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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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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문화의 허와 실
2020년 04월 23일 08시 33분  조회:1144  추천:0  작성자: 최장춘

[두만강칼럼]


“량반은 얼어죽어도 겨불은 안 쬔다”는 말이 있다. 겨불냄새가 싫은 데다 화기마저 신통치 않아 체면이 깎인다고 여겨 동지섣달에 몸이 꽁꽁 얼어도 아예 돌아앉는 고집에서 유래됐을 거라고 믿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죽으면서도 체면을 챙긴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기 초성왕(楚成王)이 운명을 눈앞에 두고 태자가 어떤 시호를 줄 것인가에 관심이 끌려 눈을 감지 못했다. 그래서 상주가 끙끙 갑자르다가 겨우 성(成)자를 찾아올리니 속이 내켰던지 제꺽 두눈을 감더란다. 체면문화가 넝쿨처럼 줄기줄기 뻗어내려오면서 오늘날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 깊게 투영된 그림자로 언뜻거린다.

복장업을 하는 어느 사장이 80만원짜리 집에 60만원 장식비를 처넣었다. 왜 그리 많은 돈을 허비하는가 하는 물음에 “옆집 량반이 50만원을 들였는데 사장인 내가 체면이 꾸겨져서야 되겠소?” 라고 대답했다. 철두철미 남한테 그럴사하게 보여주려는 과시욕이다. 옷을 입고 차를 몰고 료리집을 드나들어도 늘 남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를 념두에 두고 있는 터라 폼이 넉넉치 못한 참새가 황새걸음할 때가 많다. 고향에서 천한 일은 체면에 걸려 하기 싫고 기술일은 자격이 모자라 대부분 한국행을 택하는 것이 요즘 추세이다. 욕을 먹으면서 가장 힘들고 어지러운 일을 하고도 돌아와서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던듯이 입이 벌어지게 돈자랑을 한다. 어쩌면 체면치레에 각별히 민감한 사람일수록 모파쌍의 〈목걸이〉 주인공처럼 허영심이 몰고 온 억울함 때문에 일생이 더 불행해질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은 마음속 복잡한 풍운조화를 청우계마냥 수시로 나타내는 거울이다. 자신의 행동이 남한테 폄하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아 진실이 좀 가리워지고 외곡되더라도 괜찮다고 여긴 심리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체면포장에 극성을 부린다. 분명 자신의 주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눈길을 의식해 품었던 생각을 바꾸는가 하면 틀린 일인줄 번연히 알면서 그러려니 하고 서로 수긍하며 기만과 거짓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자식이 명문대학에 붙었다고 숱한 청첩장을 돌려 난감할 때가 있다. 거절하자니 후날 대할 면목이 걱정스럽고 참석하자니 특별이 축하해줄 말이 궁핍해 대부분은 그럭저럭 마지 못해 동참할 따름이다.

자신의 삶을 남의 삶에 얹어놓은듯 앉으면 같이 앉고 일어서면 따라서는 습관된 눈치보기에 줄곧 얼떠름한 삶을 허비한다. 평소 부조리에 대해 그토록 미워하면서도 정작 그런 일에 부딪치면 칼로 썩둑 잘라버릴 용기가 없다. 옳고 틀린 것을 분간하기 앞서 한사코 자신의 립장과 체면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아집이 하찮은 일에서조차 사사건건 따지고 비기며 스스로 렬등감과 수치감을 만들어낸다. 하여 겉은 의젓한데 반해 속은 취약하고 생각은 깊어보이는 듯한데 일처리가 미숙해 자가당착의 모순이 틈틈이 엿보인다.

지성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체면문화의 허와 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원 연길시정부 윤희권 국장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의 학비를 해결하기 위해 퇴직하자 3년 동안 시골에 묻혀 닭치기를 했고 한산한 골목길 식당을 찾아다니며 허드레일까지 수걱수걱 도맡았다. 어떤 사람들은 국장의 체신이 깎이운다면서 혀를 끌끌 차며 나무람했지만 자식을 위한 부성애가 모든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게 했다. 이렇듯 오늘날 잘된 자식들이 걸어온 성장의 자욱마다에는 남몰래 쏟아부은 부모들의 피땀이 보석처럼 소중히 깔려져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 마음을 헤아려 양보하고 용서하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생활의 포옹력이 체면의 이미지를 저급적 취미에서 한층 고상하고 진지한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세상의 민심은 겉치레를 벗어나 지혜와 능력을 우선시한다. 보름달같이 환한 웃음보다 살갗에 와닿는 따뜻한 해살을 더 반기는 마음이다.

연길시원휘사회구역 림송숙 서기는 당대표의 높은 신분도 마다하고 소박한 차림새로 간소한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핸드폰마저 체면이 떨어질 정도로 아주 구식을 사용한다. 초기에 “일개 아녀자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하며 입을 삐쭉거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림서기는 개의치 않고 한밤중에도 전화소리가 울리면 달려가 주민호들의 급한 일들을 도와주었다. 자아희생적인 강한 리더십에 오해와 불신은 봄눈 녹듯 자취를 감추고 어느덧 친분이 두터워진 주민들은 평소에 어디 가나 “림서기, 림서기” 하고 기라성처럼 줄줄이 따라나서 부르며 찾으며 미더운 ‘며느리’, ‘딸’, ‘어머니’로 떠받든다.

“복숭아꽃 오얏꽃은 말이 없어도 그 아래에는 소로길이 생긴다.(桃李不言,下自成蹊)”

향기 그윽한 덕성과 뜨거운 인간성을 지닌 사람은 자화자찬하지 않아도 체면을 대신한 이름 석자가 항상 행렬의 앞장에서 기발처럼 나붓긴다. 체면은 집착하면 무거운 짐이요, 내려놓으면 가벼운 날개다. 가령 소홀하고 매몰차서 나중에 사과할지언정 할 말을 짯짯이 하는 성미가 오히려 구김살없이 반듯한 믿음의 성역을 쌓는다. 가을 열매처럼 속이 오롯이 꽉 찬 너와 나의 진실한 삶이 건전한 체면문화의 터전에 한줄기 보슬비가 되여주기를 두손 모아 정성껏 빌어본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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