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춘식
http://www.zoglo.net/blog/quanchunzhi 블로그홈 | 로그인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아동소설

전체 [ 3 ]

3    고요한 늪 댓글:  조회:745  추천:0  2013-11-21
아동소설   고요한 늪   우 영   내가 이 자그마한 현성으로 이사온지는 오래지 않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에 편리하도록 공기가 맑고 경치가 일품인 시내의 동쪽 변두리에 일부러 집을 잡았다. 이곳에는 쏟아지는 해빛에 거울면같이 번뜩이는 손거울모양의 늪이 있었던것이다. 매일 이맘때면 나는 화구들을 걷어갖고 늪가로 나가군 한다. 내가 매일 그리는 그림들은 거개가 자연에 속하는것들이였다. 옥으로 빚어서 걸어놓은듯한 하늘과 그리고 목화를 흐트러놓은듯한 구름송이들, 그외에도 화초들이며 꽃들이며가 나의 눈속으로 빨려들어 모델로 되여주군 한다. 하지만 요즘에 와서 내가 그리는 그림에는 변화가 일게 되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었는데 새로운 환경이 나더러 초상화를 그리는데로 취미를 바꾸게 한것이다. 나는 늪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댕그렁히 올라앉은 낡아버린 한 판자집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는 지금 그 판자집 문이 열리기만 내심 기다리고있는터이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원래의 시간보다 5분간이나 넘쳤는데도 그 문은 열리지 아니하고 꾹 닫긴대로이다. 초조하고 불안스럽기만 하다. (혹시 의외의 일이라도 생긴게 아닐가?) 하지만 나는 애써 자신을 달래여본다. 의외의 일이란 절대로 있을수 없으니 내 계흭대로 일은 꼭 잘 되여나갈거라는 믿음부터 앞세운다. 바로 이때다. 그 판자집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휠체어가 사르르 미끄럼쳐 나온다. 그 휠체어에는 유백색의 원피스를 무릎팍까지 내리드리운 여라문살되여 보이는 한 처녀애가 그린듯이 앉아있다. 휠체어는 곧추 늪가로 굴러오더니 면바로 나의 맞은켠에 와서 멈춰선다. 그제야 나는 미처 차려놓지 못한 화구를 바삐 꺼내느라 부산을 피운다. 손이 닿는대로 갤판에 에노구를 쭉쭉 짜놓는다. 나는 유심히 그애의 얼굴을 뜯어보며 바지런히 화필을 놀린다. 머리우에는 태양모를 살짝 얹었는데 이마 절반을 가리운 곱실곱실한 머리가 어깨우로 파도쳐 흘러내리고있다. 그 머리결을 따라 두가닥 은빛 댕기가 바람에 나붓거리고있다. 이마 아래에는 한쌍의 눈이 자리를 잡았는데 살풋이 감고있는건지 다소곳이 내리깔고 수면을 내려다보고있는지를 똑똑히 가려볼수가 없다. 유난히 길다란 속눈섭이 눈동자를 거의 다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의 눈으로 용케도 그 속눈섭뒤에 숨겨진 맑다못해 투명한 한쌍의 눈을 보이는듯이 종이에 올릴수 있었다. 연후에는 계속하여 눈정신을 가다듬어 오똑 솟은 코마루와 그리고 조용히 꼭 닫겨진 죄꼬만 입을 그려넣었다. 하지만 보동보동하여 다치면 당금 톡 하고 익어 터질듯한 그애의 량볼만은 수십번이나 지우고 그리고 하며 애를 떼였지만 좀체로 맘과 같이 나와주질 않는다. 나는 아예 필을 휙 던져버리고는 무심코 턱을 고이고 앉아 시름없이 그애를 뜯어보기 시작한다. 천사보다 더 천사다운 이 처녀애를 화판에 그대로 옮겨오지 못하는것이 안스럽기만 하다. 그 처녀애는 마치도 내가 자기를 모델로 삼고있다는걸 눈치라도 챈듯이 까닥 미동을 않고 있다. 그 무슨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듯 아니면 잔뜩 속상하여 수심에 깊이 빠져있는듯. 나는 휠체어에 비스듬히 기대여진 쌍지팽이를 보면서 나름대로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저 천사는 태여나서부터 불구의 몸이였을가? 아니면 혹시 어느날 느닷없이 교통사고라도 당하여 저렇게 된걸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그애의 얼굴에 비낀 슬픔이 한눈에 뚜렷이 보여온다. 아무렴, 저렇게 어린 나이에 저런 모진 불행을 당하였으니 어찌 괴롭지 않고 슬프지 않으랴. 친구마저 곁에 없이 저렇게 홀로 앉아 하루해를 보내자니 얼마나 지루하고 또한 외로울가? 문득 내가 그애의 친구로 되여줄수 있지 않을가 하는 깨달음이 맞혀왔다. 부랴부랴 화구들을 거두고나서 곧추 그애를 향해 저벅저벅 걸음을 놓는다. 그애 가까이로 다가갔는데도 그애는 머리도 돌리잖는다. 원래의 자세대로 눈 한번 깜박 안하고 물속을 들여다보고있다. (이 물속에 애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그 무엇이라도 있는걸가? 아니야, 애는 틀림없이 자기의 이쁜 모습을 물에 비추어보는거겠지.) 정작 그애를 마주하게 되자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더듬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만 쩝쩝 다신다. 자칫 말을 잘못 번지였다간 도리여 상대를 더욱 괴롭힐수 있기때문이다. 허니 천만 신중할밖에 없다. 이 말 저 말 고르다가 살가운 말투로 조심스레 묻는다. "얘야, 네가 심심해 하는것 같은데 내가 어디 친구로 되여줄가?" 그애는 사뭇 의아스러워 하는 눈길로 나를 쓸어보더니 변화라곤 없는 담담한 표정이다. "아저씨는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이죠? 일이 많을텐데 언제 저랑 함께 놀 사이가 다 있겠나요?" "그런건 다 괜찮아. 오늘은 하던 일을 미루어버리고 너랑 놀아주려는데 너 날 친구로 받아줄수 있겠니?" "아저씨는 제가 불쌍해보인거죠? 그렇죠?" 흑보석같이 초롱초롱한 눈이 정면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내속마음까지 속속들이 꿰뚫어보고있는듯 했다. 마치도 어디서든지 자기의 말이 옳았다는걸 증명이라도 해내려는듯이. 나는 금시 벙어리가 되여버렸다. 내가 어느 말에서 꼭 실수를 저지른것만 같아 등에서 식은땀이 쫙 내돋는다. 변명거리를 찾느라고 허둥대는데 그애가 뜻밖에도 코를 달아매며 배시시 웃어보이질 않겠는가. 그 웃음이 뭘 뜻하는지 미처 어림짐작을 하기도 전에 처녀애는 수면을 가르키며 해석을 해오는것이였다. "나한테는 지금 다른 친구가 필요없어요. 봐요, 쟁글거리는 해님이 물에 내려 나랑 함께 놀고있잖아요? 해님이 방글방글 웃으면 나도 따라서 방글방글, 내가 새물새물 웃으면 또 해님도 날 따라 새물새물. 우린 웃기를 좋아하는 쌍둥이 친구래요. 어때요? 아저씨도 부럽지요?" 나는 그만에 할말을 잃고말았다. 내 짐작은 빗나가도 한참이였다. 쌍지팽이나 휠체어만 보고서 나름대로 그애의 속내를 가볍게 진단해버린 자신이 보잘것 없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대단하구나, 처녀애야, 그렇게라도 불우한 현실을 이겨내는거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속으로 그애가 늘 오늘처럼 유쾌하게 보낼수 있기만을 내심 바라고 또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램은 또 한번 빗나갔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번 만남이 있은 며칠후 나는 늪가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있는 그 처녀애와 맞닥뜨리게 된것이였다. (아무리 쇠같이 강한 아이라 하여도 필경은 애여린 불구의 몸이 아닌가?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했으니 저런 경우에 띄이고 보면 심리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여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속이 풀릴것 같지 않았다. 내가 건네일 말들이 그애한테 구경 얼마만큼의 위안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지난번의 교훈을 살려 이번에는 각별히 신경을 조인다. 화구들을 이리로 저리로 옮기면서 그림으로 그릴만한 대상물을 찾는척 꾸며보인다. 그러면서 은근 슬쩍 그애한테로 접근해간다. 했지만 그애는 오도카니 앉아서 나의 움직임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여오질 않는다. 그애의 주의력을 끌려면 방법을 대여야 했다. 돌멩이 하나를 주어서 물속에 "철벙!"던졌다. 동그란 파문이 사처로 퍼져간다. 그제야 그애는 약간 놀라는듯한 눈매로 내쪽을 흘깃 건너다본다. 어줍은 표정을 보여오더니 급급히 눈가에 맺힌 이슬을 훔치는것이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눈물로 얼룩이 간 얼굴을 가리우고있었다. "얘야, 너한테 꼭 무슨 번민거리라도 생겼나보지? 네가 이 아저씨를 믿는다면 나한테 속시원히 터놓아봐. 내가 도울수 있는데까지 돕고싶구나." 그애는 입술을 옴찔거릴뿐 응답이 없다. 내쪽에서 진심이 되여 나선다면 어지간히는 따라주려니 여겼댔는데 반응은 예상밖이다. 고마워할 대신 되려 눈에 동그란 물음표를 띄우며 물어온다. "아저씨는 참 좋은 분이셔요. 그 말씀에 마음이 훈훈해나요. 근데 방금전에 아저씨는 왜서 돌멩이를 물에 던져 내 기분을 잡치게... " "아차, 거참 안됐구나. 사실은 네 주의력을 끌려구 그랬던거야. 네가 슬피 울고있는걸 보니 그저 스칠수가 없어서...그 아픈 마음을 다독이여주고 싶었구나." "잉-아저씬 아마도 오해를 한것 같네요. 누가 슬피 울었다고 그래요?" 분명 눈물을 떨구는걸 보았는데 아닌보살이다. 그럼 이건 또 웬 감투끈이람? 어정쩡해서 멀커니 그애 표정만 살피는데 그애가 소리내여 깨드득 웃질 않겠는가. 그럴수록 미궁에 들어서기라도 한듯 더욱 멍청해진다. (울던 애가 웃다니 제쪽에서 오히려 나를 위안이라도 하려는 심사일가?) 내 의혹을 풀어주려는듯 그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아저씨는 저에 대해 무척 궁금하시죠? 전 태여나자부터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불구였어요. 학교문에도 못가보았지만 전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안다구요. 전에 한 남자애가 이 부근에 살았댔지요. 그애가 나한테 글을 배워줬거든요. 녀자애들처럼 말쑥하게 생긴 애였는데 목소리마저 은구슬을 굴리듯 듣기 좋았어요. 그애는 나를 즐겁게 해주느라고 이 늪에 나와선 물수제비놀이도 함께 놀아주고 또 종이배랑 띄우며 '돼지의 꿈'이라는 노래를 배워주기도 하였댔어요. 간혹 가다가 내 치마에 물을 뿌리여 흠뻑 적셔놓기도 하였는데 그때면 난 물총으로 사정없이 쏴쏴-그애한테 물벼락을 안기거든요. 그 물총은 물론 그애가 사준거였어요. 근데 그애는 이태전에 이 고장을 떠나 먼데로 이사를 갔지뭐예요. 방금전에도 이런 일들을 돌이키면서 너무너무 행복해서 울었던거예요. 때때로는 그애가 그리워져서 울 때도 있긴 하지만요..." 머리속이 멍해졌다. 나는 아무말도 못한채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였다. 눈부신 태양은 저 높은 하늘에 떠서 대지에 골고루 금가루를 뿌려주고있었다. 해님과 "웃기를 잘하는 쌍둥이 형제"라던 그애 말이 상기되여왔다. 하다면 이 처녀애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밝은 태양이 간직되여 있는것이 아닐가?! 솔솔 바람이 불어와 수면을 간질러 고기비늘 같은 잔물결을 일으키고있다. 물고기들이 꼬리치며 노는 모습이 언뜰언뜰 보여온다. 나무들도 너울거리며 환회를 전해오고있다. 때를 같이 하여 어데선가 새들이 도레미파쏘라시를 뽑으며 발성련습을 하는 소리와 연한 풀들의 반갑다고 인사하는 소리가 어우러져 내귀전으로 흘러든다. 여태껏 단 한번도 본적 없었던 장면들과 단 한번도 들어본적 없었던 아름다운 선률에 나는 또 한번 멍청이가 되여 우두커니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꼬박 반년이란 시간의 품을 들여서야 나는 비로소 그 처녀애를 담은 초상화를 완성하게 되였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은 그림이였지만 그 그림은 내가 제일 오랜 시간을 끌면서 제일 알심들여 그린 제일 소중한 그림인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후날 나는 더는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수준으로 말해도 원래의 초상화를 뛰여넘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지금도 내 방의 벽중심에는 단 한폭으로 끝을 맺은 그 초상화가 반듯이 모셔져있다. 이 그림이 걸린후로부터 방안에는 이상이 생겼다. 밝음도가 훨씬 높아진것이다. 맑은 날 흐린 날 할것없이...
2    할아버지와 어린 염소 댓글:  조회:619  추천:0  2013-10-09
   아동소설                                                   할아버지와 어린 염소                                                                                              전 춘 식      외롭게 홀로 살아가는 한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아침녘마다 부근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는 아침밥을 짓습니다. 공원안의 한켠에는 동물들이 살고있는 동네도 있습니다. 매번 할아버지는 이 곳을 찾아 간밤에도 요것들이 잘 잤나 인사를 하는것이 습관으로 굳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할아버지는 곧추 염소들이 들어있는 우리로 다가갑니다. 워낙은 세마리였댔는데 어찌하여 한마리가 불었습니다. 다시 여겨보니 보이지 않던 어린 염소가  겁기 어린 눈을 끔벅이며 한켠에 우두커니 서있습니다. 마침 사양원이 나와서 먹이를 줍니다. 할아버지가 묻는 말에 사양원은 이 어린 염소는 어제 새로 사들인건데 낯설어 그러는지 잘 먹지도 않고 뛰놀지도 않아서 걱정이라고 덧붙입니다. 할아버지는 어미곁을 떨어져 온 그 어린 염소가 한무리에도 끼이지 못하는것이 너무 애처로와 보입니다.    할마버지가 조심스레 다가가니 그 어린 염소는 깡똥껑똥 뛰여서 저만치로 달아납니다. 무서운 적수라도 만난듯한 그런 공포에 질린 눈빛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맥을 놓지 않고 다시 어린 염소를 따라갑니다. 이렇게 몇번을 반복합니다. 풀을 뜯어 흔들어보였더니 드디여 그 어린 염소는 한발자국 한발자국 다가섭니다.    "이 어린것아, 이제 곧 저 애들과 친구로 사귀게 될거다. 너부터 저 애들이랑 사귀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겠구나."    할아버지는 말씀하시면서 어린 염소의 잔등이랑 머리랑 싹싹 쓸어줍니다. 어느새 그 마음을 알아본 어린 염소도 한사코 할아버지의 손안으로 몸을 들이밉니다.    그날부터 매일 아침 이맘때면 할아버지는 큰 약속이라도 해놓은듯 어린 염소를 찾아옵니다. 어린 염소도 내처 할아버지가 나타나기만 기다리다가 일단 할아버지가 보이면 반가와라 내달아옵니다. 이제껏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는 자기와 그림자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자기를 기다려주는 친구가 생겼다는것이 꿈만 같기도 합니다. 어린 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곁에 엄마도 친구도 다 없어져서 서럽고 불안했드랬는데 이런 할아버지 친구가 생겨나서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와 어린 염소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꼭꼭 하루 한번씩 만납니다. 어린 염소를 만나면 할아버지는 꼭꼭 어제 있은 일을 들려줍니다.    "어제는 내가 기침이 더했댔어. 약을 사다가 먹고서 누웠는데 좀체로 낫지 않겠지. 그때 문득 너랑 놀던 생각을 하니 글쎄 기적같이 기침이 뚝 멎질 않겠니?"    어린 염소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다 알아들은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앞발을 살짝 들어서 할아버지 손에 놓아줍니다. 그 거동에 할아버지는 기뻐서 껄껄 소리내여 웃습니다. 오래만에 소리를 내며 웃어본 할아버지입니다.    비 내리던 날도 눈 내리던 날도 할아버지는 꼭꼭 찾아오십니다. 그새 어린 염소는 체중도 늘었고 키도 몰라보게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 갑작스레 할아버지가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할아버지는 그냥 보이질 않습니다.    난데없이 한 남자애가 뽀르르 달려오더니 어린 염소한테 쪽지를 흔들어보입니다.    "우리 웃층에 사시는 할아버지가 이걸 너한테 가져다가 읽어주라고 당부하셨어."    그러더니 그애는 한글자 한글자 읽어내려갑니다.    -어린 염소야. 넌 이 세상에서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친구였어. 너랑 사귄지도 어느덧 만 1년을 넘기는구나. 그동안 날 행복하게 해준 네가 너무 고맙구나. 난 죽어서 천국에 가서라도 널 축복할거다. 잘 먹고 잘 뛰놀면서 튼튼하고 어엿한 젊은이로 되거라!    남자애가 글을 다 읽었는데도 어린 염소는 하염없이 할아버지가 걸어오시던 길만 바라봅니다. 아마도 편지의 내용을 깨치지 못한 모양입니다. 배꽃같은 아이얀 눈송이가 소리없이 내리여 길을 덮습니다. 잠간새에 길은 어느 아이가 고무로 살살 지워버린듯 흔적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눈이 멎으면 다시 길이 생기게 될거고 그러면  할아버지가 또 예전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어린 염소는 철없는 생각을 굴려갑니다...
1    [아동소설] 꽃이 웃는 곳 댓글:  조회:2083  추천:1  2011-07-27
아동소설                               꽃이 웃는 곳                                                                         전춘식     “똑똑, 똑똑똑…” 들으나마나 귀에 익은 노크소리였다. “똑똑, 똑똑똑…” 집안에서 응답이 없자 노크소리가 또 울렸다. 보나마나 내 동생 춘석이의 딱 친구 권호일 것이다. 사실 권호는 그 정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하였다. 일곱 살에, 그나마 학교문도 못가보고 할아버지 몰래 채석장으로(남포가 어떻게 터지는가) 구경 갔다가 그만 의외의 사고로 두 눈이 실명되었던 것이다. 권호는 우리 집과 벽 하나를 사이 둔 이웃집에 살고 있는데 늘 이맘때면 어김없이 손 더듬질을 하면서 나의 동생을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면 나의 동생 춘석이도 권호를 열정적으로 맞아주며 학교에서나 마을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을 낱낱이 들려주며 그 애의 둘도 없는 말동무로 되어주었다. 때로는 자기도 몇 글자밖에 모르는 처지이면서도『꼬마선생』이 되여『가갸거겨』도 배워주고 더하기 덜기도 배워주었다. 어느 한번, 나는 윗방에서 숙제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호와 춘석이가 나누는 이야기에 끌려들어갔다. 그때 춘석이는 권호의 손가락을 폈다 꼽았다 하며 덜기를 배워주고 있었다. 권호는 춘석이가 부르는 수대로 손가락을 꼽았다 폈다하다가 불쑥 말을 꺼내었다. “얘, 춘석아, 우린 똑같이 열한 살 동갑인데 넌 어쩌면 아는 것이 이리도 많니? 난 아직도 수자란 어떤 것이고 더한다는 말이랑 던다는 말이랑 잘 모르겠구나!” 얼핏 들어봐도 철이 든 듯싶은 춘석이의 말이었다. 헌데 요 며칠째 나는 춘석이가 일부러 권호를 멀리하고 있음을 낌새 챌 수 있었다. 춘석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취 없이 삽짝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는 책가방을 집안에 뿌려 던지기 바쁘게 되돌아져 발끝걸음으로 살랑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아마 청각이 예민한 권호에게 자기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나도 하도 이상하여 춘석이를 붙잡고 리유를 물었다. 그러니 춘석이는 권호가 아는 것이 없어 서로 말을 주고받을 멋이 없는데다가 무슨 유희나 놀자 해도 그 애가 머리만 살래살래 젖는 바람에 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권호하고 노는 건 제 그림자보고 노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앞 못 보는 권호가 무슨 유희인들 펀펀한 애들과 동무하여 놀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 권호가 춘석이가 우정 피하는 눈치도 모르고 또 찾아 온 것이었다. “춘석아, 뭘 하니? 나와 같이 놀자!” 나는 문을 열고 나가 해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권호, 춘석인 방금 목욕하려 강으로 갔는데 좀 있으면 돌아올 거다. 그때 와서 함께 놀렴아!” “목욕하러 강으로 갔다구? 오늘은 그리 덥지도 않은데…응, 그래 강에서 노는 것도 영 재미있는 놀음이니깐!” 춘석이가 없다니 권호는 한풀 죽어서 대답하였다. 문설주에 비스듬히 기대어 좀처럼 떠날 염을 하지 않는 권호를 보자 일순간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얘, 너 혼자 기다리기 갑갑하겠는데 내가 그새 널 동무해주마. 어서 들어오렴.” “야, 좋아라, 형은 숙제 다 했나? 난 절대 형을 방해 안 할 테야.” “숙젠 거의 다 했어. 넌 잠간만 기다려.” “형, 난 여기에 가만히 앉아있을래. 형, 나한테「서유기」그림책을 보게 해줘!” (아니, 네가 그림책을 보겠다고?)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없이 책꽂이에서 그림책을 뽑아내어 권호 손에 쥐어주었다. “형, 난 이 책을 진작 다 외웠어. 춘석이가 한 장씩 번지며 몇 번 이야기하는 걸 몽땅 기억했어. 지금은 나절로 번지면서 보는 듯이 줄줄 말할 수 있어. 이제 내 동생 원심이가 좀만 크면 걔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 (참, 그놈의 남포가 무정도 하지. 저토록 영리한 애가 저런 불행을 당하다니…) 나는 마음이 쓰리여 연필을 쥔 채 권호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얘, 권호, 오늘 이 형이 널 데리고 바람 쏘이러 갈까?” “날? 형이?” “그래! 널 자전거에 태우고… 시원한 강변에 데려다줄게!” “야, 좋네! 좀 있다가 엄마가 일 밭에서 돌아오면 형이 날 자전거에 태워줬다고 자랑할 테야. 그러면 울 엄마도‘오, 그래?’라고 하면서 기뻐 야단일거야!” 나는 권호를 자전거짐받이에 앉히고 대문을 나섰다. 씽씽! 자전거바람에 더위도 얼마간 덜어진 것 같았다. “얘야! 그 앨 데리고 어디로 가느냐?” 백양나무 그늘 밑에 앉아 한담하던 이웃집 할머니의 물음에 권호가 내 먼저 앞질러 대답하였다. “우린 먼데로 가요. 저기 강변에도 가보고요.” 마치 전국유람이나 떠난 듯 신바람이 나한다. “형, 어디까지 왔지?” “동구 밖을 벗어났어.” “무엇이 보이나?” “커다란 홰나무가 한대 있어.” “몇 살이나 됐을까?” “음, 아마… 늙은 나무니깐 좀 나이 있겠지.” 내가 꺽꺽거리며 대답하자 권호가 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울 엄마가 그러던데 이 홰나무는 벌써 50살도 더 먹었대. 이 나무의 껍질은 터실터실해도 나뭇가지는 아주 무성하여 고운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재미나게 노는 곳이래.” 권호는 기분 좋은지 나의 뒤 잔등에 종 주먹질하며 제풀에 웃어댔다.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자전거는 점차 속력이 떠졌다. 나는 힘겹게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형, 몹시 힘들지? 날 내려 걷게 해줘. 한손으로 자전거만 잡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어.” 내가 안 된다고 딱 잡아떼니 권호는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꼭 그러안았다. 내가 계속 씩씩거리며 자전거를 타니 권호는 답답한지 또 물었다. “여기가 어디나?” 아무리 사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띄는 표적이 없는지라 그저 언덕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나의 한마디 말에 권호가 손뼉까지 짝짝 치며 말하였다. “옳아, 여기가 바로 울 엄마가 항상 말하던「고향의 언덕」이야.” 권호는 신이 나서 노래까지 불렀다. 봄이면 파란 민들레 돋고 여름이면 빨간 해당화 피는 동년의 꿈 실은 고향의 언덕아 오늘도 네 모습이 그립구나. “이건 울 엄마가 배워준 노래야.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난 진작부터 여기 와서 한번 직접 보고 싶었어. 다행히 오늘 형이 나를 도와준 덕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거든.” 권호는 등뒤에서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천진하면서도 유치한 말에 나는 그저 씩 웃어버렸다. 그래도 권호는 개의치 않고 의연히 자기의 기분에 젖어있었다. 드디어 언덕을 내려 강가로 왔다. 우리는 물녘에 쭈크리고 앉아 세수를 하고는 두발을 시원하게 물에 잠그고 나란히 앉았다. “형, 이 물은 어디로 흘러가나?” “이 물은 저 아래 산굽이를 에돌아 끝없이 흐르고 흘러…음 결국엔 큰 바다에 흘러들 거야.” 나는 신통한 대답을 줄 수 없었다. 나 자신도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모르는 판인 데야. “아니, 형, 왜 그리 얼떨떨하게 말하나?” 권호는 놀란 기색을 지으며 바투 들이댔다. “얼떨떨하긴 뭐가 얼떨떨하단 말이니? 이 물은 저기에 있는 논판에 흘러들었다가 구룡산 굽이를 에돌아 벌방으로 냅다 빼는데… 내가 어떻게…” “그만…그만…” 권호는 낯이 새빨개나며 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형, 제발 날 속이지 말어. 난 다 알고 있어. 이 물은 곧바로 저기 넓다란 호수에 흘러들고 있지. 호수에는 잉어, 붕어, 초어들이 헤어 다니고 호수둘레엔 빨갛고 노랗게 꽃들이 방글방글 웃어주고… 호수 물에는 꽃뿐만 아니라 잔디밭에서 풀을 뜯는 금송아지그림자가 비껴있고…” 나는 그의 환경묘사에 입을 딱 벌렸다. “얘, 넌 보지도 못하고 상상으로 말하는구나. 난 본 것대로 말하는데…” “아니야, 형은 왜 날 얼리려고 만드나? 이건 우리 엄마가 직접 가리키면서 알려준 건데… 나도 저기 있는 호수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돼. 형은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라는 말에 잔뜩 화가 치민 나는 버럭 성을 내고야말았다. “옳다. 그럼 너 혼자 여기서 콱 봐라! 난 간다! 난 가겠다.” 나는 자전거를 밀고 신작로 쪽으로 걸어갔다. 한번 혼뜨검을 내여 그 애가 더는 콧대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심사에서였다. “형, 형, 가지 마!” 나는 권호의 부름소리를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였다. “형, 형이 먼저 가면 난 어떡해? 형, 왔던 김에 좀 더 보게 해줘, 응?” 떨리는 듯이 울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결국 발목을 잡히고야 말았다. 돌아다보니 권호의 어깨가 달싹이는 것 같았다. 분명 울고 있으리라! 제자리에 굳어져버린 나는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 애는 종래로 거짓말을 하는 애가 아니다. 헌데 오늘은 왜 생뚱 같은 말만 할까? 보지도 못하는 애가 없는 것도 있다고 하면서 공연히 우겨대며…뭐 어머니가 그러더라구?… 허튼소리, 걔 어머니가 그런 쓸데없는 거짓말을 했을라구…) 쬐고만 애가 벌써 부모까지 곁들어가며 허망 불어대는 꼴이 아니꼽게만 느껴졌다. 나는 권호를 내버려둔 채 돌아가려고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다. 그래도 사유만은 쉬지 않고 돌았다. (만약 걔 어머니가 정말 그렇게 말하였다면…고기떼, 금송아지, 울긋불긋 핀 꽃…왜 근본 없는 말을 하였을까?) 순간 머리를 탁 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 워낙 이런 일이였구나. 난 왜 앞 못 보는 권호한테 기쁨과 광명을 줘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 하였을까?) 갈마드는 자책감에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어졌다. 나는 지체할세라 자전거를 돌려 권호에게로 달려갔다.  “권호, 난 아까 거짓말을 했댔어. 난 네가 모르는가 하고 허망소리만 했어. 네가 말한 것이 모두 옳아. 저기 커다란 호수에는 팔뚝 같은 고기들이 헤엄치고 그 언덕 풀밭에서는 금송아지가 풀을 뜯고 또 아름다운 꽃들이 방글방글 웃으며 반겨주고…” 웃으면서 말하는 나의 두 눈에서 홀연 맑은 이슬 두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권호는 언제 훌쩍거렸는가 싶게 나의 목에 동동 매달렸다. “형, 난 형이 꼭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그래? 아무렴! 형이라면 응당 형다워야지!” 나로서도 무슨 용기에 그렇게 말했던지… 어쨌든 권호의 마음에 반겨 웃는 꽃만을 안겨 주리라.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