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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꽃
2014년 04월 30일 20시 14분  조회:787  추천:2  작성자: 카ㅍ카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

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

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

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

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초경

(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

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

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

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모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낙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

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명자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

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홍등(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

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만한 창문 듬으로 붉은 울음소

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울음 소리는 자진(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

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 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

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

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

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몽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

해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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