요소이며, 시의 표현에 핵심적 사항이었다. 하나의 문장이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눈물짓게 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 시는 살아있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성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해도 그 안에 더욱 심오한 철학성이나 예술성이 담겨 있다면 그 시는 어쩌면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미성 없이 문장을 만들거나, 독자의 주관적 시각에서 빗어낸 자기만의 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빛나는 문장을 만들라. 사금처럼 반짝이는 문장을 만들어 보는 이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 문장, 그 시는 태양처럼 세상을 두루 비출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부싯돌 속에서 태어난 씨앗들은 별처럼 반짝거렸지. ​ 마른 쑥잎에서 실연기로 성장해 바람결에 눈을 뜬 불씨들 석유나 나무나 양초 위에서 붉은 혓바닥을 놀렸지. ​ 태풍처럼 커질 풍문을 기다리며​ 순식간에 집을 삼키고도 남을 불새들은 몸을 웅크리고 담배와 폭죽과 수류탄 속에 잠들어 있었어.   성냥골 같은 뇌관을 건드리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장난으로 단 한 번 불꽃이 되고 싶은 봉오리들이 재가 될 운명의 껍질 속에 몸을 숨겨왔지. ​ 태양을 먹고 살아온 잎들은 불을 토하려 물을 뽑아 올리는데 단 한마디 기도로 피어나기 위해 침묵해온 향불 흐릴수록 세상에 진동하는 번개이기 위해 태풍의 고요와 심해의 어둠이 감싸온 심장이 꿈틀거렸지. ​ 가시덤불에서 타오르던 야훼의 불꽃이 몸속에서 타오르지만 않았다면, 불이 빚어서 혼이 된 흙이 도자기처럼 간직하고 싶은 불의 추억 ​ 감출 수 없는 뜨거움 때문에 성화는 분수처럼 타올랐어. ​ 악을 용서하며 꿈을 재생하는 연금술사의 손이 풀무 불로 지나는 계절, 껍질이 깨진 은행에서 천년의 줄기와 가지들이 폭발하고​ 아기의 입술에선 태초의 말씀이 울음을 터트리는데 ​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 「불의 기억」 전문/김기덕 시인   위의 시는 필자의 졸시 「불의 기억」의 전문이다. 위의 시에서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다. 독자에 따라서는 한 문장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에서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에서 우리 인생의 내면에 깔려있는 마지막 꿈꾸고 있는 절실한 사랑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고자 했다. 서정주 시인하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가 생각난다. 김소월 하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가 생각나고, 김수영 하면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와 같은 구절이 생각난다. 시인은 이러한 명구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태양 같은 구절, 태양 같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출처] 19. 태양|작성자 김기덕   20. 심판 [ 글 올린 분 한글파일로 올려서 중국파일로는 열수없음]   21. 세계   21. 세계(THE WORLD ​ 타로카드 21번은 월계수 화환 속에서 누드의 여인이 지휘봉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다. 월계수의 화환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의미하며, 또한 벗어나야할 틀을 의미하기도 한다. 월계수의 관은 승리자에게만 주어진 왕관과 같은 것이다. 이 월계관 안의 여인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으며, 원을 이루고 있는 자신의 세계에서 성공한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지휘봉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나 주인공이 됨을 의미한다. 이 원 안의 세계는 자신의 지휘 안에 있는 세계인 것이다. 아름다운 육체에 보라색 천이 둘러져 있는 것은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여인의 머리가 금발인 것도 황금과 같이 귀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월계수 관 안의 세계는 좁아서 알껍질처럼 깨고 새롭게 나와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과감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자주색 천으로 묶여진 뫼비우스의 띠는 무한대와 영원함을 상징한다. 위와 아래에 묶여진 것은 하늘과 땅의 영원함을 상징하며, 처음과 끝, 그리고 시작과 마침을 의미한다. 원 밖의 네 생물은 사람, 독수리, 황소, 사자인데, 각각 구름 속에 들어 있다. 타로카드 10번 운명의 수레바퀴에서는 네 생물이 구름 위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책을 본다는 것은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학업이 풍부함을 의미하며, 독수리는 추진력, 통찰력을 상징한다. 황소는 재물이나 신용, 안정성을 의미하며 사자는 카리스마나 리더십을 의미한다. 이 네 생물이 원 안에 있지 않고 원 밖에 있는 것은 또 다른 목표, 새로운 세계를 향한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구름 속에 있다는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타로 21번 세계카드의 정방향은 애착, 완성, 완벽함, 궁극적인 변화, 모든 노력의 결과가 나온다. 성공, 종합, 통합, 실현, 능력, 수완, 맡았던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또한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방향은 불완전, 시작한 일을 완성시킬 수가 없다. 비전 부족, 실망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타로는 상징적 사물들로 짜진 그림이다. 그 상징적 사물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많은 상징적 의미들을 나타내주고 있다. 시도 역시 사물어로 구성된 언어적 회화에 가깝다고 본다면 타로와 같이 어떤 사물들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시의 상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시의 예술적 차원은 달라진다.   천부경은 천제 환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다 5대 환웅 때에 이르러 신지 현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자로 기록하게 한 81수의 시이다.( 「소도경전본훈」) 최치원이 천부경이 세겨진 옛날비석을 발견하여 신지의 전문을 첩으로 기록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발해의 대야발이 천부경의 내용을 담은 단기고사를 편찬하였고, 광성문 황제는 태학을 세워 천문경, 환단고사를 강의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숭유정책으로 천부사상이 소멸하게 되었다가 숙종 때 이맥이 규원사화를 통해 천부경을 부활시켰고, 명종 때는 남사고가 격암유록을 썼다. 계연수는 1911년 를 합해 환단고기를 발간하였다. 하늘의 인장(印章)을 말하는 천부(天苻)는 우주존재계의 심벌(상징)을 의미하며, 카발라의 생명나무를 말한다. 카발라는 서양 정신세계의 배후에 있는 모태이다. 모든 철학과 종교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신비철학체계이며, 오컬트, 마법사, 연금술사들에 의해 연구 발전되어온 형이상학체계이다. 천부경은 글자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내용이 심오하여 해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상징성을 알고 나면 의외로 쉽다고 할 수 있다. 천부경은 압축적으로 우주를 해설한 지상 최고(最古), 최고(最高)의 경전으로 명확성과 논리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부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간직한 이유는 지혜의 보존에 있다. 언어는 시대가 지나면 변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상징은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의미를 간직할 수 있다. 둘째는 천부경을 알 수 없는 무자격자를 배제하기 위함에 있다. 셋째로 진리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천부경의 가치는 카발라를 거론했다는데 있다. 카발라(Kabblah)는 입에서 귀로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 카발라는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직접 전수되었던 비밀스런 신비의 진리였다. 그래서 카발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른다. 카발라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씌어지지 않은 카발라와 씌어진 카발라로 나눌 수 있는데, 씌어지지 않은 카발라는 내용의 심오함으로 무자격자를 배제하기 위해 직접 입으로 전수된 카발라를 말한다. 씌어진 카발라는 서기 200년 이후 세펠 에트지라가 쓴 와 서기 1,200년경 모세 드 레온이 쓴 같은 책을 말한다. 천부경의 의미는 씌어진 카발라라는 것이다. 천부경은 환인시대에 구전되다가 환웅시대, B. C 3898년 문자로 정착하였다. 세계 최초의 씌어진 카발라로 서양보다 4000년이 앞선다.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은 하나가 시작되었지만 시작된 하나가 없다는 뜻이다.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연관하여 끝없이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체적 해석으로 보면 불완전하다. 析三極 된 객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一始는 하나가 시작된 생명나무의 케텔을 의미한다. 無始一은 그러나 시작된 하나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析三極은 시작되었지만 시작되지 않은 하나가 삼극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1이 케텔이면 시작되지 않은 1은 케텔 중의 케텔 ‘호아’, 대일(大一)을 의미한다. 케텔은 무한자(숫자값 0)로부터 나왔다. 케텔이 케텔로 완성되는 시기는 호크마가 나올 때이다. 그릇이 넘치듯 케텔이 완전히 형성된 그 이후에 호크마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무한에서 케텔이 나오는데,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상태는 케텔 이전의 무한자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는 생명나무 형성과정과 동일한 미시적 발출과정을 의미한다. 즉 케텔 이전의 케텔 상태를 말한다. 케텔은 옆얼굴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중성을 의미한다. 1번 세피라는 케텔의 안 보이는 얼굴을 말하며, 10번 세피라는 보이는 얼굴을 의미한다. 호아(Hoa)는 우리나라 말로 대일(大一)을 뜻하는 것으로 비현현계, 무한계로 불교의 공(空), 도교의 도(道), 유교의 무극, 카발라의 아인소프를 말한다. 아인소프는 창조가 없는 무의 상태, 공상태를 말하며, 물질계(아시아계) 및 예트지라, 브리어, 아트질루트 이전의 세계를 의미한다.   析三極 無盡本 석삼극 무진본은 삼극으로 나뉘었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삼극은 대일(大一)에서 케텔, 호크마, 비나가 발출하여 생명나무의 기반을 이룬 세 개의 세피로트를 말한다. 도덕경에 보면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이라는 글이 있다.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는 언급에서 보듯이 카발라에서 보면 무한에서 케텔이 나오고, 케텔에서 호크마가 나오며, 호크마에서 비나가 나와 삼자로부터 만물이 생성, ‘셋이 만물을 낳았다.’ 라고 한다. 이로부터 생성된 것들은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 네자흐, 호드, 예소드, 말쿠트 등인데 말쿠트는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이렇게 생성된 카발라는 가로구조와 세로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가로구조는 제1 트리아드인 케텔, 호크마, 비나로 이루어지고, 제2 트리아드는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로 이루어졌다. 또한 제3 트리아드는 네자흐, 호드, 예소드이다. 세로구조는 좌측기둥 비나, 게부라, 호드이며, 우측기둥은 호크마, 헤세드, 네자흐이다. 중간기둥은 케텔, 티페레트, 예소드, 말쿠트로 이루어져 생명나무가 삼극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은 天 하나가 하나요, 地 하나가 둘이요, 人 하나가 셋이라는 말이다. 주역에서 天一, 地二, 人三에서의 의미는 첫째, 둘째, 셋째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뒤에 언급된 一積十鉅 無匱化三을 보면 ‘하나가 쌓여 십으로 커지고 무의 궤가 셋으로 하였다.’ 라고 표기하여 주역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천부경은 십수로 우주구조를 설명한 경전이다. 천부경의 천, 지, 인은 카발라의 세로구조의 세로기둥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천수는 2, 4, 7을 말하고, 지수는 3, 5, 8을 말하며, 인수는 1, 6, 9, 10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일은 대일(大一)을 의미하며, 대일은 석삼극된, 대등한 가치를 지니는 각각의 극을 암시한다. 이 세 극은 생명나무 우측기둥, 좌측기둥, 중앙기둥을 말하는데, 우측기둥은 남성을 의미하며, 천극을 지칭한다. 좌측기둥은 영성과 지극을, 중앙기둥은 양성원리와 인극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천극, 지극, 인극을 삼극으로 나타내고 있다. 역학은 이분법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역리상 수체계는 천부경 적용에 오류를 가져온다.   一積十鉅 無匱化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은 하나가 쌓이고 십으로 커져서 무의 궤가 십으로 화하였다는 뜻이다. 케텔 1에서부터 말쿠트 십까지 숫자가 쌓여가지고 무괘(無의 궤짝)인 생명나무가 삼극으로 화하였다는 것이다. 無란 생명나무 최초의 세피라인 케텔을 낳은 존재인 아인소프(무극, 공, 도)를 의미한다. 이 무의 담긴 것을 무궤로 보고 세 개의 기둥으로 화했음을 주장한 것이다. 化三은 곧 析三極을 곧 말한다. 무궤는 無의 궤짝, 케텔이 아닌 大一, 호아를 의미한다. 一積十鉅 無匱化三에서 일적은 십거,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된다. 무궤도 화삼이라는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됨으로써 아주 짜임새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81수의 천부경은 고도로 집약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나무를 탄생시킨 무한자는 세 개의 베일로 가려져 있는데, 아인(AIN: 무), 아인소프(AIN SVP: 무한), 아인 소프 아우르(AIN SVP AUR: 무한광)로 나뉘어져 세 개의 영광을 나타낸다. 첫 번째 베일인 아인(A, I, N)은 케텔, 호크마, 비나 세 숫자(1, 2, 3)를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두 번째 베일인 아인 소프(A, I, N, S, V, P)는 케텔, 호크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의 여섯 숫자(1, 2, 3, 4, 5, 6)를 포함한다. 세 번째 베일은 아인 소프 아우르(A, I, N, S, V, P, A, U, R)를 포함하는 아홉 숫자(1, 2, 3, 4, 5, 6, 7, 8, 9)를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이 베일들은 현현된 것이 아니며, 세피로트가 나오기 이전의 원형적 상태를 말한다. 이를 카발라의 음의 18베일이라고 한다. 아인이 아인 소프로, 아인 소프에서 아인 소프 아우르로 형성된 無가 응고되어 케텔이 형성된다. 최종분열수 9에서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다시 최초의 1로 현현된다. 케텔에서 말쿠트의 단계로 생명나무가 현현되는데, 음존재의 9단계는 케텔 형성 이전 음존재의 말쿠트에 해당된다. 생명나무는 케텔 중의 케텔의 말쿠트에서 고형화되어 무한자의 최초 고형화 단계이다. 여기에서의 무궤는 케텔 중의 케텔인 대일을 의미한다. 「삼한관경본기」를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一積而陰位 十鉅而陽作 無匱而衷生焉”인데, “하나가 쌓여서 음을 이루고, 십으로 커져서 양을 만들고, 무궤에서 충이 생겼다.”는 뜻이다. 하나가 쌓여서 음을 이루었다는 말은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아우르의 단계인 음존재를 의미한다. 십으로 커져서 양을 만들고는 이러한 음존재들이 케텔의 단계에서 말쿠트의 단계로 발전하여 양을 만들고, 무궤에서 충이 생겼다는 것은 음존재에서 케텔이 생겨남을 말한다.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은 천일일지일이인이삼과 비슷하지만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생명나무의 수평구분은 존재의 제계를 설명한다. 세 개의 세피로트를 하나로 묶은 것을 기능삼각형이라고 하기도 한다. 1트리아드는 케텔, 호크마, 비나이며, 2트리아드는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이고, 3트리아드는 네자흐, 호드, 예소드를 말한다. 트리아드는 세 개의 세피로트가 삼위일체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1트리아드와 2트리아드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는데, 이는 다른 존재차원을 말한다. 2트리아드와 3트리아드 사이에는 베일인 파로케트가 드리워져 있다. 천이삼지이삼인이삼 뒤의 삼은 기능삼각형인 트리아드를 이루는 천수 둘, 지수 둘, 인수 둘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수는 2와 4를, 지수는 3과 5를, 인수는 1과 6을 나타낸다.   大三合六生七八九 대삼합육생칠팔구는 대삼이 합하여진 여섯 수가 7, 8, 9를 낳았다는 뜻이다. 대삼은 1트리아드, 2트리아드를 의미하며, 1트리아드와 2트리아드가 합하여 3트리아드인 7, 8, 9를 낳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의 육은 십수 체계상의 여섯 번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상위의 두 기능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여섯 개의 세피로트 수를 의미한다. 천수 2와 4, 지수 3과 5, 인수 1과 6, 이 여섯 개의 수가 합하여져서 7, 8, 9로 이루어진 트리아드를 낳음을 뜻한다. 비유적으로 1트리아드는 오시리스, 재생의 뜻이 있는 망자의 군주를 의미하기도 하며, 2트리아드는 이시스로 모성, 마술, 생산의 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3트리아드는 호루스로 복수, 하늘, 수호의 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쿠트를 호루스의 자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카발라의 1트리아드는 부성계이며, 2트리아드는 모성계를 나타낸다.   運三四成環五七 운삼사성환오칠은 삼과 사를 운용하여 오와 칠의 환을 이루었다는 말로 천부경 중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다. 천부경은 우주의 현상과 존재의 구조를 설해 놓은 경전이다. 굳이 81자로 이루어진 데는 우주론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주의 형상이고 우주의 구조인 카발라 생명나무는 10光 22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까지는 생명나무의 십광인 세피로트를 주요 골격구조로 하여 수직구조와 수평구조로 설명했다. 하지만 22개의 카발라 길의 설명이 필요하다. 81자로 카발라의 생명나무길 22개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심벌을 이용하여 7자로 멋지게 표현해 놓았다. 그것이 운삼사환오칠인데, 삼과 사를 운용하여 환을 만들되 그 환은 5, 7의 환이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삼과 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말하고 환은 원을 의미한다. 원방각도는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합체된 심벌을 의미한다. 카발라의 22길은 히브리어의 삼모자(三母字), 칠복자(七復字), 12단자(單字)에 함축된 의미인 3+7+12=22로 이루어졌다. 히브리어 22자를 살펴보면 3모자는 알프레, 쉬, 멕이다. 7복자는 베트, 카프, 기멜, 페, 레쉬, 탈레트, 타우이며, 12단자는 바우(와우), 차데, 테트, 요드, 라메인, 아인, 사메크, 포프, 레트, 자인, 눈, 헤 등이다. 운삼사성환오칠에서 삼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말한다. 환오칠은 원이 다섯 개의 면과 일곱 개의 면으로 나뉘어짐을 의미한다. 7복자는 원방각도에서 만들어 낸 7개의 분할 면을 나타낸다. 운삼사성환오칠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천부경이 ‘생명나무’의 심벌을 설명하는 것인데다가 그 심벌을 또 하나의 심벌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심벌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부경이 갖는 고도의 축약성 때문이다. 애초 천부경의 작가는 글자수를 정했음이 분명하다. 81자 속에 우주의 원리를 담기 위해서는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81자여야 하는가? 이를 밝히기 위해 사전작업으로 천부경 본문의 81개의 한자를 전부 하나의 점으로 생각하여 카발라의 기본적 우주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중앙을 기준으로 하여 네 겹의 사각형과 8개의 축을 그릴 수가 있다. 사각형의 중심은 호아(대일)이며, 대일을 상징하는 점을 둘러싸고 있는 네 겹의 사각형은 안쪽에서부터 각기 존재의 4계인 아트질루트계, 브리어계, 예트지라계, 아시아계를 상징한다. 중심점을 기준으로 하여 8방으로 뻗어나간 8개의 축상에는 32개의 점이 있다. 즉 중심점+32의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카발라에 의하면 신은 32개의 길을 따라 내려왔다고 한다. 즉 1+32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상징하고 있다.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은 하나가 묘하게 넘쳐서 무수히 오가며, 쓰임은 변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피라에서 다른 세피라로 움직임을 카발라에서는 ‘넘친다’로 표현한다. 다이온 포춘이 쓴 40쪽을 보면 “각 세피라는 물웅덩이와 같아서 그것이 꽉 찬 뒤 아래의 웅덩이로 흘러간다.” 라고 표현했다. 한 세피라에서 다른 세피라로 발출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세피라 안에서 10단계에 걸친 성숙 단계를 거친다. 카발라의 가르침은 존재의 4계(아트질루트계, 브리어계, 예트지라계, 아시아계)는 각각 10개의 세피로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세피로트는 다시 10개의 세피로트로 이루어져 있다.   本心本 太陽昻明 본심본 태양앙명은 본심은 본래 태양을 우러러 밝힌다는 뜻이다. 천부(天符)는 생명나무를 말하는데, 생명나무는 10세피로트와 22라인으로 이루어져 신이 내려온 32길을 보여준다. 운삼사성환오칠은 22법칙을 설명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기본구조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그 다음부턴 부연설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 일중천지일은 생명나무 전체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이 왜 천부경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천부경이 카발라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본심이란 인간의 본품성, 자성, 고급자아를 의미한다. 생명나무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너지, 의식, 형상을 대표하는 기둥 중 우측기둥은 에너지를, 좌측기둥은 형상을, 중간기둥은 의식을 나타낸다. 우측기둥은 자비의 기둥으로 포지티브, 남성의 원리를 내포하며, 적극성과 건설, 유동적인 에너지이다. 좌측기둥은 엄정의 기둥으로 네거티브, 여성의 원리, 소극성을 나타낸다. 파괴적이며 구체적 형상을 나타낸다. 중간기둥은 의식을 나타내며, 의식의 차원들, 의식의 차원들이 작용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중간기둥 중에는 말쿠트, 예소드, 테페레트, 케텔이 있는데, 말쿠트는 감각의식을, 예소드는 아스트랄 심령인 달의 사이킥 의식을 의미한다. 티페레트는 일루미네이션을 얻는 의식으로 저급자아와 고급자아의 합일을 이루어 태양이 상징하는 진정한 자아를 형성한다. 케텔은 신성을 의미한다. 이렇듯 중간기둥은 인간의식의 성장, 깨달음의 단계를 나타낸다. 신성에 이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나타내는 것이며, 화살의 길, 불의 길이라고도 한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은 ‘사람 가운데 천과 지가 하나다.’ 라는 뜻이다. 천부경은 생명나무를 말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범주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생명나무의 중간기둥인 인극 가운데 우측기둥인 천극과 좌측기둥인 지극이 하나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나무 중간기둥이 남성원리인 양과 여성원리인 음이 합일된 양성일체의 합일임을 언급한 것이다. 균형의 기둥이라 한 중간기둥은 의식을 의미하며, 의식의 성장은 음과 양의 균형, 즉 중도의 길에서만 가능하다. 요가에서의 깨달음을 보면 음의 채널인 이다(Ida)와 양의 채널인 핑갈라(Pingala)가 균형 잡혔을 때 중간의 수슘나가 활동하고, 척추 끝의 쿤달리니가 중간기맥인 수슘나의 관을 따라 머리로 상승하여 사하스라라 차크라를 일깨운 상태라고 한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은 하나가 끝났으나 그 하나는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하나의 시작은 케텔이며 하나의 끝은 말쿠트이다. 하나의 끝남이 말쿠트이지만, 말쿠트는 다시 케텔로 시작된다. 말쿠트 숫자값은 10인데, 10은 완전수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10=1+0으로 1을 나타낸다. 신의 속성은 질서와 균형이다. 신의 부재는 무질서와 불균형인데, 카발라에서 신의 부재를 네거티브 생명나무, 암흑의 나무,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생명나무의 말쿠트는 암흑의 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말쿠트의 우리 인간은 암흑나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내적인 무질서와 불균형을 극복한다면 생명나무의 길을 따라 의식을 각성시켜 신과 합일될 수 있다. 카발라에서 인간존재의 이유를 악인 무질서와 불균형을 선인 질서와 균형으로 변형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이렇듯 카발라에서는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사명을 티쿤(Tikkun)이라고 한다.   시를 쓰는 것은 티쿤적 삶을 사는 것이다. 지식과 언어, 감정으로만 쓰는 작업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혀가는 신적인 사명을 이루어가는 일이다. 현란한 언어의 테크닉과 정리되지 않은 정신적 무질서 속에서 시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시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숭고함에서 나온다. 언어의 숭고함은 세상만물이 언어로 지어졌고, 언어 속에서 진리로 살다가 마지막 언어로 마칠 것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언어에 살아있는 혼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멘탈체, 아스트랄체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한다. 시인은 하나의 언어 속에 멘탈계와 아스트랄계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를 통해 케텔 이전의 케텔을 보여주면서 생명나무의 길을 가야 한다. 한민족의 조상인 환인들 시대의 천부경이 유대교의 하나님, 엘로힘의 제사장으로서의 반차를 쫓은 멜기세덱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전해주었던 카발라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의 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왔던 모든 고정관념들이 깨어지는 통렬한 희열을 느낀다. [출처] 21. 세계|작성자 김기덕
2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과 표현 /김기덕[ 한국] 댓글:  조회:1610  추천:0  2017-11-09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과 표현 ​       김 기 덕 [ 한국]     시인들은 많지만 표현의 방법을 제대로 알고 시를 쓰는 시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해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나열에 치중하여 시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시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언어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이 시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림 속에는 화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성이나 메시지가 있겠지만, 그림 자체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림 속에 담긴 관념을 금을 캐듯 채취하는 것이다.하나의 시 속엔 철학의 광맥이, 관념의 광맥이 필요하다. 그 관념성은 지상에서 볼 수 없는 광맥처럼 숨겨진 존재이다. 잘 표현된 시 속엔 철학과 사상, 이념의 고차원적인 광맥이 숨겨져 있어야 하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시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표현 속에 관념을 감추고 심오한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선 표현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시의 표현은 하나의 단어로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문장에서 시작된다. 그 문장은 이미지로 결합된 문장이며, 설명이나 관념의 기름기가 빠진 순수 사물적이거나 감각적이어야 한다.     1.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의 필요성   지금까지 우리의 시 쓰기는 대부분 연역적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역적 방법은 간접추리와 직접추리와 같은 연역적 추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간접추리는 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명제로부터 새로운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예) “모든 유대류는 척추동물이다.” “모든 캥거루는 유대류이다.” 그러므로 “모든 캥거루는 척추동물이다.”   직접추리는 하나의 명제에서부터 새로운 한 명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예) “모든 사람은 이성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어느 비이성적 동물도 사람이 아니다.” 예) “어느 자유주의자도 전체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전체주이자도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시는 증명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학의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시 쓰기의 방법적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연역적 방법은 일반적인 원리를 가지고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예) 모든 동물은 죽는다. -대전제(일반적 원리) 사람은 동물이다. -소전제(구체적 사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다. -추론(구체적 원리)   연역적 방법의 시 쓰기는 하나의 주제의식, 즉 결론적 의미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연이나 사물, 정황의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등의 대전제를 세우고 감성적 정서나 이야기 등의 소전제를 덧붙여 시인의 시적 의도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연역적 방법의 시는 연역법적 증명의 형식을 갖는 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발상에서부터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의미한다. 대전제는 시에 대한 발상을 얻고 어떤 주제로 써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소전제는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 등의 표현을 빌려와 주제성을 뒷받침하는 것을 의미한다. 추론은 결론적 감성의 증명, 새로운 차원의 제시, 상승된 시심의 도출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는 정확한 논리적 증명을 위한 글은 아니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 볼 때 대부분 연역적 방법을 취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시는 비논리의 논리이다.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비논리와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로 이해하려 한다면 시의 접근성이 차단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연역적 방식의 시들은 시간성, 인과성, 예상가능성의 원리들을 통해 생각을 펼치며 개인적 정서의 증명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 문장을 보면 시의 가능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첫 문장이 표현되었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앞으로 생각이 뻗어갈 수 있는 씨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씨알은 주제의식을 나타내며 시적 정서를 증명하기 위한 대전제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 내용을 거의 다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의 표현방법을 말하면서 접근법을 끌어들인 것은 표현을 위한 근본적인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 쓰기를 시작한다면 시에 대한 표현보다는 관념성에 갇히게 된다. 물론 숨겨진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잘 표현된 시들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시인들에겐 시 쓰기의 근본적인 접근 방법을 바꾸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 쓰기 방법은 하나의 사물이나 풍경, 이야기 등을 통해 착상이 이루어지면 연못에 던져진 돌의 파장처럼 이미지를 확장해 가거나 굴착기 같은 생각의 압력을 통해 사고의 지반을 꿰뚫으려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시작점은 착상의 중심이고, 시의 전개는 이 중심의 확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니 정방향의 일방적 시 쓰기가 되어 예상이 쉽고 의미가 드러나 식상한 맛을 주었다. 시는 어려워야 하나? 라는 질문을 받는다. 시는 어려워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깊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반복하여 써온 시의 정서들이 이제는 식상한 공식이 되었다. 첫줄을 읽고 다 알아버린 시의 맛은 맹물 같은 것이다. 대하소설을 읽는데 그 내용이 예상된다면 누가 시간을 들여 읽으려하겠는가. 초보적 시 쓰기에서 벗어난 고수들의 바람은 신선한 접근과 파격적 전개는 아니라 해도 우려먹어서 맛이 다 빠진 녹차 잎 같은 시는 아닐 것이다. 시를 어렵게 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편의 시 속에 많은 이미지와 생각의 씨알을 담는다면 당연 시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편하게 읽혀서 감동을 주는 시도 있지만 그 속에 안주해서 감동도 없고 신선함도 없는 시들이 너무 많다. 새로운 실험을 통해 과감히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2.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   이러한 기존의 연역적 시 쓰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에 하나가 귀납적 방법이다. 시 쓰기의 귀납적 방법은 연역적 방식과 접근법에서 상반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연역의 추리는 그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귀납적 추리는 전제와 결론 사이에 필연성이 없다. 귀납적 추리는 그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 낼 때 개연성(꼭 단정할 수는 없으나 대개 그러리라고 생각되는 성질.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한 귀납적 비약이 반드시 따른다. 이러한 논리학의 논리가 시에 도입되어 활용될 때는 연역적 전개의 반대적 방향성을 갖는다. 귀납법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예) 사람은 죽는다. -구체적 사실 소도 죽는다. 돼지도 죽는다. 개도 죽는다. 사람, 소, 돼지, 개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 -추론(일반적 원리)   다시 말하면 연역법은 일반적 원리를 근거로 구체적, 개별적 문제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귀납법은 구체적, 개별적 사실들을 논거로 하여 일반적인 원리를 이끌어 내는 방법이다.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연역법의 대전제와 같은 의미, 철학성, 교훈성, 유희성 등을 세우기 이전에 관찰적 근거들을 모으듯 이미지를 뽑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먼지라는 소재를 통해 시를 쓴다면, 연역적 방법은 ‘먼지를 통해 인간은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는 주제성을 통해 접근한다든지, ‘먼지로 인한 폐해’와 같은 문제성으로 출발할 것이다. 하지만 귀납적 방법은 먼지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관찰적 근거가 되는 주변 이미지를 뽑으라는 것이다. 먼저 유사한 이미지들로 모래, 재, 진드기, 꽃가루 등을 찾았다면, 인접성의 이미지 침대, 방, 진공청소기, 걸레 등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상징적 이미지인 사람, 별, 나뭇잎, 구름 등을 찾아 순서를 정한다.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확장된 이미지, 팽창된 의식에서 집중된 이미지, 집약된 의식으로 가는 수축의 과정이다. 먼지와 연결된 이미지가 세상엔 무수히 많다. 이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여 집약된 정서적 논증을 이루어야 한다.     ⑴ ‘먼지’를 소재로 한 구체적 시 쓰기 방법   먼지라는 소재를 대상으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먼저 먼지에 대한 책을 한 권 정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먼지에 대한 기본 지식이 갖추어진 다음에 이미지를 뽑게 되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이미지들을 뽑을 수 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생각하고 아는 만큼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쓰면서 논문이나 책을 통해 그에 연관된 방대한 양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또한 한 편의 시 속에 책 한 권 분량의 지식과 상징을 압축할 수 있다면 대단한 시가 될 것이다. 한 줄 문장 속에 책 한 권을 압축하기 위해선 상징적 이미지의 활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상징적 이미지 속엔 천년 은행나무의 씨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최대한 많이 뽑을수록 좋다. 그것을 다 활용하지 않아도 연관된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뽑은 이미지에 대한 문장 만들기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 때는 벌이 꽃에서 단물을 빨아 몸에서 침과 함께 숙성시켜 꿀을 생산해 내듯 그 이미지를 자신의 경험과 정서적 지식을 통해 숙성시켜 시적표현으로 토해내야 한다. 그래서 똑같은 이미지라도 시인마다 다르게 표현되며, 다른 맛과 색깔을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면 먼지에 대해 유사성, 인접성, 상징성으로 뽑은 이미지를 가지고 나의 정서적 사고의 숙성을 통한 문장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꽃가루: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화산재: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모래: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중금속 입자: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석면가루: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진드기: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살아도   침대: 침대 밑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창문: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벽: 벽을 통과해 내 몸 속에 둥지 틀고 먼지들이 기침을 한다.   구름: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지상 위에 날개를 접는다.   별: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화장터 연기: 아지랑이처럼 흩어지는 내 안의 미립자들.   지구: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노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빛: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⑵ ‘먼지’를 소재로 한 시 쓰기의 완성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문장들을 적절히 배합하고 배치하여 한 편의 시로 만들면 되는데, 하나하나의 문장이 거의 독립적이기 때문에 배치순서가 달라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있거나. 사고의 대소, 현실과 이상 등의 차이에 의해 다르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서 부족한 부분들은 좀 더 보충하여 매끄럽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음의 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 나름대로 완성한 시이다.   먼지 보고서   먼지별에 가득 찬 먼지들 서로 껴안고 몰려다닌다. 바람의 미세 혼령들 한통속으로 몸을 드나들며 구름을 일으킨다. 성층권까지 치솟는 분노의 화산재 변심한 애인의 모래바람 꽃 입술에서 나온 꽃가루들이 거울 같은 세상을 지운다. 불을 피우고, 물을 뒤집어쓰며 풀풀 먼지만 피우다가 연기로 사라지는 미세먼지들 벽을 통과해 내 몸속에 둥지 틀고 기침을 한다. 어젯밤 꿈으로 분해된 초미세먼지의 빙의 아 무서워, 현실의 악몽들은 중금속으로 살던 입자들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며 나를 깨운다. 분해결합하며 공간 이동한 에어로졸들은 또 거미가 되고 세균이 되겠지. 진드기나 박테리아들과 한 이불 덮으며 구름방울, 빗방울로 살다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질 내 안의 미립자들 쥐며느리나 개미들처럼 껴안지 못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린다. 책상 위에 쌓인 중금속들이 비둘기로 날아간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꽃가루들이 자동차가 되어 달린다. 나는 몇 억만 년 전에 피어난 소금방울이고 화산재였나. 석면가루의 말들이 진폐증을 일으킨다. 메트로놈의 파장이 엔진을 돌린다. 먼지로 왔다가 먼지로 돌아가는 날개들의 소리 없는 퍼덕임 굴절과 산란을 만들며 노을처럼 흩어진다. 반짝이는 먼지들로 가득한 은하계에 바람이 인다. 나뭇잎마다 수북이 쌓이는 빛. (먼지보고서 전문/ 김기덕)     3. 귀납적 시 쓰기 방법에 있어서의 표현 문장 만들기   귀납적 방법의 관찰적 근거들로 찾은 이미지들은 완성된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핵심요소들이다. 이 핵심적 근거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의 정서적 증명을 위한 표현의 방식이 달라진다. 하나의 문장 속엔 이미지의 뼈를 세우고 생동하는 활력의 살을 붙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이미지가 있는 명사를 선택해야 한다. 관념적 명사를 제외시키고 이미지적 명사를 주어로 해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말씀보다는 성경을, 권력보다는 총과 칼을, 사랑이라는 관념보다는 하트나 눈물 같은 이미지를 문장의 주어로 써야한다. 이러한 사물적 단어를 주어로 끌어오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사물 속에 이미 담겨 있는 관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은 사물 속에 담긴 죽은 관념을 봐서는 안 된다. 그 관념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어야 하며 자기만의 깨달음, 의미 부여가 되어야 한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나타낸다. 이 정지의 관념은 누구나 다 아는 관념이기 때문에 이 관념을 염두에 둔 빨간 신호등을 끌어온다면 이미 죽은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신선한 시의 이미지를 쓰기 위해선 새로운 관념의 옷을 입혀야 한다. 내 앞에 켜진 빨간 신호등은 나의 관점에서는 정지이지만 다른 방향에 있는 차들의 관점에서는 소통이 될 수 있다. 이렇듯 하나의 사물을 끌어와 문장의 주어로 쓸 때는 새로운 관념의 차원을 생각해야 한다. 시에서의 핵심적 문장은 주어+동사의 문장이다. 이미지로 선택된 사물의 주어에 어떤 동사를 배치해야 살아있는 표현이 될까? 시는 결국 언어로 그린 사물적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인간 정서를 표현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사물적 그림을 그리되 그 그림 속에서 인간적 정서를 느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사의 쓰임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에 먼지라는 이미지의 사물을 선택했다면 먼지를 주어로 해서 동사를 배치할 때 인간적 정서가 있는 동사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과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는 문장은 차원이 다르다. ‘먼지들이 떠다닌다.’라는 문장은 1차원의 문장이라면 ‘먼지들이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닌다.’라고 하면 2차원, 3차원의 의미를 갖는 문장이 된다. 그래서 동사의 정서적 배치는 시의 상징적 관계를 만들며 다양한 해석을 갖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인들이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를 사용하지 못하고 1차원적인 주어에 대한 서술만을 하기 때문에 표현의 문장 만들기에 실패하곤 한다. 몇 가지 인간적 정서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의 사용에 대한 예를 든다면 ‘달이 밝다’는 ‘달이 웃는다’로, ‘낙엽이 진다’는‘낙엽이 투신한다’로, ‘별이 반짝인다’는 ‘별이 윙크한다’와 같은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이미 활유법이라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시의 문장을 씀에 있어서는, 즉 사물적 언어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활유보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적 동사를 사용할 수만 있다면 증명하고자 하는 정서적 결론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문장 표현에는 동사의 활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깨동무한 먼지’, ‘웃음 짓는 달’, ‘투신하는 낙엽’ 등과 같이 직접 주어를 꾸며줄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큰 틀에서 동사의 활용방법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의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이러한 표현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표현은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과 사물은 공존하고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 속에 넣을 수 있지만, 심층적 조화와 고도의 상징적 표현을 위해선 사람을 사물로 변환시켜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물로 변형된 인간이 아닌 존재로 시에서의 등장은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긋고, 의미가 드러난 관념 쪽으로 이끌 수가 있다. 예를 든다면 ‘여자가 서있다’라는 문장에서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 준다면 ‘느티나무 같은 여자가 서있다’와 같이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 여자를 사물로 바꾸어주는 과정에서 직유든, 은유든, 상징이든 상관없다. 단지 감쪽같은 접합을 위한 언어적 풀질의 테크닉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느티나무 같은 여자’든, ‘느티나무 여자’든, ‘느티나무’든 그것은 시인의 역량에 따라서,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문장도 표현의 문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플라타너스 같은 사내가(플라타너스 사내가/ 플라타너스가)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로 사내를 사물로 바꾸어준다면 자연스런 언어적 표현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근골의 팔을 내보인다’라는 표현에서도 이미 사내는 나무로 변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근골’이란 단어 자체가 뿌리와 뼈를 접합시키는 이미지이며, ‘근골의 팔’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자연적 사물을 인간적 정서와 연결시킨 표현이기 때문이다.     4. 귀납적 시 쓰기의 결론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은 기존의 수목적 사고의 방식에서 탈피하여 유목적 사고의 방식을 추구하는 구체적 방법 중에 하나이다. 사고는 흐름과 방향성을 갖는다. 그 흐름과 방향성은 그냥 놔두면 관습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항상 땅으로만 떨어진다. 시에서의 사과는 땅이 아닌 하늘로 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관습적 사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뻗어 온 우리의 사고, 시적 전개의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여 잎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뿌리로 접근하는 방식의 추구가 바로 귀납적 시 쓰기의 방식이다. 내가 무엇에 대해 시를 쓸 것인가 하는 대전제를 세우고, 많은 이미지와 스토리를 끌어와 작자의 의도대로 정서적 결론을 이끌며 도출하던 시의 방식에서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 이미지든 사건이든 시적 대상을 잡았다면 먼저 이미지를 뽑고, 이미지적 문장을 통해 언어의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독자들이 생각하고 유추해 갈 수 있는 시를 써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표현적 문장을 자유롭게 배치하고 조합하는데 묘미가 있다. 하나의 화폭에서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린다고 가정할 때는 나름대로 그리는 순서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림들이 분해되어 재구성 될 때는 순서가 필요 없다. 여러 가지 관찰적 근거들이 모여 하나의 사실을 증명하듯 나름대로 주제성을 느끼며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주제적 큰 틀을 표현하고 정서적 증명을 위해 연관된 많은 사실적 근거의 이미지를 찾고, 이미지들을 인간적 감성의 연결고리가 있는 동사들로 표현의 문장을 만들어 뒤섞인 퍼즐적 조합을 통해 시를 썼을 때 독자들은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은 기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귀납법적인 방법에 의한 표현적 시 쓰기는 식상해진 관념적 시의 탈피를 위해 도전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의 생명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1    이미지의 공식 / 김기덕 [ 한국] 댓글:  조회:8236  추천:0  2017-10-18
배치의 이론과 마인드맵의 시쓰기ㅡ 김기덕   한 시학도에게 주는 공개편지 문덕수 함께 시를 쓰는 입장에서 시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러한 공개 서한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론이나 시학에 관한 것도 물론입니다. 나는 우선 김기덕 형에게 많이 독서하고 많은 고전(古典)을 읽으며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음에 대하여 사랑과 경의를 표합니다. 소박한 감정을 즉흥적으로 노래하던 옛날과는 달리 현대의 시는 많이 독서하고 많이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시는 구한말 이후 지금까지 관념일변도(觀念一辺倒)로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사의 기술이나 비평도 관념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사를 자본과 노동, 권력과 소외라는 2분법으로 보거나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말한 주인과 노예의 대립구조의 연장 선상에 있는 관념주의로 보아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장하는 하이퍼시 운동은 시 자체가 관념화에 너무 깊이 빠지는 사태에 쐐기를 박고, 역사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도색(塗色)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데서 출발한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역사 안과 역사 너머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이퍼시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시라고 보지 않으며 하이퍼시의 이론만 유일무이의 시학이라고 우기는 것도 아닙니다. 배재학당에서 한 달에 한 번 열고 있는 금요시론포럼도 이제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법 그 형식과 전통도 갖게 되었습니다. 하이퍼시의 이론이 계기가 되어서 또 다른 이론도 파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김기덕 형의 『이미지의 공식』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이 글의 제목인 ‘공식’에 대해서 정말 공식이라는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시를 위한 이미지를 창조하는 공식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말입니다. 김형의 글에서 김형의 광범위한 독서량을 생각하면서 일종의 사랑의 생각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형께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서를 읽은 것을 먼저 거론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상(樹木狀)에서 장구한 서양 철학사에서 철학적 사유의 모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목상에서 일자중심(一者中心)에서 2항 대립형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고, 이러한 발전형태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러한 이론을 위하여 리좀(rhizome)을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리좀에 대한 김기덕 형의 이해도 대체로 이와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눈앞에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봅시다. 나무를 보면 하나의 큰 줄기가 있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 가지에는 또 작은 가지가 갈라져 나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본 것은 이러한 수목상의 조직이 철학을 비롯해 인간의 사유라든지 사회조직의 모델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도식에서 말하는 계통수(系統樹)라고 말합니다만 이 나무에서 초월적인 일자(一者)인 이 줄기를 중심으로 이항대립(二項對立)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변증법이나 분석적 사유는 트리(tree) 조직의 원리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리좀은 근경(根莖), 지하경을 의미한다고 사전에 적혀 있습니다. 칸나나 고구마 덩어리처럼 어떤 중심이 없이 이질적인 선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망상조직(網狀組織)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의 신경조직도 리좀이라고 합니다. 스크럼, 럭비,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 1923~ )의 악보(미케네 a) 등도 리좀적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유나 글쓰기에는 하나의 중심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관념들을 표현한다. 예컨대 언어에는 기본적인 구조나 문법이 존재하고, 그것이 프랑스어, 독일어, 인도어와 같이 상이한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본다. 이런 사유와 글쓰기의 스타일은 판명한 질서와 방향을 생산하기 때문에 수목(나무 같은)인 것이다. 대조적으로 리좀학(이 책의 저자는 Rhizome과 Rhizomatics을 구별해서 쓰고 있다. 인용자)은 임의적이고 탈중심화 되며, 증식하는 접속들을 만들어낸다. 언어의 경우 우리는 근원적인 구조나 문법이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단지 상이한 발화 체계들과 스타일들이 있다는 것, 이런 모든 차이들에 대한 ‘나무’ 혹은 ‘뿌리’를 찾는 시도가 사후적 발명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리좀적 방법은 근거와 결론, 원인과 결과, 주체와 표현 사이의 구별이나 위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클레어 콜브락 지음, 한정헌 옮김 『들뢰즈 이해하기』 크린비, 2007, 32쪽). 다시 말하거니와 김기덕 형도 리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와 같이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또 하나 ‘배치’ 문제가 있습니다. 김 형께서는 “시는 적절한 배치에 의해 그 차원을 달리 한다. 배치는 계열과 달리 어떤 개개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연결된 전체를 포괄하려는 개념이다”라고 말하고 그 다음엔 “진달래꽃 하면 김소월이 생각날 것이다.…… 진달래꽃이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접속한다면 이별이나 영접을 상징할 수 있다. 만약 진달래꽃이 여자의 머리와 접속한다면 장신구가 되거나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진달래꽃이 병이나 도자기와 접속하면 진달래주가 될 것이고, 쌀가루나 밀가루와 접속하면 화전이나 꽃밥으로 전환될 것이다.”라는 대목으로 연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 대해서 한 마디로 ‘배치’ (agencement)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만, 굳이 이 말을 인용하는 것은 김기덕 형의 독서 범위가 넓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에게선 이 배치를 계열화(mise en séries)라는 개념과 함께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훌륭한 철학서인 『노마디즘』 (이진경, 자유, 2002)에서는 여러 가지 축구공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축구공 이야기는 김 형의 여러 가지 배치 이야기와 유사합니다.(동서, 58쪽) 사람, 물건, 동물, 글자 등의 어떤 것과도 연결되어 어떤 의미를 만드는 계열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김 형은 “배치 안에서 각 항은 접속하여 새로운 이미지나 상징을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너무 얘기가 길어짐을 염려하면서 「주역」 (周易) 쪽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김 형께서 어째서 「주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하이퍼시의 이론 정립을 위해 하이퍼시의 구조 중에 주역의 기본 이론과 하이퍼시가 관련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또 주역의 괘(卦)의 도형과 기호(sign)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주역」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주역에 관한 김기덕 형의 글을 잘 모르겠으나 다만 시의 구조와 「주역」 원론의 접점 같은 것이 더욱 밀도 있게 연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형께서는 더욱 건강하고 조신(操身)하면서 치열하게 연구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나는 건강이 안 좋아서 손도 떨리고 글도 조리 있게 쓰지 못합니다. 이 글을 발행하고자 하는 책 머리에 서문 대신에 편지 형식으로 놓아도 무방합니다. 내내. [출처] 한 시학도에게 주는 공개편지|작성자 김기덕 수목적 시쓰기 수목적 시쓰기는 순차적, 인과적, 논리적인 글쓰기로 선형적 전개를 이룬다. 나무의 뿌리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가지에서 잎으로 확장하든지, 그 반대로 축소되는 형식을 갖는다. 수목적 시의 특징은 주제의 통일이다. 하나의 시엔 하나의 주제가 필요하고, 주제에 어긋나는 내용은 제거된다. 예를 들면 정원사가 기린 모양의 나무를 만든다면 기린의 모양을 벗어난 가지는 잘라내어야 한다. 시어들은 주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에 의해 동원되며, 그 접속관계는 대부분 1:1의 관계를 이룬다. 이 1:1의 관계는 진달래꽃이 배치에 따라 여러 각도의 이미지로 사용될 수 있지만,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배치되어 이별의 관계로만 접속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또한 1:1의 관계로 접속되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유사성이나 인접성에 의한 요소들의 집합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수목형의 대표적인 시는 서정시이다.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은 외적으로 리듬과 장단을 갖추고, 내적으로는 구조나 사상 및 정서 등의 요소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내용적 특징으로는 음악성, 서정성, 주관성을 가지며, 주제도 한 가지이고 사상, 감정도 한 가지로 이루어진다. 서정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화된 주관적 서정이며, 내적 체험의 표현이다. 객관적 현실을 주관적 체험으로 전환시켜 표현함으로써 세계와 자아가 대립하거나, 융합하거나, 세계를 자아의 내면으로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바람은 머리 풀고 울었습니다. - 중략- 탄환을 쫓는 비명 소리가 절벽에 메아리로 박힌 뒤 터진 틈새로 포연이 솟아올라도 수의처럼 상처를 가리는 안개 군화 발굽에 실신한 백사장은 하류를 따라 허연 나신(裸身)을 드러내고 뭉개진 젖가슴 위로 술 취한 시대가 비틀거리며 지나갑니다. 굽이굽이 한 서린 강물 속으로 백골은 뜨물같이 풀어져 긴 그림자를 끌며 자지러지는 포말 -김기덕의 「한탄강」 일부 필자의 시 「한탄강」은 한탄강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재해석하여 쓴 것이다. 「한탄강」처럼 수목적인 시는 시인의 생각이 선명히 드러나야 하고 기, 승, 전, 결이든 기, 서, 결이든 정해진 방식을 통해 주제의 통일을 추구한다. 다양하게 외적, 내적으로 변형된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근본형식을 토대로 한다. 그래서 시인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워서 머리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의 중심에서 줄기로, 가지로, 잎사귀로 뻗어간 사고의 단순성이 이제는 식상한 시대가 되었고 진화된 현실세계를 표현하고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출처] 수목적 시쓰기|작성자 김기덕   유목적 시쓰기 배치를 통한 시쓰기는 정주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접속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리좀적 글쓰기이다. 유목적이란 단순히 정주성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과 무한한 연결 가능성을 통해 다양체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서정시에서의 유추나 상상력을 통한 사고의 확장은 주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한계 내에서 직유적, 은유적, 상징적 기법들을 통해 구현되어 왔다. 이러한 의식의 확장을 위해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원리가 적용되었고, 아이러니나 패러독스 같은 방법이 동원되었다. 직유나 은유는 본의가 비유의 대상인 유의와 거의 1:1의 관계를 이루고 본의와 유의가 드러난 상태지만, 상징은 1:1의 관계를 형성하며 유의만 남고 본의는 숨어 있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유의 속에 숨겨진 본의는 명백하거나 확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신 되거나 암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은 다양체가 내적으로 숨겨져 있는 것이며 관념성을 통해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다양체를 만드는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유목적 글쓰기에서의 다양체는 첫째, 차이가 차이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동일자의 운동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셋째, 차이가 어떤 하나의 중심, 일자로 포섭되거나 동일화되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원리로 볼 때 다양체는 서정시의 비유나 상징적 기법에서 쓰이던 인접성과 유사성의 끌어오기 기법에서 더욱 멀어진 의미의 관계망을 요구하고 있다. 서정시는 예를 들면 화폐의 척도나 획일적인 발견을 통해 이질적인 것이 나타났을 때 다양체 확장 계기보다 사고의 다양성을 묶는 단순화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원리로 환원되지 않는 이질적 집합을 이루고 하나의 추가가 전체의 의미망을 크게 다르게 할 수 있는, 접속되는 항들에 따라 그 성질과 차원 수가 달라질 수 있는 글쓰기를 유목적(리좀적)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출처] 유목적 시쓰기|작성자 김기덕 1)     리좀이론 rhizome은 뿌리줄기라는 말로 하나의 중심뿌리에서 중간뿌리로, 중간뿌리에서 잔뿌리로 연결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줄기에서 옥수수나 보리의 수염뿌리처럼 중심뿌리가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관계를 말한다. 둥치에서 큰 가지가 뻗어나가고 큰 가지에서 잔가지가 뻗어서 잎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라 단번에 근원에 닿아 있는 구조로서 모양이 다를 뿐 모든 것이 똑같은 실체인 것이다. 고전적 글의 구성방식은 뿌리(결론)로 귀착되는 나뭇가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좀적 글쓰기는 하나의 결론으로만 끌고 가지 않는 모호한 집합의 다양체이며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이다.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에서 언급하고 있는 리좀적 특징을 본다면 나무의 뿌리와 달리 리좀은 어떤 지점에서든 다른 지점과 연결 접속한다. 반드시 자신과 동일 본성을 가진 특질과 연결되지 않으며, 하나로도 여럿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리좀은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고 차원들 또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리좀은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중간을 가지며 중간을 통해 자라고 넘쳐난다. 고른 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를 구성하며, 자신의 차원을 바꿀 때 본성이 변하고 변신한다. 리좀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대일의 대응관계의 집합에 의해 정의된다. 분할선들 성층작용의 선들이 여러 차원을 이루고 도주선 탈주선을 따라 본성이 변하며 변신한다. 리좀은 변이, 팽창, 정복, 포획, 꺾꽂이 등을 통해 나아간다. 항상 분해될 수 있고 연결 접속, 역전, 수정될 수 있는 지도와 관련되며 나무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모든 관계이다. 말하자면 모든 종류의 생성(되기)이다. 논리를 세우고, 존재론을 뒤집고, 기록을 부숴버리고, 시작도 끝도 무화시키는 방법으로 사물들 사이에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가거나 반대로 가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출발점도 끝도 없는 시냇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 리좀이론|작성자 김기덕   리좀적 글쓰기의 활용 리좀적 이론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무한히 분할 증식해 가는 중간줄기와 같은 글쓰기는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개체들의 나열과 같아서 의미나 형태의 수직적 관계를 이루기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만든다. 하나가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관계가 아닌 1:1의 접속관계를 만드는 관계는 나열적 수평관계를 만든다. 대등한 관계는 상하관계가 될 수 없으며 속하기도 하고 포괄하기도 하는 크고 작은 관계가 없다면 밋밋한 바닥, 의식의 층이 상실된 평평한 판에 불과할 것이다. 무한히 증식하고 번식해 나간 잔디밭과 같은 것으로 의식의 확장, 다양체의 생성은 가능하나 깊이와 높이를 따지고, 하나의 개체에 속한 크고 작은 기관들, 그 기관을 구성하는 미세적 요소와 같은 의식의 수직적 관계망을 엮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보리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이 수염뿌리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수염뿌리 전체를 하나나 둘로 잡아주고 묶어줄 수 있을 때 수염뿌리의 증식은 의미가 있다. 다양체의 존재는 이 다양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철학이나 메시지,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보다 큰 이미지나 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다양체의 존재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 아무런 연관 없이 연결된 이미지들을 보고 우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양체를 묶어줄 수 있는 줄기는 눈에 보이지 않되 존재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로 통일된 주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력이 강한 다육식물, 그리고 꺾꽂이나 휘묻이 할 수 있는 식물은 결국 뿌리를 만들고 줄기를 만들고 잎을 만들어 통일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온전한 리좀적 글쓰기만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으며, 구현한다 해도 산만하기 쉽고 그 깊이를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리좀적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고 큰 틀을 형성해 줄 수 있는 숨겨진 철학적 요소, 아니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대표적 요소(주제나 이미지)가 필요하다 [출처] 리좀적 글쓰기의 활용|작성자 김기덕   3) 하이퍼시 현재 일고 있는 하이퍼시의 핵심은 리좀적 글쓰기를 통한 다양체의 추구와 탈관념의 실현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본다면 단선구조의 틀을 다선구조의 틀로 만들며, 시인의 독백적 서술을 객관적 이미지로 표현하며, 정적 이미지를 동적이미지로, 시인을 시의 주체에서 이미지의 편집자로, 고정된 관념에서 다양하게 확산되는 상상으로, 읽고 생각하는 시에서 보고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로 바꾸어보려는 현대시의 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대부분 하이퍼성을 띄고 있다. 은유나 상징적 기법들도 하이퍼적인 요소로 사고의 건너뛰기, 확산과 다양성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이퍼시와 은유나 상징시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은유나 상징은 표현으로 되어 있으나 그 속에 많은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구에서 내 마음은 호수로 환치, 건너뛰기를 했으나 그 안에는 넓고, 푸르고, 맑고, 깊은 등등의 관념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하이퍼시의 확장은 이미지만 남고 관념은 사라지는 탈관념의 시이다. 그러나 모든 이미지 자체에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탈관념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최대한의 관념배제를 통해 시를 읽고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그냥 느끼고 감각하게 하려 한다. 그래서 하이퍼시를 읽고 나면 크게 마음에 남는 느낌이 없는 듯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이미지를 끌어와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생각은 단순하고, 단선적이라는 것이다. 형식의 다양체는 이루었으나 내면의 다양체는 만들지 못한 시들이 하이퍼운동의 시들 속에서 엿보인다. 읽기만 복잡하지 생각할 것은 없다는 지적도 많다. 진정한 하이퍼시는 내적, 외적 건너뛰기이며, 탈관념, 즉 관념이 숨어서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관념이 매몰된 이미지의 추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은유시나 상징시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거기엔 결합의 관계, 결합의 방법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관계는 배치의 관계이며, 배치의 합성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의 해석을 만드는 것이다. 배치는 방사형으로 퍼져 있으며, 형이상과 형이하, 힉스에서 우주로 연결되어 무한한 사고의 확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직선적 배치는 서정시의 주류이며, 상징시나 초현실주의적인 시들도 몇몇의 선들로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이퍼시는 보다 복잡한 배치선들로 구성되며, 평면적인 배치에서 벗어나 무수한 수직선들의 결합인 방사형(상징성의 집합) 배치의 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하이퍼시|작성자 김기덕   진화된 시쓰기의 목표 진화된 시쓰기는 기존의 수목적 시쓰기의 틀에서 벗어나 유목적 시쓰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유목적 시쓰기는 배치를 통해 다양성을 추구하며, 리좀적 이론을 활용하되 증식하고 확장하는 수염뿌리를 묶어줄 수 있는 줄기와 같은 철학이나 주제성을 추구한다. 이러한 주제나 철학은 보이지 않게 묻혀 있는 매몰된 관념이 되어야 하며 커피 속의 크림처럼 녹아 있어야 한다. 다양체의 선정과 확장의 방법은 유사성, 인접성의 연결과 상징, 욕망의 선 및 탈주선의 활용, story의 변화, 주역적 접속점 찾기 등을 통해 그 방법을 모색한다. 상이한 접속점들의 연결방법은 콜라주 기법이나 파워포인트 기법, 데칼코마니 기법, 마블링 기법, 시퀀스 기법, 주역점의 기법 등을 통해 짜깁기 형식을 취함으로써 단순한 사진찍기에서 벗어나 양탄자를 직조하듯 언어의 직조와 사고의 직조를 꾀한다. 이러한 언어의 구체적 직조방법은 마인드맵을 통해 지도화(地圖化) 한다. 표현의 방법은 설명이나 관념을 없애고 이미지만을 추출하여 이미지의 결합을 이루어야 한다. 그 이미지를 결합하기 위해 이미지에 속하는 단어만 시어라인을 통해 구별하고, 언어의 상징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표면적 이미지의 결합뿐만 아니라 이면적 상징, 의미의 결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빙산이론’인데, 수면 위에 보이는 것은 이미지이지만 수면 속에 잠긴 부분은 이미지에 담긴 상징성이나 관념을 의미한다. 시를 쓰는 것은 수면 위의 빙산을 보여주는 것이고, 수면 속에 잠긴 빙산은 숨겨져서 지식과 경험의 척도에 따라 독자가 파악하고 느껴야 할 부분이다. 시의 내용이 시인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독자가 리드하고 주역이 되는 객관적 시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 표현을 위해 문장구성을 위한 선명한 이미지의 명사를 선택하고 동사의 많은 대등항 속에서 살아 있는 생선처럼 펄펄 뛰는 언어의 선택이 필요하다. 또한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표현의 내용적 연결을 추구할 수 있다. 진화적 시쓰기의 중점은 얼마나 많은 접속점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연결하고 표현하느냐이다. 어린아이들의 블록놀이처럼 연결점이 많을수록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듯이 언어에서도 많은 연결점을 찾아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창출과 시적 의미의 확장을 꾀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런 다양한 접속점의 발견을 위해 기존의 신화·역사적인 시각,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 예술적 시각 등등의 시각에서 한국의 꿈풀이 및 주역적 시각을 추가하여 무한한 접속점의 발견으로 다양체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다양체의 생산은 수평적 시쓰기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수직적, 횡단적 시쓰기가 되어야 하며, 클릭으로 원하는 이미지를 맘껏 끌어올 수 있는 컴퓨터적 가상공간의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출처] 진화된 시쓰기의 목표|작성자 김기덕   배치 시는 적절한 배치에 의해 그 차원을 달리 한다. 배치는 사건이나 계열화와는 달리 어떤 개개의 의미를 포착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연결된 전체를 포괄하려는 개념이다. 배치 안에서 각 항은 접속하여 새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만든다. 여러 접속으로 만들어진 배치가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하나의 커다란 상징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다양체를 형성하게 된다. 하나의 시 속에 많은 다양체가 형성된다면 그 시는 입체성을 띄게 된다. 평면적 시쓰기는 복잡한 현실세계를 보다 예술적인 차원으로 접근, 표현하는 데 미흡하지 않을 수 없다. 한눈에 들어오는 수채화적인 글쓰기보다 피카소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 예술의 차원은 복잡도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차원은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다양체를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다양체는 다양한 종류의 나열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소재나 제목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미지나 상징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느냐이다. 평면적인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단순하지만, 입체적인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다양하다. 밑면을 보고, 윗면을 보고, 안과 밖을 보듯 느낌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입체적 글쓰기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치를 통해 많은 상징과 이미지를 표현해야 한다. ‘진달래꽃’하면 김소월이 생각날 것이다. “영변에 약산”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등으로 표현되는 진달래꽃을 무엇과 배치시킬 수 있을까? 진달래꽃이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길과 접속한다면 이별이나 영접을 상징할 수 있다. 만약 진달래꽃이 여자의 머리와 접속한다면 장신구가 되거나 정신이상이 될 것이다. 진달래꽃이 병이나 도자기와 접속한다면 진달래주가 될 것이고, 쌀가루나 밀가루와 접속한다면 화전이나 꽃밥으로 전환될 것이다. 총이나 군화와 배치한다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나 피를 상징할 것이다. 또한 바람과 배치하면 낙화와 같은 허무를, 강물과의 배치는 자살과 같은 이미지나 상징을 만들게 될 것이다. 질 들뢰즈는 접속항이 달라지면 절단, 채취로 흐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기계로 표현한다. 입은 먹는 기계이고, 말하는 기계이고, 섹스의 기계이고, 토하는 항문의 기계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붉은 깃발이 배치되는 바에 따라 구조신호가 될 수 있고, 혁명군이 될 수 있고, 위험신호가 될 수 있듯이 배치에 따라 새로운 상징과 이미지가 탄생한다. 시의 첫줄을 읽고 마지막 줄을 읽어 그 의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라면 평면적인 글이요, 아메바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화된 시쓰기는 변화이고, 새로운 의식의 물고를 트는 것이며, 다이아몬드의 다양한 각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출처] 이미지의 공식- 배치|작성자 김기덕 마인드맵을 이용한 시쓰기 1. 논리 마인드맵의 필요성 인간의 두뇌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들은 복잡한 신경세포로 연결되어 정신활동을 지배하고 있다. 좌뇌는 언어학(말하기, 읽기, 계산, 작문), 논리적, 계열적 과제에 우세한 반면 우뇌는 비언어적, 공간적, 창의적 능력 및 음악, 얼굴 익히기, 자유로운 연구 등에 우세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한 편의 시 속에 옷감을 직조하듯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상력, 음악적, 미술적 요소 및 모든 능력을 총 집결하여 하나의 주제나 사물을 개인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동안 시는 개인적 감정의 흐름대로 써온 것이 주류였다. 시는 개인적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쓴 시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친 시는 한 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쳐 시의 객관성과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지나친 의욕으로 가분수가 될 수도 있고, 시심을 뒷받침 해주지 못해 미성숙의 시나 절름발이 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구상을 통한 구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시를 쓰게 되면 첫째로 흘러가는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고, 둘째는 중간에 막히게 되면 그 막힌 것을 뚫고 나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셋째로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적절한 조화와 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논리 마인드맵 기법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시를 쓰기 전에 충분히 자료를 모으고, 방향을 설정하고, 다양한 시각의 변화와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기 위한 것이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를 미리 준비해서 정리를 해 놓고 집을 짓는 것과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구해서 짓는 것은 차이가 크다. 또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고 여기저기 널려 있다면 집을 짓기 위한 시간보다 재료를 찾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다양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쓰기 전에 다양한 시각적 사고가 있어야 하며 그 분야에 대한 자료 찾기가 필요하다. 써나가는 과정은 직선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전후좌우를 돌아보며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쓰기 전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의 재료와 변화 있는 설계가 있느냐에 따라 평면적 시쓰기가 아닌 심층적 시쓰기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시각으로만 사물을 보면 자신의 감정과 지식, 경험에 의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을 버리고 정해놓은 여러 개의 구멍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게 된다. 철학적 시각의 구멍으로 사물을 보라. 그 사물은 인생의 의미를 던질 것이다. 음악적 시각의 구멍으로 들여다보라. 언어의 운율과 사고의 리듬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미술적 시각으로 바라보라. 구조와 대칭, 색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접근을 통한 통합된 감정 및 이미지, 의미의 재료들을 총동원하여 한 편의 시를 건축한다면 그 시는 짓다 만 듯한 집이나, 엉성한 집이 아니라 그 방향, 그 분야에 최고의 예술성을 간직한, 균형과 조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논리마인드 맵의 필요성|작성자 김기덕   2. 마인드맵의 정의와 시에서의 접목 마인드맵은 두뇌의 기능을 파악한 후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학습에 이용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활용해 공부하게 되면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쓰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책 한 권의 분량을 A4용지 한 장에 정리하여 담을 수 있기 때문에 내용을 압축할 수 있다. 둘째는 마인드맵을 그릴 때는 이미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이 잘 되고 설명적인 것을 이미지화시키는 습관을 갖게 된다. 시쓰기는 이미지화 작업이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볼 때 마인드맵은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끌어오고 조합하여 그림의 설계도를 그려준다. 설계도가 잘 그려져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고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미지를 끌어와 그물망처럼 엮다 보면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진다. 세밀한 부분까지 꼼꼼히 설계도를 그렸을 때 시를 쓰는 시간은 단축될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쓰다가 막혀서 중단하는 일이 없게 된다. 어쩌면 시를 쓰는 시간보다 마인드맵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분류하여 전체적인 방향과 밑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훨씬 중요하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작품에 대한 욕심과 급한 마음으로 마인드맵을 소홀이 하고 성급히 시작(詩作)에 임하면 더 많은 시간적인 낭비와 완성의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마인드맵의 과정을 통해 선명한 소재나 주제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자신의 경험과 다양한 시각을 동원하여 뒤집어보고 파헤쳤을 때 심도 있는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끌려 안일하게 시작한 한 방향적인 시쓰기가 아닌 다양한 절도와 천의 시각에서 한 편의 시 속에 엑스레이처럼 뼈 속까지 표현해 내는 다양체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출처] 마인드 맵의 정의와 시에서의 접목|작성자 김기덕   3. 마인드맵의 구조 마인드맵의 구조는 나무의 형태를 취한다. 첫째 쓰고자 하는 핵심 소재나 주제를 항상 중심 이미지로 놓고 시작한다. 곧 나무의 둥치가 되어 이 둥치로부터 많은 생각이 뻗어가게 해야 한다. 시를 쓰기 위한 중심을 잡을 때는 가급적 이미지가 있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제를 먼저 잡으면 생각이 경직되고 주제의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소재를 선택하고 이미지를 선택할 때 그와 연관된 이미지를 뽑을 수 있고, 이미지를 만들며 생각의 줄기를 뻗어갈 수 있다. 둘째는 중심 이미지에 관련된 주요 이미지는 둥치에서 뻗은 줄기처럼 연결하여 표현한다. 둥치에서 나온 줄기는 가지와는 다르게 개략적인 것으로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줄기가 튼튼하고 균형을 잘 잡아주어야 하듯 풍성한 이미지를 뽑고 다각도의 시각으로 조명해 주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된 시쓰기는 한쪽으로 치우친 나무처럼 쓰러지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감정을 가진 사람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다 객관적이고 심도 있는 다양체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가지들의 연결은 핵심 이미지와 핵심 단어를 통해 확산된다.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무수한 가지들은 다양한 이미지들의 집합이다. 줄기와 연관된 모든 이미지나 단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유사한 것들과 연관된 것들, 그리고 속한 모든 것들을 이미지로 뽑아야 한다. 관념으로 뽑으면 나중에 그림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이 뽑은 것 같지만 정작 시를 쓸 때는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무성한 가지를 만들어 놓아야 많은 사고의 집을 지을 수 있다. 넷째는 계속 이어지는 이미지들은 나뭇가지의 마디마디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듯한 구조를 취한다. 표면적 이미지의 크기나 생각하는 내용물의 대소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세밀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느냐의 분류에 따라 가지들은 더 미세하게 뻗어가고 분기된다. 세밀한 가지까지 그려준 나무형태의 마인드맵을 그릴 때, 시는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막상 시를 쓸 때 찾은 재료를 다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시와 모르고 쓰는 시에는 차이가 있다. 이상의 네 가지 형태를 설명했는데, 나무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수목형 시쓰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인드맵으로 찾은 내용을 순서대로 쓴다면 물론 수목형 시쓰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재료들을 찢어 붙이는 콜라주기법처럼 맘대로, 다양하게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뿌리와 뿌리들이 서로 분기·접속하는 리좀적 시쓰기가 가능하게 된다 [출처] 마인드 맵의 구조|작성자 김기덕   4.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법 마인드맵을 그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부잔센터에서 지은 『반갑다, 마인드맵』의 내용을 참조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백지를 준비한다. A4용지나 그보다 더 큰 용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줄이 쳐진 종이는 다양한 생각을 펼치는데 제한을 주기 때문에 대뇌피질의 표현 능력을 종이 위에 360도 돌아가게 표현해 주는 데 도움을 주는 백지가 필요하다. 2. 백지 표면의 공간은 풍경화를 그릴 때처럼 자유롭게 사용한다. 단어나 이미지를 측면으로 시계방향에 따라 이동하여 이용하므로 공간이 충분하다. 그래서 책 한 권의 분량도 압축하여 넣을 수 있다. 3. 종이를 가로로 펴놓고 지면의 중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중심은 가장 시의 핵심이며 정신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심에서 발원하여 시의 강이 흐르게 된다. 중심은 시작이고 또한 본체인 것이다. 4. 쓰고, 생각하려는 내용에 대해 이미지를 정해야 한다. 이미지 안에는 이미 관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만약 슬픔을 표현하려 한다면 눈물이나 비, 손수건 등의 이미지를 정해 그림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림은 몇 천 개의 관념어보다 값어치가 있다. 이것은 결합의 시초로써 무수한 접속점을 갖고 있으며, 생각의 초점을 맞추어주고 머릿속에 잘 기억되도록 단순화시킨다. 5. 핵심 이미지에 대해 적어도 세 가지 이상의 색상을 사용한다. 색상은 두뇌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고 주의력을 끌게 한다. 6. 이미지를 열어둔다. 틀을 미리 만들고 생각하게 되면 단조로움을 주고 생각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 7. 선은 단어의 길이와 같게 한다. 단어보다 긴 선은 생각의 연결을 단절시키지만 단어 길이와 같은 선은 연결을 강하게 해준다. 8. 핵심이미지에 연결된 쪽의 선은 그 보다 세부적인 내용을 담을 가지의 선보다 두껍고, 선의 형태는 유선적이며 유기적이어야 한다.  [출처] 마인드 맵을 그리는 방법|작성자 김기덕  마인드맵의 구성요소 1) 둥치 둥치는 첫 번째 잡은 시상이다. 이 시상을 가장 중심에 놓고 이 시상으로부터 뻗어가는 생각을 그리게 된다. 시상은 시가 될 만한 씨앗이어야 한다. 관념을 선택한다면 씨앗을 싹틔우고 줄기와 가지를 뻗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관념은 죽은 씨앗이다. 파종하기 위해 실한 씨앗을 보관하듯 싹이 틀만한 이미지를 잡아야 한다. 또한 마인드맵은 한 알의 은행이 싹이 터서 천년 묵은 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되듯, 하나의 생각 덩어리를 중심에 놓고 생각의 줄기를 뻗고 가지를 내고 잎을 피워 열매를 따는 과정을 하나의 백지 속에서 이루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둥치를 결정하는 하나의 씨앗에서 천년의 은행나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심미안의 눈으로 소재를 보고 마인드맵의 둥치를 정했을 때 산 같은 시, 바다 같은 시를 쓸 수 있다. 시의 성패는 둥치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둥치는 많은 생각의 줄기와 가지를 뻗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관념을 둥치로 선택했을 때 많은 이미지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바다라는 이미지를 끌어온다면 바다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끌어와서 줄기와 가지를 쉽게 그려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마인드 맵의 구성요소|작성자 김기덕 줄기   줄기는 둥치로 정한 하나의 씨알을 싹틔워 사방으로 뻗어가게 하는 방향설정이고 분야를 쪼개는 다양한 시각이다. 하나의 사물을 상, 하, 동, 서, 남, 북의 시각으로 나누어 묘사한다든지 하나의 대상을 철학적, 예술적, 역사적, 과학적, 종교적, 음악적, 미술적 또는 천·인·지 등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구분을 말한다. 시상으로 잡힌 하나의 이미지나 대상을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 나누어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면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쪼개고 나누어 생각할 때 새로운 줄기, 새로운 가지와 무수한 잎을 피울 수 있다. 줄기는 다양한 분야를 제시하고 내용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평면적이고 확산적일 수 있지만, 심층을 만드는 계단이기도 하다. 모양은 시계 속의 숫자와 같으며 진행 방향도 같다. 시계 속의 숫자는 하루가 도면처럼 펼쳐진 것이지만, 시간 속에서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은 취하지 않는다. 다양한 생각의 줄기를 만들어야 한다. 판타지든, 리얼리티든, 형이상이든, 형이하든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 과감히 줄기를 만들고 자료를 채취해야 한다. 이미지가 없는 자료, 관념과 지식적인 자료는 시에서 대부분 쓸모없거나 방해자가 된다. 풍경이 그려지는 자료, 오감을 자극하는 자료를 꺾어야 한다. 유사한 이미지를 찾고 인접한 것들을 모아야 한다. 별처럼, 불가사리처럼, 십자가처럼 뻗어있는 뿔은 전 세계, 전 우주로 향한 무한대의 상징인 것처럼 줄기는 사고의 무한대로 향하는 화살표이며 풍향계이다 [출처] 줄기|작성자 김기덕 가지    가지는 줄기에서 나누어지는 세부적인 사항으로 보편적이지만 특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식적인 내용이나 지식적인 구체성을 띄어야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 연결고리를 걸고 있어야 한다. 그 연결고리는 접속점으로써 크게 표면적 접속과 이면적 접속으로 나눌 수 있다. 표면적 접속은 유사성이나 인접성으로 나타나며, 이면적 접속은 상징성이나 욕망의 선, story 등으로 나타난다. 가지는 자세하고 세밀해야 하며, 확산적이면서 심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가지를 만드는 데는 통찰이 필요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보고 그려야 한다. 나뭇가지 끝들은 미세해져서 하늘과 연결되듯이 마인드맵의 가지들은 하늘처럼 배경이 되는 철학이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 주제의식이나 철학의 관념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배경 속에 녹아서 보이지 않지만 설탕물처럼 맛보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지는 그러한 배경과 연결되지만, 이미지로 얽혀야 한다. 이 가지 저 가지가 얽혀서 부채 모양을 만들고 기린 모양을 만들고 우산 모양을 만들 듯 무질서한 것 같지만, 큰 틀의 질서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큰 틀의 질서를 위해 생각의 가지는 자르지 말아야 한다. 마인드맵의 과정은 큰 틀을 초월해 있는 것이지만, 시를 쓸 때는 큰 틀 안에서의 취사선택이다. 큰 틀은 결과이지 사전에 정해 놓은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큰 틀은 처음 보는 모양이 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 모양일 수도 있다. 가지를 뻗을 때 어떤 모양을 생각하고 뻗는 나무는 없다. 맘껏 뻗다보니 자연스러운 각각의 모양이 되었다. 시도 이런 자유분방함 속에서 높은 예술성이 탄생한다.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차원을 만들 수 있다. 가지는 지상의 리좀이며 생각의 그물망이다. 맘껏 접속하고 분기하여 촘촘한 이미지의 그물망을 짜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숭어 떼 같은 상징들이 가득해야 한다. [출처] 가지|작성자 김기덕 잎 많은 가지들을 찾은 후에는 잎을 만들어야 한다. 잎은 가지 위에 있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를 주어로 하여 목적어, 동사를 찾아 문장을 완성시켜야 한다. 이 때 문장은 표현이 되어야 하는데, 표현을 위한 언어, 곧 시어로써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시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반드시 이미지어와 관념어를 구분해서 써야 한다. 표현은 명사와 동사에서 결정된다. 명사는 관념어 대신,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물이나 상황이 되어야 한다. 동사는 구체적이며 살아 있는 언어이어야 한다. 또한 여러 대등항 중에서 가장 적합한 동사를 선택해야 하는데, 적합성의 기준은 살아 있는 이미지를 표현해 주되 둥치와 연관시키기 위한 표면적, 이면적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문장은 둥치를 연상시키거나, 둥치를 보조해주거나, 둥치를 풀어주거나, 묘사해주거나, 표현해 줄 수 있는 문장이어야 한다. 아무리 철학적인 문장, 아무리 금언의 문장이라고 해도 둥치와의 연간성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이미 낙엽이며, 시의 나무와는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다. 표면적인 연결이든, 상징적인 연결이든 아주 미세하더라도 둥치로부터 영양분을 받고 또 광합성한 영양분을 둥치로 보내 의식의 저장, 철학과 주제성을 몸통에 비축하는 하나하나의 잎들이 전체적인 시의 나무를 장식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장에서 부사와 형용사는 최대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한 수식은 무조건 빼야 한다. 군더더기는 건강한 문장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다. 싱싱한 잎, 건강한 잎을 가지마다 달아야 한다. 이런 건강한 잎들이 연결 문장을 만들고, 연결 문장이 모여 하나의 단락을 이루고, 단락들이 모아져 한 편의 짜임새 있는 시가 된다 [출처] 잎|작성자 김기덕 시 쓰기   시쓰기는 가지마다 매달린 많은 문장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연결시키는 것이다. 마인드맵은 시의 씨알인 둥치에서 줄기가 나고, 줄기에서 가지들이 분화하여 영양분을 둥치를 통해 잎으로 전달하는 확산운동이다. 하지만 시쓰기는 그 반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잎의 문장들을 모아 가지로 이어진 문장을 만들고, 여러 가지의 문장이 만나 줄기의 단락을 만들어 하나의 시가 완성된 둥치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곧 잎에서 광합성을 통해 양분을 만들고, 그 양분을 모아 가지와 줄기를 통해 둥치에 모아져 거목이 되듯, 주제의식, 철학의 양분이 결집되어 완성된 시의 나무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쓰기에서는 분기하고 확산하던 사고들이 모아져야 하고, 구심점을 향해 결집되어야 한다. 태극이 양의가 되고, 양의가 사상이 되고, 사상이 분화하여 팔괘가 되고, 육십사괘로 나뉘어 세상만물로 분화된 것이 다시 모아져 태극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바로 시쓰기이다. 완성된 시는 하나의 개체가 되고, 사물이 되고, 인격이 되어 만물 속의 일부로 다시 돌아간다. 하나의 시 속엔 우주만물의 비밀이 담겨 있고, 시가 완성되는 과정은 곧 우주만물의 변화 주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시 쓰기|작성자 김기덕 사고의 분화   마인드맵을 통해 사고의 분화과정을 살펴보았다. 둥치에서 줄기로, 줄기에서 가지로 쪼개지는 과정에는 분화의 법칙이 존재한다. 일정한 법칙이 없이 아무렇게나 뻗어갈 수 있는 사고는 공상과 같은 것으로 허황될 뿐, 통일된 의식을 보여주지 못한다. 공상은 에너지가 없다.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유추와 연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창조적 상상력엔 끈 이론이 존재한다. 양성자, 중성자를 묶어주는 핵력과 강력이 있다. 세포가 분화하여 나누어지지만, 그 안에는 같은 유전자가 존재한다. 언어의 분화, 이미지의 확산에도 유전자가 필요하다. 그 유전자는 유사성이며, 인접성이며, 상징이며, 욕망의 선이며, story이며, 주역적 변화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어가 분화하여 새로운 시어를 만드는 과정엔 이러한 유전자를 토대로 하여 사고의 확장을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가지고 확장되었을 때 다시 하나로 모으는 시쓰기의 과정에서 접속점을 찾을 수 있다. 접속점이 많을수록 블록을 연결하듯 원하는 모양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사고의 분화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원칙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독자들이 해석의 길을 추적해 갈 수 있고, 창작자가 의도하는 바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사고의 분화|작성자 김기덕 1. 유사성   유사성을 통하여 사고의 확장과 이미지의 변화를 이룰 수 있으며, 또한 선택을 통해 새로운 결합을 이룰 수가 있다. 하지만 교사, 스승, 교원, 교수 같은 유사성은 시의 이미지 확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명칭의 유사성이나 의미의 유사성과 같이 유사하지만 확연히 드러난 것들은 시적 사고의 확장 및 선택, 결합의 예술적 조건에 적합하지 않다. 유사성은 은유적 표현의 원리인 만큼, 보다 예술성이 있는 은유성을 만드는 데는 감추어진 유사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꽃과 여자는 유사하지만 ‘꽃 같은 여자’는 너무 드러난 유사성 때문에 식상한 비유관계를 만들게 된다. 보다 참신하고 심도 있는 예술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유사성의 새로운 발견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써본 적 없는 유사 이미지를 동원하여 시를 쓴다면 그 시는 참신하고 매혹적일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다 쓴 유사 이미지는 시든 꽃이며, 생명 없는 나무와 같은 것이다. 또한 유사성의 거리가 멀수록 그 관계는 더욱 긴장되며 팽팽해질 것이다. 시에서의 유사성은 본의와 유의와의 관계를 만들어 은유적 표현을 만들기도 하지만, 배치에서의 유사성은 병치적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치는 은유적 관계보다는 좀 더 건너뛰기한 것으로서 참신성과 함께 사고의 확장을 이루어 준다. 또한 병치는 구절 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지만, 리좀적 시쓰기의 관계에서는 뿌리 하나하나가 큰 줄기에 연결되어 있듯이 주제성이나 철학성의 줄기에 잔뿌리처럼 연결되는 상징관계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통한 건너뛰기는 과거와 현제와 미래의 시간적 건너뛰기 및 지역적, 사상적, 종교적 결합을 만들어 구심점을 만드는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출처] 유사성|작성자 김기덕 2. 인접성   인접성은 공간적인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산과 인접한 것에 속하는 것을 본다면 나무, 돌, 계곡, 폭포, 꽃, 새, 마을 등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공간화를 갖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시에서의 인접성은 공간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림과 같은 시각성을 보여준다. 주제를 잘 드러낼 만한 개체들만 취사선택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정물화를 그리는 것 같은 기법이며, 절제된 원리가 필요하다. 인접성은 유사성처럼 대등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단지 입체적인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배치적 요소다. 인접한 요소들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구도는 달라진다. 시 속에서의 인접한 요소들의 배치는 환유적 표현의 원리가 되기도 한다. 원인과 결과, 용기와 내용물, 소유물과 소유주, 산지와 산물, 출신지와 그 사람, 기호와 실체, 건물주와 건물명 등의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부분이 전체를, 전체가 부분을 표현하는 제유도 인접성에 의한 표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접한 것들의 관계는 유사성의 건너뛰기보다는 한 구성체의 주변적 요소를 끌어오는 것이므로 그 폭이 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요소에 대한 단순화가 가능하며, 단순화를 통한 상징적 요소를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종이비행기’라는 소재를 가지고 시를 쓴다면, 무엇과 종이비행기를 인접한 관계로 연결시켜주느냐에 따라 시의 공간성은 달라진다. 종이비행기를 장애아, 아파트, 창문, 아스팔트와 인접시켜준다면, 무한한 자유를 꿈꾸는 영혼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학생, 교실옥상, 푸른 하늘 등과 인접시킨다면, 푸른 미래를 꿈꾸는 젊음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인접성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고, 그 공간 속에서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상징을 만들어 준다. [출처] 인접성|작성자 김기덕 3. 상징 상징은 건너뛰기이다.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으로 한꺼번에 건너뛸 수 있는 기술이다. 상징의 깊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더 복잡한 관계의 접속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깊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단순한 건너뛰기가 될 수도 있다. 유사성은 수평적 건너뛰기를 만들고, 인접성은 주변의 공간성을 만들어주지만, 상징은 방사형으로 확장될 수 있는 시의 폭탄적 기법이다. 그래서 단 하나의 상징어가 많은 사람들을 감동으로 무릎 꿇게 할 수 있다. 상징은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건너뛰기와는 그 폭과 차원이 다르다. 유사성이나 인접성은 수족관의 물고기와 같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계를 만든다면 상징은 천길 물속의 깊고 다양한 관계 만들기이다. 상징으로 접속된 시는 그 깊이를 파악하기가 힘들지만, 그 만큼 많은 다양체를 건져 올릴 수 있다. 무수히 많은 다양체들의 접속점을 찾아 이미지를 연결한다면 한 편의 시 속에 천 개의 고원이 펼쳐질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의 상징기법은 기존의 서정적 상징과는 구별이 필요하다. 서정시의 상징은 관념성이 내포되어 있어서 상징을 이용한 시쓰기를 하면 관념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상징에 대한 해석도 상징물 자체에 한정된 해석을 하지만, 배치를 통한 상징은 배치되는 배치물과의 관계에 따라 함께 짝을 이뤄 해석되며, 배치물을 끌어오기 때문에 이미지 간의 관계 만들기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관념성은 숨고 사물 간의 관계를 통한 상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사물과의 접속점을 통해 상징이 확장되기 때문에 방사형의 사고 확장을 이룰 수 있으며 관념화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시쓰기가 가능하게 된다. [출처] 상징|작성자 김기덕 4. 욕망의 선   욕망의 관계에 의하여 사물을 맘대로 끌어오고 결속하는 관계를 말한다. 사물 하나하나에 감정을 부여하여 욕망을 불어넣고, 욕망의 관계를 통해 결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뀐다. 감사와 찬양의 욕망 안에서 신의 피조물인 만물은 포함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물도 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예를 들면 ‘갈대들은 춤추고, 바위들은 기도하고 있다’와 같이 구체적 관련이 없어도 서로 묶을 수 있다. 아무리 관련 없는 사물일지라도 자신의 감정과 욕망 안에서 새롭게 변형시킨다면 충분한 연관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새로운 감정 선을 이을 수 있다. 이별 뒤에 세상이 다 슬프게 보인다든지, 기쁨에 가득 차 바라보는 풍경들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을 때 그 어떤 사물을 끌어와도 한 무리, 한 성격의 집합으로 묶을 수 있다. 사물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바늘은 찌르고자 하는 욕망을, 풀은 붙이고자 하는 욕망을, 악기는 소리를 내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 욕망을 통해 전혀 유사하지 않아도 접속이 가능하다. 욕망의 선을 찾기 위해선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사물의 성격이며 성질을 잘 살펴봄으로써 그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욕망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바늘이 찌르기 위한 것인지, 상처를 꿰매기 위한 것인지, 가시를 빼기 위한 것인지, 문신을 새기기 위한 것인지, 바느질을 하기 위한 것인지 어떤 곳으로 욕망의 선이 뻗느냐에 따라 다음 접속관계는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욕망은 모양이나 기능, 성분 등에 의해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차원도 달리 할 수 있다. 이 욕망의 선은 둥치 안의 주제성이나 철학성과 연관이 많다. 한 곳으로 시선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화살표와 같다. 흔해빠진 욕망의 선으로 끌고 가지는 말아야 한다. 새로운 욕망의 선을 만들고 과감하게 탈주선을 그려야 한다. 평평한 대지에 습곡을 만들고 산맥을 형성해야 한다. 밋밋한 의식에 칼날 같은 감각을 세우고 새로운 욕망의 그물 안에 가두어진 세상만물을 맘껏 요리해야 한다 [출처] 욕망의 선|작성자 김기덕 5. 스토리(story)   스토리(story)는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접속이 가능한 형태를 말한다. 시에서는 날아다니는 의식의 확장, 이미지의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접속에 따라 새로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여기에서의 접속은 곧 분기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분기는 또한 접속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는 장면에서 견우와 직녀가 등장할 수 있고, 갑자기 도적 떼가 나타나 죽일 수도 있고, 호랑이와 곰이 쑥과 마늘을 먹으며 기도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진행 방향이 어떻게 전환하고 꺾이느냐에 따라 새로운 신화와 역사, 에피소드나 허구적 환타지가 연결될 수 있다. 이 결합에서 이야기의 유사성이나 상황의 비슷함에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건의 끼어들기가 가능하다. 이것은 수목형 시쓰기가 아닌 유목형 시쓰기, 배치를 통한 언어의 직조에 의한 시쓰기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기법이다. 토막 난 우화들의 연결이나, 지역적 신화의 바꿔치기 및 동시대의 역사적 사건의 섞어짜기, 현대적 사건과 과거적 사건과의 겹치기 기법은 바로 이 story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이나 이미지를 겹쳐 놓거나 섞어 놓을 때 우리의 사고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의미와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story 간의 분기와 접속을 통해 다양체를 만들기도 하고, 하나가 되기도 하는 기법을 story 기법이라고 한다. [출처] 스토리|작성자 김기덕 리좀적 표현의 방법   1. 빙산이론   수면 위에 떠있는 빙산은 드러난 부분보다 감춰진 부분이 더 많다. 드러난 부분만 보고 가까이 다가가면 배는 충돌하여 난파될 것이다. 하지만 오랜 경험을 가진 유능한 선장은 수면 위에 뜬 빙산만 보고도 수면 속의 빙산을 눈치 챈다. 배에 탄 여행객들은 수면에 뜬 빙산만 볼 뿐 감춰진 부분을 보기는 어렵다. 시쓰기는 빙산의 보이는 부분을 그리는 것이다. 고급 독자는 빙산의 보이는 부분만 보고도 유능한 선장처럼 수면 속에 잠긴 부분을 읽을 줄 안다. 시는 수면 위에 뜬 빙산의 일부를 그리는 것이지만 그 밑에는 어마어마한 상징의 얼음이 잠겨 있어야 한다. 잠긴 부분까지 다 보여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잠긴 부분은 유능한 선장인 독자들이 각자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수면이라는 수평선상의 위로 드러난 부분은 이미지가 있는 시어이지만 가라앉은 것은 관념이다. 그래서 이미지가 있는 시어로 그림을 그려주면 그 언어 속의 관념들이 가라앉아 수면 속에 많은 의미를 감추게 된다. 이미지어와 관념어의 구분선은 빙산이 떠있는 수평선이다. 수평선에 의해 이미지와 관념이 나누어지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엄격한 수평선을 긋고 시를 써야 한다. 아무리 욕심이 날지라도 관념어는 쓰지 말아야 한다. 관념어는 땅이 다 파헤쳐진 밭에 드러난 고구마와 같은 것이니 더 이상 상상의 여지가 없다. 고구마 밭의 줄기와 잎의 표현을 빌려야 한다. 그 줄기와 잎을 보고 농부는 튼실한 고구마를 상상한다. 물에 잠긴 부분까지 다 드러내려고 하게 되면 그 빙산은 녹아서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차갑고 투명하면서 돌처럼 굳어진 시의 결정들은 풀어져 맹물 같은 시가 될 것이다. 이미지의 결합으로 고농도의 압축된 시는 얼음덩어리 같지만, 관념으로 풀어진 시는 맹물같이 무덤덤하고 싱거운 것이다. 독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설명해야 이해할 것 같은 인식은 이미 자신이 풀어져 물같이 된 것이다. 작은 빙산을 수면에 띄우고 수면 속에 산 같은 덩치를 키워야 한다. 작은 빙산을 보고 섣불리 다가왔던 배들이 파손될 수 있도록 엄청난 무게와 파워를 키워야 한다. 그 무게와 파워는 상상의 크기와 깊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수면 속에 감추면 감출수록, 해저로 가라앉으면 가라앉을수록 빙산은 더 무서워진다. 무서운 빙산처럼 다가오는 시, 수면 위에 작은 단면을 보고 감이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시를 써야 한다. [출처] 빙산이론|작성자 김기덕   2. 시어라인   시어라인은 하나의 제목이나 소재를 놓고 마인드맵을 통해 관련 언어를 찾았을 때 이미지가 있는 단어는 시어가 되지만, 관념으로 이루어진 단어는 시어가 될 수 없다는 구분을 갖게 하는 구획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드 와인’을 가지고 마인드맵을 통해 관련 언어를 찾아본다면, 레드와인은 마인드맵의 둥치가 될 것이다. 이 둥치에서 각자 나름대로 줄기를 뽑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과거, 현재, 미래, 유사성 등의 줄기를 설정하고 가지를 뽑아보자. 과거의 줄기엔 포도밭, 햇빛, 바람, 거름, 포도, 장화, 오크통 등의 관련 이미지들이 나왔다면 이 이미지들만을 시를 쓰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도밭, 햇빛, 바람, 거름 등은 밑바탕이라든지, 본능, 원초성을, 장화는 밟히고 으깨어짐을, 오크통은 어둠이나 감옥, 절망 등을 내포하고 있다. 시를 쓸 때는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관념어를 쓰지 말고 관념어 대신 관념어를 담고 있는 이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줄기에서 이미지를 뽑아본다면 포도주, 코르크, 입술, 글라스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어가 시어가 되고, 이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포도주의 정신인 열정이나 자유, 코르크의 억압이나 질식, 입술의 사랑이나 열정, 글라스의 투명함이나 맑음과 같은 관념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줄기에서 이미지를 뽑는다면 찢어진 라벨, 빈병, 쏟아진 피와 같은 것을 찾을 수 있다. 짖어진 라벨은 처녀성의 상실이나 파괴를, 빈병은 죽음이나 허무를, 쏟아진 피는 전쟁이나 상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유사성의 시각에서 본다면 입술이나 피, 볼, 낙엽, 노을 등을 찾을 수 있다. 입술은 사랑이나 정열을, 피는 죽음이나 생명을, 볼은 수줍음이나 취기를, 낙엽이나 노을은 사라짐과 같은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열거는 개략적인 것이다. 더 복잡한 관념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최소한에 머물렀다. 시를 쓸 때는 관념을 쓰지 말고 관념을 포함하고 있는 이미지를 써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관념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사물 속의 관념을 읽고 관념 대신 사물로 자신의 관념을 대신 나타내는 것이 시적 표현의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자유자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징성을 알아야 한다. 상징이 빠진 시는 상상할 수 없다. 생명이 빠져나간 시체요, 마른 나무에 불과하다. ​ 상징성을 품고 있는 이미지와 상징성이 드러난 관념과의 구별이 곧 시어라인이다. 마인드맵을 통해 줄기에서 가지로 분화될 때 이미지로만 그리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관념의 가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가지는 반드시 이미지의 가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인드맵을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시어라인은 형성될 것이다. 또한 동사의 사용이 중요하다. 추상적인 동사들은 좋은 시를 쓰는데 적합하지 않다. 구체적인 동사를 끌어와서 명사와 짝을 이루게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먹다’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동사이다. “그녀는 밥을 먹는다.”라는 문장의 ‘먹는다’라는 동사는 시쓰기에 적합한 언어가 아니다. ‘먹는다’를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어야 한다. “맷돌을 갈듯 밥을 자근자근 씹는다.”라든지, “볼때기가 터지도록 밥을 퍼 담는다.”와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동반될 수 있는 동사의 사용이 중요하다. 이미지적인 명사에 구체적 묘사의 동사가 결합될 때 문장은 표현의 문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장을 만들기 위한 명사와 동사의 채취 ‧ 절단이 가능한 구역의 경계가 바로 시어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시어라인|작성자 김기덕   3. 시의 상징성   상징은 존재와 의미의 2가성, 다의성 또한 모호성이나 밝혀짐의 기대를 갖는 것을 본질로 한다고 김기붕은 『프랑스 상징주의와 시인들』중에서 언급하고 있다. 상징은 하나의 기호이며 동시에 의미를 갖는 것으로 현상은 곧 무언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호의 의미의 우호적인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유추관계가 긴밀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유사성이 아니라 막연한 암시에 의해 다른 것을 뜻하거나 표현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감성체계에 바탕을 둔 서정적 산물로서 우주의 중심을 주관적, 개인적 관념에 두고 있다면, 상징주의는 감성체계와 이성체계에 근거를 둔 이념적 정화를 중심으로 하고 인간까지 포괄하는 우주 자신을 중심에 두고 감각과 이념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모든 현상은 자족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여기에 인간의 인식이 첨가되면 경이로운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 그래서 하나의 사물은 존재하지 않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의미와 속뜻을 갖게 된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볼 때 의미나 관념으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상이나 사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미지어가 필요한데, 그 표현된 언어의 그림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속뜻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이미지어가 갖는 자체의 상징성, 또한 같은 이미지라 해도 여러 사람의 감정이나 시각차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는 시의 모호성을 극대화 시키는 요소이다. 모호성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다양체적 요소이며, 나와 세상 모든 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시의 필연적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현상 속에 담긴 의미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된 현상을 만들고, 의도된 사물의 조합을 이루어 다양한 형식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작품 세계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이어서 보다 많은 현상을 유추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의 많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상징주의자들은 “가시세계는 불가시 세계의 껍데기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감각적 대상 속에 정신적 현상의 상징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로써 생각하게 하는, 또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감각적 언어들 속의 상징들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자유자재로 감각적 언어를 요리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시의 상징성|작성자 김기덕   4. 상징과 리좀적 관계   하나의 이미지는 여러 상징적 관계를 만들어 분화되고 확장되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십자가라는 상징물은 구원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사형의 형틀이 되기도 한다. 또한 플러스의 의미도 되며, 우주나 영원한 세상을 상징하고 부처님 가슴에 있는 길상을 의미하는 卍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나의 십자가가 네 개의 상징물로 분화되었다면, 이 네 개의 분화점은 곧 접속점이 될 수 있고, 이 네 개의 접속점은 다양한 배치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구원의 상징으로 배치한다면 교회, 미사, 성경책, 천국, 천사, 베드로 등등으로 분화되고 여기에서 또 다시 수없는 분화가 가능할 것이다. 형틀의 의미로 배치한다면 로마, 죄수, 사형장, 못, 창 등으로 분화될 수 있을 것이고, 플러스의 의미로 배치된다면, 드라이버, 계산기, 수학책, 양지, 저축 등으로 확장될 것이다. 또한 卍 으로 배치된다면 절이나 나치, 우주 등과 같은 새로운 접속점을 만들 것이다. 이렇듯 십자가라는 하나의 이미지는 무수히 많은 접속점을 만들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며 다양체를 만든다. 이것이 몇 번 더 확장되면서 분화된다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맞닿게 될 것이고,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사물은 상징적인 관계를 통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고, 리좀의 뿌리처럼 뒤얽혀 있다. 하나의 사물이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되는 1:1의 관계는 없다. 하나의 사물 속에는 미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많은 연결고리와 접속점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것을 발견하고 찾아서 서로 분기 ‧ 접속시킴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다양체를 만들어서 그 안에 새로운 의미나 진리, 주제의식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나를 비롯한 하나하나의 사물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물망 같은 상징으로 촘촘히 엮어져 있다. 이 많은 분기 ‧ 접속점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분기 ‧ 접속점을 원하는 대로 찾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시쓰기는 막힘이 없고 그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출처] 상징과 리좀적 관계|작성자 김기덕   5. 기호학파적 접근과 상징의 적용   소쉬르가 처음으로 체계화한 기호들은 문학작품의 언어적 의미를 보이지 않는 언어의 관계성을 강조하며, 이것은 공시적인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했다. 언어를 사고의 표현에서 언어를 기호의 체계로 이해하면서 기표인 시니피앙과 기의인 시니피에 사이의 관계를 이끌어 왔다. 기호는 세 가지로 기표와 기의 그리고 기표와 기의가 결합하여 만든 새로운 요소인 기호이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의미화 작용이라 하고, 외부세계가 공급하는 기표, 마음이라고 하는 내부세계가 공급하는 기의가 결합되어 표상의 세계에 편입하는 기호가 탄생된다. 문학적 기호는 다중의미체이다. 다중의미성은 기표에 기의가 자의로 연결되는 경험에 따라 여러 가지 뜻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기호의 다중매체가 바로 상징적 요소이며, 다양체의 근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신화체계 속에서 메타언어를 찾고 있다. 바르트는 1차질서, 그리고 2차질서로 구분하면서, 1차질서는 의미작용에서 현실의 수준, 자연의 수준이라 하고, 2차질서는 문화의 수준이라고 했다. 1차질서는 기호의 모호함이 없는 객관적, 직접적 자연의 의미를 가지며, 현실의 외연적 의미만을 생산한다고 했다. 2차질서는 두 가지로 하나는 함축이고, 다른 하나는 질서로 구분한다. 함축은 기표가 기의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문화적 배경과 체험에 따라 천차만별의 함축의미를 일으킨다. 예를 들면 달에서 얼굴을 생각한다든지, 배를 상상한다든지, 백동전을 연상하는 것이다. 신화란 함축적 기의들로 엮인 고리의 체계를 말한다. 신화는 함축의 의미체계로 끊임없이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언어들의 조합을 통해 로만 야콥슨은 언어의 시적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야콥슨은 은유/환유의 의미론적 양분법을 바탕으로 그의 시각을 전개하는데, 양극성과 등가성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양극성이라는 개념은 언어 운용의 연합적 축과 통합적 축을 말한다. 전자는 선택의 영역이며, 후자는 결합의 영역이다. 이때 “선택의 근간은 등가성, 유사성, 상이성, 동의어와 반의어 따위가 있고, 결합 곧 배열의 순서를 이루는 밑바탕은 인접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상징적 요소들의 결합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야콥슨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에서 수직적 차원은 언어저장고에서 한 단어만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는 은유에 의해서 일어난다. 또한 수평적 차원에서는 환유에 의해서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데 있어서 주어+동사의 문장이라면, 주어의 위치에 놓일 여러 대등한 단어들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고, 동사는 대등한 환유적 요소들 중에서 선택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배치의 리좀적 시에 있어서는 은유적 요소가 또 다른 상징적 요소로 전환되어 문장과 문장으로 접속될 수 있다. 예를 들면(도랑물이, 개여울이, 강물이, 시냇물이) 중 하나와 (소리 지르다, 노래하다, 달려간다, 흐른다) 중 하나가 선택되어 만약에 ‘강물이 흐른다’가 되었다면, 강물에 대한 상징(세월-달력, 정화-목욕탕, 식수-수도꼭지, 발전-전구) 등의 여러 상징물 중에서 선택하여 새로운 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또 다른 문장이어야 하고, 그 거리감이 너무 멀거나 이어짐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단락을 띄워 결합할 수 있다. 야콥슨의 선택 ‧ 결합의 방법을 활용하여 시의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이에 대하여 상상적 요소들의 활용능력을 키운다면 의식의 확장과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을 이룬 새롭고 참신한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출처] 기호학파적 접근과 상징의 적용|작성자 김기덕   6. 상징에 대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 접목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은 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숫자가 적게 잡아 100명이라고 가정한다면 다시 그 100명이 또 다른 100명, 그러면 10,000명이 다시 100명해서 여섯 단계만 거슬러 가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상징관계에서도 이렇게 단계를 거듭해 나가면 모든 사물이 다 통할 수 있다는 가정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상징을 통한 이미지의 접속은 어떤 사물이든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 과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의식을 확장해서 사물을 연결, 접속시킬 수만 있다면 시의 구성은 한결 쉬워질 것이다. 또한 사고의 분기, 분화도 더 다양하고 세밀하게 만들어 감으로 의식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해질 것이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분화한 상징은 눈에 보이도록 그 관계가 확연히 드러나 있지만, 3단계, 4단계로 더 확장해서 이미지가 분화한다면 복잡해지고 쉽게 눈치채기 어려운 깊은 단계의 상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징단계를 활용해 시를 쓴다면 바다 같은 시, 우주 같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상징에 대한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이론 접목|작성자 김기덕   7. 상징 연구의 필요성   시쓰기에서 상징을 꿰뚫고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상징성을 발견할 때 여러 다양체의 접속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 속에는 이미 많은 상징들이 들어 있다. 공중적이든, 원형적이든 삶 속에서 습득되고 인지된 의식에 의해 우리는 사물 속의 상징들을 감지하고 있다. 이 상징의 종류를 많이 알고 있다면 여러 접속점이 있는 장난감 블록으로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시쓰기에 매우 유리하다. 만약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만 본다면 십자가를 통해 시를 전개 할 때 그 만큼 단순한 전개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칼 구스타프 융의 개인적 상징, 공중적 상징, 원형적 상징을 공부해 왔고,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통해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접해 왔다. 우리의 인식 속에는 이미 이러한 상징들이 고정관념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이미지를 보면 그 속에서 여러 상징적 요소들을 유추하게 된다. 예를 들면 뱀이라는 사물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한 것과 저주 받아 배로 기어 다니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또한 갈라진 혀로 인해 두 마음을 가진 자 및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하지만 불교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와 똑같은 중생으로 전생에 죄가 많아 뱀으로 환생한 것일 뿐이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으로 보면 남자의 성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꿈에서는 조상이나 지혜로운 자녀의 태몽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뱀이라는 이미지를 시 속에 끌어 오기까지는 이러한 상징성을 다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정주의 ‘화사’에서 “스며라, 배암!”은 순이를 대상으로 한 성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질 들레즈가 깃발을 통해 말한 배치 관계를 보면, 붉은 깃발이 배와 배치되면 구호신호를, 데모하는 군중과 배치되면 혁명을 상징한다고 했다. 여기에서의 붉은색은 무질서, 위험, 열정, 희생, 피를 원형적 상징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배치가 달라짐으로써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배치관계에서 상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신화나 종교, 역사, 이야기 등을 통해 생성 발전되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상징성의 연구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나라의 방대한 꿈풀이 사전을 통해 한국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원형적 상징을 연구해 왔다. 방대한 양의 꿈해석을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다른 장에서 꿈에 대한 해석을 통해 시를 위한 상징성을 확장하고자 한다. [출처] 상징연구의 필요성|작성자 김기덕   시쓰기의 기법   1. 문장 구성을 위한 언어의 선택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선 언어의 선택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첫째는 얼마나 좋은 이미지어를 쓰느냐에 따라 시의 생명력은 달라진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지만, 시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 그 시는 미적 가치를 상실한다. 그 이유는 표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추상적인 사랑을 읊조리던 시대가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관념어는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랑을 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라는 관념어를 대신할 수 있는 이미지어를 찾아야 한다. 하트라든지, 보석이라든지, 꿀물이라든지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사물을 찾아서 표현해 주어야 한다. 하나의 사물로 표현이 안 된다면 정황을 만들어서 그 정황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동천’을 보면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문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라고 표현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지만, 그 안에는 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다. 둘째는 대등항의 언어를 최대한 동원한 후 그 중에서 최적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을 보았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여기에서 핵심은 생략된 주어 ‘나’가 아니라 너의 눈 속에서 본 ‘하늘’이다. 이 하늘에 대한 대등항을 최대한 찾아 적합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늘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에는 무엇이 있을까? 야콥슨은 유사성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나는 상징어의 대체가 가능하다고 본다. 하늘은 천국, 남자, 남편, 아버지, 서북쪽, 대평원, 늦가을, 머리, 말, 이상세계, 하늘색, 꿈, 무지개, 구름, 비행기 등등의 상징어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언어 중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최적의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최적의 문장을 만들었을 때 한 문장 한 문장 살아있는 시를 쓸 수 있다. 시의 치열함은 내용에서도 오지만, 대부분 문장의 함축과 적절한 표현에서 오는 것이다. 셋째는 동사의 환유적 선택에 의해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을 보았다.”에서 ‘보았다’에 대한 환유적 대등항을 찾으면 “너의 눈 속에서 하늘이 (녹아 내렸다, 웃었다, 흘러갔다, 불탔다) 등의 여러 가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동사는 말 그대로 움직임씨다. 동사의 활용에 따라 그 문장의 활용성이 달라진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가장 적합한 동선을 이 동사가 그려준다. 적절한 동사의 환유를 통해 감정이입과 더불어 시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하나의 문장은 살아 있는 문장이 될 것이며, 시의 표현 의도를 적절히 반영해 줄 수 있는 보석 같은 문장이 될 것이다. [출처] 시쓰기의 기법-문장 구성을 위한 언어의 선택|작성자 김기덕    2.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고치기       의외로 설명과 표현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인들이 많다. 또한 표현하려고 했지만 설명적인 시를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설명과 표현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적절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의 꽃이 있다고 치자. 이 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은 아름다움이라든지, 향기로움, 순수함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사물과 사물 속의 관념으로 나누어 볼 때 사물 속의 상징적인 뜻을 드러내서 쓴 시는 설명적이고, 사물 속의 상징적인 뜻을 숨기고 사물만 가지고 쓴 시는 표현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물 속에 내포된 상징적인 뜻은 관념이다. 예를 들면 별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영원성이라든지, 밝음, 빛남 등의 관념성을 포함하고 있다. 시에서 영원성이나 밝음, 빛남의 언어가 필요할 때 영원성이나 밝음, 빛남을 그대로 쓰지 않고 별이라는 사물을 끌어와 대신 쓰는 것이 시의 표현 방법이다. 그래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을 대신하는 사물 찾기가 필요하고, 의도한 관념에 적합한 이미지를 찾아서 대체했을 때 그 시는 표현된 시가 된다. 또한 의도된 관념의 폭은 좁았지만 그것을 이미지로 대체하고 나면 그 이미지의 상징성 때문에 관념의 폭은 확장된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별이 영원함과 밝음 및 빛남의 상징물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끌어올 수는 없다.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기 때문에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에 어울릴 때는 별을 끌어올 수 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만든다면 다른 대체 이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의도된 그림, 의도된 어리둥절함의 그림이라면 이런 논리는 부질없는 것이다. 오히려 비논리적이고 언밸런스적인 이미지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는 의도의 문장을 쓰고자 한다면, 이 문장은 설명적 문장이기 때문에 시에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표현된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에서 ‘나는’이나 ‘당신을’도 비유적인 사물로 바꿀 수 있지만, 일단 이것은 놔두고 ‘영원히’와 ‘사랑하리’를 바꾸어 표현해 보자. ‘영원히’의 관념을 대신할 이미지(별, 돌, 보석, 태양 등등)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 이미지에 맞도록 ‘사랑하리’를 고쳐주어야 한다. 만약 ‘별’을 선택했다면 “나는 별이 되어 그대 창가에 뜨리.”나, “나는 별이 되어 밤마다 그대 모습 비추리.”와 같이 바꾸어야 한다. 관념에 대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는 사물의 상징성을 보아야 하고, 상징적 의미를 통해 사물을 취사선택해서 시 속으로 끌어와야 표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에서 표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그리고자 하는 밑그림과 조화시켜 만든다면 한 구절 한 구절 설명적 요소를 없애고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설명의 문장을 표현의 문장으로 고치기|작성자 김기덕   4. 데칼코마니 기법   데칼코마니는 화면을 접어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으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이다. 즉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시에서는 하나의 이야기나 사건을 끌어와서 충실히 묘사한 후 단락을 바꾸어 대칭적인 이미지와 사건을 만들어주는 기법이다. 이 대칭의 관계는 사건 대 사건일 수도 있고, 현실 대 비현실일 수도 있으며, 사실 대 추상일 수도 있다. 물감을 짜듯 단순한 묘사나 간단한 이야기 전개로도 충분하지만, 대칭적 관계가 만드는 사고의 폭이 이승과 저승의 관계처럼 넓어질 수 있다. 호숫가에 비친 산그림자의 관계처럼 단순하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를 대칭적으로 보여주듯 의도하는 바에 따라 그 차원을 달리할 수 있다. 원면과 접혀진 면이 따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하나의 형태로 보여지듯, 이야기나 사건이 서로 다르더라도 전체적인 象, 즉 하나의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녀의 골반」이라는 석류화의 시를 보면 1 나비 꿈을 꾸고 엄마는 날 낳았다 흰 꿈, 엄마는 치마폭에 날 쓸어 담았다 커다란 모시나비, 손끝에 잡혔다가 분가루 묻어나갔다 –중략- 나비 날개엔 먼지가 끼지 않았다 한 꿈, 계단 입구에서 두 날개 맞접고 오래 기도하고 있었다 환한 꿈, 나는 오래전 그녀의 골반을 통과한 나비였다.2  초음파상 골반뼈는 하얀 나비 같았죠 그녀의 골반뼈에 종양이 생겼을 때 보았던 그 나비, 그러니까 그녀의 꺼먼 엉덩이살 안에 나비 날개가 굳어 있었던 거죠 나는 잘 벌어지지 않는 날개 사이로 미끄러져 나왔던 거죠 –중략- 이 지상 마지막까지 날고 있을 나비, 그러니까 내 속을 빠져나간 어린 나비는 지금 내 앞에서 폴짝폴짝 날아오르고 있는데요   나비가 엄마의 골반과 일치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개의 사물이나 상황을 대칭적으로 배치하여 묘사하는 기법을 데칼코마니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데칼코마니 기법|작성자 김기덕   5. 마블링 기법   마블링은 종이 따위에 대리암 무늬를 만드는 기법으로 물 위에 유성물감을 떨어뜨려 저은 다음 종이를 물 위에 덮어 묻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시에서는 여러 개의 관점으로 한 대상을 휘젓듯이 묘사하거나, 여러 대상을 뒤섞어서 묘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대리암의 무늬처럼 불규칙적인 형식의 연결로 내용이 난해하고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이미지들 간의 상징적 연결로 사고의 확장을 꾀할 수 있다. 추상적이며 모호한 리좀적 뿌리들의 연결로 처음도 끝도 없는 고원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암의 물결무늬를 통해 혹자는 새를 읽을 테고, 혹자는 구름을 읽을 테고, 혹자는 바람과 세월을 읽을 것이다. 그 만큼 보는 각도에 따라 상징의 깊이가 깊다고 할 수 있으며, 아무나 읽거나 쓸 수 없는 고난도의 기법이다. 건너뛰기의 상징적 폭은 그 만큼 넓을 수밖에 없다. 새의 날개인 줄 알았는데 구름이었고, 구름인 줄 알았는데 손바닥이었고, 손바닥인 줄 알았는데 강물이었고, 강물인 줄 알았는데 화살이었던 것처럼, 물결 같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만든 무수한 무늬들의 집합과 같은 이미지들의 배치 및 결합을 만드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마블링 기법|작성자 김기덕   6. 꼴라쥬 기법   꼴라쥬는 주변에 보이는 일반적인 사물을 화폭에 붙여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납작한 곡물이나 씨앗, 모래, 합판, 종이, 천, 나무껍질, 장판지, 스티로폼, 노끈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크기에 맞게 자르거나 모자이크처럼 부숴서 붙이는 방법이다. 시에서 꼴라쥬 기법은 여러 이미지들을 끌어와서 큰 틀의 그림(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위해 조각조각 붙이는 작업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무관한 것 같지만 연관이 있어야 하고, 무질서한 것 같지만 질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징적 연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밑그림은 붙이는 사물에 지워지듯이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기법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사물을 끌어오는 것을 피하고 상징성이 통하는 사물을 끌어와야 한다. 전혀 다른 재료들을 붙이기 함으로써 재료 간의 경계를 만들 듯 상징물 간의 격차로 인한 거리감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조각조각 희망을 끼워 넣으며 가족들은 제 몸에 맞는 무늬를 고르지만 목소리 큰 아내 곁에서 무능한 남편은 늘 모자이크 처리된다. 땅엔 크고 작은 나라들이 세력을 맞추고 하늘엔 완성된 은하의 별들이 총총히 채워지는데 빈 구석이 많아 나는 평생 성경 속의 구절들을 꿰맞춰왔다. 예수와 붓다와 공자와 소크라테스, 하지만 미완인 나의 퍼즐엔 아버지가 없다. 김기덕, 「퍼즐놀이」의 일부   이 시는 서로 연관관계가 없는 생소한 사물들인 돌고래, 태권V, 재건축단지, 가족들, 별, 성경, 성인들, 불경 등이 모아졌지만, 전체적인 주제의식이 통일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 사물들 간에 유사성이나 인접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상징적인 요소들의 연결로 인해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그림을 통일성 있게 그려주려 했다. [출처] 꼴라쥬 기법|작성자 김기덕   7. 시퀜스 기법   시퀜스 기법은 여러 개의 화면을 겹쳐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 화면 겹치기 방법은 유사한 것일 수도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통일된 의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통일된 의식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버리면 어리둥절해질 것이고, 너무 가까이 두면 식상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4.19 학생의거 사건의 화면에 통합민주당 사진과 SNS 휴대폰 사진을 겹쳐서 놓는다면 유사성은 없지만, 통일된 상징성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화면들을 순차적으로 짜는 겹치기 방식이다. 4.19 학생의거 사건에 대한 내용을 첫째 단락으로 쓰고, 둘째는 통합민주당 사진, 셋째는 SNS 휴대폰 사진의 순으로 단락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4.19 학생의거 사진과 통합민주당 사진, SNS 휴대폰 사진을 섞어서 직물을 직조하듯 짜는 방식이다. 이러한 경우는 세 화면을 넘나들면서 단락에 상관없이 쓰는 방식이다.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할 수 있지만, 시의 상징성이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방식은 이해하기 쉽고, 한 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지만, 나열하듯 화면을 이어붙인 느낌이 들어서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이 기법은 단락 간의 내용이나 이야기가 이어지지 말아야 하고, 전 단락의 어떤 묘사에 대한 확장이나 축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사한 것들의 집합보다는 생소하고 거리감이 멀수록 시퀜스 기법은 효과가 있다. 아주 동떨어진 것 같지만 상징적 연결고리로 묶여지고 소통해야 한다. 교집합이나 공집합적인 관계보다는 독자적이고 개별적이지만 손을 맞잡은 연인과 같이 한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출처] 시퀜스 기법|작성자 김기덕   8. 퍼즐 맞추기 기법   퍼즐 맞추기 기법은 하나의 제목이나 주제와 관련된 모든 이미지를 끌어온 뒤 그 이미지들을 전체의 큰 그림(주제성)에 맞게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빛이라는 제목의 시를 쓴다면 빛과 연관된 이미지 성냥, 연탄, 장작, 유성, 별, 반딧불, 달, 태양, 얼굴, 베드로, 예수, 유리, 피, 눈빛, 하루살이, 화살, 총탄, 질주의 무리, 자동차, 광야의 외치는 소리 등등의 많은 관련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하나의 커다란 주제의식에 맞도록 문장을 꾸며주는 것이다. 빛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진리’라는 주제의식을 밑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면 위에 열거된 이미지들을 주제의식에 맞는 모양으로 변화시켜 끼워 넣는 방식이다. 만약 ‘번지점프’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다면 관련 이미지 날개, 곤돌라, 하늘, 강, 끈, 아프리카 부족, 땅, 물, 나무, 꽃, 낙엽, 열매, 아파트, 다이빙, 안전장치, 부도 등을 찾은 후 ‘인생의 부침’과 같은 큰 그림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 그림에 맞는 부분만 오려서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이미지에는 여러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를 나타내고 있지만, 여기서는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밑그림에 맞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기법은 좀 다르지만 서정적 특징인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데 적합하며 주관적 몰입이 가능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 기법은 꼴라쥬 기법과 아주 흡사하지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꼴라쥬는 찢어서 붙이듯 끌어온 이미지가 상징적이고 낮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임의적이기 때문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면도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퍼즐 기법은 다 재단된 이미지를 끼워 넣는 것이다. 그래서 상징성보다는 유사성이나 인접성의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자연스러운 연결 관계를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다. 미묘한 차이이기 때문에 개념은 구분하지만, 실재 쓰임에 있어서는 혼용해서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시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시들은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시늉한 저자의 작품들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가진 여러분들은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출처] 퍼즐 맞추기 기법|작성자 김기덕   판판한 판과 골진 판에 대하여   우리에게는 고정관념이 있다. 고정관념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려는 생각이다. 산에 비가 내려 물이 흐르게 되면 계곡으로만 흐른다. 산등성이를 타고 물줄기들이 거슬러 흐르는 경우는 없다. 오랜 지각변동으로 융기, 침강하면서 생긴 계곡으로 수천 년 이 물줄기는 흘러왔다. 오랜 경험과 누적된 지식으로 우리의 뇌 속엔 수많은 계곡들이 패여 있다. 그것은 손금 같기도 하고 주름살 같기도 하다. 평평한 판은 물이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판이다. 고정된 의식세계가 없이 개방되고 자유로운 사고의 방목이다. 우유가 한 방울 떨어질 때 생긴 왕관현상처럼 사방으로 뻗고자 하는 말미잘 같은 촉수들이 살아 있다. 옥수수나 보리처럼 한 사고의 줄기에서 확장하여 무수히 뻗는 수염뿌리의 리좀이다. 사고의 바닥을 평평하게 가지라. 세월 속에서 나도 모르게 빗물에 깎이고, 도랑물에 패여 주름처럼 사고의 골이 늘어나고 깊어진다. 골이 좀 더 깊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으로 메우라. 오그라들면 주름지고, 펴지면 팽팽해지듯이 움츠러들지 말고 사고를 확장하라. 그리고 사고의 스피드를 늘려라. 빨리 달리는 자의 앞길은 대평원이고, 벌판이고, 고속도로다. 생각의 속력을 늦추면 늦출수록 언덕과 절벽이 가로막는다. 과감히 대륙과 대륙을 횡단하라. 자신의 사고 영역에서 탈출하여 하늘로, 지하로, 지평으로 뻗어서 수직적, 수평적 광활한 공간을 확보하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너의 작품은 자유를 얻으리라. [출처] 판판한 판과 골진 판에 대하여|작성자 김기덕   횡단적 문학의 이해   문학은 다른 종류의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만드는 생산기계이다. 변용, 촉발로 포획되는 삶의 방식을 막스,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가타리가 살아왔다. 그들의 말은 섞이고, 우리의 말도 삶 속에서 섞인다. 들뢰즈는 이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것을 섞어 제3의 사유를 만들었다. 리얼리즘의 덫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했다. 욕망은 힘의 작용에 방향을 부여하는 의지적 성분이다. 능력은 힘을 수반하고 있는 잠재적 상태이다. 삶은 욕망의 내재적 장이며, 문학은 능력이 글의 형태로 표현된 것의 집합이다. 배치는 요소들이 계열화에 의해 표시되는 사물의 상태이며, 기계는 특정한 효과를 반복하여 생산하는 것의 집합이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삶을 창안하는 것이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평범한 삶에서 특이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평균적 삶에서 극한적 삶을 사는 것이며, 주어진 삶을 넘어선 삶을 사는 것이다. 욕망과 권력은 항상 배치로 존재한다. 욕망은 삶의 특정한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욕망의 배치가 권력의 배치이다. 욕망은 다른 욕망과 조우,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진한다. 새로운 요소와 접속하여 새로운 계열을 형성한다. 철학, 문학, 예술은 형식 없는 내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내용은 전개하는 특정한 형식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용 없는 순수형식은 수학자, 논리학자의 공상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표현은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층위를 이룬다. 내용과 표현은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지만(상관성), 서로 자율적이고 환원불가능하다. 소수자들은 현재 상태에 삶의 흐름을 고정하려는 권력에 반하는 성분의 집합이다. 다수성은 그 반대로 현재의 권력에 부합하는 성분의 집합이다. 다수자는 주류적, 지배적이며, 소수자는 거기에서 벗어난 억압, 무시세력이다. 치열한 작품을 쓰는 자들은 소수자들이다. 작품은 삶의 과정에 들어가는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삶을 사는 것이며, 어떤 삶을 살려는 욕망, 능력의 표현이다. 그것은 생산한 욕망과 능력이 작용하는 기계이며, 그런 욕망에 의해 방향 지워지는 삶의 반복, 출현하는 장소, 외부요소들, 독자와 환경, 다른 책과의 접속 항들에 따라 다른 효과를 생산한다. 작품은 삶의 다른 과정에 들어가는 특정한 배치 안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작가인데, 작가는 다른 삶의 구성에 결부된 모든 것을 향해 열린 사람이며, 잠재적으로 그것과 결합하고 있는 기계이다. 작가는 독신자 기계로서 어떤 것과 결합할 수 있는 기계로 잠재적인 결합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작가가 만드는 다른 종류의 삶은 기존의 삶에 대한 변화와 갱신의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불평과 불만, 고통, 불편을 수반하는 현재의 삶에 대한 변환을 추구한다. 니체는 기존의 지배적 삶의 질병을 진단, 치유하여 새로운 삶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이 만든 작품의 의미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기계가 규정되며, 기계의 의미는 기계의 용법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문학은 언표행위의 집합적 배치이다. 아무리 조그만 소리로 말해도 어떤 삶에 대한 언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다른 종류의 삶이라 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집합적 배치 안에 있으며, 집합적인 언표행위이다. 문학은 이러한 삶을 제안하는 것이며, 집합적 욕망의 표현이다. 문학은 삶과 결부된 집합적 욕망의 배치의 표현이며 그것의 언표행위이다. 문학은 비인칭적 특이성으로 펼쳐지는 형식을 갖는다. 나로 진행되든, 너로 진행되든 상관없는 삶에 관한 언표들의 집합이다. 방향과 강도에 의해 삶의 흐름을 방사하거나 끌어들이는 비인칭적 특이성이다. 문학에 있어서 적극적 의미의 문학, 혁명적 문학은 횡단적이다. 힘과 욕망의 흐름을 기존의 삶의 틀 안에 가두고, 통합하는 경계를 넘어서고, 가로지른다. 경계는 흐름의 가변성을 제한하고, 고정하는 조건을 말하며, 경계를 따라 삶의 홈이 파인다. 여기서의 횡단은 수직적, 수평적으로 삶의 표면을 구획하고, 경계를 가로지르고, 넘어서는 것이다. 혁명적이라 함은 혁명에 대해 수없이 많은 말을 하는 문학보다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횡단은 경계가 지어진 하나의 영토에서 다른 영토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것이다. 횡단적 문학은 기존의 것과 다른 삶의 방식, 부재하는 삶의 방식을 만드는 것이다. 횡단적 문학은 기존의 삶과 부재하는 삶의 사이에 있다. 곧 상이한 삶 사이에 있는 문학이다. 횡단적 문학에서 횡단성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문학성은 커진다. 횡단성의 크기는 그것이 넘어설 수 없는 이질성의 폭과 비례한다. 여기에서의 경계는 내부를 고정하고 통합하며, 동질화시킨다. 또한 외부와의 차별성을 갖게 하고 이질성을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경계 안은 이질성의 폭이 협소하다. 횡단계수는 경계의 수에 비례하고 수용 가능한 이질성의 폭에 비례한다. 문학성은 문학기계의 능력이다. 문학의 미적 성질은 아름다움에 대한 고전적인 내적 범주에 의한 구분으로서 보들레르는 추함 자체가 문학의 대상이었고, 표현주의는 신체의 표면에 새겨진 추함을 통해 삶을 가시화했다. 기존의 미학주의적 잔재를 걷어내야 한다. 문학성 내지 예술성에 대한 반미학주의적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문학기계의 능력은 무엇인가? 문학기계의 능력은 다른 종류의 삶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스스로 다른 종류의 삶의 일부로서 표현하며, 그것을 통해 다른 삶으로 촉발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다른 삶을 생성하는 능력이다. 생성 능력의 강렬도에 따라 단순한 문장이지만 강렬한 힘의 글이 있고, 잘 다듬어졌지만 추동의 힘이 미약한 글이 있다. 이러한 문학은 접속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학기계 능력은 접속하여 작동할 수 있는 기계들의 폭에 의해 외적으로 정의된다. 접속은 접속하는 이웃 항에 따라 다른 기계가 되고 변환 능력을 갖는다. 예를 들면 위는 식도에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 채취한다. 입은 성대를 통해 소리의 흐름을 절단, 채취하며, 생식기와 접속하여 섹스기계가 되고, 토하여 항문기계가 된다. 위와 입을 비교하면 위보다 입의 탈영토화 계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변환 능력은 탈영토적 능력인데, 탈영토화 잠재력은 다른 기계에 접속하여 다른 배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탈영토화 하는 횡단적 문학은 모델화하거나 전형화하기 보다는 거기서 벗어나는 탈영토화의 성분을 통해 펼쳐진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새로운 영토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는 평범성, 평균성을 벗어날 때 효과적으로 성취가 가능하다. 이들의 문학을 소수적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성과 다수성은 숫자적 구별이 아니다. 하나의 척도는 기준이고 잣대인데, 이미 작용하고 있는 권력을 내장하고 있다. 척도는 언제나 주류를 형성하고, 지배적 위치를 점하며, 다수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것에서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소수화 되는 것이다. 소수성은 주변성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주변성은 동일한 척도를 전제한 가운데 중심과 척도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상태이며, 다수성의 대칭적 짝이다. 이에 비해 소수성은 척도를 공유하지 않으며, 척도로 표시되는 지배적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 소수문학은 다수적 언어의 소수화를 수반한다. 다수자들의 언어 안에서 변형시키는 방식이지 소수자들이 사용하는 자신만의 언어가 아니다. 이는 자기만의 언어 세계에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기 삼아 다수 안에 들어가 휘젓고 다니며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만의 순수한 언어로 주변의 삶을 묘사하라. 다수적 언어의 내부에서 그것을 변형시켜 새로운 언어 창조,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라. 횡단적 문학은 소수적 문학이다. 이상 『들레즈와 문학-기계』 중 이진경 교수의 「문학-기계와 횡단적 문학」의 압축을 통해 새로운 사고의 탈영토화를 생각해 보았다. 이미지의 횡단, 사고의 횡단을 추구하는 시쓰기가 필요하다. 오진현 시인의 『첫 나비의 아름다운 「의미의 비행」』에서 언급한 탈관념의 실현도 새로운 시쓰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출처] 횡단적 문학의 이해|작성자 김기덕   시쓰기의 미래   우리의 삶은 컴퓨터나 TV, 휴대폰 등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현실세계의 삶이 점차 가상공간이라는 비현실과 상상의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우리는 산을 끌어오고, 바다를 끌어오고, 무한한 우주 속을 유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전지전능함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고는 변화무쌍하며 무한한 사고의 팽창과 수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는 가상과 현실의 모호함뿐만 아니라 계절의 구분, 지리적인 경계, 시간의 흐름, 남과 여의 역할 등을 나누던 구획선들이 사라졌다. 그 만큼 현대인의 정신도 복잡해졌고,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서 확신하고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고나면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지고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난다. 날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적응할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과 생각은 반응속도가 빨라지며 복잡해져간다. 머릿속에 존재하던 단순 이미지들은 깨어지고, 서정성의 자연은 파괴되어 인공적인 도시공간을 만들어간다. 시는 자연성의 파괴와 기계화되어가는 감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시는 향수를 불러왔고, 애수에 젖어 변하는 세상을 한탄하며 농경적인 삶을 그리게 했다. 자동차의 부품과 같은 복잡함보다는 간결하고 단순한 풍경의 이미지를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세대들에게는 설득력을 얻었지만, 디지털 세대들에겐 공감을 얻지 못했다. 물론 형식의 복잡함으로 독자를 멀어지게 한 이유도 있지만, 그 후로 시는 일부 세대의 전유물처럼 전락했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시는 문학을 선도하고 세상을 앞질러가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만이 시는 살 수 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시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아니다. 생동하고 성장하는 무한 상상의 세포분열이어야 한다. 그 분열은 지극히 미시적이며, 거시적이어야 한다. 힉스입자의 반응에서부터 무한 우주로 뻗어가는 상상력이어야 한다. 그러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현대인들, 특히 고급독자들의 감각은 대단이 발달되어 있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꿰뚫어 보고, 복잡한 공식들을 풀어간다. 원하는 대로 로봇이 되고 슈퍼맨이 된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많은 이미지를 검색하며 자신의 용도에 맞는 모델을 고른다. 단순성의 반복, 정해진 룰의 식상한 게임은 아웃될 수밖에 없고, 정복된 후 버려질 수밖에 없다. 변화에 적응된 사고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 시도 이제는 아날로그적인 수목형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자재로 클릭하며 맘껏 산을 끌어오고, 바다를 끌어와야 한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 놓고 한꺼번에 작업할 수 있는 다중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 복잡한 과정들을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저만치 독자들을 앞서가야 한다. 이제 시는 이발소적인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다. 비슷한 그림, 비슷한 색칠이 독자를 못 견디게 만든다. 자연만을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컴퓨터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다.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여 제2, 제3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여러 개의 창을 열어놓고 한꺼번에 세상을 내려다보며 클릭 한 번으로 시공을 초월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현실공간을 날아다니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 바로 미래의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출처] 시쓰기의 미래|작성자 김기덕      주역과 시 /김기덕   8. ䷇ 수지비(水地比)   수지비는 위에 水(☵:坎)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모양으로 물과 땅이 친하여 서로 돕는 관계를 이룬다. 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형상으로 서로 의지하며 돕는다는 뜻이 있다. 比는 하괘가 坤(땅)이니 순하고 어질며, 상괘는 坎(물)이라서 아래로 흐르니, 땅 위에 물이 있는 것 같이 서로 밀접하게 친한 것을 말한다. 덕망 높은 군주를 위해 어진 신하들이 보필하며 친함으로 서로 협력하는 상이다. 64괘는 배치의 관계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시의 소재나 주제의식을 잡고 시를 쓰고자 할 때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유사적, 인접적, 상징적인 사물을 찾은 뒤 적절한 배치관계를 찾고, 정해진 배치관계에 따라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이 바로 64가지인 64괘인 것이다. 이 64가지를 다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기존에 쓰던 주제의 통일적인 중천건괘의 방법이나, 중지곤괘의 방법 등을 비롯하여 몇 가지만 익혀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역을 통한 시쓰기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각과 방법을 활용하여 쓰는 것이기 때문에 64가지를 다 익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본 책을 교재로 삼아서 시를 쓰면 굳이 외울 필요도 없다. 또한 주역적 시쓰기가 공식처럼 경직되어 창작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괘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의 다양한 변화를 추구할 수 있으니, 이러한 변화는 시인의 의지에 따라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부분이다. 효로 풀면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주제와 정서의 음적 통일을 이루고 있다. 다섯 번째 배치에서 변화를 꾀한 뒤 여섯 번째 배치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승전결식의 방법이다. 다섯 번째는 轉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환을 이루었다가 다시 주제의식으로 모아지는 통일된 내용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음)는 약하고 부드러운 존재이나 슬픔, 아픔 등을 끌어와, 人(⚏:노음)에서 음의 감정을 더욱 발전시켜 가다가 天(⚍:소음)에 와서 내적 아픔이나 설움, 절망 등의 음의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표현하면 첫 문장의 배치는 坤(☷)괘로서 땅을 상징한다. 유순하고 후덕하여 모든 것을 품는 어머니와 같은 정서이다. 둘째 문장의 배치는 이러한 여성적인 감정에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마음을 보듬어주고 모아주는, 따뜻함과 갈등의 승화가 있는 정서의 시쓰기 방법이다.    比는 人자가 두 개 나란히 서있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모여 정답게 협조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수지비(水地比)는 땅 위에 물이 있는 형상이다. 대지는 물을 안아주고 물은 땅을 적시며 친애하고 협력하여 생성하고 화육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형성하듯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감정으로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는 긍정적 표현이다. 수지비의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으로 땅 위에 높은 산이 있는 상이다. 배합괘는 ䷍ 화천대유(火天大有)로 인군자리에 올라 천하를 얻는 상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 지수사(地水師)로 무리를 모아야 함을 상징한다. [출처] 8.수지비|작성자 김기덕   9. ䷈ 풍천소축(風天小畜)   풍천소축은 天(☰:乾)이 아래에 있고, 위에 風(☴:巽)이 있는 괘상으로 하늘 위에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유약한 음이 위에 있어 아래의 강건한 양을 그치게 하여 쌓으니 소축이다. 소축은 작게 쌓아 올라간다는 뜻으로 畜은 밭에 물건을 높이 쌓아 까마득하다는 뜻이다. 양실한 물건을 쌓아올림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는데 바람으로 인해 위가 약간씩 흔들리니 많이 쌓을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소축은 안으로는 강건한 乾이 있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巽이 있어서 외유내강의 덕을 갖추고 있다. 강함을 상징하는 모든 양효 가운데 오직 하나인 음효가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막아 모두를 축적하지 못하고 일부만 축적하는 상이다. 효를 가지고 시를 만들면 첫 번째에서 세 번째 배치까지 양효로 구성되어 가볍고 메마른 감정 위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의 배치를 해주는 방법이다. 가운데에 음의 감정을 배치함으로써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뭉클한 감동이 느껴질 수 있도록 어둡고 탁한 분위기를 설정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노양)는 한 여름이나 오후와 같이 생기가 있고 기쁨이 있다. 人(⚍:소음)은 봄의 정취와 같다. 또한 해가 뜨는 아침과 같이 상승하는 양의 기운을 퍼지게 하여 天(⚌:노양)에서 한낮과 같은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식이다. 시가 전체적으로 밝으나 무게감을 두어 내면의 아름다운 상처를 한가운데 보석처럼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처음의 배치는 天(☰)괘로서 밝고 명랑하고 강건함으로 자칫 공허감을 줄 수 있는 남성적 감정 다음에 巽(☴)을 배치하여 부드럽고, 섬세하여 귀여운 여동생과 같은 감정을 배치함으로 잔잔한 여운이 남도록 쓰는 방법이다. 주역적 시쓰기의 특징은 색깔의 배치이다. 소재에 따라, 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색깔을 배치함으로 정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시 창작이다. 양의 색은 밝고 화려하며 따뜻하다. 음의 색깔은 어둡고 탁하며 차갑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에도 이런 다양한 색깔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깊이 및 의도의 정확성을 분명하게 나타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체를 밝게 칠한다면 중천건(䷀)이 될 것이고, 전체를 어둡게 칠한다면 중지곤(䷁)이 될 것이다. 그 외에 어떤 부분을 어떻게 칠하느냐에 따라 각각 64괘의 모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체가 밝은 시만 좋은 시는 아닐 것이다. 전체가 어두운 시가 치열한 시는 아닐 것이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배치가 더욱 낯설고 개성적인 시의 영토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풍천소축의 호괘는 대칭적, 대조적 기법의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마주보기적 배치인 ䷉ 천택리(天澤履), 배합괘는 하나의 통일된 시각의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 착종괘는 여성적 시각의 밝은 표현인 ䷫ 천풍구(天風姤)이다. [출처] 9. 풍천소축|작성자 김기덕   10. ䷉ 천택리(天澤履)   천택리는 위로 天(☰:乾)이 있고, 아래로는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하늘이 연못에 비치듯 하늘의 이치를 밟아 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履는 회복함(復)을 주장하는(尸) 뜻이 있으니 인간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뜻을 따라 예를 회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履는 하괘가 兌(연못)이므로 안으로 함께 기뻐하고, 상괘가 乾(하늘)이므로 밖으로 굳건히 실천하는 모양이니, 기뻐하고 화합함으로 행하는 중정의 도가 있다. 또한 위에 하늘이 있고 밑에 못이 있으니 상하의 나뉨과 귀하고 천함의 구별이 있어 예로 회복을 실행하는 괘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배치를 양의 문장으로 한 다음,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였다가, 그 이후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표현해주는 방법이다. 하늘의 구름과 달과 별들이 음의 물속에서 반사되듯이 표현된 방법이다. 데칼코마니적인 방법이기도한 이 기법은 하늘의 차원과 물속의 차원이 다르며, 정신적 세계와 현실적 세계가 다르듯이 상하의 복합적 배치, 또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배치와 같은 마주보기적인 거울 기법이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노양)는 호수에 비친 풍경처럼 맑고 깨끗하며 명랑하다. 人(⚎:소양)은 겉은 기쁘고 생기에 차있지만 속은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하고 병들어 있다. 天(⚌:노양)은 청명하며 움직임이 있고 크다. 하늘은 맑고 땅은 생기에 가득 차있어서 양의 색깔로 채워지지만, 인간은 내면의 슬픔을 어쩌지 못한다. 팔괘로 풀면 기쁨이 가득한 兌(☱)괘가 밑에 있고, 강하고 밝은 덕이 위에 있어 서로 비추며 마주보는 유사성이 있다. 처음엔 하늘의 단락이 있고, 다음에 하늘을 비추는 연못의 단락이 있어서 유사성의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는 시쓰기 방법이다. 천택리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태양은 하늘에 있고 물은 낮은 데로 흐른다는 원리의 질서를 나타내고 있다. 밤이 새면 낮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혼란이 없고 뒤바뀜이 없다. 시쓰기에서 두 개의 유사성이 결합하여 호수의 하늘과 같이 서로를 조명해 줄 때 하늘엔 하늘의 원리가, 호수에 호수의 원리가 질서를 유지하며 독단적인 내용을 갖고 공존해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유사하지만 다른 내용을 형성하고, 다른 이야기지만 같은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천택리의 응용을 위해 천택리의 성격이나 재질의 구분은 호괘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으로, 반대편에서 본 입장인 도전괘는 ䷈ 풍천소축(風天小畜), 반대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배합괘인 ䷎ 지산겸(地山謙), 상‧하의 입장변경을 표현하는 착종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다. [출처] 10. 천택리|작성자 김기덕   11. ䷊ 지천태(地天泰)   지천태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하늘(☰:乾)이 있는 모양으로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열려 나오는 상이다. 하늘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고 땅의 기운은 위로 올라 교합하여 태평한 세상이 된다. 泰는 父, 母, 子의 세 사람을 뜻하며, 부정과 모혈로부터 어린 생명이 탄생함을 의미한다. 안으로는 乾의 굳세고 건장한 덕이 있고 밖으로는 坤의 순한 덕이 있으니 외유내강의 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늘의 기운은 올라가고 땅의 기운은 내려가서 서로 통하니 형통하는 상으로 정월괘이며 새봄이 되는 때를 이른다. 음효와 양효가 각기 셋으로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배치되고 있어 안정된 모습이다. 효로 살펴보면 양의 문장이 첫째, 둘째, 셋째로 나오고 다음에 음의 문장이 넷, 다섯, 여섯 번째 나오는 형식으로 음과 양이 대조를 이루는 방식이다. 만약에 얼굴을 표현한다면 돌출된 이마나 코, 광대뼈와 같은 곳을 양적으로 밝고 강하게 표현한 후 입이나 귓구멍, 콧구멍 같은 곳을 음적으로 어둡고 연약하게 표현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게 하면서도 통합된 의미를 모을 수 있도록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한다. 이러한 음과 양의 대조를 통해 대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노양)는 여름이나 한낮의 표현과 같이 강렬하며 극적인 표현을 의미하며, 人(⚍:소음)은 강하고 극적이던 표현이 약하고 부드러워지면서 겉과 속이 표리를 이루는 표현을, 天(⚏:노음)은 겨울이나 한밤중 같은 부정적이며 차가운 대조의 표현을 이루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면 강하고 굳세며 정신적인 의미의 乾(☰)이 밑에 있고, 나약하고 부드러우며 육체적인 의미의 坤(☷)이 위에 있는 형상으로 형이상적이면서도 형이하적인 면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시쓰기이다. 천택리는 유사성을 통해 서로 마주보는 데칼코마니적인 기법이라면 지천태는 대조적인 것이 서로 마주보면서 있는 형상이기도 하며, 인간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지천태의 표현은 땅의 기운이 하강하고 하늘의 기운이 상승하는 형상으로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이며, 상하가 서로 화합하여 하나로 모이는 이치와 같다. 속의 강한 뜻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기법이기도 하며 핵심에는 군자를 변두리에는 소인을 배치한 것과 같은 대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동시에 정신과 육체, 이상과 현실, 사물과 그 안의 상징성 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를 인과관계로 끌고 가고자 한다면 지괘를 선택해야 한다. 지괘는 뽑은 괘중에서 노양은 음으로, 노음은 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노양과 노음이 변한 괘가 바로 지괘이다. 노양과 노음이 나오지 않았다면 지괘는 없는 것이며 당분간 본괘가 지속될 것임을 나타낸다. 지천태의 호괘는 이질적인 관계의 연결을 만드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조화와 상생의 ䷋ 천지비(天地否)이다. [출처] 11. 지천태|작성자 김기덕 12. ䷋ 천지비(天地否)   천지비는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어 상하로 막혀 머물러 있을 뿐 소통이 되지 않는 상이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을 띠고 땅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에 둘 사이는 멀어질 뿐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否를 보면 만물은 호흡과 생명활동을 구멍으로 하는데, 그 구멍(口)이 막혀(不) 곤궁한 모습이다. 위의 乾(☰)은 실하나 아래에 坤(☷)이 허하니 서로 교합하지 못하고 만물이 닫혀 있는 상이다. 하늘과 땅이 통하지 않고 아비와 자식이 갈등하며, 임금과 백성의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반목, 질시하는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지천태와 매우 유사하지만 지천태는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말하지만 천지비는 갈등과 반목, 부조화를 내면에 깔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셋째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치밀하고 꼼꼼하며, 어둡고 탁하며, 비천하고 낮은 의미를 갖지만, 넷째, 다섯째, 여섯째의 내용들은 엉성하고 명랑하며, 움직임이 있고, 밝고 맑으며, 높고 귀한 의미를 가짐으로 내면과의 갈등을 표출하고 상하의 부조화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시는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지지만 반대적인 입장에서의 접근이나 시각차를 나타내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지극한 슬픔에 빠져 있지만 하늘은 기쁨으로 충만한 상이다. 人은 그 가운데에서 강한 척 하지만 불안과 좌절을 격고 있는 모양이다. 계시가 없는 신앙인과 같으며, 꿈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주인이 없는 애완동물과 같은 형상이다. 시적인 형식에 있어서도 상하의 상관관계를 갖지 못하고 배반관계, 또는 대치관계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신적 질서인 天이 인간세상인 땅에 관여하지 않고 동물적 질서인 땅은 인간 영혼의 교감이 있는 하늘에 구하지 않음으로 답답한 정서적 고립을 이루고 있다. 마주 의지하여 일어서는 人자의 형상처럼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否卦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이다. 하늘과 땅이 막히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막혀버린 관계이다. 천지비는 내괘가 음이고 외괘가 양인데, 이것은 내심은 유약하면서 외면은 강한 것처럼 꾸미는 것으로 기만과 속임수가 있다. 문장과 문장, 단락과 단락 간에 의미의 연결을 이루지 못하고 정반대의 파국으로 치닫는 부정적 배치관계를 갖고 있다. 주제의 통일을 중시하는 시쓰기에서 단락 간에 의미가 상충한다면 통일성은 깨어질 것이다. 마인드맵에서 서로 반대되는 가지의 방향으로 뻗어감으로 의식이 확장되듯 천지비의 시쓰기는 가지에서 둥치 쪽 방향으로 주제의식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확장되고 퍼짐으로 난해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천지비의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이루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는 음양의 이치가 고르게 균형을 이룬 ䷊ 지천태(地天泰)이다. [출처] 12. 천지비|작성자 김기덕   13. ䷌ 천화동인(天火同人)   천화동인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火(☲:離)가 있는 모양으로 하늘에 해가 떠올라 만물이 생동하며 서로 모이는 형상이다. 同人의 의미는 사람들이 뜻을 하나로 하여 함께하는 것을 말하는데, 유일한 음인 六二(효의 두 번째 음효)를 중심으로 양들이 모이게 된다. 내면은 밝고 외면은 강건한 덕이 있으니 밝은 지혜로써 힘차게 도를 행하는 괘이다. 남과 내가 하나가 되는 형국이며, 세상의 모든 사물과 내가 하나를 이루어 교감을 갖는 관계에 놓여 있다. 두 번째에 놓인 음의 효는 나를 상징하며 나를 중심으로 모든 양들이 집중하고 있는 모양으로 시에서는 서정적 시쓰기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정적 시쓰기의 특징은 나라는 존재의 주관적 감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오고 요리하며, 서정적인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천화동인의 괘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쓰기 형식이다. 효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六二의 나는 여성적이며 부드러운 감성의 소유자이다. 이런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를 밝고 아름답게 쓰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양의 시각이 담겨 있다. 시인의 존재는 약간 우수에 잠길 수 있어도 그의 메시지는 세상을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세상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따뜻한 세상을 담고 있다. 그 문장들이 나를 향해, 곧 글 쓰는 시인을 향해 주제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는 땅에서 새싹이 움트는 형상이다. 밝게 확장되어가고 성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人(⚌:노양)은 긍정적이며 행복한 상황을 의미하며, 天(⚌:노양)도 역시 맑고 투명하며 소망으로 가득 차있다. 마인드맵 천 ‧ 인 ‧ 지의 줄기에서 가지를 뻗어갈 때 긍정적이며 건강한 의식으로 확장해야 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하늘에 해가 떠있는 상이다. 그래서 색깔이 밝고 환하다. 천지는 광명으로 가득 차있고 만물은 생기가 넘친다. 시인의 순수한 내면을 통해 밝고 아름답게 세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항상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과 높은 곳을 지향하는 불은 서로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다. 同人은 남과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뜻이 같은 것들, 즉 유사한 것들을 모아 하나의 주제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는 곧 주제의 통일을 의미하며 사물의 유사성과 인접성을 통해 접속하는 방법이다. 천화동인의 호괘는 음의 대상을 양적인 표현으로 이끄는 ䷫ 천풍구(天風姤)이고, 배합괘는 남성적 시각의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음의 배치인 ䷆ 지수사(地水師)이며, 도전괘, 착종괘는 태양처럼 밝고 환한 ䷍ 화천대유(火天大有)이다. [출처] 13. 천화동인|작성자 김기덕   14. ䷍ 화천대유(火天大有)   화천대유는 위에 火(☲:離)가 있고 아래에 天(☰:乾)이 있는 괘상으로 해가 중천에 뜬 모양으로 크게 소유함을 이른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밝은 상으로 모든 만물을 밝히는 상이다. 六五(효의 다섯 번째 음효)의 음이 왕위에 올라 상하의 여러 양들과 응하니 크게 형통하는 괘상이다.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있는 상으로 대유는 크게 있다는 뜻이다. 하늘 높이 솟은 태양처럼 세상만물을 비추며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모양으로 태양이 없이는 세상에 생명이 하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만큼 고마운 것이 없으며 태양만큼 필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화천대유는 태양처럼 크게 이 세상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의 위치인 五爻가 음이고 모두 양으로 되어 있는 괘이다. 임금인 五爻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밝고 아름답게 쓰는 시로 경축시나 칭송시로 비쳐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왕 같은 사물, 왕 같은 대상이 음으로 가득 차 있어서 긍정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첫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다가 다섯 번째 여성적이며 우울한 심정을 나타낸 후, 그리고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밝게 끝내는 시쓰기의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삼재인 地는 初爻인 양과 二爻인 양이 만나 노양(⚌)이 되었다. 初爻인 地는 흙, 땅, 지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형이하적인 사물이나 물체를 끌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二爻인 地도 지옥이나 어둠과 같은 세계일지라도 양적인 형이상적 실체의 접근이 필요하다. 人은 三爻인 양과 四爻인 양으로 이루어진 노양으로 형이하적인 동물적, 육체적인 접근과 영혼, 정신적인 형이상적 접근을 긍정적이고 밝게 함으로써 양적인 힘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天은 五爻의 음적인 문장이 오고 六爻엔 양적인 문장이 옴으로써 어둡고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지만 그 속에서 영혼의 세계인 천국과 극락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팔괘로 보면 상괘인 외괘는 火(☲:離)이고 하괘인 내괘는 天(☰:乾)으로 이루어져 하늘 위에 해가 떠있는 형상이다. 외괘는 오후, 외적인 것, 쇠퇴, 해체, 성장, 얼굴, 객체, 대상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외괘가 태양과 같으므로 밝고 긍정적이며 행복한 접근이 필요하다. 내괘는 오전, 내적인 것, 도래, 창조, 탄생, 몸, 주체, 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내괘는 강건하고 광명하며 건조한 의미인 天이므로 적극적이며 지배적인 힘을 띠어야 한다. 화천대유의 시쓰기는 부드럽고 자애로운 왕과 같은 사물이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접근, 칭송이나 찬양과 같은 형식으로 밝고 아름답게 쓰는 방식이다. 지상 최대의 태양과 같은 존재인 시적 대상을 향해 신을 모시듯 격조를 높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화천대유의 변화를 살펴보면 호괘는 양적 묘사에서 마지막 음의 묘사로 뒤집는 ䷪ 택천쾌(澤天快)이며, 배합괘는 정답고 조화로운 표현인 ䷇ 수지비(水地比), 도전괘, 착종괘는 서정적 주제의 통일을 이루는 ䷌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출처] 14. 화천대유|작성자 김기덕   15. ䷎ 지산겸(地山謙)   지산겸은 地(☷:坤)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있는 괘상으로 높은 산이 땅보다 아래에 있으므로 겸손함을 상징한다. 겸은 산같이 높은 덕을 내면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땅 같은 자의 아래에 있으니,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말고 남을 존중함이 필요하다. 겸손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상태이므로 시쓰기에서도 자신의 의도대로 쓰지 않고 독자의 의도에 맞추어 쓰는 방법이다. 독자의 의도에 맞추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모든 시가 그렇지만 특히 독자가 상상하며 유추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九三만 양이고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괘이므로 첫 번째, 두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쓰고, 세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을 쓴 후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써야 한다. 겸괘에서의 핵심은 九三이다. 九三이 다른 존재에게 겸손해야하지만 다른 존재들도 역시 九三에게 겸손해야 한다. 그것은 곧 시에서 시의 핵심을 세 번째 문장에 오게 하는 것이다. 이 핵심은 음 중에서 양이며, 슬픔 중에서 기쁨이며, 어둠 중에서 빛이며, 절망 중에서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산은 땅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양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내면적으로 존재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상으로 풀면 天(⚏), 地(⚏)는 음으로 가득 차있다. 그렇게 어둡고 절망적인 상태이지만 시인만은 내면의 강함(⚍:소음)으로 새싹처럼 고개 내밀고 있다. 고개 숙인 새싹들처럼 겸손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게 내면을 감춘 모습엔 희망이 담겨져 있다. 또한 부드럽고 순한 여성적인 정서 속에 남성적 강함이 숨겨져 있는 모습이다. 시인 자신의 의도나 감정도 숨겨져서 객관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어머니를 의미하며, 유순함과 서남방과 소, 신체 중의 배를 상징하는 땅(곤괘)이 위에 있고, 산을 의미하며, 소남(小男), 정지, 동북쪽, 신체 중의 손, 개를 상징하는 산이 아래에 위치해 있다. 아래는 산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하며, 위는 땅으로 이루어진 단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첫째 단락은 막힘과 단절, 심리적 답답함을 표현해야 하며, 둘째 단락은 유순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여성적인 정서로 이러한 단절과 막힘, 삶의 아픔과 절망을 포용하며 순응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고난 속에서 참고 인내하는 어머니와 같은 자세의 시쓰기이다.    보름달은 기울고 초승달은 커가는 것이 세상이치이고, 높은 곳의 흙은 깎이어 낮은 곳으로 퇴적되며, 물은 평면을 유지하려고 아래로 흐르는 것이 세상 원리이듯이 위대한 시인은 가장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사물을 표현해야 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고 감탄하며 들뜰 것이 아니라 벌레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쓸 때 그 시는 산을 품은 땅과 같은 큰 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절망하며 흐느끼는 세상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내 입장을 숨기고 그들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지산겸의 시쓰기이다. ䷎ 지산겸(地山謙)의 호괘는 자연스런 감정표출을 의미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다른 하나의 시각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 뇌지예(雷地豫), 배합괘는 데칼코마니적 기법인 ䷉ 천택리(天澤履), 착종괘는 절해고도의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다. [출처] 15. 지산겸|작성자 김기덕   *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   단락의 변화에서 다룬 것이 본괘,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지괘이다. 여기에서의 단락 변화는 내용의 새로운 흐름 전개를 말하며, 바라보는 시각의 또 다른 방향이나 새로운 차원을 말한다. 본괘는 쓰고자 하는 시의 본질적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에 대해 시를 쓴다면, 선풍기의 모양이나 성격, 기능, 작동법, 디자인, 바람의 세기, 가격 등과 같은 선풍기의 기본적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묘사하는 방법이다. 호괘는 시적 대상에 대한 내면성이나 내면적인 재질 ‧ 부품이 갖는 정신적인 상징성에 대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선풍기에 대해 예를 들면 더위를 식혀주는 성질이나 시간에 맞게 돌아가고 꺼지는 자기조절, 내부적인 모터의 회전에 대한 상징성 등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호괘는 단순히 내부에 있는 부품이라고 해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성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의미하는 형이상적인 것, 또는 상징적인 것을 말한다. 도전괘는 반대편에서 본 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사물의 감춰진 모습이나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 모습, 또는 상대적인 측면에서 본 시각에서 시적 대상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선풍기의 감춰진 뒷모습이나 선풍기와 상관없는 책의 입장이나 에어컨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을 가지고 쓰는 방법이다. 배합괘는 반대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시적 대상이 처한 상황과 반대되는 상황에서 바라보고 접근하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예를 들어 선풍기를 시적 대상으로 잡았다면 히터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든지, 겨울의 상황에서 선풍기를 묘사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착종괘는 상하의 입장을 바꾸는 방법으로 거꾸로 보기의 일종이다. 선풍기에 대해서 본다면 거꾸로 놓고 선풍기의 모양이나 쓰임새를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역전된 시각, 내려다보기나 올려다보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괘는 흐름의 종료,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의 존재 결과나 진행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한 결과를 말한다. 인과관계라고도 할 수 있고, 결론적인 도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이러한 여러 각도로 접근하면서 단락을 바꾸고 묘사, 표현한다면 글쓰기의 정해진 룰과 같은 하나하나의 괘들이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64괘의 방법이 다섯 가지의 변괘를 만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출처] 단락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16. ䷏ 뇌지예(雷地豫)   뇌지예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地(☷:坤)가 있는 괘상으로 땅을 뚫고 초목이 밖으로 움터서 즐거워하는 모양이다. 豫는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 움직여 나아가는 모양이니 순히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다. 豫는 오직 한 개인 양효가 모든 음효와 호응하는 형태여서 도리에 순응하여 움직이면 형통하는 괘이다. 하늘과 땅도 자연의 도리에 따라 순응하고 움직이듯 나라도 도리에 순응하면 크게 발전함을 의미한다. 시에서는 하나의 시각으로 사물을 표현함을 의미한다. 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듯, 강의 시각으로 세월을 보듯, 바람의 시각에서 낙엽과 인생을 보듯 하나의 주체적인 사물을 통해 활유적, 상징적으로 접근하는 표현 방법이다. 효의 시각에서 살펴보면 뇌지예(雷地豫)는 九四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음효로 이루어져 있다. 九四는 재상, 대신, 간부급 및 교생, 몸통, 몸의 앞부분, 형, 40대의 위치를 의미한다. 또한 九四는 사물의 중심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물의 관점을 중심으로 쓰되 나머지 효가 모두 음이므로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가 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부연한다면 음의 문장은 右, 地, 母, 女, 柔, 靜, 下, 偶, 重, 濁, 暗, 後, 末, 逆, 小, 卑, 枝, 老, 哀, 惡, 慾, 病, 死, 緻密, 消極的, 陰凶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문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노음)과 땅(⚏:노음)이 모두 노음인데, 사람만 소양(⚎)이다. 이는 천지만물이 음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상을 보는 사람 또한 음의 상태지만, 내면의 음을 감추고 양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 양적인 시각이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고 사물의 시각을 빌려 음의 세상을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 온 震은 二陰 속에 一陽이 처하여 문이 열려있는 모양으로 一陽이 밖으로 강건히 움직여 변화를 이루는 상이다. 우레가 진동하는 형상이며, 땅 속의 초목이 움트는 상이다. 오행상 양목에 속하며, 물상으로 발(足), 용, 큰길 등을 상징한다. 아래에 온 地는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지극히 유순하고 광활하며 습하다. 안이 비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모양으로 만물을 생육, 번성시키는 땅을 의미한다. 어머니, 오장육부를 담은 배, 유순한 소 등이 여기에 속하며, 평탄한 대지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땅 위에 울리는 우레와 같은 모양으로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지각을 뚫고 힘차게 땅 위로 오르는 기상을 갖고 있다. 현실의 미성숙을 내면의 강함으로 극복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힘을 느끼게 해야 한다. 뇌지예(雷地豫)의 변괘에서 인과관계로 가자면 지괘를 살펴보아야 하고, 내면의 변화는 호괘인 ䷦ 수산건(水山蹇)으로, 반대 입장은 도전괘인 ䷎ 지산겸(地山謙)괘로, 반대상황은 배합괘인 ䷈ 풍천소축(風天小畜)괘로, 상하의 입장변경인 착종괘는 ䷗ 지뢰복(地雷復)괘로 확장하여 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6. 뇌지예|작성자 김기덕   17. ䷐ 택뢰수(澤雷隨)   택뢰수는 위에 澤(☱:兌)이 있고 아래에 雷(☳:震)가 있는 형상으로 아래에서 震이 움직임에 따라 위에서 연못물이 즐겁게 일렁이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隨는 때를 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해가 동에서 떠서 남을 거쳐 서에서 지듯이 해의 운행에 따라 만물이 좇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에는 움직이는 성질이 있고 밖으로는 기뻐하는 덕이 있으니 실천에 옮겨서 기쁜 결실이 있게 되는 괘이다. 효의 위치를 보면 음과 양이 반반으로 섞여 있는데,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시작하여 두 번째, 세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표현된 후, 네 번째, 다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표현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룬 다음, 음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는 형식이다. 시의 정서를 통일시키는 데 있어서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어떻게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음과 양의 관계는 배치의 관계로 양지와 음지를 동시에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 즉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의 관계는 음영을 표현한 미술의 빛과 어둠의 기법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빛이 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 하고, 어둠이 돋보이기 위해서는 빛이 존재해야 하듯 배치관계에서의 음양의 조화를 통해 언어적 그림의 선명한 감정전달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천 ‧ 인 ‧ 지가 모두 음과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地(⚍:소음)는 내면은 강하고 외면은 부드러운 모습으로 형이상적인 땅의 모습보다는 현실적인 땅의 모습에 치중되어 있는데, 天(⚍:소음)도 마찬가지로 상징적인 하늘보다는 현실적인 하늘이 강조되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人(⚎:소양)은 현실적인 면보다는 이상적인 면이 강하고, 종교나 제의에 치우쳐 있다. 이는 현실을 표현하면서 정신적인 고뇌와 신적인 아타락시아를 추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밑에는 우레가 진동하며 초목이 움터 나오는 형상인데, 위에는 연못이 출렁이며 기쁨을 누리는 형상이다. 팔괘의 두 단락으로 보면 첫째 단락은 생동하며 초목이 움트는 것 같은 활동성을 표현하고, 둘째 단락은 연못의 물이 춤추며 기뻐하는 것 같은 이미지의 표현이다. 택뢰수는 강한 자가 유순한 자를 따르는 형태인데, 유순한 자는 이를 기쁘게 받아들임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우레가 못 속에 잠겨 있는 상으로 이는 평화와 안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요함은 애수와 석양의 따사로움을 연상케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물결이 일며 생성과 발전의 분위기가 5월의 풀향기처럼 감도는 싱싱하고 젊음이 가득한 고요함이다.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택뢰수의 호괘는 점점 커지는 확장적, 상승적 묘사인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순탄한 논리의 배반적 기법인 ䷑ 산풍고(山風蠱), 착종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연결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출처] 17. 택뢰수|작성자 김기덕   18. ䷑ 산풍고(山風蠱)   산풍고는 山(☶:艮)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위치해 있는 상으로 산 아래 바람이 불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는 형상이다. 蠱는 그릇(血) 위에 세 마리 벌레가 있는 모양으로 그릇을 좀먹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巽은 한 음이 생하는 모양이고 艮은 두 음이 자라는 모양이니 음이 성하는 가을의 때와 같다. 안으로는 순하고 밖으로는 그침의 덕이 있으니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이다. 효로 살펴보면 백성이나 신입사원, 신입생, 10대와 같은 初爻가 음으로 시작하고, 재상, 간부, 몸통, 40대와 같은 四爻, 왕, 대통령, 사장, 아버지, 50대와 같은 五爻가 음으로 이루어진 산풍고는 병들기 쉬운 인생의 고비를 상징하고 있다. 10대의 사춘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따라 인생의 미래는 달라진다. 또한 40대, 50대는 인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로 인해 병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병적 허무와 정신적 공황기의 절망적 감정을 시의 내부에 심음으로써 벌레 먹은 듯 감정적 천공을 만드는 시쓰기이다. 즉 양의 바탕 위에 음의 요소를 구멍 뚫듯 배치하는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하늘(⚎)과 땅(⚎)은 같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만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은 형이상적인 천국, 영혼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땅 또한 지하의 형이상적인 세계인 지옥, 어둠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나 人의 세계만 물질적, 육체적인 지향성을 갖고 있다. 이는 건전한 정신세계의 병들음이며, 푸른 잎의 구멍과 같다. 하나의 동질적 바탕 위에 이질적 요소의 구멍 뚫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艮)인 一陽二陰이 위에 있어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치는 상인데, 小男, 집지키는 개, 작은 길, 작은 돌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는 一陰이 二陽 아래 엎드려 숨어 있는 모양으로 공손 ‧ 겸양하여 자신을 낮추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長女, 노끈, 닭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산 아래 바람이 부니 낙엽이 떨어지는 형상이다. 첫째 단락은 나무나 풀과 같이 부드럽고 순탄하며, 땅에 뿌리내리기와 같은 시쓰기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단락은 이러한 순탄함이 막히면서 절망과 좌절의 아픔이 짓누르는 듯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수도 있으나 순탄한 논리의 배반이 군데군데 역설적으로 도입됨으로써 아름다운 단풍잎이 아니라 벌레 먹어 구멍이 뚫려 감정을 더욱 자극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젊은 시기를 보내고 노년의 후회와 허무, 삭막함을 표현하는 시쓰기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산풍고의 변괘 중 호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배합괘는 ䷐ 택뢰수(澤雷隨), 착종괘는 ䷴ 풍산점(風山漸)이다. [출처] 18. 산풍고|작성자 김기덕   19. ䷒ 지택림(地澤臨)   지택림은 위에 地(☷:坤)가 있고 아래에 澤(☱:兌)이 있는 모양으로 땅에 못물이 고여 모든 만물을 기르는 상이다. 臨은 모체 속에서 양이 자라, 나올 때가 임박한 상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의 기운을 받아 수태한 후 품성을 갖추어 만물이 나오는 상이다. 안의 兌는 기쁨의 상이고, 밖의 坤은 순한 모양이니 기뻐하면서 순하게 나아가는 형상이다. 절기로는 한겨울인 12월이며, 새로운 한 해가 임박하는 때이다. 復괘는 양이 처음 나오는 괘로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때라면, 양이 하나 더 자라 땅의 문이 열리는 때이고 곧이어 만물이 생겨나는 형상이다. 귀한 양으로 復(䷗)에서 더 발전하여 백성에게 임하니 크게 형통하고 이로운 것이다. 효로 이 상을 풀이하면 初爻와 二爻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나머지 효들은 모두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이다. 이 모양은 여러 개의 음이 꽃받침처럼 받쳐주고 그 속에서 양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양의 문장은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양의 모양을 띠어야 하고 나머지 음의 문장들은 이 두 문장을 뒷받침하는 꽃받침과 같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양의 문장은 꿈이나 이상과 같은 것이며, 음의 문장은 이 꿈과 이상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양의 문장은 형이상적이요, 음의 문장은 형이하적이어서 두 개의 양의 문장에 초점을 두고 나머지 문장은 배경적인 구성을 하는 시쓰기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이며, 天도 노음(⚏)이다. 땅에 속한 나무나 짐승, 곤충들은 생기로 가득 차 있지만, 하늘은 아직 흐리고 기온이 풀리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생기를 찾지 못하고 절망과 좌절 속에 있다. 하늘과 인간은 침체되어 있지만 땅만은 새로운 봄을 준비하며 부지런히 얼음 속으로 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땅의 위대함을 통해 사람과 하늘이 회복되어 가는 희망적 시쓰기 기법이다. 팔괘로 보면 땅(☷) 속에 못(☱)이 있는 모양으로 깊은 연못을 상징한다. 깊은 연못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영감과 교훈을 준다. 깊고 푸른 연못의 맑은 물을 보면 청춘이 즐겁고 인생에 희망이 샘솟는다. 아직 땅은 어둡고 축축하며 무거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땅 속에서 숨 쉬는 연못은 희망을 비춰준다. 깊고 심오한 영감으로 현실의 어둠을 극복하고 맑고 고요한 심성의 깨달음으로 희망을 찾는 모양이다. 첫 단락은 삶의 기쁨과 깨달음의 고요가 거울 같은 수면처럼 차분하게 나타나야 하고, 둘째 단락은 이러한 깨달음의 세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암울한 현실과 미완의 세계를 그려야 한다. ䷒ 지택림(地澤臨)은 바닥에 생명처럼 솟아나는 원천이 있다. 고요히 정지하여 있지만 물은 항상 새롭다. 그래서 부패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고, 격돌하지도 않고, 순조롭고 자연스러우면서 묵은 것과 새것을 교체하면서 변하지 않는다. 음의 문장 속에서 양의 문장이 새로운 꿈과 희망을 제시하며 기쁨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지택림의 변괘 중 호괘는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배합괘는 형이상적인 시를 의미하는 ䷠ 천산둔(天山遯), 도전괘는 군자의 교화가 세상을 감화시키는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산문시적인 ䷬ 택지취(澤地萃)이다.   20. ䷓ 풍지관(風地觀)   風地觀은 風(☴:巽)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있는 상으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만물이 이를 따라 흔들리는 형상이다. 觀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두루 살피는 모양이니 시적 대상에 대한 관조적인 접근으로 마치 황새가 창공을 날면서 먹이를 찾는 것과 같다.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부드러운 덕이 있는 모양이니 군자가 마음을 비우고 극한 경지로 들어가 관찰하고 연구하는 괘이다. 또한 땅 위에 바람이 불어 모든 초목이 흔들리는 모양이니 군자의 교화가 세상에 감화를 일으키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다섯 번째 문장과 여섯 번째 문장이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는 형태이다. 觀의 살핀다는 의미처럼 음의 시각으로 시적 대상을 자세히 관찰, 세밀하게 묘사하다가 결말 부분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슬픔이나 절망, 고통과 같은 음의 성격으로 진행되다가 희망이나 꿈을 불어 넣는 식의 양의 결말로 끝부분을 마무리하는 시의 형태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삼재 중 地는 ⚏(노음)으로 겨울이나 한밤중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어두운 현실이나 암담한 미래와 같은, 현실적인 사실이나 사물의 위치, 상태 등이 지극히 쇠퇴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人도 마찬가지로 ⚏(노음)으로 상황뿐만 아니라 시인이나 시의 주체적 인물이 음의 극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이나 절망, 고독의 감정을 가지며 지극히 음의 세계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天에서 ⚌(노양)으로 급반전함으로써 세상의 변화와 심리적, 정신적인 변화의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바람이 부는 형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의미를 가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쓰기의 형태로 관조적인 시쓰기이다. 몰입이 되어서 사물의 내면과 일치하는 치열함보다는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고 지켜봄으로써 어둡고 답답한 현실의 음적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꿈을 나누는 관조적 묘사를 의미한다. 풍지관의 바람은 얼핏 폭풍이나 태풍과 같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날려버리는 사나운 바람을 연상하거나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 매섭게 나무 끝을 불어가는 삭풍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풍지관은 그러한 사납고 어지러운 바람이 아니라 풀잎도 꽃봉오리도 즐겁게 어루만져 주는 봄바람이거나 햇살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신록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희망적 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풍지관의 변괘 중 호괘는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 지택림(地澤臨), 배합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착종괘는 ䷭ 지풍승(地風升)이다.   21. ䷔ 화뢰서합(火雷噬嗑)   火雷噬嗑은 火(☲:離)가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雷電이 합하여 빛나고 두 물건이 서로 함께하여 합하니 火雷噬嗑이다. 噬는 씹는 것이요, 嗑은 다물어 합하는 것이니 입 속의 물건을 씹어 합하는 의미가 있고, 위턱과 아래턱 사이에 물건이 들어 있는 괘의 모양을 하고 있다. 상괘의 離는 번개이고 하괘의 震은 우레로서 번개치고 우레가 따름으로써 서로 모여 합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침이 지나 한낮이 되는 때이며, 봄철이 지나 여름이 되는 시기이니 만물이 통하는 이치가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빨 사이에 끼어있는 음식과 같이 핵심적 요소(시적주체)가 오고 다섯 번째는 음의 문장, 여섯 번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문장이라고 명명된 부분은 꼭 하나의 문장만을 의미하지 않고 여러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내용적인 의미의 통일체를 말한다. 즉 하나의 시적 대상을 음과 양의 시각으로 씹듯이 밀도 있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소음(⚍)으로 이루어져 내면은 강하지만 외면은 부드럽고 약한 모양을 갖고 있다. 人과 天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속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외면은 강하고 밝은 모습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의 의식은 외향적인 하늘과 내향적인 땅의 가운데에서 합하여져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번개가 치고 그 뒤를 천둥이 따르듯이 시인의 의식 속에 하늘과 땅이 합하여 통합된 주제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번개가 친 다음에 우레가 있는 모양을 이루기도 하고, 하늘에서 번개가 치자 땅에서 우레가 울리는 형상이다. 하지만 시쓰기에서 첫째 단락이 우레의 의미를, 둘째 단락이 번개의 의미가 있는 의미의 배치를 갖기 때문에 이는 역인과적 관계를 의미하며 결과 후 과정을 쓰는 것과 같은 기법이다. 하지만 이들의 섞임은 음식물을 씹었을 때처럼 잘 섞여야 한다. 윗니 아랫니가 음식을 끊고 씹으며 서로 맞닿아 조화를 이루듯이 剛强을 상징하는 양괘인 震과 유화를 상징하는 음괘인 離가 합력하는 긍정적인 시쓰기이라고 할 수 있다. 火雷噬嗑의 호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의식의 절제를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배합괘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인 ䷯ 수풍정(水風井), 착종괘는 다양한 묘사와 풍성한 의식의 ䷶ 뇌화풍(雷火風)이다. [출처] 21. 화뢰서합|작성자 김기덕   22. ䷕ 산화비(山火賁)   산화비는 山(☶:艮)이 위에 있고 火(☲:離)가 아래에 놓여 산속에 불이 있는 모양이다. 생장의 과정을 마치고 아름답게 결실을 맺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山火賁이다. 賁는 종자가 다 여물어 열매 맺는다는 뜻으로 열매(貝)가 많이 매달린(卉) 모양으로 ‘빛나다, 꾸미다, 열매 맺다’라는 뜻이 있다. 안으로 밝고 화려함에도 밖으로 그치는 덕이 있으니 꾸밈의 소박한 절도를 지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순리에 따르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와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산화비의 여섯 효를 압축하면 ☲(火)의 형태를 갖는데, 이는 내면의 아픔을 감추고 밖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시쓰기이다. 그래서 첫 문장과 끝 문장을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중간에 음의 감정을 내비침으로 전체적으로 내면의 고통은 안으로 숨기고 밖으로는 이러한 진실을 꾸밈으로 더욱 아픔을 절제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내면적인 절제의 정한적 요소와 형식적인 절제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는 배치를 통한 절제된 내면을 나타내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강한 내면을 감추고, 유약하고 부드러운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감정적 호소가 되어야 한다. 이 감정적 호소는 낭만주의적인 쏟아놓음이 아니라 절제 속의 호소여야 한다. 이의 구체적인 방법은 땅의 사물적 효는 양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지만 땅의 정신적 효는 음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양적 사물 속에서 음의 감정 및 정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법이 人의 소음(⚍)에서도 계속되다가 마지막 단계인 天의 배치에서 음적인 감정을 뒤엎고 양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희망적인 색채를 띠게 하는 방법이다. 팔괘로 풀이하면 산이 불을 가두고 있는 형국이다. 불은 밝히 드러내고자 하는 감정이며, 여러 가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과잉적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산이 막고 있다. 산은 그친다는 뜻과 가로막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산화비(山火賁)의 모양을 통해 풀이해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이다. 그래서 의식이 절제되어야 하고 슬픔이나 절망의 음적 감정이 수면에 잠긴 채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와 같은 모습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산화비의 변효 중 호괘는 감정표출의 시인 ䷧ 뇌수해(雷水解)이며, 도전괘는 음양의 조화를 이룬 ䷔ 화뢰서합(火雷噬嗑), 배합괘는 절망적 현실을 표현한 ䷬ 택수곤(澤水坤), 착종괘는 하이퍼적 기법인 ䷷ 화산여(火山旅)이다. [출처] 22. 산화비|작성자 김기덕   23. ䷖ 산지박(山地剝)   산지박은 산(☶:艮)이 위에 있고 地(☷:坤)가 아래에 놓여 땅 위에 높이 솟은 산이 아래가 깎여 무너지는 모양이어서 山地剝이라고 한다. 剝은 근본 종자를 의미하는 彔(근본 록)을 刂(선칼 도: 칼, 낫 등)로 베어 열매를 거둠을 이른다. 剝은 안으로 유순히 행하고 밖으로 두터이 드러내지 않으니, 음에 의해 박락(剝落) 되는 때를 알아 밖으로 나아가지 않고 때를 기다려 머무는 덕이 있다. 박괘는 늦가을로서 음이 극성해지는 상강 절기에 해당하니, 낙엽이 지고 열매가 떨어지는 때이며, 대지가 비바람에 침식되어 높이 솟아 깎이는 모습이다. 시에서는 높은 산에 홀로 선 듯한 고독과 절개,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시이다. 또한 외로움이나 사회적 왕따, 궁지에 몰린 자와 같은 절해고도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부터 다섯 번째 문장까지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다가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으로 끝맺는 방법이다. 전체 분위기에서 양의 문장은 중심이 되는 의식이지만 사라져야 할 의식, 아쉬움의 표현인 의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음의 감정은 살고 마지막 남은 양의 감정은 떨어져 나가는 낙엽처럼 아름답지만 허무한 것이다. 이 양의 감정은 아쉬움이며, 허무이며, 또한 다음해를 기약하는 결실이며 씨앗이기도 하다. 지속되는 음의 감정이 종국적인 양의 감정을 밀어내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시기로 보면 한겨울이고, 때로 보면 한밤중이며, 정신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음의 기운이 人(⚏:노음)에서도 지속되다가 天(⚎:소양)에서 언뜻 양의 기운이 나타나지만 한밤의 유성과 같이 사라져버릴 것을 예감함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갖게 하는 시쓰기이다. 이는 강물 위에 살얼음과 같으며 튕겨져 나가기 직전의 샴페인 병마개와 같은 상태이다. 그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몰 직전의 잔광을 그리는 것과 같거나, 엄동설한 직전의 가냘픈 햇살과 같은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땅 위에 솟아 있는 산의 형상을 갖고 있는데, 柔가 剛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소인의 세력이 강대해져 바른 정치를 하려 해도 되지 않는 상황과 같이 음적 정서가 팽배해져 양적인 정서가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양마저 변질시켜버릴 듯한 기세다. 짝수, 땅, 어머니, 여자, 부드러움, 고요함, 아래쪽, 우측, 무거움, 탁함, 어두움, 끊어짐, 들어감, 나중, 끝, 반대, 작음, 천함, 가지 등과 같은 음의 배치를 이룬 후 마지막 연에서 양의 문장을 배치하여 극적인 상황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산지박의 변괘인 호괘는 여성적 감정의 표현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배합괘는 양적 시각의 막판 뒤집기인 ䷪ 택천쾌(澤天夬), 착종괘는 독자의 의도에 맞추는 ䷎ 지산겸(地山謙)이다. [출처] 23. 산지박|작성자 김기덕   24. ䷗ 지뢰복(地雷復)   지뢰복은 地(☷:坤)가 위에 놓이고 雷(☳:震)가 아래에 놓인 괘상으로 땅 속에서 양이 생기기 시작하여 회복하는 모양을 이루니 地雷復이다. 復은 종자인 한 양(日)이 깊은 땅 속에서 서서히 움터 나오는(⼻, 行, 也) 뜻을 가지고 있다. 내면에는 움직임이 있고 외면으로는 유순함의 모습을 갖추었으니 움직여 나아감이 순조로운 모양을 이루고 있다. 復卦는 동짓달(음11월)괘로서 음이 극성한 때이다. 땅 속에서 초목이 발아하는 모습인데, 근본을 회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를 가지며, 서두르지 않고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 사람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初爻만 양이고 모두 음효로 이루어진 모양으로 첫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모두 음의 문장으로 배치하는 방법이다. 음으로 가득한 세상에 작은 양의 새싹이 움트는 형국으로 절망 중에 희망을 묘사하는 시이며, 혼탁함 속에서 근본을 찾고자 하는 시이다.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소생하는 봄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는 정신, 현실, 의지를 표현하는 시쓰기로 새로운 시작의 모양을 뜻하고 있다. 사상으로 표현하면 땅에 속한 물질적인 존재의 미미한 변화만 감지될 뿐, 땅의 형이상적인 형태나 人의 형이상적인 면이나 형이하적인 면들은 모두 음의 상황이다. 또한 하늘도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하늘이나 추상적인 하늘이 모두 음의 상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림으로 그린다면 하늘도, 사람도, 땅도 다 어두운데 땅 속에서만 미미한 생명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등불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며, 시의 제목이나 주제의식에 맞는 하늘적인 요소(눈에 보이는 sky든 정신적인 이상세계든)와 사람과 연관된 삶이나 관념, 또한 땅에 속한 모든 사물과의 차원적인 관계에서 땅의 사물적 요소만이 양으로 표현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양의 사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양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의 사물이다. 팔괘로 보면 우레의 에너지가 땅 속에 살아있는 것이 復의 괘상이다. 겹겹이 쌓인 여러 음효 밑에 다만 한 개의 양효가 있는데,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고 있는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몰 직전의 잔광과 같은 산지박의 시쓰기의 정반대로 극한의 벽을 뚫고 빛이 보이는 새벽과 같은 새로운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한 줄기의 어린 광선이지만 그것은 장차 천지를 지배하며 음기와 암흑을 정복하여 퍼져가는 광명이다. 첫째 단락은 변화하고 생동하는 우레의 형상을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암흑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땅의 형상을 그림으로써 잠에서 깨어나는 천지만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지뢰복의 변괘 중 호괘는 여성적 정한의 감정인 ䷁ 중지곤(重地坤)이며, 도전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고고함의 ䷖ 산지박(山地剝), 배합괘는 음적 대상도 아름답게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착종괘는 환유적 표현인 ䷏ 뇌지예(雷地豫)이다. [출처] 24.지뢰복 |작성자 김기덕   *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   효의 입장에서 시의 형식을 보면 여섯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듯이 보이지만, 하나의 효가 꼭 하나의 문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효가 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세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내용적 연결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섯 개의 효가 압축되어 세 개의 효로 구성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重天乾(䷀)은 乾(☰)으로, 重地坤(䷁)은 坤(☷)으로, 山澤節(䷨)은 離(☲)로, 雷風恒(䷟)은 坎☵과 같이 압축될 수 있기 때문에 세 개의 문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 세 개의 문장도 乾(☰)은 양(⚊)으로, 坤(☷)은 음(⚋)으로, 離(☲)는 음(⚋)으로, 坎(☵)은 음(⚋)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배치의 형태를 참고하여 자유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하나의 시 전체를 천 ‧ 인 ‧ 지의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는 차원의 구분이며, 인간을 중심으로 한 우주만물의 차별적 시각이다. 이 천 ‧ 인 ‧ 지 속에 우리가 쓰고자 하는 모든 시적 대상들이 다 들어 있다. 그 대상을 차원에 따라 구분하여 시의 배치에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구분과 재배치의 효율성은 논리마인드맵 기법을 통해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마인드맵 기법은 둥치에서 줄기, 줄기에서 가지, 가지에서 잎이나 열매로 분화되듯이 주역적 시쓰기에서는 태극에서 양의, 양의에서 사상,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분화되는 과정을 공부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태극이 양의, 사상, 팔괘, 육십사괘가 되듯이 하나의 문장이 두 문장, 두 문장이 네 문장, 네 문장이 여덟 문장, 여덟 문장이 육십사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반대로 육십사 개의 문장이 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두 문장이 될 수도 있으며, 여덟 개의 문장이 두 개의 문장, 네 개의 문장으로 변화될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밀한 법칙이 존재하고 그 법칙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다. 사상의 기본적 요소는 태양(⚌), 소음(⚍), 소양(⚎), 태음(⚏)이지만 이 네 가지의 상이 육십사괘에서는 천 ‧ 인 ‧ 지의 여섯 개의 효 구조로 배치되기 때문에 세 개의 단락을 형성한다. 이 단락은 표면적인 단락과 이면적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 ‧ 서 ‧ 결이나 서론 ‧ 본론 ‧ 결론의 구조를 가질 수도 있다. 팔괘의 시각으로 살펴보면 육십사괘는 乾 ‧ 兌 ‧ 離 ‧ 震 ‧ 巽 ‧ 坎 ‧ 艮 ‧ 坤의 팔괘가 중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하나의 팔괘는 세 개의 효로 이루어져 세 개의 문장으로 만들 수도 있고, 이 세 개의 문장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육십사괘는 다시 팔괘가 될 수 있고, 팔괘는 사상이 될 수 있고, 사상은 하나의 태극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로운 확장과 분화, 팽창이 가능하고, 또한 수축과 압축, 절단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십사괘의 설명과정에서 문장이나 단락으로 표현된 것들은 정확무오한 문법적 해석을 통한 명칭이 아니라 보다 확산되고 재조명된 유연한 명칭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출처] 문장 및 단락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작성자 김기덕   25. ䷘ 천뢰무망(天雷无妄)   천뢰무망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는 雷(☳:震)가 와서 하늘 아래 우레가 울리는 모양으로, 뇌성벽력이 울리면 누구나 하늘을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듯이 천도를 따라 바르게 행하므로 无妄이다. 无妄은 하늘의 마음을 갖고 여색을 멀리하며 본성 그대로 행한다는 뜻이 있다. 본성을 회복하면 망령됨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위에 있는 하늘은 강건하고 아래에 있는 우레는 진동하니 강건하게 나아가는 덕을 갖춘 상으로, 하늘과 같이 공정무사하고 강건한 도로써 본연의 마음을 지켜 하늘에 순응하는 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배치한 후 나머지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 문장은 모두 양으로 배치하는 형식이다. 망령됨이 없이 하늘의 뜻을 따라 쓰는 방법으로 시인의 감정을 최대한 줄이고 하늘의 큰 진리를 쓰고자 하는 방법이다. 자칫 관념적으로 치우치기 쉬우나 절대적으로 시는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소음)와 人(⚎:소양)이 대립적인 관계를 갖고 있어서 서로의 생각이나 표현이 통일을 이루기가 어려우나 天(⚌:노양)이 밝고 강건하므로 하늘의 뜻을 따라 행하면 다툼이나 거침이 없고 통일된 주제 의식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의 전개가 형이상적이고 관념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사물을 끌어와 배치관계를 이미지적으로 만들어 주도록 해야 한다. 사물의 속성이나 시인의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보다 넓은 보편적 진리나 원리를 생각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은 우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가 많고 흔들림이 많은 것이지만 생기가 가득한 단락이다. 두 번째 단락은 지적이고 강건하며, 하늘의 큰 이치가 담긴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레는 땅을 의미하고, 안을 의미하며, 물질적인 형이하를 의미하지만 乾은 하늘을 의미하고, 밖을 의미하며, 형이상을 의미한다. 형이상적인 단락과 형이하적인 단락이 대치를 이루나 형이상적인 단락이 시의 주제성을 이끌고 중심역할을 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따르는 시쓰기이다. 천뢰무망은 하늘을 의미하는 건괘가 위에 있고 우레를 의미하는 진괘가 아래에 있어 우레가 하늘에서 크게 진동하고 있는 모양을 상징한다. 이는 하늘의 엄한 뜻이며 세상을 호령하는 하늘의 명령인 것이다. 하늘의 시각에서 세상과 인간을 향해 우레 같은 의미의 시를 표현으로 나타내 주어야 하는 시이다. 天雷无妄의 변괘 중 호괘는 점점 의식의 확장을 꾀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스케일이 크고 웅장한 시 ䷙ 산천대축(山天大畜), 배합괘는 대지를 뚫고 나오는 나무의 기상을 간직한 ䷭ 지풍승(地風升), 착종괘는 강렬한 남성적 정서에 대한 여성적 정서의 조화를 이룬 ䷡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출처] 25. 천뢰무망|작성자 김기덕   26. ䷙ 산천대축(山天大畜)   산천대축은 山(☶:艮)이 위에 있고 天(☰:乾)이 아래에 있어 물건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높이 쌓이는 모양이다. 대축은 크게 쌓는다는 뜻으로 아래의 하늘은 大 ‧ 玄, 위의 산은 田의 모양이다.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그침이 있으니 산에 하늘의 도가 밀려와 크게 쌓이는 이치가 있다. 흙이 크게 쌓여야 큰 산을 이루고 사람도 학문과 경험이 쌓여야 큰일을 행할 수 있듯이 글을 씀에도 크게 쌓은 사람과 쌓은 것이 없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효를 분석해보면 첫째, 둘째, 셋째 효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강하고 튼튼한 받침대를 형성하듯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감정과 정서, 의지의 표현이 긍정적이고 강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유약한 음이 합하여 모이는 형식이다. 하늘의 양기가 아래로 내려 모이는 것이 대축이다. 또한 밑의 세 양은 흐르는 강물과 같지만 위에 있는 두 개의 음이 가로막음으로 흐르지 못하고 고이게 된다. 마지막 상구는 막혔던 것이 넘침으로 한 순간 세상을 범람하게 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산천대축의 효를 통한 시쓰기는 初九, 九二, 九三의 격앙된 감정이 六四, 六五에서 절제되고 응축되어 고인 내적 감정이 마지막 문장에서 승화되어 흘러넘치는 시의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양(⚌)으로 강하고 건실한 힘이 넘친다. 人은 소음(⚍)으로 내면은 강하지만 외적인 표현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래서 유약한 감정이 넘치려 하지만 天이 이러한 감정을 억제하고 누르면서 강하고 희망적인 승화의 과정을 나타낸다. 大畜은 장애요소가 클수록 큰 감정을 싹틔우고 큰 감정이 승화되어 보다 더 큰 감동을 만들어 내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산 속에 들어 있는 하늘이다. 산 같은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하늘의 큰 뜻이다. 이러한 큰 뜻은 인생의 풍상을 견디고 산같이 살아온 사람일수록 많이 쌓여 있다. 깊은 내공을 쌓고 그 내공을 풀어내는 시쓰기이다. 산이 그 속에 하늘의 큰 에너지를 받아 축적하고 있는 상태이다. 산은 현실이나 사물적인 것이지만 하늘은 이것들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이며, 형이상적인 상징성을 의미한다. 산 속에 감추어진 하늘의 뜻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 요구되는 방법이다. 비행기를 타고 밀림지대를 날아보면 나무의 바다, 풀의 바다가 펼쳐진다. 대해의 물굽이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과 나무들을 키우는 산의 힘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 산이 기르는 힘,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상징적인 접근 방법이다. 山天大畜의 變卦 중 호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단락을 이어주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인 ䷘ 천뢰무망(天雷无妄), 배합괘는 산문형식의 시인 ䷬ 택지취(澤地萃), 착종괘는 철학적, 종교적 시각인 ䷠ 천산돈(天山遯)이다. [출처] 26. 산천대축|작성자 김기덕   27. ䷚ 산뢰이(山雷頤)   산뢰이는 山(☶:艮)이 위에 있고 雷(☳:震)가 아래에 있는 모양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며, 인체로는 턱의 형상으로 위턱은 그쳐있고 아래턱은 움직임으로써 물건을 씹어 몸을 기르는 상이 山雷頤이다. 頤의 의미를 풀이하면 臣(신하신)은 六二부터 六五까지의 음효를 의미하며, 頁(머리혈)은 上九 양효가 머리가 되어 뭇 효를 기른다는 뜻이다. 上九 양효가 위턱이 되고 初九 양효가 아래턱이 되며, 중간의 음효들이 이빨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頤는 음식을 씹어서 몸을 기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수양하여 자신을 기르고 남을 기르는 修己治人의 의미를 가진다. 효로 풀이하면 아래턱과 위턱을 의미하는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빨을 상징하는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형식이다. 이는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도 있게 먹듯 艮으로 그치고 아래의 震으로 동하며, 가운데는 비어있는 입의 모양이다. 마음을 비우고 언어를 절제함으로 시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산뢰이는 대나무와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강하고 단단함이 표면을 감싸고 있지만 내부는 텅 비어서 가볍고 휘어질 수 있는 덕이 있다. 강직함과 절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비우고 푸른 정신으로 꼿꼿한 선비정신과 같은 기질의 시쓰기이다. 또한 속이 빈 피리의 소리와 같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인내와 의지가 담긴 양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의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서 피리는 강하지만 그 소리는 구슬프고 가냘프듯 시의 형식도 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 산뢰이는 ☲의 상으로 땅과 하늘은 양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만 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형이상적인 정신세계와 형이하적인 물질세계가 양적요소로 생기가 가득하지만 시인 자신만 음의 감정에 충일해 있음을 의미한다. 이 음의 감정은 슬픔과 절망에 찬 것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죽임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空의 세계와 같은 것이다. 비어 있음으로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 물질과 정신 속에서의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내면 비우기와 같은 시이다. 팔괘로 보면 산뢰이는 턱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 맨 아래와 맨 위의 양효는 잇몸과 같고 그 안에 있는 네 개의 음효는 이빨처럼 보인다. ☶(산)은 위턱, ☳(우레)는 아래턱과 같은데, 산은 그친다는 뜻으로 움직이지 않는 위턱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우레는 움직인다는 뜻으로 씹을 때 움직이는 아래턱과 같은 이치를 담고 있다. 이렇게 씹음으로써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기른다는 의미의 산뢰이는 물고기를 기르는 바다와 같고, 나무를 기르는 숲과 같으며 새를 기르는 하늘과 같은 것이다.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남에게 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이렇게 기르는 마음으로 마음을 비워 쓰는 시가 山雷頤의 방법이다. 산뢰이의 호괘는 ䷁ 중지곤(重地坤)이며, 배합괘는 처음의 의도가 새롭게 변함으로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 착종괘는 음적 요소들이 주변을 이루고 있지만 정작 시인은 양에 가득찬 시쓰기의 ䷽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출처] 27. 산뢰이|작성자 김기덕   28. ䷛ 택풍대과(澤風大過)   택풍대과는 澤(☱:兌)이 위에 있고 風(☴:巽)이 아래에 있는 상으로 兌(西方金)에 의해 아래의 巽(東方木)이 金克木을 당하여 멸실되며, 本과 末이 虛하여 전도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大過의 大는 큰 하늘을 의미하며, 過는 지나감을 뜻하니 天道가 변하는 중천과도기를 의미한다. 대과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는데, 하나는 큰 허물이 있음을, 다른 하나는 지나간다는 뜻이다. 대과에는 하늘의 도가 크게 변함을 의미하는 뜻이 담겨 있어서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때로 정신문명에서 물질문명으로 본말이 전도되는 오늘날과 같은 시기를 말하기도 한다. 대과는 강한 양이 중간에 끼어 있어서 견실함이 있으나 아래와 위가 허한 음으로 이루어져 본말이 전도되는 상으로, 過는 나아가는 과정(辵:쉬엄쉬엄 쉬어갈 착)이 지나쳐 입이 삐뚤어짐(咼:입이 삐뚤어질 괘)을 의미하여 변하는 속도가 빠름을 말한다.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작품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과 끝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번째에서 다섯 번째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음의 문장에 비해 양의 문장이 많음으로 인해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진리의 비진리, 참에 대한 거짓, 논리에 대한 비논리, 의미에 대한 무의미의 추구와 같은 형식으로 의외성이 있거나 비틀기가 있는 작품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흙, 땅, 지구 등의 형이하적인 요소 중 음의 요소를 취하되 地의 형이상적인 지옥, 어둠의 세계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를 취함으로 개인적인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 또한 人은 노양(⚌)으로 동물적, 육체적인 형이하뿐만 아니라 정신이나 영혼의 형이상적인 면까지 양적인 문장, 해석으로 접근되어 있다. 거기에 天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天의 세계를 제외한 우주적인 형이하의 세계를 양의 세계로 표현하고 다가감으로 지나친 개인적 해석과 주관적 감정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大過卦는 양이 지나쳐서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이니 시인의 감정과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주관적으로 치우친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용적 무리가 따를 수 있으며 균형적 배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불균형의 형식을 가질 수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바람(☴:巽) 위에 놓인 연못(☱:兌)과 같은 모양으로 물 위에 거센 바람이 불어 어지러운 풍파를 일으켜 놓은 듯한 혼란과 불안의 상태이다. 또한 형상이 네 개인 양효와 위아래로 갈라져 있는 두 개의 음효로 되어 있어서 음양의 조화를 잃고 있다. 예를 들면 남녀관계에서 첫효는 사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어린 여자를 사랑하는 격이요, 육효는 삼효와 상응하는 관계이므로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사랑하는 격이니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듯 시에서도 균형과 조화보다는 불균형과 부조화, 그리고 지나친 자기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택풍대과의 변괘 중 호괘는 ䷀ 중천건(重天乾)이며, 배합괘는 ䷚ 산뢰이(山雷頤), 착종괘는 주변 사물로 인해 힘을 얻는 ䷼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출처] 28. 택풍대과|작성자 김기덕   29. ䷜ 중수감(重水坎)   중수감은 위와 아래에 모두 물(☵:坎)이 중첩한 상으로 거듭 험난한 데 빠져 있는 모양이다. 坎은 흙이 파여 구덩이를 이룬 모양으로 어렵다는 뜻과 물이 흐름으로써 흙이 쓸려 파이게 되는, 흐르는 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은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이나 위와 아래의 중에 양이 거하여 중심을 잡아줌으로 양의 강건함이 물 흐르듯 하여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 주는 형상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과 셋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지만 두 번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 또한 넷째, 여섯째 문장도 다섯째 문장이 중간에서 양의 문장으로 기둥 역할을 함으로써 주제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붙잡아 주고 있다. 즉 음의 문장으로 사고의 확장과 변형을 꾀하더라도 중심 문장인 양의 문장에서 시인의 생각과 의식을 잡아 주고, 사고를 한 점으로 모아 줌으로써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人은 노음(⚏)으로 자신의 지나친 감정에 빠져 있는 상태이지만, 天(⚍:소음)과 地(⚎:소양)가 중심을 잡아 줌으로써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人(⚏:노음)의 음적 상상력이 天과 地의 양에 의해 제한되어서 주제의식이나 시적 의도에 갇힘으로써 정서적 안정, 내용적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위에도 물(☵:坎)이요, 아래도 물이므로 두 가지 물이 하나로 잘 섞이는 상태이다. 그래서 첫째 단락과 두 번째 단락이 의미상 크게 달라지지 않고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의 모양을 살펴보면 단락 속에 하나의 핵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이 핵은 주제적 묘사일 수도 있고, 으뜸 되는 철학일 수도 있고, 가장 강렬한 표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핵을 가진 단락의 중첩을 통해 의미를 강조하고 이미지를 집약할 수 있다. 중수감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며, 배합괘는 음이 중심을 잡아주는 ䷝ 중화리(重火離), 도전괘와 착종괘는 부도전괘인 ䷜ 중수감(重水坎)이다.     30. ䷝ 중화리(重火離)   중화리는 상과 하에 불(☲:離)이 거듭된 모양으로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있는 형상이다. 離는 짐승의 발자국이 흩어져 있는 모양으로 새(隹)와 산짐승(离) 등이 그물에 걸림을 뜻하며,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 돌아감과 같이 ‘떠나다’, ‘환하다’, ‘흩어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안팎으로 밝고 환한 세상을 이뤄 만물을 기르는 모양이다. 시간적으로는 밝은 한낮의 때이며 중천을 의미한다. 괘의 모양을 보면 중수감과 반대의 상황이며, 음과 양의 역전을 이루고 있다. 이를 중수감의 해석과 연관하여 생각해 본다면 중수감은 왕성한 음의 감정을 모아 양의 문장이 기준을 잡고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었다. 반면 重火離는 강한 양의 감정을 음의 문장이 중심을 잡고 음의 감정으로 문장 및 내용의 통일을 이루는 방법이다. 양의 감정은 자칫 들뜨기 쉽고 긍정적이며 순응적이어서 평범할 수 있으나 음의 비판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요소가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을 세워 비범하게 해 주는 시쓰기이다. 효의 시각에서 보면 양의 문장들 가운데 음의 문장을 놓아 차분한 감정의 전개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확장하고 퍼져가고자 하는 양의 성질을 응집시켜 집중시키는 역할을 음이 해 줌으로써 주제의식이나 철학성에 따른 통일성 있는 시쓰기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아도 人(⚌)의 노양이 天과 地의 음에 막혀 절제되고 함축되는 의미를 갖는다. 팔괘로 보면 離는 불탄다는 뜻으로 해와 달은 하늘에 걸려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은 땅에 정착하여 자라고 있다. 그럼으로 천지는 생명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광명의 세계가 된다. 날마다 새로운 빛, 한결 같은 정열, 젊음과 생명이 약동하는 밝은 세계를 그리되 그 안에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어둠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불이 타는 불 속에는 재가 생기고 구멍이 생기듯이 눈부시게 빛나기만 하면 가까이 할 수 없다. 밝고 아름답기만 한 사물 속에서 어찌 깊은 철학을 느낄 수 있겠는가? 진정한 생명의 글은 밝은 빛 속의 그늘이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중수감이나 중화리의 글쓰기는 주제의 통일이나 핵이 되는 묘사를 통해 시적 감정을 통일시키는 기법이다. 중화리의 변괘 중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배합괘는 ䷜ 중수감(重水坎), 착종괘, 도전괘는 부도전괘인 ䷝ 중화리(重火離)이다. [출처] 30. 중화리|작성자 김기덕   31. ䷞ 택산함(澤山咸)   택산함은 산(☶:艮) 위에 못(☱:兌)이 있는 모양으로 산의 양기는 아래로 향하고 못의 음 기운은 증발하여 위로 올라가 서로 통하는 형상이다. 산과 연못의 기운이 상통하고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상이니, 咸은 서로 느껴 함께하는 뜻이다. 咸은 서로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로 합하는 ‘다 함’의 뜻을 갖고 있다. 感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咸은 보다 포괄적인 뜻으로 모든 음양의 기운이 서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자연적으로는 하늘의 양기는 산을 거쳐 땅으로 내리고 땅의 음기는 못을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 교통함을 의미한다. 인간적으로는 소남과 소녀가 느끼는 것으로 교합을 의미하며, 수도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도통하는 것이 咸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셋째에서 다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다가 다시 마지막에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음과 양이 교합하여 감정을 주고받듯 서로 상통하는 감상적인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 人은 노양(⚌)으로 이루어지고 天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는 음적이어서 받아들이고, 人은 양적이어서 발산하고, 天은 강함을 순하고 부드러움으로 조화시켜 서로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 팔괘로 풀이해 보면 하늘의 성기인 산이 아래에 있고 땅의 성기인 못이 위에 있는 상으로 서로 기운이 통하는 상태이다. 시쓰기에서도 사람과 세상 모든 만물이 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내용적으로는 감상적이며, 서정적인 것을 의미하며, 기법적으로는 활유적인 기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와의 소통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 세계가 통할 수 있는 시쓰기로 지적인 배치가 아니라 정서적인 배치를 이루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쓰기가 되어야 한다. 咸은 感과 같다. 즉 느낀다는 의미로 음과 양의 두 에너지가 감응하고 협력하여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택산함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적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항구한 이치를 발견하고 쓰는 시인 ䷟ 뇌풍항(雷風恒), 배합괘, 착종괘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巽)이다. [출처] 31. 택산함|작성자 김기덕    뇌풍항(雷風恒)   뇌풍항은 雷(☳:震)가 위에 있고 유순한 風(☴:巽)이 아래에 있어서 함께 순응하여 움직인다. 천지의 법칙은 항구하여 그치는 일이 없다. 하나가 마치면 하나가 시작된다. 해와 달은 하늘의 항구불변의 원칙을 얻었고, 춘하추동의 사계절은 항상 변화하며 있기 때문에 영원한 순환을 계속할 수 있다. 성현도 그 도를 지켜 항구해야 비로소 천지교화가 가능할 것이다. 항구한 것을 깊이 관찰함으로 천지만물의 실상을 볼 수 있듯,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하고 그 진리에 맞는 시쓰기가 바로 뇌풍항이다. 恒은 천지간(二)의 日, 月(日)이 서로 짝하되 끝없이 왕래 순환함으로써 영구히 주야를 밝히듯, 서로의 마음을 합하여 부부로서 항구한 도를 갖춤을 의미한다. 안으로 음목이 뿌리박고 밖으로 양목이 뿌리를 뻗어 장구히 생장하는 모양이며, 인사적으로는 장남이 위엄을 보이고 장녀가 공손히 집안일을 주장하는 상으로 부부의 도를 이루고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처음에 음의 문장이 오고 양의 문장이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 온 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음의 문장이 와서 음과 양의 조화와 균형을 통한 항구적 성장을 표현하고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뿌리를 박고, 人(⚌)은 성장하고, 天(⚏)은 씨앗을 맺음으로 항구적인 법칙을 말하고 있다. 항구한 법칙의 원리를 통해 변함없는 진리의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살펴보면 우레와 바람은 만물을 흔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잠시도 머무르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은 움직임으로, 곧 살아 있음으로 그 상태를 지속할 수 있고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정지되고 고정된 것이 계속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살아 있는 시,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영원할 수 있다. 그것은 사고의 정지와 고정이 아닌 변화와 새로움이며 형식의 낯설게 하기이다. 뇌풍항의 호괘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 택산함(澤山咸), 배합괘, 착종괘는 위에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주는 ䷩ 풍뇌익(風雷益)이다. [출처] 32. 뇌풍항|작성자 김기덕   33. ䷠ 천산돈(天山遯)   천산돈은 위에 天(☰:乾)이 있고 아래에 山(☶:艮)이 있는 모양으로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하늘이 부여한 명을 지키는 상이다. 遯은 돼지(豚: 돼지 돈)와 같이 어리석은 체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를 닦는(辵-쉬엄쉬엄 쉬어갈 착: 점차 움직여 나아감) 의미가 있다. 괘상에서도 아래의 두 음(소인)이 자라 점차 네 개의 양(군자)을 핍박하는 형상이다. 遯은 안으로 산과 같이 굳건한 절개와 자제를 행하고 밖으로는 하늘과 같이 강건한 도로써 소인을 교화하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에서 보자면 천산돈은 소인배적인 생각, 즉 형이하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형이상적인 생각으로 뻗어감을 의미하는 형이상시라고 볼 수 있다. 형이상시는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인식과 철학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시로 철학적, 종교적 경향을 지니게 된다. 형이상시의 중요한 특징은 기상(奇想-conceit)을 중심으로 한 구조인데, 기상은 두 가지 사물이나 개념을 교묘하고 대담하게 연결하여 뜻밖의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시 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 문장이나 둘째 문장은 형이하적인 사물을 끌어오지만 셋째에서부터 여섯 번째까지는 끌어온 사물과 연결되는 추상적 이미지를 배치시키는 방법이다. 밑에 두 개의 음효는 형이하적인 것이며 사물적인 요소이지만 이 요소들이 억눌리면서 형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대체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현실적인 생각, 범속한 것이나 비천한 것을 의미하는데 人과 天은 노양(⚌)으로 성에 속한 것이나 정신적인 것, 고귀하고 고차원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이는 곧 사물의 평범성을 땅에서 취하여 시인의 고결한 정신을 통해 새로운 정신세계를 창출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질적이고 비천한 것은 억제되고 정신적이고 고결한 것은 상승하는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산인 첫째 단락과 하늘인 둘째 단락의 배치를 통해 유사성을 발견하려는 방법이다. 천산돈은 선비적 은둔사상의 발로가 되었다. 은둔 속에 세상을 피해 자신만의 도를 닦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이는 곧 물질이나 사물 그 자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철학, 새로운 추상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의 시쓰기 방법이다. 천산돈의 변괘 중 호괘는 음의 대상에 대한 양의 표현을 이룬 ䷫ 천풍구(天風姤)이며, 도전괘는 강한 남성적 출발에 여성적 마침을 가짐으로 음양의 균형을 꾀하는 ䷡ 뇌천대장(雷天大壯), 배합괘는 생수처럼 솟는 원천의 시인 ䷒ 지택림(地澤臨), 착종괘는 웅장한 스케일의 ䷙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출처] 33. 천산돈|작성자 김기덕   34. ䷡ 뇌천대장(雷天大壯)   뇌천대장은 아래에 天(☰:乾)이 있고 위에 雷(☳:震)가 울리는 모양으로, 안으로는 강건하고 밖으로는 크게 움직여 씩씩한 상을 나타내고 있다. 大壯의 大는 하나(一)가 둘(人)로 늘어나 커지는 것이며, 壯은 문무를 겸비한 장부(士)가 방패(爿: 널빤지, 방패)를 들고 전진함을 뜻한다. 하늘 위에 뇌성이 울리는 괘상으로 양기가 크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시기적으로는 2월(음)로서 양기가 성장하여 초목이 움터 나오려는 때이고 방위로는 동방인 묘에 해당하니 출문하는 의미가 있다. 시에서는 너무 강렬한 의식의 일방적 진행은 시적 정서를 떨어뜨리고 양적 요소에 치우침으로 구호적 성격이 되기 쉽다. 이러한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끝에서 여성적인 정서를 끌어와 남성적 이미지의 상쇄를 꾀하는 방법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에서 네 번째 문장까지는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엔 음효를 배치함으로써 상승된 격정적 감정을 눌러주고 차분한 이미지로 마무리하고 있다. 또한 긍정적이고 밝은 이미지에서 마무리를 어둡고 부정적인 색깔로 처리함으로써 밝은 모습으로만 뻗어가려는 흐름을 끊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노양(⚌)으로 물질이나 심리상태가 모두 양이다. 이런 양적 요소에 노음(⚏)인 天을 배치하여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감정으로 끝을 맺었다. 이는 상반된 감정을 끌어와 불타듯 왕성한 의지적 이미지를 억누름으로 보다 더 양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팔괘로 접근하면 하늘 위에서 우레가 울고 있다. 크게 뻗어가는 상이며 번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뻗다보면 교만해지고 또 가벼워질 수 있는 상태에서 음적 요소로 끝맺음으로 무게와 깊이를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천대장의 변괘 중 호괘는 양의 일관된 진행에 대한 마지막 뒤집기의 ䷪ 택천쾌(澤天夬)이며, 배합괘는 군자의 교화와 같은 ䷓ 풍지관(風地觀), 착종괘는 하늘에 순응하는 시쓰기의 ䷘천뢰무망(天雷无妄)이다. [출처] 34. 뇌천대장|작성자 김기덕   35. ䷢ 화지진(火地晉)   화지진은 땅(☷:坤) 위로 불(☲:離)이 나온 모양으로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올라 나아가는 일출과 같다. 晉은 밝은 기운(日)이 地間(二)에 나타나 환히 밝힘을 가리키니 ‘나아가다’, ‘눈동자’의 뜻이 있다. 晉은 안으로 유순하고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므로 해가 땅 위에 떠올라 세상을 두루 비추는 일출의 모양이니, 본래의 성품을 밝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효로 풀이하면 地의 첫째, 둘째, 셋째 문장은 모두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地의 세 음은 어두운 땅과 같은 현실을 의미한다. 이 어두운 땅, 이슬 젖은 눈물의 땅을 태양이 떠올라 밝게 비추듯이 地의 세 문장은 음의 문장을 이룬다. 이 음의 문장이 있은 다음 네 번째로 양의 문장이 와서 어둠을 가시게 하고 젖은 눈물을 말려 주게 된다. 다섯째 문장에서는 아직 덜 마른 땅처럼 음이 남아 있고,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를 밝고 희망적으로 배치함으로 힘을 내 정진하는 형식의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어둠과 눈물의 땅이지만 人에서 소양(⚎)은 내적 어둠을 묻고 밝은 빛으로 나타남으로 희망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天도 마찬가지로 소양(⚎)으로 차츰 어둠을 걷고 밝아지는 느낌의 방식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晉은 進과 같다. 밝은 태양이 지평선 위에 나타나 순차적으로 하늘에 올라 大明의 세상을 이뤄가는 기상이다. 하늘로 오르는 태양은 아침의 태양이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만물을 따뜻하게 감싸는 꿈과 희망의 시가 바로 火地晉이다. 화지진의 변괘 중 호괘는 꿈과 희망을 밝히는 화지진의 내면은 슬픔과 고통의 극복임을 의미하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배합괘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염원의 ䷄ 수천수(水天需)이고, 도전괘 및 착종괘는 절명시나 비탄시의 ䷣ 지화명이(地火明夷)이다. [출처] 35. 화지진|작성자 김기덕   36. ䷣ 지화명이(地火明夷)   지화명이는 위에 땅(☷:坤)이 있고 아래에 불(☲:離)이 있는 상으로 해가 져서 땅 속으로 들어간 모양으로 밝음이 어두움에 묻힌 상태이다. 明夷의 明은 日과 月의 會意字로서 해와 달이 주야로 밝힘을 의미하며, 夷는 大+弓 으로 큰 활로 인해 상처를 입음을 의미한다. 明夷는 안으로는 밝으면서도 밖으로는 유순함으로 행하는 상이다. 시에서는 밝은 감정을 숨기고 우수와 고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문장만 양의 문장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음으로 배치하여 해와 달이 사라진 암흑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절명시나 비탄적 감정의 시로 꿈과 희망이 없는 세계를 표현하는 기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음(⚍)으로 안으로는 밝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밖으로 밝게 표현하지 않고 어둡고 음침하게 표현함으로 음적인 감정표현이 된다. 또한 天은 노음(⚏)으로 음적인 감정이 발전 심화됨으로 어둠은 더욱 어둡게, 슬픔은 더욱 슬프게 표현되어 절망적인 비탄의 감정이 지배하게 된다. 팔괘로 풀이하면 첫째 단락은 해나 달 같은 밝음이 오지만 두 번째 단락에서 지하에 갇히게 됨으로 기쁨이나 행복은 사라지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만 남아서 어둠을 표현하고 있다. 밝은 감정도 어둡게 몰아가는 방법으로 감정의 극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고난을 참고 견디는 모양으로 인내하고 견디는 고난극복의 상이다. 明夷는 태양이 땅 속에 들어간 상태, 고난에 처한 상태이며, 밝은 것이 패하는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밝고 아름다운 세상보다는 어둡고 험한 세상을 표현하고, 그 속성에 맞는 사물의 배치를 이루어 절망적으로 나아가는 시쓰기이다. 지화명이의 변괘 중 호괘를 살펴보면 ䷧ 뇌수해(雷水解)이며, 배합괘는 ䷅ 천수송(天水訟), 도전괘, 착종괘는 ䷢ 화지진(火地晉)이다. 변괘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변괘는 본괘에 대한 다른 방향의 시각이라고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본괘라는 하나의 사물이 있다면 옆에서 보고, 위에서 보고, 밑에서 보고, 속에 들어가서 봄으로 그 사물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시의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다. [출처] 36. 지화명이|작성자 김기덕   37. ䷤ 풍화가인(風火家人)   풍화가인은 안으로 불(☲:離)이 있고 밖으로 바람(☴:巽)이 불어 바람을 타고 불이 성하는 모양이며, 밖에서 들어와 안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아래의 離(☲)는 밝은 생명력을 뜻하는 人이요, 위의 巽(☴)은 안을 가지런히 정돈함을 의미하니 齊家의 家에 해당한다. 또한 장녀(巽)가 위에서 가사를 이끌고 중녀(離)는 아래에서 밝게 응하니 가인이다. 가인은 집안을 바르게 하는 괘이다. 집안을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제 몸을 먼저 닦아야 하듯 한 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가인의 시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이다. 효로 살펴보면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의 반복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발견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문장의 배치는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다가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의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양과 음이 섞여서 갈등과 고민, 번뇌의 모양을 이루다가 天(⚌)에서 긍정과 화합과 깨달음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는 속과 성이 섞인 세상의 삶에서 성을 깨닫고 성적인 삶을 추구하는, 종교는 아니지만 종교적인 성향의 자기성찰적인 시쓰기이다. 팔괘로 보면 家人은 집안사람이란 뜻으로 가족을 의미한다. 바람과 불을 가정의 심볼로 표현했는데, 불이 타면 바람이 생기고 바람은 다시 그 불을 부채질하여 확대 발전된다. 이는 가정이 잘 다스려지면 바른 길이 시작되고 국가와 사회로 뻗어가 큰 발전을 이룸과 같다. 시에서는 가정의 바른 도는 수신에서 시작되듯이 자신을 돌아보고 깨달음으로써 시의 큰 발전은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 풍화가인의 시쓰기는 내면으로 돌아가 근본을 살펴봄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풍화가인의 변효 중 호괘는 비정석적, 비상식적인 부조화의 배치인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어긋남에 의해 강조되는 시인 ䷥ 화택규(火澤睽), 배합괘는 강한 감정표출의 ䷧ 뇌수해(雷水解), 착종괘는 불을 때듯 하는 간절한 시의 ䷱ 화풍정(火風鼎)이다. [출처] 37. 풍화가인|작성자 김기덕   38. ䷥ 화택규(火澤睽)   화택규는 연못(☱:兌)이 아래에 있고 불(☲:離)이 위에 있는 모양으로 밖의 불은 위로 타오르고 안의 연못물은 아래로 고여서 서로 어긋나게 나아가는 상이다. 괘상으로 볼 때 離는 日行을 뜻하고 兌는 月行을 가리키는데, 일행도수에 비해 월행도수가 어긋나는 것이 규이다. 나무를 구부리고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 세상에 보임은 睽卦에서 取하였다고 한다.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에서 어긋남에 의해 시가 강조되고 강렬해져 깊은 감동을 주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칭적, 또는 대조적인 표현 기법을 통해 감동을 더해 주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도입부인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문장만 양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이 와서 양의 문장과 음의 문장이 교차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서로 어긋나는 반대 방향의 시각, 표현을 통해 도입부에 제시한 표현을 강조하고 의미를 확장시키는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확실한 주제적인 표현을 내걸고 그 표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표현을 人(⚎)이나 天(⚎)에서 대조적, 대칭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의미의 확장을 꾀하고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처음의 주제적 표현을 강조해 주는 시쓰기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연못(☱)은 불과 물의 관계처럼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불은 위로 솟아오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의 향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다. 이는 강한 반발심을 의미하며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睽라는 한자의 뜻이 ‘사팔눈’, ‘노려보다’, ‘등지다’의 의미이듯 삐딱한 시각, 거꾸로 보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가 ‘삐딱하게 보기’이며, ‘거꾸로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많은 시인들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음과 양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끌어오거나, 오행의 상극의 관계를 알고 사물을 끌어온다면 ‘삐딱하게 보기’나 ‘거꾸로 보기’, 또는 ‘반대적인 접근’, ‘대칭적인 관계’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시의 정서나 의미를 강조하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화택규의 변괘 중 호괘는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 배합괘는 슬픔과 우울에 침잠된 정서의 ䷦ 수산건(水山蹇), 착종괘는 대결구도적 배치의 ䷰ 택화혁(澤火革)이다. [출처] 38. 화택규|작성자 김기덕   39. ䷦ 수산건(水山蹇)   水山蹇은 水(☵:坎)가 위에 있고 山(☶:艮)이 아래에 처한 모양인데, 험한 것을 보고 안에서 그쳐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를 어기고 전진한다면 큰 난관에 빠지므로 경계하여 蹇이라 하였다. 蹇의 의미를 살펴보면 외괘인 坎은 北方水로서 추운 겨울철에 해당하여 寒이고, 내괘인 간은 그치는 것이므로 발(足)이 얼어붙어 나아가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시에서 蹇의 상황은 큰 난관에 부딪혀 절망에 빠져있는 감정을 의미하며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음의 문장이 오고,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그리고 다섯째는 양의 문장이 온 후 여섯째는 음의 문장이 오는 형식이다. ‘첫째 문장’이나 ‘둘째 문장’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 문장의 개념은 표면상의 한 문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상, 내용상의 문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첫 번째’라고 표현했더라도 두 개, 또는 세 개의 문장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蹇의 여섯 효는 山戰水戰의 험난한 역경을 겪은 괘상이며, 산 위에서 비를 만나는 상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삼효와 오효가 양효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효는 산의 꼭대기, 곧 높은 이상과 같은 것이고, 오효는 자아를 상징하므로 높은 이상의 자아를 가지고 있으나 현실은 절망적이기 때문에 그 절망감은 더욱 큰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노음(⚏)으로 한겨울과 같으며, 人과 天은 소음(⚍)으로 새싹을 기다리는 봄과 같다. 이는 한겨울의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봄을 열망하지만 현실은 아직 얼어붙은 동토의 극심한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시에서도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둠이 짙듯이 봄을 기다리는 한겨울의 삭막한 감정이 더욱 절박한 것과 같은 절망적 표현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산과 물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험난한 형국으로 첫째 단락은 山(☶:艮)으로 막힘이 있는 정서의 답답함을, 둘째 단락은 水(☵:坎)로 구덩이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을 표현하는 절망적 표현기법이다. 수산건의 변괘 중 호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며, 도전괘는 ䷧ 뇌수해(雷水解), 배합괘는 ䷥ 화택규(火澤睽), 착종괘는 ䷃ 산수몽(山水蒙)이다. [출처] 39. 수산건|작성자 김기덕   40. ䷧ 뇌수해(雷水解)   뇌수해는 위로 움직임이 있는 우레(☳:震)가 動하고, 아래에는 험한 물(☵:坎)이 있어 움직임으로써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외괘인 震은 밖으로 움직여 나오는 것이니 童牛의 뿔(角) 형상이다. 내호괘인 離는 伐兵의 상으로 刀가 나오며, 中虛하여 심성이 유순한 牛로 나타나기도 한다. 解는 험한 내적 과정을 지난 후 밖으로 순순히 풀려나오는 것을 상징하는 괘인데, 시에서는 가슴에 맺혔던 감정을 밖으로 술술 풀어내는 감정표출의 시를 의미한다. 일부는 측상의 시, 배설의 시라고도 하지만, 여기에는 감정의 절제와 언어의 조탁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감정표현에 대한 적절한 묘사가 필요하다. 효로 풀이해 보면 첫째는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며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뇌수해의 모양을 보면 이효와 사효의 양이 열린 입과 같고, 삼효는 입안의 여자 혀와 같은 형상으로 쏟아내는 감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地와 人은 소양(⚎)으로 이루어져 안에 맺힌 것들이 풀려 나오는 형상이지만, 아직 天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는 天(마음)에 맺힌 감정들이 人(언어)과 地(행동)로 표출되고 있는 과정을 나타내 주고 있다. 팔괘롤 풀이하면 뇌수해의 우레는 움직이는 것이고 물은 험난한 것이므로 험난함에서 벗어남을 상징한다. 봄 우레에 봄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레가 울고 봄비가 내리면 얼었던 세상이 풀리며 온 세상에 초목이 피어나듯이 해는 풀리는 감정을 의미한다. 첫째 단락은 坎으로 고난이나 심적 갈등에 대한 표현을 의미하며, 두 번째 단락에서는 변화에 대한 도약적 감정의 표현을 통한 감정표출의 시이다. 뇌수해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서적 안정을 이룬 높은 성취도의 ䷾ 수화기제(水火旣濟)이며, 도전괘는 큰 난관의 ䷦ 수산건(水山蹇), 배합괘는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 ䷤ 풍화가인(風火家人), 착종괘는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이다. [출처] 40. 뇌수해|작성자 김기덕   41. ䷨ 산택손(山澤損)   산택손은 산(☶:艮) 아래 연못(☱:兌)이 놓인 상황으로 아래에 있는 연못의 기운이 발하여 산에 덜어주는 상이다. 윤택한 못의 기운이 산속의 풀과 나무와 짐승들에게 생기를 공급하고 활력을 주듯 안을 덜어서 밖에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損은 물건의 수효(員:수효원)를 손으로 헤아려 덜어주는 뜻과, 어린 생명(具)이 모태(口) 밖으로 나오는 것을 손(手)으로 받아내는 뜻이 있다. 시에서는 힘과 용기를 주거나 위로를 줄 수 있는 찬양시, 헌시, 칭송시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 損은 아래 백성의 것을 덜어 위(政府)를 더해 주어 백성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위를 의미하는 부모나 선배, 선생님이나 상사, 떠받드는 애인 등으로 덜어 주는 정신적 감정의 표현이 바로 산택손의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엔 양효가 오고 셋째, 넷째, 다섯째 문장엔 음효가 왔다가 마지막 여섯째 문장엔 양의 문장 배치로 끝맺는 형식이다. 첫째, 둘째 문장에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며 의지적인 장점이나 강점을 배치하고, 삼, 사, 오효에서 열악한 현실이나 부정적 현실을 끌어와 대치시킨 후 마지막에서 찬양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쁨과 힘을 줄 수 있는 시쓰기의 방법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양(⚌)인데, 이는 넉넉함이고 풍요함을 의미한다. 한낮의 태양과 같은 뜨거운 열기이며, 한여름과 같은 왕성함이다. 地의 이 왕성함이 노음(⚏)인 人이나 소양(⚎)인 天에게 덜어 줌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損의 형상은 澤(☱:兌)의 삼효가 음효로서 그 모습이 마치 아래에서 삼효를 떼어내어 위의 山(☶:艮)에 있는 사효, 오효의 음에 보태어 주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봉사하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산택손의 반대인 풍뢰익(䷩)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 주는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단락은 기쁨과 풍요함이며, 둘째 단락은 막힘과 부족함이 있어 채워지는 느낌의 시쓰기 방법이다. 산택손의 변괘 중 호괘는 중첩된 음의 기운 속에 양의 기운이 살아나는 ䷗ 지뢰복(地雷復)이며, 도전괘는 꿈과 희망의 시인 ䷩ 풍뢰익(風雷益), 배합괘, 착종괘는 감상적이며 정서적인 교통을 이루는 ䷞ 택산함(澤山咸)이다. [출처] 41. 산택손|작성자 김기덕   42. ䷩ 풍뢰익(風雷益)   풍뢰익은 바람(☴:巽) 아래 우레(☳:震)가 일어나는 모양으로 바람은 아래로 내려오고 우레는 위로 올라가 서로 부딪히며 만물이 크게 동요, 진작하여 유익함이 생기는 상이다. 益은 초목을 고무 진작시켜 가지가 무성히 성장하는 상인데, 震은 양목으로 뿌리부터 줄기를 뻗어나가는 것이요, 巽은 음목으로 가지에 꽃과 열매가 열리는 모양이다. 益은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위하여 성의와 노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태양이 땅 위의 모든 생명들이 원하는 열과 빛을 보내어 생성 발전시키듯이 고난에 처한 사람이나 아랫사람, 아니면 서민이나 죄인, 불우한 현실의 사람들을 위해 희망이나 빛이 될 수 있는 시를 풍뢰익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이지만 둘째, 셋째, 넷째 문장이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아래쪽이 부족함을 상징하지만, 다섯째, 여섯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옴으로 넉넉함을 덜어주며 희망적인 결말을 가져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는 소음(⚍)으로 쇠퇴해 가고 있는 상황이며, 人은 노음(⚏)으로 지극히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여기에 天이 노양(⚌)으로 강하고 왕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아래쪽에 힘을 더해 줌으로 유익함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괘로 보면 위의 바람은 동남방을 의미하며 순조로움을 상징한다. 동남방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만물을 싹틔우며 이롭게 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우레는 움직임이고 변화여서 쉽게 받아들이고 유익해짐을 상징한다. 첫 단락은 震괘로 아랫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즐겁게 하고 감동받게 할 수 있는 표현이나 메시지라면, 둘째 단락의 風은 그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결실을 이루게 하는 손길이며 유익과 행복을 줄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 풍뢰익의 변괘 중 호괘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시인 ䷖ 산지박(山地剝)이며, 도전괘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주는 헌시나 찬양시인 ䷨ 산택손(山澤損), 배합괘와 착종괘는 천지만물의 이치를 발견한 ䷟ 뇌풍항(雷風恒)의 시쓰기이다. [출처] 42. 풍뢰익|작성자 김기덕   43. ䷪ 택천쾌(澤天夬)   택천쾌는 연못(☱:兌)의 기운이 증발하여 하늘(☰:乾) 위에 있는 모양으로 여섯 번째 효인 음이 아래 다섯 양에 의해 처단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夬는 아래로 하늘의 강건한 덕이 있고 위로는 연못의 기쁨이 있어서 마지막 남은 문제를 척결함으로써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시적으로 하나의 소재나 주제의식에 대한 양적인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 버림으로 강렬한 마무리를 갖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에서 다섯 번째 문장까지는 한 시각의 일방적인 묘사나 철학적 접근이 마지막 문장에서 뒤집어지거나 새로운 결론, 또는 생경한 표현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은 모두 노양(⚌)으로 강한 이미지의 표현, 또한 긍정적 접근이 이루어지지만 天에서 소음(⚍)이 옴으로 지속되던 긍정적 감정을 감추고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낯설게 하기,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확실한 강조의 표현으로 마무리함을 의미한다. 팔괘로 보면 澤天夬(䷪)는 모든 양효 위에 한 개의 음효가 위치하고 있어 모든 선을 누르면서 악의 세력이 높은 지위에 군림하고 있는 상태이다. 夬는 ‘결단한다’, ‘결행한다’는 뜻인데, 악의 발효를 배려하기 위해 궐기하고 준비하는 상태와 같다. 이는 하괘인 天(☰)과 상괘인 못(☱)으로 나뉘어 두 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 것 같지만, 실은 다섯 개의 양과 한 개의 음으로 나뉘어 형식적, 또는 실질적 두 단락으로 구분되는 형식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째 단락은 긍정적 진행의 묘사가 이루어지고 두 번째 단락에서 이를 뒤집는 간략한 문장, 또는 한 문장의 핵심을 찌르는 반어적 결론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택천쾌의 변괘 중 호괘는 힘 있고 밝은 시인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음적인 대상을 밝고 강한 남성적으로 표현한 ䷫ 천풍구(天風姤), 배합괘는 고고함의 경지인 ䷖ 산지박(山地剝), 착종괘는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 천택리(天澤履)이다. [출처] 43. 택천쾌|작성자 김기덕   44. ䷫ 천풍구(天風姤)   천풍구는 하늘(☰:乾) 아래 바람(☴:巽)이 부는 모양으로, 가장 아래에 처한 一陰이 다섯 양을 쫓고 있는 형태이고, 또한 음이 처음 상태로 음을 거느리는 后가 되는 상을 의미한다. 姤는 안으로는 유순한 가운데 밖으로 강건함이 있으니 위의 강건한 乾父의 명을 좇아 아래에 巽長女가 그 도를 따르는 괘로서 하늘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만물에 두루 파고드는 상태이다. 절기로 보면 夏至인 한여름으로 음력 5월경이며, 하루는 가장 환한 정오 무렵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여성적인 음의 시작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효가 음인 여성적 시작을 의미하는데, 둘째 효부터 여섯째 효까지 양의 효로 이루어졌으므로 여성적인 음의 시작이지만 절망이나 고통, 분노와 같은 것이 아닌 밝고 희망적이며, 아름다운 시각의 모성적 따뜻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의 대상을 양적으로 표현하는 시쓰기이다. 그렇다면 음의 문장과 양의 문장은 어떻게 만들고 구분할 수 있을까? 첫째는 음적인 사물들의 결합이며, 둘째는 음적인 상태나 감정, 분위기의 형성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보면 이마, 콧날, 치아, 광대뼈와 같은 것들은 양적인 요소이지만, 콧구멍, 귓구멍, 입과 같은 부분은 음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 ‧ 음적 요소와의 결합을 통한 양의 문장, 음의 문장이 있다. 또한 여기에 양적 ‧ 음적 감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도 양의 문장, 음의 문장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이’는 양적 요소이지만 어떤 감정이나 상태와 결합하느냐에 따라 음이 될 수 도 있고 양이 될 수도 있다. “이가 반짝였다.”라는 문장은 양적 요소에 양적 상태가 결합되어 양의 문장을 만들어 주지만, “이가 부러졌다.”라는 표현은 양적 요소와 결합했지만 상태가 음적 요소이므로 음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물에는 음과 양이 공존하기 때문에 양적인 요소라 해도 그 안에는 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장의 음과 양의 구분은 사물적 요소보다는 상태나 감정적 요소에 의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사상에서 天, 人, 地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형식적 의미의 단락일 수도 있으나 天(성) - 人(성과 속의 공존) - 地(속)의 차원이나, 천(형이상) - 인(공존) - 지(형이하)의 구분과 같은 내용적인 단락이 될 수도 있다. 姤의 地는 소양(⚎)으로 밝음을 지향하고 있으며, 人과 天은 모두 태양(⚌)으로 한낮과 같은 밝은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하늘에서 부는 바람은 음산하고 무서운 바람이 아니라 밝고 환하며, 초목을 생장시키는 유익한 바람이다. 그러므로 천풍구의 시는 밝고 아름다운 감정의 유익하고 정감 있는 접속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姤는 만난다는 뜻이다. 한 柔가 다섯의 剛을 만난 형태로 많은 남자들 사이에 한 여자가 있어서 조종하는 형상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주도하에 매사가 진행되며, 남성 못지않게 강한 여자의 입김에 세상이 휘둘리게 되는 상이다. 이는 시에서 여성적인 시각의 주도적 진행을 의미하며 남성적인 강하고 밝은 분위기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천풍구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밝고 강한 ䷀ 중천건(重天乾)이며, 도전괘는 양의 진행을 뒤집어 의외의 음적 결말을 맺는 ䷪ 택천쾌(澤天夬), 배합괘는 본성을 회복하고, 근본을 회복하는 ䷗ 지뢰복(地雷復), 착종괘는 양 가운데에 음을 배치하여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출처] 44. 천풍구|작성자 김기덕   45. ䷬ 택지취(澤地萃)   택지취는 땅(☷:坤 ) 위에 물이 고여 연못(☱:兌)이 된 모양으로 사방의 물이 두루 합하여 모이는 것을 말한다. 萃의 뜻을 보면 병졸들이 모이듯 초목(艹)이 무성하게 우거져 어우러진 의미가 있고, 읽을 때에는 췌가 아닌 취로 발음한다. 萃는 안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밖으로는 기쁨의 덕이 있어 물이 대지를 흐르며 합쳐져 마침내는 큰 바다를 이루어 출렁이는 모양을 나타낸다. 이는 시쓰기에서 대하를 이루는 듯한 흐름의 산문시를 의미하며, 형식이나 틀이 없이 이미지의 숲을 이루는 방법이다. 물은 물끼리 모여 흘러가듯 주제의 통일을 이루어야 하며, 정서의 동질적인 결합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서사적 구성도 택지취의 시라고 할 수 있다. 택지취의 효를 살펴보면 초효에서 삼효까지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실질적인 리더인 사효와 오효가 양으로 구성되어 강력한 힘의 구심점을 이루어 나아가는 상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핵심은 사효, 오효이며, 강한 주제의식으로 집중된 시이다. 사상으로 보면 地는 노음(⚏)으로 다양한 사물적 요소일 수도 있고, 흩어진 생각의 단편들일 수도 있다. 人(⚎)에서 모아져 표출되었다가 天(⚍)에서 강하게 마무리 짓지 않고 여운을 남기듯 끝맺음을 하였다. 천 ‧ 인 ‧ 지의 의미는 넓게 보면 세상만물을 상징한다. 하늘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물도 다 끌어올 수 있고 결합, 배치가 가능하다. 또한 작게 보면 사람의 얼굴과 같은 것이다. 눈썹 위로부터 이마는 天이요, 눈썹부터 코끝까지는 人이요, 인중부터 턱까지는 地로 구분하여 초년, 중년, 말년으로 관상을 보듯 그 응용의 세계는 무한하다. 팔괘로 풀이하면 취는 모이는 것의 상징이다. 아래에선 유순하고 위에서는 즐거워한다. 강건한 군주와 유순한 신하가 도리를 지키고 서로 호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인재가 모이고 복된 것이 모여온다. 시에서도 다양한 사물과 다양한 사고들이 하나의 핵심 주제로 모여 장구한 흐름을 만드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 사고의 흐름을 이루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시이다. 모이는 데는 특별한 형식이 없다. 자석에 쇳가루가 모이듯 시인의 강한 정서의 힘에 이끌린 사물과 의식들의 일관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택지취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점차적으로 사고의 확장과 차원의 상승을 추구하는 ䷴ 풍산점(風山漸)이며, 도전괘는 땅 속에서 싹이 움트는 형상인 ䷭ 지풍승(地風升), 배합괘는 축적된 에너지의 강한 시심을 풀어내는 ䷙ 산천대축(山天大畜), 착종괘는 기뻐하며 순하게 나아가는 모양인 ䷒ 지택림(地澤臨)이다. [출처] 45. 택지취|작성자 김기덕   46. ䷭ 지풍승(地風升)   지풍승은 땅(☷:坤) 속에 초목(☴:巽)이 뿌리를 박고 움터오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升은 안으로 순하고 밖으로는 유순함이 있어 음도가 성숙해가는 과정이며, 음물이 점차 쌓여 오르는 상이다. 아래의 巽은 나무를 의미하는데, 바람이 안으로 파고들 듯 땅 속에 뿌리를 내리는 모양이다. 위의 곤은 초목을 생육시키는 땅이니 땅 속에서 싹이 움터서 나오는 형상이다. 시에서의 기법은 희망적 감정이나 현실의 꿈을 상징하는 씨앗을 내면에 싹틔우고 암담한 현실, 또는 절망적 상황의 대지를 뚫고 나오는 기상이 있는 배치의 시쓰기이다.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인데,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씨앗과 같은 존재이다. 이 씨앗들이 땅(☷)에 숨겨져 아직은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살짝 모습만 비추고 있는 형상이다. 핵심적인 의식이 모여 있는 문장으로 화분(음의 문장들) 속에서 살짝 고개 내밀기 시작한 새싹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다. 地(☷)는 화분의 흙과 같은 존재로 덮어주고 감추어주는 역할을 하며, 핵심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화분은 크게 보면 전 지구적인 땅이며, 소우주적인 몸이며, 영원한 세계로 향한 우리의 정신적 토대를 의미한다. 地風升의 시적 분위기는 땅 속에 나무가 있어 싹이 트고 마침내는 큰 재목이 되는 상으로 구이, 구삼의 두 효가 바르고 깊은 뜻을 담고 있어 전체적인 시의 성장을 이루게 하는 형식이다. 사상의 시각으로 보면 地는 소양(⚎)으로 땅 위로 솟아오르는 강한 힘이고, 人의 소음(⚍)은 솟아오르고자하는 힘을 억누르고 있는 상이다. 天은 노음(⚏)으로 이러한 의식이나 상황을 덮고 있는 존재로 아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다. 웅비하는 시의식의 감춰짐이나 내면의 배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升은 땅을 의미하는 坤卦가 위에 있고 바람(나무)을 의미하는 巽卦가 놓여서 크게 발전하는 것을 상징한다. 부드러운 새싹이 때를 맞춰 성장하는 상태로 종순한 태도로 순리에 따르는 상이다. 아직은 어리고 약한 새싹이라서 사나운 비바람을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새싹은 무럭무럭 자라 머잖아 의젓한 나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발전적인 감정을 담고 있는 시가 바로 지풍승의 시이다. 지풍승이 변화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양을 살펴보면 호괘는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을 추구하는 ䷵ 뇌택귀매(雷澤歸妹)이며, 도전괘는 대하를 이루듯 흐르는 산문시인 ䷬ 택지취(澤地萃), 배합괘는 강건한 도로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 천뢰무망(天雷无妄), 착종괘는 어두운 현실을 따뜻하게 녹여줄 수 있는 시쓰기의 ䷓ 풍지관(風地觀)이다. [출처] 46. 지풍승|작성자 김기덕   47. ䷮ 택수곤(澤水坤)   택수곤은 위에 연못(☱:兌)이 있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연못의 물이 마른 모양으로 곤궁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困卦는 剛爻가 柔爻에 의해 가려져 험난함을 나타내는데, 못에 물이 없어 곤궁한 상황으로 고난을 상징하고 있다. 시에서도 곤궁한 상황, 절망적 현실 묘사의 방법으로 희망적인 것을 과거나 미실현의 단계에 놓고 절망적인 요소를 현재나 현실 진행단계로 놓아 음적인 요소가 양적인 요소를 지배, 또는 덮어버림으로써 현실의 절망을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채송화, 맨드라미 웃음 짓던 토담은 허물어지고, 꿈에 부풀던 항아리들은 깨어져”와 같은 구절에서 양의 요소들이 음의 요소에 의해 허물어지고 깨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음효와 양효의 대조적인 상황에서 음이 양을 덮어버림으로 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시쓰기이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 번째는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양의 문장을 포위, 덮어버림으로 음적인 상황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인 地는 소양(⚎)으로 음을 기반으로 해서 양이 뻗어 나오고 있는 상이다. 둘째 단락인 人 또한 소양(⚎)으로 음의 토양에서 양이 자라고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인 天에서 소음(⚍)이 되어 지금까지 기반이 되었던 양적인 요소들이 부정되고 음적인 요소로 변함으로써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감정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감정으로 변화되게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곤괘는 연못 아래에 있는 물로 물이 마른 연못을 상징한다. 困은 곤란, 곤궁, 곤고한 상태이니 口(상자) 속에 木(나무)이 들어 있는 상이다. 나무는 두텁고 넓은 땅에 뿌리 내리고, 높고 시원스런 공간으로 줄기를 펴고 가지를 뻗으면서 막힘도 거리낌도 없이 자라는 것인데, 형틀에 갇힌 형상을 이루어 곤고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시적 감정을 통해 물이 마른 연못의 곤고함 같은 마음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택수곤의 變卦들을 살펴보면 호괘는 마음의 수양과 깨달음이 있는 ䷤ 풍화가인(風火家人), 도전괘는 음양이 교차한 맑은 샘물 같은 시의 ䷯ 수풍정(水風井), 배합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의미하는 ䷕ 산화비(山火賁), 착종괘는 절제된 시어, 함축적 운율의 시쓰기인 ䷻ 수택절(水澤節)이다. [출처] 47. 택수곤|작성자 김기덕   48. ䷯ 수풍정(水風井)   수풍정은 나무(☴:巽) 위에 물(☵:坎)이 있는 모양으로 아래로 井자의 나무를 놓아 샘물이 위로 솟아오르는 우물의 형상이다. 井은 안으로 겸손하고 밖으로 과감히 행하는 덕이 있으며, 땅 속의 물을 끌어올려 두루 우물물의 혜택을 베푸는 괘이다. 땅을 깊이 파야 맑은 샘물이 나오듯 마음을 가라앉히고 맑게 하여 정신과 육신이 청정함으로 만사를 통하니, 시에서도 마음을 맑게 하여 깊은 샘을 파듯 심오한 정신의 깨달음을 표현하는 우물과 같은 시쓰기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이며,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이다. 이 형식은 첫째 음의 문장, 둘째 양의 문장, 셋째 음의 문장인 ☵의 형태로 압축될 수도 있다. 시는 정서와 사상의 우물파기이다. 음과 양이 교차한 감정의 직조를 통해 맑은 샘물 같은 시를 쓰고자 하는 방식이 바로 수풍정의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 人과 天은 소음(⚍)으로 음과 양이 하나씩 교차하고 있다. 이는 섞어 짜기와 같은 직조의 모양이다. 나무로 우물 정자의 침목을 만들 듯 음과 양의 문장이 교차를 이루어 샘물과 같은 진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생 ‧ 로 ‧ 병 ‧ 사 ‧ 애 ‧ 오 ‧ 욕, 이 모두가 기쁨과 슬픔으로 섞어 짠 삶이듯 세 개의 단락이 감정의 교차, 표현의 교차, 욕망의 교차를 이루며 심오한 인생의 철학이 있는 시를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井은 우물이다. 한 고을은 옮길지라도 우물은 옮길 수가 없다. 줄기차게 샘솟는 근원이 땅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우물은 항상 맑은 물을 담고 줄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갈증을 해소하게 하고 생명을 키워 준다. 이러한 우물처럼 시는 누구나 읽고 깨달음을 얻으며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우물의 생명력처럼 시 속엔 영혼을 살리는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수풍정의 시쓰기는 영혼의 우물파기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두레박을 통해 맑은 물을 퍼 올리듯, 또한 나무(☴)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줄기를 통해 물을 끌어올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듯 결실하는 시이다. 수풍정의 특색은 진리의 샘물과 같은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음과 양의 섞어 짜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꽃이나 열매와 같은 긍정적 향기나 삶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후련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풍정의 변괘 중 호괘는 어긋남의 대칭적, 대조적 기법인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음의 요소가 양을 지배하는 절망적 상황의 ䷮ 택수곤(澤水困), 배합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 신 ‧ 구의 조화, 남녀의 조화와 같은 상반된 관계의 조화를 의미하는 ䷔ 화뢰서합(火雷噬嗑), 착종괘는 흩어놓기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이다. [출처] 48. 수풍정|작성자 김기덕   49. ䷰ 택화혁(澤火革)   택화혁은 연못(☱:兌)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연못 속에 불이 들어있는 상이다. 위의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래의 불은 위로 타올라 水 ‧ 火가 서로 대결하는 상태이다. 물은 불을 끄려하고 불은 물을 말리려 하는 가운데 상대를 고쳐 변하게 하니 革이다. 革은 안으로 밝고 밖으로 기쁨이 있으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른 괘로 곡식이 익어 결실하는 때를 의미한다. 시에서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으로 더 넓은 사고의 확장과 이미지의 다양성 추구를 위한 것이다. 하늘을 선명하게 그리기 위해 어두운 땅을 배치한다든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기 위해 야수를 배치하는 기법과 같은 것인데,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의 전체적인 조화와 새로움을 위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택화혁을 효로 접근해 보면 첫 문장은 강한 양의 문장으로 위로 올라가 革하려는 강한 이미지이나 뒤에 음의 문장이 옴으로 상비관계를 이룬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문장에서 양의 문장이 와서 革하려는 시적의식이나 이미지의 창출에 강한 힘을 보탠다. 마지막 여섯 번째 문장에서 배치되는 음의 국면을 전개시킴으로 강렬한 시심을 표출하고자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革은 기존의 보편적인 이미지나 정서, 보편적 의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地와 天은 소음(⚍)으로 내적인 양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숨어 있는 象이다. 地와 天은 시적 대상이 되는 세상만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적 소용돌이가 밖으로 표출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모양은 바로 보편적인 사물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地와 天에 비해 세 번째, 네 번째 효인 人은 강한 양이 두 개인 노양(⚌)이다. 여기에서의 노양은 강한 변화의 욕구이며 새로운 시각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 새로운 변화의 강한 양적 의식을 부여하는 상이 택화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와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이다. 모든 시쓰기가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대조적인 기법을 통한 혁명적 배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49. 택화혁|작성자 김기덕   50. ䷱ 화풍정(火風鼎)   화풍정은 아래에 나무와 바람(☴:巽)이 놓여 위로 불(☲:離)을 피우는 모양이다. 괘체로 보면 巽下絶(첫째 효의 끊어진 음효)은 아래의 갈라진 솥발과 같고, 離虛中(다섯 번째 효의 음효)은 빈 솥의 형상이니 화풍정이다. 火風鼎은 안으로는 순순히 따르며 받아들이는 덕을 이루고 밖으로는 환히 밝히니, 스스로를 가다듬어 밖을 밝히며 솥 안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형상이다. 시에서는 음적인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그 소재를 푹푹 삶고 고아서 맑고, 영양가 있게 우려내는 솥과 같은 시쓰기이다. 화풍정은 치열한 시의 불때기를 의미하며, 사골을 고듯이 깊은 뜻을 우려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로 귀하게 삶은 음식은 제일 먼저 신께 드렸듯이 그 안엔 기도와 같은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어려운 현실이나 부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두 번째 문장에서부터 네 번째 문장까지 양의 문장을 놓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의 마음으로 재해석해 초월적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다섯 번째 문장에서 다시 한 번 음의 문장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지만, 여섯 번째 문장을 통해 음의 세계를 극복하고 양의 세계를 구축함으로 강렬한 희망적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이다. 화풍정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펄펄 끓는 절규와 간절함이 필요하다. 그 절규와 간절함이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무의미의 이미지 나열 또한 피해야할 부분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天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서 내면의 소극적인 의미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여, 人(노양:⚌)의 강렬함이 삶아지고 드러날 수 있도록 솥과 같은 배치를 이루어야 한다. 天과 地의 초점은 人에게 맞추어져 있다. 그 초점은 태풍의 눈과 같은 것이며 블랙홀과 같은 흡입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모양은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물들이 시인의 긍정적 의식에 집중되어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鼎은 솥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나무로 불을 때서 삶고 익힌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단락인 巽(☴)은 바람과 나무를 상징한다. 불을 때기 위한 준비단계이며, 본격적인 주제의식을 삶기 위한 도입적 요소이고, 중심에 대한 진입과정이다. 두 번째 단락은 첫 번째 단락에서 진일보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본격적인 불때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불때기는 고기를 삶는 것이며, 쇠를 녹이는 것이며, 감정을 들볶는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단락이 계층을 이루어야 하고, 감정의 진일보가 있어야 한다. 즉 두 개의 단락이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인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불과 나무와 바람은 서로 호흡이 맞는 팀 멤버와 같아서 서로가 필요한 관계요 상보적인 존재들로 하나의 시적 감정을 나타내기 위한 팀워크가 필요한 협력체이다. 화풍정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일관된 묘사를 하다가 끝에서 뒤집어버리는 ䷪ 택천쾌(澤天夬)이며, 도전괘는 대결구도적인 배치를 통해 새로운 변화와 상승을 꾀하는 방법인 ䷰ 택화혁(澤火革), 배합괘는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의미처럼 험한 가운데 새로움이 움트는 ䷂ 수뢰둔(水雷屯), 착종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출처] 50. 화풍정|작성자 김기덕   51. ䷲ 중뢰진(重雷震)   중뢰진은 아래 위가 모두 우레(☳:震)로 이어진 괘로 우레가 거듭 쳐서 만물을 크게 요동시키며 발전시키는 象으로 땅 속에 숨어 있던 초목의 싹이 밖으로 움터 나오는 모양이다. 진은 해 뜨는 동방을 의미하며 동방의 기운으로 만물이 움터 나옴을 의미하는 괘이다. 시에서는 새싹이 나듯 중첩된 우레의 모양(☳ ☳)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방법이다. 또한 중심 사물이나 개체가 제시되고 그 아래 의성어나 의태어, 세부적인 표현이 전개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개구리가 개굴개굴”에서 ‘개구리’는 시의 중심 이미지인 첫 효인 양이고, ‘개굴개굴’은 두 번째, 세 번째 효인 음과 같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거인 나무가 쓰러져 잠들어 있다. 코를 골 때마다 귀를 닮은 잎들만 들썩거릴 뿐,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깨워도 꿈쩍하지 않는다.”와 같은 표현이 있다면 중심사물인 ‘거인나무’는 첫 효인 양과 같으며, 중심사물인 거인을 세부적으로 묘사해 나가는 귀를 닮은 ‘잎’이나, 바람이 흔들어 깨우는 ‘가지’의 묘사는 六二, 六三 효인 음과 같은 것이다. 효로 분석해 보면 첫 효는 새싹이 움트는 나무의 몸체일 수도 있고 새싹이 나오는 땅일 수도 있다. 둘째, 셋째 음의 효는 새싹과 같은 것으로 몸체에서 파생되는 세부적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서 파생된 보조적인 의미나 개념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레(☳:震)는 움직임이고 변화이고 잘게 쪼개짐이다. 중심 이미지나 중심 사상에 대한 변화, 새로운 뻗어감이나 분화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음(⚍)으로 양의 기운이 땅 속으로 뻗어가는 뿌리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人은 소양(⚎)으로 내면의 의식이 양의 기운을 따라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象이다. 天은 물방울과 같은 개체들이 가득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는 중심 이미지의 분화, 확산을 의미하며, 중심사물이나 개체에 대한 구체적 표현이나 지엽적인 접근을 의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우레가 거듭거듭 겹쳐오는 것이 중뢰진의 괘상이다. 두 개의 단락이 반복적일 수도 있고, 별개의 묘사일 수도 있지만,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들처럼 주된 대지의 이미지에 종된 새싹들이 피어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천둥은 고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대전쟁의 어마어마한 포탄소리를 듣지 못한 그들에게는 천둥이야말로 최고의 공포였을 것이다. 우레는 오늘날의 포탄과 같은 것이다. 수류탄이 터지듯 하나의 양의 효에서 분화되는 음의 파편들을 연상케 한다. 이는 하나의 상징적 사물에서 분화, 확산되는 상징성이기도 하다. 상징성으로 폭탄이 터지듯 확산하는 의미나 이미지를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뢰진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슬픔과 우울함에 침잠된 감정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 수산건(水山蹇)이며, 도전괘는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배합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착종괘는 ䷲ 중뢰진(重雷震)이다. [출처] 51. 중뢰진|작성자 김기덕   52. ䷳ 중산간(重山艮)   중산간은 아래 위가 모두 山(☶:艮)인 괘로 산이 거듭 중첩된 상이다. 艮은 안팎으로 거듭 그치는 덕이 있어 첩첩산중과 같이 어려운 모양을 이른다. 그러나 제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고 때를 알아 처사하면 허물이 없다. 艮은 동북 방향에 속하니 아침 해가 솟는 뿌리에 해당하므로 만물의 종시가 艮方에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시에서 重山艮은 重雷震의 반대적인 글쓰기로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이다. 논술과 같은 비문학에서는 결론이 뒤에 있는 미괄식 글쓰기와 같고, 시에서는 핵심표현이나 주제의식이 담긴 문장, 또는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표현을 뒤에 쓰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형성되어 뒤쪽으로 갈수록 의미나 표현이 강하고 확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음의 문장과 여섯 번째 양의 문장으로 반복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논증적인 관계로 본다면 귀납법적인 형식의 전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음(⚏)으로 음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 음적인 요소는 감정이나 사물의 관계뿐만 아니라 궤의 모양으로 볼 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예시와 같으며 뒷받침 문장과 같다. 人의 소음(⚍)은 강한 핵심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졌다가 天의 소양(⚎)에 와서 내적인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며 강한 핵심을 표현해 주고 있다. 팔괘로 본다면 산이 겹쳐져서 서로 교통하지 못하고 그치는 상을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단락을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으로 나타낼 수도 있으며, 작은 봉우리와 같은 중간 점검 후 더 큰 봉우리 같은 최종 결론적인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그침이라는 것은 결론이며, 핵심이며, 최종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그침이 여러 겹을 이룰 수도 있고, 여러 계단처럼 계층을 이룰 수도 있다. 중산간의 변괘 중 내부적 정황이나 성격, 심리, 사건의 내막을 말해주는 내부적 시각의 호괘는 ䷧ 뇌수해(雷水解)이며, 본괘의 단락에 대해 정반대적인 내용이나 묘사를 의미하는 도전괘는 ䷲ 중뢰진(重雷震), 아이러니나 역설적인 표현을 의미하는 배합괘는 ䷹ 중택태(重澤兌), 잘라서 새로운 조합을 통해 바라보는 착종괘적 표현은 ䷳ 중산간(重山艮)이다. [출처] 52. 중산간|작성자 김기덕   53. ䷴ 풍산점(風山漸)   풍산점은 바람(☴:巽)이 위에 있고 산(☶:艮)이 아래에 놓여 산 위에 나무가 점점 자라는 象이다. 漸은 산 위에 바람이 불어 초목과 금수가 미동하며 점진하는 괘상이며, 人事로는 여자가 집안(☶:친정)에서 부덕을 쌓은 후 혼기(☴)가 이르러 시집가는 모습이다. 또한 입춘 절기로부터 입하 절기로 나아가는 봄의 과정이니 만물이 땅 속으로부터 나와 점차 자라는 때를 이른다. 漸은 시에서 정신에 뿌리박은 하나의 시상이 점점 자라는 과정을 거쳐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이 와서 하나의 계단을 이루고, 다시 음의 문장이 와서 수평을 유지했다가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양의 문장이 와서 비약적 상승을 꾀하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더욱 정확한 발전형태를 볼 수 있는데, 地의 노음(⚏)에서 人의 소음(⚍), 天의 태양(⚌)으로 그 기운이 상승하면서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단계별로 상승하는 점층적인 표현과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점차 소멸해가는 점강적인 기법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방황’을 “나무들의 가지가 흔들린다./ 사람들이 어깨가 떨린다./ 하늘의 구름이 소용돌이친다.”라고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표현은 단계별로 차원과 강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렇듯 漸은 점점 더 발전하고 강해지는 시적 표현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풍산점(䷴)은 산 위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 산에 심겨진 나무는 눈, 비,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자라게 된다. 급하게 자란 나무는 태풍에 쓰러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비약, 과장적인 건너뛰기를 지양하고 한 단계, 한 단계 철학적 시상을 키우거나 표현의 밀도감을 더해 가는 언어의 드로잉이다. 풍산점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화수미제(火水未濟)이고, 도전괘, 배합괘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 뇌택귀매(雷澤歸妹), 착종괘는 산과 같은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형상인 ䷑ 산풍고(山風蠱)이다. [출처] 53. 풍산점|작성자 김기덕     54. ䷵ 뇌택귀매(雷澤歸妹)   뇌택귀매는 위에 우레(☳:震)가 있고 아래에 연못(☱:兌)이 놓인 상으로 兌의 少女가 위 震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궤이다. 귀매는 안으로 기뻐하며 밖으로 움직임이 있는 모양으로 어린 소녀가 위의 장남을 좇아 시집오는 형상으로 서방에 속한 兌가 동방에 속한 震에게 시집오는 과정이다. 시간상으로는 저녁을 지나 아침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결혼은 이질적인 가정의 풍속이나 가문 간의 문화적, 혈연적인 연결 관계를 맺어주는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시에서는 이질적인 문장이나 이질적인 단락 간의 연결 관계를 만들어 주는 형식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효의 관계를 통해 살펴보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이질적인 관계에서 셋째와 넷째 문장이 서로 자석처럼 끌어당김으로 이질적인 전체의 관계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세 번째 효와 네 번째 효는 이질적인 관계를 묶어 주는 끈이나, 붙여 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성분이나 다른 차원의 사물을 이어 주기 위해서는 접촉점을 찾아야 한다. 암수의 코드와 같은 연결점을 통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天은 노음(⚏)이라서 상대적으로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나 人이 소양(⚎) 이어서 地의 노양은 인의 음이 끌어당기고, 天의 노음은 人의 양이 끌어당김으로 서로를 완충시키고 새로운 의식과 이미지를 창출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사관계 간의 접속이 아닌 상이한 관계 간의 접속이며 반대적, 대립적인 관계 간의 연결, 그리고 아주 먼 유사성의 사물이나 사건들 간의 연결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이한 것들 간의 연결을 꾀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미세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하며, 연결의 끈을 찾아야 한다. 팔괘로 본다면 아래의 연못과 위의 우레는 서로의 유사관계를 찾아볼 수 없지만 연못의 셋째 효인 소녀와 우레의 첫째 효인 장남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결혼을 하는 상이다. 하나의 단락과 또 하나의 단락이 크게 유사한 내용이 없지만 그 단락 속의 한두 줄의 문장을 통해 서로 연결하고 이어질 수 있도록 접속,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관계는 병치의 관계와는 다르다. 병치는 유사한 사물이나 상황의 단어나 문장을 병치시킴으로 건너뛰기를 하는 방법이지만, 뇌택귀매의 방법은 이질적이고 비전도적인 관계의 사물이나 상황을 풀칠하여 붙이듯 접속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풀 역할을 하는 것은 주제나 제목, 또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뇌택귀매의 변괘 중 호괘는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하는 ䷾ 수화미제(水火未濟)이며, 도전괘, 배합괘는 의식이 확장되거나, 사고가 깊어지거나, 이미지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형이상적 차원이 상승하여 점점 표현의 무게와 밀도, 깊이, 높이가 커지는 방향적 진행의 묘사를 의미하는 ䷴ 풍산점(風山漸), 착종괘는 차분하고 잔잔하지만 희망이 넘치는 ䷐ 택뢰수(澤雷隨)이다. [출처] 54. 뇌택귀매|작성자 김기덕   55. ䷶ 뇌화풍(雷火豊) 뇌화풍은 아래에 火(☲:離)가 있고 위에 雷(☳:震)가 있어 번개가 친 후 우레가 울리는 상으로 밝음으로써 움직여 나아가 행하는 까닭에 風大하여진다. 괘상으로는 번개(☲)가 친 후 뇌성(☳)이 상응하는 상으로 同聲相應의 이치를 이른다. 이는 마치 수탉이 홰를 치면 모든 닭들이 따라서 함께 우는 이치니 서로 응하여 합하다 보면 풍성해지는 법이다. 시에서 뇌화풍은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있다. 다양하지만 통일성이 있어야 하고, 통일성이 있지만 하늘과 땅, 인간 사이의 여러 이야기나 묘사들이 접목되어 풍요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와, 셋째, 넷째는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둘째와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서로 상응하는 관계를 만들고 있다. 첫째의 양과 둘째의 음이 상응하고, 셋째, 넷째의 양이 다섯째, 여섯째의 음과 상응관계를 이루어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 사상으로 풀이하면 하늘과 사람, 땅이 모두 제각각으로 다양하지만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어 풍요함을 나타내 주어야 한다. 地는 소음(⚍), 人은 노양(⚌), 天은 노음(⚏)으로 천 ‧ 인 ‧ 지가 제각각의 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함이 하나로 묶여 풍요함을 나타낼 수 있는 글쓰기이다. 자칫 여러 종류의 나열만 나타낼 수도 있지만 부챗살처럼 여러 조각이 하나의 주제나 큰 틀의 이미지로 모아져 다양성을 갖게 해야 한다. 팔괘로 보면 아래에 번개가 먼저 있은 후 위에 우레가 놓여 나중에 천둥이 뒤쫓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 하늘에 번개만 친다면 그 무서움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번개 후에 우렁찬 천둥이 울릴 때 그 무서움은 배가되듯이, 번개 같은 하나의 단락에서 상응하는 천둥 같은 두 번째의 단락을 통해 풍대함을 갖게 해 주는 방식이다. 그 풍대함의 표현이 빛과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빛만 밝은들 이 둘의 조합보다는 그 풍대함은 적을 것이다. 뇌화풍의 글은 바로 이런 상승효과를 노린 다양함의 조합이며 효율적인 표현의 협공이라고 할 수 있다. 뇌화풍과 관련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시에서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의 ䷦ 화산여(火山旅), 배합괘는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인 ䷺ 풍수환(風水渙), 착종괘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조화이며, 정신과 물질의 조화, 음과 양의 조화가 있는 시쓰기인 ䷔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출처] 55. 뇌화풍|작성자 김기덕   56. ䷷ 화산여(火山旅) 화산여는 山(☶:艮)이 아래에 놓이고 火(☲:離)가 위에 위치하여 산 위에 불이 붙은 象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와 같이 산등성이의 불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旅는 안으로 그치는 절제가 있으며 밖으로는 밝은 덕이 있으니, 해와 달이 일정하게 주야왕래하며 사시를 운행하는 현상이다. 시에서 旅는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리저리 떠돌 듯 연결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이다. 태양의 뜨고 짐은 일정하지만 굿은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듯이 일정한 원칙이 있지만 그 원칙 속에서의 많은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시쓰기이다. 산 위에 부는 바람에 따라 산에서 산으로 건너뛰듯이 정서적, 상징적 표현의 이동을 꾀할 수 있다. 만물의 도나 인생의 삶 역시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떠날 수 없는 불역의 방도가 있듯 변화무쌍하지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형식이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음, 음, 양, 양, 음, 양으로 원칙이 있지만 음양의 변화를 이루고 있는 형태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의 노음(⚏)과 人의 노양(⚌)이 큰 변화를 이루는데, 여기에 天의 소양(⚎)이 둘에 상응한 원칙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있는 象이다. 人은 인간적이며 정서적이지만 地는 사물적인 것을 의미한다. 사물에 따른 인간적인 정서의 큰 변화를 天의 원리, 즉 형이상적인 원리가 지주가 되어 人과 地를 포괄하고 있는 모양이다. 天의 형이상적인 원칙 아래 인간의 정서나 육체, 삶은 地의 사물적인 것과의 많은 거리, 상이성 등을 좁혀 人에서 地로, 地에서 人으로의 변화와 건너 뜀, 오고감의 관계를 이루어 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旅는 산(☶:艮) 위의 밝은 불(☲:離)을 의미한다. 불도 밝게 널리 비추는 것인데 산 위에만 있지 않고 확산되고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 旅다. 첫째 단락은 그침이 있는 산이다. 그침은 원칙이며, 대전제이며, 결론적인 마침이다. 둘째 단락은 확산적인 불이다. 이 불은 사방으로 퍼져가는 욕망이고, 열정이고, 진리이다. 불의 변화된 몸짓은 이리저리 옮겨 붙는 상징적 접속이고 배치이다. 하나의 원칙을 세운 보리 줄기에서 많은 뿌리들의 표현과 이미지가 뻗어나가듯이 旅의 글쓰기는 옮겨 붙는 불의 배치적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화산여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처음의 의도가 끝에서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조금은 엉뚱하고 의외성이 있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이며, 도전괘는 하나의 주제나 제목을 향한 다양한 시각의 묘사적 접근을 통해 풍성한 의식이나 이미지를 창출하는 ䷶ 뇌화풍(雷火豊), 배합괘는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하는 ䷻ 수택절(水澤節), 착종괘는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된 감정의 열매 맺음을 통해 함축적인 표현을 이루고자하는 ䷕ 산화비(山火賁)이다. [출처] 56. 화산여|작성자 김기덕   57. ䷸ 중풍손(重風巽)   중풍손은 상하로 거듭 바람(☴:巽)이 부는 象으로 바람이 서로를 따라 합하듯 공손한 덕으로 한 몸을 이루는 모양이다. 巽은 안팎으로 순하고 부드러운 겸손의 마음이 바람과 같이 안으로 파고드는 형상으로 시에서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이다. 바람(☴)은 장녀를 뜻하는데, 장녀가 겹쳐짐으로 강조된 여성성을 상징하고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이고 둘째, 셋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졌으며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의 문장은 두 양의 문장을 리드하는 여성적 감성이며, 시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지침이 되고 있다. 두 양의 문장 또한 음의 문장을 따르며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극히 부드럽고 순화된 언어의 문장을 이루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소양(⚎)으로 사물의 밝은 부분을 선택하여 人을 소음(⚍)의 마음으로 여성화함으로써 하늘의 밝은 뜻을 드러내는 형상을 갖게 하고 있다. 天은 양의 강한 추상성, 또는 형이상의 차원을 이루고 人과 地는 서로 받아들임으로 순화되고 하나 되어 己+己+共의 뜻을 이룬다. 팔괘로 풀이하면 바람(☴)이 겹쳐있다. 巽은 장녀를 의미하며, 나무나 풀을 상징하고 들어감을 뜻한다. 장녀는 여성성을 의미하며, 나무나 풀은 바람에 흔들리는 여심과 같으며, 들어감은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외적인 사회성보다는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규방적인 정서를 의미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이 똑같은 여성적 정서를 통해 이루어지며 서로의 관계가 하나의 시적 대상에 대한 유사적 접근을 형성하고 있다. 중풍손에 대한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활을 쏠 때 활줄은 뒤로 당기고 활대는 앞으로 밀면서 생기는 힘이 화살을 격발하게 하니 비록 처음은 어긋나나 그 어긋남에 의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 화택규(火澤睽)이며, 도전괘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 중택태(重澤兌), 배합괘는 새싹이 나듯 ☳☳가 양의 중심 이미지에 음의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움터 나오듯 배치되는 ䷲ 중뢰진(重雷震), 착종괘는 ䷸ 중풍손(重風巽)이다. [출처] 57. 중풍손|작성자 김기덕   58. ䷹ 중택태(重澤兌)   중택태는 위와 아래가 거듭 연못(☱:兌)을 이루어 큰 연못을 이룬 괘로서, 물이 고여 일렁이듯 밖으로 기쁨을 표출하는 象이다. 兌는 방위상으로 서방이고 계절상으로는 결실기인 가을철을 의미하니 풍요와 기쁨이 가득한 것을 상징한다. 상하로 기쁨이 가득하니 안팎으로 기쁨을 함께 누리는 모양으로 아직 시집가지 않은 어린 소녀를 의미하여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이 노니는 때를 상징한다. 또한 ☱는 구멍이 열린 象으로 口舌, 무당 등을 뜻하기도 한다. 시에서는 기쁨이 충만한 시를 의미하기도 하고, ☱☱가 물결이 치는 큰 바다 같은 상을 이루고 있어 음률이 있는 시도 여기에 속하며, 물 흐르듯 청산유수격의 시도 바로 중택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의 양(⚌)은 충만한 물의 형상이며, 셋 번째 효인 음(⚋)은 물결이 출렁이는 파도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이 음은 음의 문장으로 해석되기보다는 춤추는 파도와 같은 문장으로 풀이되어야 할 것이다. 흥을 돋우는 추임새나 후렴구, 또는 문장과 같은 것으로 덩실덩실 춤추는 동작의 글쓰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으로 이루어졌고, 人은 소양(⚎), 天은 소음(⚍)으로 구성되어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은 맨 아래에 놓이고 그 다음 강한 것이 그 위에 오르고, 더 가벼운 것이 맨 위로 올라와 물속에 가라앉은 물체의 비중을 보는 것 같다. 마음의 연못 속에도 앙금은 가라앉고 기쁨은 밖으로 표출되듯, 삶의 앙금은 가라앉히고 기쁜 감정, 즐거운 시상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첫째 단락도 기쁨이며, 둘째 단락도 기쁨이 가득한 글쓰기이다. 그렇다고 기쁨의 감정이라고 해서 배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적 언어의 나열을 이룬 기쁨과 환희의 들뜬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닌 장구하면서도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내적 희열의 몸짓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중택태의 변효를 살펴보면 호괘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며, 내면의 깨달음과 자성의 시인 ䷤ 풍화가인(風火家人)이며, 도전괘는 여성적 어조의 글쓰기인 ䷸ 중풍손(重風巽), 배합괘는 지엽적인 문장이나 표현을 앞에 두고 뒤에 전체적이고 결론적인 내용이나 핵심 표현을 놓는 방법인 ䷳ 중산간(重山艮), 착종괘는 ䷹ 중택태(重澤兌)이다. [출처] 58. 중택태|작성자 김기덕   59. ䷺ 풍수환(風水渙)   풍수환은 위에 바람(☴:巽)이 오고 아래에 물(☵:坎)이 놓여 물 위에 바람이 부는 상으로 잔잔한 수면에 파문이 흩어지는 괘이다. 손순한 덕으로 안의 중심을 지키면서 밖으로 그릇된 것을 흩어내는 이치가 있고, 배를 띄움에 있어 조류와 바람의 이치를 이용하는 의미도 있으나 詩에서는 각각을 주제의 통일이나 의미의 연결, 이미지의 조합에 신경 쓰지 않고 따로따로 흩어놓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셋째, 넷째에서 음이 겹치고, 다섯째, 여섯째에서 양이 겹치고 있으나 배치만 음적이고 양적인 요소의 중복일 뿐 반드시 내용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에 상관없이 이미지를 배치하여 이미지의 확산, 사고의 확장, 통일된 주제의식 등을 흩어놓고 분산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해 보면 地는 소양(⚎)이고, 人은 노음(⚏), 天은 노양(⚌)으로 천 ․ 인 ․ 지가 각각 다른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天과 人과 地가 각각 다른 이미지, 다른 사고, 다른 표현의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반드시 주제를 일치시킬 필요가 없지만, 제목에 따라 확장의 폭을 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 개의 단락으로 형성된 표현이 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내용을 갖게 됨으로 아주 낯설고 어리둥절한 표현을 만드는 방법이다. 팔괘로 살펴보면 물 위에 부는 바람의 상으로 바람이 물결을 흩어놓는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로 모아지고 뭉쳐지게 하는 주제의식이나 통일된 이미지에 대한 의도적인 분해, 흩어놓음, 산만하게 하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연관관계가 없는 것들을 배치시킨다면 시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하지만 이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 있다. 풍수환의 변괘 중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頤는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재물이나 덕을 두루 베풀어 흩어야 하니 이것이 기르는 道라고 할 수 있다. 도전괘는 ䷻ 수택절(水澤節)이다 渙은 흩어지는 것이니 흩어지다 보면 어딘가에 걸려 멈추기 때문에 節이 되는 것이다. 배합괘는 渙의 반대인 ䷶ 뇌화풍(雷火豊)이고, 착종괘는 ䷯ 수풍정(水風井)으로, 渙은 흩어지는 것이지만 井은 두레박으로 샘물을 끌어올리는 象이라서 시의 다양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출처] 59. 풍수환|작성자 김기덕   60. ䷻ 수택절(水澤節)   수택절은 물(☵:坎)이 위에 있고 연못(☱:兌)이 아래에 놓인 象으로 차면 넘쳐흐르게 하고 비면 고여 모이게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연못에 담겨진 물처럼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갖추고 절제를 하듯 시쓰기에서도 절제된 언어의 선택, 정해진 운율, 함축적 표현이 있는 형식을 의미한다. 節은 서방을 거쳐 북방에 이르는 괘상으로 저녁을 지나 밤이 오고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는 때라서 일을 마치는 마디를 의미한다. 신체의 관절, 초목의 마디, 24절기 등이 모두 節의 이치이며, 절도, 절제 등을 뜻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째, 둘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셋째, 넷째 문장은 음의 문장으로,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양, 양, 음, 음, 양, 음으로 통일된 절제를 가지고 있다. 내호괘 震(☳)은 대나무가 뻗는 象이요, 외호괘 艮(☶)은 마디를 맺는 象이다. 시의 전체적 형식에 절도가 있고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함축적 끊음이 있어야 한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는 노양(⚌)이고 人은 노음(⚏) 며, 天은 소음(⚍)인데, 天 ․ 人 ․ 地가 각각 다른 모습을 이루어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대나무가 마디를 이루어 뻗어가듯 한 단락마다 함축적 절도를 이루고 있어서 압축된 표현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에 가두어진 물을 의미하는데, 흐르는 성질의 물을 가두어 하나의 형태를 만들듯 유려한 언어의 흐름을 막고 꼭 필요한 형태의 이미지를 절도 있게 그리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연못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다. 네모질 수도 있고, 동그랄 수도 있고, 길쭉한 타원형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못의 모양이 시인이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이다. 연못의 물은 언어다. 언어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연못을 그리는 방법이다. 언어의 절제와 함축적 표현이 필요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수택절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시작하고 마치는 주기를 뜻하니 이로 말미암아 節의 度數가 있게 된다. 도전괘는 분열된 현대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반영이며, 자칫 광인의 중얼거림이나 몸짓 같은 것을 의미하여 비정상의 정상화를 꾀하는 시쓰기라고 할 수도 있는 ䷺ 풍수환(風水渙)이며, 배합괘는 건너뛰기가 있는 하이퍼적인 글쓰기인 ䷷ 화산여(火山旅), 착종괘는 ䷮ 택수곤(澤水困)으로 못 속의 물이 아래로 스미어 땅이 마르니 곤궁한 象이다. [출처] 60. 수택절|작성자 김기덕   61. ䷼ 풍택중부(風澤中孚) 풍택중부는 위에 바람(☴:巽)이 놓이고 아래에 연못(☱:兌)이 있는 象으로서 안으로 기뻐하고 밖으로 부드럽게 행하니 중심이 미더운 모습이다. 孚는 마치 어미닭이 알 속에 들어있는 어린 새끼(子)를 부화시키기 위해 발톱(爪)으로 이리저리 굴리며 품고 있는 뜻이 들어 있는데, 中孚의 象은 강한 양에 의해 유약한 음이 안으로 길러지는 모양으로 부모의 품에서 어린 생명이 자라나는 현상을 상징한다. 시에서 풍택중부는 자연이나 주변 사물, 또는 상황에 의해 시인 자신이나 인간의 유약한 마음에 대한 에너지 공급과 같은 시쓰기이다. 그런 만큼 자연이나 주변 사물은 강하게 그려지고 시인 자신이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 표현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과 둘째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 문장은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중간에 있는 셋째, 넷째 문장만 음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외부적인 자연이나 사물은 강하고 크지만 시인이나 다른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로 표현되어 자연이나 외부적 사물에 의해 힘을 얻고, 꿈과 희망이 키워지는 형태의 시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접근하면 地는 노양(⚌)이고 天도 노양(⚌)인데, 人만 노음(⚏)으로 人은 절망과 어둠에 처한 상황이지만 주변의 地와 天은 광명한 태양과 같아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또한 풍택중부는 가운데가 빈 배와 같은데, 가운데가 비었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고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는 마음을 비운 사람과 같아서 세상의 바다를 건너는 데, 어려움이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음을 비운 시쓰기도 중부에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연못 위에 부는 바람이다. 기쁨이 가득한 연못 위에 부는 부드러운 바람은 기쁨을 배가시키며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하다. 주변 환경이나 사물에 의해 힘을 얻는 배치가 중부이며, 힘과 위로를 얻는 시쓰기이다. 풍택중부의 변괘를 보면 호괘는 ䷚ 산뢰이(山雷頤)인데, 기르는 양육의 공이 있는 상이다. 頤는 上下의 두 양이 안의 음들을 기르는 것이요, 중부는 안의 두 음이 허한 상태로 양들을 미덥게 좇는 것이다. 배합괘는 ䷽ 뇌산소과(雷山小過)로 소과는 산 위에 나무가 자라는 象으로 일단 그쳤다가 조금씩 밖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착종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로 本未가 허약해 엎어지는 象을 이루고 있다. [출처] 61. 풍택중부|작성자 김기덕   62. ䷽ 뇌산소과(雷山小過)   뇌산소과는 위에 雷(☳:震)가 있고 아래에 山(☶:艮)이 놓여 있는 상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움직이는 힘이 있으므로 일단 멈추었다가 나아가게 되니 소과이며, 二陽四陰의 괘로서 陰(小)이 과도하니 小過가 된다. 小過의 互卦가 大過임을 미루어 볼 때 모든 것이 소과하는 가운데 대과를 이루니 하루가 30번 거듭하여 한 달이 되고(小過), 한 달이 12회 거듭하여 한 해를 이룸(大過)과 같다. 소과는 작은 일은 가능하고 큰일은 가능하지 못하여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올라가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내려오는 것은 마땅한 듯하면 좋은 상황이다. 시에서는 시인 주변에 음의 배치가 많지만,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작 시인은 희망이 가득한 상태의 글쓰기이다. 절망적 상황,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어머니와 같은, 슬픔과 고통의 현실을 덮는 눈의 부드러운 빛깔이 색칠하는 것 같은 표현을 의미한다. 효로 풀이하면 첫째와 둘째 문장은 음의 문장이며, 셋째와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와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음적 요소가 강한 배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소과는 六二와 六五의 柔가 중을 얻고, 강은 中正을 얻지 못했으니, 큰일은 할 수 없고 작은 일은 가능하듯 시의 흐름이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작고 소심한 감정의 전개를 이룸이 특징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天은 노음(⚏)이며, 人만 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지만물은 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사람만 양으로 이루어져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네 음이 두 양보다 많은데다 음이 중을 얻고 양은 중을 잃었으니 음이 형통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양을 추구하려 하나 세상과 하늘의 이치는 음 쪽으로 기울어 있어서 큰 뜻을 이루기가 어렵고 막힘이 있는 모양이다. 첫째와 셋째 단락은 음의 단락을 이루고, 둘째 단락만 양의 단락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음적 배치의 강세를 이루고 있다. 팔괘로 풀이하면 뇌산소과는 상괘와 하괘가 서로 등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서로 지향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의 마음이 괴리하고 있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는 지위를 얻지 못하고 소인배들만 기를 펴고 있어서 악이 선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과잉의욕을 버려야 하고 확대 전진을 시도하지 말아야 하므로 소극적, 여성적 내용의 시쓰기이다. 또한 이 괘는 나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효인 삼, 사효는 새의 몸을 의미하며, 나머지 음효는 각각의 좌우 날개를 상징한다. 여기에서 나는 새는 위로 오를 수 없다. 그것은 대기의 압력을 거슬러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오는 것은 순조로워서 땅의 인력에 편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에 역리하여 거스르지 말고 순순히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글쓰기이다. 뇌산소과의 호괘는 ䷛ 택풍대과(澤風大過)인데, 대과는 크게 나아가는 뜻이 있는 양의 지나침이요, 일월의 운행을 의미하기도 한다. 배합괘는 ䷼ 풍택중부이며, 착종괘는 ䷚ 산뢰이(山雷頤)이다. 산뢰이는 一陽이 始發하여 一陽이 終止하기까지의 과정으로 산 아래 초목이 길러지는 상이다 [출처] 62. 뇌산소과|작성자 김기덕   63. ䷾ 수화기제(水火旣濟)   수화기제는 물(☵:坎)이 위에 있고 불(☲:離)이 아래에 놓여 있는 象으로 물은 달을 상징하며 불은 해를 상징하여 日月이 서로 만나 밝게 비추는 水昇火降을 이루고 있다. 또한 卦體의 모든 효들이 제 위치에 바르게 처하고 서로 응하니 旣濟이다. 효의 正位를 따진다면 초효는 양, 이효는 음, 삼효는 양, 사효는 음, 오효는 양, 상효는 음으로 이루어지는데, 수화기제는 모든 효들이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음양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에서는 감정과 지성의 조화, 격정과 인내의 조화, 어둠과 밝음의 조화, 남과 여의 조화와 같은 윤리적이며 정석적인 시쓰기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양의 문장, 둘째는 음의 문장, 셋째는 양의 문장, 넷째는 음의 문장, 다섯째는 양의 문장, 여섯째는 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형식으로 정 위치에서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 위치라 함은 상식적이며, 윤리적이며, 원칙적인 관계를 말하며, 합리적인 배치 및 조화로운 색채의 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마음의 정서적 안정과 편안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형식으로 완성도가 높은 시쓰기이다. 사상으로 살펴보면 地와 人과 天이 똑같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음은 內剛外柔의 성질로 시에서는 강한 감정의 절제적 표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단락,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의 흐름에 차이가 없으며, 안정적이고 심도 있는 감정의 표현을 이룰 수 있다. 팔괘로 보면 수화기제는 물을 의미하는 坎卦가 상괘로 놓이고, 불을 의미하는 離卦가 하괘로 되어 있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고 불은 위로 타오르는 성질이 있다. 물은 위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아래로 향해 있고 불이 밑에 있으므로 그 마음은 위로 향하고 있어서 서로 만나 교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과 불의 기운이 합쳐져 물건을 삶고 익히듯이 기제는 각기 정당한 위치를 얻고 서로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시쓰기에서도 정석적인 배치를 통해 타당한 관계를 만들고 정서적, 지적 관계를 충실히 엮어 감동을 배가시키는 시쓰기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화기제의 변괘를 살펴보면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등 모든 괘가 ䷿ 화수미제(火水未濟)를 이루고 있다. 기제는 모든 효가 제 位를 바르게 얻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내괘는 불이고 외괘는 물로 이루어져 먼저는 밝으나 나중은 험난한 일이 생김을 의미하듯 수화기제의 변괘는 모두 서로 화합치 못하는 화수미제로 이루어져 있다. 정석적 시쓰기에서 변형된 것은 다 변칙적인 시가 됨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출처] 63. 수화기제|작성자 김기덕   64. ䷿ 화수미제(火水未濟)   화수미제는 위에 불(☲:離)이 놓이고 아래에 물(☵:坎)이 놓인 象으로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흘러 서로 사귀지 못하는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한 모든 효가 정상적인 제 위치를 얻지 못하고 부정한 상태에 있으므로 未濟(일이 아직 끝나지 않음)이다. 효의 정 위치는 초양, 이음, 삼양, 사음, 오양, 상음의 관계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초음, 이양, 삼음, 사양, 오음, 상양의 관계를 이루어 완전히 상반된 모양을 갖고 있다. 이는 시에서 정석적이지 못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서적, 부조화의 관계적 배치를 의미한다. 효로 살펴보면 첫 문장은 음의 문장, 둘째는 양의 문장, 셋째는 음의 문장, 넷째는 양의 문장, 다섯째는 음의 문장, 여섯째는 양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三陰三陽이 모두 바른 위에 처하지 못하고 있다. 내괘가 坎水이므로 험난한 데 빠져 건너지 못하는 형국이며, 외호괘도 坎水이므로 橫流하는 상이다. 불은 불대로 물은 물대로 향하는 성질로 상극을 이루고 있지만 물이 불을 끄고 불이 물을 하늘로 오르게 하듯 그 속에 또 다른 상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시쓰기에서도 반역적인 관계, 뒤집는 관계, 도전적, 역전의 배치를 통해 의미를 강화시키고 표현을 도발적, 충격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상으로 보면 天과 人과 地가 모두 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양은 內柔外剛, 內貧外富적인 모양으로 심리와 표현의 격차, 의지와 도전의 격차를 만들며, 배치의 관계가 상이하고 비범하며 생경한 상태를 말한다. 첫째 단락과 둘째 단락, 셋째 단락이 같은 형태를 이루며, 의식적인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무언가 새로운 조합과 새로운 정비 및 시작이 필요한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팔괘로 살펴보면 불이 물 위에 있는 상태로 위치가 적당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이 괘의 형태는 주역의 논리에 한 개도 적당한 위치에 있지 않다. 천지와 일월에 이르기까지 제 위치를 얻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없다. 뒤죽박죽된 관계를 의미하며 아직 미완성을 상징한다. 주역의 법칙은 영원히 미완성이며 인생도 영원히 미완성이다. 또한 시도 영원한 미완성이며, 영원한 미스테리인 것이다. 시의 정석은 없다. 사고의 원칙은 없다. 완벽한 시를 쓴 것 같지만 실은 거기서부터 시는 걸음마 단계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 사물의 배치에 정석은 없다. 불완전한 배치, 비뚤어진 배치가 곧 시의 시작이며 사고의 중심인 것이다. 화수미제의 변괘는 호괘, 도전괘, 배합괘, 착종괘 모두 수화기제이다. 기제는 미제를 낳고 미제는 기제를 낳아 끝없이 운행한다. 주역 上經의 머릿괘인 乾 ․〮 坤은 도전괘, 호괘, 착종괘가 모두 불변이고 다만 서로 배합관계만 이루므로 乾坤이 부동의 본체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기제, 미제는 상호 끝없이 변동하여 오가니 건곤은 不易의 몸이요, 기제 ․ 미제는 交易의 本이라 할 수 있다. [출처] 64. 화수미제|작성자 김기덕     *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   이상으로 64괘의 시쓰기 방법을 제시했다. 64가지의 시쓰기 방법에서 변효의 방법까지 더하면 실상 시쓰기의 방법은 320가지의 방법으로 나뉠 수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좋은 시를 쓰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의 방법으로라도 제대로 시를 쓸 수 있다면 그 또한 훌륭한 시인일 것이다. 현 시대의 시인들은 저마다 자신에 맞는 방법으로 시를 쓰면서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여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둔 시에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일방적인 설득의 시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일방적이던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들이 이제는 쌍방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시도 일방적인 자기감정의 전달에서 벗어나 쌍방소통을 이루기 위해선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일방적인 전달의 시는 주제의 통일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독자가 먼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시는 주제성보다는 회화성이 중요하다. 언어로 그린 그림을 보고 독자들은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은 색의 배치이며, 사물의 구도인 것이다. 이러한 구도를 만들고 색을 다양하게 배치하기 위해선 다양한 시쓰기의 방법이 필요하고, 배치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열거한 주역적 방법은 배치의 변화이다. 주역적 시쓰기는 배치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구도를 잡고 천변만화의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다. 기의 흐름에 따라 천지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치를 밝힌 주역을 해석하고 괘의 모양에 따라 언어를 배치함으로써 시인이 의도하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방법에 대해 예가 될 수 있는 시를 제시할 수 있었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기존의 시에선 이 방법들을 뒷받침할 만한 적합한 시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예시를 쓰면서 이론을 정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증명되지 않은 시창작법처럼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론을 먼저 정리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남은 나의 시간들은 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시를 쓰는데 채워질 것이다. 또한 이 이론에 공감하는 많은 시인들이 나타나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미비한 점들을 채워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주역적 시쓰기에 대한 기대|작성자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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