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련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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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언덕에서
2013년 04월 12일 11시 42분  조회:682  추천:0  작성자: 장련춘
.수필.

바람부는 언덕에서

(할빈) 장련춘

바람이 불면 여린 풀잎은 머리 숙이고 버들가지는 춤을 추며 구름은 달려가고 강물은 물결친다. 바람이 불면 연띄우는 사람, 배띄우는 사람, 불피우는 사람… 바람타기에 서두르는 사람들로 세상은 분주하다.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오츄멜로브는 바람따라 돛다는것이야말로 바람타기의 기본상식이라고 속삭이고 적벽에서의 싸움은 동풍을 빌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미루나무바람타기는 바람에 닿을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저어가는것이야말로 원견성있는 행위이라고 피력하고 중용 (中庸) 주의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미리 눈치보다가 제때에 안전지대로 피난가는것이 명철보신의 비결이라고 천명한다. 강도철학은 바람불 때 불을 놓거나 붙는 불에 키질하여 남을 훼멸시키는 동시에 보물을 많이 훔치는 사람이야말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호소하고 왕도법칙은 기분에 따라 꽃잎을 어루만지기도 하고 흙모래를 감아올리기도 나무를 뿌리채로 뽑아버리기도 하는것이야말로 진정한 패권자의 자세이라고 담소한다.

  사이비한 이야기에 귀가 멍하지만 정의나 불의에 상관없이 순풍을 타는것이 역풍을 거스르는것보다 훨씬 성공에 직결되여 있음을 력사는 반복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총명해진 바람타기선수들은 너도나도 바람을 따르거나 바람을 일으키는데 량심이나 도덕따위는 헌신짝처럼 던져버린 그들에게 인간성을 운운한다는것이 얼마나 가소롭고 유치하고 무기력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한 가운데서 막연한 표정으로 막무가내로 바람부는 언덕에 서있노라면 온갖 바람이 다가와 나를 흔들어놓는다.

  향기로운 꽃바람에 나비도 취하고 꿀벌도 취하고 민들레씨도 날리는데 너라구 목석이더냐. 여름밤의 서늘한 강바람에 더위도 멀어지고 피로도 덜어지고 고민도 사라지는데 너라구 무쇠이더냐. 설렁설렁 가을바람에 풍선도 띄우고 연도 띠우고 기발도 나붓기는데 너라구 납덩이더냐. 미친듯이 달려드는 칼바람에 삼라만상이 갈팡질팡하고 솝아들고 죽어가는데 너라고구 금강석이냐. 불의습격하는 태풍에 바다가 대지를 때리고 부시고 삼키는데 너라구 하늘에 별이더냐. 나를 따르는자는 궁전에 별전에 대전에 이르고 나를 거스른자는 감옥에 문자옥에 지옥에 떨어지는줄 아느냐 모르느냐.

  얼리고 닥치는 바람의 수작에 흥분되기도 하고 닭살이 돋기도 하고 간이 콩알만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타고난 천성때문에 아무리 애써도 바람과 어울리지 못한다. 아무리 머리를 숙이려 해도 덤덤한 표정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아무리 몸을 날리려고 해도 무거운 신념의 만유인력이 철석같이 당기고 있으며 아무리 바람을 피하려고 해도 털면 먼지밖에 없는 빈주먹신세에 바람막이 하나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곁을 무수히 란무하는 바람결에 살며시 눈을 감을수밖에 없다.

  바람에 대한 상식이나 지혜도 별로 없고 바람에 대한 원견성이나 눈치도 별로 없으며 부자나 왕자가 될 자질도 별로 없는 나는 전전긍긍 바람을 살필 의무도 자각도 박절함도 모르는채 무작성 바람속에 서있다. 우연에 필연이 반죽되여 언제 어떻게 되여 여기까지 오게 되였는지는 모른다. 그냥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희노애락을 안겨주는 온갖 바람을 묵묵히 감내하고 소화하는 바위일뿐이다. 그리고 바람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비결을 조금씩 더듬어가고있다.

  바람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스쳐가면 그만이고 멈추기만 하면 사라질것이고. 바람이 아무리 얄밉다고 한들 언젠가는 흔적없이 사라질 날이 있을것이고 영원히 나를 괴롭히지는 못할것이 아닌가. 오랜 시련속에서 바람을 함부로 따르지 않는것이 나로서는 진정으로 바람을 이겨내는 행위임을 깨달은 지금, 나는 더 이상 바람때문에 울고웃지 않을것이다. 만변의 세상에서 불변의 자세로 꿋꿋이 자리매김하는것이 내 삶의 숙명인줄 아는 까닭에 나는 더 이상 바람때문에 내심의 안정을 잃지는 않을것이다.

  그렇다.

  나는 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생령들을 묵묵히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굽힐줄 모르는 바위가 되여 오늘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외롭지만 내내 꿋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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