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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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 녀성형상의 시대적 변천
2010년 03월 20일 13시 29분  조회:3947  추천:66  작성자: 강순화

                 우리민족 녀성형상의 시대적 변천
                      
                            연변대학녀성연구중심 연구원  강 순 화

 
    머리말 

    력사상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시대의 영웅이나 사회의 전형으로 내 세우는 녀성 역할모델로서의 녀성형상(女性像)은 한개 특정한 사회현존문화의 한 부분으로 그 사회에서의 녀성지위와 작용을 반영하며 또한 그 사회의 발전수준과 문명정도 그리고 그 사회의 주류로 되고 있는 가치관념과 전통의식 및 사회적 심리를 반영한다. 때문에 녀성형상은 줄곧 문학, 사회학, 민속학, 녀성학 등 여러 분야에서 중시되고 탐구되여 온 주제의 하나였다.

     녀성형상의 특점 및 그 변천에 대하여 분석 정리하고 계통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학 각도로부터 우리나라 각 력사시기의 거대한 변천을 인식하고 그 시대의 정치환경, 경제발전, 문화풍토 등 부동한 사회현실속에서 용솟음쳐 나온 녀성형상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인정하는 면에서 홀시 못할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연구방법

    주요하게 근, 당대 중국조선족 녀성 영웅형상과 사회주의건설시기, 개혁개방시기 녀성형상에 대한 문헌연구와 조사의 방법을 결부하여 통계학적인 분석을 위주로 하였다. 총체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으로 현실사회 생활 중 녀성들에게 공유한 주류형상과 그 특징을 인식하고 묘술하자면 량적 방면의 대량적인 통계와 개괄이 수요된다. 필자가 인정하건대 사회발전의 각 력사시기에 각종 도서출판물과 신문매체들을 통해 전파되고 홍보되여 온 녀성역할 모델들은 바로 그 시기 녀성형상을 대표하는 한면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그 시기에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또한 선택, 추대된 그들은 바로 그 시대 주류문화의 가치관을 대표하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의 리상적인 녀성형상을 대표할 수 있다고 본다.

    본 론문에서 탐구해 보려는 것은 항일전쟁시기인 1930년대로부터 개혁개방을 실시한 8-90년대와 근년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녀성형상은 어떤 것이였는가? 이런 형상들은 어떤 력사적 특점을 가졌었는가? 그후 각 시기 녀성형상은 대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녀성형상의 변화발전 중 우리는 사회의 어떤 변천을 보아낼 수 있는가? 오늘날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녀성형상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필자는 70만자에 달하는《당대중국조선족녀걸》상,하집에 수록된 112명 녀걸(女杰)과 2000년대 연변조선족 10대 녀걸에 대하여 년령, 직업, 정치면모, 문화정도, 사적(事績)상황 등을 조사통계하고 30년대부터 건국 이전, 건국 이후부터 문화혁명 이전, 문화혁명 이후부터 개혁개방 이전, 개혁개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네개 시기를 나누어 녀성형상의 몇가지 특점을 분석연구해 보려 시도하였다.

     1. 년령구조특점 : 매 부동한 시기의 년령 특점을 따져보니 30년대부터 건국이전까지의 녀성형상에는 20세미만이 38%, 20세 이상이 62%로 그 평균년령은 21세밖에 안되는 젊은 녀성들이였다. 이들은 대부분이 15-16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혁명에 뛰쳐 나선 독립의용군전사, 항일투사, 학생운동가와 토지개혁시기 농촌 부녀간부들이였는데 여기에는 항일련군 지도자 리조린장군의 부인이며 항일투사인 김백문, 조선의용군전사이며 2등영예군인인 리화림, 전국 농업로력모범 김명성, 청춘을 후방 근거지 창설에 바친 40년대 료녕성 특등로력모범 최룡실 등 녀성 인물들이 있다. 위에서 볼 수 있는바 건국 전 중국사회에서의 조선족 녀성형상은 기본상 청년녀성들이였다.

    건국 후 문화혁명이전까지의 녀성형상에는 20세 이하가 16%밖에 안되고 20세 이상이 84%나 되며 그 평균 년령은 25세로 나타났는데 전 시기보다 평균 4세 증가된 셈이다. 이 시기 녀성형상에는 청년의 비례가 하강되였고 대신 중년의 비례가 많이 증가되였다. 여기에는 고아 넷을 키워 인재로 만든 1등 영예군인 한향옥, 광명을 안겨주는 천사로 불리우는 연변병원 안과주임이며 전국 3.8붉은기수인 심옥진교수, 겨레의 구슬로 불리우는 국가일급안무가이며 길림성로력모범인 최옥주, 시간과 경쟁하는 녀인으로 불리는 연변고무공장 제화공이며 전국로력모범인 석순희 등이 있었는데 당시 인구보편조사결과와 대비할 때 이 시기 녀성인구와 녀성형상의 년령분포는 비교적 합리하게 분포되여 있었다.

   《문화혁명》이후부터 1978년까지의 녀성형상에는 20세 좌우가 33%이고 30세 이상이 67%나 차지하여 그 평균 년령이 31세로 증가되였다. 즉 이 시기에 와서는 청년녀성의 비례가 진일보 내려가고 중년녀성의 비례가 현저히 상승되였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고객의 참된 벗으로 불리는 길림성 로력모범 고순옥, 광산의 딸인 전국<5.1>로력모범메달 수상자 김경혜, 모든 지혜와 힘을 후대양성에 바친 전국 우수소년아동사업일군 박순덕, 서안에 핀 진달래-섬서성 로력모범 정숙자 등이 있다. 이 시기의 년령구조를 보면 녀성청년 년령이 진일보 내려가고 중년 녀성 년령비례가 현저히 상승되였음을 볼 수 있다.

    1978년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의 조선족 녀성형상에는 20대가 16%뿐이고 30대가 25%이며 40-50대가 59%나 차지하여 그 평균년령은 39세로 올라갔고 2000년에 와서는 녀성형상의 평균년령이 44세까지 올라갔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바 녀성형상은 매우 큰 변화를 가져와 중로년 녀성의 비례가 다섯 시기 중 최고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시기 녀성형상에는 우리말 교수연구의 개척자인 흑룡강성의 김순희, 강소성 민족단결모범이며 중학고급교원인 류연, 버림받은 생령들의 천사로 불리는 전국특수교육모범 리계영, 하늘과 인연을 맺은 녀인- 중국우주항공연구소 고급공정사 장정자, 농민기술원 왕진영, 연출가 방미선, 로인들을 친 부모처럼 모신 광영원 부원장 김신옥, 백화점의 총경리 원수월 등이 있었다.

    녀성형상의 년령변화는 일정한 정도에서 중국의 사회적 변천을 반영한다.  건국 전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적 통치와 국내 통치자들의 압박착취하에 짓밟히고 억눌린 조선족녀성들은 사회의 최하층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므로 과감히 사회에 뛰쳐나오기 매우 힘들었다. 물론 일부 글이나 좀 읽은 신 녀성들이나 독립군 후대들이 가정울타리를 벗어나 용감히 혁명활동에 참가하였지만 필경 소수였으며 그 년령도 어리였다. 

    건국 직후는 신,구 두 사회의 거대한 변혁시기였다. 수백년래 억압당하였던 광대한 녀성들은 해방을 받아 나라의 주인으로 되었으며 한피 또 한피의 젊은 녀성들이 륙속 새중국 건설의 선줄군으로 나섰다. 그들은 부녀해방의 앞길을 대표하였고 나라건설에 있어어도 홀시 할수 없는 력량으로 되었다. 특히 사회주의건설이 생기발랄하게 전개되고 있은 50-60년대에 와서 각종 년령층차의 취업 부녀수는 모두 대대적으로 증가되였고 그들이 각 전선에서 취득한 성과도 뚜렷하였다.

   《문화혁명》이후부터 1978년 이전까지의 상황은 중국《문화혁명》영향의 직접적 실례로 되고 있다. 이 시기에 성장된 한 세대의 청년들 한테는 불가피적으로 시대가 조성한 일부 부족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젊은 녀성들이 녀성역할 모형에 오름이 극히 적었고 50-60년대의 젊은이였던 한피의 중로년녀성들이 다시금 녀성형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년녀성 년령비례가 하강되고 중로년녀성 년령비례가 증가된 국면을 초래한 기본 원인이다. 10여년이나 지속되였던 중국사회의 대 동란은 이곳에서도 깊은 상처를 남겨놓은 것이다.

    1980년대 이후부터 활발해진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사회적 환경은 천백만 조선족녀성들이 마음껏 재간을 피울 수 있는 광활한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아울러 항창 사업의 황금시기에 들어선 중년녀성들은 각개 령역에서 눈부신 성과를 따내여 그들로 하여금 이 시기 녀성형상의 명실에 부합되는 대표인물로 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녀성형상의 년령 구조가 최대로 높아간 기본 원인이라고 본다.

    2. 정치신분특점 : 정치신분은 주요하게 녀성형상 중 중국의 집정당인 공산당원의 비례와 정계인물의 비례로부터 통계하고 분석하여 보았다. 정치적 비례가 가장 높은 시기는 건국 이전으로서 100%의 공산당원에 92%의 정치활동가였다. 건국 후《문화혁명》이전까지를 보면 그래도 81%의 당원에 16%의 정계인물이였는데《문화혁명》이후부터는 그 비례가 신속히 하강되였다. 그후 두 시기 녀성형상 중 중공당원의 비례는 각각 50%, 52%밖에 안되고 정계의 인물은 8%, 7%밖에 안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아 낼수 있는바 사회풍운의 변화에 따라 그 내용도 변화하고 있으며 정치색채도 급속히 약화되고 있은 것이다. 이는 바로《문화혁명》이후 사람들이 정치투쟁이라던가 정치운동에 랭담해지고 렴오를 느끼는 사회적 심리와 관계될 뿐만 아니라 녀성형상에 대한 가치척도도 정치제일로부터 사회적인 정신문명과 물질문명 창조에로 옮겨진 것과도 련관되는 것이다. 따라서 녀성형상의 정치적 내용도 점차적으로 감소되고 있는 객관현실로 보여졌다. 그런데 2000년의 연변10대 녀걸에는 정계인물은 없지만 90%가 당원으로서 사회풍기가 경제제일로부터 어느 정도 다시금 정치신분을 중요시 하는데로 전화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듯 하였다. 

    3. 직업결구특점 : 직업은 녀성형상의 중요한 사회적 내용이다. 중국조선족 녀성형상의 직업결구를 보면 30년대부터 건국이전 까지는 77%가 정계(政界) 인물이였고 15%가 기층부녀간부 였으며 나머지 8%가 의료위생사업 일군이였다. 건국후《문화혁명》이전까지는 문예체육계가 23%, 공업상업계 19%, 의료위생계 16%, 교육계 13% 등 각 분야에 골고루 분포되여 있었다. 《문화대혁명》이후부터 개혁개방 이전 까지는 체육계가 29%로 제일 높고 다음 공상(工商)계가 16%였다. 개혁개방 이후 현재까지는 주요하게 교육계가 32%로 제일 높고, 과학기술계가 18%이며 문예체육계, 공상계, 의료 위생계가  각각11%였고 정계는 7%밖에 안 되였다.

    이와 같이 부동한 력사시기 녀성형상들의 직업 비중은 부동하였으며 모두 일정한 변화를 표현하였다. 즉 건국이전에는 정계가 위주였다면 50-60년대에 와서는 문체, 공상, 정계, 교육위생계가 모두 자기들의 녀성형상을 내세웠으며《문화혁명》후에는 비교적 집중적으로 교육계, 공상계에서 녀성형상이 나타났고 개혁개방 이후엔 더욱 큰 변화를 가져와서 교육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가 뚜렷이 앞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기업계에서 녀성강자들이 두각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7%)  2000년 연변 10대 녀걸을 보면 상업과 복무업종에 50%, 과학연구와 문화교육이 30%, 농업 목축업이 20%로서 개혁개방 후 시장경제체제의 주류 흐름에 따른 녀성형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보다시피 각 시기 녀성형상들의 직업분포는 그 시기의 특점을 나타내고 있는데 건국 전 항일투쟁과 조국해방투쟁에서의 녀성영웅들의 혁명활동과 건국 후 나라건설시기 녀성선줄군들의 역할은 모두 중국의 신,구사회 모습의 진실한 재조명 이였다. 특히 개혁개방이래 나라적으로 사업의 중점이 경제건설로 옮겨진 후 전 사회에서는 교육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열조가 일어났다. 이런 사회적 변천은 녀성형상의 직업결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교육계, 과학기술계의 비례가 신속히 제1위로 상승한 것이다. 

    80년대에 이르러서는 고위지식층의 녀성형상이 놀라울 정도로 많아졌으며 동시에 녀성기업가와 전업기술 골간 인물들이 륙속 나타났다. 즉 지식형, 전업형, 관리형의 직업형상이 새롭게 형성된 것이다. 2000년의 녀성상에서 나타난 상업위주 농업위부의 사실은 경제개혁에 따른 사회적 변천에 의해 산생된 녀성형상의 변화를 보여주며 더 깊이 있게 분석해 볼 때 녀성형상의 직업소질의 제고와 녀성형상을 평가하는 사회가치관, 사회심리가 진일보 전업성, 경영성에 돌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문화소질특점 : 문화정도 혹은 지식수준은 한 인간의 소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표지의 하나이며 또한 녀성형상 중 홀시 할 수 없는 한가지 내용이다. 부동한 시기 녀성형상의 문화적 소질을 고찰해 본 결과 30년대부터 건국 이전까지는 중학이상의 문화정도가 38%, 소학이하가 62%였다. 이는 해방 전 우리 조선족녀성들의 문화정도가 보편적으로 낮았던 객관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이 시기에는 문화지식이 녀성형상 내용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건국 후 각종 교육제도의 신속한 보급과 제고는 녀성들의 문화소질을 재빨리 제고시켰다. 특히 교육을 중시하는 조선족들로 말할 때 그 발전속도는 매우 놀라웠다. 녀성형상 중 중학이상의 문화정도가 건국 후《문화대혁명》전까지 71%로부터 그후 두시기 모두 100%로 상승되였으며 대학문화정도도 건국 전 15%로부터 그후 세 시기 각각 26%, 48%, 52%로 제고 되었다. 개혁개방 후 녀성형상 중 반수이상이 대학졸업생이라는 이 수자적 사실은 중국 현실사회에서 광대한 조선족 녀성들의 문화소질이 질적인 제고를 가져왔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중국사회도 날이 갈수록 지식인을 중시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는 녀성형상의 지식화 과정이며 전 사회의 현대화 과정인 것이다.

    5. 사적(事績)특점 : 낡은 사회의 전통문화에 따르면 녀성에게는 사회의 사업이 없고 녀성의 존재의의는 오직 가정에만 있다고 하였다. 때문에 녀성의 역할이란 오직 안해, 며느리나 어머니로 만이면 다였다. 새 중국 건립 후 낡은 전통관념에 의존되던 사회기초는 점차 타파되고 한세대 또 한세대의 신 녀성들이 부단히 자신의 사업을 개척하고 창조하여 왔고 허다한 감동적인 사적들을 엮어 왔으며 각 력사시기 녀성형상의 사적특점도 부동하였다.

    건국 이전에는 혁명활동가들의 사적형상이 위주였는데 주요하게는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싸워 온 가렬처절한 환경속에서 육성된 전쟁마당의 영웅사적들이였다. 건국후《문화혁명》이전까지는 복구건설에서 공훈을 세우고 각 령역에서 업적을 창조한 사적들이였으며 인민을 위하여 전심전의로 복무하는 사적 등이 절대적 우세였다. 이는 새중국의 신 녀성들이 나라건설사업에 떨쳐나선 후 표현된 거대한 로동열정과 숭고한 정신면모를 반영하였다. 소박한 사상감정, 자기를 잃고 가정을 잃고 사회에 나서서 일심으로 사업하는 정신은 이 시기 직업녀성들의 주선률이였다.

   《문화혁명》이후의 정황은 점차 변화를 가져와 본 전업에 노력하고 업적을 창조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기는 하지만 50-60년대에 비하여 어느 정도 하강되고 반면에 고심연찬하여 과학성과를 따내고 후대양성사업에서 공훈을 세운 등 사적형상이 상승되였다. 특히 개혁개방이래 과학기술전선과 고등교육령역에서 고급지식인들이 악전고투하여 놀라운 연구성과를 취득한 사적이 주요한 형상으로 상승되고 기업계의 녀성강자들과 문체계의 세계급 명장들의 사적형상이 돌출히 나타났다. 2000년 연변 10대 녀걸도 반수이상이 과학기술과 문화교육 및 전업성이 강한 사업중의 선줄군들이였다. 이러한 결과는 바로 시대와 사회의 발전 과정 중 우리 녀성도 점차 생산로동형으로 부터 전업형, 개인성과형과 전면발전형으로 전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총적으로 볼 때 상술한 다섯개 방면의 결과는 비교적 높은 일치성을 보여 주는데 개괄해 보면: 건국 이전에는 젊고, 낮은 문화층의 정계인물로서 당원과 기층간부의 혁명활동 사적을 위주로 하는 녀성형상이였다면 건국 후 50-60년대에 와서는 중등문화정도의 젊은층의 로동모범, 생산능수의 업적이였고 70년대 말부터는 중년녀성으로 비교적 높은 문화층의 문교, 과학 의료일군 위주의 개인성과형, 복무형 등 다종다양한 형상이 특징으로 되였다. 80년대 이후부터 2000년에 이르러서는 높은 문화층의 중로년 과학일군을 대표로 전업에서의 성취나 녀성강자식 사업업적이 주요특징으로 되고 있었다. 녀성형상의 이러한 특점은 부동한 측면에서 중국 각 력사시기 사회의 풍모와 거대한 변화를 보여 준다.

    당대 중국 조선족 녀성형상들의 수년간 알찬 노력과 눈물겨운 사적들은 그야말로 감격 없이는 읽어 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은 그토록 정열에 넘쳤으며 그토록 간고분투하였고 또한 저마다 녀성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혁명선배들의 피어린 발자취는 물론이거니와 건국초기 혁명렬사안해들이 남편의 뒤를 이어 발벗고 나선 그 장거, 조국건설에서의 특등 로력모범, 백의전사, 광산의 딸과 개혁개방이래 뛰여난 성과를 올린 녀과학일군, 훌륭한 명문대 학부장, 녀기업가들의 감격적인 사적들은 그야말로 남성이 할수 없는 녀성들로서의 특유한 기백과 재능, 노력과 분투의 결실들이였다.

    리상적인 녀성상

    그렇다면 오늘날 중국의 개혁개방시기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녀성형상은 어떤 것이여야 하는가?  아래에 몇가지를 나렬하여 보자.

    첫째, 녀성형상은 응당 사업형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시기 사회의 공인을 받아왔고 또 역할 모형으로 내 세워왔던 방향인물들이다. 마치 사업은 공적이고 생활은 사적이므로 공(公)을 위해서라면 사(私)는 영원히 희생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렬거한 중국조선족 녀성형상들도 그 대부분이 사업을 위하여 가정을 잊었고 지어 사업 때문에 자식을 종신 불구로 만들어 가슴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어머니도 있었다.
    녀성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모든 조건이 주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 시기 사회생활 조건 하에서 이런 단순 사업형은 녀성들에 대한 불공평한 요구이며 오직 가정의 희생으로만이 사업의 성과를 취득할 수 있다는데 그치게 된다.

    둘째 관점은 녀성이라면 우선 현처량모의 생활형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 남성들한테서 나오는 견해인데 그들은 녀성들이 관념상 심리상에서 더욱 전통화할 것을 희망하며 녀성은 응당 남성을 받들고 남성에 의뢰하며 가정에만 발을 붙혀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남성청년들의 배우자 선택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업형이거나 개성이 강한 녀성강자는 싫어하며 반대로 온순하고 순종하며 믿음직하고 가사일을 잘하는 녀성을 더 좋아한다. 이런 남녀 녀성관의 차이로 하여 녀성 대학졸업생이나 녀성 석, 박사연구생들이 저학력 처녀들보다 배우자를 찾기 힘든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부류 사람들의 요구나 평가는 시대의 발전에 뒤떨어짐은 물론 사회와 녀성들의 인정도 받을 수 없다. 광활한 사회적 무대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인식한 현시대 녀성들의 추구는 오직 한 남편과 자녀 그리고 자기가정 뿐인 것이 아니라 한개 완정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사업형이여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생활형이여야 가장 완미한 형상이라는 것이다. 이런《전면형》의 녀성형상은 녀성자신들의 자아실현의 요구이며 또한 사회발전의 필연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사회에서의 중국부녀들은 바로 사상, 도덕, 관념상 갱신되고 심미관념이 진일보 승화되는 계단에 처해 있으므로 이런《전면형》의 추구는 녀성발전의 요구이며 새로운 심미리상인 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현대 중국녀대생의 76%가 이런 전면형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는 녀성의 내재적 소질에 더욱 높은 요구를 제출함으로서 녀성 자신은 문화, 정치, 도덕, 업무 등 면에서의 완벽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가사로동의 현대화와 사회화를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현시대 중국의 실정에서 이런 이중 부담의 리상적 욕망은 실현하기 퍽 힘든 것이다. 이런 사업의 강자와 가사로동의 능수는 확실히 비범한 재능과 뛰여난 정력이 안받침 되어야 하며 또한 리상적인 혼인과 행복한 가정이 겸비 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완전완미한 환경과 능력은 사실상 녀성들만의 추구와 노력으로 모두 쉽게 실현될 수 있는 일은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당전 어떤 녀성형상이 가장 실제적인 추구로 될 수 있는가? 

   《전면형》의 추구는 바로 녀성들의 자아실현의 추향을 반영하고 있음으로 사회의 발전과 인류의 문명에 따라 점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녀성들은 사업의 주인으로 되려하며 또한 현숙한 안해, 따사로운 어머니로 되려 한다. 녀성해방의 과정이 바로 녀성자신을 부단히 완선화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런데 인구가 많고 생산력발전이 불 평형한 중국실제의 복잡한 사회조건과 녀성자신의 소질차이는 녀성형상을 한 모형에 맞추어 넣을 수 없다. 즉 부동한 류형에 따라 사회와 가정이 수요하는 다층차, 다류형의 형상을 수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 가정에 남편을 초과하는 녀성과학자가 나올 수 있고 반면에 남편의 성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안해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안해들의 희생과 전업주부현상이 보편적인 것으로 되고 있지만 중국사회에서는 아직 소수의 형태이다. 가히 말해 우리가 추구하는 녀성형상에는 동량형, 기초돌형, 작은풀잎형이 동시에 병존하고 있는 것이다. 힘의 강약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그들 모두가 자신의 독립적인 인격과 자주권이 있으며 부동한 위치에서도 사회의 발전과 녀성들의 진보에 공동하게 공헌하고 있으므로서 모두가 그 특유의 존재의의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녀성의 취업과 사회활동의 증가는 녀성의 사회지위를 크게 제고하였고 녀성들은 이로부터 전통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평등한 사회성원이 되었다. 현실사회에서 녀성에 대한 평가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남편은 안해가 마음속의 벗처럼 사상을 교류하고 상호 리해하며 상호 방조할 것을 수요하며 아이들은 어머니가 먹고 입는 것 뿐이 아닌 자기들의 환상과 의문을 해답해 줄 것을 바란다. 또 모든 가정성원들은 모두 다 더욱 풍부하고 취미있는 업여생활의 향수를 추구한다.

   《현처량모》의 전통표준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녀성들은 오직 착실한 지식, 능란한 기능만이 사업과 생활의 경쟁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공고케 할 수 있는 것이다. 녀성들은 자신의 문화소질 제고에 따라 더욱더 사업상 자강하고 감정상 독립하며 혼인상 자주를 요구하게 된다. 결과로 녀성들의 가정과 사회에서의 지위는 진일보 제고되고 시간과 정력은 합리한 분배를 얻게 된다. 조사에 의하면 중국의 대 성시들에서 부부쌍방의 가사로동 공동 담당수는 조사수의 89%라고 하였다. 이는 녀성들의 가사로동 부담을 경감하고 더 많은 시간과 정력으로 사회와 직장에 진출하여 자신의 총명재질로 인생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지어 주고 있는 것이다.
 
    맺으면서 

     문명한 사회는 문명한 인간을 요구하듯이 사회가 발달하고 인간의 정신면모가 밝아질수록 녀성형상에 대한 시대적 요구차원도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녀성들에 대한 한차례 도전이며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사회의 획기적 발전은 녀성형상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또한 녀성형상에 부단히 새로운 내용을 부여해 준다.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대륙의 놀라운 발전은 녀성형상의 다양한 역할과 진보에 훌륭한 조건을 지어주고 있다.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허영심과 맹목성을 버리고 자만하거나 자비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인격을 가지고 자기의 개성에 따라 인생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우리 녀성들이 걸어야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녀성형상은 력사와 시대의 흐름속에서 더욱 풍부화되고 완미화되여 나갈 것이다.
                      

                              (2004년 한국이화여대여성연구원에서의 발표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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