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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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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시와 이미지는 쌍둥이 댓글:  조회:2778  추천:0  2017-02-19
시와 이미지(Visual Image)  시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시각적 이미지로 느낀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V.Chklovski)도 ‘예술의 목적은 대상의 감각을 인식이 아니라 이미지로 부여하는 것이다.’고 했다. 시는 이처럼 관념 혹은 감정의 진술이 아니라 어떤 사상(事象)을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로써 상황묘사(描寫)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화가가 되기 위해 데상(dessin)에서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하듯 묘사(描寫)는 습작기에 반드시 거쳐야할 소중한 시창작의 바탕이 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감독처럼 무대(시) 뒤에 숨어버리고 대신 시인이 제시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 제시로써 독자를 울려야 한다. 배우가 먼저 웃는 코미디가 없듯 시 속에서 독자보다 시가 먼저 울어야 되겠는가? “시가 스스로 울음으로써 독자를 먼저 울리려고 하는 시가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러한 치기(稚氣)를 웃을 수밖에 없다.”는 김기림의 지적은 이런 의미에서 새겨볼 만하다.  *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T.S 엘리어트가 주장한 시작(詩作)의 한 방법.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것을 대신 나타내주는(그것과 닮아 있는) 어떤 객관적 사물, 정황, 혹은 일련의 사건들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놓음으로써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기교.  1. 시는 이미지에 의한 정서적 환기다.  시인이 ‘외롭다’거나 ‘불안하다’는 심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이를 직접적으로 ‘외롭다, 불안하다.’ 라고 진술하거나 토로할 것이 아니라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를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제시하여)줌으로써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가 효과적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이 아니라 →   o. 그 여자는 예쁘다. → 그 여자는 모란꽃처럼 탐스럽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감각(Visual 이미지)  o. 그는 성질이 냉정하다 → 그는 성질이 칼날이다.  추상적 설명 그림(Visual 이미지)  o. 나는 지금 나는 지금  몹시 불안하다. → 무너지는 절벽 위에 서 있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상황(Visual 이미지)  o. 나는 외롭다. → 널따란 백사장에  추상적 설명 소라  오늘도 혼자랍니다. (구체적 상황제시)  2. 대상(對象)은 이미지로 인식한다.  -추상이나 개념보다 이미지가 앞선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의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과거 경험 속에서 몸소 체험했던 그 어떤 구체적 영상 이미지가 클로즈업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1) ‘어머니는 고맙고 사랑스런 분이다 ’  - 추상적 관념적 시어로서 구체적 체험의 재현이 없으므로 별다른 감동이 없다.  예2) ‘겨울날 학교에서 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생선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  -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가 재현됨으로써 우리를 위해 온갖 수모와 희생을 감수하시는 어머니상을 느끼게 된다.  예3)  들녘이 서 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부시시  그러다 못해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로  굳어버린 우리의 겨울은  보이지 않은 우리의 겨울은  차가운 들녘 위에  영하의 긴 침묵으로  꼿꼿이들 서 있다.  -김동수의 「겨울나기」, 1986년  자신이 처한 현실적 불행 상황을 ‘겨울’의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 하여 독자들에게 그의 불행한 처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  겨울’이라고 하는 일반적 추상 의미가 흐릿한 관념의 틀 속에 가려(갇혀) 있지 않고 그가 맞고 있는 겨울이 보다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현장감(Presence)으로 드러나 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부시시한 얼굴’이거나,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 ‘영하의 긴 침묵’, 그러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우리의 겨울’등 의인적 시각 이미지가 부정과 실의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눈 감지 않는 오기와 집념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  이처럼 관념, 개념, 사상 등도 정서와 더불어 시의 주요 내용이긴 하나 이것들이 감각적. 구체적으로 형상(이미지)화되지 못하면 예술적 감동이 죽거나 감소되고 만다.  예4)  무릎 앞의 소유는  모두 껴안고도  외로움의 뿌리는 깊어  사람이 부르면  날짐승처럼 운다.  어느 가슴을 치고 왔기에  사람이 부르면  하늘에 들리고도 남아  내 발목을 휘감고야  그 울음 그치나  -최문자의 「산울림」에서  자칫 관념적이고 상투적 인식에 그치기 쉬운 산울림(메아리)에 대한 개인적 인식의 정도가 남달리 개성적이고 치열하다. 활유법에 의한 역동적 표현, 그러면서도 이를 응축된 정서적 시어로 탄력 있게 이미지화 하여 외롭고 허망한 산울림의 내면적 속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3. 관념의 형상(이미지)화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에 있어서 관념어(사랑, 그리움, 슬픔 ....,)을 그대로 설명하거나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한 폭의 그림을 보듯, 혹은 현장감 있게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서 실감나게 표현(시각화, 청각화 등)하고 있는 것이 관념의 형상(이미지)화이다.  그러나 형상화는 단순히 겉모양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안고 있는 본질적 특징이나 상징적 사건을 중심으로 시대적 풍경화를 포착하였을 때 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곽재구의 「沙坪驛에서」중에서  행상(行商)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막막하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변방인(서민)들의 고달픈 일상과 그 표정들을 ‘막차’, ‘간이역’, ‘밤새 퍼붓는 눈’, ‘톱밥 난로’, ‘대합실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 ‘기침에 쿨럭이는 사람들’,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 등의 객관적 상관물(客觀的相關物)에 의해 꼼꼼하게 그려주고 있다.  출렁일수록 바다는  頑强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절망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화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존재의 소멸  溺死할 수 없는 꿈을 부등켜 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 있는 바다 ----------- 포기할 수 없는 꿈  소주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 존재의 소멸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 버린다. -------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안타까움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진다 ---극적전환(형이상학적 깨달음)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을씨년스럽고 건조한 현실상황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닷가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망은 돋아나고 -- 꿈에 대한 새로운 의지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 현실극복을 위한 행동개시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와지는가 --‘눈물’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확신  우리는 모든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世界는 가장 황량한 바다 -------- 그러나 아직 삭막한 현실상황 재인식  - 윤석산, 「바닷속의 램프」에서  절망적 상황에 갇혀버린 자신의 우울한 심사를 ‘출렁일수록 바다는/완강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거나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혹은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워 있다.’등의 구체적 형상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시인이 제시한 시적 정서에 젖어들고 싶어함이다. 이는 한 편의 시가 시인의 주관적 감정의 발로이지만 그가 제시하고자한 그 주관적 감정을 향수하기 위해선 독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객관정서로의 제시 장치, 곧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을 통한 주관적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좋은 이미지란?  1.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2. 차원이 높고 깊이가 있다.  3. 주제와 조화를 이루며 이미지들 간에 상호 유기적 상관성이 있다.  4. 이미지가 체험과 관련되어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이다.  6. 강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기성(喚起性)이 있다.  5. 이미지 창조의 방법  1.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진실이 발견된다.(deformation)  2. 시는 실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철학적 인식에 의해 선택된 주관적 감정이다.  3. 이미지가 시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기여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버려야 한다.  4.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가급적 쓰지 말 것. 그것들이 추상과 구체를 뒤섞으면서 이미지를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5. 진정한 이미지는 부분적인 한 行, 한 句보다도 ‘시 전체의 그림’ 속에서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다  6. 이미지의 종류  1) 시각적 이미지  [대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의 장미(薔薇) - (김광균의 )  * 구름 = 보랏빛 색지/ 한 다발의 장미  o. 초록 치마를 입고  빠알간 리본 하나로 서 있는 少女 -(박항식의 )  * 코스모스 = 빨간 리본의 소녀  [청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김광균의)  * 종소리 = 흩어지는 분수  o. 꽃처럼 붉은 울음 -(서정주의 )  * 울음 =붉은 꽃  [관념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 (인생 = 이슬)  o. 그리움이란  내가 그대에게  그대가 나에게  서로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것이다.  * 그리움=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모습  o.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김광섭의 )  * 마음 =고요한 물결  o.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 - (김동명의 )  * 마음 =흔들리는 촛불  2) 청각적 이미지  [사물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워워, 꼬끼오, 짹짹, 졸졸, 돌돌  o. 윙윙, 쏴아아 쏴아-, 주륵 주륵  [상황을 - 청각(공감각)적 이미지로]  o.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정지용의 )  *차가운 밤바람 소리 = 말 달리는 소리  o. 우우 몰려 왔다  포말(泡沫)지는  하얀 새떼들의 울음 -(김동수의 )  *물거품 사그라지는 소리 = 새떼들의 울음  [시각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피릿소리가 아니라  아주 큰 심포니일거야 -(박항식의 )  * 눈 = 심포니  o.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의 )  * 포풀러 = 발랑 발랑  [관념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산이 재채기를 한다. - (박항식의   * 청명 = 재채기  *청명: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양력 4월 5. 6일 경)로 봄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됨.  o.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김춘수의 )  * 부재= 슬픈 소리의 울움     
249    "자화상"으로 보는 낯설음의 미학 댓글:  조회:3474  추천:0  2017-02-19
  낯설게 하기와 우리 서정시 - 네 시인의 동명의 시《자화상》을 중심으로   서채화   반 고흐의 "자화상"   1    로씨야 형식주의의 주요용어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로씨야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로씨야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력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령역과 문학연구 령역을 변별시켜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축자적으로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를 의미한다. 쉬클로프스키에 따르면 문학은 일상언어와 습관적인 지각양식을 교란한다. 문학의 목적은 재현의 관습적 코드들로 인해 지각이 무디어지게 놓아두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태를 난해하게 만들고, 지각 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문학/시에서의 이상화(異常化; estrangement)는 리듬, 음성학, 통사법, 플롯 같은 형식상의 기제 즉 “예술적 기법”에 의해 생겨난다. 쉬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의 한 례로 스토리의 내용을 “이상하게 만들기” 위해 말(馬)의 시점으로 구사한 레브 똘스또이의 「콜스토메르」를 들고 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보행과 발레를 비교한다.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의 걸음걸이의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고 구조화한 발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시는 “발성기관의 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발레는 걸음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행은 그렇지 못하다. 문학의 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 생생한 지각과 의미에 접하게 한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언어로는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언어와 우리가 접하는 삼라만상의 인상과 그에 대한 판단이 이미 낡고 관습화되어 있어서 모든 것은 추상화되어 있고 평판화되어 있는데 문학은 여기에서 전혀 새로운 충격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쉬클로프스키는 이를 위하여 낯설게 해야 하며 “해”라고 부르던 사물을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서 전혀 낯선 사물로 새로이 깨닫게 해야 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발견할 것.  -비일상적 시각을 동원할 것.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할 것.  -인습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할 것.  -낯선 대상과 병치함으로써 낯선 인상을 줄 것.    “낯설게 하기”란 이 말은 비록 로씨야에서 나오긴 했지만, 우리 문학에서도 전혀 찾아볼수 없는것은 아니다.《자화상》이란 제목의 시는 여러 시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내면적 자아의 모습을 그린 것일 터이므로 시인의 정서, 사상을 리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필자는 모두《자화상》을 주제로 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시를 통하여 우리 서정시에서 표현된 “낯설게 하기”에 대하여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2     시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의 여러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의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란 한 대상이 시적임(시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에서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나타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선 윤동주의《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자 화 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또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이  시는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무장 독립 투쟁에 가담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있는 자신을 끝없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성찰의 과정에서 쓰여진 고독과 내면 성찰의 시이다. 1939년에 쓰여진 이 시에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느끼는 젊은 시인의 자기 련민과 미움이 나타나 있다. 화자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행위이다.    화자가 들여다보는 우물속은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곳으로 얼핏 보면 매우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한 사나이” 즉,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려는 화자에게는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던 자신의 미운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돌아간다. 가다 생각하니 그 미운 사나이가  “가엾어” 돌아오게 되고 다시  “미워져”돌아가다가  “그리워”져 다시 돌아오게 된다. 화자는 자신에게 미움을 느끼고 그 미움은 련민으로, 련민은 그리움으로 변하는데 이런 변화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내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일어난 감정이다. 우물 속은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있는 또 다른 세계이고 그 안에는 “추억”이라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화자의 진정한 성찰과 인간적 고뇌 속에 존재 하고 있다.      높은 것일수록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우물물은 동시에 밝은 것을 어둠에 의해서 보여주는 의미론적 역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물속에 비친 하늘은 밤하늘이며, 그 계절 역시 가을로 되어있다.  태양이 있는 대낮의 봄하늘과는 상반된다. 시내물은 주야가 따로없이 쉬임없이 흘러가지만 그런 류동적인 물을 한 곳에 가두어 고이도록 한 것이 바로 우물물이다. 그것처럼 윤동주의 우물속에 비치는 달, 구름, 바람 역시도 그 의미의 공통적인 요소는 다같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지만 한 공간안에 유페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는 분명 《자화상》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면서도 우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나”가 아니라  “한 사나이”라고 낯설게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영상(映像)을 하나의 실체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같다. 윤동주는 마치 그  “사나이”가 우물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파아란 바람”이라고 촉각적이미지를 시각적이미지로 전이시켜 통각적이미지로 표현한것 역시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하면  “바람”은  “파아란 색”을 띨 수가 없다.     또한 이 시는  “나르시시즘”1)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을 쓴것인데  “거울”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우물”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쌍한 자신에 대한 련민에 빠지게 된다. 시에서 반영된  “나르시시즘”  이 경향도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다음은 서정주가 쓴 《자화상》이다.    자 화 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9년      미당 서정주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우리 시에서 시어사용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의 령역을 확대하여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였다는 데 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대추꽃이 한 주 서있다” “틔워오는 아침” “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등 시어들은 일상언어와는 다른 결합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애비는 종이었다"는 첫 행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가 당시의 독자들에게 준 감동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련상시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침 이마 위에 얹힌 몇 방울 피섞인 이슬” 은 괴로움의 삶 속에서 창조된 열매란 뜻으로 고뇌의 승화를 뜻하고 있다. 구속받고 멸시받으며 현실을 어렵게 사는 화자를 “죄인”, “천치”, “수캐”에 비유하면서 이런 은유로 투영된 언술이 아무래도 시의 멋을 더해주고있는것 같다.    같은 제목으로 쓴 박정웅의《자화상》을 보도록 하자.                                    자 화 상                         그림자처럼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하고 불길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외롭고 지쳐보이는 사람                  마침내 자신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2001년       이 시에서는 일상언어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강제로 결합시키고 새로운 문법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시의 언어를 낯설게 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넘어선 시적인 의미로 전환시킨다. 시인은 그림자와 “무시당하다” “짓밟히다” “수상하다” “불길하다” “외롭다” “지쳐보이다”를 강제로 결합시킴으로써(그것도 “그림자처럼”이라고 비유) 그림자를 일상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와 이런 표현들사이에는 거의 류사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자의 의도를 우리가 보아낼수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낯설은 표현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거쳐 낯익은 모습-힘없고 외롭고 지친 자신(시인)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또한 마지막련에서의 아예 사람이 그림자로 되어간다는 표현은 그 어떤 역전적인 발견일수도 있는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철심의《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우리들의 자화상                                             남철심           찬물을 많이 마셔         도리여 뜨거운 가슴           물옆에 살아         물농사 지으며         하얗게 마음을 헹구는 사람           물 같은 술에         풀어보는 한(恨)과         술 같은 물에         적셔보는 원(怨)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                                                                                 2001년         이 시는 첫련부터 역설로 시작된다.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응당차가와야 할 가슴을 도리여 뜨겁다고 표현한다. 이와 조응되는 마지막련에서도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눈물은 원래 뜨거운 것이나, 시인의 의도로 보면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눈물도 의례히 차가와 할 터인데 오히려 뜨겁기 때문에, “차가운것”과 “뜨거운 것”의 대조 그것 역시 역설로 보아야 하겠다. 사실 일상에서 그 누구도 찬물을 많이 마시는것과 가슴이나 눈물이 뜨거운것을 련계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역설적인 표현들로 “낯설게 하기”를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시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다음 리듬적으로 볼 때, 이 시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2행, 3행, 4행, 2행의 파격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하지만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시의 3련에서 “풀어보는 한과”에서의 “과”자는 사족으로,  없었으면 오히려 운률조성에 더 맞지 않을가 싶다.      3      세계의 사물들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존재가 바로 “우리”이다. 이러한 상투적 일상에 감염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가 지닌 사명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시가 지닌 역할이다. 일상을 전복하기, 전도된 일상을 형상화하기가 시인의 숙제이다. 규격화되고 도식화된 세계를 휘저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통이 시인의 숙명이다. 이와 같은 숙제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들에는 세계와 자아에 대한 애정, 섬세하고 차분한 관찰,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일상에 대한 치열한 반칙의식, 평범을 거부하는 비범한 수사학 등이 있다. 시란 결국 권태로운 일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제이므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자화상》은 일상을 거부하는 비범한 의식과 표현이 우리의 각질화된 상상력을 물렁물렁하게 연성화시켜주는 작품들이였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언어를 일상언어와 구별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 내부의 력학(力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 지배적인 문학형식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일상언어처럼 취급되면 종전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던 형식이 전경화되어 그 문학적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문학 발전과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즉 문학에서는 하나의  “낯설게 하기”가 보편화, 표준화되면 새로운  “낯설게 하기”를 창조해야 한다.    참고서(문):  1.「문학비평방법론」             김호웅    연변대학출판사    2000년  2.「아이러니와 역설」            이건주  3.「낯설게 하기와 의미론적 연관」김송배  4..「낯설게 하기의 시학」        양병호   
248    사랑의 서정시에서 사랑을 풀다... 댓글:  조회:3476  추천:0  2017-02-18
[평론] 《사랑의 서정시》에서 사랑을 풀어내다 2016-09-08  들어가면서 인간은,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세계이고 우주이다. 그 우주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포함한 삶에 대한 모든 체험과 느낌이 담겨져있다. 시인의 경우 그것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느낌으로 가득차게 되며 나름대로의 표현에 의해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해지게 된다. 얼마전에 펴낸 리상각시선집 《리상각 사랑의 서정시》의 권두시 《가슴》은 이러한 점을 시적으로 잘 나타내고있다. 가슴은 나의 하늘/ 해가 뜨면 푸르다// 구름 끼면 어둡고/ 달이 뜨면 그립다// 이따금 우뢰가 울고/ 소나기 쏟아진다 《가슴》에서 《가슴은 나의 하늘》이라고 하면서 그곳에 《해가 뜨면 푸르고》 《구름 끼면 어둡고/ 달이 뜨면 그립다// 이따금 우뢰가 울고/ 소나기 쏟아진다》라고 함으로써 매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임을 잘 드러낸다. 그 가슴이 하늘과 동일한것으로 곧 하늘은 인간세상뿐만아니라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비추고 전해주는 그릇이자 거울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 력사적이고도 현실적인 복합물이 된다. 리상각시인은 조선족문학의 흐름에서 해방후 제2세대의 대표적인 시인중 한 사람으로 사랑의 소재뿐만아니라 자연을 비롯한 여러가지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저 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특히 만년에 많은 풍자시를 써 사회비판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세우고 옳바른 삶의 자세를 더욱 정직하게 다듬고저 한 모대김은 녹쓸지 않은 노익장의 정신과 저력을 과시했다. 이번 시집의 차례와 구체적인 내용을 훑어보면서 대부분의 소재를 《사랑》으로 포장하는듯한 점에는 약간의 이의가 있으나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의 개념으로 포괄적으로 생각해볼 때 너무 심각하게는 느껴지지 않았고 어딘가 새롭고 재음미할수 있는 점마저 있었음을 미리 말하고싶다. 이 시집을 읽어내려가면서 받았던 이러한 새로움과 의미는 대체로 자연적인 대상을 통한 고향에 대한 사랑과 민족적인 가락에 바탕한 정서의 표현 그리고 사회비판의 풍자시의 속성과 동화적인 세계를 통한 순수성에 대한 추구 등으로 나누어 설명할수 있다. 1. 처녀, 자연과 고향 시집의 첫장에 떠오른 작품은 《빨래하는 처녀》로 1956년에 씌여진 오래된것이지만 지금도 그 방치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는듯하였다. 방치소리 찰딱찰딱/ 산으로 마을로 찰딱찰딱(중략)/ 시원스레 내리치는 방치소리/ 총각의 마음을 건드리는줄 방치소리가 산과 마을에 울리고 총각의 귀에까지 들려 그 마음을 흔들어놓는다는 《방치소리→산, 마을→총각》이라는 소리의 흐름은 방치소리와 그 울림에 의한 인간의 심성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총각의 마음이 그 소리에 제멋대로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소리의 주인공인 처녀에 향해있다는 《총각, 마음→처녀》라는 마음의 움직임의 방향은 그러나 총각 홀로만 애태움으로 처녀에게 방치소리처럼 전달이 불가능하다는데 이 작품의 역설적인 미가 빚어지게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처녀와 총각 사이에 벌어진 흥미롭고도 아름다운 시골의 사랑의 풍경을 관조하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있다. 처녀가 두들겨내는 방치소리가 산과 마을에 흥겹게 메아리치는데 처녀도 모르는 총각의 마음이 그 소리에 괜히 흔들리고 애가 탄다는 표현은 매우 간접적이면서도 그렇기때문에 그 어느 직접적인 화법보다 더욱 강렬한 사랑의 정감을 흥미롭게 표현할수 있다는 이 점을 보인다. 이러한 수법은 같은 해(1956)에 창작된 《수박밭에서》도 수박만 고르며 수박보다 더 붉게 타번지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 처녀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있었다. 이처럼 처녀는 시집의 첫번째 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소재로 시인에게 작품에서의 아름다운 화폭이고 멈출줄 모르는 창작의 원천적 샘물이 된다. 사랑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운데 하나이지만 이토록 사랑에 대해 절절히 읊조리는 것은 그만큼 사랑의 상대가 너무 소중하고 너무 안타깝고 너무 그리워서이다. 그러한 사랑의 상대는 해와 달, 꽃 등 여러가지 자연물과 한복과 같은 아름다운 의상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답게 비유되여있을뿐만아니라 시인의 창작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내용의 노래가락을 이루고있다. 앞에서 보아온 《처녀》처럼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도 중요하지만 자연의 일부로 시인에게 시적인 발상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노래가락을 뽑아내도록 유혹하는 대상도 적지 않다. 제2장 《압록강 시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요소를 모아보면, 노래방에서도 심심찮게 선곡되는 《두루미》를 비롯하여 《산꽃》과 《쪽배》, 물, 바람, 구름, 물새(《물도 가네 나도 가네》) 등 륙지와 바다에 거쳐 동식물들이 두루 취급이 되며 제3장 《따뜻한 인정의 사랑시》에서는 《초가집》과 《실개울》, 《파란 실버들》, 《봄제비》, 《도라지꽃》, 《민들레꽃》과 같이 실제적인 삶에서 쉽게 경험하거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현장의 한부분으로 되는 대상에 이르고있어 시인의 시선은 매우 많은 대상들을 주시하고 껴안고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러한 자연의 대상은 고향이라는 특정의 공간에 위치함으로써 고향에 대한 깊은 사랑을 통해 민족적인 삶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을 남김없이 드러내는데 크게 기여하고있었다. 이러한 고향에 대한 사랑이 시적 상상력에 의해 무한히 확장이 될 때 그것은 작은 《조약돌》(《조약돌》)에서 《노을》(《노을에 새겨진 글발》)에 이르기까지 민족 전체의 소원에 대한 간절한 념원으로 비치기도 한다. 울고싶어도 눈물이 없다/ 말하고싶어도 소리가 안 나온다/ 눈물도 슬픔도 다 삼켜버린 나/ 고향의 돌이 된것만도 다행이다// 언제면 나 소생할건가/ 끊어진 길이 다시 이어지는 날/ 고국이여 고향이여 웨치면서 나는/ 조약돌에서 뛰쳐나오련다 ―《조약돌》 마감련 물론 고향에 대한 사랑은 제4장 《향토사랑의 시》에서 나오는 고향의 이모저모에 대한 직접적인 노래에서도 드러나고있다. 《봄이 왔어요》에서 산과 들, 과원, 밭이랑, 그속의 길짱구, 이름 모를 꽃과 나물 캐는 처녀들, 뜨락의 버드나무울바자 등 매우 많은 자연과 인간의 대상들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있으며, 《소낙비 내린 뒤》에서도 논판, 매지구름, 언덕, 개울, 집오리떼, 실버들, 푸른 산, 하늘, 쌍무지개, 푸른 벼, 초원, 송아지, 제비, 호수, 벼포기, 밭머리, 황금해살 등 자연과 인간의 많은 대상들이 뒤섞여나온다. 자연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고향의 이모저모가 매우 많은 대상들을 거쳐 노래되고있다는것은 시인의 관찰력이 그만큼 폭넓게 진행되였다는것을 보여주고 고향의 모든것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 매우 넓은 품속에서 뜨겁게 넘쳐난다는 뜻도 된다. 이처럼 모든것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고향은 시인의 마음속에서 말그대로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한평생/ 고향을/ 떠나지 못한이는/ 불행하여라// 한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이/ 더욱 불행하여라// 시골도/ 고향은/ 마음의 천국/ 천국, 천국을 돌려주소서 ―《천국》 고향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유년의 순수성과 삶의 안주에 대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데 집중되여왔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향은 자연의 대상으로 보았을 경우,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나아가 치유하는 기능까지 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깊다. 《청산소곡》과 같은 작품은 특별한 설명이 없이도 자연의 그러한 치유의 효과를 충분히 말하고도 남음이 있는 시들이다. 산의 푸른 빛발에/ 내 눈이 맑아지고// 맑은 물 여울소리에/ 내 귀가 밝아지고// 가벼이 부는 바람에/ 내 가슴이 열리고// 우짖는 새소리에/ 내 마음이 즐겁다// 아, 청산의 품에 안기니/ 온갖 시름이 다 가셔버렸다 ―《청산소곡》 2. 민족적인 가락과 정서의 끈끈함 제5장 《꿈으로 사는 사랑시》에서 금방 만날수 있는 작품으로 《보노라 못 잊어 가다 또 한번》이란 시는 김소월의 《못 잊어》와 《가는 길》이 떠오르고 《가다 또 한번》이나 《즈려밟고》 등의 표현과 함께 즐겨 썼던 7·5조가 기본 률격으로 되여있어서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다. 반갑다 오던 비여 오던 비 끝에/ 황금해살 쏟아져 한결 푸른 산/ 푸른 산에 구으는 진주이슬을/ 즈려밟고 탐사의 길 나는 가노라// 가는 길, 길섶에 물구슬이 돌돌/ 조약돌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길/ 가노라니 우거진 푸른 숲속에/ 곱게도 피였구나 함박꽃송이 특정시기(1979. 4)의 이데올로기적인 사회풍조가 그대로 풍겨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민족적인 리듬들이 무엇보다 강렬하게 들려오는듯했다. 내용의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민족적인 가락들이 시인의 작품에서 쉽사리 들려오는것임을 돌아보면 역시 민족시인이라는 점에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아마 이럴 때에는 형식이 내용보다 우선하는 상황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민족적인 가락에 담은 내용이 민족적인 정서를 자극할 때 그러한 가락은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천당같이 부럼 없는 곳에 살아도/ 가난했던 조상의 뿌리는 못 잊어// 슬픔도 아픔도 내게는 모두다/ 금싸락같이 귀중한 그리움의 보배// 울면서도 잊지 못하는 사랑의 물결은/ 바다같이 설레이는 겨레의 정// 하늘하늘 하늘에서 춤추는 두루미야/ 하얀 옷자락에 우리 노래 울린다 ―《혼》 민족에 대한, 그 정신에 대한 사랑과 노래는 김소월의 《초혼》이 내뿜는 격렬함과 처절함에는 못미치지만 평화시기의 민족의 혼에 대한 노래이지만 나름대로 매우 아름답고도 절절하게 들린다.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과 조건에 살아가는 이곳의 상황을 둘러보면 민족의 현실적인 모순이나 아픔에 대한 시인의 아픈 노래는 그 사랑의 깊이를 갈수록 더해가는 힘에 바탕이 되면서 더욱 값지게 들려온다. 그의 시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두루미》의 춤과 노래는 그 희디흰 색갈과 함께 이러한 민족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더욱 절절하고도 의미심장하게 들려주는것이다. 시인에게 있어서 민족에 대한 사랑외에 어머니와 같은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의 상징과 같은 존재에 대한 사랑 《알로에》, 《어머님의 손》 등 작품에서 역시 중요한 소재로 노래되고있었다. 특히 어딘가 신비하기까지 한 《어머님》에 대한 노래는 이 작품들외에도 시인에게서 보기 드물게 2행으로만 된 작은 형태의 시로 파악되는 《어머님》이란 제목의 작품에서 보다 집약적으로 나타난다. 어머님, 어머님 떠나가신 방에/ 시계소리 왜 이리 높습니까? 어머니를 떠나보낸 화자의 고독하고 허전한 마음이 가장 절제된 언어들에 의해 표현됨으로써 그 아픔이 더없이 크고도 큰것임을 나타내는 역설적인 구조라 하겠다. 어머니의 목소리나 자취가 사라지고 시계소리가 대신한 방안에서 시간이나 세월을 상징하는 시계소리는 어머니의 부재를 더욱 분명히 귀띔하고 그때문에 어머니를 잃은 아픔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에는 수록이 되지 않았지만 상기의 작품에 앞서 시조로 발표된 작품들에서 이미 어머니에 대한 그러한 정감은 매우 복합적인것으로 표현된바 있다. 어머님 등에 업혀 만리길 떠나서/ 파란 많은 인생의 가시덤불 헤쳤나니/ 가슴에 노상 울렸네 에밀레종소리// 에밀레종소리 속시원히 들어볼가/ 조약돌 들었다가 슬그머니 놓았어라/ 불쌍한 어머님 생각 눈물눈물 솟아라 ―《에밀레종소리》(1) 에밀레종의 슬픈 사연을 배경으로 고국을 떠나 이국타향에 정착해 살면서 겪었을 온갖 고생을 작은 조약돌로조차도 차마 울리지 못하는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오래되였지만 깊고깊은 상처의 곬을 이룬 아픈 과거에 대한 회억을 잘 살려내고있다. 3. 풍자에 담긴 인생철학 이번 시집의 제11장은 풍자시로 되여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풍자시의 경우에는 풍자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애증을 드러내고 풍자의 효과성을 위한 비교적 용이한 표현을 구사하기때문에 대체로 제목에서 그 내용와 목적성을 짐작할수 있을 정도의 용이한 리해가 가능하다는 특점이 있다. 이 시집에서의 풍자시는 우선 아첨쟁이(《애완견》), 악처(《흡혈귀》), 탐관오리(《독사》), 위선자(《최면술》), 게으름뱅이(《심술돼지》), 가식(《웃음과 울음》, 《오염》), 욕심쟁이(《가재》, 《돼지귀에 경읽기》), 명쟁암투(《뼈다귀》), 벼슬에 눈먼 자(《사모》, 《한자리》) 등 이 사회의 부정적인 현상에 대한 폭넓은 폭로가 이뤄지고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중 몇수만 례로 보기로 한다. 벌지 않고도 고급료리 먹는 행운아/ 곤두박질쳐가며 콩콩 짖어대다/ 송곳이로 손님의 발가락을 문다 ―《애완견》 제1련 남몰래 쓰디쓴 독즙을 심킨데서/ 종양이 든줄 몰랐다 훼멸된 육체/ 관골이 툭 불거진 미인 얼굴에선/ 눈물방울 떨어진다… 때는 이미 늦었다 ―《흡혈귀》 마감련 버려진 뼈다귀를/ 제꺽 물고/ 흘끔거리며 간다// 흘끔거릴수록/ 빼앗자고/ 달려드는자 있다// 고기 한점도 없는데/ 무얼 바라고 이악스레/ 물고뜯을가? ―《뼈다귀》 1~3련 물론 저러루한 부정적인 현상에 대한 폭로만 이뤄진것은 아니다. 이 시집에는 이와 동시에 《저울추》, 《거목의 꿈》, 《물잠자리》, 《지렁이》, 《허수아비》, 《바위》, 《산》 등 작품을 통해 그러한 부정적인 현상과 대조되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옳바른 긍정적인 모습들이 노래되고있어서 단순한 폭로나 개탄이 아닌 미래지향적인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보이고있어서 보다 풍성한 풍자시의 내용물을 선사하고있었다는 점이 돋보였다. 특히 그러한 긍정적인 모습들이 우리가 쉽게 볼수 있는 자연의 대상으로 되여있고, 그것도 《지렁이》와 같은 매우 작은것에서 《산》과 같은 거대한것에 이르기까지, 동식물에서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되여있다는것이 이색적이다. 그만큼 시인의 관찰력이 매우 넓은 공간에 의해 걸쳐져왔고 이러한것들을 통한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표현이 다각도로 시도되였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4. 동화에 비낀 순수성의 가치 풍자시에서 보아왔던 어지러운 사회적인 현상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견디기 힘들만큼의 혐오감을 자아내면서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추구를 하게끔 역설적으로 자극하기도 한다. 시집의 제6장 《인생철학의 사랑시》에서 시인은 《조금씩 잊으며 살아가는 법/ 더러는 사양하며 살아가는 법》을 익힐것이라고 《살아가는 법》에서 선언함으로써 그러한 삶의 자세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고 다른 한 시 《물빛으로 살고싶다》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새로운 세상에 대해 제시하기도 한다. 열길 물속이 보이는 곳에/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 있다/ 춤 추듯 하늘거리며 떠나는 물은/ 흐르면 노래와 같은 맑은 소리// 길은 거치장스러운 길이여도/ 하냥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유로이 에돌고 뛰여넘어가는/ 착하고 어여쁜 너의 몸짓(중략)// 그렇게 가고있는 너처럼/ 내 마음의 밑바닥을/ 누구나 환히 들여다보도록/ 항상 너의 물빛으로 살고싶다 《누구나 환히 들여다보도록/ 항상 너의 물빛으로 살고싶다》고 함은 욕심과 거짓이 란무하는 현실적인 삶에서 량심과 진정성의 소중함에 대한 스스로와 모든이에 대한 일깨움이다. 이러한 순수한 마음가짐에 대한 추구는 티없이 맑은 아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하게까지 만들며(《아가야 너의 맑은 세계로》) 생명 존중의 주제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락엽》). 물론 생명에 대한 존중은 생명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은 생명을 준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에서 충분히 보아낼수 있음은 어머니를 소재로 한 앞의 시들에서 이미 보아온바와 같다. 다른 한편 동화적인 세계속에서 어린이의 순수하고 환상적인 시선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빚어내면서 시인에게 중요한 심성의 하나인 유년적인 순수함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작품도 있다. 나는 한마리 사슴/ 그대를 등에 업고 달리고싶다/ 고운 손으로/ 내 등을 쓰다듬어다오/ 따스한 두팔로/ 내 목을 안아다오 ―《나는 한마리 사슴》 제1련 칠면조아줌마 셋/ 둥기적둥기적 모여와/ 남편의 돈자랑 하네/ 며느리 발뒤꿈치 흉보네(중략)// 이젠 날기도 뛰기도 싫어져/ 뚱기적거리는 발걸음/ 별무늬 그리며/ 알 낳던 빈 궁둥이만 흔드네 ―《칠면조아줌마 셋》 이 작품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것에 대한 시인의 추구를 잘 드러내고있다. 이 점을 가장 잘 설명할수 있는 근거는 의외로 《단마디 시》(2)와 같은 난센스 작품(?)일것이다. 이중 두수만 례로 든다. 비 온 뒤 땅속 기여나와/ 낚시대 보자 반가와 춤 춘다 ―《지렁이》 별을 딴 사람 하도 많아/ 하늘 별밭이 듬성듬성 ―《별밭》 일견 터무니없거나 모순되는 화법이기도 할것 같지만 이 작품들에 내재된것은 그러한 엉뚱한 표현의 뒤에 숨어있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이나 풍자적인 의미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아동시와 다름없으나 실제로는 특이한 수법의 성인시라고 보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난센스적인 표현은 시적인 구성과 독자들의 시선을 신선하게 만들며 동시에 말하고저 하는 의도를 보다 새롭고도 강렬하게 전달할수 있다는 효과성을 지닌다. 최근 SNS에서 인기 있는 짧은 형태의 시들에서 적지 않은 경우 저러한 수법을 취하고있음은 바로 그러한 효과성을 목적으로 하고있기때문이기도 하다. 나오면서 인간의 마음이나 가슴을 하나의 우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앞의 분석을 통해, 자연의 대상물을 통해 고향과 민족에 대한 리상각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들을수 있었고 그러한 민족적인 가락에 기초한 끈끈한 전통적인 리듬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또 누구보다도 강렬한 사회비판의 풍자적인 날카로움과 동시에 동화적인 세계를 통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평화의 세계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엿볼수 있었다. 특징적인것은 이러한 시적인 표현에서 《처녀》와 《어머니》와 같은 시적인 주인공이 여러가지 동식물과 함께 등장하며 유년적인 시선과 동화적인 공간에 대한 추구에서 드러난 맑고 순수한 심성은 리상각시인이 품고있는 나름대로의 우주를 가득채운 가장 중요한 내용물이란 점이다. 또 인간의 희로애락을 포함한 거의 모든 체험과 느낌은 민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에 이어져있어서 시인으로 하여금 명실공한 해방후 제2세대의 대표적인 조선족 시인중 한 사람이라고 강조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시인의 작품은 여러 소재뿐만아니라 여러가지 시적인 쟝르에 거쳐 다양한 수법으로 창작되여왔으므로 이후 보다 자세한 론의가 거듭되여야 할것이라고 생각된다. 주해: (1) “중국조선족 시조선집”, 민족출판사, 1994. 5. (2) 제9장 “눈물과 웃음의 사랑시”에 “단마디 시”란 제목하에 4수를 묶어내고있음. 김경훈 길림신문 2016-09-07  =================덤으로 더 보기 =+ 피카소,실크로드 그리고 한락연 2013-07-17  1 20세기 최고의 화가 혹은 20세기의 미술사를 거론하고자 할때 이 사람의 이름을 피하고서는 단 한 줄의 기록도 써 내려갈수 없다. 바로 피카소이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에스빠냐에서 태여나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서양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19세기 화가들이 자신들의 인상, 시각과 시선을 그림에 개입시키며 별도의 세계를 구축했다면 피카소는 이로부터 몇걸음 더 나가 평면의 화면에 립체감과 깊이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 미술사에서의 큐비즘(립체파)의 탄생이였다. 피카소는 그림, 판화, 조각, 도자기등 모두 4만여 점의 방대한 량의 작품들을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본격적인 립체파 운동의 계기가 된 “아비뇽의 처녀들”, 에스빠냐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게르니카”등이 있다. 2 인류는 길을 따라 소통하고 교류하며 문명을 꽃피워 왔다. 그 대표적인 길이 중국의 서안으로부터 토이기의 이스탐불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다. 그 옛날 동방과 서방에서 서로 비단, 보석, 옥, 직물 등이 전해지면서 동서 교류의 큰 역할을 한 길.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인 상품이 비단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길을 따라 물건만 오고 간것이 아니라 종교와 문화도 함께 주고받던 력사적인 길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였다. “비단의 길”이라는 우미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크로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꿈의 길은 아니였다. 대상들이 물건을 락타에 싣고 오갈때 그 물건을 노린 도둑떼가 범강장달이처럼 덮쳐들었고 게다가 한치 앞을 알수 없는 거친 날씨에 땡볕을 이고 모래바람을 헤치며 걸었던 길이였다. 서한시기 장건이 포로로 잡혀 지낸 십여 년의 세월이 이어진 길이고고구려 고선지 장군의 활약과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신라의 혜초 스님의 법경이 바람소리로 남아 있기도 한 길이다. 우리의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당승의 원형인 현장법사가 바로 1,300년 전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 “대당서역기”에도 대서특필했던 실크로드이다.  3 일전, 한락연탄신 115주년 기념 한락연회화작품전시회가 연변박물관에서 열렸다. 연변주당위, 연변주인민정부, 중국미술관에서 주최하고 연변주당위 선전부, 연변주문화국, 연변박물관등 단체에서 폭넓게 주관한 전시회는 조선족혁명가이고 예술가이며 국제반파쑈전사인 한락연의 웅숭깊은 행위와 메세지를 다시한번 고향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였다. 2010년 총투자가 3백만원, 부지면적이 2천여평방메터 되는 락연공원을 조성하고 그 이듬해인 2011년 한락연동상건립, 한락연예술전, 연구포럼에 이은 그이를 기리는 또 하나의 대형의 기념행사이다. 1898년 룡정촌에서 태여난 그는 1923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중국조선족 첫 공산당원이며 동북의 초기 공산당 창건자의 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유화와 수채화의 서양화법으로 키즐석굴의 벽화를 모사한 사람이다. 본세기 중국의 이름난 석학 성성(盛成)선생은 1980년대 한 화가의 그림전을 보고 이런 글발을 남긴적 있다. “그는 피카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였다. 또한 그는 예술사학자이자 탐험가로서 쿠차 천불동에서 당나라 초기의 투시화와 인체해부도를 발견했다. 그의 성은 한씨, 이름은 락연. 이름이 그 사람을 닮았고 사람은 그의 예술을 닮았으며 그의 예술은 그곳, 그때를 발견했다. 그는 변경 동포로서, 변경 지역의 생활과 문화를 가장 사랑했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사명을 짊어지고 젊음을 불살랐고 반일투쟁과 전반 동방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공산주의전사로 성장,중국대륙을 무대로 혁명투쟁에 나섰던 혁명가 한락연, 서방예술기법과 동방예술의 정수를 접목시키고 소중한 중화문화를 발굴, 보호하는 사업에 마멸할수 없는 공훈을 세운 인민예술가 한락연, 피카소등 세계화단의 불세출의 인물들과 실크로드에 깃들어있는 인류의 보귀한 유산들이 한락연의 꿈을 키울 모판이 되였고 그의 화법에 그러한 심력이 녹아 들어있다. 그의 미술전에서 현란한 색감의 작품과 더불어 중국조선족혁명사는 물론 국내외문화교류사와 세계혁명사에 영원히 기록될 그의 전기적인 색채가 짙은 경력을 경모의 눈길로 다시금 읽는다. 연변일보/ 종합신문 2013-07-15 
제5회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에 대한 단상  2016-10-04  2016년 7월 21일부터 시작된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공연 온라인투표가 9월 15일에 이르러 서서히 막을 내렸다. 그동안 조선족사회는 아리랑꽃 모바일투표로 펄펄 끓고 있었다. 매일 아침 아리랑 위챗투표로 시작되고 아리랑투표를 호소하는 것이 많은 조선족들의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아리랑꽃 투표정황을 보면 첫 시작엔 뒤쳐졌다가 8월 6일에 이르러 1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로부터 몇차례 2위로 밀리는 위기가 있었으나 정상의 자리를 고집하는 아리랑꽃 투표자들의 노력으로 1위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였으며 148만 7964표라는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인구 200만도 안되는 조선족사회가 약 두달간 한표 한표 소중한 투표로 이룩한 성과였다. 또한 추석전야에 이루어진 폐막식에서 아리랑꽃이 종목 금상과 우수무대미술상을 수여받음으로 하여 모바일 조선족사회에서 축하무드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리랑꽃이 투표에서 2위로 뒤떨어졌을 때 모바일 조선족사회에서는 "아리랑이 울고 있습니다. 꽃이 눈물 떨구고 있네요. 당신의 한표가 다시 기적처럼 저 눈부신 정상에 우리의 아리랑꽃을 피워낼 수 있습니다" 등 호소가 여기저기에서 퍼졌고 투표수를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 수집활동도 벌어졌다. 투표 막바지단계에는 끝까지 견지하자는 호소문, 총동원 등이 모멘트와 여러 위챗 그룹에서 퍼지고 있었다.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4회 진행되었지만 조선족사회의 커다란 관심을 이끌어내기는 필자가 알기로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은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가민위, 문화부, 국가광전총국(广电总局), 베이징시인민정부가 주관하는 대형 공익성 문화행사이다.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에서 지린성은 줄곧 조선족을 대표하여 훌륭한 공연들을 선보였다. 제1회는 1980년 9월 20일부터 10월20일까지 진행되었으며 연변가무 "분배받은 기쁨"이 농촌의 새로운 변화를 그림으로써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제2회는 2001년 9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렸으며 무용서사시 "들끓는 장백산"이 창작 금상을 수여받았으며 이외에도 "풍년제", "장고무" 등이 1등상을 수여받았다. 제3회는 2006년 9월 5일부터 25일까지 열렸으며 지린성대표단의 가무 "천년 아리랑"이 가무 종목 대상을 수여받았으며 우수배우상, 우수신인상, 우수조직상 등 여러가지 대상을 수여받았다. 제4회는 2012년 6월 7일부터 7월6일까지 열렸으며 길림성대표단의 대형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이 가무종목 금상, 최우수연출상, 최우수무대미술상, 우수신인상, 음악상, 우수조직상 등 수많은 영예를 차지했다. 전국민족예술공연에서 가무의 고향으로 불려온 연변지역이 중심이 되어 지린성뿐만 아니라 전반 조선족 문화와 예술을 대표함으로써 조선족민족예술을 널리 홍보하고 조선족위상을 제고함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금년에 진행된 제5회에서 공연된 지린성대표단의 대형가무 "아리랑꽃"도 조선족사회의 주목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중국 주류 매체들에 의하여 널리 보도되었다. CCTV, 신화사, 인민일보, 중국일보, 베이징청년보 등 매체들이 아리랑꽃 공연에 대하여 소개 보도하였으며 봉황넷, 환구망,넷이즈닷컴, 천용망 등 사이트들도 아리랑꽃 기사들을 게재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선족예술문화가 중국 주류사회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제5회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 대상에 있어서 제4회와 비슷하게 종목 금상 10개, 은상 15개를 설치하였으며 이외에도 우수편극상, 우수연출상, 우수음악창작상, 우수무대미술상 등 상을 설치하였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와 중앙인민라디오방송국, 문예계 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의하여 여러 상들이 결정되었다. 전국소수민족예술공연은 선발전(选拔赛)이 아니라 소수민족문화 발전과 홍보가 주된 목적으로서 일반적으로 10개 이상의 대상을 설치하며 거의 참가자들마다 일정한 상을 받도록 했다. 이왕과 다른 점이라면 모바일투표를 통하여 순위 앞 10개 종목에 "시청자들에게 제일 환영받는 종목"이라는 상을 수여하기로 하였다. 과거의 주최측 주도의 관행을 일부 수정하여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게 함으로써 개개인들의 참여의식을 제고하였다. 모바일투표가 위챗을 통하여 알려지면서 조선족사회의 주목을 광범위한 주목을 받게 되였다. 모바일투표의 경우, 10위 이내에만 입선되면 모두 같은 "시청자들에게 제일 환영받는 종목"상을 수여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1위라는 정상을 고집하고 있었으며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어 투표를 호소하였다. 모바일 조선족사회에서 아리랑꽃에 대한 투표열정은 민족사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기인된 것임은 의심할 바가 없다. "우리는 지금 투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노래를 합창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리랑합창단에 합류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리랑노래는 더욱 우렁차게 이 땅에 울려퍼질 것입니다"라는 호소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리랑꽃에 대한 투표는 민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중국에서 민족문화 홍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내포되어있다. 조선족을 대표하는 공연이 투표순위 1위라는 영예를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냈다는 긍지감과 함께 민족적자호감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아리랑꽃의 투표순위 1위에 대한 고집은 이를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조선족에 대한 민족자존심으로 직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족사회의 아리랑꽃에 대한 열정은 글로벌시대 조선족사회의 민족공동체유지와 민족문화전승에 대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이후 급속한 인구이동으로 인하여 글로벌조선족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조선족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지고있다. "별다른 종교가 없었던 조선족들은 교육을 종교 이상으로 신앙하였"지만 전통집거지 해체위기와 민족교육의 위축, 대도시 지역 조선족 민족학교의 부재 등은 모두 조선족 구성원들의 민족문화 전승과 발전에 대한 위기의식을 키우고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조선족을 이어놓을 구심점이 필요하지만 구심점의 부재가 민족공동체 발전에 대한 위기의식을 더욱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연변축구가 슈퍼리그에 진급함에 따라 조선족사회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고 조선족예술을 대표할 수 있는 "아리랑꽃"이 전국무대에서 공연됨에 따라 구성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예술문화로서 "아리랑꽃'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중한수교 이후 조선족사회는 중국과 한국문화 교류에 커다란 가교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늘 한족문화도 아니고 한국문화도 아닌 조선족문화란 무엇일가 하는 고민을 겪은 조선족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꽃"은 조선족예술가의 생애를 테마로 하면서 조선족의 민족문화를 표현하는 기초에서 민족의 꿈을 예술적으로 재현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족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으며 길림성뿐만 아니라 흑룡강, 료녕 등 기타 지역 출신 조선족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였다. 이는 글로벌시대 조선족 구성원들의 민족문화발전에 대한 갈망과 문화적 자각이 아닐가 생각한다. 앞으로 조선족 구성원들을 단합할 수 있는 보다 많은 요소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모바일투표가 모든 조선족사회의 성원과 지지를 받은 것만은 아니다. 투표기록에 대하여 보다 상세한 통계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평균투표수가 2만 7054표/일이며 투표가 많은 시기에는 하루에 4만표 안팎이 투표된 것 같다. 이는 모바일사회에서 아리랑꽃에 대한 투표로 펄펄 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사회 전반적으로 볼 때 아리랑꽃 투표에 대한 주목이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이로 인하여 1위에 대한 추구가 투표 마지막 단계에는 정상적인 수위를 넘어 집착으로 넘어가 지나친 "우리"에 대한 집착이 "타자"에 대한 배척으로 넘어가지 않을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은것은 아니다. 과연 43개 팀이 참가한 이번 공연에서 타민족, 타지역 공연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살펴보았으며 어느 정도 알고 있을가? 서로 잘 알고 서로 존중하면서 포옹하는 문화가 글로벌시대의 발전에 수요되는 문화이며 이 또한 우리가 앞으로도 이어나가야 할 문화적 우세이기도 하다. 안성호 흑룡강신문 2016-09-23  //////////////////////////////////덤으로 더 보기+=(자료) 천지괴물의 출현 그리고… 2013-08-02  일전, 장백산천지화산감측소의 일군이 장백산천지서 《괴물》을 발견했다. 장백산천지화산검측소의 무씨에 따르면 2013년 7월 27일 아침 5시경, 무씨는 동업자와 함께 온천수온을 감측하고저 장백산 북쪽비탈 천지변에서 온천에서 나오는 기체샘플을 채집중 잠잠하던 천지물에 돌연《V》형의 파도가 일고 수면에 불명물체가 나타나더니 빠르게 앞으로 헤염쳐가는것을 봤다고 했다. "즉시 사진기를 들고 찍었고 사진속에 머리와 비슷한것이 수면에 있었다. 물체의 륜곽이 똑똑하지 않았는데 사슴새끼의 머리와 목과 비슷했다"고 무씨는 소개했다. △ 천지에서의 괴물의 출몰은 이미 한두번이 아니다. 뉴욕 타임즈에서도 몇해전에 이를 보도했었다. 60년대에도 길림성 기상국 직원이 7~8마리의 괴물을 목격해 화제가 됐다. 60~70년대 이후 30~40여 차례 발견됐고 목격자들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목격자들이 묘사하는 괴물의 모습은 코끼리, 개, 수달, 흑곰과 목이 긴 룡 등 다양하다. 괴물에 대한 전설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광서 34년(1908년)의 ,청현통치2년의 외에도 ,에도 모두 그 기재가 있다. 기재와 전설에 따르면 장백산에는 세가지 괴물이 있었다고 했다. 그 하나는 당나라 임금들이 그 가죽 갖기를 원했다는 화서(火鼠)인데… 화산인 장백산에는 불구덩이 속에 사는 쥐처럼 생긴 괴물이 있었으며 그 모피로 옷을 지어 입으면 불 속에서도 타지도 데지도 않는다 했다. 다른 한 괴물은 온몸에 털이 난 사람으로 짐승처럼 네발로 나무를 타고 토굴에서 사는 모인(毛人)이라고 한다. 얼핏 들어보면… 빅풋(설인, 예티, 싸스콰치라고도 불린다.) 흉년에 함경도에서 산에 들었다가 눈에 갇혀 야생화한 모녀(毛女)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야생인간이 장백산 괴물의 하나였다. 그 세 번째 괴물이 요즘 항간의 화제가 된 천지괴물이다. 옛 중국문헌들에도 괴물은 자주 등장했다. 청나라 강희제 년간에 사냥군 몇명이 천지변 조오대(釣鰲臺)에서 괴물이 목을 내미는 것을 보았는데 황금색으로 물동이만한 모난 머리에 뿔이 돋아 있고 긴 목에 돌기가 나 있었다 했다. 겁이 나 돌아서 도망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괴성이 나 돌아보았더니 괴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했다 광서(光緖)6년 5월에도 유복(兪福) 등 6명이 수면에 물소만한 괴물이 머리를 들고 포효하는 소리를 들었다 했으며 천지 북쪽 끝에 있는 천활봉(天豁峯) 중턱 벼랑에 동굴이 있는데 커다란 이무기처럼 생긴 괴물이 드나드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장백산 산중 민속에 삼월 삼짇날을 전후하여 천지가에 올라 막을 치고 밤을 새우는 민속이 있다. 밤중에 마치 바다에 해가 떠오르듯 환한 빛을 내며 괴물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세 번 하는 것을 본 다음 천지 물에 몸을 적시면 장수한다고 알았던 것이다. 이 괴물을 두고 천지의 바닥이 바다와 통하고 있어 바닷물이 들어 솟을 때 생기는 물기둥으로, 해안(海眼)현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네스호괴물 킹콩, 고질라, 디워… 상업흥행에서 대박을 터뜨린 괴물캐릭터들이다. ▲ 천지괴물이 장백산관광홍보의 또 하나의 매개물로 되지않나 생각해 본다. 항간의 화제인 에 대해 우리는 그저 반신반의로 방치해 왔을뿐 영국의 이나 할리우드공상영화속의 , 일본괴물영화속의 , 한국괴물영화속의 , 처럼 한 지역을 징표하고 상업소재로서 적극 활용하는 높이에 까지 올려 놓지 못했다. 수차 장백산을 다녀오며 보아도 많은 명목많은 관광기념품들중에 괴물기념품은 겨우 한두점, 그것도 조야하게 만든 조각물이 구석쪽에 놓여 있을뿐이였다. 훌륭한 마스코트는 언론매체와 인터넷 웹사이트, 각종 배너 상품, 의상, 관광기념상품 등을 통해 전파되며 또한 관광마케팅의 중요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더우기 관광지의 열기와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지방특색의 독특한 기념상품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도 한낱 완구의 의미를 넘어 필요하다. 미키마우스(米老鼠), 탕나드(唐老鸭)처럼 누구나 접할수 있는 진취적이고 생동감이 있고 현대적 감각이 풍기는 천지괴물 마스코트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혁 조글로 2013-08-01 
246    "매돌"과 "한복"을 넘어서 우주를 보여주다... 댓글:  조회:3430  추천:0  2017-02-18
  얼마전 김영건시인이 펴낸 시집 《물결이 구겨지고 펴지는 리유》를 읽으면서 시의 아름다운 이미지세계에 매료됐다. 오늘 그중에서 주옥같은 시 “한복”과 “매돌”을 골라서 독자들과 함께 읽으면서 시의 깊은 내부에로 려행 가보려고 한다. “노을 끌어다 천을 짜고/ 공작 모셔다 인연 맺고/ 둥근달 낚아 사랑 수놓고/ 록수를 길어다가 어깨를 세웠습니다// 오천년 세월의 응어리/ 녹이고 다려/ 마침내 피워낸/ 찬란한 우리 한복// 순정의 물결 그림 한 폭! -시 ‘한복’ 전문” 시인은 한복을 그림 한폭이고 더우기 순정의 물결이라고 한다. 록수를 길어다가 어깨를 세운 한복이다. 그랬으니 그 어깨선이 얼마나 아름다울가. 어깨선이 물처럼 부드럽고 투명하고 조용하고 도도하고 황홀하다. 어깨가 축 처진 사람은 곧 무너질것 같고 후줄근하다. 한복은 어깨가 처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너무 힘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한복은 노을을 끌어다가 천을 짜고 둥근달을 낚아다가 수를 놓았다. 그래서 한복을 입은 이를 보면 황홀한 노을을 마주하는 기분이고 달을 만져보는 느낌이다. 그 한복을 차려입은 가리마를 반듯하게 낸 우리 민족의 어여쁜 녀인이 보이고 그들이 넋을 담고 추는 춤사위도 보인다. 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백의 민족도 보이고 상모춤을 신나게 추는 우리 민족의 나그네도 보인다. 인간의 눈물이 보이고 희로애락이 담겨져 있는 시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날 맞절하는 신랑신부가 입은 한복과 신부의 유난히 빨간 볼연지가 보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슬그머니 웃는 신랑도 보인다. 마당에서 귀여운 망아지마냥 뛰노는 칠색저고리 받쳐입은 어린 아이들도 보이고 하얀 한복을 정갈하게 처려입은 인자한 할머니와 뒤짐을 진 점잖은 이웃집 할아버지도 볼수 있다. 오천년 세월의 응어리를 녹이고 다린 민족의 이주력사가 영화화면처럼 눈앞에 쭉 펼쳐지게 하는 시가 바로 “한복”이다. 이처럼 “한복”이 지닌 매력은 무수한 이미지를 순간에 밀려오게 만드는것이라 하면 시 “매돌”은 다른 매력을 지닌 시다. “돌밭에서 하얀 세월 기여나왔다”는 창의적인 언어와 내용으로 시 매돌의 첫구절을 연다. 서두부터 색다르고 만만치 않다. 매돌이라는 사물에 시인이 어떤 이미지를 그려넣어가는지 우리 한번 흥미진진하게 들여다 보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월속 눈물의 강물 굽이쳐 가고 엄마의 눈물어린 꿈이 파도쳐 갔고 아이의 눈망울에 붉은 저녁이 익어 슬픈 그림자 흔들며 돌아서고 할아버지 하얀 기침소리 노란 옛말 하얀 모국어로 사립문가 하얀 향기로 피여올랐다…” 아이의 눈망울속 저녁과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옛말과 사립문가 모국어는 시인의 필끝에서 붉은 저녁 하얀 기침소리 노란 옛말로 색상을 머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월속에서 예쁜 장면으로 장식된다. 매돌은 활화산이 설설 끓던 천지주변에 사는 사람들 가슴에서 쇠물로 흐르다가 진붉은 진달래를 피워내고 이내 강물과 조약돌의 쟁쟁한 노래로 살다가 온돌방에 석가래 틀고 앉아 빙빙 돌아가는 향수(乡愁)로 된다. 마지막 련에서 매돌과 함께 바다에서 온것들이 돌아가고 땅에서 생명들이 부활하고 우리가 돌고 베옷과 흰 넋이 돈다. 오천년 화려한 무궁화가 어진이의 하얀 마음과 하얀 평안과 하얀 전설로 빙글빙글 돈다고 하고 찬란한 옛말속에 매돌이 하얗게 앉아 돌아간다고 한다. 하나의 물체 매돌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내용을 담을수 있다는것에 그야말로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매돌과 함께 오천년의 우리 민족이 돌고 진달래와 무궁화도 와서 돌고 온돌방의 석가래가 돌고 그리고 바다와 륙지에서 온 생명이 돈다. 매돌은 이제 더는 매돌이 아니고 삶의 축이 되고 생명의 축이 된다. 시인의 상상은 놀라웁게도 오천년의 세월속을 왔다갔다 하고 바다에서 륙지에로 마구 주름 잡았다가 다시 베옷과 흰 넋과 어진이 하얀 마음과 평안과 전설의 중심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단순 두편의 시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김영건의 시들에는 종횡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시인의 무한한 상상이 돋보인다. 작은 물체 매돌이나 한복에서 시인이 말하고저 하는 내용은 깊이는 깊고 넓이는 가없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시인은 “매돌”과 “한복”을 넘어서 하얀 민족과 그 민족의 오천년 력사를 들려주고있고 더 나아가서 생명을 말하고 우주를 보여주고있다. 시인에게 있어 상상력은 생명이다. 한편의 시에 무수한 상상이 깃든 생생한 이미지를 곱게 담을수 있는 시가 가지는 매력 또한 살아숨쉬는 활어의 벅찬 생명력과 비슷하지 않을가? 김영건시인의 더 좋은시를 기대한다. 박춘월 연변일보 2016-11-17  ////////////////////덤으로 더 보기+= 촌옹이 들려준 마을의 이왕지사  2013-09-01  화룡시가지와 50여킬로메터 떨어진 남평. 숭선, 로과, 용화와 더불어 화룡시 두만강연안의 네개 변경향진을 이루던 남평은 로과향의 일부 및 용화향이 편입되면서 지금의 남평진을 이루고있다. 남평촌은 진소재 마을이다. 남평진에 이르러 미리 대기하고있던 류호림부진장으로부터 남평촌의 년장자인 김태연로인을 소개받았다. 김태연로인(1924년 출생)은 구순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자신이 듣고 겪은 력사사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남평촌은 1918년에 건립되였는데 남평(南坪)지명은 강 건너에서 애타게 부르던 ‘남편’이 번져서 남평이 된것이라고 합니다. 어느해 여름 장마로 두만강물이 불어 농사하러 강을 건너왔던 남정들이 며칠을 두고 건너가지 못했답니다. 어마어마하게 불은 물을 사이에 두고 ‘우리 남편이 무사함둥?’하고 저쪽에서 안부를 물으면 ‘우리 로덕두 편안한가?’라고 강 이쪽에서도 애를 끓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강 건너는 ‘로덕’이요, 강 이쪽은 ‘남평’이란 지명을 갖게 되였다고 합니다.” 김태연로인은 남평촌 사람들은 자고로 교육을 중시했다고 자랑한다. “내가 일곱살 때이니 아마도 1931년쯤 될겁니다. 남평촌에 향적으로 처음 향교가 들어섰는데 향교를 나온 사람들중 후날 교원이 되고 교장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1970년대 중반 남평소학교는 전국에서도 이름이 뜨르르했습니다. 남평소학교 배구팀은 1973년, 1974년 련속 2년간 전 주 소학교 배구경기에서 1등을 따내고 연변을 대표하여 길림성 소학교배구경기에 참가하였는데 첫해에는 2등, 이듬해에는 1등을 따냈습니다. 남평촌은 또 허씨 3형제를 비롯해서 최룡관, 김응룡, 박장길 등 문인들과 중앙인민방송국의 박청죽, 김재호 등 아나운서들을 배출한 고장입니다.” 김태연로인은 한때 연변을 들썽이였던 “남평사건”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고있었다. “광복초기인 1945년 8월, 화룡 청호촌의 대지주 문덕창이 잔여세력들로‘화룡현치안유지회’를 만들고 덕화촌의 손자옥이 ‘덕화치안대’를 만들었습니다. 11월초, 덕화촌의 박재권이 중공연변위원회의 지시하에 명륜학원교당에서 ‘덕화민주대동맹’설립식을 갖게 되였는데 손자옥이 이를 문덕창에게 알렸습니다. 문덕창은 ‘일본패잔병들이 남평에 모여 반란을 획책한다’고 쏘련군경비사령부에 거짓회보를 했습니다. 이에 중무장한 쏘련군 4명과 1명의 통역이 치안유지회의 10명 무장인원과 함께 명륜학원교당을 포위했는데 ‘민주대동맹’설립식이라는 로씨야어표어를 본 쏘련군인이 누구도 총을 쏘지 못하도록 명령했지만 ‘유지회’의 무장분자들이 무차별로 사격해 당장에서 9명을 살해했습니다. 3일후 연변경비사령부의 사령원 강신태가 명령을 내려 문덕창을 체포하고 ‘유지회’를 해산시켰는데 이 사건이 바로 유명한 ‘남평사건’의 시말입니다.” 취재를 마치니 점심때다. 중심거리에 나서니 한때 보따리장사군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중심거리가 지금은 조선의 철광분을 싣고 오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먼지를 흩날린다. 우리의 한단락 력사도 어느 구석에서 저 먼지처럼 조용히 사라져버리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글·사진 김인덕 기자 연변일보 2013-08-30 
245    서정시, 낯설게 하기와 보기 댓글:  조회:5033  추천:0  2017-02-18
  낯설게 하기와 우리 서정시 - 네 시인의 동명의 시《자화상》을 중심으로                               /서채화 1  로씨야 형식주의의 주요용어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란 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로씨야의 쉬클로프스키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로씨야 형식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문학과 다른 학문(즉 사회학, 철학, 심리학, 력사 등) 사이를 구분해주는 특징이 무엇인가 연구하던 중 그 차이는 문학과 다른 학문들이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발견해내게 된다. 즉 문학을 문학답게 하고 다른 학문 령역과 문학연구 령역을 변별시켜주는 특징을 문학성이라고 할 때 그 문학성은 문학이 사용하는 언어적 특질(말하는 방식)과 관련되며 그것은 바로 낯설게 하기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축자적으로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를 의미한다. 쉬클로프스키에 따르면 문학은 일상언어와 습관적인 지각양식을 교란한다. 문학의 목적은 재현의 관습적 코드들로 인해 지각이 무디어지게 놓아두는 것이라기보다는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태를 난해하게 만들고, 지각 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문학/시에서의 이상화(異常化; estrangement)는 리듬, 음성학, 통사법, 플롯 같은 형식상의 기제 즉 “예술적 기법”에 의해 생겨난다. 쉬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의 한 례로 스토리의 내용을 “이상하게 만들기” 위해 말(馬)의 시점으로 구사한 레브 똘스또이의 「콜스토메르」를 들고 있다.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적인 보행과 발레를 비교한다. 걸음을 걸으면서 자신의 걸음걸이의 의미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만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낯설게 만들고 구조화한 발레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여기서 시는 “발성기관의 춤”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발레는 걸음 하나하나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행은 그렇지 못하다. 문학의 언어 역시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 생생한 지각과 의미에 접하게 한다.     문학 텍스트의 내용과 형식은 서로 분리될 수 없고 형식의 새로움은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지각되었던 바로 그 내용의 새로움, 내용의 생생한 전달, 즉 핍진성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이 일상언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언어로는 경험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언어와 우리가 접하는 삼라만상의 인상과 그에 대한 판단이 이미 낡고 관습화되어 있어서 모든 것은 추상화되어 있고 평판화되어 있는데 문학은 여기에서 전혀 새로운 충격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쉬클로프스키는 이를 위하여 낯설게 해야 하며 “해”라고 부르던 사물을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서 전혀 낯선 사물로 새로이 깨닫게 해야 하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 발견할 것.  -비일상적 시각을 동원할 것.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할 것.  -인습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할 것.  -낯선 대상과 병치함으로써 낯선 인상을 줄 것.  “낯설게 하기”란 이 말은 비록 로씨야에서 나오긴 했지만, 우리 문학에서도 전혀 찾아볼수 없는것은 아니다.《자화상》이란 제목의 시는 여러 시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내면적 자아의 모습을 그린 것일 터이므로 시인의 정서, 사상을 리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필자는 모두《자화상》을 주제로 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시를 통하여 우리 서정시에서 표현된 “낯설게 하기”에 대하여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2 시의 목적은 사물들이 알려진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되는 그대로 그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의 여러가지 기교는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하고 지각을 어렵게 하고 지각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증대시킨다. 지각의 과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되도록 연장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란 한 대상이 시적임(시성)을 의식적으로 경험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시에서 시어와 일상언어의 대립에 의해 나타난다. 시에서는 일상언어가 갖지 않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리듬, 비유, 역설 등 규칙을 사용하여 일상언어와 다른 결합규칙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우선 윤동주의《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자 화 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또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년 9월  이  시는 일제 말기라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무장 독립 투쟁에 가담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있는 자신을 끝없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성찰의 과정에서 쓰여진 고독과 내면 성찰의 시이다. 1939년에 쓰여진 이 시에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서 느끼는 젊은 시인의 자기 련민과 미움이 나타나 있다. 화자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행위이다.  화자가 들여다보는 우물속은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는 곳으로 얼핏 보면 매우 행복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한 사나이” 즉,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려는 화자에게는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던 자신의 미운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돌아간다. 가다 생각하니 그 미운 사나이가  “가엾어” 돌아오게 되고 다시  “미워져”돌아가다가  “그리워”져 다시 돌아오게 된다. 화자는 자신에게 미움을 느끼고 그 미움은 련민으로, 련민은 그리움으로 변하는데 이런 변화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내면을 응시하는 가운데 일어난 감정이다. 우물 속은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가을”이 있는 또 다른 세계이고 그 안에는 “추억”이라는 또 다른 시간의 흐름이 화자의 진정한 성찰과 인간적 고뇌 속에 존재 하고 있다.      높은 것일수록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우물물은 동시에 밝은 것을 어둠에 의해서 보여주는 의미론적 역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물속에 비친 하늘은 밤하늘이며, 그 계절 역시 가을로 되어있다.  태양이 있는 대낮의 봄하늘과는 상반된다. 시내물은 주야가 따로없이 쉬임없이 흘러가지만 그런 류동적인 물을 한 곳에 가두어 고이도록 한 것이 바로 우물물이다. 그것처럼 윤동주의 우물속에 비치는 달, 구름, 바람 역시도 그 의미의 공통적인 요소는 다같이 물처럼 흐르는 것이지만 한 공간안에 유페되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는 분명 《자화상》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면서도 우물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나”가 아니라  “한 사나이”라고 낯설게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영상(映像)을 하나의 실체로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 같다. 윤동주는 마치 그  “사나이”가 우물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파아란 바람”이라고 촉각적이미지를 시각적이미지로 전이시켜 통각적이미지로 표현한것 역시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다. 일상적인 표현으로 하면  “바람”은  “파아란 색”을 띨 수가 없다.     또한 이 시는  “나르시시즘”1)을 바탕으로 한 자기성찰을 쓴것인데  “거울”과 같은 의미로 통하는 “우물”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불쌍한 자신에 대한 련민에 빠지게 된다. 시에서 반영된  “나르시시즘”  이 경향도  “낯설게 하기”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다음은 서정주가 쓴 《자화상》이다.  자 화 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숫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9년      미당 서정주의 시가 지닌 가장 큰 의의는 우리 시에서 시어사용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의 령역을 확대하여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였다는 데 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대추꽃이 한 주 서있다” “틔워오는 아침” “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 등 시어들은 일상언어와는 다른 결합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들에게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애비는 종이었다"는 첫 행은 실제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시가 당시의 독자들에게 준 감동의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련상시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아침 이마 위에 얹힌 몇 방울 피섞인 이슬” 은 괴로움의 삶 속에서 창조된 열매란 뜻으로 고뇌의 승화를 뜻하고 있다. 구속받고 멸시받으며 현실을 어렵게 사는 화자를 “죄인”, “천치”, “수캐”에 비유하면서 이런 은유로 투영된 언술이 아무래도 시의 멋을 더해주고있는것 같다.  같은 제목으로 쓴 박정웅의《자화상》을 보도록 하자.                                    자 화 상                         그림자처럼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하고 불길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외롭고 지쳐보이는 사람                마침내 자신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2001년       이 시에서는 일상언어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강제로 결합시키고 새로운 문법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시의 언어를 낯설게 하고 직접적인 의미를 넘어선 시적인 의미로 전환시킨다. 시인은 그림자와 “무시당하다” “짓밟히다” “수상하다” “불길하다” “외롭다” “지쳐보이다”를 강제로 결합시킴으로써(그것도 “그림자처럼”이라고 비유) 그림자를 일상적인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림자와 이런 표현들사이에는 거의 류사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자의 의도를 우리가 보아낼수 없는것은 아니다. 이런 낯설은 표현들은 우리들의 상상을 거쳐 낯익은 모습-힘없고 외롭고 지친 자신(시인)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또한 마지막련에서의 아예 사람이 그림자로 되어간다는 표현은 그 어떤 역전적인 발견일수도 있는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철심의《우리들의 자화상》을 보기로 하자.                            우리들의 자화상                                             남철심         찬물을 많이 마셔         도리여 뜨거운 가슴         물옆에 살아         물농사 지으며         하얗게 마음을 헹구는 사람         물 같은 술에         풀어보는 한(恨)과         술 같은 물에         적셔보는 원(怨)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                                                                                 2001년         이 시는 첫련부터 역설로 시작된다.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응당차가와야 할 가슴을 도리여 뜨겁다고 표현한다. 이와 조응되는 마지막련에서도 “찬물을 많이 마셔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눈물은 원래 뜨거운 것이나, 시인의 의도로 보면 찬물을 많이 마셨으면 눈물도 의례히 차가와 할 터인데 오히려 뜨겁기 때문에, “차가운것”과 “뜨거운 것”의 대조 그것 역시 역설로 보아야 하겠다. 사실 일상에서 그 누구도 찬물을 많이 마시는것과 가슴이나 눈물이 뜨거운것을 련계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역설적인 표현들로 “낯설게 하기”를 성공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일상적인 지각을 막고 시인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다음 리듬적으로 볼 때, 이 시는 고정적인 틀에서 벗어나 2행, 3행, 4행, 2행의 파격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하지만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시의 3련에서 “풀어보는 한과”에서의 “과”자는 사족으로,  없었으면 오히려 운률조성에 더 맞지 않을가 싶다.  3  세계의 사물들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존재가 바로 “우리”이다. 이러한 상투적 일상에 감염된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가 지닌 사명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해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시가 지닌 역할이다. 일상을 전복하기, 전도된 일상을 형상화하기가 시인의 숙제이다. 규격화되고 도식화된 세계를 휘저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고통이 시인의 숙명이다. 이와 같은 숙제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들에는 세계와 자아에 대한 애정, 섬세하고 차분한 관찰,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 일상에 대한 치열한 반칙의식, 평범을 거부하는 비범한 수사학 등이 있다. 시란 결국 권태로운 일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자극하는 촉매제이므로 윤동주, 서정주, 박정웅, 남철심의  《자화상》은 일상을 거부하는 비범한 의식과 표현이 우리의 각질화된 상상력을 물렁물렁하게 연성화시켜주는 작품들이였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언어를 일상언어와 구별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 내부의 력학(力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 지배적인 문학형식이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일상언어처럼 취급되면 종전에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던 형식이 전경화되어 그 문학적 상황을 낯설게 만들고 문학 발전과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즉 문학에서는 하나의  “낯설게 하기”가 보편화, 표준화되면 새로운  “낯설게 하기”를 창조해야 한다.  참고서(문):  1.「문학비평방법론」             김호웅    연변대학출판사    2000년  2.「아이러니와 역설」            이건주  http://feelpoem.pe.kr/build2/board.php3?table=creation&query=list&p=3 (문학가산책)  3.「낯설게 하기와 의미론적 연관」김송배  http://feelpoem.pe.kr/build2/board.php3?table=creation&query=list&p=3 (문학가산책)  4..「낯설게 하기의 시학」        양병호  http://www.kimjihyang.pe.kr/reboard/content_list.php3?id=175&custom=focus&list_num=&page=1&sort=name&sortmode=ASC 
244    시인은 언어라는 무기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수 있다... 댓글:  조회:3473  추천:0  2017-02-18
      2월 14일(음력 1월 18일) 푸젠(福建, 복건)성 푸톈(莆田, 포전)시 쑹둥(松東)촌에서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맨발로 숯불 건너기(赤腳踩炭火)’ 행사가 개최됐다. 직경이 4m에 달하는 나무 더미에 불이 붙었고 맨발의 청년 및 장년들은 신상(神像)을 실은 나무 가마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며 새해 좋은 날씨, 복, 평안 등을 기원했다. /신사넷/인만망 역 시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가 써온 것인가? 그 기원을 찾아서.  이승하(시인.중앙대 교수)  시인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사람  시인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의사소통을 위한 말의 질서를 파괴하고 그 잔해 위에 새로운 말의 탑을 세우는 자,  그의 이름은 시인입니다. 시인을 빨리 말하면 신이 되지만 신은 시인을 좋아지지 않을 겁니다.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족속이기 때문이니까요.  다른 세상은 이데아입니다. 이상향에 대한 꿈은 낭만주의자들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주의자도 상징주의자도 초현실주의자도 새롭게 만들보고자 하는 어떤 세상이 있습니다.  꿈을 현실과 연결시키려는 이가 소설가라면 꿈을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는 자가 시인입니다.  제가 애송하는 시 2편의 한 부분씩을 인용합니다.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나의 방에서 어둠은 떠나지 않는다  나의 눈이 폐허에 부딪치지 않는다면  나의 눈은 어둠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으리라  유일한 자유의 공간은 내 마음 속 깊은 곳  그것은 죽음과 친숙한 공간  혹은 도피의 공간  (이곳에 살기 위하여)부분 오생근역  귀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데도 없다.  (바다)제1연  앞의 것은 초현실주의 시를 쓴 폴 엘뤼아르의 작품인데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쓴 그의 대표작입니다. 벽이 피를 흘릴  수는 없으므로 이 시에서 벽은 바람벽이나 장애물이 아니겠지요.  관계의 단절일 수도 있지만 전쟁의 참화를 겪은 도시의 벽,  핏자국이 남아 있는 벽, 단절의 벽, 닫힌 내면의 벽...  다중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람의 눈이 어둠 속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폐허에 부딪칠 수는 없는데 시인은 그것을 가능케합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이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었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여 죽음과 친숙한 공간, 혹은 도피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시인은 사전적인 뜻을 무시하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하지요.  뒤의 것은 (화사집)에 실려 있는 서정주의 작품입니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다다랐을 때 쉬어진(바다)이니 만큼 제 1연의 마지막 행을 저는 시인이 내뱉은 비분강개한 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몇편의 친일 작품으로 말미암아 시인은 친일 문인의 대표자로  매도 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까지 비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길은 참으로 많지만  식민지 치하인 이 땅에서는 길이 길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으므로 시인은  이렇게 부르짖었던 것이겠지요.  아-스스로히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듸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알래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바다)부분  "청년아"하고 부른뒤에 그대와 관계가 있는 모든 이와 결별하고  먼 곳으로 탈출하라고 하더니 침몰하락 마구 외칩니다.  가는 도중에 침몰할지라도 일단 떠나라 외치는  정신나간 자- 바로 시인입니다. 이런 외침이 시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를 정신 나간자로 보지 않고 시인으로 봅니다.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잊어버려"라고 했다면 참 무미건조했을 터인데  먼저 네 애비와 에미를,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마지각 네 계집을 잊어버려"라고 권유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고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습니다. 말로써 말입니다.  =================================================================     물 끝  ―정홍순(1964∼ ) 구기자 꽃피는 억새 너울진 샘 저드래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 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 홀랑 달빛 눈부시게 씻어 당긴 샘     석 질이나 차던 물길 돌아누워 먼저 간 식구들 생각에   물 끝은 늘 그리움을 상처내고 흐른다  짧은 장마가 지났다. 햇빛에 환호작약하는 듯 매미울음 소리 자지러진다. 목이 바짝 마르다. 집에 넘쳐나던 생수가 다 떨어졌다. 이 염천에 무겁기 짝이 없는 생수를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5층으로 배달시키는 건 못할 짓이라 자제한 결과다. 수돗물이라도 마셔야겠다. 페트병에 든 ‘아리수’는 마시면서 수도꼭지에서 받아 마시는 건 왜 내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물을 사 마셨다고….  ‘저드래’는 시인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에 있는 마을이다. 구기자 꽃피면 ‘담자색 꽃물이 흥건히 들어차’던 ‘억새 너울진 샘’은 시인에게 고향의 상징이다. 머나 가까우나 마을사람들이 ‘두레박으로 질러먹던’ 깊은 샘. 거기서 ‘풀벌레 질금거리던 여름’이면 달빛 아래 홀랑 벗고 몸을 씻었지. ‘두멍 물 길어 채울 때마다/시퍼렇게 솟던 아버지’, 그 샘은 시인의 혈기방장 젊은 아버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두멍은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큰 항아리로 수도가 귀하던 시절의 중요한 부엌세간이다. 지금은 생활의 멋을 아는 호사가의 집에서 부레옥잠을 띄우고 있을 테다. ‘석 질(세 길)이나 차던 물길’ 왜 돌아누웠을까? 그 물을 퍼서 두멍을 채우던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무슨 용수로 다 빼가서 고갈된 것일까. 맑고 깊은 샘은 사라지고, 생명의 물 찰랑거리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셨다. 산천이라도 의구하면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 상처 없이 그리울라나. ‘물 끝’, 바닥난 샘에 방울방울 샘물인 듯 눈물이 흐르고, 화자의 마음에 그리움이 아릿아릿 피어오른다.  
243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기괴하다" = "괴기하다" 댓글:  조회:5695  추천:0  2017-02-18
기괴하다   보통과 다르게 유별나고 이상하다 발음 [-괴--/-궤--] 형태분석 [±奇怪-하_다] 변화 [여불규칙]    뜻/문법 형용사뜻별예문열기 (무엇이)보통과 다르게 유별나고 이상하다. 학교 축제 때 윤수의 변장은 정말 기괴했었어. 그 무용수의 춤은 느리면서도 기괴한 동작의 연속이었다. 유의어 이상야릇하다(異常----) 비표준어 그로테스크하다(grotesque--) 관련어 유의어 1건 이상야릇하다무엇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별나고 묘하다   괴기하다   1.크고 기이하다 2.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특이하다 발음 [괴:---/궤:---]   뜻/문법 괴기하다1단어장 저장 발음 [괴:---/궤:---] 형태분석 [+怪奇-하_다] 변화 [여불규칙]  형용사 (무엇이)괴상하고 기이하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이 괴기하고 스산하다. 그곳은 무언가 음산하고 괴기한 분위기를 풍겼다. 더보기 괴기하다2단어장 저장 (무엇이)크고 기이하다 더보기 괴기하다3단어장 저장 (사람이)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특이하다 더보기 관련어 유의어 1건 괴수하다남보다 뛰어나고 특이하다
242    [시문학소사전] - "르네상스"란?... 댓글:  조회:3213  추천:0  2017-02-18
‘부활’ 혹은 ‘재생’을 뜻하는 프랑스어 ‘르네트르(renaître)’에서 유래한 르네상스는 크게 두 의미를 지닌다. 첫째, 그것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하여, 15세기 이후 알프스 이북의 유럽으로 확산된 일련의 문화적 변동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리스 · 로마의 고전문화를 정신적 지주로 삼아 발생한 이 변화는, 그리스도교적 · 금욕적 중세문화를 배격하고 유럽인들의 삶 전반에 걸쳐 고대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부활시키려 했던 문화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르네상스는 이와 같은 문화적 변동이 발생했고 또 시대의 지배적 조류로 작용했던 역사상의 특정 시대를 일컫는 시기 구분론적 개념을 뜻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연구자들은 고전문화의 부활을 강조하던 14~16세기의 정신적 · 문화적 삶의 양태가 단지 학문과 예술의 영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정치 · 경제 · 종교 · 사회 등 당시 유럽의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인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는 단순한 문화운동을 넘어,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로 간주되는 특정 시기를 지칭하는 시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본원적 개념은 르네상스 당대의 산물이었다. 14, 15세기의 이탈리아인들은 로마의 몰락과 함께 인류문명의 황금시대가 쇠퇴하고 중세의 암흑기가 지배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그들은 자기 시대에 들어서 이러한 무지와 야만의 시대가 종식되고, 비로소 고대의 황금 문화가 소생하게 되었다고 자부했다. 최초의 르네상스인으로 알려진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를 시작으로 비온도(Flavio Biondo)와 브루니(Leonardo Bruni)를 거쳐 16세기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서 종합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역사 인식은, 이러한 문화의 부활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부활이라는 관념은 필연적으로 재생의 대상이 되는 고대 세계와 재생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시대 사이의 역사적 거리, 그리고 양자 사이에 가로놓인 제3의 시대를 상정한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라는 개념은 중세 개념의 발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역사 개념으로서의 르네상스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은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프랑스의 문화사가인 미슐레(Jules Michelet)는 르네상스와 함께 중세와 날카롭게 대비되는 근대정신이 발현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세계와 인간의 발견이라는 그의 테제를 수용하여 전형적인 르네상스의 상을 제시한 사람이 스위스의 역사가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였다. 그는 ‘근대 유럽의 첫 아이’라는 말로 르네상스 이탈리아인들을 개념화하면서, 근대성과 개인주의라는 명제를 통해 르네상스를 규정했다. 그러나 미슐레가 제시하고 부르크하르트가 정형화한 이러한 전통적 해석은, 20세기 초반 이른바 ‘중세주의자들의 반동’에 직면하여 르네상스의 비근대성과 중세와의 시간적 연속성이 부각되면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이들은 부르크하르트 이래 르네상스의 특징적 현상으로 간주되던 지적 · 문화적 발전 및 세속주의적 경향이나 고전문화의 부활이 이미 수세기 이전 중세시대부터 발원하고 성장했다고 주장하며, 르네상스의 기원을 중세로 소급했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이후 불모의 상태가 된 유럽의 문화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학자나 문인 등을 초빙하여 고전 학문 및 교육을 부활시키려 했던 카롤루스 시대의 ‘카롤링거 르네상스’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헤스킨스(Charls Haskins)는 도시와 대학의 성장, 그와 함께 발전한 라틴 문학과 로마법의 부활 및 속어 문학의 등장, 그리고 아라비아를 경유하여 계승된 그리스의 철학이나 과학 등이 부활하고 융성했던 12세기 유럽의 전반적인 발전이 15세기의 르네상스를 능가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라는 테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중세주의자들의 도전을 거치면서 르네상스가 중세의 완전한 부정이라기보다 이에 대한 비판적 · 창조적 수용 혹은 전화라는 점이 설득력을 얻게 되면서, 오늘날에는 르네상스를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로 파악하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역사 시기 구분론의 문제와 결부되어 20세기 후반에 힘을 얻고 있는 ‘근대 초(Early Modern)’라는 개념은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제기된 역사 구분의 과도기적 해석이 더 넓게 확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탈중세적 세속 문화가 제일 먼저 융성하고 이를 통해 고대 문화의 부활이라는 르네상스의 관념이 처음 제기된 지역이었다. 이것은 이탈리아 특유의 지리적 요인과 역사적 경험 때문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봉건제도를 경험하지 못한 중세의 이탈리아에서는 일찍이 상업이 부활하여 그에 기초한 도시문화가 융성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알프스 이북과 다른 정치적 분립 현상이 지속되었다. 도시의 융성과 정치적 분립주의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중세적 관념과 다른 새로운 세속적이고 유동적인 삶을 요구했다. 아울러 고대 로마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와 본원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동서 문화가 만나는 접경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비잔티움 및 아라비아 세계와의 접촉 역시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이탈리아인들은 새로운 도시적 · 세속적 삶의 모범이나 그를 위한 지침을 고대의 문화 속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피렌체의 메디치(Medici) 가문이 예증하듯이, 르네상스 신흥 중산층이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고 장려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였다. ‘휴머니즘(humanism)’은 르네상스와 분리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르네상스의 방향과 성격을 가늠하고 인도했던 지도 이념이었으며, 더 나아가 이 시대를 특징짓는 시대정신의 문화적 표출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휴머니스트(humanist)’들은 결코 어떤 주제에 관한 통일된 의견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일치된 관심사도 제시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유럽의 수사학적 전통에 입각한 교육 · 학문 운동으로 평가하는 크리스텔러(Paul Oskar Kristeller)의 해석은, 르네상스 시기 동안 출현했던 여러 형태의 휴머니즘을 관통하는 가장 일관되고 포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의 견해를 따른다면,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이 용어를 통해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 혹은 인간애와 관련된 어떤 개념과 달리, 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중요한 한 축을 형성했던 특정 형태의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사조의 내재적 발전을 강조하는 크리스텔러와 다르게 바론(Hans Baron)은 그것의 태동과 성장을 가능하게 한 외재적 요인에 주목하여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정의한다. 그는 15세기 초 밀라노의 전제주의적 팽창으로 촉발된 정치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르네상스의 지식인, 특히 피렌체인들에게 자유 수호를 위한 시민정신이 발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명상적 삶(vita contemplativa)을 예찬했던 이전 세대의 휴머니스트들과 달리, 15세기의 휴머니스트들이 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적 · 정치적 삶(vita activa et politica)을 이상화했다고 주장하면서,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정치적 성격을 강조한다. 한편, 가린(Eugenio Garin)은 시민의 참여의식과 책임의식의 성장이 근대정신의 발현을 보여준다는 바론의 견해를 더욱 발전시켜, 단순한 학문운동을 넘어선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근대 세계로의 변화와 변혁을 이끌었던 일종의 비판적 시대정신이었다. 교육 · 문화 운동, 시민정신의 발현, 시대정신 등의 무엇으로 이해하든지 중요한 점은, 소위 휴머니스트들로 불리던 이들이 고전 고대의 작품 속에서 지적 교양이나 학문적 우수성의 모범 혹은 자신들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전거를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시기적 혹은 주제별로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 다양한 면모를 보일지라도, 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요인은 고전에 대한 숭모적 태도 혹은 적극적 수용이며, 이 점에서 휴머니스트들은 일종의 고전주의자나 고전 애호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선행된 것이 고전의 발굴이었다. 페트라르카 시대부터 이어져온 고전의 발굴은 특히 15세기 초 피렌체의 유명한 책 사냥꾼(book-hunter) 포지오(Poggio Bracciolini) 덕택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휴머니스트들은 불완전한 형태의 번역이나 발췌가 아닌 원문 그대로 고전을 읽고 해석하며, 또 그것의 의미를 고대적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휴머니즘 본연의 이상에 더욱 충실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르네상스 당대인들에게 휴머니스트들이 다른 무엇보다 고전주의자로 평가되었던 것에서 잘 확인된다. 15세기 말엽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알프스 이북의 유럽에 전파되는 전환점이 되었다. 북방의 휴머니즘은 흔히 이탈리아 휴머니즘과 비교되어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이나 ‘성서적 휴머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불린다. 이것은 주로 예술과 학문의 혁신과 부활을 가져온 이탈리아와 달리, 북방의 르네상스가 사회비판적이고 종교개혁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인 그리스 · 로마의 정신을 소생시키려 했던 이탈리아 휴머니스트들과 달리, 북방의 휴머니스트들은 성서와 초기 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에라스뮈스(Desiderius Erasmus)나 모어(Thomas More) 같은 북방의 휴머니스트들이 고전의 영감과 전거를 바탕으로 교회 및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비판하려 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문화운동으로서의 르네상스는 서양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전 자체를 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당시의 문화는, 고전을 고전 그대로 읽고 해석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교적 고대의 미,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을 소생시켰으며, 이와 아울러 비판정신과 새로운 역사인식이라는 뜻하지 않은 부산물도 선물했다. 이를 통해 태어나는 것이라기보다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간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작품 속에서 생생히 드러나는 자연주의적 예술관, 그리고 근대 과학의 태동에 영향을 준 사실주의적 세계관 등이 융성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르네상스는 고대라는 과거에 시선을 두면서도 근대라는 미래로 발걸음을 내디딘 역설의 문화운동이자, 이를 토대로 독특하게 전개된 역사상의 시기라 할 수 있다. ======================      
  는 붙여쓰는 경우와 띄어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함께하다   「동사」 【(…과) …을】((‘…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1」=같이하다「1」. ¶ 어려움을 함께한 친구/생사고락을 함께하다/그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다.∥어머니가 큰상을 받는 자리에 의당 집안의 높은 어른들이 자리를 함께한 것까지는 좋았다.≪전상국, 외딴길≫ 「2」=같이하다「2」.  ¶ 친구와 행동을 함께하다/그와 이해를 함께하고 있는 입장이어서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모든 상처받은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해 주시며 그것을 사랑으로 치유해 주십니다.≪이청준, 벌레 이야기≫     함께   부사」 ((주로 ‘…과 함께’ 구성으로 쓰여)) 한꺼번에 같이. 또는 서로 더불어. ¶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형과 동생이 함께 놀고 함께 공부한다./어머니는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과자와 함께 음료수도 사 오너라./봄과 함께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적장은 화살을 맞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국립국어원 국어생활종합상담(온라인 가나다) 질문과 답 몇 가지   1. 문. 청첩장의 문구로 띄어쓰기를 알려주세요. 답.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다.”라는 ‘함께하다’가 쓰일 문맥이므로,       ‘함께하셔서’와 같이 적습니다.   2. 문. 초대문구에 들어가는 '~의 시작과 함께해 주세요' 라는 문장 때문에 고민인데요.      '함께하다' 가 동사로 쓰였을 때는 '함께해 주세요' 가 맞는 것 같고,        함께가 부사로 쓰였다면  '함께 해 주세요' 가 맞는 것 같아 헷갈립니다.      시작을 '함께하다' 는 동사이니까 첫번 째가 맞을까요? 답. 구체적인 맥락을 제시하시지 않아서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려우나       ‘~의 시작과 함께해 주세요’에서 ‘함께해’를 붙여 쓰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함께하다’가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거나        서로 어떤 뜻이나 행동 또는 때 따위를 동일하게 가지는 것’을 의미할 때는 붙여 씁니다.       참고로 ‘함께하다’는 타동사이므로 목적격 조사와 함께 쓰여야 합니다.         ‘~의 시작을 함께해 주세요’처럼 표현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3. 문. 함께하시길, 함께 하시길, 어떤 띄어쓰기가 맞나요? 답. ‘함께하다/함께 하다’의 띄어쓰기는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경험이나 생활 같은 것을 얼마 동안 더불어 하거나        서로 뜻이나 행동, 때를 동일하게 가진다’는 뜻일 때에는        ‘우리와 행동을 함께하시길’과 같이 붙여 써야 하고,        함께 어떤 일을 한다는 뜻일 때에는 ‘식사를 함께 하시길’(함께 식사를 하시길)과 같이        띄어 써야 합니다. /출처 : 한국 국립국어원 {필자 주};= "조선어"의 통일이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이고 급선무인데!!!ㅡ
240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댓글:  조회:3495  추천:0  2017-02-17
하늘가에 울려퍼진 윤동주 '서시' ...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ZOGLO) 2017년2월15일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   - 룡정.윤동주연구회 윤동주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형기념행사 조직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난 괴로워 했다.   2월 16일 룡정시 동산마루에는 랑랑한 시랑송소리가 소슬한 겨울바람을 이겨내며 산마루에 울려퍼졌다. 민족시인 윤동주 옥사 72주기를 맞아 백여명의 시민들이 동산에 잠든 윤동주의 묘소를 찾은것이다.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기획, 주최한 윤동주탄생100주년계렬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백명 시민 백년시인을 노래하다”라는 명제의 대형기념행사가 윤동주의 묘소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가슴앞에 조화를 단 참가자 일동이 윤동주의 묘소에 묵념을 하고  윤동주의 친지 윤인주선생과 룡정.윤동주연구회 임원, 시민들이 윤동주의 령전에 제주(祭酒)를 올렸다.   행사에서는 룡정.윤동주연구회 리승국 부회장이 윤동주의 생애를 소개하고 온가족을 대동하고 온 김화자등 시민대표가 소감발표를 했다.   룡정.윤동주연구회의 임원들과 시민들이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편들인  “새로운 길” , “또 다른 고향”, “자화상” ,“별헤는 밤”과 동시들을 랑송했다.    나중에 100여명의 참가자 일동이 윤동주의 주옥같이 빛나는 시 “서시”를 집체랑독하였다.    장편인물전 “윤동주 평전”과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의 저자인 룡정.윤동주연구회 김혁 회장이 “100년의 성좌를 우러르다”라는 제목으로 발언했다.    김혁 회장은 “윤동주 시와 민족정신의 일반화, 보편화를 위해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행사를 기획했다”며 “올해로 ‘백세지후(百歲之後)’를 맞는” 윤동주는 “강인한 항일,저항정신을 지녔으며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며 이를 맑고 순한 언어로 적어내렸기에 오늘날 그렇게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면서 “그이를 기리는 일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과 책임감을 일깨우는 시간과 기회로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고향의 시인을 기리는 일에 불같이 뜨거운  동참의식을 보여주어 추운 겨울에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며 시민 여러분께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김회장에 따르면 룡정.윤동주연구회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 한해 많은 일들을 기획하고 있다.    룡정.윤동주 연구회 산하의 력사답사팀의 주도로 력사 유적지 탐방을 정기적으로 이어나가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이며 반일지사, 문사인 송몽규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더불어 펼쳐나가며 청소년인물전 “’별’의 시인 윤동주”를 출간, 각 학교에 무상으로 보내며 “’별을 노래하다’- 윤동주 시 가영대회”를 지난해에 이어 제2탄으로 성대하게 거행하며 윤동주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윤동주 평전” 그리고 윤동주의 문학생애를 소설화한 장편소설을 출간하여 백주년에 헌례하려고 한다.    이외 윤동주 묘소 참배, 시랑송회,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들로 시인의 백주년을 맞은 이 한 해를 축제의 분위기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한편2014년 9월 27일,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선양하고 나아가 민족의 문화와 력사의 의미를 환기하고 고양하는데 몸바칠 취지로 조선족의 작가, 학자, 매체일군, 교직원들로 무어져 윤동주 시인의 고향 룡정에서 발족된 사단법인 “룡정•윤동주연구회”(회장 김혁)는 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들을 해왔다.      2014년 12월 20일,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서 윤동주 탄신 97돐 기념행사를 가졌다. 2015년 2월 16일, 윤동주 옥사 70주기를 기념하여 “항일 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행사”를 가졌다.    민족의 인걸들을 조명하고 민족공동체의 이슈와 현안에 대해 진맥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비전에 대한 제안 등의 알쭌한 내용들로 꾸며진 문화총서 “룡두레”를 편찬, 출간했다.    2015년 4월, 윤동주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윤동주의 용정자택 자리에 윤동주연구회 사무실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사무에 착수했다.    2015년 청명을 맞아 조선족 대형문학지 “장백산” 잡지사와 손잡고 윤동주 추모제를 개최했다.    유족의 동의를 얻어 룡정의 시민들을 휘동하여 윤동주의 묘소를 새롭게 단장했다.   2015년 9월 20일 룡정•윤동주연구회 산하에 력사답사팀을 발족시켰다. 윤동주의 발자취가 어린 명동, 나아가 조선족역사의 “박물관” 격인 룡정, 연변지역에 산재한 민족의  유적지, 전적지에 대한 계획적인 답사를 취지로한 답사팀은 그동안 윤동주의 발자취 테마, 15만원탈취사건 테마, 청산리대첩을 테마로 비교적 규모가 있는 답사들을 펼쳤다. 조선족문학의 순문학지인 “도라지” 잡지사, 문화종합지 “문화시대” 등 잡지들과 손잡고 룡정•윤동주연구회 회원 특집을 마련했다.    윤동주 인물연구서 “윤동주 코드”를 출간했다. “윤동주 코드”는 출간 후 호평을 이끌어내며 누구나 쉽게 접할수 있는 “백과사전처럼 읽는 윤동주생애”라고 일컬어지고있다. 윤동주 관련 서적, 민족인걸들을 조명한 서적 수백부를 시민들에게 무료증정했다.   2016년 5월 15일, 반일지사, 문사이며 윤동주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를 기리는 행사 “송몽규를 기억하다”를 펼쳤다.   2016년 7월 15일 윤동주 시읊기 대회를 성황리에 펼쳤다.“‘별’을 노래하다- 제1회 윤동주 시 가영(歌咏)대회”라는 제명하에 연변각지의 문인, 유명 아나운서, 아나운서를 꿈꾸는 어린이, 용정.윤동주연구회 임직원, 용정시 시민, 학생등 100여명이 모여 윤동주의 대표적인 시편들을 랑송했다.      2017년 12월 30일 윤동주 탄생99돐기념 및 용정.윤동주연구회 설립 3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80여세 고령의 로인으로부터 7세 꼬마에 이르기 까지 연변 각지에서 모여온 일반 시민 210여명이 참가했다.      조글로미디어 리계화기자 ////////////////////////////////////////////////////////////////////////// 윤동주, 연변의 자산 겨레의 재부 채영춘 오늘(2월 16일)은 항일저항시인 윤동주가 일제감방에서 생을 마감한지 72돐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윤동주의 탄신 100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2년 전 일제감방에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한 시인의 육신은 고향 룡정에 묻혔어도 그 넋은 우리와 함께 하면서 무한한것을 깨우쳐주고있다. 누군가 “세익스피어는 시대가 없다”는 말로 위인이 창출한 문학정신의 영구불멸을 함축성있게 정리한바 있다. 민족수난기 겨례의 비극을 뼈저리게 아파하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없음을 부끄러워한 윤동주의 순수한 정신, 반성의 자세는 일제식민지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겨례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세계 기타 민족의 명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동주는 연변의 자산임과 동시에 겨레의 공동한 문화재부로서 그가 부각시킨 불멸의 정신적 유산은 지역을 넘어  민족과 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애호인민에게 속한다. 고금중외에 자국의 력사문화명인을 초개처럼 대한 나라는 없는 줄로 알고있다. 자국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국운명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결코 “홀대”하지 않고 자국력사에 기록돼온 사례는 많고도 많다. 몇년전 19세기 저명한 작가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에 즈음  하여 로씨야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사이에 고골리의 나라귀속 문제를 두고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었다. 고골리가 우크라이나 에서 태여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했으니 당연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것이 우크라이나측의 태도였고 고골리는 로씨야어로 집필하고 로씨야어로 사고하였으니 백퍼센트 로씨야작가라는게 로씨야측의 주장이였다. 구쏘련이 해체되기전에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던 이슈다. 결국은 두 나라에서 각자 자기“유산”으로 표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고골리 나라귀속이 어떻게 변했던 그가 19세기 저명한 비판적사실주의 문학정초자로서의 세계적지위, 그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문화콘텐츠내역은 변한게 없다. 윤동주도 가끔 나라귀속론란에 휩싸일때가 있다. 장장 150 여년이라는 중국조선족이민사에 대한 료해가 전무하거나 삐뚠시 각을 가진 일부 이방국학자들이 윤동주가 처했던 일제식민지 력사시기 민족수난의 생태를 도외시하면서 상식을 벗어난 이른 바 윤동주 “국적반환싸인” 헤프닝까지 벌리여 우리 나라 학자들 의 빈축을 샀던적까지 있다. “헤프닝”은 어디까지나 “헤프닝”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은근히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해본다. “위인 치고 고립된 산정(山顶)은 드물다. 위인은 련산(连山)  의 정상이다.” 윤동주는 “고립된 산정”에서 우연하게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 20세기초  룡정반일항쟁의 피어린 “련산”에서 솟아난 선각자의 한사람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윤동주에 대한 리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패러다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28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21년을 룡정이라는 이 반일항쟁성지에 몸담고 반일계몽교육을 받으며 항일저항시인으로 부상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고 할수 있다. 룡정의 비장한 반일 넋이 윤동 주의 정신을 정화시켰고 시인의 지조와 사상적 뿌리가 고향룡정 에 내려지게 하였다. 어찌보면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의 룡정회귀는  락엽귀근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윤동주는 룡정이 낳은 연변의 아들로서 숙명적으로 우리가 정중하게 대해야 할 위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급단계에 머물러있 다는 점이다. 윤동주 발견이 우리가 아닌 일본학자에 의해 지난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후 연변문단이 비로서 윤동주에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어쩔수 없이 이방국 연구성과에 편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던 이는 윤동주고향의 타이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수 없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남의 “입양아”로 전락될수도 있음은 먼 일이 아닐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이 벌린 “싸인” 촌극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싶다. 다행스러운것은 소설가 김혁선생이 3년전 대학교교수, 문인 들을 규합하여 룡정· 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키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늦은대로 윤동주연구가 본격적인 흐름을 타고있어 체면을 살리게 되였다. 윤동주살리기, 우리 정부의 힘이 보태 져야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윤동주연구는 문학인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따라서 조선족에게만 국한된 명인연구가 돼서도 안된다. 윤동주연구가 광범 한 조선족과 기타 민족, 나아가서 아세아 여러 나라 학자들의 폭넓은 관심, 동참, 성원과 이어졌을때만이 윤동주정신의 탈지역 세계화의 가치성이 증폭될수  있다. 올해는 윤동주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의 고향 룡정이 세계 윤동주연구의 구심점으로 돼야 함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시인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연구작품활동, 연구포럼, 각종기념이벤트가 탄력을 입으며 윤동주생가기념관, 명동기념 관을 비롯한 룡정의 관련유적지건설이 세계적인 눈높이에서 재검토, 재기획, 재정리되면서 명실공히 정신적 품위가 돋보이고 문화적 향기가 그윽하며 새로운 비전이 꿈틀거리는 거창한 윤동주연구전시체험공간으로 재건되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2-15
239    시조 한수는 마흔 다섯자안팎의 언어로 구성돼 있다... 댓글:  조회:3827  추천:0  2017-02-17
서강대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밝히는 글에서 ?조선조 사설시조의 경우 그것은 선행하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적인 시?라고 전제하고, ?그것은 다음에 올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에포크(新紀元)임에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에 있어서 사설조의 산문성이 당시 조선조 가사를 지배하던 산문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산문성이 다름 아닌 그 후 자유시의 개성적 리듬의 미학적 기반?이었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희 교수가 진단한 한국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일관하는 지속성과 변화·발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 우리는 ?사설시조→산문정신→현실인식→역사의식→현대 산문시?라는 등식을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설시조는 개성적인 리듬을 지녀왔으면서도 자유시에 영향을 끼친 개혁의지가 담긴 시요, ?열려 있음의 시?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조로운 형식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는 ?의식의 혁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섬겨왔던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를 허물고 시조의 다양한 형태―즉 양장시조·엇시조·사설시조 등 시조의 모든 형태를 즐겁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가 주장하고 이미 실험해 보인 ?옴니버스시조?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작품 속에 평시조·엇시조·양장시조(2장시조)·사설시조 등 모든 시조 형식을 다 아우르는 ?옴니버스시조(혼합 연형시조)?를 적극 수용하는 것도 시조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대를 전후로 한 일간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를 훑어보면 거의가 시사성이나 역사의식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송선영(宋船影)의 ‘설야’ ‘휴전선’을 비롯해서 이근배(李根培)의 ‘묘비명’ ‘벽’ ‘산하일기’ ‘노래여 노래여’, 이상범(李相範)의 ‘일식권’, 박재두(朴績)의 ‘목련’, 정재호(鄭在虎)의 ‘제3악장’, 정하경(鄭夏庚)의 ‘불모의 거리에서’ 등등 현실인식이나 상황의식을 주제로 다룬 작품들을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시조에 있어서도 형편은 같다. 그 작품의 창작 배경을 들추어보면 그것들이 당대의 시대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하는 ?시로 쓴 사회사?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최근의 시조문학 경향은 어떠한가. 지나칠 정도로 서정성에 치우친 나머지 리얼리티를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구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아예 담을 쌓고 마치 골방에 숨어서 자위(自慰)나 하듯 오늘의 시조가 ?마스터베이션 문학?으로 타락해 가고 있다는 현상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시(漢詩)의 직역 같은 서정시, 과거 지향의 복고주의가 팽만해 있는 ‘멍텅구리 시조’가 활개치는 세상인 것이다.  개성과 독창성, 혹은 다양성을 짓누르는 획일주의는 경직성을 의미하고, 답보상태를 의미한다. 고여 있음은 썩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발전적 변모를 모색하는 실험정신이나 개혁의지가 모자라는 오늘의 시조는 플라토 현상(정체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학이 결코 인간의 삶과 그가 숨쉬고 있는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시조도 서정성과 사회성을 잘 조화시켜, 양자가 행복한 악수를 할 때 비로소 보편적 공감대를 얻게 되고, 새로운 활로가 트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시조문학은 황무지이다. 개척해야 할 땅이 넓고 광활한 것이다. 개척해야 할 소지가 무궁무진한 이 처녀림에 힘찬 삽질을 하고 씨앗을 뿌렸을 때 튼실한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여기서 시조의 명칭에 대한 필자의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시조의 명칭은 영조 때의 사람 신광수(申光洙)가 쓴 《석북집》에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하여 ?시절단가(時節短歌)?, 혹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시조는 엄격한 의미에서 문학장르의 일종이기보다는 음악의 창사(唱詞ㆍ노랫말)에 가깝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향가(鄕歌)나 가사문학과는 달리 시조는 우리 말의 기본 마디인 3·4조나 3·5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호흡에 가장 걸맞고,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을 지닌 정형시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숨쉬고 살고 있는 생활의 걸음걸이가 3음절 내지 4음절의 정서에서 우러나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춤사위나 전래 민요, 판소리 가락, 노동요 등도 이러한 율조(律調)를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  "  그리고 시조라는 명칭을 표기함에 있어서 왜 하필 ?시조?라는 ?시?자에 글 ?詩?자가 아닌 때 ?時?자를 썼느냐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조는 당대의 정서, 당대의 시대상황을 담는 문학양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황진이가 노래한 &@lt;동짓달 기나 긴 밤>은 황진이가 처했던 개인적 삶의 실상과 시대상황을, 송강 정철이나 박인로(朴仁老)는 그가 숨쉬고 살았던 시대상황과 현실인식을 한 편의 시조 행간 속에 풀어낸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하면 6·25 동란으로 인한 분단의 비극을 떠올릴 수 있고, 〈굳세어라 금순아〉 하면 1·4 후퇴 때 헤어진 이산가족의 슬픔을 연상하게 하는 유행가 가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우리 고시조를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반드시 당대의 정서가 녹아 있게 마련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시조가 그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 @lt;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읊은 이 작품을 통해 임진왜란의 격전지에서 군사를 지휘했던 충무공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시조의 명칭에 글 ?詩?자가 아닌 때 ?時?자를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현대시조는 가장 현대적인 오늘의 정서를 아우르는 문학양식요, 민족시로서의 그 존재 가치가 확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조는 곧 시(詩)이다. 형식만 정형을 따를 뿐이지 거기에 담는 내용은 오늘의 정서, 오늘의 삶의 이야기를 아우르는 현대시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  시조는 불완전 정형시이다. 정형시이지만 완전한 정형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시조 형식의 특징을 밝히려는 노력을 경주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학자도 아직 완전한 정설을 내리는 데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시조의 특징을 정형시이면서 비정형시라고 규정한다.  시조는 불완전한 정형시이지만 그 율격의 특징을 구별하는 학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운율의 기본 단위를 글자(字數), 음보(音步), 구(句) 중 어느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구수율(句數律), 자수율(字數律), 음보율(音步律)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이 세 학설 모두 시조를 3장의 형식으로 보는 데는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 장(章)을 이루는 율격의 단위 개념은 서로 다른 것이다. 한 장을 두 개의 구로 보는 구수율과 한 장을 15자 내외로 보는 자수율, 그리고 4음보로 보는 음보율로 구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합하면, 시조의 기본 형식은 3장 6구 또는 12음보 45자 내외인 것이다. 이때 한 구나 음보의 범위를 몇 글자로 보는가 하는, 학자의 시각 차이에서 오는 미세한 문제가 따르게 된다. 글자수(음절수)를 절대적 조건으로 본다면 시조의 형식은 자수율로 귀결되고, 그렇지 않으면 구수율이나 음보율로 귀결되는 것이다.  현재 학계에선 음보율이 우세하고, 시조시인들의 창작 현장에선 자수율이 우세한 것이다. 앞에서 조동일 교수의 이론을 빌어 언급했듯이 시조는 융통성이 많은 자유로운 시인 것이다. 음수율이나 음보율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그 율격을 잴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공동체의식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신명처럼 독특한 내재율이 살아 있는 형식 체험의 시인 것이다.  그러나 일부 그릇된 인식과 지도자의 잘못으로 협의의 시조, 또는 ?막힌 시조?인 평시조만이 강요되어 온 우리 문학풍토도 이제 반성의 계기가 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학풍토는 아직도 서구적 발상법이나 표현방법론의 테두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우리 문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그러하지만, 특히 시나, 시조문학의 경우 이제 외국 것에 대한 추종에서 자립으로, 이론의 수입에서 생산으로, 그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담겨 있는 시조문학이 재조명되어야 마땅하고, 시조 창작 운동이 널리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화=서구화?라는 글러먹은 조류에 휘말려 상실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하는 일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920년대나 30년대에 발표된 자유시를 분석해 보면 시조의 율격이 녹아 있는 시작품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작품 중에 드물게는 시조 율격(3장 4음보율)과 종장의 자수율까지 온전히 지키고 있어, 이 작품이 과연 시인지 시조인지 구별이 안 되는 것도 있다. 또 자수율은 엄격히 지켜지지 않았지만 시조 율격은 지킨 시조형의 자유시도 있다. 그밖에 시조 형식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일치되는 시조변형 자유시도 있다. 즉 시조 율격에 한 구나 한 장을 추가한 자유시인 것이다. 또 4음보율을 엄격히 지키거나, 시조 율격은 불완전하지만 3장을 엄격히 지킨 시조 지향 자유시도 많은 것이다.  이렇게 시조와 유사한 자유시가 많다는 것은 자유시가 시조의 영향을 많이 받고 발전했으며, 양자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서구시의 영향을 받은 자유시도 많지만, 반면 시조의 영향을 받은 자유시도 많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조가 자유시에 끼친 영향은 무시되고, 서구시(번역시)의 영향만 중요시한 것이 현대문학 연구의 풍토였다. 즉 자유시는 서구시의 영향권에서 발전했으며, 시조와 대립적 성격을 지닌 것처럼 잘못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설주(李雪舟) 선생의 시 ‘저녁’을 보자.  기다리는 / 세월을  학같이 / 목에 감고  마음의 / 수의(囚衣)를 빨아  촉도(蜀道)에 / 말리우니  바람 찬 / 늦인 하늘에  구름이 / 울고 간다  이 시는 시조의 형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한 행은 시조의 한 구에, 또 한 연은 시조의 한 장과 각각 일치한다. 즉 3연 6행의 형식은 3장 6구의 평시조 형과 다름없다. 이 시는 3장 4음보율을 지켰으며, 종장의 첫째 음보와 둘째 음보에 3·5의 자수율도 정확하게 지켰고, 전체 자수도 44자로 시조의 기본 자수와 일치한다. 이 시는 시조의 구수율, 자수율, 음보율을 온전히 지니고 있으므로 틀림없는 시조인 것이다. 비록 시(자유시)로 발표되었지만 사실은 시조인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우리는 시와 시조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발견하게 된다.  해와 / 하늘빛이 /  문둥이는 / 서러워 //  보리밭에 / 달 뜨면 /  애기 하나 / 먹고 //  꽃처럼 / 붉은 울음을 /  밤새 / 울었다. //  이 시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선생의 ‘문둥이’ 전문이다. 창원대 민병기 교수가 〈시와 시조의 관계〉라는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 시는 외형상 자유시 같고, 또 그렇게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은 시조의 율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음보(/)와 음보행(//)을 위와 같이 구분해 보면 이 작품이 시조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문학사에서 ‘문둥이’는 자유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시조에 가까운 것이다. 고시조의 형식을 적용하여 자수를 따지면 5자 정도 부족하지만, ?광의(廣義)의 시조? 즉 이 작품이 지닌 내재율을 감안하면 분명 시조인 것이다.  "  서정주 선생의 ‘문둥이’를 자유시로 읽으면 현대적 의미가 살아나고, 반대로 시조로 읽으면 고전미가 우러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시로 읽건, 시조로 읽건 그 의미와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와 정서적 충격이지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자유시인가, 시조인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단지 우리는 여기서 이 작품이 시조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왜 자유시로 취급하였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이에 대해 창원대 민병기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서정주 선생의 첫 시집 《화사집》에 수록된 24편의 시 가운데 시조의 기본 율조인 4음보율이 흐르는 작품은 58.3%,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 수록된 24편 가운데 4음보율이 지켜진 시편은 67%, 세번째 시집 《서정주 시선》에 수록된 20편의 작품 중 4음보율을 지닌 시편은 7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박목월(朴木月) 선생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초기에 완전히 시조의 율격을 풀어내 자유시를 창작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윤사월’일 것이다.  송화가루 / 날리는 /  외딴 / 봉우리//  윤사월 / 해 길다 /  꾀꼬리 / 울면 //  산지기 / 외딴 집 /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 엿듣네//  박목월 선생의 ‘윤사월’을 음보율로 나누면 종장이 길어진 평시조인 것이다. 종장 둘째 음보의 음수가 5~9자까지 허용되는 것이 고시조 형식이므로, 이 작품은 평시조 율격을 그대로 지킨 예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박목월 선생의 시집 《풀잎단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4음보율이 흐르는 시편이 89%에 이르고, 같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趙芝薰) 선생의 경우《조지훈 전집》는 217편의 시 가운데 70%에 이르는 작품이 4음보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김소월(58%), 정지용(62%)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리고 우리 시문학사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시인들의 작품 속에 민족의 가락인 시조의 내재율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한국 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무수한 시인들이 우리 민족의 숨결이요, 기본 가락인 시조문학을 충분히 마스터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이 더욱 국민 정서에 어필할 수 있었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시조의 발생연원은 서울 정도(定都) 600년보다 200년이나 더 역사가 길다. 그러나 800년 이상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온 시조문학의 기나긴 역사에 비해 아직까지 장편 서사시조 한 편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의 크나큰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문화민족에겐 그들 나름의 민족시나 정형시가 발전, 정착돼 왔다. 중국에는 오언율시나 칠언절구라고 불리는 한시(漢詩)가 있고, 영국에는 소네트라고 하는 14행시가 존재하고 있다. 일본엔 와카(和歌)나 하이쿠(俳句)라는 전통문학이 있고, 한국에는 시조라는 이름의 정형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겨레시 시조는 갈수록 그 설 자리를 잃고 홀대받고 있다. 그 이유는 국민대중이 시조작품을 외운다거나 시조짓기 운동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을 분석해 보면 시조의 비중이 자유시보다 훨씬 미약하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국적 있는 교육이니, 주체성 확립이니 하고 떠드는 정책입안자들이 아직도 문화 사대주의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60년대 초반에 검둥이나 양키의 팔짱을 끼고 히히덕거리는 거리의 여자를 보면 ?양갈보?라고 눈을 흘겼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정신적 갈보들이 숱하게 많다. 어줍잖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일부 몰지각한 정책입안자들이 서구문학만 최고로 치는 정신적 양갈보가 있는가 하면,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불갈보, 일본 유학을 갔다온 왜갈보가 판치고 있다. 앞으로 중국 유학파, 러시아 유학파까지 합세한다면 중갈보, 러갈보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얼마나 짓밟고 유린할지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프랑스 조각가 에밀 부르델은 ?모든 예술은 지식의 열매?라고 규정했다. 마찬가지 논리로 시인과 작가는 자기가 아는 지식 이상의 그 무엇을 그릴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것이다. 글 쓰기 작업, 혹은 시조 짓기 작업은 자신의 예술적 소양과 지식을 총체적으로 집약하여 표현하는 정신노동의 결정체이다. 제주도 귀양살이 때 ‘세한도’를 그렸으며, 추사체(秋史體)로 유명한 금석학자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는 ‘사란결(寫蘭訣)’(난초를 그리는 비결)에서 ?생동하는 난초를 만에 비유하여 9천9백9십9푼은 공력(功力)으로 얻을 수 있으나 나머지 1푼은 노력만으론 지난(至難)하니, 구천구백구십구를 얻고도, 나머지 1푼 때문에, 사이비 난초만 그리다가 입문은커녕 문전에서 서성거리고 만다.?고 했다. 그렇다. 주옥같은 명작을 남긴 예술가의 행적을 살펴보면 얄팍한 재주보다는 남 모르게 뼈를 깎는 노력,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는 절차탁마의 노력과 타고난 재분(재주)이 적절하게 결합되었을 때 예술적 성취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시조 한 수는 마흔 다섯 자 안팎의 언어로 구성돼 있다. 짧다면 짧고, 작다면 작은 그 그릇 속에는 우리 민족의 온갖 사고방식, 온갖 생활습속까지가 다 담겨 있다. 한 나라의 민족시는 그 민족의 리듬이요, 그 민족의 살아 숨쉬는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러기에 시조문학은 유구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그 맥락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희망의 연대 21세기를 맞이한 오늘, 시조문학이 다시 우리 문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다 같이 분발해야 하고, 시조가 한국 전통문학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길은 오직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본다.  -----------  *‘프로포(Propos)’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이야기’ 또는 ‘화제거리’ ‘단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심보선(1970∼ ) 어느 날 은행에 갔었네 애인과 나 손 꼭 잡고 통장을 만들었네 등 뒤에서 유리문의 날개가 펄럭거리네 은행은 날아가지 않고 정주하고 있다네 애인과 나는 흐뭇하다네 꿈은 모양이 다양하다네 우리는 낄낄대며 담배를 나눠 갖네 은행의 예절은 금연 하나뿐이라네 어쩐지 세상에 대한 장난으로 사랑을 하는 것 같네 사랑 사랑 사랑 이라고 중얼대며 은행을 나서네 유리문의 날개에는 깃털이 없다네 문밖에서 불을 붙여주며 애인은 아직도 낄낄거리네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한다고 미래 속에서 어른이 되었다고 애인이 나에게 가르쳐주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 아프네 금방 머리 위로 파산한 새가 날아갔네 후드드득 깃털 같은 빗방울들이 떨어지네 어느 날 우리는 많은 돈을 갖겠네     화자는 애인과 함께 통장을 만들러 은행에 간다. 두 사람은 앞날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게다. 은행 유리문은 무겁다. 기세 좋게 열고 들어서자 ‘등 뒤에서 유리문의 날개가 펄럭거린단다’. 꼭 닫히기 전에 두어 차례 안팎 바람을 휘젓는 유리문이다. ‘꿈은 모양이 다양하다네’ 어떤 통장을 만들까. ‘사랑설계 적금’이랄지, ‘행복가득 저축’이랄지, 돈을 모아 미래를 구축할 꿈을 자극하려는 예금 이름들에 두 사람은 낄낄댄다. 설레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왠지 뒤숭숭하다. 은행을 나서자마자 두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은행의 예절은 금연 하나뿐이네.’ 그렇지, 검은돈이든 흰 돈이든 가리지 않으면서 ‘금연’이나 강조하는 세상의 도덕. 거기 돌입하려는 마당에 기껏 담배를 무는 것으로 반항의 몸짓을 하네. 애인은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에 속한다고’ 가르쳐주는데, 화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득 숨이 막히고 마음 아프다. 이게 내 정해진 미래인가? 가정을 이루고 돈이나 불리는 삶이? 죽지 묶이고 깃털이 죄다 빠져버린 새처럼 볼품없는 삶…. 화자는 그런 삶을 원치 않는 게다. 이 시가 실린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는 대출 좀 받을 수 있을까 해서나 은행에 가는 사람들에게는 사치일 정신적 고뇌와 원초적 고독이 냉소적이면서도 기지 넘치는 시어로 한 상 잘 차려져 있다. 예컨대, ‘인사를 받으면 반드시 웃음을 거슬러 주는 것이 이웃 간의 정리’(시 ‘풍경’에서) ‘지구적으로 보자면, 그대의 슬픔은 개인적 기후에 불과하다네’ (시 ‘먼지 혹은 폐허’에서). 시인을 잘 타고난 시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들이다.
238    시조문학의 지평선을 더 넓히자... 댓글:  조회:3850  추천:0  2017-02-16
시조에 관한 프로포* / 윤금초  아직도 시조에 관한 한 명쾌한 학설이 서 있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적 있는 교육이니, 주체성 확립이니 하는 이 마당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에 관한 뚜렷한 이론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은 서글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시조의 명칭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핑퐁?을 치듯 왔다 갔다 하는 논쟁만 거듭했을 뿐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한 상태이다. 시조의 기원이나, 발생 연원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 선생은 ‘시조 기원에 관한 일고찰(1933)’에서 시조는 무당의 노랫가락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고,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정병욱(鄭炳昱) 선생은 ‘한국고시가론(1977)’에서 별곡체라고 하는 고려 가요가 붕괴되면서 ‘만전춘 별사’와 같은 형식이 나타나서 나중에 시조로 바뀌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  시조의 율격(律格)에 대한 대목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른바 평시조의 율격이 초장 3·4·4(3)·4, 중장 3·4·4(3)·4, 종장 3·5·4·3이라는 음수율(音數律)에 의한 정형 규정은 맹랑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 박사가 평시조 2천7백59수를 표본조사한 "시조 자수고"에 따르면 초장이 위와 일치하는 작품은 47%(1천2백98수), 중장이 정형에 맞는 작품은 40.6%(1천1백21수), 종장의 율격이 맞아떨어진 것은 21.1%(7백89수)로 나타났다. 이것을 다시 확률론의 공식에 따라 계산하면 초장·중장·종장이 모두 시조의 정형과 일치하는 작품은 고작 4%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어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원섭(徐元燮) 선생이 ≪평시조의 형식연구≫(1977)에서 재확인했고, 서울대 조동일(趙東一) 교수도 그의 책 ≪한국시가의 전통과 율격≫(1982)에서 고시조를 분석한 결과 초장·중장·종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고작 4%에 지나지 않는 데도 어떻게 이것을 시조의 정형이라고 고집할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따라서 “전체의 4%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정형으로 삼는다면 시조는 실상과는 사뭇 다르게 이해되고, 시조 창작의 방향도 왜곡된다.”고 말하고 “잘못된 지침은 창작을 부당하게 구속하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조동일 교수는 음수율을 따진 정형 규정은 일본 시가(詩歌) 율격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이루어졌으며, 조윤제 박사의 연구 방법론은 식민지적 사고방식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고 못박고 있다.  조윤제 박사가 활동했던 그 시절은 그만큼 불행한 시대였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의 연구 방법론에서 식민지적 사고방식을 빨리 청산할 것을 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조의 정형을 음수율이나 음보율(音步律)로 헤아려야 했던 이유는 우선 시조 창작을 위한 기본 개념과 지침을 제공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밝히고 싶은 것이다.  "  여기서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동짓달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여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밑줄 친 부분)  이 작품에서 시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종장의 둘째 음보가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어룬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이라고 표현한 대목은 3·5의 율격―즉 석 자·다섯 자가 아니라 석 자·여덟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음에는 교과서에 수록돼 있는 이호우(李鎬雨ㆍ爾豪愚) 선생의 ‘개화’를 예로 들어보자.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빛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  이 작품 역시 우리가 시조의 생명이라고 배워 온 종장, 즉 3·5·4·3의 틀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시조의 기원·명칭·형식론을 되짚어 볼 때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학자의 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해 왔음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김상옥(金相沃) 선생의 작품 ‘느티나무의 말’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 잔 푸른 이내 속을 느닷없이 나울치는 해일이라 불러다오  저 멀리 뭉게구름 머흐는 날, 한 자락 드높은 차일이라 불러다오  천년도 눈 깜짝할 사이, 우람히 나부끼는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  ‘느티나무의 말’ 역시 시조의 정형 규칙에 의한 자수개념으로 따지면 그 정격(定格)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즉 초장의 경우 ?해일이라 불러다오?, 중장에서 ?차일이라 불러다오?, 그리고 종장의 경우 ?구레나룻이라 불러다오? 같은 대목이 시조 형태의 자수개념을 뛰어넘은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김상옥 선생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우기고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서울대 조동일 교수는 앞에 든 책에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개진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를 텍스트로 제시, 좁은 의미의 시조와 넓은 의미의 시조론을 펴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좁은 의미의 시조란 마지막 한 수, 즉 춘·하·추·동 사계절로 구성된 40수 가운데 동(冬)에 해당되는 40째 수뿐이고, 나머지 39수 모두가 넓은 의미의 시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부사시사’ 40수 가운데 단 한 수 외에는 39수 모두가 시조의 율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가 감히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시조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개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앞에서 예로 든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 긴 밤’이나 이호우의 ‘개화’, 그리고 김상옥의 ‘느티나무의 말’을 시조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고시조에 나타난 Y담 한 마디를 소개하겠다.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을 지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이름 없는 강계의 기생 진옥(眞玉)과 주고 받은 진한 외설시조는 현대인을 뺨칠 정도로 그 격조가 높은 것이다.  정철이 강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였다(선조 때). 달은 밝고 오동잎 지는 소리 스산한 밤, 귀뚜라미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그를 더욱 쓸쓸하게 하였다. 적막한 처소에 혼자 취해 누워 있는 그에게 나지막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강은 누운 채로 누구인가 물었다. 대답 대신 문이 스르르 열리고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서는데 여인은 마치 한 마리 하얀 학처럼 고왔다. 그가 바로 기생 진옥이었다.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 하고 앉은 어느 날 밤, 반쯤 취한 송강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진옥을 불렀다.  “진옥아, 내가 시조 한 수를 읊을 테니 그대는 이 노래에 화답을 하거라.”  “예, 부르시옵소서.”  기생 진옥은 가야금을 뜯고 송강 정철은 목청을 한껏 가다듬어 노래했다.  옥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진옥(眞玉)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뚜러볼가 하노라  이 시조를 현대말로 풀이하면 대충 이렇다.  “옥이라 옥이라 하기에 번옥(가짜 옥―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참옥(眞玉)임이 분명하구나.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여기서 살송곳이란 남성의 심볼을 의미)  송강 정철의 시조 창이 끝나자 지체 없이 진옥이 받았다.  철이 철이라커늘 섭철(憾鐵)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 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뇌겨볼가 하노라  “쇠라 쇠라 하기에 순수하지 못한 섭철(잡다한 쇳가루가 섞인 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자세히 보니 정철(正鐵→鄭澈)임에 틀림 없구나.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그 쇠를 녹여볼까 하노라.”(골풀무란 쇠를 달구는 대장간의 풀무로서 여기서는 여자의 심볼을 의미)  그날 밤 송강과 진옥은 이 시조를 촉매제로 하여 적소(謫所)를 밝히는 촛불보다 더 뜨겁고 아름다운 사랑의 밤을 보냈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남자의 상징을 ?살송곳?으로 비유한 송강의 기지나, 여자의 상징을 남자의 그것을 녹여내는 ?골풀무?로 비유한 기생 진옥의 메타포 수법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Y담, 즉 음담패설보다는 한 수 높은 격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과거판 ?르윈스키 스캔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사건이 이미 조선 선조 때에 우리 나라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세계 최강자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르윈스키 양이 백악관의 은밀한 곳에서 ?오럴 섹스?니, ?시거 섹스? 잔치를 벌였다고 하여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르윈스키 양이 자신의 옷깃에 묻은 정액을 증거물로 제시해 가며 눈물로 증언했지만 결국 그는 클린턴의 옷을 벗기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선조 때의 명기 홍랑(洪娘)은 시조 한 수로 최경창(崔慶昌)이라고 하는 걸출했던 한 인물을 함락시키고 만다.  묏버들 가리어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밖에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당시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고죽(孤竹) 최경창이 북평사(北評事:武官 벼슬의 하나)로 경성(鏡城)에 근무하고 있을 때 일이었다. 기생 홍랑이 읊은 한 수의 시조, 마흔 다섯 자밖에 안 되는 이 짧은 사랑의 시조 한 수에 그만 사나이 애간장이 다 녹은 최경창은 시조를 지을 줄 아는 멋쟁이 여인 홍랑 앞에 엎어지고 말았다. 선조 6년 최경창이 경성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만난 홍랑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듬해 임기를 마친 그가 서울로 돌아오게 되자, 영흥(永興)까지 배웅한 홍랑이 함관령에 이르러 저문 날 내리는 빗속에서 이 시조와 버들가지를 함께 건네 주었던 것이다. ?밤비에 새 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여기에 감복한 고죽 최경창은 돈도 벼슬도 영화도 다 싫다며 관직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기생 홍랑의 품으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르윈스키 스캔들?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시조를 생활의 일부로 체득하고 살았다. 글줄이나 읽은 사대부(엘리트)는 물론이요, 창이나 방패를 들었던 무사, 그리고 기녀(妓女)에 지나지 않았던 진옥이나 황진이, 홍랑 등 수많은 여인들이 주옥같은 시조작품을 남겨 우리 문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일부 엘리트일수록 시조 한 수 외우지 못하고, 외국 것이라면 꺼벅 죽는 문화 사대주의병(事大主義病)에 걸린 환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으며, 민족시인 시조문학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  잘 아다시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사회현상이 ?막혀 있음?은 보수적·폐쇄적임을 의미하고 과거 지향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것이 ?열려 있음?은 개방적·발전적 성격을 지님은 물론 미래 지향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음수율ㆍ음보율에 얽매인 평시조를 ?막힌 시조? 혹은 ?닫힌 시조?라고 규정한다면, 반대로 폭넓은 융통성을 가진 사설시조, 엇시조, ?옴니버스시조? 같은 형태를 ?열린 시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시조가 외형율(外形律)의 제약을 받는 닫혀 있는 문학양식이 아닌, 내재율(內在律)을 중시하는 열린 마당, 열린 문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사설시조의 경우 우리 문학의 발전적 변모 과정을 더듬어 볼 때 열린 형식의 준거(準據)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강대 박철희(朴喆熙) 교수는 한국 현대문학의 변화·발전 과정을 밝히는 글에서 ?조선조 사설시조의 경우 그것은 선행하는 사대부 시조의 관념성과 대립되는 사실적 요소에 의한 현실적인 시?라고 전제하고, ?그것은 다음에 올 자유시의 기초를 닦게 해준 에포크(新紀元)임에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에 있어서 사설조의 산문성이 당시 조선조 가사를 지배하던 산문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 산문성이 다름 아닌 그 후 자유시의 개성적 리듬의 미학적 기반?이었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사설시조가 발전하여 현대 자유시의 모태를 이루었으며, 더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은 시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희 교수가 진단한 한국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일관하는 지속성과 변화·발전의 흐름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 우리는 ?사설시조→산문정신→현실인식→역사의식→현대 산문시?라는 등식을 쉽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설시조는 개성적인 리듬을 지녀왔으면서도 자유시에 영향을 끼친 개혁의지가 담긴 시요, ?열려 있음의 시?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단조로운 형식의 울타리를 과감하게 걷어내는 ?의식의 혁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섬겨왔던 평시조 유일사상의 울타리를 허물고 시조의 다양한 형태―즉 양장시조·엇시조·사설시조 등 시조의 모든 형태를 즐겁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가 주장하고 이미 실험해 보인 ?옴니버스시조? 다시 말하면 한 편의 작품 속에 평시조·엇시조·양장시조(2장시조)·사설시조 등 모든 시조 형식을 다 아우르는 ?옴니버스시조(혼합 연형시조)?를 적극 수용하는 것도 시조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김 기사 그놈  ―이봉환(1961∼ ) 여보씨요잉 나 세동 부녀 회장인디라잉 이번 구월 열이튿날 우리 부락 부녀 회원들이 관광을 갈라고 그란디요잉 야? 야, 야, 아 그라제라잉 긍께, 긍께, 그랑께 젤 존 놈으로 날짜에 맞춰서 좀 보내주씨요잉 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좋다고라? 앗따, 그래도 우리가 볼 때는 이놈하고 저놈이 솔찬히 다르등마 그라네 야, 야, 그랑께 하는 말이지라 아니, 아니, 그놈 말고, 아따, 그때 그 머시냐 작년에 갔든… 글제라 잉 맞어 그놈, 김 기사 그놈으로 해서 쫌 보내주랑께 잉, 잉, 그놈이 영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고 노래도 잘 하고 어른들 비우도 잘 맞추고 글등마 낯바닥도 훤하고 말이요 아, 늙은 할망구들도 젊고 이삐고 거시기한 놈이 좋제라잉 차차차, 관광차 타고 놀러갈 것인디 안 그요? 야, 야, 그렇게 알고 이만 전화 끊으요, 잉?     이 부녀회장은 혼자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아닐 테다. 모처럼 한가롭게 다리를 뻗고 앉았거나 뒹굴뒹굴 누워서 통화 내용에 귀를 쫑긋 세우고 “글제, 글제” 추임새를 넣거나 “아따 언니, 그놈이 뭐요?” 하며 까르르 웃는 부녀회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테다. 마을 공터마다 콩이며 팥이며 붉은 고추를 한바닥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농촌의 구월. 한 해의 징글징글한 고생을 마무리하는 관광철이다.  이 총기 있고 화통할 부녀회장은 관광여행을 준비하는 데도 만전을 기하는데, 여행사에 괜히 깐깐하게 ‘갑질’을 하지 않는다. 그저 ‘김 기사 그놈’을 확실하게 요구한다. ‘영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고 노래도 잘 하고 어른들 비우도 잘 맞추고’ 게다가 ‘낯바닥도 훤한’ 김 기사. 친절과 환한 표정은 직업의식이 투철한 데서도 나올 테지만, 손님들을 어머니 같고 누이같이 느끼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 테다. 이 마을 여인들은 그걸 알아주는 것이다. 돈 몇 푼 차이로 거래처를 바꾸지 않고 어지간하면 단골이 되는 질박한 손님들을 여행사 직원도 알아서 모신다. 한 해 한두 번이나 대할 손님의 말귀를 척척 알아듣고 능청스레 맞장구를 친다. 이렇게 제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서로 마음 상할 일이 없으련만. ‘아니, 그놈 말고’ 소리를 듣는 사람은 제 직업이 적성에 맞는지 한번 돌아봐야 하리라. 기분 한번 내자고 마음먹은 순박한 이들을 ‘봉’으로 알고 바가지나 씌우며 성의 없이 대하는 관광지 식당이나 숙박업소도 반성하시길. 사투리 맛이 생생히 씹히는 재밌는 시다.
237    저기 폐지수레 끄는 할배할매들이 저희들의 친지입니다... 댓글:  조회:3604  추천:0  2017-02-15
  폐지로 살아가는 170만 명의 노인들 길을 걷다가 수시로 마주치는 장면 아닌가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굽은 허리, 깡마른 팔과 다리로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보노라면 달려가 밀어드리고 싶습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태양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남들보다 라면 박스 한 개, 신문지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면 노인들은 부지런히 골목 쓰레기통과 셔터 내려진 가게 앞을 뒤지고 다녀야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주운 폐지를 '고물상'이라고 흔히 부르는 재활용센터에 넘기고 손에 쥐는 돈은 그야말로 푼돈 수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폐지와 고철값이라도 좀 올라주면 좋으련만, 자꾸 내려가니 수레는 무거워지지만,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가벼워져만 갑니다. 6년 전인 2011년만 해도 폐 골판지는 1kg당 200원 정도였는데요, 2013년 이후에는 70원 안팎까지 떨어져 영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100kg을 주워도 7천 원 정도,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주워도 21만 원이 고작입니다. 지난해에는 벼룩의 간을 내먹는 파렴치한 재활용센터들이 공정위에 적발돼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재활용품 수거 업체 18군데가 2010년부터 3년 동안 킬로그램 당 10원에서 30원씩 값을 후려치기로 담합을 했다가 적발된 사건인데요, 부모 같은 노인들의 힘겨운 삶이 안쓰럽지도 않았을까요? 더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깎는데 짬짜미를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납작한 노인들을 더욱 납작하게 만드는 이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라도 오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정말 폐지는 엄청나게 무거워지고, 미끄러지거나 수레에 깔려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몸을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재활용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생계를 위해서 무려 170만 명의 노인들이 폐지를 모으고 있고, 이들이 한 달 평균 버는 돈은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에 그칩니다. 10명에 한 명 꼴로 부상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도 그저 빨리 걸어가야 할 '거리'에 불과하고, 노년의 풍요로워야 할 '삶'도 해치워야 할 '시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요. 그렇지 않나요? 장수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욕망의 대상이지, 가진 것 없고 몸도 불편하면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듯이 어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천형으로 변질되는 것이지요. 사회의 구석진 곳, 몸도 아픈 곳에 눈길이 가는 것이 시인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시(詩)들이 여기저기 발견됩니다. 화창한 날도 폐지 수레를 끄는 일은 버거운데 눈마저 펄펄 내리면 굽은 노인의 등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구부러진 골목길을 힘겹게 돌아가는 하얀 노인의 굽은 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도 한없이 굽어지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새벽은 마(魔)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조금만 더 자자는 의지가 사정없이 으르렁거리는 시간, 시인은 창문 너머로 부스럭부스럭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이불을 박차겠지요. 지친 일상 지친 마음을 다잡는 저 엄숙한 소리에 더는 뭉그적거리지 못하고.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세계 최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30년 전의 일본보다 급속도로 사회가 늙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체 인구의 7.2% 수준이었던 65세 이상 고령자가 2015년에는 13.1%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오는 2030년에는 24.3%, 2040년에는 무려 32.3%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젊어서 땀 흘려 일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노후 대비까지 해서, 일하느라 못 가본 곳 구경 다니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생존에 밀려 접어두었던 취미 생활도 하는 우아한 노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이런 축복받는 노후와는 거리가 멉니다. 돈이 없어 노후가 무료하고,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하고 돈이 없어 일을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통계들이 우울한 노년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노인 빈곤율이 무려 49.6%로 OECD 평균 12.6%에 네 배가 넘습니다. 노인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가난에 시달린다는 말입니다. 비교적 높다는 일본도 20%가 되지 않고 유럽의 복지국가 독일은 9.4%, 프랑스는 3.8%에 불과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퇴한 이후 계속 일을 해야 노인들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31.3%, OECD 국가 중에 아이슬란드를 빼면 가장 높습니다. 일본은 20.8%, 독일은 5.8%, 프랑스는 2.3%에 그쳤습니다. 특히 75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고용률도 19.2%로 세계 최고입니다. OECD 평균이 4.8%에 불과하니 역시 네 배 이상 높은 수칩니다. 멋진 로맨스그레이(romancegrey)를 꿈꾸던 한 시인은 이런 현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습니다. 은퇴하면 무지개가 뜨는 멋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멀리 시골까지 손수 운전해 가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결코 멋지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넋두리합니다. 청매화가 빗방울 속에 몸이 젖는다니 아마 봄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었나 봅니다. 시인은 첫 강의를 위해 먼 시골길을 손수 운전해 가는데 운전이 여간 서툴지 않습니다. 매화는 진한 향기 뿜어내면서 청초하게 피어날 텐데, 정작 자신의 삶은 낙엽 지는 가을입니다. 거대한 비현실 앞에서 시인은 우울해집니다. 빈곤은 자연히 각종 질병과 자살로 이어집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8.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과 통계청의 노인실태 보고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3%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11%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요즘 미디어의 뉴스를 보면 고독이나 가난, 질병을 견디지 못한 노인들, 자신도 아픈데 더 아픈 배우자를 돌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노인들의 자살 기사가 빠질 날이 없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노인들 젊은이들도 취직하기 어려운 판에 노인들이 번듯한 직업을 얻기란 여건 어렵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점포에서 기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노인들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 데다, 급속도로 변하는 지식과 정보,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역부족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단순노동이 고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에도 노인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대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는 데 만족하는 노인도 있습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자신도 노인이면서 더 어려운 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을 미안해하는 고운 마음씨의 노인인가 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3만 3천 원으로 평생 벼르던 집을 장만하셨다니 축하할 일이고요. 그런데 그 장만한 집이 손에 잡힌 물집이라니 시인은 얼마나 눈시울이 뜨거웠을까요? 번듯한 집 한 채 해드리지 못하는 게 못내 가슴 아픈데 손에다 물집 하나 지어드렸으니, 시인의 눈에도 눈물 집 하나 지어졌지 않을까요? 벼랑으로 몰리는 노인들 노인의 삶은 이렇게 팍팍해지는데, 수명은 자꾸 늘어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남성 기대수명은 78.5세, 여성은 85.1세로 평균 81.8세나 됩니다. 지난 1970년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에 불과했고, 여성도 65.6세에 그쳤으니 불과 반세기도 못돼 평균수명은 평균 20년 가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번째로 장수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1위인 일본이 83세 정도니까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환갑잔치는 거의 사라졌고, "칠십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구도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은퇴연령은 점점 빨라집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였습니다. 자영업자를 빼고 월급생활자로만 본다면, 은퇴하고도 30년 가까이를 살아야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얼마 정도의 돈이 있어야 최소한의 생활이 될까요?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2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05만 원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밥만 먹고 숨만 쉬는 돈인데도 30년을 살려면 3억 6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서울에서 평균 수준의 경제, 문화생활을 누리려면 한 달에 23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려면 8억 가까운 돈이 있어야 합니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니까 필요한 돈은 더 불어나겠지요. 그래서 모자라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의 노동비율이 OECD 최고 수준이 된 것입니다. OECD 통계를 보면 형식적으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는 52세지만, 실제로 일을 손에서 놓는 나이는 남자가 73세, 여자는 71세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평균 수명과의 차이를 계산해보면 남자는 죽기 5년 전이 되어야 일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얘깁니다. 프랑스의 경우 실제 은퇴하는 나이가 60세이니까, 우리나라 노인들보다 13년을 그야말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3년부터 우리나라는 60대 전반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20대 청년의 비율보다 높은 웃지 못할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은퇴한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많이 일한다니, 할 말을 잃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점점 더 가파른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노인들의 생계와 복지를 확충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안과 소극적으로 노령연금을 비롯해 각종 공적연금 제도를 확충해 노인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생명줄을 튼튼히 손봐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노후는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방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노인이 되는 길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노령화에 대한 대책은 결국 젊은이들에 대한 대책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예외 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버리거나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노인 문제의 해결은 어쩌면 단군 이래 가장 잘살고 있다는 한국 사회가 힘써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노인들이 빵을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노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적당한 노동으로 삶의 보람을 찾는 사회, 하여 노익장이라는 말이 겉치레 수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이미 2천5백 년 전 지구의 반대쪽에 살았던 청빈한 철학자가 꿈꿨던 노인의 삶이 이 땅에서 다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그만 쉬엄쉬엄 편하게 지내시지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천만에! 경주 마차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보인다고 말이 별안간 천천히 달리면 되겠는가? 오히려 더 속력을 내야지!" /임병걸기자 
236    현대시 100년 "애송 동시" 한 달구지 댓글:  조회:4922  추천:0  2017-02-15
클릭해보세용^@~@^    [애송 동시 - 제 50 편] 과수원길  [미리보기]  2008.07.08 (화)        [한국인의 애송 동시][49] 나무와 연못 - 유경환   조선일보 2008.07.07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48] 병아리- 엄기원;노오란 털옷 입은 '아기'가 사랑스러워   조선일보 2008.07.05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 (47) 옹달샘 - 한명순;하늘이 감춰둔 거울   조선일보 2008.07.04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46] 씨 하나 묻고 - 윤복진;아이들은 '호기심 천사'   조선일보 2008.07.03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45) 아름다운 것 - 오순택;아기의 '아름다움'에 말문 막힌 시인   조선일보 2008.07.02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44)호 박 꽃 - 안도현   조선일보 2008.07.01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 (43) 귤 한 개 - 박경용;방안을 가득 채운 귤 향기   조선일보 2008.06.30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동시](42)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 - 권오삼   조선일보 2008.06.28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41)초록바다 - 박경종   조선일보 2008.06.27 발행 / A32     [한국인의 애송 동시](40) 흔들리는 마음 - 임길택;아버지 매에 스며있는 '눈물'   조선일보 2008.06.26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동시](39)별 - 공재동   조선일보 2008.06.25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38] 구슬비 - 권오순;우리말의 아름다움, 구절마다 '송송송'   조선일보 2008.06.24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 (37) 귀뚜라미 소리 - 방 정 환;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   조선일보 2008.06.23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 (36) 송아지가 아프면 - 손동연;동물과 인간, 자연이 하나 돼 살아가는 곳  조선일보 2008.06.21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 (35) 미술시간 - 김종상;아이들 손끝에서 숨쉬는 자연   조선일보 2008.06.20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34);닭 - 강소천   조선일보 2008.06.19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33) 먼지야, 자니? - 이상교;볼품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   조선일보 2008.06.18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32) 봄편지- 서 덕 출;버들잎 우표 삼아 제비에게 쓴 편지   조선일보 2008.06.17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31) 밤이슬 - 이준관;풀벌레들의 등대가 된 밤이슬   조선일보 2008.06.16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30);잡초 뽑기 - 하청호   조선일보 2008.06.14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 (29) 누가 누가 잠자나 - 목일신   조선일보 2008.06.13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28) 하느님에게 - 박두순;우리 주위에 가득 찬 하느님과의 '대화'   조선일보 2008.06.12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27) 손을 기다리는 건 - 신형건   조선일보 2008.06.11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26) 상 어 - 최 승 호;말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   조선일보 2008.06.10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 (25) 강아지풀 - 김구연;"오요요" 소리에 꼬리 흔드는 강아지풀   조선일보 2008.06.09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 (24) 꼬까신 - 최계락   조선일보 2008.06.07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23) 따오기 - 한정동   조선일보 2008.06.06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 (22) 반달 - 윤극영;슬픔 딛고 노 저어라, 저 불빛을 향해   조선일보 2008.06.05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 (21) 문구멍 - 신현득;아기의 호기심에 문은 어느새 빠꼼 빠꼼   조선일보 2008.06.04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20);소년 - 윤동주   조선일보 2008.06.03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 (19) 개구리- 한 하 운   조선일보 2008.06.02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18) 나무 속의 자동차 봄에서 겨울까지2 -오 규 원;물을 기다리는 가지와 잎… 나무는 '작은...   조선일보 2008.05.31 발행 / A24     [한국인의 애송 동시] (17) 산 너머 저쪽 - 이문구   조선일보 2008.05.30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16);꽃씨와 도둑 - 피천득   조선일보 2008.05.29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15);비 오는 날 - 임석재   조선일보 2008.05.28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13) 해바라기 씨 - 정 지 용;참새 몰래 심은 씨앗… 청개구리가 엿보네   조선일보 2008.05.26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 (12) 퐁당퐁당 - 윤석중;귀를 간질이는 소리 '퐁당'   조선일보 2008.05.24 발행 / A32     [한국인의 애송 동시] (11) 담요 한 장 속에 - 권영상;한밤중에 내 발을 덮어주시던 아버지…   조선일보 2008.05.23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10) 봄 - 김기림   조선일보 2008.05.22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9) 섬집 아기 - 한 인 현   조선일보 2008.05.21 발행 / A30     [현대시 100년 연속 기획…한국인의 애송 동시][8] 과꽃 - 어효선   조선일보 2008.05.20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 (7) 엄마가 아플 때 - 정두리;엄마 없는 생활의 '그림자'   조선일보 2008.05.19 발행 / A30     [한국인의 애송 동시](6) 오빠 생각 - 최 순 애   조선일보 2008.05.17 발행 / A28     [한국인의 애송 동시](5); 감자꽃 - 권 태 응   조선일보 2008.05.16 발행 / A26     [한국인의 애송 동시][4] 콩, 너는 죽었다 - 김용택   조선일보 2008.05.15 발행 / A30     [현대시 100년 연속 기획…한국인의 애송 동시][3];나뭇잎 배 - 박홍근   조선일보 2008.05.14 발행 / A26     [현대시 100년 연속 기획…한국인의 애송 동시][2];풀잎2 - 박성룡   조선일보 2008.05.13 발행 / A30     매일 아침 '동심의 창'을 열어요;오늘부터 '현대시 100년 연속 기획…한국인의 애송 童詩 연재'   조선일보 2008.05.12 발행 / A17   [현대시 100년 연속 기획…한국인의 애송 동시](1);고향의 봄 - 이원수   조선일보 2008.05.12 발행 / A23       출처 :치치한국학교 
235    "부끄럼"은 완숙된 시에서 우러나온 맛이다... 댓글:  조회:3495  추천:0  2017-02-15
뜨끔                     ―윤동주 문학관에서 윤동주 시인은 반듯해 모자의 주름도 참지 못했대 뜨끔, 나는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는데. 윤동주 시인은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았대 뜨끔, 나는 남이 잘못한 것만 말하거든. ―최지영(1965~ ) '별 헤는 밤' 등 주옥같은 명시를 남긴 윤동주. 애타게 기다리던 광복을 불과 여섯 달 앞두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일본에 의해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숨졌다. 내일이 그가 순국(殉國)한 날이다. 추모 동시를 올리면서 우리는 가슴이 '뜨끔'하다. '서시'에서처럼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지 못해서다. 시뿐 아니라 생전의 '반듯한' 모습도 우리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그는 '모자의 주름도 참지 못했'는데, 우리는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으니. 그보다 가슴 더 '뜨끔'한 건 그는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우리는 남의 잘못만 말하니. 그는 우리 그늘을 읽게 해 뜨끔 뜨끔 뜨끔 찔림을 주는데도 오히려 가슴 깊숙이에서 즐거움이 샘솟는 건 웬일일까. 즐거움은 완숙된 시에서 우러나온 맛이다.       ⓒ 조선일보 /박두순 동시작가
234    시는 만들어지는것이 아니라 몸을 찢고 태여나는 결과물이다 댓글:  조회:3330  추천:0  2017-02-1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60회 세계보도사진전(WPP)의 수상작품 中 한컷... 무덤이고, 거울이고, 상자인, 그리고 / 박 남 희(시인) 1. 없는 시론의 시  나는 이글을 쓰면서 이경림 시인과 관련된 주요 이미지로 무덤과 거울과 상자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이미지는 이경림 시인의 주요 이미지 이면서도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수많은 이미지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이렇듯 이경림의 시는 어떤 하나의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시인 자신과 세상을 향하여 무수히 미끄러지는 수많은 이미지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그의 시들을 통해서 즐겨 사용하는 비유는 주로 직유와 열거법인데, 이러한 비유법들은 그의 시가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미지와 만나고 교섭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경림의 시를 읽으면서 이 세 가지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그것은 그의 첫 시집『토씨찾기』(1992)가 주로 무덤처럼 갇힌 세계에서 몸부림치던 시인 자신의 의식의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1995)『시절하나 온다, 잡아먹자』(1997)는 반성적이며 허위적 대상을 향하여 열려 있는 거울의 이미지를, 최근에 상재한 『상자들』(2005)은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이고 또 다른 무수한 타자이면 자아인 상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필자가 그렇게 상정해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도 네 권의 시집에 각각 필연적으로 귀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의 모든 시집에는 이러한 이미지들이 산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어떤 한 가지 이미지에 귀속되기를 싫어한다. 그의 시가 무수한 이미지들을 밟고 미끄러지면서도 완결된 형식이나 결말을 보여주기보다는 미완의 열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내가 이 글의 서두에서 이경림의 시를 거칠고 성급하게 개괄해 본 것은 그의 시의 우수성에 비해 아직도 그의 시에 대한 평가가 미진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경림 시인의 존재를 마음 속 깊이 각인 시키게 된 것은 그의 두 번째 시집『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를 책방에서 발견하고 부터이다.(나는 그 때 그의 첫 시집『토씨찾기』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나는 이 글을 쓰기로 한 다음, 이경림 시인으로부터 첫 시집의 복사본을 받고 처음으로 그것을 읽어보았다.) 내가 책방에서 만난 이경림 시인은 나에게 놀라움 자체로 다가왔었다. 이경림이라는 낯선 이름이 거느리고 있던 그 빛나는 이미지들과 활달한 상상력, 날카로운 직관의 언어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나는 그 때부터 이경림 시의 말 없는 신도가 되어 주기도문과도 같이 그의 시를 중얼거렸다. 그의 시는 자유로운 형식 속에 녹아있으면서도 내 시의 가장 모범적인 전범이 되어 주었고, 그러면서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이경림의 시를 그처럼 좋아했으면서도 쉽게 닮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시가 어떤 관습적인 틀에 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번에 이경림 시인으로부터 건네받은 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우선 그의 시 「토씨찾기」나, 서시 격으로 맨 앞에 실려있는「詩」라는 제목의 시를 읽으면서 그 때까지 어디에서도 체계적인 시 수업을 받은 바 없는시인이 어떻게 그렇듯 시를 폭 넓고 다양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특히 “지우기. 드러내기, 꺾기, 구부리기/건너뛰기, 감추기, 꼬집기, 두들겨 패기 /숨기, 뒤집어 씌우기,빼기, 넣기/꼬리 붙이기 ,꼬리 감추기, 벌벌 기기, 껄껄 웃기/ 부들부들 떨기,/숨 멈추고 생각하기, 찔끔찔끔 짜기”(「詩」)로 표현되고 있는 그의 시에 대한 생각들은 어떤 시론의 틀에 갇혀있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시법을 훌륭히 제시해주고 있었다. 그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바에 의하면, 사실 그는 그 무렵 오규원 시인을 만나서 일년 반 동안 문학 수업을 받기 전까지 문학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체계적으로 받아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문학에 있어서 가장 큰 스승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대구 경북고보를 나온 文靑이셨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남달랐던 그의 아버지는 6.25를 전후한 정치적 혼란기에 좌익운동에 가담하면서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고, 시인의 가족사에는 그 때부터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시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부재’와 ‘무능’이라는 이미지로 각인 되고,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의 문학은 끝끝내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알게 하고 문학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 분의 책상 위에는 늘 낡은 시집이나 일본어로 된 소설들, 어려운 사상서들이 널려 있었고 원고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우리들에게 하신 말놀이같은 것들이 의도적으로 하신 교육의 한 방법이었는지 다만 당신의 무료함을 달래시려고 하신 놀이였는지 모르지만 내가 대여섯살 때부터 그분은 나와 동생을 무릎에 앉히시고 말잇기 놀이를 시키셨다. 처음에는 끝말을 이어가는 놀이로 시작해서 어휘 놀이까지 또 낱말 크게 늘이기 줄이기등 다양한 형태의 말놀이를 하며 우리는 즐거웠다. 가령 ‘겨울!’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내가 ‘눈이 내린다’ 하고 동생이 ‘눈이 억수로 내려서 마을이 눈에 묻혔다.’ ‘길이 없어져서 장에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또, ‘눈꼽만한 새가 날아간다’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콩알만한 새가 날아간다, 주먹만한 새가, 보자기만한 새가,...로 발전해서 하늘만한, 우주만한 새,까지 가는 늘 더 큰 것이 있다, 없다로 동생과 티격태격 했던 말 늘이기 줄이기 놀이, 아버지는 늘 ‘있다’ 로 결론 내려 주셨다. 우리가 그런게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 속에 있다’고 하셨고. ‘에이’ 하는 우리에게 ‘눈을 감고 우주보다 더 큰 것이 내 마음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 꽉 차는 새가 있다고 생각해 보아라’ 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리고 그 끝에 장자에 나오는 鵬이라는 새와 곤이라는 물고기의 이야기를 해 주시며 그 것은 모두 마음의 우주 속에서 날아다니거나 헤엄쳐 다니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낱말 줄이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우주만한 .....에서 먼지보다 작은 .....까지가서는 그 것도 역시 마음 속에 있다고 하셨다. 같은 새라도 우주보다 클 수도 먼지보다 작을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 언어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내가 최초로 알게 된 현대시 역시 아버님이 읽어주신 시였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4, 5학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 때 우리들의 놀이는 말놀이에서 즉석 백일장 같은 것으로 바뀌어 있을 때였다. 자신이 내 주신 제목으로 짧은 시를 지어서 잘 쓴 사람에게 상을 주시곤 하셨는데 나는 그 때 눈길이란 주제를 받고 /눈 온 아침, 길을 걸으면/ 뽀드득 뽀드득 /눈들이 우는 소리......뭐 그런 비슷한 시를 썼던 것으로 기억되고 아버지는 ‘눈.들.이. 운.다’는 대목에 주목하시며 “‘뽀드득’ 소리와 ‘운다’는 비유가 그리 적절하지는 않지만 남다른 생각이다....”하시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가진 시인으로 시인 이장희의 시를 읽어 주셨다. -「내가 영향받은 시론」(『시와 반시』2002년 여름호)에서 내가 시인을 만나서 들은 말과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야 말로 시인에게 어렸을 때부터 시의 영재교육을 시킨 위대한 스승이셨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동안 내가 이경림 시인에게 가지고 있던 놀라움과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교육시킨 말놀이 게임이야말로 시인의 빛나는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의 시가 무수한 이미지와 상상력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그의 아버지의 이러한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는 이 글의 결미에서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가장 확실한 시론은 ‘없는 시론’이다. 나는 ‘문학이야 말로 살아내는 문학이어야 하며 그 삶이 자신 속에서 실핏줄 구석구석까지 고이고 부풀어 아우성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 언어로 씌어지는 것’이라야 진짜 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감정이 시인의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분출한다는 워즈워드의 낭만주의 시론을 연상시켜주는 이러한 시인의 진술은, 단순히 낭만주의 시관을 넘어서 그의 삶과 마음과 언어가 하나를 이루어서 한 몸으로 빚어내는 필연적인 결과물이 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도 그의 시가 단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몸(자궁)을 찢고 태어난 생래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 역시 이경림 시의 우수성의 일단을 말해주는 것이다.  2.직유와 반복으로 짜여진 환유 이경림의 시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거의 거론된 바 없는 그의 첫 시집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의 첫 시집이야말로 가장 이경림 시인다운 면모를 고스란히 내장하고 있고, 그의 시가 어떠한 토양에서 발원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시집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 시집은 시인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근대사와 가족사와 개인사가 머물다 간 곳에 떨어져 있던 토씨(詩 )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쉽게 만나게 되는 것은 ‘~같은’이나 ‘~처럼’이라는 낱말로 이루어진 직유가 무수하게 등장한다는 점과 이미지가 이미지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쇄와 반복의 문법이 그의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시가 직유와 반복법이라는 단순한 비유법의 외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통속적이거나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의 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비유인 직유와 반복법이 단선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미지나 개념의 병치를 이루면서 환유적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헛간이었던지 무너질 듯 서 있던 그 집에서 나는 기다렸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문 밖에는 두런두런 낯 모르는 장정들의 목소리 같은 세월이 지나갔다 금속성의 여자 목소리 같은 아이 울음같은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다 지친 황소울음같은 바람소리같은……애가 끓었다 그는 어디에 있는 걸까 삼부로 빌려줘 아냐 딸라야 컹컹컹 개같은 세월이 짖어댔다 밤이 오는지 귀퉁이에 거미줄이 넓어지고 박쥐가 숨죽이고 붙어있는 천장이 무서웠다 아 끝내 그는 오지 않는 걸까 문틈으로 캄캄한 것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신인가 -「유배일지․2」전문 무수한 직유의 연쇄를 환유적 풍경으로 나열해서 보여주고 있는 이 시는 어린 시절 시인이 막장과 판자촌을 전전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위악적이고 어두운 세상에 대한 느낌을 파노라마처럼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시인은 어렸을 때 경북 문경 완장리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사상 때문에 신문기자직을 그만두고 광산 간부가 된 아버지를 따라 경북 문경의 ‘加恩’이라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이러한 막장 같은 세월은 그가 중학교를 진학학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온 후로도 계속된다. 시인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加恩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검고 깊은 원통형의 어떤 세계다. 길들은 검었고 산도 물도 사람들도 모두 검”은 곳이다. (「加恩이라는 문」,『시와 반시』2002년 여름호) 어쩌면 시인에게 있어서 그 곳은 살아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든 거대한 무덤 모양의 어떤 곳이었을 것이다. 인용 시에 보이는 ‘낯모르는 장정들의 목소리’,‘금속성의 여자 목소리’,‘아이 울음’,‘지친 황소울음’,‘바람소리’,‘개 짖는 소리’와 같은 직유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는 이미지들은 시인이 살아온 신산한 세월의 환유적 표정들인 것이다.  이 시의 결말에 나오는, 기다려도 끝끝내 오지 않는 ‘그(당신)’는 오랫동안 잠적했다가 자정이 다 될 무렵에야 어슬렁거리며 어둠에 묻어 들어오시던 아버지와, 그가 30대 후반에야 마음을 열고 터질 듯한 사랑을 나누었던, 그가 그동안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기피했던 시의 얼굴과 겹쳐 보인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좌경으로 몰려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객지로 떠돌던 삶과 시인이 시를 외면하고 병자로서 살아온 삶이 매우 닮아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폭력적인 역사로부터 유배를 당했고, 시인은 그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시로부터 유배를 당했던 셈이다. 사실 시인이 시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것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 때문이다. 그가 다니던 모 의대를 1학기도 마치기 전에 그만두고 돌연 결혼을 해버린 것도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알 수 없는 복수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는 있으면서 없는 아버지였다. ‘없는 아버지’는 당시 그에게 지독한 가난과 반항심만 가져다주었다.  밥 숟가락 넘기는 일이 이렇게 아득한데 영영  못다 한 날들이 벌떼처럼 몰려오는구나 햇빛은 차고 달빛은 섬짓한데 그 사이 어느 틈새로 너는 날아갔을까 너를 묻을 때 삽 끝에는 자꾸 길이 끌려든다 네 길도 잘 접어 관 귀퉁이에 묻어준다 나무들이 굴욕처럼 우뚝우뚝 서 있는 숲에는 아픈 새의 울음이 구른다 미처 자리잡지 못한 흙들이 바람에 날린다 네가 가져간 날들이 오지 않는다 -「굴욕의 땅에서․ 1」부분 시인은 그의 홈페이지에 남긴「나의 시와 시어」라는 제목의 산문을 통해서 그의 시와 시어에 내포되어 있는 특성을 “없는.....지우다.....문득”으로 정의한바 있다. 그는 말한다. “나의 시는 없는 시다. 나의 시론은 없는 시론이며 나의 시어는 없는 시어이다. 태생부터 나는 없는 집에서 태어났고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없는 남편에게 시집갔다. 한 생 없는 희망을 붙잡고 낑낑거렸으며 없는 행복 속에서 없는 자식을 낳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없는’이라는 말 속에는 ‘부재’와 ‘가난’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러한 가난과 부재의식이야말로 이경림 시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인용 시는 39세에 죽은 그의 바로 밑의 동생의 이름인 ‘珍에게’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시인데, 이 시는 묘하게도 어릴 때 죽은 그의 막내동생의 이미지와 겹쳐서 읽힌다. 그는 막내동생이 이질을 앓다가 죽은 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몸으로 기절한 엄마 대신 동생의 시신을 뒷산에 묻던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때도 아버지는 부재했고 엄마마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상태에서 어린 몸으로 그런 엄청난 일을 감당해야 했던 기억을, 시인은 그의 세 번째 시집의 후기에서 뼈아프게 상기시키고 있다. 나는 그 아이를 흰 보자기에 쌌다. 그리고 한 밤중 아무도 몰래 뒷산에 묻었다. 달빛이 교교하고 나뭇잎들이 무섭게 번들거렸다. “꼭꼭 밟아야 해” 거들어주러 온 옆집 아저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아이를 밟았다. 없는 약값이 보이지 않도록, 없는 매장비가 보이지 않도록, 그 아이의 지겨운 울음이 다시는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이튿날 하루 종일 비가 퍼부었다. 그 때 나는 처음 알았다. 비가 비수인 것을…… 무덤 사이로 스며드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그 아이의, 아니 내 살갗을 쑤셔대는 빗방울 소리!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우리 집안을 틀어쥐고 있는 그의 폭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아나도 그는 늘 내 등 뒤에서 낄낄거리고 있었다. 급기야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고 그런 처참한 꼴을 그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서른아홉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어디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다시 찾는 것이 내가 살 길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는 나를 몰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잃어버렸던 세월만큼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부었다. 모른 척하던 그는 어느 날 내게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우리는 폭풍우 같은 사랑에 빠졌다. -시집『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후기에서 그는 그동안 어린시절에 사랑했던 시를 의도적으로 회피해왔었는데, 병약한 막내동생을 잃고 뼈아픈 가난과 불운에 직면하게 되면서 다시 시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서른 아홉이 되어서야 시와 폭풍우 같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는 시와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부터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병과 고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얻게 된다. 이런 시인의 경험들을 반추해 보면 이경림 시인은 시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시의 무당이고 사제이다. 그의 시가 반복을 통한 리듬과 무수한 이미지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주술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내가 만난 이경림 시인은 가난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시와 삶에서 가난이 거론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그의 가난에 대한 의도적 회피는 물론 과거의 참담했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고, 그의 시가 가난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 한 때문이겠지만, 시인이 그토록 지우고 싶어했던 가난이야 말로 그의 시의 자산인 것을 어찌하랴. 가난은 그의 시가 평평한 시간의 지평으로부터 ‘문득’ 수직으로 솟아오르게 한 숨은 힘인 것을. 시인의 말처럼 “‘없는’ 삶들에게 ‘문득’이 없다면 아니 더 자세히 말해서 ‘문득’이 일으키는 이후의 바람이 없다면 ‘없는’ 존재들은 그 곰팡내 나는 沈潛을 어찌 견디랴.”(「나의 시와 시어」)  3.고통이라는 거울이 있는 상자  그의 가난과 부재의식이 무덤이라는 이미지로 수렴된다면, 무덤에서 발원한 그의 삶과 시는 다양한 거울을 만나면서 고통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그는 그의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짤막한 글에서 “나는 일생 고통이라는 거울 속에 살았다. 고통 속으로 들어가면 밑바닥에는 언제나 거울이 있었다. 뼈 속까지 다 비추던 그 거울! 너무 깊어 오히려 잘 보이던 저 편 숲들......그곳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차디 찬 유리로 덮여있었다.”(「고통」)고 말한다. 이 글을 분석해보면 그의 고통은 거울로 상징되는 그의 존재의식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흔히 체면이나 부끄러움, 자존심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시인의 존재의식은 ‘거울’을 만나면서 비로소 시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시는 거울의 산물이다. 시에 있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비유의 거울이며, 시 역시 세상의 무수한 사물들을 향한 존재의 거울이다. 시인이 바라보던 “너무 깊어 오히려 잘 보이던” 유리로 덮여있는 ‘저 숲’은 어쩌면 그의 시를 탄생하게 한 근원으로서의 거울인지도 모른다.  강 기슭에는 한 노파가 오줌을 누고 있었다 자기 속을 흘러나오는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건너편을 보고 있다 손에는 여전히 쑥 캐던 칼을 들고 바닥에 쑥 같은 것이 조금 깔려 있는 바구니 옆에 앉아 맞은편에는 저녁해가 횃불처럼 타오른다 수면 위로 잉걸들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새소리 몇이 아직 나뭇가지에 걸려있는데 벌써 산이 어두워지다니’ 그녀는 천천히 고쟁이를 추키고 바구니를 든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불똥이 튀고 있는 강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수세기, 자기 속을 돌아 나온 강을 치맛자락처럼 끌고 노파는 간다 -「강」전문(『상자들』) 어쩌면 시의 여신 같기도 하고 이 땅의 수많은 여성의 상징 같기도 하고 시인 자신 같기도 한 ‘노파’와, 저녁 해가 지고 있는 강이 하나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는 이 시는 이경림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시이다. 이 시에서 강은 이글거리는 저녁 해를 비춰준다는 점에서 거울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 강은 단순히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거울이 아니다. 그 거울은 노파가 쑥을 캐는 이쪽과 저녁 해가 이글거리는 저쪽 세상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시간의 거울이다. 시의 여신으로 상징되는 노파는 시로 상징되는 쑥을 캐다가 오줌을 누고 있다. 그 오줌은 흘러가 강과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여성의 생산, 즉 생명성을 상징하는 오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시의 노파는 인간의 생명과 시의 생산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여성 시인을 암시해주는 존재로서 시인 자신으로도 볼 수 있다. 강 저쪽 맞은편에서 타오르는 저녁 해는 노파의 몸에서 흘러나온 강물 위에 잉걸들을 툭툭 떨구는 존재라는 점에서 남성이나 아버지, 또는 근대사와 같은 사랑과 고통과 폭력의 대상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강은 “수세기, 자기 속을 돌아 나온” 시간의 거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은 수세기 여성의 몸에서 흘러나온 물로 이루어진 女性史이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시는 어느 정도 페미니즘적인 특성을 지닌 시로 읽힌다.  이경림 시인은 자신의 내부에 ‘거울이 든 상자’를 무수히 지니고 있는 시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행복하고 불행한 시인이다. 그런 이경림 시인의 삶과 시는 내 삶과 시의 거울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삶과 시의 접면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볼 때마다 자꾸 미끄러진다. 눈이 부시다.  ==================================================================       첫과 끝  ―김왕노 (1957∼ ) 나에게도 내 몸의 첫인 손가락과 끝인 발가락이 있다. 나는 그러니 첫과 끝의 합작품이다. 나의 첫인 손을 내밀었다가 그 끝인 발로 이별하기도 했다. 이 수족으로 나는 한 여자에게 첫 남자와 끝 남자이기를 꿈꿨다. 나의 첫과 끝으로 사랑을 찾아가 내 사랑의 첫과 끝을 어루만졌다. 너도 너의 첫과 끝으로 나의 첫과 끝이 되곤 했다.     그첫과끝이있기에우리는부둥켜안고전율하고눈물이났다. 너는 너의 첫을 내게 주므로 나의 끝이기를 바랐다. 너의 첫 키스, 첫날밤, 첫 요리, 첫 꽃을 주어 나의 끝이기를 바랐다.     다가갈수록 자초지종인 듯 내게 주는 너의 첫 그 첫이 너의 끝으로 나의 첫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인줄 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뜬금없이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후배한테 들은 논술시험 채점 항목이 생각났다. 이해력, 분석력, 논리력, 창의력, 표현력. ‘나에게도 내 몸의 첫인 손가락과 끝인 발가락이 있다’라, 몸의 첫이 발가락이고 끝이 손가락일 수도 있지 않나? 첫 행에서 논리적 결함을 발견한 듯 갸웃거려지던 고개가 ‘나의 첫인 손을 내밀었다가 그 끝인 발로 이별하기도 했다’에서 이내 끄덕여진 때문인지 모른다. 시를 이런 식으로 분석해서 읽으면 안 되는데, 나쁜 버릇이다. 핑계를 대자면, 감정이입은커녕 독해가 안 되는 뉴에이지 시집이 드물지 않아 생긴 버릇이다. 시를 이해하는 코드가 내게 없는 게 아닌가, 겸허하게 한 수 배워보려고 시집 해설을 읽다가 ‘시도 이상한데 해설은 더 이상하네!’ 삐친 적도 여러 차례다. 그러다 보니 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게만 쓰여도 반가울 지경이다. 표현이 혼돈이든 수렁이든 그 세계의 창의를 즐길 독자도 있을 테다만. 세상만사에는 처음이 있다. 우정도 사랑도 처음엔 얼마나 온전한가. 그렇지만 처음이 있으면 끝도 있다. 그 때문에 어떤 관계도 아예 시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화자는 그 첫과 끝이 있기에 우리는 부둥켜안고 전율하고 눈물이 난단다. 이것이 마지막인 듯 사랑하라! 화자의 상대는 ‘다가갈수록 자초지종인 듯 너의 첫’을 준단다. ‘너의 첫 키스, 첫날밤, 첫 요리, 첫 꽃’, 그 ‘첫’의 신선함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면 얼마만큼 긴장해야 하는 걸까. 씹을수록 감칠맛 나는 시다.  
233    아일랜드 시인 - 사뮈엘 베케트 댓글:  조회:4676  추천:0  2017-02-14
  출생일 1906년 04월 13일 사망일 1989년 12월 22일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와트》 등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다. 인간의 삶에 대한 부조리를 독특한 문체와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사뮈엘 베케트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로,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사뮈엘 베케트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어도 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을 보았든 보지 않았든 귀에 익숙한 제목일 것이다.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의미 없는 대사와 단편적으로 축소된 인물, 배경, 내러티브 등을 통해 보여 준 것으로, 오늘날 현대 연극의 대명사로 통용된다. 이 작품으로 베케트는 "새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으로 현대인의 빈곤을 변형하여 표현, 승화시켰다."라는 평을 받으며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뮈엘 버클리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폭스로크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한 영국계 아일랜드 출신의 개신교 집안으로,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더블린의 얼스포트 학교, 에니스킬렌의 포토라 로열 학교,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등에서 공부했다. 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고, 크리켓, 수영, 럭비 등 스포츠에도 탁월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크리켓 대표를 했다. 또한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교직 과정을 이수했으며,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재직 때 제임스 조이스와 교류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랭보의 시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에세이와 평론도 썼다. 1931년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4학기 만에 그만두고 런던, 독일, 프랑스 등지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다. 1933년에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런던에서 2년간 정신 치료를 받았다. 이 시기에 융의 이론에 심취했는데, 이는 후일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는 사이 틈틈이 소설을 쓰기도 하고, 절친한 사이인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건의 경야》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1937년, 베케트는 자신의 떠돌이 같은 생활을 못마땅해한 어머니와 결별한 뒤 파리 몽파르나스에 정착했다. 파리에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지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을 했으며, 1938년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부조리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 것은 파리에서 '묻지 마 범죄'를 당한 이후부터다. 1938년 1월 6일, 베케트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에 낯선 청년이 난데없이 휘두르는 칼에 맞았다. 법정에서 범인에게 범죄 이유를 묻자 "나도 모르겠다."라고 진술한 것을 듣고, 베케트는 인생의 무작위성과 부조리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독일 점령기에는 프랑스 남부의 뤼시옹에서 농장 일꾼으로 지냈다. 이때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쉬잔 데셰보 뒤 메닐과 동거했으며, 두 사람은 1961년에 결혼했다. 이들은 서로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면서 평생의 동지 같은 관계로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고향 더블린으로 돌아가 잠시 일자리를 찾았으나 문학을 하고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전쟁 전까지 제임스 조이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습작했으나, 이 시기부터 좀 더 간결한 문체와 스타일로 부조리 철학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5년, 독일 점령기에 농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장편소설 《와트》를 쓰기 시작했고(1953년 발표), 이후 파리로 돌아와 박탈과 상실, 부조리함이라는 주제 의식에 천착하면서 장편소설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 3부작,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등 많은 작품을 썼다. 이 중 《몰로이》가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1953년에는 〈고도를 기다리며〉가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2막으로 된 비희극으로, 별다른 무대 장치도, 특별한 줄거리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작품이다.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이 서 있는 황량한 무대를 배경으로 서로를 '디디'와 '고고'라고 부르는 두 남자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의 존재는 불명확하며, 이 두 사람의 배경이나 정체 역시 밝혀지지 않고, 심지어 두 사람이 어떻게 그 나무 아래서 만났는지도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서로 연관이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행동하며 시간을 보내고,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했다 사라지고, 소년을 통해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음을 알린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 상황이 이어지고, 두 사람은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그곳에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하는 배우들 처음에 이 작품은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거절당하여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공연 다음 날 〈피가로〉 지는 '광대들에 의해 공연된 파스칼의 명상록'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관객들 역시 기존 사실주의극을 전복시킨 참신함에 열광했다. 고도의 의미에 대해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며, 고도가 과연 올 것인지, 각 등장인물, 그들의 말과 행위, 무대 소품의 의미까지 많은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미국의 연출가 알랭 슈나이더가 고도의 의미를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비평가들의 논쟁에 대해 "이 작품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마라. 그저 즐겨라."라고 말했다. 포토벨로 거리에 있는 베케트의 벽화 〈고도를 기다리며〉 이후 부조리극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현대 부조리극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또한 이후로 그는 장편소설보다는 희곡 작업에 주력해 〈결판〉,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행복한 날들〉 등 실험적인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현대 실험극에 있어 그의 위상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라디오 및 텔레비전 극본, 희곡, 산문과 같은 작업을 천천히 해 나갔으며, 베를린, 파리, 런던 등지에서 공연되는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베케트는 예술가 친구들 몇몇과 교유할 뿐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지고자 노력한 인물이었다. 파리 근교의 산속 작업실에서 은둔하듯이 살았고, 이따금 카페에서 친밀한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홀로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다녔다. 자신의 극이 상연될 때는 리허설 현장에 자주 참석했으나 공연이 시작되면 모습을 감추었다. 이런 행사들에는 쉬잔이 대신 참석하곤 했다. 인터뷰도 지인이 아니면 극히 제한했으며, 자기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역시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일체의 인터뷰도 거절했다. 베케트는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였으며, 절망적인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무주의자나 비관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부조리한 인생을 견뎌 내듯이 살아야 한다고 여겼고, 이런 태도는 작품에도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현실을, 오늘을 살고 있으며, 과거 역시 현실에서 해석될 뿐이다. 또한 완전한 절망만으로 작품을 끝맺지도 않았다. 한편 베케트는 금욕적이고 엄격한 수도자 같은 이미지로 유명한데, 그 이미지처럼 평생 여자 문제나 기타 다른 어떤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다. 1989년 7월, 평생의 동지였던 쉬잔이 사망한 이후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칩거했다가 5개월 후인 1989년 12월 22일에 그 뒤를 따르듯 사망했다.
232    국어 공부 다시 하자, 시인들을 위하여!... 댓글:  조회:3255  추천:0  2017-02-14
[현대시의 문제점] 이상옥 한국현대시인협회 여름세미나 주제 발표문 1. 현대시에 대한 불만 사례  이 지역의 모방송국 심야프로 '시가 있는 한밤'이라는 코너에서 지난 4월부터  매주(월-금) 5편씩 시를 소개하고 있다.  이 코너에서 가능하면 어제의 시보다는 오늘의 시를 청취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  갓 나온 월간지나 계간지를 자세하게 읽는 편이다.  의외로 소개할 만한 시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예전에 나온 문예지나 시집 등에서 시를 고를 때가 많다.  오늘의 시가 너무 지나치게 난삽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 비단 필자만의 생각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강희근도 (을유문화사, 2000)에서 애초에는 시집을 들고 앉으면  고향 가는 열차를 탄 마음이 되거나 어머니 손을 붙잡고 가는 길에 나서는 마음이 되는  그런 것이 시였기에 시는 설레고 들뜨고 그립고 간절한 그런 것이었으며 부담도 체면도  준비도 치장도 염려할 필요 없이 그냥 맨 얼굴로 함께 숨쉬며 있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낯선 손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독자와 시를 시나브로 떼어 놓는 시의 오적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그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시인들의 엄숙주의'이다.  엄숙주의는 "시인들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편하게 풀어도 될 자리에 힘을 많이 주거나 현학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 시는  쓸데없는 난해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현대시가 소통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또 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03 신춘문예 에 응모하여 낙선한 이관희는 현대시에 대한 불평을 시의 형식으로  풍자하고 있다. 요즘 시는 왜 두번 이상 읽어야 되나? 요즘 시는 왜 세번 읽고도 무슨 소린지 알아 먹을 수가 없나? 국어 공부 다시 하자 중학 나온 놈이 제 나라 말로 쓴 시를 한번 읽고 못 알아 먹고 두번 읽고도 못 알아 먹고 세번 읽고도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먹겠으니 국어 공부 다시 하자 시인들을 위하여! 아, 님아, 김소월 님아 다시 한번 이 땅에 살아 돌아와 한번만 읽어도  무슨 소린지 알아 먹을 수 있는 시 좀 써 달라 중학생이 읽고서도 단번에 사랑 병이  듬뿍 듬뿍 들 수 있는 보통 시 좀 써 달라 -이관희, 인터넷 이관희 홈페이지(http://www.supilmunhak.org/)를 검색해보면 이관희는 소설가고  이범선에게 문장 지도를 받은 바 있고 수필 부문에 신인 추천되었으며,  >(LA) 등지에 시가 입선되기도 하였다.  다양한 경험과 함께 오랫동안 시공부를 한 것이다.  그는 인용한 풍자시와 함께 "현대시가 자꾸 더 알아 먹을 수 없는 시가 되어 가는 까닭은  '낙타를 꼭 바늘 구멍으로 지나가게 해야지만' 시다운 시로 대접을 해 주니까 개나 소나  말이나 무작정 '낙타 바늘 구멍'으로 쑤셔 박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는 시를 쓴  본인조차도 그게 무슨 뜻이 되는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나의  불평 입니다."라고 노골적으로 현대시의 오늘에 세태에 대해 일갈하고 있다. 2. 변환기의 해체주의 90년대 들어 새로운 시전문지들이 속속 창간되면서 기존의 시단은 재편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권위를 구가하던 시전문지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전통적 권위가 해체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90년대 새로운 시전문지로 자리잡은 서울의 월간 을 위시하여 대구지역의  계간 , 부산의 계간 , 광주의 ,  제주의 처럼 지역에서 발행되는 계간 시전문지가 등이 새롭게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 외에도 다수의 영향력 있는 신생 시전문지가 속속 출현하였다. 90년대는 분명히 변환기였다.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을 중심으로 정신주의와 해체주의 논쟁이 뜨거웠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문학에 있어서 정신주의란 전통(이성주의, 도덕주의)에 기초한 보편진리를 존중하는  입장이고 해체주의는 기존의 가치들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즉 탈의미·탈 가치의 미적  입장이다.  이 논쟁은 이승훈이 해체시의 이론제공자라는 인식에서 최동호가‘시가 시를 부정하는  자기소멸적 퇴영성’이라는 반론을 제기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이 논쟁은 정보화 사회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 담론의 새로운 문학적 입장과  전통적 문학정신이라는 기존의 거대 담론과의 부딪침에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대세는 해체주의의 득세로 귀결되는 듯했다.  필자도 이미 ( 2002. 5)이라는 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것이 오늘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종교 등 전방위에 걸쳐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는 20세기 후반부터 오늘에 이르는 다양한 풍경이듯이,  포스트모더한 시라는 것도 작금에 와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이, 일상성을 드러낼  만큼 특정 시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이미 폭넓게 유포"되었고,  "90년대에는 현실 재현성의 절망감이나 중심부재, 나아가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적 풍경을  메타시나 문자이탈, 요설 따위의 다양한 방법으로 노래하는 시집들이 속속 출간되었다." 고 지적한 바 있다.  김경복도 ( 좋은날,  2000)에서 90년대 들어오면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탈정치적 탈이데올로기적 성향이  맞물리고 소비자본주의적 특성이 강화되면서 '일상성'이 주요한 관심사가 되어 문학적  테마로 부상하게 됨을 볼 수 있었는데,  일상성은 바로 자본주의가 추동하는 욕망의 외피에 젖은 채 무반성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의식세계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러한 사회문화 토대는 문학적 형상화나  현실의식을 이론으로 집약하는 방향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것은 패러디, 패스티쉬의 기법으로 시의 인터텍스트화, 일상시화, 자연스런 충동의  세계를 보인 박상배, 주체비판과 이성비판의 이승훈, 그리고 동일성을 강조한 이론가에서  해체주의 시학으로 전이한 김준오 등에게서 찾아진다는 것이다. 이승훈은 90년대 후반에 (새미, 1998)이라는 책을 낸 바 있다.  이 책의 머리에서  "한마디로 해체는 무슨 중심, 무슨 주의를 부정한다.  시가 건강해야 한다지만 이런 주장은 건강/질병이라는 2항 대립체계를 토대로 하고,  두 항목 가운데 건강만 강조하고, 그런 점에서 도덕의 사유는 사유의 도덕이 아니다.  내가 이런 말하는 해체는 이런 2항 대립체계, 이성중심주의의 모순을 밝히고,  이런 모순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린다.  정신은 순수하고 육체는, 물질은, 일상적 삶은 불순하다는 사유도 위선이고 폭력이다."고  전제하고 "고전적 경험과 현대적 경험과 후기 현대적 경험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그 동안 내가 관심을 둔 부분은 후기 현대성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다소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을 옹호한 셈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이승훈 유의 해체시론에 영향을 받은 신인들은 뚜렷한 명분도 없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경향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명분 없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작형태는 결국 언어유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근원, 존재의 본질을 추구하는 시의 본질과 상관없는 비시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  물론, 시의 본질을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고 그것도 다양한 견해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만 지나친 실험성과 전위성의 추구는 현대시에 대한 불만만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선이가 (2003, 7)에서 "시적인 것은  가시적인 삶과 비가시적인 삶 사이를 오가며 삶의 근원을 탐사한다.  이것은 때로 동일성의 회복, 주관성 혹은 내면성의 포착이라는 이름으로 운명과 의지  사이를 오가며, 그 아슬아슬한 틈새로 언뜻언뜻 비치는 존재의 본질을 이미지로 기억해  낸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우화에서처럼 본질로서의 이데아(idea)를 기억해내는 것은  본질의 이미지인 그림자였듯이."라고 제시한 후  "오늘날 이미지는 시인 보들레르가 '무시무시한 새로움! 모두가 눈요기! (「파리의 꿈」)라고 절규했듯이, 존재의 근원을 떠나 하나의 눈요기로 전락했다.  이미지의 자기분열의 시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의 우리 시가 존재의 근원을 떠나 하나의 눈요기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는 써서 무엇 하나 횡설수설 시를 쓰고 잡지에 발표하고 발표해서 무엇 하나 잠이 오면 잠이 들지만 잠이 들어 무엇 하고 공부해서 무엇 하고 무엇이 무엇인가 이 시가 속일  뿐이다 글 없는 글, 말 없는 말, 시 없는 시가 있다면 한줌에 들고 그대 찾아 가리라  문을 닫아도 눈이 오고 문을 열어도 눈이 오네 -이승훈, ( 2003년 6월호)  이승훈의 는 일종의 시론시로서 자신의 해체시론의 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시를 쓰는 행위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기존의 생각, 잠은 건강을 위해서 요긴한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해체한 것이다.  즉 의미 있는 일/의미 없는 일, 필요한 일/필요 없는 일 등의 2항 대립체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시가 속일 뿐이다"나 "글 없는 글, 말없는 말, 시 없는 시가 있다면 그대 찾아 가리라"  등의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이런 의도는 견고한 2항대립에서 어느 한 편을 중시하는 모순으로부터의 해방을 노리는  것이다.  그것은 "문을 닫아도 눈이 오고 문을 열어도 눈이 오네"에서처럼 '문'의 경계와 상관없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여주면서 경계의 무의미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위의 는 견고한 시론시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이승훈은 ( 1996. 11)에서도  "내가 라는 시에서 '시가 없을 때 시가 태어난다.  아아 시가 없기 때 시가 없을 때 시가 있다면 시를 쓸 필요가 없다.  말하자면 나는 이 시대의 문학이라는 이름의 유령과 싸운'고  말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시든 문학이든 무슨 본질, 순수한 기원이 있다고 믿는 건 자유지만 이런 자유가 우리  시의 발전을 억압한다.  그 자체가 문학인 텍스트도 없고 그 자체가 시인 텍스트도 없다.  문학도 없고 시도 없다.  비시가 시이며 시가 비시이다. 시는 부정을 먹고 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승훈의 위의 인용시는 올 6월에 발표되었단 점에서 그의 근작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수년 전에 발표한 그의 시론시의 반복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승훈이 수년간 같은 맥락에서 되풀이하는 시적 작업은 이제 더 이상 미적  충격을 주지는 못하고, 이제는 언어유희로 그치는 것 같기도 하다. 이혜원도 그의 앞의 글에서  "자기 방기의 언어와 사변적 요설로 채워진 90년대의  해체시는 정작 해체시의 요체를 이루는 치열한 부정의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  부정의 대상도 목적도 없이 무차별하게 행해지는 배설의 언어는 해체의 진정한 정신을  퇴색시킬 뿐이다."라면서  "요즘의 해체시에서는 부정의 정신은 찾을 길 없고 부정의 몸짓만이 요란한 경우가 많다.  무의미하게 남발하는 자기방기의 언어들이나 거리낌없이 분사하는 현란한 말장난들은  언어의 파괴에 불과할 뿐 새로운 시적 전략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작금의 우리 시의 해체적 징후는 더 이상 전위성도 지니지 못한다.  박상배나 이승훈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현실 재현성의 절망감이나 중심부재,  나아가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적 풍경에 대한 미적 대응으로 시를 썼다고 하지만,  근자에 젊은 시인들이 일정한 명분도 확보하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드러내는 해체적  징후는 시를 파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기존의 시법에서 무조건 일탈해야만 좋은 시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신인들이 그만큼  많은 것 같다.  3. 매너리즘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의 지양  문덕수는 91년 8월 한국시문학회 주체 세미나(마산)의 (韓國詩文學會, 第六輯)이라는 주제발표문에서  "오늘의 한국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현저한 특색은 시작품의 양극 분화 현상인데,  그 하나는 '메시지 편중주의(개념 편중주의, 내용 편중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과격 실험주의'(형식 편중주의, 반언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적, 전위적 성격을 띠고 있는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혁명성과 과격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선전·선동과 형태 실험이라는 차원에서는 상반되지만 예술로서의  시의 가치면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전제하고서,  전통적 서정주의를 비롯한 안이한 매너리즘도 메시지 편중주의와 과격실험주의 양극  사이에 널리 잠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한국 현대시가 병균처럼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원칙으로 "시는 모름지기 언어예술이라는 문학주의 또는 시성주의(詩性主義)"를  제시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모든 시도와 실험, 모든 주장과 실천에 우선하는 원칙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고 10여년이 지난 후 (2003. 8) 편집후기에서  "요즘 신진들의 작품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구태의연한, 기성의 재탕삼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의 매너리즘에 빠진 시,  다른 하나는 큰 요동을 치면서 시단의 지각 변동을 일으킬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 일단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오늘의 한국시단이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민중 리얼리즘이니 하는 슬로건의  그늘 밑에서 언제나 위축된 채 구태의연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문덕수는 신진들이 새로운 한국시의 지평을 열어야 할 것을 강조한 셈이다. 필자가 진단하기에도 오늘 한국시의 심각한 문제점은 매너리즘에 빠진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로 양극화되어 있는 점이다.  오늘의 한국시 특히, 신인들의 시 경우 90년대 해체시론에 영향을 받은 탓으로 지나치게  전위성을 추구하게 되면서 소통불능의 상태에 빠진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불만요인이 아닐 수 없다.  독자 입장에서는 읽을 만한 시가 없는 셈이 아닌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시는 읽혀지기는 하지만 상식적인 넋두리에 불과하고,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는 뭔가 있는 듯 하기는 한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다시금, 시성에 눈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혜원도 그의 앞의 글에서 현실의 모순을 꿰뚫고 존재의 본질에 이르는 시문학 특유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詩性의 회복이라는 과제가 막연하게 나마 공감을 이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성에 초점을 다시 맞추고자 하는 것은 매너리즘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를 지양하여  앞서 제기한 현대시에 대한 불만 사례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이는 결코 전통회귀나 또다른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은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밥상.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정일근, 이 작품은 올해(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정일근의 수상 작품은 따스하고 편안한 시적인 분위기를 견지하면서,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예리한 시각과, 진실을 추구하는 치열한 문제의식 그리고  진지하면서 탄탄한 주제의식이 견고히 내재되어 있다.  또한 활발하고 왕성한 창작혼이 돋보이는 시인으로, 작품 속에 서정시다운 진정한 울림과  리듬이 있어, 독자들을 사유의 여로(旅路)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생명존중 사상과 평등정신 그리고 사랑의 철학을 감동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시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소월시문학상 대상 선정 이유를 밝힌 글이다.  이 글의 요지는 詩性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  화자는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그리운데,  그것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인 세상의 밥상에서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화자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리기도 했다.  이는 오늘의 비인간화된 삶을 반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다시 어머니의 둥근 두레밥상에 앉고 싶은 것이다.  어머니의 두레밥상은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이었고,  그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다 귀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현실의 고단함을 느끼는 이즈음 다시금 어머니의 두레밥상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 먹고 싶은 것이다.  이 시는 오늘의 삶을 반성하면서 어머니의 두레밥상이 환기하는 근원적인 삶 혹은  이상적인 삶의 세계를 꿈꾸면서 삶의 질서회복을 열망하고 있다.  가치나 질서를 무화하고 해체하는 것으로 그치는 해체시와는 달리 오히려 근원의 회복을  추구하면서 보다 이상적인 질서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일근의 시는 서정적 울림과 그로 인한 감흥, 리듬감을  확보하면서 시의 본질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시가 전통서정시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 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짐승처럼 썩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라는 대목에서처럼 오늘 삶의 현장감도 비유구조로 놓치지 않고 있다.  정일근은 수상소감에서  "마당의 벚꽃도 목련도 화사하게 만개한 4월 한낮에 기다렸던 수상 소식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다렸던'이란 표현을 쓴 것은 제가 서정시인이기 때문입니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에게 시인 소월의 이름이 든 이 상이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밝히고 있다.  정일근은 오늘의 서정시인이지만 그는 20년대의 김소월의 이름을 영광스러워하고 있다.  이는 그의 시적 토대가 소월의 서정에 닿아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현대시는 서정의 원형에 해당하는 소월에서부터 기원하고 있는 詩性의  뿌리를 더욱 견고히 해서 그것을 토대로 현대성의 줄기와 가지를 뻗쳐야 할 것이다.  이 명제가 매너리즘 시와 폭발성 아방가르드 시의 양극화를 지양하는 기본원칙으로  적용된다면 한국 현대시의 심각한 문제점,  곧 오늘의 시가 도무지 읽혀지지 않는다는 독자의 불만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소월시 문학상이 서정시인 정일근에게 주어진 것으로 볼 때 한국시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   거울에게 -황성희(1972~) 그때 나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제목도 없는 시간 속으로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지고 나는 마치 처음부터     빨래 건조대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엄마엄마 보행기로 거실을 누비는 저 아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마치 처음부터 베란다 너머 저 허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오늘 하루도 눈감아 주는데 거울아 거울아!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니? 하고 묻는 것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이제껏 살고도 날 모른단 말이야? 비아냥댈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도대체 빨래나 널고 있지 않으면 저마다의 베란다에서 저렇게도 마음 편히 말라가는 아파트의 빨래들이나 멍하니 감상하지 않으면 거울아 거울아! 도대체 무엇을 하겠니? 나는 마치 처음부터 나로 수천 년 수만 년을 살아온 듯 너무도 익숙하게 내 팔 속으로 내 팔을 뻗고 내 다리 속으로 내 다리를 뻗고 내 얼굴 속으로 내 얼굴을 드밀며 안녕안녕선생님? 안녕안녕친구들?     오늘도 이렇게 인사하는데  햇살 가득한 아파트 베란다에서 한가롭게 빨래를 너는 시간, 저 안에서는 한 돌이 안 된 아기가 “엄마, 엄마,” 옹알대면서 보행기를 타고 거실을 누빈다. 결혼을 꿈꾸는 젊은 여인들이 바라마지 않을 정경인데, 정작 당사자인 화자의 마음은 겉돌고 있다. 제 아기를 ‘저 아이’란다.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줄리언 무어가 제 아이를 한없이 낯선 눈길로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화자는 아기를 사랑할 테다. 어쩐지 육아도 살림도 ‘마치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능숙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남편이 속을 썩이는 것 같지도 않고, 아기도 본인도 건강한 것 같다. 그런데도 화자는 ‘익숙해익숙해미치겠어!’ 비명을 지른다. 이 미칠 것 같은 권태와 채워지지 않는 공허…. 안락한 가정을 이루는 것만으로 한생을 보내는 것을 도저히 수락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제 삶의 시간이 장삼이사의 고만고만한 ‘제목도 없는 시간’인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지는데 어찌 호락호락 행복할까. 자기애 강한 엄마시여,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지요. 곧 당신만의 ‘무엇을 할’ 시간이 주어질 거예요.
231    미국 신문 편집인, 발행인 - 퓨리처 댓글:  조회:4844  추천:0  2017-02-14
조지프 퓰리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지프 퓰리처 조지프 퓰리처(영어: Joseph Pulitzer, 1847년 4월 10일 ~ 1911년 10월 29일)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신문 경영자이다.   목차   [숨기기]  1생애 2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모금 운동 3퓰리처상     생애[편집] 헝가리 머코 출생으로 출생 당시에는 풀리체르 요제프(헝가리어: Pulitzer József)로 불리었다. 186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남북 전쟁 때 돈을 벌기 위해서 북군의 기병대에 참가하였고 1867년 미국에 귀화하였다. 1868년 ~ 1873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웨스틀리체 포스트》의 기자가 되었으며, 이때 정계에도 진출하여 1869년 미주리 주 의원이 되었다. 1878년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를 사들여 《이브닝 포스트》와 합병한 뒤 《포스트 디스패치》로서 창간하였고 이어 1883년 경영이 부진한 《뉴욕 월드》를 사들여 뉴욕으로 진출하였다. 다시 1887년부터는 석간 신문 《이브닝 월드》를 발행하였고 또 다른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저널 아메리칸》과 경쟁하며 옐로저널리즘이란 악명을 남겼다. 그 사이 1884년 건강을 해쳐 시력 감퇴와 신경쇠약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모금 운동[편집] 1884년,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하원 의원 선거에서 뉴욕 주 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는데, 그가 하원 의원으로서 활동을 펼칠 때인 1885년에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지만, 그 당시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에 여신상의 받침대 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난감한 처지에 있었다. 조지프 퓰리처는 그의 신문사 뉴욕 월드를 통해 모금 운동을 펼쳐 10만 달러가 넘는 기부 성금이 모여졌으며, 1886년 10월 29일에 뉴욕 항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퓰리처상[편집] 1903년 컬럼비아 대학에 신문학과를 개설할 때는 저널리스트 교육을 위한 기금으로 2만 2천 달러를 기부하였다.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1917년 퓰리처상이 제정되었다. 출생일 1847. 4. 10, 헝가리 마코 사망일 1911. 10. 29,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신문 편집인·발행인.   현대신문의 정형을 확립하는 데 공헌했으며, 당대에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언론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성장한 퓰리처는 군인이 되려 했는데, 남북전쟁(1861~65)이 한창이던 1864년 미국으로 이민해 북군으로 참전했다. 종전이 되자 그는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1868년 독일어 일간지 〈베스틀리헤 포스트 Westliche Post〉 기자가 되었다. 1871년 그 신문의 주식을 일부 사들였으나 이윤을 남기고 곧 되팔았다. 한편 그는 정치활동에도 뛰어들어 1869년 미주리 주 의회에 진출했다. 1871~72년 그는 미주리 주에서 자유공화당 창당을 도왔는데, 1872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공화당의 호레이스 그릴리를 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뒤이어 당이 붕괴한 후 퓰리처는 민주당원이 되어 평생 동안 민주당원으로 남았다. 1874년 퓰리처는 세인트루이스의 또다른 독일어 신문인 〈슈타츠차이퉁 Staats-Zeitung〉을 인수해 그 신문의 연합통신 회원자격을 세인트루이스의 〈글로브 Globe〉(나중에 〈글로브데모크랫 Globe-Democrat〉으로 바뀜)에 유리한 조건으로 팔아넘겼다. 4년 후 그는 세인트루이스의 〈디스패치 Dispatch〉(1864 창간)·〈포스트 Post〉(1875)를 인수해 〈포스트 디스패치 Post Dispatch〉로 통합했는데, 이것은 곧 세인트루이스 최고의 석간신문으로 발돋움했다. 1882년 10월 5일 퓰리처 신문의 주필이 〈포스트 디스패치〉의 정적 가운데 한 사람을 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대중여론이 악화되고 퓰리처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자 그는 뉴욕의 신문으로 투자의 관심을 돌렸다. 1883년 5월 10일 퓰리처는 금융가 제이 골드로부터 뉴욕의 조간지 〈월드 World〉를 인수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이 신문을 미국에서 으뜸가는 민주당의 대변지로 바꾸어놓았다. 퓰리처는 1887년 〈월드〉의 자매지인 석간신문 〈이브닝 월드 Evening World〉를 창간했다. 퓰리처는 정치비리의 폭로와 과감한 심층보도를 시도하는 한편, 절묘한 홍보술과 요란한 자기선전 및 선정주의를 결합시켰다.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만화와 스포츠 기사, 여성 패션 기사 및 화보 등의 혁신적 수단을 신문에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문을 정보의 원천이자 오락의 도구로 만들었다. 〈월드〉는 결국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모닝 저널 New York Morning Journal〉과 불꽃 튀는 경쟁에 돌입했는데,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기화로 양 신문이 보여준 요란한 선정주의는 그 같은 행태를 지칭하는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887년 시력이 떨어지고 신경병이 악화되자 퓰리처는 어쩔 수 없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890년에는 편집장에서도 물러났으나, 편집방침에 대해서는 그후에도 일정한 관여를 했다. 유언장을 통해 퓰리처는 컬럼비아대학교에 재산을 기부해 언론대학(School of Journalism, 1912 개설)을 설립하도록 했고, 퓰리처상을 제정하게 해 1917년 이래 매년 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 신문 발행인인 죠셉퓰리처는 1849년 헝가리 곡물 중개상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1878년 이후 신문경영자가 된 퓰리처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지를 성공시키고, 1883년 뉴욕의 지를 매입했다. 퓰리처의 적극적인 신문제작 방법, 즉 일요일판의 개시, 많은 삽화와 만화, 대담한 뉴스의 게재, 부패 추방 캠페인 등으로 지는 라이벌인 허스트 사의 신문, 과의 부수경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후 지는 미국내에서 주목받는 민주주의의 대표신문이 되었다. 또한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위한 기부금 모금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여신상의 발가락 끝에 있는 금속판에 새겨진 퓰리처의 이름이 지금도 남아있다. 1890년 이후 부분적으로 시력을 잃은 퓰리처는 정치활동에서 손을 떼고 신문 경영만을 계속하며 저널리스트와 신문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다 지금의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 저널리즘과와 퓰리처상을 만들고 1911년 10월 29일, 64세의 일기로 그의 사랑하는 요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유언과 당시 미화 2백만 달러의 유산으로 1917년 창설된 퓰리처상은 저널리즘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의 하나이다.   퓰리처상은 저널리즘과 문학의 두 분야에서 출발했으며 줄곧 컬럼비아 대학이 퓰리처상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시상해오고 있다.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14개 부문의 상이 수여되고 문학 분야의 상은 픽션, 역사, 시, 전기와 자서전, 일반 논픽션으로 구분되며 음악상도 수여한다. 금메달은 저널리즘 분야의 공공봉사 부문상에 수여된다.   사진 부문은, 인쇄매체의 발달로 신문과 잡지에서 사진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1942년 저널리즘 분야에 신설되었으며 1968년부터 픽션과 피처 두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되고 있다.     퓰리처상은 그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시상식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위대하게 여겨지게 되는 것처럼 신문, 방송인에게 특히 기자들에게 퓰리처상은 가장 명예로운 상이 되었습니다.  
230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방방곳곳"이냐? "방방곡곡"이냐!... 댓글:  조회:5053  추천:0  2017-02-13
[방방곡곡(坊坊曲曲)]   坊坊曲曲(방방곡곡)은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모든 곳’을 뜻하는 성어이다. [坊 : 동네 방, 曲 : 굽을 곡]   조선시대 한성부는 11개의 방(坊)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 명례방(明禮坊)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으며 지금의 명동성당이 있는 명동 일대를 포함한 남대문로1・2가, 을지로2가, 명동1・2가, 충무로1・2가, 회현동2・3가,  장교동, 저동1가 각 일부와 남산동1・2・3가 각 일원이 해당된다고 한다. 명동성당과 관계가 있는 명례방(明禮坊) 관련 단체에서 예전에 조금 활동한 기억이 있어서 우연히 방(坊)이라는 글자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일본에서도 방(坊)이라는 글자를 많이 사용하여 명례방이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지어진 지명인가’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조선 초기부터 사용한 우리나라의 옛 지명 편제였다.   그러다가 방곡(坊曲)이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고, 이 ‘방곡’이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방방곡곡(坊坊曲曲)으로 의미가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가가호호(家家戶戶)와 방방곡곡(坊坊曲曲)의 뜻이 어떻게 다른지도 살펴보고 이를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본 뜻] 가(家) - 한 집안 혹은 한 집. 그러나 가가호호의 ‘가’는 한 집안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한 가족이 사는 집 정도의 뜻이다. 호(戶) - 집. 집에 딸린 방(房)이다. 방(坊) - 동네. 조선시대 서울의 5부를 다시 나눈 행정 구역이다. 종로방, 효자방, 명례방 등. 곡(曲) - 굴곡이 많은 산천이나 굽이굽이. 곡(谷)이 아니다.   [바뀐 뜻] 1. 방곡(坊曲) : 면(面) 이하의 행정 구역인 이(里) 단위의 마을 2. 가가호호(家家戶戶) : 한 집 한 집, 집집마다. 여기서 가(家)는 큰 단위이고, 한 집에 여러 호(戶)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세대주택 그 자체를 가(家)라고 한다면 한 집 한 집을 독립된 호(戶)라고 한다. 또 옛날처럼 방이 여러 개 딸린 셋집에 독립된 세대가 살 경우 그 하나하나를 호(戶)라고 한다. 3. 방방곡곡(坊坊曲曲) :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모든 곳. 골골샅샅, 면면촌촌이라고도 한다.           강상헌(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대표)     우리의 방방곡곡(坊坊曲曲)이란 말은 일본의 진진포포(津津浦浦)다. 한자 많이 쓰는 그들인지라 방방곡곡을 아는 이도 있지만, 진진포포가 대세다. 방방곡곡, 문자(한자) 뜻으로 살피면 '동네방네 구석구석'이다. 그런데 평야 또는 산지의 이미지다. 진진포포는 바다 또는 강의 뒷마을들이다. '전국의 각처'에 대한 우리와 그들의 생각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뭍의 이미지 삼천리 방방곡곡이지만, 그들은 나루[津]와 포구[浦]의 모습으로 자기네 길쭉한 섬나라를 떠올린다. 내 고향은 남도 해남하고도 땅끝마을의 이웃 동네인 배꽃나루 이진(梨津)이다. 지금도 뒷동산 할아버지 묏동 배롱나무 곁에 서면 큰 섬 완도 내려다보이고 등 뒤론 달마산이 병풍이다. 눈 돌리면 강진만 바다도 대흥사 보듬은 두륜산 자락에 비껴 푸르다.  교사 아버지 일터였던 영암서 태어났고, 해남 순천서 자랐다. 방학이면 늘 큰집에 갔다. 광주서 대학 마치고 직장 얻어 고향 뜬 이래 객지에서만 살아, 남도 곳곳이 다 이름만으로도 눈이 시려오는 곳이다. 그 바다는 내 마음을 키웠다. 늦게사 눈에 넣은 땅끝 바다는 세상의 그 어느 바다보다, 지중해 그리스 바다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래서인가, 내게는 이 땅이 바다의 이미지로 담겨있다. 그런데 가끔 방방곡곡과 진진포포라는 말이 함께 떠오른다. 혹 우리는 전통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바다를 안고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습속(習俗)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 씨 된다고 했다. 왜 방방곡곡만 있고, '진진포포'라는 뜻은 없었을까? 세상의 여러 모습들이 그런 언어현상을 빚은 것은 아닐까? 씨가 말 됐나? 백성이 본디라는 유교의 이념 민본(民本)은 허공에 나부끼는 깃발일 뿐인가. 더구나 갯가 그 '어린 백셩'들이 받았을 대접의 실체적 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랜 신문사 직책 마치고 부족한 공부 채우며, 고향을 더 그리워 할 수 있게 됐다. 배꽃나루도 혹간 들를 수 있게 됐고, 최근에는 일 때문에 완도 다녀오다 읍내 천일식당에도 들렀다. 또 해남 언론과 이렇게 인연 맺었다. 기쁜 일이다. 더구나 필자소개에 '향우'라고 적어준 우정이 고맙다. 정중히 고향의 여러분께 마음의 인사 여쭙는다. 고향 향한 이런 기쁜 생각이 그 바다의 향우 여러분께도 보람 될 수는 없을까? 사특함 없는 시인의 마음 기린 공자 시경(詩經)의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을 화두로, 때로 그 바다와 사람들의 역사를 궁리하고 싶다. '해남학' 같은.    '해양 시대'라고 몇 해 전 몇몇 정치꾼들 많이 떠들더니 요즘은 바다 단물 다 뽑았는지 조용하다. 지도 뒤집으면 남해안이 태평양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라던 이들 다 어디 갔나? 그러나 상관없다. 그들 없다고 바다의 빛이 스러지랴? 관문이 찌그러진 사립문 되랴? 남도 사람 보석 인심과 빈빈(彬彬)한 지혜가 그들의 말 몇 마디에 피었다가 사그라지고 마는 나팔꽃은 정녕 아닐지라. 땅끝 바다의 본디, 그것을 아우르는 진짜 가치를 이제 새롭게 이뤄야 할 터. 다만 우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잊어선 아니 된다. 바다보다는 뭍, 뭍 중에서도 서울만이 '사람 사는 곳'이 돼 있는 기형적 '서울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생명의 '바다공화국' 해남과 남도가 새삼 활개 칠 내일 세상 내다본다. 얘기 나온 김에, 방방곡곡을 방방포포(坊坊浦浦)로 바꿔 써 볼까나? 바다가 팔팔해야 동네방네 구석구석이 활기에 넘칠 것 아닌가. 좋은 말은 좋은 씨가 된다. =====================   이곳저곳, 여기저기, 곳곳, 동네방네, 사방팔방, 곡곡, 도처, 각지, 여러 곳, 군데군데…. 뜻 차이는 있지만 쓰임 폭을 넓게 잡으면 비슷한 말이다. 사전은 한자어인 면면촌촌(面面村村), 토박이말인 골골샅샅도 같은 뜻으로 제시한다. 모두 방방곡곡과 동의어, 유의어인 표현이다. 방방곡곡은 ‘여러 마을(坊, 동네 방)’과 ‘산천과 길의 굽이굽이(曲, 굽을 곡)’의 한자를 반복해 만든 말이다. ‘전국 방방곳곳 이색 갈비 소개’(ㅈ일보), ‘쉬는 동안 맛집 찾아 방방 곳곳 여행’(ㅁ경제), ‘방방곳곳으로 여행 계획하는 7월말, 고속도로 전쟁’(ㄴ뉴스)처럼 ‘방방곳곳’도 제법 쓰인다. ‘곡곡’이 ‘곳곳’으로 탈바꿈한 바르지 않은 표현이다. ‘방방 곳곳’처럼 띄어쓰기하면 괜찮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은 ‘방방’을 ‘곳곳’(여러 곳 또는 이곳저곳)의 북한어로 설명한다. 남한에서는 이 뜻으로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방 곳곳’ TV 모니터, 세컨드 TV로 급부상”(ㅈ신문)은? (티브이 수신이 가능한 모니터 값이 내려가면서) 티브이를 ‘방마다’(방방, 房房) 설치하는 집이 많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이니 재치 있는 제목 뽑기다. 아름다운 동행
229    시작에서 좋지 못한 버릇에 길들면 고치기가 힘들다... 댓글:  조회:3604  추천:0  2017-02-13
  중국 충칭시 원양현의 말라 버린 강둑에서 여성들이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이런 표현은 곤란해요  좋지 못한 버릇에 길들면 고치기가 힘들어 진다. 그처럼 시 쓰기도 처음부터 옳고 바르게 배우는 일이 필요하다. 더러 제법 오래 시를 썼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볼 수 있는 시에 대한 그릇된 인식, 그릇된 몇 가지를 알아보고 제대로 쓰는 법을 찾아가자.  1. 관습적 인식과 표현  - 대상에 대하여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 또는 상투적 인식에 의해 시를 쓴다. 따라서 새로울 것이라곤 없는, 구태의연한 인식과 표현이 나타나게 된다.(자동화된 인식, 비창조적 표현)  코스모스: 외롭다, 소녀, 그리움, 파란 가을하늘, 추억  바다 : 수평선, 갈매기, 파도, 기다림, 충만, 일출과 일몰, 등대  2. 피상적(표피적)인식과 표현  -대상의 내면을 구체적으로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고 표피만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거나 인식하면서 장식적으로 이를 표현하는 것, 관습적 인식보다는 진일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를 흘리며 땀을 흘리며/퍼렇게 멍든 강은/꽃망울 송이송이 터뜨릴 내일을 향해/힘차게 흘렀다/숨이 차오는 고통을/뒤로 뒤로 밀어 놓고/높은 산을 타고 넘는 바람처럼/끓어오르는 뜨거운 마음을/안으로 숨기며/강은 쉼 없이 흘렀다.  -이처럼 대상(강)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없이, 막연하고 모호한 인식으로 쓴 작품은 그 진정성(진실성)을 의심받기 쉽다. 겉으로의 수식은 화려하고 그럴 듯하지만 독자의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없다는 말이다.  3.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사적인 표현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인식을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표현함으로서 독자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 대상과 시인 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족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므로 그 표현의 세계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이 때 시인은 대상과의 관계를 객관화시켜서 독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밤은 날개처럼 슬프다//밤이 젖어오면/낯 설은 거리에서/울먹이는 바람을 자고/나는 잃어버린 나라의/날개를 단다//날개의 깃털이 자라나/그 때 그 거리에서/밤보다 야릇한 의미로 젖어들면/가슴을 때리는 울림이 있다.  - 이 작품에서, 내가 잃어버린 나라의 날개는 무엇인가? 이런 표현은 시인만이 알고 있는(잘 모를 수도 있지만)주관적이고 사적인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도 독자들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주관적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 철학적, 관념적 인식과 표현  - 시는 삶과 죽음, 자유, 고독 등의 철학적 주제를 다룰 수 있으며 실제로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런데 더러(초보자의 경우에 특히) 철학적 관념을 시적 표현으로 용해하지 않고 산문적으로 진술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럴 때 철학적 주제는 어설픈 관념으로 떨어져서 시도, 철학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a. 삶이란 게/ 쉽다가도 어렵습디다요/울다가도 웃는 게 사람이라지만/싸우다가도 보듬는 게 인간이라지만/참말로 힘이 듭디다요  b. 먹고 사는 일이 다 뭔가/자주, 내가 나에게 던지는 낡고 지친 질문/굶주림이란 말이 없었대도/가난의 주인은 있는 법/배고픔은 배고플수록/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5. 앞 뒤 문맥에서 논리성이 결여된 표현  -작품 안에서 앞 뒤 시제가 서로 맞지 않고 화자가 불일치하는 경우, 그 내용 표현에 일관성이 없거나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 등, 이 들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작품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작품에 논리적 결함이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6. 심리적 거리 조정에 실패한 표현  -심리적 거리란 시인과 대상과의 감정적 거리를 말한다. 대상과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따라서 시를 쓸 때 시인은 대상과의 거리 조정을 알맞게 잘 조정해야 한다.  -부족한 거리 조정(underdistancing)  :대상과 시인과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시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감정의 과잉상태를 보여준다.  저녁의 피 묻은 동굴 속으로/아, 말없이 그 동굴 속으로/끝도 모르고/끝도 모르고 나는 꺼꾸러지련다/나는 파묻히련다//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낮도 모르고/밤도 모르고/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다/나는 속 아픈 웃음을 빚으련다 - 이상화,   -지나친 거리 조정(overdistancing)  :대상과 시인과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감정의 과도한 억제와 결핍상태를 드러낸다.  오존주의보 발령 외출 삼가 바람/하늘의 얼굴에 우울이 낌/표정 없는 사람들 서울은 위험함/꿈틀거리는 활자 속에 갇힌 도시의 육체에서 기름 냄새가 남/혈관 속에서 유영하는 오염된 활자 치장만 아끼지 않는 사람들/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주말여행 코스로 만들어진 주남저수지...  7. 시적 밀도(함량)가 부족한 표현  -엄밀히 따져서 이것은 그릇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시쓰기에 있어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작품을 썼는데도 알맹이(시의 내용)가 없거나 빈약해서 독자들에게 시적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작품을 길게 썼는가, 짧게 썼는가? 하는 작품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작품이 지니고 있는 시적 밀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스케일의 문제이다.  -작품의 시적 밀도와 함량은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 깊이 있는 사유, 참신한 표현기법과 풍요로운 언어 구사 등에 의해 결정된다.  =========================================================================================   공중전화 박스를 나오며 ―최승철(1970∼) 방금 나간 여자의 체온이 수화기에 남아 있다. 지문 위에 내 지문이 더듬는 점자들, 비벼 끈 담배꽁초에 립스틱이 묻어 있다. 간헐적으로 수화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로운 사람은 쉽게 절박해진다.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거미의 눈빛이 여자의 체온으로 차가워졌다. 살아는 있니? 여름쯤 손가락에 눌려졌을 모기가 유리창에 짓눌려져 있다. 절박함 없는 희망이 있던가. 남자는 방금 나간 여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공중전화 박스를 나오다 관상용 소국(小菊) 하나를 툭, 쳐 본다. 여러 개의 꽃대궁이 동시에 흔들린다. 뿌리가 같은 이유다. 늦기 전이라는 노랫말이 죽기 전이라고 들리는 저녁, 애틋해서 되뇌이는 건 아니다. 차라리 살아서 날 미워해 버스 광고가 지나간다. 그저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계절이다.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갖게 된 뒤부터 특히 번화가에서는 공중전화가 거의 사라졌다. 요즘 공중전화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으로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를 꼽을 수 있으리라. 변두리 동네 버스정류장 근처 공중전화 박스를 지나칠 때면 제 모국어를 절박한 목소리로 쏟아내고 있는 그들을 이따금 본다. 대개 신산할 그 이용자들의 삶처럼 공중전화 박스는 이래저래 쓸쓸하다. ‘방금 나간 여자’나 그 여자가 차마 끊지 못하고 내려놓은 수화기에서 여자 이름을 부르는 남자나 외로운 사람들이다. 공중전화 박스 안 ‘모서리에 매달려 있는 거미’나 ‘유리창에 짓눌려져 있’는 모기도 외롭다. 화자도 외롭다. ‘하나를 툭,’ 치니 ‘여러 개의 꽃대궁이 동시에 흔들’리는 소국(小菊)처럼, 모두가 외로운 외로움의 맥놀이.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현재 주거 부정에 신용불량일 듯한, 삶이 위태로워 보이는 모르는 여인과 기타 등등 사람이 공중전화 박스에 남긴 자취가 화자 가슴에 우수를 불러일으킨다. ‘그저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은 계절’이란다. 당신, 당신들, 어디서든 부디 살아 계시오! 숨 받아 태어난 존재들은 원초적으로 외로운데, 게다가 어떤 인생은 구차하고 치사하기도 하다.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 여인, 담배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을까. 새해부터 담뱃값이 대폭 오른다. 살림이 어려운데 담배를 정 못 끊겠으면 마당이나 베란다에 담배를 키우는 것도 한 방편이리라. 마음 맞는 사람끼리 텃밭을 얻어 담배 주말농장을 할 수도 있으리. 
228    방방곡곡으로 못가지만 시로써 아무 곳이나 다 갈수 있다... 댓글:  조회:3935  추천:0  2017-02-13
가디언 지에 실린 작가 29명이 밝히는 집필 법칙 10가지. 참여한 작가는: 엘모어 레오나드, 다이애나 애실, 마가렛 에트우드, 로디 도일, 헬렌 던모어, 제프 다이어, 앤 엔라이트, 리처드 포드, 조나단 프랜즌, 에스더 프로이드, 닐 게이먼, 데이비드 헤어, PD 제임스, AL 케네디, 힐러리 맨텔, 마이클 무어콕, 마이클 모퍼고, 앤드류 모션, 조이스 캐롤 오츠, 애니 프루, 필립 풀먼, 이언 랜킨, 윌 셀프, 헬렌 심슨, 제이디 스미스, 콜름 토이빈, 로즈 트레맨, 세라 워터즈, 저넷 윈터슨. (이름들 적다보니 팔 떨어지겠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다 옮기고 나니 단편 소설은 되는 분량이다.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 하며 반정신으로 옮겼다. 글쓰는 사람들 생각이 나서...)     엘모어 레오나드: 부사를 사용하는 건 대죄다.  날씨로 책을 시작하지 마라. 날씨에 대한 인물의 반응이 아니라 그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거라면 너무 길게 쓰지 마라. 독자는 사람을 찾아 책장을 휙휙 넘길 것이다. 예외도 있다. 만약 당신이 에서 에스키모보다 다양하게 얼음과 눈을 묘사한 배리 로페즈라면, 마음껏 기상 통보를 하도록. 서막을 피해라: 서막은 짜증거리다. 특히 머리말 다음에 소개문 다음에 서막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건 논픽션에서 으레 사용된다. 소설에서 서막은 배경 이야기이며, 이건 어디에나 당신 마음대로 끼워넣을 수 있다. 존 스타인벡의 은 서막이 있지만, 거기선 괜찮다. 거기 나오는 인물은 내 법칙이 다루는 핵심을 다 짚어내고 있으니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책에 말이 많은 걸 좋아하고 말하는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주는 건 싫어한다. 말투를 보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고 싶다." 대화를 잇기 위해 '말했다(said)' 외의 동사를 쓰지 마라. 대화의 대사는 인물의 것이다. 동사는 작가가 참견하는 것이고. 하지만 '말했다'는 '투덜거렸다', '헐떡였다', '주의했다', '거짓말했다' 만큼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메리 맥카시가 대화를 '맹세코 단언했다(asseverated)'로 끝맺었는데, 책 읽기를 멈추고 사전을 찾으러 가야 했다.  '말했다'는 동사를 바꾸려고 부사를 사용하지 마라... 고 그가 엄중히 훈계했다(admonished gravely). 부사를 이렇게 쓰는 건 (혹은 사용하는 것 자체는) 대죄다. 작가가 이제는 대놓고 자기를 드러내면서 혼란을 주고 교환의 리듬을 방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다. 내 책의 한 인물은 그녀가 '강간과 부사로 가득찬' 역사 로맨스를 썼노라고 말한다.  느낌표를 억눌러라. 10만 단어 당 느낌표를 2~3개 이상 사용하면 안된다. 톰 울프처럼 느낌표를 갖고 노는 솜씨가 있다면은 한 줌씩 팍팍 던져넣어라. 절대 '갑자기'라던가 '난리통이 벌어졌다(all hell broke loose)'는 말을 쓰지 마라. 이 법칙은 설명도 필요 없다. 나는 '갑자기'라는 단어를 쓰는 작가들은 느낌표의 사용을 조심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  사투리나 은어는 아껴가며 써라. 대화를 음성학적으로 쓰기 시작하고 아포스트로피로 책장을 채우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을 거다. 애니 프루가 단편집 에서 와이오밍 목소리의 맛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눈여겨 보라. 스테인백이 말한 것처럼 인물에 대한 세부 묘사는 피해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에 나오는 '미국인과 그를 따르는 소녀'는 어떻게 생겼나? 이야기에 나오는 신체적 묘사는 '그녀는 모자를 벗어 탁자에 얹어놓았다' 뿐이다.   언어로 장면을 칠할 수 있는 마가렛 에트우드가 아니고서야 세세히 장소나 물건을 묘사하지 마라. 액션과 이야기의 흐름을 멈추는 묘사는 필요 없다.  독자가 슥슥 넘기는 부분은 넘어가라. 당신이 소설을 읽으며 넘겨버리는 부분을 생각해보라: 너무나 단어가 많다는 게 보이는 산문의 두꺼운 단락.  10가지 법칙을 요약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법칙은: 쓴 글처럼 들린다면 다시 쓴다.        다이애나 애실 소리내서 읽어보라. 문장의 리듬이 괜찮은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산문의 리듬은 생각만 해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정교하다 - 귀로 들어봐야만 제대로 알 수 있다) 잘라라 (잘라라고 써야 할지도): 불필요한 단어를 단 하나도 남겨놓지 않아야만이 필요한 단어 하나 하나가 귀중해진다.  당신의 사랑스런 애들 - 종이에 나타났을 때 특히 뿌듯하게 여겨졌던 구문이나 이미지를 꼭 죽여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눈을 아주 동그랗게 뜨고 다시 읽어보도록 하라. 거의 백발백중으로 죽는 편이 낫다는 게 드러난다. (만족감이란 만족감이 다 용의자는 아니다만 - 우쭐해져서 히죽거리게 만들 정도인 애들은 조심해야 한다)     마가렛 에트우드 비행기에서 글을 쓸 때는 연필로 써라. 펜은 잉크가 샌다. 하지만 기내에 칼을 들이면 안되므로 연필이 부러진다면 깎을 수가 없다. 그러니: 연필을 두 개 가져가라.  연필이 두 개 다 부러진다면 철이나 유리로 만들어진 손톱 줄로 그럭저럭 깎을 수 있다.  글을 쓸 것을 가져가라. 종이가 좋다. 긴급상황이라면 나무 판대기나 팔이라도 괜찮다.  컴퓨터를 쓴다면 메모리 스틱으로 늘 새로운 글을 엄호하라.  허리 운동을 해라. 고통은 마음을 산란케 한다.  독자의 주의를 사로잡아라. (당신 자신의 주의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이렇게 하기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독자가 누구인지를 모르니 어둠 속에서 돌팔매로 물고기를 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A가 매료되는 것에 B는 지겨워 죽는다.  동의어 사전과 기본 문법책, 그리고 현실 감각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말의 의미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일이다. 또한 도박이다. 연금 같은 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좀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당신은 혼자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게 아니다: 당신의 선택이니 징징대지 마라. 새 책의 맛있는 첫 장을 읽을 때의 순수한 기대감을 가지고서 자신의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다. 당신이 썼으니까. 당신은 무대 뒤에 가봤다. 토끼를 어떻게 몰래 모자에 집어넣는지를 봤다. 그러니 책을 출판 관계자에게 보여주기 전에 한 두 명의 친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해라. 헤어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애인에게 부탁하지 말 것.  숲속 한가운데 앉아있지 마라. 이야기의 길을 잃었거나 막힌다면, 잘못된 곳으로 되돌아가도록 해라. 그리고 다른 길로 가라. 그리고/또는 사람을 바꿔라. 시제를 바꿔라. 첫 장을 바꿔라.  기도가 효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것을 읽어보던가. 또는 완성되어 출판된 당신의 찬란한 책을 성배마냥 계속 상상해봐도 좋다.      로디 도일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사진을 책상에 올려놓지 말고, 혹 자살을 한 유명 작가 중 한 명이라면 특히 피해라.  자신에게 친절해라. 최대한 쪽수를 채워라. 한 행씩 띄어 쓰거나 두 줄에 하나만 채워가라. 채워지는 한 장 한 장을 작은 승리로 삼아라- 50쪽에 다다를 때까지만. 그러면 진정하고, 질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해라. 불안을 느껴라 - 그런 일이다.  최대한 빨리 이름을 지어줘라. 소유하고, 봐라. 디킨스는 을 쓰기도 전에 제목이 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머지는 쉬웠을 것이다. 하루에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몇 개로 제한해라. 자료 수집이 아닌 이상 온라인 마권소는 근처에도 가지 마라. 동의어 사진을 소장하긴 하지만, 정원 맨 끝 창고라던가 냉장고 뒤 등 여행과 노력을 요하는 장소에 두라.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로도 괜찮을 확률이 높다. 예시) '말', '달렸다', '말했다'.  가끔은 유혹에 빠져라. 부엌 바닥을 닦고 빨래를 널어라. 자료 수집이다. 마음을 바꿔라. 좋은 생각은 가끔 더 좋은 생각에 죽는다. 나는 '파티션즈'라 불리는 밴드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밴드 이름을 '커미트먼츠'로 바꿨다.  당신이 아직 쓰지도 않은 책을 amazon.co.uk에서 검색하지 마라. 하루에 몇 분은 표지 이력을 쓰는데 사용해라 - "그는 카불과 티에라 델 푸에고를 오가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후에는 일을 해라.     헬렌 던모어 아직 더 쓰고 싶을 때 하루 집필을 멈춰라.  쓴 것을 들어봐라. 대화의 리듬이 이상하다면 당신이 아직 인물의 목소리를 쓸 정도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키츠의 편지를 읽어라. 다시 읽고, 다시 쓰고, 다시 읽고, 다시 써라.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버려라. 그러면 기분도 좋고, 들어있을 건 다 들어있지만 필요한 생명이 없는 시와 소설의 시체를 잔뜩 쌓아놓지 않아도 된다.  시를 외워라. 작가의 집단적 권리를 보호하는 프로 단체에 가입해라. 오래 산책을 다녀오면 글의 문제가 명확해지곤 한다.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하는 게 글을 망칠 거라 생각한다면 JG 발라드를 떠올려라.  후세를 걱정하지 마라 - 라킨(절대 센티멘털하지 않은)이 관찰했듯이, "우리보다 오래 가는 것은 사랑이다."     제프 다이어  프로젝트의 상업적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대 걱정하지 마라. 그건 에이전트나 편집자가 걱정할 일이다 - 아닐 수도 있고. 미국 편집자와 내 대화. 나: "지금 쓰는 책은 너무 지루하고 상업적 어필도 적어서 출판을 했다가는 당신 직업을 말아먹을지도 몰라요." 편집자: "바로 그래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거에요." 공공장소에서 글을 쓰지 마라. 1990년대에 파리에서 산 적이 있다. 작가스러운 평범한 이유였다: 그 당시 영국 펍에서는 글을 쓰다 잡히면 머리가 깨질 수 있었지만 파리의 카페에서는... 그후로는 공공장소에서 글을 쓰는 걸 기피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배설 활동과 마찬가지로 혼자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보코프를 아첨하는데 일생을 바치는 벌을 받는 그런 작가가 되지 마라.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자동 교정 세팅을 끊임없이 세부화하고 발전시켜라. 내가 내 고물 컴퓨터에 충성하는 유일한 이유는 문학 역사상 최고인 자동 교정 파일을 만드는데 너무나 많은 고안력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키보드를 몇 번만 두드리면 철자가 완벽한 완성된 단어가 나타나는 거다: 'Niet'는 '니체(Nietzsche)'가 되고, 'phoy'는 '사진(photography)'가 되는 거다. 천재! 일기를 써라. 내 작가 인생에 가장 큰 후회는 일지나 일기를 쓴 적이 없다는 거다.  후회를 해라. 이건 연료가 된다. 종이 위에서 후회는 욕망으로 불타오른다. 늘 한 가지 이상의 아이디어를 보유해라. 책을 쓰는 것과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중 골라야 한다면 나는 언제나 후자를 택한다. 쓸 이야기가 두 개 있어야 만이 둘 중 하나를 고를 것이다. 언제나 무언가로부터는 땡땡이를 치고 있다는 기분을 느껴아 하니까.  클리셰를 조심해라. 마틴 아미스가 싸우는 클리셰 만이 아니라. 표현의 클리셰 외에 반응의 클리셰도 존재한다. 관찰과 생각의 클리셰도 - 개념의 클리셰도 있다. 무수한 소설이, 썩 잘 씌여진 소설이라 할지라도 기대의 클리셰에 부응하는 형태의 클리셰이다.  매일 써라. 당신이 관찰한 것을 글로 쓰는 습관을 들이다보면 이것은 본능이 될 것이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법칙이고, 당연히 내가 따르지 않는 법칙이다. 브레이크를 건 채로 자전거를 타지 마라. 뭔가가 너무 어렵다면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해라. 인내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해봐라. 하지만 글쓰기는 결국 인내다. 끈질기게 해야만 한다. 나는 30대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헬스에 다녔다. 헬스에 다닌 목적은 내가 헬스에 다니는 걸 멈추는 날을 지연하기 위함이었다. 내게 글쓰기란 그와 같다: 내가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 날, 너무나 심원하여 온전한 환희와 구분할 수 없는 우울증에 내가 잠겨드는 날을 지연하는 방법.      앤 엔라이트 첫 12년이 가장 끔찍하다.  책을 쓰는 방법은 실제로 책을 쓰는 것이다. 펜은 유용하며 타이핑도 좋다. 계속 단어를 종이에 써라. 자기 작품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건 형편없는 작가 뿐이다. 묘사는 어렵다. 묘사는 모두 세상에 대한 의견 임을 기억해라. 당신이 설 자리를 찾아라. 좋아하는 방법대로 써라. 소설은 종이에 적힌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은 그와 다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짜'같은지, 또는 '만들어낸 것' 같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필요성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라. 당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불치병이 있다면 이 책을 끝내겠는가? 아니라면 어째서? 이런 '앞으로 10주 남음'을 짜증나게 하는 요소가 바로 책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니 바꿔라. 자신하고 말다툼하지 마라. 바꿔라. 어때? 쉽지. 사상자도 없고. 저런 건 다 위스키로 해결할 수도 있다. 즐겨라.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15~20년 동안 책상에 앉아있다 보면 당신이 변할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정말 그런다. 성격이 좋아지는데 도움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고쳐진다. 당신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든다.     리처드 포드 당신이 작가인 게 좋은 생각이라 생각하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라. 애는 낳지 마라. 당신 책의 서평은 읽지 마라. 서평은 쓰지 마라. (당신의 판단력은 언제나 썩었을 게다.) 아침이나 늦은 밤에 아내와 싸우지 마라.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쓰지 마라. 편집장에게 편지를 쓰지 마라. (아무도 신경도 안 쓴다.) 동료들을 저주하지 마라. 다른 이의 행운을 당신이 받는 격려로 여겨라.  가능하다면 굴욕은 참지 마라.     조나단 프랜즌 독자는 적도, 구경꾼도 아닌 친구다. 작가에게 두렵거나 낯선 개인적 모험이 아닌 소설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쓸 필요가 없다. 절대 'then'을 접속사로 쓰지 마라 - 그 일은 'and'가 해준다. 책에 'and'가 너무 많다고 'then'을 쓰는 건 게으르거나 음치인 작가의 비해결책이다.  거부할 수 없는 개성을 가진 1인칭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는 한 3인칭으로 써라. 정보가 공짜가 되어 누구든 얻을 수 있게 되자 소설 집필을 위한 방대한 조사의 가치도 그와 함께 떨어졌다.  가장 순전한 자전적 소설은 순전한 발명을 요한다. 보다 더 자전적인 소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쫓아갈 때보다 가만히 앉아있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일터에 인터넷이 연결된 사람이 좋은 소설을 쓸 가능성은 별로 없다. 흥미로운 동사는 아주 가끔 썩 흥미롭다.  냉혹하려면 사랑해야 한다.      에스더 프로이드 은유와 직유는 잘라버려라. 첫 책에서 나는 하나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11장의 노을에서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부분을 읽을 때면 얼굴이 빨개진다. 이야기에는 리듬이 필요하다. 소리내서 읽어보도록 해라. 마술이 술술 풀려나오지 않는다면 뭔가 부족한 것이다. 편집이 전부다. 더이상 자를 수 없을 때까지 잘라라. 남겨진 것이 생기를 띄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글을 가장 잘 쓰는 시간을 찾아 글을 써라. 아무 것도 방해하게 하지 마라. 그후에는 부엌이 지저분하대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영감을 기다리지 마라. 훈련이 열쇠다. 독자를 믿어라. 모든 걸 다 설명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정말로 잘 안다면, 그리고 숨을 불어넣어준다면, 그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법칙도 깨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      닐 게이먼 써라. 한 단어 다음에 또 한 단어 써라. 알맞은 단어를 찾아 써라. 쓰는 걸 완성해라. 완성하기 위해 뭘 해야 하건 간에, 완성해라. 옆에 제쳐둬라.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인 척하며 읽어봐라. 의견을 신뢰할 만한, 이런 걸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줘라. 기억해라: 사람들이 뭐가 잘못되었거나 별로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거의 언제나 맞다. 그들이 정확하게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치라고 말해준다면, 그들은 거의 언제나 틀렸다. 고쳐라. 늦든 빠르든 글이 완벽에 도달하기 전에 손을 놓고 다음 글을 써야 할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완벽은 지평선을 쫓는 것과 같다. 계속 움직여라. 당신이 쓴 농담에 웃어라. 글쓰기의 중요 법칙은, 만약 당신이 상당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쓰면 뭐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물론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일지 모른다. 어쨌든 글쓰기에는 확실히 적용된다.) 그러니 당신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대로 써라. 솔직하게 쓰고,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라. 그외에 다른 법칙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정말중요한 법칙은.     데이비드 헤어 할말이 있을 때만 글을 써라. 결과에 투자한 게 없는 사람의 조언은 듣지 마라. 스타일은 당신이 방해가 되지 않게 치워주는 기술이지, 당신을 글에 넣는 기술이 아니다. 아무도 당신의 연극을 공연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해라. 농담은 화가의 손발과 같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우선은 익혀놓아야 하는 것이다. 극장은 우선 젊은이의 것이다. 극작가로 꾸준함을 달성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학 페스티벌인 척 하는 TV 인물 페스티벌에 가지 마라. 오해받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이해받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영어라는 언어에서 가장 우울한 두 단어는 "문학 소설(literary fiction)"이다.     PD 제임스  어휘력을 길러라. 단어는 우리 공예의 원자재다. 어휘력이 좋을수록 글의 영향력도 커진다. 영어로 글을 쓰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풍부하고 다능한 언어를 쓰는 축복을 누린다. 이 점을 존중하자.  판별력을 가지고 폭넓게 읽어라. 질 낮은 글은 전염성이 있다. 글쓸 계획만 하지 말고 - 써라. 자신의 스타일은 글쓰는 꿈을 통해서가 아니라 글쓰는 걸 통해 개발된다. 현재 인기가 있는 것이나 팔릴 거라고 생각하는 걸 쓰는 게 아니라 당신이 써야 하는 것을 써라.  새로운 경험, 특히 타인을 관찰하는 것에 마음을 열어라. 얼마나 기쁘든, 얼마나 끔찍하든, 작가에게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낭비되지 않는다.     AL 케네디  겸손해라. 연상인/경험이 더 많은/더 설득력 있는 작가들이 법칙과 다양한 조언을 제공할지 모른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두뇌를 조종하게 두거나, 다른 무엇을 조종하게 두지 마라 - 그들은 한이 많거나 뒤틀렸거나 소진되었거나 사람을 조종하는 걸 좋아하거나 그냥 당신과 아주 많이 다를 수 있다.  더욱 겸손해라. 당신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성공적이든 아니든, 당신이 계속 스스로를 뛰어넘으며 발전한다면 당신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 그리고 타인 몇 명을 기쁘게 할지도 모른다. 타인을 지켜라. 물론 가족과 친구에게서 이야기와 특징을 훔치고 사랑을 나눈 후 메모를 하고 해도 된다. 하지만 모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며 그들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식으로 글을 써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 자체를 찬미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당신의 일을 지켜라. 단체와 협회와 개인은 종종 그들이 당신보다 당신의 일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 그들이 당신에게 돈을 준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의 결정이 정말로 당신의 일을 망칠 거라고 믿는다면 - 떠나라. 도망쳐라.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당신 자신을 지켜라.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의욕이 넘치게 하고 창조적이게 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라. 써라. 자해적 슬픔과 변화한 상태와 검은 스웨터와 공공연히 불쾌하게 구는 것을 다 합쳐도 작가가 될 수는 없다. 작가는 글을 쓴다. 자아, 어서. 읽어라. 최대한 많이 읽어라. 최대한 깊고 넓고 영양가 있고 짜증날 정도로 읽어라. 좋은 것은 당신의 뇌리에 남을테니 메모할 필요는 없다. 두려움을 없애라. 이건 불가능하지만, 작은 두려움은 글을 고치는 원동력이 되게 하고 큰 두려움은 말을 들을 때까지 옆에 제껴둬라 - 그랬다가 써라. 아니면 그것에 대해 써라. 두려움이 너무 크면 침묵 만이 남는다. 글쓰기를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라. 그렇지 않다면 할 필요가 없다. 사랑이 희미해진다면 해야 할 행동을 취해 그걸 되찾아라. 글쓰기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라. 글쓰기는 당신에게 신경도 안 쓴다. 그렇지만 놀라운 자비심을 보여줄 때도 있다. 글쓰기를 칭찬하고, 다른 이를 격려하고, 이를 물려주라.      힐러리 맨텔 정말로 심각하게 할 생각인가? 그럼 회계사를 고용해라. 도로시아 브랜드가 쓴 을 읽어라. 거기 나오는 대로 하고, 불가능하다 생각되는 것까지 다 해라. 특히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글을 쓰라는 조언을 싫어할 게다. 하지만 가능하기만 하다면 당신이 자신을 위해 하는 가장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내면으로부터 작가가 되는 것에 대한 책이다. 후에 나온 조언 서적은 이를 기초로 한다. 다른 책은 별 필요가 없지만 자신감을 쌓고 싶다면 '~하는 법'을 읽어도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작은 습작 과제로 책 한 권의 시동을 걸 수도 있다. 당신이 읽고 싶을 책을 써라. 당신도 안 읽을 책을 왜 남이 읽겠는가? 파악한 관객이나 시장을 위해 쓰지 마라. 책이 완성되었을 때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좋은 이야기감이 꼭 산문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연극이나 시나리오나 시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융통성을 가져라. '제 1장' 전에 나오는 것은 읽히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숙지해라. 중요한 실마리를 거기 넣지 마라. 첫 문단을 잘라버려도 되는 경우가 많다. 하카(뉴질랜드 럭비팀이 시합 전 추는 출전의 춤)를 추는 건가, 아니면 그냥 발을 질질 끄는 건가? 변화의 시점에 이야기적 힘을 집중해라. 역사 소설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당신의 인물이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거나, 그들 주변의 것이 바뀐다면, 한 발작 물러나 그들이 있는 세상의 세부 사항을 채워넣어라. 사람들은 일상적 풍경과 매일의 생활을 주시하지 않기 때문에 작가가 이런 것을 묘사할 때면 독자에게 지시를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들리곤 한다.  묘사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냥 장식품이 되서는 안된다. 묘사는 인간적 요소가 있을 때 가장 좋다. 신의 눈이기보다는 암시된 시점이 있을 때 더 효과적이다. 묘사가 관찰하는 인물의 시점으로 덧칠된다면, 이것은 사실상 인물의 정의이자 행동의 일부가 된다. 글이 막힌다면 책상에서 떠나라. 산책을 가고 목욕을 하고 잠을 자고 파이를 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해라. 뭘 하든 그냥 앉아서 문제에다 얼굴을 구기고 있지만 마라. 하지만 전화를 하거나 파티에 가지는 마라. 그랬다간 당신이 잃어버린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사람들의 말이 흘러들 것이다. 말을 위해 틈을 마련하고 빈 자리를 만들어두라. 인내심을 가져라. 무엇에든 대비해라. 새로운 이야기는 모두 서로 다른 것을 요구하며, 이것과 다른 법칙을 모조리 다 깨부술 이유를 쏟아낼지도 모른다. 1번만 빼고: 소득세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는 문학에 영혼을 팔 수가 없다.     마이클 무어콕 내 첫 법칙은 을 비롯해 다른 아더왕 판타지를 쓴 작가 TH 화이트가 준 것이다: 읽어라.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은 모조리 읽어라. 나는 판타지나 SF나 로맨스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장르의 소설을 읽기를 멈추고 번연에서 바이엇까지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대가의 그림을 습작하며 그리고 칠하는 법을 배우듯 당신이 우러러보는 작가를 찾아 (내게는 그게 콘래드였다) 그들의 줄거리와 인물을 베껴서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라. 소설의 첫 1/3에 주요 인물과 주제를 소개해라. 사건 중심인 장르의 소설을 쓴다면 꼭 도입이라 할 수 있는 첫 1/3에 주요 주제와 줄거리 요소를 제시해라. 두 번째 1/3, 전개에 주제와 인물을 발전시켜라. 마지막 1/3, 결말에 주제와 수수께끼 등을 다 풀어내라. 좋은 멜로드라마를 위해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유명한 '레스터 덴트의 원조 줄거리 공식'을 공부해라. 펄프 픽션용 단편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글이지만 길이와 장르에 상관 없이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인물이 해설을 하거나 사색을 할 때 뭔가가 일어나고 있게 해라. 극적 긴장이 유지되게 해준다.  당근과 채찍 - 주인공이 (무언가에 대한 집념이나 악당에게) 쫓기게 하고 또한 (아이디어나 물건이나 사람이나 수수께끼를) 쫓게 하라. 제시된 법칙을 다 무시하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적합한 당신의 법칙을 만들어라.     마이클 모퍼고 내게 불가결한 사항은 아이디어의 샘을 꽉 채워놓는 것이다. 이는 최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삶을 살며 언제나 안테나를 세워놓는 것을 의미한다.  테드 휴즈가 준 아주 훌륭한 조언이다: 순간과 스쳐지나가는 인상과 엿들은 대화와 당신 자신의 슬픔과 당황과 기쁨을 기록해라. 내게 이야기는 역사적이거나 내 기억 속에 있는 실제 사건이 합류하여 만들어진 약동하는 혼합물로 시작된다. 회태 기간이 중요하다.  이야기의 골격이 준비되면 나는 그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주로 아내인 클레어에게 말을 하며 그녀의 생각을 타진해본다.  앉아서 백지를 마주할 때쯤 되면 쓰고 싶어 좀이 쑤신다. 가장 친한 친구나 손주에게 이야기하듯 이야기를 쓴다. 대충 한 장을 쓰고 나면 - 나는 글씨를 아주 작게 써서 종이를 넘겨 다음 백지를 마주하지 않게끔 한다 - 클레어가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프린트를 하고 가끔 평을 달아주기도 한다.  이야기에 깊이 잠겨서 그것을 쓰며 그 안에 살 때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할 수가 없다. 신인 척 하며 독재하지 않고자 애쓴다. 책의 초벌이 완성되면 소리내어 읽어본다. 읽어볼 때 어떤지는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사소한 편집이라도 - 사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 아주 운이 좋다 - 나는 우선 부루퉁해졌다가 진정하고 재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책이 내 손에 들어온다.      앤드류 모션 낮(이나 밤)의 언제 글쓰기가 가장 좋은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인생을 정비해라. 뇌는 물론이고 오감으로 생각해라. 평범함의 기적적인 면을 예우해라. 다른 인물/요소를 방에 가둬놓고 일을 진척시키라고 말해라. 말도 안되는 것 따위는 없다는 걸 기억해라. 와일드의 '범인 만이 발전한다'는 격언을 염두에 두고 - 그에 도전해라. 작업물을 보낼지 말지 결정하기 전에 우선 묵혀둬라. 크게 생각하며 꼼꼼함을 유지해라. 오늘이 아닌 내일을 위해 써라. 열심히 일해라.      조이스 캐롤 오츠 '이상적 독자'를 예측하려 하지 마라 -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다른 사람 책을 읽고 있다. '이상적 독자'를 예측하려 하지 마라 - 근미래의 당신 자신만 빼고. 자신의 편집자/비평가가 되어라. 공감적이면서도 무자비해라! 아주 아방가르드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면 - 죄 비비 꼬이고 얽히고 '모호'한 - 문단 나눔의 가능성에 기민해라. 아주 포스트모던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면 - 자의식 과잉에 자기 반영에 '도발적인' - 다음절의 '큰' 단어 대신 평범하고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가능성에 기민해라. 오스카 와일드를 염두에 두라: "약간의 신실함은 위험하며, 엄청난 양의 신실함은 실로 치명적이다." 가볍고 희망적인 마음을 유지해라. 하지만 최악을 기대해라.     애니 프루 천천히 진행하며 조심해라. 천천히 진행하게끔 하기 위해 손으로 써라. 천천히 손으로 쓰고 당신이 흥미있어 하는 화제에 대해서만 써라. 수년 간 폭넓게 읽음으로 장인의 기술을 길러라.  가장 적절한 구/문장/문단/쪽/이야기/장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 다시 쓰고 편집해라.     필립 풀먼 내 주요 법칙은 진짜 일에서 날 유혹해내는 이런 일을 사양하는 것이다.   이언 랜킨 많이 읽어라. 많이 써라. 자기 비평을 배워라. 받아들여야 하는 비평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라.  인내심을 가져라. 할 만한 이야기를 가져라. 포기하지 마라. 시장을 알아라. 행운아가 되라.   행운이 계속 이어지게 해라.      윌 셀프 초벌을 다 쓸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어제 쓴 마지막 문장으로부터 매일 일을 시작해라. 오그라드는 기분을 예방해주고, 진정한 작업이라 할 수 있는 2번을 시작하기 전에 작업 분량이 넉넉히 쌓이게 해준다. 편집. 늘 공책을 지참해라. 정말로 늘이라는 말이다. 단기 기억은 정보를 3분 동안 밖에 저장하지 못한다. 종이에 적지 않았다간 아이디어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소설 읽기를 그만 둬라 - 어차피 다 거짓말이고, 당신이 아직 모르는 걸 말해주지도 못한다. (이것은 당신이 과거에 엄청난 양의 소설을 읽었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소설가가 될 자격이 없다.) 자줏빛으로 물들인 자신의 장미를 내려다볼 때 느낄 수 있는 부족함과 노출 과다로 구역질이 나는 기분을 아는가? 당신이 아무리 성공하고 공공의 찬사를 받는다 해도 이 끔찍한 기분이 절대로,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속에 긴장을 풀어라. 글쓰는 일에 본질적인 부분이며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삶을 살고 삶에 대해 써라. 많은 책의 저작에 대해 쓰려면 실로 끝이 없지만 책에 대한 책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TV를 보는데 소모하는 시간을 기억해라. 만약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다면 TV 시청 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긴 문단이 있어야 한다: "나중에 조지는 홉놉스(비스킷)를 먹으며 '그랜드 디자인스'를 보았다. 그보다 더 나중에 그는 쇼핑 채널을 좀 보았다..." 글쓰는 삶은 궁극적으로 독방에 갇혀 사는 삶이다 - 이걸 못한다면 지원하지 마라. 아, 가끔 상상의 가학적 경비들한테 얻어맞는다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스스로를 직원 한 명의 작은 회사로 여겨라. 자신을 팀의 결속력을 높이는 활동(긴 산책)에 데려가라. 매일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 글쓰는 방 구석에 서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백포도주를 한 병 마셔라. 그리고 책상 아래에서 자위를 해라. 다음날이면 아주 깊고 응집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헬렌 심슨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법칙다운 말은 포스트잇에 적힌 채 책상 앞에 붙어있는 "Faire et se taire"(플로베르) 인데, 나는 저걸 "닥치고 일이나 해"로 해석해 적용하고 있다.      제이디 스미스 아직 아이일 때 책을 아주 많이 읽도록 해라. 다른 무엇보다 여기에 시간을 많이 들여라. 어른이 되어서는 자신의 책을 타인이 읽듯 읽어보려고 해라. 적인양 읽어보면 더 낫다.  당신의 '천직을 미화하지 마라. 좋은 문장을 쓰거나 못 쓰거나 둘 중 하나다. '작가의 라이프스타일' 같은 건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종이에 남기는 것 뿐이다.  당신의 약점을 피해라. 하지만 당신이 못하는 일이 할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며 피하지 마라. 자신을 의심하는 것에 경멸의 가면을 씌우지 마라.  글을 쓰고 편집하기 전에 적절한 짬을 둬라. 도당, 갱, 그룹을 피해라. 사람이 많다고 해서 당신의 글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컴퓨터에서 작업해라. 당신이 글을 쓰는 시간과 공간을 사수하라. 다른 이는 다 거기서 쫓아내고,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들마저 쫓아내라. 성취와 영예를 착각하지 마라.   손에 들어오는 베일 너머로 진실을 말해라 - 하지만 말해라. 영영 만족하지 못함으로 인한 평생의 슬픔을 감수해라.     콜름 토이빈 시작한 것은 다 끝내라. 어서 일을 해라. 하루 종일 정신적 잠옷을 입은 채 지내라.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는 건 그만 둬라. 일하는 동안은 술도 섹스도 마약도 안된다. 아침에 일을 하고, 점심에 잠깐 쉬고, 오후에 일을 하고, 6시 뉴스를 보고 잠자기 전까지 일해라. 잠자기 전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어라. 기왕이면 노래가 좋겠다.  읽어야 한다면 미쳐버린 작가의 전기를 읽음으로 자신을 기쁘게 해라.  토요일에는 옛 버그먼 영화를 봐도 좋다. 나 나. 런던은 못 간다.  그외 아무 데도 못 간다.      로즈 트레맨 '아는 것에 대해 쓰라'는 지루한 옛 격언은 잊어버려라. 대신 당신이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아직 모르지만 알 수 있는 경험을 찾아내고 그에 대해 써라. 그렇지만 당신 인생의 세부 사항에 당신의 상상적 작업을 먹일 종자 옥수수가 있음을 기억해라. 그러니 자서전에 그걸 다 던져버리진 마라. (작가의 회고록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절대 초벌에 만족하지 마라. 아니, 당신의 글에 절대 만족하지 마라. 당신의 제한된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 이상. 당신이 신뢰하는 '첫 독자'의 비평과 선호를 들어라. 착상이 떠오르면 데리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라. 키츠의 소극적 수용론 이론과 키플링의 "흘러가고, 기다렸다 순종하라"는 조언을 기억하라. 확실한 자료를 모으는 것과 더불어 당신의 착상이 탄생하도록 꿈꾸는 것을 허락해라. 책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결말을 계획하지 마라. 그 전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벌어야만 하는 것이다.  50쪽 정도의 생명을 가진 후 인물이 변화하는 걸 인정해줘라. 이 단계에서 계획을 재방문하고 이러한 변화를 포용하기 위해 바꿔야 할 게 뭐가 있는지 확인하라. 역사 소설을 쓰고 있다면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을 사용하지 마라. 독자가 전기적 불편을 느끼고 역사책으로 돌아가게 할 뿐이다. 실존 인물에 대해 꼭 써야 한다면 포스트모던한 방법으로 재미있게 다루도록 해라. 영화에서 배워라. 묘사는 아껴가며 써라. 생명력 없는 세부 사항과 효과적 세부 사항을 분별해라. 사람들이 정말로 말할 법한 대화를 써라. 책을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쓰기 시작하면 절대 안된다. 조금만 더 참았다 시작해라.     세라 워터즈  미친 듯이 읽어라. 하지만 분석적으로 하고자 노력해라 - 이건 상당히 힘들다. 잘 쓰고 흡입력이 있는 소설일수록 장치를 의식하기가 어려우니까. 하지만 이런 장치를 밝히려고 시도하는 건 할 만한 일이다: 당신의 일에 유용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근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거의 다 너무나 길고 사족이 많다. 극단적 가위질 몇 개로 얼마나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스토리텔링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좋은 실습이다. 이는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미친 듯이 잘라라. 적을수록 많다. 내가 읽은 원고 중에는 - 내 원고를 포함해서 - 아마, 제 2장 즘에 가서야: "여기서 소설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한 것이 참 많았다. 작은 세부 사항을 통해 인물과 배경에 대한 상당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면 당신이 어느 장면이나 장에 대해 느낀 감정적 애착도 희미해질 것이다. 사무적이 되라. 솔직히 말해... 글쓰기를 일로 여겨라. 자신을 훈련해라. 많은 작가들이 이에 대해 강박장애 비슷한 것을 보인다. 그래험 그린이 매일 5백 단어를 썼다는 건 유명하다. 진 플레이디는 점심 전에 5천 단어를 쓰고 오후는 팬레터에 답장을 쓰며 보냈다. 나는 매일 최소 천 단어를 쓴다 - 쉬울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솔직히 말해 벽돌을 싸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걸 해낼 때까지 책상에 앉아있고야 만다. 이렇게 함으로 책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천 단어는 쓰레기일 수도 있다 - 그럴 때도 많다. 하지만 후에 쓰레기로 돌아가 그걸 좀 더 낫게 만드는 게 훨씬 쉽다.  소설을 쓰는 건 '자기 표현'도 '테라피'도 아니다. 소설은 독자를 위한 것이며 소설을 쓰는 것은 교묘하고 끈기있고 사심없이 효과를 건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 소설을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처럼 생각한다: 내 직업은 1장에서 독자를 차에 태우고 안전띠를 둘러준 다음이 그들이 조심스레 계획한 길을 따라 훌륭히 조작한 속도에 맞춰 장면과 반전을 뱅글 돌고 휙 지나가게끔 해주는 것이다.  가장 비중 없는 등장 인물까지도 존경해라.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 사람은 모두 자신 고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이야기와 맞닿는 부분이 아주 적다 해도 조연의 이야기가 뭔지 생각해볼 가치는 있다. 그와 동시에... 이야기를 사람으로 꽉 채우진 마라. 인물은 개인적으로 다뤄져야 하지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 그림의 인물처럼. 고통받는 예수가 위협적 남자 네 명에게 둘러싸인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를 떠올려라. 개성이 넘치는 각 인물은 그와 동시에 한 유형을 대표한다. 한데 모여 그들은 너무나 단단히, 그리고 경제적으로 구성되어 더욱 힘이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비슷한 주제인데... 너무 많이 쓰지 마라. 장황한 구절, 혼잡한 형용사, 불필요한 부사는 피해라. 특히 초보자들은 소설을 쓸 때 일상 생활에서 직면하는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특별히 화려한 산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소설의 효과가 산출되는 방법에 대한 착각이고, 법칙 1을 지킴으로 걷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콜름 토이빈이나 코맥 맥카시의 글을 읽으면 일부러 제한한 어휘가 놀라운 감정적 위력을 발휘하는 지를 발견할 수 있다.  속도는 중요하다. 잘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글쓰는 학생들은 한 장의 잘 쓰여진 산문을 생산하는데 탁월하다. 그들에게 종종 부족한 것은 독자를 지형과 속도와 분위기가 변하는 긴 여행에 데려가는 능력이다. 여기서도 영화가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소설은 썩 영화답게 가까이 다가갔다 머물고 뒤로 물러섰다가 지나가기를 원한다.  공황에 빠지지 마라. 나는 소설을 반쯤 써놓고 나서 내 눈 앞 스크린에 보이는 헛소리를 직면하고 그 너머 빠르게 교차하는 비꼬는 서평과 친구들의 부끄러움과 추락하는 직업과 줄어드는 수입과 회수된 집과 이혼과... 하는 것을 보며 장이 굳을 정도의 공포를 맛보기를 정기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도 끈덕지게 일을 해나가면 결국에는 끝이 났다. 잠깐 책상에서 물러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글이 막히기 전에 내가 뭘 해내려 했는지를 상기하게 해준다. 멀리 산책을 가는 것은 거의 언제나 내 원고를 조금 다르게 보게끔 도와준다. 그리고 만약 모든 게 다 실패한다면, 기도하면 된다. 작가들의 수호성인 성 프랜시스 데 세일즈는 날 종종 위기에서 구해준다. 그물을 더 넓게 던지고 싶다면 서사시의 뮤즈인 칼리오페에게 호소해보도록. 재능이 모든 것을 이긴다. 당신이 정말로 대단한 작가라면 이런 법칙은 다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 제임스 볼드윈이 속도를 좀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의 확장된 서정적 강도를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많이 쓴' 산문이 없었다면 우리는 디킨스나 안젤라 카터의 언어적 풍부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모두가 인물을 경제적으로 다룬다면 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법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이 왜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한 후에야 법칙을 어기는 실험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저넷 윈터슨  매일 일하러 가라. 훈련이 창조적 자유를 허락한다. 훈련 없이는 자유도 없다. 글이 막혀도 멈추지 마라. 문제를 풀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비켜가서 다른 걸 쓰도록 해라. 완전히 멈추지 마라. 하는 일을 사랑해라. 자신에게 솔직해져라. 실력이 없다면 받아들여라. 쓴 글이 별로라면 받아들여라. 질낮은 일에 매달리지 마라. 서랍에 넣었을 때 별로였다면 나와서도 별로일 것이다. 당신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의 말은 듣지 마라. 성별을 문제삼는 사람은 신경쓰지 마라. 아직도 여자에게는 불타는 상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  상이 아니라 일을 위해 야망을 품어라. 자신의 창조성을 믿어라. 이 일을 즐겨라!    ///가디언 지 웹사이트  @@...개인 블로그에 신문 기사거나 기타 내용물을 링크하거나 인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227    당신의 도시는 시속에 있어요... 친구의 시인이여!... 댓글:  조회:3367  추천:0  2017-02-13
  열린 시와 닫힌 시                           /윤기한 요즈음 ‘열린’이라는 낱말을 자주 만난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온갖 분야에 이 말이 등장한다. 웬만한 행사에 오르내리는 이 ‘열린’의 형용사는 ‘열린 정치’니 ‘열린 사회’니 ‘열린 뉴스’니 하면서 그 의미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 바람에 KBS의 ‘열린 음악회’라는 방송프로그램이 인기종목으로 정착했다. 이 말의 위력을 실감한다. 바로 이 ‘열린’의 범주가 20세기 중반에 미국 시인들의 작품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969년에 ‘봅스-메릴’이라는 출판사가 펴낸 『벌거숭이 시 Naked Poetry: Recent American Poetry in Open Forms』라는 앤솔로지에 케네스 렉스로스(Kenneth Rexroth)를 비롯한 18명의 미국시인들 작품이 실렸다. 그것이 곧 ‘열린 시’의 사화집이다. 여기에 수록된 시인들은 ‘새내기 시인들The New Poets’로 불렸다. 시선집의 편집자들이 서문에서 “로렌스가 절필하고 죽은 후 영국시단에서는 테드 휴(Ted Hughes)를 빼놓고 달리 새로운 게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새내기 미국시인들이 휴를 계승했다. 즉 그들이 새로운 시 형식을 추구하고 실천한 ‘1917년 시인그룹’이었다. 그들의 시는 한 마디로 운율이나 각운에 얽매이지 않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휴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나타난 영국의 젊은 시인 중 ‘1960년대 영국시의 목소리’라고 격찬될 만큼 필립 라킨(Philip Larkin)과 쌍벽을 이루는 신예 거장시인이었다. 그는 미국의 여류시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와 결혼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영국문학을 존중하면서도 로렌스(D. H. Lawrence)와 상통하는 관능적 체험을 평이한 영어의 어법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선배 시인들과 달리 독자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다. 그의   시「돼지를 바라보며」가 그만큼 쉽게 읽혔다.   돼지가 누워 있다 손수레 위에 죽은 채로 세 사람만치의 무게가 나간다고들 한다 돼지는 눈을 감고 있다 희붉은 속눈썹에 다리를 마냥 쭉 뻗치고서 ㆍ ㆍ ㆍ ㆍ ㆍ 이제 가엾이 여기기에는 완전히 죽어 있구나 그 지나온 일생, 꿀꿀대던 소리, 집요했던 이승의 쾌락을 회상하는 것은 단지 헛된 노력 요령부득처럼 생각되누나                                                 -제1, 5연     이런 점에서 미국의 시인들은 휴의 난해하지 않은 시를 선의로 환영하고 수용했다. 그들은 20세기 중반의 시인들이 선호한 신화 원형적 제재사용을 탈피하고자 했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적인 분야까지 관심을 가졌던 이전의 시인들과 달리 자기 고백시를 시도했다. 앨런 긴스버그(Allen Ginsberg), 실비아 플라스, 시어도어 로테크(Theodore Rothke) 같은 시인들이 이에 속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인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의 시를 보기로 한다.     어둠이 어둠을 불러대고, 치욕이 이 잘 마련된 보스턴의 바벨탑 우리의 창문을 밀치고 다니는데 여기에 우리의 돈이 큰 소리 치면서 동정녀 마리아가 거니는 예비의 땅에 어둠을 크게 늘리고 있구나. 장미는 마리아의 광택어린 얼굴에 소용돌이 치고 물 뿌리지 않은 길 위에 떨어져 부서지누나. 바빌론의 부인이여, 가시라, 지나가시라, 한때 당신의 눈에 내가 간절했지만 플라탄 나무 위에, 길 위에 파리들이 우글대는구려.                                            -「물가의 플라탄 나무처럼」제1연       이 새로운 시인들은 새로운 시의 형식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형식은 중요하다. 시의 형식은 시의 내용을 운반하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식이 확대되면 시인의 비전도 확대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휴의 시를 존중하며 새로운 형식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은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수확한 그들의 소득이 곧 ‘열린 시’인 것이다. 이 ‘열린 시’는 무엇보다도 작시과정의 기법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기에 ‘닫힌 시’의 형식적 통제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했다. 형식의 자유를 추구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자유로운 시’로의 전향을 시도한 것이다. 로텍이 말(馬)에서 떨어져 죽은 제자를 위해서 쓴 「제인을 위한 엘레지」가 그 좋은 예이다.   나는 기억한다 덩굴손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목덜미 곱슬털 그리고 그녀의 민감한 얼굴 생김새에 슬며시 띤 곤들매기 미소 그리고 언젠가 얘기하다 깜짝 놀란 만큼 경쾌한 말(言語)이 어떻게 그녀에게 튀어 올랐는지 그리고 그녀가 자기 생각의 환희 속에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행동했는지 ㆍ ㆍ ㆍ ㆍ ㆍ 만일 내가 이렇게 잠들어 있는 그대를 팔꿈치로 슬쩍 건드릴 수 있다면 나의 불구가 된 연인, 나의 수줍어하는 비둘기 이 축축한 묘지 위에 내 사랑의 말을 전하는 도다 이 문제에서는 내가 아무 권리도 없으니 나는 아버지도 애인도 결코 아니어라                                                   -제1, 끝 연     사랑하는 제자의 생전 모습을 그리며 묘지 앞에서 그리움을 억누르고 슬픔을 삭이는 화자의 솔직한 심정을 담담하게 피력하는 내용에는 과도한 지성의 과시나 고매한 지적 유희가 없다. 까다롭지 않고 수수한 일상어로 자기감정을 토로한다. 소탈한 자유시로 독자의 이해와 공감을 편안하게 유도한다. 초사실적인(Supra-realistic) ‘벌거숭이 시’의 요체 그대로 충실한 자기고백을 들려준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이 ‘열린 시’의 원조는 195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페인의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즈(Juan Ramón Jiménez)이다. ‘어린 아이처럼 귀여운 시인, 자연과 연애하며 그 자체를 지극히 사랑한 낭만시인, 하나님과 절대자를 찾는 형이상학 시인이며 인간적 숙명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면서 절망하고 파탄에 이른 모더니스트 시인'이라고 불린 그는 취향이 다양하고 다재다능했다. 그의 ‘열린 시’ 한편을 읽어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내가 볼 수 없지만 내 곁에서 함께 걸으면서 때때로 내가 만나려고 애를 쓰지만 여느 때에는 내가 잊어버리고 지내며   내가 말할 때 조용히 듣고만 있는 사람 내가 미워할 때 상냥한 마음으로 용서하는 사람   내가 집안에 있을 때 산책하러 나가는 사람 내가 죽을 때 내 곁에 서서 남아 있을 사람                                                   -「나는 내가 아니다」전문   히메네즈는 현대시에 ‘관계가 전혀 없는 외래적 사항’을 배제함으로써 보다 자연스러운 자유시인 ‘벌거숭이 시’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듯이 이 시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이원구조를 수정처럼 군더더기 없이 마련해 놓고 있다. 음악에서도 그의 영향은 엄청나다.   조용히 해요 울지 말아요 그대 눈의 눈물을 닦아요 그대는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잖아요 그대 머릿속에 맴도는 건 아주 나쁜 꿈이에요 인생의 게임을 그만두라고 누군가 그대 가까이에서 그대 마음이 고통을 느끼게 속인 것이라오 여기에서도 그래요 다시 한번 눈을 크게 뜨고 그날을 마주 보아요 그대 꿈은 사라지고... 아니면 시작이었던가? ㆍ ㆍ ㆍ ㆍ ㆍ 나는-그를 지켜볼 거야 나는-그대가 그걸 꿰뚫어 보게 해 줄 거야 나는-밤에 그대를 보호할 거야 나는-그대 옆에서 웃을 거야... 조요히 맑은 정신으로                                                     -「조용한 제 정신」제1, 끝 절   미치광이가 제 정신을 차리고도 비록 말없이 있을지언정 사랑의 힘은 삭으러들지 않고 인생을 왕복 여행하듯 다시금 시작하자며 서로를 갈라놓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찾자고 권유한다. 솔직한 욕망의 토로가 아무런 장식이나 변용이 없이 진술되어 있다. 정녕 ‘열린 시’의 솔직성을 인식하게 된다. 한편 아메리칸 인디언의 한 종족인 수우족(Siouxsie)이 믿는 전설적 요정, 가족 중에 죽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통곡소리로 예고해 준다는 ‘레아리즈(가정의 수호신)’라는 뮤직 비디오의 가사 역시 ‘열린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당신은 시간을 벗어나 달려가고 있었다 산 밑에 황금빛 샘 당신은 레아신의 제단에서 기도하고 있었나? 하지만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구려 친구여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구려 친구여   우리는 당신이 숨어 있는 걸 알았어요 당신이 먼지 모래 위에 숨이 차서 누워있는 걸 알았어요 당신의 옛 영광과 모든 이야기가 끌려나와 희망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의 손으로 씻겨졌구려 ㆍ ㆍ ㆍ ㆍ ㆍ 당신의 콧구멍에 뜨겁게 타오르면서 당신의 크게 벌린 입에 퍼부어 내리고 있어요 당신의 녹아버린 육체는 쇠 찌꺼기 이불 심한 고통에 사로잡혀 있으니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어요 나의 친구여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어요 나의 친구여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어요 나의 친구여 오오 오 당신의 도시는 먼지 속에 있어요 나의 친구여                                                     -「먼지 속의 도시들」제1, 2, 5, 6연     현대문명의 황폐성을 질타하고 조롱하면서 현대인의 고통을 강렬하게 각인해 놓고 있다. 정녕 숨 막히는 생활주변이 온통 쓰레기투성이고 보니 그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몰골이 화장장의 녹아버린 시체와 다름없지 않은 것을 실측적인 팩트로 제시하고 있다. 현실고발과 더불어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화상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탈 규제, 탈 장식, 탈 정형의 ‘열린 시’를 그대로 모창하고 있다. 그럴진대 ‘열린 시’의 신진시인들은 20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미국의 보수주의시인이며 신비평가로 종교적 상징주의에 경도되어 풍자와 지성과 고전을 엄격히 다룬 테이트(Allen Tate)와 역시 같은 시인이며 신비평가로 형이상학시의 영향을 받아 과거의 향수, 남부귀족주의사회를 동경한 랜섬(John Crowe Ransom)을 깔보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어디엔가 좋은 감옥이 없는가 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녔다”고 비아냥했다. 즉 ‘닫힌 시’의 수호자들에게 적지 않은 저항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실제로 낭만주의 시인의 선구자이며 신비사상가로 상상의 힘을 과시한 블레이크(William Blake)를 시인의 연상능력을 확대한 업적에 비추어 시인 제1세대로 꼽는다.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고식적 시문학과 작별한 미국의 ‘민주주의 음영시인’ 휘트먼(Walt Whitman)은 현대시인의 제2세대로 분류된다. 제3세대시인은 엘리엇(T. S. Eliot), 파운드(Ezra Pound),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로 그들은 자유시를 통해서 시를 해방시켰다. 그러면서도 그들 스스로는 그다지 고통을 체험하지 않고서도 그 과업을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엘리엇과 파운드는 싸움하기를 싫어했다. 기성세대와의 다툼을 회피한 것이다. 블레이크는 자유의 땅을 벗어나 다시금 스스로를 ‘닫힌 시’의 세계에 감금했다. 그랬기에 테이트나 랜섬은 여기저기 헤매면서 자기들이 안주할 자리를 찾고자 한 것과 다름없는 시인들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20세기후반에 들어서면서 파운드나 엘리엇과 같은 주지적인 계열의 시를 공격하고 휘트먼이나 윌리엄즈와 같은 계열의 시를 옹호하며 그 후예임을 자인하는 새로운 시인들의 동향이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신비평(New Criticism)’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즉 주지적인 형이상학시의 전통을 통박한 것이다. 일정한 규범에 구속되어 조성되는 운율과 형식에서 해탈하고 새로운 리듬과 장단을 마련하는 자유시를 선호했다. 이런 추세에 영합한 시인들의 작품이 ‘제4세대의 시’로 명명되었다. 그 내용이 완전히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이른바 『벌거숭이 시』에 참여한 현존시인들의 선언에 일관해서 나타난 말은 ‘탈 포럼’, ‘탈 테크닉’이다. ‘탈 포럼’의 지향점은 곧 ‘열린 형식(open form)’이다. 그래서 ‘연상(association)에 의해 영혼에 다가가는 새로운 회랑(回廊)을 계속 열어 제치는 것’이라면서 ‘열린 형식’을 ‘반 포럼’으로 표현하고 ‘자유시’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아주간단하다. 이 말 자체가 테크닉을 암시하지 않고 갈망(longing)을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육성을 자기가면(persona) 속에 밀어 넣었던 엘리엇이나 파운드에 비해 이 말은 정말 ‘평온하고 소박한’ 시심(詩心)의 발성이다. 마치 중산계급의 테크닉숭배처럼 역사적인 문맥에 사로잡힐 말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탈 포럼’, ‘탈 테크닉’이야말로 신선하고도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 같은 시이면서 왜 ‘열린 시’와 ‘닫힌 시’가 되는가. 단순히 형식의 문제만은 아니다. ‘닫힌 시’가 반드시 정형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가 가는 길 앞에는 언제나 문명이 가로막는다. 사회가 존재한다. 이 가로막는 것들의 비판자로서 나 자신을 정립시키고자 할 때 시가 그 받침대로서 기댈 수 있는 게 상징으로서의 언어이거나 자신의 몸뚱이다. 이 ‘기대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격렬한 시적 고통이요 고민이다. 창작의 격랑을 헤쳐 나가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단순히 ‘몸뚱이’가 아니고 ‘언어’라는 표면적 전망으로 볼 때 언어 자체가 고통이나 고민을 겪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복잡 미묘한 사회에서 시인의 ‘몸뚱이’가 공중부양으로 지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낙천적인 미국식 혁명의식이라 해도 그렇다. 따라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이 시의 체재에 직접 파고 들어 갈 때 그 시가 ‘열린 시’가 된다. 시인이 시의 건너편에 떨어져 있을 때 그 시는 ‘닫힌 시’가 된다. 자신이 시의 체제 속에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만큼 안락한 경지는 없다. 사실 형이상학파 시인들이 즐겨 사용한 기상(conceit)같은 것이 배양되는 텃밭은 그렇게 평온한 곳이 아니다. 문명에 의해서 사회가 발전을 해도 시가 언어를 죽어라 하고 등을 돌리면 그 시는 ‘닫힌 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형이상학 시는 르네상스정신을 부정했다. 역사의 비판자로서 ‘시의 언어’라고 할 기상의 성쇠는 예술의 성쇠였다. 그런 의미에서 파운드와 엘리엇이 확대재생산식으로 받들었던 형이상학 시의 문제성은 오히려 더 새로워지는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마치 오늘의 우리나라 젊은 시인들이 그러하듯이 종횡무진 과잉 노출된 지적 방황의 ‘닫힌 시’, 얄궂은 로코코 형태의 ‘모조명품 핸드백’을 보듯이 말이다. 그러기에 시의 독자들이 체감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불행을 감수해야하는 우리 시단의 운명이 측은하기 이를 데 없다. 그 까닭은 어설픈 언어의 공기놀이에 있다. 부질없이 떠벌리는 바벨의 말장난에 있다. 시적 주제나 시적 진실이 결여된 데에 있다. 다시금 ‘열린 시’의 공간 확대를 기대한다.  /(참고 The Rising Generation 117호)        
226    추천합니다, 노벨문학상 관련된 책 50 댓글:  조회:3502  추천:0  2017-02-13
노벨문학상에 관련된 책 총 50 권을 추천합니다.  노벨문학상은 문학을 사랑하고 인류의 평화를 기원했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뜻을 기린 노벨상은 1901년 제정되었습니다. “나의 전재산을 기금으로 조성해, 매년 인류의 평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노벨의 유언에 따라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의 상이 설립됐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자를 발표합니다.  1. 쇼샤 - 노벨 문학상 수상 4 (양장본)  아이작 B. 싱어 저, 정영문 역 | 다른우리 출간  2. 추락 -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양장본)  존 쿳시 저, 왕은철 역 | 동아일보사 출간  3. (이벤트) 운명 + (증정) LQ테스트로 알아보는 행복  임레 케르테스 저, 박종대, 모명숙 역 | 다른우리 출간  4. 재즈  토니 모리슨 저, 김선형 역 | 들녘 출간  5. 영혼의 산 1 -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품절  가오싱젠 저, 이상해 역 | 현대문학북스 출간  6. 영혼의 산 2 -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오싱젠 저, 이상해 역 | 현대문학북스 출간 |  7. 이방인 품절  알베르 카뮈 저, 이휘영 역 | 문예출판사 출간  8. 고도를 기다리며 -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저, 오증자 역 | 민음사 출간  9. (이벤트) 설국 - Steady Books 59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 유승휴 역 | 청목사 출간  10. 닥터 지바고 - 상 (양장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저, 박형규 역 | 열린책들 출간  11. 닥터 지바고 - 하 (양장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저, 박형규 역 | 열린책들 출간  12. 데미안 -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저, 전영애 역 | 민음사 출간  13. 티보 가의 사람들 1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 정지영 역 | 민음사 출간  14. 티보 가의 사람들 2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 정지영 역 | 민음사 출간  15. 티보 가의 사람들 3 품절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 정지영 역 | 민음사 출간  16. 티보 가의 사람들 4 품절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 정지영 역 | 민음사 출간  17. 티보 가의 사람들 5 품절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 정지영 역 | 민음사 출간  18. 파리대왕 -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저, 유종호 역 | 민음사 출간  19. 데미안 - Classics in Love 5  헤르만 헤세 저, 한지혜 역 | 푸른나무 출간  20.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 장경룡 역 | 문예출판사 출간  21. 구토 - 하서명작선 82  장 폴 사르트르 저, 강명희 역 | 하서출판사 출간  22.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저, 이덕형 역 | 문예출판사 출간  23. 이방인 품절  알베르 카뮈 저, 김동호 역 | 신원문화사 출간  24. 좁은 문  앙드레 지드 저, 김동호 역 | 신원문화사 출간  25.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저, 임성희 역 | 청목사 출간  26. 닥터 지바고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23-1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저, 오재국 역 | 범우사 출간  27. 수도원의 비망록 - 상 - 세계현대작가선 9 품절  주제 사라마구 저, 신현철 외 역 | 문학세계사 출간 |  28. 수도원의 비망록 - 하 - 세계현대작가선 10 품절  주제 사라마구 저, 신현철 외 역 | 문학세계사 출간  29. 에덴의 동쪽 - 상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26-3  존 스타인벡 저, 이성호 역 | 범우사 출간  30. 에덴의 동쪽 - 하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26-4  존 스타인벡 저, 이성호 역 | 범우사 출간  31.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쉼보르스카 저, 이해경 역 | 문학동네 출간  32. 떼레즈 데께루 - 청목정선세계문학 83  프랑수아 모리악 저, 김진현 역 | 청목사 출간  33.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셰이머스 하니 저, 이정기 역 | 나라원 출간  34. 게벨라위의 아이들 - 198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나집 마흐푸즈 저, 이두선 역 | 하서출판사 출간  35. 유리알 유희 - 혜원세계문학 80  헤르만 헤세 저, 남순우 역 | 혜원출판사 출간  36. 구토 - 혜원세계문학 83  장 폴 사르트르 저, 김재경 역 | 혜원출판사 출간  37. 좁은문 - 하서명작선 21  앙드레 지드 저, 이윤석 역 | 하서출판사 출간  38. 개인적 체험 품절  오에 겐자부로 저, 이규조 역 | 꿈이있는집 출간  39. 유리알 유희 - 홍신엘리트북스 78  헤르만 헤세 저, 박혜경 역 | 홍신문화사 출간  40.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저, 이원전 역 | 홍신문화사 출간  41. 구토 - 홍신엘리트북스 55  장 폴 사르트르 저, 이경석 역 | 홍신문화사 출간  42. 재즈 (원제 : Jazz) 절판  토니 모리슨 저, 최인자 역 | 문학세계사 출간  43. 드리나강의 다리 - 엘리트문고 87  이보 안드리치 저, 정병조 역 | 신원문화사 출간  44. 무기여 잘 있거라 - 혜원세계문학 24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최윤영 역 | 혜원출판사 출간  45.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저, 김기태 역 | 선영사 출간  46. 무기여 잘 있거라 - 청목정선세계문학 15  어니스트 헤밍웨이 저, 김종철 역 | 청목사 출간  47.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저, 박종서 역 | 을유문화사 출간  48.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저, 김화영 역 | 책세상 출간  49. 유리알 유희 - 범우비평판 세계문학선 29-4  헤르만 헤세 저, 박환덕 역 | 범우사 출간  50. 황무지 - 세계시인선 25 품절  T.S. 엘리어트 저, 황동규 역 | 민음사 출간    
225    저항시인 윤동주에게 "명예졸업장"을... 댓글:  조회:3273  추천:0  2017-02-13
韓·日 시민들, 윤동주 명예졸업장 추진 (ZOGLO) 2017년2월13일  윤동주(뒷줄 오른쪽)가 1942년 일본 릿쿄대 유학생 시절 잠시 귀국해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앞줄 가운데) 등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일본 릿쿄대와 도시샤대가 일제강점기의 크리스천 ‘저항 시인’ 윤동주(1917∼1945)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토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릿쿄대학윤동주추도회 한국사무소 소장인 유시경 대한성공회 교무원장은 2월 12일 “윤동주는 처음 유학 생활을 했던 릿쿄대 뿐만 아니라 이후 편입한 도시샤대학 모두 졸업을 하지 못했다”면서 “그의 탄생 100주년과 추도회 설립 10주년을 맞이한 올해 한·일 시민들과 함께 ‘윤동주 명예졸업장 수여’ 방안을 양 대학 측에 정식으로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동주는 1941년 말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한 뒤 이듬해 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해 6월까지 도쿄 릿쿄대 문학부(영문과)를 다니다가 중퇴한 뒤 10월 교토 도시샤대 영문학과에 편입했다. 두 곳 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미션스쿨이다.  1943년 7월 귀국을 준비하던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붙잡혀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된 윤동주는 광복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다. 일본 유학 당시 윤동주가 남긴 시는 릿쿄대 시절, 서울의 친구에게 편지와 함께 보낸 시 ‘쉽게 씌어진 시’ 등 다섯 편이 전부였다. 이후 작품들은 일본 경찰에 압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릿쿄대 교목을 지낸 유 교무원장은 “윤동주의 첫 유학지가 릿쿄대였지만 10년 전만해도 그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면서 “윤동주 추도회를 만들어 매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2010년부터는 한국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윤동주와 학교를 알리고 한·일 양국간 교류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 교무원장은 이어 “양 대학이 함께 윤동주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일은 한·일 양국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관계를 회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명예졸업장 추진 제안은 오는 19일 릿쿄대에서 열리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 추모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진다.  당일 행사는 추모예배와 함께 ‘시와 음악으로 엮는 윤동주의 생애’ 등의 순서가 이어진다. 47년 경력의 배우인 마츠오카 미도리 등을 비롯해 양국의 고등학생들이 나서 윤동주의 시 등을 낭독한다. 앞서 윤동주 기일인 16일에는 그의 고향인 중국 룽징의 명동교회에서, 오는 26일에는 미국 뉴욕 플러싱제일교회에서도 추모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국민일보 윤동주 시인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 '윤동주 추모의 밤' 행사가 일본에서 처음 열린다.  서울시인협회는 16일 오후 도쿄 한국YMCA호텔에서 한국 시인 서른여덟 명, 일본 문인 스무 명 등 모두 150여 명이 모여 고인의 생애를 기리고 작품세계를 조명한다고 10일 밝혔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과 사망 72주년을 기념해 그가 일본으로 건너와 처음 2주간 머물렀던 한국YMCA를 추모 장소로 정했다.  양국 문인들은 고인에 대한 강연과 시 낭독을 한다. 유자효 시인, 김재홍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 우에무라 다카시 교수, 르포작가 유재순, 허형만 목포대 명예교수 등이다. 17일과 18일에는 도쿄와 교토에서 윤동주의 행적을 탐방하고 시비에 헌화한다.  민윤기 회장은 "최근 한일관계가 다소 경직됐지만 일본인에게도 사랑받는 윤동주를 통해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강압에 시달리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고민한 시인이다. 일본 유학 시절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2월16일에 사망했다.   
224    동요동시 대문을 열려면 "열려라 참깨야"라는 키를 가져야... 댓글:  조회:4077  추천:0  2017-02-11
@@= 클릭해 보시고 좋은 글 낳아주세용^~^... 글쓴이 글 제목 신현득      ①동시 산책(1)   ②동시 산책(2)   ③철저히 의인을 하라   ④자연의 음성을 번역해서 들어야   ⑤손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⑥모든 것을 하나로만 본다   ⑦의인에는 난이도가 있다   ⑧표현과 객관성의 사이   ⑨동시의 구속성   ⑩동시는 동화적인 시다   ⑪자연에게 물어보라     가르쳐 줄 것이다    ⑫동요운동에 붙여 글쓴이 글 제목 유경환   (1) 직접 표현은 피해야   (2) 생략으로 빛나는 동시   (3) 형상화란 무엇인가?   (4) 이미지의 연결   (5) 상징의 활용   (6) 비유의 정체와 기능   (7) 고쳐쓰기   (8) 감동, 체험의 일치에서 오는 감동   (9) 생각의 우물파기   (10) 묘사-외다리 걷기식 묘사   (11) 쉽게 쓰기   (12) 내면화 들여다보기   (13) 속으로 율동감 숨겨야   (14) 감동을 담아내기   (15) 동시의 형식 글쓴이 글 제목 강소천   글짓기 박목월   동시란 무엇인가? 문삼석   동시란 무엇인가? 손광세   동시란 어떤 글인가? 김종상   동시는 어디에 있나? 이영호   동시는 어떻게 쓰나? 김한룡   시의 세계를 찾아서 이오덕   어린이의 삶은 시다. 박목월   동시의 지도와 감상 글쓴이 글 제목 김경중   시와 동시에 관한 이해 김요섭   리듬의 세계 김제곤   좋은 동시의 요건 김종상   나는 동시를 이렇게 썼다 문삼석   나의 동시 창작 과정 박경용   격조 있는 서정시로서의 동시 박윤규   감자꽃은 왜 좋은 시인가? 유창근   시도 재미가 있어야 이어령   시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이정석   좋은 동시의 조건 이준관   어떤 동시가 좋은 동시일까 전원범   가장 원초적인 시 정용원   읽히는 동시와 읽히지 않는 동시 최승호   아이들에게 동시를 읽히자 하청호   동시, 그 실상과 허상  출처 허동인의 동시감상교실         ♣ 시인의 세계 ♣         1 투명한 이미지와 다양한 의미역 박진환 1991.05.10 2 사랑이 넘치는 가슴으로 쓴 시 홍진기 1991.08.01 3 청각 이미지의 하머니 박이도 1997.11.01 4 97년도 조선문학 작품상 심사 소감 심사위원 1998.11.01 5 살해된 서정의 거듭나기 정신재 2001.05.01 6 2002년도 한하운문학상 심사 소감 권웅달 2002.01.25 7 생동하는 감성과 절묘한 수사법의 시 손정모 2002.01.07 8 자각 의식과 그 동향 정해송 1983.02.01 9 80년대 동시가 극복해야할 과제 전원범 1980.03.30 10 감동 전달과 의미 전달의 차이 전원범 1980.06.30 11 형상화되지 못한 언어의 낭비 전원범 1980.09.30 12 童詩의 限界性과 詩想 感動 공재동 1981.09.30 13 素材와 表現 공재동 1981.12.31 14 상상적 체험과 아름다운 시심 박  일 1989.12.01 15 좋은 동시의 요건 이준관 1990.11.01 16 개성적인 시 박두순 1990.12.15 17 韓國 童詩 文학의 흐름 하청호 1991.3.15 18 사랑의 言語 박두순 1991.3.15 19 詩 읽기의 즐거움 오순택 1991.3.15 20 동심으로 그린 수채화 이재철 1991.05.20 21 지고한 애정의 자아의식의 시편 허호석 1991.08.01 22 개성적인 시 세계 문삼석 1991.09.01 23 詩人의 銳利한 觀察 서효석 1991.09.01 24 생명 존중과 사랑의 작품 세계 장수철 1992.01.15 25 사물 바라보기 오순택 1993.04.01 26 시인의 공들임과 평가 최명표 1994.06.01 27 예리한 감성으로 건져올린 생동하는 동시 김종상 1994.11.15 28 21세기와 동시문학 박  일 1995.04.15 29 방정환문학상 심사기 심사위원 1995.05.20 30 동시문학 양적 위축과 질적 고양 최지훈 1995.05.20 31 한국아동문학의 현실 진단 이재철 1995.08.01 32 동심의 혜안으로 통일 바라보기 최  용 1995.09.30 33 한국아동문학의 계보 이재철 1996.04.24 34 동요의 쇠퇴와 동시인의 계보 이재철 1996.05.01 35 자신을 되돌아보기 박  일 1996.12.01 36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이정석 1998.11.01 37 작은 것들이 품어내는 향기 김재용 1998.12.30 38 그리움, 또는 아니마의 想像力"> 그리움, 또는 아니마의 想像力 전병호 2000.09.30 39 10월의 사색 김용희 2000.10.16 40 12월의 정취 박덕규 2001.12.08 41 생명의 가는 숨결 김봉석 2001.12.31 42 참신한 의인화 심윤섭 2002.01.01 43 아동문학의 수요와 공급 문제 문삼석 2002.01.01 44 손광세 선생님의 '태극기' 허동인 2003.10.01 45 동시가 좋아졌네! 신현득 2003.08.15 46 손광세의 가을하늘 정끝별 2003.09.30 47 달관과 관조의 세계 이정석 2004.06.01 48 어린이는 생성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오순택 2004.12.01 49 동시의 독자성 박  일 2005.06.28 50 가을 시편 김동극 2005.10.09 51 언어로 그림 그리는 탁월한 능력 돋보여 김종순 2006.07.10 52 그리움의 깊이 윤삼현 2006.08.01 53 타당성 있는 논리적 오브제 유  진 2008.08.01 54 동시와 정서적 공감대 형성 전영관 2010.12.01 55 놀라운 동심의 포착 신현득 2011.01.01  
223    동시를 낳고싶을 때에는 동시산실에 가 지도를 받으라... 댓글:  조회:3355  추천:0  2017-02-11
동시 창작법 ① 동시(童詩) 산책(散策) 신 현 득   동시가 어떻다는 말을 하기 전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사범학교 출신이지만 그 때 어느 곳에서나 다 그랬듯이 아동문학이란 말은 조금도 들어보지 못하고 졸업했다. 간혹 동화란 말은 들었지만 동시란 말은 전혀 듣지 못했던 것이다.   학장 시절 나도 남만 못지 않은 문학 지망생이었다. 시(詩)도 쓰고 소설도 습작을 했다. 이 중 소설은 그 뒤 지방의 작은 규모의 현상 모집에서 뽑히기까지 했으니 약간은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이런 것을 씁네 하고 제법 우쭐거리기도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 교사로 부임을 하게 됐는데 마침 도내(道內)의 무슨 글짓기 행사가 있어 글짓기 지도를 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종목은 동요·동시·산문이었다. 나는 이 때 처음 동시라는 말을 들었다. 동요는 알고 있었지만, 동시란 말을 처음 들은 나는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봤다.   「동요가 4·4조 7·5조 등의 정형시이니 동시는 아마 어린이들이 읽을 자유시를 말할 것이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내 생각대로 아이들을 지도해 간 것이 도내 행사에서 3등이란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뒤 그 때 씌어진 아동작품이 모두 지상에 발표되었는데 아이들이 쓴 글은 동요는 없고 모두 동시뿐이었다. 그러자 동시 동요의 구별없이 통틀어 상을 주고 만 것이다.   그 때부터 아동들의 운문은 동시가 되었고 동요는 이들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단계가 되었다. 이것이 1955∼6년 때의 일이다.   동요가 아이들의 글짓기에서 사라지게 되기까지는 이상의 과정들을 겪었다. 아마 아동들에게는 자유스런 표현이 가능한 동시보다는 동요가 더 구속적이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을는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아직도 신춘문예는 동요를 모집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요를 응모하는 사람이 없어서 뽑히는 것은 모두 동시뿐이었다. 동요 모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동시를 당선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는 신춘문예에서도 동시라는 간판을 내걸게 되었다. 이것이 60년대의 초기다. 이런 모든 것이 동요와 동시의 미분화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이상의 이야기에서처럼 동시는 동요에 맞서는 아동문학의 장르로 동요가 정형시인데 반해 동시는 자유시의 한 형태이다.   지금에 와서는 우리 나라에서 동시만을 전공하는 사람이 백 명이 넘게 되었지만 그 당시만해도 동시는 개척 단계여서 지금 손꼽을 수 있는 아동문학의 대가급 외엔 없었다.   물론 아동문학과 글짓기 지도는 별개의 것이며, 전자가 창작 행위인데 비해 후자는 하나의 교육 활동이지만, 어쨌든 나는 나의 아동문학에 접한 코오스가 아동작문이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나는 아동들을 지도하면서 나도 아이들처럼 이런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 지도하는 일은 되는데 내가 글을 쓰기란 여간 힘들지 않았던 것을 지금 나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습작기에서 애를 태우고 있는 아동문학 지망생들을 선험자(先驗者)로서 동정을 하면서 격려하고 싶다.   나는 하루종일 작품을 생각하다가 지쳐서 저녁이면 술을 들이키곤 했다. 괴로운 작업이기도 했다. 빠꼼 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스무 글자가 되지 않는 이 작품은 이런 피나는 작업 긑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69년도 조선일보에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 그와 같은 힘을 들였던가 싶은 마음뿐이다. 이 작품의 짜임새나 깊이가 뭐 대단하지 못한데도 실망이 되지만 지금 같으면 단 몇 시간만에 써버릴 것을 몇 달을 두고 머리를 짜내던 일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 때 나에게는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가 창호지로 바른 문을 뚫는 것이다. 어느 아이나 그런 버릇이 있다. 곧잘 손가락을 내밀어 구멍을 뚫는다.   아이가 있는 집이면 으레 문구멍이 있다. 문구멍이 없는 집처럼 서글픈 집은 없다. 자식이 흔하지 않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문구멍을 뚫을 때마다 아이에게 야단을 쳤다. 셋방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문구멍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이 때 문구멍의 높이와 아이의 키와의 관계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상당히 긴 시를 썼다고 기억이 된다. 그러다가 그것을 줄이고 줄인 끝에 남은 것이 이 열여덟 개의 글자였다.   나는 이 열여덟 자의 동시를 완성하고   「길이가 너무 짧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 내는 작품 가운데 별반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끼워 넣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것이 가작에 뽑힌 것이다. 이리하여 내 이름 석 자가 신문에 발표되었다.   작품을 써 놓고   「왜 이렇게도 뭇난이 작품을 썼을까?」   「참 할 수 없어.」 하고 부족을 느끼는 이들은 이제 안심해도 될 것이다.   나는 1961년 첫 동시집 을 냈다. 70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4·6판의 작은 책이다. 내가 고백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집의 체재가 못되고 책이 얇다는 말이 아니다. 못난이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뽕잎이 핍니다. 뽕잎이 피면서 생각합니다. 아까시아 잎이 핍니다. 아까시아 잎이 피면서 생각합니다.   이라는 작품이다. 어떤 이들이 이 작품을 읽고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사 이 작품이 객관성이 없는 표현에서 씌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어쩔 수도 없었다. 내딴은 뽕잎이 피면서 누에의 입맛을 생각하고 아까시아가 피면서 아까시아를 가장 즐기는 토끼의 입맛을 생각하는 내용을 그려낸다고 쓴 작품이다. 그런데 그 표현 수법이 잘못되었던 모양이다.   그밖에도 실패작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가 하면 지금 읽어봐도 괜찮다 느껴지는 것도 더러 있다. 까만 아기 눈 속 샘 그림자. 조그만 샘 속에 엄마 그림자. 그림자 덮고 잠이 들면 그림자 살아서 꿈이 되지요. 꿈 속에서 엄마와 뛰어다니면 찰방찰방 잔물결이 일어나지요.   이 작품은 제법 시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역시 표현들이 분명하지 못하다. 그것은 끝연에 가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이 변변치 못한 작품을 쓰기 위해 땀을 흘렸고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기의 눈 속에 내 그림자가 지는 것을 발견해 냈다. 그 그림자를 엄마 그림자로 바꾸어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기눈의 그림자가 어쩌면 옹달샘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는 데서 이런 시를 잡은 것이다.   어쨌든 힘드는 작업이었다.   「작품이 잘 씌어지지 않는다. 왜 이렇게도 잘 되지 않는가」 하고 자신을 투덜대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안심해도 될 것이다. 아가씨가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뒷밭에 목화씨가 베짜는 장단에 싹이 틉니다. 한 눈. 한 눈. 또 한 눈……. 뒷밭에는 하룻밤 사이에 목화꽃이 소복이 나왔습니다. 목화싹은 베짜는 장단에 쑤욱쑤욱 키가 컸습니다. 베짜는 장단에 잎이 돋고 가지가 나고, 베짜는 장단에 꽃망아리를 맺고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목화밭은 하룻밤 사이에 아름다운 꽃밭이 되었습니다. 베짜는 장단에 뚝뚝 꽃이 지고 베짜는 장단에 복숭아 같은 다래가 열고 다래가 벌어 목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한 송이. 한 송이. 또 한 송이……. 목화밭은 하룻밤 사이에 하얀 솜밭이 되었습니다.   의 전문이다.   산문시 목화밭을 쓰기 위해서도 힘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첫째는 베틀 소리에 맞추어 목화싹이 트고 목화꽃이 피고 목화송이가 피도록 하는 일이었고, 그보다도 힘이 든 것은 목화밭을 베틀 가까이로 끌어들이는 작업이었다. 두 번째의 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이 산문시는 절반의 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실 목화밭을 들판 가운데 두고서는 이 시의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목화밭을 집뒤로 끌어온 것이다. 이것이 아직 그 당시의 내 사고력으로서는 큰 작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목화밭을 집뒤에 두고 나니 베짜는 소리에 목화가 크도록 하는 일은 쉽게 진행되었고 베틀 소리에 싹이 트는 일, 꽃 피는 일 등을 적당한 대구(對句)로 만들어 행(行)을 잡음으로써 시각적(視覺的) 효과도 노릴 수가 있었다. (1978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9호)   동시 창작법 ② 동시(童詩) 산책(散策) 신 현 득   학교 종이 땡땡 친다. 어서 가 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이 노래의 「땡땡 친다」는 어법에 맞지 않다 해서 지금은 「땡땡땡」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첫 행에서 「땡땡」을 빼버리면 「학교 종이 친다」가 된다. 「종이 친다」는 「글씨가 쓴다」「옷이 입는다」「공이 친다」와 마찬가지로 문법적인 모순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동시가 얼마든지 있다. 이 동요를 지은이도 처음 그 문장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글이 되었고 그것이 작곡되어 상당히 오랜 동안 어린이들 입으로 불려졌던 것이다.   시처럼 어법을 따지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동시는 더욱이 그렇게 해야 되고 그렇게 해야 어린이들을 위한 시가 되는 것이다. 저기 가는 저 영감 꼬부랑 영감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처음 지어졌을 때의 라는 이 동요는 교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를 권한다면 도의 교육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른을, 특히 나이 많은 할아버지를 놀리는 것이 되고 만다.   도의를 범하는 것이 아동문학일 수는 없다. 아동문학은 교육과 문학의 중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교육이 되지 않는 문학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따위의 글은 동요뿐만 아니라 어느 노래의 가사로도 좋은 것이 아니다.   섹스를 동원할 수 없는 게 아동문학이라고 한다. 섹스가 꼭 비도덕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은 아직 섹스가 그들의 생활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아동문학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도덕 문제나 섹스 문제를 생각지 않고 씌어진 아동문학 작품이 눈에 띄기도 하는 것이다. 땅 속엔 땅 속엔 누가 있나 봐. 손가락으로 쏘옥 올려미나 봐 쏘옥 모란꽃 새싹이 나온다.   이 아동시는 조금 전까지도 교과서에 실려 전국 어린이들의 본보기 글이 되어 주었다. 땅속에다 손가락을 두고 봄날 돋아나는 새싹의 광경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시에는 모순이 있다. 모란싹은 땅 속에서 솟은 것이 아니라 모란의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모순을 처음 발견해낸 사람은 시인 박목월씨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아무리 착상을 잘 잡은 글이라해도 내용에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   이런 보기는 얼마든지 있다.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병아리가 놀던 곳은 무논 가운데가 아니다. 그런데 미나리는 미나리논 같은 물이 고인 데서 싹을 틔운다. 물론 마른 땅에서 미나리가 돋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보편성이 없다. 보편성이 없는 경우는 작품에서 피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나는 백두산 천지에 대해서 재미나는 걸 생각햇다. 천지의 물이 그 넓은 호수에 하나 가득 괴자면 얼마나 깊은 땅밑에서부터 많은 물이 솟았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백두산의 뿌리쯤 되는 깊이에서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퍽 재미가 있었다.   이 물이 백두산에 고여 있다가 압록강 두만강이 돼 흐르는 것이다. 이 때 호수의 물은 절반씩 나뉘어서 서로 이야기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얘, 너는 압록강물 되어라. 나는 두만강물 될께.」   「그래 그래 지금부터 작별이야. 그렇지만 바다에서 만나게 될걸.」   나는 이렇게 천지의 물이 압록강 두만강의 물줄기로 나뉘어 흐르는 장면을 생각했다.   나는 이런 착상이 좋은 시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며칠 밤이나 시를 낳느라 끙끙거렸다. 하나의 물줄기로 같이 솟아서 너는 압록강 나는 두만강 나뉘어져 흐르는데 손 흔들며 헤어지지만 너른 바다에서는 다시 하나가 돼 만날 걸.   나는 며칠만에 이런 낱귀절 몇을 생각하고 더 다듬어 보면 대작이 되리라는 기대를 해봤다.   그렇지만 확인을 해야 한다. 정말 압록강 두만강이 천지에서 흐르는가? 그 때 어느 교과서에 그렇게 배운 듯하고 학교 선생님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확인을 할 필요는 있다.   그런데 온갖 서적을 다 뒤진 결과 천지에서 흐르는 것은 엉뚱하게도 송화강(松花江) 하나뿐이었다. 백두산에 오른 등정기(登頂記)를 읽어봐도 역시 그러했다.   실망은 컸지만 다행이었다. 이것을 잘못 알고 이 작품을 발표했더라면 나중에 얼마나 웃음거리가 됐을까?   결국 이렇게 해서 이 엉터리 작품은 폐기가 되고 말았다. 비가 돼 내리면서 내려다봤네. 하나의 반도가 젖고 있네. 산맥이 젖고 있네. 총부리가 젖네. 나의 한 끝은 벌써 강을 이루며 긴 구비를 돌아 바다로 흐르고 있네. 저쪽 영상강으로도 흐르고 있네. 도롱이를 쓴 농부들이 논둑을 걷고 있네. 틀림없는 같은 나라 사람이 걷고 있네. 시들었던 땅이 푸르게 일어서네. 백두산 천지가, 작은 그릇이 나를 받아 모으네. 송화강으로 나를 쏟아 보내고 있네. 저쪽에서도 한라산이 백록담이란 그릇을 들고 방울방울 나를 받아 모으네.   이 시는 동시라는 이름으로 지난 여름 『소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제목은 였다.   이 시의 내용에서 는 구름이다. 구름인 가 비가 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표현으로 봐서는 구름이 백두산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에 떠 있다. 이것은 인공위성 정도의 높이에 있어야 한다. 도대체 그런 소나기 구름이 있을 수 있는가? 사실은 한 고장을 내려다볼 만한 높이의 구름도 잘 있을 것 같지 않다.   시는 허풍이며 거짓말일 수 있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거짓말이어야 한다. 그런 점으로 봐서 이 시는 단단히 얻어맞아야 하고 그 책임은 지은이인 필자가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순을 알면서도 이 엉터리 글을 발표한 것은 이 시를 낳기까지의 수고와 이 시에 담긴 나의 염원 같은 것이 아까워서였던 것이다. (1978. 10. 『아동문학평론』 제10호)   동시 창작법 ③ 철저히 의인(擬人)을 하라 신 현 득   ―연필이 말을 한다   거짓말이다.   ―이슬비가 속삭인다   거짓말이다.   ―나무가 생각한다   거짓말이다.   연필이 말을 한다든가, 이슬비가 속삭인다든가, 나무가 생각한다든가, 모두가 거짓말이다. 그러나 시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느껴지기를 바라다 보면 그렇게 느끼지 않으려 해도 느껴지는 것이다. 이 때 온 세상 자연과 자연스런 대화가 될 때, 참 편안하게 앉아서 쉽게 시를 쓸 수가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 좋다.   ―사람만이 생각한다.   ―사람만이 말을 한다.   이것은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는 생각이다. 나와 남을 구별하는 생각인 동시에 차별하는 생각이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저런 나무보다는 낫다. 훌륭하다.    ―그러니 저까짓 나뭇가지 하나쯤 꺾으면 어떠랴.   이런 생각이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생각이요 차별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면「나만 제일이다」하는 자만에 빠지게 된다. 이웃과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 나만 편하고 배 부르고 잘 견디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이런 생각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시를 쓰는 마음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   ―남도 나와 똑같으리라.   이것이 시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남도 나와 같이 배고프리라. 남도 나와 같이 괴롭고 아프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세상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나와 같이 생각한다. 나와 같이 말을 하리라. 나와 같이 그도 나를 사랑하리라.   이런 것은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생각이다. 모든 것은 나와 똑같다. 모든 것은 나와 평등하다는 생각이다.   ―연필이 말을 한다.   이 생각은 바로 연필이 나와 똑같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연필이 나와 같지 않다고 생각할 때 연필이 말을 한다는 건 거짓으로 들리게 된다.   ―이슬비가 속삭인다.   이런 생각도 그렇다. 이슬비가 나와 똑같은 생각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모든 걸 하나로 본 것이다.   ―나무가 생각한다.   역시 그렇다. 나무와 나를 하나로 생각지 않고는 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든 걸 하나로 보는 눈」   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여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하나로 생각하자. 나무에는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무의 팔이다.   하나로 생각하자. 나무의 가지에는 꽃이 피어 있다. 그것은 나무의 팔에 달린 꽃이다. 꽃은 자라서 열매가 된다. 그것은 나무의 팔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나무가 과일을 들고 있다고 표현한다.   ―나무는 들고 있네     조롱조롱 열린 과일   그렇게 보고 있으니 재미있다.   ―나무는 그 많은 과일을 들고, 낑낑거리네.   이렇게 생각해 봐도 재미있다.   어쨌든 가지가 나무의 팔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가 손에 과일을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 나무는 과일을 많이 익혀서 들었을 때 어떻게 할까?   『얘, 이거 하나 먹어 봐.』   이렇게 말하면서 슬쩍 동무의 손에 과일 하나쯤을 던져 줄 것이다. 나무도 그럴까? 그렇고 말고. 여기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가을에 빨간 감을 많이 익혔다. 여기 또 사과나무가 있다. 가지에 사과가 잘 익은 사과가 달려 있다. 어떻게 할까?   돌각담 너머로   감나무 긴 팔이   감 한 개 들고   아가 손에 와 닿는다.   ―이거 내가 익힌 거야   맛 좀 봐.   탱자 울타리 밖으로   사과나무도   아기 손에   사과 한 개 놓아주면서   ―이거 내가 익힌 거야   맛 좀 봐 줘.   이건「가을」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이다. 재미있다.   가을이다. 가을에 감나무도 사과나무도 열매를 익혔다. 익혀서 그냥 떨어뜨리고 마는 게 아니다.   「누구에게 줄까? 같은 값이면 예쁘고 착한 아이에게 더 많이 줘야지.」   이런 생각에서 과일나무들은 과일을 들고 있는 것이다. 참 재미있고 평화스러운 광경이다.     대추나무   돌각담 위에   가지를 얹고   마당 끝에 서서   대추나무가   오롱조롱   가지에   대추를 달고   꼬마들이 모이기를   기다립니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주면   마당 끝에 서서   대추나무가   빨간 대추   하나 둘   던져 주면서   어서어서 주워 가라   손짓합니다.   이 글은「대추나무」라는 동요다. 여기서도 나무의 착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뭇가지는 바람에 흔들린다. 소리를 내면서 흔들린다. 그런데 정말 흔들리는 걸까? 모든 건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만 생각하자. 바람이 분다고 흔들려본 일이 있는가. 그렇지 않았을 테지. 그러니까 그건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람이 불어서 흔들리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 몸을 흔드는 거로군.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가 흔들 때는 무슨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틀림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나 보다.   시인이면 누구나 나무가 흔드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것이다.   재미있다. 다음의 시를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자.     몸짓   말로는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어요   몸짓을 하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아   그 많은 잎을 흔들어 댈까요?   나무는   가지마다 꽃을 단 날은   얼마나 자랑이 하고 싶을까요?   몸이라도 흔들어   보여야지요.   나무를 관찰하는 김에 다시 나무의 가지를 바라보자. 나뭇가지에는 새가 집을 짓는다. 새둥지 안에는 새새끼가 자란다. 이 때 나무가 흔들리는 건 바로 새새끼를 잠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걸 시인은 쉽게 알아낸다.   엄마 까치   아빠 까치   일터에 가고   둥지 속 새끼 까치   누가 봐 주나?   나무가   흔들흔들   흔들어 주어   둥지 속 새끼 까치   낮잠 들었다.   이 글은「까치 둥지」라는 동요다. 나무가 흔들리는 것은 까치 새끼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는 뜻에서 씌어진 글이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물을 보거든 우선 이런 생각을 하자.   ―내가 이 나무라면?   ―내가 이 꽃이라면?   ―내가 이 방아깨비라면?   ―내가 이 돌멩이라면?   이렇게 해서 습관이 되면 무엇을 보든지 우선 이런 방법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 꽃송이가 돼 나뭇가지에 열려보는 것이다. 눈을 감고 아주 꽃송이로 나무에 열렸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꽃송이가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예쁘다고 모두 쳐다보는군.   ―벌과 나비가 나를 향해 모여드는군.   벌써 시가 되었다.     꽃송이   지나는 사람마다   쳐다보네.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군.   다음은 방아개비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아주 작은 방아개비가 된 것이다.   돌멩이가 되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 보자. 아주 돌멩이가 되었을 때의 광경을 그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국사의 층계다리   누구의 발이나   한 번은   불국사 올라가는   층계 위에 놓인다.   층계는   여러 개 돌이 누워   눈을 감고서도   제 위에   그 여럿 발자국이 생기는 걸   느낀다.   발자국 위에 놓이는 신발   신발 속에 담긴   사랑의 무게.   옛날의 왕에서   옷차림과 말씨는 변했어도   그만한 사람의   무게는 같다.   발자국 위에   발자국이 놓여 지워지듯   옛 기억은   오늘의 일로 희미해지지만   온 신라를 살다 간 사람의   몸 무게를   제 안에 새겨 둔 층계는   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이기 때문에 참는다.   이 시는 불국사 자하문을 올라가는 층층대인 청운교, 백운교를 놓고 지은 시이다. 물론 자기가 층층대가 되었다는 가정에서 씌어진 글이다. 층층대의 입장이 되어 본 것이다. 누구나 불국사의 자하문 올라가는 층층대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 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작품을 지은 동기를 말하고 있다.      (1979년 봄『아동문학평론』제11호)   동시 창작법 ④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서 들어야 신 현 득   자연의 어느 것도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자연의 어느 것도 음성(언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정말이다.   그래서 냇물이 속삭인다고 한다. 그래서 산들바람이 속삭인다는 말을 한다. 이슬비가 속삭인다고도 한다.   이들은 모두 제대로의 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의 말로 속삭여 주지 않는 것으로 들린다. 냇물은 냇물의 소리만 낸다. 산들바람은 산들바람의 소리만 낸다. 이슬비는 이슬비의 음성으로만 말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도 시인은 그 음성을 알아 듣는다. 이것이 시인의 특기다. 아프리카 사람의 말은 우리말로 번역해야 알아 듣는 것처럼 냇물의 말이나 산들바람의 말이나 이슬비의 말이나 모두 우리들 사람의 말로 번역을 해야 한다. 번역을 하는 것이 시인의 기술이다. 사물의 음성을 번역하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가 있다.   번역을 잘해야 한다.   엉터리 번역은 번역을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럼 냇물의 소리를 들어보자.   ―졸졸졸 졸졸졸, 졸졸졸…….   아무리 들어도 졸졸졸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번역해서 들어야 한다.   ―졸졸졸……   그 물 소리 속에는「달이 밝구나」하는 음성이 있다. 그 물소리 속에「오늘은 물레방아를 돌렸지. 참 재미있던데」하는 말이 들어 있다.「자, 우리 모두 모여서 바다로 가는 거야」하는 뜻이 들어 있다.   산들바람 소리 속에도 그렇다. 번역을 잘해야 한다.   ―귀를 간지려 줄까?   ―머리칼을 날려 줄까?   ―나뭇잎을 흔들어 보자.   ―잔디를 쓰다듬어 보자.   ―…….   이렇게 무수한 언어가 있다. 이 산들바람의 음성을 잘 번역해 들어야 한다.   이슬비의 음성도 그런 것이다.   ―박꽃에 사뿐이 앉을까?   ―아니야, 연못물에 앉아 동그라미 그려 보는 게 재미있어.   ―…….   이런 무수한 음성이다.   이런 음성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야 참 바보같이만 느껴진다. 그런데 시인만이 이 말은 알아듣는다. 그러니, 시인만이 바보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시란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 듣는 그것이다.   자연의 음성을 번역해 듣는 그것.   그렇다. 시는 바로 그런 것이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 테야.   나는 나는 갈 테야.   꽃밭으로 갈 테야.   꽃봉오리 만지러   꽃밭으로 갈 테야.   강소천은 이슬비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 동요를 지었다. 그래서 처음 이 동요의 제목을 이라 했다.   이와 같이 냇물이나 산들바람이나 이슬비는 소리를 스스로 내기 때문에 번역이 쉽다. 사람의 목소리로 번역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물소리가 나는구나」「바람 소리가 나는구나」「이슬비 내리는 소리가 나네」정도는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말 없는 돌멩이나 마른 나무 막대기 같은 것, 빈 병 같은 것, 축구공 같은 것도 음성이 있을까?   음성이 있다. 그들 나름대로 음성이 있다. 그들 나름의 말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가 실험을 해 보자. 돌멩이의 언어를 들어보기로 하자.   냇가에 가서 두 개의 자갈돌을 마주 들고 두드려 보자.   ―딱 딱!   분명히 말을 한다. 돌에게도 언어가 있다. 제대로의 음성이 있는 것이다.   ―딱 딱…….   그 말이 무슨 뜻인가를 알아야 한다. 번역을 해서 우리들 말로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돌을 마주 두드려 보자.   ―딱 딱!   (나는 돌멩이다.)   ―딱 딱 딱!   (꼬마들과 공기놀이라도 하고 싶어.)   ―딱 딱 딱 딱!   (냇물에 뛰어들어 수제비라도 뜨고 싶구나.)   ―딱딱 딱딱!   (깊은 물에 퐁당 빠지고 싶어.)   돌멩이에게 계속 말을 시켜 보자. 그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를 써 보자. 그 목소리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온갖 부딪히는 소리를 다 알아듣게 된다. 까마귀 까치가 우짖는 소리쯤이야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물소리나 바람소리나 비소리나 돌멩이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어떤 음성으로든지 소리를 내어 주어야 그 말을 알아듣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말 남의 뜻을 잘 살피는 사람은 사람의 눈빛만 보고도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안다.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아낸다.   마찬가지다.   정말 시인은 사물이 놓여 있는 모습만 보고도 그 음성을 알아듣는다.   몽당연필을 보면 몽당연필의 하소연이 들린다.   지우개 조각을 보고 지우개 조각의 하소연을 듣는다.   나팔꽃을 보고 그 꽃 속에서 쏟아지는 노래를 듣는다.     빈 화분·빈 병   화분이 빈 그릇으로   교실 구석에 놓여 있게 되자   『국화 한 포기만 심어 주셔요.』   사정을 한다.   국화는 선생님 손으로 심겨진다.   국화가 화분 속에 들어 앉자   물주개가 가랑비를 뿌려 준다.   병이 빈 병으로 굴러 다니며   『내 안에 물이라도 채워 줘.』한다.   물을 채워 주니   『꽃 한 포기만 꽂아 다오.』한다.   꽃은 우리 손으로 꽂혀진다.   화분과 꽃병은   양지바른 창 밑에 놓여   마주보고 웃는다.   이 시에 대하여 지은이는 시를 지을 때까지의 일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이었어요. 교실의 대청소를 하고 있었지요.   교실 뒤의 급식대를 들어내고 교실 바닥을 닦을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숨겨둔 화분이 있었어요. 정말 지난 초겨울에 담고 있던 꽃부리를 비우고 여태까지 교실 구석에 박혀 있었지요.   화분은 참 심심하고 답답하게 겨울을 난 거예요. 누구도 화분의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했을 거여요.   화분은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화분은 무엇인가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어요.   그 커다랗게 벌린 입의 모습에서 나는 대번에 그걸 알아차렸지요.   참 그래요.   「화분이 얼마나 말을 하고 싶을까?」   내 생각은 틀림이 없었지요. 곧 그 화분의 커다란 입에서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무엇이나 심어 줘. 국화 한 포기라도 심어 줘. 제발 그렇게 해 줘.   화분의 하소연이었어요. 참 가여운 화분이었어요.   나는 곧 그 화분을 들고 꽃밭에 나갔지요. 국화 모 한 포기를 떠서 그 화분에 심어 주었어요. 보드라운 흙에 부엽토를 섞어 넣었지요. 그리고   ―잘 자라라.   속으로 말을 하면서 국화의 뿌리를 다져 줬지요. 그러자 화분이 그냥 있는 게 아니었어요.   ―고마워요, 선생님.   나는 그 화분으로부터 분명히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분명히 그런 소리가 났던 거지요.   ―그것 참 희한한 일이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할 테지요. 그렇지만 나의 귀에는 그 말이 틀림없이 들렸던 것이었어요.   나는 국화가 심겨진 화분에 물을 뿌려 주었어요. 가랑비를 뿌려 주었지요. 화분이나 화분에 심겨진 국화 모는 참 기쁜 모습을 하는 것이었어요.   화분을 교실의 창가에 갖다 두고 다시 청소를 계속 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교실 구석에 빈 유리병 하나가 굴러 다니는 것이었어요.   나는 생각했지요.   「이 병은 또 얼마나 심심할까?」   그런데 정말 빈 병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어요.   ―심심하고 말고요. 내 안에 물이라도 채워 주십시오. 제발 제발 제발…….   이것은 빈 유리병이 사정을 하는 목소리였지요.   「가엾다.」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곧 이 유리병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시켜 수도에 가서 물을 채워 오라고 했지요.   그런데 물을 채워 넣고 보니 병은 다시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 이왕 수고하시는 김에 나에게 꽃 한 송이 만 꽂아 주셔요.   나는 참 그렇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병에 물을 채워 넣었으니 꽃을 꽂아야지요.   꽃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리병은 반드시 사이다나 쥬우스만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어요. 꽃을 꽂으면 꽃병이 되는 것입니다.   꽃은 곧 아이들 손으로 꽂혀졌어요.   나는 화분이 놓인 양지바른 창가에 병을 갖다 놓았지요. 꽃병과 화분, 꽃병의 꽃과 화분의 국화 모가 서로 바라보고 웃는 것이었어요. 그 웃음 소리도 분명히 들리는 것이었지요.   ―히히히히…….   나는 분명히 그 웃음 소리를 들었어요.   이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자연에서 호소해 오는 많고 많은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숲에서도 그렇다.   나무와 나무끼리는 저들끼리의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소리를 못 들으면 시인이 아니다.   나무들 끼리는 서로가 남이 아니다.   도토리 열매를 여는 떡갈나무를 보기로 들자.   떡갈나무 그 옆에 있는 나무는 남이 아니다. 서로 어버이와 자식의 관계에 있는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와 손주가 되는 나무도 있다. 이들은 같은 골짜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에 살면서 서로 바라보면서 모른 척할까?   그렇지 않다.   ―어머니 어머니!   ―그래 그래 너는 내 씨앗에서 태어난 나무로구나.   ―그럼요 어머니.   산에 가 보면 분명히 이런 말소리가 들린다.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누구의 귀에도 들리는 목소리다.   ―우리는 형제다. 같은 나무 같은 가지에서 정답게 씨앗으로 익었댔지.   ―그럼 그럼 우린 형제야.   이런 말도 들려 온다. 사람이었다면 서로 손을 잡아보고 끌어안기도 할 것이다. 이런 나무의 심정을 아는 이가 시인이다.     나무끼리   산에 가면   나무끼리   주고 받는 말이 들리네.   ―잎을      내 놔 봐라.   ―꽃을     피워 보자.   잎이 같을 때   나무끼리 반갑네.   꽃이 같을 때   더욱 반갑네.   나무는   같은 나무 아니면   꽃가루를 나누지 않네.   같은 나무끼리는   멀리서도   잎을 흔들어 서로 반기네.   한 날 한 모양의 열매를 다네.   ―너는 형제다.     너는 내 형제.   추운 겨울을 눈 속에 떨면서도   같은 나무는   그 나무끼리   서로 생각하네.   목이 메이네.   이 시는 산에 가서 나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시로 옮긴 것이다.     첨성대   눈을 감으면   들리는 듯하네.이 돌을 다듬을 때   울리던 정 소리.   이 돌을 쌓을 때   메기던 노래들이.   신라의 옷을 입은   그 때 아이들이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겠지.   이 돌을 다듬고 쌓는 것을.   이 돌이 쌓여지던 날   어여쁜 그 때의 여왕님이   금관을 쓰고   비단 수레를 타고 와   첨으로 불러 줬겠지   첨성대란 이름을.   그 날부터 점잖은 학자님들이   여기서 밤마다 별을 바라보고   저 많은 별의 이름을 지었겠지.   저 별을 바라보고   별자리를 그렸겠지.   그리고   그 넓은 우주 안의   작은 자기를 생각했겠지.   거기 비하면   이 서울도   신라도   얼마나 작은 겔까 생각했겠지.   이 시는 지은이가 첨성대를 바라보고 지난 날을 미루어 생각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 첨성대에게 물어보아 첨성대가 대답하는 것을 적은 것이다.   경주에 가는 길이 있으면 누구든지 첨성대 앞에 서서 조용히 눈을 감으면 이런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첨성대이다.   ―내 몸뚱이의 돌은 정으로 다듬었지. 옛날 신라의 석수장이들이 말이야.   ―그것을 쌓으면서 메기던 노래들이 아직도 들려.   ―내 이름은 선덕여왕이 지어 주셨지. 그 날 비단 수레를 타고 오셔 처음「첨성대다!」하고 내 이름을 부르셨어.   이렇게 첨성대가 시인의 귀에 일러 주는 그것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 이 작품이다. (1979년 여름『아동문학평론』제12호)   동시 창작법 ⑤ 손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신 현 득   사람의 손이 작용을 해 주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수레는 밀어주어야 움직인다. 사람의 손이 미는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는 운전기사의 손에 의해 움직인다.   양말은 손이 있어야 신을 수 있다. 양말 스스로 발에 와 신겨지는 법은 잘 있지 않다.   청소할 때의 빗자루 역시 그렇다. 손이 들어야 비로소 방의 먼지를 쓸어낸다. 의사의 주사기도 그렇다. 의사의 손이 있어야 주사약을 혈관에 넣어 사람을 치료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팽이도 그렇다. 팽이채를 쥔 손이 있어야 팽이가 맴을 돌 수 있다.   바느질할 때의 바늘도 그렇다.    밥 먹을 때의 숟가락도 그렇다.   가위도 그렇다. 송곳도 그렇고 책상의 빼닫이도 그렇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모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손 이상 가는 보배가 없다고 한다.   인류는 손이 있음으로써 지구를 지배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이 때 손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세상의 움직임에서 세상을 생각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는 이름 그대로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 즉 「자동차」가 된다. 운전기사의 손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양말은 스스로 발에 와 신겨지는 것이 된다. 빗자루는 혼자 걸어다니게 된다. 팽이는 혼자서 맴을 돌게 된다.   바늘은 혼자서 바느질을 하게 된다. 숟가락은 혼자서 밥을 뜨게 되고 송곳은 혼자서 구멍을 뚫게 되고 빼닫이는 저절로 열리고 저절로 닫긴다.   그것뿐인가? 컵은 사람에게 물을 마셔주고 귀비개 혼자서 귀를 후벼주고 호미는 혼자서 밭을 맨다.   만일 이런 세상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재미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시를 쓸 때 특히 동시를 쓸 때 이 사람의 손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건은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런데 그 손의 동작을 꼭 그대로 표현하는가?   가령 여기 감나무가 있다고 하자. 감나무는 가을에 많은 감을 열었다. 빨갛고 탐스러운 감이다.   감을 따고 싶다. 그런데 감이 스스로 움직여 줄 리 없다.   「감아 내려오너라. 가지에서 내려오너라.」   이렇게 말해봐야 감이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제 스스로 중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는 가지에 매달려 있다. 사람이 말한다 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사람이 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딴다. 감을 따는 「감집게」라는 것이 있다. 긴 대나무장대 끝에 작은 그물을 달아 감이 떨어져 깨어지는 걸 막는다. 그래 이 감집게로 감을 하나씩 담아 가지를 비틀어 꺾어 내린다.   감을 따는 것은 이렇게 복잡하다. 이 과정을 시로 표현해 보자.       나무에 올라가        빨간 감을 따        광주리에 담고        ……………….   이런 시의 구절이 된다.   그런데 이 때 손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의 손을 생각지 않고 장대 끝에 달린 감집게도 생각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감은 제 스스로 나무에서 내려와 광주리에 담긴 것이 된다.   이 때의 시구절을 생각해 보자.       빨간 감이        나무에서 내려와        광주리에 쌓이고….   아무래도 감이 제 스스로 내려왔다는 표현에 맘이 끌린다.   이 경우에서는 손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 된다.       소 등을 타고 오든지       지게 위에 놓여 오든지       시월에        대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봄에 나갔던 씨앗이        몇 백 배의 열매를 거느리고       들어와 이엉을 쓰고 쌓이고       산에서 여문 도토리도        멍석에 널리고       가을 씨앗이 대신 나가       이랑에 묻히고 나면       텅 비어버린 들판.   10월을 노래한 시의 구절이다. 10월이 마당이다. 추수를 해들이는 광경이다. 어느 것이나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이다. 실어 들이는 것도 져 들이는 것도 그렇다. 가을 씨앗을 묻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곡식이 소 등이나 기게 위에 놓여 스스로 들어와 마당에 쌓이는 것처럼 표현하고 보니 가을 마당이 더 실감되는 것 같다.   ―연필이   공책 위를 걷는다.   이런 시의 구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다. 논리만을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연필이 어떻게 걸어다녀? 사람의 손이 잡아주는 거지.』   이렇게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표현은 엉터리요 억지라고 우길 수도 있다.   ―지우개가   글씨를 지우다.   이런 시의 구절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된다.   『지우개가 어떻게 글씨를 지워? 사람이 손으로 지우개를 잡아주는 거지.』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시는 과학이나 논리가 아닐 수도 있다. 과학이나 논리를 초월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 것, 산 것이 아닌 것, 숨쉬는 것, 숨 쉬지 않는 것, 생각을 가진 것,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 말을 하는 것, 말하지 않는 것을 구별해 생각지 않는다.   또한 모두가 생명있는 것이며, 숨쉬는 것이며, 같이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연필이 공책 위를 걷기도 하는 것이다. 지우개가 스스로 글씨를 지우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입장에 눈의 위치를 두어야 한다.       학교는 제 시간에       품을 연다.       교문이 문짝 두 개를        열어젖혔다.       학교 이름을       커다랗게 가슴에 달고       교문은 아침마다       교장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교장 선생님의 눈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마음 속을 읽는다.       첫 번째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       완장을 팔에 감은       선도 반장.       그러다가 학교 앞에       줄이 이어진다.       집에서 밭갈이를       거들던 아이       그 아이는        손마디가 텄다.       저녁 썰물에       조개를 캐던 아이       그 아이 손에는        개흙이 묻었다.       그러나 더러는       숙제를 잊은 아이       그렇지만 그 아이도       들여보내고       집은 가까워도        정해 논 지각생       그렇지만        그 아이도 들여보내고       학교의 품은 크다.       참새가 우짖고       아침해가        산 위에 한 뼘.       그래도 오는 아이가 없나?       살피며        교문은        두 개 문짝을 닫는다.   이야기가 담긴 이런 시를 읽고도   『뭐가 이래? 교문이 문짝을 열어젖혔다니?』   이런 말을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도 사람을 손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시가 되어 있다. 교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훨씬 더 시다운 표현이 되었다는 결론이다. 시를 이해하는 어린이라면 여기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침에 교실에서       철수가 책보를 푼다.       같이 쌓여 온       풀 냄새가 한 보자기.       영희가 보자기를 풀었다.        들에서 같이 쌓여온 새 소리       ―찌찌꼴 찌찌꼴 찌찌꼬르르르…       교실이 새소리로 찬다.       드르륵―       문을 열고 꽃다발이 들어온다.       학교 길에서 꺾어 모은 꽃다발.       하품만 하고 있다가       꽃병이 입을 벌려 받는다.       (하략)   5월의 교실을 노래한 이 시에서 「문을 열고 꽃다발이 들어온다」 「꽃병이 입을 벌려 받는다」의 두 구절을 두고 생각해도 그렇다.   전혀 사람의 손을 생각지 않는 데서 실감을 더 느끼게 한다.       골목에 아침에       대문이 열리며       아이 하나를 내보낸다.       저 집서도 대문이 열리며       아이를 내보낸다.       책가방을 맨 아이.       ―학교 가자.       ―안녕!       아이들은 골목을 나간다.       골목이 아이들을 내보낸다.       저 골목서도       아이들을 내보낸다.       책가방을 맨 아이들       참새 짹짹        우짖는 아침에       학교를 향하는       길다란 행렬.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있는 골목의 광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손을 생각지 않은 것이다.   손을 생각지 않을 때 대문이 아이를 내보내는 것이 된다. 작은 골목은 큰 골목으로 아이를 내보내는 것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세상은 하나의 요술나라 같기도 하다.    신은 사람의 발에 신겨 사람을 따라 다니게 된다. 신이 사람의 몸뚱이를 담고 다니는 것이다.   괭이는 제 혼자 일을 하게 된다. 사람의 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괭이가 제 스스로 흙을 파고 논밭을 가꾸게 된다.   크레용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는 스스로 곡을 연주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실에서 손이라는 관념을 지워버리고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는 것은 시를 짓는 한 방법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소재나 표현하는 각도에서 따라 이런 표현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손을 생각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손을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즉 사람의 손이 작용하는 소재가 아닐 때는 이런 입장의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거울 속에        우리 한 식구       정답게 살고 있어요.       새벽이면       거울 속에 불이 켜지고       엄마가 아침 쌀을 갖고 나가고       밥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아요.       거울 속에서        문이 열리고        아빠가 장난감 사가지고       들어오셔요.       거울 속을 들여다보면       거울에서 내다보는       내가 보여요.       거울 속에 내다보며       이쪽을 거울 속이라 생각겠지요.       우리를        그림자라 생각겠지요.   이 시는 거울 속의 세상을 두고 생각한 내용이다. 즉 이 소재에는 사람의 손이 작용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손이 있고  없고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1979. 겨울.  13호에서     동시 창작법 ⑥ 모든 것을 하나로만 본다 신 현 득     시를 쓰는데 있어서 비인격물을 인격화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세상을 하나로 보는 작업이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이 된 것이다.   비인격물의 인격화뿐만 아니라 인격체인 사람을 딴 것에 비유하는 것도 같은 작업이 된다.   내 한 몸뚱이가 사람이지만 나무일 수도 있고 돌일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일 수도 있고 햇볕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가 곧 돌일 수도 있고 돌이 나무일 수도 그것이 곧 내 몸일 수도 있다.   이것이 나와 남을 하나로 보는 작업이다.   비유라는 것이 또한 그렇다. ㄱ이 ㄴ에 비유된다는 것은 ㄱ과 ㄴ에서 같은 속성을 찾는 것이요 ㄱ과 ㄴ을 동일화시키는 작업일 수 있다.   역설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ㄱ을 지칭하기 위해 그와 반대가 되는 ㄴ을 가르치는 것은 ㄱ과 ㄴ을 같은 입장에서 하나로 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매우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밉다고 한다. 낮은 것을 오히려 높다고 한다. 흐르는 것을 멈추어 있다고 한다.   이 때 사랑과 미움은 같은 것이며 높은 것과 낮은 것은 같은 것이며 흐르는 것과 멈춤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원수와 친구가 따로 없고 나쁜 것 좋은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들어가고 나감이 없이 쪽 골라 보인다. 모두가 평등해 보인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눈이다.   이런 눈으로 죽음과 삶을 하나로 보자. 교장실의 시계 속 아득한 시간을 감은 태엽이 퇴근 시간을 치는 시간에 상당히 먼 옛날일 텐데 쉽게 와서 페스탈로찌 선생이 축하의 손을 잡았어요. ―중략― 벙글거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거느리고 교문을 나오셨을 때 기다리던 안데르센 할아버지가 불쑥 손을 잡았어요.   이 시는 유여촌 선생의 회갑을 축하하는 시의 몇 구절이다. 유 선생은 교단에서 회갑을 맞으셨다. 동화 작가다. 그러므로 페스탈로찌나 안데르센과 관계를 가진다. 그런데 페스탈로찌와 안데르센은 생존자가 아니다. 그러나 생과 사를 둘로 보지 않는다면 한자리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생사를 하나로 보았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곧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꿰뚫어 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다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고향 마을로 드는 오솔길에서 발가숭이 적 나를 만났네. 내 옛날을 만났네. 발가숭이 적 나와 손을 잡았네. 나와 같이 크던 산짐승 그들은 층바위에서 그대로 메아리를 부르며 살고 있었네.   고향에 돌아와서 옛일을 회상하는 장면을 노래했다.   "아, 옛날이 그립구나!"   이렇게 회고의 탄식을 하는 일은 너무도 바보스런 것이다. 10년 전, 20년 전, 30·40년 전의 일을 바로 오늘 이 시간 안에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과거와 현재는 바로 하나다. 그 때 그 옛날의 나와도 만날 수 있다.   이런 눈으로 먼 데 가까운 데를 하나로 보고자 아주 거리 감각을 없애는 것이 좋다. 선생님이 걷는 길은 교실과 교실 사이 쪽지 한 장을 들고 산을 넘는다. 한 교실 두고 온 아이들이 되돌아보며 울며 울며 걷는 걸음도 새 소리 솔바람이 길을 이끌어 쉽게 쉽게 발이 놓인다. ―중략― 산꿩이 우는 골을 내려다보니 학교 두 교실이 가지 끝에 와 보이고 산토끼들이 모이라는 듯 ―땡 땡 땡. 학교 종이 울린다.   발령장을 들고 먼 산골로 전근가는 교사의 심정을 노래했다. 여기서 교사가 걷는 길을 교실과 교실 사이라 했다. 이것은 전에까지 근무했던 교실과 이동해서 근무해야 할 교실의 사이다. 사실 교실과 교실 사이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먼 것 가까운 것을 하나로 보지 않았을 때는 이 사실을 발견할 수가 없다. 엄마는 가지 많은 나무 오빠의 일선 고지서 소총의 무게 절반을 오게 하여 가지에 단다.   어머니를 하나의 나무에 비유한 이 시에서 소총의 무게 절반을 가지에 단다는 구절을 음미해 보자. 일선 고지와 나무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그 멀리에 있는 소총을 끌어 오는데 있어 마치 옆에 있는 물건을 거머쥐는 듯이 표현했다. 거리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보면 많고 적은 것이 하나로 보인다. 전체와 부분이 하나로 보인다. 전체는 부분인 동시에 또한 전체다. 1은 10과도 같지만 또한 1이 된다. 수에 대한 관념을 아주 없애는 것도 좋다. 나의 하나는 바다로 보내고 나의 그 하나는 산으로 보내고 나의 또 하나는 오지 않는 내일에도 보내어 두고 나는 누워서 그들을 보네. ―중략― 그러나 바다에서 가지고 온 것 그러나 산에서 가지고 온 것 내일에서 가지고 온 것을 틀리지 않게 내 안에 쌓아 두네. 그것들이 작게 나를 이루네.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자라고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이 시에서는 외부에서 받아들여진 것이 쌓여서 나를 형성하고 있다. 이 때 나는 하나이지만 사실 열도 되고 백도 된다. 그것이 모두 또한 나다. 그 많은 나가 하나인 나 안에서 나타나 외부와 작용을 하고 있다.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생각이 미치는 데까지를 쏘다닌다.   하나인 나는 누워서 여럿인 나를 본다. 이것들은 내가 생각을 거두었을 때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해서 보면 나는 하나라고 우길 수가 없다. 어째서 내가 하나뿐이란 말인가?   이런 눈으로 형체가 있는 것 없는 것을 하나로 보자. 아기 울음이 바위에 스며들어 다져집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차례로 스며들어 다져집니다. 바위도 내일부터 입을 다물면 박혁거세가 날 때까지 견뎌냅니다.   석기시대의 어느 날을 노래한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이 아기 울음과 이야기다. 울음은 형체가 없다. 이야기도 형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액체의 형태가 되어 바위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계절은 오다가 강가에 머물러 남몰래 배에 실려 건너옵니다. 남쪽 나라 건너 북쪽 나라로 살구꽃이 차례로 꽃잎을 엽니다. ―중략― 저녁 해에 돌아오는 시골 장꾼의 시끄런 사투리도 한 배 가득 건넙니다. 산 넘어 사라지는 해그림자도 강가에 머물러 배를 탑니다.   여기서 「계절」이란 말을 두고 생각하자. 계절은 물체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배를 탄다는 것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는다.   사투리도 부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배에 실린다는 것이 어색하기는 커녕 아름답고 재미있게만 들린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지 않는 걸 쌓아도 부피와 무게가 된다. 나무― 그 많은 잎에는 종일 햇살이 와서 만져집니다. 송아지 우는 소리 학교의 종소리가 와서 만져집니다. 그것뿐이었습니다. 그것뿐인 그것이 나무에게는 가지 끝에 무게가 되어 달립니다. 가슴 둘레가 커집니다.   이 시는 햇살이나 송아지 울음, 학교의 종소리 같은 것이 쌓여 무게를 갖는 과정을 노래했다. 재미있는 생각이라 느껴지는 것이다. 햇볕은 물 위에 쌓인다. 따뜻하다. 햇볕은 피라미 새끼의 체온이 된다. 햇볕은 붕어 새끼의 체온이 된다. 따뜻하다. ―중략― 바람 소리 새 소리가 물 밑에 쌓인다. 물 소리가 커진다.   봄 개울을 노래한 것이다. 형체가 없는 햇볕이나 바람 소리·새 소리가 물밑에 쌓이면서 부피를 느끼게 한다. 그 부피는 커지는 물 소리에서도 나타나 있다. 도라지 뿌리가 기지개 켜는 소리도 모이면 커다란 메아리가 됩니다. 소나무 큰 뿌리에 물 오르는 소리도 모이면 커다란 메아리가 됩니다. ―중략― 새 움의 입김이 모여 하얀 안개가 산을 감고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봄 산의 광경이다. 도라지가 기지개 켜는 소리, 소나무에 물 오르는 소리들이 모인다. 메아리가 커졌다는 데서 그 부피를 느끼게 한다. 새 움의 작은 입김들이 모여 산을 감을 수 있는 커다란 안개를 이룬다. 입김의 부피가 쌓인 것이다.   액체는 그 온도에 따라 기체가 되든지 고체가 된다. 그래서 물은 얼어서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증기가 되고 구름이 된다. 바위는 부서지면 돌이 되고 돌은 모래가 되고 다시 부서져 흙이 된다. 그러나 세상을 하나로 보면 변화가 일정하지 않다. 모든 것은 하나이며 같은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물은 같은 것이어서 서로 변하면서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키가 되어 크는가? 길가에 우는 아기를 달래어 준 일. 아, 그런 것이 조그맣게 내 위에 와서 쌓이네. 자는 사이 밤 사이에   이 시에서는 착한 일 한 것이 쌓여 키가 되고 있다. 키 크는 원인이 착한 일 한 것에 있는 것이다. 영양분이 쌓여서 키를 이룬다는 생각이 아니지만 거짓말로 느껴지지 않는다. 종일 뻐꾸기 수다스런 울음이 한 개씩 머루 알이 돼 열리고, 종일 푸르른 산의 색깔이 바위 틈 물소리로 돼 들리고,   여름 산의 정경을 읊은 것이다.뻐꾸기 울음이 머루 알이 되고 산의 빛깔이 물 소리가 된다.   이런 눈으로 주위를 살피면 도대체 불가능이란 것이 없다. 온갖 조화를 다 가지게 되는 것이어서 홍길동이라도 된 기분이다.      (1980년 봄 『아동문학평론』 제14호)   동시 창작법 ⑦ 의인(擬人)에는 난이도(難易度)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신 현 득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해를 그리기 좋아한다. 그리고 해에다 눈이나 귀·코·입들을 그려 넣는다.   이것은 해에게 사람의 모습을 주려는 생각이 작용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미분화된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나 자기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즉 그들의 사고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생각하고, 말하고, 웃고, 동작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에게도 얼굴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특히 나이 어린 아이일수록 그들은 철저히 의인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해 시를 쓸 때 철저히 의인을 하라는 말은 이런 어린이의 심리를 이용하자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의인화된 것일수록 거기서 재미와 친밀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하지만 사납고, 불결하고, 잔인한 동물의 그 성질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동물에게 사고력·웃는 모습 등 사람이 가진 능력을 모두 주어 놓고 동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사고에서 느껴지는 동물은 언제나 어느 정도 의인이 된 동물이다.   이와 같은 어린이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 동물 만화다. 그러므로 동물 만화는 문장상의 의인법을 그림에 적용시킨 것이다. 즉 동물 만화는 의인된 그림인 것이다.   세계 어린이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미키마우스는 손과 발을 가지고 있고 아래 윗도리 옷을 차려 입은 새양쥐다. 이 의인된 동물은 말도 잘하고 영리하며 비상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만화가가 미키마우스에게 손과 발과 옷과 판단력을 주었으므로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는 동물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키마우스는 하수구에 버리는 음식찌꺼기나 찾아다니는 불결하고 연약한 새양쥐가 아니다.   그러면서 화가들은 동물에게만 의인법을 쓰는 것이 아니다. 연필이나 돌멩이·나무, 심지어는 물방울에까지 의인법을 적용시켜 보는 것이다.   이 때는 대개 연필이나 돌멩이·나무·물방울에게 눈·코·입 등을 곁들여서 얼굴을 만들어 주고 때에 따라서는 팔과 다리를 그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동물의 경우에서처럼 실감이나 친근감이 덜하다.   왜 그럴까?   여기서 우리는 사물의 속성이 사람과 닮아 있는 것일수록 의인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인형이 웃는다.   ―나무가 웃는다.   ―돌멩이가 웃는다.   ―물방울이 웃는다.   위의 네 가지 표현을 읽어보면 의인에도 어렵고 쉬운 정도, 즉 난이도(難易度)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표현 가운데 에 가장 공감이 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 공감을 주기까지는 거기에 상당한 상황 설명이 따라야 한다. 그래도 그것이 실감있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철저히 의인을 하라는 말과는 상대적으로 덮어놓고 의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비가 온다. 마당이 운다. 빗방울을 맞아 마당이 운다. 빗방울을 빗방울을 자꾸 맞으며 「앙 앙!」운다. 비가 개었다. 울던 마당이 이제 살았다고 활짝 웃었다.   이 시는 놀랍지도 못한 글이지만 마당을 의인한데서 더욱 어색한 느낌을 갖게 한다.   마당은 입체가 아니다. 사람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여기에 인격을 주어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어 생각하는데 저항을 느낀다. 따라서 마당이 운다는 표현이나 웃는다는 말이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감 감나무 빨간 감은 여러 형제다. 형아, 아우야, 부르며 익는다…….   감나무에 달린 감은 의인화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감이 가지고 있는 모양과 몸빛깔에서 사람과 닮은 요소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을 아주 닮아버린 인형에서 더욱 실감과 재미를 느낀다.   인형 내 다리로 달리게 해 주세요. 내 팔을 움직이게 해 주세요. 정말이어요. 나를 예쁘다 칭찬만 하지 말고 나를 걷게 해 주세요. 영이를 따라 학교에도 가고 싶어요.   이 인형의 호소는 실감나게 들린다. 그것은 인형이 아주 어린 아이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인을 하는데서는 이 세 가지 소재의 경우서만 보아도 「마당 < 감 < 인형」의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종이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연기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배추잎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비닐끈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그런데 연상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사람과 닮은 데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하면 이런 것은 거의 의인이 되지 않는다.   ―도토리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돌멩이를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연필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공을 사람이라 생각해 보자.   이 경우는 그래도 앞의 네 가지 경우보다 연상이 잘 된다. 의인이 쉬운 것은 어느 정도 입체물이어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입체물이라 해서 사람의 성질을 다 가진 것이 아니다. 모든 각도로 다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중요한 말이다.   ―돌멩이가 운다.   ―돌멩이가 웃는다.   ―돌멩이가 노래한다.   ―돌멩이가 성낸다.   ―돌멩이는 야물다.   ―돌멩이는 구른다.   ―돌멩이는 달린다.   ―돌멩이는 부딪힌다.   위의 는 모두 사람의 성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돌멩이의 속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 등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돌멩이는 야물다. 그리고 동글동글하다. 그리고 잘 구른다. 구르다 보면 다른 물건들과 부딪히길 잘 한다.   그러므로 돌멩이를 의인할 경우 이런 돌멩이의 성질에 맞추어야 한다.   돌멩이 ① 돌멩이가 굴렀다. 산위에서 굴렀다. 냇물에 퐁당 빠졌다. 고기들이 깜짝 놀랐다.   돌멩이 ② 돌멩이가 말했다. 항아리가 말했다. 돌멩이가 대들었다. 커다란 항아리가 빌었다.   이상의 작품은 돌멩이의 성질을 잘 알아서 의인했기 때문에 실감과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돌멩이가 갖는 성질과 맞지 않을 때는 저항을 느끼게 된다.   돌멩이 ③ 냇가에 돌멩이가 뙤약볕을 쬐었다. 몸뚱이가 뜨끈뜨끈 달아 올랐다.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갔다. ―시원해요, 시원해요.   아이고 시원해. 돌멩이가 좋아서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 돌멩이가 노래를 불렀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노래라는 것이 돌멩이의 특성에는 맞지 않아서이다.   어떤 사물이나 소재가 사람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의 사물은 사람과 같은 성격을 몇 가지는 지니고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가령 라는 소재가 있다면,   ○ 무게가 있다.   ○ 입을 다물고 있다.   ○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 간사한 말로 꾀어봐야 잘 넘어가지 않는다.   ○ 많은 일을 참는다.   ○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 오랜 세월 견뎌낸다. 와 같은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의 방향으로 의인화해서는 바위의 이미지를 살릴 수 없다.   「꽃이 웃는다」는 것은 꽃의 빛깔의 밝기와 꽃의 모양과 사람의 웃는 모습과 사람의 입모양이 연관되므로 이루어진 표현이다. 세상의 꽃이 모두 어두운 검정색이었다면 꽃이 웃는다는 표현이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꽃의 모양이 꽃잎을 벌린 모양이 아니고 태초부터 주먹이나 공과 같은 모양이었다면 꽃이 웃는다는 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같은 밝은 빛깔을 띤 전깃불이나 초롱불을 보고 「전깃불이 웃는다」「초롱불이 웃는다」라고 말하고 보면 어색하게 들리는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모양이야 어떻게 생겼든, 또는 형체가 없는 추상물일지라도 그 소재가 사람을 닮은 성질이 강하면 그 성질의 방향으로 의인이 쉽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질이 강할 때만 있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천둥 소리」나「바람」은 형체를 따질 수 없지만 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의인이 되고 또한 실감을 느낄 수 있다.   천둥이라면,   ○ 고함 소리   ○ 무서운 목소리   ○ 성낸 목소리 등으로 의인이 쉽게 된다. 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하여 씌어진 작품을 살펴보자.   천둥 누군가 하늘에서 소낙비 오는 날 성이 났다. 먹구름 속에서 소리를 친다. 겁먹은 나무들이 비를 맞는다.   바람의 경우에도 그렇다.   ○ 나뭇가지를 흔든다.   ○ 세상을 바쁘게 돌아다닌다.   ○ 아무것이나 만져보고 쓰다듬는다.   ○ 물위를 걸어다닌다.   등이 바람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이런 방향으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바람 ① 감나무 잎을 흔들어 보다가 잘못해 「톡!」 풋감 한 개 떨어뜨리고, 개암나무 가지를 흔들다가 잘못해 「톡!」 개암 한 알 떨어뜨리고.   바람 ② 바람이 물 위로 걸어간다. 물 위로 발을 끌며 걸어간다. 바람의 발끝에 걸려 물결이 사르르 일어난다.   바람 ①에서는 바람의 손을 생각했고, ②에서는 바람의 발과 발끝을 생각했으나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그럴 만한 조건만 있다면 어느 소재를 어느 경우에서나 의인화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도 한다. 이것은 돌멩이가 웃는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라면 돌멩이가 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보기를 들어보자.   ―나무가 소리를 듣는다.   이 한 구절의 표현으로는 약간 어색하게 들리는 싯구도 여기에 그럴 만한 분위기, 즉 그럴 만한 이유를 설정해 줌으로써 어색하게 들리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작품을 한 편 살펴보자.   달밤의 나무 달이 뜨면서 나무의 영혼이 가지 끝에 나와 반짝이게 되면서 나무는 귀가 열린다. 개울가 물소리를 알아듣는다.   이 시에서 나무가 물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은 달이 떴다는 사실 때문이다. 달이 뜸으로써 나무의 영혼이 가지 끝에 나와 달빛에 반짝이게 되고 영혼의 문이 열리면서 나무는 귀로써 개울물 소리를 듣게 된다. 이렇게 그럴사한 분위기를 설정해 놓고 보니 나무가 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되돌아 생각해 봐야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인에 난이도(難易度)가 있다는 말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결국 시에는 방법이 많으면서 별다른 방법이 따로 없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1980년 여름 『아동문학평론』 제15호)   동시 창작법 ⑧ 표현(表現)과 객관성(客觀性)의 사이 신 현 득   작품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독자인 어린이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공감이란 독자가 그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같은 걸 느끼는 일이다.   ―그것 참 그렇겠다!   ―참 재미있네!   ―나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더니!   이렇게 감탄사를 내면 이는 독자가 작자의 작품에 동조하는 이상의 것이 되지만 아무 저항 없이 읽고 작가의 뜻이 전달되기만 해도 이것으로 공감이 된 것이다.   작가의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 독자는   ―이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시원치 못한 글 같다.   ―어색하다.   이렇게 느낀다. 이 때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 작가의 체면을 위해 그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내심으로는 좋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이 작품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독자도 그 계층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독자, 아동문학 작품을 꼭 읽어야 할 독자를 상대했을 경우를 뜻한다.   대체로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는 표현에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품이 주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남이 정말 내 생각에 동조할까? 공감해 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독자에만 영합해서 글 아닌 글을 써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습작기의 경우 이것이 참으로 힘드는 과정이 된다.   습작기의 경우 대개 그 작품이 자기 위주의 주관이 되기 쉽다.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물론 표현의 미숙에서 온다. 그래서 남이 읽어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습작기를 벗어났다 해서 반드시 객관성이 있는 글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관과 객관을 어느 정도 일치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 두 가지 관점의 일치가 이루어질수록 그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공감을 하게 되고 공유의 것이 된다.   여기에 남의 예를 들 것이 아니라 내 습작기의 노우트를 뒤져 한 작품을 꺼내어 보자.   박덩굴 박덩굴이 지붕에 올라갔다. 높은 지붕 마루에 올라갔다. 어떻게 어떻게 올라갔나? 사다리를 놓아주어 올라갔다.   놀랍지 못한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해되지 않을 구절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쓰고 몇 해 후에 느낀 것은 는 두 행이 독자들에 그릇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들은 문면에 나타난 대로 사람이 정말 사다리를 놓아주어 박덩굴이 며칠 동안 쉬엄쉬엄 지붕까지 기어올라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표현한 의도는 그와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것이지만 박은 대개 뒤안에 심어 지붕으로 올린다. 박이 자라서 덩굴손을 휘두르게 되면 지붕까지 올라가는 덕을 만들어 준다. 나뭇가지나 막대기 또는 못쓰는 장대 같은 것으로 덩굴손을 이끌어 지붕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때 지붕에 걸쳐준 그 나무막대기는 바로 박덩굴의 사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의 문면에 그것을 깨우치거나 힌트를 줄 만한 낱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나는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여태 나를 휩쓸던 영감이나 환상 같은 것을 완전히 가라앉혀 놓고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게 되었다.   일단 작자가 아닌 독자의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볼 때 내 작품은 모순투성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작품을 보기로 하자.   꽃나무 가지 꽃나무가 흔들리네. 꽃가지가 흔들리네. 바람이 살짝 밀어주네. 꽃냄새가 풍겨오네. 꽃가지를 뛰어오네. 바람이 살짝 날라다주네.   언뜻 읽어서 무난한 글 같지만 나는 얼마 후 이 글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물론 독자가 되어 이 작품을 완전히 객관적인 자리에 두고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하는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꽃향기가 꽃가지에서 나의 코에 와 닿는 상태를 표현했던 것이다. 누가 이 문맥을 그렇게 인정해 주겠는가. 나 혼자 도취되어 지껄인 나 혼자만 아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 내 작품의 두 가지 예를 들어둔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습작기의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이 많지만 습작기의 사람이 아닌 누구의 작품에도 이런 면이 더러는 있을 수 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요즘 동시가 난해하다느니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미숙한 표현, 즉 객관성이 없는 표현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시가 되지 않아 독자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체의 독자가 시에 소양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즉 작품이 되었느니 어떠니 하고 따질 능력이 없어 털어놓고 어렵다 모르겠다고만 하는 것이다.   응모되어 오는 작품을 살펴보면 객관성이 없는 표현인 경우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낱말이 제자리를 찾아앉지 못한 것이다. 낱말이 뜻하는 의미, 낱말에서 풍기는 분위기, 이미지 등을 깊이 생각지 않았을 때다. 시에서 비슷한 말은 안 된다. 비슷한 말은 같은 말이 아니며 같은 말이란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 맞는 하나뿐인 낱말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지나친 과장이다. …… 등은 주위의 분위기를 여간 잘 끌어가지 않고는 과장된 것으로 읽혀지게 된다.   다음은 몇 구절의 표현은 좋으나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는 시의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 수가 있거나 동강이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표현에 통일성이 없는 것이다. 어느 부분은 직관적이다가 엉뚱한 데 하나가 추상물이 돼버리는 경우다. 어느 부분은 시가 돼 있고 어느 부분은 산문이 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표현에 보편성이 없는 것이다. 나팔꽃이 위로만 감아 올라가는 것은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래로 감아 내려가는 것을 하나 보았다 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예와 같은 것이다.   다음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밤 하늘에 은하수가 떴다든가(새벽이 되면 뜰 때도 있지만) 압록강이 천지에서 흐른다든가 하는 표현은 모두 관찰 부족·조사 부족에서 온 것이다. 작가는 어떤 씨앗이 언제 싹트며 어느 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가를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도덕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이다. 이웃집의 감을 따먹는다든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심한 장난을 하는 것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   다음은 아동 심리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아예 아동문학이라는 딱지를 떼어야 하며 동시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때 이런 초심자에게 우리는   ―알맞은 낱말을 찾아라.   ―알맞은 표현을 찾아라.   ―지나친 과장을 삼가라.   ―부분을 두고 전체를 생각하라.   ―표현에 통일성을 두라.   ―표현은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사실에 근거를 두라.   ―도덕성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아동 심리에 근거를 두라. 하고 일러준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말은 표현에 객관성을 두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라는 말이 된다. 나 하나의 생각으로 작품을 쓸 것이 아니라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써라는 말이 된다.   겨울의 노래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수정보다 맑은 한얼음 유리판 위로 식식식 달리며 커다랗게 그려보는 오색 무지개. 눈이 오면 눈싸움 편을 갈라서…… 눈싸움에 지치면 썰매를 탄다. 야호야호 달리는 썰매. 바람이 부는 날은 연을 날린다. 팽팽한 연줄을 감을 때마다 연도 즐거워 붕붕거리며 하늘 복판에서 노랠 부른다. 팽이도 쳐야지 양지바른 골목에 함께 모여서 윙윙 우는 팽이의 노래 윙윙 우는 겨울의 노래. 처마마다 기다란 수정 고드름 한 개씩 꺾어내어 골목마다 전쟁놀이도 신나지.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이 작품은 4학년 국어 교과서 12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시 한 편이다.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작품이라면 어린이들에게 본보기글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분위기는 되어 있으나 몇 구절의 표현이 모호해서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아동문학 세미나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말이 나와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난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예문으로 든 것이다.   이 시의 의 부분이 모호한 것이다.   얼음판 위에 무지개를 그려 본다는 이 대목을 두고 교사들의 생각이 구구한 것이다.   어떤 교사는 이 무지개라는 표현이 스케이트의 자국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케이트의 빙 돌아가는 자국이 마치 무지개의 곡선과 같지 않느냐고 한다.   그럼 「오색」이란 수식어를 왜 끼웠느냐는 말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으니 무지개 같지 않느냐고 한다.   또 어떤 참고서에는 이 오색 무지개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스케이트를 타게 될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해석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가루가 해에 비쳐져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시는 이런 입장에서 표현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표현은 보편성을 잃었다.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프리즘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린이에게 스케이트를 지도하던 교사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하나의 구절 때문에 야단이다. 표현이 전혀 객관화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로부터 공감이 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라 한 것이다. 겨울의 노래라 했다. 팽이 우는 소리를 정작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해도 그것을 노래에 비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얼음판 위에서 돌리는 팽이라 해도 팽이가 노래로 흥겹게 들릴 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윙―」 소리를 몇 초 동안 내고 만다. 이것을 겨울의 노래라 표현한 것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색한 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로 비유한다면 선풍기 도는 소리·기계 소리·비행기 소리를 모두 노래로 보아야 한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분위기만으로는 동시가 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표현만으로도 동시가 되지 않는다. 하는 주장은 모두 객관성이 있는 문장이 되게 하자 그 소리다.    (1980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16호)   동시 창작법 ⑧ 표현(表現)과 객관성(客觀性)의 사이 신 현 득   작품은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독자인 어린이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 공감이란 독자가 그 작품에 대해서 작가와 같은 걸 느끼는 일이다.   ―그것 참 그렇겠다!   ―참 재미있네!   ―나는 미처 생각지 못 했더니!   이렇게 감탄사를 내면 이는 독자가 작자의 작품에 동조하는 이상의 것이 되지만 아무 저항 없이 읽고 작가의 뜻이 전달되기만 해도 이것으로 공감이 된 것이다.   작가의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 독자는   ―이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이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시원치 못한 글 같다.   ―어색하다.   이렇게 느낀다. 이 때 작가가 옆에 있다면 그 작가의 체면을 위해 그 말을 직접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내심으로는 좋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이 작품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물론 독자도 그 계층에 따라 작품을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나 여기서는 일반적인 독자, 아동문학 작품을 꼭 읽어야 할 독자를 상대했을 경우를 뜻한다.   대체로 시가 독자에게 공감되지 않을 때는 표현에 객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작품이 주관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남이 정말 내 생각에 동조할까? 공감해 줄까?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독자에만 영합해서 글 아닌 글을 써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습작기의 경우 이것이 참으로 힘드는 과정이 된다.   습작기의 경우 대개 그 작품이 자기 위주의 주관이 되기 쉽다.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은 물론 표현의 미숙에서 온다. 그래서 남이 읽어보면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습작기를 벗어났다 해서 반드시 객관성이 있는 글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관과 객관을 어느 정도 일치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 두 가지 관점의 일치가 이루어질수록 그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공감을 하게 되고 공유의 것이 된다.   여기에 남의 예를 들 것이 아니라 내 습작기의 노우트를 뒤져 한 작품을 꺼내어 보자.   박덩굴 박덩굴이 지붕에 올라갔다. 높은 지붕 마루에 올라갔다. 어떻게 어떻게 올라갔나? 사다리를 놓아주어 올라갔다.   놀랍지 못한 작품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해되지 않을 구절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쓰고 몇 해 후에 느낀 것은 는 두 행이 독자들에 그릇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독자들은 문면에 나타난 대로 사람이 정말 사다리를 놓아주어 박덩굴이 며칠 동안 쉬엄쉬엄 지붕까지 기어올라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표현한 의도는 그와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것이지만 박은 대개 뒤안에 심어 지붕으로 올린다. 박이 자라서 덩굴손을 휘두르게 되면 지붕까지 올라가는 덕을 만들어 준다. 나뭇가지나 막대기 또는 못쓰는 장대 같은 것으로 덩굴손을 이끌어 지붕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 때 지붕에 걸쳐준 그 나무막대기는 바로 박덩굴의 사다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 혼자의 생각이었다. 주관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의 문면에 그것을 깨우치거나 힌트를 줄 만한 낱말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크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부터 나는 작품이 일단 완성되면 여태 나를 휩쓸던 영감이나 환상 같은 것을 완전히 가라앉혀 놓고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내 작품을 바라보고 수정하게 되었다.   일단 작자가 아닌 독자의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볼 때 내 작품은 모순투성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작품을 보기로 하자.   꽃나무 가지 꽃나무가 흔들리네. 꽃가지가 흔들리네. 바람이 살짝 밀어주네. 꽃냄새가 풍겨오네. 꽃가지를 뛰어오네. 바람이 살짝 날라다주네.   언뜻 읽어서 무난한 글 같지만 나는 얼마 후 이 글에서 모순을 발견했다. 물론 독자가 되어 이 작품을 완전히 객관적인 자리에 두고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하는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꽃향기가 꽃가지에서 나의 코에 와 닿는 상태를 표현했던 것이다. 누가 이 문맥을 그렇게 인정해 주겠는가. 나 혼자 도취되어 지껄인 나 혼자만 아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지만 우선 내 작품의 두 가지 예를 들어둔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습작기의 사람들에게 이런 표현이 많지만 습작기의 사람이 아닌 누구의 작품에도 이런 면이 더러는 있을 수 있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요즘 동시가 난해하다느니 하는 것도 사실은 이런 미숙한 표현, 즉 객관성이 없는 표현이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시가 되지 않아 독자에게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무슨 뜻인지 모르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전체의 독자가 시에 소양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즉 작품이 되었느니 어떠니 하고 따질 능력이 없어 털어놓고 어렵다 모르겠다고만 하는 것이다.   응모되어 오는 작품을 살펴보면 객관성이 없는 표현인 경우는 여러 가지다.   첫째는 낱말이 제자리를 찾아앉지 못한 것이다. 낱말이 뜻하는 의미, 낱말에서 풍기는 분위기, 이미지 등을 깊이 생각지 않았을 때다. 시에서 비슷한 말은 안 된다. 비슷한 말은 같은 말이 아니며 같은 말이란 없기 때문에 제자리에 맞는 하나뿐인 낱말을 찾아야 한다.   다음은 지나친 과장이다. …… 등은 주위의 분위기를 여간 잘 끌어가지 않고는 과장된 것으로 읽혀지게 된다.   다음은 몇 구절의 표현은 좋으나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는 시의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 수가 있거나 동강이가 나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표현에 통일성이 없는 것이다. 어느 부분은 직관적이다가 엉뚱한 데 하나가 추상물이 돼버리는 경우다. 어느 부분은 시가 돼 있고 어느 부분은 산문이 돼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은 표현에 보편성이 없는 것이다. 나팔꽃이 위로만 감아 올라가는 것은 보편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래로 감아 내려가는 것을 하나 보았다 해서 그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예와 같은 것이다.   다음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 밤 하늘에 은하수가 떴다든가(새벽이 되면 뜰 때도 있지만) 압록강이 천지에서 흐른다든가 하는 표현은 모두 관찰 부족·조사 부족에서 온 것이다. 작가는 어떤 씨앗이 언제 싹트며 어느 나무는 언제 꽃이 피는가를 대강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다음은 도덕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것이다. 이웃집의 감을 따먹는다든지 아무 죄책감도 없이 심한 장난을 하는 것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   다음은 아동 심리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럴 때는 아예 아동문학이라는 딱지를 떼어야 하며 동시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때 이런 초심자에게 우리는   ―알맞은 낱말을 찾아라.   ―알맞은 표현을 찾아라.   ―지나친 과장을 삼가라.   ―부분을 두고 전체를 생각하라.   ―표현에 통일성을 두라.   ―표현은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사실에 근거를 두라.   ―도덕성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   ―아동 심리에 근거를 두라. 하고 일러준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말은 표현에 객관성을 두어 독자에게 공감을 주라는 말이 된다. 나 하나의 생각으로 작품을 쓸 것이 아니라 독자의 눈으로 작품을 써라는 말이 된다.   겨울의 노래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수정보다 맑은 한얼음 유리판 위로 식식식 달리며 커다랗게 그려보는 오색 무지개. 눈이 오면 눈싸움 편을 갈라서…… 눈싸움에 지치면 썰매를 탄다. 야호야호 달리는 썰매. 바람이 부는 날은 연을 날린다. 팽팽한 연줄을 감을 때마다 연도 즐거워 붕붕거리며 하늘 복판에서 노랠 부른다. 팽이도 쳐야지 양지바른 골목에 함께 모여서 윙윙 우는 팽이의 노래 윙윙 우는 겨울의 노래. 처마마다 기다란 수정 고드름 한 개씩 꺾어내어 골목마다 전쟁놀이도 신나지. 얼음이 얼면 얼어서 즐겁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즐거운 겨울은 우리의 세상.   이 작품은 4학년 국어 교과서 12페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시 한 편이다.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작품이라면 어린이들에게 본보기글로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그 분위기는 되어 있으나 몇 구절의 표현이 모호해서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아동문학 세미나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말이 나와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그래서 이왕 말이 난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예문으로 든 것이다.   이 시의 의 부분이 모호한 것이다.   얼음판 위에 무지개를 그려 본다는 이 대목을 두고 교사들의 생각이 구구한 것이다.   어떤 교사는 이 무지개라는 표현이 스케이트의 자국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케이트의 빙 돌아가는 자국이 마치 무지개의 곡선과 같지 않느냐고 한다.   그럼 「오색」이란 수식어를 왜 끼웠느냐는 말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으니 무지개 같지 않느냐고 한다.   또 어떤 참고서에는 이 오색 무지개가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스케이트를 타게 될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해석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가루가 해에 비쳐져 프리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시는 이런 입장에서 표현됐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표현은 보편성을 잃었다. 스케이트를 탈 때마다 프리즘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린이에게 스케이트를 지도하던 교사에게 물어보아도 그런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하나의 구절 때문에 야단이다. 표현이 전혀 객관화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로부터 공감이 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라 한 것이다. 겨울의 노래라 했다. 팽이 우는 소리를 정작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해도 그것을 노래에 비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얼음판 위에서 돌리는 팽이라 해도 팽이가 노래로 흥겹게 들릴 만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윙―」 소리를 몇 초 동안 내고 만다. 이것을 겨울의 노래라 표현한 것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어색한 과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팽이 우는 소리를 노래로 비유한다면 선풍기 도는 소리·기계 소리·비행기 소리를 모두 노래로 보아야 한다.   되풀이되는 말이지만 분위기만으로는 동시가 되지 않는다. 주관적인 표현만으로도 동시가 되지 않는다. 하는 주장은 모두 객관성이 있는 문장이 되게 하자 그 소리다.    (1980년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16호)   동시 창작법 ⑩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다 신 현 득              바다 속                                                      강소천       조개들의 조그만 단간 집들이      올망졸망 둘러앉은 동구 밖엔       사철 산호꽃이 만발하고      조용히 흔들리는 미역 숲에선      하루 종일 아기 고기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푸른 바다를      멋지게 날아다니는       가지가지 고기들      등대에 배들에 불이 켜지면,       "별 하나 나 하나…."      등불을 세고.    지난 날 초등학교의 교과서에 수록됐던 이 동시(童詩)에 대해 지은이 소천(小泉)은 어느 교육지(敎育誌)에 그 해설을 곁들이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즉 처음에 이 작품은 동화(童話)로 구상을 했다는 것이다. 동화로 쓸려던 것이 그 결과(結果)에서 동시(童詩)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교과서에 본보기글로 수록될 만큼 수작이다. 훌륭한 동시(童詩)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내용을 그대로 옮겨 동화가 되게 할 수가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다.    결국 소천의 말은 헛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내용을 소재로 해서 동화를 썼다면 역시 수작의 동화를 뽑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은 동시 동화의 거리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 된다.   일반 쟝르에서는 소설의 소재로 희곡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소재로 시를 쓴다는 말은 잘 듣지 못한다. 시의 소재로 시조를 쓴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다. 그것은 자유시와 정형시의 차이밖에는 없는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소설(小說)을 무대에 올렸을 때는 희곡이 된다는 것도 같은 이야기를 곁들일 수 있는 산문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관계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말을 동시와 동화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문학(兒童文學)의 작가(作家)들 사이에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것을 느껴왔지만 아직 이론적(理論的)인 전개(展開)를 한 사람은 없다.   여기서 동화(童話)란 사실적(寫實的)인 문장(文章)으로 된 소년소설(少年小說)이나 생활동화(生活童話)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팬터지로써 씌어진 본격동화(本格童話)를 말한다.    이런 환상동화(幻想童話)와 동시(童詩)의 관계를 먼저 그 문장수사(文章修辭)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환상동화의 경우 동물(動物)이나 사물에 인격(人格)을 주어 사람차럼 사고(思考)와 언어(言語)를 갖게하는 의유(擬喩)가 쓰인다. 이것은 시(詩)의 수사(修辭)에 쓰이는 한 방법(方法)이다. 동시(童詩)의 수사(修辭)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냇물이 지껄인다.   ―나무가 춤을 춘다.   이렇게 간단한 동시(童詩)의 구절(句節)도 냇물과 나무를 하나의 인격체(人格體)로 보고 있는 데서 시작된 표현이다.   이런 동시(童詩)의 의유법(擬喩法)을 동화(童話)가 공유(共有)하고 있는 것이다. 전래동화(傳來童話) 창작동화(創作童話)를 막론하고 의인적(擬人的)인 전개(展開)가 많은 양(量)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 호랑이 한 마리가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하는 구전(口傳)의 이야기나    "돌멩이는 생각했지요. '산꼭대기에서 내리굴렀으면 재미있겠는데' 하고…"   이런 창작동화(創作童話)의 한 대목도 모두 그렇다.   그러므로 철저히 의인(擬人)된 문장(文章)이라는 데서 동시(童詩) 동화(童話)는 가깝다. 환상(幻想)이라는 것 역시 그렇다.   동심(童心)을 담은 같은 그릇이라는 점, 재미성을 지녀야 할 수밖에 없는 문장(文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러므로 동화(童話)는 산문(散文) 가운데서 동시(童詩)에 가까운 것이며 동시(童詩)는 운문(韻文) 가운데서 동화(童話)에 가까운 것이라는 설명이 된다.   김요섭씨는 동시(童詩) 동화(童話)가 하나의 포에지(poesy), 즉 이 포에지라는 시(詩)의 광석(鑛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광석의 제련술(製鍊術)에 따라 동시(童詩)로도 동화(童話)로도 결정이 되는데 그 바탕인 광석(鑛石)은 같은 것이라는 풀이가 된다. 이 제련술(製鍊術)이라는 것은 바로 형식(形式)이요 모티브이다.   그래서 김요섭씨는 동화(童話)야말로 시인(詩人)이 써야할 쟝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시(詩)의 소양 없이는 환상동화(幻想童話)를 쓰기 어렵다는 말로도 느껴진다.   요즈음 동시(童詩)작가들이 동화((童話)를 많이 쓰고 있고 사실 이 두 가지 쟝르를 겸하는 작가들이 대단히 많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으나 원체 가까운 문장(文章)에 가까운 발상(發想)의 것이기 때문에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동시로 씌어져야 할 소재로 동화를 썼다는 말은 조유로씨도 말한 바가 있고 필자도 이런 경험이 더러 있다.    이것을 다시 동시(童詩)의 입장에서 보면 동시(童詩)는 동화적이어야 된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이것은 동시(童詩)가 산문(散文)이 되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 문장(文章)의 전달면(傳達面)이나 문장난해도(文章難解度)에 있어 동시(童詩)는 동화(童話)를 본받아야 된다는 말이 된다. 곧 동시(童詩)는 동화(童話)의 문장(文章) 이상으로 난해해서는 전달(傳達)에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동화(童話)의 문장(文章)을 하나의 자로 삼아야 된다는말이다.   되풀이 말했듯이 동시(童詩)는 그 개념이 지닌 그대로 구속성(拘束性)을 갖고 있다 . 이 구속(拘束)을 벗어버리면 이것은 일반 자유시(自由詩)가 된다. 동시(童詩)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성(拘束性)이 있으므로 동시(童詩)인 것이다.   여기서 백번 양보를 해도 동시(童詩)는 시(詩)의 모더니즘을 따라갈 수도 없고 그런 방법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 것이다.    모더니즘에서는 모호(模糊)한 표현이 오히려 시(詩)다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言語)의 건축(建築)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들 표현(表現)을 위해 암시(暗示)와 상징(象徵)과 은유(隱喩)의 방법(方法)을 동원한다. 이것이 현대시(現代詩)의 수사(修辭)다. 그런데 이것은 전혀 동시(童詩)의 방법(方法)이 될 수 없다.    동시(童詩)에서 모호(模糊)한 표현은 지탄이 돼야하며 은유(隱喩)나 암시(暗示)는 독자인 어린이에게 거리를 두게 한다.   같은 포에지에서 출발된 동시(童詩), 동화(童話)는 근본 문장(文章) 수사(修辭)에서도 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시(童詩)는 난해(難解)한 현대시(現代詩)보다 동화(童話)쪽에 가까운 문장(文章)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시(童詩)는 동화적(童話的)인 시(詩)요, 동화(童話)는 동시적(童詩的)인 산문(散文)이다.    여기에 그 예문(例文)을 들어 이를 실증(實證)할 수도 있다.           엄마 심부름                                                      윤석중       아기가 반찬 가게로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조그만 소쿠리를 옆에끼고      아장아장 콩나물을 사러 갑니다.      콩나물을 담아 놓은 치룽이 너무 높아서      아기는 못 보고 그냥 지나갑니다.      자꾸자꾸 걸어갑니다.      집이 점점 멀어집니다.      집을 잃어버리고 우는 아기를      엄마가 달려가서      넬름 업어 왔습니다.    이 '엄마 심부름'은 1961년에 출판된 윤석중 동요집 중의 한 편이다. 이 시는 저학년 어린이의 감각을 잘 살린 작품이다. 이런 작품들 말고라도 윤석중씨의 작품만큼 어린이들과 친밀한 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동시에서 동화적인 것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런 소재라면 좋은 유년동화 감이다. 동화로 썼으면 좋을 뻔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1981. 봄.  제18호에서     동시 창작법 ⑪ 자연(自然)에게 물어보라.  가르쳐 줄 것이다. 신 현 득     자연(自然)의 음성(音聲)을 듣는 것만으로는 시(詩)가 씌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때는 자연물(自然物)에게 대화(對話)를 거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연(自然)은 나름의 음성(音聲)으로 대답해 줄 것이다.   ―내가 짤깍짤깍 소리내면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지.   이것은 엿장수 가위의 대답이다.   ―나는 방망이로 얻어맞기만 해.   이것은 빨랫터의 빨랫돌의 대답이다.   ―네가 꼬마였을 땐 이랬단 말이야.   이것은 내 돌사진이 하는 말이다.   어느 것이나 몇 마디의 대답은 하여 준다.   ―나는 뱃속에서 종소리를 낼 수도 있다.   괘종시계의 말이다.   ―꽃밭에 이슬비를 오게 해 주는 굉장한 재주가 있지.   이것은 물뿌리개의 말이다.   그런데 이 때는 가장 깊이있게 대답해 줄 만한 놈에게 가서 수작을 거는 것이 한 가지 요령이다. 시는 있을 만한 곳에 있으니까.   도랑물에게 가서 물어보자.   "도랑물아 어디로 가니? 어디를 거쳐서 가니? 무슨 일을 하면서 가니?"   이렇게 물어 놓고 기다리자. 대답이 없거든 하루종일이라도 도랑가에 앉아서 대답을 기다리자. 그러면 도랑물은 대답할 것이다.   "바다까지의 긴 여행이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 쉬는 일이 없단다."   "밤낮 쉬지 않고 흘러 가지. 밤에는 달그림자를 띄우고 낮에는 산그림자를 띄우고 흘러 가지."   "긴 여행에 지치지 않게 노래를 부르며 흐르지."   "종이배도 띄우고, 나룻배도 띄우게 될 걸."   "마을 앞을 지나다가 물레방앗간에 들르게 될 거야. 쿵덕쿵덕 물레방아를 올려 봐야지."   자연(自然)의 대답은 모두가 시(詩)다 . 이것을 그대로 정리해 보자.           달그림자를 띄우고            산그림자를 띄우고           마을 앞을 지나다가           물레방아를 돌린다.           -쿵덕 쿵덕 쿵덕!   다시 더 깊은 이야기를 해 줄 것과 대화를 나누어 보자. 우리에게는 두 개의 손이 있다. 내 가장 가까운 손에게 물어 보자.   "손아 내 손아 네가 하는 일은?"   ―공을 치는 일이지. 그렇지만 커서는 큰일을 하게 될 걸. 나는 (손은) 자라고 있어.   "할머니 손이 하는 일은?"   ―아기 궁둥이를 닦아 주는 일.   "엄마손이 하는 일은?"   ―쌀단지를 긁어 퍼내는 일이지.   "오빠의 손은?"   ―구두닦는 일(마침 이 때는 6.25전쟁 때였다)   손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다.                손           할머니가            아기 둥둥이르 닦아 주고 있다.           엄마가            쌀 단지를 긁어 퍼낸다.           오빠는 구두닦이에서 돌아왔다.           할머니 손에           아기 똥이 묻지 않았나 보셔요.           오빠 손에는            거멓게 구두약이 묻었다.           죽 한 그릇씩을 먹고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자 이리로            손을 모아 보셔요.           아기 손부터           차례로 놓아 보셔요.           작은 손들이 어떻게 커서           어른이 되는가를 알게.           내 손이 커서           오빠 손만해지고           오빠 손이            엄마손보다 커졌을 때           우리집은 아무도           쌀단지를 긁어내지 않아도 된다.           아기가 커서            오빠만 해졌을 때는           아기 손에            구두약이 묻지 않아도 된다.   자연에 물어보니 자연은 무엇이나 가르쳐 주고 있다.   어느 때 시골 학교에 가서 자취를 하며 1년 3개월을 지낸 일이 있다. 학교서 자취방까지에는 과수원이 있었고 과수원을 둘러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한적한 시골이라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외에는 자연을 만나는 일밖에는 없었다. 나는 탱자꽃이 피는 봄부터 여기를 지나다니며 과일나무보다는 탱자울타리가 재미있는 소재(素材)라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시(詩)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하루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탱자나무에게 물어보면 될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정말이지 탱자나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탱자나무다.   "미처 몰랐구나!"   나는 아침마다 이 탱자나무 울타리르 지나며 조용히 대화를 걸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야!"   "응"   대답을 해 줄 때도 있었고 대답이 없을 때도 있었다. 며칠인가 지났을 때다.    "우리는 여럿이 어깨동무를 하여 울을 만들고 있단다."   울타리는 재미있는 대답을 해 주었다. 역시 탱자나무에 대해서는 탱자나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는 이런 대답을 얻어내었다.   "우리에겐 가시가 있어. 문을 지키는 이는 무기가 있어야 되거든 우리는 이 뾰족한 무기를 이파리 밑에 숨겨두고 있단다. 누구든지 과일밭에 들어오기만 해 봐."   가을 날이 되고부터 과일밭의 사과가 빨갛게 익어 있었고 과일밭을 지키는 탱자나무도 노란 구슬로 된 자기 열매를 들고 익히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다가 보니 탱자나무 울타리 한 곳이 해쳐져 있었다.   '간밤 도적이 들었구나!'   그러면서 탱자나무의 이야기를 들었다. 탱자나무의 말을 들으면 어제 저녁 밤중에 과일밭의 사과를 탐내는 사람이 들어오다가 가시에 찔려 달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탱자나무들이 그 밤도적을 물리치기 위해 어떻게 힘을 합쳐 싸웠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참으로 기특한 탱자나무다. 이렇게 하여 나는 한 편의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탱자나무           같은 나무이지만           착한 탱자나무는           과일나무 울이 돼 준다.           여럿이 어깨동무하고           울이 되어 서서           봄 사월           날이 선 가시 위에            잎과 꽃을 단다.           잎은 자라           가시를 덮는다.           가시는 움츠리고           이파리 밑에 숨는다.           과일밭의 과일이 익을 무렵에           탱자꽃은 커서           향기를 가득 담고           구슬이 돼 다시 열린다.           그러나 어둡고 무서운 밤에           가슴이 떨리도록 무서운 밤에           발자국 소리 여럿이 몰려 온다.           검은 그림자가 손을 내민다.           ―과일을 탐내는 놈이냐?           ―내 열매를 탐내는 놈이냐?           숨었던 가시가 나와           마구 찌른다.           ―아야 아얏!           ―아야 아얏!           자국 소리도 그림자도           달아나고           여러 개 구슬을 가지고 놀면서           탱자나무는            한가을까지 즐겁다.           과일밭을 지키면서            즐겁다.    의 한 작품도 자연과의 대화에서 씌어졌다. 처음에는 흙과의 대화였다.   "나는 세상의 어머니다."   이것이 흙의 대답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흙을 의지해 살고 있다는 것이다.   "풀과 나무가 나를(흙을) 의지해 살고 있지. 이 풀을 먹고 나무의 과일을 먹고 온갖 동물이 자라고 있지. 내가 없다면 누가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겠니. 나비도 잠자리도 살 수 없다."   이것도 들판을 덮고 있는 흙의 말이었다.   "나는 젖을 주고 있다. 배나무가 뿌리를 뻗어 오면 배맛이 나는 열매가 되도록 젖을 주지. 복숭아나무에게도 살구나무에게도…."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내가 나무의 뿌리를 잘 잡아 두니까 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거야. 나무뿐 아니지. 모든 풀뿌리도 내가 잡아 주고 있다."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나무끝 새집에서 새새끼가 잘 크는 것도 내가 잘 흔들어 주기 때문이야."   이것도 흙의 말이었다.   다음에는 나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흙을 엄마라 생각하니?"   "그럼, 흙은 우리 엄마다. 지평선 끝으로 아침해를 띄우는 것도 모두 흙엄마가 하는 일이야. 그리고 내가 익힌 씨앗이 가서 묻히는 것도 흙엄마다. 내가 넘어져 묻힐 곳도 흙엄마야."   흙의 말은 깊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으로 이 흙과 나무끼리 대화하는 소리까지 엿듣게 됐다. 분명히 저희끼리도 엄마와 자식 사이처럼 다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흙과 엄마           "나는엄마다."           흙은 그런 생각으로           하늘을 마주 보고 누워 있어요.           배나무가 뿌리를 뻗어 오면            배맛 될 것만 골라           젖을 주어요.           미루나무 키다리를           젖으로 키워요.           흙은 넘어지지 않게           뿌리를 잡고           그 줄기 끝에다 새집을 달고           새집을 흔들어 새끼새를 키우며           그 위로            구름이 흐르게 해요.           아침에 태양이 지평선에 떠서            나무꼭지서            열두시를 만나게 해요.           "엄마야!"           "나다 나다."           "엄마야!"           나다.           흙과 나무는            불러주고 대답해요.           "엄마야            내 씨가 떨어지면           어디로 가노?"           "그야 엄마한테로 오지."           "엄마야           내가 넘어지면           어디로 가노?"           "그 때도           엄마께로 와 묻힌다."  1981. 가을 '아동문학평론' 제20호에서     동시 창작법 ⑫ 동요운동(童謠運動)에 붙여 신 현 득   동요(童謠)를 쓰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근 30년 동안 자유동시(自由童詩), 즉 동시(童詩) 일변도가 되어온 아동문학의 시분야(詩分野)가 동요도 아동문학의 책임영역이라는 자기 반성을 한 데서 시작된 것이다.   동요의 학술용어(學術用語)는 「정형동시(定型童詩)」다. 그러므로 동시의 한 갈래로 정의(定義)가 된다. 다만 오랫동안 「동요」라는 용어를 써온 습관상 이 학술용어를 취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냥 「동요」라고만 할 때는 시(詩)로서의 의미와 곡(曲)으로서의 의미를 같이 지니고 있어서, 낱말 구성의 분위기를 따지지 않으면 구별이 되지 않는 수도 있다.   즉 「동요를 쓴다」와 「동요를 작곡한다」「동요를 부른다」에서 씌어지는 동요라는 의미는 각각 다른 것이다. 동요를 정형동시로 불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동요는 정형시(定型詩)이지만 시조( 時調)·경기체가(景幾體歌)·가사(歌辭)나 한시(漢詩)의 칠언절구(七言絶句)·오언시(五言詩)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외형률(外形律)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4·4조나 7·5조가 반드시 동요의 요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동요는 어느 정형시보다 그 표현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면서 동요는 정형시로서의 제약을 받는다. 그것은 그 작품 나름의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연(聯)과 연 또는 절(節)과 절 사이의 대칭관계(對稱關係), 즉 대구(對句)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 모든 동요는 그 첫 연이 기준이 된다. 그 다음의 연이 여기에 맞추어져 대칭을 유지함으로써 정형시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대칭관계의 맞서는 자리에 같은 자수(字數)의 시어(詩語)를 두되 서로 나란히 놓을 수 있는 것이나 대구가 될 수 있는 낱말을 두어 전체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봄비                       김종상 보슬보슬 봄비야 잔디밭에 내려라. 마른 잔디 속잎을 파릇파릇 피워라. 산과 들을 파랗게 융단으로 덮어라. 보슬보슬 봄비야 꽃나무에 내려라. 가지마다 꽃잎을 곱게곱게 달아라. 산과 들을 예쁘게 꽃밭으로 꾸며라.   위의 동요의 경우를 두고 보자. 첫 연과 둘째 연을 볼 때 「보슬보슬 봄비야」로 시작이 되고 있다. 「잔디밭에 내려라」와 「꽃나무에 내려라」의 대구다. 행을 살펴보면 「파릇파릇 피워라」와 「곱게곱게 달아라」의 대구다. 끝맺음을 「융단으로 덮어라」와 「꽃밭으로 꾸며라」의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 형식을 따져 보면 맞서는 자리에 같거나 비슷한 내용의 시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문장의 종지를 「내려라」「피워라」「덮어라」 등 「라」로 끝나는 낱말을 받혀 전체의 조화를 이룬 것도 이 동요의 재미있는 구성이다.   이와는 반대로 맞서는 자리에 전혀 반대가 되는 낱말을 놓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보기를 들면 「높다」와 「낮다」,「길다」와 「짧다」,「검다」와 「희다」 등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마방진(魔方陣)처럼 낱말이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요는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 쓰기에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동요는 이런 구속에서조차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반드시 연을 가지지 않아도 동요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연이 없는 단련동요(短聯童謠)는 특히 구전동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의 민요는 4·4조를 기본 외형률로 하고 있다. 그러나 동요의 경우는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다. 성인(成人)의 작의(作意)가 작용하지 않는 것일수록 그 표현이 아주 자유롭다. 황새야 덕새야 네 모가지 짜르고(짧고) 내 모가지 길―고   이것은 황새를 보고 부르는 구전동요이지만 4·4조도 7·5조도 아니다. 별 하나 똑 따서 행주 닦아 망태에 담아서 동문에 걸―고 별 둘 똑 따서 행주 닦아 망태에 담아서 서문에 걸―고…….   별을 세는 이 구전동요(口傳童謠)도 4·4조와는 멀다. 이것만 보아도 동요는 그 리듬이 퍽 다채로우면서 자유로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련의 동요가 지어지고부터 표현이 자유스러워진 반면 자유시와의 한계가 모호해진 것이다.   시조는 글자가 한정돼 단수에서도 시조의 성격을 지닌다. 가사는 정해진 음률이 있어서 길이에 관계 없이 그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자수의 제한도 정해진 음률도 없는 동요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때의 척도를 문장의 리듬과 담긴 내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창작동요(創作童謠)가 씌어진 것은 1908년 육당에 의해서였다. 이후 20년대부터 동요는 아동문학의 주류로서 그 황금시대(黃金時代)를 이룬다. 그러나 이 당시의 동요는 현재의 동시적인 성격의 것도 있었다. 즉 현재의 동시와 동요의 기능을 다 맡고 있었다. 동시·동요의 미분화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형시인 동요를 써도 노래가 될 수 있는 것과 노래가 되기에 용이했던 것과 노래가 붙여질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형시라 해서 다 노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현대의 자유동시를 동요의 틀에 잡아 넣었다 해서 반드시 노래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동요는 오히려 외형적인 것보다 그 내용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 된다. 즉 시의 내용에서 악상(樂想)이 풍겨 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동시를 함축미(含蓄美)의 시라고 한다면 동요는 밖으로 발산되는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   「푸른 물 출렁출렁 어디로 가나?」   이 시구(詩句)는 1행(行)만으로도 동시의 문장과는 구별이 되고 있다. 악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의성어나 의태어가 악상을 잡아 주는데 역할을 한다고 믿어 왔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요는 경쾌하고 발랄하면서 재미있고 흥겨운 표현이 되어야 한다.   동시를 쓴다 해서 동요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동요를 쓸 때 동시와는 전혀 다른 표현 방법을 가지고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동요에 실패하는 원인은 동시에서 배배 꼬인 비유들을 동요의 틀에 잡아 넣기 때문이다. 문장에다 의미를 강조해 두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딱딱하고 뻣뻣한 것이 돼버린다. 이런 것은 노래가 될 수 없다. 동요의 문장은 부드러워야 한다. 따라서 시의 소재에서도 동시보다 제약을 받아야 한다. 충분히 노래가 담길 만한 소재여야 하는 것이다.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이 있는 것이 좋다.     이슬 눈 방울 눈                     유경환 풀잎 끝에 마알간 이슬 눈 한 개. 풀잎 끝에 은빛의 방울 눈 한 개. 눈빛을 반짝이는 풀잎들이 세상은 파랗다 생각할 거야. 풀잎 끝에 매달린 이슬 눈 한 개 풀잎 끝에 또로록 방울 눈 굴러 해님을 쳐다보다 잠이 들면 풀잎은 눈 감고 꿈나라 간다.   이 동요는 소재를 잘 택한 보기가 된다. 「이슬 눈 방울 눈」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노래가 연상돼 온다. 좋은 동요가 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요를 쓰고자 할 때 소재의 발견이 큰 열쇠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주제가 정해졌을 때 거기에서 재미나는 몇 개의 사실을 골라 알맞게 배치해 놓고 그것을 전체의 뼈대로 삼는 것이다.   2연이나 3연의 노래를 지을 경우 이 뼈대 위에 대구가 될 만한 시어들을 배치한 다음 문장을 다듬어 간다.   그러나 동요는 어디까지나 문학인 만큼 문학적인 조화가 어느 정도인가에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때 동요가 아동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만큼 동요에는 훌륭한 문학을 담을 수 있다.         겨울 밤                         김재원 나무 속에 하늘이 들어와 있다. 가지마다 매달린 수많은 별들 나무들은 별을 세며 추위를 잊고 별들은 가지에서 겨울을 난다. 나무들아 춥거든 별을 보아라. 반짝반짝 눈부시게 살아있잖니? 별들아 춥거든 나무를 보렴. 찬 바람 이겨내고 살아있잖니?   이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강한 문학성(文學性)이다. 그러므로 이만한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다. 각고(刻苦) 끝에 낳아진 작품이다.   동요가 아동문학의 책임 분야라는 것을 새삼스레 강조해야겠다. 만일 아동문학인이 동요를 써 주지 않을 경우 어린이들은 첫째 노래에서 굶주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요의 기능은 그것뿐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고 전달이 쉬운 시를 제공해 주게 된다.   그러나 동요운동이 자유시로서의 동시가 발전하는데 지장을 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한편 동요운동을 일으키는 단계에서 살펴볼 때 우리의 할 일은 너무도 많다.   육당(六堂)은 창작동요를 처음 쓰면서 『흥부전』 『나무꾼과 선녀』 『별주부전』 같은 옛 얘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 노래를 창작했다. 7、5조 4행을 1연으로 하는 이들 이야기 노래는 현재의 동화시(童話詩)와는 다르다. 동화시는 자유시인데 반해 이 이야기 노래는 철저한 7、5조의 정형시다.   이러한 작품은 처음부터 노래를 위해서라기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주기 위한 수법으로 보인다. 그 길이가 엄청나게 길기 때문이다.   별주부전을 주제로 한 을 예로 들면 56행의 정형시다. 또한 이보다 긴 작품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작품은 7·5조로 된 가사(歌辭)로 보아도 될 만하다.   만일 이와 같은 작업이 현대에 와서 이루어질 때 우리의 고전 이야기는 물론 지리적인 기행문, 물건의 생산 과정, 유통 과정(流通過程)을 모두 노래에 담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작품을 시도한다고 할 때 현대적인 감각에서 씌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고전동요인 구비전래동요(口碑傳來童謠)를 현대동요에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의 문제다.   구전동요(口傳童謠) 중에는 녹두새요(謠)처럼 현대적인 가락에서 곡이 지어진 것도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이 많은 노래의 소재(素材)들이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구전동요가 현대적인 노래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 시어들이 낡고, 길이가 너무 길고, 표현이 모호하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동요에서 구전동요를 받아들인다면 그 전체가 아니고 소재면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중에는 약간의 수정으로 현대적인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임동권 교수의 한국민요분류표(韓國民謠分類表)에 의하면 우리 나라 민요 362형 중에서 동요가 절반이 넘는 197형이다. 이들 전래동요는 동물요, 어류요, 식물요, 채약요(採藥謠), 수무자장요(受撫자장謠), 정서요, 자연요, 풍소요(諷笑謠), 어희요(語戱謠), 수요(數謠), 유희요(遊戱謠) 등 참으로 다양하고 많다. 이것이 모두 현대동요의 자산(資産)이다.   동화의 경우 우리의 동화는 전래동화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동요 또한 전래의 것에 뿌리를 두어야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맡겨진 자산을 어떻게 키워가야 할까?   이렇게 생각할 때 동요운동에서 지워진 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1982년 여름 『아동문학평론』 제23호)  출처 ㅡ 허동인의 동시교실
222    동시인이 되고싶을 때에는 그 누구인가의 도움을 받고싶다... 댓글:  조회:3494  추천:0  2017-02-11
동시 창작론 ① 직접 표현은 피해야 유경환(시인,동시인)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이 석 줄 한 연(聯)으로 씌어진 글을 한 편의 동시로 보아야 할 것인가.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이렇게 이어붙여 보면, 틀림없는 산문이다. 주어, 동사가 뚜렷하고 주어와 동사의 서술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니 한 줄의 완벽한 산문이다. 하건만 위에 인용했듯 석 줄로 바꿔 놓고서 동시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즉 운문이라고 여긴다. 쓴 사람의 생각으로만 운문일 뿐, 그러니까 형식으로 운문처럼 보일 뿐이지, 사실은 운문이 아니다. 다른 말로 동시라고 하기가 어렵다.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위의 글이 작품이 되려면, 적어도 '아름답게'라는 부사어는 다른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름답게'라는 형용사적 부사어를 직접 표현으로 구사하면, '아름답게'라는 표현의 분위기가 사전적 의미에 갇히고 만다. 따라서 쓴 사람이 지녔던 느낌이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읽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이 오지 않는다. '아름답게'라는 표현은 시어(詩語)가 되기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일상어로 때묻어 있어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정서 이동을 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을 전달하는 정서 이동, 이것이 쓴 사람에게서 읽는 사람에게 옮겨지려면, '아름답게'라는 표현 대신 다른 표현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냥 쉬운 표현으로 '아름답게'가 아니라, 쓴 사람만의 새로운 표현 기법이 요구된다.   쓴 사람이 생각해 낸 새로운 표현 방법, 없던 것을 있도록 하는 표현 방법 찾기가 곧 창작인 것이다. 창작을 크리에이션(Creation)이라 한다. 이미 있는 것을 가지고 되풀이 사용하면 되풀이의 Re가 붙어서 리크레이션(Recreation)이 된다. 오락이다. 이미 있는 표현을 재사용하는 경우가 유행가의 노랫말이다. 동시는 창작이어야 한다.   '산길에'는 어디라는 것을 나타내는 부사적 조건이다. '풀꽃이'는 주격으로 상징적 존재일 수 있다. 주어인 풀꽃이 다른 의미의 해석을 가능케 구사되었다. 그러기에 이 석 줄에서 시적 분위기를 조성할 요체는 '아름답게 피었어요'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일상적 대화에서 하듯 그냥 '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하면 읽는 사람이 쓴 사람의 내면에 접근할 수가 없다. 쓴 사람이 어떻게 아름답게 보았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감동을 했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다.   쓴 사람이 이 석 줄을 쓸 때 지닌 내적 정서, 이것을 읽는 사람이 짚어낼 수 없다. 쓴 사람이 지녔던 내적 체험이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못하면, 어떤 감응도 생기지 않는다. 곧 감동이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서 이동이 안 된다.   정서 이동의 불가능은, 한마디로 감동의 차단이다. 그런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그들 자신은 소정의 절차를 밟아 등용의 관문을 통과한 동시인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 때문에, '산길에/풀꽃이/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써놓고, '이렇듯 아름다운 모습을 시적으로 묘사했는데…… 어째서 작품이 덜 되었다고 평가하느냐'고 불만스러워한다. 쓴 사람은, 풀꽃이 핀 산길의 정경을 잘 옮겨 놓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항변하는 것이다.   이런 불평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설명해야 '발효되지 아니한 표현'인 것을 깨닫도록 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일러줘야 숙성한 감정이 바탕하고 있지 않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산길에 풀꽃이 수를 놓듯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산길에/풀꽃이/아름답게 피었어요.'라고 쓰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생도 가능한 것이다.   소정의 등단 절차를 거쳤다면 한 20년은 살았을 것이다.그런데 7살이면 써낼 정도의 표현 기교밖에 못 지니는가? 20년, 30년, 40년, 심지어 60년을 살아보고도 나이에 걸맞는 삶의 체험을 겪어내고도, 초등학교 1학년생이 표출하는 정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살아낸 세월만큼 나무의 나이테처럼 자기 내면에 축적한 것이 있을 것이다. 단순한 경험일 수 있고, 생각 깊은 체험일 수 있으며 또 아픔을 이겨낸 쓰라림일 수도 있겠다. 이것을 눈에 안 띄게 대입할 경우, 의인화의 풀이나 이중 해석이나 상징 분석이 가능해진다.   필자는 '생각의 우물'이라는 표현을 오래 전부터 써 왔다. 얼마나 깊게 생각의 우물을 파 왔으며, 얼마나 오래 사색에 젖어 왔으며, 얼마나 깊은 고뇌에 빠져 보았느냐에 따라 동원 선택하는 시어(詩語)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산길에 풀꽃이 예쁘게 핀 것을 보나, 아… 아름답구나… 이런 분위기를 글로 옮겨서 남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라는 충동에 따라 위의 인용처럼 썼다면, 이 사람 나이가 60대일지라도 정서 연령은 10대일 수밖에 없다. 만약 유치원에 다니는 원아나 초등학생이 이렇게 썼다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인생을 겪어본 사람의 안목으로 이렇게 썼다면 돌아서서 한숨을 뿜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산길에   풀꽃이   ○○○○○○…피었어요.   위에 ○○○○○○… 남겨진 자리를 자기 체험처럼 자기 사상에 바탕한 자기만의 표현으로 채우려 애쓰고 고민할 때, 비로소 생각이 숙성되고 발효하여 자기다운 목소리가 나오게 된다. 동시 창작을 위한 표현 기교에서 기법이라는 것은 가장 적절한 한마디를 찾아내는 데 있다. 이것이 표현 기법의 개발이다. 윗줄과 아랫줄 그리고 앞과 뒤, 그 사이에 들어서서 전체 분위기를 살려내는데 걸맞는 한마디를 만들어 내는 일, 이 일은 어렵고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사물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달리 보인다. 슬픈 심정으로 달을 쳐다보면 달이 슬퍼 보이고 즐거운 감정으로 쳐다보면 달이 웃는 것으로 보인다. 보이는 대상은, 보는 사람의 심상(心象)에 걸맞게 보인다. 더 쉽게 말하면 볼록렌즈로 보느냐 오목렌즈로 보느냐와 같다. 곤충의 모듬눈[複合眼]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른 영상을 곤충이 인식하도록 작용한다. 보이는 대상이 보는 사람의 눈을 통해 보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자리하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내면화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 보는 풀꽃과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보는 풀꽃이 같지 않다는 것을 정당화한다. 깊은 고뇌에 갈등하는 시인의 눈을 통해 내면화한 풀꽃의 이미지가 어찌 '아름답게'라는 단어로 표출될 수 있겠는가.   부모와 헤어져 살고 있는 초등학생이 보았다면 '산길에/풀꽃이/어우러져 피었어요'라고 쓸 것이고, 서로 싸우고 돌아선 사람이 보았다면 '산길에/풀꽃이/서로 외면한 채 피었어요'라고 쓸 것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산길에/풀꽃이/아무도 듣지 못하는 말로 속삭이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길이 외로울까 봐 피었어요' '산길에/풀꽃이/어머니 발자국으로 피었어요' '산길에/풀꽃이/햇볕을 붙잡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볕을 기다리고 있어요 '산길에/풀꽃이/달빛 마시려 목을 쳐들고 있어요'…….   얼마든지 '아름답게'라는 형용사적 부사어를 대신하여 시적 요건을 보태줄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어떤 표현이 '아름답게'라는 것 대신 시적 요건을 충족시켜 줄 것인가. 그것은 이 석 줄의 위와 아래에 올 다른 연(聯)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직접 표현은 되도록 피해야 은유라고 하는 비유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직접 표현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분명하게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산문에서 운문으로 형식을 바꾸기 위한 조건으로 ①명사 뒤에 붙는 토씨(조사)를 가능한 떼어버리고, ②문법적 어문 구조를 해체하는 손질이 필요하다. 토씨를 생략하고 산문 구조를 해체해야만, 그만큼 빈 자리가 생긴다. 이런 빈 자리가 만드는 공백이 있어야, 읽는 사람의 상상이나 폭 넓은 해석이 들어갈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여운에서 다양한 해석이 증폭되며 확대 해석이 가능해진다. 쓴 사람이 생각 못했던 비유나 상징까지, 읽는 사람에 의해 지적되면, 동시의 감상은 여러 사람에 의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곧 독자에 의해 상징 의미가 발견되는 셈이다. 고속도로에 제한 속도를 60 Km라고 표시해 놓으면 60 Km로 달려야 하는 규제를 당한다. 그 이상의 속력을 내면서 느끼는 쾌감이나 그 이하의 속력을 내면서 풍치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박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길에   풀꽃이   아름답게 피었어요. 라고 써 놓으면, '아름답게'라는 직접 표현이 지닌 사전적 의미 또는 일상의 어의(語意)에 구속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멋을 읽는 사람이 느낄 수 없게 된다. 시는 산문과 다르다. 상상을 제약하거나 해석을 제한하는 언어의 구속, 이런 구속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또는 문법 구조의 해체를 시도하는 작업에서 오히려 매력을 얻는다.   (2003년 봄 『한국동시문학』창간호)   동시 창작론 ② 「생략」으로 빛나는 동시 유경환(시인, 동시인)   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이 제품을 만들 때 갈고 닦고 하는 모습을 보면 장인(匠人) 정신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동시를 쓰는 일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문 형태에서 운문 구조로 바꾸는 1차 작업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지워 버리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이 생략 작업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나무의 가지치기와 다름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보기로 하자.   좋은 산문은 한 가지 뜻만 드러나되 그 뜻이 분명해야 한다. 이런 뜻인지 저런 뜻인지 헷갈리는 산문은 좋은 산문이 못 된다. 운문은 이와 반대이다.   운문은 여러 가지 뜻을 품을 수 있어야 매력 있는 운문이 된다. 좋은 운문은 여러 가지 뜻을 담을 수 있으므로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이 운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산문과 운문의 차이는 이렇게 확실하다. 산문과 운문에는 겹칠 수 없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2002. 12∼2003. 2) 잡지에 실린 '동시'라는 글을 보니, 산문과 운문의 구별이 안 되는 것을 '동시'라고 발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동시를 쓰는 아동문학가'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회원의 글이면 다 실어주는 협회지(協會誌)에 발표하고 싶어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쓰는 글을 어떻게 동시 작품이라고 믿게 되었을까? 아마도 어떤 등단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소정의 절차를 밟는 동안, 자기 글도 동시 작품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혹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목에 책임이 귀착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동시' 수준에 오르지 못한 글을 (어떤 생각에서인지) '인정'하여 준 그 대가(代價), 그 대가의 결과로 오늘날 아동문학 풍토엔 잡초가 무성하게 휘날리게 된 것이 아니랴.   다시 말머리를 돌리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바로 이 점에 운문의 멋과 맛이 있다. 시는 동시를 포함하여 운문이다. 그러므로 시는 물론, 동시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해야 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인은 첫 번째로 산문과 다른 형태로 변형시키는 작업으로 문장을 해체하고, 두 번째로 복합 의미를 지닌 상징 언어를 시어로 선택한다.   문장을 해체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①주어 동사 따위의 문법 구조를 일부러 무너뜨리거나 ②주어 동사 따위의 문법적 배열을 의도적으로 뒤바꾼다거나 ③명사 뒤에 붙는 토씨 따위를 잘라버리는 생략 기법을 쓰거나 ④명사 앞에 오는 형용사 부사 따위를 철저하게 지워버리는 기법(技法)이다.   독자가 작품을 한 번 읽어서 어떤 느낌(feeling)은 알아낼 수 있으되 그러나 어떤 말(message)을 담고 있다고 대번에 짚어내기엔 애매하도록 시인은 모호한 시어를 선택 구사하기 일쑤다. 여기서 모호한 시어란, 다중(多重) 의미를 지닌 어휘를 가리킨다. 어떤 연유에서 시를 읽을 때 두 번 세 번 읽도록 유도하는 술책으로 상징 단어를 시어(詩語)로 동원하는 것이 예사(例事)이다.   왜 두 번 세 번 읽도록 유도하는 술책을 쓰는가? 되풀이 읽어내면서 글 속에 시인이 숨겨 놓은 뜻을 찾아내 감지(感知)하도록, 곧 독자를 시 속에 끌어들이는 술책이다. 달리 쉽게 말하면 '간단히 직설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을 철사를 구부리듯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복잡 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방법이 시의 작법일 수 있다.   왜 이렇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것일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작업은, 마치 반도체의 집적(集積) 회로처럼 다양한 의미를 글 속에 축적하는 작업이다. 한눈에 대번에 읽어내는 글은, 글이 지닌 밑바닥 내용이 금세 드러나므로, 액면가가 곧 실제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읽어야 비로소 글의 밑바닥 사상이 드러나는 시는, 독자의 정서 상태와 독자의 체험의 폭과 그리고 독자가 살아온 삶의 농도에 따라 다른 메시지를 독자에게 안겨주게 한다. 여기서 시작품이 '시로서 읽히는' 매력이 발견되는 것이다. 같은 동시를 읽더라도 읽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가 지닌 메시지와 독자의 수용 태도가 서로 상관 관계(相關關係)를 이루는데, 독자는 이를 잘 모르거나 간과한다.   이쯤에서 이 창작론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그리고 가슴에 스며오는 정감(情感)이 괸다면 ①우선 그 정서를 줄글(산문)로 쓰기 시작하라. 바로 적어두어야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정감이 흩어지거나 엷어져서 정서를 포착하기 어렵다. ②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생선을 토막 내듯이 이 줄글(산문)을 토막토막 잘라서 두 줄이나 석 줄이나 넉 줄, 다섯 줄……로 나누어 배열하고 되풀이 읽어보라.(대부분의 발표 '동시'는 이 단계에서 작업이 중단된 것들이다.) ③적잖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작업 과정이 이 세 번째 단계의 작업이다. 여기서는 문법에 구애되지 않고 명사 뒤에 붙어다니는 토씨를 떼어내고, 가급적 형용사 부사 따위 수식어를 지워버려야 한다. 이 생략 기법의 활용은 쉬운 것이 아니다. 자기 글을 자기가 자른다는 행위는, 고도의 장인 기술이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흔히 '열 손가락 안 아픈 것 없다'고 말하지 않은가? ④끝으로 글의 기본 문법인 주어 동사 따위 배열 순서를 의도적으로 뒤바꿔 도치법(倒置法)을 활용해 효과를 높이는 효과 측정을 해야 한다.   이런 네 단계 작업을 마친 뒤에 다시 읽어보면서 '속으로 느껴지는 논리' 곧 내면으로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정서 논리)가 통하고 있다고 여기면, 산문에서 운문으로의 변이(變移)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시는 먼저 마음 속에 산문으로 오게 마련이며, 그 다음 다듬는 과정에서 운문 형식으로 탈바꿈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동시 쓰기에서도 마찬가지 일반 순서이다. 박목월도 그랬을 것이고 박두진도 그랬을 것이다. 이분들이 남긴 동시를 읽어보면 일반 순서에 따라 지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대가(大家)가 되면 산문에서 운문으로 전이(轉移)하는 과정을 안 거치고 바로 운문 형태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는 산문적 기초에서 출발하여 운문적 구조로 이월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에는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로 하자. 아름다운 경치를 눈 앞에 보고 있다고 가정하자. '아,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이 경관을 오늘 여기에 함께 자리하지 아니한 뉘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혼자 보기엔 너무 고운, 아까운 경치야…….' 이렇게 감탄할 만한 풍경 앞에 서 있다고 치자.   어떤 이는 카메라를 꺼내 찰칵 찍을 것이다. 사진에 그대로 담길 것이다. 어떤 이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화가가 하는 작업이다. 사진 작가의 작업과 화가의 작업은 모두 그 풍경을 재현하는데 초점을 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작업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차이는 생략이라는 작법 곧 생략 기법인 것이다. 사진에는 생략 없이 모든 것이 담긴다. 그러나 그림에는 화가의 선택대로 생략된 나머지만 담긴다.   정밀 사진기로 감탄 대상을 정확히 담아낸 사진 작품과 그리고 무디지만 감성적인 선택으로 그려낸 미술 작품을 비교해 보자. 화가의 정서가 이입(移入)된 (화가가 붓으로 표현하되 물감의 농도로 강조된) 주관적 선택이 더 황홀한 감정을 현장 부재자에게 전달할 수 있잖은가? 밴 고흐가 남긴 작품이 그 시대의 사진 작품보다 더 선호되는 이유와 같다.   시와 동시가 애매 모호한 문장 구조를 지니도록 하는 것은, 한마디로 작품에 시인의 의도가 숨겨지도록 하는 작법이다. 시인이 그 작품을 쓸 때 (안 보이도록) 작품 행간 속에 깔아놓은 정서, 이것을 비슷한 체험을 지닌 독자가 읽어낼 수 있도록 '숨겨 놓는' 것이 시인이 즐겨 택하는 시작법이다. '나만큼 고민한 사람은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큼 관찰한 사람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만큼 생각해 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부담을 독자에게 요구한다. 이런 요구는, 문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지극히 당연시되는 요구이며 또 아울러 독자에겐 최소한의 의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를 읽고 감상하는 행위는, 누워서 TV 연속극을 보거나 TV 가요를 듣는 것과 같을 수 없는 최소한의 부담을 지불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런 '부담'을 지불하지 않고 읽고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수준에서 '동시'를 써내거나 발표하는 글이 바로 '시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시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그런 '동시'들인 것이다. 흔한 말로 수준 미달의 것을 이른바 '동시'라고 발표하면서, '어째서, 왜 내 동시에 대해선 혹평을 일삼느냐?'고 항변하기 일쑤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목마른' 경험이 없다면 이 속담의 진의를 알기 어렵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므로 먼저 목마른 경험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목말랐던 경험 없이 물맛이 어떻다고 불만 불평을 쏟아놓는 데 문제가 있다.   동시를 그냥 언어의 유희라고만 여기면 유리알 굴리듯 예쁜 낱말 고운 낱말을 추려서 이리저리 맞추는 작업에 그치고 만다. 이런 이들에겐 문학적 고민이나 시대의 아픔이나 역사의 앙금 같은 것들이 과연 필요한 것일 수 있을까? 동시는 어린이나 또 피곤한 어른에게 삶을 따뜻이 품어안도록 위안을 주며, 그런 위안을 안겨주는 일(몫)도 아울러 해내는 문학 작품으로의 값을 지닌다. 동시는 어린이나 어른에게(특히 생각이 달리는 어른에게) 주는 정서 영양일 수 있다. 그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샘과 다르지 않다.   이 글의 결론을 위해 긴 말을 짧게 줄여 보자.   동시를 쓰겠다는 사람은, 첫 번째 단계로 쓰고 싶은 내용을 우선 산문으로 써 놓고 나서 줄일 수 있는 것을 모두 잘라내 길이를 줄여 운문 형태로 바꿔 놓은 뒤에, 두 번째 단계로 반드시 숨겨져 있어야 할 음률과 운치 곧 내재율과 율동성을 속으로 외워 맞춰야 한다. 세 번째 단계로 은유적으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낱말, 곧 비유가 가능한 시어(詩語)로 자기가 사용한 낱말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러한 세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생략 기법이다. 이준관의 동시를 읽어보면, 긴 산문체에서 퇴고 과정을 거치는 동안 몇 줄씩 지워버렸거나 아주 잘라버린 흔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준관 시인은 시와 동시를 함께 쓰는, 시를 아는 동시인이기 때문에 좋은 동시도 잘 써내고 있는 것이다. (2003년 여름 『한국동시문학』 제2호)   동시 창작론 ③ 형상화란 무엇인가? ―간결하게 소재를 선택하면 형상화의 어려움 덜 수 있다 유 경 환   동시 쓰기에서 세 번째로 다뤄야 할 것은, 형상화(形象化)의 문제라고 여겨 왔다. 형상화라는 말은 창작 기법 이론서에 자주 나오는 어휘이다. 그러나 쉽게 풀이하여 놓은 것을 보지 못했다. 이 기회에 형상화에 대하여 진지하게 다가서 보고자 한다.   형상화라는 말이 한자로 되어 있어서 우리말로 바꿔볼 수 없을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쉽사리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모양 만들기'라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한마디가 못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양 만들기에 가깝거나, 비슷하다고 할 만하다.   어쨌거나 창작이라는 작업에서는, 형상화가 창작인의 가슴에 먼저 밑그림으로 들어서야 하느니만큼, 문학에서는 물론 미술 조각 따위에서도 한결같이 형상화가 중요한 일몫을 한다.   창작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기에, 창작이 예술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 목수는 통나무를 가지고 온갖 도구를 사용하여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것의 모양을 나무 속에서 찾아 뽑아낸다. 이 때 '만들고자 하는' 것의 밑그림이 곧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조각가의 경우, 조각을 빚는 과정에서 자기 예술 속의 것을 모양이 있는 것으로 빚어내는 일에 따라다니는 생각이 곧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경우, 시인의 가슴 속에 괸 정서를 가슴 밖으로 꺼내어 모양이 있는 것으로 바꿔 놓을 때, 글자들이 갖추는 모양이 형상화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형상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마음이 아닌 것(모양이 있는 것)으로 바꿔 놓을 때, 만들고 싶어하는 모양으로 옮겨진 심상의 변화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형상화가 어째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형상화 작업이 아니면 어떤 느낌이나 감동이나 떠오른 상(像)이 예술가의 가슴 속에 한동안 담겨 있다가 그냥 스러지고 만다. 때문에 예술가의 가슴에만 담겨 있게 하지 말고, 가슴 밖에 존재하도록 모양을 갖춰 입혀야 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 가슴에 괴어 있던 생각이, 그들 가슴 밖에 존재하도록 창작되지 않고, 예술가와 함께 사라진 에는 부지기수다. 예술가의 가슴 밖에 있을 때에는 구상이나 예감이나 상상일 수도 있고, 예술가의 가슴 밖에 있을 때엔 창작물이 되는 것이다.   가슴 안과 밖의 차이는, 가슴살 한 겹의 차이가 아니라, 무(無)와 존재의 차이다. 아무리 좋은 착상을 가지고 있다 한들,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노래할 수 있게, 눈으로 감상할 수 있게, 창작품으로 바꿔 놓지 못하면 그것은 여전히 무인 것이다. 인간의 육신 속의 영혼은 육신과 헤어져 따로 서야만 존속될 수 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분리가 중요하다.   예술가의 심상 속에 깃든 영혼은 만인의 영혼으로 바뀌어야, 그 값을 빛처럼 발휘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심상 속의 영혼은 고독한 영혼이되, 예술가의 심상 밖으로 나온 영혼은 만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기능으로 값지게 된다. 죽은 육신에서 영혼이 나올 수는 없다.   동시 작가의 동시 쓰기에서도 위에 말한 일반론이 그대로 적용된다. 동시 작가의 가슴에 스며든 시정(詩情)이, 가슴 밖으로 나와 글자라는 수단에 힘입어 어떤 모양을 갖추게 되면, 이 때 비로소 동시 작가의 정서가 형상화하고 이 형상화에 담긴 작가 의도가 독자에게 전달된다.   동시 작가가 동시를 쓰기 전 또는 쓰는 동안, 어떤 작가 의도를 형상화시키려 했던지, 그것은 동시 작가의 기량에 달린 문제다.   여기서는 만질 수 없고 느낄 수만 있는 마음, 곧 작가 의도를 내가 아닌 남이 만지거나, 읽거나, 듣거나, 보거나 할 수 있도록 모양을 갖춰 '독립적 존재'로 바꿔 놓는 작업이 중요하며, 이 작업 과정에서 형상화는 다양한 모양 가운데 한 가지 형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조각가가 창작한 조각, 미술가가 그려낸 미술 작품, 음악가가 창작한 작곡, 시인이 쓴 시 작품…… 모두 마음을 영원히 존재하도록 변형시킨 결과물이다. 이 창작물이 예술인의 마음을 어느 정도 대변하므로 창작인의 창작 의도를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도예가가 빚은 자기를 바라보면서, 도에가가 흙을 빚을 때 담아 넣으려던 마음을, 우리는 자기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선이 아름다운 곡선 허리의 자기를 감상하면서, 도예가의 작가 의도를 유추 해석한다면, 애초에 도예가가 형상화하려던 그 마음까지 짚어볼 수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동시를 놓고 되풀이할 수 있다. 뜻을 지닌 낱말들을 골라 적당한 위치로(속으로 정서 논리가 통하도록) 배열해 놓으면, 글자들의 논리에 따라 머리에 그릴 수 있는 추상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바로 이것이 동시 쓰기에 잇어서 형상화 작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자의 논리라는 것은, 문법이라든가, 어법이라든가, 어감(語感)이라든가, 또는 복합 의미(複合 意味), 이중 해석(二重 解釋) 따위가 어우러져 만드는 질서이다. 우리 말과 글을 모국어로 쓰는 사람과 그리고 우리 말과 글을 외국어로 쓰는 사람의 차이는, 이 「글자의 논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느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물며 정서 논리에 있어서는, (아무리 우리 말과 글을 잘 한다 하더라도) 외국인인 경우 이해하고 납득하는 데 우리 나라 사람을 따르지 못한다.   동시 쓰기에서, 이 글자 논리와 질서 논리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형상화를 쉽지 않은 작업으로 보는 것이다.   한 줌의 찰흙을 쥐어 주면서 잔을 형상화하라고 이르면, 한국인은 소주를 마시는 술잔 모양으로 빚어내는데, 아랍인은 아랍식 다기 모양으로 빚어낸다. 이 차이를 흔히 문화의 차이라고 이야기하려 든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본다면, 정서 논리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다. 정서 논리는 이렇듯, '마음을 굳혀서' 존재로 변형시키는데 변수(變數) 같은 기능을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형상화라는 것을, '마음 빚기'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형태가 없는 마음 곧 예술가의 심상을, 형태가 있는 것으로 바꿔 놓기라고, 위에서 길게 늘어놓았다.   형상화의 대상은 마음이다. 가슴 속의 마음을, '가슴 밖에 존재하는 마음'으로 남기기 위해, 모양을 갖추게 하는 작업이 형상화 작업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마음 빚기가 된다. 작곡가는 오선지 위에 음표로 마음을 빚어 나타내며, 시인은 원고지 위에 글자로 마음을 빚어 나타낸다.   변형된 마음, 곧 빚어진 마음은 예술가가 지구에서 사라져도 계속 존속한다. 그래서 창작품은 예술가의 분신(分身)이라고 일컫는다. 예술가의 분신은, 영혼을 얼마만큼 형상 속에 지닌다.   이렇게 거꾸로 소급하여 생각해 보면, 동시를 쓸 때 동시 작가의 의도를 형상화하는 작업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알 수 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경건하고 가장 진지한 마음, 이것을 바꿔 담을 만한 글자의 그릇을 찾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글자로 빚어진 그릇, 마음 빚기로 만든 마음 덩어리를 그대로 폭 빠뜨려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이런 글자로 된 그릇이 쉽게 찾아지는가.   길을 가다가도 문득 걸음을 멈추고 펜을 꺼내 끄적이고, 뭘 먹다가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앉아 펜을 꺼내 끄적이고, 잠을 자려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떠오른 것을 적어 놓는 작업이 모두 마음 빚기를 실천하는 행위이다.   도공은 빚은 마음을 1600도의 고열 가마에 넣고 구워서 형상이 유지되도록 하나, 시인은 빚은 마음을 흙가마가 아닌 고뇌의 가마에 넣고 구워내야 한다. 이런 고뇌가 몇 도인지 사람들이 알겠는가?   정작 형상화 작업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을 이제 하겠다.   시인이 성인을 위한 시를 쓰는 작업에서는 1600도를 넘는 고뇌의 과정을 앓아야 하겠지만, '동시를 쓰는 과정에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겠는가'라며 지껄이는 말을 들을 땐 참으로 기가 막힌다.   동시 쓰기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위해, 낱말 고르기에 하루가 아닌 한 달을 고심하거나, 썼다 지웠다를 열 번 스무 번이나 되풀이하거나, 윗줄과 아랫줄을 붙였다 떼었다 줄였다 늘였다를 수없이 실험하는, 이런 '목마르는 체험'을 못해본 사람이라면 감히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지만…….   끝으로 형상화 작업에서 형상화하고자 하는 대상의 선택, 이 선택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진기로 찍어내는 대상은 렌즈의 기능에 따라 담길 수 있는 영역 전부가 축소되어 재현된다. 그러나 화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시선이 닿는 범위 안에서 자기가 선택하는 것만 골라 옮겨 그린다. 이 때 선택은, 화가의 의도에 따라 선별된 선택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옮겨 그리지 않고, 그리고 싶은 몇 가지만 소재로 삼아 캔버스에 옮겨 그리면서 자기 감정도 그림 속에 집어 넣는다. 결국 사진 예술 작품과 화가의 미술 작품과의 차이는, 인간의 정서가 선별적으로 선택한 조재의 강조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도 소재의 선택에서, '얼마나 생략하느냐'에 따라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선택의 차이가 아주 극명한 경우를 우리는 화가와 그리고 판화가의 눈으로 선택한 최소한의 선택만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가.   동시 쓰기에서도, '선택'은 판화가의 선별 선택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몫이다. 꼭 선택해야 하는 것만 선택한 경우, 형상화 작업에서 어려움을 덜 겪게 된다. 그러나 이것 저것 선택하는 욕심을 부릴 경우, 형상화 작업에서 매우 어려운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동시 쓰기에서 최소한의 것만 선택한 간결한 소재는, 형상화 작업에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는 몫을 해준다.   흙에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는, 자라는 데 십년 이십년이 걸린다. 그러나 마음에 씨앗을 심어 키우는 형상화는, 하루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아니하다. 마음에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는 예술이다. 형상화는, 십년 자란 나무를 하루에 키우는 신비를 지닌다. 형상화는 창작을 위한 밑그림이요, 아울러 예술 전단계의 필수 작업이다.      (2003-여름 한국동시문학 3호)   동시 창작론 ④ 이미지의 연결 유 경 환(동시인/시인)     이번에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지를 우리말로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떤 표현법이 서양의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것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냥 이미지라는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한다.   이미지란, 이야기로 쓰기가 아주 예민한 낱말이므로, 여지껏 미뤄온 것이다. 그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이미지'가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적기부터 하는 것이 현명하다.   떠오르는 그대로, 조각 조각이어도 좋다. 순간적으로 스치는 이미지를 놓치면 다시 불러오기 어렵다. 이것이 이미지의 속성이다. 사람의 가슴이나 머리는, 이런 이미지를 차근히 붙잡아둘 능력에서, 아직 덜 개방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란 과연 어떤 것인가?   간단히 말해, '구름이 한 마리 양으로 보였다면' 이 때에 양은 이미지다. 상상 속에 떠올라 겹쳐지는 생각의 그림이라고나 할까?   대상을 보는 순간, 또는 어떤 생각이 가슴에 차오르는 순간에, 매우 빠르게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직관(直觀)이므로, 이를 재빠르게 잡아야 한다. 이런 이미지는 떠오르는 대로, 스며오는 대로 그대로 기록하여,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 그것들을 연결시키려고 애를 쓴다면, 그 동안에 뒤미쳐오는 다른 이미지를 놓쳐버리기 쉽다.   이미지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느닷없이 오기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산엘 오르거나 잠에서 깨어나면서 시나브로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갑작스레'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머리 속에 또는 가슴 속에 늘 담아 왔기에 그것이 넘쳐 나오듯 다가오는 것이다.   이쯤에서,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은유(메타포어 metaphor)란 언어로 이루어지는, 언어로 비유되는 어떤 상(像)이지만 이미지란 언어 이전의 상(像)이므로 그냥 서양말 이미지를 빌어쓰기가 오히려 편하다. 그래도 설명이 구태어 있어야 하겠다면 '어떤 것을 보고 다른 무엇을 생각나도록 하는, 이런 연상 작용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지는 시를 신선하게 표현하는데 아주 좋은 일몫을 한다.시가 참신하다는 평을 듣는 데는, 동원된 이미지가 아주 새롭거나 또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 구해왔다는 이유가 잠재한다.   남들이 여러 번 동원한 이미지를 다시 쓰면, 되풀이된 만큼 신선한 감각을 잃게 되어, 구태의연한 표현 기법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를 옮겨 놓는 기법에서, 낡은 단어나 식상한 낱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남들이 이미 사용한 이미지 구사법은 피해야 한다는 결론과 만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배의 작품을 되도록 많이 읽는 것이 상책이다. 앞서 발표된 작품이나 작품집을 읽는 길밖에는 달리 길이 없다.   언젠가 '병아리들이 흙담 밑의 봄볕을 쫑쫑 물고 간다'는 이미지 표현이 활자화되었는데, '병아리', '노란 주둥이' 그리고 '햇볕' 이렇게 세 가지를 연결시킨 표현이 잇달아 작품으로 발표되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 적이 있다.   비슷한 시기(봄을 눈앞에 둔 절기)에 비슷한 생각(유사한 동질 상황 속에서)을, 따로 지닐 수 있다. 그러므로 쓴 사람은 '모방이 아니고 표절은 더구나 아니'라고펄쩍 뛸 노릇이다. 하지만 같은 이미지가 포개진다면, 결과적으로 부분 모방 또는 부분 표절로 몰릴 수밖에 없다. 말은 안 해도 독자는 속마음으로 그렇게 간주할 것이다. 속마음(내심)으로 굳히는 판단이니, 따라다니며 변명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미지라는 것은, 시 작품 속에 전개된 내용에서 앞과 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서로 잘 어울려야, 이미지의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서술된 표현 속에 이미지는 마치 천조각들로 이어 맞춰진 조각보처럼, 아우러진 조화와 균형 이것들을 생명으로 기능한다.   한 편의 시 작품 속에서 이미지가 조화스럽고 균형되게 아우러졋다면, 이를 놓고 문학 이론서에선 '정서 논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의할 것은 일반 논리(一般論理)가 아닌 정서 논리다. 큰 기게를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듯, 또는 손목시계 속에서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리듯, 정서적으로 척척 맞아떨어지는 경우라야 독자에게 상상 연상 또는 환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런 황홀한 세계를 독자가 만나야, 시인의 내면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잇으며 실제 이상의 세게로 들어갈 수 있다. 이미지는 생각의 조각에다, 천사의 날개 같은 날개를 달아주는, 멋진 기능을 시 속에서 하는 것이다.   또 이미지는, 다른 한편, 낡은 시형식이나 오래 전부터 자주 동원된 시어를 물갈이하는 방법으로 채택된다.   시에 동원되는 단어들이 새로운 단어로 바뀌는 것은, 시인이 시를 창작할 때 전에 한번도 쓰이지 아니한 새 이미지로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요즘 새로 등단하는 신인들의 작품을 읽으면, 그들이 사물을 보고그 사물에게서 뽑아낸 이미지가 얼마나 새로운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곧 이미지의 표출 방식이 그 전 세대와 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시의 진화(進化)는 새로운 이미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시적 대상에서 시적 메시지를 끌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감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참신한 이미지의 표출을 위해 전연 새로운 발상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꿈을 꾸고 이를 표현할 언어를 찾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의 차이로 말미암아, 전세대의 수용 감각과 신세대의 수용 감각에 차이가 나고, 틈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의 진화는 이루어지고, 수용 감각의 차이로 시를 대하는 감각이 달라지며, 마침내 이미지를 표출하는 능력까지 '같지 않게' 되고 만다. 같은 재료를 쓰면서 다른 차원의 형상을 빚는 감각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이미지의 처리에서도 또한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옛 사람들의 정서 작품인 시조(時調)를 보면, 꽃의 이미지로 여인을 글 속에 숨겼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 활용 기법은, 생존하는 시인 김춘수의 '……내가 네 이름을 불러주기까지……'라는 작품 '꽃'에까지 지속되어 왔다.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한다면 이 경우 호박꽃의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활용된 것이지만, '수더분한 누나가 생겨날 때면 호박꽃을 보러 울타리로 간다'고 했다면 호박꽃의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의 활용은 시인의 잠재의식에 따라 달라진다. 시의 품위를 유지하는데, 이미지의 활용은 결정적 일몫을 한다. 이미지의 활용을 천박하게 하면, 시가 아닌 '유행가'로 전락하고 만다.   따라서 시 작품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내적 잠재의식이 고상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오늘날 어린이도 읽을 만한 시, 곧 동시 속에 시인들이 어떤 이미지를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나라 동시의 미래와 직결되는 과제가 된다.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라고 해서, 유치한 이미지 활용을 생각없이 일삼는다면, 동시가 천한 것이 될 것은 확실하다.   요즘 동화의 소재로 '똥'이 자주 채택되는데, 이는 일부 사실주의 작가들의 이야기와는 달리, 철학이 빈곤한 작가들의 짓거리일 수도 있다.   어린이에게 권할 만한 시, 곧 동시에도 이런 경향이 옮겨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시는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조각이고 정서의 보석이다. 시에는 조각 같고 보석 같은 영혼이 담겨야 시로서 존재할 수 있다.   아이들이 글짓기 시간에 써내듯, 아동문학가로 등단한 시인이 한두 시간 안에 동시라고 써내는 글을 보면, 말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이미지의 연결에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   '꽃밭에 가장 큰 해바라기꽃은 우리 아버지……' 이것은 초등학생의 글인가, 아동문학가의 글인가? 초등학생이 능히 써 낼 수 있는 글을 아동문학가의 작품이라고 발표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초등학생 수준으로 퇴장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시를 쓴다고 하는 아동문학가들이여, 발표하기 전에 한 주일에 한 번씩 한 달쯤, 두고두고 퇴고하길 바란다. 서로 상충되는 이미지는, 원고지만 구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문학의 얼굴까지 구겨 놓기 때문이다.  (2003-겨울 『한국동시문학』 제4호에서)   동시 창작론 ⑤ 상징(象徵)의 활용(活用) 유경환(시인, 동시인)     동시를 쓰는데 상징(symbol)을 왜 알아야 할까?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자. 이론은 들어본 적이 없어도 훌륭한 동시 작품을 써낼 수 있다. 이론 공부 없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하고 문예지의 추천으로 등단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론 공부를 구태어 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창작 행위에 있어서 이론이란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을 알아 두어야 할 이유가 있다. 이론 공부는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거름주기'와 같다.   한두 번 동시를 써본다거나, 아니면 몇 편 써낸 동시 가운데 잘 된 것으로 한 편이 뽑히거나 가려진 경우엔 '이론 없이도 된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수준의 동시 작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려면,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함을 동시 작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문학은 원래 혼자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혼자 창작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아심이 자기 속에서 떠오를 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이론서를 꺼내 뒤적여야만 한다.   마치 '저쪽이 내가 가려는 남쪽'이라 믿고 배를 몰고 나가다 한참 뒤에 동서남북을 가릴 만한 것이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되면, 그 때에야 나침반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훌륭한 동시를 써내겠다면 상징의 활용이 어떤 효과를 작품에 얹는지 알아야 한다. 동시 창작에 있어서 상징의 활용은 필요 조건이 아닌 충분 조건이다. 쉬운 말로 한다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징을 알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조건을 더 얻는 셈이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상징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존의 이론서처럼 하자면 제1장 제1과 이렇게 나눠 놓고 상징의 의미, 상징의 구사, 상징의 효과…… 이런 식으로 설명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도 좀 바꿔 보자. 다른 나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식으로 우리도 부드럽게 이야기식으로 풀어가 보자.   교과서에 나온 동학혁명 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을 때 그 시절 사람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노래를 불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이 노래 속의 녹두는 곡식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을 상징하였다. 녹두장군이란 말도 있었다.   아침에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해서 까치는 반가운 새로 여겼으며, 그와 반대로 까마귀를 불길한 새로 여겼다.(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까마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유치환 시인의 알려진 시 작품에서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 곧 생명의 몸부림을 상징하는 시어로 씌였다.   이육사 시인의 알려진 시 작품에서 '광야'는, 광막한 현실, 곧 일제 시대의 우리 나라 형편을 상징하는 시어로 구사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알려진 시작품 가운데 '꽃'은 어떤 상징으로 동원되었는지는 이미 지난번에 이야기하였다.   태극기는 우리 나라의 상징이고 푸른색 한반도는 통일된 나라의 상징이다. 태극무늬, 장고도 상징으로 씌이는 경우가 있다. 시야를 넓히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며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본 지구본은 유엔의 상징이다. 학교마다 교기가 있고 모표나 배지가 있다. 이만하면 상징이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쯤에서 어려운 말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징은, 복합적 의미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를 대신하도록 특별한 의미를 확대한 표상(表象)이다. 그래서 문예 이론서에서는 상징주의를 표상주의라고도 부른다.   동시 작품을 쓰는데 상징법을 활용한다는 것은 직접 표현은 미뤄 놓고 간접 표현을 써서 독자로 하여금 더 깊고 더 넓은 뜻을 생각하도록 새로운 해석에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유도 기법이다.   동시 작가들이 동시를 창작하는데 무덤가에 핀 할미꽃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도록, 하늘에 일찍 뜬 이른 별은 하늘에 올라간 언니나 동생을 생각하도록 , 또 안 보이는 곳에서 울어대는 산새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도록, 상징법을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할미꽃, 별, 산새…… 따위들은 이미 상징 시어로서 생명을 잃은 낱말이 되었다. 더 이상 상징 시어로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닳고 때묻은 낱말이 되었기에, 이런 상징 시어는 독자에게 참신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다. 지속적으로 동시를 써내야 하는 동시 작가라면 상징 시어로서 새로운 낱말을 찾아내고 골라내야만 하는 부담을 그래서 안게 된다.   말을 뒤집어 하면, 참신한 동시 작품을 쓰고자 한다면 먼저 참신한 상징시어를 찾아내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요즘 박두순, 이준관, 윤삼현, 이상문, 이정석, 한명순, 신형건(무순) 시인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상징의 활용에서 남다른 기량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그 앞 세대가 구사하던 상징 기법과 아주 다른 상징 기법을 스스로 개척하여 활용하는 본보기들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의 상징 활용과 상징 기법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동시가 너무 어려워…… 난해한 것을 써놓고 저희들끼리만 좋다고 하는, 저들끼리만의 잔치'라고.   직접 표현의 낱말만 가지고 동시를 써온 세대가 있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읽고 들으면 금세 알아듣는 직접 표현의 낱말만 시어로 선택하였던 세대가 오늘날 70대 후반과 80대에 이른 원로 세대이다.   그러나 직접 표현의 낱말을 시어로 써온 80년 동안, 그런 낱말들은 '반달' 같은 눈썹, '앵두' 같은 입술에서 반달이나 앵두처럼, 상징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퇴색하고 말았다.   그래서 6.25전쟁 직후부터 새로운 세대의 동시 작가들이 직접 표현 대신에 간접 표현의 시어를 도입 구사하는 방법으로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기치를 올렸던 것이다. 이 기치는 필자가 맨 먼저 들었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말의 뜻은, 동시는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라는 것이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발맞춰 가며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 같은, 틀에 맞춘 동요― 틀에 맞도록 한 가지 이야기를 줄 바꿔가며 짧게 줄인 노랫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다. 벗어나기 위해 간접 표현을 중시했고 상징 활용을 은유적으로 시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간접 표현 중시와 상징 활용을 눈치 채지 못하는 일부 동시인들이(일부 비평가와 함께) 입을 맞춰 '난해하다'는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계속 할미꽃, 별, 산새, 반달, 앵두…… 이런 정도의 낱말만 상징 용어로 쓰이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이야기 한 토막을 몇 줄로 줄 바꿔가며 나열하는 것이 쉬운 동시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유아 동요나 유년 동시에는 상징을 활용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사실이다. '짝자꿍' 같은 유아 동요나 유치원 원아들 수준에 맞는 유년 동시에서 상징을 구사하면 오히려 혼란이 온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의 '새 나라', '어린이'는 그냥 직접 표현으로 충분하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서의 '나팔꽃'이나 또는 '과꽃'도 직접 표현으로 충분하다. 이런 동시는 한 줄의 이야기를 내재율이나 외재율에 맞도록 줄을 바꿔 쓴 '이야기'이므로(이야기 속에 모든 것이 이미 들어가 있으며) 한 번 읽어서 대번에 들어있는 뜻을 알 수 있으므로 구태어 상징을 동원할 필요도 구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동시가 언제까지나 이런 노랫말에 맞는 동시 수준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정서면에서 지체 또는 장애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나라 어린이들 그리고 청소년(teen-ager)들이 어떤 시를 읽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를 권한다. 모르면 배워서라도 바로 알아야 할 일이다. 우물 속에 들어가 앉아 하늘 둘레가 지금 몇 미터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아니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100년 전도 아닌 오늘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현실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여기면서 읽고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프랑스의 어린이들이 보들레르의 시를 초등학교 과정에서 외우는 까닭을 모르면, '동시에 왜 상징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것이 뻔한 일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간다. 동시에서 상징을 활용하면 동시가 지니고 있는 함의(함축된 의미)를 확대시킨다. 물 위에 뜬 얼음만 읽어도 물 속에 잠긴 빙산의 규모까지 해석할 수 있도록 상징 기법을 쓰는 것이다. 물 위에 뜬 글자만 읽어도 물 속에 잠긴 것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물 위의 글자를 직접 표현으로 하지 않고 간접 표현으로 쓰는 것이 최종적 대답이다.   좋은 동시로서 난해한 시는 있을 수 없다.   산을 다룬 좋은 동시는 산을 주제로한 동시로도 읽히면서 아울러 덕스러운 할아버지의 상징성을 풍기기도 한다. 강을 다룬 좋은 동시는 강을 주제로 한 동시로 읽히면서 오랜 역사나 전통의 상징성을 독자에게 넌즈시 던져주기도 한다. 나무를 다룬 좋은 동시는 그냥 나무의 시로 읽히기도 하지만 아울러 인격이 높은 사람으로 읽히기도 한다.   문제는, 좋은 동시가 품고 있는 그 내면의 이중성을 독자가 감지하지 못하거나 찾아내지 못할 경우, 좋은 동시를 '난해하다'고 단정해버리는 태도에 있다. 백두산을 다룬 동시에서 '백두산'이 나라를 상징한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리면서 다른 동시가 속깊이 품고 있는 상징성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 독자의 능력과 수준의 문제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좋은 동시를 읽고 '난해하다'고 하는 사람은 좋은 동시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를 식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하필이면 좋은 동시가 못 되는 작품(?)을 놓고 '난해하다'고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좋은 동시와 난해한 동시의 상관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핳 수 있다.   ① 좋은 동시는 난해한 시가 아니다.   ② 난해한 시는 좋은 동시가 될 수 없다.   ③ 난해한 것은 좋은 동시가 못 된다.   ④ 좋은 동시는 난해하지 않다.   되풀이하자면, 좋은 동시인데도 난해하다고 우긴다면 그 상징성을 파악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만한 독해력을 갖추지 못한 독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반 독자도 아닌 비평가라는 사람이 좋은 동시를 놓고 난해하다고 앞장선다면 우리는 이 비평가라는 사람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2004년 봄 『한국동시문학』 제5호)   동시창작론 ⑥ 비유의 정체와 기능 ―비유를 모르면 시를 못 쓰는가? 유 경 환   '비유컨대, 한용운의 시에서 님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한다. 비유라는 낱말이 문장에 등장한 경우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김동명의 시에서는 호수가 마음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성서는 비유로 가득 차 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의 양, '나의 목자시니'의 목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의 포도나무는 모두 비유이다. 불교의 법구경도 비유로 말한 경구들의 모음이다.   윌리암 워드워즈는 무지개를 이상에 비유했다. '용비어천가'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도 비유의 시다. 월인천강은 '1천 개의 강줄기에 달이 빠져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 1천 개의 강줄기는 수많은 강의 과장 표현이다. '임금이 어질면 그 은총이 어디에나 고루 퍼진다.' 이런 해석이 위의 한자 넉 자에서 나올 수 있다. 달은 군주의 비유로 쓰였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라는 강소천의 '닭'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 이상을 쳐다보는 인생을 비유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동요 '병아리떼 종종종'의 병아리도 귀여운 어린이의 비유일 수 있다.   자, 이 정도의 예문을 읽어보면 비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떤 관념이나 사물을 그와 비슷한 것을 끌어대어 설명하는 일'이 사전적 비유의 뜻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정의를 읽으면 알 듯한 뜻이 더 알쏭달쏭하게 안개 속에 숨겨진다.   비유란 쉬운 말로 빗대어 하는 말이다. 빗댄다는 말이 흔히 나쁜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개념의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빗댄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는 이미지를 끌어오기 위해 빗댄다고 여기면 된다.)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끌어다 설명하는, 간접적 묘사의 방법이라고 받아들이면 비유의 개념은 단순해진다.   그러면 왜 다른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끌어다 간접적으로 설명하려는 방법을 쓰는가? 비유의 방법을 쓰면 독자에게 해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다. 독자에게 해석의 폭을 넓혀주는 일몫이 바로 비유의 기능인 까닭이다.   독자는 독자 나름으로 제각기 체험(내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독자 체험과 쉽게 연결시켜주는 일몫이 비유의 효과에 들어 있다. 그래서 비유의 기법은 독자의 체험과 서로 관계가 있는 상관 관계라고 말한다.   강소천의 작품 '닭'에서 닭을 그냥 마당가에 이리저리 다니는 닭으로 읽는 독자는 어린 독자이고, 닭 이상의 것으로 읽는 독자는 그만큼 성숙한 독자이다. 한 군주가 어질면 만 백성이 편하게 산다는 해석을 하는 이는, 월인천강의 달을 임금으로 해석하는 사람이다.   비유의 기법을 써서 다른 사물의 이미지를 끌어다 간접적으로 설명하면 그만큼 해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체험을 지닌 폭 넓은 독자층에겐 전달 의지가 쉽게 수용될 수 있다. 독자는, 성숙한 독자일수록 다양한 체험을 축적하고 있으므로, 그만큼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비유와 체험 사이를 말하는 상관 관계의 참뜻인 것이다.   비유는 영어로 메타포어(metaphor)이다. 비유는 직유(直喩)와 은유(隱喩)로 갈라볼 수 있다. 직유는 한자 그대로 직접적인 비유를, 은유는 한자 글자대로 은근한 비유를 가리킨다. 시에서는 직유보다 은유가 더 쓰인다. 영어에서 a heart of stone 이라고 쓰면 비유가 되는데, a heart like stone 으로 쓰면 직유가 된다. 직유의 예문으로 꿀벌처럼 부지런하다를 as busy as a bee 라고 쓰면 꿀벌은 직유인 것이다. 비유의 개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영문으로 예문을 들었지만 이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 한번씩 짚고 넘어갔던 것이기에, 비유가 문장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확실하게 밝혀보기 위해 재인용한 것이다.   그러면 이런 비유를 시 쓰는 작업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기로 하자. '이런 비유를 왜 알아야 하는가'로 줄여서 말할 수도 있다. 몰라도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서를 하다보면, 한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량의 책을 읽다보면, 문장의 파악에서 저절로 비유의 일몫을 일깨우게 된다. 문법상 비유의 기능은 해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a heart of stone 이라고 할 때에, '돌 속에 들어 있는 마음'으로 읽는 이는 아주 적을 것이다. 돌 같은 마음(a heart like stone)으로 읽고 감상할 것이다. 그러나 문장으로서는 a heart of stone 이 더 멋지다. 왜 더 멋질까? 비유가 시에 있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시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데 비유를 모르면, 낱말의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것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뒤집어 말하면, 비유가 없는 문장에선 사전적 의미 이상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비유가 시에서는 중요한 시적 요소가 된다.   한 문장에서 또는 글에서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감상밖에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문장이 되겠는가. 뼈가시만 남은 물고기를 뱃전에 잡아매고 돌아온 헤밍웨이의 소설 '바다와 노인'의 그 '앙상한' 해석만 가능할 것이 아닌가. 이쯤에서 비유의 개념과 기능을 더 분명하게 짚어보자. 비유는, '시에 함축된 의미를 독자의 체험만큼 확대시켜주는 효소'라고 할 만하다. 시어로 동원된 언어의 뜻을 기량껏 더 깊고 더 높게 확대시키는 마술적 기능을 비유가 한다. '기량껏'이라는 것은 독자가 지닌 '체험의 질(質)과 수준에 따라서'라는 말이다. 언어의 요술사가 바로 이 비유인 것이다.   복사꽃이 이울게 되어 바람에 날릴 때, 시인이 '꽃비'가 온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꽃잎이 눈 내리는 것보다 더 자욱하게 날리는 것을 보지 못한 독자는 (이런 체험의 결여 때문에) '꽃비'라는 비유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는 독자는, '꽃비'라는 비유를 바로 받아들이게 된다. 비처럼 꽃잎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체험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내면적으로 생각해 본 독자는, 1차 비유인 꽃잎을 넘어서 2차 비유로 '목숨이 진 낙화'로 '꽃비'를 확대 해석한다.   이렇듯, 시어의 함의(함축된 의미)를 한 겹만이 아닌 두 겹 세 겹까지 벗겨내는 해석, 이것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능이 비유의 숨겨진 기능인 셈이다.   사람이 그 주변 분위기나 환경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비유는 시를 이루는 글의 옷을 맞춰 입히는 일몫을 한다. '가을이 오자 나무도 나뭇잎을 떨군다"는 글은 산문이고, '노란 빨간 옷 / 벗는 나무'의 두 마디는 운문이다. 같은 독자가 위의 산문과 운문을 읽었을 때,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은 어떤 것인가. 뒤의 것이다. 사막에선 / 바람이/ 줄무늬 만들고 // 가슴에선 / 그리움이 / 줄무늬 만든다.// 그리운 이름 하나 / 가슴에 묻고 / 살지 않으면 / 어이 가슴에 / 줄무늬 일겠는가.// (졸작 '사막' 전문)   이 시에서는 사막도 줄무늬도 모두 비유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쏘사이어티가 보여주는 사막의 필름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장면의 모래줄무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 모래사막을 자신의 가슴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위의 필름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아예 달라진다.)   사막을 자신의 가슴에다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리움 때문에 가슴앓이를 해 본 사람이다. 그리움, 이 때문에 잠을 제 때에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속앓이를 해 본 사람만이 사막의 줄무늬와 자신의 내면에 그어진 줄무늬를 연결시킬 수 있다. 가슴앓이라는 체험이 이 시에 구사된 비유를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체험을 매개로 하여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석중이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자선한 동시 '꽃밭'은 아기가 넘어져 한참 울다가 보니 정강이에 피가 아니고 꽃잎이라는 내용이다. 여기서 윤석중은 새빨간 피와 새빨간 꽃잎을 비유로 쓰지 않았다. '새빨간 피가 아닌 것을 자세히 보니 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피와 꽃잎은 몇 번을 읽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피와 꽃잎일 뿐이다. 절대로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시 '꽃밭'이라는 동시의 감상은 이렇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피가 아닌 꽃잎'이라는 설명을 시 속에 넣지 않고 생략했더라면, 감상의 폭은 더 넓게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비유가 시의 함의와 그 해석을 확대시킴으로써 시의 멋과 격(格)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지난 날, '동시에도 비유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을 때엔, 동시 창작에 비유가 거론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동시를 '어린이가 읽을 만한 시'로 수용하는 오늘날에는, 비유에 대한 공부가 당연히 있어야 하겠다. 다만 유치원 원아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읽을 만한 동시 창작에는, 비유의 활용과 기법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 실정법상 미성년자는 모두 어린이이면서 아울러 청소년이다. 이 애매한 지칭 때문에 '어린이'라는 말의 개념 범주가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우린…… 동시는 유치해서 안 읽어요'라고 거침없이 내뱉는 현실에서, 동시를 계속 유치원 원아나 초등학교 저학년 계층에 걸맞도록 창작할 것인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나라 현재의 동시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의 접근을 막거나 배척하는 그런 수준의 동시인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읽힐 것을 바라며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심각하게 들어야 하고 냉철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이다.   유아 동시 유년 동시에서 어린이에게 읽힐 만한 시로 위상을 바꾸려면, 동시 창작에서 비유의 기법을 충분히 활용하는데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비유는 시의 발효를 돕는 효소, 꼭 있어야 할 효소이다.   (2004년 여름 『한국동시문학』 제6호)   동시 창작론 ⑦ 고쳐쓰기 유경환(동시인/시인)   옛날에 쓰던 교과서엔 '고쳐쓰기'를 퇴고라고 하였다. '퇴고'라고 한자로는 '堆敲'라고 쓴다. '시문의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이, 사전에 나와 있는 풀이다. 한자 때문에 한때엔 '추고'라고도 했다. 어떻게 일컫든, 고쳐쓴다는 뜻은 같다. 그러기에 '고쳐쓰기'로 한다.   글을 쓰는 일에서 고쳐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는 것은 글을 쓰는 경력과 관계가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나이에선 고쳐쓰기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잘 쓰면 되지, 왜 쓰고 나서 또 고치고 고치고 해야 돼?' 이런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이런 의문을 지닌 사람에겐 '그래, 네 말도 맞다.'라고 하는 것이 상책이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사람에겐 아무리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쓸 만한 속담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차차 글쓰기가 쉽지 아니한 일임을 알아차리게 되고 글쓰기가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자, 비로소 고쳐쓰기가 왜 필요한지를 납득하게 되었다.   고쳐쓰기는 단순히 고쳐 쓴다는 것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고쳐쓰기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 내는 기회와 만남이기도 하다. 고쳐쓰기는 '생각의 우물'을 더 깊이 파고드는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고쳐쓰기는 그냥 이미 써놓은 것을 되짚어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반드시 거쳐야 할 창작의 과정이다. 건너뛸 수 없는 글쓰기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흔히 고쳐쓰기를 '써놓은 것을 다듬는 일'로 여기기 쉽다. 이런 것으로 여기면 건너뛸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왜? 사람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좁은 병목에 걸려 잘 나오지 않듯이, 글을 쓸 때 생각도 손을 기다려주지 않고 앞질러 나오려 하는 것을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이런 경우, 생각이 국수 기계에서 국수발이 가지런히 나오지 못하고 뭉개지듯 또는 실타래에서 할머니들이 실을 풀어낼 때 실이 엉키는 일과 비슷하게 된다. 글을 쓸 때 손을 통해 펼쳐지는 생각도 이와 같다. 가슴속의 생각과 그리고 손끝의 생각이 뒤엉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되면 '생각'이 차분하게 순서에 맞게 서술되지 못하거나 서술이 뒤바뀌는 결과가 된다.   이렇기 때문에 글은 (운문이거나 산문이거나) 반드시 고쳐쓰기 과정에서 고쳐져야 옳다. 만일 고쳐지지 아니하면,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혼란을 주거나 또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치 못하게 되므로 받아들여지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고쳐쓰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① 틀린 곳을 바로잡는다.   ② 문법과 어법에 맞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③ 빠뜨린 것을 알게 되어 보태어 넣는다.   ④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뒤늦게 집어넣는다.   ⑤ 더 깊은 뜻을 스스로 깨닫고, 새로운 의미를 글에 덧붙인다.   여러 번 (다른 글에서도 이미 이야기했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셈이지만, 나의 경우 작품 한 편을 완성시키는데 평균 다섯 번 원고지에 옮겨 쓴다.   지겹고 귀찮은 작업이다. 하지만 활자로 찍혀나간 뒤에는 고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내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기에 미흡한 글인 경우, 굴곡 왜곡 또는 와전될 가능성이 크기에 안타깝다.   그래서 지겹고 귀찮아도 옮겨 쓰고 또 옮겨 쓴다. 다시 옮겨 쓰면서 위에 열거한 다섯 가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발견'하며 위안을 얻으면서 보람을 느낀다.   고쳐쓰기가 지니는 또다른 의미는 '객관적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 객관적 시각이란, 글을 읽는 냉정한 눈길을 말한다. 흥분된 나의 눈이 아니라 냉정한 남의 눈인 셈이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글을 쓸 때에는 누구나 그 나름의 흥분을 지니게 된다. 이런 내적인 긴장 상태는 글을 계속 써 나가도록 밀어주는 힘, 곧 추진력을 팔과 손에 실어주지만 그 대신 '신나는' 흥분을 느끼게 한다.   이 흥분은 글을 쓰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 시각을 잃게 하거나 또는 주관적 판단을 우선시키도록 유도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잘 씌어진다' 또는 '잘 나간다'는 엉뚱한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런 함정에서 헤어나오는 기회가 바로 고쳐쓰기의 기회다. 고쳐쓰기는 나의 눈이면서 동시에 남의 눈인 '객관적 시각'으로 다시 훑어보게 하는 기회를 안겨준다. 남에게 읽어보도록 하고 나서 틀린 곳 고칠 곳을 지적받는 작업에 버금가는 기회인 셈이다.   나의 눈과 남의 눈은 같지 않다. 틀리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로 말미암아 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글에 대한 나의 주장보다 독자의 주장을 고맙게 여겨야 글이 늘 수 있다. 일단 발표되고 나면 독자의 평가에 변명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발표되기 전에 (고칠 수 있을 때에) 고쳐쓰기를 통해서 고쳐 쓰는 것이 바른 작법이다.    또 고백하자면 초기에는 마침표를 찍자마자 청탁된 주소로 보내었다. 마음에 드는 글을 마쳤다는 기쁨이 나를 서둘러 우체통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밥을 지을 때 불을 끄고도 한참 동안 뜸을 들이듯 글에서도 뜸을 들인다. 뜸 들이는 시간에 고쳐쓰기를 되풀이한다. '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그전에 못햇었지?' 아니면 '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빠뜨리고 그냥 넘어갔지? 하면서 원고지를 더럽힌다.    원래 원고지라는 인쇄된 용지는 고쳐쓰기를 하기 쉽도록 고안된 용지다.  줄을 그어 글의 순서를 바꾸거나 옮기고 또 덧붙인 글을 줄로 끌어들이며 중복된 부분을 지우게 한다. 예전에 고쳐쓰기를 할 때 빨간 색 잉크나 볼펜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쳐쓰기를 끝낸 원고지를 인쇄소 사람들이 '빨간 종이'라고 불렀었다.   사람의 생각은 끊이지 않고 나오는 법이 없다. 논리적인 서술인 경우 더 그렇다. 토막토막 끊긴 사유의 결과를 한 줄의 글로 이어맞춰 나가려면,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고 가다듬은 생각을 순서대로 줄 세워 체계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줄 세운 생각을 이어가면서 써나간다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유도 어렵지만 사유의 결과를 쓰는 작업도 힘드는 일이다.   이런 순서, 곧 배열과 전개의 서술은 운문에서 더욱 어렵고 힘드는 일이다.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면서 몇 번이나 다른 시도를 실험한다. 이 또한 고쳐쓰기에서 가능한 작업이다.   작품을 쓰고 나서 고쳐쓰기를 서둘지 않는다. 일부러 간격을 둔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안목으로 평가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읽되 남이 보듯 다시 읽는 데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대강 한 주일쯤 뒤에 다시 본다. 작품을 쓸 때에 만나게 되는 내적 긴장, 이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다음에라야 자기 흥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흥분에서 '자유로워야' 비로소 남의 눈으로 읽게 된다. 이렇게 해야 '고쳐야 할 곳'이 제대로 눈에 띈다. '다섯 손가락 안 아픈 데 없다'는 속담은 자기가 써놓은 글, 곧 작품에도 그대로 적중한다. 애써 힘들여 써놓은 글일수록 어느 부분을 쉽게 잘라버리기가 아주 어렵다.   이렇게 한 주일만에 한 번 고쳐쓰기를 하고 또 미뤄 두었다가 다시 며칠 뒤에 다시 고쳐쓰기를 하고…… 몇 번 되풀이하면 그 과정을 다 거치는 동안에 '더 손 댈 데 없는 듯한' 결과로 낙찰된다. 손목이 저리고 눈이 아픈 경우가 왜 없으랴. 헌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써왔다면 이런 태도는 올바른 창작 태도라 할 수 없다.   글쓰기는 길 없는 곳에서 길을 묻는 일과 다름없다. 길 없는 곳에서 누구에게 길을 물을 수 있는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길 없는 곳에서 길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묻는 것과 똑같은 일을 고독하게 해내야 한다. 이런 일의 한 가지로 고쳐쓰기도 자신에게 길을 묻는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고쳐쓰기 또한 고독한 작업이다. 혼자서 기쁨과 보람을 찾아내는 작업.   한번 지나간 길을 되짚어 다시 오고 가듯 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치고 하는 되풀이는 지루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처음에 썼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 되기 십상이다. 나의 경우 끝부분이 크게 달라지곤 한다. 이런 결과를 놓고 '괜찮은 일인가? 하고 자문하거나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흔하다. 처음에 생각하였던 것과 아주 달라진 끝부분이 되어도 전연 개의치 않는다.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뜻에서 첫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처음 생각에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다 보면 완성도를 높이는데 지장이 온다. 자꾸 되풀이하며 읽다가 문득 멋진 생각이 떠올라 비로소 마음에 드는 맨 끝줄 한 줄과 만나기도 한다. 혼자서 무릎을 치게도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크게 보아 '고쳐쓰기'의 범주에 드는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덧붙이는데 그것은 외국에서 하는 글짓기 방법이다.   밖에 나가 공부하는 동안 방학을 맞아 일리노이 스프링필드라는 곳에 가서 '시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가'를 살펴본 적이 있다. 본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칠판에 휫트먼의 작품 '풀잎'을 써 놓으면서 선생은 일부러 단어를 빈칸으로 남긴다. 그리고는 학생으로 하여금 빈 칸에 가장 적당하다고 여기는 단어를 시어(試語)로 선택하여서 메꾸도록 한다. (벽돌 담에서 갈라진 벽돌을 깨뜨려 버리고 새 것으로 채우게 하는 것과 같다.) 대강 한 반에 12명 정도인데 앞의 학생이 선택한 단어와 같은 것을 뒤의 학생이 택하여도 괜찮다. 12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선택한 시어가 같은 것이라면 가장 알맞는 시어라고 우선 1차로 판정한다.   선생은 원작자인 휫트먼보다 더 나은 예비 시인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적 감각이 예민한 학생은 휫트먼이 생각지 못했던 시어의 구사 능력을 보인다. 휫트먼을 능가하는 새 시인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이다. (후배에 의해 교실에서 시가 고쳐지는 셈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를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다. 선생은 이 시(시조)를 가르치는데, 작자인 남구만(南九萬)이 어떤 사람이고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따위…… 작품 외적인 것만 들려 주었다. 원문에서 한두 자를 바꿔 읽었다가는 큰일이 나는 것처럼 우리는 공부하였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물론 원문을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원작보다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하는 방법론에서는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교실에서의 수업 방법이다.   이름난 양복점에서 양복을 맞추면 가봉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아주 꿰매기 전에 한번 입혀보고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마무리 작업이다. 그러나 큰 백화점 같은 곳에서 파는 기성복을 사 입는 경우, 이 가봉이라는 절차는 있을 수 없다. 맞춤양복이 몸에 맞는 것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서 고쳐쓰기란 바로 이 마지막 과정이라 여기는 것이 좋겠다.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7호)   *동시 창작론 ⑧ 감동, 체험의 일치에서 오는 감동 유 경 환   1   창작론에서 아직까지(7회에 걸쳐) 다루어 온 것은 외적인 틀(하드웨어)에 관한 것이었고, 이제부터는 알맹이에 해당하는(소프트웨어) 내적인 질(質)에 관하여 다루겠다.   2   시의 알맹이는 감동(感動)이다. 시에는 감동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 줄여서 말하면, 시는 곧 감동이다. 감동을 줄 수 없는 시는, 쓴 사람이 혼자 즐기는 시다. 그러므로 시라고 일반화하기 어렵다. 흔히 시의 생명은 감동이라고 말한다. 읽는이에게 감동을 전해주므로, 시는 널리 읽힌다. 이렇게 감동이 시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러나 대부분 감동적 요소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 숨겨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는 경우엔,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시에 감동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모르게 된다. 시에 대한 오해는 이렇게 비롯된다.   동시도 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고 1950년대 말에 외친 사람은 필자다.) 동시도 시이므로 또한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여기서 왜 다시 해야 하는가. 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듯이, 동시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부정적으로 쓰는 부사다) 많다. 더구나 아동문학인 가운데, 동시를 잘못 알고 있는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동시」작품이라고 발표되는 글의 질적 수준이 매우 유치하다. 동시라는 명사의 첫 글자 아이동(童) 한 자로 말미암아, 어린이의 입재롱감으로 동시를 인식하는 현실이 확대된다.   「동시」라는 일컬음이, 문학으로서의 동시의 본질을 왜곡시켰고, 그 원인은 1920∼1960년까지 우리 나라 문학에 대해 제대로 눈을 뜰 겨를이 없었다는 공백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이 그 동안 화석(化石)처럼 굳어 대물림되었다.   잘못된 인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째, '동시이므로 시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된다.' 둘째, '동시이므로 시의 차원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왜 자꾸 대물림되는 것인가. 서울의 신춘문예나 또는 권위 있는 문학 전문지에 여러 번 응모하였어도 등단에 실패하는 경우, '시는 어려우니까 이제부터 동시나 해봐야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지껄이는 인사들(?)에 의해서 퍼진다.   왜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에서 번번이 실패하는가? 그것은 시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이해가 오류에 기반하는 것이기에 시를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시는 서두에 말했듯이 감동을 내포하고 있는 운문이다. 감동, 그렇다. 이것이 들어 있어야 시의 기능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3   동시도 시이므로 당연히 시적(詩的) 요건(要件)을 갖추어야 한다. (이 한마디는 좀 번거로우므로, 이하 시적 요건을 그냥 시라고 말하겠다.) 동시와 그리고 일반시를 그림으로 그려서 이해를 돕게 하자면, 지름의 길이가 다른 동심원(同心圓)을 그려서 설명할 수 있다.   일반 성인시는 지름이 길다. 그러나 동시는 성인시에 비해 지름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이해와 감상의 폭이 같지 않다는 뜻이다. 동시는 어린이를 포함하는, 또는 어린이를 주된 독자라고 여기는, 이러한 대상을 의식하면서 쓴 시다.   지난 날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하여 쓴 시라고 하였으나 이는 편협된 견해이다. 이런 견해가 한동안 지배적이었던 것이 바로 1920∼1960년까지의 공백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 동시의 독자는 어린이에 한하지 않는다. 어린이에 한정한다는 생각은 폐쇄적 사고의 소산이다. '아동문학은 3대(代)에 걸쳐 효용을 발휘하는 문학'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영국의 이름난 시인들의 '어린이를 위한 시' 작품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낌없이 주는 나무' 등을 읽고 그 효과를 수용하는 계층은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른다. 우리 나라의 문단이 1920∼1960년까지 지극히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우물 속에 들어가 앉아 하늘의 넓이를 재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에게 읽히는 문학 작품이다. 동시는 어린이를 포함하는 (또는 어린이를 더 많은 독자로 여기는) 대상을 위하여 문인이 써내는 시 작품이다. 그러므로 아동이 써내는「아동시」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아동시」와「동시」의 질적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는 인사(?)들로 말미암아 혼동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기가 찰 일은, 적잖은 아동문학인들까지 어린이가 써내는 아동시 수준의 것을 자신의 문학 작품으로 읽어달라며 발표하고 있는 현상이다.   아동시와 동시의 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동시에는 (위에 여러 번 강조한 그대로)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하다. 시가 들어가 있지 아니하다는 말의 뜻은, 체험의 일치를 유발할 내용(또는 철학)이 들어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다. 경륜이 짧으면 체험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체험의 깊이가 얕으면, 감동시킬 핵(核)이 엷거나 약하거나 또는 없을 수밖에 없다. (이 핵은 바로 시적 요건이다.)   4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글을 동시라고 하면서 발표하는 것을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귀여움을 나타내고자, 예쁜 생각을 꾸려서, 어린이들이 늘 쓰는 낱말을 동원하여, 줄을 끊어서 몇 줄로 써내는 형식.'   이런 형식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시는 글자로 형상화된다. 글자로 형상화되므로, 글자가 수단이자 재료이다. 이런 기능을 지닌 글자를 배열하는 데엔, 눈에 잘 안 띄는 기술이 요구된다. 글자를 배열하는 주체(사람 = 어른 = 문인)는 글자들이 이루는 줄 사이 어딘가에 자기 체험을 깔아서 직접 나타나지 않는 어떤 생각(체험의 연장)을 불러 일으키는 기술을 숨겨 넣어야 한다. (이런 기술 숨겨넣기가 쉬운 것이 아니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마찬가지로 동시에도 이런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푸념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벽돌 쌓기처럼 고운 말을 쌓아 연결시키면, 재미있다고 어린이가 손뼉을 친다. 그러면 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 아닌 항의에 맞서서 대답을 하면, 곧이어 나오는 한마디가 '그건 어린이에게 난해하다'이다. 이런 사람에겐 당분간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받아들일 수준이 못 되기에 그렇다. 좀더 문학을 알게 되고 좋은 동시 작품을 읽게 되고, 그래서 혼자서라도 좋은 동시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게 된다면, 그 때 비로소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말을 수긍하게 되리라.   교직자로 일생을 보내다 퇴직한 교감, 교장 출신 아동문학인이 발표하는 작품을 보면 대부분 대칭 기법을 쓰고 있다. 대칭 기법이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 연에서 '맑은 하늘'을 쓰면 두 번째 연에선 '푸른 바다'를 쓴다. 첫 연에서 '푸른 산'을 쓰면 다음 연에선 '깊은 강'을 쓴다. 이런 식이다. 이런 식은 동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동시를 뜯어맞추는 것이다.   1920년대 창가(唱歌)라는 것이 있었다. 창이니 타령이니 하는 악보 없는 노랫가락만 전수하다가 악보가 있는 노래가 처음 보급되던 그 시기에 불리던 노래다. 오늘날 70대 할아버지 세대가 부르는 학도가(學徒歌)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학교의 교가도 그 즈음에 제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노래의 가사(歌辭)에는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하다. 전형적인 틀에 맞추어 찍어내는 붕어빵식이니 시가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그 영향을 아직 못 벗어난 교직자 출신 아동문학인들, 그들은 어린이의 글짓기 경험만 가지고 동시를 쓴다고 나선다. 시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으므로「자신」을 모를 수밖에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짜맞추기씩「동시」의 본보기를, 그래서 써내게 되는 것이다.   5   조선 시대의 시조 틀에서 최남선에 의해 자유로워진 것이 1920년대 1차 시의 해체이다. 그리고 신체시라는 이름으로 자유시가 씌어지고 퍼지고 한 것이 지난 30년간이다. 이 30년 동안에 윤석중이 정형율(3,4조, 4,4조, 7,5조 등)에 맞게 동요와 동시를 개발하고 보급시켰다. 정형율에 맞도록 써냈기 때문에,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기에 아주 수월하였다. 그래서 동요는 부르는 노래와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 그 혼용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윤석중은 우리 나라 최초의 동시집을 내면서 동시의 문학사적 지위를 확고하게 했다.   요즘 신현득이 새로 쓰는 '한국 동시사' 연재에서 밝혔듯이, 우리 나라 자유 동시는 1950년대 말에 2차 시의 해체가 시도된다. 신현득은 '유경환. 조유로, 박경용, 신현득'에 의해서 주창되었다고 썼다. 가장 정확한 기술이다. 어떤 아동문학사(史)의 기술에는 이와 다르게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지방 아동문학사의 기본 자료를 가지고 ○○대신 한국을 붙여 개작하였기 때문에 생긴 오류인 듯하다.   유경환이 1950년대 말에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기치를 들었을 적에, 지면을 내준 곳은 배영사와 그리고 교육자료사였다. 이 기치에 때맞춰 이론으로 걸맞게 옹호하고 나선이가 박경용이고, 조유로는 그 때까지 중앙에는 낯선 이름이었으며 2년 뒤에 신현득이 작품으로 동참하였다.   필자가 1950년대 말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고 외쳤을 적에, 당시 아동문학계는 건방지다는 투의 시선을 보냈다. 다만 이원수만이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런데 그런 말을 하려면 우선 작품으로 보여줘야지… 나는 유군이 동화를 쓸 줄 알았는데….' 라고 하였다. 이원수는 1952년 피난지 대구에서 내게 제1회「소년세계문학상」을 준 분이다. (당선작은 동화 '오누이 가게', 상으로 받은 금 5돈·메달 형식을 팔아서 1953년 고등학교 입학 등록금으로 요긴하게 쓴 것을 이미 다른 곳에서 말한 바 있다.)   195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작 없는 가작, '아이와 우체통')를 선고(選考)한 윤석중, 어효선(그 뒤 50년간 줄곧 가까이 찾아뵙곤 하였지만)은 필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번 더 응모하여 당선작을 내놓으라'는 충고를 따르지 아니 하였기 때문이다. (1957년 11월호 지에 박두진에 의해 초회시 추천이 이루어졌고, 1958년 4월호로 추천 완료 등단하였기에) 그러나 신현득은 2년 뒤에 가작 그리고 당선의 절차를 밟아 마친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에서 '동시도 먼저 시이어야 한다'는 외침은, 저항이나 거역으로 비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다행이도 박경용이, 필자와 사전 의논이라도 한 듯, 같은 주장을 펴준 덕택에 기진할 일이었으나 문단에서의 외로움을 참고 견뎌낼 수 있었다. 필자는 이원수의 '작품으로 해야지…'하는 말에 걸려서 서둘러 첫 동시집 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던 책방 겸 출판사인 숭문사에서 낸다.(1966) 이 때 숭문사에서 함께 나온 황영애의 동화집, 최효섭의 동화집을 기억한다.   6   동시도 시이므로, 시적 수준에 이른 것만 동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맞대고 나온 것이 동시의 난해성이라고 앞서 말했다. 난해성을 들고 나오면서 방어 태세를 취하는 사람들은 대강 다음과 같은 보충 설명을 붙인다.   '동시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기 때문에 쉬워야 하며 또 재미있어야 한다. 동시에서는 이 두 가지가 우선적 조건이다.'   이 말은 반만 맞고 반은 맞지 않는다. 우선적 조건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우선적 조건은 '우선 시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가 안 되어 있는데 쉽고 재미있으면 시인가? 그런데 적잖은 아동문학인들이 '쉽고 재미있는 운문이면 되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운문에서 시는 왜 찾아?' 라고 아전인수격의 주장을 편다. '쉽고 재미있으면 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갖추어야 할 시적 요건은 슬며시 흘려버리는 태도다.   색깔 있는 나무토막이나 장난감 레고같이, 낱말을 짜맞추어 읽기 쉽고 보기 좋게 틀을 짜놓고서, 이를 동시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겐 동시의 감동이 중요할 수가 없다. 동시를 어린이의 입재롱 놀이감쯤으로 여기는 태도이기에 그렇다.   시의 감동, 이는 시를 살리는 요체다. 동시에서도 똑같다. 동시를 읽고난 뒤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을 더 이상 읽겠는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될 경우 한 번 더 읽을 수 있겠다. 그래도 감상이 안 되면 체험의 일치를 위한 바탕이 들어 있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겉만 동시 형식이지 속이 없는 박제된 새, 곧 표본실의 새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2004년 겨울『한국동시문학』8호)   동시 창작론 ⑨ 생각의 우물 파기 유 경 환   1.   필자는 오래 전부터 '생각의 우물파기'라는 말을 써왔다. 한데 이 말에 낯설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 동시에 대해 그 동안 피력해 온 필자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퍼낼수록 맑은 샘이면 좋은 샘이듯이, 파내려 갈수록 생각의 우물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사유(思惟)를 우물에 비유하면 납득이 쉬워진다.   달리는 차를 타고 보게 되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서 동시의 소재를 얻기보다는, 깊은 연못처럼 폭 넓은 사색과 깊이 있는 사유에서 동시의 소재를 찾아내기가 바람직스럽다.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의 우물파기로 얻어낸 시상(詩想)을, 먼저 문삼석의 작품에서 엿보기로 하자. 숲 속의 풀들은 모두 풀빛인데요. 어쩌다 풀빛이 아닌 풀들이 섞여 있더라도 모두들 조금씩 제 빛들을 풀어내어 다 같은 풀빛이 되게 합니다. 숲 속의 나무들은 모두 나무빛인데요. 어쩌다 나무빛이 아닌 나무들이 섞여 있더라도 모두들 조금씩 제 빛들을 풀어내어 다 같은 나무빛이 되게 합니다. 그렇게 된 풀빛과 나무빛들 쌓이고 쌓여 숲빛이 됩니다. 깊은 빛이 됩니다.              ―문삼석 '숲빛' 전문   작품 '숲빛'은 눈으로 씌어진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씌어진 시다. 필자만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 한 번만 읽어보면, 생각 깊은 사색으로 발견해 낸 시의 세계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유가 없다면 이런 작품을 써낼 수가 없다. 생각의 우물을 파는 작업 끝에 얻어낸, 하나의 시상인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생각이 없다면 시도 없다'는 한마디 말을 할 수 있는, 증언 같은 것이 바로 '숲빛'이다. 문삼석의 깊은 사유가 이 작품에다 시를 흥건히 담아준 것이다.   다른 보기를 들겠다.   생각의 우물파기로 얻어낸 시상이 아주 잘 드러나는 작품을, 이준관이 '길을 가다'로 제시한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보고 싶다. 걸어보고 싶다.           ―이준관 '길을 가다' 전문   이준관은 길을 가다가 작은 새 한 마리를 보고, 아니 작은 새가 눈에 띄자, 그 때부터 계속 새에 대해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생각의 우물파기를 하면서 상당 기간 머리 속에 작은 새를 품었을 것이다. 이준관의 가슴이 곧 새장이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아기새'로 가슴속의 새가 '형상화'되어, 이준관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마음의 동무로.   자기 어깨 높이로 새의 어깨를 크게 치켜올려, 나란히 함께 걷는(노는) 동무로 여겼을 것이다. 생각이 작은 새를 이준관의 동무로 만든다. 이런 새의 변신(變身)이 가능한 것이 사유 세계이다.   세 번째 보기를 들겠다.   이창건의 작품이다. 시인의 생각이 바로 작품이 된다는 보기다. 시인의 가슴이 곧 작품의 터요. 아울러 작품이 담기는 그릇이 된다. 나는 구석이 좋다. 햇살이 때때로 들지 않아 자주 그늘 지는 곳 그래서 겨울에 내린 눈이 쉽게 녹지 않는 곳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들이 구르다가 찾아드는 곳 구겨진 휴지들이 모여드는 곳 어쩌면 그 자리는 하느님이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그 곳이 없으면 나뭇잎들 굴러다님이 언제 멈출 수 있을까.          ―이창건 '구석' 전문   목숨 있는 것 가운데 생각이 깊은 사람들만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시가 생각의 우물에서 길어올려지는 사색의 앙금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시를 만든다는 말은, 생각이 시의 재료라는 말로 다시 설명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보든 그 사물을 놓고 생각의 깊은 우물을 파내려 가지 않는 한, 눈앞의 사물은 그냥 사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사물을 놓고 생각의 우물을 깊이 파내려가 보면, 사물은 슬거머니 변신하게 마련이며 '형상화'되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이 진행되게 마련이다.   2.   동시를 쓴다면서(시를 짓는다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가슴에 시가 담길 그릇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결코 동시는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옮겨 적는 일로는 씌어지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시인의 생각으로 해석하고, 시인의 생각으로 다시 빚고 시인의 바람대로 태어나도록 새로운 모양을 지니게 형상화(形象化)시켜야 비로소 '창작'이 된다. '형상화'라는 말은 표의문자의 원래 지닌 뜻대로 '상징적 모양을 갖추도록 한다'는 것인데, 한번 더 굴려서 말하자면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는 모양과는 달리 지니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형상화 작업은 겉모양만 바꿔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들어 있는 본질적 내용까지 바꿔 지니도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형상화 작업은 시를 창작하는 알파요 아울러 오메가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시인 김춘수는 작품 '꽃'에서 꽃을 꽃이 아닌 다른 것으로까지 바꿔 놓지 아니했던가.   이쯤에서 뒤집어서(연역적으로) 설명하여 보자. 만약 생각의 우물파기를 하지 아니하고 '동시'라는 것을 써본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될 것인가 살펴보자.   첫 번째, 눈에 보이는 사물을 보이는 상태 그대로 묘사한다면, 산문이 될 것이다. 이 산문을 운문 형식으로 바꾸기 위해,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몇 줄씩의 행(行)으로 나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줄 바꿔 쓴 산문, 곧 '산문의 줄 바꿔 쓰기'에 지나지 않는 글이다. 이런 까닭에 ①동시의 요건인 '시가 들어 있음'에서 벗어난 글이 되며, ②동시의 요체인 감동이 없는 글이 되고 만다.   두 번째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이는 현상 그대로 묘사한다면 의미가 삽입될 틈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글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색깔 있는 단어를 동원한다든가 또는 대칭 단어를 짜집기 식으로 구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억지로 꾸며 쓴 글에 그치고 만다. 흔히 보아온 종이접기식이나 장난감인 나무벽돌 맞추기 같은 '짜맞춘 글'은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   시가 어떤 것인지, 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일부 아동문학인(?)들이 지면에 발표하는 것들 가운데 '산문의 줄 바꿔 쓰기'나 '짜맞춘 글'이 많은 까닭은 이렇게 해명된다. 이들에겐 '동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동시는 이런 것이다'라는 말을 먼저 들려주어야 옳은 순서이다.   그러나 이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아니, 여지껏 미뤄온 셈이다.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일깨워 줄 묘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하여 왔다. 누구든 동시를 제대로 공부하려거든, 먼저 동시집을 3백 권쯤 읽으라고. 3백 권이면 이 가운데 동시집다운 작품집이 3분의 1쯤 될까 말까 할 것이다.   그렇다 하여도 3백 권쯤 읽어내면, 그 과정을 통해서 어떤 것은 동시이고 또 어떤 것은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 형식인지를 스스로 식별할 능력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만일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 형식'에 질리게 된다면, 모름지기 자신의 내부에서 오는 거부 반응을 감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닫게 되는 이 방법론은 뉘의 자존심도 건드리지 않는 자기 수련이 될 것이다. 문학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선인들이 일찍부터 말해 오지 않았던가.   3.   생각의 우물파기라는 사유 세계의 확장과 심화(深化)는, 돌을 던져서 물주름을 퍼뜨리는 연못의 크기와 깊이에 비유할 수 있고 또 나무의 내면에 감기는 나이테에 비유할 수도 있다.   작은 연못에 돌을 던져 물주름을 만들 때, 퍼져나가는 파문의 크기는 연못의 크기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깊고 큰 연못에서는 연못 둘레만큼 큰 파문을 기대할 수 있다. 생각의 우물파기에서도 깊이 생각하고 크게 생각하여야만 큰 감동을 작품 안에 담아 낼 수 있다.   동시 작품에 담기는 시적 요건과 시적 요체에서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동시 작품의 질(質)과 격(格)에 있어서도, 깊이 생각한 결과와 넓게 생각한 결과로만 비로소 좋은 작품을 얻게 된다. 깊이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고 얻은 작품의 소재와 내용은, 깊은 의미와 감동을 지니게 마련이다.   그 대신 톡톡 튀는 듯한 가벼운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재치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이바지 못한다.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충족시키는 질과 격에서 이미 처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의 말을 통한 놀이감으로서 유희성에 이바지할 뿐이다.   나무가 자라면서 내면에 감게 되는 나이테. 이 나이테와 생각의 우물파기를 연결시켜 보자. 가늘고 작은 어린 나무에 들어 있는 나이테는 가는 몇 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고목에 감겨 있는 나이테는 그 연륜만큼 겹겹이 감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동들이 써내는 '아동시'에는 과연 몇 줄의 체험적 사유가 감겨 있을 것인가. 인생을 체험적으로 말할 수 있는 아동문학인, 이들이 창작하는 동시에는 작가로서 살아온 연륜만큼 축적된 체험적 사유 세계가 감겨 있을 법하다. 분명한 것은 체험적 사유 세계의 넓이다.   때로 아이들이 써내는 '아동시'에서 재미를 느끼는 재치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동문학인이 창작한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견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사유 세계의 넓이나 깊이에서 견줄 만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는 재치는 그것으로 끝날 뿐이지 결코 문학적 감동에 앞서지 못하는 것이다.   재미로 읽는 동시가 있고, 감동 때문에 읽는 동시가 있다. 재미로 읽는 동시는 한두 번 읽는 것으로 끝나나 감동을 느껴 읽는 동시는 오래 계속 읽힌다. 감동을 주는 동시가 문학 작품으로서 생명이 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진정한 동시 작가라면 어떤 동시를 쓰고자 할 것인가.   4.   생각은 열쇠다.   생각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어떤 사유 세계로도 들어갈 수가 없다. 깊은 사유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의미 깊은 작품을 써낼 수가 없다. 아니 구상(構想)조차 불가능하다.   발목이나 차는 냇물에 들어가 놀면서, 깊은 의미가 담긴 시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린 묘목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겹겹이 감긴 연륜의 나이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생각의 우물파기는 자기 가슴에 깊고 깊은 사유의 우물을 파라는 말이다. 깊이 가라앉은 사유의 결과를 퍼올릴 수 있으려면, 체험의 깊이만큼 해석의 깊이도 깊어야만 한다.   사물에 대한 시인의 해석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형상을 찾아내거나 남들이 꿈도 못 꾸는 상징을 발견해 낸다. 이 체험이라는 것, 그리고 이 체험의 해석이라는 것, 그 다음에 오는 형상화를 위한 상징의 발견이라는 것이, 사물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길에서 차례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시가 창작되는 과정이다. 동시 또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 창작된다.   리차드 바크는 '높이 나르는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면서, 광산은 깊이 파야 광물을 얻는다는 개념을 뒤집었으나 그 본질에서는 반대가 아니다.   진정한 아동문학인이면 교실 복도나 운동장에 뛰노는 어린이에게 집착하는 대신, 벌판을 달리는 어린이에게도 눈길을 돌릴 만하다. 어린이에게도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한 언어로 인생을 일깨워 줄 수가 있고, 삶과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하도록 암시해 줄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자라지 않는 어린이'가 아니라 매일매일 성장하는 어린이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작품성은 인간 삶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위안한다. 삶의 고달픔은 어린이의 어려운 삶에도 있다. 동시의 작품성은 어린이에게도 필요하다. 아니,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도 필요하다. 동시의 기능과 효용은 이렇게 확대된다. 깊은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동시는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는 모두에게 읽힐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우물을 더 깊이 팔 필요가 있다.   생각의 우물파기에는 아무런 연장이 없다. 있다면 짧은 관념의 호미가 우리들 마음 속에 있을 뿐이다. (2005년 봄『한국동시문학』제9호)   동시 창작론 ⑩ 묘사―외다리 걷기식 묘사법 유 경 환   1.   동시 쓰기에서 묘사 기법을 나는 '외다리 걷기'에 비유해 왔다. 외다리 걷기에는 (줄타기 놀이에서 보듯) 균형이 아주 중요하다. 균형을 못 잡거나 잃으면 떨어지고 말 듯이, 동시 쓰기에도 균형을 못 잡거나 잃으면 바로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면 외다리 걷기식이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으라는 것이다. 이 중심 잡기를 구체적으로 다음 3가지 기법으로 설명한다.   그 첫째는 짧게 쓰기다.   그 둘째는 간결하게 쓰기다.   그 셋째는 순수하게 쓰기다.   위의 3가지는 동시 쓰기의 묘사 기법에 기본이다. 이것들을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기본에서 이탈할 때 산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동시는 운문이다. 그래서 운문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문이 될 소지를 배제해야만 한다.   짧게 쓰고, 간결하게 쓰고 그리고 순수하게 쓰라는 것은, (같은 말의 되풀이이긴 하지만) 운문의 형식을 지키라는 것이다. 아주 쉬운 말로 다시 말하면, 형용사나 부사를 되도록 쓰지 아니하는 것이 위의 3가지를 이행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산문에서는 (더구나 소설 문장에서는) 형용사나 부사를 작가의 의도대로 중복하거나 또는 강조하는 뜻에서 겹쳐 쓰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 쓰기에서는 이와 다르다. 기둥과 가지만 남긴 채 겨울을 난 과수원 과수에 봄이 오면 잎이 돋아 나듯이, 기둥과 가지만 갖춰 주는 것이 시인의 몫이고 잎을 다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동시 쓰기의 묘사 기법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덜 쓰는 것은 읽는 독자의 몫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법의학자들이 아주 오래된 두개골을 발견하여 그 구조적 특징을 살펴서 인체 공학적으로 생전의 모습을 재현해 내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정서의 기본 뼈대만 갖춰 제시하면, 독자가 읽으면서 상상의 살을 붙여가며 감상하는 것이 제대로 동시를 읽는 법이다.   동시 읽기의 재미는 어디까지나 읽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정서의 뼈대에 기본이 되는 짧고 간결하고 순수함의 3가지만 요구된다. 쓰지 않아야 할 형용사나 부사를 묘사를 위해 썼다면, 이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독자의 상상인 독자의 재미를 앗아버리는 것이 된다. 물론 꼭 필요하거나 있어야 할 형용사 부사까지 쓰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급적 덜 쓰는 것이 가장 쉬운 기법이다.   2.   동시를 쓰는 묘사 기법에서 두 번째로 마음에 두어야 할 점은, 시인의 의도를 (버선목 뒤집어 보여주듯이) 다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동시를 쓰는 습작기에 있는 사람들은 독자가 이런 뜻을 짚어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스럽고 염려스러워서 쓰는 의도를 밝히려고 한다.   이렇게 '이 글은 이런 의도로 썼다'고 밝혀 놓는다면, 그 글의 성격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동시의 매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가 듣는 목적시들, 예를 들면 '어린이날 노래'라든가 '한글날 노래'라든가 '개천절 노래'들은 아무리 숭고한 뜻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날 하루만 불리는 노래일 뿐이다.   그러므로 동시를 쓰는 묘사 기법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점은, 독자의 눈에 쉽사리 드러나지 아니하도록 이중 해석이 가능한 낱말을 골라 시어로 쓰는 그 '어떻게'에 있다.   필자가 여기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묻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중 해석이 가능하지 않는 낱말로는 동시가 되지 않느냐?'고. 이런 질문엔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중 해석이 어려운 낱말의 모음만으로는 유치원 원아들이 부르는 노래 수준의 작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유치원 원아들이 즐겨 부르는 수준의 작품이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문학 작품으로 남기는 어렵다.   이름난 시인 정지용이 남긴 어린이를 위한 시 가운데 '해바라기씨'라는 것이 있다. 여기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해바라기씨를 심자. 담모퉁이 참새 눈 숨기고 해바라기씨를 심자. 누나가 손으로 다지고 나면 바둑이가 앞발로 다지고 고양이가 꼬리로 다진다. 우리가 눈 감고 한 밤 자고나면 이슬이 내려와 같이 가고 가고 우리가 이웃에 간 동안에 햇빛이 입맞추고 가고 해바라기는 첫새악시인데 사흘이 지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아니든다. 가만히 엿보러 왔다가 소리를 꽥! 지르고 간 놈이― 오오 사철나무 잎에 숨은 청개구리 고놈이다.                 ―정지용 '해바라기씨' 전문   여기서 '해바라기씨'는 그냥 해바라기씨일 수도 있으며 아울러 다른 뜻을 상징하거나 비유할 수도 있는 그런 씨다. 이 시가 씌어진 일제 시대에 일본 경찰을 우리 나라 사람들이 '참새'라는 은어로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하거나 알아 낸다면 이중 해석은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중 해석'이란 꼭 두 가지 해석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라는 뜻을 다중(多重) 해석으로 풀이하여도 좋다.   이 이중 해석은 읽는 독자의 체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체험 수준은 거의 나이에 따라 그 폭과 수준이 비례하므로, 이중 해석은 흔히 나이에 따라 나타난다고도 말한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할 때에 유치원 원아에겐 그냥 소의 새끼인 작고 귀여운 송아지의 이미지가 전달되겠지만, 그러나 세상을 살 만큼 살아본 어른에게는 그냥 송아지가 아닌 것이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3형제……'에서도 별은 그냥 별로 듣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별에서 다른 뜻을 찾아 내 마음 아파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쓴 사람의 의도가 다 드러나는 글이 산문에선 환영받으나 운문에서는 그렇지 않다.   3.   동시 쓰기에서 묘사 기법은 그 말이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감(語感)이나 율동감(律動感)에 의해 제약된다.   영국 동요집 (1760)를 읽어보면 음악적인 율동감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원래 영국에서 전래되어온 (입으로 전해진) 노래 같은 동요를 모은 모음집이기 때문에 율동감이 쉽게 감지된다.   영국에서 이름을 떨친 A.A.밀느(Alan Alexander Milne 1882∼1956)의 동시집 속 작품들도 귀에 들려오는 사운드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면서 쓴 작품들이다. 흔히 아기곰 푸우푸우를 쓴 동시인으로 그를 알고 있다.   동시. 이를 읽을 때에 힘을 들이거나 힘을 빼는 발음의 강약(强弱)이라든가, 낱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음량(사운드)을 참고하여서 동시를 쓸 때 낱말의 순서를 바꾸거나 또는 도치법(倒置法)으로 앞뒤와 위아래를 뒤섞거나 할 필요가 있으면, 문법대로 쓰지 않으며 또 줄을 바꿔서 새로운 줄을 만들게 된다.   예를 들어,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자장가라도 들어보면 일정한 율동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것이다. 이렇게 일정한 율동의 감각이 되풀이 되도록 운(韻)을 맞춰 쓰는 것이 초기 영국 동시의 틀이었다.   우리 나라 아동문학의 개척자인 윤석중도,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영국의 운문 형식의 영향을 아니 받은 것이 아니어서, 우리 말의 율동과 장단 그리고 숨결 이 3가지를 고르고 다듬어 가며 윤석중 동시의 틀을 짰다. 이런 까닭에 작곡가에 의해 쉽게 멜로디가 붙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동시 속에는, 안으로 접어 넣은 율동이 일정한 박자처럼 감각으로 살아나도록 스며 있으며, 또 멀리 퍼져 나가는 종소리처럼 은은한 여운이 스며 있게 마련이다.   때문에 동시 쓰기 묘사 기법은 이런 감각적인 제약을 수용하며서 전개되어야 한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멋진 동시를 써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오래 목수일을 해온 목수가 자 없이도 척척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아니한가.   동시 쓰기를 할 때, 낱말의 순서를 왜 바꾸며 그리고 언제 어느 때 줄을 바꿔 써야 하는지를 자신있게 알려면 노련한 목수처럼 충분한 체험을 쌓아야 한다. 동시 쓰기는 결코 수학 문제를 풀 듯이 공식에 대입하거나 법칙을 응용하듯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율동의 감각적 제약을 수용하는 능력 또한 목수의 수련과 마찬가지이다.   4.   동시 쓰기 묘사 기법에서 '묘사를 위한 감정 절제'가 필수적임을 말할 차례다.   시어(詩語)로서 '상큼한'이라는 형용사와 그리고 '봄'이라는 명사가 만나면, '상큼한 봄'이라는 한 구절이 성립된다. 그런데 상큼한 봄이라는 4글자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실로 다양한 것이다. 이런 이미지의 분위기는 들판을 가득 덮을 수도 있고 골짜기를 메울 수도 있는 그런 색깔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동시에 재래시장 한 구석 장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나이든 아줌마의 봄나물 한 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다 늘어놓는다면, 이것은 시가 아닌 산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시에는 절제가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사항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오래 전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라는 영상이 소개된 적이 있다. 마리 이야기는 하얀 털옷을 입은 마리가 2시간 동안에 보여주는 영상 스토리다. 그런데 관객은 이 영상을 보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읽어낸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만일 관객이 눈으로 보면서,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가슴으로 상상하지 못한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냥 아이들의 장난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수준 이상으로 평가되었다.   시에서도, 시를 이루는 몇 줄은 독자의 가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아픔 비슷한) 정서를 찌르는, 그런 힘을 지녀야 한다. 그 힘이 곧 시의 매력이다. 이 매력은 단 한 줄 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시가 몇 줄로 씌어졌는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리거나 나이들었거나 상관없이 사람의 가슴 속 어느 한 구석에 담겨 있는 마음을 건드려 줄 수 있는 한마디! 이런 숨겨진 메시지가 시를 시답게 만드는 요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한 2년 전부터 김용택이나 안도현 같은 시인들의 작품이 우리들 마음을 보자기로 싸담듯이 다잡는 것을 경험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아동문학가로 불리지 않으며 동시인이나 동시작가라는 바이라인을 달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이 써내는 작품들이 기성 아동문학인들이 차지하던 자리에 밀물처럼 침식하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나라 아동문학과 관계 있는 잡지에 발표되는 동시의 성격과 형식이 현저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보아 왔다. 왜일까? 한마디로 그들의 작품에는 절제된 시가 들어 있으되 아주 쉬운 그리고 자연스러운 묘사 기법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절제. 감정의 절제는 물론이거니와 묘사에서도 절제는 당연한 것이다. 그냥 늘어놓으면 시가 안 되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냥 늘어놓는다'는 말에는 절제없이 형용사나 부사를 자꾸 붙인다는 뜻도 들어 있다. 다 자라 옥수수대에 붙어 있는 옥수수잎보다 적은 단어 몇 개로 김시인이나 안시인은 그들의 속내를 그럴 듯하게 형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5.   동심이라고 일컬어 온 '어린이 마음'은 간결하고 짧고 순수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3가지를 합쳐서 말하면 시에는 군더더기가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 마음으로 동시를 쓴다면, 간결하고 짧고 순수한 낱말을 시어로 선택하여야 어린 독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구태어 논리라는 어려운 말을 빌려올 것 없이, 동시에 구사하는 시어는 겉으로 투명하되 해석에선 두 겹일 수 있는 그런 단어이어야 하겠다. 여리고 고운 마음을 담아내는 글(자)그릇은 거기 담아내는 마음 그대로 덧칠 안 된 단어일 때에 독자 가슴에 밀착될 수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빼앗긴'은 얼마나 큰 뜻으로 씌인 단순한 시어인가? (2005년 여름『한국동시문학』10호)   동시 창작론 ⑪ 쉽게 쓰기 유경환(동시인/시인)   읽기는 쉬워도 실제로 쓰기에는 쉽지 아니한 것이 바로 '쉽게 쓰기'이다. '동시는 쉽게 써야 한다'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알면서도 어렵게 쓰는 버릇을 못 고치는 편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쓰는 것이 쉽게 쓰는 것이고 그리고 어떻게 쓰는 것이 어렵게 쓰는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된 적이 없기에, 막연히 모호하고 포괄적인 기준만 내세워 '쉽게 쓰자' 또는 '어렵게 쓰지 말자'고 말해온 탓이다.   1. 관념어(觀念語)는 피해야   먼저 필자는 쉽게 쓰기를 위한 실제 방안으로 관념어는 피하자고 말한다. 관념어라는 것은 한자가 표의(表意)하는 그대로 관념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예를 들면 '역사'라든가 '사상'이라든가 또는 태고(太古)라든가 하는 낱말들이다.   우리들의 사유 세계에만 존재할 뿐이고, 실제로 접근하여 만나거나 만져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닌 낱말이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가까이 다가가서 만져보거나 접촉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인 까닭에, 어린이나 청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이는 이런 정서 작업에 동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까닭에 어린이나 청소년도 독자 대상에 포함하는 동시에, 관념어를 동원 구사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읽히길 바라는 시를 쓰면서 그들에게 낯선 낱말을 선택하는 이런 실제의 경우를 필자는 요즘에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더 실증적으로 밝히자면, 교육 기관에서 퇴직한 교직자들 가운데 특히 교감 교장 같은 고위직 경력자들이 발표한 이른바 '동시'라는 글에서 다반사로 관념어를 만난다.   왜 그럴까? 동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오랜 교직 경력을 쌓았음에도 제대로 이해할 기회를 못 가졌을까? 기회를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동시를 문학 작품으로 수용할 기회를 못 가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줄여서 지적한다면 동시를 얕보아온 탓이다. 어린이가 써내는 '아동시'와 그리고 문학 수업을 거친 문학인이 창작한 '동시'와의 차이를 모르는 그 개념 혼돈에서, 자신을 구출해 내지 못한 채 고위 교직에 오른 탓이다. 그러므로 동시도 아동시처럼 쉽게 씌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 이것이 인정되는 동시는 결코 쉽게 씌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참으로 어렵게 창작된다. '쉬운 표현을 위해 쉬운 낱말을 선택하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이다.   여기서 동시 '쉽게 쓰기'는 '쉬운 낱말로 쓰도록 하는 노력'이라는 것으로 결론된다. 쉬운 낱말로 동시 쓰기는(모순 같지만) 사실상 어렵게 쓰기와 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시를 쓰고자 하면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일 뿐이다.   2. 쉽게 쓰기와 유치하게 쓰기   쉽게 쓰기. 이는 읽기에 쉽도록 또는 감상하기에 쉽도록 쓰자는 것이지, 결코 유치하게 쓰자는 것이 아니다.(이런 말을 이 창작 강좌에서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요즘 어떤 종합 문예지에 활자화되는 것을 읽어보면 그래도 '해야 하겠다'고 작심하게 된다.   어른이 쓴 글인데 어째서 유치한 글이 되는 것일까? '동시는 어른이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서(동심으로) 써야 한다'는, 이런 일부 평자들의 말을 마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처럼 듣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쓰라는 이런 주장은 ①때묻지 아니한 마음으로 ②순수한 감정으로 ③또는 투명한 심사로 소재를 해석하라는 주장일 뿐이고, 쓰는 사람이 갑자기 어린이의 정서 수준으로 내려가서 쓰라는 말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적잖은 발달 장애 현상을 보고 있다. 키가 한창 클 시기에 어떤 원인 작용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결국 평균 신장에 못 미치는 키를 갖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서가 한창 발달할 시기에 어떤 원인 변수가 개입하여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면, 몸과 나이에 걸맞도록 제대로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 정서 지체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동시를 쓰란다고 마치 정서 지체자처럼 어린이의 사유 능력과 어린이의 사유 세계 안에서 뒹구는 모습을 글로 보이고 있다. 이런 글인 경우 정상적 기준으로 보면 유치한 글로 읽혀질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쉽게 쓰기는 유치하게 쓰기와 같을 수 없다. 이의 차이나 간격을 식별하지 못하고 동일시(同一視)한다면, 정서 발달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사실의 인지(認知)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쉽게 쓰기와 그리고 유치하게 쓰기. 이것들이 분명히 다르다는 차이점은, 첫째 낱말의 선택에서 찾아야 할 일이고, 둘째 낱말의 배열인 전개 방법에서도 찾아야 할 일이며, 셋째 낱말들의 서술에서 기술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생략하는 그 기교에서까지 찾아야 할 일이다. 위에 열거한 3가지는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표현 기교는 예민하고 까다롭고 또 델리케이트한 처리 방법을 필요로 하고 있다.   3. 정서의 집적회로(集積回路)   '동시도 시(詩)이어야 한다'는 말을 필자는 1950년대 말에 시작하였다. 이것은 '우선 시가 되어 있어야 동시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주장에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일부 평자들은 참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했는지 또는 이해 수용에 오해가 끼었는지 아니면 정서 지체가 있었는지, 하여간 동시의 난해성(難解性)을 제기하면서 '유 아무개가 한 말 때문에 동시가 갑자기 어려워지고 독자를 잃어버린 결과를 가져왔다'고 난해성에 결부시켰다.   1970년대 동시가 일부 독자층으로부터 외면당했다고 하는 말은, 1970년대 아동문학 독자의 주계층이 분화(分化) 분류되는 현상을 오해한데 기인한 말이다.   1920년대부터 50년간 지속된 동요의 흐름에서 시(詩)다운 동시의 새 흐름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그 즈음이다.   유치원 시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유아 교육이 본격적으로 확장되던 시절, 유아들의 정서 생활에 걸맞는 운문이 정서 교육의 교재용으로 요청되는, 이런 시대적 수요에 따라 동시의 분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50년간 지속된 동요의 형식에서 동시의 형식으로 외적 변형을 이루자, 음악동요에 필요한 노랫말 즉 음률적으로 내재율이 뚜렷한 노랫말이 귀해져서, 새로운 노랫말 틀에 맞는 운문의 수요가 교육 현장에 급증하였기에, 동시의 분화가 곁들여 나타나게 되었다.   사회가 열리면서 다원화(多元化)로 개방되는 기회를 통하여, 해외의 아동문학이 소개되고 그 가운데 선진국의 동시와 청소년시에 노출되는 기회가 늘면서, 우리 나라의 동시도 그 격과 위상을 높이자는 의식과 함께 '동시는 어른도 독자일 수 있다'는 해석이 짙어졌다.(이런 자극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글에서 앞섰다)   위에 분석한 3가지 상황과 현상을 간과한 일부 평자들은 '시가 되어가는 동시'를 놓고, 계속 종래의 동요 가사의 기준에서 바라보면서, 자기네 기대를 넘었다며 '난해하다'고 한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일이다. 모두가 현명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의 격(格)과 난해성과의 상관 관계에는 상관성이 지극히 약한 사실을 살펴야 오해를 벗어날 수 있다.   ①1920년대의 신체시와 그리고 창가(唱歌)의 가사, ②1930∼50년대의 동와 동요 가사, ③1960∼70년대 동시와 동요 노랫말. 이렇게 3단계로 발전한 발전 과정을 살피면, 동시가 시로서의 위상을 차지할 충분한 이유가 나타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누어 살펴야 마땅할 상황과 현상을 한데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아니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부 평자들이 자기 평가의 기준을 계속 그 전 시대에 맞추어 놓은 채, 197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시다운 동시'를 난해한 동시로 규정하는 일은, 앞으로 동시를 공부하여 창작 생활에 들어갈 아동문학 지망생에게 적당치 못한 견해를 줄 염려가 있기 때문에, 상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4. 동시의 원리(原理) 알아야   두루 알고 있다시피 컴퓨터 작동 원리인 디지털 능력은 0과 1,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만드는 순열조합의 집합체에서 나온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동시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여온 낱말이지만, 이 가운데 시어로 쓸 만한 낱말들만 동원하여, 그것들을 이어 놓거나 나눠 놓거나 또는 줄바꿔 놓거나 하는 배열 형식을 통해 일상적으로 통하던 감정 이상의 정서 곧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서를 담아내는 것이 시의 창작이다.   그런데 동원된 낱말들이 엮는 정서회로, 이것이 전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소화할 능력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능력에 못 미치는 사람이 평자로 등장하는 경우, 난해시와 그리고 난해시가 아닌 것을 식별하지 못하고 평하기 일쑤다. 정말 어려운 낱말을 구사하여 독자가 수용하기 어렵도록 쓴 난해시와 '시다운 동시'까지 한데 뭉뚱그려 '난해하다'고 치부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시에는 누가 봐도 난해한 난해시가 있다. 열 사람이 읽고 나서 모두 난해하다고 한다면, 결국 쓴 사람 혼자만 아는 난해시일 수밖에 없다. 문예 사조사(史)에 보면, 실험적으로 시도된 첨단적 성격의 작품들이 거의 난해시의 대접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경우와 달리 '시다운 동시'가 품고 있는 고도의 기교적 완성도, 이것이 만드는 정서회로의 효과를 추적해 낼 능력이 부족하면 작품 속에 숨겨진 작품성의 가치를 발견 못하게 된다.   결국, 시어로 선택된 낱말들이 시인의 의도에 따라 이어졌을 때 구축되는 정서회로의 효과, 즉 시적 분위기의 느낌을 감지해내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서회로가 내뿜는 효과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모자라서 난해하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 놓고 필자는 '적절하지 못한 치부'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쉽게 쓰기.   이는 시다운 동시를 쓰려고 노력을 하되,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친숙한 낱말을 시어로 구사해야, 어린이나 청소년이 자기들 나름의 시적 상상을 충분히 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관념어는 쇠에 녹이 슬 듯 때가 낀 낱말과 같아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시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시적 자극을 주기에 적합하지 아니한 낱말이다. 감동을 전달하고자 하거나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 동시 쓰기에서, 기능적으로 이미 녹슨 관념어를 계속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2005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11호)   동시 창작론 ⑫ 내면화(內面化) 들여다보기 유경환(동시인/시인)   1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를 설명한, 재미있는 한마디 이야기가 있다.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사람도 거울을 보고 원숭이도 거울을 본다. 그런데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는 이렇게 나타난다.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만 보나, 사람은 거울에 안 비치는 내면(內面)까지 본다.'   필자는 내면(內面)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한마디를 주석을 달지 않은 채 인용하였다. 이 한마디가 나온 지는 퍽 오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아동문학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편이겠다.   내면(內面)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시의 의미를 깊게 하는 마술 같은 일몫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겠다. 시어들이 나란히 조합되어 시인의 생각을 형상화시킬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담아내는 일몫이 있다는 것을, 시인이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편이다. 바로 내면의 문제다.   이런 까닭에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시라고 작품을 써낼 때, 물 밑으로 담기는 뜻을 아예 처음부터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시를 통해 글자들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그려보려 하지만, 그와 아울러 물 밑으로 담겨지는 뜻은 생각지도 못한다. 잘 씌어진 동시와 그렇지 못한 동시와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진다. 이 차이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퍽 많이도 동시인으로 등단하였으니까 말이다.   2   동시를 발표하면서 만약 어린이들이 감상하는 작품이기에, 선택한 시어들 밑에 다른 뜻을 깔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일회용 읽거리의 작품성 때문에, 두고두고 펼쳐볼 읽거리가 못되고 만다. 적잖은 동시인들이 기성 문단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일회용 대접밖에 못 받는 데 있다. 하지만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간과하고 있다.   동시집 출판은 참으로 벅차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출판된 동시집을 읽어보면, 아깝게도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회용품이라는데 혀를 차게 된다. 이런 일회용 수준의 작품을 써내면서, 어떻게 시인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때로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게 안타깝기도 하다)   '주된 독자층이 어린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편견인 줄 모르고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독자층을 얕보는 태도에서 한번 읽으면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써내는 사람들이, '나도 동시인!'이라고 자부하는 셈이다.   시 앞에다 아이 동(童)자를 붙인 동시라고 하여도,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가 성장 과정을 통해 계속 자라면서 다시 읽고 또 읽고픈, 이런 작품을 내놔야 비로소 기억되는 시인이 되는 것 아닌가. 동시도 시이어야 계속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생각 없이 '어린이'가 되어 갑자기 어린이가 된 그런 눈으로,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옛날을 되돌이켜 보고 자시의 어린 시절 회상기를 동시라고 써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창작 태도이고 보면, 시로서 갖춰야 할 시적 요건이 들어갈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어린이 글, 곧 아동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길고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요체는 내면화(內面化)이다. 내면화가 안 된 것은, 속이 빈 허물과 다르지 않다.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꼭 맞는 말이다.   내면화는 동시를 시의 지위에 올리는 격(格)이다. 내면화는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겉으로 읽히는 것과 다른 뜻을 시가 그 물 밑에 지니게 하는 묘한 일을 한다. 내면화는 그래서 시의 매력이고 신비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내면화는 오직 느낌(feeling))으로만 감지되고 느낌으로만 전달된다. 작품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정서를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이론이 아닌 느낌에서 터득된다.   3   시인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고민하는 사람이고 늘 고뇌에 차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이런 고뇌 없이 '어린이가 되어' 맑은눈으로 순수한 것만 골라 '생각의 난쟁이'처럼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글자로 짚어내, 틀에 맞게 써 내면 이 글이 곧 동시가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리 동시라고 할지라도, 한 편의 동시 작품 안에 시가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있지 아니하면, 글자 맞춤의 형식에 지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 이런 것을 줄맞춰 나타낸다 하여도, 이런 것을 어린이눈으로 그려낸다 하여도 결코 동시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동시에도 사람의 사람다운 마음이 들어가 내재(內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사람다운 마음'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 따위 온갖 정서가 다 녹아들 수 있는 마음이다. 동시의 일차적 독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픔이나 괴로움의 정서를 외면할 수 있는가. 이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였지만, 동시는 더 이상 어린이만을 주독자층으로 삼지 아니한다. 어린이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한 범주 규정은, 우리 나라 1930년대 사회 문화 구조와 상관관계가 있다. 당시 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걸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민족적 현실에서, 동시의 범주를 좁혀 감상과 보급의 농도를 어린이에게 집중시키고자 한 의도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는 인간의 온 생애에 걸쳐 위안과 위로를 안겨 주는 문학 형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좋아하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즐겨 듣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인생을 담아낼 그릇의 효용이 인정되는 시가 동시인 것이다.   그러니, 동시라고 하여 더 이상 그 격을 낮추지 말 일이다. 동시인 스스로 동시의 격을 낮추면 그것을 생산하는 동시인도 사회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4   햇살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해하면 일곱 가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빛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적외선이 있고 자외선이 있다.   만약 이를 볼 수 없기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동시, 동시다운 동시 한 편에서는 읽을 땐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속마음에 전달되어 오는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마음에 전달되는 깊은 뜻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작품을 쓰는데 왜 어째서 좋은 동시로 쳐주지 않는가' 하고, 기회 있을 대마다 불만을 터뜨리고 불평을 일삼는다. 문제는 나열된 글자들이 형상화해 낸 이미지 밑에서(물 밑으로) 전달되고 있는 뜻의 기능을 감지할 만큼, 충분히 삶이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거나 고뇌에 빠지지 않았다는 생활 자세 또는 생활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씌어지는 시가 없고, 생각 없이 씌어지는 동시 또한 없다. 이 말은 고민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고, 고뇌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민 없이, 고뇌 없이 어린이가 써 내는 것은 동시가 아닌 아동시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그냥 '어린이가 되어'서는 결코 진솔한 어린이의 흉내도 낼 수 없다. 어린 사람에게도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으며 그 나름의 고뇌가 있다고 말하니까, 작품에다 고민이니 고뇌니 하는 한자(漢字)를 그대로 써넣는 동시인(?)도 있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실정이라 아니 하겠는가.   좀더 추적해 보면, 여러 잡지나 기관이 신인을 등단시키는데, 그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 가운데 동시를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위원'이 끼어 있어서,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신인을 등단시키고 있다. 이것이 동시의 내면화를 모르는 일부 위원들의 심사나 추천의 결과이다.   5   한 채의 집을 아담하게 잘 지으면 투시도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을 받고 좋아하게 된다. 한 편의 동시다운 동시를 읽게 되면, 글자의 조합이 풍기는 것 이상의 느낌과,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내면화는 동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다 고스란히 옮겨 줄 수 있는 글자 밑의 얽힘이다.   반도체 칩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달하듯이, 사전에 나와 있는 글자들이 얽혀서 사전에 나와 있지 아니한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내면화가 해 낸다.   사람의 마음은 반도체 칩이 아니므로 일정한 형식으로 내몀화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마다 다른 체험 곧 내적인 체험에 따라 다른 뜻을 전달한다. 여기 감상의 묘미가 있고, 그래서 해석의 폭이 넓어진다.   윤석중은 기찻길 옆에서도 잠을 잘 자는 아기에서, 편히 잠들 수 없는 사회를 기찻길로 해석될 수 있게 썼다. 박목월은 엄마소도 얼룩소에서 창씨개명을 부추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송아지를 썼다.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내면화된 세계는, 작품의 작품성을 높이고 완성도를 결속시킨다.   동시의 창작에서 내면을 중시하고 내면화의 세계를 천착하는 것은, 돌 한 덩이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파내 다면체(多面體)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표본실에 진열되어 있는 박제된 동물에는 내면이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는 동시라고 할 수가 없다. 내면은 분해된 기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내면은 전체로서 생리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시에서 내면화는 전체로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다른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감당한다. (2005년 겨울『한국동시문학』12호)   동시 창작론 ⑫ 내면화(內面化) 들여다보기 유경환(동시인/시인)   1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를 설명한, 재미있는 한마디 이야기가 있다.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사람도 거울을 보고 원숭이도 거울을 본다. 그런데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는 이렇게 나타난다. 원숭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만 보나, 사람은 거울에 안 비치는 내면(內面)까지 본다.'   필자는 내면(內面)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 한마디를 주석을 달지 않은 채 인용하였다. 이 한마디가 나온 지는 퍽 오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아동문학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편이겠다.   내면(內面)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아니한 채로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시의 의미를 깊게 하는 마술 같은 일몫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겠다. 시어들이 나란히 조합되어 시인의 생각을 형상화시킬 때,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담아내는 일몫이 있다는 것을, 시인이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편이다. 바로 내면의 문제다.   이런 까닭에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시라고 작품을 써낼 때, 물 밑으로 담기는 뜻을 아예 처음부터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시를 통해 글자들이 빚어내는 이미지를 그려보려 하지만, 그와 아울러 물 밑으로 담겨지는 뜻은 생각지도 못한다. 잘 씌어진 동시와 그렇지 못한 동시와의 차이는 여기서 벌어진다. 이 차이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퍽 많이도 동시인으로 등단하였으니까 말이다.   2   동시를 발표하면서 만약 어린이들이 감상하는 작품이기에, 선택한 시어들 밑에 다른 뜻을 깔아 둘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발표된 작품들은 어린이들에게 일회용 읽거리의 작품성 때문에, 두고두고 펼쳐볼 읽거리가 못되고 만다. 적잖은 동시인들이 기성 문단에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의 작품이 일회용 대접밖에 못 받는 데 있다. 하지만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은 간과하고 있다.   동시집 출판은 참으로 벅차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출판된 동시집을 읽어보면, 아깝게도 수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일회용품이라는데 혀를 차게 된다. 이런 일회용 수준의 작품을 써내면서, 어떻게 시인이라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때로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게 안타깝기도 하다)   '주된 독자층이 어린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편견인 줄 모르고 계속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독자층을 얕보는 태도에서 한번 읽으면 다시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써내는 사람들이, '나도 동시인!'이라고 자부하는 셈이다.   시 앞에다 아이 동(童)자를 붙인 동시라고 하여도,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가 성장 과정을 통해 계속 자라면서 다시 읽고 또 읽고픈, 이런 작품을 내놔야 비로소 기억되는 시인이 되는 것 아닌가. 동시도 시이어야 계속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별다른 생각 없이 '어린이'가 되어 갑자기 어린이가 된 그런 눈으로,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이 옛날을 되돌이켜 보고 자시의 어린 시절 회상기를 동시라고 써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창작 태도이고 보면, 시로서 갖춰야 할 시적 요건이 들어갈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어린이 글, 곧 아동시가 되고 마는 것이다.   길고 길게 설명을 하였지만, 요체는 내면화(內面化)이다. 내면화가 안 된 것은, 속이 빈 허물과 다르지 않다.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꼭 맞는 말이다.   내면화는 동시를 시의 지위에 올리는 격(格)이다. 내면화는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겉으로 읽히는 것과 다른 뜻을 시가 그 물 밑에 지니게 하는 묘한 일을 한다. 내면화는 그래서 시의 매력이고 신비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내면화는 오직 느낌(feeling))으로만 감지되고 느낌으로만 전달된다. 작품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정서를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이론이 아닌 느낌에서 터득된다.   3   시인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고민하는 사람이고 늘 고뇌에 차 있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이런 고뇌 없이 '어린이가 되어' 맑은눈으로 순수한 것만 골라 '생각의 난쟁이'처럼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글자로 짚어내, 틀에 맞게 써 내면 이 글이 곧 동시가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아무리 동시라고 할지라도, 한 편의 동시 작품 안에 시가 들어가 제자리를 잡고 있지 아니하면, 글자 맞춤의 형식에 지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곱고 예쁘고 귀여운 것. 이런 것을 줄맞춰 나타낸다 하여도, 이런 것을 어린이눈으로 그려낸다 하여도 결코 동시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동시에도 사람의 사람다운 마음이 들어가 내재(內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사람다운 마음'은 기쁨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 따위 온갖 정서가 다 녹아들 수 있는 마음이다. 동시의 일차적 독자가 어린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슬픔이나 괴로움의 정서를 외면할 수 있는가. 이는 변명일 수밖에 없다. 여러 번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였지만, 동시는 더 이상 어린이만을 주독자층으로 삼지 아니한다. 어린이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한 범주 규정은, 우리 나라 1930년대 사회 문화 구조와 상관관계가 있다. 당시 민족의 희망을 어린이에게 걸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민족적 현실에서, 동시의 범주를 좁혀 감상과 보급의 농도를 어린이에게 집중시키고자 한 의도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동시는 인간의 온 생애에 걸쳐 위안과 위로를 안겨 주는 문학 형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것이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좋아하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즐겨 듣는 시가 동시다. 유아에서 노년까지 인생을 담아낼 그릇의 효용이 인정되는 시가 동시인 것이다.   그러니, 동시라고 하여 더 이상 그 격을 낮추지 말 일이다. 동시인 스스로 동시의 격을 낮추면 그것을 생산하는 동시인도 사회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4   햇살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분해하면 일곱 가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의 빛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적외선이 있고 자외선이 있다.   만약 이를 볼 수 없기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물리학 공부를 더 해야 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동시, 동시다운 동시 한 편에서는 읽을 땐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과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속마음에 전달되어 오는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속마음에 전달되는 깊은 뜻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작품을 쓰는데 왜 어째서 좋은 동시로 쳐주지 않는가' 하고, 기회 있을 대마다 불만을 터뜨리고 불평을 일삼는다. 문제는 나열된 글자들이 형상화해 낸 이미지 밑에서(물 밑으로) 전달되고 있는 뜻의 기능을 감지할 만큼, 충분히 삶이나 인생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거나 고뇌에 빠지지 않았다는 생활 자세 또는 생활 태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생각 없이 씌어지는 시가 없고, 생각 없이 씌어지는 동시 또한 없다. 이 말은 고민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고, 고뇌 없이 씌어지는 동시가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고민 없이, 고뇌 없이 어린이가 써 내는 것은 동시가 아닌 아동시다)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그냥 '어린이가 되어'서는 결코 진솔한 어린이의 흉내도 낼 수 없다. 어린 사람에게도 생각이 있고 고민이 있으며 그 나름의 고뇌가 있다고 말하니까, 작품에다 고민이니 고뇌니 하는 한자(漢字)를 그대로 써넣는 동시인(?)도 있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실정이라 아니 하겠는가.   좀더 추적해 보면, 여러 잡지나 기관이 신인을 등단시키는데, 그 심사위원이나 추천위원 가운데 동시를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위원'이 끼어 있어서,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신인을 등단시키고 있다. 이것이 동시의 내면화를 모르는 일부 위원들의 심사나 추천의 결과이다.   5   한 채의 집을 아담하게 잘 지으면 투시도만 보았을 때와 다른 느낌을 받고 좋아하게 된다. 한 편의 동시다운 동시를 읽게 되면, 글자의 조합이 풍기는 것 이상의 느낌과,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 깊은 뜻을 감지하게 된다.   내면화는 동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다 고스란히 옮겨 줄 수 있는 글자 밑의 얽힘이다.   반도체 칩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전달하듯이, 사전에 나와 있는 글자들이 얽혀서 사전에 나와 있지 아니한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내면화가 해 낸다.   사람의 마음은 반도체 칩이 아니므로 일정한 형식으로 내몀화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마다 다른 체험 곧 내적인 체험에 따라 다른 뜻을 전달한다. 여기 감상의 묘미가 있고, 그래서 해석의 폭이 넓어진다.   윤석중은 기찻길 옆에서도 잠을 잘 자는 아기에서, 편히 잠들 수 없는 사회를 기찻길로 해석될 수 있게 썼다. 박목월은 엄마소도 얼룩소에서 창씨개명을 부추기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송아지를 썼다. 시인의 의도이든 아니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내면화된 세계는, 작품의 작품성을 높이고 완성도를 결속시킨다.   동시의 창작에서 내면을 중시하고 내면화의 세계를 천착하는 것은, 돌 한 덩이를 가지고 어떤 모양을 파내 다면체(多面體)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표본실에 진열되어 있는 박제된 동물에는 내면이 없다. 시가 들어 있지 아니한 동시는 동시라고 할 수가 없다. 내면은 분해된 기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내면은 전체로서 생리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시에서 내면화는 전체로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다른 뜻을 전달하는 일몫을 감당한다. (2005년 겨울『한국동시문학』12호)   동시 창작론 ⑭ 감동을 담아내기 유 경 환   1   산의 높이는 해발 3백 미터니 3천 미터니 한다. 바다가 기준이다. 지도에는 등온선이 그려진다. 시에서도 이처럼 수치로 급수를 매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그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 '좋은 시'라는 느낌이 오게 된다. 이런 좋은 시에도 여러 층이 있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좋은 시는 읽는이에게 감동을 주는 시다. 분명한 것은, 읽는 뉘에게나 감동을 전달하는 작품은 좋은 시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몇몇 지면에 발표되는 동시라는 것을 보면, 좋은 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와는 거리가 먼 '맹물' 같은 것들이 놀랍게도 참 많다. 어째서 이런 형편에 이르렀을까.   시인의 내면에 내재하는 감동적 요소를 작품에 옮기는 표현 기법, 이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겠다. '이 정도면 내가 옮겨 놓고자 한 대로 독자가 감동을 받겠지…'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작품 대신 맹물이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시인은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표현 기법 찾기에 참으로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주된 독자가 어린이일 뿐'이라는 잘못된 지식(1930·40년대 우리나라에선 그랬다) 탓에 '아이들이 읽어서 알 수 있는 표현 기법'만 내세워, 아무런 고민 없이 쉽게 표현하려고만 하였다. 그래서 의도와 전달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2   무엇보다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쉬운 시(동시)와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동시)는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쉬운 시와 그리고 쉽게 씌어진 시는 다르다. 달라도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 이 차이를 모르거나 지나치므로 두 가지를 혼동하게 된다.   좋은 시는 쉬운 시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시가 쉽게 씌어지기는 어렵다. 이런 개념 혼동으로 말미암아 쉽게 씌어진 것을 발표하는 사례가 흔하게 되었다.   윤석중, 강소천, 박목월이 표현 기법이 쉬운 시를 보여 주지만, 결코 쉽게 씌어진 작품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오랜 동안에 걸쳐 깊은 사유 끝에 어렵게 씌어진 작품들이다. '기찻길 옆에서 잘도 자는 아이'나,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닭'이나, '얼룩송아지'가 쉽게 창작된 것이라 본다면 이는 잘못된 감상이다.   아이들 가슴은 유리병처럼 투명한가? 아니다. 그것은 인형이나 유리 모형에서나 그렇다. 아이들 가슴에도 가늘고 여린 심상이 차 있고, 때로는 그것이 얽히기도 한다. 이것이 그들의 고민이다.   우리가 숨 쉬는데 필요한 공기는,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똑같은 신선한 공기이다. 이와 다르지 않게,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나이에 따른 고민이 다 있게 마련이다. 그렇건만, 아이에겐 고민이 없고 있다면 장난스러운 생각만 있으리라는 일방 통행적인 사고 방식, 이런 사고 방식의 소유자들 안목 탓에 동시가 혼란에 빠진다.   '아이에겐 고민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런 것을 담을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을 작품에 담을 필요가 없으니, 아이들 생각 그대로를 옮겨 쓰면 된다.' 이런 안목에서 아이들 입에 붙은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옮겨지는데, 다시 말하면 쉽게 씌어지게 된다.   '어린이가 읽는 시에 왜 그리고 어째서 표현 기교를 도입하라는 것이냐'가 쉽게 써내는 사람들의 항변이다. 고민 없이 자란 사람만이 (자신의 유년기나 청소년기를 준거하여) 이런 항변을 할 수 있다. 정서적으로 메마른 (유년기·청소년기를 거친) 정서 결핍의 성장 과정을 지닌 사람, 이들이 문단 등단 절차를 쉽게 마치면 아이동(童) 글자 '동'자에 집착하여 쉽게 써내는 버릇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소급하여 따지면, 동시라는 어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동(童)자를 시 앞에다 접두어(接頭語)로 붙인 것이 원죄가 되는 것이다.   3   사람에겐 대체로 12∼15살이 빠른 성장기다. 이는 눈에 보이므로 이런 의학 상식을 수긍한다. 그런데 심성 발달 과정에서 정서적으로 가장 빠른 성숙 시기가 있다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으므로) 수긍하려 하지 않는 편이다.   정서 발달 기간에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문인으로 양산(量産)되면, 그 원천적 정서 결핍 때문에 작품에 담아내야 할 내면 정서에 약하거나, 그것을 드러내도록 하는 표현 기법에 서툴 수밖에 없다.   육체의 성장기에 필요 영양이 충분치 못하여 체격이 작게 굳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성의 성숙기에 감성 훈련이 충분치 못했다면 자신의 정서 결핍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의 경우, 표현 기법에 서툴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마땅하다. 대장간의 대장장이도 불덩어리 무쇠 두드리는 연마를 어깨 팔뚝이 부풀도록 거쳐야 쟁이가 된다. 그런데 '아이들 생각'을 단순하게 글자로 바꿔 놓으면 동시가 되는 줄 알고, 붕어빵 찍어내듯 아이들 생각을 찍어내는 형편이니, 이런 것들이 어떻게 읽는이에게 감동을 주겠는가.   시 공부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등단 절차를 마친 사람들 가운데, 교직자 출신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매우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그들에겐 오랜 동안 아이들의 글짓기 지도를 해온 경험이 있는데, 이 지도 경험을 시 공부라고 착각한다. 아이들이 써내는 '아동시'와 그리고 시인이 창작하는 '동시'에는, 인생을 살아본 만큼의 차이가 있다. 아동시와 그리고 동시와의 차이를 식별 못하고, 글쓰기 지도의 '실제 경험'만으로 등단 절차를 마쳤기에, 표현 기법의 기교를 모르는 것이다. 기교는 기술의 문제이다. 모자라면 연마해야 한다.   4   시는 고민이 익히는 열매다. 동시도 시이므로 다르지 않다. 햇살 없이 익는 열매 없고 고민 않고 완성되는 작품 없다. '아이들이 읽는 것인데 왜 고민해?' 이런 사고 방식이 바로 맹물 같은 작품들 생산의 주범이다. 동시가 쉽게 씌어진다는 말은 자기 옹호이거나 변명이다.   아동문학은 인간학(人間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기초 인간학이라고 이미 오래 전에 주장한 바 있다. 필자의 주장이다. '아이들이 읽는 글을 쓰는데 왜 고민을 해야만 하느냐? 이런 편견이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위상을 높이지 못하고 지금의 수준에 붙잡아 매놓고 있는 첫째 원인이다.   아동문학가라는 명함을 내밀고 인사를 나눠 보라.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가. 이것이 우리가 받고 있는 사회 대접이 아닌가. 아동문학가의 의식에서 하루빨리 아이동(童)자를 지워야 옳다. 그래야 작품에 인간의 문제가 담길 수 있고, 아이동(童)자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작품성 높고 완성도 치밀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초롱에 든 새는 날지 못하며, 의식에 구애된 사고는 장애를 못 벗는다.   어린이가 읽어서 감동할 작품 수준이면 할아버지·할머니가 읽어도 감동한다. 역(逆)도 진(眞)이라는 말은 수학에서만 통하는 한마디가 아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읽어서 감동할 작품이면 어린이가 읽어도 당연히 감동한다.   어른이 읽어서 맹물로 치면, 어린이에게도 맹물이고, 어른이 읽어서 유치하면 어린이에게도 유치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다 아는 프랑스의 단편 '별'이나 '곡예사', 쌩키비치의 '등대지기', 황순원의 '소나기'는 어른이나 어린이에게나 똑같은 감동을 안겨 주는 작품의 예이다. 감동을 전달하는 정서 매체는 같아서 시, 동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   문학은 혼자 하는 작업이다. 시에 대한 공부도 혼자 하는 일이다. 좋은 동시 곧 감동을 주는 동시도 혼자 쓰는 것이다. 혼자 하되, 앞서 살다간 국내외의 문인들 작품을 읽으면서 '뒤따르지 말아야 할 점을 밝혀가며 읽는' 이런 독서가 핑요하다.   시에 대한 공부를 하여도 인접 학문 분야에까지 폭넓게 읽어야 사고의 바탕이 넓어지고 보편적 가치에 눈을 뜨게 된다. 밑줄 쳐 놓았다가 자신을 위해서 해 둔 한마디처럼 인용하는, 주(註)도 달지 않고 슬쩍 옮겨 쓰는, 그런 독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인격을 해치는 결과만 얻는다.   만일 독해력(讀解力)의 문제에 걸려서 그것이 안 된다면, 차라리 수도승이나 수도사처럼 벽을 보고 앉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나은 시 공부가 되리라. 왜냐하면 문학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서 결국엔 인간학에 귀결되듯, 동시 공부 역시 기초 인간학의 탐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장난감인 색색의 레고를 맞추듯이 써내는 동시는 말장난이므로 어린이에게 재미는 줄 수 있으되 그러나 감동은 주지 못한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감동, 이는 자라는 가슴에 심겨진 보석과 같다. 그래서 오래 간직될 수 있다.   말장난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허황된 것일 뿐, 결코 가치 있는 꿈일 수 없다. 감동을 읽는이 가슴에 옮겨 주는 표현 기법은, 말장난처럼 뜯어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심겨지는 씨앗처럼 자리하는 것이다.   씨앗처럼 자리하는 것은, 생각이 담긴 사람의 마음이 옮겨지는 것이다. 이는 넓은 사고 깊은 사유의 어망(漁網)으로만 건져 올려지는, 비늘이 번쩍이는 싱싱한 물고기와 다름없는 메시지다. 그런데 떨어진 비늘 조각을 모아 붙여 펄펄 뛰는 물고기를 만들 수 있는가.   감동을 주는 작품은, 인간의 문제나 어린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에게서 노인에게까지 감동을 전한다. 그러하건만 '어린이가 읽는 글에 왜 고민이 필요해?' 라고 말하는 이가 아직도 많다. (2006년 가을『오늘의 동시문학』제15호)   동시 창작론 ⑮ 童詩의 形式 유 경 환     1. 압축의 묘미   아동문학 이론서의 '동시'편에 보면 동시의 형식이 맨 앞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의도적으로 이 글의 마지막 편으로 미루어 왔다. 왜냐하면, 동시 형식이라는 개념은 이론으로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수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작을 하지 않는 이론가들은, 동시의 형식을 맨 먼저 다루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창작을 하는 나는, 동시의 형식은 맨 뒤에 마무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동시가 어떤 운문인가를 알고 나면, 그 형식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말 수밖에 없다.   2. 의미의 압축   줄글(산문)을 엿가락 자르듯 뚝 뚝 끊어서 서너 줄로 나눠 놓으면, 과연 동시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라고 누구나 대답할 것이다. 줄글을 뚝 뚝 잘라놓아도 동시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줄글과 동시는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줄글과 동시, 이것은 산문과 운문이라는 형식에서만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동시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생각을 거꾸로 돌려보자.   우리는 한 편의 동시를 가지고 원고지 20장이나 30장 정도의 긴 줄글을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동시는 줄글을 줄여서 만들 수 있다는, 그런 말이다.   기나긴 강물처럼 구비구비 긴 줄글을 단 몇 줄의 짧은 글로 줄여 놓은 것이 동시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시는 압축의 묘미를 지닌다. 줄이고 또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의미를 구겨넣는, 그 결과 깊은 뜻을 숨겨 지니게 되는, 그런 압축의 기술을 요구한다.   의미의 묘미를 얻으려 하는 압축에는, 단순한 길이의 압축만이 아니라 내용의 압축까지 들어간다. (이것을 흔히 양(量)의 압축과 질(質)의 압축이라고 말한다.) 줄이고 또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구겨넣은 의미를 놓고 우리는 함축된 의미라고 말한다.   함축된 의미를 풍기려면, 한 가지 뜻만 지닌 낱말이 아니라, 여러 가지 뜻을 복합적으로 지닌 낱말을 골라 써야 한다. 여러 가지 뜻을 이중 삼중적으로 지닌 낱말은, 흔히 비유나 상징에서 선택되는 낱말들이다. 비유나 상징을 써서 뜻을 압축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곧 질의 압축이 되는 것이다.   '동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이름난 시인이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의 이름을 오래 전에 읽어서 잊엇기에 못 밝히는 것임) 동시에서는 일반시에 비해 비유나 상징을 덜 쓰는 편이거나, 쓴다 하여도 그 농도가 엷은 비유나 상징을 쓰는 편이므로 '말하는 그림'이라는 한마디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동시를 쓰고자 할 때, 사물의 모양이 비슷한 것들이나 또는 성질이 비슷한 것들을 비교해 가면서 간접적 비유를 통해 두 가지를 한 가지로 묘사하는 것이 곧 시 쓰기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드러내지 않고자 토막 토막 끊어서 배열하거나 또는 장작을 포개 쌓듯이 짧게 포개는 것이다.   3. 「말의 그릇」 빚기   원래 낱말은 한 개의 사물을 대신하는 기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에 시어로 쓰일 경우엔 달라진다. 시어로 선택되어 시 속에 쓰여지면, 낱말은 기호 이상의 뜻을 스스로 품게 되고, 뿐만 아니라 다른 뜻까지 얹어 지니게 된다. 이런 신비스러운 일이 시를 쓰는 일에선 일어난다.   시에 쓰이는 하나의 낱말은, 그 다음에 오는 낱말과의 만남을 통해 낱말이 본래 지니고 있던 뜻과는 다른 뜻을 새롭게 풍기게 된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그 원리(原理)이다.   누구나 다 쓰는 말을 가지고 시인은 좀 유별난 뜻이 담기는 말의 그릇을 빚어낸다. 이 한마디 말에서 시의 본질(本質)이 어느 정도 밝혀진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쓰는 말로 엮어지되, 누구나 쉽게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별난 의도를 담아내는 「말의 그릇」이 곧 시요 동시인 것이다.   시인은 「말의 그릇」을 빚기 위해서 낱말을 가지고 말의 순서인 어순(語順)을 바꿔놓거나 뒤집어 놓거나, 또는 비유되는 낱말을 대입(代入)하는 그런 기교를 부려서 말의 그릇을 빚어내는 것이다. 여기서도 그냥 줄글이 아닌 토막난 글의 형식이 나타나게 된다.   시인은 또 말의 그릇을 빚기 위해서 줄글에서와는 달리, 일반 문장의 서술법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일반 문장에서의 서술법대로 쓰지 아니하고, 주어와 동사의 자리를 바꾸는 도치법(倒置法) 따위의 여러 기교를 부려 형식의 묘미를 얻어내는가 하면, 아예 있어야 할 주어나 동사 따위를 아주 생략해버리는 기교를 다반사(茶飯事)로 즐겨 쓴다.   그런데 동시도 시인 만큼, 시에서처럼 동시에서도 율(律)과 운(韻)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런 까닭에 길이를 압축하여 의미를 함축시키되, 율과 운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아물려지도록 '말의 정서적 기능'을 살려내는 작업을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말로 빚는 그릇이라고 앞서 말하였다. 사발엔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고 접시엔 무엇인가를 얹어 놓을 수만 있다. 접시엔 담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깊이가 없어 주르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국물은 흘러내려 건더기만 얹을 수 있는 접시와, 그리고 옴폭한 깊이가 있어 국물까지 담을 수 있는 사발, 이것은 동시의 형식에서도 좋은 비유일 수 있다.   접시 모양의 동시에선 이야기만 얹을 수 있으나 시상(詩想)까지 고이게 하지 못한다. 요즘 엿가락처럼 재미있게 늘여가다 뚝 뚝 끊어내는 동시의 형식은, 접시 모양일까 사발 모양일까? 참신한 소재를 발견하여 그것을 이야기식으로 길게 전개한다지만, 시상이 결여되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말은 본래부터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의 뜻과, 그리고 함께 스스로 지니고 있는 음향적 리듬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이 뒷것을 일컬어 말의 정서적 기능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말의 정서적 기능을 아주 잘 활용하여 시를 쓴 시인으로 김소월을 들 수 있다. 또 윤동주도 들 수 있으되, 정서적 기능에 가장 먼저 눈길을 둔 이는 역시 김소월이다.   이런 까닭으로 위의 두 시인은 오래도록 독자들 입술에 오르내리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율과 운을 잘 살려가며 작품을 쓴 시인들이라 하겠다. 이렇듯, 동시의 형식에는 율과 운을 잘 살려내는 특별한 관심까지 요구된다.   동시 쓰기는 또 말의 의미적 기능과 그리고 정서적 기능, 이 두 가지를 읽기 좋게 배열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읽기 좋게, 보기 좋게 배열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오히려 힘들고 괴로운 작업이다.   4. 마음눈이 읽어내는 시심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은 작품을 이루는 몇 줄의 글 속에다 감추어 놓고, 시어로 선택한 낱말들이 은근히 그 속뜻을 겉으로 드러내도록, 그렇게 시치미 떼고 유도하는 일을 저지르기 일쑤이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고약한(?) 짓이지만, 시를 읽히도록 어떤 형식의 틀 안에 집어넣기 위한 전략에서는, 매우 묘한 술책으로 볼 수도 있다.   나뭇잎들이 서로 좁건 넓건 거리를 두고 어울려야 비로소 한 그루의 나무로 보인다. 나무라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나무로 인식하는데, 나뭇잎들의 어울림은 대단히 중요한 일몫을 하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다. 낱말들이 서로 상관(相關)된 거리를 나눠 갖고 만나야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틀지어진다. 여기에 거리를 두고 어울리는 상관된 거리가 충분히 갖춰진, 그런 결과로 시의 형식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얼굴눈만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마음눈으로 살피면 어느 정도 본질 테두리를 알아 볼 수 있다. 동시도 마음눈으로 사물을 살필 때에 시심을 찾아낼 수 있으며, 마음눈으로 읽어야 그 시심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아주 좋은 시는 최대한의 의미를 지닌 언어라고 하겠다.' 이는 에즈라 파운드(1885~1972)라는 시인이 남긴 말이다. 좋은 동시 또한 최대한의 의미를 함축한 작품일 때에 무한한 암시력을 풍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말을 놓고 재해석하자면, 좋은 동시는 극한적으로 압축되고 생략되어 더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여졌으나, 그 대신 지니는 속뜻은 최대한으로 늘일 수 있는 그런 시 작품이다.   모르는 사람 없을 만큼 알려진 영국 시인 엘리옷은 이런 말을 남겼다.   '시에 대한 정의(定義)의 역사는 곧 오류의 역사이다.' 시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내린 온갖 정의를 다 모으면 모을수록 잘못의 길이만 길게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시란 …… 무엇이다.'라고 정의한 것을 모두 다 모아놓는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시의 본질을 완벽하게 드러내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시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은 필요 없는 것이다. 시는 그냥 시일 뿐이다. 우리 나라 어느 스님의 말(법어)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다를 것이 없다.   아주 넓게 보면, 어떤 형식이든  시라고 써내는 것들은 모두 시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외우고 싶을 만큼 좋은 시나 좋은 동시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요즘 한 방송사의 지구 탐험대가 찍어오는 필름을 보면, 아랫입술을 뚫어 작은 접시 모양의 물건을 끼워넣어야 미녀라 여기는, 그런 검은 색 피부의 여인들이 오늘날에도 살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구태여 우리가 바꿔 주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동시의 형식, 이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보고자 한다. 다만, 요즘 동시의 형식을 길게 늘이는 그들의 그 인식에 대해, 그들 스스로 신중하게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일깨월 줄 수 있을지 문제라 여긴다.   아름다움 또는 미(美)에 대한 기준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므로 누가 상관할 일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보편적인 기준에 맞춰보는 것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5. 유치원 원아에 들려줄 동화처럼?   하루살이가 내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흔히 말해 왔다. 매미들이 다음해 여름을 어떻게 알겠느냐고도 말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의 가설(假說)일 뿐이다. 유충으로 있을 동안 '선택적 입력'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의 판단과는 달리, 땅 속에 7년 있는 동안, 7년 전의 정보가 계속 보전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이 정도가 아니도록 경이롭다. 그 놀라움의 두 가지만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1백살 정도밖에 못 사는 사람이, 빛이 1년 동안 달리는 거리를 생각하여 '1광년'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사람은, 그 후손에게 3천억 광년 밖에 있는 은하계를 그려볼 수 있게 머리를 물려 주고 있다.   그뿐이랴. 몸 안에 퍼져 있는 핏줄 속으로 달리는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고 렌즈를 달아 몸 속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를 찾아내는 진단을 하고 있다. 우주의 넓이와 크기를 알아내는 머리와 그리고 핏줄 속의 로봇을 만드는 나노기술의 머리가 오늘날 사람의 두뇌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런 두뇌만이 꼭 있어야 할 것들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또 있어야 할 두뇌도 있다. 그것은 어떤 두뇌인가?   봄 여름 가을, 세 철을 알아낸 나뭇잎 그 맨 밑에 달리는 아침이슬에 찬란히 첫 햇살이 닿을 때의 순간적인 눈부심을, 동시로 표현하는 동시 쓰기의 능력 또한 위에 두 가지 어느 것 못지 않게 가치 있는 두뇌가 아닌가? 카메라 렌즈가 잡아내는 모습,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 주는 한 편의 동시를 창작하는데, 여기 무슨 형식이라는 것이 필요하겠는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작(創作, Creation)이다. 이미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하는 것을 되풀이하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고 다만 오락(Re+cre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예술의 장르에서도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이며, 문학 장르 안에서 동시 쓰기에서도 또한 같다. 동시 쓰기에서의 창작은, 소재의 발견이나 소재의 선택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의 개발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동시의 형식도 그 전과 같지 않고 달라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줄글을 엿가락 뚝 뚝 잘라 적당한 길이로 장작 포개 쌓듯 배열하는, 요즘의 그 길어진 형식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여 보자. 산문시(散文詩)도 아니고, 산문시의 형식을 따라 (요즘 일반적으로 성인시가 길어졌듯이) 길게 늘여가며 율도 운도 무시한 채, (마치 유치원 원아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처럼) 적당히 끊어서 줄 바꿔 쓰는 요즘 동시의 형식은 ① 그래야만 할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으로서의 까닭을 그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② (독자들에게) 설명할 정서 논리를 그렇게 쓰는 까닭이 지니고 있는 것일까 ③ 과연 독자들은 그런 작품에서 어느 정도 「감동」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도움이 되는 글을 누군가에게서 받고 싶다.  출처  ㅡ 허동인 동시감상교실 
221    상(賞)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3220  추천:0  2017-02-11
    상(賞)에 대한 단상                        이시환(시인/문학평론가)     상이란 선행(善行) 능력(能力) 공적(功績) 등을 평가(評價) 인정(認定)하고, 칭찬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다중(多衆)에게 장려할 목적에서 증서(證書:상장 상패) 물품(物品→賞品) 금전(金錢→賞金) 자격[직책(職責)・직위(職位)] 등을 주는 일이다. 따라서 상에는 주는 쪽[授與者]과 받는 쪽[受賞者]과 지켜보는 쪽[觀衆] 등 3자가 전제된다. 상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은 공히 국가(國家)・기구(機構)・집단(集團)・단체(團體)・개인(個人) 등이 될 수 있으며, 지켜보는 쪽은 이들 조직(組織)의 구성원들이 된다.   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체적인 평가 대상에 대하여 평가하여 그 최종결과를 내놓는 과정의 절차(節次)와 방법(方法)에 있다. 바로 이 부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개는 전문가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그들이 내놓는 결과에 대해서 관중들은 무조건 신뢰하는 경향이 있으나[바로 이 점 때문에 상업주의와의 결탁과 심사과정의 속임수까지 자행된다] 반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따라서 수상자를 결정하는 절차와 방법은 의당 공정성(公正性)과 합리성(合理性)과 객관성(客觀性) 위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합리적인 절차를 밟는 듯하고 공정한 심사를 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속은 고사하고 겉보기에서조차 기본적인 원칙과 절차가 무시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내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므로 우리 문단사회에서 흔히 주고받는 ‘문학상’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보통은, 상의 객관적 신뢰도를 높여 그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전제하에서 ‘~문학상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에서 독자적으로 홍보하고 수상후보자(작)들을 직접 추천하거나 받고, 또 심사・심의하여 최종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위원회에서 후보자(작) ‘추천위원’을 위촉・임명하고, 그들로부터 정해진 ‘서식(書式)’에 의해서 수상자 후보자(작)들을 추천받는다. 그런 후에 별도의 ‘심사위원’을 위촉・임명하여 심사・심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추천 및 삼사위원을 분리해서 둔다는 뜻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상을 주는 쪽에서 수상자(작)를 내정해 놓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심사위원이라 하여 소집한 후에 설명하고 그들로 하여금 심사평이나 적당히 쓰게 하고 그 이름이나 빌려서 올리기도 한다.   결국, 어떠한 방식을 취하든, 심사위원들은 비교적 전문가임에는 틀림없지만, 수상자(작)를 전혀 알지도 못하거나 읽어보지도 않은 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수상후보자(작)들을 압축하고 압축하여서 최종 1인으로 결정하는 과정에 심사위원 간 이견(異見)이 있을 때에는 심사위원 모두가 후보작들을 다 읽어보고 재심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고 해보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추천 및 심사위원을 두고 수상자(작)를 공정하게 심사・심의한다고 할 때에 근원적인 한계는 없는가? 물론, 있다. 추천위원들의 출판된 문학도서에 대한 정보력과 독서량과 이해도[분석력], 작품의 가치나 작가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서식의 신뢰도, 심사위원의 문학적 안목과 심사 과정의 정성[양심], 수여자 내지는 위원회 위원장의 개인적인 의중 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문학상은 훌륭한 작품을 창작한 작가를 발굴하여 널리 알림으로써 작가에게는 창작의욕을 북돋아주고 명예를 안겨 주는, 좋은 쪽의 기능도 있지만 관중[독자]들에게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는 좋지 못한 기능도 있다. 그래서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 상이란 주는 쪽과 받는 쪽 공히 영광스러워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상의 객관적 신뢰도와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상금을 높이고,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심사위원들을 동원하려는 쪽으로 노력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보다는 후보자(작) 추천기준과 범위 및 이유, 심사방법과 과정, 추천 및 심사위원들의 명단, 수상자(작) 최종 결정 사유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동시에 추천 및 심사 과정에 동원된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이 덧붙여진다면 더욱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학잡지에 수상자(작)와 그 작가 작품에 대한 문학평론가들의 분석적인 평문들이 특집으로 꾸며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이 그 작가 작품세계가 있는 그대로 조명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의 진정한 권위와 의미가 부여될 줄로 믿는다.   따라서 상의 겉치레만 요란스럽게 치장할 것이 아니라 그 속을 맑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쪽으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그 노력이야말로 문학적 진실에 가까워지게 할 뿐 아니라 그에 부합되는 합리적인 절차라고 나는 생각한다.   -2015. 12. 23.   *나는 2015년 12월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최 제35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평론가상’을 장석용 동 협의회 회장과 이유식 원로문학평론가, 심종숙 문학평론가 등의 심사위원의 추천으로 받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상장의 내용으로 보아 내가 쓴 최근의 특정 예술평론에 제한하여 준 것이 아니라 그간의 평론활동에 따른 전반적인 실적에 대해 준 것으로 보인다.    
220    젊은 조선족 문학도 여러분들에게... 댓글:  조회:3860  추천:1  2017-02-11
    젊은 조선족 문학도 여러분에게 저는 서울에서 시(詩)와 문학평론(文學評論) 활동을 하고 있는 이시환입니다. 지난 2012년 8월 27일, 제 사무실에서 류순호 작가를 처음 만나 적지 아니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과정에서 ‘니카nykca’를 중심으로 창작(創作)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는 젊은 문학도 여러분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고, 또한 선배문인으로서 한 마디 조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주제넘게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서 둔탁한 펜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문학적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일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특별한 조언이라기보다는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창작활동 관련 몇 가지 진실을 털어 놓음으로써 대신하고자 합니다. 그리들 아시고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문학이란,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든지 간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문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저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얻고 싶지 결코 헤치거나 잃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창작 활동을 해온 과정에서 혹 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곤 합니다. 물론, 문학적 주의・주장이 달라서 비평이나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사람을 비판하거나 공격하여 싸우지는 않습니다. 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둘째, 현재 지구촌의 인구가 약 70억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인 ‘한글’로써 생활하는 사람은 지구촌을 통 털어서 1억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1억 명도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한글’로써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평생 동안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되 문장의 묘미를 알고 자신의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을 전문 문학인(文學人)이라 한다면 그 수는 어림잡아 1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1만 명의 한글 문학인이 70억 세계인을 상대로 창작활동을 하는 셈이지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노력하여 바로 그 1만 명 속에 포함되어 선의의 경쟁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한글 문학인 가운데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 그렇다고 훌륭한 문학인과 작품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  언젠가는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수상자가 한국에서 나오든, 북한에서 나오든, 중국 조선족 동포사회에서 나오든, 해외 교포사회에서 나오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곳 낯선 미국 땅에서 활동하는 여러분들이 먼저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창작하시어 그 중심에 우뚝 서기를 기대해 보는 바입니다.  비록, 여러모로 불비(不備)한 조건에 놓여 있지만, 제가 격월간 ‘동방문학’을 발행해 오고, 세계 어디에서 활동하든 ‘한글 문학인’을 각별히 아끼며 관심을 갖는 것도 다 문학을 사랑하고 동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문장으로써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느끼고 더불어 생각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여러분들은 실로 어려운 시기에 직면해 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난 고향을 떠나서 가족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하며,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 속에서 경제활동을 해내야 하며, 또한 선진문물을 배우고 적응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편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야말로 여러분들에게는 도전이고 위기 극복의 기회라는 사실을 유념해 두십시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전하고 위기를 극복한 국민이나 민족만이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여러분들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잠재력을 발휘하시어 그 위기를 능히 극복함으로써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문학은, 나부터 살고 싶고 내 이웃과 더불어서 함께 살고 싶은, 문장(文章)으로써 짓는 집입니다. 그 집에 대해서 꿈을 꾸는 것은 여유가 넘쳐나는 화려한 광장(廣場)이나 빌라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골방’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외롭고, 가장 힘들고,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 문장이 힘을 얻고 단단해 지며, 그것으로써 세상에 없는 집을 짓는 행위가 바로 문학의 창작활동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집이자 만인(萬人)의 집을 직접 지어 보십시오. 수많은 세계인이 여러분이 지은 집안에 기거(寄居)하면서, 웃고, 떠들고, 논쟁하며, 때로는 두 다리 쭉 펴고 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 집에 머물러 있었거나 현재 머물러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을 지어 제공한 당신에게 감사와 존경심을 표할 것입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지금 살아있음을 만끽해 보십시오. 세상은 참으로 너른 것 같기도 하지만 참 좁기도 합니다. 마음껏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만, “세상은 살아있는 자의 것이고, 아름다움은 향유하는 자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2012년 08월 28일 아침 이시환 씀 (동방문학 발행인 겸 편집인/시인/문학평론가)   ------------------------------ -1987년 계간 「詩와 意識」 지 시 부문 신인상 수상(모던니스트 김경린 시인 심사). -1989년 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지 평론 부문 신인상 수상(김양수 문학평론가 심사). -1998년 2월 격월간 「동방문학」창간. -2006년 격월간 「동방문학」휴간, 세계여행. -2009년 10월 격월간 「동방문학」속간. -2012년 08월 현재 격월간 「동방문학」통권 제63호 발행. 신세림출판사 주간. -시인 겸 문학평론가로서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였으며, 동방문학 발행인으로서 국내 및 국제행사(문학 세미나, 시낭송 등) 를 개최하고 참여하였음. -문학상 수상 :  ①「월간문학」평론부문 신인상수상 & 계간「시와 의식」시부문 신인상 수상 ②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비평부문) 수상  ③한맥문학상(평론부문) 수상  ④설송문학상(평론부문) 등 수상 ·시    집 : 「안암동 日記」(1992), 「애인여래」(2006),  「눈물모순」(2009) 외 7권 .시 선 집 :  「벌판에 서서」(2002) .영역시집 : 「Shantytown and The Buddha」(2003) :              *이 시집은 2007년 5월에 캐나다 몬트리올 ‘웨스트마운트’ 도서관에서 소장하               기로 심의 결정되었음. .중역시집 : 「偊立曠野)」(2004) :              *이 시집은 중국 북경 소재 ‘중국화평출판사’와 중국 장춘 소재 ‘장백산 문학                사’에서 기증하여 중국 내 유명 도서관 약 100여 곳에 비치되어 있음. ·문학평론집 :  ① 毒舌의 香氣(1993)               ② 新詩學派宣言(1994)               ③ 自然을 꿈꾸는 文明(1996)               ④ 호도까기-批評의 無知와 眞實(1998)               ⑤ 눈과 그릇(2000)               ⑥ 명시감상(2000)               ⑦ 비평의 자유로움과 가벼움을 위하여(2002)               ⑦ 문학의 텃밭 가꾸기(2007)               ⑧명시감상과 시작법상의 근본문제(2010) ·심층여행 에세이집 : ①시간의 수레를 타고(2008)                       ②이시환 지중해 연안7개국 여행기 「산책」(2010) ·종교적 에세이집 : ①신은 말하지 않으나 인간이 말할 뿐이다(2009)                     ②경전분석을 통한 예수교의 실상과 허상(2012) ·편  저 :  ①한·일전후세대 100인 시선집 「푸른 그리움」양국 동시 출판(1995)             ②「시인이 시인에게 주는 편지」(1997)              *이시환의 시집과 문학평론집을 읽고 문학인들이 보낸 편지를 모은 책             ③고인돌 앤솔러지 「말하는 돌」 (2002)             ④독도 앤솔러지「내 마음속의 독도」(2005)             ⑤연꽃 앤솔러지 「연꽃과 연꽃 사이」(2008)   이시환 시인, 평론가     출생일 1957년 09월12일 직업 시인, 평론가 성별 남성 학력 명지대학교 문학 석사             이시환(1957 ~  ) 시집 『안암동일기』외 12종, 문학평론집 『毒舌의 향기』외 7종, 종교에세이집 『예수교의 실상과 허상』, 여행기『시간의 수레를 타고』외 2종, 기타 『주머니 속의 명상법』, 논픽션『신과 동거중인 여자』, 시선집, 중역 및 영역시집, 편저 등 다수가 있음. 현, 격월간 동방문학 발행인 겸 편집인, 신세림출판사 주간   프로필   학력 -   명지대학교 문학 석사 경력 - 동방문학 발행인 수상 1995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비평부문상 저서 (5) 생각하는 나무신세림2016.06.30   명시감상과 시작법상 근본 문제신세림2010.10.10   산책신세림2010.06.18   신은 말하지 않으나 인간이 말할 뿐이다(반양장)신세림2009.09.20 눈물 모순(인디아 기행시집)신세림2009.05.25
219    시란 "자기자신이 만든 세계를 깨부시는" 힘든 작업이다... 댓글:  조회:3208  추천:0  2017-02-11
알기 쉬운 현대시 작법-자유시에도 운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형시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경우도 각운rhyme에 의해 시의 음악성이 강조된다.  각운은 흔히 낱말의 동일한 위치에서 동일한 소리가 반복되는 현상,  한국어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각운은 초성이 반복되면 두운alliteration, 중성이 반복되면 요운internal rhyme,  종성이 반복되면 말운rhyme이 된다.  각운이란 말은 운율을 맞춘다는 의미와 머리, 허리, 다리에서 다리가 되는 운,  곧 말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각운은 광의로 두운, 요운, 말운을 포함하고 협의로는 말운에 해당한다.  물론 각운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도 적용되고 시행과 시행 사이에도 적용된다.  다음은 낱말과 시행 양자에 걸쳐 두운이 나타나는 경우.  말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  마치 천리 만리나 가고도 싶은  맘이라고나 하려볼까  - 김소월   먼저 낱말의 경우 1행에는 "말리지 / 못할 / 만치 / 몸부림치며"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낱말의 머리에 "ㅁ"이 반복되는 두운 현상이 나타난다.  "만치"를 독립된 낱말로 읽지 않는 경우 1행은 "못할 만치 / 몸부림치며"가 되고 이 때는 "못할 / 몸부림"의 두운 현상 "-만치 / -림치며"의 요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1행의 첫소리, 2행의 첫소리, 3행의 첫소리는 모두 ㅁ으로 시작되는 두운 효과를 준다.  문제는 말운이고, 정형시의 경우도 우리시에는 말운 현상은 없고 운 대신 형태소나 낱말이 반복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가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것은 무슨 사상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음악성 때문이고,  그것도 두운과 요운 현상 때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중략)......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먼저 "하늘을 우러러"가 문제이다. "하늘을 우러러"란 무슨 뜻인가?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늘을 쳐다보며"이거나 "하늘을 공경하며"이다.  그러나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라고 표현한다.  "쳐다보며". "공경하며"가 아니라 "우러러"라고 표기한 것은 무엇보다 요운의 효과 때문이다.  "하늘을 / 우러러"의 경우 "-ㄹ-/ -ㄹ-"이 반복되므로써 요운 현상이 나타나고.  따라서 "하늘을 쳐다보며"나 "하늘을 공경하며"가 단순한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표기는 미적 효과를 목표로 하고 시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은 이런 미적 책략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점"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  결코 부끄럼이 없기를" 혹은 "죽어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라고 말한다.  혹시 일부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말에는 시간을 알리는 경우나 점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아니면 "한 점"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그것도 한 점 부끄러움이라니?  그렇다면 두 점 부끄러움도 있고 세 점 부끄러움도 있단 말인가?  이런 표기는 앞에 나온 "하늘"과 관계되는 바.  두 낱말 모두 첫 소리가 ㅎ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두운 효과가 있다.  요운 현상은 2행 "부끄럼이 없기를"에도 나타난다.  "-ㄲ-/-ㄱ-"의 반복이 그렇다. ㄲ과 ㄱ은 다르지만 이 시행이 경우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행이 아름다운 것 역시 "-밤-/-별-/-바람-"의 요운 현상 때문이다.  결국 윤동주의 는 사상이 아니라 소리 효과, 음악성,  그것도 섬세한 운의 효과가 감동을 주고 그의 시가 명시인 것은 이런 예술성 때문이다.  우리시에는 정형시든 자유시든 말운 현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각 시행의 끝이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로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말운은 아니지만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혹은 같은 소리가 음으로써 미적 효과를 낳는 경우는 많다.  엄격하게 정의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각운rhyme은 각 시행의 끝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이고,  따라서 협의로는 말운을 뜻한다.  그러므로 두운 역시 각 시행의 첫 소리가 같은 소리로 조직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두 편의 시 가운데 김소월의 시가 두운 현상에 적합하고  윤동주의 경우는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운 현상 역시 각 시행 중간에 같은 소리가 나오는 경우이고  한 시행 속에 나오는 경우는 요운의 변형,  혹은 자음조화consonance나 모음조화assonance로 읽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말하자면 "팔리지 못할 만치 몸부림치며"는 자음조화,  "마치 천리 만리나"는 모음조화로 읽을 수 있다.  우리시의 경우 각 시행이 끝이 같은 소리가 오는 이른바 말운 현상은 없지만 비슷한 소리(?)가 오는 경우는 있다.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뻔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듯 눈엔 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말운의 정확한 보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시의 미적 효과는 각 시행의 끝에 비슷한 소리가 오기 때문이다.  1행, 3행, 7행은 "끝없는 / 뻔질한 / 끝없는"의 ㄴ소리가 반복되고  2행, 4행, 8행은 "-네 / -네"의 같은 모음이 반복되고  5행, 6행,은 "듯 / 곳"의 ㅅ소리가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의 반복은 말운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시의 경우 각 소리들은 각 낱말의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가 아니라  낱말이거나 어미 활용에 속하고(끝없는, 흐르네,인 듯)  굳이 종성에 위치하는 소리를 찾자면 "곳"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같은 ㅅ소리를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소리는 운이 아니라  "곳"이라는 낱말의 반복이기 때문에 말운이 아니다.  여컨대 우리시의 경우 말운이 아니라 같은 어미나 낱말이 반복되고 이런 반복이 미적 효과를 준다.  /이승훈 =========================================================================       망치 ―유병록(1982∼ ) 여기 망치가 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든 망치는 무엇이든 만들어내지만 함부로 뭉개진 얼굴 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둔기의 윤리 괜찮소 누구나 귀머거리가 되니까 누구든 벙어리 가 되니까 언젠가 숨 쉬지 않는 자가 될 테니     없는 눈을 감은 채 망치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힘껏 내리친다 그의 사랑은 어차피 한 가지 방식뿐이니까 장미꽃을 두드려 겨울을, 태양을 두들겨 밤을, 도시를 내리쳐 무덤을 만드는 둔기의 본분 요새는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란 딸과 망치질 한 번 시키지 않고 키운 아들이 많으니 망치 없는 집도 있을 테다. 망치는 나무 손잡이에 쇠머리가 달린 공구다. 전에는 집집마다 망치를 하나쯤 갖추고 있었는데, 못을 박거나 호두를 깨먹는 데 사용했다. ‘쇠를 두드려 장미꽃을’ 만드는 세공용 망치부터 ‘얼음을 두들겨 태양을, 무덤을 내리쳐 도시를’ 만드는 거대한 망치까지 ‘망치는 무엇이든지 만들어내지만’, ‘자신이 만든 세계를 힘껏’ 내리치기도 한단다.      “어떻게 한 숨결에서 뜨거운 숨과 찬 숨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거냐!”(엘러리 퀸 장편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에서) 그것이 망치다. ‘함부로 뭉개진 얼굴/눈이 감기고 귀가 잘리고 입이 틀어 막힌’ 망치. 감정이 없으니 표정이 있을 리 없는 얼굴로 옹골차게 목표물을 가격할 따름. 그런 냉혹함과 완강함, 망치의 ‘윤리’와 ‘본분’으로 인류 문명이 이루어졌을 테다. 시인은 사물 망치를 빌려 인간을 말한다. 용도에 따라 이기(利器)도 되고 흉기도 되는 망치. 건설도 하고 파괴도 하는 인간 망치! 못 하나 박을 때도 망치를 잘못 휘두르면 다친다. 제대로 망치질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망치와 호흡을 맞춰 한 지점을 향해 정확하고 강하게 힘을 날리는, 기하학을 아우르는 그 감각! 망치를 들어 올려 내리치기까지의 부드럽고 힘찬 율동, 그리고 일격, 일격의 리드미컬한 망치 소리! ‘여기 망치가 있다’ 어떻게 쓸 것인가!
218    작문선생님들께 보내는 편지; - 우리 애들도 발음 좀 정확히... 댓글:  조회:3369  추천:0  2017-02-10
SBS '푸른 바다의 전설'은 인기 드라마였다. 그런데 연기자들의 발음에 오류가 잦아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담배꽁초 주서(주워)" "청소를 깨끄치(깨끗이) 하라고" "얼굴들이 나시(낯이) 익어"라고 했는데 이는 각각 '주워' '깨끄시' '나치'로 발음해야 맞는다. MBC 월화기획 '불야성'을 보자. "완전 깨끄치(깨끗이) 입었어" "그것 때문에 밤나스로(밤낮으로)" 따위의 오류가 보인다. '밤낮으로'는 '밤나즈로'라 발음해야 맞는다. 방송 중인 드라마도 마찬가지이다. 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서는 "학자금 대출 받았으면 비츨(빚을) 갚아야 할 것 아냐"라고 했는데, '비츨'이 아니라 '비즐'이 맞는다. 연기자들의 소양 부족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생방송도 아닌데 이런 상식적 수준의 오류가 고쳐지지 않는 것은 작가나 PD의 무성의 탓이다. 대본 리딩 과정 등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지적을 해야 하나.  출처 :조선일보/ 장세진 문학평론가 ///ㅡ[필자주;- 우리 애들에게 발음을 정확히 배워줘야 할 교원도 필요...] 
217    시와 삶과 리듬과 "8복" 등은 모두모두 반복의 련속이다... 댓글:  조회:3245  추천:0  2017-02-10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시는 일정한 거리에 오면 행갈이를 하고 신문은 행갈이 없이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다음은 행갈이의 보기.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무릎까지 시려오면  편지를 쓴다  부치지 못할 기인 사연을  이 시를 산문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손발이 시린 날은 일기를 쓴다.  그리고 무릎까지 시려오면 부치지 못할 기인 편지를 쓴다.  " 그러나 시인은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왜 행을 갈아가며 표기했을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리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리듬이 함축하는 의미 때문이다.  " 손발이 시린 날은 / 일기를 쓴다"는 시행을 읽는 경우 무엇이 다른가?  전자의 경우 우리는 중간에서 쉬지 않고 비슷한 속도로 리듬 없이 계속 읽어 나간다.  예컨데 "손발이 / 시린 날은 / 일기를 / 쓴다"처럼 중간에서 쉬고  동시에 이런 휴지에 의해 우리는 "손발이"와 일기를"을 강조하게 된다.  이 두 부분, 특히 "손"과 "일"에 강세가 놓인다.  한편 이런 읽기는 산문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산문의 경우 의미는 "손발이 시린 날", 그러니까 추운 날은 일기을 쓴다는 사실,  곧 하나의 정보뿐이지만 시의 경우 "손발이 시린 날"은 독립적인 의미를 띠면서 다음 행과 연결된다.  따라서 이 시행은 단순히 부사구의 기능, 말하자면 "일기를 쓴다"는 중심 문장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2연의 "무릎까지 시려 오면"과 대립되고,  따라서 추위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시린 손발과 일기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은가?  손발이 시린 시간에 어떻게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물론 쓸 수는 있다.  그러나 손발이 시리면 따뜻하게 녹여야지 무슨 일기인가?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이고 이런 표현이 시적 효과를 준다.  요컨대 행갈이 때문에 "시린 손발"은 추위에 대한 감각, 삶의 추위, 가난, 고독을 의미하고  "일기" 역시 자기 성찰, 자기 고백, 지기와의 만남 같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이런 의미는 가슴이 시린 밤이면 시를 찾아 나서고(3연), 등만 보이는 사람을  보이는 사람을 부르고(4연) 마침내 자신을 유월에도 녹지 않는 서리꽃으로 인식하는(5연) 전체 시와 관계된다.  중요한 것은 리듬 때문에 행갈이를 하고 이런 행갈이가 독특한 시적 의미를 함축한다는 것.  그렇다면 리듬rhythm이란 무엇인가?  리듬이란 흔히 율동 혹은 운율로 번역한다.  그러나 좀더 세분하면 첫째로 율동이라는 일반적 개념,  둘째로 운율이라는 문학적 개념,  셋째로 음의 강약을 나타내는 박자라는 음악적 개념,  나는 다른 책에서 리듬을 광의 율동 개념과 협의으의 운율 개념으로 나누어 살핀 바 있다.  율동이란 주기적인 반복 운동이고 운율이란 시의 경우 소리에 의한 주기적 반복 운동을 뜻한다.  따라서 광의의 개념인 율동은 시를 포함하여 일제의 우주현상, 자연현상, 생명현상에 두루 나타난다.  율동은 좀더 부연하면 상이한 요소들이 재현하는 주기적 반복 현상을 말한다.  우주의 경우 일출 / 일몰의 반복, 자연의 경우 바다는 썰물 / 밀물의 반복,  생명의 경우 인간의 호흡이 그렇다.  내쉼/ 들이쉼의 반복이 삶이고 이런 반복이 머추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숨쉬기이고 숨쉬기는 호흡이 암시하듯이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호흡은 숨결을 거느리고 그것은 숨쉬는, 호흡하는 속도나 높낮이를 뜻한다.  요컨대 호흡과 숨결은 생명의 본질이고 시, 음악, 회화의 리듬도 비스한 의미르 띤다.  시의 고향이 리듬이고 리듬이 숨결이라는 것은 이런 사정을 전제로 한다.  시의 경우 리듬은 크게 정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정형시는 말 그대로 리듬이 일정한 형식을 소유하고, 자유시는 그런 형식에서 자유롭다.  정형시의 리듬은 율격meter과 각운rhyme이 대표적이고  자우시의 경우도 작운은 존재하고우리 시의 울격은 흔히 음수율, 음보율,로 나타난다  자유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울격이나 일상어의 억양를 변형시킨 경우와  리드의 단위로 이런 소리 요소를 포기하고 형태소,  낱말, 어귀, 이미지, 어절, 통사 및 그 형식의 반복에 의해 성취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리듬의 단위를 소리에 두는 경우와 소리가 아닌 문법적 요소에 두는 경우이다.  전자를 전통적 리듬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현대적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에는 김소월, 박목월, 등이 후자에는 이상, 김수영 등이 포함되고,  나는 자유시의 리듬이 보여주는 이런 양상을 다른 책에서 살핀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이런 리듬, 곧 형태소, 낱말, 어구, 어절, 이미지, 통사 형식의 반복에 대해서는 내가  에 이미 발표한 에서도 말한 바 있다.  물론 그때는 리듬이 아니라 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아무튼 반복이 문제이다.  글쓰기도 반복이고 시쓰기도 반복이고 사랑도 반복이고 식사도 반복이고 감기도 반복이고 우울도 반복이다.  반복이 삶이고 삶은 호흡이고 숨쉬기이고 이 호흡과 숨결이 강조되면 리듬이 된다.  먼저 어절의 반복에 의한 리듬의 보기.  나는  쿠바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_ 체게바라,(이산하 엮음)  어절의 반복이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의 반복을 말하고,  이 시의 경우 '모든 것을 /만져보고 싶었고' 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내용의 반복이 아니라 ' -고 싶었고'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 시의 내용은 아르헨티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쿠바로 건너가 카스트로와의만남을 계기로 게릴라 혁명 투쟁에 임한 게바라의 쿠바에 대한  애정, 물론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반복되는경우도 있다. 다음은 문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경우.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운동주,   시인은 동일한 문장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고  한 행을 비운 다음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으로 시를 완성한다.  완성인가?  다시 생각하면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라는 문장은 '슬플 것이다'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을 내포하는 진술 형식에 가깝고,  그러므로 앞에서 반복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대한 아이러니의 효과가 강조된다.  물론 이런 형식은 리듬과 함께 8복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이승훈 ==================================================     흑산도 서브마린  ―이용한(1968∼ )     흑산도에 밤이 오면 남도여관 뒷골목에 노란 서브마린 불빛이 켜진다 시멘트 벽돌의 몰골을 그대로 다 드러낸, 겨우 창문을 통해 숨을 쉬는지는 알 바 없는 서브마린에 불이 켜지면 벌어진 아가미 틈새로 하얗고 비린 담배 연기가 흘러나온다 세상의 험한 욕이란 욕도 거기서 다 흘러나온다 갈 데까지 간 여자와 올 데까지 온 남자가 곧 죽을 것처럼 한데 뒤엉킨 서브마린에서는 때때로 항구의 악몽과 통곡이 외상으로 거래되고 바다의 물거품과 한숨이 아침까지 정박한다 지붕위에선 밤새 풍랑이 일고 지붕 아래선 끈적한 울음 같은 것들이 기어간 흔적이 수심에 잠긴 뻘밭 같기만 한데, 밤 깊은 서브마린에서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세상은 다 끝난 것만 같은데, 아침이면 다들 멀쩡하게 바다로 출근하는 것이다 죽을 것처럼 살아서 거짓말처럼 철썩거리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나면 어김없이 서브마린에 노란 불빛이 켜지고 항구의 낡은 사내란 사내 거기서 다 술 마신다 저렇게 버려진 잠수함으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지만, 한 번 시동 걸린 사내들은 어디든 간다 목포의 눈물에서 흑산도 아가씨까지 거기서 술을 팔든 몸을 팔든 내 알 바 없지만, 남도여관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나는 바닥의 절박한 생을 끌고 가는 한 척의 슬픈 잠수함을 본다.  이 시가 실린 이용한 시집 ‘안녕 후드득 씨’는 눅눅한 정조로 마음의 갈피가 달라붙은 듯한 화자의 결코 낭만적이랄 수 없는 방황과 방랑의 기록이다. 그러나 화자는 제 자신이나 만사를 관조하고 드물지 않게 유머를 구가해 독자 마음에 바람을 쐬어준다. 그래도 쓸쓸함과 황폐함, 그리고 막막한 비관주의가 내내 떠돈다. 길고양이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사진과 에세이로 담은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로 이용한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뜻밖인 어두운 정서다.  ‘서브마린’은 선창가 뒷골목의 무척 허름한 술집, 노란 불빛으로 그 창이 밝혀지면 ‘갈 데까지 간 여자와 올 데까지 온 남자’들이 밤새도록 고성방가와 악다구니와 욕설을 쏟아낸다. ‘겨우 창문을 통해 숨을 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서 술을 팔든 몸을 팔든 내 알 바 없지만’은 언뜻 말도 참 이상하게 한다 싶지만, 냉담해서나 무시해서가 아니라 과객의 예의로 그 서글픈 정황을 짐짓 ‘알 바 없다’는 것이다. 취흥에 도도해지는 게 아니라 ‘수심에 잠긴 뻘밭’으로 가라앉으며 ‘세상 다 끝난 것만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술집 ‘서브마린’. 흑산도 뒷골목의 비릿한 삶이 다 여기 고이네.
216    혁명이 사라진 시대, 혁명을 말하는것이 어색한 시대... 댓글:  조회:3826  추천:0  2017-02-09
체 게바라ⓒ기타   영원한 혁명가 체게바라(che guevaraa). 그는 1965년 4월 새로운 길을 떠났다. 1959년 쿠바 혁명에 성공했지만 6년이 지난 그해 체게바라는 “쿠바에서는 모든 일이 끝났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혁명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혁명을 위해 영원히 살기로 결심한 체게바라에게 쿠바의 인기 가수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노래를 만들어 헌정했다.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 우리 말로 ‘사령관이여 영원하라’라는 곡이다. 또 다시 혁명의 길을 떠난 체게바라는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로 떠났다. 그리고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볼리비아에서 죽임을 당한 그의 사진은 전 세계에 공개됐다. 체게바라의 웃옷은 벗겨져 있었고, 볼리비아 군인들은 그를 모욕하고 있었다.그의 사진은 체 게바라를 하찮은 인간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공개됐지만 오히려 그를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영웅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대중들은 그의 죽음에서 예수의 이미지를 봤다. 체게바라는 ‘남미의 예수’라 불리었다. 그리고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체게바라에게 헌정했던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는 체게바라를 추모하는 노래가 됐다.   쿠바 가수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부른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 원곡. Hasta siempre Commandante(사령관이여 영원하라) Aprendimos a quererte/desde la histirica altura donde el sol de tu bravura/le puso un cerco a la muerte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당신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당신의 용맹한 태양이 서있던 역사의 절정으로 부터. Aqui se queda la clara,/la entran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Comandante Che Guevara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성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Tu mano gloriosa y fuerte/sobre la historia dispara cuando toso Santa Clara/se despierta para verte. 당신의 영광스럽고 강력한 손은 역사를 겨냥하지요, 전 산타 클라라가 당신을 보기위해 깨어날 때 Aqui se queda la clara,/la entran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Comandante Che Guevara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심오한 투명성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Vienes quemando la brisa/con soles de primaver para plantar la bandera/con la luz de tu sonrisa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당신은 깃발을 꽂으러 봄의 태양으로 산들바람을 태우며 오지요 Aqui se queda la clara,/la entran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Comandante Che Guevara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함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Tu amor revolucionario/te conduce a nueva emparesa donde esperan la firmeza/de tu brazo libertario 당시의 혁명적 사랑은 당신의 강건한 팔을 기다리는 새로운 사업으로 당신을 이끌어가고 Aqui se queda la clara,/la entran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Comandante Che Guevara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함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Seguiremos adelante/como junto a ti sequimos y con Fidel te decimos: hasta siempre Comandante. 우리는 계속할거예요. 우리가 함께 당신을 따르는 것처럼 그리고 피델처럼 우리는 말해요.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라고. Aqui se queda la clara,/la entranable transparencia, de tu querida presencia/Comandante Che Guevara 여기 당신의 존재가 갖는 선명하고 깊은 투명함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볼리비아 정부군에 잡혀 처형당한 체게바라ⓒ기타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라는 제목은 체게바라가 쿠바를 떠나면서 남긴 메시지에 대한 답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시 체게바라는 ‘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을 남겼다. ‘영원한 승리를 향해서’ 또는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말이다. 혁명은 끝이 없고, 영원히 승리를 위해 투쟁할 것이라는 굳은 다짐이었다.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이런 체게바라의 다짐을 인용해 ‘Hasta siempre Commandante’(사령관이여 영원하라)라는 말로 체게바라의 혁명 장정을 응원한 것이다. 카를로스 푸에블라는 쿠바 혁명의 지휘관으로 역할을 다한 체 게바라를 찬미하고 있다. 체 게바라가 죽은 뒤 이 노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많은 음악가들이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를 부르며 체게바라의 죽음을 추모했다. 현재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는 세계 각국의 가수가 부르고 있으며 알려진 ‘버전’만해도 200개가 넘는다. 1997년엔 체게바라 사후 30년을 맞아 ‘아스타 시엠프레 코만단테’(Hasta siempre Commandante)를 만든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주도해 추모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이 음반은 2001년 우리나라에도 직수입돼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1997년은 체 게바라 신드롬이 전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됐던 해이기도 하다. 그해 체게바라의 유골이 발굴돼 쿠바로 옮겨져 안장됐다. 세상은 영원한 혁명가에게 열광했다. 그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가 만들어졌다. 체게바라는 추모를 넘어 마치 대중스타처럼 소비되는 대상이 됐다. 혁명이 사라진 시대. 혁명을 말하는 것이 어색해져버린 시대에 혁명가가 유행하는 건 어딘지 씁쓸하다. 하지만 체게바라 열풍은 그의 삶이 보여주는 깊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영원히 혁명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그의 삶은 오늘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베네수엘라 저항가수인 Soledad Bravo가 부른 버전이다. 원곡에 비해 약간은 서정적인 느낌이 강하고, 더욱 가슴 아프게 전달되는 곡이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버전이다. 어떤 의미에선 가장 쿠바적인 목소리로 불리어진 노래다.     칠레의 민중가수인 빅토르 하라(victor harra)가 부른 버전     우리나라 사람들도 잘 아는 가수인 존 바에즈가 부른 버전   프랑스 배우 겸 가수인 Nathalie Cardone이 1999년에 발표한 버전이다. 앞선 노래들 하고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215    세계 47개 언어로 엮어서 만든 "인터내셔널가" 댓글:  조회:3534  추천:0  2017-02-09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사람들이 갑자기 ‘인터내셔널가’를 중얼거리듯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소리는 부드럽게 고조돼 합창으로 이어졌다. 백발의 늙은 병사는 어린애처럼 흐느끼고 있었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볼셰비키 지도자)도 눈을 깜빡이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했다. 합창은 회의장 전체로 울려 퍼지다가, 창문과 문을 통해 고요한 하늘로 흘러 나갔다. ‘전쟁은 끝났다! 전쟁은 끝났다!’ 내 옆에 있던 젊은 노동자가 빛나는 얼굴로 외쳤다. 노래가 끝난 후 어색한 침묵 속에서 뒤쪽에 서 있던 누군가가 외쳤다. ‘동지들!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잊지 맙시다!’ 어느새 우리는 우울하고 장중한, 지극히도 러시아적이고 감동적인 장송곡을 천천히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인터내셔널가’는 외국 노래였지만, 이 장송곡은 서글픈 민중의 영혼 그 자체였다. 막연한 전망을 그리며 회의장에 앉아 있던 민중의 대표들은 이제 새로운 러시아를, 그리고 아마도 그 이상을 그리고 있는 듯했다.” 미국 출신의 기자인 존 리드가 쓴 책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는 러시아혁명의 순간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존 리드는 1917년 10월25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자리에서 레닌의 연설이 끝난 뒤 러시아 노동자들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은 지난 2006년 만들어진 MBC 다큐멘터리 ‘세계를 뒤흔든 순간 - 러시아 혁명’ 편에서도 재연 장면으로 등장한다. 또 존 리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레즈’에도 이 장면이 등장한다. 러시아 혁명과 그 혁명이 성공한 자리에서 불리어진 ‘인터내셔널가’는 인터내셔널가가 가진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인터내셔널가 악보ⓒ기타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3.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인터내셔널가’가 만들어 진 건 1800년대 후반이다. 프랑스인 외젠 포티에르(Eugène Pottier, 1816-1887)가 파리코뮌 봉기가 한창이던 1987년 시를 썼고, 그 시에 피에르 드 가이터(Pierre De Geyter, 1848-1932)가 1888년 곡을 붙였다. 1864년9월28일 노동자계급 최초의 국제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the International Working Men's Association)가 영국 런던 세인트 마틴즈 홀(St. Martin's Hall)에서 창립됐다. 이 조직은 제1인터내셔널로 불리게 된다. 제1인터내셔널은 세계 노동자계급운동의 진보를 위한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국제 조직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갈망과 노력의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다. ‘인터내셔널가’라는 제목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가운데 하나가 됐다. 노동진영은 물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환경운동, 성 소수자 해방운동 등 진보적 사상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상당기간동안 금지곡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전 세계에서 히트한 이 노래를 우리나라에선 80~90년대 학생운동을 체험한 세대와 노동운동을 경험한 사람 등을 제외하면 대중적으론 알려지지 않은 노래가 됐다. 노동절 125주년을 앞두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래인 ‘인터내셔널가’를 이곳에 소개한다.     존 리드의 생애를 다룬 영화 ‘레즈’에 등장하는 러시아 혁명 직후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모습.     세계 47개 언어를 엮어서 만든 인터내셔널가. 북한과 한국이 각각 따로 등장한다. 남과 북은 인터내셔널가 가사도 각각 다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 나오는 인터내셔널가. 동지의 죽음을 추모하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터내셔널가(Rock Ver) 밴드 아프리카. 윤성, 손창현, 정홍일, 임정득이 함께 불렀다.     영어 버전의 인터내셔널가.     원래 버전의 인터내셔널가. /ⓒ 민중의소리
214    시인 백석 한반도근대번역문학사에 한획을 긋다... 댓글:  조회:4577  추천:1  2017-02-09
"백석의 시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낭만주의 레르몬토프의 詩 허무·애수 등 정조 짙게 풍겨 탁월한 한국어 조탁 능력 실감 지난번에 발굴, 공개된 백석의 번역시들은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1902~1963), 러시아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와 미하일 이사코프스키(1900~1973) 등 3명의 작품이다. 백석은 1947년께부터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분과위원으로 일했으며 이 시집 번역에는 월북 문인 김병욱, 김상오 등도 참여했다. 그러나 의 경우 전체 수록시 61편 중 38편을 백석이 옮기는 등 번역 작업을 주도했다. 백석이 번역한 작품들은 두 가지 성향으로 대별된다. 우선 한국전쟁 직후 체제 정비 기간이었던 당시 북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 사회주의 혁명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시들이 눈에 띈다. '~하자, ~하라' 등 선동적인 구호가 사용된 작품들이다. '위대한 리별의 때는 왔고나 / 인민은 우리에게 총을 맡겼다 /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 / 이른 새벽 우리는 진군을 하자'(이사코프스키 '다시 보자 거리야 오막사리야'에서),'나아가라! / 앞길에 가로 놓인 산도/ 쓰러버릴 수 있는 땅크처럼/ 나아가라!'(히크메트 '레닌의 돌아가심을 당하여'에서) 같은 시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 갈래는 북한 체제의 요구와 차별되는 시들로, 학계는 이 시들을 더 주목하고 있다. 레르몬토프의 '시인', '사려' 등은 허무주의, 애수 등의 정조가 짙게 풍기는 작품이고 이사코프스키의 '우리 마을에 살아요'는 연시(戀詩)다. 윤영천 인하대 명예교수는 혁명성을 강조한 작품들은 일종의 '할당'작업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백석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레르몬토프를 번역한 것을 주목했다. 윤 교수는"당성을 중시하는 시대의 대세에 날카롭게 틈입해 레르몬토프 특유의 개인성을 부각시켰다"며 "백석 시의식의 기본적 지향과 맞아 떨어지는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제곤씨도 "작품을 스스로 골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석이 번역한 시에서는 인간 내면의 울림과 서정적 목소리가 느껴진다"며 "도식적이고 교조적인 사회주의 문학 노선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백석의 문학적 지향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석은 1948년 10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끝으로 1957년 4월 동시'멧돼지'를 발표할 때까지 9년 동안 시를 거의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에 발굴된 번역시들은 이 기간에 나온 것으로, 해방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백석의 탁월한 한국어 조탁 능력을 보여준다. '호도나무 수풀이야 / 익은 호도를 채롱에 굽알지고 / 길섶에는 수물수물 / 나무 그림자는 져라'(이사코프스키 '살틀한 것들'에서), '그것은 한낮 즐거 익은 쭈그렁 과실 같아 / 우리의 입맛과 눈을 기쁘게 함이 없이 / 의지가지 없는 생내기로 꽃 속에 달려 있거니 / 그것들의 아름다운 때는- 곧 조락의 때'(레르몬토프 '사려'에서) 등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동문학평론가인 장성유씨는 "원문을 확인해야겠지만 외국의 시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국문화시킨 상당히 뛰어난 번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백석의 아동문학관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도 수록돼 있다. 백석은 계급성, 교훈성을 강조하는 cx아동문학계 주류 노선에 반감을 품었다. 아동의 생활상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형상화해야한다는 문학관을 갖고 있던 그는 1957년 cx아동문학가인 이원우 등과 논쟁을 벌이다가 공개적인 비판을 받기도 했다. 새로 공개된 작품 중 백석이 번역한 히크메트의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장난질은- / 네 권리 / 그래 높은 담벽으로 / 기어 올라라'로 시작되는 동화풍의 작품이다. 장성유씨는 "작위적인 계몽성이 배제돼 있으며 아동생활 세계의 중심인 '장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백석이 자신의 아동문학관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선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집들은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번역가' 백석의 면모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백석은 1939년 토머스 하디의 소설 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분단 이후 cx에서 1947년 소련 소설가 콘스탄틴 씨모노프의 , 1955년 소련의 아동문학가 사무일 마르샤크의 을 번역하는 등 1950년대 중반까지 번역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가 북한에서 번역한 작품은 많이 발굴되지 않아 그의 번역문학은 연구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다. 김재용 원광대 국문과 교수는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 무렵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온 백석은 사회주의체제에 심정적으로 공감해 월남하지 않았지만, 구호시가 난무하고 도식주의가 난무하는 cx주류문학 노선에 반발심을 품었다"며 "1950년대 중후반까지 시를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 시집들은 자신의 시적 불모 상태를 외국시 번역으로 우회하려했던 백석의 시적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한국전쟁 후 소련과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cx체제가 의도적으로 소개했던 러시아(소련) 작가 외에 백석이 제3세계 작가(터키 시인 히크메트)를 번역을 통해 연구하고 관찰했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됨으로써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에서 그의 위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이다. /이왕구기자 /ⓒ한국일보 ===============================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1912~95)이 번역한 러시아 문학가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시 ‘쨔르스꼬예 마을에서의 추억’의 일부다. “ ‘희미시 잠들은’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등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석의 푸슈킨 번역은 외국문학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유려한 언어로 조탁됐다”고 정선태 국민대 교수는 말한다.  국내 연구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번역시 선집을 수집해 그중 백석의 번역시 일부를 이번에 소개한 정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시들은 모두 55~57년의 작품으로, 41년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후 문학적 행방이 묘연했던 시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백석의 우리말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근현대 문헌자료를 수집·연구하는 모임인 근대서지학회가 발간하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소명출판) 2호에 백석이 번역한 러시아 시 167편이 실렸다. 푸슈킨, 이사코프스키, 히크메트, 티호노프, 굴리아 등의 시가 381쪽에 걸쳐 소개됐다. 백석이 해방 이후 번역에 종사한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고 번역시 몇 편이 이미 소개되기도 했지만, 그가 북한에 있던 시절에 번역한 시의 전체적 모습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근대서지는 전했다.  국내 연구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번역시 선집을 수집해 그중 백석의 번역시 일부를 이번에 소개한 정 교수는 “이번에 공개한 시들은 모두 55~57년의 작품으로, 41년에 몇 편의 시를 발표한 후 문학적 행방이 묘연했던 시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 의미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며 “백석의 우리말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석 번역시가 담긴 시선집들 표지. ========  1950년대 北서 번역한 시167편 공개 헤엄쳐 가며 그 해쓱한 빛으로 주위의 만상을 비치어라 오랜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길 눈앞에 틔었고 등성이며 풀밭은 환히 바라보이어라 여기 내 눈앞에는 어린 버들이 백양나무에 얼키어 수정 같이 찬 물에 맑게 비최고 들판의 공주인 듯 자랑스러운 나리꽃 화려하게도 아리땁게 피어있고나 북방(北方) 정서를 담은 시로 유명한 백석(白石 ·1912~95) 시인이 1950년대 북쪽에서 번역한 시들이 잡지 '근대서지(제2호)'에 의해 공개됐다. 백석 시인이 해방후 번역 작업에 종사했음은 알려져 있지만, 그 전모가 드러난 것은 처음이어서 학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알렉산드로 푸시킨, 미하일 레르몬트프, 미하일 이사코프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 러시아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한 총 167편이다. 모스크바에 유학가 문학을 공부했던 터키 출신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들도 포함돼 있다. 근대서지 편집위원회는 "이번에 소개되는 번역시들을 통해 백석의 우리말에 대한 감각을 다시 확인하고 또 그의 북한에서의 활동을 재구성해볼 수 있게 됐다"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백석론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제 말기에 주로 만주에서 활동한 백석은 한반도 북쪽 지방의 방언을 시언어로 쓰면서도 서구의 모더니즘을 발전시킨 유려한 작품들로 문학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방 이후 만주에서 고향인 평북 정주로 돌아온 백석이 창작보다 번역에 더 힘썼다는 것이 이번 작품들로 드러난다.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산하 문학가동맹에 속한 그는 시분과원이 아니라 외국문학분과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후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백석은 동시 창작을 하는 한편 러시아 시문학을 번역, 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백석은 문학인을 혁명일꾼으로 여기는 북한체제의 한계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쏘련시인전집' '레르몬또브 시전집'(위 오른쪽 사진) '이싸꼽쓰끼 시초'(위 왼쪽) 등의 번역 작업에서 특유의 탁월한 언어 조탁 솜씨를 발휘했다. 푸시킨의 시 '쨔르스꼬예 마을에서의 추억'의 일부분을 번역한 것을 보면 외국시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우리말 표현이 유려하다. '헤엄쳐 가며 그 해쓱한 빛으로/주위의 만상을 비치어라/오랜 보리수 닐닐이 늘어선 길 눈앞에 틔었고/등성이며 풀밭은 환히 바라보이어라/여기 내 눈앞에는 어린 버들이 백양나무에 얼키어/수정 같이 찬 물에 맑게 비최고/들판의 공주인 듯 자랑스러운 나리꽃/화려하게도 아리땁게 피어있고나.' '근대서지'에 백석의 번역시에 관한 논문을 게재한 정선태(국문학) 국민대교수는 "백석이 압하지야(그루지야 자치공화국) 출신의 굴리아 시집을 번역한 것은 주변부의 시인인 굴리아의 토속적 서정이 사로잡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변방의식에 시달렸던 시인으로서 굴리아의 정서에 동화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김 교수는 백석이 일제 말기부터 번역 작업을 했던 것을 상기하며 "시다운 시를 쓸 수 없는 폭압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선택한 것이 번역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소개한 작품들 이외에도 백석이 번역한 작품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동화, 소설 등의 번역작품들도 계속 발굴·소개해야 백석 문학을 총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근대서지'는 이번 호에서 1920년대 여성 계몽을 목적으로 발간됐던 잡지 '여자시론' 3호와 '부인계' 2호를 발굴·소개했다. '여자시론'은 그동안 창간호만 발견됐고, '부인계'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잡지다. 오영식 '근대서지' 편집위원은 "근대출판이 1세기가 넘어가는데도 20세기 초반 출판물에 대한 서지학적(書誌學的) 관심이 부족했다"며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자료 수집과 소개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선기자 백석(白石)의 생애와 문학세계 사전자료실/한국의문인  백석(白石, 1912-? )    생애   시인, 아동문학가. 번역가.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오산 소학교 입학. 1924년(13세) 오산 학교 입학. 동문들의 회고에 의하면 재학시절 오산 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짐.   1930년(19세)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하여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함.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으로 유학. 토오쿄오의 아오야마(靑山) 학원 영어 사범과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함.   1934년(23세) 귀국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함.   1924년(13세) 오산 학교 입학. 동문들의 회고에 의하면 재학시절 오산 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짐.    1935년(24세) 8월31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이후 시작품에 더욱 정진함. 지 편집부 일을 봄.   1935년(24세) 6월의 어느날, 친구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평생 구원의 여인으로 남을 '란(蘭)'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됨. 당시 이화고 학생이었던 통영 출신의 란은 백석의 마음을 온통 휘어잡음.   1936년(25세) 1월 20일 시집 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 같은 해 4월에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감. 이때의 생활 소감을 수필 [가재미, 나귀] (동아일보)에 발표함. 이 무렵, 함흥에 와 있던 조선 권번 출신의 기생 김진향을 만나서 사랑에 빠짐. 이때 김진향에게 '자야(子夜)'라는 아호를 지어줌.   1937년(26세) 영생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함흥시의 러시아인이 경영하는 상점에 자주 나가 러시아말을 배움. 고향에서 결혼하라는 독촉을 받고 혼례식을 했으나 초례만 치른 후, 다시 함흥의 자야에게 돌아옴. 그러나 자야는 이 사실을 알고 혼자 서울로 떠남.    1938년(27세) 영생고보 축구부 지도 교사였던 백석은 전선(全鮮)고보 축구대회에 선수들을 인솔하여 참가함. 이때 자야와의 재회. 그러나 축구부 선수들의 유흥장 출입으로 말썽이 나서 지도교사였던 백석은 함흥학원측으로부터 영생여고보로 문책 전보됨. 몇 달 후 영생여고보를 사임하고 다시 서울로 와서 여성지를 편집함.    1939년(28세) 다시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나 다시 혼자서 서울로 올라옴. 이 사실을 알 게 된 자야는 다시 백석 곁을 떠남. 조선일보에 재입사하여 지의 편집을 돌보다가 다시 사임함. 고향 근처의 평안북도를 여행함.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함.   1940년(29세) 만주의 신찡(新京,지금의 長春)으로 옮겨 가서 '신경시 동삼마로 시영주택 35번지'의 중국인 황씨 집에 거처를 정함.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에서 6개월 가량 근무하다가 창씨개명 강요로 곧 사직하고, 북만주의 산간 오지를 기행함. 평론 [슬픔과 진실]을 만선일보에 발표함. 토마스 하디의 장편 소설 를 서울 조광사에서 번역 출간함. 이 출판 사업차 서울을 잠시 다녀감.    1941년(30세) 생계 유지를 위해 측량 보조원, 측량 서기, 중국인 토지의 소작인 생활까지 하면서 고생함.    1942년(31세)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함. 러시아 작가 바이코프의 작품 [밀림유정] 등을 번역함.    1944년(33세) 일제의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산간 오지의 광산에 숨어서 일함.    1945년(34세) 해방과 더불어 귀국,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함.    1946년(35세)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비서로서 조선 민주당의 일을 돌봄. 고정훈의 증언에 의하면 이 해 12월 고정훈이 만주에서 귀국길에 차중에서 아들이 열병으로 죽었고, 아들의 시신을 안은 채 평양 대동강변 돌각담 집에서 살고 있던 백석을 찾아가 장례를 논의했다고 함. 당시 백석은 평양 권번 동기 출신의 여성과 동거중이었다고 함.    1947년(36세) 시 [적막강산]이 그의 벗 허준에 의해 에 발표됨. 분단 이후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한국의 문학사에서 완전히 매몰됨.    1947년(36세) 10월에 열린 문학 예술 총동맹 제 4차 중앙위원회의 개편된 조직에서 외국 문학분과원에 올라 있음. 러시아 작가 씨모노프의 『낮과 밤』 을 번역하여 출판    1948년(37세) 김일성 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짐.    1949년(38세)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을 번역 출간함. 숄로호프의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싸웠다}를 번역 출간함.    고정훈의 증언에 의하면 이화여전 출신의 아내가 있었으나 남편을 몹시 증오하여 외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고 함. 이때 남편에게 만약 월남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함.    1950년(39세) 국군이 평안도를 수복했을 때 주민들이 그를 정주 군수로 추대했다고 전함.    1953년(42세) 파블렌코의 {행복}을 번역 출간함.    1954년(43세) 러시아의 농민시인 이사코프스키의 시선집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    1956년(45세) 아동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동화문학의 발전을 위하여]등의 평론을 발표함.   1956년(45세) 10월에 열린 제 2차 작가대회에서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일함. 이후『문학신문』을 무대로 하여 다양한 활동을 함.    1957년(46세)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발간함. 『아동문학』4월호에 「멧돼지」외 동시 3편을 발표하여 아동문학 논쟁을 촉발시킴. 「아동문학의 협소화를 반대하는 위치에서」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논쟁을 함.    1958년(47세) 8월 시평 [사회주의적 도덕에 대한 단상]을 발표함. 10월 이후 부르주아 잔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위축됨.    1959년(48세) 이전까지 평양 동대원구역에 살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문학 번역창작실’에서 러시아 소설과 시 등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 것으로 밝혀졌다.   1959년(48세) 1월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양치기 일을 함. 그동안 전혀 발표하지 않았던 시를 쓰기 시작함.  시 [이른 봄] 등 7편을 에 발표함.   1960년(49세) 이해 12월 북한의 지에 시 [전별] 등 2편을 발표함.    1961년(50세) 12월에 그의 마지막 시작품 [돌아온 사람] 등 3편을 지에 발표함. 그 이후의 생사는 전혀 확인되지 않음. 아마도 숙청된 것으로 짐작됨.    1962년(51세) 10월 무렵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    1963년(52세) 사망했다는 설이 있음.    1987년 첫 시집 이후에 발표된 시 작품 등 도합 94편을 정리한 (이동순 편)이 서울의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됨. 이후 월북문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단행됨. 그로부터 한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그의 작품이 아낌과 사랑을 받음.    1999년 백석문학상 제정 시행.     작품 경향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석 문학의 특징은 상실되어가는 고향 의식의 회복, 이를 통한 제국주의 문화의 극복,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따뜻한 긍정,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북방정서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백석의 시는 우선 문체상의 개성이 다른 시인들에 비해 매우 뚜렷하다. 그가 즐겨 쓰고 있는 방법들은 대개 회고체, 방언체, 구어체, 의고체, 연결체, 만연체, 아동 어투의 독백체 등이며, 이는 민중적 정서를 농도짙게 풍겨나게 하는 기대를 갖고서 구사된다. 시인 자신의 유소년 시절의 체험과 고향 정서로써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방법들이 어김없이 회고체를 채택하게 하는 것이며,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지역의 방언이 그의 시작품의 방언적 토대가 되고 있다.   시인 백석은 민족의 주체적 자아를 문학 쪽에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활동 영역을 농촌 공동체의 생활과 그 정서에서 찾으려 했다. 그무렵 도시공간에서는 이미 말의 타락 현상이 극심하게 일어나 인간 의식의 붕괴 및 파탄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농촌만큼은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농촌파괴 정책에도 불구하고 혈연과 거주지로 함께 엮어지는 생활공동체의 끈끈한 유대를 여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김소월과는 당시의 유명했던 사학 오산고보의 선후배 사이로 백석은 선배시인 소월의 문학세계를 매우 흠모하고 존경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채로 소월이 먼저 요절하고 말았다. 소월의 문학에는 민요적 틀에 실어서 표현하는 관서지방 특유의 정서가 있지만 백석은 소월보다 어쩌면 더 짙게 마천령 서쪽 지역인 평안도 주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특이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백석은 분단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금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매몰되어온 시인이었다. 백석의 경우는 그 자신이 무슨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거나 꼭 북쪽의 정치체제를 선택할 만한 어떤 필연성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단지 있었다면 그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라고 하는 사실, 해방 이후에 만주에서 돌아온 그가 줄곧 고향의 가족들과 기거해 왔다는 사실, 굳이 서울 쪽으로 월남해 내려와야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그냥 고향에 눌러 앉았었고, 이 때문에 남쪽의 문학사에서는 '북쪽을 선택한 시인'의 명단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북쪽에서의 백석의 시인으로서의 생활은 항시 불안정한 것이었다. 체제 정비를 끝낸 다음 김일성이 맨먼저 착수한 것이 언어의 통일이라는 명제였다. 이것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지역간의 뿌리깊은 알력과 갈등이 사회주의 체제의 발전에 막대한 장애를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소위 문화어 정책이라는 것을 실시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방언의 구획과 변별성을 일거에 무너뜨리고자 하는 시도였다. 정황이 이러하니 백석의 시세계가 지녀오던 방언주의가 제대로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백석은 실제로 196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각종 문학자료에 아주 드물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더 계속되지는 못했던 것이 바로 백석 특유의 방언주의와 그것을 가로막는 문화어 정책 간의 충돌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해서 백석은 북에서도 비운의 시인이었지만 남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운의 금지시인이었다.   대표작   여승, 고향, 여우난 골족,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국수, 동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213    불후의 명곡 "카츄샤"는 세계만방에 울러 퍼지다... 댓글:  조회:4547  추천:0  2017-02-09
관련 항목 : 군가/해외, 소련군 Катюша 작사: 미하일 이사콥스키 (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Исаковский, 1900-1973) 작곡: 마트베이 블란테르 (Матвей Исаакович Блантер, 1903-1990)[1]   1. 개요2. 가사3. 개사곡 3.1. 폴란드어(폴란드)3.2. 히브리어(이스라엘)3.3. 중국어(중화인민공화국)3.4. 일본어(일본)3.5. 한국어(대한민국)3.6. 독일어3.7. 영어3.8. 그리스어3.9. 투쟁의 의미로의 개사곡 3.9.1. 이탈리아어(이탈리아)3.9.2. 터키어 4. 기타 여러가지 음원들   1. 개요[편집] 러시아의 대중가요이자 군가. 1938년에 작곡된 노래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연인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처녀 카츄샤가 화자로 설정되어 있다. 작곡가인 마트베이 블란테르가 국립 빅 밴드였던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을 위해 해당 악단 지휘자였던 빅토르 크누셰비츠키에게 위촉받았고, 돔 소유조프의 콜론늬 홀에서 초연되자 무려 세 번이나 앙코르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소련 국립 재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초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콘서트의 최종 리허설에 참석했던 리디야 루슬라노바라는 사람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자신의 무대에서 먼저 불러버린 것. 여담으로 누가 라디야 루슬라노바에게 '악보도 없이 어떻게 곡을 불렀죠?'라고 물어보자 '난 듣자마자 너무 황홀해서 그 곡을 그냥 외워버렸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대조국전쟁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러시아 내에서만 300가지의 버전이 수집되었다고 한다. 그 뒤 한국의 아리랑과 같은 러시아의 국민 가요가 되었고, 현재도 전승기념일과 같은 때 많이 불리고 있다. 한마디로 재즈 가요였으나 정식 군가로 승격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러 가수들이 부를 뿐만 아니라 승리의 날 퍼레이드에서도 행진곡으로 깔린다. 정작 군가였으나, 국내외에서 민요 취급을 받는 초원과 비교하면... 2017학년도 수능 일부 시험장에서 종소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민요'라고 써 있었다고. 2. 가사[편집] 붉은 군대 합창단 버전.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독창. 마리나 제뱌토바, 카챠 랴보바 걸스 앤 판처 버전 절 러시아어 한국어 번역 러시아어 독음 1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2] 라스쯔비딸리 야블라니 이 그루쉬, 빠쁠릘리[3] 뚜마늬 나드 리꼬이 븨하질라 나 볘롁 까쮸샤, 나 븨쏘끼이 볘롁 나 끄루또이 2 Выходила, песню заводила Про степного, сизого орла Про того, которого любила Про того, чьи письма берегла.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네, 초원의 잿빛 독수리에 대해서 사랑하는 이에 대해, 소중한 편지를 보내오는 이에 대해서. 븨하질라, 뼤쓰뉴 자바질라  쁘라 쓰찝노바, 씨자바 아를라  쁘라따보 까또라바 류빌라  쁘라따보, 치 삐쓰마 볘례글라 3 Ой ты, песня, песенка девичья, Ты лети за ясным солнцем вслед. И бойцу на дальнем пограничье От Катюши передай привет. 오! 노래야 처녀의 노래야, 저 빛나는 해를 따라 날아가, 머나먼 국경의 병사 하나에게 카츄샤의 인사를 전해다오. 오이 띄, 뼤쓰냐, 뼤쏀까 졔비치야, 띄 리찌 자 야쓰늼 쏜쩸 프쓸롓. 이 바이쭈 나 달님 빠그라니치이 아뜨 까쮸쉬 뼤례다이 쁘리볫 4 Пусть он вспомнит девушку простую, Пусть услышит, как она поёт, Пусть он землю бережёт родную, А любовь Катюша сбережёт. 그로 하여 순박한 처녀를 생각케 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게 하렴. 그로 하여 조국을 수호하게 하고, 카츄샤가 사랑을 간직할 수 있도록. 뿌스찌 온 프스뽐닛 제부쉬꾸 쁘라스뚜유, 뿌쓰찌 우쓸릐쉿, 깍 아나 빠욧, 뿌쓰찌 온 졤류 볘례죳 라드누유, 아 류봅 까쮸샤 즈볘례죳[4] 1 Расцветали яблони и груши, Поплыли туманы над рекой. Выходила на берег Катюша, На высокий берег на крутой. 사과꽃 배꽃이 피었지. 구름은 강 위를 흘러가네. 카츄샤는 강 기슭으로 나와 높고 가파른 강둑을 걸어가네. 라스쯔비딸리 야블라니 이 그루쉬, 빠쁠릘리 뚜마늬 나드 리꼬이. 븨하질라 나 볘롁 까쮸샤, 나 븨쏘키이 볘롁 나 끄루또이 이 노래는 패미컴판 테트리스에도 삽입되었다. 3. 개사곡[편집] 3.1. 폴란드어(폴란드)[편집] 가사 내용은 러시아어와 같다. 내용도 그대로 러시아어를 폴란드어로 옮긴것으로 해석은 러시아어 부분을 참고하면 된다. 절 폴란드어 1 Rozkwitały grusze i jabłonie, Popłynęła ponad rzeką mgła, ku brzegowi szła Kasieńka na błoniem, ku brzegowi wysokiemu szła. 2 Ku brzegowi idąc, pieśń śpiewała, o stepowym orle sponad skał, o tym, kogo bardzo miłowała, czyje listy chowa niby skarb. 3 Oj, ty pieśni, piosnko ty dziewczęca, w ślad za słonkiem jaśniejącym śpiesz. Żołnierzowi z pogranicza, dźwięczna, od Kasieńki pozdrowienia nieś. 4 Niech tam wspomni miłą swą dziewczynę, jak mu śpiewa do utraty tchu, gdy on strzeże ziemi swej rodzinnej, Kasia — serca wiernie strzeże mu. 1 Rozkwitały grusze i jabłonie, Popłynęła ponad rzeką mgła, ku brzegowi szła Kasieńka na błoniem, ku brzegowi wysokiemu szła.   3.2. 히브리어(이스라엘)[편집] קטיושקה. 히브리어 특유의 발음과 유대 전통 연주방법으로 신비한 느낌을 준다. (1, 2절) (1절만) 이 노래는 의외로 이스라엘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아예 민요의 지위에까지 올라 있다. 원곡의 제목 그대로 카츄샤(קטיושקה) 또는 가사 첫 줄을 따서 리블레부 아가스 베감 타푸아흐(לבלבו אגס וגם תפוח: 배꽃과 사과꽃이 필 때)를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가사는 벨라루스 출신의 유태인 노아 프니엘(Noah Pniel)이 1940년 당시 리투아니아에 머물러 있을 당시에 히브리어로 압운까지 살려가며 번역하였다. 이후 그가 신생 이스라엘로 이주하면서 유태인 청년운동가들 사이에 이 노래가 대거 유행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내부의 각종 커뮤니티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은 경향은 21세기에도 변함이 없다. לבלבו אגס וגם תפוח ערפילים כיסו את הנהר וקטיושקה אז יצאה לשוח  אלי חוף תלול ונהדר   העלמה שרה בלב כמיה את שירה זה הערב מכל על אהוב נפשה המתגעגע  איגרותיו לה יקרות מכל [현대 히브리어 에서는 안쓰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3,4절은 추가바람. 3.3. 중국어(중화인민공화국)[편집] 제목은 喀秋莎 또는 卡秋莎[5][6]라고 표기된다. 번안가는 차오 펑(赵风)이다. 위 영상에서는 3절이 빠져 있다. 절 중국어 한국어 번역 1 正当梨花开遍了天涯, 河上飘着柔漫的轻纱!  喀秋莎站在竣峭的岸上, 歌声好像明媚的春光. 배꽃 온 세상 두루 피던 때 강가엔 부드러운 천이 나부끼고 있었지. 카츄사는 험준한 강기슭에 서서 아름다운 봄 빛처럼 노래한다네. 2 姑娘唱着美妙的歌曲, 她在歌唱草原的雄鹰; 她在歌唱心爱的人儿, 她还藏着爱人的书信. 아가씨가 고운 노래 부르네. 그녀의 노래에는 초원의 독수리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오. 그녀는 아직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품고 있으니. 3 啊这歌声姑娘的歌声, 跟着光明的太阳飞去吧!  去向远方边疆的战士, 把喀秋莎的问候传达. 아아, 이 노랫소리여, 아가씨의 노랫소리여. 빛나는 태양과 함께 날리워 간다. 머나먼 변방의 병사에게로 간다. 카츄사의 안부를 전하러. 4 驻守边疆的年轻战士, 心中怀念遥远的姑娘; 勇敢战斗保卫祖国, 喀秋莎爱情永远属于他. 변방을 지키는 젊은 병사 맘속으로 아득히 멀리 있는 아가씨를 그리워하네. 용감히 싸워 조국을 지키니 카츄사의 사랑은 영원히 그에게 있으리. 1 正当梨花开遍了天涯, 河上飘着柔漫的轻纱!  喀秋莎站在竣峭的岸上, 歌声好像明媚的春光. 배꽃 온 세상 두루 피던 때 강가엔 부드러운 천이 나부끼고 있었지. 카츄사는 험준한 강기슭에 서서 아름다운 봄 빛처럼 노래한다네.   3.4. 일본어(일본)[편집]   절 일본어 한글 발음 한국어 번역 1 りんごの花ほころび 川面(かわも)にかすみたち 君なき里にも 春は忍び寄りぬ 린고노하나호코로비 카와모니카스미타치 키미나키사토니모 하루와시노비요리누 사과꽃 피어오르고 강물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그대 없는 마을에도 봄은 살며시 다가오네. 2 岸辺に立ちてうたう カチューシャの歌 春風優しく吹き 夢が湧くみ空よ 키시베니타치테우타우 카츄우샤노우타 하루카제야사시쿠후키 유메가와쿠미소라요 물가에 서서 부른다 카츄사의 노래. 봄바람 부드럽게 불어 꿈이 솟아오르는 하늘이여. 3 カチューシャの歌声 はるかに丘を越え 今なお君をたずねて やさしその歌声 카츄우샤노우타고에 하루카니오카오코에 이마나오키미오타즈네테 야사시소노우타고에 카츄사의 노랫소리 아득히 언덕을 넘어 지금도 그대를 찾아 부드러운 그 노랫소리. 1 りんごの花ほころび 川面(かわも)にかすみたち 君なき里にも 春は忍び寄りぬ 린고노하노호코로비 카와모니카스미타치 키미나키사토니모 하루와시노비요리누 사과꽃 피어오르고 강물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그대 없는 마을에도 봄은 살며시 다가오네.   3.5. 한국어(대한민국)[편집] 합창곡 절 한국어 1 사과꽃과 배꽃 활짝피고 강물위로 안개 끼인날 높고 가파른 강기슭 거닐며 카츄샤는 노래 부른다 2 멀리 있는 님의 편지 받고 그리움에 눈물 흘리며 높고 가파른 강기슭 거닐며 카츄샤는 노래 부른다 고려대학교의 응원가 중 하나인 '지야의 함성'의 원곡이기도 하다. 절 한국어 1 크림슨의 붉은 정열과 철쭉꽃의 곧은 함성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 2 석탑 속의 곧은 지성과 포효 속의 뛰는 야성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으로 영원토록 간직하여라 2000년 연고전 당시 연세교육방송국(YBS)에서 '지하의 함성'으로 개사되어 불려지기도 했다.(5분 20초쯤부터 나옴.) 남아도는 무식한 힘과 막걸리의 술기운 빌려 우리 모두의 발버둥으로 고대역을 건설하여라(X2) 또한 리드코프 광고에서도 "대출도 쇼핑처럼 쉽고 빠르게~"로 개사한 바 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사한 응원가로 부르고 있다.(승리가, 예전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때 응원가로 사용하였다고한다.) 보라 울부짖는 사자의 기상을 폭풍을 휘몰아 세상끝까지 삼천 저멀리 용맹을 떨쳐라 승리만이 우리것이다 우리는 싸운다 불타는 투지로 젊은 사자 육사의 용사   3.6. 독일어[편집]   Leuchtend prangten ringsum Apfelblüten, still vom Fluss zog Nebel noch ins Land; durch die Wiesen kam hurtig Katjuscha zu des Flusses steiler Uferwand. Und es schwang ein Lied aus frohem Herzen jubelnd, jauchzend sich empor zum Licht, weil der Liebste ein Brieflein geschrieben, das von Heimkehr und von Liebe spricht. Oh, du kleines Lied von Glück und Freude, mit der Sonne Strahlen eile fort. Bring dem Freunde geschwinde die Antwort, von Katjuscha Gruß und Liebeswort! Er soll liebend ihrer stets gedenken, ihrer zarten Stimme Silberklang. Weil er innig der Heimat ergeben, bleibt Katjuschas Liebe ihm zum Dank. Leuchtend prangten ringsum Apfelblüten; still vom Fluss zog Nebel noch ins Land. Fröhlich singend ging heimwärts Katjuscha, einsam träumt der sonnenhelle Strand.   3.7. 영어[편집]   Apple trees and pear trees were a flower,  River mist was rising all around.  Young Katusha went strolling by the hour  On the steep banks, o'er the rocky ground.  By the river's bank she sang a love song  Of her hero in a distant land.  Of the one she'd dearly loved for so long,  Holding tight his letters in her hand.  Oh, my song, song of a maiden's true love,  To my dear one travel with the sun.  To the one with whom Katusha knew love,  Bring my greetings to him, one by one.  Let him know that I am true and faithful,  Let him hear the love song that I send.  Tell him as he defends our home that grateful,  True Katusha our love will defend.   3.8. 그리스어[편집]   3.9. 투쟁의 의미로의 개사곡[편집] 3.9.1. 이탈리아어(이탈리아)[편집] 이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로 전해져 'Fischia il vento' 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고, 2차 대전 말기 이탈리아가 추축국에서 이탈한 뒤 독일과 무솔리니 괴뢰정부에 맞서 싸운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그 뒤 이 노래는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 좌익 쪽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영화 'Buongiorno, Notte(영어 번역명 : Goodmorining night)' 에서도 이 노래가 등장한 바 있다. 원곡의 서정적인 가사는 약에 쓰래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투쟁가로 변한 이유는,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이 노래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의 상황에 맞게 가사가 붙여졌기 때문이다. 이 파르티잔들은 독일에 의해 옹립된 무솔리니의 괴뢰 정부에 항거해 연합군 편에 서서 싸웠다. 가사에서 말하는 '파시스트 반역자'란 무솔리니를 가리키는 것. 또한 이탈리아어의 가사는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이것은 파르티잔들 사이에 구전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가사 번역은 영어 중역 및 일부 이탈리아어 사전 참조. 절 이탈리아어 한국어 번역 1 Fischia il vento urla la bufera scarpe rotte e pur bisogna andar a conquistare la rossa primavera dove sorge il sol dell'avvenir.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우리의 신발은 찢어졌지만 가야만 한다. 붉은 봄을 정복하기 위해 미래의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2 Ogni contrada è patria del ribelle ogni donna a lui dona un sospir nella notte lo guidano le stelle forte il cuore e il braccio nel colpir 모든 거리는 반역자의 고향. 모든 여인은 그에게 한숨짓고 별들은 밤중에 그를 인도한다, 강한 마음과 팔로 공격하기 위해. 3 Se ci coglie la crudele morte dura vendetta verrà dal partigian ormai sicura è già la dura sorte del fascista vile traditor. 잔혹한 죽음이 우리를 덮쳐온다면 파르티잔의 복수는 혹독해지리. 비열한 파시스트 반역자의 가혹한 운명은 명백하다. 4 Cessa il vento, calma è la bufera torna a casa il fiero partigian sventolando la rossa sua bandiera vittoriosi e alfin liberi siam. 바람이 멈추고 눈보라가 멎으면 자랑스러운 파르티잔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의 붉은 깃발을 바람에 나부끼며 승리한 우리는 마침내 자유로워지리.   3.9.2. 터키어[편집] 2013 터키 시위당시 시위대가 가사를 개사해 부른 노래로 민중가요적인 분위기의 가사를 갖고 있다. 절 터키어 한국어 번역 1 Çocukların çiçek açtığı gün Asıl işte o gün geldi bahar Sanki bir özlemdi, bir düş, bir umut O yüzden bu kadar korkusuzdular 아이들의 꽃이 피던 날 참으로 여기 봄이 왔었지 마치 그리움 같았지, 하나의 꿈, 하나의 희망 그 때문에 이토록 겁이 없었던 거지 2 Düşen kıvılcım ateşledi Sabahın beşinde yürekleri Hep bir ağızdan haykırdılar Diren Diren Diren Diren 떨어지는 벼락이 불을 질렀네 오전 다섯시에 마음들이 모두 하나의 입으로 소리질렀네 저항하라 저항하라 저항하라 저항하라 3 Sel olup akan gözyaşlarımız Ne gazınızdan ne de copunuzdan Kardeşti, yoldaştı,herkes tek vücut O yüzden bu kadar çok korktular 급류 되어 흐르는 우리의 눈물들은 당신들의 어떤 가스든 어떤 몽둥이든 그는 형제였네, 그는 동지였네, 모두가 한 몸 그 때문에 이토록 겁에 질렸던 거지 4 İnsiyatifler lidersizdi Bu tam da bir sivil direnişti Tek bir çığlıktı tüm barikatlar Diren Diren Diren Diren 진취적인 지도자가 없었네 바로 이 때문에 시민들이 저항했지 하나 되어 나아갔네 온 바리케이트로 저항하라 저항하라 저항하라 저항하라   4. 기타 여러가지 음원들[편집] 러시아 & 한국어 버전. 댄스 리믹스 버전. 러시아의 여성가수 바르바라가 승리의 날 기념행사에 선보인 공연. 러시아 남성 밴드 Челси(첼시로 발음됨)가 2008년 승리의 날 기념행사에 선보인 공연. 멤버들 모두 모든 부착물이 없는 2차대전당시 소련군 군복만 입고 등장하였다. 뒤에 백댄서들은 약모라도 썼지만 멤버들은 모자를 쓰지 않았다. 붉은군대 합창단[7]과 레닌그라드 카우보이즈의 합동공연. 1993년에 녹화된 영상이다. 크라잉넛도 연주했다. 미니 콘서트의 인트로로 쓰였기 때문에 가사는 개사한 걸 사용. MBC 뉴스에서 승리의 날 퍼레이드 뉴스를 내보내며 소비에트 마치와 함께 틀어준 바 있다(...) 그것도 무려 걸스 앤 판처 버전 음원으로(...) 숙명여대 가야금 합주단에서도 가야금으로 연주했다.1:20 부터 이외 여동생이 만든 괴로운 RPG의 시리즈 중 하나인 로리타 공주에도 사용된 적이 있다.유리 가가린이 죽지 않고 달을 개조해서 지구와 맞짱뜬다는 황당한 설정탓에 전투음악으로 사용되었다.   [1] 참고로 작곡가 마트베이 블란테르는 전쟁 전부터 소련 내에서 유명한 작곡가로 카츄샤 이외에도 대조국전쟁 기간 동안 유명한 다른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렇기 때문에 소련군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서 점령한 베를린에서 친분이 생긴 바실리 추이코프 장군이랑 노닥거리다가 한스 크렙스가 교섭을 하러 갑자기 오자 옷장에 감금당하기도 한다.[2] 각 절마다 끝의 두 소절이 두 번 반복된다.[3] 이 발음이 어려운 건지 '빠쁴일리' 라고 발음한다.[4] 역행 유성음화 때문에 쓰볘례죳이 아닌 즈볘례죳이다.[5] 卡는 그 유명한 '카드 카' 자이다![6] 혹시 오해가 있을까 덧붙여두면, 중국이 카드라는 단어를 새로 표기하자고 한자를 새로 만든 건 아니다. 卡자가 '카드 카' 자가 된 것은 원래 있던 한자를 음차한 결과일 뿐이며, '카드' 외에도 '카(car)', '칼로리' 등의 단어를 쓸 때에도 이 글자를 쓴다.[7]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로 추정
212    "카츄샤"는 떠나갔어도 "카츄샤"의 노래는 오늘도 불린다... 댓글:  조회:4869  추천:0  2017-02-09
  카츄사의 노래 / 송민도 노래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가신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잊어 얼어붙은 마음속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오실 날을 기다리는 가엾어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진정으로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내드린 첫사랑 맺은 열매 익기 전에 떠났네 내가 지은 죄이기에 끌려가고 끌려가도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보고파라 카츄샤 찬바람은 내 가슴에 흰눈은 쌓이는데 이별의 슬픔 안고 카츄샤는 떠나간다               송민도가 원곡이고 훗날 이미자도 불렀으며 김부자도 불렀다   러시아의 대표적 민요 가운데 하나인 는 톨스토이의 소설 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인 미하일 이사코프스키가 의 카츄샤를 모티브로 시를 지었는데,  1938년에 모스크바  고리키 극장의 작곡가 마트베이 이사코비치 블란테르가 이 시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장으로 나가는 애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이 곡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소련군 병사들 사이에서 많이 불렸다고 한다.   결국 이 노래는 번안가요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을 각색한 . 사랑의 아픔을 안고 떠나가는 카추샤, '카추샤 애처롭다 이별하기 서러워'... 2년 전 일본에서 먼저 발표된 뒤 번안곡으로 들어온 , 바로 한국 대중가요 최초의 작품이었다. 군용 "카츄샤"란 이름은 군가 겸 민요인 '카츄사'에서 유래됨. (BM-13 32연장, 탑제트럭형 카츄샤 ZiL-157) (BM-31) (BM-8 T-60탑제형 카츄샤,) [출처] 스탈린의오르간!!!카츄사!!!|작성자 LT 38    
211    시의 형태는 시가 담겨지는 그릇과 같다... 댓글:  조회:3154  추천:0  2017-02-09
5-4-2. 행(行)과 연(聯)의 구분 시 쓰기에 있어서 행과 연은 작품의 형태를 결정 지워 줍니다. 시의 형태는 시가 담겨지는 그릇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과 연을 잘 구분하는 것은 그 시의 내용과 뜻이 한결 돋보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의 행은 운율이나 의미 그리고 이미지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분류에 따르면 시의 행은 리듬의 한 단락이거나 의미의 한 단락 또는 이미지의 한 단락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현대시는 아예 연의 구분이 없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해서 행이나 연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어서 유의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의 구성에 있어서 낱말(單語), 어절(語節), 구(句), 절(節), 문(文), 문장(文章) 등도 자세하게 고려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시 쓰기에 있어서는 이보다도 행을 어떻게 끊고 몇 행을 모아서 한 연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또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잠간 우리 문법에 명시된 문장(文章)의 구성단위를 알아보고 넘어 가도록 합니다. “인생은 결코 달콤한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면 ‘인’ ‘생’ ‘은’ 등의 글자수를 음절이라고 하며 ‘인생’ ‘은’ ‘결코’와 같이 하나의 독립성을 가지고 문장을 이루는 지접적인 자료가 되는 생각의 단위 곧 품사(品詞)의 수를 단어라고 하며 ‘인생은’ 결코‘ ’달콤한‘ 등 한 문장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글월의 한 토막(띄어쓰기의 단위)이 어절이며 ’인생은 결코 달콤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행이 끝나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문(文)이라고 합니다. 이 문(文)이 몇 개가 모여서 비로소 한 문장이 되는 것이니 참고로 하기 바랍니다. 시의 행과 연 구분의 중요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설명하기로 합니다. ① 리듬의 한 단락 ② 의미의 한 단락 ③ 이미지의 한 단락 ④ 강조의 한 단락 현대시에서는 리듬의 한 단락으로 한 행을 이루는 예는 극히 드물기는 합니다만 시의 구조에서 이미 익힌 바 있는 호흡에 해당하는 요소입니다. 김안서, 김소월 시인 등이 우리 민요가락에 기대어 쓴 시에서 간혹 발견되고 김영랑 시인의 4행시나 정지용 시인의 일부 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대시와는 달리 한시(漢詩)와 시조에서는 이 리듬(律格)으로 한 단락을 구성하는 것은 엄격하면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듬의 규칙을 지켜야 할 정형시(定型詩)에서의 시행(詩行)은 한 편의 시 전체를 구성하는 형식의 ‘운율의 한 단락’으로 보아 왔던 것입니다. 한시에는 5언 절구(五言絶句)나 7언 절구(七言絶句)의 형식으로 한 행의 글자수와 한 편의 시 전체가 가지는 행수를 규정하고 있어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러면 한시의 두 가지 유형을 참고로 소개하면 리듬의 한 단락에 대한 이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1) 萬事階有定(만사계유정-세상 만사 모든 것이 정해진 바 있는데)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헛되고도 들뜬 인생 분주하게 헤메네) (2)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읍이름이 개성인데 어찌하여 문을 닫느뇨)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신이름은 송악인데 어찌하여 나무가 없다 하뇨)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해 저문데 손님을 쫓는 것은 사람의 인사가 아니라)      禮儀東方自獨秦(예의동방자독진-동방예의지국에서 당신은 진시황보다 더하다)                                               -- 심삿갓의 [축객시(逐客詩)] 한편 시조는 3장, 곧 3행 또는 6행으로 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를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각각 행을 이루어 정형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 김상옥 시인의 시조 [어머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닌 밤중에 홀연히 마음 어리어져 잠든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 본다 깨시면 나를 어쩌나 손 아프게 여기실꼬. 이러하듯이 정형시의 행 구분은 정해진 틀에 맞추어 넣거나 기계적인 구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 구분이 미묘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정형시의 고정된 틀에 변화를 일으켜 시의 생기를 돋울 수 있고 같은 내용인데도 공감을 배가시킬 수도 있게 됩니다. 다음은 김소월 시인의 [가는 길]을 읽어 봅시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렇게 제1연과 제2연을 가름하지 않고 붙여서 바꾸어 놓았더니 어쩐지 시를 완전히 죽여버린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이별에 대한 미묘한 모순 감정이나 갈등의 느낌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한 행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 것을 3행으로 끊어서 한 연으로 구성하여 우리의 감정을 다음의 원문과 같이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 얼마나 고조된 리듬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였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립다’에서 일단의 리듬이 끊어져서 감정이 절절하게 무르녹은  ‘그리움’을 알 수 있고 ‘말을 할까’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런 이사를 드러내려는 충동과 차마 그런 말을 하디 못하는 심정과의 갈등이 뒤엉키고 ‘하니 그리워’에서는 리듬의 한 단위가 이루어지면 복받치는 그리움으로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심정과 갈등이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       되새 떼를 생각한다 ―류시화(1958∼ )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을 신으로 모신 유목민들을 생각한다 별들이 길을 잃을까 봐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을 생각한다 수백 년 걸려 불과 얼음을 거쳐 온 치료의 돌을 생각한다 터질 듯한 부레로 거대한 고독과 싸우는 심해어를 생각한다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과 히말라야골짜기돌에차이는나귀의발굽소리를생각한다 생이 계속되는 동안은 눈을 맞을 어린 꽃나무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청보리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 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을 생각한다 새의 폐 속에 들어갔던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를 생각한다 가슴에 줄무늬 긋고서 기다림의 자세 고쳐 앉는 말똥가리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둥근 테두리가 마모되는 동전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북극은 눈이 멀 듯 하얗게 얼음과 눈으로 덮인 땅, 하늘 끝까지 혹독하게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 무기질의 세계를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이란다.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체들에게 살벌하게 위협적인 그 동토(凍土)의 바람에도 사실 암컷과 수컷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무한 바람을 낳겠지. 류시화 시를 읽다 보면, 자연은 그 자체가 시인 것 같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 시인의 이 날렵한, 상상력이라는 낚싯대!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엄청 고독할 테다. 거꾸로 엄청 고독하면 제가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테다. 큰 실패를 겪을 때, 제 인생이 어디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어서 헤어날 바를 모를 때, 마음의 독을 풀어주는 시다. 몸에 좋으면서 맛도 좋은 즙액 같은 시. 이 시가 실린 류시화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은 그런 시편들이 만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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