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tmjssh 블로그홈 | 로그인
두만강수석회

홈 > 전체

전체 [ 637 ]

427    양양의 칼라 댓글:  조회:6594  추천:5  2011-06-30
2011년 6월 27일 오후강릉에서 회의가 개최되어 갔다가연수를 모두 마치고낮의 길이가 긴 시기이기에양양 물치로 달려 갔습니다.전날과그 전날에도파도가 높게 인다는 일기예보를 들었기에돌밭이 변화되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달려갔는데평일보다는 조금 높게 파도가 치며여름철의 양양의 돌밭으로는탐석 여건이 좋아 보였습니다.한 시간 반을 탐석을 하며몇 작품을 만났는데그 곳을 가게 되면수석인들이 즐겨 찾는 색채연분홍, 검은 색, 흰색이 어울려 그려내는 문양그 작품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모암도 좋고수마도 잘 되었고크기도 적당하더군요.다만 뒷면에 약간의 굴곡이 있지만사랑으로 메워주면 되리라 생각되었습니다.강릉으로 다시 돌아 와강원수석회 회원이신석당님과 월루님을 식당에서 만나아래의 탐석 작품을 앞에 두고석담을 나누고월루님의 석실도 방문하여즐거움 가득한 이야기로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언  제 : 2011.06.27* 어디서 : 양양 물치* 크  기 : 14 * 11 * 5
426    토끼 한 마리 댓글:  조회:6017  추천:5  2011-06-29
강원수석회 정기회의 및 합동탐석대회가 열리던 날아내가 탐석한 작품으로토끼가 깡총깡총 뛰어가는 귀여운 문양이 보기좋아함께 집으로 왔습니다.정선지역 수석산지로탐석을 가면 제일 선호하는 작품이검은 석질에황칼라가 있는 문양석인데아내가 탐석을 한 후토기해에 찾아낸 작품이라 몹시 좋아하더군요.탐석을 마무리하며품평회에 내 놓을까 하다가돌 모암이 약간은 아쉬워 접도록 하였는데아내는 몹시 섭섭해 하더군요.토끼해에 토끼가 두 귀를 세우고발을 들어 올리며깡총깡총 힘차게 달리는  문양석을 얻었으니건강생활이 업그레이드 되리라 위안을 하며즐겨 보고 있답니다.* 언  제 : 2011.05.28* 어디서 : 정선 이절리* 크  기 : 13 * 8.5 * 4
425    한국 {수석의 미} 월간잡지 댓글:  조회:7148  추천:5  2011-06-26
홍보내용과 한국 안강수석회원들이 주은 두만강 돌
424    한국수석회 제30회 전국 회원전 댓글:  조회:7412  추천:5  2011-06-25
영원한 벗사단법인 한국수석회제30회 전국회원전이6월 25일부터 27일까지여주 도자기 전시장에서 개최되어6월 25일 점심 시간대에 전시장을 찾아강원수석회 회원님들과 중식을 하고전시 작품을 즐감하였는데전시작품 중 관통석만을 카메라에 담아두만강수석회 회원님들께 보여드리면서님들의 만사형통을 기원합니다.
423    【수필】가야하와의 인연 댓글:  조회:5873  추천:8  2011-06-25
【수필】                     가야하와의 인연   이 땅의 우리 겨레에 있어서 가야하는 두만강, 해란강과 더불어 유서깊은 역사의 강, 전설의 강, 어머니 강이 아닐수 없다. 내가 이런 어머니 강 가야하와 인연을 맺은것은 40여년 전 철부지 소학시절로 거스른다. 내가 태여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해란강 상류의 한 농촌마을이었다. 뜻하지 않게 4살에 아버지를 여인 나는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야 했다. 그것도 우로 형님 셋에 누나 하나, 여동생까지 6남매가 유일한 일손인 어머니에 의지해 살다보니 생활은 째지듯 가난하여 세 형님과 누나는 중학교 공부도 마치지 못하고 줄레줄레 물러서야 하는 신세. 그래도 막내 남동생이다보니 어려운 살림에도 형님, 누나들의 사랑을 받으며 외로움은 몰랐는데 여름방학이면 노임쟁이 아버지를 모신 나 또래들이 연길공원으로 간다, 친척집으로 간다며 뻐스에 오를 때면 그 모습이 그리도 부러울수가 없었다. (나도 언제면 뻐스타고 놀러갈가?!) 그 시절 소학교 저급학년인 나에게 있어서 최대의 소망과 꿈은 버스타고 고향밖으로 나가보는것이었다. 그래서 늘 가까운 고향의 서쪽 산정에 올라서 동쪽의 목도고개너머 멀리 평강벌, 비암산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보다 열세살 우인 큰 형님이 “가야하 푸른 물이” 어쩌고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문학을 즐기고 노래를 즐기는 큰 형님은 시골소학교 선생질을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었는데 가야하노래가 그만 내 여린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이렇게 배운 노래가 후날 커서 알게 된, 임효원 사, 동희철 곡으로 된 1958년도 작 “내 고향 좋구좋다”였다.   가야하 푸른 물이 논밭을 적시고 갈모자 산기슭에 소나무 무성한 … … …   매번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왕청땅에 있다는 가야하가 내 어린 마음에 와 닿으며 끝없는 동경을 불러 일으켰다. (가야하는 어디지?) 대중없는 심산이지만 무작정 가야하가 보고싶음을 어찌할수 없었다. 가야하, 가야하는 내 머리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런 막내가 안쓰러웠든지 하루는 어머니가 도문 북쪽 석현이라는 부근 고장에 친언니네가 살고있다고 했다. 귀가 번쩍 틔었다. 소학교 2~3학년 때던가 나는 어머니를 졸라 종내 석현행에 올랐는데 열차타고 두세간 끝에 석현역에 내리니 외큰어머니댁은 석현에서도 가야하를 따라 북으로 10여리 더 가는 궁벽한 시골마을—룡북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꿈결에도 그리던 그 가야하였으니 가야하를 옆에 끼고 걷는 재미가 별 재미였으니 기분은 내내 둥둥 뜨기만 하였다. 노래와 같이 푸른물 일렁이는 가야하는 고향을 흐르는 해란강에 비기면 진짜배기 넓고도 큰 어머니 강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여름방학만 되면 큰어머님네가 사는 가야하 기슭마을—룡북으로 달려갔다. 손우인 외사촌 형님네를 따라 처음 즐기는 가야하 줄낚시질이 좋았고 강가에서 물장구치다가도 가야하가 기슭을 치는 마을아래 저 병풍바위에 올라 맘껏 소리지르기도 하였다. 그 소리가 메아리되여 들릴 때면 제 세상이노라고 퐁퐁 뛰였다. 때론 외사촌 형님을 앞세우고 마을 북쪽의 산정에 올라 저쪽 산너머를 한없이 바라보기도 하였다. (산 저쪽은 어딜가?) 외큰어머님은 산저쪽 가야하를 거슬러 오르면 목단지가 있고 삼도구가 있고 배초구가 있고 왕청이 있다고 했다. 가야하와 인연을 맺은 어린 시절 나 모습이다. 어언지간 세월속에 묻히여 가야하로의 발길이 뜸해졌다. 큰어머님과 큰아버님이 선후로 세상뜨시고 외사촌형제들이 시골마을을 떠났다. 듣자니 가야하 기슭마을 룡북촌이 많이 황페해졌다고하나 찾아본다는것이 여간 쉽지가 않았다. 하긴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였다. 몇년 전부터 수석에 취해버렸는데 탐석차로 가야하에 자주 다니게 되면서 가야하와의 인연이 다시 맺아졌다. 천교령 아래로부터 대흥구, 왕청구간, 배초구에 이르기까지 다니지 않은곳이 없었다. 소시적 그 시절은 멀고도 먼땅으로 느껴지더니만 40년 세월이 흐른 중년의 오늘에는 문앞이런듯 했다. 탐석행은 배초구 구간의 만천성풍경구아래에서 석현, 도문구간까지도 이어졌다. 2002년 여름이다. 석현~삼도구 구간 가야하 탐석차 룡북촌을 지나게 되였는데 살림집 몇채뿐인 황페한 마을이 시선에 맞혀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았다. 필경 어린 시절의 모습 어리고 꿈이 어리고 소시적 추억이 어린 가야하기슭의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던 시골마을 룡북촌으로 지난해부터인가 도문—왕청구간 아스팔트길이 가로 지르니 룡북촌이 달라졌다. 더는 한적한 시골마을이 아닌, 택시나 버스로 잠간새면 가 닿을수 잇는 고장이었다. 그래서일가, 가야하기슭의 이 시골마을을 견주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것 같다. 그속에는 한국분도 끼여 개발여지가 큼을 시사하였다. 마을 앞으로 가야하가 흐르고 도문—왕청구간 신작로, 도문—목단강행 철도가 쭈욱 뻗은데다가 마을주위가 온통 부침땅이고 뒤쪽은 산으로 둘러있어 여간 좋은 고장이 아니다. 큰 어머님네가 어찌할 수 없이 묻혀 살던 시절은 옛날이었다. 한국을 다녀와 올해 연길시에 새 아빠트를 잡은 외사촌누님은 동생이 다니던 그때는 가난이 푹 배인 시절이었다고 몇번이고 되뇌이었다. 오늘도 나는 철부지 그 시절 어린 내 마음을 끄당기던 가야하를 가끔 찾는다. 수석찾아 강따라 장장 216킬로미터 가야하를 오르 내릴 때면 내 마음은 하냥 그제날 가야하 기슭마을—룡북촌을 떠나지 않는다. 천교령구간 발원지에서 50킬로미터 내리 흐르다가 천교령에서 북으로 내려오는 춘양하와 합수하면서 제법 강모습을 드러내는 가야하, 대흥구를 지나 왕청현성 서쪽구간에서 소왕청하와 십리평쪽에서 흘러내리는 대왕청하와 합류하여 큰강을 이루는 가야하, 서위자, 중안, 배초구, 삼도구, 석현, 곡수 구간을 스치며 두만강에 흘러 들기까지 도합 78개의 크고작은 강을 포옹하는 가야하, 배초구진 구간에 만천성국가삼림공원을 가지게 한 유서깊은 가야하—이 가야하와의 인연을 나는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한다. 두만강, 해란강이 우리 겨레, 내 마음의 어머니 강이듯이 가야하도 잊을수 없는 어머니 강이기만 하다. 또 하나의 어머니 강 가야하, 이 가야하의 유역면적은 6500평방킬로미터, 이 강 유역지구에는 옛날 두만강을 넘어서고 해란강을 건넌 조선이주민의 후예—우리 겨레들이 많이 살고있는데 총인구가 2만 명을 헤아리는 배초구진에만도 1만 1000여명의 조선족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가야하기슭의 시골마을, 석현구간의 한 마을인 룡북촌도 이런 조선족마을의 하나가 아니던가!     만천성 국가삼림공원에 힘입은 룡북촌의 내일,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리고 인연이 닿은 가야하의 내일이 방불히 보이는듯 싶다.                                                                              (2005년 7월 11일)          
422    추경 댓글:  조회:5618  추천:7  2011-06-24
* 언  제 : 2011.06.02* 어디서 : 충청북도 단양군 가곡면 향산* 크  기 : 16  * 23 * 7
421    한국 수석잡지 댓글:  조회:6601  추천:6  2011-06-24
한국 안강애석회에서 보내 온 월간 수석잡지 받았습니다.감사합니다.
420    가야하 투석입니다 댓글:  조회:6564  추천:6  2011-06-23
애석인 여러분들 하시는일 만사형통 이루시길 바람니다.
419    동해(양양)에서 댓글:  조회:5929  추천:18  2011-06-16
* 언  제 : 2011.05.31* 어디서 : 양양(물치)* 크  기 : 15 * 13 * 8* 주문진을 찾아가는 출장길에 찾아갔던  양양물치 산지에는 파도소리 들려오고  조금은 높은파도 돌밭이 좋았는데  오랫만에 오셨다고 내품으로 안기네요
418    아름다운 돌밭 댓글:  조회:5971  추천:24  2011-06-13
아름다운 돌밭     김봉세   아름다운 두만강 돌밭 한 가운데 아름다운 돌벗들이 아름다운 마음이 서 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저 돌밭은 사랑을 받는다 아름다운 돌밭에는 아름다운 수석이 있기에      
417    김대현고문님특집-4 댓글:  조회:7044  추천:41  2011-06-07
풍류 인생대자연 신비로움 수석에 숨겨있고우주의 오묘함도 수석에 어렸으매수석에 깃든 이야기 밤을 샌들 싫을가.석우들 함께 모여 석담을 나누면서술잔을 높이들어 석복을 바라노니어화라 풍류의 인생 돌과 함께 즐기네
416    김대현고문님특집-3 댓글:  조회:6258  추천:46  2011-06-07
                석복두만강 돌밭에서 해종일 헤매다가기막힌 수석 한점 내눈에 띄였으매어화라 어깨춤 덩실 이 아니 복이련가. 애석맘 지극하여 석복이 찾아왔나떨리는 두손으로 명석을 받쳐드니서산에 지는 해님도 가던길 멎추누나.
415    김대현고문님특집-2 댓글:  조회:6536  추천:42  2011-06-07
414    김대현고문님특집-2 댓글:  조회:6177  추천:47  2011-06-07
 수석억만년 풍찬로숙 겪어온 풍상고초 묵묵히 아로새겨 그모습 천태만상뉘알랴 수석에 비낀 자연의 오묘함을.  그옛날 선비들도 돌 한점 앞에놓고술잔을 기울이며 시지어 읊었건만자연의 무궁한 조화 알지를 못했으리.
413    김대현고문님특집-1 댓글:  조회:6064  추천:46  2011-06-07
은 준들 금 준들,,,  말없이 놓여 있는 저기 저  수석은 야진주나 보석처럼 빛나지 않는다만천만년 풍마우세에 그 모습 천태만상.    (风磨雨洗)  우주의 맑은 넋이 저 돌에 비꼈거늘은 준들 바꾸리까 금 준들 바꾸리까한평생 제자식처럼 쓰다듬어 주리오.
412    수석 댓글:  조회:5895  추천:58  2011-05-30
성문 영어’로 이름 떨친 그, 이번엔 壽石 조선일보: 2011. 05. 17. A31면 사람들/ 김진 기자 mozartin@chosun.com 송성문씨, 40년 모아 해설책 내… "선비처럼 살고 싶어 수집" 국보·보물도 수시로 사모아 국립박물관에 26점 기증 ▲ 송성문 전 대표가‘성의(聖衣)’라고 이름 붙인 수석을 보여주었다. 40년 전 수집 초기에 남한강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한 세상 너무 바삐 살았어요. 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어서 냈습니다. 수석(壽石)처럼 아름답게 늙고 싶어요." 송성문(80) 전(前) 성문출판사 대표가 '수석(壽石)'이라는 320쪽 짜리 책을 냈다. 수석은 자연이나 인간의 형상을 띤 자연 그대로의 작은 돌을 말한다. 그는 이 책에 40년간 모아온 수석들 가운데 150점을 사진과 해설로 담았다. 송 전 대표는 유명한 '성문 영어' 시리즈의 저자다. 그는 서울 역삼동에 자신의 아호(雅號) '혜전(惠田)'을 딴 '혜전 갤러리'를 만들어 수석 2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원래는 박물관에 기증하려 했는데 박물관에서 '인공미가 가미된 것만 받는다'고 해서 주지 못했다고 한다. "자연이 낳은 수석은 인간의 어느 예술품보다도 예술적이고 영적이에요. 아무 말 없으면서도 만 마디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40여년 전 '고상한 취미를 갖고 싶어' 수석 수집을 시작했다. '선비의 취미'라고 불리는 수석을 통해 마음을 닦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인도네시아 등 해외 곳곳까지 다니면서 모았다. 평북 정주 출신인 그는 동아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마산에서 교사로 일했다. 1965년 문교부가 교사 재교육을 위해 그를 뉴질랜드에 보냈을 때 영국서 출판된 영어교육 자료를 잔뜩 가져와 성문 영어 시리즈를 냈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엔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며 “잘 편집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다 합치면 1000만부쯤 팔린 것 같아요. 44년이나 찍었는데 지금도 나가요. 참 영광이죠." 그는 성문 영어가 너무 문법 중심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성문 영어로 번 돈으로 국보와 보물도 샀다. 우리 고서를 찢어 벽지로 발라놓은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모으기 시작했다. 2003년 그렇게 거둔 '대보적경(大寶積經)' 등 국보 4점과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비롯한 보물 2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받은 박물관에선 '혜전 송성문 선생 기증문화재 특별전'을 열어주었다. 국민훈장(모란장)도 받았다. 그는 8년 전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생명 판정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아직 건강한 편이다. "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싶으니 수석에 더 열중하게 되더라고요. 이만큼 더 산 것도 수석 덕 아닌가 싶어요."
411    등산의 길에서(11.5.25) 댓글:  조회:6157  추천:71  2011-05-26
         자연의 선물대지의 산천수목 풀색이 완연하고 골짜기 봄이깊어 돌배꽃 활짝피고 내눈을 유혹하는산나물 한들한들 손젓네.   자연의 은혜로운 선물을 한짐지고 절벽가 바위옆에 기대여 굽어보니 저아래 량안옥토벌 벼모내기 들끓네.  
410    귀석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댓글:  조회:5849  추천:58  2011-05-23
여기저기 움푹패인 수마좋은 우뚝바위 하늘까지 손내밀고 구름들을 잡으려나 계절따라 부는바람 품에안고 살았는가 뿌리깊어 부동으로 가는세월 잡는구나
409    상해에서 구한 신강돌 댓글:  조회:5181  추천:55  2011-05-21
상해에서 모셔온 신강 사믹돌 입니다.
408    부르하통하에서(11.5.17) 댓글:  조회:5543  추천:57  2011-05-19
407    오도 갔다왔습니다~~~ 댓글:  조회:5228  추천:54  2011-05-14
일찍 갔다 서둘러 왔습니다돌밭도 적지만 정말 돌도 없더군요...빈손으로 오기 섭섭하여 한점만 들고 왔구요,사진아래 관통석은 조개가 파놓은 뻐금돌인데포항 주변 바다애 흔이 볼수았는돌이라 그냥 사진만 담았습니다
406    탐석기(6) 안탕산은 골골마다 신나는 돌밭이라 댓글:  조회:4766  추천:72  2011-05-14
【탐석기】(6)       안탕산은 골골마다 신나는 돌밭이라  온주 안탕산은 골골마다 이르는 곳마다 강골을 이루고 희한한 돌밭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첫 걸음이어서 여행사 가이드의 안내로 다니는 신세라 첫날 점심후 다시 탐석에 나설 겨를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귀가 때 안탕산의 본부를 떠나서 아득히 올 때까지도 오른쪽은 물이 별반 없는 강이고 온통 돌밭이었지만 달리는 버스라 사진 한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돌밭이 몇몇 킬로미터에 뻗쳤는지 모릅니다.  올해는 어느 땐가 한번 시간을 내서 안탕산에 며칠 머무르며 탐석해야 겠습니다. 길이 멀어 탐석이 불편하겠지만 희한한 돌밭들을 보고 가지 않는 수석인이 있으리오. 이 두만강은 안탕산에도 흘러 가오리다......
405    두만강 돌 댓글:  조회:5308  추천:52  2011-05-13
이번에 두만강에서 탐석한돌 들을 올립니다,~사진크기가 용량을 초과한다고 나와서 축소시키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404    부르하통하에서(11.5.10) 댓글:  조회:5224  추천:60  2011-05-10
천기가 아주좋은 날을 택하여 김고문님,김회장님 따라 수석활동에 참가.회장님 한점,고문님 두점.
403    한국 포항 안강돌사랑모임회와 함께 두만강변에서 (11.5.7) 댓글:  조회:6717  추천:55  2011-05-07
402    탐석기(5) 온주 안탕산서 오석 한점 댓글:  조회:6116  추천:48  2011-05-05
【탐석기】(5)                 온주 안탕산서 오석 한점  5.1휴가를 타서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어과 방룡남박사와 두만강 두가족은 세계지질공원이요, 중국 10대 명산이라는 온주 안탕산을 유람하였습니다. 안탕산(雁荡山)은 소흥서 남으로 300킬로미터 쯤 되는 온주시 락청 경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4월 30일 아침 7시, 소흥을 떠난 국제여행사 중형관광버스는 3시간 20분만에 온주 안탕산풍경구 구내에 들어 섰습니다. 나의 시야에는 들쑹날쑹한 풍경구의 바위산들에 앞서 기나긴 돌밭을 안고 왼쪽으로 뻗어 내리며 구간구간 말라 버린 강이 먼저 안겨 들었습니다. 맑은 강물과 바위산을 낀 삐여난 풍경구들엔 돌밭이 있기 마련이라고 벌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때마침 오전 11시가 가까워 온다고 점심시간이라지요. 너무도 흥난 나는 날것만 같아 마른 점심을 대충 에때우고는 강으로 내달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0분 가량이였습니다. 이 시간이면 몇개 구간의 돌밭을 탐석할 겨를이 나는 거지요. 길아래 돌밭에 들어 서니 잔잔한 비가 내린다지만 탐석하는데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첫 구간 돌밭을 보니 강바닥 돌들은 어느 정도 수마가 되여서 탐석이 가능했습니다. 게다가 돌들도 희부연 돌들이 위주라지만 가담가담 빛다른 돌들이 보이여 날것만 같았습니다. 시간의 촉박으로 첫 구간을 대강 살펴보고는 돌구비를 지나 두번째 구간에 들어서는데 눈에는 비에 젖은 뭔가 반짝입니다. 가까이여서 몇걸음에 달려가니 반짝반짝 검은 돌입니다. 행여 석탄이 아닐까하여 보면 석탄은 아니고 돌이여서 훨씬 무거웠습니다. 석질도 좋아 신났습니다. 내 고향 연변 두만강이나 가야하에서 몇점 주어 들었던 그런 오석이였습니다. 수마가 잘되지  않은것이 유감이라면 유감이겠지만 흔치 않은 오석이라  재수가 좋았습니다. 좋다고 흥얼거리며 두번째 구간을 지나니 세번째 구간은 낮은 지대여서 고여 든 맑은 물이 흘러 내리며 강다운 멋을 풍기였습니다. 저 아래 끝은 강남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돌다리가 강을 가로 지르며 좁아진 강 량안이 숲속을 이루었습니다. 돌다리 아래우는 새로운 돌밭이 쫘악 펼쳐져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만 같습니다. “안돼. 더 내려가면 한시간이 훌 지나가기 십상이지. 벌써 수백메터나 내려 왔는데.” 가까스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돌아 설라니까 눈길은 자주 돌다리 쪽으로 흘러 갑니다. 그래도 어찌합니까, 돌아서고 말았지요. 다시 수백메터 구간구간을 조이며 돌밭에 눈길을 박노라니 청석 쪽으로 번지는 돌들과 홍석류, 투석을 이루다 만 맞춤돌들이 가끔 나타납니다. 이는 이곳 안탕산 돌밭들이 탐석의 의미가 다분함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절강 대주시 산하 천대현 구간에 이어 온주 락청시 구간으로 번져지는 또 하나의 돌밭이요, 수석산지 발견입니다. 아직 30분도 되나마나한데 집사람이 강가에 나타나 관광버스가 떠나련다는 재촉을 알립니다. “에잉~넘들이,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나는 입으로 중얼거리며 길가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상쾌했습니다. 반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오석 한점을 주어 들었으니 이만하면 쾌재를 부를 만도 하지요. 집사람이나 방박사네랑은 그사이 오석 한점을 주어 들었다고 수석에 빠진 사람은 어쩔수가 없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히히 웃기만 했습니다.   2011년 5월 5일            
401    탐석기(4) 이번은 천대산 불롱 골물이였소 댓글:  조회:5894  추천:52  2011-04-23
탐석기 (4)   이번은 천대산 불롱 골물이였소     라계에서 천대현성으로 돌아온후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불롱산으로 향했다. 말이 국청사에서 6킬로미터 쯤이라고 한다지만 모두가 산을 톺아야 하니 시간이 허락되질  않았다. 천대의 불롱산정에 이르러 진짜 천대종의 발상지로 알려지는 진각사(真觉寺)와    진각사내 천대종의 시조로 통하는 지자대사 육신탑을 배알하면서 고려인 의통스님 화상을  주의하여 살핀 뒤 해발 700여미터의 산을 내려야 하지만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리자면 길을 얼마나 돌아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진각사 아래 아스팔트길에서 아예 산을 질러 오르는 오솔길을 택했다. 1000여년전 고려 명승 의천 대각국사가 항주서 도보로 천대산에 이르고 다시 도보로  불롱에 올라 지자대사 육신탑을 배알하던 오솔길이였다. 산속 오솔길은 어디라없이 강남의 푸른 나무들로 덮히여 좋았다. 사위가 괴괴하여 한구간에서 도정신해야 할 때도 있었으나 지나고 보니 별것이 아니였다. 그렇게 몇몇 오솔길을 거치며 산을 내리고 골안길에 들어서니 한구간이 꽤나 넓은 돌밭으로 나타난다. 나는 길을 가다말고 돌밭에 내려가 한바퀴 빙 돌아 보았다. 역시 수마가 그닥지 않은 돌밭, 다시 길에 오르고 길따라 내리니 그 아래 구간부터는 길이 골안 바닥과 아츠런 사이를 둔 산비탈로 내리여 수풀이 우거진 골물에 내릴 념을 말아야 했다. 벌써 불롱을 떠나 산을 내린지도 한시간이 잘 되여 온다. 국청사 웃구간을 저만치에  두고 또 돌밭이 펼쳐진다. 마침 골물로 내리는 오솔길이 있어서 강바닥에 들어서니 신바람이 난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도 수석을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대신 구간구간 바위구간에 소를 이루며 흘러내리는 산간의  벽계수가 좋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오늘도 탐석은 뒤똘. 하긴 며칠전  국청사 아래 구간에 이어 오늘은 강남 산간의 청신한 공기를 맘껏 마시며 국청사 웃구간 산간에서 탐석해 보았다는 의미가 별스럽기만 하다. 수석인이여서 돌밭만 보면 마음이 움직이고 달려가고플까, 대자연의 탐석산지는 어디서나 우릴 부르니 이제 천대산 탐석행에 얼마나 올라야 할지 모르겠다. 탐석지만 보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려는 것이 우리 수석인들의 마음이지.                  
400    탐석기(3) 라계는 어딜 보나 돌밭천지 댓글:  조회:5848  추천:50  2011-04-20
탐석기 (3)   라계는 어딜 보나 돌밭 천지   절강지도를 펼치면 천대산 라계(螺溪)는 천대종의 발상지로 되는 불롱산 가까이로 보인다. 그런 라계가 어디에 있는지, 4월 10일 아침식사후 천대 중심역에서 1선버스로 천대 북역까지 간 나는 택시 하나를 잡았다. 택시기사와 라계 낚시터를 아는가 했더니 안다기에 라계로 차를 몰라고 했다. 날씨는 또 비를 내릴듯이 검은 구름을 몰아온다. 택시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저앞에 웅장한 산체가 희부옇게 보인다. 택시기사와 물어보니 당지에서는 북산이라고 부른단다. 그때 택시가 강가길에 들어서니 기사는 저 강이 바로 라계이고 이곳 마을이 라계촌이라고 하면서 우린 지금 라계를 거슬러 오르고 있다고 한다. 나는 흥분해마지 않았다. 라계로 말하면 내가 천대산에서 꼭 찾고싶은 곳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일찍 고려의 제관스님이 조정의 위탁으로 당나라 말기 혼전시기에 절강 일대서 사라진 천대종의 여러 전적을 갖고 이곳 천대산 라계에 와서 라계   의적법사를 만나 제자가 되고 라계에서 옹근 10년을 보내다가 앉은 채로 입적하였기 때문이다. 제관스님의 묘소가 어딘지는 모르나 스님이 남긴 “천대사교의”(天台四教仪)는 후세에 천대입문서와 훌륭한 불교개설서로, 불교계 필독의 고전으로 전해지니 한번이고 두번이고 찾아 볼만한 고장이다. 제관스님은 실로 이곳 천대종의 부흥에 불멸의 기여를 한 분이시다. 이것이 나를 라계답사로 내세운 계기이다. 그런 마음을 누가 알랴만은 그저 뚜벅뚜벅 걷고걷는 길, 라계로 가는 본심을 전해 들은 택시기사는 1000년 전의 한 스님발자취를 찾아 이곳까지 왔느냐며 머리를 끄떡인다. 택시는 어느덧 라계촌을 지나 라계골안을 가로막은 저수지언제에 오른다. 저수지는 어인 연고인지 물이 별반 없고 저수지 웃구간에서는 무슨 공정이 한창이다. 저수지 바닥을 파헤치니 바닥은 온통 돌들 천지이다. 또 마음이 동한다. 택시기사보고 여기 라계골안으로 올라가면 무엇이 있느냐 물었더니 낚시터랑 있기는 한데 개발되지 않은 고장이라고 알려준다. 보매 고려 제관스님의 거처지를 찾는다는것은 빈말이고 기대할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평지구간을 흐르는 라계를 찾고, 좁은 두산사이 저수지를 따라 한참 올라가 보며 사진 몇장을 찍었다는것이 큰 성과로만 느껴진다. 나는 미안하지만 택시를 돌려 달라고 했다. 도중에 저수지 언제아래 구간에 이르러 택시값을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저수지 언제아래 크나큰 돌밭이 나의 발목을 잡은것, 라계답사는 이곳 라계가 천대 불롱산 그곳에서 흘러 내린다고 하니 이만하면 절반 농사는 지은 셈이지, 이제부터는 순수한 탐석이로다. 헌데 저수지 언제아래도 수석다운 수석이 나질 않았다. 더 아래 구간이 또 돌밭으로 보이는데 비에 젖은 풀밭을 헤치기가 쉽지 않다. 별수없이 강기슭 밭길에 올랐다가 수풀구간을 지나 다시 강바닥에 내려섰다. 저 먼먼 아래까지 돌밭이 쫙 펼쳐진다. 이때 방정맞게도 제법 큰비가 와그르 쏟아진다. 우산을 펴드니 이번에는 강물우에 드러난 돌들 전부가 흙깡치로 덮히여 조금만 부주의하면 미끌미끌 넘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런대로 2리쯤 탐석길을 이어갔다. 흙깡치가 덮힌 돌들을 잘 헤아릴수가 없다. 아래 마을에 이르러 강을 나섰다가 마을아래 구간에서 다시 강에 들어섰다. 어딜 보나 돌밭 천지지만 비가 계속 내리니 탐석재미가 없다. 후일로 미루는거다. 1000여년 전 고려 제관스님의 덕분으로 천대에서 엄청 큰 탐석산지를 찾았으니 빈손이라도 마음만은 후련했다. 라계를 따라 5-6리는 푼히 내려온것 같다.              
399    철쭉이 강남땅을 덮습니다 댓글:  조회:5079  추천:55  2011-04-19
                철쭉이 강남땅을 덮습니다    요즘 4월 중순 두견화와 더불어 철쭉이 강남에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절강월수외국어대 캠퍼스에도 16일부터  철쭉들이 앞다투어 피어나 참으로 가관입니다.   오늘은 강남 탐석기와 더불어 절강월수외국어대 캠퍼스서 찍은 4월 17일 여러 색채의 철쭉사진들을 특집으로 올리여 봅니다.     수석속에도 대자연의 꽃세계가 펼쳐지듯이 오늘은 진짜 강남봄꽃을 추적하였습니다. 우리 수석인들께 휴식의 한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398    탐석기(2) 수석에 반해 유람길 빗나가다 댓글:  조회:6037  추천:38  2011-04-17
탐석기 (2)                     수석에 반해 유람길 빗나가다   2006년 11월에 천대산 국청사를 처음 답사하고 2009년 2월에 천대종의 개조(开祖)—지자대사 육신탑이 자리한 불롱에 다녀왔지만 육신탑내 삼면 벽에 모셔진 천대종 17대조사 화상을 여겨보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천대종의 제16대 조사면 고려인 의통스님인데, 청명기간 답사에 이어 4월 9일과 10일 휴식일에 종내는 다시 천대산행에 오르고야 말았다. 천대에 도착하니 점심녘이다. 천대역 중심버스부 부근의 한 호텔에 행장을 풀고 1선버스로 천대 북역에 이른것은 그 뒤의 일. 겨레 고대발자취 어린 화정산 화정사를 바라고 유람버스에 올랐으나 이 버스는 화정산으로 가지 않는단다. 연도의 경대선곡(琼台仙谷)에서 내릴수 밖에  없다. 이것이 수석에 홀딱 반해 버린 계기가 되였으니 경대선곡 유람과 빗나간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처음 기분 잡친 상태로 버스서 내려 경대선곡 협곡에 들어서니 벽계수를 이룬 협곡은 어딜 보나 크고작은 바위돌들 구간이여서 정신이 번쩍 든다. 기분 잡친 때가 언제런듯 싶다. 바위돌 사이를 돌돌 흘러 내리는 산간의 맑은 물소리가 나를 부른다. 심신이 수석 쪽으로 쏠리니 경대선곡이 국가에서 첫패로 비준한 4A급 풍경유람명승구이고 천대산에서 가장 삐여난 풍경구라지만 나의 눈은 풍경구들이 아닌 유람길 바로 아래로 흐르는 벽계수 바닥을 훑는다. 벽계수는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조금만 더 내려가 보고 돌아서자, 돌아 서서 이곳 대협곡 구간을 잘 감상해야지.) 생각은 이렇게 해보지만 걸음은 자꾸만 아래로만 향한다. 멀리 내려 온 지금에 다시 돌아서서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인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저 아래 출구가 있다니 가는데까지 가고 볼 판이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저도 몰래 몇몇리 유람길을 조이니 협곡이 조금씩 트이면서 산간의 호수로 이름높은 팔선호(八仙湖)가 시야에 안겨든다. 유람길이 빗나가도 크게 빗나간것, 대협곡 구간을 잘 감상하고저  돌아선다는 것이 수석에 반해 혼이 빼앗겨 평지와 진배없는 경대선곡의 어구에 이른것. 나는 나절로 웃고말았다. 대협곡 구간을 다시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이 나무아무타불이 되였다. 호호호, 누군가는 낚시암에 걸리면 어떻다더니, 나는 수석암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가부다.      
‹처음  이전 3 4 5 6 7 8 9 10 11 12 1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