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빤 미워
전춘식
새파란 하늘품에서 고운 새 몇마리가 파닥이며 날아예고있었습니다. 모였다 헤여졌다 마치도 조형만들기를 하는것처럼 보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있던 시골에는 여러가지 새들이 참 많았었는데…뻐꾸기, 알락까치, 종다리, 메새…
갑작스레 새소리가 그리워졌고 할머니가 그리워졌습니다.
금철이는 베란다에 굳어진채 그냥 생각뿌리만 캐여갑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날 끔찍이 여기셨다구.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어졌구나. 배고팠지?》,《책가방이 우쩜 이리두 무겁능기…》하시면서 나때문에 늘 마음 아파하셨댔지…
엄마가 한국 떠나면서 세살난 금철이를 할머니한테 떠맡긴후로 금철인 내내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왔습니다. 학교에 붙게 되자 아빠는 시내에 데려다가 공부시키겠다고 벅벅 우기셨습니다. 그에 금철인 아예 발버둥질을 치면서 울어댔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대신해 사정사정해서야 겨우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대신 조건부를 달았습니다. 3학년을 읽은후면 무조건 시내로 전학시킨다는것이였습니다.
아니나다를가 금철이 4학년에 진급하게 되자(바로 작년 이맘때) 아빤 다짜고짜 전학수속을 다해놓고는 금철이를 홀쩍 시내학교로 옮겨놓았습니다. 한마디 얘기도 없이. 마치도 말 못하는 장기쪽 다루듯이 말입니다. 금철이는 이러는 아빠가 딱 싫었습니다.
키가 커갈수록 자기와 아빠사이에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가 가로놓여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긴 엄마가 곁에 없는 만큼 엄마구실 아빠구실을 다해줘야 할텐데 한가지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아빠입니다. 지난번 금철이 생일날에도 례와가 아니였습니다. 음식을 주문, 배달시켜놓고는 또 《바빠서…》하고 말꼬리를 달겠지요. 꼭 변명으로 들립니다. 아예 아빠한테 《바빠서…》란 상표딱지를 딱 붙여주었습니다.
간혹 할머니네 집에 갔더라도 두어시간도 못채우고 아빤 자리에서 튕겨일어납니다. 《바빠서…》는 이렇게 할머니한테도 불효합니다.
특히 지난 추석날에 있었던 일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말로 한심하고 기분 나쁩니다. 그날 아빠를 따라 처음으르 할아버지산소로 갔더랬습니다.
할머니네 집에서 오봉산산소까진 약 3리가량 됩니다. 거기에 이르러보니 벌써 숱한 사람들이 성묘를 하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그러께 왔을 때보다 산자리가 많이 늘어났구나.》하시던 아빠가 글쎄 망연한 눈길로 사위를 두리번거리는것이였습니다.
《딱 이 부근이라 짐작되는데…겨우 3년철밖에 안되는데…》
이쪽저쪽 쓸어보시며 왔다갔다하시던 아빠가 한 묘지앞으로 다가가더니 《맞아. 분명히 이거야.》하면서 풀을 깎기 시작합니다.
벌초가 끝나자 제를 지내게 되였는데 그때 난데없이 한 아저씨가 다가서시더니 생뚱같이 건늬는것이였습니다. 분명 여긴 자기네 산자리라는겁니다.
아뿔싸, 일은 그만 크게 틀려진겁니다…
《저 못난 자식 보지, 제 애비 산자리도 못알아보는 후레자식 같으니라구…》
동네사람들이 비난하는것만 같습니다.
《너 이 놈아, 애비 사는 집마저 몰라보다니…그래두 내 아들이라 할수 있겄냐?》
할아버지도 대노하는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로 금철이는 아빠를 싫어하던데로부터 미워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자식도 부모도 모르는 《바빠서》, 어느 한곳 고와보이는데가 없습니다…
《얘, 아빠다. 얼른 좀 내려와봐.》
달음박질쳐 내려가보니 모여든 주민들속에 까만색 새 승용차가 두눈을 크게 뜨고 호기스레 엎드려있었습니다.
《얘, 이건 우리 자가용이다. 우리 차! 우리 집식솔이 되였지 뭐야. 이젠 썩 편리하게 되였구나. 그리구 네가 너무 늦어지거나 비오거나 할 때면 아빠가 마중갈수도 있게 됐지.》 아빠는 금철이의 손을 잡아흔들며 기쁨에 겨워 속삭이였습니다. 그러는 아빠의 눈에는 두줄기 눈물이 비살을 긋습니다.
이튿날아침 기어이 오늘아침만은 학교로 실어다주겠다는 호의에 금철이는 단마디로 사절해버렸습니다. 자랑을 하려는거라고 아이들이 우습게 볼거 같아서…
학교로 걸으면서 그는 또 할머니생각에 젖어들었습니다.
《할머닐 저 자가용에 모시고 시내를 한바퀴 쭈욱 돌면서 호사시켰으면 좋겠다. 음― 물론 내가 가이드로 나서야지…》
그럭저럭 겨우 하루수업이 매듭을 지었습니다. 한시급히 자신이 구워낸 아이디어를 할머니한테 전화로 알리고싶었습니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럴수가 없게 되였습니다. 학교확성기에서 전체 군악대들이 음악실에 집합하라는 호출령이 내린것입니다. 알고보니 시교에 복리원이 새로 섰는데 락성식을 한다는것입니다.
나팔대뿐만아니라 소고대고들도 따라나섰습니다.
현지에 이르자 가지각색 프랑카드들이 눈을 자극해왔습니다. 그것들은 수소풍선꼬리가 되여 반공중에서 흐느적입니다. 양걸대며 북과 새장구를 멘 로인들도 사람들속에 끼였습니다. 주석대에는 텔레비에서 보았었던 주정부의 책임자가 앉아있었는데 바로 그곁에 큼직한 붉은 꽃을 단 《바빠서》가 앉아있습니다.
아니… 아빠가 어떻게 저런 자리에…
금철이는 잔뜩 눈갓을 치켜올린채 낯선 사람 쳐다보듯 그 얼굴만 뚫어지듯 바라봅니다.
책임자어른의 연설에 이어 《바빠서》가 일어섰습니다. 그때 장내에서는 폭풍우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저는 정부와 여러분들의 혜택으로 그리고 저의 안해의 후원으로 코리아김치공장을 꾸리여 손에 돈을 쥘수 있게 되였습니다. 이 돈을 어떻게 보다 값지게 쓸것인가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저한테는 칠순이 되는 어머님 한분이 계시는데 여직껏 따끈한 효성 한번 못올리고 도리깨아들로 살아왔습니다. 뒤늦게나마 어머님께 효성하는 어머님의 아들로 나라에 효성하는 나라의 아들로 되리라는 뜻을 굳히게 되였습니다. 이제부터 무릇 조국해방전쟁때 성스러운 싸움터에 나갔었댔는데 의지할 곳이 없는 로인님들과 자립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장애자들, 그리고 량부모 잃은 고아들은 우리 사회복리원에서 무료로 우혜를 받으며 살수 있게 되였습니다.》
《와―》 여기저기서 감동이 터집니다. 때를 놓칠세라 기자들은 샤타누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웬 로인 한분을 모시고 장내에 들어섰습니다.
《할머니―》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했습니다. 회장으로 들어서시는 할머니는 연신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으십니다. 공식적인 대화가 끝나자 춤판이 펼쳐졌습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아빠가 금철이를 허망 들어올렸습니다. 아들의 볼에 자기 볼을 비벼댑니다.
《할머니께도 좋은 방 하나 꾸며드렸네라. 너도 종종 드나들수 있도록…》
《잉― 아빤 미워…》 금철이는 아빠 목을 꼬옥 그러안았습니다. 갑작스레 소리내여 울고싶었고 매달려 응석이라도 부리고싶었습니다.
새파란 하늘품에서 꽃보라가 흩날립니다. 폭죽소리 요란합니다. 북리원은 오늘 처음으로 문을 열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여직껏 굳게 닫겨졌던 금철이의 마음의 철문도 드디여 열려가고있습니다. 빠끔히… 빠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