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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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국은 한국을 버릴수도있는 나라다 댓글:  조회:1540  추천:0  2016-06-17
국이 지속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전략과 엇박자를 낼 경우 미국은 김정은과 평화협정 체결하여 한반도의 관리권을 북에 맡기는 방안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 1882년 조미 수교 이후 조선 지도부, 오매불망 미국이 한국의 ‘거중조정’ 역할 해줄 것으로 기대  ● 1950년 애치슨 선언의 진짜 의미는 모택동과 스탈린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대전략  ● 스탈린의 대모략에 의해 한국전쟁은 미국과 중공의 피 튀기는 대결장으로 변해  ● 1969년 닉슨 독트린은 중국과 손잡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베트남 포기 선언한 것  ● 한국의 지도자들은 국제정치학, 국제전략론의 초보상식조차 결여 ● 미국은 결코 한국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천사(天使)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불과 4개월 만에 쟁쟁한 경쟁자 16명을 차례로 쓰러뜨리고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그의 주한미군 주둔 비용 100% 전액 한국 부담, 핵 개발 용인 발언으로 이 나라의 지도층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는 김정일과 만나 대화하겠다는 발언까지 하고 있다.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여기에 맞서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이라는 격랑이 일고 있는 와중에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자”는 메시지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전국을 돌며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부추겼다.  발 빠른 기업들은 애국심 마케팅을 시작했다. 코카콜라는 ‘나는 미국인이라 자랑스럽다’(I’m proud to be an American)는 문구와 성조기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을 새긴 제품을 출시했다. 버드와이저 맥주는 제품 이름을 아메리카로 바꾸고 자유의 여신상 도안을 넣은 제품을 판매 중이다.  그 동안 한국은 안보의 절대적인 부분을 미국에 의지한 채 경제개발에 전력투구함으로써 빠른 시간 내에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동맹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미국이 언제까지나 한국의 안보를 책임져주기 위해 강림한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다 알고 있어야 했다.  ▲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손잡기 위해 베트남전 종전과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한 바 있듯이 미국은 언제든 국익을 위해 한국을 버리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다. 사진은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해 주은래 총리와 만찬을 하는 장면. 조선, 미국을 짝사랑하다  역사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였다. 조선이 1882년 서방 국가 중 최초로 조선과 우호수호조약을 체결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수교 이후 양국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상호 협조 관계가 아니라, 조선이 미국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비정상적 관계였다.  조약 체결 당사자인 미국의 슈펠트 제독은 조선은 대단히 가난하기 때문에 상업적 중요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과 수교했다. 그런데도 수교를 한 이유는 “조선 근해에서 난파된 미국 상선과 선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반면에 조선은 미국이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상국(上國)’, 즉 형님 나라라고 여겨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고종은 미국이 주변 열강들과는 달리 영토에 대한 야심이 없는 우호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로 인식하고, 미국의 도움을 얻어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1882년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제1조는 조선과 미국 두 나라 사이에 영구적인 평화와 우호가 있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만약 제3국이 어느 한쪽 정부에 대해 부당하게, 혹은 억압적인 행동을 할 경우 미국과 조선은 ‘그 사건을 통지받는 대로 원만한 타결이 이루어지도록 거중조정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우의를 표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고종을 비롯한 조선 지도부는 ‘거중조정에 최선을 다한다’는 구절을 미국이 제국주의 포식자들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줄 새로운 ‘형님 나라’가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지도자 중의 하나였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는 조선 지도부의 이상론적 인식과는 달리 “수백 권에 달하는 국제법 서적도 서너 문의 대포와 겨루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우호조약도 얼마 되지 않는 화력 앞에 속수무책이다. 대포와 화약이 바로 법이다”라며 대단히 현실주의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기본 입장은 무관심, 즉 외교적 용어로 표현한다면 ‘우호적 중립’이었다. 미국은 조선에서 자신들이 반드시 쟁취해야 할 정도의 중대한 이권을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중대한 이권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지킬 만한 힘이 없었다. 1900년대 초의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군사강국이 아니라 상해에 파견되어 있는 영국의 동양함대를 두려워해야 하는, 군사력이나 국력이 보잘 것 없는 나라였다.  반면에 워싱턴의 주미 한국 공사관은 미국 일부 인사들과 극비리에 교섭하여 미국 은행으로부터 부산, 인천, 원산 세 항구 세관의 관세를 담보로 200만 달러의 차관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 이 돈으로 미군을 조선에 파병하여 청국이나 일본의 간섭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계획은 미국 정부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조선을 일본에 넘긴 미국  미국은 조선에 대해서는 엄격한 중립 불간섭 정책을 유지했다. 때문에 조선에 파송된 일부 선교사들이 조선의 독립을 돕는 등의 정치 행위는 미국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파워 게임의 소용돌이로 끌어들일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우려했다.  미국 정부는 아펜젤러나 언더우드, 헐버트 같은 주한 선교사가 조선 정부에 맞서 개화 활동을 벌이다 탄압 받는 인사들을 치외법권을 이용하여 숨겨주거나 반(反)정부적 활동을 지원하거나, 왕비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고종을 보호하는 등의 정치활동을 금하는 훈령을 내렸다.  미국도 서양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야심이 있는 국가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정책을 “말은 부드럽게 하고 몽둥이는 큰 것을 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00년 미국 부통령 재임 시절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차지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일본은 러시아를 저지하게 될 것이고, 이제까지 해온 것으로 보아 일본은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5년 7월 29일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 장관을 일본에 보내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와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대가로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도록 묵인하는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맺었다.  태프트 장관과 함께 여객선 맨추리어 호를 타고 아시아 순방에 나섰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는 1905년 9월 19일, 귀국길에 잠시 조선을 방문하여 국빈 대접을 받았다.  고종의 부인이었던 엄비(嚴妃)는 민간에서 3만 원의 거금을 빚으로 얻어 앨리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넘겨주는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9월 5일)된 지 2주일 후의 일이다.  “침몰하는 배에서 우르르 도망치는 쥐들처럼” 서울을 빠져나간 미국인들  나라 밖에서 태풍이 몰아치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나라를 일본에 넘긴 그 대통령의 딸 일행을 위해 조선 지도부는 “황실을 방문한 어느 누구보다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다.  ‘대한제국 침탈 비밀외교 100일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의 저자 제임스 브래들리는 고종과 앨리스 일행와의 만남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종은 앨리스와 식사를 마친 후 수행원으로 함께 온 네바다 주 출신 상원의원 프랜시스 뉴랜즈를 불러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조정 역할”을 발휘해 한국을 점차 거세지는 일본의 억압으로부터 구해달라는 요청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뉴랜즈는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적법하게 요청하라”며 비웃는 투로 답했다.’ 앨리스가 서울에서 조선과 미국의 우호를 위해 축배를 든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5년 11월 28일 루스벨트는 서양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서울 주재 미국 공사관을 폐쇄했다. 월러드 스트레이트는 미국인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우르르 도망치는 쥐들처럼” 서울에서 도망쳐 나갔다고 기록했다. 제임스 브래들리는 당시 정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한제국을 배신함으로써 루스벨트는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 확장 계획에 파란 불을 켜 줬다. 그리하여 수십 년 뒤에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테디 루스벨트(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의 결과로 빚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일본과의 태평양전쟁을 뜻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제임스 브래들리는 루스벨트와 태프트가 2인 1조로 한 팀이 되어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체결하여 일본에 아시아 침략의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후에 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게 될 전쟁이 태평양에서 일어나도록 파란불을 켜줬다고 말한다. 루스벨트가 체결한 태프트-가쓰라 밀약은 말하자면 한국을 일본의 강점 하에 놓이도록 만든 사형 선고문이었다.  1950년 애치슨 선언의 진짜 의미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여 3년여에 걸쳐 군정을 실시했던 미군이 1949년 6월 말 철수한 이유는 한국이 자신들의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가며 지켜야 할 ‘가치가 없는 나라’, 즉 미국의 국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는 미 군부의 공동전략조사위원회가 1947년 4월 27일 제출한 보고서에 수치로도 증명되어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안보의 견지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측정한 결과 한국은 16개 나라와 지역 중에서 15등이었다.  주한미군 철수 6개월 후인 1950년 1월 12일,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아시아의 위기: 미국 정책의 시험대」라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이날 애치슨은 “아시아에 있어서 미국의 방어선은 알류산 열도에서 일본을 지나 오키나와와 대만을 거쳐 필리핀으로 그어진다”고 선언했다. 이어 애치슨은 “대만과 한국은 모두 미국의 방어권 밖에 있다. 다시 말해 미국 방위권 밖의 일에 대해서 미국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애치슨 선언의 핵심 내용은 우리가 상식의 선에서 알고 있는 것처럼 북한 침략의 초대장이라기보다는, 미국이 공산중국의 모택동(毛澤東)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스탈린과 모택동이 새로운 중소 동맹조약 체결을 위해 70여 일에 걸친 길고 지루한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미국은 모택동에게 스탈린의 야욕을 폭로하고, 소련보다 미국과 손잡고 협력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바로 애치슨 선언이다. 미국은 애치슨 선언을 통해 중국과 소련을 떼어 놓으려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애치슨은 연설에서 먼저 중국의 혁명에 대한 긍정적 평가부터 시작하여 한국과 대만을 미국의 도서방위선에서 제외함으로써 한국과 대만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선언을 재확인했다. 다시 말하면 모택동이 소련을 포기하고 미국과 손을 잡는다면 남한이나 대만 정도는 공산세력에게 넘겨줄 용의도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 애치슨 선언이다. 그러나 미국의 구애작전은 일장춘몽으로 헛물을 켜고 말았다. 스탈린과 모택동은 1949년 12월 16일부터 1950년 3월 4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장장 70여 일에 걸쳐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새로운 중소 동맹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 애치슨 선언의 진짜 의미는 모택동과 스탈린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미국의 대전략이었다. 사진은 트루먼대통령(왼쪽)과 딘 애치슨 국무장관. 미국과 중국의 피 튀기는 대결장이 된 한국전쟁  1950년 김일성의 남침으로 인해 6·25가 터졌을 때 한반도에서 떠났던 미국은 재빨리 참전을 결정한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침 1주일이 지나지 않아 미 해공군은 물론 지상군까지 참전 결정을 하자 스탈린은 대모략을 구상한다. 즉 김일성의 남침전쟁을 이용하여 미국과 중공을 한반도로 끌어들인 다음 두 나라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게 한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교묘한 술수로 인해 단기간에 끝장날 수도 있었던 김일성의 남한 해방은 계속 지연된다. 서울 점령 후 사흘 간 한강 도하가 지연된 사실, 방호산이 지휘하는 인민군 6사단이 미군이나 한국군이 전혀 없어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호남 지역을 우회하여 시간과 병력을 낭비한 사실, 전쟁 초기와 낙동강 전투 때 중공군이 개입하지 못하고 인천상륙 이후에나 출동한 사실 등은 한국에서 미·중 대결을 일으켜 발목을 잡기 위한 스탈린의 대모략이 연출한 드라마틱한 결과였다. 만약 중공군이 7월 초에 개입했다면 김일성은 8월 15일 무렵 부산 점령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전쟁 양상은 미국과 중공 간의 전쟁으로 변했고, 이제 출범한 지 1년도 안 되어 모든 것이 부족했던 중국은 막대한 국력을 소진해가며 미국과 힘겹게 싸워야 했다.  스탈린은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을 이용하여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이 싸우도록 유도하여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저지했다. 또 전후(戰後) 오랫동안 미·중 양국이 적대관계가 되도록 하는 데도 성공했다. 한국전을 통해 중국과 미국의 관계 개선에 재를 뿌리려는 스탈린의 전략적 목표는 훌륭하게 달성되었다.  한국전에 개입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에서 완전 고립되어 20여 년 이상을 ‘죽(竹)의 장막’ 속에서 자력갱생하느라 허덕여야 했다. 수천만 명이 희생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도 따지고 보면 한국전 개입이 몰고 온 ‘나비효과’로 인한 대재앙이었다.  1969년 닉슨 독트린은 무슨 뜻이었나?  1964년 8월 베트남 통킹 만에서 미 7함대 소속 구축함 매덕스호와 터너조이호가 월맹군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존슨 미 대통령은 미군 전폭기들에게 월맹에 대한 보복 폭격을 명했다. 이때부터 월남전이 확전되면서 50여 만 명에 이르는 미군이 파병되는 등 깊은 수렁에 빠져든 미국은 1968년 1월 29일부터 2월 11일까지, 이른바 ‘구정 공세’로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베트콩의 구정 공세는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완승이었다. 기습을 당하기는 했지만 반격에 나선 미군과 월남군이 베트콩 전투원의 절반 가까운 3만 5000여 명을 사살하고 5800여 명을 생포하는 등 대부분의 베트콩 조직을 와해시킨, 성공한 군사작전이었다.  그러나 전략적 승리는 월맹 쪽이 차지했다.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운동’을 촉발시킴으로써 미군 철수를 이끌어내 정치 심리적으로는 월맹이 승리한 것이다.  언뜻 보면 미국의 월남전 종결은 월맹 및 베트콩과의 전쟁에 대한 반전 여론에 밀린 퇴각으로 보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국방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월남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에 더 이상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닉슨 독트린은 1950년의 애치슨 선언처럼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라는 큰 틀로 들여다봐야 그 진정한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월남전의 수렁에서 헤매던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가 일으킨 쿠데타를 분석한 결과 중대한 시사점을 얻게 되었다. 수하르토가 소련 편향의 수카르노 정권을 제거한 후 민족주의의 길로 나가는 모습을 예의주시한 것이다.  수하르토의 사례를 보면서 미국은 월남전을 원점에서부터 검토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월남전 참전은 주변 국가로 공산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중공의 남진을 막기 위한 예방전이었다.  미군이 월남에서 철수하면 베트남은 공산화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런데, 통일된 공산 베트남이 중국의 앞잡이가 아니라 중국과 맞서 싸우는 민족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냉전이 격화되면서 공산 진영은 중국과 소련이 내분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국은 1950년 초 애치슨 선언을 통해 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고립시키려 했던 그 칼을 다시 빼 들었다. 키신저를 앞세워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시킨 다음 미·중이 손을 잡고 소련 공산 진영을 약화시키기 위한 글로벌 대전략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다.  중국과 손잡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베트남전 포기  이를 위해서는 우선 중국이 미군과 대항하는 데 따르는 안보 불안을 해소시켜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중국은 주한미군과 베트남의 미군에 대항하기 위해 남동해안에 55개 사단 대병력을 배치하고 있었다.  닉슨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력을 소련과의 싸움에 집중토록 하기 위해 월남전 종식, 대만해협을 경비하던 미 해군의 태평양 한복판으로의 재배치, 그리고 주한미군의 감축에 돌입했다.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미국은 월남에서 싸우다 말고 파리에서 엉터리 휴전회담을 체결하고 서둘러 철수했다. 1970년 7월 5일 닉슨 행정부는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 6만 2000명의 주한미군 중 2만 명의 철수를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에 알리지도 않고 이미 지난 6개월 동안 주한미군을 빼내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에 2개 전투사단을 비롯한 5만 여 병력을 파병하여 미군을 돕고 있었다. 이 와중에 한국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주한미군을 빼내가면서 “이제부터 너희 나라는 너희들 힘으로 지켜라”라고 나온 것이다.  이런 도전에 대한 박정희의 응전은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10월 유신, 중화학공업으로 국산 무기 제조,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었다. 10월 유신을 정권 야욕에 눈이 먼 독재자의 발악이니, ‘민주주의의 장례식’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언론인, 국내 학자들의 우물 안 개구리 식 시각이다.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들이 담당해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의 외교적 수사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본뜻은 “모택동이여, 중국 주변의 미군을 다 빼내 줄 터이니, 그리고 유엔에서 대만을 쫓아내고 그대의 나라를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인정할 테니 소련과의 대결에 집중하라”는 뜻이 행간에 숨어 있었다.  중국은 베트남과 한국의 미군 압력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했던 55개 사단을 북만주로 이동하여 소련과의 대치를 강화했다. 중국이 만주에 대병력을 집결시키자 충격을 받은 소련도 유럽에 배치했던 44개 사단을 시베리아 지역으로 돌려 중국에 맞섰다.  박정희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1년 3월 27일 주한미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미 7사단 병력 2만 명이 철수했다. 비무장지대의 서부 해안 전선 27㎞의 방어를 담당했던 미 7사단이 철수하면서 한국군이 비무장지대 전체를 방어하게 됐다. 1971년 2월 닉슨 대통령은 중국과의 수교를 발표했고, 그로부터 3개월 후 대만이 유엔에서 축출되고 중공이 유엔 의석과 안보리 상임위원회 자리를 차지했다.  국제전략론의 초보상식조차 결여된 한국의 지도자들  역사적 사례를 분석해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일미군이나 독일 주둔 미군은 단 한 번도 철군, 감축 이야기가 거론된 사례가 없다. 반면에 미국은 수시로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했다. 1949년에 실제로 철수를 했고, 애치슨 선언으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한국 포기 의사를 전 세계에 밝혔다.  1969년 닉슨 독트린, 1979년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등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단골 메뉴가 된 근본적 이유는 한국이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볼 때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이 걸려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기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가 자신의 목표라기보다는 미군 주둔 관련 비용을 100% 한국이 부담하라는 협상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대전략은 중국 포위망 구성이다. 호주, 일본과의 동맹 강화, 인도의 핵개발에 따른 제재를 해제하고, 중국으로 진출했던 미국 기업의 공장을 인도로 이전하여 인도 경제 활성화, 오바마 대통령의 대(對) 베트남 살상용 무기 수출 금지 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한국이 위치한 동북아는 국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세계적인 대국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구도에서 한국의 안보를 담보하는 길은 누가 뭐래도 원교근공(遠交近攻), 즉 미국과의 동맹 강화가 생명선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우리와는 크게 다르다. 한국에게 미국은 ‘절대 필요한 존재’지만,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그 정도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늘 문제다.  따라서 이 땅의 국가 지도자들은 국익 상, 그리고 국가안보 상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면,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할 만큼 국가의 위상과 가치를 높이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국력을 닦고 안보를 책임지는 나라를 건설했어야 한다.  대미 관계에서 역주행만 즐긴 역대 정권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시대 이후 등장한 역대 정부는 대미 전략에 있어 정반대의 길로 전력질주했다. 북방외교(노태우), “어떤 동맹국보다 민족 우선”(김영삼), “대북 현금지원 통해 미국 공격 가능한 핵·미사일 개발 자금 공급”(김대중), “동북아 균형자”(노무현)를 자처했다. 급기야 중국이 판을 벌인 가짜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여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독재자들들과 함께 중국군의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박근혜)했다.  사실 한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미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때문에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방어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에서 적당히 휴전을 하고 떠나려는 미국을 붙잡고 “단독 북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벼랑 끝 외교를 펼친 끝에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미동맹이 이 나라의 안보를 지금까지 담보해 왔다.  국가지도부가 나서서 미국과의 대립각 세우기에 앞장서고, 한미동맹을 스스로 걷어찰 경우 이 땅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최근 외교가 일각에서 일고 있는 미북 평화협정 논의는 월남의 사례를 보면 그 앞길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북한을 빨리 멸망시키지 못하고 경제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해 국론분열이 가속화되면 한반도의 주도권은 핵폭탄과 로켓을 보유한 김정은에게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일의 대미 협상 카드는 핵무기와 장거리 로켓이다. 김정은이 망하지 않고 수소폭탄까지 보유하는 날, 대중(對中) 포위전략을 구상 중인 미국은 실리적 판단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지리멸렬상을 보이는 리더십, 부패와 탐욕에 눈이 먼 지도층, 입법부와 정치권의 대다수가 친북좌경화 되어 주한미군 철수, 미제 타도를 외치는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보다는 김정은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한반도의 관리권을 북에 맡기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조건은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김정은이 영도하는 공산통일한국이 미국과 맞장 뜨기 위해 개발한 핵무기를 중국 견제용으로 사용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아울러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원산항을 미 해군기지로 개방한다. 아무리 뜯어봐도 김정은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못될 것이니, 미국으로서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사례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김정은이 한반도의 관리자 될 수도  국제 여론의 환기를 위해 김정은에게 적당한 민족주의 표방, 체제 유지에 부담이 안 되는 선에서의 개혁개방, 인권 개선에의 성의 표시를 위해 정치범 수용소 일부를 공개하는 정도를 협상카드로 미국에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공산통일한국을 미국의 영향권 아래 붙잡아두기 위해 적당한 정도의 경제적 이권을 보장할 경우 김정은, 미국 공히 유쾌한 투자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 시절 50만 대군을 파병하여 전쟁을 치렀던 베트남 방문의 교훈을 보라. ‘미·북 평화회담’이란 용어가 왜 나오고 있는지, 이 땅의 국가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보다 냉정하고 냉엄하게 국제 정세를 살펴보길 기대한다.  ‘새가 미치건 말건 나무는 관심 없다’고 프랑스 시인 앙리 미쇼는 외쳤다. 미국은 합리적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 자국 국익 우선의 나라일 뿐, 결코 한국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는 천사(天使)는 아니다. 한국이 미국의 국익에 절실한 영향을 주는 나라가 될 수 없을 때 한국이 망하건 말건 미국은 관심 없을 것이다. 
10    미국은 북핵보다 평화를 더 두려워한다 댓글:  조회:1276  추천:0  2016-02-18
불안은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된다 1차는 1주일, 2차는 2주일, 3차는 3주일, 4차는 4주일을 넘기고 있다.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말이다. 1,2,3차까지는 “별거 아니다” 서둘러 덮더니 이번에는 4주일이 넘도록 다른 뉴스로 넘어가질 못한다. 수구언론 말이다. 모두 왜 이럴까? 4차의 폭발력이 1차보다 4배 증가한,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다. 100배에서 1000배, 아니 그 이상도 커질 수 있는 까닭이다. 수소폭탄이 아니라고? 미 의회조사국의 보고서(1월 7일), 케리 미 국무장관의 베이징 기자회견 발언(1월 28일), 미 정부관리를 인용한 CNN(1월 28일)보도 등 논쟁은 이미 종결됐다. 수구언론의 진심어린 걱정은 거기서 유래한다. 그들은 먼저 불안하다. 불안은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확장된다. 수구언론이 미국에 대한 불신감을 이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공개적으로 표출한 적은 1945년 9월 미군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북핵이 다소 불안해도 미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더 불안하다는 게 1,2,3차까지 수구언론의 자세였다면 이제 그것이 크게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른바 북핵 문제는 시급하고 심각하다. 답은 있을까? 북미 핵공방 3라운드, 그 시작과 끝 ▲ 6자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를 위한 국제적 대화틀로 자리를 굳혔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사진은 2007년 2.13합의 직후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제풀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면서 어디서, 왜 틀렸는지 찾아내는 것이 오답을 정답으로 고치는 출발이다. 그럼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25년 여 공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확인할 것 한 가지. 그렇다. 북핵은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가 아니라 협상을 통해 정지 가능한 보통기관차였다. 북핵 공방을 간추리면 1) 북의 제1차 선비핵화 2) 북의 제2차 선비핵화 3) 북의 선비핵화 거부와 미국의 협상 거부 등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기, 즉, 북의 제1차 선비핵화는 1994년 11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무려 8년 동안 지속된다. 북이 흑연감속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1992년 이전에 추출한 핵물질(과거 핵)과 1994년에 인출한 폐연료봉(현재 핵) 등 핵시설과 물질을 동결,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2,000MW의 경수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 정치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제공하기로 한 제네바합의(1994년 10월)에 따라 북은 1994년 11월 핵 활동 동결을 선언하고 이어 NPT에 복귀한다. 완벽한 선비핵화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경수로는 무소식(2000년 2월 착공)이었고, 관계정상화 협상은 거부되었다. 1998년 8월 북이 인공위성을 발사, 미국을 다시 협상장으로 이끌어내면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가 합의된다. 북이 제네바합의를 준수(즉, 북의 선비핵화)하고 또한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 약속을 이행하고 적대관계 종식과 평화보장체계 등 관계정상화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미사일 발사 유예가 추가된 제2의 제네바합의다. 이렇게 해서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가 종료될 때까지 선비핵화를 유지하는 외교적 성과를 챙긴다. 그렇다면 북은 무엇을 얻었나? 클린턴의 뒤를 이은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초 “이라크와 이란과 북은 악의 축이다” 즉, 북을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한다. ‘선비핵화’ 했더니 ‘후전쟁위협’인 거다. 그랬다. 2002년 10월 3일 평양을 방문한 미 국무부 켈리 대북특사 일행은 북을 자극하여 “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만들 수 있다”는 발언을 듣는데 성공(?)한다. “합의를 먼저 위반한 것은 북”이라며 미국은 중유공급을 중단하고 제네바합의를 파기한다. 이에 북은 2002년 12월 핵시설 봉인을 풀고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는 등 핵 활동 재개에 돌입하고 2003년 1월 NPT를 또다시 탈퇴한다. 그로부터 2년을 질주한 북은 결국 2005년 2월 핵무기보유를 선언한다. 이 동력에 이끌린 북미의 새로운 합의가 바로 2005년 9월의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다. 6자회담 참가국이 모두 같이 약속하는 형식의 이 합의에서 북과 미국은 각자의 핵심 요구사항을 1조와 2조로 나누어 배열한다. 1조 의 “북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고 NPT와 IAEA에 복귀한다” 2조 의 “북과 미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가 바로 그것이다. 3조는 이다. 여기까지는 제네바 합의와 대동소이하다. “두 번 속으면 내 잘못”이라는 말을 떠올렸을까? 북은 안전장치가 필요했을 게다. 9.19공동성명은 4조에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한다”는 것, 5조에서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입각하여 단계적 방식으로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상호 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것 등이 포함된다. 안전장치는 세 가지다. 첫째 6자회담 참가국이 6자회담의 목표로 합의한 것은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점이다. “북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비핵화”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하듯 북도 “미국의 핵을 다리에 묶고 살 수는 없다”는 거다. 한반도 남쪽의 핵은 1990년대 초반에 모두 철수했다? 미국의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핵폭격기 등이 무시로 드나들며 수시로 전쟁연습을 하는데도? 둘째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협상을 한다.”는 약속이다. 여기서 직접 관련 당사국이란 한국전쟁의 당사자인 남, 북, 미국, 중국 등을 말한다. 이 4자가 한국전쟁의 종식을 선언해야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이 시작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도 가능해진다. 셋째 “공약 대 공약, 행동 대 행동”, 즉 ‘먹튀’는 안 된다는 거다. ‘말 대 말’의 차원에서 9.19공동성명은 우리를 설레게 했다. 자, 그럼 ‘행동 대 행동’을 보자. 9월 20일 미국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 예금계좌를 동결한다.
9    오바마-아베-박근혜는 평화 위협의 칼춤을 멈춰라 댓글:  조회:1345  추천:0  2016-02-18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을 비판해 온 좌파 지식인 마이클 패런티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미국의 대외 정책과 그 실체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역사상 최대의 프로파간다의 승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논리는 오늘날 세계의 지배자들과 주류언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거짓 정치선동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은 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버니 샌더스조차 따라하는 엄청난 거짓말이 돼 있다. 샌더스는 최근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 위성을 발사했다고 규탄과 제재를 당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북한 위성 발사 전과 후에 러시아와 일본도 위성을 발사했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물론 위성과 미사일의 차이만 말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인 면이 있다. 위성 발사 기술은 결국 군사적인 목적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사적 목적을 '우주 탐사'로 포장하는 데 앞장서 온 것은 바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한국 등이다. 이처럼 눈을 뻔히 뜬 채 눈가리고 아웅을 무한반복해 온 나라들 속에서 북한 정권은 차라리 순진해 보인다. 따라서 하필 왜 이 시점에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물음은 누구보다도, 한미일 지배자들에게 던져져야 한다. 왜 미국은 근래 핵 폭격기를 한반도 하늘에 날려 보냈는가? 실전투입이 용이한 '스마트 핵폭탄' 개발 소식을 공개했는가? 이라크 등에서 '참수(斬首)' 작전을 수행한 미공수특전단을 한국에 보냈는가?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보내서 무력시위를 했는가? 중국이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둥펑21) 발사 실험을 한 것은 여기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설연휴 첫날 한반도 평화를 강타할 소식이 들려왔다. 북한 위성 발사 소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우려스러운 소식은 그걸 핑계로 한미가 사드 배치를 본격 논의하고 3월 키리졸브 훈련을 역대 최대로 공세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미국은 또다시 "마치 북한이 사건을 일으켜주길 기다렸다는 듯이"(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행동하고 있다. 지난달 북한 핵실험 바로 다음날 일본 아베 보좌관은 "그거 아주 적절할 때 일어났네요"라며 본심을 드러냈는데, 이는 오바마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런 '떡본 김에 제사지내기'는 마침내, 남북 대화·협력의 희미한 실마리같던 개성공단까지 폐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개성공단 폐쇄로 손해보는 게 김정은 정권이냐, 박근혜 정권이냐, 입주기업들이냐는 논란거리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서 초저임금 착취를 당해 온 북한 5만6천여 노동자들, 남한 5천여 개 협력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삶에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남북간의 모든 통신선이 끊기고 개성이 군사지역화되며 완충지대가 소멸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이 나라의 호전적 우파들은 전쟁불사론, 확전각오론, 핵무장론, 김정은 제거론을 떠들고 있고, 국민안전처는 '전쟁발발시 국민행동요령' 75만부를 제작해 학교와 주민센터에 배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총선용 우파 결집 시도라고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이것은 단지 총선용이나, 박근혜 정권의 단독 결정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정부 고위관계자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라는 미국과 일본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고 실토했다. 박근혜 뒤에는 오바마가 있었고, 그래서 입주기업주들이 철수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급작스런 결정이 내려졌던 것이다. 백악관은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가장 먼저 환영하고 나섰고, 미의회는 기다렸다는듯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정부와 국영기업까지 제재할 수 있는 초강력 제재 방안('세컨더리 보이콧')을 통과시켰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사드가 진정 겨냥하는 것도, 세계 최고 수준 미사일과 ICBM 기술을 가졌고 올해초 로켓군까지 창설한 중국으로 봐야 한다. 주한미군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증강배치했고, 한미 특수부대의 적지 침투 연합훈련이 최초 공개됐다. 미국 핵잠수함이 참가한 한미연합 잠수함 훈련도 전개됐다. 3월부터 두 달간 사상최대 규모와 강도로 실시될 키리졸브 훈련에는 미국 전략무기들이 대거 참가하고, 선제공격 시나리오인 '작전계획5015'가 처음으로 적용된다고 한다. '일대일로'와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야심차게 추진해 온 중국은 이것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모를 수 없다. 일부 사람들도 지적해 왔듯이 사드는 단지 '방어용'이 아니다. 사드 배치는 '상대편 반격을 무력화하고 마음 놓고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이자, '북경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선제 타격 표적을 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황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인 것은 북한만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사드 배치를 "유방(중국)을 겨누는 항우(미국)의 칼춤"으로 규정했다.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15만평 안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북중접경지역에 또다른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할 것이라 한다. 사드 배치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미사일의 타격 표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서로 경쟁적으로 한반도에 '모든 방패를 뚫는 창'과 '모든 창을 막는 방패'를 갖다놓다가,멈추지 못하고 만약 뭐가 더 센지 대보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누가 희생당할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한반도 국지전 발생시에 개전 초기에만 1백만 명이 사상한다고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한반도에서, 베트남에서, 남미에서, 중동에서 미제국과 강대국들이 해 온 짓을 보면 안심할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제국주의의 경제 제재와 봉쇄가 결국 군사적 개입으로 연결돼 온 곳은 바로 중동인데, 이라크와 시리아 등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했던 가를 떠올려 보면 소름이 끼칠 뿐이다. 이들에게 북한의 독재와 인권탄압은 군사적 개입을 위한 빌미로만 쓰이고 있다. 게다가 오바마와 박근혜 정권의 북한 붕괴론은 '어차피 붕괴할 것이니 기다리자'에서 이제는 '기다리지 말고 빨리 붕괴하도록 더 밀어보자'로 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기존에 키리졸브 훈련이 가장 공세적이었던 때는 2013년 봄이었고, 그때 외국 언론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었다. 일부 좌파들이 '예비검속'을 당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종북몰이가 절정에 달했던,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기획된 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 그때보다 더 크고 강한 훈련이 다가오는 지금, 제도정치권에는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에 대한 목소리조차 '해산'당하고 사라진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야당인 민주당의 지도자는 '북한 붕괴론'에 동조하는 김종인이다. 게다가 원래 민주당의 어정쩡한 입장 자체가 우파의 공세에 맞서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지금 우파는 '개성공단을 그토록 찬양하더니 왜 갑자기 북한에게 별 의미없는 곳이라는 거냐', '너희가 말하는 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제재는 무엇이냐'며 민주당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대북정책의 전제와 목적을 공유한 채 수단만 달리하려는 게 민주당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이 진정한 문제이고, 제재와 압박이 아니라 평화협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제도정치권에서 '종북몰이'를 각오해야 할 금기가 돼 있다. 얼마전 토론에서 민주당 표창원은 별 것도 아닌 말로도, 이준석에게 "지금 북한 입장 반영해서 말하는거예요"라는 공격을 당했다. '미사일이 아닌 위성'이란 말은 민주당에서도 입에 담지 못할 금기어가 돼 있다. 은 스스로 '종북'과 선을 그어 온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불러서도 "김정은에게 애정이 있는지 '예스, 노'로 답하라"고 강요해 '노'를 받아냈다. 더 밀려서는 안 된다. 진보 진영은 한미일 동맹의 대북제재 반대, 사드 배치 반대, 키 리졸브 훈련 중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요구를 중심으로 최대한 힘을 모아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오바마, 아베, 박근혜가 추고 있는 평화 위협의 칼춤을 멈추게 해야 한다.
8    사드 한반도 배치’의 진실 댓글:  조회:1656  추천:5  2015-02-27
10문 10답으로 알아본 ‘사드 한반도 배치’의 진실 최근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인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일각에서는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방어용일 뿐인데, 진보 매체 등에서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선동적인 루머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사드 배치 반대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에서는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한 10문 10답을 게재한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미사일 방어체제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는 미국의 이른바 ‘미사일방어(MD)’ 전략의 핵심을 이루는 군사 장비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6300여 개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며, 특히, 러시아와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 북한만을 고려한 전략이 아닙니다. 또한, 이미 2010년 2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탄도미사일방어(BMD) 보고서’에서 ‘패트리엇(PATRIOT) 미사일’과 함께 사드, 그리고 사드 운영에 관계되는 레이더인 ‘AN/TPY-2’ 레이더 탐지 장비를 미사일방어의 가장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사드에 동반될 레이더(AN TPY-2)의 설치 필요성과 성능을 설명하고 있는 제작사 그래픽 사드에 동반될 레이더(AN TPY-2)의 설치 필요성과 성능을 설명하고 있는 제작사 그래픽ⓒ기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3/ 사드와 함께 배치되는 레이더의 탐지 거리가 600km에 불과해 러시아나 중국은 탐지가 안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인지?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드와 함께 배치되는 레이더(AN/TPY-2)의 탐지 거리는 공식적으로만 600km이 아니라 600마일, 즉 1000km에 달합니다. 따라서 오산과 평택 등 미군기지에 배치된다면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 동북부 일부 지역을 아주 정밀하게 탐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디펜스인더스트리데일리 해당 페이지 사드의 레이더 탐지 거리는 600킬로미터가 아니라 600마일, 곧 1000킬로미터 TPY-2/FBX 레이더 시스템 설명ⓒ디펜스인더스트리데일리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4/ 사드는 미사일이 지상에서 주로 40-150km 상공에 있을 때에 타격하는 용도라 중러에서 남한 아닌 미국 등으로 발사하는 경우, 그 미사일은 한반도 상공에서는 고고도(高高度) 비행이라 사드로 타격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기도 하는데 미사일방어(MD)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입니다. 가상 전쟁상황을 대비해 모든 가상 적국의 타격능력 방어가 곧 군사력입니다. 러시아나 중국도 괌이나 일본, 그리고 한국의 미군기지 등을 가상으로 타격합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탄도미사일이 미 본토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그만큼 미국 군사력인 주한미군을 타격하는 중러의 능력을 없애는 것이고, 역으로는 미국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는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으나, 문제는 굳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한이 이렇게 고고도 미사일을 사용해 남한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굳이 미국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려는 이유가 잘 드러나고 있는 대목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5/ 그렇다면 오히려 사드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격추 등 방어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당연히 사드 레이더가 탐지할 것이고 격추가 가능합니다. (물론 그동안 실험 발사에서 격추 확률이 높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평택 등에 설치될 사드 미사일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인 관계로 북한 미사일이 남한으로 떨어지기 전인 지상 40-150km 일 때 격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접한 남북한 간 거리에서 굳이 북한이 이런 중거리 미사일을 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수도 서울 타격은 이른바 장사정포로도 가능한 데 굳이 우리 최남단의 어느 목표물을 향해(가량 제주도나 마라도를 향해) 이런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할지 등 이른바 실효성 문제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6/ 일부에서는 이미 해상 기반의 X-벤더 레이더 등이 설치돼 있어서 사드의 탐지 레이더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의 탐지는 여러 장비가 연동해서 돌아갑니다. 탐지 거리가 수천km에 달하는 조기 경보 역할을 하는 해상 기반의 X-벤더 레이더(SBX)는 이미 멀리 남해상에 배치돼 운영 중입니다. 이 밖에도 군사 위성을 통한 탐지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장 탐지 능력이 높은 레이더가 AN/TPY-2입니다. 이는 스쿨버스 형식의 이동형이라서 특히, 국경 지점에 배치돼 가상 적국의 미사일 발사 상황을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고 이 정보는 바로 통합센터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이중 삼중의 거미줄이 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입니다. 사드에 동반될 레이더(AN TPY-2)의 설치 필요성과 성능을 설명하고 있는 제작사 그래픽 사드에 동반될 레이더(AN TPY-2)의 설치 필요성과 성능을 설명하고 있는 제작사 그래픽ⓒ기타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7/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존재하는 가운데,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이 꼭 미국의 MD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은 여러 군사 장비가 연동해서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미국은 특히, 중거리 미사일 방어에서 사드와 그 레이더 탐지 장비의 각 지역 배치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미국 미시일 방어체제의 동아시아 즉, 한반도에서 완성이라고 볼 수 있고, 이는 그대로 미국 MD전략에 예속되는 것입니다. 역으로 이런 사실은 이미 우리 국방부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 MD가 아니라 이른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제(KAMD)’를 구축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8/ 미국이 자기 돈으로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실을 모르는 주장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드 한 개 포대는 8발이 장착된 이동형 미사일 발사대 6~9기로 구성되며 한 개 포대 배치에만 2조 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한미군에 한 개 포대가 시험 배치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가 자체 미사일방어체제가 아니라 미국의 MD체제에 예속되는 것이고 이후 추가적인 배치나 운영 예산에는 수조 원이 넘는 우리 국민의 혈세가 소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증액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이는 자주국방과도 관련된 문제입니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과 자체적인 방어체계를 확보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최첨단 미국산 무기를 도입하는데 우리 국민 세금이 지출되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9/ 사드가 북한 미사일 위협 방어용이라면 왜 한미 당국은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보는지? 결론적으로 사드는 북한 방어용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단지 한국의 협조나 승인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 반발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배치 명분에 따른 ‘군불 떼기’를 계속하는 것이고, 우리 정부 또한, 러시아와 특히,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는 일단 ‘북한 위협론’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것을 은근슬쩍 용인할 입장인지도 모르지만, 특히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것입니다. 군사 전문가들이 다 알고 있는 사드의 용도를 북한 견제용이라고 우리 정부가 중국에는 핑계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10/ 이미 김대중 정부부터 우리는 미국의 MD체제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왜 이 문제가 다시 대두하고 있는지? 그렇습니다. 과거 정부부터 지금까지도 이 사드 배치 문제는 바로 미국의 MD 정책에 예속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반대한 것입니다. 2012년 미국이 당시 북한 위협론이 무르익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AN/TPY-2를 한국 백령도 일대에 배치하려 했지만, 결국 한국 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최근에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 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은 자체 전략에 따라 MD 체제를 강화하고자 이미 주한미군 기지 내에 사드 배치를 위한 부지 조사도 다 끝냈고, 이를 배치 단계로 강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미국의 정해진 군사전략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냐의 중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CARD 11/ 사드 한반도 배치와 관련하여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최근 다시 일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북한 위협론을 명분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 주장을 펴고 있지만, 과장을 걷어내고 실효성을 짚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과연 사드 방어체제가 한반도에 필요한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과연 우리의 이익이 무언인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현실적으로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사드가 설치되어 한중관계가 훼손된다면 이에 따른 경제적인 손해는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 국민 부담으로 그대로 안겨질 수조 원이 넘는 사드 체계를 미국의 전략에 따라 한반도에 배치한다면, 이는 누구의 이익으로 돌아갈지도 냉엄하게 따져야 합니다. 사드와 레이더 탐지 장비 등 고가의 군수 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미 군수산업체의 노심초사하는 바람이 곧 우리나라의 이익이 될 수는 없습니다.
7    한국이여 미국을 경계하라. 댓글:  조회:1630  추천:0  2015-02-10
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미국은 세계 최강의 패권 국가로 군림해 왔다. 냉전 시기(1945∼1989년) 소련이 미국과 양강 구도를 이루었다지만,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국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결국 소련은 미국과 극한적인 군비 경쟁을 벌인 끝에 스스로 무너졌다.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 반열에 올랐으나 군사력 측면에서는 미국의 적수가 못 된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강의 패권 국가다. 지난 70년간 미국은 세계를 지배해 온 것이다. '미국 예외주의'라는 게 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세계를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이상향으로 이끌 사명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얘기다. 이른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없어서는 안 될 국가(Indispensable Nation)'라고 스스로 지칭하면서 자신들이 세계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고 선언했다. 탈냉전 이후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오직 자유민주주의뿐이라며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의 모습은 어떠한가. 전쟁이 판을 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30년 이상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수천만 명의 난민들이 생존을 위해 천지 사방을 헤매고 있다. '이슬람국가(IS)'라는 시대착오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국가를 참칭하고 있으며, 미국은 15년째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향방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는 사실상 군사적 대치 상태에 돌입했으며, 동아시아에서도 미국, 일본과 중국 간의 군사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인구의 1퍼센트가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그리스와 스페인 등에서는 가혹한 긴축정책에 맞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를 외치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부상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강타한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는 있는가'라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약속한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평화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과 가난, 폭력과 갈등이 세계를 불행과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70년간 미국은 세계를 이끌어왔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의 불행과 혼돈에 대해 우리는 미국에게 1차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세계의 패권 국가로서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왜 실현되지 못했는가. 그 이유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있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의, 정확하게는 미국 대기업을 비롯한 파워엘리트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해온 때문이다.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같은 고상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지배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용돼왔기 때문이다. 2. 미국은 전쟁을 통해 태어나고 성장해온 나라다.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학살하고 몰아냈으며, 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19세기 중반 전쟁을 통해 멕시코 영토였던 북미 대륙 서부를 차지했으며,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 등을 식민지로 획득했다. 1차 대전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강대국들이 자살극을 벌이는 동안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고 2차 대전의 승리로 세계 최강의 패권국이 됐다. 을 쓴 미국의 역사가 폴 케네디는 "(17세기) 최초의 영국 정착민이 버지니아에 도착해 서부로 나아갈 때부터 미국은 제국이었다. 정복하는 국가였다"고 말한다. 미 제국의 본질을 가장 먼저, 깊이 있게 통찰했던 수정주의 역사가 윌리엄 애플만 윌리엄스는 "미국은 영토와 시장을 끊임없이 갈망해 왔으며, 자유와 번영이라는 고상한 말들로 이러한 갈망을 정당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문명 충돌론'의 제창자인 보수주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서양 문명에서 군사력의 효용성을 다음과 같이 노골적으로 설파한다. "서방이 세계를 정복한 것은 이념이나 가치, 종교의 우월함 때문이 아니다. 조직적 폭력의 활용에서 우월했기 때문이다. 서방은 종종 이 사실을 간과한다. 비서방인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서방이 500년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군사력의 우세 때문이라는 얘기다. 미국도 서방의 이 전통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미국은 그 자신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라는 점에서 유럽의 식민주의를 부정해 왔다. 또한 미국 예외주의의 전통에 따라 미국의 팽창은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고상한 사명을 위한 것이라는 수사를 통해 세계를 기만하고 자기 자신을 기만해 왔을 뿐이다. 미국은 외국의 영토를 점령하고 주민을 통제해 시장과 원자재를 확보하는 기존의 식민주의 대신 미국 기업에게 완전한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의 경제적 팽창을 꾀해 왔다. 1899년 선포된 이른바 '문호 개방(Open Door)'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간접 지배 방식의 경제적 팽창을 신식민주의라 부른다. ▲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평화와 민주주의 같은 고상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지배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용돼왔다. 사진은 미군이 2006년 태평양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는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평화와 민주주의 같은 고상한 목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지배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용돼왔다. 사진은 미군이 2006년 태평양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는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3. 2차 대전 직후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강국, 군사 대국으로 떠오른다. 세계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미국은 세계 GDP의 절반, 금 보유량의 3분의 2, 투자 자본의 4분의 3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기의 '절대 반지'라 할 핵무기를 가진 유일한 국가였다. 2차 대전 기간인 1943년부터 미국 경제계가 주도해 정부와 함께 추진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연구'에서 전후 미국의 국가 목표가 정해졌다. 1차 대전 이후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권으로 갈라져버린 세계 경제를 미국 주도의 단일한 자본주의 경제 질서로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야심찬 미국의 계획은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다. 우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공산권이 참여를 거부했다. 이로써 세계는 이른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갈렸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됐다. 세계 최대 인구의 중국은 미국 경제계가 가장 눈독을 들였던 해외 시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했던 장제스의 국민당은 결국 공산당에 패배하고 말았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서는 신생 국가 중국의 농민군에게 치욕의 후퇴를 맛보면서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베트남전쟁에서는 패배를 당했다. 1945∼1975년 미국은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실상은 미국식 경제 제도를 강요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은 후퇴하고 말았다. 베트남전쟁 패배로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절대적 우위가 무너졌다. 미국 무역수지의 악화와 함께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이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핵무기를 비롯한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으로도 제3세계에 미국의 의지를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단지 군사력의 우위만으로는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베트남전쟁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전쟁의 본질은 '무력을 통해 나의 의지를 상대편에 강요하는 것'이다. 군사력의 우위가 정치적 승리로 이어졌을 때 전쟁의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아시아 등 제3세계에 대한 행한 군사 개입은 거의 대부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만일 미국이 요구하는 자본주의 제도의 도입이 해당 국가 국민들의 삶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이들 국가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강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미국의 군사 개입이 제3세계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경제 팽창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4. 베트남전쟁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은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 레이건 정부 때부터 미국의 대외 군사 개입은 강화됐으며,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중동 전역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미국 또한 15년째, 역사상 최장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국 내의 정치투쟁에서 군사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은 베트남 국민의 투쟁만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우선 젊은이를 비롯한 상당수의 미국 국민들이 전쟁에 반대했다. 지배 엘리트 내에서도 내분이 일어났다. 평화적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금융계 등 동부의 제도권(Establishment)은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원한 반면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일방적 군사주의 세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했다. 전자는 미국 경제 악화에 따른 달러화의 가치 하락을 가장 우려한 반면, 후자는 미국의 후퇴와 베트남 철수가 미국 군사력의 신뢰도 약화를 가져와 미국의 세계 지배에 치명적 결정타가 될 것을 우려했다. 제3세계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전쟁의 지속은 군산복합체에 커다란 이윤을 안겨주는 대박 사업이기도 했다. 전자는 동부의 전통적 석유 및 금융 재벌 록펠러 가문의 주도 아래 삼각위원회(Trilateral Committee)를 출범시켰고, 후자는 서부 및 남부 신흥 부호들의 지원을 업고 2차 대전 직후 냉전의 산파 역할을 했던 '현존위험위원회(CPD, Committee on Present Danger)'를 복원했다. 삼각위원회는 새로운 경제 강자로 떠오른 유럽, 일본과 공동으로 세계 경제를 관리해 나가자는 입장인 반면, 현존위험위원회는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패권을 유지하자는 입장이었다. 1976년 삼각위원회가 지미 카터를 당선시킴으로써 우위를 점하는 듯했으나 1980년 대선에서 현존위험위원회가 지원하는 로널드 레이건이 카터를 꺾음으로써 결국은 일방적 군사주의 세력이 최종적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1969년 백악관에 입성한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 안보보좌관과 함께 공산권과의 데탕트, 즉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했다. 베트남에서 '영예로운 철수'를 준비하는 한편 중국과의 역사적 화해를 성사시켰고, 소련과는 군비제한협상(SALT)에 나섰다. 그러나 1974년 8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중도 하야하고, 1975년 11월 키신저가 안보보좌관에서 물러나면서 닉슨-키신저 콤비의 데탕트 정책은 좌절된다. 당시 포드 대통령 밑에서 각각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던 럼스펠드와 체니가 바로 키신저의 안보보좌관 퇴임을 주도한 이들이다. 키신저의 퇴임은 네오콘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럼스펠드와 체니는 네오콘의 대부로서 아들 부시 대통령(2001∼2009년) 밑에서 이라크 침공 등 일방적 군사주의 정책을 강행한다. 키신저의 몰락으로 소련과의 데탕트는 무산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면서 '별들의 전쟁(Star Wars)'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하는 등 극단적인 군비경쟁으로 결국은 소련을 붕괴시킨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몰락을 재촉하기 위해 미국이 동원한 것이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다. 아프간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아프간전쟁은 1979년 말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미 1978년, 카터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에 의해 시작됐다. 소련과는 앙숙인 폴란드의 귀족 가문 출신인 브레진스키는 소련의 멸망을 위해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동원한다는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마침내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 브레진스키는 카터 대통령에게 "소련에게 그들의 '베트남전쟁'을 선사했다"고 보고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서 엄청난 피와 희생을 치렀던 것처럼 소련도 아프간에서 마찬가지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브레진스키가 시작한 아프간전쟁은 레이건 정부 들어 더욱 큰 규모로 확대된다. 10년 동안 3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이 투입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사상 최대의 비밀공작이었다. 베트남전쟁에 50만 명의 지상군을 투입하고도 패배한 미국은 미군 대신 이슬람 전사들을 내세워 소련을 상대로 대리전을 치렀다. 소련이 아프간전쟁을 '유령과의 전쟁(Ghost War)'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결국 아프간전쟁은 소련 붕괴를 위해 미국이 이슬람 전사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치른 전쟁이었다. 미국 혼자만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거의 같은 금액의 전쟁 비용을 댔고, 파키스탄이 이슬람 전사들과의 연락 및 훈련을 맡았다. 이렇게 해서 아프간전쟁에서 7만∼12만 명의 이슬람 전사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이 1990년대 이후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을 시작했다. 당초에는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에 주둔한 이교도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1년 9.11테러도 이들의 소행이었다.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출신이었다. 결국 9.11테러는 미국 자신이 키워낸 이슬람 전사들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아프간전쟁이 진행될 당시 파키스탄의 민간인 출신 총리 베나지르 부토는 미국에 대해 "당신들은 지금 당신들을 살해할 암살범들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 경고가 딱 들어맞은 것이었다. 결국 미국은 소련이라는 오랜 숙적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5. 1991년 걸프전쟁은 미국 군사력의 효용성에 대한 군사주의 세력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준 중대한 계기였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단기간에 물리친 뒤 한 미군 장성은 "우리가 이 전쟁을 이기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전 패배 이후 15년 만에 미국 지상군에 의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는 얘기다. 이후 미국은 대외 문제를 외교력보다는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제3세계에 대한 미국 지상군의 파병이 끝 모를 수렁으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을 극복했다고 이들은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미국의 속내를 오판한 후세인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1968년부터 미국 CIA의 정보원(asset)이었고, 1980∼1988년의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후세인은 막대한 전쟁 부채를 갚기 위한 자신의 쿠웨이트 침공을 미국이 묵인할 것이라고 오판했다. 미국은 1979년 전통적 맹방이었던 이란이 이슬람혁명에 의해 이슬람 신정국가로 거듭나면서 반미로 돌아서자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라크만 일방적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이란-콘트라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이란도 은밀히 지원했다. 중동의 패권 국가가 나타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쪽 모두 소모적인 전쟁을 지속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해법을 고집함으로써 미국 군사력의 위용을 세계에 과시하려 했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미국은 후세인 정권 전복에 나선다. 유엔은 물론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전통적 우방국들도 반대한 미국 단독의 전쟁이었다. 세속주의, 사회주의 성향의 후세인 정권은 9.11테러와 관련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슬람 무장 세력과는 적대 관계라는 사실도 무시했다. 네오콘을 비롯한 군사주의 세력의 목표는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장악하는 한편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 전역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이슬람국가(IS) 등장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이 지난 15년간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이슬람 테러 세력을 엄청난 규모로 키워주었다. 게다가 이라크전쟁에 약 3조 달러, 아프간전쟁에 1조 달러의 전비를 쏟아 부음으로써 미국의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미국의 경제력은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의 결과는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만으로는 제3세계를 미국의 정치적 의지에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미군이 이슬람 무장 세력의 사제 폭탄에 꼼짝달싹 못했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후세인 제거에는 성공했으나 이라크에 안정된 친미 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오히려 이라크에 이슬람의 소수파 종파인 시아파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역 내 위상을 강화시켜주는 결과가 됐다. 미국의 무분별한 군사력 동원이 오히려 미국의 숙적 이란을 도와준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의 결과, 미국의 군사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 데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증명됐고, 2008년 금융 위기로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력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은 바뀌지 않았다. '군사력에 의한 대외 문제 해결'이라는 군사주의 노선이 미국 제도권 정치 내의 초당적 합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 같은 비판적 지식인들은 물론이고 CIA 고문 출신인 찰머스 존슨, 육군 대령 출신의 군사역사가 앤드류 바세비치 등 보수적 지식인들마저 미국의 군사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미국의 장래에 해가 된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제도권 정치인들은 여전히 '안보 우선'을 외치고 있다. 오히려 2011년 리비아 카다피 정권 제거,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사드 정권 축출을 위한 시리아 내전에서 이슬람 무장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혼란과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이 포기되지 않는 한 중동을 비롯한 세계의 무력 갈등과 혼란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 평자들이 미국을 '혼돈의 제국'으로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이라크의 미군(2007년 주둔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 이라크의 미군(2007년 주둔 당시 모습). ⓒ위키미디어커먼스 6. 역사적으로 제국은 군사력을 동원해 영토를 확장하고 시장과 원자재를 획득해 경제 팽창을 이루어 왔다. 그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도 제국의 팽창에 따른 과실을 누렸다. 대략 2차 대전 때까지 미국의 행보가 그랬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특히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의 군사주의는 '전쟁을 위한 전쟁', '극소수 파워엘리트를 위한 전쟁'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전쟁의 피해자로 전락했다. 미국이 벌인 군사주의적 모험이 일반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반면 군산복합체와 석유 기업, 금융계 등 파워엘리트의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침공 이후 수의 계약으로 재건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한 핼리버튼과 KBR, 민간 용병 조직인 블랙워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그 자체가 커다란 이윤을 남기는 대박 사업이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도·감청 실태를 고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일했던 부즈 알랜 해밀턴이라는 회사는 중앙정보국 예산의 약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용역을 맡고 있다. 반면 미국인들의 삶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 등은 전쟁 예산에 밀려 축소 일로에 있다. 2005년 카트리나 태풍 피해를 겪은 루이지애나주의 배수펌프가 100년 이상 낡은 것이었다는 사실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일반 국민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었는가를 보여준다. 끝없는 전쟁을 통해 미국 내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과 함께 민주주의도 퇴보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국가 비상사태 하에 있으며 '안보'를 이유로 일반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사찰도 강화되고 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은 이슬람 테러 분자로 의심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멘계 미국인 이슬람 성직자에 대한 드론 암살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 명령으로 그와 그의 10대 아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을 사법 절차 없이 살해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도 오바마 대통령은 매주 화요일 테러 용의자 명단을 직접 챙기면서 일일이 공격 대상자를 선정해 암살을 명령한다. 드론에 의한 테러 용의자 암살은 오바마 대통령이 남긴 미국 대외 정책의 최대의 부정적 유산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다음 해인 2004년, 세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는 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을 냈다. 이제 인류는 미국의 헤게모니 지속이냐, 인류의 생존이냐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다는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지속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촘스키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폭주를 저지할 제2의 슈퍼 파워는 세계 여론이라고 말한다. 미국 국민을 비롯한 세계 시민들이 미국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 의해 일제로부터 해방됐고, 미국 덕분에 북한의 남침을 막았으며, 미국의 도움으로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미국에 비판적 인식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미국 주도의 IMF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 처방을 내렸으며, 남북 대화가 무르익던 1992년 가을 미국은 왜 중단됐던 팀 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해 협상 진전을 가로막았으며, 2002년 10월 근거도 불분명한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이유로 제네바 합의를 파탄 낸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곰곰 따져본다면 미국은 언제나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대중 군사 포위망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는지를 이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이다. 지난 70년간 미국의 군사적 행적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우리의 미래 행보를 정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6    앞으로는 중국이세계를 지배한다. 댓글:  조회:2527  추천:0  2015-01-21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의 대륙통일 후 중국은 2000년간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산업화에 뒤진 중국은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았고 심지어 반식민지로 전략하는 수모를 겪는다. 지난 1980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도광양회(힘을 축적하며 때를 기다린다)'라는 외교전략 하에 힘을 길러온 중국은 이제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패권국으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20일 방송계에 따르면 KBS '슈퍼차이나' 제3편 '팍스시니카, 중국 패권의 시대'에서는 최근 경제에 이어 군사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움직임에 대해 집중 진단했다. 진단 내용을 보면 중국은 매년 국방비를 대폭 증가시키며 미국 6004억달러(2013년 기준)에 이어 1143억달러로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홍콩 군사전문들은 "실제 중국 국방비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이 아직 미국에 비해 국방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개발 등에 주력하고 있다. 먼저 미사일 '둥평-41'의 경우 사정거리가 1만5000km로 지구상 거의 모든 지역에 도달할 수 있다. 이와더불어 중국은 미국과 맞먹는 수준의 잠수함, 미국 전투기 F22와 견줄만하다는 젠31전투기, 미래무기인 극초음속 비행체까지 보유·개발하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존 미어셰이머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은 상황이 더 안좋아지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부유해지면서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패권을 향한 중국의 욕구는 점점 더 커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기 증강과 더불어 중국은 최근 동아시아에 대한 영유권 분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5월 베트남과 파라셀제도를 두고 물리적 충돌을 벌이는가 하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제도)를 놓고는 일본과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불사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강한 욕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 일대에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매장돼있을 뿐 아니라 황금어장 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계 원유 교역량의 3분의 1, 해상 무역량의 4분의 1이 이곳을 지날 만큼 자원이동의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존 미어셰이어 교수는 "(중국은) 모든 섬들과 남중국해 전체를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한다.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은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에는 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할 것이고 물리력을 쓰거나 또는 쓰겠다고 협박할 것이다"고 전했다. 리처드 부시 3세 부르킹스연구소 동아시아연구센터 소장은 "패권 이동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상국의 첫 과업이 자기 나라와 (주변지역을) 잘 통제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도 현재 미국영토와 북미대륙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중국도 먼저 자국 내와 동아시아에서 힘과 영향력을 확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냉전 후 아시아에서 한발 물러서 있던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온 필리핀은 지난 1992년 미군이 철수했던 수빅만에 다시 미군기지를 짓고 있다. 중국은 현재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는 북해함대, 대만을 상대하는 동해함대, 남중국해를 관리하는 남해함대를 중심으로 해군력을 대폭 보강하고 있다. 특히 남해함대의 경우 최근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동해함대 일부가 남해함대로 옮겨오는 등 2년 전에 비해 군사병력이 눈에 띄게 강화되고 있다. 이에대해 남해함대 관계자는 "3개 함대중 남해함대의 군사병력이 대폭 강화됐다. (그 이유로는) 남중국해 상황이 복잡하고 베트남과 필리핀도 세게나오고 있어 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황둥 마카오 군사평론가는 "하이난성 해군기지도 거의 완공되어가고 중국 최초 완전한 국산 항공모함도 이미 제작중으로 2020년에는 완성될 것이다. 이로써 전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세력균형이 바뀌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3년 미국은 4000억 달러의 군사비용을 줄이겠다고 선포한 반면, 중국의 군사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힘을 축적하며 때를 기다린다) 외교원칙은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치며 계승됐으며 이후 등장한 시진핑의 집권이후엔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제 18차 대회보고에서는 '중국의 국제적 지위에 걸맞고 국가안보와 발전이익에 상응하는 견고한 국방과 강대한 군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원칙이 언급되기도 했다. 진찬룽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은 핵심이익이 침범당하면 단호하게 반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핵심이익은 바로 영토안정과 주권, 시장경제문제 등이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은 스리랑카, 파키스탄,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의 국가에 항구를 건설해주면서 운영권까지 획득해 향후 전략적 기지로 쓸 수 있는 곳을 선점해나가고 있다. 스리랑카의 경우 지난 1983년부터 벌어진 내전으로 수만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자 미국과 UN이 경제지원을 끊으면서 중국과 더욱 친밀해졌다. 중국은 스리랑카에 극장, 도로, 발전소, 항구 등을 지어주며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한편 공사가 진행 중인 함반토다항의 경우 중동이나 동아시아로 향하는 지점에 위치해 경제적, 군사적 전략지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도 병원, 국립경기장, 국제회의장과 더불어 10조원을 들여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최대규모의 항구를 지을 예정이다. 인도양과 접한 바가모요시는 향후 무역의 중심지 역할과 더불어 군사 목적의 활용도 가능하다. 이와더불어 중국은 남아메리카 니카라과에 세계 최대규모 운하를 개발할 계획이다. 홍콩의 작은 기업 HKND는 니카라과운하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기업으로 모기업은 중국 본토의 통신장비업체로 전해진다. 니카라과운하는 280km길이로 건설비용만 약 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HKND는 운하 설계와 건설을 도맡는 한편 완공 후 50년간 운하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까지 따냈다. 니카라과운하가 완공되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니카라과 사회에선 이 계약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지고 있다  HKND는 건설사업 경험이 전무후무한 기업인데다가 40살의 젊은사업가 왕징이 이끌어가고 있는데 니카라과는 운하에 대한 별다른 경쟁입찰 없이 이 중국기업과 운하건설 계약을 맺었다. 라프렌사 신문사 기자는 "중국정부는 이 사업과 관련없다는 입장을 내놨고 왕징 대표가 직접 니카라과와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중국정부나 중국군 쪽 인사가 이 사업에 관계돼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수에즈 운하, 파나마운하 등 운하는 과거 영국과 미국이 세계적인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가운데 중국기업이 니카라과운하의 운영권을 가져간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이로써 중국이 미국의 뒷마당까지 진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의 저자 마틴자크는 "중국의 부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은 미국이 패권국이지만 2030년만 되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는 말과 함께 "미국 중심이었던 세계질서 붕괴를 보게될 것이고 개발도상국들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그 중 중국이 가장 중요한 패권국가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시아투데이 추정남 기자 = 미국의 시리아 공습,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중·일·러 4개국 정상의 수싸움이 치열하다. ‘우선 지르고 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당성’문제로 뒷감당이 안되는 상황이다. ‘교활한 호랑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 손으로는 오바마의 뒷덜미를 잡고 평화 이미지를 뿌리며 국내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있다. 그리고는 ‘가스차단’이라는 또 다른 한방을 노리며 3개의 굴을 파놓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물타기 외교’로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은 ‘황희정승’식 해법으로 이쪽저쪽에서 실리를 찾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죽음의 네트워크(network of death)’ IS(이슬람국가) 격퇴를 위해 더 많은 국가가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 전후질서를 흔드는 러시아는 반드시 댓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공습 전후로 치밀한 계산하에 움직였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중동국가를 방문하면서 분위기를 띄웠고 시리아 공습을 전격적으로 개시했다. 이후 호라산 그룹의 서방국 테러가 코앞이었다는 말을 흘려 국내용으로 공습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유엔헌장 51조를 들어 정당한 자위권이었다는 명분을 만들어냈고 전 세계 국가들의 동참을 유도하면서 책임론을 회피하려 했다. bbuheng201202191806350 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뉴시스 그러나 오바마의 발목을 잡은건 러시아였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공습이 시리아 정부의 승인이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이뤄졌다”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시리아를 공습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약점으로 잡았다. 한 손에 오바마의 약점을 잡아챈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와 평화협상을 하는 대외적 이미지를 만들며 국내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있다. 지난 21일부터 모스크바에서는 반전 시위가 시작됐으며 푸틴 대항마 호도로코프스키가 대권 도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마지막 한방을 위해 11월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 난방기가 돌아오는 이때 ‘천연가스 공급 차단’이라는 패를 들어보이며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에 유리한 협상카드로 쓸 계획이다. Japan Women 0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뉴시스 아베 총리는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왕따’신세다. 아베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을 우방으로 유지하면서도 독자적 방위력을 구축하기 위해 자위대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 시진핑의 미움을 받고 있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중국 압박과 미국 흔들기의 적절한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일본 언론에서는 내년 여름을 ‘아베 구상’의 완료 시점으로 본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사안이 북한에서 모두 파악되면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면서 국교를 정상화하고 집단 자위권 법적 정비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심기가 불편하다. 지난 6월 북·일관계가 개선됄때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양자회담을 거절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동 문제로 일본과 북한 문제는 아예 뒷전이다. 푸틴 대통령도 아베에 딴지를 걸었다. 아베 총리는 정권 출범 이후 5차례 정상회의를 열면서 러시아와의 영토반환 협상에 공을 들여왔지만 24일 푸틴은 오른팔인 세르게이 이바노프 대통령 행정실장을 쿠릴열도로 보냈다. 이바노프 행정실장은 이투루프에서 지난 22일 준공된 신공항을 시찰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신공항 건설로 러시아 본토와 쿠릴열도를 연결하는 직항편이 매일 운항하게 되면서 쿠릴열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요원하다.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센카쿠 영토문제와 역사문제, 인도양을 둘러싼 권력 다툼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Netherlands Nuclear Summit 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출처=뉴시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황의정승식 외교로 실리를 챙기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싸우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 출구를 찾고 있는 러시아에는 가스 협상 등으로 경제적 통로를 내줬고 미국에는 IS공습이 옳다는 명분을 실어줬다. 인도양에 거점을 마련하는 ‘진주 목걸이’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몰디브를 방문했으며 스리랑카땅도 28년만에 밟았다.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인도에 방문에 인도 총리 고향까지 방문했으며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실리를 위해서는 적도 동지도 없고 너도 옳고 너도 옳은 ‘스마트한 외교’라는 평가다.
4    필승을 노리는 중국군사 댓글:  조회:1088  추천:0  2014-09-08
습근평 87주년 맞은 중국군에 '필승군대' 주문 중국 정부가 지난달 22일 인민해방군 기갑부대 사관학교를 외신 기자들에게 개방한 행사에서 생도들이 총검술 훈련을 하고 있다. 반부패 드라이브에 잇단 충성맹세…군사위 부주석 "군대개혁 관철" 습근평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방개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1일로 건군 87주년을 맞았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하는 습 주석은 기념일을 앞둔 지난달 30일 복건(福建)성의 군부대를 방문,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필승의 군대 육성을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일 보도했다. 습  주석은 "실전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용감히 싸우고 반드시 승리하는 전투정신을 배양해야 한다면서 "부르면 오고 오면 싸울 수 있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풍(四風. 관료주의, 형식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을 단호히 척결하고 부패를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인민군대의 양호한 이미지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복건성에서 17년간 근무한 습 주석은 부서기와 대리성장, 성장을 맡는 중에 7년간 군의 제1 정치위원도 겸직했다. 습 주석은 자신이 근무했던 곳을 찾아 건군 87주년을 맞아 축하 메시지를 전하면서 장병을 격려했다. 신화통신은 이날 별도의 기사에서 시 주석이 푸젠성에서 근무할 당시 국방 및 군대건설에 얼마나 관심을 보였는지를 정리해서 소개했다. 습 주석은 "어떤 직책을 맡든지 간에 국방과 군대 건설에 관심을 보였다면서 "인민군대가 없으면 인민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는 1999년 군사훈련센터를 건설해 주고 자동화 시뮬레이션 훈련장을 마련해 주는가 하면 군인들의 생활상의 애로점도 적극적으로 해소해 줬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번 기념일은 습 주석의 군대 국방 개혁과 함께 군에 대한 반부패 드라이브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맞이한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서재후(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비리 혐의로 낙마시키는 등 군에 대한 부패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습근평 중국 국가 주석 은 이를 염두에 둔 듯 인민해방군 수뇌부는 이날도 습 주석에 대한 사실상의 충성맹세를 거듭했다. 허기량(許其亮)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기념일인 1일 해방군보(解放軍報)에 게재한 기명 칼럼에서 "습  주석의 국방 및 군대개혁에 관한 중요한 발언을 심도있게 학습해 철저히 관철시키겠다"고 다짐했다. 쉬 부주석은 "새로운 형세 하에서 강군, 흥군의 시대적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해방군보는 주영강(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공개된 후인 지난달 30일 "주영강수사 소식이 발표된 직후 전군과 무장부대가 당 중앙의 결정을 강력히 옹호한다는 반응을 표명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초라한 유격대에서 출발해 87년이 흐른 지금 세계적인 대군으로 성장했다. 인민해방군은 국민당 정부군에 맞서기 위해 주은래(周恩來), 주덕(朱德) 등을 중심으로 강서(江西)성 남창(南昌)에서 봉기한 1927년 8월 1일을 건군일로 잡고 있다. 군대가 창설된 이후 87년간 중국은 인민해방군을 세계 최대규모인 230만 명의 정규군과 항공모함 등 첨단무기 등을 보유한 세계적인 수준의 강한 군대로 키워냈다. 중국은 지난해 동중국해에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고 동·남중국해의 주권 수호를 위해 해군·공군력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국방비를 12% 이상 증액하는가 하면 미국, 러시아 등 각국과의 연합훈련에도 적극 참가하는 등 국제사회를 향한 외연도 넓혀나가고 있다. 중국은 외신기자들에게 부대를 개방하고 국방부 브리핑도 강화하는 등 투명성 개방성 제고 노력도 기울이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중국의 국방예산의 투명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면서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3    .미국-중국 군사력 대결, 바다로 전선 확대 댓글:  조회:1190  추천:0  2014-09-01
지난주   남중국해   해남섬   인근 상공에서   미   해군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할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 하늘에서 벌어지던 양국간의   오랜 ‘힘겨루기’가   이제 해저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미 국방부는   지난 19일   중국 전투기 J-11에게 저지를 당한   미 해군 정찰기 포세이돈 P-8의 임무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포세이돈 P-8은 잠수함 탐지용으로 설계됐다. 미 관리들은 이번을 포함해 최근 몇 개월 사이 벌어진 유사한 사건에서 중국 전투기들이 미군 정찰기에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고 말했다. 한 중국 해군 소장은 미군 정찰기가 중국의 핵잠수함들을 염탐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다. 최근 미국은 중국이 진급(晉級∙094형) 핵 추진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 선단을 포함해 해저 전력을 급격히 확대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해외 국방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잠수함 가운데 2척 이상이 하이난섬에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국이 최근 해저 출입구를 갖춘 잠수함 기지를 확장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펜타곤은 중국 해군이 올해 안에 핵무기로 무장한 진급 잠수함을 이용해 첫 해상초계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한다. 미중 양국은 지난주와 같은 사건이 실제 사고로 이어질 확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26일(화) 중국 국방부는 양국간 긴장을 높이고 있는 해군 및 공군 분규와 관련한 논의를 하기 위해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펜타곤 대변인 존 커비 해군 소장은 미국이 중국 정부와 협력 및 대화를 늘려가겠지만 지난주와 같은 중국측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미군의 정찰과 중국군의 정찰 방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공산이 크다. 미군은 중국이 군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잠수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중국은 이미 항공모함과 해군 함대를 확충했다. 지난 12월부터 미국은 대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포세이돈 P-8 6대를 일본 남부에 배치했다. 포세이돈 P-8은 빠른 속도와 장거리 정찰역량을 갖췄다. 미군은 중국이 잠수함 함대를 60대로 늘릴 계획이며 이를 위해 지난 25년간 러시아로부터 많은 잠수함을 사들였다고 밝힌다. 새뮤얼 라클리어 미국 태평양군사령관도 올 3월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갈수록 거대하고 우수한 잠수함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증언했다. More In 군비경쟁 특히 사거리가 4,000해리 이상인 장거리 미사일을 장착한 진급 핵잠수함을 배치할 경우 북미지역 상당 부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올해가 가기 전에 처음으로 신뢰할만한 해양 기반의 핵 억제력을 확보하게 된다.” 최근 펜타곤이 의회에 제출한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진급 핵잠수함 3대를 운용하고 있으며 2020년까지 추가로 2대를 배치할 계획이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지난주와 같은 사건을 새로운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군사전문가인 니러슝 상하이정법대 교수는 미국이 “정상적이고 정당한” 중국의 해군현대화 열망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이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유리한 항로와 작전을 탐색하기 위해 위성을 탑재한 정찰기와 수상함, 기타 잠수함등에서 정보를 입수한다고 설명한다. More In 군사력 • 한국, 필리핀에 초계함 무상 제공하는 이유는? • 참의원 선거서 자민당 압승땐 '일본 재무장론' 탄력 • 인터뷰: 일본 방위대신, “국방태세 강화할 것” • 아베 총리 '개헌'의 목표는 군사력 증강 이 때문에 상업용 선박들이 바삐 오가고 천연자원 탐사활동이 활발한데다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간에 주기적으로 충돌까지 발생하는 남중국해 지역의 복잡성이 가중된다. 지난주 사건에서처럼 지금까지 남중국해 근방에서 발생한 미중간 충돌의 화근은 잠수함인 듯 하다. 2009년 3월, 미국은 중국 해군함 5대가 하이난섬 근처를 순찰하던 미 해군 임페커블호를 괴롭히고 중국 공군기 1대도 저공비행으로 주위를 돌며 위협을 가했다고 밝혔다
2    공포의2012년 12월21의 진실은?:?? 댓글:  조회:1813  추천:0  2012-12-18
3천 년도 더 전에 세워져 300년부터 900년까지 문명의 황금기를 보냈으며 역사상 가장 막강했던 고대 문명 중 하나로 꼽히는 문명이 있다. 전성기였던 10세기에는 멕시코 남부지역 대부분과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를 영역권으로 가지고 있었던 마야족의 마야 문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마야 문명은 대도시 유적들을 건설하여 각 도시마다 거대한 계단식 제단을 갖춘 피라미드 신전을 세우며 화려한 비석을 뽐냈는데 특히 그들은 현대인들도 놀랄만한 천문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마야인들이 치첸이트사라는 도시에 세운 천문대에는 1년 내내 밤만 되면 그들의 천문학자들이 건물 꼭대기에 앉아 천체를 올려다보며 관측을 했다. 그렇게 선별된 천문학자들이 매일 밤 천체를 관측하며 기록문을 만들었고 곧 이처럼 꼼꼼한 기록문을 가지고 별들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면서 마침내 음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천체의 움직임을 깨닫고 달력을 만들게 된 마야인들은 이후 자연재해의 주기들을 계산한 끝에 그러한 재해들을 예측하는 경지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고대의 문명이면서 해와 달을 관측하는 범주를 넘어선 섬세한 천문 관측을 이미 2000년도 전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신을 떠받드는 신정정치와 농경 사회로 이루어진 마야 문명이 이처럼 천문 관측 기록을 꼼꼼히 기록하여 자연재해들을 예측하는 달력을 제작하였는데 섬뜩하게도 그 끝이 2012년 12월 21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마야인들은 신들이 어떻게 세상과 인류를 창조했는지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들은 시간이 다섯 개의 주기로 나뉘어 있다고 믿었으며 각 주기의 끝과 시작은 다음과 같이 각각 파멸과 새로운 시작으로 이루어진다고 전하고 있다. 1주기: 신들은 지구와 동물을 창조했으나 자신의 피조물에 만족하지 못하고 파멸로 주기를 끝낸다. 2주기: 신들은 새로 흙으로 만든 사람을 탄생시켰으나 이러한 흙 인간은 자아가 없어 다시 주기를 파멸로 끝낸다. 3주기: 신들은 이번에 나무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나무 인간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거니와 스스로 발전을 하지 못해 역시 해당 주기도 파멸로 끝을 낸다. 4주기: 신들은 새로 호박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시금 파멸로 주기를 끝낸다. 5주기: 이제 신들은 자신들을 숭배하는 존재를 원하게 되었다. 신들은 옥수수와 피에서 '마사'를 뽑아 이것으로 옥수수 인간을 만들었다. 위의 5주기에 해당하는 신들의 피조물이 우리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5주기에서도 피조물에 만족하지 못한 신들이 결국 2012년 12월 21일을 기해 다섯 번째 주기를 파멸로 끝을 내리라 예측한 마야인들이 2012년 12월 21일을 마지막으로 달력의 기록을 멈춘 것이라고 한다. 바로 이것이 당시 신을 떠받들던 마야인들이 신의 뜻을 읽고서는 종말로 끝나는 미래에 대해 경고한 예언이다. 그런데 이처럼 현대인의 시선으로 접근했을 때 다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예언 말고도 천문학에 놀라우리만큼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던 마야인들이 천체 관측을 통해 미래에 벌어질 종말을 예언했다는 것이 있다. 치첸이트사에 멕시코와 중미에서 가장 큰 구기장을 세운 마야인들은 이곳에서 태양신을 위한 의식으로 목숨을 건 지금의 축구와 비슷한 구기시합을 벌였으며 동시에 천문 관측에 유리한 장소였던 해당 구기장에서 천체를 관찰했다. 그렇게 마야인들이 동짓날 새벽에 뜨는 태양과 일직선 상에 놓이는 해당 구기장에서 동지 새벽의 해를 관측하던 중 동지의 태양과 은하의 중심이 일직선을 향해 이동하는 움직임을 목격하는 일이 있었다. 이미 2000년도 전에 기본적으로 은하 평면의 느린 축과 성운의 중심은 수평선을 향해 가까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고 있던 마야의 천문학자들이 이와 같이 지구, 태양, 은하계 중심의 핵이 2만 6천 년에 한 번 나란히 자리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마야인들이 2만 6천 년이 되는 날을 계산한 결과가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은하 일직선 배열의 마지막 날인 2012년 12월 21일, 과연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어째서 마야인들은 수천 년에 이르는 달력을 만들면서 2012년 12월 21일을 끝으로 달력 제작을 멈추었던 것일까? 추가로 마야인들은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 태양, 은하계 중심의 핵이 일직선 배열을 이룬다는 것 외에도 이날 지구의 급작스러운 극이동과 강력한 태양 폭풍이 발생할 것도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처럼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기고는 문명의 황금기를 보내던 중 홀연히 자취를 감춘 마야인들은 이와 같은 자연재해들이 지구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길래 더는 지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2012년을 끝으로 달력을 만들지 않았던 것일까? 마야의 이어진 달력 먼저 지구, 태양, 은하계 중심의 핵이 2만 6천 년 만에 일직선 배열을 이루는 일에 대해 알아보자. 이처럼 일직선 배열이 이루어지면서 발생하는 거대한 자력(磁力)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자기장이 일순간에 뒤바뀌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장이 뒤바뀌면 모든 이상 현상들이 동시에 발생하게 되는데 이상 기상 때문에 기아와 전염병은 물론 다수의 대지진, 화산활동의 재개, 빙하기들도 차례차례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이와 같이 지구, 태양, 은하계 중심의 핵이 일직선으로 배열되면서 급작스러운 극이동도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극이동이란 대륙과 그 아래쪽 지구 외곽 부분을 구성하는 맨틀이 지구중심을 가로지르는 현상으로 쉽게 말해 미국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얼음으로 뒤덮이고 알래스카가 적도가 되어 빙하들이 순식간에 녹게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극이동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지면 지진, 화산 폭발, 해일 등의 자연재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지구가 끔찍한 재앙들의 집중포화를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본래 극이동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지지만 2012년 12월 21일에는 일직선 배열로 극의 이동이 수 시간에서 수일 만에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태양 폭풍도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태양 표면의 폭발로 흑점 주변에 높은 에너지가 쌓여 밖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을 뜻하는 태양 폭풍이 2012년 12월 말에 발생하게 되는데 그 파괴력은 무려 원자폭탄의 1조 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태양 폭풍이 지구를 덮친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우리는 느낄 새도 없이 지구와 함께 우주공간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며 만약 운 좋게 태양 폭풍이 지구를 빗겨간다고 해도 그 여파로 전 세계의 전자장비들이 수개월 동안 마비를 일으켜 결국 인류는 순식간에 원시로 돌아가는 처지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정녕 2012년의 위기에서 지구가 무사할 방법이 없는 걸까?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는 이미 이와 같은 2012년 지구 종말론을 들어봤거나 그로 인해 사뭇 진지한 걱정을 해본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더는 코앞으로 다가온 종말로 인해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제로 '위의 사례로 벌어지는 재앙'들로 지구가 종말할 일은 2012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절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지구, 태양, 은하계 중심의 핵이 일직선으로 배열되는 일은 매년 12월마다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애초에 무한한 우주, 그 중 지름 10만 광년의 우리 은하 속에서 모래알을 가지고 제멋대로 배열의 기준을 논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그들 기준에 맞추어 보자면) 그렇다면 작년 12월에 걱정할 만한 일이 벌어졌었는지 생각해보자. 단순히 일직선 배열로 지구의 자기장이 뒤바뀌거나 급작스러운 극이동이 벌어지는 사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 참고로 이러한 일직선 배열에 의한 종말론은 1980년대에 유행하던 그랜드 크로스 현상과 다를 게 없다. 당시 수많은 미스터리 작가들이 즐겨 인용하던 그랜드 크로스 현상은 서양 점성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구를 포함한 네 개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처럼 십자가 모양의 배열을 이루면서 생기는 조석력(潮汐力)이 지구에 영향을 끼쳐 대재앙을 유발한다는 게 그랜드 크로스 현상으로 초래되는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10년도 더 전부터 종말론자들이 경고하던 그랜드 크로스 현상이 막상 1999년 8월 18일에 일어났지만, 우리 모두 그날 아무런 일도 없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참고로 이 그랜드 크로스 현상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더불어 1999년 지구 종말을 대표하는 종말론이었으나 정작 1999년 8월 18일에 지구를 포함한 무려 8개의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십자가 모양의 배열을 이루었음에도 아무런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지구의 자기장이 뒤바뀌며 대재앙이 발생한다는 종말론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구의 종말을 초래할 만한 대재앙을 일으키려면 단기간 내에 지구의 자기장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인데 지금까지 지구에서는 수십만 년에 한 번씩 천천히 지구 자기장이 역전되어 왔으며 특히 최근에는 70만 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지구 자기장이 역전되지 않고 있다. 만약 단기간 내의 자기장 변화를 가능케 하려면 지구의 자전이 멈추는 일과 같은 불가능한 일이 벌어져야 하지만 앞으로 수억 년이 흘러도 그러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이미 그전에 우리는 지구 이외의 행성에서 정착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 폭풍은 어떠할까? 놀랍게도 이 태양 폭풍은 앞으로 실제 벌어질 일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재앙수준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본래 태양 폭풍은 수백 년 전부터 11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는 자연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으로 입은 피해는 고작해야 인공위성이나 차량 내비게이션과 같은 통신기기에서 장애가 발생하는 수준에 머문다. 물론 미국항공우주국인 NASA가 다음연도인 2013년 5월에 태양이 활동 극대기를 맞이하면서 지구 지름의 11배에 달하는 괴물 흑점에서 거대 폭발이 일어나 지구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역시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대대적인 자연재해에는 조금 거리가 먼 것으로 주로 인공위성의 반도체가 망가지거나 통신기기들의 일시적인 사용불능, 심할 경우에는 광범위한 지역이 정전을 맞는 사태가 발생하는 수준이다. 참고로 지금까지 태양 폭풍으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던 적은 1989년으로 이 당시 캐나다의 퀘벡시에서 무려 9시간 동안 정전사태가 일어나 약 20억 달러의 금전적 손해가 있었다. 여기까지 2012년 종말론의 허구성에 대해 읽었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을 것이다. 남다른 천문지식을 뽐내던 마야인들의 달력은 어째서 2012년 12월 21일로 멈춰있는지 말이다. 사실 마야인의 달력을 증거로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2년 지구 종말론은 어디까지나 예전의 극성맞았던 1999년 지구 종말론의 재림일 뿐이다. 다만, 1999년 지구 종말론의 경우 잘못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면 이번 2012년 지구 종말론은 그 이면에 철저한 상업주의가 숨어있었다는 것이 차이일 것이다. 만약 2009년에 할리우드의 유명배우 존 쿠삭을 내세운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2012'가 개봉하지 않았다면 과연 사람들이 2012년 지구 종말론에 이처럼 많은 관심을 보였을까? 마야의 끊겨진 달력을 소재로 지구가 2012년에 종말의 위기를 맞는다는 이 영화가 개봉 첫주 만에 제작비에 투입된 2억 달러를 상회하는 2억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세상 사람들에게 마야인의(?) 2012년 지구 종말 예언을 똑똑히 각인시킨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마야인들의 끊겨진 달력과 관련한 일련의 소동들도 최근 나온 기쁜(?) 소식으로 인해 더는 주목받지 못한 채 2013년을 맞이하게 생겼다. 미국 고고학 연구진이 과테말라 북동부의 마야 유적지 술툰에서 앞으로 7000년 이상의 미래가 기록된 달력을 발견한 소식이 올해 5월 대표적인 과학 학술지인 사이언스지를 통해 발표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제 '2012년 지구 종말론' 다음의 종말론이 나올 때까지는 찜찜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영화 '2012'와 수많은 종말론자들의 주장에 맞서 사실 마야인들은 지구 종말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야 했던 마야 문명 전문가들도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마야인들은 문명 황금기에 어째서 홀연히 기록들만을 사방에 남긴 채 자취를 감쳤던 것일까? 9세기 무렵, 당시 점차 빠르게 소모되어 가던 자원으로 말미암아 식량부족과 질병 등의 재해가 발생하며 점차 쇠퇴의 길을 걷던 마야 문명은 치첸이트사의 주요 수원(水源)이었던 성 세노테에 재물을 바치면서 본격적으로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막다른 길에 갇혀있던 마야인들이 지하 세계의 신에게 재물을 바치면 다시금 자신들의 문명에 빛이 비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곧 부족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성직자들이 심장을 도려낸 희생자들을 재물을 바치는 의미로 성 세노테에 수장시키기 시작하면서 수원이 오염되자 당시 농경 사회였던 마야 문명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게다가 이처럼 상황이 점차 나빠지기만 하자 농민들이 분노하면서 구성원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많은 마야인이 영양실조로 죽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며 그렇게 텅 비다시피 되어버린 마야 제국은 16세기경 스페인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마야 인디언의 장로인 아폴리나리오 픽스툰은 벌써 3년째 마야족은 지구 종말 예언을 하거나 2012년에 흉사가 일어난다고 한 적이 없으며 서구에서 자신들의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을 마야 문명에 끼어 맞춘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어찌 보면 2012년 종말론으로 인해 현재 가장 많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은 아폴리나리오 픽스툰일 것이다. 지금껏 대부분의 미스터리와 음모론들이 애석하게도 비(非)과학적이며 비이론적인, 그리고 끼워 맞추어진 전제와 흥미 위주로 전개되어왔다지만 이 지구 종말론이야말로 그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심심풀이 점괘로도 잘 사용되지 않는 서양 점성술이 하나의 커다란 트렌드였던 중세시대, 그리고 그러한 시대상에서 탄생한 한 의사의 취미활동을 지구종말론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던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부족 간의 불화로 자멸한 고대 문명을 통해 지구의 운명을 엿보려고 하는 것을 과연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구의 자기장과 극이동이 불과 한 해 만에 이루어진다는 가정은 늘어난 인구수로 지구에서 산소공급이 어려워진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논의라는 것을 잊지 말자. 스티븐 호킹이 비록 미시간 대학 고돈 케인과의 내기에서는 100달러를 잃게 되었지만 아마 2012년 지구 종말과 관련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베팅할 것이다.
1    무엇때문에?? 댓글:  조회:1334  추천:0  2012-07-15
연변은   지금  중국에서  유일한  소수민족축구팀인  연변축구를  위하여  해마다  엄청난  자금을  투입한다.  그러나  춤과  노래의  고향인    연변음악에다는  왜  그렇게    투자하기  싫어할까? 혹  가요콩클이  있어도  자기가   작곡한  곡을   반주테프  만들어서   가수가  불러   록음해  오라니  내같이  곤란한  놈들  한곡에  천오백원씩  드는  비용을  어디가서   구해온단  말인고?    축구에  투자하는  10분의일.  아니.  30분의일이라도  연변ㅁ음악과  예술에  투자한다면  우리음악은   번영발전할것이다. 왜  연변자치주 령도동지들은  연변예술에  투자하길  싫어할까?  축구에다는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무엇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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