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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심는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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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리 굽은 소나무 댓글:  조회:1856  추천:0  2013-03-08
허리 굽은 소나무 추석 날 이다. 이 날은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떠나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날이자 또 남은 사람들이  떠나온 고향땅을 그려보는 날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설날을 기다리고 어른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역한다고 한다. 자그마한 변강시가지에 둥지를 틀고서 꿈에도 그리는 고향땅,나서 자라 뼈가 굳은 송아지친구들과 조상의 산소가 있는 그 땅을 한해에 한두번 밖게 찾아 가지 못한다. 그것도 청명과 추석에 산소에나 갔다 그 걸음으로 돌아오다보니 마을에는 별로 다녀오지도 못한다. 오늘도 안해와 함게 한돐열달되는 손녀를 업고 내외가 모두  외국으로 돈벌이 떠난지 십년이 더되는 막내남동생 딸을 이끌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가 있는 고향마을 뒤산 등성이에 올라섰다. 나는 인제 회갑고개도 훌쩍넘어 동년시절 짜개바지 입고 전투놀이에 신날 땐 하루에 몇십번씩 오르내리던  산마루것만 단숨을 몰아쉬며  산중턱에 올라서니 예나 다름없이 허리가 팔구십도로 굽은 소나무 한구루가 반갑게 맞아준다. 밑뿌리는 반아름 되고 두어길 높이쯤 올라가 허리가 앞으로 팔구십도 휘여서 정중히고향땅에 큰절을  올리고  다시 우로 곧추 휘여져서 두세길쯤 더 올라가 굵직한 두팔을 높이 추켜세워 무수한 가지와 푸른 잎을 떠이고 고향 만세를 부르며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향땅을 지켜 드팀없이 서있는 허리굽은 소나무 ! 나는 그 허리 굽은 소나무와 나란이 서서 소나무 푸른가지가 가르키는 곳,언제 보아도 가슴이 뭉쿨하게  정겨워 오는 고향땅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몇백호 농호가 오붓하게 모여앉은 그리 작지 않은 산간마을,내가 서있는 뒤동산에는 청송,락옆송 웅기중기 수림을 이루고 가둑나무와 개암나무가 키를 넘어 우거져있다. 산밑으로는 졸졸 시냇물이  마을를 감돌아흐르고 마을앞에는 아득히  펼쳐진  논과  밭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파도가 눈이부시다. 마을서쪽으로는 칠백리 두망강이 고향벌에 젖 줄기를 뻗어가며 유유히 흘러가고 그 넘어로 이웃나라 조선땅의 산과 벌 그리고 새하얀 회칠을 한 마을들이 아득히 바라 보인다. 고향마을 동쪽에는 그리 높지않은 구릉지대가  있었는데  옛날에는 조며 콩이며 수수를 심은 밭들이 무연히 펼쳐져 김매고 가을하는 농군들의 허리뼈를 쑤셔주던 곳이 언제부터인지  광무국이라는것이 옳겨와서 집을 짖고 길을 닦고 굴을 파더니 버력이 나와서 여기저기에  작은 산들을 만들어놓았고 뒤따라 화력발전소가 들어오고  거대한 건물들이 줄쳐섯고 하늘을 찌르는 높은 굴뚝들이 솟아났다. 그러나 오붓한 고향마을 내가에는 개구쟁이들과 알몸으로 뛰여다니던 잔돌밭과 모래장이 여전하고 앞집처녀와 연애하던 버들방천도 푸르러 우거져있다.                                                  비록 나팔꽃이 기여오르고 흥부네 복박이 주렁지던 초가집이 안테나를 추켜들고 빨간 벽돌기와집으로 바뀌여가면서도 멍멍이들이 주고받는 부름소며리 수닭들이 뽐내는 홰소리가 합창으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귀전을 때리며 고향은 정겨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있다.                                                                                       나의 혼신이 고향의 낮은 하늘을 헤염치며 눈물겹게 자맥질하고 있을때  “야,이거 아무깨가 않이나”하는 쇡쇡한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나의 앞에는 가둑나무 옆채를 꺽어 지팽이 삼아 짚고  한 “늙은이”가 서있었다. 어수선한 머리엔 하얀 눈서리가 내렷고 좁은 이마엔 밭고랑 같은 주름천지,허연 수염이 꺼칠꺼칠한 얼굴에는 반가와하는 기색이 력력한데 구부정한  허리는 그냥 펴지 못하고 나를 쳐다보고있었다. “야,이눔아, 왜 눈이 떼꾼해있나,나다 ,이 아무깨를  몰라본단 말이냐?” 나는 아무깨라는 소리에 반갑기 그지없었으나 눈을 껌뻑거리며 앞에 서있는 “늙은이”를 올리 뜯어보고 내리 뜯어보아도  아무깨의 모습을 찾아 볼수 없었다 “야,이눔아, 왜 정신이 나간 상통이냐?” 그 “늙은이”는 나의 가슴에 주먹 한매를 들이댄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돌아선 나는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듣던 음성 같고 헤벌쩍 웃는 그 입모서리와 가늘게 뜬 눈언저리가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인상인듯십더니 그제야 그 벌쭉거리는 코마루가  확연히 익숙한 모습으로 안겨왔다. “그래 맞아 아무깨가 맞아﹗” 나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도 믿어지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래 네가 정말틀림없는 아무깨란 말이냐?” 그는 젖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거렸다. 나는 눈을 썩썩 비비고 찬찬이 훑어보니 이“늙은이”가틀림없이 꿈에서가 않이라  생생한 현실에 나의 앞에 나타난 고향마을 송아지친구  아무개였다. 우리들의 만남은 너무나 긴 세월이였다. 그의 허연 머리발과 주름 깊숙이 패인 이마를 바라보노라니 우리의 동년과 청년 시절이 환영처럼 눈앞에 떠올랐다. 웃마을 “흉륭집” 울바자를 넘어가 참살구를 흠치다 입은지 하루밖에 안되는 골덴 바지가랭이를 째서 어머니의 회초리맛을 톡톡히 보았던 일,개울가에서 알몸뚱이로 뛰여다니다 물건너 참외밭에 기여들어 “참외취렴”을 하다 밭지기할아버지 한테 들켰는데 괘씸한 할아버지가 우리를 쫓다가 따라잡을수 없으니 우리들의 옷을 채여가서 밤중에 알몸으로 집에 들어갔던 일,건조실 이엉새를  들추어 참새새끼를  잡다가 뱀에게 손가락을 물렷던 일 … 그당시 참새는 “사해”[四害]에 속하여 아침전이면 온 마을 남녀로소가 일떠나서 납소랭이랑 물통이랑 소리가 나는것을 들고 나와 고함치고 두드리며 참새를 몰아대면 참새가 앉을곳이없어 나중엔 땅에  떨어진다고 하였다.그리고 참새나 참새새끼를 잡아다 촌 사무소에 바치면  한마리에 인민비 일전씩 상을 주었던겄이다. 나는 그때 참새를 부지런히 잡아 넝링샤쯔를 사입기까지 하였다. 지금은 참새들이 사해에서 해방되여 그런 고초를받을 렴려는 더 없고 또 지금 사람들이 그때 사람들처럼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안는데 왼일로 참새들이 살아가기 날따라 막막하여지는지 알도리가 없다. 그때 이야기를 하자면 어딘가 옛날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세월 있은일  갔기도 하다. 그후 우리는 중학교를 나와서 불우한 년대에 생활난까지 겹쳐 상급학교로 못가고 고향마을에서 애젊은 농군들이 되였다. 이 친구는 그때만 하도 마을에서 한다하는 선줄꾼으로  인사성이 밝고 일솜씨가 여물어 웃어른들의 사랑과 동무들의 우정도 한몸에 차지하였섰다. 낮이면 일터에서 함게 땀을 흘리고 밤이면 한집 사랑채에 모여서 널판자로 무은 통침대에서 사철 함게 자고깨던 이 친구… 어느날 저녘, 호주머니의 옆전들을 모두 들추어모으니 술한근 살 돈은 나왔지만 안주감이 없었다.그런데 이 친구가 한다는소리! “야 너희 집에 검정앎닭이 있지않니?” 그때 우리 집 그 검정씨앎닭은 앞집 수닭에게 바람이 났는지 제 집에 있지않고 아무리 몰아부쳐도 저녁이면 앞집 사랑채에서 잤다. 나는 그 닭을 몰아오느라 압집 사랑채에 여러번 드나든적이 있어 그 친구한테 우리 암닭이 자는 위치를 대주고 여차여차하라고 일러주었더니 얼마안되여  틀림없는 우리 집 씨앎닭을 잡아왔다. 우리는 그날저녁 만포식을 하였다. 그후  오늘 산소에 누어계시는  나의 할아버지는 그 씨앎닭을 찿느라고 사흘동안 지팽이를 짚고 온 동리를 훓었다. 그러던 이 친구가 “전레없던 문화대혁명”시기에 부모의 력사문제로 타격을 받고 좌절되여 사랑하는  처녀에게까지 속심을 털어놓기 주저할 때 내가 연애편지를 만장 같이 써서 친구 몰래 그의 이름으로 처녀에게 띄여보낸것이 열렬한 회답편지가 와서 혼인이 성사되였던것이다. 한번은 마주앉은 술좌석에서 이 친구가 나를 보고 “야,너는 술을 마이면 점점 똘똘해지는데 한번 주정하는걸 보앗으면 좋겠다”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때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네가 장가드는 날에 만취할테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몇년후 결혼 하는 날 손님들을 모두 바래고 나와 다른 두 친구를 신부방에 않혀놓고“야,네가 오늘 취하지 않으면 나는 신부와 한자리에  들지않겠다”라 고하면서는 아래칸에 내려가 오지술독 하나를 들어다놓고 구푼짜리 술잔으로 나에게 열여덟잔이나 권하였다.나는 끝내 만취하고야말았다. 나와  함게 있던 두 친구는 사전에 귀뜀을 하여 내가 취하면 집으로 호송하려고 청해놓은 호위병들이였다.그 두 친구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 고방에 눕혀놓고  밖으로 문에 몽둥이를 받쳐놓았다.그때는 겨울이라 싸락눈이 내려 추운탓으로 향여나  밖으로 내가 나왔다 동상이라도 입을까봐 걱정되여 취한 비상조치였다. 그때로부터 나에게는 원래의“떡메골”이라는 별명외에 “열여덟 잔”이라는 새 별명이 하나 더 불어났다. 그후 나는 토대가 좋다는 덕분에 입당도 하고 월급  쟁이로도 되였다. 그리고 마을에서 제일 이쁘고 일 잘하는 마음씨 착한 쳐녀를 채가지고  훌적 시가지로 빠져나와  구제비살림을 꾸리고 청제비 생활을 하였다. 이제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부럽지 않게  출세시키고 만년을 풍족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의 이 친구는 오늘까지 수십년을 하루같이 밭을 갈고 논을 부치며 고스란이 청춘과 젊음 그리고 한생을 다 고향 땅에 오곡종자처럼 휘뿌렸다. 몇년전 인편에 아무깨가 허리병을 앓고 가정형평도 아주 어렵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알아보기 어려을 정도로 오늘의 이 모양새가 되리라고는 상상밖이였다. 우리들은 허리굽은 소나무아래 풀밭에 마주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의 마음은 변함없이 예전처럼 선량하고 깨끗하였고 겉보기는 그처럼 구차하였으나 가슴은 그렇게도 뜨겁고 풍족 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우정도 예나 다름없이 두터운  그대로라는것이 새삼스레 마음에 와 다았다.그리고 그 어떤 정도 고향의 정을 따를수  없다는것도  가슴에 뜨겁게 안겨 왔다.그 친구는 또 나의 가슴에 한주먹 안기며“야,너 아직도 사십년전의 약속을 리행하지 않을테냐?”하며 큰소리를 치는것이였다. 나는 사십년전 그 약속이라는겄을 인츰 알아맟추고 소나무를 쳐다보며 장쾌한 웃음을 터뜨렸다.소나무도 잦송이를 혜벌적 우리와 함게 웃는듯 싶었다.사십년전 그 약속이란 우리  친구들중 누가 먼저 월급쟁이가되면 싼달[凉鞋]한컬레씩 사주어야 한다는 락언 이였다. 그때 우리들은“시내빵” 애들이 신고 다니는 “싼달”이 그렇게도 부러웠던겄이다. 그때만 하여도 고향마을은 너무나도 가난하였다. 그 당시 우리 마을에는“하다문집”이라는 한집에 라지오가 있었는데 나무틀로 만든 괴짝안에서 노래도 나오고 고춘자라는 녀자와 장소팔이라는 남자가 주고받는 재담 이라는겄이 너무도 재미 있어서 밥술을 놓기 바쁘게 그 집에 모여들었던것이다. 그리고 온 마을 치고 우리 뒤집에 자전거 한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타고싶엇으나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만져보고 부럽워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설명절, 추석같은 날  돼지나 소를 잡아서 일인당 얼마간씩 나누어주었는데 그것도 어른들 그릇에 오르고나면 녀자들과 젊은이들 입에는 고기가 헤염쳐간 물만 차려질 때가 보통 이였다….. 그리고 골덴이나 사지옷감 같은것을  순번으로 나누어주었는데 나도 한번 차려져서 바지를하여 입고 으쓱거리며 다니던 기역이난다.어느 땐가 생상대 회이실에 델레비죤을 갗추어 놓으니 나무괴짝안에서 나오는 소리만듣던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모여들던 때는 우리 친구들 “싼달 약속”이 있은 아주 후에 일이다. 그런데 내가  제일 먼저 월급쟁이가 되고도 처음에는 몇푼 안되는  월급에 생활난 문제도 있었겠지만 내가 신용을 지키지 못한탓으로 그 약속을 리행하지 못하엿고 그 후에는 싼달이라는것이 별로  히한한  물건이 안이여서 흐지부지 그 약속을 뒤전에 뿌리치고말았다. 지금도 “싼달 약속” 일로 하여 고향  친구들한테 두고두고 아름다운 구박을 받은 뒤 끝에 호주머니를 털어 낸것이  싼달 한상자 살 돈이 착실히 될 것이다.아무튼 그 돈으로 그 원을 풀어주어야했다. 허리 굽은 소나무, 허리 굽은 친구  그리고 나,우리 셋은 한시대 태여나 한하늘 아래서 함게 살아왔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은 우리 셋에게 너무나도 같지않은 대우를 베풀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한생을 약속하였으련만 세월은 우리 셋에게 차려진 청춘과 젊음을,누구에게서는 강도처럼 빼앗아내고 그 누구에게서는 탐관오리처럼 뜯어 내였는가 하면 또 그 누구에게는 불한당처럼 달려들어 마음대로 회롱하고 되는대로 짓밟아놓았다. 소나무와  이 친구는 허리가 구십도로 휘였으나 나는 아직도 허리가 꿋꿋하고 시력 청력이 여전하여 안해는 친구와 비하면 내가 십년은 더 젊어보인다고 하였다. 안해의 얼굴에는 밝고 해사한 물결이 남실거리는데 나의  가슴은  검은 파도가 차거운 바우에 부딫쳐 하얀 눈물로 부서지는 심정이였다. 허리 굽은 그 친구를 가슴 아프게 마주보다가  불현간 허리 굽은 소나무의 주위에 눈길이 떨어지며 눈초리가 가늘게 떨렸다. 팔방 수십메터안에 소나무를 찍어간 허연 밑뿌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데  년륜을 헤아려보니 그들은 모두 허리 굽은 이 소나무, 그리고 나와 허리 굽은 이 친구와 한 세대라는것이 뚜렸하게 안겨 왔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산마루에서 미츨하게 곧게 자란 다른 소나무들은 모두 재목으로 아빠트빌딩에 모셔져 안온한 객실과 안방에서 빛을 내는데 내 앞에 서있는 이 허리 굽은 소나무만은 불우한 풍우에 시달려 인제는 터덕터덕 늙은몸에 여기저기 흉터가 험상하게 났고 팔구십도로 굽은 허리는 영영 다시 펴질 가망이 없어도 떠나간 동료들 발자취 사이사이에 부지런히 자기의 후대들을 파랗게 키돋음시키며 푸른 기상 변함없이 고향마을 산마루에 드팀없이 서있지않는가!! 허리 굽은 소나무,그리고 그옆에 지팽이를 짚고 서있는 허리굽은 나의 고향 친구!!!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올라가 큰절을 올리기 앞서 가슴속으로 그들 앞에 숙연히 머리를 쪼아렸다.                                                                                                         2006년 10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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