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련춘
http://www.zoglo.net/blog/zhanglianchun 블로그홈 | 로그인

※ 댓글

<< 5월 2024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홈 > 전체

전체 [ 20 ]

20    눈아 눈 댓글:  조회:684  추천:0  2013-12-26
    (할빈) 장련춘   눈이 내린다. 거위털같은 큰눈이 내린다.하얀 미소처럼 살며시 화사하게 피여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제멋에 흥이 난 원초의 춤사위가 눈이 시리다. 주역이 없는 무대에서 혼자만 아는 짓거리를 미친듯이 이어댄다. 리유없이 문을 나선 발의 환상이 길에 나딩군다.   펑-펑-   손에 손잡고 하늘을 메울듯이 펑펑 쏟아지는 눈, 눈은 내 마음의 고백처럼 하늘의 축복처럼 하염없이 훨훨 흩날린다. 지붕에도 나무에도 마당에도… 눈송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소복단장 마련해놓은 은빛 세계를 바라보며 신부의 하야얀 워딩드레스 자락에서 풍겨나오는 수줍고 아릿다운 순정을 간직해본다.   만남이 애모를 낳고 애모가 사랑을 포옹하며 그렇게 순수하게 그렇게 아름답게 인연은 하늘을 장식하는 눈꽃처럼 대지를 덮어주는 눈이불처럼 서로의 마음을 행복으로 넘치게 한다.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우르릉쾅쾅 천지를 진감하는 천둥소리도 없이, 줄기차게 달리다가 높은 벼랑에서 쏟아져내리는 폭포의 장엄한 발구름소리도 없이, 드넓은 바다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풍랑을 일으키는 파도의 자유분방함도 없이 침묵으로만 은근히 속삭이고 묵묵히 쏟아지는 눈꽃, 그것을 닮은 사랑은 살며시 살풋이 차곡차곡 쌓여지기만 한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조차 아름찰 정도로 담백하고 평범한 만남이 하나둘 이어져 순수한 감각들이 모이고 모여 심장을 메우고 온몸의 세포를 감싸주는 그런 느낌투성이로 푸근하기만 하다.   흩날리는 눈꽃들사이를 한가로이 거니는 순간은 꿈속의 세계로 려행가는 기분이다. 하아얀 세계를 누비며 환호가 터져나오는 심정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나들이가 되여지는 기분이다. 언제라도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거닐고싶어진다. 그래서 문득 내 삶의 감동을 피워올리고싶어진다. 리유없이 나를 웃고 울게 해주는 그런 사연들속에 파묻혀 자신을 잊고싶어진다. 무아의 경지속에서 또다른 나를 만나고싶다. 백설공주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한번이라도 순간이라도 우연히라도.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두눈에 안겨오는 또 다른 풍경은 천당에서 지옥에로 나떨어지며 부서지는듯한 고통을 심어준다.   애들이 눈을 부비고 뭉치고 뿌리고 밟으며 희희락락 놀고 있다. 내 마음의 아픔처럼 언땅의 신음처럼 눈꽃이 장난꾸러기의 유린속에서 뽀지직뽀지직 전률한다. 마당에도 길우에도 마음에도… 손길발길이 닿는 자리마다 돋아나는 슬픔을 휘뿌리며 창백한 겨울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무겁고 어두운 한숨같은 심정을 건져본다.   꽃과는 달리 푸른 잎의 배경도 없이 몸을 기댈 가지도 없이 열매를 맺을수도 없이 무기력한 눈꽃, 봄오는 마당이면 무작정 녹아버려 모양도 없이 흔적도 없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공중으로 증발해버리고 마는 운명, 기억의 뒤안길에 말없이 잊혀져버려야 하는 서러운 신세, 따스한 손길 한번 다정히 바랄수도 없이 포근한 사랑 한번 만끽할수도 없이 차가운 계절속에 묻혀있다가 그냥 무너져버려야 하는 처량한 모습. 울음 한번 목놓아 울지 못하고 넉두리 한번 마음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그냥 무언의 미소로 소화해야 하는 가녀린 어깨…   바라보는 내 마음이 눈물투성이로 모지름이다.   더 이상 빻을수 없는 가루가 되여 흘날리는 슬픔같은 눈꽃으로 가득찬 거리를 헤매노라면 이윽고 눈사람이 되여진다. 령하로 내려가기만 하는 날씨와도 같은 감정저온에 그냥 얼어만 가는 마음이다. 이대로 겨울사나이가 나에게 죽음을 선물한다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련만.   순수하지만 결국 아플수밖에 없는 눈꽃. 이룰수 없는 사랑을 위해 치르는 마음의 장례같이 느껴진다. 계절을 탓하랴, 눈꽃으로 피여난 신세를 탓하랴, 그 눈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탓하랴.   사랑을 알기 위해 부닥치고 부대끼며 살아온 나날들, 사랑을 알고도 잡을수 없어 안타깝게 모지름을 써온 순간들, 사랑을 보내며 아무도 몰래 말없이 눈물로 세탁하던 느낌들, 사랑의 상실과 리기주의의 다툼을 무수히 경력하면서도 억척스레 살아가야할 래일… 완미한 사랑이나 완미한 세상은 결국 현실에 청해올수 없는 아름다운 꿈일가. 눈꽃같고 신기루같은 황홀한 리상은 결국 영원히 둥글수 없는 아득한 유토피아일가.   엄마, 눈과 비의 다른점이 뭔지 아세요?   같이 눈속을 거닐던 딸애가 나의 생각을 무너뜨리며 문득 던지는 물음이다.   글쎄... 뭐가 다를가?   눈은 오물을 잠시 덮어감추지만 비는 오물을 깨끗이 씼어주지요.   사유의 틀에 매이지 않은 어린 딸의 엉뚱하면서도 그럴듯한 해석이다.   눈꽃을 무작정 좋아하고 눈꽃의 아픈 신세를 무작정 슬퍼하던 나는 그 말에 입이 벌어졌다.   오물을 덮어감추는 눈, 잠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뭇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을 살수 있지만 더러운 진실을 알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고 오물을 처리하기에는 비보다 오히려 약세가 아닌가. 순수하고 결백한 눈, 잠시는 은빛의 황홀한 모습으로 눈부시지만 흩날리는 먼지에 너무 쉽게 더러워지고 몰아치는 북풍에 너무 쉽게 날려버리는 약자가 아닌가. 선량하고 부드러운 눈, 비록 천사의 마음을 사기에는 넉넉히 여유있지만 악마의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얼음칼보다도 오히려 나약하지 않은가.   아름다움도 넘치고 정도 넘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고 가냘플수밖에 없는 눈아 눈, 끈질진 생명으로 자신을 강하게 키워가는 길을 어머니 물에게 물어보아라. 피여나면 눈꽃, 차가우면 얼음, 녹으면 눈물, 뜨거우면 증기, 쏟으면 폭포, 뿌리면 비, 달리면 강, 멈추면 바다... 환경에 따라 수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 다양한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물은 그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지 않은가.   그런 어머니 물을 닮은 눈이라면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명력을 연장할수 있는것이 아닐가.그래서 때로는 랑만을 자랑하는 춤사위이기도 하고 때로는 풍년을 기약하는 복음이기도 하며 때로는 뭉치고 깎이고 다듬어져 천태만상의 눈조각으로 변신하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찾아올 때 파아랗게 돋아나는 풀들의 뿌리에 그리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의 몸에 바로 지난 겨울의 눈이 녹아 생명수로 흐르고 있다는것을 그 누가 부인할수 있을가.   이렇게 눈은 눈이면서 눈이 아니다. 눈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와서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것 같지만 눈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며 새롭게 탄생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노라니 딸애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눈은 과연 오물을 잠시 덮어감추기만 하는걸가. 결코 그렇지만은 아닐것이다. 눈은 하늘처럼 넓은 품으로 이 세상 모든 사물을 품어주고 감싸주고 보듬어준다. 정갈하든 어지럽든 아름답든 추악하든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묵묵히 품에 안아준다. 어린 딸애는 아직 눈의 그 마음을 알리 없겠지만 나는 거룩한 그 마음을 넉넉히 알면서 또 열심히 배워가는 길이 아닌가.   펑-펑-   눈이 내린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든말든 눈은 그렇게 내리고 내린다. 그런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복소복 쌓여지는 눈길을 걸으며 나도 눈처럼 새로운 변신을 꿈꾼다. 하아얀 눈의 삶을 배우고 닮아가는 자신을 그려본다.
19    바람부는 언덕에서 댓글:  조회:683  추천:0  2013-04-12
.수필. 바람부는 언덕에서 (할빈) 장련춘 바람이 불면 여린 풀잎은 머리 숙이고 버들가지는 춤을 추며 구름은 달려가고 강물은 물결친다. 바람이 불면 연띄우는 사람, 배띄우는 사람, 불피우는 사람… 바람타기에 서두르는 사람들로 세상은 분주하다.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오츄멜로브는 바람따라 돛다는것이야말로 바람타기의 기본상식이라고 속삭이고 적벽에서의 싸움은 동풍을 빌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미루나무바람타기는 바람에 닿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저어가는것이야말로 원견성있는 행위이라고 피력하고 중용 (中庸) 주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미리 눈치보다가 제때에 안전지대로 피난가는것이 명철보신의 비결이라고 천명한다. 강도철학은 바람불 때 불을 놓거나 붙는 불에 키질하여 남을 훼멸시키는 동시에 보물을 많이 훔치는 사람이야말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호소하고 왕도법칙은 기분에 따라 꽃잎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흙모래를 감아올리기도 나무를 뿌리채로 뽑아버리기도 하는것이야말로 진정한 패권자의 자세이라고 담소한다.   사이비한 이야기에 귀가 멍하지만 정의나 불의에 상관없이 순풍을 타는것이 역풍을 거스르는것보다 훨씬 성공에 직결되여 있음을 력사는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총명해진 바람타기선수들은 너도나도 바람을 따르거나 바람을 일으키는데 량심이나 도덕따위는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그들에게 인간성을 운운한다는것이 얼마나 가소롭고 유치하고 무기력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한 가운데서 막연한 표정으로 막무가내로 바람부는 언덕에 서있노라면 온갖 바람이 다가와 나를 흔들어놓는다.   향기로운 꽃바람에 나비도 취하고 꿀벌도 취하고 민들레씨도 날리는데 너라구 목석이더냐. 여름밤의 서늘한 강바람에 더위도 멀어지고 피로도 덜어지고 고민도 사라지는데 너라구 무쇠이더냐. 설렁설렁 가을바람에 풍선도 띄우고 연도 띠우고 기발도 나붓기는데 너라구 납덩이더냐. 미친듯이 달려드는 칼바람에 삼라만상이 갈팡질팡하고 솝아들고 죽어가는데 너라고구 금강석이냐. 불의습격하는 태풍에 바다가 대지를 때리고 부시고 삼키는데 너라구 하늘에 별이더냐. 나를 따르는자는 궁전에 별전에 대전에 이르고 나를 거스른자는 감옥에 문자옥에 지옥에 떨어지는줄 아느냐 모르느냐.   얼리고 닥치는 바람의 수작에 흥분되기도 하고 닭살이 돋기도 하고 간이 콩알만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타고난 천성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바람과 어울리지 못한다. 아무리 머리를 숙이려 해도 덤덤한 표정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리 몸을 날리려고 해도 무거운 신념의 만유인력이 철석같이 당기고 있으며 아무리 바람을 피하려고 해도 털면 먼지밖에 없는 빈주먹신세에 바람막이 하나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곁을 무수히 란무하는 바람결에 살며시 눈을 감을수밖에 없다.   바람에 대한 상식이나 지혜도 별로 없고 바람에 대한 원견성이나 눈치도 별로 없으며 부자나 왕자가 될 자질도 별로 없는 나는 전전긍긍 바람을 살필 의무도 자각도 박절함도 모르는채 무작성 바람속에 서있다. 우연에 필연이 반죽되여 언제 어떻게 되여 여기까지 오게 되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희노애락을 안겨주는 온갖 바람을 묵묵히 감내하고 소화하는 바위일뿐이다. 그리고 바람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비결을 조금씩 더듬어가고있다.   바람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스쳐가면 그만이고 멈추기만 하면 사라질것이고. 바람이 아무리 얄밉다고 한들 언젠가는 흔적없이 사라질 날이 있을것이고 영원히 나를 괴롭히지는 못할것이 아닌가. 오랜 시련속에서 바람을 함부로 따르지 않는것이 나로서는 진정으로 바람을 이겨내는 행위임을 깨달은 지금, 나는 더 이상 바람때문에 울고웃지 않을것이다. 만변의 세상에서 불변의 자세로 꿋꿋이 자리매김하는것이 내 삶의 숙명인줄 아는 까닭에 나는 더 이상 바람때문에 내심의 안정을 잃지는 않을것이다.   그렇다.   나는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생령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굽힐줄 모르는 바위가 되여 오늘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외롭지만 내내 꿋꿋이…
18    (수필) 진주의 고향 댓글:  조회:600  추천:49  2009-03-15
  하양, 노랑, 분홍, 검음… 부동한 바탕이지만 다같이 오색령롱한 부드러운 빛갈을 다함없이 발산하며 말없이 미소하고 또 미소하는 동그란 진주를 볼때마다 그것을 키워낸 조개에 쏠려지는 야릇한 애수와 애착을 뭐라고 형언할가.       못난껍질에 여린몸으로 몇길되는 물밑에서 어둠과 고독을 이겨내야 하는 소외된 삶, 모래가 속살을 스며드는 아픔을 달리 물리칠수도 호소할곳도 없이 상처를 스스로 달래며 다독이며 그렇게 견딜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그속에서 오랜세월을 속으로 피흘리며 둥글게 둥글게 키워놓은 마음이 진주가 아닐가. 그토록 아름다운 진주를 키워놓았지만 발견의 기회를 묵묵히 기다릴수밖에 없는 피동적인  삶, 터져나오는 창조의 희열을 발산할수도 없이 무언의 노래로 완미의 찬가를 부르며 고즈넉히 참을수밖에 없는 막무가내, 그속에서 오랜세월을 맘으로 갈고 갈아 빛나게 탁마해놓은 령혼이 진주가 아닐가.         그러다 어느날 사람들앞에 나서게 되는 행운을 가진 진주는 보석황후로 받들리며 평생 애지중지 사랑을 만끽함으로써 조개의 생명을 영원으로 이어가게 하는것이 아닐가. 다듬어야만 빛나는 다이아몬드나 금은보석보다 천연적인 아름다움이 내재되여있는 진주는 조개의 자아완성적인 초탈한 인격을 연장해가기때문에 보다 생명적인 색채가 더 풍겨있지 않을가.         어쩜 보통인간은 조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짓씹으며 살아가고 있을가.  아이는 주사바늘이 무서워 아응아응 울어대고 어른은 좌절과 실패가 무서워 우왕지왕 허둥이고 젊은이는 사춘기실련의 아픔에 여린 인생을 종지부짓고 늙은이는 죽음의 요청에 무서워 도리머리질하고... 공포와 도피라는 아픔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사는  아픔에 대한 조개의 적극적인 소화와 너무나 대비되는 반응이 아닐가.         만약 물밑이라는 고독과 어둠이 반죽된 터전이 없었다면 만약 얄밉고 억울한 모래알의 침습이 없었다면 만약 조개한테 그러한 아픈 경력이 없었다면 조개는 다만 조개일뿐 생명을 진주로 연장시킬수 없을것이다. 그리고 아픔을 가장 완미하게 소화시킨 조개일수록 가장 둥글고 가장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낼수 있을것이다.         진주인생을 바라보며 문득 떠오르는 느낌이 이렇게 나를 부추켜준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나만이 제일 아프고 나만이 제일 슬프고 나만이 제일 억울하다는 사유를 돌려서 진주로 환생할수 있는 좋은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부지런히 소화하면서 언제가는 발견하고 다가오는 사람의 곁에서 나로서의 빛으로 그의 인생도 이채를 더해주리라. 아름다움의 녀신 비너스를 탄생시킨 조개, 비너스의 몸에 뿌리여진 물방울이 변하여진 진주, 신비로운 희랍신화의 화폭처럼 나는 아름다운 탈변을 꿈꾸며 아픔을,반성하는 아픔을 부지런히 주어먹고 반추하고 소화시키자. 어쩐지 요즘 밤마다 바다의 꿈을 꾸게 된다. 진주의 고향을 찾아가본다. 2009.3
17    노아의 방주(시 ) 댓글:  조회:533  추천:45  2009-02-10
                      꿈은 밤마다 잠의 쪽문을 열고 의식의 바퀴를 구르긴가 굴러간 자욱마다 심어지는 흙색진주 흙일수 없는 외로움 진주일수 없는 안타까움 삶을 연장하는 꿈은 슬프다   생에 지쳐 잠들고 꿈에 지쳐 깨여나고 밤낮으로 헤매이는 진펄길을 벌(罚)처럼 다가오는 하느님의 홍수로 세례(洗礼)한들 진주로 빛나랴   노아의 방주 그 승차권을 사가는자 있는데                         
16    (수필)사람의 향기 댓글:  조회:595  추천:65  2009-02-04
      봄이 갔다.뾰족뾰족 돋아나는 씨앗들사이에 나만의 알뜰한 희망을 미처 파종하기도전에 아쉬움만 한가득 남겨둔채 총총히 떠나가버렸다.     여름이 갔다. 익어가는 푸름의 생기와 피여나는 랑만의 꽃송이를 미처 소화하기도전에 마음의 하늘을 노크하던 손짓만 허공에 남겨둔채 구름처럼 흘러가버렸다.     가을이 갔다.너나없이 차례진 풍요로운 만찬을 미처 만끽하기도전에 미련만 댕그라니 상우에 올려놓고 서둘러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겨울이 왔다.한잔의 뜨거운 커피로 싸늘함에 여위여가는 마음을 달래며 긴긴 밤을 사색으로 뚫어가는 나만의 소중한 마당이 펼쳐진다.     어쩔수없이 스쳐가는 계절의 순환속에서 가끔씩 스스로를 달래군 한다. 갈테면 가라지. 아직도 많고 많은 계절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 그러나 기실 나는 과거를 쉽게 걸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사람, 이러저러한 일, 그속에서 순간순간 받아온 사람의 향기들을.     천진한 웃음으로 서로의 맑고 푸른 심령의 하늘에 아롱다롱 칠색무지개를 수놓아준 소굽시절의 친구들, 가장 큰 기대의 눈길로 가장 진진한 사랑의 마음으로 항상 내곁을 지켜주신 학생시절의 스승들, 항상 진실하고 열렬한 삶의 모습으로 삶의 울타리를 넓혀가고 항상 웅숭깊은 인간애로 미래를 다독이면서 문학을 손잡아주신 고마운 분들, 어진듯 모진 세월의 얼굴을 마주서면 누를수록 힘을 저축하는 용수철이 되여지도록 나를 탁마시키는 현실 의 가르침…     나는 그들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어려운 고비고비를 넘어왔고 나는 그들을 오래오래 되살리면서 춥고 외로운 겨울을 견뎌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살뜰한 인사말 한마디 따뜻이 건네지 못한채 추억의 뒤마당에 쌓여졌던 모습들을 일일이 정리할수 있는 이 겨울이, 그저 새로운 계절에만 집착하며 그저 아름다운 모습에만 매혹되여 무작정 발걸음을 재촉하던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행복의 여운을 반추하는 이 겨울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있으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가 남겨놓은 그 향기, 아무리 흠집투성이 사람일지라도 어느 순간에 어느 경우에 감동을 피워올리는 일을 나에게 안겨주었고 혹은 나를 방해하려는 행위가 오히려 도움을 주게 됨으로써 야릇한 의미의 향기를 더해주는 사람들, 그네들 스스로는 너무나 가벼운 인상이여서 그랬던가 할 정도로 기억에 없을지라도 나는 마음에 꽁꽁 간직하면서 펼쳐보는 순간마다 새로운 느낌을 보태주는 사람들.     그래서 오늘은 정녕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봉투에 넣어 부치고 싶다. 바로 그러한 부동한 계절,부동한 향기의 혜택으로 오늘의 내가 추운 겨울을 음미하면서 무겁지만 어둡지 않은 사색을 떠올리고 평범하지만 알찬 모습을 꿈꾸는 푸근한 동면을 시작할수 있지 않았던가.     사람의 향기는 느끼는자에게만 다가오고 소중히 간직할줄아는자에게만 힘을 보태주는것이라 할가.     아직도 형언못할 사랑의 향기와 아직도 떠올리지 못한 야릇한 향기와 아직도 못다한 향기의 이야기는 추위를 걷고있는 겨울세계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눈꽃이 되여 서로의 가슴에 한올의 감동을 피워올리였으면.     기도한다.  
15    [수필]아리랑서정(장련춘) 댓글:  조회:762  추천:52  2009-01-19
아리랑서정 장련춘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이 노래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12.9합창곡으로 정한후 매일 적어도 두시간씩 두주일을 련습했으니까. 쏘프라노 경란이는 너무 노래를 하여 목이 아프단다. 목소리낮은 남학생들은 하나하나씩 개별훈련을 받느라고 진땀이다.  신심없어하는 서연이를 얼리고 닥치고하여 지휘봉을 들리웠더니 잘 되지 않아 삘삘 눈물이다. 지용이는 미디음악반주를 설계하느라 며칠을 지새우더니 이 곡만 들으면 토하고 싶단다. 시랑송 맡은 송정이는 음악에 맞지 않고 정서를 올리지 못한다고 제풀에 화를 내면서 울고불고 야단이였다.     그래도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여전히 그말.     합시다! 해야 합니다! 할수 있습니다!     드디여 출연의 날은 다가왔다. 전교에서도 특색있게 남녀일동이 민족복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무대를 유달리 환하에 하였다.     쏘라씨도레미파쏘--     파도치는듯한 흥겹고 장엄한 전주가 끝나면 유유한 아리랑 선률을 타고 시랑송이 이어진다.     나라없던 시절에 두만강을 넘어넘어     한많은 아리랑고개 겨레의 슬픔 어리였고     한많은 아리랑고개 민족의 서름 고이였습니다.     새세기 새시대 언덕을 넘어넘어     즐거운 아리랑고개 겨레의 기쁨 어리였고     즐거운 아리랑고개 민족의 숨결 너울거립니다.     시랑송이 끝나면 아리랑선률을 따라 한옥타브 높은 고음으로 경란이가 <<아~~>>를 빼는 동시에 일동이 정상음으로 <<음~~>>을 함께 발성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는 일동이 함께 부른다.     다시 반복하여 부를 때는 3/4박자의 느린 아리랑을 4/4박자의 빠른 절주로 고쳐서 두번째 박자는 쉬였다가 부름으로써 현대절주감이 강하게 표현된다. 그리고<<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를 두번 반복할 때 남학생들만 부름으로써 웅글지고 힘있는 절주감을 강조한다. 이어서 쏘프라노 경란이의 독창.     ...저기 저 산이 백두산이라지 달뜨고 별뜨고 해도 뜬다...     일동이 <<음~~>>하는 비음에 맞춰 경란이 부르는 가사는 결속선률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아~~>>.     <<아리랑>>의 매력,예술의 감화력,<<하면 된다>>는 학교리념의 힘...으로 우리는 그번 합창경연에서 특등상을 수여받게 되였다.  2     처음부터 <<아리랑>>을 좋아한것은 아니다.     흥겨운 노래가 많고 많은데 하필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볼때면 이상하게 생각되던 시절,그때는 조선어로 씌여진 글보다 중국글로 된 책을 더 좋아했었고 거리에서 조선말을 하면 부끄럽게 생각되였으며 서툰 중국말발음때문에 속상해했었다. 지망하지도 않은 조문학부에 입학한것도 운명의 조롱이라고 안타까와했고 누구나 별로 중시하지 않는 조선어문교원이 될줄은 더욱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아니아니 석잔이라고 실쭉한 가운데서도 모든것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나는 저도모르게 민족정서와 민족감정이 몸에 배게 되었고 민족의식과 민족문화에 물젖어왔으며 민족교육과 민족발전에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아마 <<아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갈라놓을수 없으리라. 그중의 한분이 바로 이번 합창지도인 김갈리나(진명?)선생님이시다.     담임교원이 조선어문교원이니까 이번 합창에 조선가요를 불렀으면 하는데요 어떤 노래가 좋을가요?     글쎄 갑자지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     <<아리랑>>이 어떨가요?     그것 참 좋지요. 얼마나 민족특색이 있는 노래예요? 여차여차 하면 좀 좋아요.     그럼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실수 없겠어요?     저는 요즘 따로 일도 많고 초빙교원신분이니까 처지가 딱하기도 해요. 도와줄수는 있지만 직접 나서는것은 ....     그래도 어떻게 지도해주세요 녜?     풋면목이나 알고 별로 말도 건네본적 없는 사이였지만 선생님은 <<아리랑>>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음악지도로 나섰다. 음악기교가 많이 필요한 이 노래를 일반 학생들에게 그것도 대부분 농촌학생이여서 내성적이고 음악기초가 약한 우리 반급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것은 더구나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한음한음,한사람한사람,싫증없이 가르쳤는데 팔목이 시도록 손을 놀리며 피아노반주를 하기도 하고 허리가 뻐근하도록 손짓 몸짓으로 합창을 지휘하기도 하고 독창,랑송,지휘를 맡은 학생들을 밤늦도록 개별지도하기도 하면서 자기의 일은 뒤로 제쳐놓고 두주일을 분망히 보내였다.     이렇게 련습하는가운데서 나는 선생님의 음악정신에 민족정신에 감화되였고 <<아리랑>>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되였으며 이 노래를 차츰 좋아하게 되였다. 또한 <<아리랑>>은 우리 학급의 영광과 자랑의 대명사로 매개 학생들의 가슴속에 남아있게 되였으며 영원한 추억으로 심어지게 되었던것이다.                3     선생님 목소리가 괜찮아보이는데 노래 한번 불러볼가요?     합창지도중 학생들과 한번 크게 야단할 때 꽥꽥--고으는 나의 목소리를 듣고 건네온 음악선생님의 건의. 그래서 시작한 <<아리랑>>독창.두주일후에 시교육계통노래시합에 참가하여 난생 처음으로 무대에서 노래 부름. 그래서 시작한 노래공부.     음~     아~     미메마아~     공명!     호흡!     두성!     감정!     숨이 차고 땀이 후줄근하고...     성대수술했던 석쉼한 목이 상할가봐 조심조심.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그토록 슬픈 노래를 무척이나 애착하면서 인제는 부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생명의 노래로 배여드는 가락.     노래시합 3등했다며?     나가기만 하면 3등이잖아!     부러움과 질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모르는척.     여직껏 안하던 노래공부 인제 해서 무슨 소용 있어?     글쎄, 잘 나간다니까요.     남편의 노!에도 행동으로 고집.      졸업시험을 곧 치르게되는 조카의 학습을 지켜보느라 노래공부를 줄이겠다고 말한 그날부터 음악선생님은 사흘을 몸져누우셨단다.노래공부하는 하는 나보다 더 안타까와 하시는 선생님 모습에서 아리랑고개를 넘어 내곁에 잠간 들렀다가 떠나가신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불러야 할 <<아리랑>>의 가치를 예술의 가치를 절실히 느끼게 되였고 천만번 부탁하신 그의 말씀대로 지금은 혼자라도 노래련습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만의 <<아리랑>>세계가 마련되고 있지 않는가. 4    <<아리랑>>을 부를때면 슬픔이 절로 배여나온다.     그토록 사랑하며 미워하고 사랑하며 보내야 하는 사람, 보내면서 잡으려하고 보내면서 못지우고 보내면서도 저주하는 사람, 떠나면서 <<발병날가>>걱정안될가. 발병나면서도 기어코 떠나려는 리유는 무엇일가? 발병나면서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리유는 무엇일가? 알수 없는 영원한 주제,알수 없는 사랑의 수수께끼.     처자를 황해도 어느곳에 둔채 중국에서 처녀장가 들고 6남매를 키우며  고향과는 인연없이 살다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공산당에 의해 산속에 끌려가 생죽음 당한 남편을 원망할새도 없이  첩신분으로 홀로 자식 둘을 키우며 한평생 고생속에서 살다가 세상 뜬 한국의 큰고모, 한국 돈벌이길에 나선 남편(안해)가 영영 넘어버린 아리랑고개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녀인(남자).......    정인갑교수님은 어원적으로 아리랑은 아마 한자어 《我离郎》일것이고 아라리는 한자어《我难离》의 와전일것이다고 추측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노래야 말로 진정으로 우리 겨레의 모습과 정서를 가장 우러나게 하는 노래가 아닐가.     보내고싶지 않지만 보낼수밖에 없는 님,슬프고 싶지 않지만 슬플수밖에 없는 사랑이야기,부르고싶지 않지만 부를수밖에 없는 아리랑노래 ...어려운 리별앞에서 피동적인 리별앞에서 돌아서며 치마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는  녀인의 모습에는 고난많은 력사와 상처많은 겨레의 마음이 스며있어 <<아리랑>>은 정녕 나에게 슬픔을 심어준다.      <<아리랑>>을 부를 때면 심저에서 잠자던 힘이 살아난다.     리별앞에서 피동적인 리별앞에서 녀인은 울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웨치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이런 저주(예언)을 줄수 있는 정신적기둥이 있었기에 버림받은 녀인은 아리랑고개를 바라보면서도 꿋꿋이 서있을수 있었고 이런 강한 기운이 슬픔속에 기둥으로 서있었기에 삶의 울타리를 지켜왔고 이런 외유내강한 개성이 있었기에 한강기적은 부상되지 않았던가.       아직도 월드컵축구경기장에서 요란하던 <<붉은 악마>>들의 아라랑응원소리가 귀전에 쟁쟁하다. 슬프고 유연한 선율의 <<아리랑>>이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언어 그 어느 웨침소리보다 더 힘찬 기운을 심어주는 원천으로 되여 한국의 축구는 세계4강에로 밀어주지 않았던가. 아직도 무대에서 열렬하던 <<아리랑>>합창소리가 귀전에 은은하다.<<아리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민족정서를 공감하는 예술마당이 중국 할빈시조선족제1중학교 무대에서 펼쳐질수 있지 않았던가. 아직도 률동하는 <<아리랑>>선율이 마음에서 꿈틀거린다. <<아리랑>>에 대한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 진정으로 <<아리랑>>을 부를줄 안다면 모두가 자신의 몸에서 잠자는 사자같은 무궁한 힘을 발견할것이며 나아가서 우리 겨레는 밝은 미래를 당겨올수 있지 않겠는가.      내 사랑 아리랑. 내 인생 아리랑. 내 겨레 아리랑.  
14    (수필)엄마의 강 댓글:  조회:1138  추천:49  2008-12-23
            엄마의 강                                                                아가야 옷단장을 차리고 나선 네 모습              꽃보다 아름다워 엄마마음 기쁘다.              아가야 아가야 부디 행복하여라              흐르는 눈물 훔치고 어서 떠나가거라       결혼날 눈물어린 목소리로 엄마가 불러주던 축복의 노래, 시집가고 시집보내는 심정을 떠올리며 듣는 사람들 모두를 눈물 훔치게 하던 노래,  딸을 위해 걸어온 엄마의 길을 한올의 가락에 함뿍 실어 짙은 감동을 피워올리던 노래, 사랑외에 사랑뿐인 마음 하나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모성애의 꽃다발을 엮어올린 노래. 이 노래를 떠올릴때마다 심정은 한없이 젖어오른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항상 믿지는 인생을 살아야하는 엄마의 길을 내가 알면서 시작했던가 모르면서 시작했던가. 내가 엄마되여 내가 엄마 닮아가며 내가 엄마의 강을 건너보며 다시 떠올리는 그 노래 점점 우러나는 속맛이 은근하고 짜릿하다.    .....    --너무 어려보이네요.한시간씩 수업을 견지할수 있을가요?    --다섯살인데요.    --피아노공부 시작할 나이는 옳은데...그런데 미리 말해주지만 가르쳐보면 총명하지 않은 애가 없어요. 잘하구 못하는건 부모의 노력에 달렸어요. 악보공부, 음악리론공부는 집에서 시켜줘야 하구 피아노련습도 꼭 지켜줘야 해요.    --알았어요.    예와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문가의 힘든 피아노공부는 시작되였다.    도레미 악보배우기 한시간, 쿵다쿵다 절주익히기 한시간, 손가락안경만들기와 손가락힘비기기 유희로 지법익히기 한시간, 하나둘셋넷 그리고 호흡 이렇게 피아노건반을 누르며 한시간...매주 한시간씩 받는 수업내용을 소화시키려면 매일 이렇게 공부해야 했고 그래서 나의 이번 여름방학은 문가의 피아노공부를 위한 제물로 바쳐질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대로 뛰놀고 싶은 어린 나이에 따분하구 지루한 이런 공부는 당연히 욕과 매를 청할 수밖에 없었으며 문가는 어느 하루라도 눈물의 세레를 받지 않은 날이 없게 되였다.     --저도 다섯살부터 피아니스트인 엄마한테서 피아노를 배우기시작했는데 매를 많이 맞았어요. 그러나 큰담에는 고맙게 생각하거든요.     선생님앞에서까지 욕과 매로 대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한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처음에는 못했지만 후에는 잘했잖아요? 쵸콜렛 장려줄래요?    맞으면서 울면서도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문가가 그날공부를 스스로 총결하는 천진하고도 어른스런 말이였다.     --피아노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피아노로 성공할수 있겠어? 우리같은 평민가정에서 피아노공부는 너무 사치가 아니야?     --피아노는 최고로 우아한 악기인데 그냥 취미로 하더라도 음악과 예술이 있는 인생은 아름다울수 있잖아요. 특히 여자애라면 말이예요. 그리구 같은 시간 같은 정력을 들이며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도 어떤 선생한테서 어떻게 배우냐에 따라 결과는 틀릴수 있잖아요. 예와선생은요. 예술학원의 초빙교수인데 로씨야의 이름있는 음악교수라요. 류학하지 않고도 어려서부터 전업수준의 서방음악과 서방교육을 받을수 있는것이 얼마나 좋아요? 돈이 많이 들것같다고 하신 이야기도 기실 어떻게 생각하냐에 달린거예요. 피아노공부 10년에 10만원 예산하면 넉넉할거 아니예요? 그 돈 지금은 많아보이지만 10년후에 가서는 아무것도 아닐거니까 저축해두는것보다 애한테 재간을 배워주는게 훨씬 값이 있어요. 자식에게 돈을 넘겨주는것보다 돈으로 헤아릴수 없는 또 얼마든지 돈으로 될 수 있는 재간을 배워주는것이 훨씬 좋잖아요?     --아이나 어른이나  바삐 살아가는 통에 10년을 견지할수 있겠어?     --아무리 힘들어도 문가 일이라면 견지할수 있을것같아요. 엄마가 날 위해 뭐든지 다 하셨듯이.     --너 엄마처럼이야?     --그래야죠.     예전에는 기실 남 엄마들이 부러울때가 많았다. 잔치집 따라다니며 맛있는거 먹구 재미있는거 구경하는 꼬마친구들이 부러워 엄마뒤를 미행하다가 발각되여 바자구석에 서워진 나무를 휘두르던 모습이 무서울때나 운동을 그렇게 잘하고 좋아하시면서도 어쩌나 내가 참석하는 현소학교배구경기에 구경안가시고 꿍꿍 밭일에 악착스럽던 모습이 서글플때나  인위적으로 힘들었던 중학시절 학습환경을 바꿔보려고 전학하려는 나를 그대로 물러앉히던 모습이 무정해보일때나 천기예보에서 날씨변화를 보고도 대학간 딸이 추울세라 더울세라 걱정되여 전화를 걸어온다는 엄마들과는 달리 무뚝뚝한 모습이 섭섭할때....면 나는 우리 엄마가 왜 다른 엄마들처럼 살틀하지 못할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군 했다. 그러나 엄마가 되여 엄마를 닮아가는 오늘, 드러난 사랑보다 드러나지 않은 사랑의 깊이가 헤아려지며 또한 나도 모진 엄마가 되여 혹독한 모습으로 어린 아이에게 다가설수밖에 없는거다.     그러면서 반추해보는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       여자는 약자 엄마는 강자. 여자는 물, 엄마는 강. 예나 제나 엄마는 강이 되여 흘러흐르고 자식들은 그 강물을 마시고 그 강물에서 뛰놀며 그 강물에서 목욕하고 그 강물에서 행복을 낚시질하는거. 그리고 바로 이 엄마의 강이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보람찬 인생을 키워주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태여가는것임을 가르쳐주는 사실들이 새록새록이다.     당산지진의 페허속에서 손가락을 깨물어 자기의 피를 갓난애에게 먹이며 자기의 생명을 대가로 애가 구원받을때까지 며칠을 견뎌준 이름없는 엄마, 자식이 팔다리가 기형인 선천적장애인이지만 심리의 벽을 너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격과 사회가 수요하는 인재로 키워준 오또의 엄마,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감추고 엄한 눈초리로 엄하게 요구함으로써 조선의 저명한 서예가를 키워낸 한석봉은 어머니......     그러니 사랑어린 아픔의 통증을 이겨낸 엄마가 자식의 생명을 지켜줄수 있고 사랑의 아픔을 딛고 선 엄마가 자식의 생명을 푸르게 할수 있으며 래일을 위해 사랑과 매를 분별하여 사용할줄 아는 엄마가 자식의 생명을 영원에로 연장시킬수 있지 않는가.     엄마의 강은 건너본 사람이 잘 알고 엄마의 강은 엄마가 되어본 사람이 아니, 엄마의 강이 되여본 사람이 더욱 잘 알것이다. 비즈니스시대 엄마가 되지 않으려하고 엄마일수밖에 없고 엄마이름밖에 없는 현실의 흔들림속에서 가뭄든 물줄기로 자식을 목마르게 하지 말고 오염된 강물로 자식을 해치지 말고 지나친 사랑으로 자식을 익사시키지 말아야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혈관속에, 자식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 어느곳에서나 맑고 깨끗하게 흐르는 강물이 되여야지.     ......     오늘도 귀전에 쟁쟁한 엄마가 불러주던 그 노래, 내 인생을 지켜주고 내 인생을 가꿔주고 내 인생을 이어주는 그 노래. 그 노래가 가르치는 목소리에 또 다시 귀를 기울여본다.              아가야 옷단장을 차리고 나선 네 모습              꽃보다 아름다워 엄마마음 기쁘다              아가야 아가야 부디 행복하여라              흐르는 눈물 훔치고 어서 떠나가거라.                                                                         2006년
13    (수필)가을에 기대여 댓글:  조회:539  추천:22  2008-12-18
가을에 기대여         가을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너머로 바라보이는 산과 들은 언녕 가을분위기에 묻혀있다.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이고 선 벼들의 숨찬 모습이 황금물결에 실려있는 무연한 논밭, 무도만회에 참석하려는 귀부인처럼 화려한 단풍드레스로 몸을 드리우고 나선 먼 산봉우리, 한없는 높이에로 마음을 활짝 열고 푸름을 익혀가는 하늘, 그 하늘아래 오손도손 모여앉아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마을들…        아,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인가? 정녕 짙어가는 가을내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포로하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눈길을 멈추고 싶고 그래서 발길을 멈추고 싶고 그래서 마음을 멈추고 싶은 가을이 아닌가?     《가을에 만나요.》     아름다운 약속을 아름다운 계절에 남겨두었던 먼 옛날의 목소리가 귀전을 울려온다. 가을을 기대하여 봄은 더 찬란했고 여름은 더 뜨거웠던 지난 계절들, 만남을 위하여 인고는 더 드팀없었고 노력은 더 끈질기게 어어졌던 나날들, 이제는 영영 꿈으로 남아있는 까닭에 더욱 아릿다울수밖에 없는 약속이 첫사랑의 향기를 실어온다.     추억의 향기속에서 가을을 마주서면 저도모르게 기대고 싶다. 수확과 희망을 알뜰이 묻어둔 성숙의 함정에로 무작정 흡인하는 눈동자같은 열매에 기대고 싶고 리별의 현장을 가장 진지한 피빛으로 가장 황홀한 금빛으로 축복의 꽃다발을 물들이는 잎새에 기대고 싶고 모든 겉옷을 홀가분히 벗어던지더라도 두터운 속살로 겨울날 준비가 되여있는 믿음직한 나무에 기대고 싶고 아직도 식지 않은 태양의 숨결을 싣고 시공을 자유자재로 산책하는 바람결에 기대고 싶고 바라만 보아도 욕망은 입다물며 저절로 차분해지는 여물어가는 사색에 기대고 싶다.     꽃망울처럼 부풀지도 않고 볕가마처럼 타지도 않으며 눈꽃처럼 창백하지도 않은 가을기분, 그것은 낮으나 힘있는 참사랑의 속삭임이며 멀지만 가까운 관심어린 눈길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지치지만 확실하고 드팀없는 발걸음이며 사무치지만 물러설줄 아는 여유있는 선택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또한 떠나지만 영원으로 남겨지는 사나이의 영상이며 풀이할수록 풍부해지는 감정방정식이 아니겠는가!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을인가? 이 얼마나 기다리던 가을인가?     이렇게 잠간, 아주 잠간만 기대여 있노라면 안녕하고 떠나가는 뒤모습이 보이는것 같다. 여느 계절과 마찬가지로 머물고 싶지만 머물수 없는 가을이기에, 기댈수는 있지만 매여놓을수는 없는 계절이기에 유혹은 있지만 미련은 없으리라.     가을에 기대여 만나는 련습, 헤여지는 련습 상상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을같은 사랑을 가을같은 인생을 그리여 본다.                   
12    (수필)감동의 엽서 댓글:  조회:472  추천:15  2008-12-18
                      감동의 엽서   장대비속에서도 련꽃처럼 화사히 피여나라고 춘분뒤의 봄바람인가 선녀날개자락같은 보듬짓 생생한 가르침 아직도 눈앞인데 님아, 들리시나요----     감사합니다.     시로 풀이하는 교사절의 문안. 대학간 학생이 보내온 엽서를 받고 감개가 무량하다.     여러모로 우수한 학생이였던 그는, 소학시절 일기책출판, 초중시절 <<독서왕>>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이 있었다. 그런데다가 고중에 와서 학습부담이 콱 늘다나니 어문공부는 아예 뒤전이였다. 그의 어문공부를 걱정하던 어느날 전교학생들의 랑송시합이 있었는데 한반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회를 그에게 주었다 먼저 내용을 스스로 선택하라고 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주자청의 산문 <<봄>>, 내가 쓴 산문 <<가을에 기대여>> , 아니면 그외 다른 문장중에서 마음대로 골르라고 했다.  며칠후 그는 내가  쓴 <<가을에 기대여>>를 랑송하겠다고 말했다. 그담에 랑송지도를 차근차근 시작하였다. 자기 읽고 싶은대로 읽어보라고 했는데 미끈하게 잘 읽었지만 어조, 휴지 감정살림에 모자람이 많았다. 그래서 한구절씩 지어는 한개발음씩 수정하면서 따라 읽히였다. 그담에 속도가 고정되게 <<가을의 소삭임(秋日私语)>>이라는 피아노음악에 맞추어 거듭 랑송한다. 그담엔 문장에 알맞는 가을풍경을 골라오게 하여 소프트웨어로 제작한후 멜티미디어로  펼치면서 랑송한다. 나중에 외워서 랑송한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랑송시합 1등은 물론이거니와 그는 진정으로 이 산문의 진의를 터득하였고 그것을 랑송으로 살려내였으며 자신의 어문수준의 모자람도 느끼게 되였는가보다. 그담부턴 어문수업시간에 항상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것이였다. 그리고 한동안 답보하던 글짓기수준도 상승선을 긋기 지작하였다. 고3의 힘든 공부에 시달리면서도 문득 떠오르는 령감을 살려 <<겨울사냥>>이라는 글을 스스로 써서는 나에게 보이는것이였다.   겨울사냥     봄해살이 창을 뚫고 등위에 화사히 부서지는 3월이야.얼었던 도시는 잠에서 깨여나 부시시 기지개를 켜는데 아직도 억지를 부리는 겨울을 떠밀어보내며 봄을 서둘러 마중하는 이 자리에서 문뜩 떠오르는 너의 모습.     잘 있니?     난 말이야.지난 겨울이 넘 추웠어.아무리 띵땅하게 옷을 껴입어도 아무리 털목도리,털장갑으로 꽁꽁 감싸도 마음은 자꾸 얼어드는걸 어쩔수 없었어. 이세상 모든 칼바람이,눈서리,얼음산...들이 날 향해 마구 달려드는것 같아 무작정 투항해야 하는건지 갈팡질팡이였어.     내 추억속의 겨울은 전혀 두려움이 없었는데.아니, 겨울이 두려운줄 전혀 몰랐었는데. 얼음호수에서 씽씽 스케트 달릴때도 멋쟁이 눈사람을 만드느라 빨갛게 얼어든 서로의 코를 바라보며 깔깔댈때도 전혀 추운줄 몰랐었는데.    --있잖아,춥다고 숨어만 있으면 겨울이 더 우쭐거리며 기승을 부린다니까.그러게 아예 당당한 자세로 나서서 겨울을 포로해야 하는거야.    이렇게 말하는 네가 정말 장군같아 보였어.그래서 그냥 널 따라 겨울사냥 나섰던 그때는 거짓말처럼 추위를 몰랐어.    그런데 지금은 왜 자꾸 추워지는걸가. 왜 자꾸 약해지는걸가. 조그만 추위에도 감히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잖아. 표호하는 눈부라에는 아예 흰기를 흔드는거야.나약과 라태와 자책과 실망이 거듭되는 가운데서 모든것이 얼어만 들구. 희망과 꿈까지 땡땡 얼어붙어버리고 차가운 마음은 자꾸 솝아만 지구.     예전에 하늘을 찌를듯한 패기와 오기는 어디로 갔냐구? 나도 할수 있다는 당당한 자부심은 어디에 갔나구? 날 사랑하고 관심하는 모두에게 실망을 주지 않겠다던 결심은 어디에 갔냐구?  이렇게 자문하는 사이에 나의 귀전을 울리는 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단단히 덤벼! 도망생각은 버려! 겨울은 너의 사냥물이야!    정말이지? 네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구 있었어? 나 정말 예전처럼 겨울을 이길수 있겠니? 무서움이 뭔지 모르고 겨울을 무서워 안한것보다 무서움이 뭔지를 알고 겨울을 이기는것이 진정 용감한 사람이라구? 나 이제부터 진짜 용감해지는거라구? 정말?    고마워,나에게 힘을 주는 너의 말 말이야! 내 신심과 믿음의 뿌리를 살찌우는 너의 말 말이야! 나 잘 할게! 잘할수 있을거야!     아직도 거리의 어느 모퉁이에서 잔뜩 눈에 독을 피우고 지켜보는 겨울이 남아있지만 인제는 두렵지 않아.너의 목소리가 나의 혈관속에서 흐르고 있으니깐. 거부할수 없는 계절의 도래처럼 내 맘에 봄을 실어온 너의 목소리가 나와 맥박을 같이 하고있으니깐.     그런 네가 고마워.너무너무 고마워.     글구 약속해. 아름다운 동심이 뿌리 내린 산등성이에 들꽃이 만발할 때 우리 만난다구 약속해!        삶을 살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심장을 찡하게 하는 충동이나 감수를 문자로 다듬이질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수있도록 펼쳐내는 글재주, 이것은 인생을 참답게 아름답게 가꿔가는 무형의 자본인것이다. 그가 끝내는 여기까지 닿을수 있게 되였구나! 여간 대견스럽게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글짓기를 통한 그 어떤 큰 영예나 실리를 안겨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문학과 인생의 진미를 우려내는 자세를 가지도록은 요구하였다. 교원으로서 가르치고 만들어내는 재미와 감동을 한결 느끼게 한 그 학생이 고맙게 생각된다.                                             2008
11    [수필]어둠과 밝음의 극치 댓글:  조회:655  추천:42  2008-12-11
어둠과 밝음의 극치  장련춘     창밖은 대낮처럼 훤한 가로등이 숙명을 지켜사는 생명처럼 꾸준히 살아있다.은근한 그 불빛은 엷은 비단카텐을 슬쩍 투과하여 들어와서 침대 맞은편 벽의 어둠을 밀어버리고 창문보다 조금 더 확대된듯한 크기의 밝음을 비스듬히 덧만들어놓았다. 그래서 당연히 어두워야 할 나의 침실은 어둠 절반, 희붐한 밝음 절반, 이렇게 반죽이 되여 구석마다 무드기로 쌓여있는 초라한 모습들이 알릴듯말듯 눈동자에 묻어오른다.    부끄러운 모습뿐이다. 그래서 희붐한 밝음마저 싫어졌고 짙은 어둠의 옷을 걸치고 싶었지만 이 밤도 그것은 불가능한 사연으로 남아있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어둠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마음을 달랠길 없어 고민하는 이 밤은 역시 불면의 순간일수밖에 없다.    어둠에 대한 공포보다는 갈망이 앞섰던것은 아직 어둠이라는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부터였으리라. 아이적에도 나는 어떠한 불빛이라도 있으면 좀체로 잠못이루는 괴벽이 있었고 혹시 밤중에 일어나 변소에 가더라도 남을 깨우는 법이 없이 혼자서 고요한 어둠을 더듬어가군 했다. 이러는 나를 두고 어머니는 계집애가 너무 겁이 없으면 못쓴다며 걱정하셨다. 그러나 내가 누구보다 겁이 많았던것임을 아무도 몰랐으리라. 그것은― 내가 어둠보다는 밝음을 더 두려워했고 밝음에 비하면 어둠은 하찮은 공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잠자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 밝음을 통하여 엿본다는것이 두려웠다. 입을 하- 벌리고 침을 게질게질 흘리며 사지를 제멋대로 구겨지게 건사한채 비밀스런 잠꼬대를 중얼거린다든가 이발을 뽀직뽀직 간다든가 코를 드렁드렁 곤다든가… 대체로 잠자는 모습은 예쁘다고 하기보다는 꼴불견스러운것이 많으며 그것을 어느 누구의 눈길아래 펼쳐보인다는것이 어린 마음에도 딱 질색이였다.   그리고 어둠을 혼자 더듬어가는것이 대낮에 남들과 떼지여 다니기보다는 마음 편한 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대낮의 밝음은 항상 그림자를 던져주게 된다. 혹은 꺽다리로 혹은 난쟁이로 혹은 삐뚤렁하게 혹은 토막토막 굴절되게… 진실한 모습과는 늘 외곡되게 나타나는 그림자를 곁사람이 지켜보며 이러쿵저러쿵 입놀림하거나 손가락질하는것이 싫었다. 아마 과민한 부끄러움 때문에 나에게는 어둠을 즐기는 괴벽이 생겼나 보다.    별스레 떳떳하지 못하거나 내면적으로 약한 기질인 사람은 밝음을 두려워하고 어둠속으로 자꾸만 자신을 숨기려는 의도가 있는것이다― 이렇게 나름대로 판단하시는 분이 계실수 있다.    나는 떳떳하지 못한가? 나는 기질이 약한가?    이런 물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무작정 어두운 구석을 찾아 살아왔다. 남들이 오구구 모여드는 밝은 자리를 애써 회피하면서 육안으로 발견할수 없는 머나먼 항성처럼 어두운 우주공간에 디룽디룽 혼자 매달려 살고 싶었으며 그렇게 살려고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혹독한 어둠속에서 점차 밝음의 순수한 의미를 터득하는것이다.    나는 늘 이런 환상속에 잠기게 된다. 어두운 밤에 달도 없고 별도 없고 아무 불빛도 없는 캄캄한 밤에 나 혼자 길 아닌 길을 더듬어 나아가는것이다. 그러면 나는 불빛을 찾아 허둥지둥 헤매게 될것이다. 어데서 반디불이라도 반짝이지 않나? 파란 귀신불이라도 켜졌으면… 그러다가 지쳐버리게 된다. 옷은 갈기갈기 찢기워 볼품없이 람루하고 상처에서는 피와 고름이 흥건히 흐르고 모진 추위에 이발은 덜덜 맞쪼이며 피로는 전신의 혈관을 따라 그득히 흘러넘친다. 아니, 후줄근히 지친것은 사지뿐이고 사색은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서 꿈틀거린다. 육체는 잠들려 하고 령혼은 가물가물 깨여있어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문득 나는 려명처럼 다가오는 내심의 밝은 불빛을 발견하게 된다. 아득한듯 그러나 너무나 가까운 내 령혼에서 활활 불타오르는 순수한 밝음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높이 추켜들고 어둠을 밝히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 그 밝음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수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않된다. 나는 그런 순수한 밝음을 갈망하는것이다. 그런 밝음을 태워올릴수 있는 어둠을 갈망하는것이다. 어둠속에서 남모르게 나의 령혼을 살찌우고 그 기름으로 아름다운 밝음을 켜들고 싶다.    대낮에는 오색령롱한 표상들에 여기저기 사색을 널어놓게 되여 사색의 초점을 한곬으로 모으기 어렵고 령혼에 불길을 지펴올리게 되여있지 않다. 그리고 밝은 곳에 있는 자는 어느 구석진 어둠의 공격을 언제 어데서 펑― 당하게 될는지 항상 마음을 도사리게 되는것이 싫다. 솔찍하게 말씀드린다며는 두렵다. 나에게는 그런 적수들을 반격하는데 소모할 정력이 따로 남아있지 않는것이다. 아니, 자아보호력이 천성적으로 약한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마도 약한 기질의 소유자라고 승인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어둠을 갈망하는 사람은 모두 약자이고 밝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강자이다는 설법은 없는것이다. 내 령혼의 불길로 어떠한 어둠이든지 몰아낼수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어둠을 바라는 강자도 있을수 있고 정말로 어둠속에 빠지기만 하면 아예 침전당하고 말 사람이기에 무작정 밝은 곳만 찾아 나돌이하는 그런 약자도 있을수 있는것이다.    나는 약자인가? 나는 강자인가? 반드시 둘중의 어느 하나가 선택되여야 하는가? 약자이기 때문에 혹은 강자이기 때문에 어둠을 갈망하고 밝음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가진다― 이렇게 결단적으로 이야기하는것은 너무나 불공평한 평가가 아닐가? 나는 다만 살아가는 자세를 이렇게 설계하고 싶은것이다. 시끄러운 외계로부터 돌아와 순수한 내면세계에서 진실한 모습을 동요없이 펼쳐나갈수 있는 그런 삶을.    삶의 설계도가 있다고 하여 반드시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법은 없다. 주위의 모든것들은 나를 마구 밝음에로 떠밀어 내놓고 세상은 어둠보다 밝음이 연장되여가는데 나는 어쩔수 없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 찬란한 빛발아래서 허우적거린다. 찬란한 빛발―그중에서도 가장 찬란하고 자극성이 강한 빛발―그것은 질투이다, 뭇사람들의 질투의 화염은 황황 타올라 어둠속에서도 나를 모질게 뒤쫓아다니며 나를 엉터리로 변형시켜놓고 오장륙부에 들어찬 더러운것들을 뒤적거린다. 그래서 나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며 어둠의 호신부를 찾아 헤맨다. 그러노라면 정력은 기진맥진하게 되고 추구하려던 순수한 밝음은 아득히 멀어져가는 감각이다.    나는 신음하듯 낡아빠진 언어에 사색을 담아 중얼거려본다. 어둠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둠을 무시할수 있는가? 밝음이란 무엇인가? 나는 밝음을 거절할수 있는가?    …    이른바 어둠과 밝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새롭게 가꿔가야겠다. 객관적(자연의것, 인위적인것)인 어둠이나 밝음에 구속당함이 없이 나름대로의 어둠과 밝음을 자유자재로 여닫으며 아름다운 명암도를 그려야겠다.    어려운 사유에 비해 너무나 총망한 결론에 형이상학이라는 모자를 꾹 눌러씌워준다는것은 나에게는 불평스러울것이며 그러나 나는 확실히 내면적인 어둠과 밝음을 선택하고 싶은것이다. 아니, 그 어떤 어둠도 밝음도 진실한 나의 모습을 흐리울수 없는 그런 하나의 순수한 극치를 기대한다.  1994    
10    (수필)침묵의 꽃 댓글:  조회:564  추천:22  2008-12-04
침묵의 꽃       삶의 나날은 쌓였다가는 무너지고 다시 쌓여지기를 거듭하는 파도처럼 아무런 싫증도 없이 매일매일을 되풀이 한다. 쏴―하고 밀려왔다가는 쏴―하고 밀려가는 끊임없는 위치바뀜과 바다밑 깊고깊은 침묵의 진의(真意)는 무엇일가. 시작도 끝도 없는 그 아득한 시공(时空)의 한방울 물로서 나 하나쯤의 생명이야! 하면서도 울렁이는 물이랑을 타고 몸부림치는것은 지칠줄 모르는 세월의 파도때문인가. 아니면 불안정한 내심의 충동때문인가. 나는 두려움이 없지 않은채 그속에서 뒹굴며 부서지며 어울리며 멈출수 없는 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시대가 어떠어떠하다고 늘 담론하군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그 시대의 필연적법칙처럼 꾸며버린채 물결따라 설레이고 바람따라 흘러간다. 현대화요, 전자화요, 수자화요, 경제화요… 그런것들을 마구 거절할 하등의 리유는 없지만 고유의 모든것을 벗어던지고 맹종(盲从)할 필요까지는 없잖을가. 맹종은 자칫하다가는 바다우를 겉돌다가 결국 실존(失存)하고마는 물거품처럼 자신을 참담하게 만들수도 있는것이다. 오직 률동하는 맥박을 타고 심장의 고동을 짚어볼 때,  그 영원한 바다의 침묵을 리해하고 비로소 마를줄 모르는 존재로서 확실한 가치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을가.     침묵하고있는 사물을 인식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대국적으로 말해서 생활은 다종다양하고 천차만별하며 세계는 복잡다단한데 그로하여 인식의 눈은 요란한 혼란을 겪는것도 사실이다. 무엇때문에? 하는 사유의 짐을 둘러메고 인생의 본질과 행복의 의미지를 더듬는 사람들까지도 그 현란한 모습들에 미혹되여 그릇된 판단을 진리처럼 고집하며 그래서 알게 모르게 비극과 불행은 끊임없이 빚어지고있지 않는가.     자각적이던 맹목적이던 입을 벌리고 말하는것은 현상이며 침묵하는것은 본질이다. 하나의 본질은 천태만상의 사물에 각양갹색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으며 게다가 인류의 발전은 이런 사물들을 나날이 풍부하게 창조하기에 본래 어려운 인식을 더 어지럽히는 일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현상으 외피를 꿰뚫고 숨겨져있는 본질을 해부해본후 다시 부동한 현상에 입혀 의사를 체현하는 자주적인 삶을 갈망하는 인간으로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생명만큼 소중한 작업으로 되여있지 않을가. 나는 그 작업을 기꺼이 진행하고 싶고 그 혜택을 널리 공유하고 싶다.     우선 인류의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물질과 정신의 두 기둥으로 세워지는데 뻗어나간 가지마다 여러 분야의 주렁진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있지만 한마디로 줄여볼 때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것을 부단히 개진하고 대체하고 리용하는 가운데서 즉 자연을 정복하는 가운데서 보다 편리한 삶을 도모해온 노력이 아닌였던가. 간편하면서도 리익을 줄수 있는 생활, 확실히 인류는 자연계의 령장으로서 지혜의 무기를 리용하여 오늘의 윤활한 삶에 이르게 되었지만 소위의 가장 우수한 것이 반드시 합리한것은 아니며 가장 편리한 것이 반드시 행복이 아님을 왜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그렇다면 합리성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 해답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고뇌 끝에 떠오르는 것은 조화라는 느낌이다.(이것이 유일한 정답이 아닐수도 있지만)     한곡의 위대한 교향악처럼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처럼 음소나 색소들의 개성의 충분하고 적절한 발휘와 상호간의 물샐틈없는 어울림의 완벽한 극치― 평형상태에 도달할떄 등속직선운동과 같은 온정죄고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리상향의 모습은 가까워지지 않을가.(자연과학이나 사화과학이 그 노력은 한곬으로 꾸준한바 사물의 법칙성을 탐구함으로써 보다 훌륭한 세계에로 통하는 길을 찾아내는것이 아니겠는가) 그 세계에서는 어떤 사물이든지 국부적인 위치에서 대형극의 작은 배역이나 직선우의 한 점에 불과할따름이다. 자신의 능력과 배역에 지나친 행위로 자아를 과시하려 할때 그 존재의 합리성은 상실되고 세계에 대한 유일한 공헌은 조화의 파괴이며 종국적인 자기훼멸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누구든지 리기주의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무절제한 발전을 위한 생태평형파괴에서 유일한 획득은 자기뿐이 아닌 전 세계를 잃는것이 아니겠는가.     날로 팽창되는 물질세계에서 마구 받아들이는 편리함에 대한 추구 역시 행복이 아니다. 빈곤이 행복이 아니듯이 물질적부 역시 행복이 아니다. (어떠한 극단이든지 조화와는 거리가 멀다) 행복이란 추구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겪는 느낌들의 조화가 심금을 울려주는 메아리로 진동될 때 산생되는 감각이며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 영광과 릉욕, 성공과 실패, 향락과 고통… 모든 인생체험들을 묵묵히 반죽해가지고 그것을 마음의 가마에 자글자글 익혀서는 가장 황홀한 표정으로 내놓을 때 페부로 안겨드는 형언할수 없는 감각이다. 단것만 먹어 단줄을 모르고 쓴것만 먹어 쓴줄을 모르는 단순한 느낌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지가 될 수 있을가. 인생체험의 어느 한가지만으로는 조화가 실현될수 없는바 이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그 어떤 강렬한 감정충동에서도 심리평형을 잃지 않고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주위를 돌아볼수 있는 평온한 눈길이며 성숙된 인간의 무르익은 사상의 전파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누구나가 희구(希求)하는 사랑은 무엇일가? 사랑은 말로 할때는 랑만이고 행동으로 할때는 실용이며 마음으로 할때는 은근한 향기의 짜릿한 감동이며 삼자가 조화되여 한사람에게 작용될 때 영구불멸의 명곡으로 남아있지 않겠는가.     ……     조화라는 본질은 삼라만상에 대동소이하게 침묵하고있으며 사색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들속에서, 대자연의 품속에서 꽃피고 있다. 바다가 깊어가는 까닭은 아름다운 침묵때문이며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쉼없이 설레이는 파도의 노력때문이며 그래서 나는 우리는 세계의 영원한 물방울의 분망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것일가.
9    (수필) 그런 눈길 댓글:  조회:565  추천:26  2008-11-30
그런 눈길   장련춘   스치는 바람결에도 부르르 전률하는 잎새같은 나를, 한방울의 이슬에서도 투명한  행복을 반사해내는 꽃술같은 나를 그런 눈길로 바라보지 마. 한올의 은근한 향기에도 마음이 취해버리는 나비같은 나를, 하루동안의 생명이라도 즐거운듯 자족해버리는 하루살이같은 나를 그런 눈길으로 바라보지 마. 린색한 겨울해의 온기에도 무작정 녹아버리고 마는 눈꽃같은 나를, 몇광년을 살더라도 여전히 담소할줄밖에 모르는 밤하늘의 무명별같은 나를 그런 눈길로 바라보지마. 너무 순수해서 부시고 아플듯한 눈길,야성으로 충만되여 소화불량에 걸릴듯한 눈길... 그런 눈길로 바라보면은 내가 바보같아보여. 아니, 내가 바보이니깐  그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몰라. 그래서 가끔씩 생각나는 희랍신화 에로스와 다프네의 이야기. 에로스의 애꿎은 장난땜일가 아니면 끈질긴 집착을 꼭같은 끈질긴 거절로 이기고야 마는 성미땜일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 월계수로 굳어버린 다프네가 아름다운지 안타까운지. 월계나무로 굳어버린 다프네를 영원히 사모해서일가 아니면 꺾을수 없는 집요한 정복욕구때문일가 월계관을 엮어 이룩못한 영원한 사랑을 기념하는 아폴론이 얄미운지 돋보이는지. 때론 다프네가 되여 그 눈길 거절해본다. 싫어 싫어 싫어, 넌 바람둥이야. 아무나 다 따라다니는. 에로스가 널 거절하라구 말했어. 피할수 없다면 이대로 나무로 굳어져버려도 좋아. 절대로 허락할순 없어. 때론 월계관이 되여 그 눈길 안아본다. 미안 미안 미안, 넌 센시해. 즐길줄도 아낄줄도 아는. 에로스가 널 복수하기 위해 거짓말해준걸 왜 몰랐을까. 나무로 굳어진후에야 너의 진정을 알수 있을같애, 월계관의 지배권은 너에게 있어. …… 소유할수도 포기할수도 없는 그 눈길땜에 맘속에 이런 두가지 목소리가 들려 왔는지 몰라. 그래서 난 안정을 잃어버렸는가봐. 그래서 나는 자꾸 떠나구 싶었는가봐. 내맘이 안식할수 있는 또 다른 고향을 찾아 나섰는가봐. 시작도 끝도 방향도 모르는 길, 무작정 떠나버린 마음의 옛터. 혼자서 시작한 려행은 외롭고 고되고 힘들었어. 과거를 털어버린 빈 배낭으로 떠났지만 홀가분하지도 못했어. 그래도 가야 했어. 멈출수도 돌아설수도  없으니깐. 다른 길이 있는것도 아니였어. 좋은 길인지 나쁜길인지도 몰랐어. 막무가내와 무기력함이 사람을 얼마나 허둥이게 하는줄 알어? 엉망이 되여버린 발자욱, 마지막 자존의 막대기를 짚고 톺아올라야만 하는 산등성이. 그래, 내가 기댈수 있은것은 그것뿐이였어. 휘청거리는 그림자처럼이라도 서있을수 있은것은 그 막대기뿐이였어. 그렇게라두 끝까지 버티고 서있을거라구 생각했지. 맛있는걸로 재미있는걸로 생활의 구석구석을 채워가노라면 흔들리지 않을거라구 믿었지. 세월의 물로 망각의 약을 먹으면서 그런 눈길을 잊을수 있을거라구 여겼지. 그런데 그게 아니였어. 힘들게 굴던 그 눈길이 기실 내 령혼의 부활제였음을 아주 오랜 시련끝에야 자각하는 순간 나는 자문하게 되였어. 태양은 단일색이 아니고 마음은 흑백만으로 2분할수 없는것인데 내가 왜 옴니암니 하는걸가? ...... 인제는 그런 눈길루 바라보아두 괜찮아. 안그런척 감추지두 말구 그러는척 과장하지두 말구. 꽃이 되여 나비 되여 하루살이 되여 무명별이 되여 아무리 그런 눈길 받아안아두 난 인젠 괜찮아졌어. 내 령혼을 살찌우고 내 령혼을 나래치게 해주어 감사해야 할 그런 눈길,인제는 소유하구두 포기하구두 싶지 않아. 숙명이라면 그냥 이렇게 멀리서라두 아름다울수 있는 자세를 키우구 싶을 뿐이야.   그냥 이대로.                                <<흑룡강신문>> 2008.11.28
8    (수필) 홀로서기 댓글:  조회:457  추천:27  2008-11-30
홀로서기       삶을 홀로 산다는것만큼 외롭고 쓸쓸하고 두려운 일은 아마 없을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부단히 기다리며 만나며 살아가는것이 인간인가부다.     실로 만남은 삶의 순간마다 슴배이지 않을때라고는 없는듯하다. 숨결과 함께 흐르는 공기처럼 너무나 가깝고 너무나 익숙한 만남이여서 있을때는 느끼지 못하다가도 언제인가 저도모르게 잃어버린후에야 그 소중한 가치를 알게 되는 만남, 사막에 나타난 신기루처럼 닿을듯말듯 눈앞에 보이면서도 결국은 환각이여서 실현하지 못하고 허탈에 모대기게 하며 사람을 못견디게 울려주는 만남, 아무리 회피하고 싶지만 막무가내로 당하는 숙명적인 만남, 이밖에 기쁘고 반가운 만남, 슬프고 아린 만남, 물에 물탄듯이 멋쩍고 싱거운 만남…이런저런 모습으로 만남은 우리와 함께 살아있다.     만남은 또 대상에 따라 달리 이름지어지기도 하다. 부모형제와의 만남은 혈연이요 친구와의 만남은 우정이요 련인과의 만남은 사랑이요 서책을 통한 위인과의 만남은 사상과 령혼의 대화요 분단된 동족과의 만남은 뼈저린 상처의 아픔이라 할가. 그리고 자기와의 만남은 자아발견이요 자아인식이라 할수 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우물을 파야 하듯이 남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착실히 자기와의 만남을 마련해야 한다. 수원이 땅속에 깊이 있을수록 우물파기가 힘들지만 물맛은 한결 좋듯이 자기와의 만남은 깊고 어려울수록 만난후의 희열은 더욱 크고 벅차며 또 그 만남을 바탕으로 이룩된 남과의 만남은 보다 훌륭해질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만큼 자기를 만난다는것이 자기를 안다는것이 세상 어려운 일이다.     날마다 비춰보는 거울속에서 만나는 외면적인 나를 알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려운것은 내면적인 나 즉 자기의 사상과 령혼에 대한 인식이다.     나는 지금 어느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있는가? 나는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꺼리고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것인가? 끝없는 낮과 밤의 연결선우에서 나를 지지리 괴롭혀오던 물음이다.     하늘과 땅사이 어느 곳에 탯줄을 묻어둔채 어느 황막한 무인도에서 나는 깃을 내리고 있을가?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망망한 진펄에서 분출구를 못찾아 부대끼는 유전처럼 나의 령혼은 어디서 개발을 기다리고 있을가? 그래서 낮이면 낮마다 지하보물을 찾아 헤매는 지질탐사대원이 되여 비바람속을 누비다 지친 몸을 달래며 황혼을 마주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밤이면 밤마다 별을 헤는 아이가 되어 추억의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지난 모습들을 되새기거나 새로운 별을 눈여겨보는 아이가 되어 아득한 하늘끝을 누뿌리가 시도록 하염없이 바라보는 심경을 가져도 본다. 제가 무슨 화가이기라도 한듯 일기책을 펼쳐놓고 붓가는대로 자화상을 그려보는 버릇이 굳어진것도 바로 이 풀리지 않는 물음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느날 우연히 이루어진 그 사람과의 만남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것을 가르쳐주었다.  학문에 대한 숭배였을가? 명예와 금전에 대한 허영때문이였을가? 아니면 감언리설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서였을가? 하여튼 나는 자신을 미처 알지도 못한채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기쁨과 슬픔과 미련과 아쉬움과 야속함과 얄미움으로 뒤엉킨 감정의 터전에서 나는 얼마나 심한 방황에 빠졌던가. 《홀로 사는 한이 있더라도 이러한 만남은 싫어요.》 이 말을 건네주기까지 나는 얼마나 지긋한 고통과 골수에 스며드는 괴로움에 모대겼던가. 그리고 그속에서 나는 홀로 설 수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되였고 삶의 자세를 발견하게 되였다.     홀로 서기를 배우자. 살이 빠지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홀로 서기를 배우자. 좋아도 나빠도 내 이름으로 살고 고와도 미워도 내 모습으로 살고 강해도 약해도 내 힘으로 살리라. 홀로 설수 있는 사람은 독립된 민족이나 국가가 지니고 있는 그런 존엄과 영광과 긍지를 느낄수 있을만큼 충실하고 위대하리라. 홀로 설수 있는 사람은 웃사람의 구속을 벗어나 세속의 힘에 지배당함이 없이 보다 자유롭게 살수 있고 또 아무나 평등한 마음으로 만나고 누구라도 미련없이 떠나보낼수 있으리라. 변함없는것은 홀로 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고 홀로 설수 있는 힘키우기이며 홀로 선 의젓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1993년)
7    장련춘 프로필 댓글:  조회:1020  추천:70  2008-11-27
장련춘(녀) 할빈시조1중 조선어문교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회원《연변문학》윤동주문학상(수필부분의 신인상), 흑룡강조선말방송국 《박사컵》교원수기 우수상,《(중국조선족)북방시단시가심포지엄》시가우수상,《중국조선어문》잡지 정음상 《<송화강>수필상》금상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등 수차 수상. 수필집 <<침묵의 꽃>>email:     lianchun0311@yahoo.com.cn
6    꽃(시) 댓글:  조회:492  추천:35  2008-11-26
 꽃        장련춘향기드문 세월에향기젖은 꽃으로 피여 아픔이 이슬진 계절의 역행아  나비 제비는 없다 너를 위로할 춤노래는 난산 향기만 짙어 아픔으로 짙어 슬프게 어여쁜 생명 예쁘게 서글픈 인연 먼 날의 반추같은 이야기만 한마당 두마당...... 이대로  더 슬프기 전에 사라질 길을 바람아 열어라바람아 열어라  바람이 닿을수 있는곳바람이 닿을수 없는곳 어데라 없이 향기는아픔을 포로하는데 시들줄 모르는  꽃도망길 없는 아픔 슬프게 아름다운 풍경이 한창이다
5    (수필) 죽음도 사랑으로 댓글:  조회:539  추천:27  2008-11-20
죽음도 사랑으로                                                                                                     장련춘       화장터로 가는 기분은 어울리지 않게 찬란한 심정이다. 날씨가 화창한 때문인지 오랜만에 동행하는 사람들과의 반가운? 만남땜인지 행복을 만끽하고 천명에 돌아가신 오늘 주인공의 유감없을 인생땜인지 아니면 죽음에 길들여져가는 느슨한 내맘땜인지..     젊은데 아직 장례같은데는 안가도 되오-- 라는 말을 들어본지도 오랜것 같다. 터벅거리고 다니며 바라보았던 마지막송별의 모습은 그냥 슬픔뿐이였다- 여러자식을 키웠지만 만년에 양로원에서 외롭게 지내다가 마지막길에마저도 막내둥이밖에 참석하지 못한채 쓸쓸하게 떠나가신 늙은 할머니, 애들의 장래를 위해 골병이 든 몸으로도 아글타글 한국 돈벌이에 나갔다가 이국타향에서 시체로 돌아온 아직은 할머니될 나이가 아닌 녀인, 지지린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비명에 돌아가 살아있는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준 젊은 엄마, 려순의  일본관동사령부 박물관에 진렬된 꼴닥벗겨진채 일제에게 무리죽음을 당한 애처로운 갓난남자아이들의 사진… 그들을 대면한다는것은 절로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져버리는 순간들이였고 절로 슬픔이 우러나는 아픔들이였다. 가장 내밀한 한가닥 신경말초에서 자그자근 씹혀지다가 전신에 쏴악 퍼져나가는 맵고 알알하고 쓰거운 감각, 이것이 슬픔이란건가. 나는 그냥 슬퍼하며 죽음을 바라보았었다. 사람들은 보통 <<눈앞이 캄캄하다>>거나 <<머리가 텅 비였다 >> 혹은 <<마음이 공백이다>>는 말로 절망의 심정을 표현하군 한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보통 검은 옷을 입고 흰꽃을 단다. 내가 여직껏 보아온 절망과 죽음 역시 운명이나 시대가 부여해준 검거나 흰 흑백의 장식뿐이였다. 그러나 오늘 장례날 기분은 여느때와는 다른것같다. 적어도 나의 기분은 그러했다. 장송곡을 영상테프로 토해내는 다른 장례식장보다 악대가 직접 연주하는 동화원의 분위기는 슬픔마저도 아름답게 풀이해준다. 문상객들의 손에 쥐여진 싱싱한 흰장미꽃송이는 친인을 잃은 비애까지도 향기롭게 물들여준다. 저세상에 호적을 붙이고 잠자듯 누워있는 주인공의 평온한 모습은 영별의 공간을 감미롭게 포옹해준다. 자손들의 지극한 효도속에서 살아왔고 친우들의 따뜻한 바램속에서 떠나가는 완정한 인생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느낌은 단일한 슬픔보다는 무지개 어린 애잔함이라할가, 죽음에 대한 향수라 할가. 죽음이 채색으로 느껴지는 자신이 문득 아연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언젠가 경험해보았었던것처럼 익숙하고 친밀하기도 하다. 언제였던가?  제왕전개수술을 하면서 나는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새생명의 탄생으로 곧 엄마가 된다는 흥분과 함께 수술대에서 그냥 깨여나지 못하기라도 할것같은 무서움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였다. 마취주사를 놓고 수술칼을 대고 애를 꺼내고 다시 기워매는….절차마다 의사는 친절하게 교대하면서 수술을 진행했지만 아주 먼곳에서 가물가물 들려오는듯한 목소리가 나를 무작정 잠나락으로 끌고간다. 나는 그때 분명 죽음을 느꼈지만 최초의 두려움이 가셔진 아름답고 아늑한 기분이였다. 딸이야, 얼마나 이쁜지 몰라! 우리 공주처럼 키우자. 수술실문어구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이 말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언어가 되여 나를 맞아주었고 나를 바래주었다. 나는 그냥 죽은 기분이였는데 그때 무지개빛을 보았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기분을 느꼈었다. 기실 평소에 사람들은 죽겠다는 말을 잘 한다. 미워죽겠다, 고와죽겠다, 싫어죽겠다, 좋아죽겠다. 지쳐죽겠다. 슬퍼죽겠다….이런 말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그 어떤 체험을 최고로 배불린 즐거움으로 탈변시킬수 있는 잠재의식이 깃들어있지 않을가. 또한 불교의 래세나 기독교의 천당은 우리에게 확실히 죽음을 아름답게 풀이하는 영생의 길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유물론은 래세나 천당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용감하게 즐겁게 생의 최후를 마중하는 바른 마음가짐을 지닐수 있다는 점에서는 죽음을 다원화로 풀이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같다. 탄생만큼 소중한 죽음은 하느님의 부름일수도 있고 신의 저주일수도 있고 운명의 장난일수도 있겠지만 피할수 없다면 사랑하고 싶다. 죽음까지도 사랑할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면 살아가는동안 사랑스러운것은 물론 그 어떤 시련도 어려움도 고통도 슬픔도… 사랑스럽지 않은 모든것까지도 사랑할수 있는 초탈한 심정을 챙겨둘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불행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수 없는 행복한 마음을 소유함으로써 나는 영원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될수 있을것이다. 축복받고 태여난 생명이라면 항상 축복속에서 살아가고 죽어가자. 축복없이 태여난 생명이라면 스스로의 축복속에서라도 열심이 살아가고 평온하게 죽어가자.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리별잔치에 요청될 사람들에게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죽음의 의미를 심어주도록.                                                                2007
4    [수필]너랑 나랑 풍경되여 댓글:  조회:616  추천:25  2008-11-18
너랑 나랑 풍경되여      나무밑 잔디밭에 한가이 누워 두손을 펼쳐들면 미풍에 설레이는 푸른 잎새에 이리 비틀리고 저리 부서지는 화사한 해살이 손가락사이를 줄타기한다.모습은 보이지 않고 분신으로 다가오는 해님이 한결 아롱지고 아름답다.눈을 감으면 발그레해지는 시야가 심정을 딸기빛랑만으로 물들여 주고 기슭을 핥으며 고운 신음 토해내는 투명한 물소리가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아득히 먼 태고적목소리처럼 내용은 려과된채 두런두런 들려오는 낯선 행인들의 지껄임도 은근하다. 그리고 심금을 울려주는 음악같은 고백...     --난 말야. 산 좋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그냥 이렇게 살고파.     --왜?     --봄 여름 가을 변화많은 외모로 풍류스러운것같지만 항상 믿음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름름하고 풍요로운 산, 아무리 벗어도 당당한 모습으로 오기를 꺾지 않는 겨울산,쩍 벌어진 가슴으로 흐드러진 만화방초를 포옹하고 노루사슴 뛰노는 울창한 삼림을 키워가는 산...산은 남자야.      봄 여름 가을 변함없이 산을 감돌아흐르는 물,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강인하고 날카롭기도 한 몸으로 어느 모퉁이나 속속 스며들어 생명을 부활시켜주는 산속의 물. 퐁퐁 솟아오르는 샘몰이 되여 갈증에 시달린 목을 추겨주기도 하고 주절주절 흐르는 내물이 되여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기도 하고 일사천리로 쏟아지는 폭포가 되여 메말라가는 격정을 부추켜주기도 하는 산속의 물...물은 녀자야.     산과 물이 모여서 좋은 경치가 되는거겠지.     --너랑 나랑은?     --나는 산이고 싶지만 산이 아니야.한동안 세월을 활개치며 걸어왔어. 좋은 부모,좋은 친구,좋은 파트너,좋은 기회...행운의 녀신이 나를 총애하여 너무 일찍 너무 많은것을 주었거든. 그래서 나는 직립보행이 아닌 직립비행을 해온거야. 아직 뼈마디가 여렸던 나이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바로설줄 모르는 나이에 나는 무너질수밖에 없는 모래산이였어. 보다싶이 나는 지금 평지나 다름없어.     그런 산에서 물은 흐를수 없는거야. 흐를 수 없는 물은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는 물은 썩거나 마를수밖에 없겠지. 글구 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바다로 달려가는 몸이기에 나로서는 고이 보낼수밖에 없었어.그리고 먼 훗날 바다가 되여진 너의 곁에 잠간 들려서 과거의 모습을 건져보는것이 나에겐 순간이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겠지.     --넌 날 잘되라구 놓아주었지만 난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어.     애초에 내가 바다로 가고싶은건 아니였어. 발길이 닿는대로 달릴수밖에 없었구 더 이상 달릴수 없는 곳에 이르구 보니까 바다에 이른거겠지.하늘과만 잇닿은 바다는 넘 깊구 넘 넓구 넘 고독해.바다물은 넘 짭구 넘 아려.그리구 바다는 산보다 오물이 넘 많아서 많은 물고기들이 무리죽음 당하는거 봤지? 그리구 풍랑이 일때면 모든것이 풍지박산나는거야. 나는 아직도 습관이 되지 않어. 아마 죽을때까지 습관이 안될지도 몰라. 그냥 맑고 깨끗했던 산속의 물 그대로가 좋았어. 바다경치가 반드시 산경치보다 좋은거는 아니구 산보다 바다가 나를 더 수요하는것두 아니구 산보다 바다가 나에게 적합한것두 아니라는걸 넌 왜 몰랐어? 그리구 산을 떠나서 물이 물일수 있다구 생각했어? 너 리론대로 말해서 물끼리만 모여진 바다가 산과 물이 어룰린 경치보다 더 좋을수 있겠어?     --모르는 소리.산속의 물은 산아래로 흐르지만 바다의 물은 산우로 흐르는거야.바다밑에 우뚝 솟은 산들이 많고 많은줄 너 아직 모르는구나. 산이 우쭐하니까 물이 감도는거구 산들이 머리숙여 받들어주니까 바다가 마음대로 활개칠수 있는거야.     산과 물이 서로의 자세를 바꿀수 있을 때 바다는 많은것을 키울수 있는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거야. 그속에서 해초랑 해어랑 키울수 있고 그속에서 배랑 잠수함이랑 항행할수 있구 그속에서 모든 오물들이 정화되구 소화되여 새로이 탄생되구 그속에서 보이지 않는 산이 보이는 산 이상으로 묵묵히 자기를 부활시킬수 있는거야. 어떤 산은 머리를 들었기에 당당하구 어떤 산은 머리를 숙였기에 더욱 당당한거야. 어떤 물은 산을 감돌아흐르기에 어여쁘구 어떤 물은 만물을 잉태했기에 위대한거야. 예쁜 시내물은 귀염을 받지만 위대한 바다는 존경을 받거든.          --나는 이쁘고 싶었지 위대하구 싶지는 않았어.     --자기의 가치를 억지로 위축시키거나 외곡하는것은 잘못이야.바다에까지 흘러들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물들이 많고 많은데 네가 자신을 아끼지 않고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지 않을때는 얼마나 큰 랑비니? 그리구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를 흘려보내는건 사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랑이 넘치기때문이구 너를 아끼구 축복하는 마음때문이구 막무가내로 내가 바다를 떠일수없는 산인 까닭이였어.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지켜보는것으로도 나는 행복해. 나에게 있어서 너는 상상속에서 현실속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경치였어.     진실로 아름답고 가치있는 사물을 자기만의 소유로 만들기에는 아까울뿐만아니라 또 그럴수도 없는거야. 어데로나 날려가는 꽃의 향기를 누가 독점할수 있겠어? 어데로나 흘러다니는 물을 누가 가두어둘수 있겠어?  담장밖으로 널리 풍겨갈수록 향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안겨주고 마음껏 활개치며 달릴수록 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수 있는거잖니?     --향기가 꽃을 떠나는 순간의 숙명적인 슬픔을 넌 알고 있니? 꽃을 떠나는 순간부터 향기는 점점 옅어지다가 결국 자신을 잃어가는거야. 아무에게도 귀속되지 못하구 분망히 돌아쳐야 하는 물방울의 비애를 넌 알고 있니?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다는것은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것과 마찬가지야.이제라도 이렇게 머물고 싶고 너를 위해 뭔가 하고싶어.     --그것은 스스로의 본색을 몰라서 하는 옥생각이야. 가고 싶어 가고 오고 싶어 오고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어. 조용의 너 원초적인 모습을 떠올려보구 곰곰이 너 내심의 수요를 생각해 보구 눈여겨 주위의 간곡한 기대를 둘러봐. 지금의 심정은 순간이지만 네가 가는 길 네가 하는 일은 영원한거야. 나는 이미 지난 풍경이구 다시 푸를수 없는 산이구 다시 설수 없는 산이구 그렇다구 머리를 숙여 바다를 일수도 없는 위치야.자, 인제는 자신을 랑비하지 말구 어서 가. 사사로이 얽매이지 말구 큰 사랑, 넓은 사랑을 찾아가.     .......        나무밑 잔디밭에 한가이 누워 두손을 펼쳐들면 미풍에 설레이는 푸른 잎새에 이리 비틀리고 저리 부서지는 화사한 해살이 손가락사이를 줄타기한다.모습은 보이지 않고 분신으로 다가오는 해님이 한결 아롱지고 아름답다.눈을 감으면 발그레해지는 시야가 심정을 딸기빛랑만으로 물들여 주고 기슭을 핥으며 고운 신음 토해내는 투명한 물소리가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아득히 먼 태고적목소리처럼 내용은 려과된채 두런두런 들려오는 낯선 행인들의 지껄임도 은근하다. 그리고 심금을 울려주는 짧으며 긴 여운...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일 때 산과 물은 보기에 좋은 경치가 될수 있겠지.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닐 때 산과 물은 마음에 좋은 경치가 될수 있겠지.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일 때 산과 물은 언제나 아무에게나 좋은 경치가 될수 있겠지.                                                              2005 
3    옷[시] 댓글:  조회:526  추천:47  2008-08-21
옷 장련춘 1. 마지막 한올의 진실까지  벗어버린 알몸으로 마주할 때에야  너는 웃음으로  나를 포옹하였다 감싸줄 아무것도 없이 추울 때 넘 춥고 더울 때 넘 덥고  아플 때 넘 아픈 나를  미녀라고 받드는 저 웃음의 바다를 헤쳐나올 길이 없어 그냥 시간의 바줄에  디룽디룽 걸려있노라면 시간마저 나를 버리고  멀리 도망가버린다 2. 보고싶어 숙녀의 옷 벗긴자는 류망 보기 싫어 탕녀의 옷 입힌자는 신사 그러나 류망이야 웨친이는  탕녀 류망이야 욕본이는 군자 신사가 누구냐 숙녀가 누구냐 남의 옷 벗기는 일 남의 옷 입히는 일 쉽던가 어렵던가 <<연변문학>> 2008년 7월호
2    부름(시) 댓글:  조회:563  추천:53  2007-11-27
부름 장련춘어―이― 부르는 소리 있어 돌아보니 빈 그림자뿐이다 그냥 갈가  그래도 다시한번 홀린듯 돌아본다 어―이― 부르는 소리 있어 달려가니 빈 하늘뿐이다 그냥 갈가 그래도 다시한번 홀린듯 바라본다 제정신이 아닌채 홀리우고 돌아보고 제정신이 아닌채 홀리우고 또 달려가고 바보가 되여버린 나는 그냥  바보인채 살고싶다 어―이― 이렇게 그냥 나를 불러다오 홀려다오 <<연변문학>> 2007년 8월호
1    우리가 먹는것 (시) 댓글:  조회:604  추천:57  2007-11-27
우리가 먹는것장련춘 참새가 콩콩  콩크리트우에 반사된 해볕을  쪼아먹는다 바람이 훌훌  자외선 열풍에 젖은 공기를 말아먹는다 사랑이 북북 전기밥가마속에 없는 가마치를  긁어먹는다 도시가 쩝쩝 소화불량에 고민하는 나를 삼키려 한다 그러나 그러나 먹고싶지도 않은 먹히고싶지도 않은 나는  어쩔가  어쩔가 <<연변문학>> 2007년 8월호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