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소설
꽃이 웃는 곳
전춘식
“똑똑, 똑똑똑…”
들으나마나 귀에 익은 노크소리였다.
“똑똑, 똑똑똑…”
집안에서 응답이 없자 노크소리가 또 울렸다.
보나마나 내 동생 춘석이의 딱 친구 권호일 것이다.
사실 권호는 그 정상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불쌍하였다. 일곱 살에, 그나마 학교문도 못가보고 할아버지 몰래 채석장으로(남포가 어떻게 터지는가) 구경 갔다가 그만 의외의 사고로 두 눈이 실명되었던 것이다.
권호는 우리 집과 벽 하나를 사이 둔 이웃집에 살고 있는데 늘 이맘때면 어김없이 손 더듬질을 하면서 나의 동생을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면 나의 동생 춘석이도 권호를 열정적으로 맞아주며 학교에서나 마을에서 보고들은 이야기들을 낱낱이 들려주며 그 애의 둘도 없는 말동무로 되어주었다.
때로는 자기도 몇 글자밖에 모르는 처지이면서도『꼬마선생』이 되여『가갸거겨』도 배워주고 더하기 덜기도 배워주었다.
어느 한번, 나는 윗방에서 숙제를 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호와 춘석이가 나누는 이야기에 끌려들어갔다.
그때 춘석이는 권호의 손가락을 폈다 꼽았다 하며 덜기를 배워주고 있었다. 권호는 춘석이가 부르는 수대로 손가락을 꼽았다 폈다하다가 불쑥 말을 꺼내었다.
“얘, 춘석아, 우린 똑같이 열한 살 동갑인데 넌 어쩌면 아는 것이 이리도 많니? 난 아직도 수자란 어떤 것이고 더한다는 말이랑 던다는 말이랑 잘 모르겠구나!”
얼핏 들어봐도 철이 든 듯싶은 춘석이의 말이었다.
헌데 요 며칠째 나는 춘석이가 일부러 권호를 멀리하고 있음을 낌새 챌 수 있었다. 춘석이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취 없이 삽짝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는 책가방을 집안에 뿌려 던지기 바쁘게 되돌아져 발끝걸음으로 살랑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아마 청각이 예민한 권호에게 자기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나도 하도 이상하여 춘석이를 붙잡고 리유를 물었다.
그러니 춘석이는 권호가 아는 것이 없어 서로 말을 주고받을 멋이 없는데다가 무슨 유희나 놀자 해도 그 애가 머리만 살래살래 젖는 바람에 흥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권호하고 노는 건 제 그림자보고 노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앞 못 보는 권호가 무슨 유희인들 펀펀한 애들과 동무하여 놀 수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 권호가 춘석이가 우정 피하는 눈치도 모르고 또 찾아 온 것이었다.
“춘석아, 뭘 하니? 나와 같이 놀자!”
나는 문을 열고 나가 해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권호, 춘석인 방금 목욕하려 강으로 갔는데 좀 있으면 돌아올 거다. 그때 와서 함께 놀렴아!”
“목욕하러 강으로 갔다구? 오늘은 그리 덥지도 않은데…응, 그래 강에서 노는 것도 영 재미있는 놀음이니깐!”
춘석이가 없다니 권호는 한풀 죽어서 대답하였다.
문설주에 비스듬히 기대어 좀처럼 떠날 염을 하지 않는 권호를 보자 일순간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얘, 너 혼자 기다리기 갑갑하겠는데 내가 그새 널 동무해주마. 어서 들어오렴.”
“야, 좋아라, 형은 숙제 다 했나? 난 절대 형을 방해 안 할 테야.”
“숙젠 거의 다 했어. 넌 잠간만 기다려.”
“형, 난 여기에 가만히 앉아있을래. 형, 나한테「서유기」그림책을 보게 해줘!”
(아니, 네가 그림책을 보겠다고?)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없이 책꽂이에서 그림책을 뽑아내어 권호 손에 쥐어주었다.
“형, 난 이 책을 진작 다 외웠어. 춘석이가 한 장씩 번지며 몇 번 이야기하는 걸 몽땅 기억했어. 지금은 나절로 번지면서 보는 듯이 줄줄 말할 수 있어. 이제 내 동생 원심이가 좀만 크면 걔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어.”
(참, 그놈의 남포가 무정도 하지. 저토록 영리한 애가 저런 불행을 당하다니…)
나는 마음이 쓰리여 연필을 쥔 채 권호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얘, 권호, 오늘 이 형이 널 데리고 바람 쏘이러 갈까?”
“날? 형이?”
“그래! 널 자전거에 태우고… 시원한 강변에 데려다줄게!”
“야, 좋네! 좀 있다가 엄마가 일 밭에서 돌아오면 형이 날 자전거에 태워줬다고 자랑할 테야. 그러면 울 엄마도‘오, 그래?’라고 하면서 기뻐 야단일거야!”
나는 권호를 자전거짐받이에 앉히고 대문을 나섰다.
씽씽!
자전거바람에 더위도 얼마간 덜어진 것 같았다.
“얘야! 그 앨 데리고 어디로 가느냐?”
백양나무 그늘 밑에 앉아 한담하던 이웃집 할머니의 물음에 권호가 내 먼저 앞질러 대답하였다.
“우린 먼데로 가요. 저기 강변에도 가보고요.”
마치 전국유람이나 떠난 듯 신바람이 나한다.
“형, 어디까지 왔지?”
“동구 밖을 벗어났어.”
“무엇이 보이나?”
“커다란 홰나무가 한대 있어.”
“몇 살이나 됐을까?”
“음, 아마… 늙은 나무니깐 좀 나이 있겠지.”
내가 꺽꺽거리며 대답하자 권호가 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울 엄마가 그러던데 이 홰나무는 벌써 50살도 더 먹었대. 이 나무의 껍질은 터실터실해도 나뭇가지는 아주 무성하여 고운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재미나게 노는 곳이래.”
권호는 기분 좋은지 나의 뒤 잔등에 종 주먹질하며 제풀에 웃어댔다.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자전거는 점차 속력이 떠졌다. 나는 힘겹게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형, 몹시 힘들지? 날 내려 걷게 해줘. 한손으로 자전거만 잡으면 얼마든지 걸을 수 있어.”
내가 안 된다고 딱 잡아떼니 권호는 두 손으로 나의 허리를 꼭 그러안았다.
내가 계속 씩씩거리며 자전거를 타니 권호는 답답한지 또 물었다.
“여기가 어디나?”
아무리 사위를 둘러보아도 눈에 띄는 표적이 없는지라 그저 언덕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나의 한마디 말에 권호가 손뼉까지 짝짝 치며 말하였다.
“옳아, 여기가 바로 울 엄마가 항상 말하던「고향의 언덕」이야.”
권호는 신이 나서 노래까지 불렀다.
봄이면 파란 민들레 돋고
여름이면 빨간 해당화 피는
동년의 꿈 실은 고향의 언덕아
오늘도 네 모습이 그립구나.
“이건 울 엄마가 배워준 노래야.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난 진작부터 여기 와서 한번 직접 보고 싶었어. 다행히 오늘 형이 나를 도와준 덕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거든.”
권호는 등뒤에서 끊임없이 종알거렸다. 천진하면서도 유치한 말에 나는 그저 씩 웃어버렸다. 그래도 권호는 개의치 않고 의연히 자기의 기분에 젖어있었다.
드디어 언덕을 내려 강가로 왔다.
우리는 물녘에 쭈크리고 앉아 세수를 하고는 두발을 시원하게 물에 잠그고 나란히 앉았다.
“형, 이 물은 어디로 흘러가나?”
“이 물은 저 아래 산굽이를 에돌아 끝없이 흐르고 흘러…음 결국엔 큰 바다에 흘러들 거야.”
나는 신통한 대답을 줄 수 없었다. 나 자신도 강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잘 모르는 판인 데야.
“아니, 형, 왜 그리 얼떨떨하게 말하나?”
권호는 놀란 기색을 지으며 바투 들이댔다.
“얼떨떨하긴 뭐가 얼떨떨하단 말이니? 이 물은 저기에 있는 논판에 흘러들었다가 구룡산 굽이를 에돌아 벌방으로 냅다 빼는데… 내가 어떻게…”
“그만…그만…”
권호는 낯이 새빨개나며 나의 말허리를 잘랐다.
“형, 제발 날 속이지 말어. 난 다 알고 있어. 이 물은 곧바로 저기 넓다란 호수에 흘러들고 있지. 호수에는 잉어, 붕어, 초어들이 헤어 다니고 호수둘레엔 빨갛고 노랗게 꽃들이 방글방글 웃어주고… 호수 물에는 꽃뿐만 아니라 잔디밭에서 풀을 뜯는 금송아지그림자가 비껴있고…”
나는 그의 환경묘사에 입을 딱 벌렸다.
“얘, 넌 보지도 못하고 상상으로 말하는구나. 난 본 것대로 말하는데…”
“아니야, 형은 왜 날 얼리려고 만드나? 이건 우리 엄마가 직접 가리키면서 알려준 건데… 나도 저기 있는 호수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생각돼. 형은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라는 말에 잔뜩 화가 치민 나는 버럭 성을 내고야말았다.
“옳다. 그럼 너 혼자 여기서 콱 봐라! 난 간다! 난 가겠다.”
나는 자전거를 밀고 신작로 쪽으로 걸어갔다. 한번 혼뜨검을 내여 그 애가 더는 콧대를 세우지 못하게 하려는 심사에서였다.
“형, 형, 가지 마!”
나는 권호의 부름소리를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였다.
“형, 형이 먼저 가면 난 어떡해? 형, 왔던 김에 좀 더 보게 해줘, 응?”
떨리는 듯이 울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결국 발목을 잡히고야 말았다. 돌아다보니 권호의 어깨가 달싹이는 것 같았다.
분명 울고 있으리라!
제자리에 굳어져버린 나는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저 애는 종래로 거짓말을 하는 애가 아니다. 헌데 오늘은 왜 생뚱 같은 말만 할까? 보지도 못하는 애가 없는 것도 있다고 하면서 공연히 우겨대며…뭐 어머니가 그러더라구?… 허튼소리, 걔 어머니가 그런 쓸데없는 거짓말을 했을라구…)
쬐고만 애가 벌써 부모까지 곁들어가며 허망 불어대는 꼴이 아니꼽게만 느껴졌다.
나는 권호를 내버려둔 채 돌아가려고 자전거 손잡이를 잡았다. 그래도 사유만은 쉬지 않고 돌았다.
(만약 걔 어머니가 정말 그렇게 말하였다면…고기떼, 금송아지, 울긋불긋 핀 꽃…왜 근본 없는 말을 하였을까?)
순간 머리를 탁 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 워낙 이런 일이였구나. 난 왜 앞 못 보는 권호한테 기쁨과 광명을 줘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 하였을까?)
갈마드는 자책감에 저도 모르게 머리가 숙어졌다.
나는 지체할세라 자전거를 돌려 권호에게로 달려갔다.
“권호, 난 아까 거짓말을 했댔어. 난 네가 모르는가 하고 허망소리만 했어. 네가 말한 것이 모두 옳아. 저기 커다란 호수에는 팔뚝 같은 고기들이 헤엄치고 그 언덕 풀밭에서는 금송아지가 풀을 뜯고 또 아름다운 꽃들이 방글방글 웃으며 반겨주고…”
웃으면서 말하는 나의 두 눈에서 홀연 맑은 이슬 두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권호는 언제 훌쩍거렸는가 싶게 나의 목에 동동 매달렸다.
“형, 난 형이 꼭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그래? 아무렴! 형이라면 응당 형다워야지!”
나로서도 무슨 용기에 그렇게 말했던지… 어쨌든 권호의 마음에 반겨 웃는 꽃만을 안겨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