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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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연해지역 단체들과 동북집거지역의 상생발전에 관한 사고 댓글:  조회:626  추천:0  2021-08-03
[정음문화칼럼] 중국공산당 창건100주년 기념 축하행사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전세계를 향하여 중국이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주의현대화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력사단계에 들어섰다고 장엄히 선포하였다. 지난 40여년간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고 경제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경제가 락후한 대국으로부터 일약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새로운 발전단계란 이러한 발전을 기초로 더욱 높은 수준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면서 대외여건이 급격히 변화되고 국내의 발전 수요와 목표도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추어 최근에는 새로운 발전 리념과 구도의 확립이 정책적 화두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것을 관철하는 것이 큰 목표로 되고 있다. 물론 많은 내용을 포괄하고 있겠지만 필자는 전면적 발전, 국내 경제잠재력 확충, 고품질발전, 공동부유, 향촌진흥, 자연생태보호 등과 같은 것들이 핵심키워드로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족은 어떻게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새로운 발전단계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가? 지난 40여년간 전반적인 국가의 발전과 더불어 조선족사회도 천지개벽의 변화를 겪어왔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는 급격한 도시화이다.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조선족은 인구의 70% 이상이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에 들어서면서 실제 도시화률이 80%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변화되였다. 20여년 동안에 세계 선진국 수준의 도시화률에 도달한 것이다. 둘째는 인구분포구조의 변화이다. 개혁개방 초기만 해도 조선족의 97% 가량 인구가 동북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조선족은 국내의 모든 대도시는 물론 국외의 서울, 도꾜 심지어는 뉴욕과 런던에서까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기업인과 경영자집단의 형성이다. 도시화과정에서 대외경제교류를 적극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조선족은 한국, 일본 등 국가와의 경제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많은 창업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었다. 현재 국내외의 많은 도시와 지역들에 조선족기업가협회들이 조직되여있어 경제발전과 지역민족사회의 주추돌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는 방대한 수의 지식인집단의 형성이다. 개혁개방후 고등교육의 빠른 발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진학의 꿈을 이룬 동시에 해외 류학의 문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류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로 하여 오늘날에는 조선족교수가 없는 대학이 없을 정도로 많은 대학과 연구기관들에 조선족지식인들이 포진되여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조사통계에 의하면 조선족은 만명당 대학졸업생수가 가장 많은 민족중의 하나이다. 다섯째는 자발적으로 결성된 민간단체들과 모임들이 점차 마을들을 대신하여 조선족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기존 조선족사회의 기반은 동북지역에 산재한 마을들이였다. 그러나 현재는 마을들이 인구류동으로 위축된 반면 각 도시들에서 민간단체들이 많이 조직되여있어 민족사회의 새로운 기반으로 되고 있다. 이와 같이 개학개방후의 40여년간에 조선족은 력사상 류례없는 큰 도약을 이루었다. 물론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도 나타났다. 앞으로 발전단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하여 전면적이고 고품질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목표로 될 것이다. 발전과정에서 생성된 주요한 문제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동북 기존 집거지역의 사회경제가 크게 위축되였다. 인구이동으로 마을들이 급격한 쇠락을 겪은 것은 물론 교육, 언론, 출판, 예술 등 기구들이 인구감소로 운영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였다. 현재는 이러한 변화들에 적응되여 여러모로 새로운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근본적으로 극복된 것은 아니다. 둘째는 기업들과 경영업체들이 성장되여왔지만 그 대부분이 규모가 령세하고 국내 시장에 든든히 발을 붙이지 못하였다. 조선족들의 창업경제는 기본적으로 외향적 경제발전에 의존한 것으로, 많은 창업자들이 외자경제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창업기회를 얻었으며, 따라서 주요 경영업무가 무역 혹은 외자기업의 공급사슬에 편입되는 것이였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의 환경의 변화로 이러한 발전방식이 큰 한계에 부딪치고 있으며, 반면 중국이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부상하면서 국내시장개척과 잠재력 발굴이 큰 과제로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정부에서도 최근 국내 대순환을 위주로 하고 국내국외가 상호추진하는 ‘쌍순환’의 발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조선족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부응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셋째는 해외에 귀국과 귀향을 필요한 수만명의 로무자집단이 형성되여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조선족은 해외로무시장을 적극 개척함으로써 방대한 해외로무자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들의 피땀이 오늘날 조선족사회발전의 밑거름이 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이 집단이 국외에서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수년후 로후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현지와 도시에 정착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단순로무종사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수 사람들이 귀향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향촌진흥은 외부에 진출한 사람들에게 로후생활의 터전을 지켜주는 중요 사안으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넷째는 방대한 수의 지식인집단이 형성되여있지만 사회봉사와 복무의 역할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고품질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정부에서도 당원들과 지식인들이 기층에 심입하여 봉사를 강화할 것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조선족사회를 볼 때 현재 지식인들의 봉사기능이 아직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변혁을 적극 추동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전면적이고 고품질의 발전을 저애하는 요인들이다. 앞으로 30여년간에 조선족사회는 이러한 불균형의 문제를 적극 해소하여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과 보폭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필자는 연해지역단체들과 기업들이 동북집거지역의 마을, 기관들과 적극적으로 상생발전을 위한 교류, 협력을 펼칠 것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한 기업+한 마을”, “한 단체+한 학교”식의 자매결연이나 협력방식들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는 작년부터 룡정시삼합진정부와 교류협력관계를 맺고 향촌진흥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연해지역의 기업들과 단체들은 일정한 자본과 정보, 인재 자원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원경쟁으로 이미 포화된 연해도시들에서는 이민자집단으로 더욱 큰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동북의 집거지역들은 자본, 정보, 인재 등은 부족하지만 토지와 같은 풍부한 자연적 자원과 정부지지와 같은 제도적 자원 등 연해지역에서 쉽게 확보하기 어려운 자원우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해지역과 집거지역의 교류협력은 량측의 자원우세를 살려 더욱 큰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상생을 위한 협력을 단순히 투자로 리해해서는 안된다. 현재 동북집거지역이 필요한 것은 돈보다 오히려 외부에 진출한 사람들의 관심일 수 있다. 연해지역과 집거지역들이 정보공유, 자원결합, 사회봉사, 상호협력을 둘러싸고 다양한 협력방식들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연해지역의 단체와 기업들이 일부 활동들을 동북집거지역에서 진행한다든지, 집거지역을 위한 사회봉사단을 조직하다든지, 집거지역단체들과 련합하여 공동활동을 진행한다든지, 기업인들의 고향고찰단을 조직한다든지, 연해지역 단체들의 행사들에 집거지역의 단체들을 초청한다든지 등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펼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연해지역 민간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민간단체들이 적극 나서서 집거지역의 정부와 기관, 마을들과 련결을 강화하여 두 지역을 이어줄 수 있는 ‘물도랑’을 만들 필요가 있다. 도랑이 만들어지면 당연히 그 길로 사람과 돈, 상품과 정보가 흐르고, 두 지역의 상생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어제날의 세상이 아니요, 오늘날의 중국도 어제날의 중국이 아니며, 오늘날의 조선족도 어제날의 조선족이 아니다. 세상도, 중국도, 조선족도 모두 변하고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여있다. 새로운 발전단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인민넷 조문판
29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대 댓글:  조회:769  추천:2  2020-09-18
사회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몇 백년이 지나도 별로 변화가 없었던 시대에서 현재는 거의5년 단위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 덕분에 이제 40대 중반인 필자도 행운스럽게도 농경시대, 공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거쳐 현재는 인공지능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짧디 짧은 인생에 인류역사의 모든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모든 사회부문이 똑같은 속도로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부문의 변화는 빠르고 어떤 부문은 변화는 더디어 역사발전의 짐이 되기도 한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교육이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하여 역사발전의 짐으로 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공업화시대에 맞게 설계된 것이다. 획일화된 대량생산에 필요한 노동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표준화된 교재로 학교라는 공장을 통하여 붕어빵 같은 노동자들을 대량 량산한 것이다. 이러한 교육제도는 빠른 시간 내에 교육을 보급시켜 사람들을 우매에서 벗어나게 하고, 과학문화지식들을 생활과 생산에 침투시켜 인류사회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공업화시대는 물론 정보화시대까지 넘어 바야흐르 인공지능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인공지능시대에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여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가령,현재는 대다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계산을 하고 살 필요가 없다. 숫자만 알면 된다. 계산이 필요한 경우 응용프로그램에 숫치만 입력해 넣으면 모든 필요한 계산결과를 빠른 시간 내에 얻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들에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열심히 계산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전혀 쓸모없는 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유형을 바꿔가며 학생들을 시험들게 하고 그것을 중요한 능력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요즘은 인터넷에서 웬만한 지식들을 다 검색하여 쓸 수 있다. 많은 것들은 옛날처럼 달달 외워둘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수시로 검색하여 쓰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케케묵은 교과서를 손을 들고 학생들을 달달 외위게 한다.   이처럼 현실생활에서 전혀 필요없게 된 낡은 지식들을 배우는 데 아까운 청춘시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교실은 점차 교수들이 밥벌이를 위하여 하루하루 연명하는 곳으로, 학생들은 졸업장을 타기 위하여 시간을 떼워야 하는 곳으로 전락되고 있고, 그 후과는 소위 연구생공부까지 했다는 수재들이 취직을 못하여 발을 동동 구르거나, 설사 어렵사리 취직을 했다 하더라도 배운 지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이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현재도 다 이렇게 하고 있다는 이유로 케케묵은 교육현장이 지속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량생산과 일반적인 서비스를 책임지는 시대에서는 인간이 기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생존의 기회를 확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성의 양성을 통하여 차별화되고 특색있는 자기 영역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기계가 자동적으로 대량의 업무를 완성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인간의 기회가 있을리 만무하며, 다른 사람이 쉽게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치열한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 기계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 다른 사람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전문성, 이러한 차별성과 특색있는 기능만이 인공지능시대에 생존을 담보할 수 있고, 인류사회도 이런 방식을 통하여 기계에게 빼앗긴 노동의 기회를 다시 찾아야 한다.그 외 별다른 길이 없다.   이를 위해선 우선 교육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더이상 관성에 젖어 움직이지 말고, 이 시대에 맞는 능력과 기능들을 걸러내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창의성 있는 인재를 양성하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변화에 스스로 눈을 감았다가는 필연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현재 민간교육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전하고, 호반대학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대학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고 있다.   개인들도 마찬가지고 더이상 낙후한 교육방식에 기계적으로 순응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교육을 선택하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학교란 졸업증이라는 종이 한장 외에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종이한장이 값있을 때에는 목을 맬 필요가 있지만, 인플레로 가치가 폭락했을 때 거기에 인생을 거는 것은 마치 쓰레기 주식을 손을 들고 부자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교육의 근본임무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은 총알없는 총과 같다. 그리고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면 그 무슨 형식이든 진정한 교육이다. 인재란 시대요구에 부응하여 자신이 발전할 수 있고 그를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거시적 맥락에서 볼 때, 현재 우리 민족사회에 존재하는 교육담론들은 마치 농경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지난 세기 50년대나 80년대나 현재나 변한 것이 크게 없다. 따라서 민족교육이나 대학진학과 같은 지난 세기 담론에만 갇혀 있지 말고, 인공지능시대 창의성있고 특색있는 인재양성이라는 더욱 근본적인 시각에서 교육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더이상 “학교라는 공간”과 “학창시절이라는 시간”에 국한되어 있지 않는 보다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대교육의 관념을 형성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창의적이고 특색있는 인재양성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틀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실천만이 밝은 미래로 향할 수 있는 탄탄대로를 찾을 수 있다. 아무튼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대임은 틀림없다. 흑룡강신문 연해뉴스 
28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댓글:  조회:1082  추천:0  2020-06-15
박광성(운남민족대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이 돌기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조금 시끄럽다가 금방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지난 40여년간의 고속성장으로 인한 들뜬 분위기에 처해 우리들은 이를 스치는 바람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은 점차 인류의 발전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력사적인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키신져는 심지어 세계력사가 코로나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로 나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렇다면 이번 코로나 역병이 인류에게 울려준 경종은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류의 삶의 기반이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19세기 초에 시작된 산업화로 인류는 지난 200여년간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사람 몇백명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주된 교통수단으로 되였고 수십톤에 달하는 비행체로 우주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바다에는 수십만톤에 달하는 대형선박들이 분주히 오가고 륙지에는 수십메터 높이의 고층아파트들이 숲을 이룬다. 거리에 촘촘히 들어선 상점들에는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만리밖에 있는 물건도 클릭 한번 하면 며칠 내에 집앞에 도착한다. 인류는 이런 상상못할 발전속에서 더욱 거창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는 인류에게 마냥 락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경종을 울려줬다. 우리의 생활기반이 상상밖으로 취약함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야심차던 인류가 미세한 바이러스 공격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2차세계대전 이후로 최대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전혀 개의치도 않았던 바이러스의 공격이 시작되자 우선 놀랍게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가 없음을 발견했다. 방대한 의료산업과 기구, 연구자대오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즉시 효과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화성탐사까지 시작한 인류가 실제로는 사람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를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회한의 력사적 순간이였다.     그러다보니 대응책으로 바이러스를 피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것을 위하여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더욱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사회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접촉이 빈번할 수록 분업과 교환이 활성화되여 발전이 더욱 촉진된다. 이 법칙을 장악한 인류는 그동안 사람들사이의 접촉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많은 기술과 제도들을 발전시켜 왔다. 대표적으로 교통과 통신수단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왔고 서비스산업이 활성화되였으며 지역간 국가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혁들이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세계는 지구촌이라고 불릴 정도로 긴밀히 련결되였고 분공과 분업이 활성화되여 지난 20여년간 인류는 세계화로 불리는 가장 효률적인 경제체계로 력대의 경제호황을 누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예상 밖의 복병이 나타나 세계경제시스템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 결과는 예상 외로 참혹했다. 많은 기업들이 부품수급 차질로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었고 무역이 침체되였으며 서비스업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었다. 세계경제체계라는 시스템이 2-3개월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자 실업이 줄을 잇고 기업들이 부도나기 시작했으며 국가경제들이 휘청거리가 시작하였다.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들에서 의료물품 부족이 일어나 홍역을 치르고 급기야 량식과 의료물품 수출을 금지하는 나라들까지 나타났으며 식량위기론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몇개월 내에 나타난 격세지감의 변화들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워낙 이처럼 취약한 상태였다. 현란한 불빛이 명멸하는 호황은 모래성우에 아슬아슬하게 쌓여져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력사발전의 흐름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지난 수십년간 인류력사를 지배해온 큰 흐름은 단연 세계화였다. 자원배분과 분업이 민족국가라는 틀을 넘어서 세계적 범위내에서 이루어짐으로써 더욱 효률화되였고 시장이 확대되면서 인류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등극하였다. 세계화물결속에서 각종 이동이 권장되고 소비주의문화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류는 그것이 가져다 준 혜택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는 불시로 터지는 재난 앞에서 세계화의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재난의 류입을 막으려고 각 나라들이 서로 빗장을 닫아 걸자 그전에 형성되였던 국제적 분업체계가 흔들렸으며 그로 인해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선진국과 공업국가들조차 의료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 되였다. 이런 와중에 국제시장에서 주요 전략 물자들의 가격이 요동치면서 타국과 국제시장에 단순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존의 력사발전 흐름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으며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이번 코로나사태로 아래와 같은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는 질병과 재난과 같은 위험관리가 사회생활의 주요 의제로 등극할 것이다. 지난 백여년간 인류의 주요 관심사는 경제발전이였다. 그러나 먹고 입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21세기는 안전과 위험관리가 인류의 주요 관심사로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했 듯이 예전에 인류의 소망은 “잘살고 싶다”지만 앞으로는 “안전하고 싶다”로 변할 것이다. 이번 사태가 이러한 인식을 앞당기는 계기로 되였다. 따라서 국가는 물론 모든 조직과 개인에 이르기까지 위험관리가 필수적인 고려사항으로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기존의 국제적 분업체계가 조정되고 새로운 분업체계가 등장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각국이 현존하는 국제분업체계의 위험을 인식하는 계기로 되였다. 따라서 앞으로 위험관리의 차원에서 더욱 안정적인 산업체계를 구축하려고 힘쓸 것이며 이로 하여 기존 체계의 변화가 불기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조치로 국내산업 활성화에 힘쓸 것이고 세계적 범위의 분업보다 위기관리 가능한 국가들간에 새로운 분업체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그동안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발전한 우리 나라와 같은 후발국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며 우리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는 이동보다 정착이 권장되고 많은 조직과 개인들이 류동보다 안정적인 생존환경 구축에 진력할 것이다. 지난 몇십년간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세계적으로 각종 이동이 활성화되였다. 조직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과감히 흐름에 편승하여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인류력사에서 가장 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중국만 보아도 수억명의 국민이 철새처럼 이동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위기국면에서 이동이 얼마나 취약한 삶의 형태인가를 인식하게 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 후 사람들은 류동적인 생활보다 정착에 기초한 안정적인 삶의 형태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인류사회생활에 대한 온라인의 영향력이 더욱 크게 증대되고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량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역설적이게도 온라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되였다. 예전에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을 부득이 온라인을 통하여 처리하게 됨으로써 만나지 않고도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피부로 체험하게 되였다. 따라서 이 후 온라인에 기반한 산업과 서비스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달리 많은 온라인에 많은 업무를 빼앗긴 오프라인 공간은 소수 자본이 집적된 공간을 제외하고는 쇠퇴의 일로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 사태 이후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력사발전은 련속적이지만은 않다. 우연히 터지는 대사건들에 의하여 그 방향과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변곡점에서 새로운 세력이 흥하기도 하고 기존 세력이 쇠퇴하기도 한다. 그만큼 변곡점에서 선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번의 력사적 변곡점 앞에서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소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위험관리 의식이 꼭 있어야 한다. 기존의 성장시대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성장에 쏠려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하는 것을 미덕으로 칭송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고성장시대가 지났으며 불확실성이 수시로 터지는 저성장의 위험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위기관리 의식이 없이 모험적인 방식으로 일관하다가는 언제 쪽박을 찰지 모른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가 앞으로 시대에 맞는 말이다.    둘째는 류동적인 삶보다 뿌리를 깊이 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의 근거지 건설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년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돈을 벌고 살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고 있다. 산업체계도 지역중심으로 재편성될 것이고 생산의 지능화로 이민을 선호하는 지역과 나라들도 줄어들 것이다. 경제의 저성장으로 취업문제가 일상화되면서 이민자들의 처지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든든한 생활기반이 없이 떠도는 이민자는 점점 주변화 될 것이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려 자원을 축적한 집단은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무슨 일을 하던 온라인 공간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오프라인 공간에서 투자를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온라인이 인간 상호 작용의 주요 공간으로 부상하고 많은 활동들이 온라인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온라인 공간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몰락이 불기피하다. 장사를 하든 농사를 하든 연구를 하든 심지어는 잘 놀려고 해도 온라인에 튼튼히 뿌리를 박아야 한다. 그와 달리 주변지역 오프라인 공간의 상업적 가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잘못 투자했다는 가는 랑패를 보기십상일 것이다.     넷째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갈고 닦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경제 침체가 불가피하다. 중국의 대외경제환경도 렬악해질 것이며 고속성장도 유지하는데 상당히 큰 어려움이 존재하게 된다. 경제가 고속성장하는 상승주기에서는 기존의 틀에 안주하면 기회를 놓치지만 하강주기에서는 일단 가지고 있는 것부터 잘 지켜야 한다. 기회가 도처에 널린 시대는 지나가고 내공으로 승부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순발력보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내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력사를 보면 세기 초마다 인류의 발전방향을 개변하는 대사건들이 일어났다. 19세기 초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20세기 초에는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났다. 21세기 초에 일어난 코로나사태 역시 인류발전방향에 영향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새로운 력사적 변곡점에서 우리 모두가 난국을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고 력사적 승자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출처:《중국민족》조선문판  글/박광성  편집/리호남  조판/ 한동준)  
[고국이 부끄럽다!] 조선족을 도구화하는 한국정쟁,그만하라!                                 박광성         한국역사를 보면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조정의 대신들이 여러 당파로 나뉘어 권력쟁탈을 위한 정치싸움에 골몰하다가 결국 나라를 빼앗기는 비운을 맞았다. 외적을 앞에 두고 내부 떡 싸움을 하다가 다 같이 망한 셈이다.    일제에 나라를 뺏았기고 타국에 와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그 고질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하루멀다 하게 새로운 당파가 생기고 서로 헤게모니 싸움만 하다가 결국 결국 대국들에 의하여 광복되었으며 나라가 분열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렇듯 역사를 보면 당쟁과 내부분열은 한국의 망국의 병페였다.    오늘날의 한국은 반드시 이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얼굴을 자주 비춰보고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그러한 망령이 또다시 얼른거린다. 세계사적인 또 한번의 거대한 전환이 시작되고 그것이 한반도에 여러모로 큰 도전을 가져다 주고 있는 오늘날의 중요한 역사시기에  온 국민이 좌, 우로 나뉘어 다수 국민에게 별로 실익도 없는 논쟁에 젖먹던 힘까지 빼고 있다.    이번 코로나 19사태만 봐도 그렇다. 집안에 불이 붙었으니 원인을 막론하고 일단 불부터 꺼야 한다. 그러나 국민을 이끌고 불끄는 일에 집중해야 할 정치권이 그보다 정치싸움에 더 골몰하는 듯하다. 그것도 엉뚱하게 이 마당에 친미와 친중의 논쟁으로까지 번져 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 하다. 아전투구의 싸움이 되다보니 급기야 어느 극우 사이트를 통하여 “조선족들이 한국의 모든 여론을 조작”한다는 어느 가짜 조선족의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언론에서 이를 “차이나 게이트, 조선족 게이트”란 이름을 부쳐 대서특필하는 상황까지 번졌다. 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어 결국 청와대까지 나서서 국가별 인터넷 접속 숫치까지 밝혀가며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사이트에 올린 소위 조선족의 양심선언을 보면, 문맥이나 표현방식, 사고에 있어 분명히 어느 정치에 열중하는 한국인에 위하여 조작된 것이다. 현재 도시화로 세계 각국에 유동 중인 조선족이 무슨 정신으로 한국여론을 좌지우지 하며, 무슨 동기로 그렇게 한국정치에 열중하겠는가?    매일 세계 선진국타령을 하면서 다른 나라의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고국에서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재외동포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조선족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인 인식은 “계급편견”에서 유래한 일면이 많았다. 돈 벌려고 온 노동자들이니 그 설음을 참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그 양상이 변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미중간에 마찰이 늘면서 한국 내에서 줄타기 고민이 시작되었고,그것이 이데올로기 영역까지 확대되면서 보수집단이 친미경향이 더욱 강화되고, 이를 위하여 중국을 견제하기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성하면서 조선족을 그 희생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자연발생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이용되는 일면이 있다.        고국에 희망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들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면 꼭 자신이 당한다. 어느 나라에 자기의 명운을 걸기보다 인류공동체에 스스로만이 공헌할 수 있는 독자적인 존재로서 모든 인류가 소망하는 평등과 평화의 공동번영의 길로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세계 10위권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나라답게 이주역사가 100여년 넘는 해외동포사회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글을 마치면서 품격 없는 정치에 의하여 고국이 다시 풍파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26    [두만강칼럼]협동, 조직화와 조선족사회의 미래 댓글:  조회:1731  추천:0  2019-06-27
박광성   운남에 와서 살다 보니 자연히 동남아에 관한 소식들을 많이 듣게 된다. 그런중 궁금한 것이 자연환경이나 자원 면에서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에 비하여 훨씬 월등한 동남아국가들이 왜 그들에 비하여 현저히 락후한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라오스, 캄보쟈, 먄마 등 나라들에 자주 드나드는 한 동료에게 물었더니 하는 대답이 이런 나라들은 국가가 약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기업과 같은 조직도 활성화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연발생적인 개체생업 상태에 처하여있다는 것이다. 협동을 통하여 조직화되지 못하니 규모가 큰 사업들을 벌릴 수 없고 그러한 사업들이 이루어지지 못하니 자연히 사회가 락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불현듯 머리 속에 17세기의 세계 패권국가 화란이 떠오른다. 17세기초까지만 하여도 화란은 에스빠냐의 지배를 받는 자그마한 속국이였다. 그런데 이 자그마한 속국이 당시 최강 국가 에스뺘냐의 견제를 물리치고 점차 세계해양무역을 지배하는 ‘해상의 마차부’로 되여 세계적 패권국가로 등극하게 된다. 당시 만척을 넘는 화란 상선들이 5대주 4대양을 누볐으며, 뉴욕과 같은 대도시의 초석도 그들이 닦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을가? 그 비결은 바로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주식회사, 주식시장, 은행과 같은 현대적인 조직과 금융제도들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직들은 어떠한 기능을 했을가?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손에 널려있는 돈을 결집하여 거대 자본으로 만드는 것이였다. 화란은 이러한 제도적 혁신을 하였기 때문에 사회의 분산된 힘을 결집하여 거대 자본을 만들 수 있었고, 그러한 자본의 힘으로 해양무역에 적극 나섬으로써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화란이 발명한 이러한 제도들이 세계에 널리 퍼져 근대 이후 인류력사의 거대한 변혁을 이끌어왔다. 가히 주식제도가 이루어낸 자본의 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세계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의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국가나 민족을 막론하고 발전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그 집단이 얼마나 효률적으로 힘을 결집해내는가에 달려있다. 아무리 국토가 넓고 자연자원이 풍부하더라도 힘을 결집해내지 못하면 락후할 수 밖에 없고, 아무리 국토가 작고 환경이 렬악하더라도 힘만 결집해내면 못해낼 일이 없다. 이러한 력사적 법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바 한 국가나 민족의 밝은 미래는 결국 그 집단이 힘을 얼마나 유효하게 결집해내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조선족에 적용하여본다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있을가? 필자가 보기로는 조선족은 아직 현대경제의 입구에 도착하지도 못했다. 우선 아직도 고군분투다. 자본투자와 주식제와 같은 현대적인 경제방식이 아직 조선족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간 운이 좋아 촌에서 대도시로 버젓이 왔지만 아직은 ‘대도시의 촌민’상태다. 대도시에 살면서도 사고방식은 여전해 현대적인 협동과 조직방식을 익히지 못하고 여전히 ‘정’을 기초로 뭉치고 ‘정’을 나누려고 뭉친다. 그래서 북경에 살면서도 술만 마시면 저가락으로 상을 치면서 노래하고 서울에 살면서도 촌민운동회를 조직한다. ‘정’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정’을 나누다가도 일단 ‘투자’나 ‘합작’과 같은 사업이야기만 나오면 눈치를 슬슬 보면서 피한다는 것이다. 그 옛날 시골에서 별 정 다 나눴지만 곤궁으로 돈만 꽁꽁 숨겨야 했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월에는 돈을 숨기지 말고 같이 모아서 투자하고 돌려야 점점 불어날 수 있다. 은행에 꽁꽁 저금해놓은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만 든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서는 ‘대도시의 촌민’상태에 머물러 있지 말고 ‘대도시의 상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군분투하기보다 ‘투자’와 ‘합작’이라는 의식부터 형성하여야 한다. 경쟁이 날로 치렬해지는 오늘 사회에서 쌈지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반없다. 가령 음식점을 경영한다 해도 객석이 최저 몇십 석은 돼야 전문 훈련을 받은 료리사도 구하고 복무원도 구해 쓸 수 있다. 요즘 누가 집음식과 별반 다름없는 구멍가게에 가서 돈지갑을 열겠는가? 따라서 작은 밑천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애만 태우지 말고 17세기의 화란인들처럼 쌈지돈을 모아서 배를 띄울 수 있는 큰 자본을 만들어야 한다. 술상보다 사업을 토론하는 자리가, 놀음판보다 전시회가 더 많은 조선족사회를 기대해본다. 길림신문 2019.6.26
25    조선족마을,‘립체화된 생활공간’으로 거듭난다 댓글:  조회:1440  추천:0  2018-08-21
오늘은 아침부터 바쁘다. 북경에서 과외축구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고향친구가 애들을 데리고 카나다로 뽈 차러 갔단다. 그런데 이 친구가 아침부터 카나다의 호텔에서 동네 친구들의 위챗그룹에 8월말에 열리는 고향의 시소수민족운동회 협찬을 자신이 맡았으니 고향마을에서 팀을 묶어 참가할 것과 친구들더러 많이 참여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삽시에 위챗그룹이 뜨거워졌다.   북경, 청도, 서울, 심양, 대련 등 각지의 고향친구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어느덧 일부 친구들이 표까지 예매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 때 고향마을에서는 로인들이 운동회에서 출연할 집체무 연습에 땀동이를 쏟고 있었다. 하나의 농촌마을이 인터넷으로 세상과 련결되면서 립체화된 생활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찌 이 뿐이랴! 올해 5월에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농촌집체경제 재산권제도개혁이 있었다. 농촌의 집체재산을 정리하여 촌민들에게 주식을 배분해주는 중요한 개혁이였다. 매개 촌민의 리익과 관계되는 중요 사안으로서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서류 작성이 필요하였다. 허나 촌민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있는 상황에서 이를 어찌해야 할가?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순조로왔다. 마을 인구 절반 이상이 가입해있는 위챗그룹으로 일단 촌장이 정책을 설명하는 음성메시지를 올렸다. 그리고 부연하는 문자설명을 올리고 작성이 필요한 도표들을 전송하였다. 이에 발 맞춰 글이나 읽었다는 식자들이 사안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적극적으로 림할 것을 독려하였다. 급기야 표준화된 서류 작성 양식이 위챗에 전송되였고 촌민들이 많이 진출해있는 서울에서는 지역 책임자까지 생겼다. 위챗에서는 주기적으로 서류를 이미 보낸 사람과 아직 보내지 않은 사람들의 명단이 공개되였다. 그 결과 아득하던 일이 기한내에 순조롭게 완성되였다. 련결이 보여주는 무서운 힘이였다. 이렇게 서로 련결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고향은 살아움직이였고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흔히 마을이라면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를 련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마을은 그렇지 않고 세상으로 퍼져있다. 장소로서의 마을은 사람들에게 정든 고장으로 서로 련결되게 하는 인연과 정감을 제공한다. 사처로 퍼져있는 촌민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현실을 반영하고 핸드폰의 인터넷은 우리가 서로 련결할 수 있도록 기술적 수단을 제공한다. 따라서 오늘날 조선족 마을은 인연의 장소로서의 동네(물리적 공간), 련결망으로서의 동향집단(사회적 공간), 련결해주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가상적 공간)으로 구성된 ‘립체적 마을’이다. 허구한 날 농촌이 해체된다는 둥, 희망이 안 보인다는 둥 넉두리를 할 필요가 없다. 보다 싶이 관건은 ‘련결’이다. 우리가 행사를 가지고 외지에 나가있는 사람들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련결할 때 고향은 살아숨쉬게 된다.   우리가 련결되여야 할 리유는 너무도 많다. 우선 속되게 표현하면 마을에는 우리들의 중대한 리익들이 남아있다. 비옥한 농토와 정부에서 제공되는 각종 정책적 혜택도 호구와 련결되기 때문에 고향을 결코 떠날 수 없다. 사용권이 보장되는 농토, 국가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날로 좋아지는 농민복지, 이걸 포기한다면 스스로 불바다에 뛰여드는 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선 고향을 지켜내야 한다. 외지에 진출한 사람들이 고향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리유이다.   비단 리익 뿐만 아니다. 오늘날의 도시사회는 사람들의 관계가 날로 리익으로 재편되여 인심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돈과 물질로만 살 수는 없다. 정도 사랑도 느껴야 하고 소속감과 안전감도 느껴야 하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재미도 즐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각박한 세상에서 공동체를 지켜야 할 리유이다.   정에 기반한 공동체,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날로 시장화되는 세상과 맞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세상살이 각박해질수록 마을이란 우리에게는 하나의 안식처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공동체이다.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수요하고 있다. 따라서 마을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리유들로 밖에 진출한 사람들과 고향 마을의 상호 작용은 점점 활성화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오늘날의 마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바깥세상과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립체화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또한 이는 국가의 정책적 혜택과 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커져갈수록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새로운 발상으로 ‘립체적 농촌’ 건설에 더욱 매진한다면 류동이 일상으로 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처’를 가질 수 있을뿐더러 우리들 고향 역시 ‘아름다운 향촌’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길림신문/박광성(운남민족대학 특임교수)
24    "고향"을 가진 마지막 세대 댓글:  조회:2222  추천:2  2017-06-07
[정음문화칼럼] 얼마전 고향마을의 위챗그룹(微信群)이 생겼다. 개장한지 며칠 안돼서 150여명의 고향 분들이 그룹에 가입하였다. 120여호에 700명 인구 밖에 되지 않는 동네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집마다 한 사람 이상 가입한 셈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바람에 서로간에 련락이 끊겼지만, 파편화되였던 련락망 퍼즐이 맞추어지면서 가상공간에서 “고향”이 재건되였다.   헤여졌다 다시 만난만큼 그룹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중 가장 많이 오가는 얘기가 “어디서 뭘하느냐?” 하는 것이였다. 옹기종기한 산등성이를 등지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을 마주하고있는 명당자리에 터를 잡았던 한 벽두마을에서 고운정 미운정 다 나누면서 의지하고 살았던 고향 마을의 사람들은 현재는 심양, 대련, 북경, 상해, 청도, 광주, 심천 등 국내 대도시와 한국의 서울, 부산, 대전, 인천,수원 등 족히 몇십개 도시로 퍼져있는것 같았다. 허구한 날 농촌에서 땅만 매며 살것 같았던 고향분들은 현재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장사를 하는 사람, 회사에서 출근하는 사람… 모두가 멀끔하게 변신되여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 아직 엄마 품에서 젖을 먹던 꼬맹이들도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여 “형님”, “삼촌” 하면서 인사를 하여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가상공간에서라도 고향사람들을 다시 만날수 있어 기쁨은 이루다 말할수 없었지만 한편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태여나고 자란 곳이다. 즉 단순한 물리적공간이 아닌 “기억의 공간”, “정서의 공간”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경우는 력사상 이주를 거치면서 혈연공동체가 파괴되여 “마을”이라는 지연공동체가 우리의 삶의 지주(支柱)로 되였다. 한 마을에 모여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면서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려왔다. 따라서 이주를 겪지 않은 집단에 비하여 “마을 공동체의식”이 더 강했다. 하여 우리에겐 “고향”이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요, 친척들이 살고있는 곳이요, 동년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요, 정을 나눌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였다. 그래서 천리타향에서 살면서도 “고향”은 잊혀지지 않았고, 고향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군 했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는 때론 객지에서의 지친 마음을 달랠수 있는 심령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기억속에서 그렇게 따스했던 “고향”이 랭랭한 “가상공간”으로 이동하였다. 그 공간에서 옛정을 찾아보려고 모두들 애쓰고있지만, 그 “온도”는 제대로 전해지는것 같지 않다. 인간이란 일단 얼굴을 맞대야 정이 들수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상공간에서 문자 몇마디로 어떻게 옛정을 회복할수 있겠는가? 그나마 다행히 함께 생활한 공동의 기억이 있기때문에 다시 뭉칠수 있었다. 그렇다면, 마을에서 태여나지 않은 아래 세대의 고향은 어디일가?   영국의 사회학자 바우만은 현대세계는 상대적으로 안정되였던 “고체상태”에서 물같이 부단히 흐르는 “액체상태”로 변화되고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세상에서는 한 곳에서 대대손손 살아오면서 같은 생업에 종사한다는것은 꿈같은 소리다. 따라서 예전과 같이 지연을 기초로 주민들간에 상부상조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로 인하여 지연적 뉴대감과 애착의식이 생겨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한곳에서 장기간 거주하면서 안정적인 사회관계과 애착의식을 형성해나갈수 없으니,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셈이다. 인류사회는 이렇게 바야흐르 “고향”이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있다. 이러한 액체시대에 조선족과 같이 뿌리가 약한 이주민족은 “고향”의식이 더욱 빠르게 와해될수 밖에서 없으며, 그 “기호적의미”마저 상실될 위험이 크다.   “고향”이 없는 세상은 구경 어떠할가? 물리적공간은 모든 사회적관계 형성의 기초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지역에 기초하여 인간공동체도, 지역사회도, 문화도, 민족도, 국가도 형성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지역”과 “인간” 사이의 밀착관계가 와해되면서 “지역”이 공동체를 형성시키는 기능을 상실하고있다. “지역”을 떠난 인간은 구경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해나갈가? 무엇이 “지역”의 빈자리를 메울수 있을가? 즉 무엇을 매개로 인간사이의 뉴대감과 정이 형성되고, 인간이 그것을 나누면서 살수 있을가? 혹은 인간사이의 “유대감”, “정” 같은것이 필요없는 시대가 오게 될가?    소수집단인 조선족은 그간에 지역을 기초로 해서 마을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상부상조하면서 조상이 남겨준 문화를 전승하여왔다. “마을”, “공동체”, “정”, “전통문화”는 우리의 삶의 근간을 이루는 키워드였다. 현재까지는 기성세대가 남아있어 가상공간에서나마 “고향”을 유지해갈수 있지만, 새로 태여나는 세대에게는 들어보지도 못할법한 소리이다. “고향”이 없는 미래세대의 사는 모습은 어떠할가? “지역”을 떠난 “우리민족”을 이어줄만한 끈은 무엇일가?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면서, 위챗그룹에서라도 고향사람들과 떠들수 있는 자신이 “고향”을 갖고있는 마지막 세대임을 행운스럽게 생각하면서도, “고향”이 없이 살아가야 할 딸애를 보느라니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인민넷 2017-5-22
23    조선족재발견2 - 다종 언어 사용자 (박광성) 댓글:  조회:1886  추천:2  2017-03-27
조선족재발견 (2)    다종 언어 사용자   박광성                                        지난 글에서는 조선족의 힘으로 공동체문화를 제시하였다. 거대자본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조선족같은 소수자집단은 개미군단과 같이 힘을 합쳐야 생존할 수 있는 울타리를 확보할 수 있다. 고군분투로는 바위에 계란치기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우세인 공동체문화를 잘 활용하여 똘똘 뭉치자는 취지이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족의 또다른 힘의 원천인 언어능력에 대하여 논의해보려 한다.        사람들은 늘쌍 자기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인지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정작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조선족의 경우만 봐도 언어적 우세가 자신들의 생활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각못할 때가 많다. 가령,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국가의 민족정책에 힘입어 조선족사회는 자치지역과 더불어 문화, 교육, 신문출판 등의 완변한 민족사회체계를 구축하여 왔다. 그 전성기로 볼 수 있는 1980년대 중반의 경우, 동북3성에 조선족소학교가 1,132개소, 중학교가 191개소, 신문이 10여종, 간행물이 20여종, 출판사가 6개소, 방송국 11개소,전문예술단체가 10여개 달했다. 국가에 의하여 설립된 이런 직장들은 우리의 언어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족들에게만 국한된 생업무대였다. 한번 우리말과 글을 업무 수단으로 하여, 국가의 봉록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얼마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민족적 영역이 없다면 이 같은 성취가 가능할가?        1990년대에 들어선 후부터는 언어적 우세가 우리를 더욱 큰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또 한번 힘껏 떠밀어 주었다.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2중, 3중, 심지어 4중언어 능력은 우리를 일시에 세계를 누비는 초국적 집단으로 만들었다. 조선족은 그 언어능력으로 국내 대도시는 물론, 한국으로, 일본으로, 미국 심지어는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조선족의 최고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3중 4중 언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창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의 경우도 부모들만 열려 있다면 기본적으로 3중 언어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말과 글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내와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에 진출한 조선족들도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한인사회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동화된 구소련지역 고려인들에 비하면, 조선족은 얼마나 행운스러운지 모른다.         다중적 언어능력은 먹고사는데에만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그와 못지 않게 다양한 사유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우리의 사유능력을 크게 증폭시킨다. 언어는 사유체계의 반영으로서, 부동한 언어는 서로 다른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조선어는 “밥을 먹었어요?”로 “밥”이라는 주어를 앞에 놓는다. 그러나 한어는 “吃饭了吗?”로 주어보다 행동을 의미하는 “吃”를 앞세운다. 이는 조선족은 “뭔가?”하는 명분을 우선시하는 반면, 한족은 “일단 하고 보는” 행위를 우선시 함을 설명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조선족의 사유체계와 실리를 중시하는 한족들의 사유체계를 한번에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들면, 조선어는 의성의태어가 발달되어 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후, 엄마가 끓여준 뜨끈뜨끈한 밥과 국을 땀을 뚝뚝 흘리면서 먹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종달새가 지종지종 노래부른다.” 이와 같이 의성의태어의 발달로 조선어의 표현은 강도가 세고, 생동하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민족의 풍부한 감성을 엿볼 수 있다. 감성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흥과 신명이 많아 춤,노래와 같은 예술영역에서 우세가 뚜렷하다. 한류가 세상을 판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와 달리, 한어는 논리를 함축해서 큰 의미를 표달해내는 사자성어가 발달되어 있다. 가령, “知行合一” 、“大智若愚”와 같이 네 글자 밖에 안되지만 평생을 두고 깨쳐야 할 큰 도리를 품고 있다. 중국문화의 논리력과 응축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문화는 감성이 발달하지못하여 신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조선어와 중국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의 사유체계에는 우리 문화에 내재한 명분중시와 중국문화가 중시하는 실리적 사유, 우리 문화가 내재한 풍부한 감성과 중국문화에 내재한 엄밀한 논리력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일 어종의 주류집단이 부러워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도시 소수자집단연구에서 큰 업적을 쌓은 미국 사회학 시카코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로버트 파크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경계인”이 가장 훌륭한 사유능력과 시야를 갖추고 있다고 격찬한 바 있다. 물론 더 많은 종류의 언어능력을 갖춘다면 그 사유의 폭은 더 복합적이고 커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조선족이 후세들을 다종 언어의 사용자로 꾸준히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조선족 내에서 세계적인 기업가, 학자와 같은 리더들이 나타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요즘의 세계적 리더들치고 다종 언어 사용자가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종언어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고있는 오늘날이야 말로 조선족의 밝은 미래가 닻을 올리는 셈이다.        다종언어 사용은 또한 조선족을 개방적인 공동체로 만든다. 앞선 글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폐쇄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 중에 다종 언어의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폐쇄적으로 될 수도 없다. 조선족 공동체는 앞으로 다종 언어 사용자들에 의하여, 다양한 문화와의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게 되면서, 각종 선진사상과 문화가 밀려드는 다문화의 복합공간으로 거듭날 것이고, 이 공동체의 그릇만 유지된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풍성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공동체 유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성장하고 있는 후대들에게 정체성의 대들보가 되는 우리의 문화를 전수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족공동체는 아직까지 건재해 있으며, 부모세대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짐에 따라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자신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한점의 흔들림없이 올곶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 유대인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집단”이 “큰 파워”를 가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 길은 오직 자신의 선택과 의지,집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22    조선족재발견1 - 조선족공동체 댓글:  조회:1307  추천:1  2017-03-15
조선족의 문화적 힘의 재발견(1) 박광성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힘차게 들려온다. 작년에는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바둑게임에서 세계바둑계 최고선수를 물리쳐 인류를 전율케 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이 주창한 인간의 이성이 또 한번의 거대한 폭발을 한 것이다.     근세 이 후에 인류의 역사를 합리성의 확장일로로 파악한 20세기초 사회학의 거장 막스 베버는 인류는 결국 도구적 합리성의 무제한적 확장으로 “철의 감옥”에 갇힐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오늘날 바로 그 어두운 전망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 하다. 인류는 네트워크를 통하여 무한히 상호 연결되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심적으로는 점점 고독하기만 하다.         기계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무한히 확장시켜 줄수록, 인간의 행복문제가 인류사적인 관심사로 될 수 밖에 없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물질 결핍의 시대와 고별한 인류는 무엇보다 삶의 의미를 갈망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가?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인간관계는 갈수록 파편화되고 있고, 따뜻한 공동체는 인류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설날에 위챗으로 수백통은 축복메시지를 받았지만, 기쁨은 커냥 쓸쓸하기만 한 것이 오늘날에 우리들이 사는 모습이다. 가상공간에서 오가는 영혼없는 축복보다 오랫만에 만난 친지, 친구의 얼굴이 훨씬 우리를 기쁘게 한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정”, “따뜻한 공동체”, “연대감” 이러한 것들이 진정한 사치품으로 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갈망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가 왜 외국에서 잘 먹혀들가?주위를 살펴보면 한국에 별로 호감이 없는 친구들도 한국 드라마 앞에서는 오금을 못쓴다. 현실생활에서 못느끼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넘치는 대가족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의 이야기에 감흥을 느끼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뜨는 한국 드라마의 경우 거의가 가족과 사랑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로부터 볼 수 있듯이, 생산력이 발전되고, 기술이 인간의 생활을 풍부하고 편리하게 해줄수록, 사람들은 “사랑”과 “온기”를 느낄수 있는 켄텐츠와 상품을 열망한다. 결핍에서 해탈되었으니, “재미있고”, “행복”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과 “삶의 온기”를 전파할 수 있는 집단이 미래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볼 수 있다.         그런데 “정”과 “공동체”를 말할라 치면 우리 조선족을 따라올 집단이 많지 않다. 근세초부터 뿌리 뽑힌 이주생활을 하면서 조선족은 온갖 세파를겪어야 했고, 역설적이게도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情의 문화”와 “공동체 문화”를 꽃피워 왔다.    생활이 하도 어려우니 너와 나를 떠나서 서로 다듬어주고, 같이 아파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수전을 주요 생업으로 하다보니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같이 살 수 밖에 없었고,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기쁨도 슬픔도 배가 되어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혈연가족주의를 초월한 “마을 공동체”가 우리 삶의 주요 방식으로 되었고, 그런 마을공동체에서는 잘났든 못났든 서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었다. 따라서 조선족은 역사적 과정에서 혈연가족주의와 위계적 계층질서를 강조하는 반도 모체문화와 다소 다른 문화적 특징을 형성하여 왔다. 조선족마을공동체에서는 너무 가족 중심적이면 동네 사람들이 질타를 받기 일쑤였고, 좀 있거나 배웠다고 으시대면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혈연가족주의와 위계적 계층질서를 초월한 강건한 “마을공동체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오늘날 조선족은 동네를 떠나서 세계 각지에 퍼져있어도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고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든 국외이든 조선족이 모여있는 곳이면 사람이 많든 적든 각종 협회, 모임이 우후죽순 형성되고, 이러한 협회들은 개인적 영달보다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 한다. 각 도시에 “기업가협회”가 설립되어 민족사회를 엮는 중추역할을 하는가 하면, 유지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발벗고 나서 몇 십개 도시에 “주말우리말학교”를 세워 자녀들에게 민족문화교육을 하고 있다. “여성회”같은 조직도 각지에 설립되어 사랑전달에 앞장서는 가 하면, 각지 “축구팬협회”는 경기마다 다른 팀의 축구장을 연변팀의 홈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연변지역에 홍수가 터지자, 외지에 있는 조선족들이 사처에서 떨쳐나서 모금운동을 하고 지원에 나섰으며, 전국소수민족문예경연 경선 투표가 시작되자 사람마다 선전원이 되여 투표를 독려함으로써 “아리랑꽃”이 1위에 오르기도했다. 세계적인 이동을 하면서도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선족은 실천을 통하여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조선족공동체에는 이처럼 “정”이 있고, “나눔”이 있고, “온기”가 있고, “끈끈함”이 있다. 인간이 날로 파편화되고 고독해지는 오늘날에 있어서 이러한 문화적 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물질이 아닌 “의미”의 소비, “정”의 소비, “온기”의 소비가 미래의 대세로 되고 있다.    조선족이 우리문화속에 잠재되어 있는 “정”과 “온기”라는 “의미의 문화”를 잘 발굴하여, 그것을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켄텐츠(내용), 나아가 가시적인 상품에 접목해간다면 우리는 인류의 파편화와 고독을 막는 역할과 더불어, 행복을 수놓아가는 인류 영혼의 원예사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길에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도 있을 것이다.   
21    연변, 비대칭 유동 바꾸고 교향(僑鄕)으로 거듭나야 댓글:  조회:49700  추천:3  2016-08-15
연변, 비대칭 유동 바꾸고 교향(僑鄕)으로 거듭나야   박광성(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사회학 박사)       유동성은 당대의 사회변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고속도로, 고속철, 항공운수와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이동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에 이르기까지 현재 과학기술은 유동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기에다 시장경제,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제도적 요인들도 가세하여 이를 부추기고 있다. 거대한 망속에서 생산요소들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하면서 사회적 재생산과 재분배가 이루어 지고, 그 와중에서 지역과 지역간,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회적 분화도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한 개인이든 지역이든 흐름을 잘 타야 승승장구 할 수 있고, 흐름에서 소외되면 도태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연변도 나름대로 흐름을 탄 지역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지역주민들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연변은 현재 명실공히 중국 북방의 “교향”(僑鄕) 으로 거듭나고 있다. 연변은 이런 개념을 대담히 써야 한다. 이런 개념을 써야 지역적 특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각인된다. 그리고 또 지역적 정체성이 뚜렷해진다. 만약 지역적 정체성이 “교향”이라면 자연히 그에 알맞는 발전전략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없다면  우세가 무용지물로 되고 만다. “교향”이니 당연히 외부에 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이런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가 연변의 지역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될 것이다.      “흐름”의 각도로 볼 때, 연변은 흘러나가는 것이 많은 반면, 흘러드는 것이 적은 곳이다. 가령, 간단한 예로 지역주민들이 벌어 들이는 돈을 흘러나간 공백을 메우느라 들어온 외지 주민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다 벌어간다. 따라서 흐름은 활발하지만 정작 지역과 주민들에게 남겨지는 것은 얼마 없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연변은 점점 “여위여”갈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런 현실은 이미 연길을 제외한 각 현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촌과 도시가 비어가고 있다. 따라서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꿔가는 것이 연변의 큰 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볼 때, 연변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소문은 여차여차 하나 정작 와보면 할 일이 없다. 먹고 마시는 것을 빼놓면 볼 곳도, 놀 곳도 없다. 특산을 좀 사려 해도 무엇이 특산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여행객들이 일정이 빽빽하게 돌아쳐가며, 쇼핑에 열을 올려야 하는 지역과 비하면  거리가 너무 멀다.      혹자는 조선족문화가 연변의 지역적 특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연변에 조선어 구사하는 사람과 음식 빼놓고 무슨 조선족문화가 있는 가? 찰떡, 김치, 된장 한복 이 정도는 현재 중국의 어느 대도시에서도 다 접할 수 있다. “연변에 조선족 문화가 있는가?”, “연변다움이란 무엇일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연변이 “북경화” 된다면 누가 연변에 오겠는가? “연변다움”을 만들어야 세계 속에 연변이 되고,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꿀 수 있다.      또한 기존 2차산업식의 공업립주로 연변은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중국을 볼 때, 이미 공업은 과잉되어 있다. 이미 있는 것도 줄여야 할 판인데, 후발지역에서 발전할 공간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해지역에서 도태되는 공업을 유치하는 길을 걷는다면,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생태환경의 우세마저 상실하고, 남의 뒤꽁무니만 따르는 격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연변은 기존의 발전모식에서 전전긍긍 하지 말고, 대담한 발상으로 신형 산업에 올인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본다면, 산과 강이 많은 우세를 이용하여 산악 자전거, 암벽등반, 낚시, 산악 탐험, 스키와 같은 레저 산업을 대폭 발전시킬 필요가 있으며, 손님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북지역에서 제일 큰 어린이 놀이공원 같은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국의 소비 트랜드 변화를 볼 때, 레저, 여가 산업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것들이 현재 과밀화로 고생하는 대도시들의 계륵이다. 따라서 연변과 같은 지역이 한발 치고 앞서 나간다면 자연과 깊은 교감을 원하는 대도시 중산층 소비자들을 대량 유치함으로써, 흐름의 비대칭구조를 바꾸어 자본과 사람이 흘러드는 생기 있는 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북방의 “교향”으로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가 정책적으로 인도만 잘 한다면 신형 산업이 연변에서 꽃피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닐 것이다.     *편자주: 본문은 "세계화속의 연변,우린 뭘 해야하나?" 좌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좌담회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와 조글로의 공동주최로 2016.8.14일 연길에서 열렸습니다.
20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를 생각해 본다 댓글:  조회:2073  추천:4  2016-06-13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를 생각해 본다 ​박광성   ◇ 치열한 문화 성찰이 우리를 키운다   우선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문제가 그 파급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자는 논의의 대상을 ‘중국 조선족’에 국한시킨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조선족은 근대 이후에 파란만장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왔다. 험난한 역사과정 속에서 조선족한테는 ‘생존’과 ‘적응’이 늘 주된 과제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도 조선족은 급격한 이동을 거치면서 새로운 환경과 삶에 적응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늘 역동적인 과정에 있다 보니 언제 차분히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문화적 DNA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발양해야 할 문화적 DNA는 어떤 것이고, 극복해야 할 DNA는 또 어떤 것인가?” 등의 자신을 통렬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역사적 과정이 굴곡적이고 역동적일수록 집단무의식 속에 집적된 에너지가 더 크다. 그러나 우리는 늘 눈앞의 생존에 얽매이다 보니 그 속을 한번도 제대로 파헤쳐 보지 못했다. 자신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다 보면 “뿌리가 약한 집단”, “철학과 신념이 빈약한 집단”으로 전락되기 쉽다.   불운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후세들을 지구촌의 당당한 일원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자신에 대한 치열한 문화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적 근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다져야 한다.    ◇ 조선족의 문화는 ‘약자형 문화’이다    문화 연구는 다양한 시각과 층위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집단무의식과 그에 의하여 발현되는 집단적 문화개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약자형 문화’라는 개념은 조선족의 집단무의식과 문화적 개성에 관한 일종 지칭이고 판단이다.   조선족의 ‘약자형 문화’의 특성은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방면에서 쉽게 봐낼 수 있다.   첫째는 논리가 단순하고, 정의감이 강하다. 조선족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 그리고 ‘불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약자의 입장에 맞춰져 있다. 가령,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때리면 불의이고,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깔보면 불의”이다. 따라서 “약한 자와 못 가진 자”의 한계는 따지지 않고, “힘 있는 자와 가진 자”가 무조건 성토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곰곰히 따져보면, 이러한 논리는 너무 단순하다. ‘정의’는 시시비비를 잘 따져 판단해야지 무조건 ‘강자’를 성토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또한 ‘정의’의 기준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따라서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정의관’은 시각적 편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늘 약한 자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다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단순해지게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우리의 문화적 성장을 저애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즉흥적이고 감성적이다. 조선족과 많이 접촉해 본 타민족 인사들은 흔히들 조선족은 “감정 기복이 심하다”고 평가한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화를 내고 또한 쉽게 화가 풀린다는 것이다. 흥이 도도하여 어깨를 들썩거리며 춤을 추다가도 금방 돌아서서 눈물을 짜기도 하며,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친근하다가도 갑자기 수가 틀리면 얼굴을 붉히며 싸움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족이 모이는 곳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른바 ‘군자학’에서는 “마음을 다스려 평온한 심성을 유지”하는 것을 ‘성현’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다. 조선족들의 심성이 즉흥적이고 감성적으로 발달되었다는 것은 삶의 환경이 안정적인 심성을 유지할 만큼 평온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죽했으면 “안녕(安寧)하세요”가 만남의 인사말이 되었을까! 굴곡적인 역사적 과정이 ‘굴곡적인 성격적 기질’을 만든 것이다.   셋째는 성격이 급하고 표현 욕구가 강하다. 학술회의를 다녀보면 조선족 학자들이 많이 모이는 학술회의가 눈이 즐겁다. 남녀를 막론하고 옷차림이 세련되어 패션쇼를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표현 욕구도 강해 자기 주장을 펼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수수한 옷차림에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다 들은 후 느긋하게 발언을 하는 한족 학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표현욕은 약자의 무기이다. ‘강자’는 자기 표현에 급해 할 이유가 별로 없다.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아는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약자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에 표현을 통해 자기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고 관심을 끌어야 하는 것이다. 조선족들이 ‘겉치레’를 좋아한다는 평가도 이러한 ‘표현욕’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약자형 문화’의 배경   조선족의 집단적 기질에서 표현되는 ‘약자형 문화’의 특징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미 하나의 집단 무의식으로 우리 문화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다.   한반도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시종 대국을 옆에 둔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근대 이전에는 중원과 북방의 강한 압력에 시달렸고, 근대 이후에는 동북아시아에 집결된 여러 강대국들의 틈새에 끼어 생존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 한민족은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감을 상무정신의 발전을 통하여 해소하려 하지 않았고 불교와 유교와 같은 평화주의 사상으로 해소하려 했다. 그 결과 늘 시달림을 받는 쪽에 있어야 했고 그 과정에 ‘약자’의 집단무의식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족의 경우는 과경(過境)민족으로서의 불안정성 또한 갖고 있을 뿐더러 한술 더 떠서 피지배계급의 문화를 계승하였으며, 근대 이후 더욱 극심한 존재론적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면서 ‘약자형’ 집단무의식이 더욱 강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약자형 문화’의 특징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약자형 문화’는 양날의 칼이다   조선족의 문화적 특징을 ‘약자형 문화’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약자형 문화’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평화주의 사상,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오늘날 인류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초석으로 되는 것이다.   조선족은 이러한 사상에 체화되어 있어, 곳곳에서 인정과 배려로 남을 대한다. 따라서 어디로 가든 무난하게 적응하며, 사회적 적응 또한 빠르다. 그리고 어떻게 살든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정의롭게 살려고 한다. 조선족의 이러한 모습을 대개 타민족들은 “조선족은 자질이 높다”고 평가한다. ‘약자’로서 지켜온 따뜻한 심성으로 인하여 조선족은 미래 어디로 가든 쉽게 타자와 어울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약자형 문화’에 내재된 감성주의와 표현주의는 오늘날과 같은 서비스사회, 소비사회에 있어 진정 필요한 무형적 자산들이다. 인류사회는 이미 유형(有形)의 하드웨어 소비시대를 넘어, 감성과 미를 중요시하는 무형(無形)의 소프트웨어 소비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돈 있으면 물건을 사는 데 열중했다면, 앞으로는 품위, 디자인, 심미적 체험, 취미생활 등 무형적 소비에 치중하게 된다. 노동력으로서 산업시대의 미덕은 체력과 절약이었다면, 소비시대의 미덕은 감수성과 표현력이다. 무엇을 하든 예쁘고, 품위 있고, 이로 하여 사람들이 감동 받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부한 감수성과 표현력은 앞으로 조선족에게 있어 굉장한 성장적 요인이 될 것이며, 자신 또한 이를 알고, 그 가슴에 묻혀진 기름진 옥토를 부지런히 개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약자형 문화’의 한계 또한 뚜렷하다. 가장 큰 한계는 이른바 ‘정치’에 약한 것이다. ‘정치’를 잘 하려면 냉정해야 되고, 때로는 무자비하기도 해야 하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등에 ‘칼’을 꽂기도 해야 한다. 또한 희노애락이 쉽게 얼굴에 나타나지도 말아야 하고, 쉽게 속을 보여서도 안되며, 섣불리 나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러한 ‘정치’가 필요한 덕목은 ‘약자형 문화’가 가지고 있는 기질과는 가히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약자형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조선족이 정계에서 ‘꽃망울’을 피우기는 어려울 수 있다.     중국의 저명한 사회인류학자 비효통(费孝通)은 만년에 ‘문화자각(文化自覺)’이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그는 문화자각을 “우리의 문화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 왔고, 현재에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로 해석한다. 즉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자신에게 잠재된 에너지를 잘 발굴하여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지자는 것이다.   조선족도 이제는 차분하게 자신을 성찰할 때가 되었다. “수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라는 고민에서 출발하여 잠재된 문화의식을 잘 파헤쳐 현주소를 잘 알고 이를 미래를 위한 기초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19    조선족도 손정의같은 인물을 키울수 있다 댓글:  조회:4612  추천:10  2014-12-04
지난 8월, 장춘시 연화향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조선족발전심포지엄에서 연설하고있는 박광성 부교수. 편집자의 말: 일전, 기자는 중국조선족 지식인 위챗 공동체인 《지행자(知行者, 위챗번호: zhixingzhe512)》에서 우연히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박광성 부교수의 이 문장을 읽고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마음에 박교수에게 련락하여 그의 허락을 받은후 《인터넷길림신문》에 게재하게 되였다. -조선족은 비록 작은 집단이지만 큰 집단에 비해 더욱 큰 안목을 지니고있다 ◇ 조선족, 세계화시대의 《행운아》 지난 9월 19일, 중국의 최대 전자상 거래업체인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시에서 상장함에 따라 총재인 마운은 일거에 중국의 최고부자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이로 하여 또 한사람이 일국의 갑부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인 재일 조선인기업가 손정의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통신회사중 하나인 소프트뱅크의 회장인 손정의는 할아버지대에 한국 대구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에서 민족적차별을 받으면서 자란 그는 일찍 《능력으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못지 않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후 미국류학을 거쳐 1981년에 창업하였으며 현재 일본의 최고부자가 되었다. 손정의는 《인터넷이 국적》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세상을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며 자신을 구속하는 작은 틀에서 벗어나 더욱 큰 세상에서 자신이 클 수 있는 《자양분》과 《기회》를 구하였다. ▲ 일본 최고갑부로 등극한 재일조선인 손정의. 손정의가 일본의 최고부자가 되었듯이 앞으로 조선족중의 아무개가 중국의 최고부자가 될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조선족이 처한 사회현실은 손정의가 성장한 지난 세기 60-70년대의 일본에 비하여 훨씬 좋다.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심각한 민족차별도 없으며 21세기의 전반적 사회환경이 그때에 비하여 훨씬 개선되여 있기때문이다. ▲ 김정수 학생(연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액장학생으로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다.) 특히 현재 조선족은 그 어느 주류집단에 비해서도 세계화정도가 높기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기회》를 잡을수 있다는것이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일하고 조부모님이 고향을 지키고 자녀들이 북경, 서울, 도쿄, 뉴욕에서 공부하고 창업하고 사업하는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소수민족》으로 생각하는것과 달리 조선족은 《세계화시대의 행운아》이다. 우리 자신의 우세를 알고 잘 활용한다면 미래에 조선족 가운데서도 손정의 같은 인물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 시대적 변화와 조선족사회의 분화 우리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세가지로 정리할수 있다. 첫째는 민족구성원 개개인이 도처에서 새로운 삶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인구분포가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다는것이다. 1990년까지만 하여도 97%의 인구가 중국의 동북지방에 집중되여있던 조선족은 최근 국내 30개 성, 직할시, 자치구는 물론, 국외의 5대주 4대양에 퍼져있다. 북경의 조선족 상주인구는 1990년의 7710명에서 2010년의 3만 738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산동성의 조선족 상주인구 역시 3362명에서 6만1556명으로 증가하였다. 한국의 경우, 서울출입국관리소의 최근 정보에 의하면 중국조선족 총인구의 25%, 경제활동 인구의 40%가 한국에서 체류하고있다. ▲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연변타운》 굳이 통계수치를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인구확산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몇년전에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조선족녀성은 아르헨띠나로 출국하기 위해 북경행 렬차에 올랐다고 고백하여 필자를 놀라게 하였다. 한국의 어느 한 교수는 안식년으로 영국에 갔다가 한국류학생을 상대로 밥장사를 하는 조선족들을 만나게 되여 아예 《영국의 조선족》에 관한 론문을 쓰기도 했다. 어찌 이뿐이랴? 이딸리아 류학중의 한 한국류학생은 로마 등지에서 한인을 상대로 하는 민박집들이 주로 조선족들에 의하여 경영된다는 점에 놀라 글을 쓴적이 있으며 로씨야에서 장기간 활동한 한국 시민단체의 한 활동가는 중로 변경지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들이 고려인들에게 무역 및 장사 비법을 전수하고있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 「조선족, 아시아를 연결하려 한다」(2010년 2월 12일) 둘째는 세계적범위의 인구확산과 더불어 조선족은 지역, 교육, 직업, 계층 등 면에서 폭넓고 심도 있는 사회적 분화를 겪고있다. 우리의 습관적 인식속에 조선족은 동질성이 강한 집단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는 굉장히 엄중한 인지적오류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지역적으로 조선족은 세계의 경제수도 뉴욕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시골까지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실제로 필자의 고중동창생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근무하고있다. 또한 직업적으로 보아도 로켓 만드는 사람부터 떡을 만드는 사람까지 별의별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다 있다. 그런가 하면 계층적으로 보아도 성급이상의 고위급간부부터 천만금을 소유한 기업가집단, 사회적관심이 필요한 소외집단까지 다 있다. 그리고 교육수준을 봐도 원사급 인재부터 초등학교 졸업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 CCTV 예능프로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일약 스타반열에 오른 조선족가수 김미아. 셋째는 조선족은 자체의 복합적 다양성으로 인하여 《만갈래의 강이 흘러드는 문화적 바다》로 거듭나고있다. 지역적인 특징을 례로 들어 설명해보면 조선족은 다양한 곳에 진출하여 부동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생활하기때문에 서로 다소 다른 기질을 형성해가고있다. 국내의 경우 청도의 조선족과 북경의 조선족, 동북의 조선족은 서로 다르다. 필자의 관찰로는 청도 조선족의 경우 《활동가적 기질》이 강하고 북경 조선족의 경우 《엘리트적 성향》이 강하며 동북의 경우에는 《관방적인 기질》이 강하다. 국외의 경우, 미국에서 생활하는 조선족의 경우 시야가 넓고 국제적감각이 뛰어나며 일본의 경우, 차분한 반면에 사고가 굉장히 세밀하고 집요한 면이 있으며 한국의 경우, 력동적이고 국내의 경우, 보수적성향이 강하다. ▲ 미국 뉴욕 플러싱지역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꼬치가게(간판을 통해 다문화를 수용하고있는 조선족의 문화적자세를 엿볼수가 있다.) 이러한 서로 다른 기질과 성향은 모두 진출지역의 문화적영향과 밀접히 련관되여있다. 조선족에 대한 타자의 이러한 영향은 지역적영향에만 국한되여있지 않고 《만갈래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직종, 교육, 계층 등의 다양한 도경을 통하여 이루어지고있다. ◇ 다양성과 창의성의 력학관계 현시대는 혁신과 창의성이 그 어느때보다 더 강조되고있다. 왜냐 하면 기존의 지식만을 가지고서는 인류가 현재 직면한 난제를 극복할수 없기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는 혁신과 창의성에 목을 맬수밖에 없다. 중요한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혁신과 창의력의 원천을 다양성과 그 융합, 그리고 재분화에서 찾고 있다는것이다. 즉 인간의 혁신적인 사고는 다양한 사고가 부딪히고 소통하고 융합될때 비로소 효률적으로 생성된다는것이다. 가령, 우리가 매일 같은 음식만 먹는다면 음식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어찌 생길수가 있단말인가? 음식에 대한 상상력도 다양한 음식을 접촉할때 생기는것이다. ◇ 조선족의 우세 문화생성의 견지에서 볼때, 조선족과 같이 다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그것을 융합할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집단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혁신적인 인재가 배출될수 있다. 필자의 경우를 봐도 위챗을 통하여 한국, 일본, 미국에 있는 조선족 지식인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할수가 있어서 관계망이 국내에 국한된 학자들에 비하여 다양한 관점을 접할수가 있다. 이러한 특징은 학생들의 강의평가에서도 반영되는데 《다양한 관점이 소개되고 새로운 내용이 많아 들을수록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 조선족감독 박준희의 공익영화 《사랑의 종소리》 이것이 바로 오늘날 조선족의 우세이다. 가족, 형제, 친구들이 세계 각지에 널려 있고 하는 일들도 다양하니 당연히 듣는 얘기도 많고 그만큼 시야도 넓다. 주류집단이 자기중심주의가 강해 타자에 둔감한데 반하여 조선족과 같은 이민집단은 여러 주류집단 가운데 끼어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있으며 적극적으로 그들로부터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하게 되여있다. 즉 《작은 집단이지만 큰 집단에 비하여 더욱 큰 안목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 카나다에서도 협회를 조직하여 공동체를 구성해가는 조선족들. 세계화시대에는 되려 조선족과 같은 주변부집단이 《다양한 문화적 담지자》로 기능하게 되어 《빛》을 보게 되는것이다. 앞으로도 조선족이 이와 같이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고 융합하는데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하여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바다》로 거듭난다면 손정의와 같은 수많은 혁신적인재가 나올것이다. ◇ 조선족의 독자성과 다원일체의 문화관 세계화시대 조선족사회는 복합적인 사회적, 문화적 분화를 겪고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계속하여 《조선족》이라는 동질성과 독자성을 유지할것인지 말것인지 하는 중차대한 선택을 앞두고있다. 선택하기 나름에 따라 다양성을 포함하면서도 독자성을 지닌 《만갈래의 강을 받아들이는 바다》가 될수도 있으며 아니면 근시안적 안목으로 인하여 스스로 독자성을 포기하고 다른 《바다》에 흘러드는 《개울물》이 될수도 있다. 조선족은 비록 소수집단이지만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날에 있어서는 여느 주류집단에 비해 이동성이 높고 변화에 유연하며 광범위한 폭과 다양성을 확보하고있다. 따라서 조선족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타자의 장점을 수용하고 융합해간다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는 집단으로 될것임이 분명하다. ▲ 서예가 홍금전(洪金田)선생의 작품 《海納百川》 그와 반대로 자신의 우세를 보아내지 못하고 소수집단이라는 렬등감에 휩싸여 《자기가 되기》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흔적없이 지워지는 《개울물》이 될수밖에 없을것이다. 군벌 치하, 일제 치하 등의 참담한 시대에도 추위가 사무치는 중국 동북땅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까지 꿋꿋이 버텨온 조선족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날을 살고있는 조선족 구성원들 역시 정확한 선택을 할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다원일체, 화이부동(多元一體, 和而不同)》의 정확한 문화관으로 후세들을 잘 교육시켜, 《다(多)》를 수용하여 《일체》를 이루고 그것을 적절히 《융합》하여 더욱 큰 《나》가 되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유익한 일일뿐더러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대도(大道)》이기도 할것이다.   ○박광성(朴光星) 프로필: 1973년 흑룡강성 해림시 출생 1997년 연변대학 력사학부 본과 졸업 1999년 상해복단대학 사회학과 연수 2000년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석사 졸업 2003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회학 석사 졸업 2006년 한국 서울대학교 사회학 박사 졸업 2006.9~2007.5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 2007.7~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학-사회학학원 교사, 부교수  
18    자녀교육과 민족정체성 댓글:  조회:4180  추천:4  2014-11-20
       ◇조선족의 문화단절 위기   요즘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우리민족 학부모들에게는 한 가지 큰 고민이 있다. 학부모들은 집거지역에서 성장하여 우리문화에 익숙해 있고 애착이 있지만, 자녀들은 학부모들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면서 민족의 전통과 문화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 이러한 자녀들을 보면서 학부모들은 늘 걱정에 잠기게 된다. 얘가 앞으로 커서 도대체 어떻게 될고말까?   한 교수님이 나에게 해준 얘기이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운동장에서 조선족운동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그 분위기에 들떠있는 자신과 베이징에서 자란 아들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조선족운동회이니 좀 나가 봐라"하는 권고에 아들이 "제가 왜 나가 보아야 하는 데요?"라고 되받아 치더라는 것이다.   이 어찌 남의 일이기만 하겠는가? 냉면을 좋아하는 나는 외식만 하면 냉면집으로 발길이 간다. 어린 딸에게 같이 냉면을 먹자하면 늘 싫다고 하여서, "냉면은 조선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너는 왜 싫어하냐?"했더니, 아예 "저를 한족으로 바꾸어 주면 안돼요?"하고 물어온다. 그래서 다시 "왜?"하고 되물었더니 "한족으로 바꾸면 냉면을 먹을 필요가 없잖아요"하고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즉 이는 우리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완전한 문화단절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난 자식이 나와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물학적 의미에서만 부모와 자식이지, 실제로는 부모자식 간의 "문화적 공동성"이 사라진 것이다. 소위 말하는 "공동의 언어와 정서"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수명이 제한되어 있는 인간 생명체와 달리, 공동의 문화가 한세대 또 한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문화적 단절위기에 있는 조선족을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사회적 지속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 "민족"이 가지는 의미   그럼 한 개인에게 있어서 "민족"이란 구경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생활실제와 결부하여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민족이란 우리 개개인의 "이마에 박힌 딱지이다". 즉 현대사회에 있어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 개인은 반드시 종족 혹은 민족의 신분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것은 현대의 세계체계가 "민족국가" 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국가를 구성하는 핵심원리가 "민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의 단위로 형성된 국가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우리는 같은 집단"(여기에는 "공동의 조상"을 가진 혈연집단이라는 은유까지 포함)이라는 상상력을 탄생시키고, 이를 통하여 타자와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하나의 배타적인 생존단위로 된다.   따라서 "민족"을 구분하는 것은 현대 민족국가에서 반드시 행해지는 것이며, 그 신분에 따라서 매개인의 기회구조가 영향받기도 한다. 즉 "민족신분"은 내가 싫어한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요, 내가 좋아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닌, 본의 아니게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측면이 있다.   둘째는 자신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역사이고 기억이다. 인간은 손오공처럼 돌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어서 누구나 조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들도 몇 대에 지나면 촌수를 가릴 수 없어 남남으로 되고만다. 인류의 번성과정은 이러한 끊임없는 분열에 기초하고 있다. 민족은 바로 이러한 끊임없이 분열되는 집단을 담아내는 "하나의 큰 그릇"으로 볼 수 있다. 민족이론에서 흔히 민족형성을 "종족→종족동맹→지연(地緣)집단→즉자적 민족집단→대자적 민족집단"의 변화과정으로 해석한다.   아무리 족보가 있소, 대물림 보배가 있소 하여도 한 가문의 역사는 그 기억과 기록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경우, 우리는 민족 집단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기록을 통하여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즉 민족을 안다는 것은 정체성의 확립과 연관되어 있다. 강건한 정체성 확립은 험한 세파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신념이고 동력이다.   가령, 다사다난한 민족사를 보면서, 한 개인은 온갖 역경을 뚫고 생존해온 조상들의 강인한 의지에 감명받을 수 있고, 또한 다시는 비운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질 수 도 있다. 이런 것들은 알게 모르게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데 든든한 원동력으로 된다. 오늘날 세계를 주무르는 유대인들의 경우, 자녀에게 꼭 민족역사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실제로 다사다난한 역사에 대한 이해가 그들을 결집시키고 분발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많은 연구가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뿌리 든든한 나무가 큰 나무로 클 수 있"듯이, 인간도 자기의 기원과 역사를 똑똑히 알아야 바르고 꿋꿋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셋째는 민족문화는 일종의 삶의 방식의 창조이다. 민족이란 언어, 문자부터 시작하여 윤리도덕, 사상문화, 제도문화, 물질문화까지 두루 갖춘 집단이다. 완벽한 문화체계는 그 집단이 역사적으로 집적(集积)한 "힘"을 설명한다. 하나의 문화는 하나의 생활방식으로서, 전체 인류의 시각으로 볼 때 일종의 삶의 페러다임이고, 인류 문화지도의 한 획이다. 따라서 이 한 획을 더 잘 그리는 것이 그 집단이 인류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공헌이기도 하다.   인류의 모든 창조는 계발에서 시작된다. 근데 그 계발이 많은 경우 동질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자성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즉 내가 익숙한 것보다 익숙하지 못한 현상과 사물을 접할 때 사유의 폭과 깊이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그 다양성은 하나하나의 문화가 그 존재의 가치를 찾아갈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민족과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해보면, 한 민족성원이 자신의 문화에 기반하여 창조한 "문화적 생산물"이야말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아무리 피자를 세계수준으로 만들어 내더라도 영원히 우리의 공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와 반대로 된장이나 김치, 냉면을 세계인들이 접수할 수 있게 최고로 만든다면 이는 세계의 식문화에 대한 공헌으로 길이길이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우리의 것을 세계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자기의 전통만 고집하지 말고 위에서 말한 계발의 원리처럼 남의 것을 보고 배우고 연구하여 부단히 자신의 것에 접목하여야 한다. 스시(壽司)는 일본의 전통적 음식이지만, 미국에서 다른 민족의 음식문화와 융합되어 새로운 맛으로 태어나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한다.   또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는 타자에 대한 배움도 결국 "나"라는 주체가 확실할 때 가능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선진국의 이론을 배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문제"라는 것이 없을 때, 그 배움은 결국 맹목적인 것이고 큰 의미가 없다. 남의 것을 배워서 "우리의 문제"를 잘 해결할 때, 그것은 역으로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이러한 과정이 인류의 진화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민족"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를 확인하는 과정이고, 확실한 주체의식이야말로 "타(他)"를 수용하고 배울 수 있는 기초라는 것이다.   ◇ 민족학교와 민족문화교육은 구별되어야   "민족"이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보편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를 막론하고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 영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주류집단에게는 당연한 이러한 논리가 조선족과 같이 늘 적응이 우선적인 과제로 되는 이민집단에게는 "별 필요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는 점이다. 빨리 현지에 동화되어 적응되어야지 뭘 "민족"이고 뭐고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류사회로의 동화는 단기적 안목으로 볼 때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큰 손실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가치는 "나"로서 어떠한 차별적 가치가 확보될 때 부각되는 것이지, 다수와 같아 질 때는 그 가치가 급감되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에 대한 학습"과 "민족에 대한 학습"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영어를 배운다고 중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듯이. 많은 가정에서 자녀에게 영어도 배워주고 중국어공부도 시킨다. 진정한 사고력과 창의력은 다양성에 대한 접촉과 비교 분석 속에서 생성된다. 따라서 조선족과 같은 이민집단은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바른 생각만 가지고 있다면 태생적인 우세를 지녔다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민족학교가 없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자녀에게 민족과 전통에 관한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 문제는 "학교가 없으면, 교육이 없는가?"하는 것이다. 학교는 교육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교육 자체가 아니다. 학교와 교육을 동등히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학교가 없어 안된다"식의 논리는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연해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민족의 후대들이 바른 정체성과 주체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들의 정확한 인식과 의지에 달려있다. 학부모들은 "융합과 개성"관계를 변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의미를 잘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을 넓은 주류사회에 "융합"할 수 있으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흑룡강신문 2014-11-19
17    토지확권 잘하여 큰 밑천 잘 지키자 댓글:  조회:3236  추천:2  2014-08-26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집은 가장 큰 재산이고, 집의 재산권을 인정받는 합법적 증서가 바로 “집조”이다. “집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집을 비워두어도, 세를 놓아도 마음을 놀수 있고, 팔거나 살 때에도 합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돈이 필요할 때에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집조”가 없다는 이 모든 것이 다 불안하며, 문제가 생겨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헌데 이 후에는 농민들이 갖고 있는 땅도 개인집의 “집조”처럼 “땅조”를 주어 농민들이 “재산권”을 향수하게끔 한다는 것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업정책의 방향이다. 2014년 1월 19일 중앙에서는 농촌 개혁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고 “농촌개혁을 심화시켜 농업현대화를 가속화할 데 관한 의견”이라는 이 후 농촌개혁의 방향을 결정 짓는 문건을 채택하였다. 문건에서는“농촌토지경영권에 관한 확권, 등기, 증서발급사업을 착실히 진행하여여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토지 외에의 개인주택용지와 집체건설용토지의 확권 사업도 참답게 완성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요구에 따라 각 성에서는 이 후 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이 사업을 완성하여야 한다.      토지확권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며, 농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쉽게 말하면 농민들에게 “집조”와 같이 토지의 사용권을 인정하는 “땅조”를 주어, 토지를 “일정한 기한을 조건부”로 농민들의 합법적인 재산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토지에 대한  재산권을 농민들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그럼 예전과는 어떻게 다른 가? 예전에는 국가에서 토지에 대한 농민들의 “사용권”만 인정했다. 즉 농사를 질 권리만 인정하였지 다른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토지를 양도하거나 매매하는 것은 개인사이의 사사로운 것으로 국가가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지방정부들에서 행정수단으로 농민들의 땅을 저가로 징용해도 법으로 농민들의 이익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도시근교의 많은 농민들이 적은 보상금을 받고 토지를 잃었다. 땅을 담보로 은행의 대출을 받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토지확권, 등기, 증서발급을 거친 후에도 완전히 다르게 됐다. 우선, 토지양도가 합법적으로 진행되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집조”가 없는 집은 팔고 살 수는 있어도 법의 보호는 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소유를 증명하는 합법적 증서도 없는 데, 무엇으로 자기것 임을 증명할 수 있어서 마음대로 사고 팔고 한단 말인가? 땅도 마찬가지다. 자기땅임을 증명할 수 없는 데 서로 주고 받는 들 법적 보호는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토지증”을 발급받은 후에는 다르다. 우선은 합법적인 사용권이 있음을 증명하는 문서가 있기때문에 이런 것들이 합법적인 것으로 되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 토지 양도과정에서 손실을 보거나 유실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농민들이 시름을 놓고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다. 또한 이후에는 지방정부에서도 행정수단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저가로 징용할 수 없게 되었다. 국가에서 인정한 토지에 대한 사용권과 증서가 있기때문에 아무리 정부라해도 반드시 법적절차와 시가에 따라 농민들의 토지를 징용하여야 한다. 이외에도 “토지증”을 맡기고 은행에서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농민에게 있어 땅은 이제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닌 집과 같은 “재산”이 되고 정부가 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정부에서 왜 이와 같은 정책을 펼칠 가? 중국은 현재 빠른 공업화와 도시화과정에 처하여 있다. 따라서 많은 농민들이 땅을 떠나서 도시로 향하고 있다. 땅을 떠난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토지는 반드시 양도되어 다른 사람이 경영하여야 한다. 토지 양도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법적제도가 완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양도과정에서 토지가 유실되는 등 많은 분쟁이 발생하여 사회적 불안요소가 증가되기도 하며, 도시로 진출한 농민들도 토지에 대한 우려감을 떨쳐버릴 수 없어 도시생활에 올인하기도 힘들다. 이외 도시화과정에서 권력, 자본 등에 의하여 농민들의 토지가 저가로 징용되어 토지를 잃은 농민집단이 생겨났다.    토지확권, 등기, 증서발급사업은 바로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고 도시화와 농업현대화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데 있다. 확권과 등기를 거친 “토지증”이 있으니 토지양도가 합법화되고, 이것이 합법화되니 더욱 많은 농민들이 시름을 놓고 땅을 떠날 수 있으며, 증서발급으로 농민들이 토지재산권이 지켜지니 땅을 잃은 농민들이 많아 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사회안정의 기반이 다지게 된다.     이번 토지확권 정책은 특히 조선족농민에게 있어서는 단비와 같은 것이다. 조선족은 조상들의 피땀과 정부의 민족정책 혜택으로 동북평원에서 가장 비옥한 옥토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연 간에는 도시화속도가 너무 빨라 농촌이 공동화되고 고향이 망가져 가는 위험에 직면하여 왔다. 그 과정에 대두된 가장 큰 문제가 땅을 어떻게 지켜가는 가하는 것이였는 데, 정부의 금후 농업개혁정책으로 뒤심이 든든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족농촌과 농민들의 사력을 다하여 이번 토지확권사업을 잘해야 한다.      외국이나 대도시에 가서 돈을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큰 밑천 잘 지켜 뒷길을 만들어 놓는 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 가?요즘에 조선족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돈도 벌고, 땅도 지키자”는 것이다. 힘 있을 때는 힘으로 먹고 살지만 힘없을 때는 밑천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물론 조선족에게 땅은 먹고 사는 문제 외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조선족에게 땅은 뿌리와 같은 존재이다. 농경민족이고 이주민족인 조선족에게 땅은 문화의 뿌리, 생존의 뿌리, 정서의 뿌리, 힘의 뿌리, 희망의 뿌리, 미래의 뿌리이다. 한 사회가 든든하게 발전하려면 뿌리가 든든해야 한다. 뿌리가 건실하지 못한 모든 생물이 희망없듯이 뿌리 없는 인간집단도 희망이 없다. 따라서 이번 토지 확권은 생존을 지키는 거사, 뿌리를 지키는 거업이다.      글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되뇌여 본다, “땅은 우리에게 뿌리와 같은 존재이다.”
“글로벌화”와 “대도시화” 과정 속에서의 중국조선족 민족교육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들어가며 급격한 변화가 일상으로 되어 버린 오늘날에 있어서 교육만큼 중요한 대응수단이 없으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모든 국가나 사회에 있어 핵심적 이슈로 된다. 그 중에서도 주류사회의 소수집단으로 되어 있는 이민집단의 경우 교육은 특히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로, 그 향배에 따라 삶의 방식과 지위가 결정되게 된다. 소수자집단의 교육문제에 있어 핵심적 이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어떻게 평등한 교육권리와 기회를 확보하는 문제이다. 즉 교육에서 어떻게 차별을 해소하고 평등한 발전권을 확보하는 가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에서 어떻게 문화적 발전권을 확보하는 가이다. 즉 교육과정을 통해 어떻게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나가는 가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교육을 소수자집단이 주류사회에 진출하고 사회적 상승이동을 이루는 주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교육을 자신들의 정체성의 지키는 중요한 경로로 인식하고 있다. 즉 발전과 유지라는 다소 상반된 목표 속에서 소수자집단의 교육이념과 선택은 늘 갈등할 수 밖에 없으며,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록 그 갈등은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현재 중국조선족 민족교육이 바로 이 시점에 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함께 소위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의 합법적 소수민족 지위를 획득한 조선족은 각 민족평등 발전권을 보장하는 중국의 민족정책에 힘입어 동북3성의 일부 지역에서 집거지를 형성하고 유아원으로부터 대학으로 이르는 민족교육체계와 신문, 출판 등 민족문화체계를 완성화시켰다. 따라서 대다수 조선족의 경우 1992년의 중한 수교 전까지만 해도 집거지역의 민족사회라는 틀 내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중한수교 나아가서 세계무역조직 가입 등으로 중국이 자본주의 글로벌 경제체제 속에 급속히 편입되면서 조선족의 기존 생활세계는 급속히 허물어져가고, 압축적인 “글로벌화”와 “대도시화”과정을 겪게 된다. 시골사람이 하루 아침에 세계적 대도시 주민으로 변하여 있고, 한 가족이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는 “초국적 가족”으로 거듭 변신하는 과정은 서방 우화에서 나오는 가난한 어부 할머니가 순간에 부자집 마나님으로 변하여 있는 것과 가히 비교될 정도로 폭넓은 것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갈등과 심리적 혼란은 뒤르켐이 일찍 지적했던 “아노미”적 상황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떠오르는 것이 어떤 생활철학과 교육철학을 가지고 미래 세대를 교육하여야 하는 가 하는 것이였다. 지난 20년간 조선족사회는 너무 급속한 변화에 휩싸여 그 변화에 몸을 맡겨야 할 뿐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고민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변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으며, 그 중 자녀세대를 어떤 방식으로 키워야 하는 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인 것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미래새대 교육에 대한 선택이 결국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 남는 가하는 실존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며,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없어서는 안되는 정체성의 정립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족사회는 앞으로 한동안 교육선택을 둘러싼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으로 전망되며, 많은 갈등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문에서는 “글로벌화”와 “대도시화”로 대표되는 조선족사회 격변기에서의 인구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기초로 기존의 민족교육체계가 맞고 있는 변화와 도전에 대하여 조명하며, 조선족교육의 새로운 모델과 진로를 탐색하는 시도에 대하여 조망하고,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혀보려 한다.   중한수교 이후 조선족사회의 “글로벌화”와 “대도시화” 중한수교 이후 조선족사회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하여 우선 중국의 1990년, 2000년과 2010년 인구센서스 자료를 인용하여 조선족 인구의 지역분포 변화상황과  도시와 농촌 인구분포 변화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표1>4、5、6차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조선족의 도시、진、농촌인구비율(%) 연도   1990년     2000년     2010년   지역 도시 진 농촌 도시 진 농촌 도시 진 농촌 조선족 34.59 15.61 49.80 45.86 16.12 38.02 54.58 14.81 30.61 전국 18.68 7.51 73.80 23.55 13.37 63.08 30.29 19.98 49.73   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족의 도시와 진(인구가 2만명이하 소도시)인구비율은 전국 평균에 비하여 월등히 높으며, 2010년의 비율이 1990년에 비하여 19.19% 증가하였다. 즉 도시와 진 인구 비율이 평균 매년 약 1%씩 증가하였다.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은 2010년 진 인구비율이 1990년에 비하여 소폭 하락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증가가 주로 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설명한다. 다음은 조선족인구의 지역분포 변화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   <표2>4、5、6차인구센서스자료에 나타난 조선족인구의 지역분포(%) 지역 1990년 비율 2000년 비율 2010년 비율 길림성 1,183,567 61.54 1,145,688 59.55 1,040,167 56.81 흑룡강성 454,091 23.61 388,458 20.19 327,806 17.90 요녕성 230,719 12.00 241,052 12.53 239,537 13.08 북경시 7,710 0.40 20,369 1.06 37,380 2.04 천진시 1,820 0.09 11,041 0.57 18,247 1.00 상해시 742 0.04 5,120 0.27 22,257 1.22 강소성 963 0.05 5,048 0.26 9,525 0.52 내몽고 22,173 1.15 21,859 1.14 18,464 1.01 광동성 611 0.03 10,463 0.54 17,615 0.96 산동성 3,362 0.17 27,795 1.44 61,556 3.36 기타 17,603 0.91 46,949 2.44 38,375 2.10 전국 1,923,361 100 1,923,842 100 1,830,929 100   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족 총 인구에서 동북3성 조선족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의 97.15%에서 2010년의 87.15%로 9.36% 감소한 반면, 북경, 산동, 천진, 상해, 광동 등 연해지역의 조선족인구는 같은 기간 눈의 띄이게 증가하였다. 또한 길림성과 흑룡강성 조선족인구 감소에 비하여 요녕성 조선족인구 비율은 소폭 증가하였다. 이는 요녕성이 연해지역이라는 점과 심양, 대련 등 경제활력이 있는 대도시가 집중되어 있는 것과 연관된다. 지난 20년간 조선족 인구 지역분포 변화상황을 볼 때, 총체적으로 동북3성의 조선족인구 감소와 연해지역 대도시 인구 증가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인구센서스의 경우 조선족 인구상황의 총체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 뿐 실제적인 상황은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의 인구센서스 발표자료가 상주인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주인구 통계가 실질적으로 호적인구와 주거증을 발급받은 인구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또한 센서스가 국외이동을 조사지표로 설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다. 중국인구센서스 경우 이동인구 통계는 유출지와 유입지 조사결과의 교차비교를 통하여 확정된다. 따라서 국외 이동인구는 교차비교를 통한 확인을 할 수 없고, 따라서 국외 진출인구는 원 호적지 인구에 편입시켜 통계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국외이동은 조선족 이동에서 큰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최근 몇년간 각종 연구결과를 토대로 추정한 조선족의 국외 진출상황은 다음과 같다.   국외진출 조선족 인구상황 국가 진출 인구 진출 시기 목적 한국 45만여명 1990년대 초기 노무,혼인,유학 일본 7~8만명 1990년대 중반기 유학,취직,혼인 북미 7-8만명 1990년대 후기 노무,유학,취직 러시아 2~3만 명 1990년대 초기 상업 기타 1~2만 명 1990년대 중반기 노무,유학,상업 합계(추정) 60~65만 명            조선족의 국외 진출상황은 2009년 필자의 연구팀이 동북지역20개 조선족농촌(길림성 10개, 요녕성5개, 흑룡강성 5개)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표4>동북3성20개조선족농촌 인구이동 조사 상황통계(2009년8월) 분류 호적인구 실거주인구 유출인구 국내이동 국외이동 합계 17245 5890 11355 6603 4752  비율 100 34.15 65.85 38.30 27.77   에서 볼 수 있듯이, 동북3성 조선족농촌의 이동인구는 호적인구의 66%에 달하며, 그 중 국외진출 인구비율도 28%에 달한다. 이는 인구센서스가 기술 상의 한계로 조선족 인구의 이동상황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못함을 설명한다. 이는 최근에 진행된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정신철연구팀의 현지조사 보고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그들의 조사에 의하면 2013년 11월 현재, 흑룡강성 230개 조선족마을의 호적인구186,471명 가운데 외지로 진출한 인구가 131,324명으로 총수의 70.42% 차지하였다. 이는 실제적으로 농촌의 경우 약 70% 인구가 고향을 떠났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들이 호적이 아직 고향에 남아있다는 점은 새로운 유입지에서 호적에 가입하지 않았음을 설명하며, 이들 중 얼마만한 사람들이 유입지에서 거주증을 발급받았는 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호적과 거주증 발급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구센서스통계는 추세를 반영할 뿐,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함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가령, 북경시의 경우 2010년 조선족 상주인구가 37,380명으로 발표되었지만, 보다 상세한 발표자료에 의하면 그 외 26,778명의 유동인구가 존재한다. 따라서 인구센서스자료에만 근거해도 북경시 조선족 실제 거주인구는 약 7만명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해당 지역 민족사무위원회가 2008년 연구보고서를 통하여 제시한 본 지역의 실제 거주 조선족인구 추정치는 다음과 같다.   국내 연해 도시 진출 조선족인구 상황 지역 연도 호적인구 임시거주증 실제거주인구 북경시 2008     7-8만명 천진시 2008     5-6만명 장강삼각주 2008     5~6만 명 주강삼각주 2008     10만여명 산동 연태시 2008 4,020 6,000 4~5만 명 산동 위해시 2008 6,866 8,857 3~4만 명 산동 청도시 2008 12,050 36,251 15만 여명 합계 2008     50~55만 명   위의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보면, 지난 20년 간 이동에 참여한 조선족 인구는 약  110만-120만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며, 그 비율은 조선족 인구 총수의 55%-60%에 달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현재 동북3성에 실제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비율은 총수의 35% 좌우 될 것으로 추정되며, 1990년 97%이상 인구가 동북3성에 집중되었던 조선족 인구 분포구조는 현재 동북3성, 국내 연해 대도시지역, 국외 대도시 지역으로 삼분되는 구조로 재편되었다. 이는 “글로벌화”, “대도시화”로 특징지어지는 지난 20년간 조선족사회의 압축적인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화”와 “대도시화”배경 하의 중국의 조선족 민족교육 상황 조선족 민족교육의 위기 중국의 조선족과 같이 짧은 시간 내에 강도 높은 사회변화를 겪는 집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다고 볼 수 있다. 압축적인 사회변화 과정은 기존 질서의 빠른 해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위에서 지적한 조선족의 강도 높은 인구이동은 기존 집거지를 토대로 하던 조선족 민족교육에 거대한 쓰나미로 될 수 밖에 없다. 현재 동북지역의 조선족 교육은 가히 “풍전등화”로 비교할 수 있겠다. 그 도전은 인구유출 이외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나타난다. 우선, 인구유출 이외에도 조선족 출생률의 저하로 인한 인구수의 감소가 기존의 조선족 교육체계를 뒤받침할 수 없다. 는 1990년 이 후 조선족 인구 증감률을 보여 주고 있다.       1990년이후 조선족 인구수 변화상황 (명, %) 인구수 중국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 비교 1990 2000 2010 1990 2000 2010 2000년과 1990년의 비교 증가 2010년과  2000년의 비교 증가 1 923 361 1 923 842 1 830 929 0.17 0.16 0.14 0.03 -4.83     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족 인구는 이미 출생율 저하단계를 넘어 인구 절대수 감소단계에 접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출생률 저하 단계에 들어선 후 최저30년 이상 지나야 절대 인구수 감소단계에 들어선다. 그러나 조선족인구의 경우 그 단계가 15년 좌우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기계적 인구 증감 상황의 영향으로 판단된다. 출생률의 저하는 인구 연령구조의 변화로 연결된다. 은 이를 보여주고 있다.   1990년, 2000년과2010년조선족인구 연령구조 구성상황(명, %) 연령조 1990년 2000년 2010년 인구수 비율 인구수 비율 인구수 비율 0-4세 166 190 8.64 52 126 2.71 56 107 3.06 5-9세 163 017 8.48 84 459 4.39 46 321 2.53 10-14세 146 608 7.62 167 173 8.69 51 241 2.80 15-19세 172 749 8.98 164 552 8.55 85 419 4.67 20-24세 183 038 9.52 132 316 6.88 157 015 8.58 25-29세 212 081 11.03 151 651 7.88 148 841 8.13     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에 비하여 2010년 기초교육 단계 적령 인구 비례가 현저히 떨어져 있으며 연령대가 낮을 수록 그 하락 폭이 더욱 크다. 이는 기초교육 단계 적령기의 아동수가 앞으로 더욱 빨리 감소할 것임을 예고한다. 더욱 암울한 것은 2010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조선족 여성 합계 출산율이 0.99로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30년을 주기로 조선족 인구가 절반씩 감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동북지역의 조선족 민족교육은 인구유출이라는 요인 외에도 조선족 출산율 저하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있다. 이외에도 갈수록 많은 조선족 학생들이 주류사회 진출에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한족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동북지역 조선족 민족교육이 직면하여 있는 또다른 “복병”이다. 가령, 연변지역의 경우 2011년 적령기의 고등학교 조선족 학생수가 14,297명인데, 그 중 한족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선족학생 수가 6,007명에 달하여, 총수의 42% 차지하였다(연변일보, 2011년 6월7일). 흑룡강성 상지시의 경우 2013년 현재, 조선족소학교에 다니는 학생수와 한족소학교에서 공부하는 조선족학생 수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21세기에 들어선 후 동북지역의 많은 조선족 초중등학교가 폐교되었으며, 학생수도 빠르게 감소하였다. 가령, 2010년4월 요녕조선문보에서 진행한 “요녕성조선족중학교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9년 사이에 요녕성의 조선족학교와 학생 수는 50%이상 감소되어 학교 수는 2001년의 115개에서 54개로, 학생수는 26,596명에서 12,618명으로 줄었다(연변일보, 2010년6월10일). 연변지역의 경우 2000년에서 2010년사이 기초교육단계 조선족재학생 수가 5만여명 감소하여 그 폭이 63%에 달하고, 전 주 기초교육단계에서 차지하는 조선족 교육비중이 2000년의 37%에서2010년의  20.8%로 하락하였다. 흑룡강성 할빈시의 경우 고봉기에는 조선족 초등학교가 14개 있었지만 2012년에는 2개밖에 남지 않았고, 도리구조선족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1995년에는 650명에 달했으나 2005년에 와서는 14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연변 다음으로 조선족인구가 집중되었던 길림성 길림시의 경우 조선족 중학교는 1998년의 11개에서 2013년의 5개로, 초등학교는 59개에서 8개로 줄었고; 조선족중학교 학생 수는 1998년의 6,126명에서 2013년의 1,286명으로 줄었다. 이러한 조선족학교와 학생 수의 급속한 감소는 압축적인 사회변화 속에서의 전통 집거지 조선족 민족교육이 직면한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들 학생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그 와중에 한족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면서 현재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 초중등학교에서는 다양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그 노력들을 분석해보면 다음 몇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은 “질과 특색”으로 승부한다는 복안이다. 연변지역 학교에서 제기된 이 방책에는 교육질의 향상을 통하여 대학입시율을 높이는 동시에 특색을 강화하여 학생들을 유인한다는 것이다. 특성화를 강화하는 수단으로는 “소인수 학급교육”, “다중언어 교육”,”인성교육 강화” 등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연변지역에서 제기된 이러한 이념은 현재 점차 동북지역의 조선족학교에 퍼져 학교마다 이를 자신들의 강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는 일부 학교에서 “한족반”과 “국제부”을 운영하여 외연을 넓히는 방법으로 위기 타개책을 강구하고 있다. 인구가 유출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조선족 학생만을 상대로 해서는 장기적으로 학교를 유지할 수 없을 뿐 더러 학교의 시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학교들은 한족 학생을 모집하여 “한족반”을 운영하기도 하고, 일부 학교들은 현지에 체류하거나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오는 한국학생을 모집하여 “국제부”의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한족반”의 경우 흑룡강성 목당강시조선족중학교에서 몇 년전부터 운영하고 있으며, “국제부”의 경우 심양과 할빈과 같은 대도시의 조선족학교들에 의하여 시도되고 있다. 셋째는 “이중언어교육”을 강화할 목적으로 한족교사를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정부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소수민족을 우대하기 위한 칸막이 정책들이 점차 엷어지면서 동북지역 조선족사회에도 자녀들의 전망을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한족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일부 학교들은 한족교사를 받아들여 일부 수업을 중국어로 하고 있다. 흑룡강성 조선족중학교들의 경우 한족교사 수가 점차적으로 증가하여 20명을 넘기는 학교가 늘고 있으며, 일부 학교에서는 한족교사가 부교장으로 승진하는 등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학교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가? 동북3성의 조선족학교가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중장기적으로 몇 개나 되는 조선족학교가 살아남을 수 있을 가 하는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 없다. 위의 다양한 시도들에서 볼 수 있듯이, 민족교육이 살아남기 위한 시도들 적지 않은 부분은 사실 민족교육을 약화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는 다른 특별히 뾰족한 수가 없음을 시사한다. 인구이동과 출산율 저하로 동북지역의 조선족 민족교육의 토대는 이미 소진 되어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후과는 점점 뚜렷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앞으로 10년 내에 더욱 많은 조선족학교가 폐교될 전망이며, 20년 후를 전망할 때, 그때는 동북3성을 통털어 손꼽을 정도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족사회는 이미 지역적 집거를 이루던 농민위주의 사회에서 초국적 공간으로 확산된 대도시 이민공동체 위주의 사회로 재편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구조에 맞게 설계되었던 민족교육체계는 이미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현재 상황은 그 변화의 막바지를 잡고 몸부침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산다”는 중국의 고사성어처럼 중국의 조선족 민족교육은 반드시 새로운 페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페러다임을 만들지 못할 경우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와 더불어 “조선족”은 중국 땅에서 더욱 빨리 사라질 전망이다. 연해지역에서의 조선족 민족교육 조선족 민족교육과 조선족 교육은 연관이 있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조선족 민족교육이 교육과정을 통하여 조선족의 언어, 문자, 문화, 역사를 학습하고 계승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교육형식이라면, 조선족 교육은 조선족이 받는 교육과 그 성과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조선족 민족교육은 조선족 교육의 하위개념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의 위기는 조선족 교육의 위기인 것이 아니라 조선족 민족교육의 위기인 것이다. 실제로 연해지역 대도시로 이주한 조선족의 자녀들은 오히려 집거지역 보다 더욱 우월한 조건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본 민족의 글과 말,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기 힘든 것이 문제로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조선족 교육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조선족 민족교육 부재가 큰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인구이동과 출산율 저하로 말미암아 동북지역 조선족 민족교육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고, 여타의 새로운 접근법이 없이는 그 위기를 만회할 대안도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조선족 인구가 유입되어 일정 수의 인구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연해 대도시 지역에서도 조선족 민족교육을 꾸려갈 수 있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2013년 현재, 연해지역 대도시에서 당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설립된 조선족 공립학교는 대련시조선족학교가 유일한데, 동북의 다른 지역의 조선족 학교들이 폐교되고 있는 상황에 반하여, 이 학교의 학생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1998년에는 중학부, 2001년에는 고등부가 설립되어 완전 중학교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 이 학교를 다니려는 조선족 학생 수가 날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부지로 인한 학교의 학생 수용 능력부족과 기숙사가 없는 한계로 인하여 학교의 빠른 발전이 저애받고 있다.  이외 산동시 청도시에 조선족 기업인에 의하여 설립된 사립 정양학교가 있다. 더욱 많은 학생을 유치하고 민족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기 위하여 선진교육 프로그램을 인입하고, 다중언어교육, 정보화 교육, 예체능 특기교육, 고유의 민족문화와 예의교육 등을 특징으로 내세우면서 현재 학생수 650명 정도의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대오의 안정화문제, 비용 문제, 대학입시 문제 등으로 인하여 아직은 많은 학부모들의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청도 지역의 경우 역시 많은 조선족 학생들이 현지의 한족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외 북경, 상해, 청도 등 지역에서 조선족 유지인사들에 의하여 몇 개의 한글 주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이런 주말학교들은 적게는 20여명, 많게는 40-50명 학생들이 몰려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며, 자녀에게 민족언어와 문화를 배워주려는 학부모들의 열성도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해 지역 대도시에서의 조선족 민족교육은 아직 걸음마도 뛰지 못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구성원들에 의한 고민은 시작되었으며, 다양한 시도들도 진행되고 있다. 이외 국가민족사무위원회와 해당 지역 정부도 최근에 들어 도시지역의 소수민족교육에 대하여 주위를 돌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결코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 문제에 있어서 현재 중국의 대도시에서 조선족의 민족교육 문제가 비교적 돌출한 만큼 이 방면에서 새로운 민족교육의 모델을 탐색해낸다면 비단 조선족에게 있어서도 희사일 뿐만아니라, 중국의 민족교육 나아가, 세계적인 난제가 되고 있는 다민족 국가의 민족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적지 않을 시사점을 가져다 줄 전망이다.    “글로벌화”와  “대도시화” 환경 하에서의 조선족 민족교육 진로의 탐색 지난 20년간의 조선족의 거주구조 변화로 조선족 민족교육은 지역적 집거에 기초한 공교육체계라는 단일한 방식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는 다양한 방식의 교육모델을 탐색해야 하는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배경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언어문자와 문화를 계승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집단 구성원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즉 민족교육의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주류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소수민족집단에 있어 민족교육이란 필요한 것인가? 교육에 있어 발전과 유지라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가? 이에 대하여 크게 가치적 합리성에 기초한 관점과 도구적 합리성에 기초한 관점에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치적 합리성에 기초한 관점은 한 민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응당 본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승해야 한다는 논리로 볼 수 있다. 지난날 조선족은 집거를 이루면서 민족문화 계승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문화 정책을 표방하는 국가도 이를 위한 지지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유동성이 심해지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하여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하는 시점에서 교육의 질과 효율성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조상이 남겨준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가치적 합리성에 기초한 관점은 점차 호소력을 잃어가고, 도구적 관점이 우세를 차지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사회에 있어 도구적 관점에 기초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져 있다. 하나는 “중국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중국어를 잘 배우고 주류사회에서 인맥을 쌓아가야 한다”는 소위 “민족교육 무용론”이다. 지난날에도 “민족교육 무용론”이 일정한 시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조선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한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보다 사회생활에서 뒤진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을 뒤받침할만 한 어떠한 실증적인 자료나 권위적인 연구 성과들이 아직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북경지역을 예를 들어 볼 때, 많은 조선족 엘리트들이 기초교육 단계에서 민족교육을 받았으며, 그 배경이 그들의 성공한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일례로 수많은 학과를 가지고 있는 중앙민족대학교에서 조선언어문학부의 취업율이 가장 높아 타민족 학생들이 부러움을 사고 있다. 따라서 “민족교육 무용론”은 현실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논증에 기초했다기보다는 상상한 기초한 도구론적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민족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관점이다. 그 주요 논리는 국외 지역에 8천만 좌우의 한민족집단이 존재하고 있고, 한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민족교육을 잘 활용하면 더욱 양호한 기회와 비교우세를 가질 수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엘리트 집단에 의하여 주장되고 중시받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수용되고 실행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조선족의 경우 본인은 정작 한국기업이나 한국과 연관된 사업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자녀들의 민족교육에는 열정이 없는 다소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는 한 편으로는 대국에서 살아가는 소수자집단으로서 주류사회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글로벌시대에 주변부 집단의 큰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최근 국제이민에 관한 많은 연구들에서 초국적 이민집단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으며, 그들을 글로벌시대에 여러 주류사회를 오가면서 교류의 연결망을 형성시키는 능동적인 집단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은 글로벌시대라는 역사적인 거시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주류사회들을 연결시키는 초국적 집단으로 거듭나 여타의 이민집단이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냄으로써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 있어서 조선족 민족교육에는 발전과 유지라는 딜레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식의 문제가 존재할 뿐이다. 민족교육을 잘 견지하여야 주류사회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며, 연결고리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야 더욱 좋은 발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민족교육을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계승하는 교육”으로 개념화시키기 보다는, “글로벌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그 목표를 설정하고, 그 틀에서 민족교육을 바라보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을 하나 해내려는 의지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왜 해야 하나?”하는 정당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된다. 따라서 “글로벌화”와 “대도시화” 배경 하에서의 조선족 민족교육은 출구가 없는 문제인 것이 아니라, 큰 안목에서 보고 그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된다. 그것은 목표가 확고하면 방법은 수단의 문제로 풀어갈 수 있지만, 목표가 흔들리면 사고할 기회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페러다임의 조선족 민족교육의 화려한 앞날을 그려본다.        
15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세상 댓글:  조회:4275  추천:3  2012-12-19
생명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세상 박광성 작년 이맘때에 나는 딸애를 얻었다. 애를 키우면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더욱 철저한 인식이였다. 그건 어느 생명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부모의 엄청난 사랑과 정성속에서 자란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것이였다. 생명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는것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무시하고 끊어버리는 가장 잔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하는 질문을 할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히 생명의 소중함을 망각하고있다고 대성질호하고싶다. 또한 그 원인은 생명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는 매우 잘못된 사회풍토에서 비롯되고있다고 고하고싶다. 국가위생부문에서 전국의 30여개 도시와 78개 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002년이후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농촌에서 23%, 도시에서 19% 상승하였다. 이 상승폭은 전문가들을 경악시키는 수준이다. 이러한 상승에 대하여 해당 전문가들은 일제히 그 원인을 환경오염에서 찾고있다. 첫째는 공업용페수가 무분별하게 강으로 흘러들어 오염된 물이 직접적으로 토양, 곡물, 식품에 영향을 주고있고 둘째는 동식물의 신속한 성장을 위하여 과도하게 첨가제와 비료, 농약을 사용하고있으며 셋째는 에너지사용이 과도하여 대기오염이 심각하며 넷째는 주택개조에 값싼 복합화학재료를 과도하게 사용하고있다는것이다. 환경오염이 가져다주는 생명에 대한 피해는 도처에서 나타나고있다. 상해지역 대학 남학생들의 정자수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그람당 활동하고있는 정자수가 2,000~4,000만개로 저하되여있어 많은 청년들이 불임의 위험에 로출되여있다. 20년전만 하여도 같은 량의 정액에 정자수가 7,000만개 이상으로 조사되였다. 또한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의 90%이상이 화학복합재료를 과도하게 사용한 실내인테리어와 련관되여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금의 현실이 경제적리익에 눈이 어두워 얼마나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있는가를 남김없이 보여준다. 리익에만 급급하여 사람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아무 일이나 서슴없이 저지르고있는 집단적열광에 빠져있는것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흔히 나타나는 질병은 감기이다. 따라서 별로 개의치는 않지만 일단 걸리고 보면 정말 괴롭다. 흔히 나타나는 질병이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겠는가? 수술대에 올라 경각을 다투는 사람에게 돈이 무슨 대수며 죽물도 넘기기 어려운 사람에게 산해진미가 무슨 쓸모있겠는가? 건강이 개인의 행복이고 재부요, 국민건강이 국력이요, 국부다. 건강이 없는 재부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국민건강이 없는 국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과도한 환경오염이 인체에 대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는것은 이미 많은 사례들에 의하여 검증된 과학적결론이다. 환경오염이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 나라처럼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환경오염의 고봉기에 처하여있는 국가도 드물며 또한 국민들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낮은 나라도 드물다. 지금과 같이 환경오염을 무시하는 방식을 가지고서는 결코 좋은 미래를 담보할수 없다. 도처에 환자들이 우글거리고 젊은이들이 애를 갖지 못하며 애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서 뭘 하겠는가? 따라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생태사회건설에 대한 열망이 사회 곳곳에 확산되고 그 결과들이 열매로 맺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환경운동이 신사회운동에서 주축을 이루고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을 말하면 흔히는 무공해농산물과 같은 좁은 령역에 관심이 집중되여있다. 그러나 진정한 생태운동은 《생태지향적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만들기》와 《자연친화적인 생활환경 만들기》라고 환경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를 위하여 개개인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하여 재활용품 리용, 에너지 절제사용, 오염된 상품 사용거부, 주위 자연 가꾸기, 페기물 수거와 같은 생활방식을 습관화하여야 한다. 친환경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어가는것은 결코 우리 개개인과 무관한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길이요, 자손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남겨주는 일이다. 매일 자녀에게 귀엽다고 입을 맞추면서 살기 힘든 오염된 세상을 남겨주지 말고 그들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에 앞장서는것이 더욱 현명한 길이다. 뉴스를 보면 늘 석유값이 오른다고 법석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있지만 정작 인간의 생명유지에 석유보다 백배 중요한 물의 오염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우리가 얼마나 유치한 세상에서 살고있는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는 대승의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14    조선족인구 자연변화 인젠 위험수위 댓글:  조회:4042  추천:3  2012-10-16
"조선족인구 30년후 절반으로 줄수도"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10월16일 08시55분 조회:54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 통계자료중 조선족부분에 대해 집중연구를 하고 있는 중앙민족대학 박광성 부교수가 놀라운 수치들을 본사에 제공했다.아래는 박 부교수가 제공한 수치와 그에 대한 그의 분석이다. 10년간 약 10만명 줄어 인구절대수감소 중국민족중 유일 2010년에 행해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조선족인구는 183만 929명으로 집계됐다. 2000년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집계된 192만3842명보다 9만2913명이 줄어든 수치이다. 통상 인구의 증장은 증가률감소에서 절대수감소로 가려면 30~5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족인구는 1994년부터 감소추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절대수감소가 확정되기까지 단 16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국 56개 민족중 인구절대수감소민족은 조선족밖에 없다. 그 원인에 대해 박교수는 “이주,외국유출 등으로 기계적으로 증감된것이 주 요인이며 이는 인구증감법칙을 어겨 엄중히 파괴된것”이라고 분석했다. (도표1:2010년 조선족성별,년령별 인구정황) 표1 2010年朝鲜族分年龄、性别人口状况 年龄组 男 女 合计 性别比 人数百分比(%) 0-4岁 28930 27177 56107 106.5 3.1 5-9岁 23746 22575 46321 105.2 2.5 10-14岁 26218 25023 51241 104.8 2.8 15-19岁 42696 42723 85419 99.9 4.7 20-24岁 78947 78068 157015 101.1 8.6 25-29岁 74788 74053 148841 101.0 8.1 30-34岁 71074 66400 137474 107.0 7.5 35-39岁 81818 73874 155692 110.8 8.5 40-44岁 88666 82290 170956 107.7 9.3 45-49岁 96206 91797 188003 104.8 10.3 50-54岁 87015 85941 172956 101.2 9.4 55-59岁 73457 75919 149376 96.8 8.2 60-64岁 50959 55448 106407 91.9 5.8 65-69岁 33410 40731 74141 82.0 4.0 70-74岁 28431 36949 65380 76.9 3.6 75-79岁 15775 23684 39459 66.6 2.2 80-84岁 6030 11852 17882 50.9 1.0 85-89岁 1864 4505 6369 41.4 0.3 90-94岁 400 1081 1481 37.0 0.1 95-99岁 101 289 390 34.9 0.0 100岁及以上 4 15 19 26.7 0.0 总 计 910535 920394 1830929 98.9 100.0 相关数据: 年龄中位数:42.12岁; 少儿系数:8.39%; 老年系数:17.01%; 出生性别比:108.3; 性别比:98.9 朝鲜族人口占全国总人口的0.137%,相对于2000年1923842人,占全国人口比例的0.155%。 조선족 합계출산률 세계 최저수준 한 개 인구군체가 인구 현유수를 유지하려면 대체출산률(代替出 率)이 2.1을 유지해야 되는데 이는 1쌍 부모가 2명의 자녀를 출산해야 현재인구규모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합계출산률( 合生育率PFR), 즉 1명 녀성이 출산하는 자녀가 1.1명일 때 그 인구군체는 30년단위로 절반씩 줄어든다고 한다. 조선족녀성은 현재 합계출산률이 0.98명이다. 박교수는 “이 같은 상황이 유지되면 계산적으로는 조선족인구가 30년뒤에현재수준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고 말했다. 조선족사회는 이미 고도 로령화사회 정상적인 사회의 인구년령구조에 대한 국제표준에서 평균년령대(年 中位)는 35세이다. 그런데 조선족인구의 평균년령대는 42.12세이다. 국제표준에서 로년계수(系 )가 7%이면 로령화사회로 분류되고 14%를 넘으면 고도로령화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조선족인구의 로년계수는 무려17.01%이다. 박광성 부교수는 “조선족사회가 이미 국제표준을 훨씬 넘긴 고도로령화사회이다.”고 진맥했다. (도표1:2010년 조선족성별,년령별 인구정황) 조선족 도시화률 세계선진국수준 개혁개방후 조선족사회의 도시화률은 이미 69%로 중국평균 51%을 초과하였을뿐만아니라 중국에서도 도시화률 1위민족으로 부상했다.구체적으로 상주인구(6개월이상 장기거주)비률을 보면 도시(城市)상주인구는 99만9237명,진( ) 상주인구는 27만1198명,촌(村)상주인구는 56만 494명이다.1만명이상 거주하는 성,직할시순으로는 1위 길림성 104만167명,2위 흑룡강성 32만7806명,3위 료녕성 23만9537명,4위 산동성 6만1556명,5위 북경시 3만7380명, 6위 상해시 2만2257명,7위 내몽고자치구 1만8464명,8위 천진시 1만8247명,9위 광동성 1만7615명,하북성 1만1296명이다. (도표2.표3:2010년 조선족성별,지구별 인구분포) 표2 2010年朝鲜族分地区、性别人口状况 地区 合计 男 女 人数百分比(%) 北 京 37380 17437 19943 2.04 天 津 18247 9303 8944 1.00 河 北 11296 5358 5938 0.62 山 西 663 316 347 0.04 内 蒙 古 18464 9016 9448 1.01 辽 宁 239537 118896 120641 13.08 吉 林 1040167 517257 522910 56.81 黑 龙 江 327806 164200 163606 17.90 上 海 22257 10292 11965 1.22 江 苏 9525 4920 4605 0.52 浙 江 6496 3288 3208 0.35 安 徽 1200 570 630 0.07 福 建 2157 1088 1069 0.12 江 西 543 226 317 0.03 山 东 61556 31229 30327 3.36 河 南 1457 664 793 0.08 湖 北 1960 1025 935 0.11 湖 南 1180 583 597 0.06 广 东 17615 9118 8497 0.96 广 西 2701 1417 1284 0.15 海 南 973 456 517 0.05 重 庆 637 331 306 0.03 四 川 1548 787 761 0.08 贵 州 664 318 346 0.04 云 南 1343 698 645 0.07 西 藏 26 18 8 0.00 陕 西 1129 534 595 0.06 甘 肃 559 273 286 0.03 青 海 312 152 160 0.02 宁 夏 403 207 196 0.02 新 疆 1128 558 570 0.06 全 国 1830929 910535 920394 100.00 ------------------------------------------------------------------------ 표3 2010年朝鲜族分年龄、性别人口状况(分城市、镇、乡村) 地 区 城市 镇 乡村 小计 男 女 小计 男 女 小计 男 女 北 京 35004 16203 18801 1385 706 679 991 528 463 天 津 15971 8194 7777 1567 813 754 709 296 413 河 北 5131 2517 2614 3693 1831 1862 2472 1010 1462 山 西 543 264 279 77 33 44 43 19 24 内 蒙 古 8546 4136 4410 3605 1790 1815 6313 3090 3223 辽 宁 166972 82205 84767 22379 11144 11235 50186 25547 24639 吉 林 536972 262603 274369 185328 92808 92520 317867 161846 156021 黑 龙 江 109321 54028 55293 42267 21040 21227 176218 89132 87086 上 海 18506 8439 10067 3527 1737 1790 224 116 108 江 苏 8043 4132 3911 729 390 339 753 398 355 浙 江 5071 2561 2510 1148 587 561 277 140 137 安 徽 891 456 435 168 65 103 141 49 92 福 建 1692 841 851 320 179 141 145 68 77 江 西 262 107 155 218 86 132 63 33 30 山 东 58215 29611 28604 1691 884 807 1650 734 916 河 南 1216 567 649 109 52 57 132 45 87 湖 北 944 453 491 317 151 166 699 421 278 湖 南 908 448 460 144 76 68 128 59 69 广 东 16873 8688 8185 408 233 175 334 197 137 广 西 1786 949 837 710 364 346 205 104 101 海 南 715 344 371 202 82 120 56 30 26 重 庆 543 291 252 60 31 29 34 9 25 四 川 914 457 457 365 195 170 269 135 134 贵 州 417 191 226 96 49 47 151 78 73 云 南 878 458 420 235 120 115 230 120 110 西 藏 14 8 6 5 3 2 7 7   陕 西 1010 477 533 98 44 54 21 13 8 甘 肃 372 177 195 163 84 79 24 12 12 青 海 242 118 124 48 24 24 22 10 12 宁 夏 377 190 187 13 8 5 13 9 4 新 疆 888 438 450 123 60 63 117 60 57 全 国 999237 490551 508686 271198 135669 135529 560494 284315 276179 박교수는 “인구조사에서 외국에 나간 인구는 호구소재지역에 귀결시켰기에 실제 거주수치는 오차가 있을 것이다. 동북3성이 대개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관내지역의 인구는 실제거주인구와 상주인구수가 비슷할것이며 특히 상주인구가 대부분 도시에서 살기에 그 도시의 도시인구수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박광성 부교수는 “조선족은 이제 농경민족이 아닌 도시민족이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또 통계표를 보면 농업,림업,목업,어업 등 농경사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대폭 줄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70%수준으로 늘어나는 등 조선족직업,종사업은 고수준으로 발전했으며 교육수준 역시 원래의 교육중시민족성 그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있다고 말했다. (관련도표 더보기: www.zoglo/blog/piaoguangxing) 조글로 아리랑주간 김성림 기자 아리랑주간 원문화면보기
13    2010년 조선족인구통계분석 댓글:  조회:5109  추천:1  2012-10-11
2010年全国人口普查 - 朝鲜族人口统计分析(2010년 중국인구센서스 – 조선족인구 통계분석) 中央民族大学  朴光星、肖人夫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박광성 부교수, 소인부) ------------------------------------------------------------------------- 2010年朝鲜族分年龄、性别人口状况 年龄组 男 女 合计 性别比 人数百分比(%) 0-4岁 28930 27177 56107 106.5 3.1 5-9岁 23746 22575 46321 105.2 2.5 10-14岁 26218 25023 51241 104.8 2.8 15-19岁 42696 42723 85419 99.9 4.7 20-24岁 78947 78068 157015 101.1 8.6 25-29岁 74788 74053 148841 101.0 8.1 30-34岁 71074 66400 137474 107.0 7.5 35-39岁 81818 73874 155692 110.8 8.5 40-44岁 88666 82290 170956 107.7 9.3 45-49岁 96206 91797 188003 104.8 10.3 50-54岁 87015 85941 172956 101.2 9.4 55-59岁 73457 75919 149376 96.8 8.2 60-64岁 50959 55448 106407 91.9 5.8 65-69岁 33410 40731 74141 82.0 4.0 70-74岁 28431 36949 65380 76.9 3.6 75-79岁 15775 23684 39459 66.6 2.2 80-84岁 6030 11852 17882 50.9 1.0 85-89岁 1864 4505 6369 41.4 0.3 90-94岁 400 1081 1481 37.0 0.1 95-99岁 101 289 390 34.9 0.0 100岁及以上 4 15 19 26.7 0.0 总  计 910535 920394 1830929 98.9 100.0   相关数据: 年龄中位数:42.12岁; 少儿系数:8.39%; 老年系数:17.01%; 出生性别比:108.3; 性别比:98.9 朝鲜族人口占全国总人口的0.137%,相对于2000年1923842人,占全国人口比例的0.155%。 ------------------------------------------------------------------------- 2010年朝鲜族分地区、性别人口状况 地区 合计 男 女 人数百分比(%) 北    京 37380 17437 19943 2.04 天    津 18247 9303 8944 1.00 河    北 11296 5358 5938 0.62 山    西 663 316 347 0.04 内 蒙 古 18464 9016 9448 1.01 辽    宁 239537 118896 120641 13.08 吉    林 1040167 517257 522910 56.81 黑 龙 江 327806 164200 163606 17.90 上    海 22257 10292 11965 1.22 江    苏 9525 4920 4605 0.52 浙    江 6496 3288 3208 0.35 安    徽 1200 570 630 0.07 福    建 2157 1088 1069 0.12 江    西 543 226 317 0.03 山    东 61556 31229 30327 3.36 河    南 1457 664 793 0.08 湖    北 1960 1025 935 0.11 湖    南 1180 583 597 0.06 广    东 17615 9118 8497 0.96 广    西 2701 1417 1284 0.15 海    南 973 456 517 0.05 重    庆 637 331 306 0.03 四    川 1548 787 761 0.08 贵    州 664 318 346 0.04 云    南 1343 698 645 0.07 西    藏 26 18 8 0.00 陕    西 1129 534 595 0.06 甘    肃 559 273 286 0.03 青    海 312 152 160 0.02 宁    夏 403 207 196 0.02 新    疆 1128 558 570 0.06 全    国 1830929 910535 920394 100.00 ------------------------------------------------------------------------ 2010年朝鲜族分年龄、性别人口状况(分城市、镇、乡村) 地    区 城市 镇 乡村 小计 男 女 小计 男 女 小计 男 女 北    京 35004 16203 18801 1385 706 679 991 528 463 天    津 15971 8194 7777 1567 813 754 709 296 413 河    北 5131 2517 2614 3693 1831 1862 2472 1010 1462 山    西 543 264 279 77 33 44 43 19 24 内 蒙 古 8546 4136 4410 3605 1790 1815 6313 3090 3223 辽    宁 166972 82205 84767 22379 11144 11235 50186 25547 24639 吉    林 536972 262603 274369 185328 92808 92520 317867 161846 156021 黑 龙 江 109321 54028 55293 42267 21040 21227 176218 89132 87086 上    海 18506 8439 10067 3527 1737 1790 224 116 108 江    苏 8043 4132 3911 729 390 339 753 398 355 浙    江 5071 2561 2510 1148 587 561 277 140 137 安    徽 891 456 435 168 65 103 141 49 92 福    建 1692 841 851 320 179 141 145 68 77 江    西 262 107 155 218 86 132 63 33 30 山    东 58215 29611 28604 1691 884 807 1650 734 916 河    南 1216 567 649 109 52 57 132 45 87 湖    北 944 453 491 317 151 166 699 421 278 湖    南 908 448 460 144 76 68 128 59 69 广    东 16873 8688 8185 408 233 175 334 197 137 广    西 1786 949 837 710 364 346 205 104 101 海    南 715 344 371 202 82 120 56 30 26 重    庆 543 291 252 60 31 29 34 9 25 四    川 914 457 457 365 195 170 269 135 134 贵    州 417 191 226 96 49 47 151 78 73 云    南 878 458 420 235 120 115 230 120 110 西    藏 14 8 6 5 3 2 7 7   陕    西 1010 477 533 98 44 54 21 13 8 甘    肃 372 177 195 163 84 79 24 12 12 青    海 242 118 124 48 24 24 22 10 12 宁    夏 377 190 187 13 8 5 13 9 4 新    疆 888 438 450 123 60 63 117 60 57 全    国 999237 490551 508686 271198 135669 135529 560494 284315 276179 ------------------------------------------------------------------------- 2010年朝鲜族15-64岁妇女平均活产子女数和平均存活子女数 15-64岁 妇女人数 活产子女总数 存活子女总数   小计 男 女 小计 男 女     55473 54870 28857 26013 54417 28563 25854   存活子女数占活产子女数的百分比:99.17 妇女平均活产子女数:0.99 妇女平均存活子女数:0.98 ------------------------------------------------------------------------   2010年朝鲜族按生育孩次分的育龄妇女人数(2009.11.1-2010.10.31)   男 女 小计 百分比(%) 一    孩 303 244 547 80.80 二    孩 70 54 124 18.32 三    孩 2 4 6 0.89 四    孩 0 0 0 0.00 五孩及以上 0 0 0 0.00 合计 375 302 677 100.00   ------------------------------------------------------------------------    2010年朝鲜族分性别、行业的人口状况 行业 男 女 小计 百分比(%) 农、林、牧、渔业 11093 8049 19142 26.46 采矿业 323 85 408 0.56 制造业 5847 3364 9211 12.73 电力、燃气及水的生产和供应业 566 162 728 1.01 建筑业 3880 381 4261 5.89 交通运输、仓储和邮政业 2784 533 3317 4.58 信息传输、计算机服务和软件业 713 408 1121 1.55 批发和零售业 4831 5832 10663 14.74 住宿和餐饮业 3058 6042 9100 12.58 金融业 606 581 1187 1.64 房地产业 418 199 617 0.85 租赁和商务服务业 649 492 1141 1.58 科学研究、技术服务和地质勘查业 237 115 352 0.49 水利、环境和公共设施管理业 212 99 311 0.43 居民服务和其他服务业 981 1608 2589 3.58 教育 1268 1900 3168 4.38 卫生、社会保障和社会福利业 636 854 1490 2.06 文化、体育和娱乐业 555 346 901 1.25 公共管理和社会组织 1838 801 2639 3.65 国际组织 2 1 3 0.00 合计 40497 31852 72349 100.00   ------------------------------------------------------------------------ 2010年朝鲜族分性别、职业的人口状况 职业 男 女 小计 百分比(%) 国家机关、党群组织、企业、事业单位负责人 2025 771 2796 3.86 专业技术人员 4527 5203 9730 13.45 办事人员和有关人员 3194 1533 4727 6.53 商业、服务业人员 9800 14057 23857 32.97 农、林、牧、渔、水利业生产人员 11034 8034 19068 26.36 生产、运输设备操作人员及有关人员 9868 2236 12104 16.73 不便分类的其他从业人员 49 18 67 0.09 合计 40497 31852 72349 100   ------------------------------------------------------------------------- 2010年朝鲜族分性别未工作的人口状况   男 女 小计 百分比(%) 在校学习 5263 5641 10904 18.75 丧失工作能力 3269 4600 7869 13.53 毕业后未工作 967 784 1751 3.01 因单位原因失去工作 847 415 1262 2.17 因本人原因失去工作 1223 783 2006 3.45 承包土地被征用 239 163 402 0.69 离退休 7810 10110 17920 30.82 料理家务 949 9501 10450 17.97 其他 3348 2228 5576 9.59 合计 23915 34225 58140 100.00   ------------------------------------------------------------------------ 2010年朝鲜族的死亡人口状况(2009.11.1-2010.10.31) 死亡人口 男 女 小计 城市 2717 1867 4584 镇 871 622 1493 乡村 2545 1715 4260 合计 6133 4204 10337   ------------------------------------------------------------------------- 2010年朝鲜族分性别、受教育程度的6岁及以上人口   男 女 小计 百分比(%) 未上过学 5752 17037 22789 1.29 小    学 97090 139782 236872 13.42 初    中 390498 376501 766999 43.46 高    中 235929 220637 456566 25.87 大学专科 69018 61621 130639 7.40 大学本科 73435 67907 141342 8.01 研究生 4727 4948 9675 0.55 合计 876449 888433 1764882 100.00   ------------------------------------------------------------------------- 2010年朝鲜族分性别、婚姻状况的15岁及以上人口   男 女 小计 百分比(%) 未    婚 18656 14401 33057 25.33 有 配 偶 39675 40137 79812 61.16 离    婚 4057 3407 7464 5.72 丧    偶 2024 8132 10156 7.78 合计 64412 66077 130489 100.00    
12    <장로주>의 민족사회학적 의의 댓글:  조회:2962  추천:14  2011-06-13
探寻民族和地区发展的新路径   朴光星 (中央民族大学民族学与社会学学院 副教授,社会学博士)   延边民德来生态产业研究有限公司召开有关《五德牌·酱露酒》文化及健康意义的学术研讨会,希望我写一篇有关《酱露酒》的民族社会学意义的文章,本人实在是受宠若惊、不知所措,但盛情难却之下,犹豫之余还是鼓足勇气写下这篇文章。说到《五德牌·酱露酒》,我马上想起了两个值得关注的现象:一个是世界范围内的产业分工和市场分割的日趋细分化;另一个是在当今世界正兴起的“健康革命”和备受人们关注的食品安全问题。之所以想起这些,因为我觉得可以用这两个维度去探讨《酱露酒》的社会文化意义。现将不成熟的想法整理成文,希望与关心延边发展的各界同仁共同探讨。                                       一   产业分工和市场分割日趋细分化是当今世界经济呈现的一个重要特点。不管是一个国家还是一个地区、民族,不能在世界产业分工地图中抢占一席之地,就很难谋求快速发展,就得面临落后的状况。同样,在世界市场这一平台里,不能开拓属于自己的“一片领地”也很难谋求发展,很容易落入被人主宰的境地。因此,在当今世界不管是各个国家还是地区、民族、企业都想尽办法在产业分工和市场分割中谋得自己的一席之地。 产业分工和市场分割往往具有排他性和封闭性的特点,一个群体占据某一领域以后总是想尽办法巩固自己的地位,通过垄断市场的形式限制其他竞争者涉足这一行业,所以后来者很难挤进这一领域。在当今世界不管是在国家之间还是在地区、族群之间这种产业分工是非常明确的。比如,美国的高新技术产业、西欧的专业性极强的高端制造业、日本的民用高端制造业、“四小龙”的中端制造业、中国及东南亚各国的劳动密集型工业、其他第三世界国家的原材料工业等,都依托于现已明确的国际性产业分工体系中,而且这样的分工体系一旦形成就很难被打破。在这样的分工体系中,一个国家或地区的产业定位越清晰越能快速发展,越模糊发展越滞后。这样的规律也体现在国内,已故的著名社会学家费孝通在上世纪80年代考察国内经济发展较快的地区时,发现这些地区都具有一个共同特点,那就是经济发展当中都形成了自己鲜明的特色(这种特色可以理解为产业分工和市场分割中的自己的明确定位),他用“发展模式”的概念说明这个现象,提出了“苏南模式”、“温州模式”、“珠江模式”、“民权模式”等概念。 一个族群或群体发展同样需要自己的特色。例如,散居在世界各地的犹太人考虑到自己的政治地位和社会处境不稳定,就重点涉足易于转移的、附加值高的珠宝和金融行业,并通过建构族群网络互相合作的方法形成为一个市场“势力”,因此在这两个行业中发挥着重要的影响力,犹太人也因此成为精明商人的代名词。海外的华人同样在经济领域取得了非凡的成就,他们坚持自己勤奋、节俭、精打细算的特点,从比较艰苦的零售、餐饮等行业做起,向各种服务、贸易、房地产等领域发展,不仅积累了巨大的财富还在上述领域发挥着重要的影响力。对国内流动群体的研究中也同样发现,流动群体如果能发挥特色并占得一个领域,他们的城市适应能力和发展能力更强。比如说北京的外来流动群体,在北京从事家政服务业的主要是安徽人,收废品的大部分是河南人,开打印社的基本都是湖南省娄底市新化县的人。这些人在各自领域形成了一个完整的信息收集、操作和销售的渠道,其他的人很难插足,这等于他们在大城市已经占据了能依托生存和发展的一个领域,比起盲目的流动群体具有更强的适应和发展的能力。 那么,延边(或朝鲜族)在全国乃至国际的产业分工体系和市场分割中是否开拓了属于自己的一份“天地”呢?延边的哪些行业或产品在全国乃至国际市场上享有盛誉?显然,对这一问题我们很难回答,这说明延边在产业领域还没能形成自己的特色。但上述的发展经验告诉我们,不管是民族国家还是某一地区、民族或企业,在市场竞争日趋激烈的经济全球化时代,没有明确自己的产业和市场定位,是很难得到快速发展的。这说明,培育特色产业或产品是延边经济发展中必须要思考的核心问题,延边的发展离不开特色产业或特色产品,但又如何去建构特色产业呢? 延边民德来生态产业研究有限公司的实践也许给我们提供了一个很好的并值得思考的视角。作为一个草根的民营企业,这一企业的核心理念是发掘朝鲜族传统饮食文化中有利于人的健康的因素并加以升华,给消费者提供一种绿色、安全的生态保健食品,并以此倡导新型的生态文明。他们把目光投向了朝鲜族传统饮食文化中可称之为精华的“发酵”食品(发酵食品对健康的促进作用已被好多研究所证实),但他们发现随着工厂化的大批量生产,朝鲜族传统发酵食品中的传统精华工艺逐步被摈弃,如发酵需要良好的生态自然环境、发酵要保证一定时间长度等。他们从恢复传统制作工艺入手,在污染较少、人口密度低的山区建立生产基地,并通过自然力发酵的大酱、酱油、黄豆发酵粉等产品,并保证了产品不含任何添加剂。用传统工艺生产这种产品不仅具有气味香、味道鲜、营养高等特点,还有排毒、养颜等保健功能,因此深受消费者青睐,据说产品处在供不应求的状况。《酱露酒》是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秉承上述理念最近开发的新产品,据说产品还没有正式上市,前来洽谈生意的商人就络绎不绝、门庭若市。 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的实践给我们提供了一个如何去探寻延边特色产业的新思路。延边能不能通过发展高新技术产业在全国乃至国际市场中占一席之地?延边能不能依靠发展制造业打开局面?从目前的产业格局来看,在这些领域延边属于后来者,市场里垄断状况的存在和市场的饱和已经没有给后来者留下多少可挤进的空间。那能不能依靠引进外地的大企业谋求发展?越是大的企业它的专业化和自动化水平高,因此虽能增加一点财政收入,但根本上不能解决就业等民生问题,反而会带来环境污染、当地资源被廉价利用、被固定在产业底端等危险。 那么,像民德来公司生产的这些反映延边地方特色的产品能不能成为延边的支柱产业?我们可以从浙江义乌发展经验中寻找答案。自古以来,义乌这个地方的手工业就发达,当地人手巧,善于生产各种小商品,改革开放后义乌人就发挥自己的特点,大力发展各种小商品生产,现在义乌已经成为享誉国际的小商品生产基地。比如,义乌的一个县级市的纽扣生产量就占世界纽扣产量的60%,成为世界级的纽扣生产基地,世界各地厂商的脚步络绎不绝,这就是所谓的“小商品·大市场”的义乌发展模式。义乌的小生产不是靠财大气粗的大企业,而是依靠数以万计的小企业和家庭作坊,这些“蚂蚁”催生出了大产业、大市场。也就是说发展特色产业不能靠某一个大企业,而是要靠某一个产业,这里就有产业定位和发展思路的问题。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的实践就是发掘当地的人文特色和资源特色,生产出别具一格的健康食品,以此来开辟自己的发展空间。 “健康产业”能不能成为延边特色产业呢?这不仅要看延边在这个领域是否具备了一些有利的条件,还要看这个行业有没有广阔的发展前景。从延边的资源、产业基础以及人文等条件来看,在延边发展“健康产业”比起任何一个产业更具备发展潜力。长白山生态圈是世界级的中药材宝库,再加上制药和食品工业也具有一定的基础,另外也可以利用朝鲜族的文化发挥出特色,如发展“朝药”或“朝鲜族保健食品”系列。众所周知,“藏药”、“苗药”、内蒙的优质牛肉干风靡国内市场,难道“朝鲜族系列”就没有机会了吗?从这一点上可以说民德来的实践具有重要的借鉴意义。                                      二   “健康产业”或者“生态产业”在未来有没有广阔的发展前景呢?我觉得这一问题可以结合开头所提起的第二个现象讨论。可以说,在当今世界人们对健康的关注度超过历史上的任何一个时期,因此关系到健康的食品安全和环境问题已成为社会生活中最受瞩目的领域。工业化使人类社会摆脱了物质贫乏的时代,人类尽情地享受到了工业文明带来的丰富的物质生活,但很少思考用人为的手段、改变物质原有形态的方式促成的大量生产,对人产生何种影响。从物质文明的漩涡中被逐渐唤醒的人们开始思考大量生产、大量消费的社会后果,这时他们才突然发现大量生产、大量消费是靠着毁坏自然、生态乃至于生命的方式实现的,即物质享受建立在破坏人类的可持续发展的基础之上。这种反思促成了新的发展理念,关注生态、生命与环境的可持续发展观已成为人类社会的新的发展理念。人们开始摆脱无节制的物欲,更多地关注自身的健康和生命的活力。 但很快人们又无奈地发现他们的美好愿望在短期内很难得到实现。在大量生产、大量消费的工业化模式下发展起来的食品工业,更多的注重“量”、“美观”、“口感”等问题,并没有对人的健康予以足够的重视。比如,为了增加粮食产量不断增加农药和化肥的使用量,畜牧和种植业中广泛使用各种激素(如“瘦肉精”),毫无节制的使用各种食品添加剂(如“塑化剂”),已经酿成了非常严重的食品安全问题。这使得人类的健康受到巨大的威胁,健康、生态、食品安全问题成为人们最关注的话题,因此,“生态产业革命”或“健康科技革命”也成了人类社会下一轮科技革命的主要战场。人类社会的正从“信息化革命”时代过渡到“生命科学”革命时代,以往的经验告诉我们每一次的科技革命往往会带来巨大的新型产业发展空间,并带来全新的生活方式,从这一点可以说“健康产业”具有无限的发展空间。因此,在当今各国政府和企业为了抢先占领这一市场正进行着激烈的争夺。 新一轮的生命科学革命有两种不同的推进路径,一种是通过科技创新去探寻未知世界,以便从中找出有利于人类健康的新要素;另一种不像工业化时代用人为的手段干预自然过程,而是遵循自然规律,试图通过合理利用自然力达到生产的目的。这意味着以后的农业或食品工业不能继续走无节制的使用各种农药、化肥、激素、添加剂的发展路径。古代中国就有“天人合一”思想,讲的就是人是自然世界的一部分,因此要遵循自然规律,而不要违背自然规律,违背自然规律会遭到自然的惩罚。当今人类社会面临的各种生存危机,可以说是和工业化阶段的过度开发及改变自然法则有关,因此,保护自然、尊重自然规律,尽量恢复原生态的生活方式,以实现“天人合一”的循环型社会已成为人类社会的共识。 这说明,民德来生态产业有限公司在合适的时间、合适的地方、选择了合适的行当。《酱露酒》结合了朝鲜族大酱工艺,生产出了没有任何添加剂,并具有营养价值和保健功能的好酒,不能不说酿酒领域的一大创新。它紧紧抓住了时代特点,发掘了传统文化中的精华,既创造了特色,又迎合了消费者关注健康的要求。民德来的实践给延边的启示是,延边作为后来者是继续走大兴土木、污染环境的老工业化道路,还是通过保护自然环境的方式培育结合本地特点的新型的健康的生态产业?这是值得我们探讨的。                                        三     做一个总结的话,可以说《酱露酒》的民族社会学意义体现在以下几个方面:一是为延边或朝鲜族在经济全球化时代开拓自己的生存空间提供了一些有益的并值得借鉴的经验;二是为如何发扬民族传统文化中的精华,并使之成为自己的特色、能量、资源等方面提供了宝贵的经验;三是为朝鲜族传统饮食文化服务于更多的人群做出了自身的贡献;四是用自己的实践倡导了健康的饮食文化和生态文明。希望延边或者朝鲜族社会涌现出更多像民德来公司或《酱露酒》这样的富有个性的企业或产品,以期为更好的发展奠定基础。  
11    “연변의 특산이 뭐예요” 댓글:  조회:5119  추천:29  2011-03-17
“연변의 특산이 뭐예요”    박광성 (중앙민족대학 사회학과 부교수)     일전에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두분의 동료 교수와 함께 연변고찰에 나섰다. 동행한 교수 한분은 신강 우룸치 출신의 한족교수이고, 다른 한분은 사천 량산 출신의 이족교수로서 중국인류학계에서 유명한 분들이었다. 연변에서 몇년간 생활한 나로서는 별로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으나 연변에 처음가는 그들은 자못 흥분된 기분이었다. 기타 민족들에게 조선족은 문화와 교육이 발달하고, 깨끗하고 세련된 집단으로 알려져 있어 그들이 연변행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큰 것 같았다.     그러나 연길로 도착해서부터 그들의 질문은 수없이 나에게 쏟아졌다. “왜 길에 사람이 이렇게 적냐?”, “연변이라면 조선족 특색이 짙을 것 같았는 데 와보니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장사하는 사람이 거의가 한족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질문이 끝없는 것 같았다. 연길, 용정, 도문, 훈춘, 조양천 등 지역을 돌면서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 기억에 오손도손 했던 도시들은 인적이 한산한 모습을 보였고, 수부도시 연길마저 너무 썰렁하게 느껴졌다. 물론 겨울이어서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적은 원인도 있겠지만, 밤에도 많은 아파트의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면 빈집들이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또한 랭면집이나 개장집같은 곳도 복무원이 모두 한족이어서 예전에 분위기는 아니었고, 도시의 변모는 변하고 있으나 조선족 생활문화의 색이 옅어져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돌아오기 전날 두 교수는 연변에 왔으니 기념으로 뭐래도 좀 사가야 할 것 아닌가고 하면서 우리를 동행하는 민족종교국 간부에서 “연변의 특산이 무엇입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 분은 선뜻 대답을 못하더니 운전기사와 상의하고 나서 “연변에는 장백산에서나는 중약재와 산나물이 특산입니다. 기념품으로 가져가면 좋을 겁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한 매장으로 갔는데, 들어서보니 가게도 크지 않고, 연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삼이나 록각、검정귀 버섯 등이 진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실 요즘은 중약재와 같은 것들이 너무 가짜가 많아 원만한 품질포장이 없으면 쉽게 사게 안된다. 두 교수는 살 것이 없다는 식으로 머리를 흔들며 체면상 검정귀버섯 한 봉지씩 사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새삼스럽게 “연변의 특산이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보면 자연경관만 보는 여행이 제일 멋없고, 순 경관이 아닌 역사문물이나 생활문화를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여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기에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품이나 공예품 같은 것을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가령, 운남성 이강에 가면 옥룡설산과 같은 거대한 자연경관이 있는 가 하면 옛 나시족의 왕궁이 있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요해할 수 있고, 더욱이 당지에서 나는 공예품들이 여행객들이 발을 당긴다. 각종 은제품, 나무공예품, 각종 골동품, 당지에서 나는 천으로 만든 손수건과 목도리와 같은 장식품들이 많아 숙소에서 쉬다가도 또 나가 돌고 싶다. 하남성 개봉에 가면 수놓이가 일품이다. 각종 꽃이나 풍경을 정교하고 수놓아 액자에 넣어 파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치고 하나쯤 사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내몽골 하이라얼시에 가면 나무를 편으로 잘라 그 횡단면에 그림을 그려서 파는 공예품들이 일품인데, 그것을 하나 사서 집에 걸으놓으니 구수한 나무 향기도 일품이어서 오는 손님마다 부러워 한다.     그럼 연변에는 뭐가 있을 가? 흔히 말하는 연변의 자랑거리인 개고기와 냉면은 한번 먹어보면 끝이고, 소위 장백산에서 난다는 약재를 사자니 큰 회사나 장기간 경영하여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가 없어 선뜻 사게 안된다. 공항이나 호텔 등의 매장에는 한국산 공예품과 일부 러시아산 공예품들이 있는데, 이런 물건을 굳이 연변에서 사야할 필요가 없다. 가령 북경만 해도 대사관 구역의 상업구에 가면 각 국의 물건들이 즐비하고 큰 매장들이다보니 품질도 신뢰할 수 있다.     연변에 가면 흔히 당지 간부들로부터 장백산은 세계 몇 대 약재기지요, 연변의 삼림피복율은 얼마요 하는 소개를 듣게 된다. 그렇다면, 왜 “개고기 거리”만 만들지 말고 “장백산특산거리”는 못 만들가? 검증을 받은 업체들을 집중시켜 관리도 강화하고 상호 견제하고 경쟁시켜 특산품의 시장을 정돈하여 전국 나아가 국제적으로 이름있는 약재시장으로 발전시키지 못할 가? 삼림피복율이 70%이상이라는 연변에 가면 왜 목 조각품과  같은 공예품 하나 볼 수 없을 가? 목재가 대량 수요되는 산업은 채벌과 같은 제한을 받아 쉽게 발전시킬 수 없다면 원목으로 쓰기 힘든 나무를 조각이나 공예품으로 만들 수는 없을 가? 하이랄시의 공예품처럼 나무 횡단면에 우리 민족여성들의 단아한 모습이나 민속놀이장면과 같은 그림을 그려 넣는다면 외지 여행객들에게 얼마나 뜻깊은 기념품이 될 가?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윈리는 교환이 아닐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걸로 남과 교환해야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고 생활도 윤택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연변의 상황은 “색시를 남에게 보내고 안방까지 다른 사람에게 내주는 형국”이다. 양질의 노동력과 인재는 외지로 나가고 외지 상품들이 본 지역의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내 것을 만들어 남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밑에서 일하여 번 돈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형국으로 양쪽으로부터 당하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변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본 지역의 자연자원、생태환경、인문자원을 잘 이용하여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보다 상급 정부의 자금을 쟁취하여 눈에 보이는 공정을 벌리기에 급급한 것 같다. 물론 기초시설 개선이나 건설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니 사람들이 취직이 잘되고 수입이 높은 외지로 나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기업과 사람이 적어지다 보니 거금을 들여 건설한 고속도로와 아스팔트는 한산하기만 하다. 길이 쭉쭉 뻗어있고 개발구도 널찍널찍 하건만 정작 행인은 드물고 기계 가동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즉 무대는 갖춰져 있는 데 배우가 없는 셈이다.     내륙변강지역은 특색경제를 발전시키는 길 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세계공장이 되어 일반 공산품의 생산은 과잉되어 있다. 따라서 내륙지역에서 일반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업을 발전시킬 시장공간이 없고, 그렇다고 고기술산업은 더욱 힘들다. 요즘 내륙 변강소수민족지역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지역 거의가 지방의 우세를 잘 이용하는 특색경제를 발전시킨 곳들이다. 가령 운남성 훙허하니족자치주는 연초공업으로, 내몽골 어얼둬스는 광업과 모직업으로 전국적으로 소문나 있다.     연변은 “꿩 잃고 알 잃고 둥지까지 망가지는”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본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 국내 나아가 국제의 산업지도에서 자기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연변의 특색이라면 아무래도 장백산지역에서 나는 각종 자원과 조선족문화가 아닐 가 싶다. 문제는 특색을 어떻게 산업우세로 전환하는 가에 있을 것인데, 특히 문화를 어떻게 경제발전에 이용하는 가하는 문제는 더욱 텅빈 구호같아 보인다. 그러나 문화를 이용한 마케팅 사례는 많은 것 같다.     가령, 요즘 장족지역에서 나는 약재는 “藏药”로 불리면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고, 역시 장족지구 견종인 ”藏獒”는 이미 상류층의 사치품으로 되어 있으며, 장족들이 쓰는 칼 “藏刀” 역시 소장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전형적으로 민족특색과 지역특색을 이용한 성공적인 시장판매전략이다. 운남성 원싼현의 푸저허이 이족민속촌에 가면 경치도 수려하거나와 이족문화 특색 또한 여행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주택, 복장, 음식, 민속활동 모두 이족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저녁마다 조직하는 우등불야회는 유람객들의 환영을 받는 다. 기후가 좋아 일년내내 각지의 유람객들이 몰려되는 데, 한달에 한 농호가 몇 만원씩 번다고 한다. 몽고족에게는 “马奶酒”와 “风干牛肉干”있다. 술맛도 좋거니와 고기맛도 일품이며 휴대하기도 편해 북경같은 대도시에서도 부리나케 팔려나간다.     그러나 연변의 현재의 모습은 문화적 특징을 살리려는 노력에 비해 쇠퇴의 추세가 더욱 완연한 것 같다.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라는 타이틀과 문화적 특징을 버린다면 정말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완전한 변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조선족문화를 잘 이용하여 특색을 부각해나간다면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연변에서도 이러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걸음에 우리는 우연히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에서 새로 개발하였다는 “된장술”을 맛보게 되었다. 조선족의 전통메주를 술원액과 결합하여 빚은 술인데, 길림성품질관리국의 검증에 따르면 화학첨가제가 없고, 메주 속에 영양성분이 용해되어 해독기능이 가미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연구하는 두 교수에게 이를 소개하여 주었더니 문화를 상품화한 좋은 사례라고 하면서 기념품으로 이 술을 가져가면 되겠다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홈장이나 다름없는 연변에 와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 같아 내심 개운하지 않았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몇 병씩 선물하였다. 요즘도 이 두분 교수는 나를 만나기만 하면 “된장술”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군 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와 전통을 상품화한 좋은 사례가 아닐 가? 조선족은 일류의 입쌀을 생산하면서도 입쌀 명품브랜드 하나 만들지 못하고, 개고기 잘 먹는다고 전국에 소문났지만 개고기상품 브랜드 하나 없고, 명태로 별 반찬을 다 만들어도 전국 시장에 내놀 상품 하나 만들이 못한다. 여름에 입으면 그렇게 시원한 삼베나 모시 옷도 요즘같이 찌든 여름을 보내야 하는 도시에서는 환영받을 법 한테 서시장에 옷감이 흔해도 상품화시키는 사람은 없다.     연변주정부는 고래등같은 정부청사를 좀 줄여 짓더라도 기금을 조성하여 이러한 지역특색을 반영하고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대부금, 세제, 토지사용, 행정절차 등 방면에서 우대정책을 폄으로써 민간의 창발력이 꽃피게 하여야 한다. 허구한 날 상급정부에서 투자해주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눈 먼 외국 투자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역의 우세를 발휘할 수 있는 산업육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민 역시 곧 막물이 날 한국노무행에만 집착하지 말고, 현지에서의 경제기반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다른 나라에 의거하여 부자된 집단은 역사적으로 없다. 한국 노무행이 발전과정의 한 단계로 되야지 영구화되어서는 조선족이나 연변의 밝은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힘들게 번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 평생 의지하여 살 수 있는 경제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행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 가? 지역경제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 연변에 가는 손님마다 특산품 한꾸럭 푸짐히 들고 떠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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