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련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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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 눈
2013년 12월 26일 13시 22분  조회:685  추천:0  작성자: 단비
 

  (할빈) 장련춘

  눈이 내린다. 거위털같은 큰눈이 내린다.하얀 미소처럼 살며시 화사하게 피여나 마음을 부풀게 한다. 제멋에 흥이 난 원초의 춤사위가 눈이 시리다. 주역이 없는 무대에서 혼자만 아는 짓거리를 미친듯이 이어댄다. 리유없이 문을 나선 발의 환상이 길에 나딩군다.

  펑-펑-

  손에 손잡고 하늘을 메울듯이 펑펑 쏟아지는 눈, 눈은 내 마음의 고백처럼 하늘의 축복처럼 하염없이 훨훨 흩날린다. 지붕에도 나무에도 마당에도… 눈송이 내려앉은 자리마다 소복단장 마련해놓은 은빛 세계를 바라보며 신부의 하야얀 워딩드레스 자락에서 풍겨나오는 수줍고 아릿다운 순정을 간직해본다.

  만남이 애모를 낳고 애모가 사랑을 포옹하며 그렇게 순수하게 그렇게 아름답게 인연은 하늘을 장식하는 눈꽃처럼 대지를 덮어주는 눈이불처럼 서로의 마음을 행복으로 넘치게 한다. 여름날의 소낙비처럼 우르릉쾅쾅 천지를 진감하는 천둥소리도 없이, 줄기차게 달리다가 높은 벼랑에서 쏟아져내리는 폭포의 장엄한 발구름소리도 없이, 드넓은 바다에서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풍랑을 일으키는 파도의 자유분방함도 없이 침묵으로만 은근히 속삭이고 묵묵히 쏟아지는 눈꽃, 그것을 닮은 사랑은 살며시 살풋이 차곡차곡 쌓여지기만 한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조차 아름찰 정도로 담백하고 평범한 만남이 하나둘 이어져 순수한 감각들이 모이고 모여 심장을 메우고 온몸의 세포를 감싸주는 그런 느낌투성이로 푸근하기만 하다.

  흩날리는 눈꽃들사이를 한가로이 거니는 순간은 꿈속의 세계로 려행가는 기분이다. 하아얀 세계를 누비며 환호가 터져나오는 심정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나들이가 되여지는 기분이다. 언제라도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거닐고싶어진다. 그래서 문득 내 삶의 감동을 피워올리고싶어진다. 리유없이 나를 웃고 울게 해주는 그런 사연들속에 파묻혀 자신을 잊고싶어진다. 무아의 경지속에서 또다른 나를 만나고싶다. 백설공주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한번이라도 순간이라도 우연히라도.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두눈에 안겨오는 또 다른 풍경은 천당에서 지옥에로 나떨어지며 부서지는듯한 고통을 심어준다.

  애들이 눈을 부비고 뭉치고 뿌리고 밟으며 희희락락 놀고 있다. 내 마음의 아픔처럼 언땅의 신음처럼 눈꽃이 장난꾸러기의 유린속에서 뽀지직뽀지직 전률한다. 마당에도 길우에도 마음에도… 손길발길이 닿는 자리마다 돋아나는 슬픔을 휘뿌리며 창백한 겨울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무겁고 어두운 한숨같은 심정을 건져본다.

  과는 달리 푸른 잎의 배경도 없이 몸을 기댈 가지도 없이 열매를 맺을수도 없이 무기력한 눈꽃, 봄오는 마당이면 무작정 녹아버려 모양도 없이 흔적도 없이 땅속으로 스며들고 공중으로 증발해버리고 마는 운명, 기억의 뒤안길에 말없이 잊혀져버려야 하는 서러운 신세, 따스한 손길 한번 다정히 바랄수도 없이 포근한 사랑 한번 만끽할수도 없이 차가운 계절속에 묻혀있다가 그냥 무너져버려야 하는 처량한 모습. 울음 한번 목놓아 울지 못하고 넉두리 한번 마음대로 털어놓지 못하고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그냥 무언의 미소로 소화해야 하는 가녀린 어깨…

  바라보는 내 마음이 눈물투성이로 모지름이다.

  더 이상 빻을수 없는 가루가 되여 흘날리는 슬픔같은 눈꽃으로 가득찬 거리를 헤매노라면 이윽고 눈사람이 되여진다. 령하로 내려가기만 하는 날씨와도 같은 감정저온에 그냥 얼어만 가는 마음이다. 이대로 겨울사나이가 나에게 죽음을 선물한다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으련만.

  순수하지만 결국 아플수밖에 없는 눈꽃. 이룰수 없는 사랑을 위해 치르는 마음의 장례같이 느껴진다. 계절을 탓하랴, 눈꽃으로 피여난 신세를 탓하랴, 그 눈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탓하랴.

  사랑을 알기 위해 부닥치고 부대끼며 살아온 나날들, 사랑을 알고도 잡을수 없어 안타깝게 모지름을 써온 순간들, 사랑을 보내며 아무도 몰래 말없이 눈물로 세탁하던 느낌들, 사랑의 상실과 리기주의의 다툼을 무수히 경력하면서도 억척스레 살아가야할 래일… 완미한 사랑이나 완미한 세상은 결국 현실에 청해올수 없는 아름다운 꿈일가. 눈꽃같고 신기루같은 황홀한 리상은 결국 영원히 둥글수 없는 아득한 유토피아일가.

  엄마, 눈과 비의 다른점이 뭔지 아세요?

  같이 눈속을 거닐던 딸애가 나의 생각을 무너뜨리며 문득 던지는 물음이다.

  글쎄... 뭐가 다를가?

  눈은 오물을 잠시 덮어감추지만 비는 오물을 깨끗이 씼어주지요.

  사유의 틀에 매이지 않은 어린 딸의 엉뚱하면서도 그럴듯한 해석이다.

  눈꽃을 무작정 좋아하고 눈꽃의 아픈 신세를 무작정 슬퍼하던 나는 그 말에 입이 벌어졌다.

  오물을 덮어감추는 눈, 잠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뭇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을 살수 있지만 더러운 진실을 알기에는 오히려 장애가 되고 오물을 처리하기에는 비보다 오히려 약세가 아닌가. 순수하고 결백한 눈, 잠시는 은빛의 황홀한 모습으로 눈부시지만 흩날리는 먼지에 너무 쉽게 더러워지고 몰아치는 북풍에 너무 쉽게 날려버리는 약자가 아닌가. 선량하고 부드러운 눈, 비록 천사의 마음을 사기에는 넉넉히 여유있지만 악마의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얼음칼보다도 오히려 나약하지 않은가.

  아름다움도 넘치고 정도 넘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고 가냘플수밖에 없는 눈아 눈, 끈질진 생명으로 자신을 강하게 키워가는 길을 어머니 물에게 물어보아라. 피여나면 눈꽃, 차가우면 얼음, 녹으면 눈물, 뜨거우면 증기, 쏟으면 폭포, 뿌리면 비, 달리면 강, 멈추면 바다... 환경에 따라 수요에 따라 다양한 모습 다양한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물은 그 누구보다 생명력이 강하지 않은가.

  그런 어머니 물을 닮은 눈이라면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명력을 연장할수 있는것이 아닐가.그래서 때로는 랑만을 자랑하는 춤사위이기도 하고 때로는 풍년을 기약하는 복음이기도 하며 때로는 뭉치고 깎이고 다듬어져 천태만상의 눈조각으로 변신하는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겨울이 지나가고 새봄이 찾아올 때 파아랗게 돋아나는 풀들의 뿌리에 그리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의 몸에 바로 지난 겨울의 눈이 녹아 생명수로 흐르고 있다는것을 그 누가 부인할수 있을가.

  이렇게 눈은 눈이면서 눈이 아니다. 눈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와서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것 같지만 눈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며 새롭게 탄생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노라니 딸애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눈은 과연 오물을 잠시 덮어감추기만 하는걸가. 결코 그렇지만은 아닐것이다. 눈은 하늘처럼 넓은 품으로 이 세상 모든 사물을 품어주고 감싸주고 보듬어준다. 정갈하든 어지럽든 아름답든 추악하든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묵묵히 품에 안아준다. 어린 딸애는 아직 눈의 그 마음을 알리 없겠지만 나는 거룩한 그 마음을 넉넉히 알면서 또 열심히 배워가는 길이 아닌가.

  펑-펑-

  눈이 내린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든말든 눈은 그렇게 내리고 내린다. 그런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복소복 쌓여지는 눈길을 걸으며 나도 눈처럼 새로운 변신을 꿈꾼다. 하아얀 눈의 삶을 배우고 닮아가는 자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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