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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등대 꾸바의 이모 저모
2017년 05월 13일 19시 51분  조회:600  추천:0  작성자: 바다
사회주의 등대 꾸바의 이모 저모
차룡수
 
   

    아름다운 하와나엔 우리집 있어요
    찬란한 해빛 새 지붕 비추고
    붉은꽃 펴요
 
    근 60년전, 붉은넥타이 매던 시절 부르던 노래다.
    2016년도 막 가는 12월 16일 오후 2시30분 우리방문단 일행을(우리부부와 손녀) 태운 비행기는 꾸바의 수도 하와나 상공에 들어선다. 비행기 아래로 보이는 지면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포기의 수채화다. 다양한 색채의 농작물과 화초, 수목들을 적, 등, 황, 록, 청, 남, 자 특유의 색채에 맞춰 그려놓아 두눈을 황홀케 한다. 필경 어느 화가의 손에서 가공된 거대한 지상 화폭이다.   이 나라  토지 국유 제도의 우세는 가히 통일적으로 배치하여 남들보다 더크게 더멋진 채색비단화폭을 이땅에 수놓을수 있는것이다.  같은 제도하에서 사는 백성이여서 그런지 처음 오는 외딴 곳이건만 어릴때 엄마손 잡고 친척집 가던 기분이다.  
    리마에서 아침 8시 반에 리륙한 비행기는 오후 두시 반에 하와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비행기는 활주로에 선채로 움직일 줄 모른다. 손녀의 말에 의하면 탑승구에 비행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안내원이 승객들에게 량해를 구한다고 한다. 올해 아홉살난 이 손녀는 이번 3인 방문단의 단장이자 번역 담당이다. 훌륭한 생활환경의 영향으로 영어, 에스빠냐어를 류창하게 다루고 중국어에 능숙하며 조선말도 얼버무리느라 한다. 올해부터는  또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배운다고 자랑이다. 게다가 중학교부터는 또 이태리어….이애의 앞날을 눈앞에 그려본다.
    한시간후에야 찜통같은 비행장에 내렸다. 짐 나르는 전송대는 손님들을 골려주듯이 몇분에 한번씩 멈춰선다. 세시간만에야 간신히 짐을 찾았다. 리해된다. 독립후 수십년동안 미국놈들의 악착한 경제봉쇄를 받아 모든 분야의 필수품들이 다 결핍한 정황이다.  이 나라 사람들만의 인내력, 네시간만에 공항을 나오건만 모두들 큰 불평이 없다. 이처럼 악랄한 환경에서도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사회주의 제도를 견지 해 나가는 이 땅의 주인들한테 진심으로 탄복한다.
    공항으로 나오니 딸애가 보낸 스물 댓살 되는 키가 자그마한 성이 양가라는 처녀애가 마중 나와 있었다. 지금 하와나 대학에서  석사 과정 공부중이라 한다.
    우리를 태운 9인석 봉고차는 시 중심을 향해 달린다. 꾸바의 겨울은 아름답기만 하다. 눈보라 치는 우리 고향의 겨울과는 달리 활짝 핀 가로수들이, 무성한 공원의 화목들이 우리를 반겨 맞는다.
    민박집에 우리를 배치하였는데 호화하기를 총통급 호텔을 련상시킨다. 마누라와 손녀가 한방에, 내가 따로 한방에  큼직한 객실까지 달렸다. 게다가 주방, 화장실, 욕실, 휴식용 베란다, 화식칸엔 내가 하루도 없어서는 안되는 술, 실로 부러운것 없다. 쇼양의 말에 의하면 국영호텔은 이 정도면 하루 주숙비가 인민페로 천원 넘지만 이 민박집은  3백원도 안 된다 한다. 또 자기가 아는 집이여서 아주 안전 하다고 한다. 만족이다, 이 이상 더 바랄게 없다. 기분좋게 행장을 풀었다.
    나의 요구에 따라 저녁은 중국식당에 배치하였다. 차로 5분정도, 아주 깔끔한 식당이다. 
    메뉴에는 20여가지 중국 료리들이 있다. 중국 사람이 왔다고 하니 집주인 아줌마가 나왔다. 광동 사람이라 하지만 광동에서는 보기 드문 훨끔한 여자다. 화사한 태도에 보답하느라 중국돈 200여원어치 반찬을 주문하고 이곳 명주 랑모주를 청하였다. 근 70년동안 중국에서만 살아 그런지 출국하여 며칠만 되면 중국 음식 냄새가 그립다. 내가 좋아하는  양고기 파볶음, 졸인 돼지고기, 짠지, 튀운 물고기, 이곳에서는 대단히 풍성한 축이라 한다. 여기 사람들의 한달 로임으로는 어림도 없단다. 거의 두달 로임에 맞먹는다. 허기 차던차에 세 사람 다 게걸스레 먹어줬다.
    배가 부르니  한바퀴 돌아 본다.  300평방 넘어 보이는 꽤나 규모 있는 식당이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이곳의 대부분 중국 식당은 가짜라 한다. 중국 간판을 걸고, 본지 사람들이 경영한단다. 물론 질도 형편없고, 아메리카 이땅에 가짜 중국 식당 간판까지 걸수 있게 하는 중국사람들의 수완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다. 중국 사람들은 이 먼 아메리카 땅에 와서도 능란하게 삶의 길을 개척 해 나가고 있음을 설명한다. 꾸바인구의 1프로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꾸바의  독립전쟁에서 마멸할수 없는 공적을 세웠고 사회주의 건설에서도 꾸바는 중국과 중국인들을 떠날수 없다고 한다. 지금 이 땅에는 13만 넘는 중국인들이 살아 가고 있는데 꾸바인들과의 관계가 대단히 좋다고 한다. 중국놈으로서 자랑스럽다.
    금방 식사를 끝내고 나니 민박집 주인이 마침 차를 갖고 마중왔다. 쇼양의 배치에 따라 래일은 먼저 아메리카 명주인 꾸바에서 꾸바의 명주인 유명한 유람구인 장도로 가기로 하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 꿈만 같다. 한달전 딸애가 아메리카의 유일한 사회주의국가, 세계 다섯개밖에 없는 희소한 사회주의 국가중의 하나인 꾸바 구경시킨다 하더니 어느새 이땅에 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60년대말 대련 근처의  바다가에서 한국산 약용 비닐병 하나 주었는데 그렇게 희구하던 일. 세상은 변했다. 중국 변강의 자그마한 곳에서 조선족 령감 노친네가 꾸바로 왔다. 태평양을 가로 질러 지구를 반바퀴 빙 돌아, 인젠 5대주 4대양 신체만 튼튼하면 못갈데 없다… 몸조리 잘하여 오래오래 살아야겠다. 평생을 파초 더미에서 뒹굴며 살아 왔으니 인젠 복 누릴 일밖에 안 남았다. 노친네 말 잘 들으면서.
    이틑날 12월 17일 아침 우리는 하와나에서 장도로 가는 공항으로 향하였다. 길거리의 절반 이상 차량들은 5, 60년대의 구라파의 고풍스러운 아바이 차들이다. 이 유명한 성시의 색다른 풍경이다. 한결 돋보인다. 새차를 살 여건이 안 되니 낡은 차들을 수리하고 또 수리하여 쓰는 판이다. 듣는 말에 의하면 이곳의 거의 모든 기사들은 수준급의 수리공이라 한다. 뻐스는 거의 세시간 천천히 달리며 우리를 시내구경 시킨다. 자그마한 시골 뻐스잠 같은 공항에 도착하였다. 11시가 거의 될때 44인 탑승용 비행기에 올라탔다.  40여분만에 장도에  도착하였다.
    푸르른 하늘 푸르른 바다 푸르른 섬, 천하 만상이 청록색 세계에 파묻혀 있다. 띠염띠염 펼쳐진 백사장만이 이곳이 륙지임을 알려준다. 
    공용 뻐스가 우리를 유람구로 실어다 주었다. 다시 편의 짐차에 앉아 주숙지에 도착하였다. 한층에 두집씩인 3층 짜리 별장 20여채가 야자나무 슾속에 질서 정연하게 배렬돼 있다. 짐을 부리고 창문 열고 바라보니 남쪽에는 백여메터를 사이 두고 이곳 특유의 맑고 푸르른 가없는 바다가 우리를 반겨 넘실대고 있다 .바다가에는 밀가루를  편듯 하얗고 보드러운 모래장이 아칠에게 펼쳐져 있다. 이 역시 이곳의 특유의 풍경이라고 한다. 배가 촐촐해난다. 손녀를 따라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근처는 수영장으로 에워쌓여있다.푸 르면서 투명한 물, 거울같이 고요한 물, 밑 바닥까지 환히 들여다 보인다. 담방이라도 뛰여 들고싶다. 그 주위에는 또 이름모를 각가지 꽃들이 요염한 자태로 손님들을 유혹한다. 세계각국 미남 미녀들이 온몸을 헝겊오리로 살짝 가리우고 미인 선발  대회에서 표현하듯이 꼬리질 하며 싸다닌다. 그자태 그대로 휴식용 의자에 늘어 져서 그 아름다움을 시위 하는 놈들도 있다. 실로 자유세계의 놈들다운 호방함이다. 
    손녀의 배치에 따라 야외식당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오늘부더 먹고 마이는것 일률로 면비라 한다. 각가지 음료에 술은 양주부터 호프, 포도주, 랑모주… 반찬도 륙해공군 없는것이 없다. 주식은 주로 햄버거, 빵, 비빔밥, 이태리 국수, 술만 마침이 마이고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란다. 손녀의 지시다. 대식품 시대 초근, 목피, 콩깍대, 겨떡 닥치는대로 먹어본 령감이다. 실컷 먹어주자. 이렇게 좋은 세상도 있구나.
    손녀가 여러가지 안주에 얼음을 탄 양주 한잔 청해 준다. 그리고 마누라에게는 포도주 자기는 콜라를 들고 두량주의 쾌락을 위하여 건배하잔다. 기쁜 기분에 쭉… 그만 다 내 버렸다. 손녀에게 한바탕 꾸지람, 그래도 너그럽게 큰 고뿌에 호프 한잔 더 가져다 준다. 앞으로는 한끼에 배갈 두냥 초과 못한단다. 세계 명승지에서의 멋진 한끼다.
    식사후 수영복을 바꾸어 입고 수영장에 뛰여 들었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물, 몸 잠그기도 미안하다. 발끝까지 환히 들여다 보인다. 수영은 우리 이 손녀의 체육 특장이다.  어느새 물속으로 10여메터 미끄러져 나간다. 나도 버둥거리며 따라 가느라 하지만 어림도 없다. 5분도 안되여 헐떡 거리며 두손을 들었다. 젊어서는 하느라 했는데, 불복이다. 한쉼 쉬고 또 도전이다. 잠시후 박수 소리에 고개 돌려 바라 보니 손녀의 자맥질 재간에 이웃 나라 친구들이 박수갈채를 보낸다. 변두리에 있던 마누라도 첨벙거리며 다가온다. 좀 아느라고 내딴에 교련으로 나선다. 인젠 실컷놀자. 시집 와 거의 40년 너도 고생이 많았다. 고집 불통 시어미를 모실라니, 싸움에 이골이 튼 승냥이 무리같은 시동생 셋에 시누이까지, 게다가 제 자식까지 둘, 모두 춰 세우느라 속으로 피눈물도 많이 떨구었을거야! 나도 셈이 들지 않아 자그마한 직장들에서 쪼꼬만 책임을 지고 큰 노릇 하는것처럼 수십년 밤낮없이 술판에서 돌아치고… 마음껏 원망해다오. 셋이서 물싸움도 신난다. 물론 손녀의 대승으로 끝난다. 손녀가 맥이 진할때까지 놀아 주고 수영장 옆의 야자나무 그늘 아래 장의자에 힌들 들어 누워 대자연이 하사한 혜택을 마음껏 향수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22도 좌우 마침한 한겨울 날씨다. 손녀는 태양욕을 하라고 외할미를 한사코 볕으로 끌어낸다.
    실컷 놀아주고 또 기신기신 술집으로 찾아든다. 야자나무 잎으로 가려진 그늘에 앉아 나는 호프, 마누라는 포도주, 녀석은 콜라 또 새로운 전투를 시작한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고 신선 놀음이 따로 있나. 수백년 동안 미국놈들의 민족 기시를 받아온, 지금도 그 쇠사슬에서 완전이 해탈되지 못한 이땅에 공산주의 모텔을 세운 이나라 영웅적 민족들에게 숭엄한 경의를 드린다. 물론 아직까지는 국한된 땅에 국한된 사람들에게만 차려지는 혜택이지만 그 언젠가 이 지구우에 가장 먼저 공산주의를 실현 할 나라가 바로 꾸바일 것이라 굳게 믿는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더니 째글 째글 끓던 해는 어느새 서쪽 바다에 숨어 버렸다. 셋이서 엇갈아 그물 그네에 앉아 흔들흔들. 시간을 보낸다. 저녁 8시 이곳 중등 수준의 술집에서 뷔페를 차리니 시간을 맞춰 광림 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윽고 짜른바지, 긴바지, 짜른치마, 긴치마,  아예 팬티바람에, 웃통은 일률로 드러나지 안을 정도로, 노란머리, 하얀머리, 깜장머리 중머리. 한발되는 머리, 각종 각양의 인종들이 2백여명 용납할수 있는 큼직한 식당의 홀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대단히 풍성한 뷔페다. 한평생 공산당 덕분에 숱한 뷔페 회식에 참가 해 보았지만  이토록 풍성한 장면은 처음이다. 소, 양, 돼지, 노루, 사슴, 또 이름모를 짐승, 상어고기를 망라한 수십가지 해산물, 각가지 과실과 채소, 신선들의 연회에는 이외에 또 무엇이 더 있는지? 나의 견식으로는 더 주어 댈것이 없다. 수산물 좋아하는 나는 해산물 위주로 로친은 소채위주  손녀는 고기위주 한상 가득 찼다. 우선 랑모주 한잔 또 성수나게 우겨준다. 술 제한령을 어길가바 노친네 앞에도 양주 한잔 놓고 내가 대신 슬금슬금 마여준다, 이 좋은 판에 술을 적게 들면 어쩐지 그 누구에게 미안한것 같다. 손녀의 비위를 맞춰주며 또 호프 한잔 더 드니 알딸딸한게 기분이 좋다.
    장도에서의 하루, 공산주의 생활의 첫날을 더없이 유쾌하게 보냈다. 저녁에는 은근이 모기 근심하였더니 부질없는 근심이였다. 창문을 열어 놓고 자도 온밤 한놈도 얼씬하지 않는다. 실로 살기 좋은 곳이다.
    이튿날 12월 18일 아침 8시까지 늦잠을 자고 샤워후 뷔페에서 아침을 에때우고 택시를 잡아타고 해변가로 달린다. 오늘의  스케줄은 우선 돌고래쇼이다.  10여분 되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야자수 수림을 끼고 앉은 술집, 왼쪽에는 백사장을 품어 안고 해수욕장, 오른쪽에는 돌고래 사육장, 오늘은  손녀의 흥취를 자극하는   날이다. 어느새 수영복을 바꾸어 입더니 바다에 뛰여든다. 능숙한 수영 재간이 제격이다. 자연스럽게 돌고래한테 접근하더니 인차 제법 어울린다. 다가오는 돌고래를 슬슬 만져주니 재롱 부리며 힌들 드러 눕는다. 두손을 뻗어 두마리 돌고래 허리를 잡으니 쏜살같이 내달린다. 숱한 구경군들이 한결같이 환성을 지른다. 돌고래 사육원이 호각을 부니 방향을 되돌려 달려온다. 호각소리에 따라 물속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두마리가 각기 주둥이로 손녀의 두발을 떠이고 솟구쳐 오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문 훈련받은 연원같다. 근처에 있는 유람객들이 다 모여든다. 자랑스럽다. 노친은 긴장한지 두주먹을 꽉 틀어 쥐고 있다. 유치원 다닐때부터 동물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3년전 아마죤 삼림을 유람 할 때다. 한 밤중에 독거미 구경하는데 우리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데 어느새 손을 내밀어 쥐자고 해서 크게 놀란적 있다. 또 한번은 집에 들어온 부나비를 아바이가 잡아 쥐였는데 그렇게도 섧게 울어대며 야단을 쳤다. 다행이도 벌레가 죽지 안았기에 소동이 인차 멈추었다. 평생 고기잡이에 흥취가 있어 낚시질, 반두질, 그물질, 채발질 지어 손잡이까지 갖은 수단으로 무수한 생령을 해친 이 아바이의 죄악을 대신 씻어 주는 모양이다.
    동물들과의 이런 남다른 인연이, 훈련도 없이 멋진 돌고래 쇼를 펼칠수 있는 원인인것 같다.  원래 40분인 돌고래 쇼는 사육원들의 지휘 하에 한시간이나 더 연장되였다. 그들도  이렇게 훈련도 없이 잘 노는 애를 처음  본단다.  
    어느새 반나절이 지났다.
    오후 한시가 다 돼서야  유쾌한 기분으로 주숙지에 돌아왔다. 손녀는 성공적인 돌고래쇼로 흥분되여 병원도 안 간단다. 이틀채 기침이 낫지 않아 병원으로 가기로 하였던것이다. 겨우 달래서 의사를 보였더니 큰 탈이 아니니 약을 한이틀 먹이라 한다. 이곳의 의료봉사는 듣던바와 같이 우월하다. 약을 떼여주고는 주의 사항까지 상세히 교대한다. 오늘 저녁은 이곳 유람객들한테 일주일에 한번씩 차려지는 최고급 회찬이라 한다. 각가지 료리들은 어딘가 평시와는 좀 달라 보인다. 특히 통돼지 구이와 왕새우는 어느새 군침이 돌아치게 한다. 한사람 하나씩 왕새우를 청하였는데 나혼자서 거지반 우겨주었다. 중국에서 이 정도의 새우를 먹자면 적어도 천여원은 들어야 한다. 또다시 이곳 공산주의 혜택을 통쾌히 향수하고 수영장 근처의 그물 그네에 들어 누워 흥얼 흥얼 코노래 부른다. 이상한 일이다. 동창들 가운데서 노래 못하기를 소문 놨는데 요새는 너무도 잘된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노친네도 따라 부른다. 저 맑은 하늘 화창한 별 나라를 유람 하노라니 시간 가는줄 모르겠다.
    12월 19일, 오늘 계획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잠수도 하고 낚시질도 할 예정이였다. 그런데 꼬맹이의 기침이 낫지않아 포기하고 주숙지 근처의 바다가로 나갔다. 주숙지에서 5분거리다. 여기는 천연적인 수영장이다. 아칠한 백사장을 끼고 푸르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륙지의 모래는 금모래, 은모래라 하건만 이곳의 모래는 희디흰 떡가루를 련상시킨 그대로 뒹굴어도 이성의 살결처럼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대 자연이 이 나라 사람들에게 하사한 훌륭한 놀이터다. 보기에는 사나와 보이는 이곳 바다는 천여메터 들어가도 허리를 넘지않아 우리집 노친 수준에도 마음대로 몸을 잠글수 있다. 밀물이 들어 올때마다 잇따라 터지는 환성소리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맑디맑은 바다는 찾아온 손님들을 품에 걷어 안고 놓아주질 안는다. 한참만에 손녀가 잃어졌다. 깜짝놀라 도처로 찾아 다니는데 모래속에서 깔깔댄다. 잎과 코만 내놓고 전신을 모래속에 감추고 우리를 골려준다. 노친은 시름의 한숨을 활 내쉰다. 놈은 더 신이나서 깔깔대고…야자수잎으로 엮은 초막밑 장의자는 잠을 청하기가  맞춤하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놈은 아직도 모래장을 떠날념 안한다. 할수 없어 다시 바다에 몸을 잠근다. 아차 이건 또뭐냐. 숱한 잔 고기들이 다리에 다리 사이에 허리에 마구 달라 붙는다.  어리광 부리듯이… 싫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낚시질 못하여 궁금 하던 차 네놈들하고나 놀아주자. 한참 싱갱이질 하여 손 가락보다도 작은놈 한마리 붙잡았다. 오늘 고기잡이 군을 뗐다.  바다에서 손잡이로 고기를 잡다니, 내 수준은 그래도 이놈들이 알아준다. 혼자서 흥이 난다. 
    12월 20일 어느새 장도에서의 삼박사일이 다 지나갔다. 평생 처음으로 만끽한 공산주의 생활의 순간 순간들이다. 아침 여덟시 아침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섬마을공항으로 가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다시 돌아본다. 진짜 그림에서 보던 그대로다. 애초에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만들었을 때의 그 바다, 그 륙지, 초목, 동물 지어 저 하늘까지 인간들을 제외하고 모든것이 그토록 순수하다. 제발 영원히 이 세상의 갖가지 오물들에 오염되지 말아다오. 공항 대합실에 도착하였다,  손녀가 갑자기 기침을 세게 하더니 게우닥질 한다. 옆에 친구들이 더 야단법석이다, 약을 찾아준다, 의사를 불러준다, 지어 옆에 앉아 잔등까지 도닥여준다. 아! 이곳의 인간들은 이곳의 대자연처럼 깨끗하고 아름답구나.
    장도에서 리륙한 소형 비행기는 40분만에 하와나에 도착하였다. 하와나는 서인도양 군도에서 제일 큰 성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시라고 불리운다. 꾸바의 정치, 경제, 문화, 유람의 중심지로서 인구는 213만에 달한다. 년 평균 기온은 24도이며 사시절 기후 차이가 현저하지 않다. 하와나는 로성 구역과 신성 구역으로 구분되여 있다. 로하와나는 좁은 거리에 길 량켠에는 력사가 유구한 에스빠냐식 옛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져 버티고 서 있는데 여기는 이 나라의 상업의 중심지이며 고적지가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이다.  우리는 우선 로구역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이 로성 구역은 세계적인 건축 예술의 보물고로서 500년간의 각시기 부동한 풍격의 건축물들이 보존 되여있어 1982년에 련합국교과문조직으로부터 인류문화유산으로 인정 받았다. 
    나의 주장에 따라 고풍스러운 아바이차를 잡아 탔다. 이전에 사진으로나 보아 오던 서양귀족들이60여년전에 타던 차인데 차문의 손잡이 두개는 다 다슬어 떨어졌는지 나무를 깎아 못을 박아 고정 시켜 놓았다.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고물단지이다. 기사 선생에게 탄복한다. 이 정도의 페물을 몰자면 웬간한 차 수리 기술로는 어림도 없을것이다. 대부분 수리부는 개인차를 대상 안하기에 자체로 다 수리한단다. 생각 밖에 차소리는 아주 자연스럽다.  4년 쓴 나의 차만 못지않다. 택시에서 내려 천주교회당을 지나 이 나라의 문화중심인 음악성을 지나 비둘기 광장에 도착하였다. 손녀가 꿇어앉자 숱한 비둘기들이 후루룩 후루룩 모여들었다. 또 동물들과의 남다른 인연이 표현되는 시각인상 싶다. 다른 사람들과는 상관없는듯 이 애의 주변에만 수십마리 모여든다. 깔깔대며 먹이를 뿌려 준다. 얼마전까지 괴롭히던 감기는 어디로 갔는지 즐겁기만 하다. 
        겨우 겨우 달래여 요행 비둘기 광장을 떠났다. 천천히 걸어 광장을 한쪽으로 에도니 길 한쪽켠에 불란서 로 신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소박하고 자애로운 그 모습은 동방의 불상을 련상시킨다. 전하는데 의하면 그 신사의 손가락을 만지면 사랑의 운이트고 수염을 만지면 재수가 붙는다 한다. 숱한 사람들이 수염을 쥐고 기념사진을 남기고 청년 남녀들은 손가락을 잡아 쥐고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다.  손녀는  수염을 쥐고 나는 늙으막 새 사랑을 꿈꾸며, 슬그머니 신사의 손가락을 쥐고 기념사진을 남  긴다. 
얼마후 맥주 광장에 도착하였다. 맥주공장에서 직접 쏟아지는 호프를 바라보며  목구멍이 방아질하여 그냥 지나칠수 없다. 햄버거 네개에 호프 두개 청하였다. 또 꾸바식이다. 반시간이나 지나서야 나왔다. 쇼양은 자기는 이미 이곳의 느러진 절주에 적응 되였다 한다. 90해리를 사이두고 미국이라는 몰렴치한 파쇼들의 수십년동안의 억압을 받아오며 어쩌면 늘어진 이 절주가 오히려 꾸바식 사회주의 건설 수단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남들처럼 천리마요, 만리마요 하다가는 오히려 멸망이나 가속화 시킬것이라 생각된다. 손녀의 눈치를 봐가며 호프 두잔 거뜬하게 해치운다. 
    로성구역에 왔다가 쇼바이궁을 보지 못하면 서운하다고 한다. 1929년에 미국 화성둔 국회를 모방하여 지은 호텔인데 한때는 이 나라의 국회청사로 쓰이였다. 가까이에서 봐서 그런지 미국 바이궁 보다 훨씬 더 커 보인다. 사실 높이가 94메터로서 미국것보다 한메터 더 높다고 한다. 옛날부터 미국놈들에게 눌리우지 않으려는 이 땅의 거룩한 민족들이 항상 돋 보인다. 한메터라도 더 높이 세우는걸 보시라. 이러한 기백과 용기로 군사, 경제상에서 비할바 없이 우세인 코밑의 강적들과  맞서서 근 60년을 싸워오며  사회주의 국가의 본때를 보여주고있다. 장하다 꾸바여…일찍 이 호텔은 중의원 참의원으로 쓰이였는데 지금은 과학기술환경보호부, 과학도서관, 자연력사박물관으로 쓰이고있다. 이 나라의 위용을 더 빛내려고 그 바쁜 경제 여건에서 자금을 모아 지금 한창 더 멋지게 수선하고있다. 
로 총통부도 이곳에 있는데 역시 원형 건물이다. 일망무제한 대해를 등지고 그 주위에는 숱한 고목들과 더불어  울울창창한 수목으로 에워 싸여 한결 더 돋보인다.  듣는말에 의하면 내부는 금빛 찬란한, 휘황한 벽화로 장식하여 눈부실 정도라고 한다.  1959년 이 땅의 거물 카스트로는 꾸바의 친미 독재 정권을 이곳에서 몰아내고 꾸바혁명의 승리를 취득하였다. 지금은 자랑스럽게 력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해빈 대도쪽으로 한창 걷노라니 기념탑이 바라 보인다. 일찍 1931년 꾸바정부와 인민들이 중국인들을 기념하여 세운탑이다. 18메터 높이의 흑색 원주형 대리석 기념비이다. 탑에는 (꾸바독립 전쟁중에서 중국인은 한명의 도주병도 없었고 한명의 반역자도 없었다.) 중국인들에 대한 고도의 평가이다. 옛적부터 줄곧 중국인을 알아주는 아메리카의 유일한 나라인듯 싶다. 중국인의 긍지감 한가슴 뿌듯이 사진 한장 남긴다. 
    12월21일 우리는 쇼양의 안내하에 신성 구역을 돌기로 하였다. 민박집에서 나와 한창 걸으니 하와나대학에 도착 하였다. 큰 거리에서 학교 정문을 향하여 높다란 층계가 펼쳐져 있었다 쇼양은 모교의 자랑에 끝이 없다. 그의 소개에 의하면 하와나 대학은 일찍 1728년에 세워졌는데 아메리카에서 가장 일찍 세워진 력사가 유구한 대학이라 한다. 자연과 인문 과학등 15개의 계에 25개 전업이 있고, 14개 연구 중심이 있다 한다. 그외 석사전업반만 하여도 25개라 한다. 또 국가 고등 교육부에서 전문 농민들을 대상하여 꾸리는 교육 과정이 있는데 오후와 저녁에만 교학한단다. 그외 600여명의 발전중 국가의 류학생들이 이곳에서 에스빠냐어와 의학을 전공하고 있단다. 꾸바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신 카스트로도 일찍 1945년 이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전공하며 반미운동에 적극 참여 하였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후 학교의 면모는 한층 크게 발전하였다.  여러차례에 걸쳐 학교기지를 확충하고 새로 류학생을 모집 할뿐만 아니라 거금을 들여 아프리카에 대학생 기지도 건설하였다. 1964년부터는 우리 중국 류학생도 대량 받아들여 에스빠냐어와 기타 여러가지 전업의 대학생들을 배양해 주고 있다.  2백메터도 넘어 보이는 층계가 끝나니 대학 정문 마당이 안겨 온다.  희구한 거목들이 보기좋게 배렬된 가운데 고 로마 어머니 신의 상징인 아마.마더르 청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아마.마더르 청동상은 구라파에서 학문. 대학의 동의어라 한다. 꾸바의 교육 사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아메리카에서는 미국을 초월하여 1위로 꼽히고 있다. 소학교부터 대학까지 일률로 면비로 교육을 실시한다. 소학교는 입학률이 100%이고 초중이 95%, 그중 고중에98%,  그중 대학 혹은 전문 대학에85% 간다. 이 나라의 경제 조건에서 이는 대단한 일이다.  국가 재정 지출의 20%이상을 국민 교육에 지출한다고 한다. 아늑한 교정과 교육시설 들에 연속 찬사를 보내며 교정을 빠져나온다. 외손녀에게 이곳에 와서 연구생 공부를 하라는 부탁을 남기며… 
    모두가 컬컬하던차에 마침 교문밖 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그옆에는 공원 대문을 향하여 수백명이 줄처있었다. 쇼양의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사면 하나에 40전인 아이스크림을 줄을 서서 공원에 들어가 사면 25전에 다섯개씩 판단다.  무슨 장사비결인지 리해할수 없다. 우리는 가까운데서 비싼것으로 사먹고 길을 재촉한다.  아바이차를 잡아 타고 신성 구역으로 달린다.  30분정도 달려 신성구역에 도착하였다. 눈이 번쩍 띄게 넓은 거리에, 가는데 마다  울창한 화목과 아름다운 화원이 사람들을 반겨 맞아 주었다. 하와나의 가장 중요한 집회 장소인 혁명광장이 한가슴 탁 트이게 쫙 펼쳐져 있다. 그 중앙에는 민족영웅 허싸이.마티의   백색 조각상으로 된 기념탑이 우아하게 솟아 있다. 허싸이.마티는 유명한 시인이며 작가인데 꾸바의 자유 독립의 상징이며 그의 명성은 아메리카에서 자유의 동의어이다. 그 탑 주위에는 나라의 주요 부서들인 국가도서관, 무장력량부, 내무부, 교통부, 국가 대극장, 그리고 기념탑 뒤에는 꾸바중앙과 꾸바정부청사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쇼양의 소개에 의하면 이런 으리으리한 기관들 내부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재정지출을 인민들의 생활 향상에 돌리느라 불필요한 정부비용을 될수록 줄인다고 한다.  정부의 처사에 내심으로 경탄하며 이리저리 각도를 맞추어 기념사진을 남긴다.          계획내의 오늘 참관구역을 다 돌고나니 아직도 저녁시간까지 두시간 남았다. 쇼양은 우리를 이끌고 자기집으로 향하였다. 택시 타고 반시간, 침실 두개에 객실, 자그마한 주방에 화장실, 70여평방되는 아담한 2층 아파트다. 남자친구가 이곳 중국 국영기업에서 근무 하는데 로임은 국내 동항들보다 좀 높은축이고 이곳에서는 상등축에 속한단다. 집값이 너무 비싼축이 아니여서 몇년간 저축한 로임에 한3분의1가량 부모들이 대여 주어서 결혼전에 집을 살수 있었단다. 이곳 사람들의 개인집은 상속 받은것이 위주고 말로는 집도 공급제라 하지만 출근족들은 개인집 얻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한다. 1962년초부터 방산의 자유매매를 허용하였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집들은 국영 방산인데 일부는 정책에 따라 기를 나누어 규정된 금액을 들여 놓고 사유화하기로 하였다 한다. 그는 공급통장을 내보이면서 꾸바의 실황을 소개하였다. 공급범위는 실로 다양하였다. 쌀, 기름, 고기, 비누 심지어 소금까지도… 이외 무릇 이 나라에 긴장한 모든 생활필수품인 세척제, 사탕, 비누, 세수비누, 쵸콜레트 지어 성냥까지 거의 다 공급제라 한다. 공급물품들은 시장가격의 몇십분의 일,  거의 무상으로 공급하다 싶이 한단다. 완전히 자기공민들을 돌보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다.   모든것을 다 시장화하면 임시 들어와 떠돌이로 사는 외국놈들의 배만 불리고 제 백성이 굶어 죽을판이니깐… 나는 충분히 리해된다. 일반시민들의 로임은 꾸바돈 170비숴인데(인민페 100원정도.) 닭알 빵, 가격이 1비숴 정도로서 로임의 58%정도는 식료품소비에 들어야 한단다. 그러나 3세기동안 에스빠냐 통치를 받아오다, 이어서 연속 60년동안 미국 침략군들의 식민지로 살아오다, 해방후 거의 60년 또 그자들의 혹독한 경제봉쇄를 받아오며 모든 필수품은 다 그토록 긴장한판에 국민들을 먹여 살려내는 그 수완에 탄복하지 않을수없다.
    쇼양은 또 이곳 의료제도에 대해 아주 만족스럽게 소개하였다. 이 나라 정부에서는 전국 재정 예산의 3분의1을 의료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교육 투자와 함께 두개 항목이 전반 예산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애가 임신되여 배안에서부터 죽을때까지 나라에서 책임져 준다. 의학원 졸업생들은 졸업하면 일률로 농촌에, 기층에 보내 제일선 의료 봉사업에 참가하게 한다. 농민들을 포함하여 매10호당 책임의사 한명씩 차려지기에 웬간한 병은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처리된다. 기층에서 해결할수 없는 큰 병만이 의사의 소개로 2급 병원 3급병원으로 호송 된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전민의료 체제가 형성되여 어디가나 가정의사, 문진병원, 종합병원 등으로 그 체계가 아주 구전하다. 전국적으로 만명당 의사가 134.6명으로서, 미국 125.1. 카나다93.5명을 훨씬 초과한다. 하기에 듣는말에 의하면 큰 병원들은 그렇게 조용하다 한다. 병원에 입원하여도 돈을 쓰는법을 모르며 심지어 호리하는 가족의 화식까지도 병원에서 책임진단다. 이런 우수한 사회의료 보건제도 덕택으로  이 나라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근 80세에 달하여 미국보다도 2년가량 초월한다고 한다. 미국 전대통령 오바마도 꾸바 방문시 이 방면의 진보를 충분히 긍정하였다 한다. 속으로 생각한다. 우리 위대한 중국에서는 언제면 이 절반만큼이래도 따라올가? 같은 사회주의국가인데? 쇼양의 소개에 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아무런 가정부담도 없단다. 한평생 자기건강만 차리면 된단다. 교육, 의료, 생활소비품 모든것을 나라에서 알아서 처리 해주니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비하면 진짜 리상천국이다.
    강철 같이 단합된 우월한 사회주의 제도하의 꾸바인민들의 지혜와 용기는 그 어떤 날강도들도 꺾지 못할것이다. 물론 잠시나마 물질상 다른 나라들에 많이 뒤지고 있지만 바야흐로 이 세상에 승리자의 모습으로 그 거룩한 모습을 자랑 할것이다. 세계적으로 앞장선 교육, 의료사업의 뒤를 이어 이 근년에 고속도로 발전하여 국민 경제의 제일 기둥산업으로 발전한 유람업의 현실을 보기로하자. 보석처럼 빛발치는 수백개 해안선의 풍경구, 찬란한 해빛, 맑디맑은 바다물,  떡가루를 편듯한 백사장은  근 2000여개섬으로 구성된 이 나라 유람업의 보물고이다. 개방정책의 혜택으로 2003년부터 190만 이상의 유람객들이 모여 드는데 그 수입은 해마다 20억딸라를 초과 한다.  2016년에는 200만명을 초과하여 전해보다 11.7%증가하였다. 2015년부터는 미국과의 관계가 호전되면서 미국 유람객 증장 폭도 76.55에 달한다. 이 속도로 발전하면 멀지않아 유람업 수입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크게 향상 시킬것이다. 혼자 중얼거린다. 이웃 나라 우리민족들도 이렇게 살아 갔으면 좋으련만!! 
    지구의 서쪽 절반 땅에서 범죄률이 가장 낮은 나라. 일찍 세계자연기금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지속 발전한 나라 라는 높은 평가를 받은 국가이다.
    12월 21일 우리를 실은 주인집 자가용차는8일간의 지상락원 생활을 마친 우리 일행을 싣고 공항으로 달린다. 차창 밖으로 붉은넥타이를 맨 명랑한 어린애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로 이것이다. 사회주의 등대 꾸바에서 공산주의 신앙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위인의 말처럼 점점의 불꽃은 료원의 불길로 타 오를것이다. 아메리카의 유일한 사회주의, 꾸바의 빛발은 조만간에 만천하를 뒤덮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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