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식
http://www.zoglo.net/blog/quanchunzhi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수필

전체 [ 6 ]

6    까치 우짖는 아침 댓글:  조회:531  추천:0  2015-01-16
          “까까!”잠결에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분명 까치가 우짖는 소리가 아닌가. 그 미묘한 소리가 딱히 어데서 나는지 알바 없어 유심히 살폈다. 이윽히 관망하여서야 목표물을 찾을수 있었다. 까치는 바로 뜨락의 해묵은 느릅나무의 끝초리에서 깝작거리며 목청을 뽑고있지 않겠는가. 까치를 내다보는 내 눈은 무등 즐겁기만 하다. “까까!” “까까!” 까치는 련속 고운 우짖음을 토해낸다. 까치와의 상봉이 어쩐지 너무 신비스럽고 심지어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괜스레 마음속에서 이름 못할 자잘한 조약돌 같은 기쁨의 알들이 생겨나 바글거린다. 이 드넓은 지역에서 어쩌면 다른 구역도 아닌 유독 우리 사는 동네에 와서 내리고싶었을가? 속에서 파릇한 바람이 싹으로 쏙쏙 돋는다. 하긴 저 까치가 이렇게 찾아온데는 필연코 그 어떤 리유나 사연이 있을게 아닌가. 까치는 애기잎사귀 같은 죄꼬만 부리를 자주 여닫으며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 선률에 따라 목과 몸과 꽁지를 깜냥깜냥 놀린다. (우리 집에 좋은 기별을 전하려 온게 틀림없어. 혹여 먼 곳의 자식들이 오련다는 기별일가?) 이리저리 추측을 하며 욕망에 상상을 섞어 부풀려간다. 그러다가 그만 의외의 발견에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그 까치는 분명 남향으로 앉은 3층집을 마주하고있지 않겠는가. 그 집에는 젊은 맞벌이 부부가 살고있는데 그들 부부는 동네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는 일이 없다. 말수가 적고 성미가 조용하여 동네 사람들을 만나도 눈인사나 건네는 과묵한 타입이다. 하다면 까치는 이런 집에 대관절 어떤 희한한 소식을 날라온걸가? 헌데 그것도 잠간이다. 이번에 까치는 북쪽채의 아파트쪽으로 돌아앉으며 일순간에 자세를 바꾼다. “까까!” 보아하니 까치는 5층 창문이 열린 집을 마주하고있는게 분명했다. 그 집에는 3년전에 얻은 뇌졸증때문에 운신을 잘못하는 팔순 할머니가 살고 계신다. 자녀들이 다 외지에 있다보니 거동이 불편해도 막무가내이다. 올해는 병이 더 깊어져 병원출입조차 어렵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 할머니와 친구로 사귀게 되였다. 그날 집뜨락에 들어서는데 낯모를 할머니가 5층에서 나를 보고 손을 저으며 부르는것이였다. 로인한테 급한 일이 있나부다 생각하고 부랴부랴 층계를 올라갔다. “간장이 싹 다 떨어진지 사흘이 되네. 웃층 아재가 외지로 출장을 가벼려서… 미안한대로 신세를 좀 지자고 자넬 불렀네. 괜찮겠지?” 이렇게 우리는 첫 대면을 하였고 그후부터 나는 심심찮게 할머니네 문을 찾아 노크하는 심부름군으로 되였다. 알고보니 할머니의 식성은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랭면을 사오면 진득거리는 물이 싹 다 빠지도록 여러 벌 헹구어야 하고 그나마 비닐그릇이 아닌 굳이 대두사발에 담아야 한다. 번마다 양념우에 들깨가루를 뿌리고 가위로 국수를 송송 짤막하게 잘라야 한다. 각시시절에 화로불에 묻어 익힌 톡톡 터지는 감자를 깨가루에 폭폭 찍어서 실컷 먹는것이 소원이셨단다. 할머니는 찰떡도 엄청 즐겨 드신다. 일하다가 밭머리에서 쓰러졌던 황소도 일단 찰떡을 먹여주면 꼬리를 빳빳이 세우며 영각소리를 뽑는다는 해석도 하신다. 기계에 친건 물렁물렁해서 싫고 기어이 아침시장에서 직접 쳐서 파는 찰떡이래야 제맛이란다. 혹시 목에라도 걸릴가 걱정되여 잘게 베여서 물에 살짝 찍어 드리면 치아라곤 몇대 남지 않은 호물때기 입을 좌우로 놀리며 달게 자신다. 연후에는 따로 숟가락으로 고물을 떠서 입에 넣으시는데 찰떡을 자시는 할머니의 특이한 노하우라 하겠다. (저렇게 힘들게 살아가시는 할머니한테 아무리 까치라 해도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어.) 저녁에 나는 은근히 까치가 남기고 간 수수께끼 같은 우짖음을 두고 다시 사색의 드레줄을 감아올린다. 호기심과 그리고 궁금증이 급격하여 종당에는 송화기를 들고말았다. “할머니, 오늘은 뭘 하시며 보냈어요?” “에그, 이 늙은거야 뭘 할게 있나? 고작 한다는게 앓음자랑밖에는…” “할머니도 오늘 아침 까치가 우리 동네에 와서 우는걸 들었을테죠? 그런데 그 까치가 한눈 팔세라 딱 3층집 젊은 부부네 집과 할머니네 집을 바라고 ‘까까’거리더라구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셨나요?” “글세… 아, 맞어. 과연 그 젊은 부부네 집에 대운이 텄대. 들을라니 그 집 젊은 녀자가 식당일을 하다가 넘어져 류산을 했다나. 그런데 그후 종시 애가 생기지 않아서 애를 먹었대. 근데 병원에 가서 어쩌고 어쨌는데 글쎄 대박이 터졌다는거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여느때와 달리 밝아있었다. 오늘 그 녀자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걸 보았는데 온 얼굴이 함지박처럼 벙그러져있더란다. 잇달아 할머니는 조금은 흥분된 목청을 전해오신다. “우훗훗, 글구 나한테두 말야 좋은 일이 있었지. 그 령물인 까치가 이 늙은일 골렸을라구? 서너달전부터 몸이 말째 바깥출입을 못했댔는데 오늘은 거짓말같이 다리가 말을 들어주질 않겠나. 밖에 나가 바람 좀 쐬다가 올라오니 지근지근 아프던 머리도 거뿐해져 신선 같드레?” “혹여 내려가셨다가 올라오기 힘들면 우리 집에 전화를 치세요. 제가 전번에 적어드린 전화번호 있지요?” “있구 말구, 그걸 내가 보배처럼 품속에 간수해 두고있지. 새끼들이래야 십만 팔천리밖에 있으니 일이 생기면 언제 그눔들을 바라겠나?” 아, 들어보매 아침에 까치가 우리 동네로 광림한것부터가 잘된 일이였다. 좋기는 다음번에는 우리 집을 향하였으면 내심 바라기도 하지만 굳이 우리 집을 점찍지 않아도 좋으리. 그냥 오늘처럼 맞벌이 부부네 집이나 할머니네 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어느 집쪽을 향한다 해도 좋으리. 까치가 래일 또 올지 모른다. 아니, 모레라도 좋고 글피라도 좋으련만…   연변일보
5    황 토 길 댓글:  조회:636  추천:1  2014-07-11
수필                                                        황 토 길                                                                                   전 춘 식     하루 일을 마친 해가 서산에 비딱히 걸렸습니다. 하늘 한자락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도심에서 뻐스를 타고 약 20분가량 가다가 도보로 다시 산쪽으로 약 10분정도 걸으면 저만치 언덕받이에 구불구불 뻗어간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은 아직은 현대인들의 손맛을 보지 못한 태초의 향이 물씬 풍기는 황토길입니다. 멀리에서 보면 할머니의 가리마처럼 반듯하고 어여쁩니다. 흰댕기가 나붓기는듯 백룡이 고개를 넘어가는듯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이 길을 따라 저녁무렵이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늘어서군 합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시내에서 왔거나 저 아래마을에서 왔거나를 막론하고 서로가 만나면 알은체 하며 수인사도 건네입니다. 그처럼 여유롭고 그처럼 평화로운 저녁은 다름이 아닌 바로 이 황토길우에서만이 향유할수 있습니다. 그동안 안보이더니 어데로 갔다왔느냐고 그새 몸이 많이 좋아진것 같다며 서로가 고개라도 끄덕여 보이며 간단한 관심을 보일수도 있는 말과 말들이 황토길에서 자연스레 오고가고 합니다. 수식도 없고 그저 스쳐가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 말 한마디에서도 충분히 대방의 마음을 읽어낼수 있습니다. 그런 말을 엿듣는 내 마음마저 어쩔수 없이 황토길처럼 순수해지고 하야말쑥해지는 순간입니다. 황토길을 걷다보면은 할아버지의 짚신처럼 소박하고 유정하다는 감수가 찐하게 가슴을 울려줍니다. 황토길은 현대적 부(富)와 귀(贵)의 도금칠에도 미련 없이 고집스레 황토길로 남아있습니다. 벤츠도 심지어 그럴사한 구두 한번 등에 업어 보지 못했습니다. 먼 옛적 어느 나무군이 아니면 어느 길손이 지름길로 택하여 한번 또 한번 걸어서 내여진 길인지는 알수가 없습니다만 그 길은 분명 오늘에 이르러 현대인들까지 즐거이 찾는 명상으로 통할수 있는 길로 되여졌습니다. 내 앞에서 걷는 저 젊은이는 요즘 들어 보이지 않더니 오늘은 애를 데리고 저렇게 나왔습니다. 산나물 채집을 하느라고 그새 안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야만 이 애한테 소비돈이라도 쥐여주고 새옷이라도 철 바꾸어 입힐수 있다면서 젊은이는 싱긋 웃어보입니다. 이 애는 그의 아들이 아닙니다. 형네 애인데 형수는 어데론가 4년전에 종적을 감추었고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났던 형은 병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왔고... 허다보니 자기가 조카애를 맡아서 키우게 된거랍니다. 애는 삼촌의 손을 쥐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졸졸 따르며 때로는 깡똥대며 재롱을 부리기도 합니다. 애의 손을 꼭 쥐고 노을 깔린 황토길을 걷는 그 젊은이가 마치도 한폭의 유화처럼 보여옵니다. 아직도 그 젊은이가 애를 키워내려면 얼마만한 머나먼 길을 걸어야 할지가 묘연합니다. 그나마 젊은이는 걷다가 애를 훌쩍 안아서 어깨우에 가볍게 얹기도 하는데 보매 그 걸음걸이는 그처럼 온당합니다. 아마 그 젊은이는 자기의 어깨에 놓인 무게에 대해 미처 계산이 안된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태산앞에서도 태연자약할수 있는지 도저히 리해가 안갑니다. 아마도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짚신을 신은듯 걸음걸이가 거치장스럽지 아니하고 거뜬거뜬 가벼울수가 있나 봅니다. 내 문턱만 닦고 쓸고 하면서도 삶이 힘들어 죽겠노라고 아우성을 치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키니 어처구니 없고 미안쩍고 한편 부끄럽습니다. 황토길은 명상으로 가는 길이여서 좋습니다. 눈을 살풋이 감고서 자박자박 걸어봅니다. 시끌벅적한 시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명상에 잠긴다는것이 불가능합니다. 황토길은 오가는 길손들에게 여하한 구속이나 격식도 없이 나름대로 명상을 펼칠수 있는 자유자재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수도 그리고 자아성찰을 할수 있는 그런 사색적인 분위기도 오로지 이 황토길만이 연출해낼수 있습니다. 내 뒤에서 걷는 이 아줌마는 금년에 막 잡아 나이가 예순을 갓 넘었습니다. 마흔 두살 파란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병시중을 들어온지도 어언 스무해가 넘었습니다. 누운둥이로 바깥 출입마저 못하는 남편을 위해 그녀는 자신에게 차례진 보라빛 청춘을 달가이 불사르며 참담한 중년의 고개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늘 그러하듯 두손을 합장하고 말없이 걸음을 옮깁니다. 혹여나 남편의 병세에 기적이나 아니면 신화라도 나타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나 봅니다. 가끔씩 그녀가 길녘의 잔꽃들을 따서 조심스레 비닐봉다리에 넣는걸 볼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풀꽃들을 남편한테 보이면서 철의 바뀜을 알린다고 합니다. 부부정이 백지장처럼 엷어져가지 않나 싶은 오늘속에 이같이 황토같이 노랗게 익은 참사랑도 어느 한구석에 숨겨져 쌕쌕 살아 숨쉬고있다는 그 엄연한 사실이 내 눈가에 눈물을 그득 물리웁니다. 황토길에서는 초저녁의 시원한 바람 한자락이 슬밋슬밋 고개를 쳐듭니다. 고마운 바람입니다. 갑갑하게 닫겼던 이내 마음방 속속들이 식혀주면서 소리솔솔 미약하게 착하게 끊었다가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끊기기도 합니다. 바람은 사람을 가리지 아니 합니다. 고운 얼굴 추한 얼굴 편견마저 없이 하나 하나의 얼굴들을 부드러이 애무를 해줍니다. 까닭 모르게 덮치던 불안과 그리고 번거로움과 권태로왔던 이런 저런 일들이 가슴속에서 서서히 지워지고있습니다. 마치도 모래불우에 씌였던 락서의 흔적들이 바다물에 씻겨가듯 바람도 그런 묘한 공능을 갖고있다는걸 인제야 금세 깨친듯 합니다. 길량켠에 뉘연히 펼쳐진 풀밭과 가담가담 동화속 푸른 집처럼 안겨오는 나무들 한그루 한그루가 내 망막속으로 빨려 들어와 내 맘속에 화려한 꽃집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 꽃집은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헐렁한 마음의 령지에만 앉힐수 있는거라 그러한 자리부터 마련함이 우선일겁니다. 늘 뭔가 부족하다고 불평이 잦았던 생각자투리들이 토막토막으로 잘려져 형체도 없이 바람따라 날려가고있습니다. 황토길에는 어느새 명상에 잠겨 걷는 이들이 장사진을 이루어갑니다. 그들속에는 이런 저런 아픔에 시달리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뿐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이 황토길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어가며 그렇듯 담차게 앞으로 앞으로 주근주근 내처 발자국을 찍어가고만 있는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앞서겠다는 그런 야심마저도 그들에게는 사치한 넋두리에 불과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낫다고 으스대며 어깨를 살리는 그런 본새도 여기 황토길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 비난받을 거동입니다. 황토길에는 황토길에 걸맞는 자세와 그리고 사색거리들만 용납이 되는겁니다. 황토길에서 마음을 수련시키며 황토길의 가르침을 받고저 합니다. 이것이 나 혼자만이 아닌 대개 여기 황토길을 찾는 사람들의 공동한 리유가 아닐가고 나름대로 점지해보기도 합니다. 황토길과 거리를 보다 가까이 하려고 신을 벗어 두손에 쥐고서 맨발 바람으로 사분사분 걸어봅니다. 금모래알들이 발바닥을 간지릅니다. 황토길이 나한테 건네이는 최상의 “안마”입니다. 뻣뻣하고 무거이 경직되였던 어깨가 한결 시원해지고 놀리기가 편해집니다. 이번에는 풀밭쪽으로 들어서서 걷습니다. 명주같이 말끈거리는 풀들이 내 발밑과 발등을 폭신하게 감싸줍니다. 아, 나는 지금 도시에서 옮아진 부질없었던것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청순한 마음의 경지를 찾아 가려 한사코 애쓰고있는중입니다. 내 자신마저도 가늠키 어려웁고 내 의지로도 임의로 움직여갈수 없던 멍에 같은 부담스러웠던것들을 만약 이 황토길이 날 도와 벗겨줄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고 싶은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황토길에 차츰 어스름이 내리 덮습니다. 고요와 적막도 각일각 짙어갑니다. 이제 이 길에는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려 할머니의 하얀 가리마를 빛나게 하고 할아버지의 짚신을 옛말로 두런거리며 래일의 이야기에 연장선을 달아갈것입니다. 황토길은 저 건너산 기슭으로 아니, 어둠속으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꼬리를 사려갑니다. 래일도 이 황토길에서는 예의제 없이낯익은 얼굴들과 낯설은 얼굴들의 만남이 이루어질것이고 그에 따라 황토길을 닮은 이런 저런 마음들과 사연들이 줄줄이 줄쳐서리라 굳이 믿고싶습니다.  
4    나무는 구슬을 탐내지 않는다 댓글:  조회:532  추천:0  2013-12-26
(연길) 전춘식     층집에서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편리와 불편과 늘 상종하게 된다. 불편중에서 첫째를 꼽으라면 아마도 창문유리닦기를 꼽아야 할 같다. 워낙 고공작업이라 하면 지례 소리만 들어도 어질어질해나는 나에게 있어서 이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허니 일군을 청해 할수밖에 없다. 그나마 빨간 지페 석장을 내밀고 벼르다가 끝낸 일인데 불과 며칠 안가 흙비가 내리거나 먼지바람이 일어 원래의 상태로 환원되면 신경이 쓰이다 못해 머리에 쥐가 올라올 지경이다.   하여 올해에는 여름철에 한번 마가을에 한번 닦는걸로 결정을해두었다. 이제는 립동이 당금 눈앞인지라 더는 미루적거릴수가 없으니 당금 행해야 했다.   로무시장에 가서 이리저리 살피다가 그중 깔끔해 보이면서도 몸매가 왜소해 보이는 한 아줌마를 짚었다. 아니나다를가 일하는 솜씨를 보니 내 눈썰미와 딱 맞아떨어진다. 왜서 혼자만 왔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일솜씨가 재서 두사람 세사람 몫의 일을 번개치듯 단숨에 해낼수 있다며 자신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렇게 일을 하자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인사말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측은해서 건네인 말에 아줌마는 례사롭게 응수를 해온다.   "매일같이 하는 일인데요 뭘."   "이렇게 걸싸게 일을 한 날이면 저녁에 온몸이 노그라지겠네요?"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얘요. 뼈가 물러나게 죽도록이 일을 한 날이면 귀가할 때 덜썩거리며 흥에 떠서 걷지만요 종일 서서 일이 차례지기를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날이면 두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대요. 우습지요?"   "?"   잠간 생각에 묻히고 나서야 겨우 그 말에 담긴 뜻을 어느정도 리해를 할것 같았다. 하도 그저 보아주기가 안스러워 물을 나르는건 내가 담당을 하겠다고 자진하여 나서자 그는 도리여 손사래를 친다.   "일군을 청했는데 왜 주인이 거들어야 해요? 내가 이렇게 마른 명태같아 보여도 우리 집에서 '고동마'칭호를 받은 사람인데요. 후후후..."   아줌마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알고보니 아줌마는 아이 둘을 키우는데 큰 딸애는 고중에, 작은 아들애는 초중에 다니는 중이란다. 게다가 남편은 당뇨병으로 고생한지가 십년을 넘다보니 바깥일에서 손을 뗀지가 옛날이란다. 온집 식구가 자기 한손을 바라고 산다나. 들어보니 짐작이 갔다. 그 궁색한 살림살이를 멍에처럼 떠메고 앞만 향하여 내처 네 굽을 놓아야 하니 명실공히 '고동마'라고 불리울만도 했다.   아줌마는 어림잡아 50대에 가까워 보이는데 나이와는 무관한듯 그렇듯 아찔한 창턱에 올라서서 능란하게 걸레질을 쓱쓱 해나갔다. 처음 이런 허드레일에 손을 대였을 때만 하여도 서툴고 맥만 빠졌는데 후에 이를 사려물고 한가지 한가지 일들을 눈에 손에 익혀내였단다. 일도 마음 먹고 살손을 붙이여 배워내니 되더란다. 게다가 손아귀가 드세여 지금은 막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과연 그 아줌마의 손에 번개가 일더니 언뜻 그 많은 겹창문들이 새유리처럼 멀쑥하게 목욕을 마치게 되였다.   유리닦기가 끝나자 청소를 하는데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섞는다. 이같이 고된 로동에 찌들리우면서도 이런 헐거운 마음가짐으로 삶을 영위해간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놀라웁고 대단한 일인가.   일이 마무리되자 수고했다며 약간한 팁을 건네이였다. 혹여 이 보잘것 없는 건네임이 아줌마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라고 할가봐 돌아갈 때 택시나 타라며 밀어주었다.   "택시는 무슨 택시얘요. 선로버스가 바글거리는데요. 그나저나 더 얹어주니 잘 쓰겠습다."   아줌마는 가방에서 깨끗한 옷을 꺼내여 툭툭 털어 입고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밖을 나선다. 오늘은 운이 붙어 또 다른 집으로 일하러 가게 된단다. 층계를 내려가는 아줌마의 어깨가 방불히 춤을 추는듯 했다.   창너머로 그분의 뒤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노라니 문득 (생뚱같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떠오른다. 왕비의 자리가 욕심이 나서 숱한 처녀들이 몰려들어 유리구두를 신어본다. 신이 발보다 작거나 크거나 하여 도저히 걸음이 안된다. 그 신에는 적임자가 따로이 있었던것이다. 발과 신이 딱 어울릴 때에라만이 맵시는 물론 그 자신도 편하게 느껴지게 된다. 맞든 안맞든 기어이 신으려는 그런 단순한 념원에 의해 발을 깎아내거나 크게 만들수는 없지 않는가. 허니 아무리 큰 욕심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발에 맞는 그런 신을 고르는수밖에는 달리 대책이 없을것이다. 여기서 발은 '본'이라 하고 신은 그에 따르는 '분', 즉 그에 대응되여 일치를 이루는 상대로 된다.   보건대 그 아줌마는 적어도 '본분'에 충직하는 분임이 틀림이 없다. 허니 탄식을 하거나 울음을 울어도 모자랄 그런 렬악한 환경속에서도 자연스레 적응을 하며 여유자작하게 살아갈수 있는것이 아닐가. 이한 마음가짐야말로 사람들의 의혹을 자아낼만치나 유별나다고 할수 있겠다. 하지만 필경 그 아줌마는 현실을 도피하려고도 원망하지도 않고 태연스레 그 험하고 늘찬 고개를 넘고있는것이다. 그분이 그 가녀린 몸으로 '고동마'의 구실을 할수 있는 그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가? '본분'에 어긋남없이 살아가려는 그 하나의 든든한 신조가 곧바로 드팀없는 받침돌이 되여주고있는것이리라.   우리 말에는 접미사로 쓰이는 '답다'라는 단어가 있다. '부모답다','아들답다', '안해답다', '남편답다' , '스승답다', '제자답다', '국민답다', '지도자답다'...여기서 '답다'는 홀로서는 뜻을 가지지 못하나 어느 한 단어에 붙게 되면 '본분에 맞게'의 뜻으로 전달이 된다. 본분에 맞으면 일이 순리에 따르게 될것이고 본분에 안맞으면 일이 비뚤어지게 될수도 있으렸다. 본분을 떠난 생각과 자세는 자칫 곁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다 어찌보면 '본분'이란 이 두 글자를 떠날수 없는것 같다. 본분을 지킬줄 아는 사람은 내발에 딱 맞는 '신'을 선택할줄 안다. 밭에서는 가죽 구두보다 헝겊신이 좋고 물에서는 양복보다 고무옷이 생색을 내게 되는 리치와 같다. 드레박에는 금박칠이 필요치 않고 초신에는 꽃리봉이 가당치 않다. 딱히 명문으로 규정이 되여있지는 않지만 나한테 주어진 운명이라고 보면 그에 따르는 하나의 테두리가 존재한다는것이 불평스럽지만 그게 바로 현실이다.   력사를 거슬러올라가 보면 우리 민족은 서러움과 시린 가슴으로 아리랑 열두고개를 넘어온 특수한 군체이다. 하지만 그 모진 아픔을 당하면서도 우리 민족은 세상에서 제일 노래와 춤과 가까이하고 살아온 민족이다. 심지어 지나가던 길손일지라도 맹물 한사발 권하며 쪽박을 엎어놓고 저가락 장단을 치며 '도라지'를 뽑아온 락천적인 민족이다. 초근목피로 기근을 이겨내며 서러웁다고 눈물을 짓지 않았거니와 땡밭 한치 없이 부평초처럼 떠다니는 신세임에도 땅치며 곡성을 내지 않았다. 숙명적으로 길 떠난 나그네의 '본분'에 걸맞게 한고개 또 한고개 넘고 또 넘었을뿐이다!   바로 이한 까닭으로 하여 나는 나무가 돋보인다. 나무는 인내에 능하다. 여름은 더운대로 겨울은 추운대로 용케 감내하면서 사철 련가를 부른다. 또한 나무는 자기가 생긴 나름대로 자기한테 주어진 제한된 공간속에서 말없이 묵묵히 자랄뿐이다. 나무는 하루 사이에 쑥떡 커서 하늘을 덮으려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나무는 만리창공을 날아예는 새들을 부러워한적도 없다. 더 나아가 나무는 현란한 빛을 내는 구슬을 탐내지 않는다. 그것은 나무의 머리속에 아무리 현란한 구슬이라도 자기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슬기로운 생각이 자리잡고있기때문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나무를 부러워하고 숭앙하는 리유라 하겠다. 어느 한 명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가장 자연스러운것이 가장 아름다운것이라고. 구슬을 탐내지 않는 그런 나무로 되고싶다. 오늘 내가 만났던 그 아줌마도 구슬을 탐내지 않는 나무여서 그렇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선에 안겨왔으리라!
3    작은어머니의 손톱 댓글:  조회:1077  추천:1  2013-09-30
     (추석날이구나!)    잠을 깨며 창밖을 내다보니 평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꽃다발을 안은 사람, 음식바구니를 든 사람, 낫을 든 사람들이 간간히 들락날락거리며 어데론가 떠나느라 설쳐대고있다.    (산소를 찾아들 가는구나!)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변화를 일으킨다. 몸의 어느곳엔가 숨었던 날개가 화르르 펴지면서 오늘은 기어이 아무데로나 날아나고 싶어진다. 그래, 이런 날에는 집안에 가둘래야 도저히 가둘수 없는 심경인것이다. 설사 몸을 가둔다고 하여도 마음이 밖으로 도망을 빼는데야 집에 남은들 뭣하랴. 무작정 떠나는거다. 그럼 어데로 가야 할가 생각을 더듬는데 희뿌연 안개속에서 한 로인의 얼굴이 서서히 다가온다. 옳지, 시내 광명경로원으로 옮겨오신 작은어머니를 뵈러가는거다.    작은어머니는 팔순을 넘기셨는데 이미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이다. 때로는 허망소리를 하시고 때로는 이부자리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는데 내가 간들 반가와할리가 만무할것이다. 헌데 작은어머니와 대면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손에 과일을 든 채 작은어머니가 들어있는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간다. 일부러 아무말도 않고 로인의 침대머리로 다가갔다. 순간 나를 빤히 쳐다보시던 작은어머니의 눈에 반짝 그 어떤 색다른 감정이 내비친다.    "어유, 남시거우(내가 자라던 고향)말새단지가 왔구나!"    분명 내가 어릴 때 익히 들어오던 목소리 그대로이다. 눈물이 왈칵 솟는다. 작은어머니의 엉성한 손을 잡고 이윽토록이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한다. 고삭고 말라버려 피부의 원색마저 잃어진 손등, 지렁이같은 피줄만 퍼렇게 얼기설기 두드러진 손등은 내 마음을 아프게 찢는다. 손톱이 길었다. 손톱을 깎아야겠다면서 가위를 드니 작은어머니쪽에서 조금은 민망해 하는 눈치이다.    "나이가 웬수(원쑤)라더니 쓸데없는 손톱은 왜 이리두 빨리 자라누."    작은어머니는 한때 로두구판대기에서 "명성"이 있는 인물이였다고 할가. 회사촌의 "팔선녀네 집"하면 당시 그 지방에서 사는 사람치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딸만 줄줄이 여덟이라고 지어진 호칭이다. 작은어머니한테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딸애들 "팔선녀"가 전부였고 더 있었다면 바람에 날려갈것 같은 왜소한 체구의 남편과 몸체를 가누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가는 오두막 한채가 전부였다.    그해 겨울 (60년대 초반)은 심히도 추위가 기승을 부리였다. 온 나라가 3년 재해의 근황에 직면하고있었다. 살림에 보탬을 한다며 삼도만 목재판으로 들어가셨던 작은아버지가 불과 석달을 채우기도 전에 산 "송장"이 되여 담가에 들려오셨다. 하늘이 비낀 멀건 죽으로 끼니를 에때우는 이런 판국에 어디에 가서 쌀알을 구할수 있겠는가. 그나마 작은어머니는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으신다. 묵묵히 참으며 애써 방법을 찾으신다. 산 사람한테는 살 일이 나지기 마련이라며 작은아버지더러 근심 말란다.    그때로부터 작은어머니의 어려운 고행이 시작된다. 홑옷바람에 허름한 주머니를 옆구리에 처매고 로두구 지역의 각 촌은 물론 동불사 조양천의 각 탈곡장을 서캐 훑듯 한다. 북데기를 퍼담아 키질하면 쭈그럭 벼알이 셀수 있으리만치 한홉 되게 남는다. 벼짚단을 털고 털면서 낟가리를 허물면서 언땅에 떨어진 벼알들을 은싸락 줏듯 한다. 손은 진작 얼고 얼어서 진물이 줄줄 흐르는데 손톱은 다슬고 다슬어 다치면 금방 숨이 넘어갈듯 하다. 낟알이 담긴 묵직한 주머니는 갈비뼈가 도드라진 잔등에 매달려 흔들거린다. 하루에 왕복 20리~30리길을 걷는데 허기진 배는 앞으로 점점 오그라든다. 이럴 때는 맹물이라도 요기가 될가싶어 허리춤에서 물병을 꺼내여 마시려 하니 물은 꼬댕꼬댕 얼어서 얼음덩이로 되여버린지가 오래다. 삭풍이 눈길을 핥아대는 황혼무렵 쓰러질듯 엎어질듯 어둠속에서 휘청이며 걷는 작은 어머니의 걸음에는 시름만 너덜너덜 넝마처럼 매달려 걸리적거린다.    집에서는 겨릅대같이 여위여 자리에서 일어못나는 남편과 그리고 오롱조롱 애들이 자기를 기다리고있다는걸 작은어머니는 잘 알고있었다. 잘 알고있었기에 단 한번도 중도에 물앉아버린적 없이 꼭꼭 늦어진 밤이면 영낙없이 제집문을 찾아 들어설수 있었다.    가마목에 주어온 벼를 골고루 펴놓아 말리운다. 누기가 사라지면 그것을 발방아에 찧어 쌀을 낸다. 애들을 밖으로 내몰고는 남편의 입에 이밥 한술 한술 떠넣으며 작은어머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신다.    "춘식아, 너도 이밥 한술 먹어볼래? 작은 엄마가 손발을 얼구며 한알씩 주은 벼가 청줄마대로 두마대나 되였으니 대단하지?"    당시 열살미만이였던 나였지만 작은어머니가 건네이던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때 나한테 내밀어 보여주시던 동상을 입어 모지라떨어졌던 손톱도 눈에 선해진다.    작은 어머니의 그 하늘을 감동시킬 정성이 있어 작은아버지는 돌아와서 반년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게 되였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작은아버지는 더는 일밭으로 못나가시는 불편한 몸으로 되여버렸다. 부부가 맞들어도 힘에 버겁던 궁한 살림은 각일각 더 깊숙한 가난의 골짜기로 굴러떨어지고있었다. 먹을것이 없는데다가 땔거리도 떨어졌다. 차디찬 온돌에서 애들은 감기가 끊기지 않아 엇갈아 콜록거린다.    작은어머니의 고역은 또 연장선을 그어간다. 회사촌 마을 북쪽에는 토끼굴 같은 탄광들이 심심찮게 널려있었다. 규모가 방대한 탄광은 아닐지라도 하루에 캐내는 석탄량은 적지 않아 직접 화물차에 실어 내지로 운반되는터였다.    어뜩새벽이면 작은어머니는 비자루와 조막도끼와 풍천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를 들고 탄광쪽으로 총망히 향한다. 남먼저 가야만이 밤새 광부들이 구르마(레루우에서 인력으로 밀어 움직이는 차)를 밀어내다가 흘려진 석탄가루를 쓸어올수 있기때문이다. 이런 석탄은 집에서 때기에는 무난하다.    작은어머니만이 아니였다. 숱한 사람들이 잇달아 꿀을 본 개미들처럼 몰려든다. 석탄을 주으러 온 사람들이다. 남먼저 버럭이 버려진 곳으로 내닫는다. 조막도끼로 돌에 약간씩 붙은 석탄을 까낸다. 손에 들려진 작은 바구니에 차면 언덕너머에 달려가 눈으로 표식을 해두고는 살짝 파묻는다. 주머니에 넣은것이 남들한테 발각되기라도 되면 어느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눈 깜박할 사이에 채여갈수도 있기때문이다 이렇게 하루에 몇십번을 뛰여가고 뛰여오고 하는지 알수 없다. 손끝에서는 벌건 피가 배여나온다. 거멓게 석탄먼지가 끼였던 손톱은 어느새 떨어져나갔는지 반나마 줄어들었다. 손에 장갑이라도 끼였으면 사정이 나으련만 그 세월 그런 소리는 한갖 사치에 불과했다. 주머니에 석탄이 찼다싶으면 아구리와 주머니의 아래귀 두개를 끈으로 질끈 동이여 멜짐으로 만든다.   내 힘으로 주었다고 하여 당연 내것으로 되는게 아니다. 한편 관리 인원들의 눈도 피해야 한다. 자칫 중도에 쫓기우는건 물론 주머니까지 빼앗기는 경우가 있다. 가끔씩 간이 큰 사람들이 석탄무지의것을 훔쳐가는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잔등을 지지누르는 60~70근 되는 석탄을 등에 지고서 땅을 핧을 지경으로 등을 꼬부리고 한걸음 한걸음 길을 죽여야 한다. 퇴마루에 짐을 내려놓고보면 온몸이 물자루가 되여버린다. 삭신이 녹나내리여 숟가락 들 맥조차 없다. 큰 딸애가 피가 말라붙은 엄마의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래일은 제발 가지 말라 애원한다.    가루석탄은 앞마당에서 키를 높여가고 덩이석탄은 골라서 시장에 내다가 판다. 양철로 되여진 퉁재에 담아서 파는데 거기에 꼭 채워담으면 15전을 받을수 있다. 닭알 한개에 2전을 하던 그 나절 그 돈은 적은 액수가 아니였다. 그것은 작은어머니의 가녀린 잔등에 실려온 땀내에 흥건히 절어진 보상금이였다. 그런 땡전으로 작은어머니는 소금을 사거나 애들한테 공책이나 연필을 사서 쥐여주신다. 손톱으로 긁어 모은 돈이니 한푼이라도 허실할세라 손톱으로 쪼개여 써야만 했을것이다.    작은어머니는 젊어서 언제 한번 손톱을 깎아보신적 있는것 같지 않다. 모진 가난을 손톱으로 썰어내시며 살아오셨으니 그 손톱인들 언제 한번 편히 자라날수 있었겠는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사이가 없다고 한다. 후날 자식들이 하나 하나 출가를 하게 되여서도 이 자식이 괜찮게 보내면 저 자식때문에 마음을 닳이우시며 작은어머니는 늘 여리디 여린 어시마음으로 긴 세월을 흘리우셨다. 이제는 딸들이 외국 나들이를 하면서 손줄이 좀 넉넉해지자 작은 어머니한테는 자실것도 새옷도 모자란것이 없게 되였다. 한들 그것이 그이한테 뭐가 보탬이 되랴. 한평생을 가난과 싸우시다가 그것이 꼬리를 감추니 작은어머니는 폴싹 망가져 팔순의 나락에 떨어졌으니. 심지어 내가 건네이는 소비돈마저도 곁사람한테 맡기지 않으면 안될 사정이시다. 정신이 자주 헛갈리기때문에 돈건사조차 할수가 없게 된 슬픈 현실이다. 아마도 작은어머니의 사주 팔자에는 일복만 있었지 돈복은 따라주질 않는 모양이다.    내가 작별인사를 올리자 작은어머니가 한마디 하신다.    "돈이 생겼으니 나 로두구로 갈거야. 령감이 집에서 기다리는데..."    저 세상 간지도 20년이 되는 남편을 작은어머니는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는 모양이다.    "손톱이 다슬도록 낟알주이도 안하고 석탄무지를 파헤치는 일도 없이 편하게 살수 있는데 좀더 이 경로원에 눌러 살다가 가시도록 해요!"    "그럼 그럴가?"    작은어머니는 끄당겨다가 거머쥐시던 작은 보따리를 아쉬운듯 놓으신다. 풀어보니 그 보따리에는 작은 어머니가 이제껏 간수해온 남편의 색 바랜 사진과 그외에도 호구부랑 신분증이랑 옷견지들이랑 들어있었다. 자식들이 사다준 명품옷들을 입어도 못보시고 사선을 나들고있는 작은어머니, 때로는 그 옷을 꺼내여 기어이 몸에 꿰여보신단다. 주욱 자라오면서 작은 어머니가 겪으시던 많은 사연들을 물밑 들여다보듯 해오던 나, 다시 한번 주글주글 말라버린 손을 가져다 만지작인다. 쓸데 없는 손톱이 왜 이리도 빨리 자라느냐고 푸념하시던 그 말씀이 옛추억으로 나를 밀어넣은것이다. 작은 어머니, 평생을 살어오시면서 손톱을 깎는 법을 모르셨으니 이제라도 쑥쑥 자라게 해야지 않을가요?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스스로 깎을수 없다면 그대로 길게 자래우시죠. 가실 때가 되면 그 손톱을 깎아드리면서 작은 어머니한테도 고생을 등지고 살았던 날이 있었노라고 조용조용 알려드릴게요.    경로원뜨락을 나서면서 뒤를 돌따보니 갑작스레 세상이 어둠속에 잠겨버린듯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 세상 구석구석에 얽혀있는 사연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뒤로 멀어져가고 또는 재현되고 하다가 종당에는 흔적이 없어지나 보다.  이제 내가 가졌던 기억들도 세월의 흐름속에 차츰 희미해질지 모른다. 그때면 아마도 더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작은어머니의 손톱도 자람새를 멈추고 고이 잠속으로 빠져들리라.    터벅터벅 귀로에 오르는데 느닷없이 길녘 어느 상가 스피카에선가 "아리랑"노래가 서러이 울고있었다...
2    우 물 댓글:  조회:777  추천:0  2013-02-18
우 물 전춘식 "헉, 이놈의 다리가...요만한 일 하기도 말째이니." 다리로부터 쑤셔대는 동통이 각일각 가심해진다. 창범이는 놀리던 일손을 잠간 멈추고 우물벽에 기대인다. 오늘이 벌써 사흘째이다. 오래동안 방치해두었던 우물을 가셔내자니 품이 적잖게 든다. 아무튼 물이 나올 때까지 기어이 파내려가야 한다. 하기야 이런 일쯤은 남의 손을 빌어도 되련만 그는 이 일만은 제손으로 꼭 하고프다. 전에는 다시 말하면 점순이랑 함께 살 때만 하여도 드레박으로 이 물을 퍼서 줄곧 마셔왔는데 마을에 수도가 놓이면서부터는 이 우물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것이다. 며칠전 한밤중에 창범이의 전화가 갑작스레 울리였다. 종래로 이런 전례가 없었는지라 창범이는 누군가 번호를 잘못 눌러 괜스레 잠을 깨운다고 웅얼거리며 받을념을 않았다. 하지만 전화벨은 그냥 사람을 깨우고야 말 작정이다. "어, 누군데 전화를 잘못치면서 귀찮게 구는거여?" 잠기가 잔뜩 실린 목소리 그대로 신경질을 발끈 쓴다. "..." 대방은 묵묵부답이다. 그러자 누구인지 알아보고픈 충동이 인다. "젠장,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야지 왜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나... 점순이예요. 당신 그새 어떻게 보내셨...그리고 그 다리는..." 순간 창범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꿈을 꾸고있는건지 아니면 환각인지 그 자신도 가늠키 어렵다. "저...점순이, 왜 오래동안 소식도 안 전하고...엉? 그래 날 말라죽일 작정이요?" "당신께 너무 죄송해...흑흑...날 몹시 원망하셨죠? 나 당금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요." "어쩌다 그런 생각을 다 하게 되였는데? 엉?" 창범이는 만감이 속에서 욱 치밀어오른다. 이태째 돈도 안보내오고 전화도 안해오던 안해에 대한 원망일가? 아니면 그보다도 더 진한 반가움일가? "왜 그런 생각을 먹게 되였냐구요? 당신이 그리웁고 또 고향의 땅과 물이 그리워서요. 우리 집 앞마당에 있던 그 우물은 물맛이 얼마나 좋았는데...지금도 그대로이겠지요?" "그...그대로이구말구. 난 지금도 음료수만은 그걸 쓴다니까." 그 전화를 받던 시각이 그처럼 달콤했다. 점순이한테 이렇게 말을 해놓았으니 아무튼 점순이가 오는 날까지 물이 나오게 해야 하는것이다. 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입에 문다. 그리고는 멍하니 우물벽을 쳐다본다. 처음으로 이 우물의 깊이가 얼마나 될가를 가늠해본다. 대여섯메터나 될가? 예닐곱메터쯤 될가? 짐작이 잘 안간다. 담배 한대를 채 태우다 말고 다시 일에 접어든다. 물이 질펀해온다. 이제 당금 물이 나올 조짐이다. 온몸이 환회로 전률해온다. 물, 물이 보여온다! 푹! 푹! 푹! 전신의 힘을 모아 필사적으로 삽을 박는다. 성한 다리로 힘을 쓰니 병신다리가 제 구실을 못하여 비칠거린다. 그바람에 창범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벌렁 넘어간다.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형이 무망간에 해오던 말이 떠오른다. "글쎄 제수가 돌아온다니 반갑기야 더 이를데 있겠느냐만...어쩐지...저 아래마을 한 친구는 처가 급작스레 돌아오니 미칠듯이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리혼증을 내려고..." 그 당시에는 너무 기쁜김에 형의 말을 무심하게 들었었는데 이 시각만은 그 소리가 천둥같이 귀에 맞혀온다. 형의 말이 어쩌면 곧 다가올 현실을 말해주는것 같은 예감이 드는걸 어쩌는수 없다. 문제를 간단히 보아서는 안될터이다. 가만, 생각을 좀 정리해보아야겠다. 창범이는 결혼식을 올려 두어달도 채 못되여 싣걱질을 하다가 경운기가 비탈길에서 휘뜩 번져지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크게 치우는 불행을 당했다. 여러 병원으로 돌아다니며 가산을 탕진하다싶이 하였지만 결국 상한 다리는 이렇게 오작품이 되고만것이다. 자기보다 년하인 친구들이 보라는듯이 애를 안고 눈앞에서 설칠 때마다 은근히 애를 탐내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된 판에 그런 호강에 떠는 말을 입밖에 낼수조차 없었다. 그 이듬해 봄 점순이는 남편의 극성스러운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행을 결정해버렸다. 몇년인가는 곱게도 전화도 잦게 해오고 생활비도 부쳐오더니 근간에는 전화가 멀어짐에 따라 생활비도 오네마네 하는 정도다. 십상팔구 지금쯤 점순이가 마음이 변했을거라는 예측이 전혀 들지 않는건 아니였지만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점순이가 이런 자기를 가엾게라도 여기여 어느 땐가는 꼭 돌아올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후-애라도 하나 떨구고갔으면 지금쯤 자라서 퍽 컸을테지. 부모들이 있으니 힘든대로 키울수도 있었는데...새끼라도 하나 곁에 있으면 이 외로운 마음에 위안이라도 되련만...) 혹 자기가 이 지경이 되는 그날부터 점순이는 벌써 애를 낳을걸 단념해버렸고 마음은 십만팔천리로 날아가버렸는지 알수 없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듯 “어느날 갑자기”무정한 절창의 기별이 날아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씩 가슴이 섬찍했었는데 이제 그 겁냈던 “어느날 갑자기”가 도래한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무작정 머리를 흔들어댄다. "설마...내가 왜 공연히 좋은 사람 의심하고 그래? 점순이가 이런 내속을 알았으면..." 삽질하던 자리에 물이 질펀해진다. 갈증이 난다. 허리를 굽히여 흐려진대로 몇모금 꿀꺽꿀꺽 마신다. 물맛은 여전했다. 점순이가 오늘까지도 이 물맛을 잊지 않는 그 리유를 알것만 같다. 아직도 이틀이 더 있어야 점순이는 연길 공항에 도착할것이다. 우선은 머리도 깎고 꺼칠한 수염도 밀고 그리고 장가를 들때 입던 그 양복도 꺼내여 다리미질 해놓아야 한다. 할 일은 적잖은데 어느 일부터 손을 댔으면 좋을지 두서가 잡히질 않는다. 배가 촐촐해난다. 핸드폰을 꺼내여 보니 오후 세시가 되여온다. 드리워진 바줄을 타고 기신기신 우물밖으로 기여나온다. 밥술을 들려는데 상우에 놓인 핸드폰이 몸을 부르르 떤다. 점순이가 한국에서 이제 곧 돌아가게 된다고 비행장으로 마중을 와줄거냐고 묻는 전화일수도 있다. 급급히 숟가락을 던져버리고 핸드폰을 바꾸어쥔다. 핸드폰 액정화면에 현시된 글자를 보니 외국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맞다. 방금전에 어수선한 생각을 굴린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안녕하세요? 여긴 선합병원 급진실인데 어서 와주세요. 상세한 얘기는 도착한 다음..." 전화는 일방적으로 뚝 끊어졌다. 점순이의 목소리 같질 않다. 그럼 누구일가? 점순이한테 무슨 변고라도? 점순이는 아직도 이틀이 더 지나야 온다고 했잖았는가. 길게 생각을 꼬아갈 경황도 없다. 어서 택시를 불러야 한다. 태평실 문어구에서 한 낯모를 녀자가 기다렸다는듯이 마주 와서 꼽삭 경례를 한다. "점순언니랑 함께 일하던 친구예요. 환자가 병이 위중하길래 앞당겨 떠났지요. 언니는 방금전에... 우리 곁을 떠났어요. 기어이 돈을 벌어 남편의 다리를 성한 사람처럼 만들고야 말겠다는 고집을 피우면서...당뇨병 종합증으로 약 1년반을 시달리우면서 일벌레가 되여 살더니...이걸 받아요. 언니가 떠나면서 저한테 맡긴 돈이예요." 그 녀자는 창범이의 손에 두터운 봉투를 쥐여준다. 그러더니 울음을 섞으며 말을 잇는다. "떠나면서 언니는 두가지 소망을 유언으로 남기였어요. 하나는 첫날에 입던 한복을 입혀달라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애기를 갖고...싶었다구요." 창범이는 그 자리에 쿵 무너져내렸다. 그 다음의 일들은 어떻게 되여갔는지 창범이는 안개속처럼 흐리멍텅하기만 하다. 마을로 돌아오는 차안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눈앞에는 아까 파다만 우물이 얼른거린다. 그 우물은 오늘따라 아찔하게 깊어 보인다. 물맛이 좋아서 돌아오겠다던 사람은 야속하게 가버리고 이제 우물만 남은것이다. 갑자기 창범이는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뒤채이며 광기를 부린다. "점순아-내 점순아- "
1    아빤 미워 댓글:  조회:2555  추천:40  2009-09-29
아빤 미워      전춘식        새파란 하늘품에서 고운 새 몇마리가 파닥이며 날아예고있었습니다. 모였다 헤여졌다 마치도 조형만들기를 하는것처럼 보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있던 시골에는 여러가지 새들이 참 많았었는데…뻐꾸기, 알락까치, 종다리, 메새…     갑작스레 새소리가 그리워졌고 할머니가 그리워졌습니다.     금철이는 베란다에 굳어진채 그냥 생각뿌리만 캐여갑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날 끔찍이 여기셨다구.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어졌구나. 배고팠지?》,《책가방이 우쩜 이리두 무겁능기…》하시면서 나때문에 늘 마음 아파하셨댔지…     엄마가 한국 떠나면서 세살난 금철이를 할머니한테 떠맡긴후로 금철인 내내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왔습니다. 학교에 붙게 되자 아빠는 시내에 데려다가 공부시키겠다고 벅벅 우기셨습니다. 그에 금철인 아예 발버둥질을 치면서 울어댔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대신해 사정사정해서야 겨우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대신 조건부를 달았습니다. 3학년을 읽은후면 무조건 시내로 전학시킨다는것이였습니다.     아니나다를가 금철이 4학년에 진급하게 되자(바로 작년 이맘때) 아빤 다짜고짜 전학수속을 다해놓고는 금철이를 홀쩍 시내학교로 옮겨놓았습니다. 한마디 얘기도 없이. 마치도 말 못하는 장기쪽 다루듯이 말입니다. 금철이는 이러는 아빠가 딱 싫었습니다.     키가 커갈수록 자기와 아빠사이에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긴 엄마가 곁에 없는 만큼 엄마구실 아빠구실을 다해줘야 할텐데 한가지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아빠입니다. 지난번 금철이 생일날에도 례와가 아니였습니다. 음식을 주문, 배달시켜놓고는 또 《바빠서…》하고 말꼬리를 달겠지요. 꼭 변명으로 들립니다. 아예 아빠한테 《바빠서…》란 상표딱지를 딱 붙여주었습니다.     간혹 할머니네 집에 갔더라도 두어시간도 못채우고 아빤 자리에서 튕겨일어납니다. 《바빠서…》는 이렇게 할머니한테도 불효합니다.     특히 지난 추석날에 있었던 일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말로 한심하고 기분 나쁩니다. 그날 아빠를 따라 처음으르 할아버지산소로 갔더랬습니다.     할머니네 집에서 오봉산산소까진 약 3리가량 됩니다. 거기에 이르러보니 벌써 숱한 사람들이 성묘를 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그러께 왔을 때보다 산자리가 많이 늘어났구나.》하시던 아빠가 글쎄 망연한 눈길로 사위를 두리번거리는것이였습니다.     《딱 이 부근이라 짐작되는데…겨우 3년철밖에 안되는데…》     이쪽저쪽 쓸어보시며 왔다갔다하시던 아빠가 한 묘지앞으로 다가가더니 《맞아. 분명히 이거야.》하면서 풀을 깎기 시작합니다.     벌초가 끝나자 제를 지내게 되였는데 그때 난데없이 한 아저씨가 다가서시더니 생뚱같이 건늬는것이였습니다. 분명 여긴 자기네 산자리라는겁니다.     아뿔싸, 일은 그만 크게 틀려진겁니다…     《저 못난 자식 보지, 제 애비 산자리도 못알아보는 후레자식 같으니라구…》     동네사람들이 비난하는것만 같습니다.     《너 이 놈아, 애비 사는 집마저 몰라보다니…그래두 내 아들이라 할수 있겄냐?》     할아버지도 대노하는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로 금철이는 아빠를 싫어하던데로부터 미워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자식도 부모도 모르는 《바빠서》, 어느 한곳 고와보이는데가 없습니다…       《얘, 아빠다. 얼른 좀 내려와봐.》     달음박질쳐 내려가보니 모여든 주민들속에 까만색 새 승용차가 두눈을 크게 뜨고 호기스레 엎드려있었습니다.     《얘, 이건 우리 자가용이다. 우리 차! 우리 집식솔이 되였지 뭐야. 이젠 썩 편리하게 되였구나. 그리구 네가 너무 늦어지거나 비오거나 할 때면 아빠가 마중갈수도 있게 됐지.》 아빠는 금철이의 손을 잡아흔들며 기쁨에 겨워 속삭이였습니다. 그러는 아빠의 눈에는 두줄기 눈물이 비살을 긋습니다.     이튿날아침 기어이 오늘아침만은 학교로 실어다주겠다는 호의에 금철이는 단마디로 사절해버렸습니다. 자랑을 하려는거라고 아이들이 우습게 볼거 같아서…     학교로 걸으면서 그는 또 할머니생각에 젖어들었습니다.     《할머닐 저 자가용에 모시고 시내를 한바퀴 쭈욱 돌면서 호사시켰으면 좋겠다. 음― 물론 내가 가이드로 나서야지…》     그럭저럭 겨우 하루수업이 매듭을 지었습니다. 한시급히 자신이 구워낸 아이디어를 할머니한테 전화로 알리고싶었습니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럴수가 없게 되였습니다. 학교확성기에서 전체 군악대들이 음악실에 집합하라는 호출령이 내린것입니다. 알고보니 시교에 복리원이 새로 섰는데 락성식을 한다는것입니다.     나팔대뿐만아니라 소고대고들도 따라나섰습니다.     현지에 이르자 가지각색 프랑카드들이 눈을 자극해왔습니다. 그것들은 수소풍선꼬리가 되여 반공중에서 흐느적입니다. 양걸대며 북과 새장구를 멘 로인들도 사람들속에 끼였습니다. 주석대에는 텔레비에서 보았었던 주정부의 책임자가 앉아있었는데 바로 그곁에 큼직한 붉은 꽃을 단 《바빠서》가 앉아있습니다.     아니… 아빠가 어떻게 저런 자리에…     금철이는 잔뜩 눈갓을 치켜올린채 낯선 사람 쳐다보듯 그 얼굴만 뚫어지듯 바라봅니다.     책임자어른의 연설에 이어 《바빠서》가 일어섰습니다. 그때 장내에서는 폭풍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저는 정부와 여러분들의 혜택으로 그리고 저의 안해의 후원으로 코리아김치공장을 꾸리여 손에 돈을 쥘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보다 값지게 쓸것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저한테는 칠순이 되는 어머님 한분이 계시는데 여직껏 따끈한 효성 한번 못올리고 도리깨아들로 살아왔습니다. 뒤늦게나마 어머님께 효성하는 어머님의 아들로 나라에 효성하는 나라의 아들로 되리라는 뜻을 굳히게 되였습니다. 이제부터 무릇 조국해방전쟁때 성스러운 싸움터에 나갔었댔는데 의지할 곳이 없는 로인님들과 자립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장애자들, 그리고 량부모 잃은 고아들은 우리 사회복리원에서 무료로 우혜를 받으며 살수 있게 되였습니다.》     《와―》 여기저기서 감동이 터집니다. 때를 놓칠세라 기자들은 샤타누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웬 로인 한분을 모시고 장내에 들어섰습니다.     《할머니―》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했습니다. 회장으로 들어서시는 할머니는 연신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십니다. 공식적인 대화가 끝나자 춤판이 펼쳐졌습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아빠가 금철이를 허망 들어올렸습니다. 아들의 볼에 자기 볼을 비벼댑니다.     《할머니께도 좋은 방 하나 꾸며드렸네라. 너도 종종 드나들수 있도록…》     《잉― 아빤 미워…》 금철이는 아빠 목을 꼬옥 그러안았습니다. 갑작스레 소리내여 울고싶었고 매달려 응석이라도 부리고싶었습니다.     새파란 하늘품에서 꽃보라가 흩날립니다. 폭죽소리 요란합니다. 북리원은 오늘 처음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여직껏 굳게 닫겨졌던 금철이의 마음의 철문도 드디여 열려가고있습니다. 빠끔히… 빠끔히…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