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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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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도시 - 아이작 아시모프 Issac Asimov 지음
2023년 08월 23일 12시 38분  조회:185  추천:0  작성자: 강려
강철 도시
The Caves of Steel
 
아이작 아시모프 Issac Asimov 지음
 
아이작 아시모프
1920년 소련 태생. 과학자로서의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문학으로 결정된 우수한 작품이 많다.“은하 제국 흥망사", "우주의 작은 돌", "나는 로봇" 등
 
◇ 편집 위원 ◇
아동 문학가 이 원수․박홍근
문학 박사 최인학
공학 박사 양옥룡
이학 박사 김희규
전 교육감 김성묵
 
책머리에
 
로봇은 SF에서는 가장 잘 알려지고 인기가 있는 단골 손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역할이 별로 이렇다고 할 특징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래 세계에서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라는 일을 생각하고 착상된, 즉 로봇을 괴물처럼 표현한 SF만을 읽고서는 진정한 의미의 로봇 소설을 읽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가장 본격적이고 완전한 로봇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리 소설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갖춘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계가 발달되면 인간은 언젠가는 결국 기계와 같이 살아가야 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이런 때 기계 쪽에서는 당연히 로봇이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즉, 로봇과 인간이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교환하는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조하고 신뢰하며 살아갈 미래 세계는 반드시 공상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로봇 소설에 대해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SF 독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차 례>
 
사건 발생···················· 6
파트너····················· 11
패배의 역사·················· 16
로봇 반대 운동················· 20
손 님····················· 28
사건 분석··················· 34
퍼지는 소문·················· 45
우주시에···················· 50
베일리의 추리················· 60
패스톨프 박사의 설명·············· 71
수사 재개··················· 80
미행을 당하다················· 87
네가 범인이다················· 94
비어 있는 열선총··············· 104
제지벨이 지하 조직에············· 108
나타난 용의자················· 114
이스트 농장·················· 123
인간은 인간이다················ 133
로봇 살해 사건················ 139
동기는 어디에················· 149
누 명····················· 155
우주시의 결정················· 161
수수께끼는 풀리다··············· 173
우 정····················· 182
새로운 하루·················· 194
 
작품 해설··················· 199
 
등장 인물
 
일라이저 베일리 : 뉴욕 시경의 유능한 형사지만 곧고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출세하지 못한다. 엔더비 국장의 친구로서 오히려 이용당해 사표를 내야 할 궁지에 몰리지만, 실망하지 않고 끝내 사건을 해결하는 끈질긴 사람.
엔더비 국장 :뉴욕 시의 경찰 국장으로 다들 싫어하는 우주인과도 사귀는 사교적인 성격 때문에 빨리 출세한 사람으로 우주인 살해 사건을 베일리에게 맡긴다. 그러나 그는 베일리를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니…….
다니엘 올리버 : 우주인이 정보용으로 인간과 똑같이 만든 로봇. 베일리의 파트너로서 사건 해결에 협조한다.
패스톨프 박사 :실질적으로 지구인을 도와주려고 하는 우주인 과학자. 베일리에게 지구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지구인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제지벨 : 베일리의 아내. 온건한 반 로봇 지하 조직에 가입한 것이 엔더비 국장에게 알려져 그에게 이용당하며 결국 베일리 제거 음모를 가능하게 한다.
 
 
사건 발생
 
일라이저 베일리는 자기 책상 앞까지 와서야 비로소 사미가 서 있는 것을 알았다.
"무슨 용건인가?“
"베일리는 언짢은 얼굴을 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국장님이 부르십니다. 베일리 형사님, 급한 일입니다.“
"알았네.“
그러나 사미는 무표정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알았다고 하잖나. 빨리 가봐!"
베일리는 발끈해서 소리쳤다. 사미는 뒤로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런 일을 인간이 해선 안 된단 말인가!) 그는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사무실 안을 가로질러서 문으로 갔다. 같은 사무실의 심프슨 형사가 말을 걸었다.
"이거 참 기가 차군. 다리가 부러질 각오라면 저놈의 엉덩이를 마음껏 걷어차련만."
"아아.“
"요전에 빈스를 만났네. 이스트 농장에서 운반 일을 하고 있다더군. 참 안 됐어. 로봇에게 일자릴 빼앗겼으니 무리도 아니지."
베일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냥 지나갔다. 시경 국장의 방 앞에 오자 자동문이 스스로 열렸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엔더비 국장은 얼굴을 들었다. 그는 낡고 둥그런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눈이 워낙 나빠서 콘택트 렌즈로는 안 된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일리는 그 안경은 멋으로 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국장은 그냥 멋을 부리기 위해서 끼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엔더비 국장은 어쩐지 침착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을 숨기려는 듯 아주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
"거기 앉게나, 베일리 형사.“
베일리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부인하고 아이들은 잘 있소?“
"예, 잘 있습니다.“
그만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어째서 그러나? 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나?"
"아뇨, 아무 일도 아닙니다. 다만 잠깐 불쾌했을 뿐입니다. 난 사미가 무척 싫습니다.“
"자네의 기분은 잘 알겠네만 그는 명령에 따라 나한테로 왔으니 무엇엔가 써먹어야 되지 않겠나?"
"용건이 끝나도 그냥 버티고 서 있으니 신경에 거슬리지 않습니까?"
"아아, 그 일 말인가? 그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군. 자네를 불러오라고만 해 놓고 용무가 끝나면 곧 돌아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 미안하네."
"인간이라면 그런 일은 걸대로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엔더비 국장은 화가 난 듯 잠자코 있었다.
"용건은 무엇입니까?“
"귀찮은 일일세.“
국장은 일어서 책상을 떠나 벽 쪽으로 걸어갔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스위치가 있었는지 갑자기 그 벽의 일부가 투명해졌다. 베일리는 뜻밖에 눈부신 광선의 홍수에 그만 아찔해지고 말았다. 국장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작년에 만들었지. 옛날엔 어느 방이나 반드시 이렇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네. 창이라고 했지.“
"알고 있습니다.“
베일리는 역사 소설에 나왔던 일을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와서 보지 않겠나? 아주 진기한 경치일세."
베일리는 잠깐 망설이다가 국장의 말대로 하였다. 국장은 옛날 것을 좋아했다. 쓸모도 없는 낡은 안경을 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러자 문득 그 안경에 신경이 쓰여졌다.
"국장님, 안경을 바꾸셨군요?"
국장은 약간 놀란 듯이 베일리를 쳐다봤다.
"눈썰미가 놀랍군. 사흘 전에 바꿨지. 먼저 것을 망가뜨려 버렸지. 이것저것 왜 그렇게 바쁜 일이 많은지 오늘 아침까지 안경을 낄 새도 없었어. 이 사흘 동안은 정말 지옥이었네."
"안경 때문에요?“
"안경도 그렇지만 어떤 일 때문이었지. 이제 그 얘기를 하겠네."
국장은 다시 창 쪽으로 향했다. 베일리도 창을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창 밖은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그 멋진 물의 쇼를 황홀히 바라보고 있었다.
"베일리, 정말 멋있지?"
베일리는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비가 오는 것을 본 일이 몇 번인가 있었다. 아니 비 뿐만이 아니다. 바람도 하늘도 물론 태양도 보았다.
"옛날에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살았다네. 이 뉴욕에서도 말일세. 옛날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살고 있었어. 그 편이 훨씬 건강에도 좋았지."
베일리는 또 초조해졌다. 그러나 국장은 담담히 비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비가 와서 우주시가 보이지 않는군."
"우주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우주시가 아주 근사하게 보인다네. 낮고 흰 조그만 돔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지. 우리들은 이 강철 도시에 모여서 살고 있지만 우주인들은 한 가족이 한 개의 돔 속에서 살고 있지. 베일리, 자네는 우주인하고 말해 본 일이 있나?"
"예, 서너 번 있습니다 "
"나는 항상 만나고 있지. 그 때마다 우리들하고 우주인하고의 생활 차이가 마음에 무척 걸리거든."
베일리는 화가 치밀었다.
"새삼스럽게 그건 또 어째서 입니까? 지구에는 80억이나 되는 많은 인간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강철 도시가 생겨난 게 아닙니까? 한 가족이 한 돔 속에 살 수 없다는 것은 국장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엔더비 국장은 잠자코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갑자기 말을 꺼냈다.
"사흘 전, 저기서 한 우주인이 죽었다네.“
베일리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건 안 됐군요. 또 유행성 감기입니까?"
“아니, 그런 게 아냐!"
국장은 심각하게 말했다. 베일리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주인은 자기의 행성에서 모든 전염병을 근절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없어져 감기에만 걸려도 맥없이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지구에 온 우주인 중에 그렇게 죽은 사람이 몇몇인가 있었다. (감기가 아니라면……?)
"그럼 무엇 때문에 죽은 겁니까?"
"열선 총에 가슴을 맞아 죽었네."
베일리는 그만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파트너
 
"뭐라고요?“
"우주인이 살해당했단 말일세."
국장은 힘을 주어 말했다.
"누가 왔습니까? 왜 죽였습니까?"
"우주인들은 지구인의 소행이라고 하고 있다네."
"그럴 리가 없어!"
"어째서? 자네는 우주인을 무척 싫어하지? 하긴 나도 싫어해. 지구인은 모두 우주인을 싫어한단 말일세. 그러니까 동기는 충분하지, 다만 자네나 내가 죽이지 않았을 뿐이지."
엔더비 국장은 벽과 세계 지도를 가리켰다.
"로스앤젤레스의 공업 지구에서는 우주인을 반대하는 방화 사건이 일어나고, 파리에선 로봇 파괴 소동이, 상하이에서는 폭동이 일어나 경찰관들과 충돌하고 있다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주인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지하 조직을 만들어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네."
베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우주시에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요!"
"그렇지만 실제로 일어난 걸 어떻게 하나? 난 이 눈으로 직접 피해자를 봤네. 서튼 박사였네."
"우주인 로봇 공학 박사가 아닙니까?"
"그렇다네. 나는 그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장은 꼴깍 침을 삼켰다.
"사건이 5분만 늦었어도 내가 시체를 발견할 뻔했어."
"그래, 우주인은 뭐라고 합디까?"
베일리는 머릿속에서 우주인들이 당당히 주장한 억지 요구를 상상해 보았다. 터무니없는 배상금 요구가 아니면 군대를 지구에 주둔시킨다든가 하는…….
"우리들의 손으로 이 사건을 해결해서 범인을 인도하라는 걸세.“
베일리는 놀라서 국장을 바라보았다.
"단지 그것뿐입니까?"
국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자네는 아직 그 진의를 잘 모르는 모양이군. 그래 이건 대단히 어려운 문제야.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없단 말일세. 더욱이 해결이 안 될 때는 우리 전원이 파면 당할 우려가 있네."
"그런 엉터리가……?“
"엉터리가 아니야. 우주인들은 지구인을 로봇으로 만드는 일을 진행시키려고 하고 있어. 이건 일종의 테스트일세. 만일 이 테스트에 합격되면 우리들의 전원이 로봇하고 바뀌어 버릴지도 모른단 말일세."
"아니 저 사미 같은 바보 로봇이 우리 인간 대신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베일리는 무의식중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국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사미는 아주 저급일세. 훨씬 고급인 로봇이 우주 도시에는 얼마든지 있다네. 만일에 우리들이 로봇 이하라고 평가되면 우주인은 가차없이 바꾸는 일을 단행할 걸세. 경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인간은 추방되겠지.“
엔더비 국장은 베일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사건을 자네가 담당해 주기 바라네.“
"제가요?"
"자네는 유능한 형사야. 자네라면 능히 할 수 있어. 만약에 이 사건을 해결한다면 자네를 C6급 경감으로 승진시키겠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나?"
"물론 그렇게 되고 싶지요.“
그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경감이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자동 주로(움직이는 도로)에서는 언제나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며 자동 레스토랑(음식점)에서의 식사도 훨씬 고급이 되고 일광욕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실수를 하면 격하되는 겁니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해 주겠나?"
"왜 제가 뽑힌 겁니까? 그런 유리한 조건이라면 할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텐데요.“
엔더비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네. 하나는 자네가 친구이기 때문일세. 우리들은 대학의 동창생이었지. 그 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입장은 바뀌어졌지만 나는 아직 자네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네. 또 하나는 친구로서 나의 청을 들어주었으면 해서일세."
"어떤 일인데요?“
"우주인은 이 사건 수사에 지구인 형사와 우주인 형사를 파트너로 임명할 것을 요구해온 걸세."
베일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입체 텔레비전에서 본 저 친해지기 힘들고 거만해 보이는 우주인의 얼굴을 생각해냈다. 가장 싫어하는 우주인하고 짝을 짓는다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참아야지.
"알았습니다. 해 보죠.“
"고맙네. 그리고 우주인을 자네의 집에 머무르게 해주게나."
"우리 집에요? 그건 곤란합니다."
"그것도 우주인 측의 요구 조건의 하나야. 그들은 지구인들의 생활 속에 어울려서 지구인을 이해하겠다고 하는 걸세. 거기다 방이 네 개가 있으니 얼마든지 유숙시킬 수 있지 않나?"
"할 수 없군. 하기로 하죠."
베일리는 일어섰다.
"그것뿐입니까?“
국장은 말할까 말까 하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베일리, 사실은…….”
"뭡니까?”
"그 우주인 말일세. 실은 그게, 그 이름이…….”
"이름이 어쨌단 말입니까?“
"다니엘 올리버라고 하는 로봇일세."
"로봇이라고요? 거절하겠소. 로봇을 파트너로 하고 집에다 재우기까지 하다니…….”
"제발 부탁이네. 베일리, 우린 오랜 친구 사이가 아닌가?“
"싫소!"
"C7급에 수사 과장으로 승진시키겠어.”
"싫다니까!"
베일리는 크게 외쳤다.
"내 밀 들어주게나. 베일리, 자리에게 부탁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 대개는 싫어하던가 무서워한단 말이야. 그렇지만 이 문제를 만약에 자네가 해결해 준다면 역시 인간이 로봇보다 우수하다는 것이 분명히 증명이 되네. 말하자면, 자네는 우리들의 장래를 밝게 하느냐 못 하느냐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걸세. 더욱이 자네는 그 열쇠를 사용 할 수 있는 용기와 실력을 갖고 있단 말일세."
베일리는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우주인, 아니 로봇은 언제 오는 겁니까?"
 
패배의 역사
 
고속 자동 주로는 언제나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사람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감속 벨트로 옮겨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가속 벨트로 옮겨오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주로는 거대한 아치 밑을 지나 다리를 건너서 강철 도시의 끝없는 미로 속으로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드높고 거대한 벽과 강에는 수많은 라이트가 번쩍이고 있었다. 베일리는 주로의 벨트에서 벨트로 옮겨 앞으로 자꾸 갔다. 강철 도시 안의 어린애들은 걸음마를 떼면 곧 자동 주로를 걷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는 금방 시속 10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는 최고속 벨트에 이르러 멈춰 섰다. 우주시로 파트너를 마중 가는 길이었다. 벽에는 방향을 알리는 전광 문자가 자꾸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우주시를 가리키는 방향 지시는 아무 데도 없었다. 20년 전 처음으로 우주시가 건설되었을 때 시민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우주시 구경에 열을 올렸다. 그 이후 우주인들은 강철 도시와 우주시 사이에 강력한 에너지 스크린을 설치해 놓았다. 우주시에 들어오는 사람은 신분 증명서를 가지고 엄중한 신체 검사를 받고 정해진 검역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당시 이 일은 굉장한 소동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우주인을 싫어하고 있는 시민들은 급기야 증오감이 폭발해서 우주시로 밀려들어갔다. 수십만 시민들이 우주시와의 경계선인 에너지 스크린 앞에 모여서 주먹을 쥐고,
"우주인 돌아가라!"
"우주로 돌아가라!"
"지구를 내놓아라!"
하고 외쳐 댔다.
1세기 전에 우주인과의 싸움에서 그들의 놀라운 과학 병기 앞에 맥없이 전쟁에 진 이후로 쌓이고 쌓인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이었다. 강철 도시 안은 만 이틀 동안 폭풍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결국 어쩔 수가 없었다. 에너지 스크린은 지구인의 기술로서는 절대로 파괴할 수 없었으며 가령 파괴했다고 해도 우주시에 들어가는 순간 모조리 전멸 당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더욱이 우주인은 대항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지구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경찰이 출동해 최면 가스를 써서 폭동을 진압했다. 몇 천 명의 시민들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당시 아직 중학생이었던 베일리 자신도 들어 있었던 것이다. 베일리는 고속 주로 안에서 그런 옛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앗? 핸드백이!"
갑자기 들리는 여인의 외치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 여인이 속력이 다른 벨트에 핸드백을 떨어뜨린 것이다. 핸드백은 순식간에 멀어져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베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옛날엔 이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좀더 한가했었지. 길에 물건을 떨어뜨려도 곧 집을 수 있었는데…….) 베일리는 또 훨씬 옛날 이 뉴욕이 강철 동굴이 아닌 태양이 내리쬐고 바람이 불던 대자연 속의 도시였던 때를 상상해 보았다 그 때는 도로도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대개 한 집에 살던가, 아파트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뉴욕이 현재의 큰 돔 도시가 된 것은 약 200 년 전의 일이다. 그 무렵 지구는 80억으로 인구가 늘어나 폭발 직전에 있었다. 온 세계의 절반 가량이 굶주리고 있었다. 매년 수십만이라는 사람들이 굶어 죽고 가난과 공해와 각종 전염병들이 온 세계를 뒤덮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때까지 지구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던 우주 식민지들이 차례 차례로 독립을 해서 이민을 금지하던가,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획된 것이 돔 도시인 것이었다. 돔 도시는 완전한 과학적 계획에 따라 만들어졌다. 우선 중앙에는 관청 지구가, 그 주위에는 시민들이 사는 집단 주택 지구가, 그리고 그 변두리에는 자동 공장이며 농업 단지와 발전소들이 세워졌고 그 사이에 고속 주로와 통로를 만들었다. 학교, 상점가, 공원 등도 그 사이 사이에 정밀한 계획에 따라 배치되었다. 이 뉴욕의 인구는 이천만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으며, 세계에는 이런 돔 도시가 850개 정도 건설되었으며 그 평균 인구수는 천만 명이었다. 온 지구상의 인구 전부가 이 돔 도시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밖은 넓은 황야와 삼림과 그리고 하늘만이 계속 되고 있었다. 옛날에 있었던 무수한 도시며 거리며 마을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물론 황야도 하늘도 필요했다. 물이며 광물 자원이며 가축의 방목이며 식량의 재배 등은 역시 돔 밖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돔 밖에서 일을 하는 것은 로봇이었다. 인간이 자연 속에 나가 태양 광선을 직접 받는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로봇은 야외의 노동력으로서 존재하면 충분한 것이다. 어째서 그런 꼴불견인 기계를 돔 도시 안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러한 일을 강요할 권리는 아무리 우주인이라고 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고속 주로는 우주시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베일리는 재빨리 움직여 차례차례 감속 벨트로 바꿔 타서 이윽고 거대한 문이 늘어선 홀 앞에서 주로를 내렸다. 그 앞에 한 우주인이 서 있었다.
 
로봇 반대 운동
 
그 우주인은 지구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허리께 에서 잘록 들어간 바지에 텍스트론 옷감의 셔츠에……. 그러나, 한눈에 우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마가 넓고 광대뼈가 두드러지며, 표정이 없는 그 얼굴에서도 또한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며 좋은 체격에서도 곧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그 우주인 앞으로 걸어갔다.
"뉴욕 시 경찰국의 형사 일라이저 베일리입니다.“
그는 신분 증명서를 제시했다.
"여기서 다니엘 올리버라는 로봇하고 만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주인이 입을 열었다.
"내가 다니엘 올리버라는 로봇입니다.“
"뭐요? 그러나 그는 분명……?“
"그렇습니다. 나는 로봇입니다. 그 말은 못 들으셨습니까?“
"에, 듣고는 있었지만…….”
베일리는 충격에서 빨리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자네가 로봇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네. 우주시에 있는 로봇은 모두 자네 같은가?"
"예, 제각기 개성을 갖고 있죠."
"지구의 로봇은 한눈에 분간 할 수 있는 데, 자네는 아무리 봐도 우주인 같아.”
"당신은 하급의 로봇을 생각하고 계셨군요. 나는 인간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람답게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베일리는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고속 주로로 다시 되돌아왔다. 최고속 벨트를 타고 베일리는 힐끗 다니엘을 보았다. 다니엘은 그를 돌아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인간과 흡사한 웃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말할 때도 완전히 자연스런 입놀림으로 혀나 이의 움직임까지 아주 훌륭했다. 베일리의 아파트에 가까운 182번 가까지 왔을 때 통로에 붙은 상점의 출입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무슨 일이요?”
“글쎄요…….“
"저 상점에 더러운 로봇 자식이 있단 말이오. 이제 틀림없이 모두가 로봇을 끄집어내겠죠. 신이 나는데요. 나도 한몫 끼어 로봇을 때려 부셨으면 좋겠소."
또 한 사람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베일리는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군중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길을 비켜라, 경찰이다!"
군중이 길을 비켰다.
"모두 때려 부숴라, 나사라는 나사는 모조리 떼어버려라!"
누군가가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베일리는 흠칫했다. 로봇 반대 운동가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일부러 소동을 벌여 놓고 그 소란 속에서 로봇을 때려부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든 말리지 않으면 안 된다. 베일리는 힘차게 전파 도어 쪽으로 다가갔다. 도어는 닫혀 있었다. 상점의 지배인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꺼려 전파 도어를 닫아버린 것이다. 베일리는 형사 전용의 전자파 중화기를 써서 전파 도어를 통과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지배인이 달려 왔다.
"형사님, 우리 집 로봇 점원은 시에서 배치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단 말입니다!"
상품 진열장 뒤에는 세 대의 로봇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안에는 여자만 여섯 명이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도대체 소동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한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는 구두를 사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째서 사람이 손님을 대하지 않느냐 말입니다. 내 모습이 초라해서 그런가요? 왜 그러느냔 말입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라면 얼마든지 제가 모시겠습니다만 여섯 분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로봇 점원은 안 된다는 법은 없잖습니까? 분명히 보증서도 있으니까요.“
"도대체 보증서가 뭔데 이따위 더러운 로봇을!"
여인은 열을 올리며 말을 했다.
"그뿐인가요? 로봇은 사람의 직장을 자꾸만 빼앗아가잖아요. 로봇은 기계니까 그저 일을 하지요.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이 실직해서 싸구려 아파트에서 맛도 없는 이스트(효모)죽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만약에 내가 장관이라면 이따위 로봇 같은 건 모조리 때려 부셔 버리지 절대로 놔두지 않겠습니다.“
"옳다. 옳아!"
"때려 부셔라!"
전파 도어 밖에서 사람들이 또다시 떠들어댔다. 아까보다도 사람들의 수효는 훨씬 많아졌다. 베일리는 로봇 점원을 봤다. 간단한 일을 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허술한 로봇이었다. 구두 사이즈며 스타일, 가격 등을 외는데 있어서는 사람보다 정확하다. 그러나 서비스는 형편없다. 그는 돌연 죽은 아버지를 생각했다. 베일리 아버지는 핵 물리 학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 아버지는 그 책임자로서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최하급 기술자로 떨어졌다. 그것은 그가 아직 한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일이었다. 소년 시절의 비참했던 생활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홧김에 술만 퍼마시다가 그가 여덟 살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그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그는 누나와 함께 고아 수용소로 옮겨졌다. 그 곳에서 배불리 먹어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마침내 그것을 참고 학교를 나와 형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기와 같은 운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무표정하게 얘기를 했다.
“사건을 일으키는 건 삼가해 주시오. 아주머니, 로봇이 별로 나쁜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이죠. 그렇지만 난 저것들의 기름 묻은 손으로 상품을 만지는 건 딱 질색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난 시민권이 있는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마땅히 인간에게 상대해 달라고 할 권리가 있는 게 아닌가요?"
“예, 말씀 잘 알았습니다. 자, 이젠 그만 하시고 구두를 사 가지고 돌아가시지요.“
“어머, 당신은 인간인 주제에 로봇 편을 드는군요? 아니면, 당신도 차가운 로봇인가요?“
베일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만 우뚝 서버리고 말았다. 밖에서는 군중들이 더욱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사람의 수는 벌써 백 명을 넘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다니엘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들 두 사람으로는 벅찹니다. 기동대를 부르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지만 이건 법률적으로 옳은 일이므로 옳은 법률에 따르게 하는데는 그렇게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아.“
다니엘은 지배인 쪽을 바라보았다.
"전파 도어를 여시오.“
지배인은 그만 울상이 되었다.
“상점을 때려부수거나 상점이 손상되면 배상을 요구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전파 도어가 사라졌다. 사람들이 상점 안으로 와락 몰려들었다. 베일리는 폭도들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본 로봇 파괴 사건을 생각했다. 희생물이 된 로봇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끌어내려져 보도에 내동댕이쳐졌다. 폭도들은 금속성의 인조 인간을 도끼며, 동력 나이프며, 드릴 등으로 금새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지금도 그것과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려고 하고 있다. 군중이 차츰차츰 밀려들었다. 큰 목소리로 돌연 다니엘이 사람답지 않은 엄청나게 외쳤다.
"멈춰 서!"
그리고 갑자기 훌쩍 진열대 위로 뛰어올라 열선 총을 뽑아 들고 겨누었다.
“한 사람이라도 안으로 움직이는 놈은 쏜다.“
사람들은 흠칫해서 멈춰 섰다. 그러나 금방 군중 속에서,
"저놈을 해치워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해 봐라. 이건 마취 총도 아니고 신경 충격 총도 아니다. 맞기만 하면 틀림없이 죽는 열선 총이란 말이다. 협박으로 머리 위에 공포를 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신네들이 나를 잡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아마 당신네 거의 전부가 죽을 것이다. 자, 해 보시오.“
군중이 술렁댔다. 뒤에 서성거리던 시민들은 서둘러 도망쳤다. 앞줄의 사람들은 밀려나오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까의 여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난 죽는다 난 죽어! 난 아무 일도 안 했는데……”
"빨리 날 나가게 해 쥐요. 빨리 빨리요!"
다니엘이 훌쩍 진열대에서 뛰어내렸다.
"난 지금부터 문까지 걸어가겠다. 만일 조금이라도 내 몸에 손을 대는 사람은 남녀의 구별 없이 조금도 용서하기 않고 사살하겠다. 내가 문까지 걸어간 후에도 아직 상점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사람 남김 없이 체포한다. 알았나?"
다니엘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로봇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만일에 저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게 되면 그 때는…….) 그러나 비명 소리도 고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베일리는 눈을 떠보았다. 폭도들은 뿔뿔이 도망치고 있었다. 멀리서 소동을 알린 패트롤카의 대열이 달려오고 있었다.
 
손 님
 
패트롤카가 도착했을 때는 모든 일이 정돈된 후였다. 베일리는 대수로운 일은 없다고 경관들을 돌려보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가게를 나와 베일리의 아파트로 향해 걸어갔다.
"다니엘!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네."
베일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일 말입니까?"
"무기로 사람을 협박하는 것 말일세. 너무 위험해.”
다니엘의 얼굴에 놀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잡아당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죠? 내게는 사람을 손상시킬 힘이 없어요. 그렇지만 보시다시피 방아쇠를 잡아당길 필요가 없었지요. 나는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답니다.“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야. 열선 총을 쏘지 않아도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나도 열선 총을 휘둘러서 위협 할 수는 있었지. 그렇지만 만에 하나 될까 말까한 행운을 바랄 수는 없었어. 기동대를 불러서 진압시키는 것이 그런 모험보다 훨씬 좋았어."
“내게는 계산이…… 지구인 식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있었지요."
"그렇지만 만일에 자네가 로봇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절대로 알아볼 수 없으리라는 걸 압니다.“
"자네는 로봇이야. 밖으로 봐서 아무리 인간하고 꼭 같다고 해도 속살은 아까 구둣방에서 본 점원 로봇하고 조금도 다름없는 로봇이란 말이야!”
베일리는 그만 화가 치밀어 고함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건 물론이죠. 기계는 기계, 인간은 인간이니까요."
베일리는 할 말을 잃었다. (졌다. 난 로봇에게 졌단 말이다.) 그는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언짢은 기분이었다. 그는 억지로 그 기분을 털어 버렸다.
"자, 어서 집으로 가세."
이윽고 둘은 베일리가 살고 있는 집단 주택에 도착했다. 그는 공동 목욕탕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그렇군. 자네는 샤워를 할 필요가 없지. 곧 끝날 테니까 잠깐만 밖에서 기다리게.“
"몸을 씻는 겁니까?"
"샤워를 하는 걸세.“
"그렇습니까? 저도 손이 더러워져서 손을 씻고 싶은데요."
다니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을 펴 보였다. 살결이 붉은 피부는 도저히 인공적인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면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손을 씻으려면 집에도 세면 시설이 되어있으니까…….”
"아니, 나는 하루 빨리 지구인의 생활 습관에 익숙해지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여길 쓰겠습니다.“
"좋아, 따라오게.“
공동 목욕탕 안은 비어 있었다. 그는 재빨리 빠른 어조로 다니엘에게 말했다.
"주의해 두겠네만 안에선 누구하고 얘기를 하거나 남을 자꾸 보거나 하면 안 되네. 그게 욕탕에서의 습관이야.“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일반용인 공동 목욕탕을 지나 독탕으로 들어갔다. C5급 형사에게는 그 특권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새 내의와 세탁한 셔츠로 갈아입고 상쾌한 기분이 되어서 밖으로 나오자 먼저 나온 다니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아파트까지는 불과 1,2분의 거리였다. 아내인 제지벨이 현관까지 마중 나왔다.
"제지벨, 이 분은 나의 새로운 파트너인 다니엘 올리버 군이야.“
제지벨과 다니엘은 서로 악수를 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마침 집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에요. 당신들 식사는 어떻게 했죠?"
베일리는 흠칫했다. 미처 생각을 못했지만 물론 로봇이 식사를 할 리 만무했다. 여기서 섣불리 망설이다가는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것을 제지벨이 눈치 채리라.
"아아, 다니엘군은 식사는 함께 하지 않기로 되어있어.“
하고 재빨리 얼버무렸다. 이사벨은 아무 것도 이상해 하는 눈치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량은 배급 제도가 되어 있어서 남의 집에서는 식사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 하나의 예의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실례하고 저녁을 들겠어요. 보통은 공동 취사장에서 식사를 하지만 전 집에서 하는 것을 좋아해요. 일 주일에 3일 밖에 안 되지만 전 그 날이 어떻게나 기다려지는지 몰라요.“
"쓸데없는 소린 그만 둬! 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란 말이야."
베일리는 어쩐지 자꾸만 초조해지고 신경이 곤두세워져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다니엘은 우주인들의 윤택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알고 있었다. 자기들의 생활이 아주 초라해 보이리라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배급받은 인스턴트 식사의 겉 봉지를 풀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아들인 벤트리가 들어왔다. 베일리는 벤트리를 다니엘에게 소개했다.
"아버지의 파트너군요. 두 분께서 저 구둣방의 소동을 진압하셨죠? 아주 멋있어요! 아버지, 그때 얘길 좀 해 주세요, 예?"
벤트리는 벌써 키도 베일리만큼이나 자랐고 어른이 다 됐다.
"성가시게 굴지 말고 어서 저녁이나 먹어라."
"오늘 저녁은 뭐죠? 에이, 또 효모 고기야?“
"효모 고기이라고 나쁠 게 어디 있어. 자, 툴툴거리지 말고 어서 저녁이나 먹어라."
베일리는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효모 고기와 단백질 야채는 확실히 영양 만점의 식품이다. 그러나 맛은 별로 좋지 않았다.
"쳇, 효모 고기라니. 엄마, 아빠의 티켓으로 공동 취사장 밖에 가서 비프 스테이크를 좀 먹고 오면 안 돼요?"
"안 돼!"
제지벨이 분명히 말했다.
"벤, 엄마의 말을 들어라.“
벤트리는 화가 난 듯 인스턴트 식사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다니엘이 저쪽 방에서 말을 걸었다.
"식사하시는 동안에 여기 있는 마이크로 북을 좀 보아도 괜찮습니까?“
"아아, 좋고 말고요.“
벤트리가 탁자에서 일어나 눈을 반짝이며 다니엘 곁으로 갔다.
"그건 학교 도서관에서 빌러온 것이에요. 이제 내 뷰어 (슬라이드를 보는 간단한 도구)를 꺼내 드릴게요. 아빠가 작년에 내 생일 선물로 사다 주신 건데, 성능이 참 좋아요 "
벤트리는 뷰어를 다니엘에게 가져갔다.
"로봇에 관해서 흥미가 있나요?"
베일리는 그만 스푼을 떨어뜨리고 어물어물 다시 주워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다니엘은 침착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럼. 벤트리, 아주 대단하지."
"그렇다면 그거 아주 재미있을 거예요. 거기 있는 건 로봇에 관한 책이죠. 전 학교의 신문에 로봇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답니다 나는 로봇화 운동에 반대해요.“
"벤, 탁자로 돌아오너라. 다니엘씨에게 폐가 될라.“
"아뇨, 베일리. 그런데 벤, 그 얘긴 이 다음에 하기로 하자. 오늘밤은 아버지하고 일 관계로 매우 바쁘니까 말이야.”
벤트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탁자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사건 분석
 
제지벨과 벤트리는 식사 후 볼 일이 있다고 외출하고 베일리와 다니엘이 방안에 남았다.
"자, 그럼 사건에 관해서 얘길 하세.“
"여긴 도청 (마이크로 폰 따위를 비밀 장치하여 남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거나 녹음하는 것)을 당한 우려가 없습니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하지? 여긴 도청 따위를 할 인간은 없어.“
"그렇지만 절대로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베일리는 그만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우주인다운 그런 말투는 그만 두게나.“
"신경에 거슬렸으면 미안합니다. 베일리.“
"그건 아무래도 좋아……. 이 아파트는 충분한 방음 장치가 되어 있어. 하여튼 시작하기로 하세."
그는 말을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부터 말하지. 그것은 행성 오로라의 시민으로서 우주시에 살고 있던 서튼 박사라는 우주인이 살해되었다. 그런데 우주인 측에서는 이것은 지구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얘길세.“
"옳습니다.“
"우주인들은 이 사건을 최근 일어나고 있는 우주인 반대 운동의 상징이라고 보고 있는 걸세. 서튼 박사는 우주인이 추진하고 있는 지구 로봇화 정착의 최고 책임자란 말이네. 박사를 죽인 것은 지구인의 반 로봇주의 단체가 틀림없을 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어쩌면 미친 사람의 소행일는지도 알 수 없지."
"반 로봇주의를 내거는 단체는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단체의 사람들은 우주인을 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를 알고 있을 것이야. 따라서 이 범죄는 그런 상식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나 미친 사람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 같군."
"그러나, 베일리! 우주시로 스며들어 정확히 서튼 박사를 살해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미친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꽤 커다란 조직이 면밀히 계획을 세운 다음에 범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이 말을 계속했다.
“그 우주시가 건설되었을 때 우주인은 지구인이 마땅히 로봇 문화를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거나 로봇을 파괴하거나 해서 로봇 문화를 반대했습니다.“
"그건 지구인의 자유에 속하지."
베일리는 또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지구인들이 로봇 문화를 받아들여서 인간과 기계가 진정으로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였을 때에는 은하 우주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우주시의 모든 우주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국가 연합 중에서는 여기에 대한 심한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베일리는 몰랐다.
“뭐라고? 우주인들 사이에도 의견이 틀리는 수가 있나?"
"물론 있지요. 반대하는 우주 국가들은 지구가 새로운 세계가 되면 대단히 위험한 세력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필경 또다시 침략 전쟁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하는 거죠.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은 옛날 지구의 식민지였던 우주 국가들이죠."
"천 년이나 전의 얘긴데. 그런 아주 옛날 일을 구실로 또 지구를 괴롭힐 작정인가?"
"지구의 인구는 80억이나 되는데 비해 50개나 되는 우주 국가의 인구는 겨우 55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주 비행의 수단을 모두 빼앗긴 현 상태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베일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다니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튼 박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구에는 로봇 문명이 절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진 분입니다. 그렇지만 박사는 다만 로봇화를 강요하기만 하면 안 된다. 좀더 지구인들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별 대우를 철폐하고 우리 우주인들이 지구인 속으로 파고 들어가 지구인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그 습관이며 사고 방식을 이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따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베일리는 코웃음을 쳤다.
"예, 당신의 말이 옳습니다.“
다니엘이 끄덕였다.
"그렇게 주장한 서튼 박사 자신도 혼자서 지구의 도시로 들어올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주인과 꼭 같은 몸의 구조를 한 로봇을 지구의 도시로 보내 지구인의 생활을 관찰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베일리는 금방 알아차리고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랬었군……. 즉, 자네가 그 로봇이었군."
"그렇습니다. 나의 얼굴이며 몸은 서튼 박사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우주인 중에서는 저를 서튼 박사로 잘못 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베일리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서튼 박사는 벌써 죽어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데 그 서튼 박사하고 똑 닮은 로봇은 이렇게 살아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박사는 I년 전부터 나를 설계하고 조립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주장하는 씨에프 문명 추진용 로봇이랍니다.“
"C, Fe 문명이라니?"
"씨(C), 에프이(Fe), 즉 탄소와 철의 화학 기호를 말합니다. 탄소는 인간의 생명의 근본이요. 철은 로봇 생명의 근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과 로봇이 손을 맞잡고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명을 말하는 겁니다."
"옳아!"
베일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어느 정도 상황을 알겠군. 즉 서튼 박사는 그 시 에프이 문명을 지구에 이룩하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그것을 알아낸 지구인의 로봇 주의 반대 단체가 그것을 막기 위해서 박사를 죽여버렸다. 이런 얘기로군 그래?"
"예. 맞습니다.“
"이론은 그럴 듯 하네만 사실하고는 전혀 들어맞질 않네.“
"어째서요? 베일리.“
"지구인이 우주시 안으로 스며들어가 서튼 박사를 만나서 열선 총으로 쏴 죽이고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어. 우주시의 입구가 그렇게 간단히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은 자네가 가장 잘 알고있지 않나.“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지구인이 우주시의 입구로부터 남 몰래 출입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지구인은 지구인일 수 없네."
"그렇지요. 만약에 우주시의 출입구가 그곳 하나뿐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베일리는 눈을 깜박이며,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일세. 출입구는 그곳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출입구는 분명히 그 곳 하나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강철 도시나 우주시는 주위의 넓은 들판을 통해서 몇 개씩 출입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출입구 중의 하나로 나가 넓은 들판을 횡단하고 우주시의 돔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들판을 횡단한다?“
베일리는 깜짝 놀라 입술이 일그러지고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렇죠."
"혼자서 말인가?“
"물론, 혼자서죠.“
"그럼, 걸어서?“
"십중팔구 그랬을 테죠.“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릴! 지구인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어. 도시를 빠져나가 혼자서 넓은 들판을 걸어갔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보통 때라면 그렇겠지요. 우주인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인들도 그곳 출입구만을 단속했던 것입니다. 지구인들은 지난 번 폭동이 일어났을 때도 도시를 나섰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기 때문에 범인들은 그 허점을 찔러 본 겁니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을 해서 훌륭히 성공한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못할 일은 없으니까."
베일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
"엔더비 국장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국장이?“
"국장은 범행 시간과 거의 동시에 현장에 도착해서……."
"그건 알고 있네.
""국장님은 서튼 박사하고 줄곧 협력해 오셨습니다. 나를 이 강철 도시로 데려오는 계획에도 여러 가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장님도 아마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도 역시 범인이 들판을 지나왔다는 추리에는 반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만일을 위해서 모든 출입구를 조사하는 일에는 동의하셨습니다.“
"그래 조사를 해봤나?“
"물론 했지요. 베일리, 당신은 그런 출입구가 몇 개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한 스무 개쯤 될까?"
다니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백 두 개나 있습니다.“
"정말인가 그게?“
다니엘은 끄덕였다,
"전에는 더 있었죠, 강철 도시는 옛날엔 들판에 대해서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었지요. 그 무렵 시민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들판으로 나갈 수 있었지요."
"알고 있네, 그런 것쯤은. 그것보다도 조사 결과는 어떻게 됐나?“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죠. 모든 출입구는 아무도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범인이 그 중 어느 출입구로 나갔다고 해도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밖에 무슨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었나? 흉기는 물론 없었을 테지?"
"물론입니다. 단서가 될 만한 짓은 하나도 없었죠. 들판에는 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목격자가 있을 수가 없지요.“
"그렇겠군. 그래서?“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써서 수사하기로 했습니다. 즉 강철 도시 안의 반 로봇 운동가의 모임을 철저히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이곳으로 오게 된 거죠.“
다니엘은 지긋이 베일리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우리는 당신에 관해서도 자세히 조사했지요. 그 결과 로봇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도 알았죠."
"그래서 나쁜가? 그렇다면 딴 형사를 파트너로 하게."
베일리는 불쾌했다.
"아니요. 인간은 제각기 자기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개인으로선 로봇을 싫어해도 의무가 맡겨지면 로봇하고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지요. 당신은 임무와 법률에는 대단히 충실합니다. 그러니까 더욱 국장님은 당신을 추천했을 겁니다."
"내가 로봇을 싫어해도 자네는 아무렇지도 않나?"
"임무에 지장이 없는 한 그런 건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베일리는 무시당한 것 같아서 따지고 들었다.
"내가 테스트에 합격된 것이라면 이번엔 너의 차례다. 자넨 어떻게 해서 이 임무를 맡았나?"
"나는 본시 정보 기록용으로 설계된 겁니다. 그리니까 범죄를 수사하는 데는 가장 안성맞춤이죠."
"정보를 모으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아.“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 전자 두뇌에는 특별한 회로를 붙였답니다.“
"그게 어떤 회론데?"
"정의를 요망하는 회로입니다.“
"정의? 로봇이 정의를 알게 뭐람!"
베일리는 무의식중에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주 침착했다.
"알 것 같습니다. 내게 있어서 정의란 법률을 지키는 일입니다. 법률에 위반되는 살인 같은 범죄를 방지하고 살인자에게 벌을 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벌은 인간에게 있어서나 로봇에게 있어서나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지! 인간에 있어서의 정의와 로봇에 있어서의 정의는……."
돌연 다니엘이 손을 들어 베일리를 저지하고 문 쪽을 가리켰다.
"누군가 도어 쪽에 있소."
문이 열리고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것은 제지벨이었다.
제지벨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방음 장치가 되어 있으니까 지금 얘기를 들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제지벨은 뚜벅뚜벅 다니엘의 앞으로 다가가서 들릴까말까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다니엘 올리버……. 당신은 정말 로봇인가요?"
다니엘은 조용한 말씨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우주시에서 온 로봇입니다.
 
퍼지는 소문
 
그 날 밤 베일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제지벨도 잠이 오지 않는지 몸을 엎치락 뒤치락거리고 있었다.
"당신 아직 자고 있지 않으면 얘기 좀 할까?"
베일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어떻게 해서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걸 알게 됐소?"
그러자 제지벨은 갑자기 겁을 먹은 표정이 되어 다니엘이 머물고 있는 땅 쪽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들리지 않을까요?"
"작은 목소리면 괜찮아."
"그렇지만 알 수 없어요. 우주인의 로봇은 어떤 소리라도 들리는 특별한 귀를 달고 있다고 하던데요.“
베일리도 그런 소문은 듣고 있었다.
"눈은 강력한 비디오 카메라로서 적외선 카메라처럼 밤중에도 물건을 볼 수 있으며, 전파를 수신하고 발신하는 장치까지 구비되어 있다고 하던데요."
그러나 베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다니엘은 틀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인간과 똑같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하고 같은 감각 밖에 없단 말이야.“
제지벨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베일리! 저 무서워요.“
"다니엘 말이오? 그런 일은 없어. 그는 절대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까. 그것은 당신도 알고있을 텐데?“
"아니어요, 기분이 나빠요.“
제지벨은 베일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를 쫓아버릴 수는 없어요?"
"그런 짓은 할 수 없지. 임무니까."
"어떤 임무란 말인가요?"
베일리는 엄한 눈초리로 제지벨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임무에 대해서 얘기를 한 수 없다는 것쯤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 임무는 혹시 엔더비 국장에게 명령받은 것이죠? 어째서 그 사람은 당신에게 언짢은 일만 시키는 거죠? 그 사람은 당신 친구죠?"
베일리는 화가 나서 아무 말도 않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엔더비 국장은 대학에서 베일리의 2년 선배였다.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친구가 되었다. 그가 경찰에 들어갔을 때 엔더비는 이미 민완 형사로 날리고 있었다. 그 후 두 사람의 차이는 계속 벌어지기만 했다. 엔더비는 사람들과 부드럽게 교제하는 재능이 있었고, 베일리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엔더비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우주인조차도 사이좋게 지낼 수가 있었다. 그가 시경 국장이 된 것도 우주인이 그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일리는 아직 C5급 형사인 것이다. 그렇지만 엔더비는 지금까지도 베일리를 친구로 대해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성공시키기로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 주었고, 이번 일을 담당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여보, 경찰을 그만 둘 수는 없을까요?"
갑자기 제지벨이 말했다.
"별 소릴 다 하는군. 왜?"
"그만 두면 저 로봇하고 인연을 끊을 수 있잖아요.“
"지금 한창 중요한 사건을 맡고 있을 때 그만 둘 수는 없지. 그리고 그따위 행동을 하면 지금 당장에 파면을 당할지도 모르지.“
"그러면 무서워서 그만 두지 못한단 말이네요? 다른 직업으로 새 출발하면 되잖아요."
"파면을 당한 사람은 어디에서나 써주질 않아. 그렇게 되면 당신과 벤트리도 지금까지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마는 거야."
"그런 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니까요."
베일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제지벨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이 강철 도시 속에서 파면을 당해 실업자가 된 사람과 그 가족이 얼마나 비참한 지경이 됐는가를. 나는 가족들을 절대로 그렇게는 만들 수가 없다.)
"그런데 아까 물어볼 얘긴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
"문득 로봇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뿐이어요."
"그럴 리가 없어. 아까 외출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어. 밖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게 분명해. 그렇지?"
제지벨은 우물쭈물하고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 안 그래?“
"저, 사실은 공동 목욕탕에서 모두가 얘기하고 있었어요. 여자들이 찧고 까불고 하는 것은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어떤 얘기였는데?“
"우주인 로봇이 이 뉴욕 시에 들어왔다는 얘기였죠. 그 로봇은 언뜻 봐서는 사람하고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경찰의 일을 돕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 다니엘이 언젠가 본 입체 영화 속의 우주인하고 꼭 닮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그랬었군……."
"저, 무서워요.“
"괜찮다니까!"
"아니, 폭동 말이에요. 어쩌면 우리들이 살해될 지도 몰라요. 집안에 우주인 로봇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그런 소문이 퍼져서. 뉴욕에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던데요."
"그런 소문도 있나?"
"예, 저 구둣방 사건 같은 것이 여기저기서 일어나서 그것이 이윽고……."
제지벨이 갑자기 몸서리쳤다.
"그렇지만 다니엘이 그 로봇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해. 우리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말야."
"하지만 누군가가 눈치챌는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그런 일은 없어. 자,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
베일리는 암담한 기분으로 검은 천장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이윽고 제지벨은 천천히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베일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가슴속에는 한 가지 사건의 해결 방법이 차츰 형태를 이루어 가고 있었다. 사건의 해결의 열쇠는 뜻밖에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리고 베일리는 그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는 갑자기 우뚝 일어나서 어둠 속을 발소리를 죽이고 살며시 옆방으로 다가갔다. 도어 앞에 서서 가만히 열었다. 희미하게 방안이 보였다. 그러나 다니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 그는 가슴속에서 외쳤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신경을 곤두세우고 생각을 했다. (자아, 어떻게 사건을 해결한다?)
 
 
우주시에
다음 날 베일리는 다니엘을 데리고 시경으로 갔다. 시경 안을 구경하고 싶다는 다니엘을 부하 직원에게 맡기고 베일리는 국장을 만났다.
"지금 우주시에 갔다 오겠습니다.“
"우주시라고?“
국장은 몹시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살인 현장도 봐야 되겠고 또 현장을 본 우주인에게 한두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가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걸세. 베일리, 현장 조사는 이미 끝난 걸."
국장은 몹시 불안한 태도로 말했다.
"그리고 우주인이란 항상 만나는 사람이 아니면 참 대면하기 힘든 족속일세. 나도 참으려면 여간한 인내가 필요한 게 아닌데, 자네에겐 아주 무리야."
"그렇지만 난 내 신념대로 하고 싶소. 그렇게 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이 일을 그만 두겠오."
"그런 억지는 말게. 나는 다만 우주인을 상대로 할 때는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럼 국장님께서도 함께 가 주시렵니까?"
국장은 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난 갈 수 없네."
그리고 변명하듯이 말했다.
"밀린 일이 산더미같이 많아 갈 시간이 없군 그래.“
베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주시에서 텔레비전 전화를 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주시겠죠?"
국장은 조금 우물쭈물하더니 마침내 할 수 없다는 듯이 끄덕였다.
"아아, 좋아. 베일리, 언제고 걸어 주게."
베일리는 국장실을 나오자마자 다니엘을 불러 함께 우주시로 향했다.
우주시까지는 지하 차도로 해서 패트롤카를 타고 갔다. 지하 차도는 경찰차나 소방차나 구급차 및 특히 급한 화물 자동차 등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이었다. 우주시의 출입구에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던지 경비하는 우주인이 그들을 겸손히 맞이하여 주었다. 경비원이 베일리에게 다가와서 경례를 했다.
"신분 증명서를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베일리는 증명서를 건네주며 경비원의 코에 바이러스 방지의 필터가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 경비원은 신원 증명서를 돌려주며,
"여기 샤워실이 있으니까 사양 마시고 쓰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래서 베일리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다니엘이 가만히 팔을 잡아 당겼다.
"지구인이 우주시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샤워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베일리는 또 창피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만약 거절하면 우주시에 들어 갈 수가 없다. 샤워실로 들어서니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오존 냄새인 것 같았다. 앞 벽에 전광 문자가 빛났다.
 
입장한 사람은 옷(구두를 포함함)을 벗어 아래 용기에 넣을 것.
 
베일리는 지시에 따랐다.
그러나 열선 총을 떼 놓을 수가 없는 일이라서 벨트를 벌거벗은 몸에 찼다. 묵직하고 차가운 것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용기가 벽 속으로 쑥 들어가 버리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입장한 사람은 눈을 곧바로 위로 올리고 발은 표지가 있는 곳에 올려놓을 것.
 
다음 지시가 계속 나왔다. 그 지시에 따르며 베일리는 자신이 마치 회전 벨트의 작업대 위에 실린 부분품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천장과 방바닥에서 또 주위의 바람벽에서 세차게 물이 쏟아져 내렸다. 뜨거운 물로 전신이 완전히 씻겨지자 별안간 차가운 물로 바뀌었다. 일 분 가량 지나자 샤워가 멎고 따뜻한 공기가 보내져서 온몸을 건조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샤워실을 나왔다. 마침 옆 샤워실에서 다니엘이 나오고 있었다. (로봇이 샤워를 다 한단 말인가!) 물론 로봇도 강철 도시 안에서 먼지를 쓰고 왔으니까 몸을 씻는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한 것은 없지만 그러나……? 다니엘의 발가벗은 몸은 구석구석까지 전체가 다 사람하고 똑 같았다. 베일리는 자기가 아까 벗어 놓은 옷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지시가 나왔다.
 
입장한 사람은 옷을 입고 지정한 곳에 한 손을 올려놓을 것.
 
옷을 입자, 그대로 했다. 순간 가운데 손가락이 따끔하고 아팠다. 황급히 손을 들어 보니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피검사를 한 것이다. (우주시에서는 지구인을 철저히 신체 검사를 하고 난 뒤가 아니면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군.) 이윽고 또 지시문이 바뀌었다.
 
입장한 사람은 앞으로 나가 아치를 지나갈 것.
 
베일리는 아치를 지나가려는 순간 돌연 양쪽에서 두 개의 금속 막대가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전광 사인이 빨간 불로 반짝이고 있었다.
 
입장한 사람의 전진을 금지한다.
 
"뭐라고! 별 터무니없는 소릴 다 듣겠군!“
베일리는 화가 치밀었다. 다니엘이 저쪽 통로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무기를 가지고 있긴 때문입니다. 베일리, 우주시에 들어가려면 총을 놓고 가야 합니다.“
베일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참으며 열선 총과 벨트를 풀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지 않으면 안 된다.), 하고 그는 자기 스스로 타일렀다.
"벽에 총을 세우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 총을 세우십시오.“
열선 총을 세우자 그곳이 찰칵하고 닫혔다.
 
가운데 표시가 있는 곳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르십시오. 전자 장치로 되어 있으므로 당신의 엄지손가락이 아니면 열리지 않습니다.
 
베일리는 하는 수 없이 또다시 게시판의 지시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단. 그러자 두 개의 금속 막대가 양쪽으로 쑤욱 들어갔다. 통로로 들어서자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은 어딘가 모르게 지금까지의 공기와는 전혀 틀리는 것 같았다.
"밖의 공기랍니다. 인공 조절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기 말입니다.“
다니엘이 설명해 주었다. 베일리는 기분이 나빴다. (자연의 공기……? 지구인이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경계하는 우주인이 이상한 짓도 다 하는군.) 그는 가능한 한 그 공기를 마시지 않으려고 숨을 억제했다.
"염려하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밖의 공기는 건강을 위해 좋은 거니까요."
(로봇이 건방지게 인간의 일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베일리는 마음 속에서 혼자 외쳤다. 그러나 그 마음도 통로에서 한 발 앞으로 들어서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거기는 밖이었다. 주위는 가슴을 부풀어오르게 하는 싱싱함과 푸르름이 무성했고 그 위로는 강렬하고 밝은 햇빛이 눈부시게 내려 쪼이고 있었다. 베일리는 물론 햇빛을 본 일은 있었다. 그것은 일광욕장에 갔을 때였다. 그러나 일광욕장은 보호 유리로 차단되어 있으므로, 직접 햇빛 자체는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두가 자연 그대로였다. 그는 눈부신 햇빛을 쳐다보았다. 몸이 비틀거려지며 눈물이 났다.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뒤로 돌아서서 도망치고 싶었다.
"이쪽입니다.“
다니엘이 슬그머니 베일리의 팔을 잡고 한 돔 앞으로 인도해 주었다.
돔 앞에 한 우주인이 서 있다가," 어서 오십시오. 베일리 형사. 나는 요한 패스톨프입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돔 안으로 들어가자 비로소 베일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돔 안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깨끗했는데 회의장 같았다. 공기도 조명도 인공 조절이 되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기운을 좀 차리셨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패스톨프 박사님.“
"패스톨프 박사는 이마에 많은 주름이 있고, 눈 밑이며 턱의 피부가 축 늘어지고, 머리카락도 성긴 것이 아주 늙은이로 보였다.
"자, 과일을 좀 드십시오.“
패스톨프 박사가 말을 하며 테이블 위를 가리켰다. 베일리는 놀랐다. 거기에는 분명히 유리 용기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타원형의 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장식물로만 알았던 것이다.
"이건 행성 오로라에서 열리는 천연 과일입니다. 사과라고 하는 아주 맛이 있는 것이랍니다.“
다니엘이 설명하자 패스톨프 박사가 미소지었다․
"다니엘은 물론 먹을 수는 없지만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정말 맛이 있으니 어서 하나 드십시오."
베일리는 머뭇거리며 사과를 한 개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동그스름하고 초록색의 윤택이 나는 과일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겼다. 한 입 깨물어보니 시고 달콤한 자극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싱그러운 맛이었지만 그렇게 좋은 맛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강철 도시의 시민들도 룰론 자연의 것을 먹을 때가 있었다. 고기도, 빵도, 야채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반드시 가공되어 있다. 꼭 살균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일은 소스라든가 쨈이며 케첩의 재료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흙에서 자란 것을 그대로 먹는다니, 무척 야만적인 습관이로군.) 그렇게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몸 속에 박테리아가 퍼져 와글와글 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바로 서튼 박사 살해 사건 수사 책임자요. 바로 엔더비 국장님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내게 요구하실 것이 있다면 서슴지 마시고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나는 이 사건을 한시라도 빨리 해결을 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패스톨프 박사의 말은 무척 정중했다. 베일리도 정중하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이 회의에 엔더비 국장께서도 텔레비전으로 참가하시길 원합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물론 좋습니다. 그럼 다니엘, 스위치를 넣어라."
이윽고 한쪽 벽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자마자 거기에 시경 국장실이,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엔더비 국장의 상반신이 비쳐지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패스톨프 박사하고 다니엘을 바라보며 마음을 든든히 먹고 배에 힘을 주어 말을 꺼냈다.
"그러면 지금부터 서튼 박사 살해 사건의 진상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뭐라고!"
스크린 속의 엔더비 국장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안경이 벗겨져 책상 위에 떨어졌다. 패스톨프 박사도 놀랐던지 움찔했다. 다니엘만이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베일리 형사, 당신은 벌써 범인을 발견했다는 겁니까?“
패스톨프 박사가 불었다.
"아뇨.“
베일리는 박사를 정면으로 똑바로 보면서 똑똑하게 말을 했다.
"나는 살인 사건이란 처음부터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베일리,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국장이 고함을 쳤다.
"잠깐만 국장님.“
패스톨프 박사가 스크린을 향해 말해 놓고는 베일리를 향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서튼 박사가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어디에?“
"바로 여기에!"
베일리는 아주 침착하게 앉아 있는 다니엘을 가리켰다.
 
베일리의 추리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방안은 무서우리만큼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엔더비 국장이었다.
"베일리, 자네가 하는 말은 엄청나게 틀린 말이야. 나는 서튼 박사의 시체를 이 눈으로 직접 봤단 말일세.“
베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국장님은 서튼 박사의 시체라고 하는 시커멓게 탄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아니, 아니지, 베일리.“
국장은 허둥지둥 침착성을 잃고 안경에 손을 대며 말했다.
"나는 서튼 박사를 잘 알고 있었다네. 그런데 그는 가슴을 맞아서 얼굴은 그대로 있었어. 틀림없는 박사였다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누구죠?"
베일리는 싹 돌아서며 다니엘에게 손가락질했다.
"서튼 박사 그대로죠?"
"그건 썩 잘 닮았지……. 그렇지만 그의 동상처럼 보일 뿐일세."
"무표정한 얼굴이나 로봇다운 말투며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시체를 가까이서 보았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당신은 새까맣게 타버린 그 시체가 산 사람의 것인지 아니면 플라스틱의 가짜였는지 똑똑히 구별할 만큼 확실하게 보셨습니까?“
엔더비 국장은 화가 치민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여보게 베일리, 나도 경찰관일세. 시체하고 가짜하고 구별을 못할 것 같은가?"
"우주인의 기술로는 그 정도의 일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베일리는 이번에는 패스톨프 박사를 향해 말했다.
"시체를 해부하는데 동의하십니까?"
패스톨프 박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유감스럽게도 유해는 이미 화장을 해 버렸소."
"그건 아주 편리하게 됐군요."
"베일리 형사, 왜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추리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베일리는,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오. 당신네들은 너무 로봇하고 항상 가깝게 지내서 로봇하고 인간하고의 미묘한 차이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지구인은 로봇에 대해 대단히 신경질적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미묘한 차이라도 곧 알아차립니다.“
하고 말하면서 다니엘을 보았다.
"첫째, 다니엘은 로봇치고는 너무나 인간을 닮았습니다. 나는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우주인이라고 믿어 버렸으니까요.“
"그것은 앞서도 설명을 했소. 베일리, 나는 인간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특별히 인간답게 설계된 로봇입니다. 그러니까 인간과 꼭 같아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을 테지요."
"그렇지만 보통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일부러 인간하고 꼭 같게 할 필요가 어디 있나? 난 공동 목욕탕에서 자네의 몸을 구석구석 잘 보았네."
"인간답게 하기 위해서는 꼭 닮게 해야 하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인간의 모든 부분을 만들어 준겁니다.“
패스톨프 박사가 설명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꽁무니를 빼려고 해도 안 될 일이 또 한 가지 있소."
베일리는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며 말을 했다.
"처음 우주시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구둣방에서 폭동이 일어나려고 했지요. 그 때 그는 군중에게 열선 총을 겨누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다 쏴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베일리, 자네는 보고 할 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잖나?"
하고 국장이 추궁하자 베일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옳습니다. 나는 로봇이 인간에게 무기를 겨누었다는 것은 보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숨겨 두었던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국장이 신음을 하듯 말했다.
"로봇 공학 제 1원칙에 '로봇은 인간에게 위험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인의 세계에서도 같지요?"
베일리는 패스톨프 박사에게 물어보았다.
"물론이지요. 그렇지만 다니엘은 인간을 손상하지 않았소.“
"그것은 결과가 그렇게 되었을 따름이죠. 아무리 사람을 손상시킬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사람을 손상시키게 될지도 모르는, 말하자면 로봇 공학 제 1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로봇이 할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로봇 공학의 전문가인가요?“
"아닙니다.“
"나는 로봇 공학자요. 아시겠습니까? 베일리 형사, 단순한 일만 하는 로봇은 물론 무기로 사람을 위협하거나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처럼 아주 고도의 로봇의 경우, 그것은 들어맞지 않습니다. 그는 상황을 판단한 후 위협을 해서 폭동을 진압할 수 있고, 또 사람이 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랍니다. 즉 로봇 공학 제 1원칙에 조금도 저촉됨이 없지요."
베일리는 일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패스톨프 박사가 하는 말은 지극히 당연하게 들렸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용기를 내어 이번에는 다니엘에게 물었다.
"다니엘, 자네는 어제 밤 아파트를 빠져나갔지?"
"네."
"어디 갔었나?“
"공동 목욕탕입니다."
베일리는 조금 당황했다. 다니엘이 이렇게 간단히 어젯밤의 행동을 말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 )그는 계속 추궁했다.
"왜, 공동 목욕탕에 갔는지 그 이유를 좀 설명하여 주게"
다니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당신 부인은 어제 외출 할 때까지만 해도 나를 인간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내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나와 당신하고의 얘기가 어디선가 도청 당해 그 정보가 아파트 밖으로 흘러 나갔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베일리가 말하려고 하자 패스톨프 박사가 손을 들어 제지하고 다니엘에게 몸짓으로 말을 계속하도록 했다.
"나는 먼저 이것은 뉴욕 시내에 서튼 박사의 암살을 계획한 지하 조직이 있어 그 일당이 베일리의 아파트를 감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파 탐지 장치를 써서 아파트 안을 전부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데도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만일 그런 장치를 숨기려면 어디가 제일 적당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저 공동 목욕탕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지요. 공동 목욕탕에서는 남의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예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좀 이상한 행동을 한다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요. 그러니까 그런 장치를 숨기기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지요. 그래서 거기를 조사하러 갔습니다.“
"그래 그 장치는 발견되었나?"
베일리가 재빨리 또 물었다. 다니엘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베일리씨의 마음속에서, (그것 봐라. 꼬리를 잡혔군?) 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패스톨프 박사를 돌아보았다. 패스톨프 박사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어떻습니까? 이것으로 그가 행동한 이유는 분명하게 증명이 됐지요?"
"아니, 아직 의심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것은 벌써 전에 시중에 알려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내가 듣고 온 소문에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그 정보가 흘러 나왔는지,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지구 쪽에서는 나하고 엔더비 국장님뿐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엔더비 국장이 눈썹을 찡그리며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건 틀림없어. 이 사실은 시장조차 알지 못해. 패스톨프 박사님과 나와 자네만이 아는 비밀일세.”
"아니, 또 한 사람 있죠."
그러면서 다니엘을 가리켰다.
"그렇지만 나는 줄곧 당신하고 같이 있었습니다. 정보를 흘려버릴 시간은 없었습니다.“
다니엘의 이 말에 베일리는 크게 외쳤다.
"아니지. 나는 공동 목욕탕의 욕탕에서 30분이나 있었네. 그 사이에 자네는 자네의 일당하고 얼마든지 연락을 취할 수가 있었지."
"일당이라고?“
패스톨프 박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 눈이 번쩍하고 환하게 빛났다. 베일리는 둥근 배에다 힘을 꽉 주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지금 우주인들의 음모를 분명하게 폭로해 줄 때가 온 것이다.
"자, 좋습니까? 국장님, 잘 들으시오, 당신이 우주시에 들어온 바로 그 때, 서튼 박사가 누구에겐가 살해당했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뿐이었고,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 시체뿐이었으며, 더욱이 그 시체라는 것조차 자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이미 화장해 버렸다고 하는 것이오."
베일리는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분명하게 말을 했다.
"우주인은 이 살인 사건이란 것을 지구인의 소행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그들 말대로 지구인이 범인이라고 한다면, 그 범인은 한밤중이 강철 도시를 빠져 나와 들판을 혼자서 지나서 우주시에 몰래 스며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요. 이러한 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국장님, 당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다음에 베일리는 다니엘을 보았다.
"다음에 우주인들은, 이 로봇을……. 아니, 로봇이라고 칭하는 이 인물을 시중으로 보내왔오. 그런데 그는 무엇을 하였는가? 열선 총을 휘둘러 인간을 위협하는, 로봇으로서는 불가능한 행동을 하였으며, 다음으로는 그는 뉴욕 시에 로봇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퍼뜨렸소. 이 소문은 사정을 잘 아는 몇 사람 외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오. 그런데 그 소문이 퍼진 속도로 봐서 시중에는 그의, 즉 우주인의 일당이 있었음이 틀림없는 것이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국장이 고함쳤다.
"아니 그래도 당신은 아직 모르겠습니까?"
베일리도 같이 고함쳤다.
"왜, 그가 그러한 일을 했는가? 그는 시중에 살인 로봇이 침입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 겁니다!"
"왜? 어째서 우주인이 폭동을……."
"지구인이 폭동을 일으키면 우주인은 뉴욕을, 그리고 딴 돔 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할 구실이 생깁니다. 그것 때문에 우주인은 어떻게 해서라도 폭동을 일으키고 싶었던 겁니다!"
"잠깐만, 베일리씨 형사. 점령하고 싶었다면 20 여년 전 폭동 때 벌써 점령했을 것이오."
"그 때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지요. 지금은 완성되었으니까 실행에 옮긴 것이지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보다 더 간단한 방법으로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베일리는 물러설 수 없었다.
"물론 말씀은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있어도 사실은 다를 수도 있죠. 우주 국가의 지구 정책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구실이 필요했소. 딴 우주 국가들이 트집을 잡을 수 없는 사건이 필요했던 거죠.“
패스톨프 박사가 입을 다물었다. 베일리는 이때다 하고 대들었다.
"좋습니까? 박사님, 지구인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우리들은 당신네들의 음모를 발견했소. 내일이라도, 아니 오늘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 연방 정부는 우주 국가 연합에 대해 당신네들의 음모를 발표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한테도 그리 좋을 것은 없을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저 다니엘이 서튼 박사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요? 베일리 형사."
"주장하고 안하고를 논할 필요도 없이 틀림없는 걸요?“
패스톨프 박사는 문득 아주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베일리 형사, 그렇다면 당신은 다니엘에게 바늘이라도 꽃아 보셨습니까?"
"바늘이라니요? 그건 또 어째서요?"
"그건 인간과 로봇을 구별해 내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지요. 실험 방법은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소.“
패스톨프 박사는 다니엘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그의 피부나 머리카락을 현미경으로 비쳐 봐도 좋고, 아니면 그의 호흡을 잘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요. 또 조금만 주의하여 보면 그가 몇 분이고 호흡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오. 또는 그가 뱉는 숨을 받아서 탄산가스가 있나 없나를 조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그밖에 맥을 짚어 본다든지 심장과 고동을 조사해 본다든지, 방법은 얼마든지 있소. 그 중 어느 것이든 해보셨소? ”
"베일리 형사?"
베일리는 그만 몰리게 됐다. 그러나 지지 않고 대들었다.
"말로라면 무엇을 못합니까."
"그렇다면 좋소!"
패스톨프 박사는 다니엘에게 눈짓했다. 다니엘이 셔츠의 오른쪽 소매를 치켜올리자 어디로 보나 훌륭한 사람의 팔이 나타났다. 패스톨프 박사는 베일리에게,
"가까이 가서 잘 보시오." 하고 말했다. 다니엘은 왼손 손가락으로 오른쪽 손목을 꽉 눌렀다. 그러자 다니엘의 팔의 피부가 두 개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과 똑같은 물질 아래에 나타난 것은 청회색의 스테인리스 스틸과 헝클어진 수많은 코드와 복잡한 부속품의 집합이었다.
"자, 베일리 형사. 로봇 다니엘 올리버의 구조를 잘 조사해 보시오."
패스톨프 박사가 무척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앗하하하하……?“
요란한 국장의 웃음소리가 베일리의 귀를 따갑게 때렸다. 그는 순간, 머리를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패스톨프 박사의 설명
 
베일리는 문득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입체 텔레비전 스크린이 이미 지워져 버린 것이었다. 그의 곁에는 다니엘이 서서 주사를 놓고 있었다. 베일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괜찮습니까?“
다니엘이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베일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패스톨프 박사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가 정신을 잃었습니까?“
"그렇소. 아주 짧은 동안이었지만……."
"국장님은?“
"급한 일이 생겨서 전화를 끊었지요.“
베일리는 눈을 감았다. 국장의 그 요란스런 웃음소리가 아직 귀에 쟁쟁했다. 그리고 웃고 난 순간 불처럼 화를 냈을 것은 너무나 뻔했다. (물론 이 사건에선 손을 떼라고 하겠지. 아니, 어쩌면 형사도 그만두라고 하겠지. 하긴 그렇게 해도 할 수 없을 만한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실례하겠소.“
"어서 앉으시오. 마음이 안정되면 살인 현장의 사진과 자료를 보여 드리지요.“
"이미 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소. 전 이미 파면 당했으니까요.“
"그럴 리가 없소. 나도 누누이 엔더비 국장에게 잘 확인해 놓았소.“
패스톨프 박사가 타이르듯 말해 주었다. 베일리가 발끈해서 말했다.
"동정은 받고 싶지 않소.“
"아니, 동정이 아니오."
"그럼 어째서요?“
패스톨프 박사는 팔짱을 끼고 한참 베일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두 가지 형의 지구인 밖에는 만나 본 일이 없소. 그 한 형은 증오의 덩어리가 되어서 얘기가 통하지 않는 폭력적인 지구인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정치가요."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엔더비 국장은 정치가의 대표 같은 인물이소. 그는 대단히 머리가 좋고 훌륭한 인물이지만 언제나 표리가 있소. 그런데 당신은 전혀 틀리는군요. 당신은 처음으로 우주시에 들어와 대담하게도 우리들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당당하게 그것을 증명하려고 했소. 당신은 정직하고 용기가 있고 더욱이 이성적이요. 그뿐인가? 당신 같은 지구인은 처음이요.“
"그렇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소."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소. 그것은 상대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요. 가령 예를 들면 당신은 우리들이 지구인을 이 우주시에 들여보낼 때 엄중한 신체 검사를 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했죠?"
베일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죠.“
"그럴 테지요.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베일리 형사, 우리들의 세상에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한 병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지구에 있는 그런 병에는 전혀 면역성이 없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러면 당신들은 절대 그런 병에 걸린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감기에 걸린 일조차 없소. 아니, 만일에 걸렸다고 하면 죽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들에게는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오. 아시겠오? 베일리 형사. 우리들 우주인은 결코 지구인을 경멸해서 가까이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병이 무서워서 그런 거라오. 내 말을 믿어 주시오."
베일리는 어느 틈인가 또다시 의자에 앉자 생각에 잠겼다.
"우리들은 서로 좀더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오해만 생깁니다. 그것은 비단 지구인 측만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들 우주인 측도 매일반이오. 그렇기 때문에 서튼 박사는 다니엘을 만든 겁니다."
"잠깐만, 박사님."
베일리가 얼굴을 들었다.
"말씀하시기 전에 한 가지만 얘기해 주십시오. 당신네들은 왜 그렇게 성가신 절차까지 밟아가며 지구에 오는 겁니까? 당신네 우주인에게는 지구 따위는 별로 보잘 것 없는 곳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는 겁니까? 어째서 내버려두지 않는 거지요?“
패스톨프 박사는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베일리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지금의 지구 생활을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저 그렇지요.“
"그렇지만 지금 상태가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고 믿소? 지구의 인구는 더욱더 늘어날 뿐이고 식량은 간신히 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소. 마침내는 파멸이 올 뿐이오.“
"아니, 어떻게든 되겠죠.“
"뉴욕 같은 돔 도시는 원자력 발전소가 없으면 하루도 유지할 수 없소. 그런데 그 원료인 우라늄은 이미 지구에는 없소. 금성이며 화성에서 수입해서 간신히 보급하고는 있으나 최근에는 그것마저 힘들게 되었소. 식량의 근원이 되고 있는 이스트균의 원료인 목재 펄프도 이미 지구에는 얼마 남지 않았소. 공기도 오염되어 버리고…….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가리라고 생각하오?"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장래까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소. 돔 도시는 조그만 꼬투리만 생겨도 금방 파멸한 지도 모르오.“
"그러면 돔 도시를 없애고 자연으로 돌아가란 말이오? 그따위 일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자연 속에서는 80억이나 되는 인간이 살아갈 수가 없소. 무엇보다도 문명을 퇴보시킬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보다도 우주 국가에 이주하는 걸 허락해 주기만 한다 면야…….”
"우주 이민이 금지된 이유는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우주 국가는 엄중하게 인구 제한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이대로 내버려두시지요."
"새 행성을 개척하면 좋지 않소? 은하계에는 약 일천 억의 행성이 있는데 그 중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적어도 1억은 되니까요."
"어리석은 소릴, 그따위 일을 지금 누가 합니까?"
베일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패스톨프 박사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왜 어리석은 소리요. 베일리 형사, 지구인은 옛날엔 많은 행성을 개척하지 않았오? 지금 우주에 있는 50개의 우주 국가 중에 30개는 지구인이 개척한 거요. 내 고향인 오로라도 그렇소. 우리들은 지구 이민의 자손이란 말이오."
"그건 옛 얘기죠."
"어째서 지금은 안 된단 말이오?"
베일리는 말문이 막혔다. 패스톨프 박사가 열기 띤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지구인들이 돔 도시에 살기 시작해서 그런 거요. 그 강철 동굴 속에 들어박히기 전에 지구인은 자꾸만 우주로 진출했소. 그런데 너무나 모든 것이 충족하고 너무나 살기 편한 돔 도시에 틀어박혀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구인은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린 거요. 겁쟁이가 됐소. 베일리 형사, 당신네들 지구인은 야외로 나가는 것을 무척 싫어하오. 그래서 뉴욕 돔에서 우주시까지 아주 작은 거리를 오는 데도 야외를 걸어올 수가 없게 된 거요.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게 어쨌단 말이오? 쓸데없는 참견이요.“
"물론 다를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불쾌한 일이겠죠. 그러나 이건 참견이 아니라 우리들이 당신네들에게 힘을 빌려 주십사 하는 부탁인 것이오.“
"농담이겠죠.“
"아니, 절대로 농담이 아니요."
패스톨프 박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베일리 형사, 내가 몇 살쯤으로 보입니까?"
베일리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육십 세쯤입니까?"
"아니오, 백 육십 세랍니다."
"네? 백 육십이요?"
베일리는 깜짝 놀라며 반문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음 생일로 백 육십 사 세가 된다오. 물론 지구에서 세는 나이로 말이오. 만일에 운이 좋아 지구의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이 만큼은 더 살 수 있어요. 우리 오로라 성인의 평균 연령은 삼백 오십 세니까요.“
"대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장수하는 건가요?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인구가 적기 때문이지요. 오로라에서는 노인학의 연구가 활발해요. 사람이 어째서 늙는가를 연구해서 그것을 방지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학문이지요. 그 결과 우리들은 3세기 이상을 살 수 있게 된 거랍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이오?"
"그렇소. 문제가 없다는 바로 그것이 문제인 거요.“
"원, 별 소릴……. 뭐, 퀴즈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오. 행성 오로라는 너무나도 문젯거리가 없소. 그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조금도 모험을 하려고 하질 않소. 그 점이 바로 문젯거리요. 수명이 길어졌다, 모처럼 수명이 길어졌는데 모험을 하다가 죽으면 억울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문젭니다. 사실 오로라를 위시해서 우주 국가들은 약 이백 오십 년 가량은 새 우주 탐험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요.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인류는 점점 활기를 잃고 멸망하고 말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지구에 로봇 문명을 강제로 발전시키려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로봇은 지금 지구에 실업자의 수만 늘어나게 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단 말이오."
"옳은 말씀이오. 지구에 실업자를 늘어나게 하여 마침내는 지구의 경제를 엉망진창으로 하는 것도 또한 우리들 목적의 하나인 것입니다.“
패스톨프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다. 베일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자, 침착하시오. 베일리 형사, 우리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는 거라오."
"지구를 파멸로 이끌어 지구인을 멸망시키자는 목적이겠죠?“
"아니오. 지구인들이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요. 그 강철 도시에서 튀어나와 우주를 향해서, 즉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요!"
패스톨프 박사는 이때다 하고 힘을 주어 말을 계속했다.
"우리들 우주 국가의 인간에게는 이미 그럴 만한 기개도 모험심도 아무 것도 없소. 그러나 지구인들에게는 그것이 있소. 인류의 장래를 짊어지고 있는 것은 즉, 당신들 지구인뿐이란 말이오."
베일리는 지긋이 패스톨프 박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진지한 마음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지구인에게는 그것이 가능하단 말이오. 그러기 위해서 좀더 로봇하고 손을 잡고 일해 나갈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하자면 앞으로는 인간과 로봇이 참된 의미로 협력을 하지 않으면 우주 개발을 이룩할 수 없단 말입니다.“
"그게 바로 씨 에프이 문명이라는 것이군요."
패스톨프 박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소. 바로 그것이오. 알아들으셨오? 베일리 형사.“
베일리는 애매하게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무나 스케일이 큰 이야기라서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뭐가 뭔지 너무 복잡해서."
"그야 물론 곧 이해하기는 힘들 테고.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실례하겠소. 너무 오랫동안 지구인하고 있는 걸 의사에게 금지 당하고 있습니다.“
 
수사 재개
 
베일리와 다니엘은 패트롤카를 타고 지하도로 해서 뉴욕으로 돌아왔다. 베일리는 패스톨프 박사가 한 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진정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속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문득 다니엘에게 물었다.
"다니엘, 박사는 왜 그런 얘기를 하였을까?"
"당신에게 이 사건의 해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죠. 그래서 당신이 다시 이 사건을 수사해 주기 바라서였죠."
"그러나…….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우주시 쪽은 용의자가 전혀 없었나?"
"물론 없었습니다. 하긴 지금까지 용의자가 한 사람 있긴 있었습니다만.“
"누군가?“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누구의 눈에도 확실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안타깝게 굴지말고 빨리 말해 봐. 누구냐 말이야?"
"국장이죠. 엔더비 국장 말이오."
"뭐라고?“
베일리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너무나 뜻밖이어서 놀란 나머지 운전을 계속할 수가 없어서 그는 패트롤카를 지하도의 옆으로 비켜 세웠다.
"왜? 어째서냐?"
"이유는 간단합니다. 국장은 범행 현장에 있었으니까요. 의심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용의는 벗어났나?"
"물론 의심은 풀렸지요. 현재로 국장은 열선 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들어올 수도 없었지요."
"그렇다면 흉기는 발견하지 못했나?"
"그렇습니다. 온 우주 시내에 있는 열선 총을 모조리 조사해 보았지만 이 2,3주 동안에 발사한 흔적이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흉기는 아직 우주시 안에 있나?"
"아니. 그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주시 안은 철저하게 조사했으니까요."
"그럼, 범인이 가지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국장은 완전히 혐의를 벗었습니다. 그의 두뇌를 분석해 본 결과 결백했습니다.“
"두뇌 분석이란 거짓말 탐지기 같은 것인가?"
"아뇨. 뇌파를 측정해서 그 사람의 감정이나 성질을 분석하는 겁니다. 그 결과 국장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 건 조사를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인 걸. 그가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나?"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겁니다. 우주시의 주민들도 한 사람 빠짐없이 자발적으로 두뇌 분석을 받았습니다만 모두가 결백했습니다. 우주인 측이 범인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런 과학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일리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렇다면 이미 방법은 알고 있으니까 뉴욕 시민들도 한 사람 빠짐없이 그 두뇌 분석이라는 것을 해 보면 범인을 곧 발견할 수 있지 않겠나?"
"그건 무리지요. 2천만 명이나 되는 인간 전부의 두뇌 분석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구인 속에는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몇 백만 명은 될 겁니다."
베일리는 대답할 수가 없어 입을 다물고 다시 패트롤카를 발차시켰다. 분하긴 하지만 확실히 다니엘이 말하는 대로였다. 시경으로 돌아오자 다니엘은 곧 자료실로 갔다.
베일리한테는 사미가 와서,
"시경 국장이 부르십니다. 베일리 형사.“
하고 전해 주었다. 베일리는 국장실로 향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엔더비 국장은 그를 보자 얼굴을 온통 찡그리고 있었다.
"장한 일을 했더군, 베일리."
"미안합니다, 국장님.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다행이야, 패스톨프 박사가 별로 대수롭진 않게 생각해서 다행이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도록 하게."
베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국장님, 그런데 오늘밤엔 제가 다니엘과 같이 쓸 아파트를 하나 준비해 주십시오. 그가 로봇이라는 소문이 퍼진 이상 만일에 폭도들이 저의 아파트로 물려들면 우리가 위험합니다."
엔더비 국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파트는 곧 준비해 놓겠네. 그렇지만 그가 로봇이라는 소문은 하나도 퍼지지 않았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글쎄 벌써 제지벨이 그 소문을 듣고 왔단 말입니다."
"그건……. 물론 약간 그런 일이 있을 지도 모르지. 내가 말하는 것은 조직적으로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일이 없다는 얘길세. 나는 그 뒤 소문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시켰더니, 그런 소문은 전혀 없었다는 보고가 들어 왔네."
"그렇다면 제지벨이 듣고 온 소문은 어떻게 된 거죠?"
"구둣방 앞에 모였던 군중 속에 로봇 전문가가 있었다더군. 그래서 다니엘을 보고 어딘지 이상하다고 느끼고 그걸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 마누라에게라도 얘기한 모양이지. 그걸 또 그 마누라가 공동 목욕탕에서 친구에게 얘기하고……. 이렇게 된 모양이지만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어 소문은 그럭저럭 흐지부지되어 버렸다……는 것이었네."
베일리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지금 어디 있나?"
"지금 반 로봇 운동파의 기록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숫자인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걸세."
"그런가요."
베일리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와 잠시 동안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가 이윽고 텔레비전 전화로 워싱턴에 걸어 어떤 인물을 불러내어 오랫동안 얘기하고 있었다. 전화가 막 끝났을 때 다니엘이 서류를 한 장 갖고 돌아왔다.
"이건 과격한 반 로봇 주의자 중에서 범죄를 저지를만한 사람들의 리스트입니다."
"벌써 다 끝났나? 리스트는 굉장히 많았을 텐데."
"백만 명 이상 되더군요.“
"그걸 벌써 다 조사했단 말인가?"
"예, 빨리 서둘러야 하는 일이라서 나의 컴퓨터의 기능을 전부 발휘했습니다."
"놀라운 일이로군. 그런데 자네는 식사를 할 수 있나?"
베일리가 갑자기 그렇게 묻자 다니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게는 식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네. 다만 식사하는 흉내를 낼 수 있냐고 물었네."
"그야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나중에 먹은 걸 모두 꺼내야 하죠."
"알았네. 지금 난 배가 고파 죽겠어. 자네는 이제부터 나하고 식사하러 나가세. 식사 때 자네가 식사를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이상하니까……. 그래서 물어 봤네."
그리고 몇 분 후 베일리하고 다니엘은 가까이 있는 공동 식당 앞 행렬 속에 끼어 있었다.
행렬을 선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금속제의 식료 배급표를 취사 기계 속에 던져 넣는다. 그러면 그때마다 째깍째깍하는 기계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지정된 테이블에 걸터앉아 스위치를 누르고 2분이 지나자 테이블 한 가운데의 동그란 구멍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요리 접시가 올라왔다. 베일리도 곧 먹기 시작했다. 다니엘도 먹는 시늉을 그럴 듯하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낮게 속삭이듯 말을 했다.
"식사를 할 때 남을 흘끔흘끔 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죠?"
"그건 그런데, 왜 그러나?"
"지금 여덟 사람이나 아까부터 우리들을 끈질기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말에 베일리는 포크를 내려놓고 소금을 찾는 척하면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내 눈은 보통 사람의 몇 십 배나 잘 보입니다. 틀림없어요. 더욱이 그 중 여섯 명은 어젯밤 구둣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있던 사나이들인 걸요."
 
미행을 당하다
 
"틀림없나?"
베일리가 낮긴 하나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예 , 틀림없습니다."
"그럼, 가까이 있나?"
"아니요. 그리 가까이는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알았네. 내게 다 맡기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 주게."
(그렇다면 역시 그것은 과격한 반 로봇 운동가들의 계획적인 범행이었던가? 그렇다면 그 중에는 로봇을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도 있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나이가 다니엘을 로봇이라고 알아차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또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할 심산일까? 갑자기 다니엘을 가리키며 '로봇이다. 때려부숴라!' 하며 소동이라도 벌일 생각일까?) 그는 식당을 둘러보았다. 2천 명이 넘을 것 같았다. 만일에 여기서 폭동이 일어난다면 둘은 틀림없이 살해당하리라. (하여튼 한시 바삐 여기를 나가야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베일리는 흠칫했다. 필경 식당 밖에도 일당이 잠복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다니엘, 자넨 놈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할 수 있나?"
"예, 나는 절대로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좋아. 만약에 위해서 그 일당을 발견하면 알려 주게. 자, 그럼 뒤따라오게. 그리고 내가 하는 대로만 하게."
그는 일어서자 접시를 처리기에 밀어 넣었다.
"그들도 일어났어요."
다니엘이 낮게 속삭였다.
"한눈 팔지 말게."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줄에 섰다. 그리고 차차 출구 쪽으로 다가갔다. 출구에 나섰을 때 그는 다니엘을 보았다.
"알았나, 다니엘?"
"네."
두 사람은 성큼성큼 고속 주로 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따라오나?"
"예,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따돌릴 테니 두고 보게."
베일리는 고속 주로로 훌쩍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리 비키고 저리 비켜 고속 벨트에 다가갔다. 그래서 고속 벨트로 갔는가 하면 또 저속 벨트로 옮겼다, 그런가 하면 다가오는 지선으로 뛰어 넘는 것처럼 보이고는 반대쪽 벨트로 옮겨갔다. 지선 벨트가 휘익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고속 벨트로 옮겨와서 그는 다니엘에게 물었다.
"어때. 아직도 따라오나?"
"한 명만 따라옵니다.“
"곧 따돌릴 테니……."
그는 또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저속에서 고속으로, 고속에서 또 그 반대로 자유 자재로 옮겨다녔다. 다니엘도 찰싹 붙어 따라다니고 있다.
"어때?"
"아직 따라 오고 있어요."
"끈질긴 놈이군!"
그는 또다시 고속 벨트로 갔다. 줄줄이 서 있는 승객들이 불쾌한 표정으로 베일리 들을 흘겨보고 있었다. 베일리가 몸을 꼬아 반대쪽으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그에게 밀린 승객 한 사람이 홧김에 그를 떠밀었다. 베일리는 온 힘으로 몸을 바로 하려고 애썼지만 발이 엉클어져서 그만 주로 위에 넘어져 버렸다. (이크, 야단났다! ) 하며 베일리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넘어진 자기에게 딴 승객이 부딪혀 넘어지고 그 위에 또 딴 사람이 넘어져 금방 몇 십, 몇 백 명이 깔려죽거나 다치는 대 사고가 벌어지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굉장한 힘으로 몸을 일으켜 세워졌다. 다니엘이 그를 구해 줬던 것이다.
"다니엘, 고맙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말했다. 30초 후 그들은 감속 벨트에서 내려 정거장으로 나갔다. 이미 뒤쫓아오는 자들은 없었다. 그곳에는 튼튼하게 생긴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 앞에 경비원이 서 있었다. 베일리가 신분 증명서를 내밀고,
"공무요." 라고 말했다.
"예,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완전히 추적자들을 따돌려버린 것이었다. 그 곳은 원자력 발전소였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발전기의 소리, 이 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방호벽 안에 몇 천 대나 되는 발전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위험 신호인 빨간 선 가까이 가 있어서 베일리는 부지중에 큰 소리를 질렀다.
"여보게, 그 빨간 줄에 가까이 가지 말게. 방사능 방호복을 입지 않고 그 선 안으로 들어가면 오염 될 우려가 있다네."
그렇게 말해 놓고 생각하니 다니엘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 그렇군. 자네는 방사능하고 상관없겠군."
"아뇨, 상관 있습니다. 방사능의 감마선(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하나로 물질을 투과하는 힘이 무척 강함)은 저의 전자 두뇌를 망가뜨립니다. 말하자면 죽는 거죠."
"아아, 그렇군."
두 사람은 서둘러 발전소를 나왔다. 주위를 잘 살펴봤지만 미행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서둘러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곳은 더럽고 음침한 하급 노동자용 아파트였다. 조그만 방에 침대가 두 대,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을 뿐이고 입체 텔레비전에는 다이얼도 붙어 있지 않았다. 고정 방송 시간 밖에 비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방 한 구석에 조그만 오물 처리 파이프가 있을 뿐이었다. 다니엘은 곧바로 파이프 앞으로 걸어가 셔츠의 앞단추를 풀었다. 어디로 보나 인간의 가슴으로 보이는 탄탄한 가슴이 드러났다.
"무엇을 하지?"
베일리가 물었다.
"아까 먹은 걸 버리려고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음식이 썩어 버리니까요."
하며 다니엘은 가슴의 일부에 손가락을 대고 꾹 눌린다. 그러자 가슴이 두 개로 짝 갈라졌다. 다니엘은 그 사이로 손을 넣어 엷은 플라스틱 주머니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파이프 안에 버리려다 말고 베일리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이 음식은 아주 깨끗해요. 나는 침도 위액도 없으니까 측 소화되지 않았으니까 음식물이 그대로 있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베일리는 그만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다니엘은 안에 내용물을 버리고 인공 위장을 원상태로 가슴속에 집어넣고 셔츠를 입었다. 그 순간 도어의 시그널(신호하는 장치)이 반짝 켜졌다. 베일리는 재빨리 열선 총을 빼들었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이고 도어에 다가가 한 손으로 도어 한 쪽에 있는 투명 창(안에서만 밖을 보게 만든 투명한 유리창의 스위치를 넣었다. 거기에는 아들 벤트리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구나!) 베일리는 도어를 열고 놀라 서 있는 벤의 손목을 얼른 잡아 왈칵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왜, 왜 그래요? 아빠?"
벤은 울음 섞인 소리로 외쳤다. 베일리는 그 말은 못들은 척하고 투명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도 아무도 없었니? 벤."
벤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놀라움이 가시지 않아 눈이 동그란 채였다.
"없어요. 아빠."
"그럼 왜 여기로 왔니?"
"아빠가 괜찮은지 어떤지 보러 왔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여길 알았냐?"
"시경에서 물어서 왔어요."
"뭐라고! 시경에서 네게 이곳을 가르쳐 주던?"
베일리는 어이가 없었다. 벤은 더욱 더 놀란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그래요. 아빠, 가르쳐 주면 안 되나요?"
베일리는 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상냥하게 말했다.
"벤, 넌 곧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렇게 해서 엄마보고 아빠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라. 내일 집으로 연락하겠다고. 알아들었니?"
"벌써 돌아가야 해요? 에이 재미없어."
베일리는 벤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벤, 이건 중요한 심부름이란다. 아빠의 힘이 되어 다오.“
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아빠, 그럼 가겠어요."
베일리는 문을 닫고 벤이 돌아간 뒤에도 잠시 동안 물끄러미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범인이다
 
다음 날 베일리가 시경으로 들어가자 엔더비 국장에게 불려 갔다. 국장은 책상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한 장의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네는 어제 워싱턴의 제리겔 교수를 불렀었지?"
"예 , 그랬습니다."
"제리겔 교수는 로봇 공학자이지?"
"예."
"왜 불렀나?"
"물론 이 사건에 관해서 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어떤 일을?“
"로봇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어째서?"
베일리는 정색을 하고 국장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사건을 될 수 있는 한 세상에 알리기 않게 하기 위해서네."
"교수에게는 사건에 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건 좋지 않아."
"그것은 명령입니까? 전 이 사건의 담당자가 아닙니까?"
엔더비 국장은 베일리의 그 말에 그만 풀이 죽었다.
"아니, 그게 아닐세. 자네는 자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 다만…… 아니, 아무 일도 아니야. 돌아가도 괜찮네."
베일리는 불쾌한 마음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거기 다니엘이 자료실에서 돌아왔다.
"베일리, 어젯밤 우리들을 미행하던 사나이 중에 두 명을 알아냈습니다. 두 명 다 구둣방 사건 때도 군중 속에 있었던 자들입니다."
"어떤 놈들인가?"
"한 편은 프란시스 크로사아라는 이름으로 2년 전에 폭동을 주동한 죄로 체포된 일이 있습니다. 직업은 뉴욕 이스트 회사의 사원입니다. 인상은 여기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입체 사진입니다."
"또 한 명은?"
"가보트 보울이라는 사나이고 제과점 일군인데, 1년 전 로봇을 때려부수고 체포된 적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베일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 두 사람을 체포하겠습니까?"
"아니, 잠깐만. 그것만으론 체포할 수 없지. 별로 무슨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니까."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마침 제리겔 교수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니엘, 난 지금부터 제리겔 교수를 만나야 하네. 잠시 부를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주게나."
"기다리죠."
베일리는 다니엘을 그곳에 남겨 놓고 응접실로 갔다. 제리겔 교수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로봇 공학자였다. 그러나 외모는 별로 학자답지가 않고, 은행 중역 같은 온건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베일리 형사, 사실은…….”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교수님."
베일리는 가지고 온 도청 방지기로 응접실을 구석구석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도청 장치는 숨겨져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교수님."
"아주 경계가 심하군요."
"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서요. 오늘 지금부터 교수님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비밀에 속합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타인에게 말씀하시는 일이 없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제리겔 교수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가 싹 가셔 버렸다.
"에,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이라면 비행차로 올 것을 그랬군요. 어쩐지 난 비행차가 성미에 맞지 않아서……. 곧 기분이 나빠진답니다. 그래서 고속 주로도 왔습니다."
"허어, 그건 어째서요?"
"일종의 노이로제겠죠. 하여튼 하늘을 날아가고 있다는 생각만 해도 공연히 초조해지는 겁니다. 주위에 금속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그런 기분이랍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수님은 돔 도시 밖으로 나가시는 건 퍽 싫어하는 편이시군요."
"무엇 때문에 나가야 합니까?"
제리겔 교수의 얼굴에 겁이 난 표정이 떠올랐다.
"아닙니다. 교수님께 돔 밖으로 나가 주십사 하는 게 아니라 가끔 그럴 필요가 있으면 어쩔까 하고 물어 본 겁니다."
"대단히 불쾌하지요."
"가령 선생님께 한밤중에 이 돔을 나가서 야외를 2킬로미터쯤 걸어가셔야 한다면?"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소."
"그게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말입니까?"
"나 자신의 생명이 관한 것이거나 또는 나의 가족의 생명에 관한 일이라면 어쩌면 해 볼지도 모르겠군요."
제리겔 교수는 그 말을 하고 베일리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그런 걸 물어 보시나요?"
"사실은 아주 중대한 범죄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범죄에 관해서는 지금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 범인은 한밤중에 혼자서 야외를 걸어가서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게 어떤 인간인가를 알고 싶은 겁니다."
제리겔 교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로서는 그런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군요. 글쎄요. 몇 천만 명이란 인간 중에는 그런 어리석은 인간이 간혹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보통 인간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군요?"
"물론이지."
"그런데 가령 로봇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리겔 교수가 벌떡 일어섰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어째서……?"
"로봇이 살인을 하다니……. 그런 맹랑한 일은 있을
수 없소!"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뭐고가 없습니다."
"당신은 로봇 공학 제 1원칙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 알고 있지요. 로봇은 인간을 손상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위험이 있을 때 방관해서도 안 된다. 그렇죠. 그러나 교수님, 그 원칙 없이 로봇을 만들 수는 없는 겁니까?"
제리겔 교수는 난처하다는 듯이 머리를 저었다.
"베일리 형사, 당신이 조금이라도 로봇 공학을 알고 있다면 로봇의 전자 두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든 작업이 필요한지 알고 계실 테지요?"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형의 전자 두뇌를 설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잘 아실 겁니다. 아주 조그만 새로운 계획이라도 그것을 개발하는 데는 몇 천명이라는 기술자가 있는 큰 공장이 1년간이나 가동되어야만 합니다. 더욱이 로봇 공학의 세 가지 원칙은 로봇 전자 두뇌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대원칙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변경한다고 하면 그건 대단한 작업이 되게 됩니다. 몇 십 년 걸려서도 될지 말지 한 일이랍니다."
베일리는 알았다는 듯이 끄덕이고 나서 통신기의 버튼을 누르고 무어라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곧 도어가 열리고 다니엘이 들어왔다. 베일리는 다니엘을 파트너로서 제리겔 교수에게 소개를 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건 그렇고. 제리겔 교수님, 그럼 지금 말씀하신 것 같은 전자 두뇌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말하자면 제가 말씀드리는 뜻은 우리 인류는 로봇을 만들기 시작해서 벌써 천 년 이상이나 지났는데 그런 로봇을 만들려고 한 일은 한 번도 없는 겁니까?"
"없지요."
"왜, 그럴까요?"
제리겔 교수는 후우 하고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말이오, 베일리 형사, 우리 인류는 옛날부터 프랑켄슈타인 공포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프랑켄슈타인 공포증이란 또 무엇입니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것은 아주 옛날의 소설 주인공인 과학자의 이름이랍니다 그 과학자가 로봇을 만들었는데 이 로봇이 과학자에 반항해서 사람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자기를 만든 과학자마저 죽여 버렸다고 하는 소설이죠. 그래서 인류는 로봇이라는 걸 생각할 때는 언제나 이 소설을 생각하게 되는 거라오. 그렇기 때문에 옛날부터 로봇의 전자 두뇌에는 절대로 인간에게 반항한 수 없도록 원칙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지요."
베일리는 또 질문을 했다.
"그 원칙에 맞춰서 만든 로봇은 절대로 살인을 할 수 없습니까?"
"못 합니다. 단, 두 사람 이상의 인명을 구출할 때는 예외지요. 그러나 그런 경우일지라도 그 로봇의 전자 두뇌는 완전히 파괴됩니다."
제리겔 교수는 잠깐 망설였다.
"음……. 그렇지만 우주 국가에서 만일 그러한 로봇이 만들어졌다면, 혹은 그 이론이 완성되었다면 마땅히 내 귀에도 들어왔겠지요."
"우주 국가에서는 지구의 로봇보다도 더욱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교수께서는 그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로봇은 당신 같은 전문가가 보아도 알 수 없을까요?"
제리겔 교수는 싱긋 웃었다.
"그런 일은 없겠지요. 베일리 형사, 로봇이라는 것은 그 모습이며 형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거기까지 말하고 제리겔 교수는 깜짝 놀란 모양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잇던 다니엘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그 표정이 금방 창백하게 변했다.
"이런…… 이럴 수가…… 아니, 설마……?”
그는 한 손을 뻗쳐 다니엘의 몸을 약간 만졌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교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이건…… 자네는 로봇이었구먼."
"그것을 아시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셨군요."
"그, 그건, 즉…… 예상도 못했던 일이라서……. 그렇다면 이건 우주 국가에서 만든 로봇이로군요?"
"그렇지요."
"참으로 이건 훌륭하오! 아니 이런 기회는 모처럼 얻기 힘든 기회인데 정말 기쁜 일이오. 그를 분석해봐도 괜찮겠지요?"
"잠깐만, 교수님. 내 질문에 좀더 대답해 주십시오. 이 로봇처럼 처음부터 인간과 꼭 같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지구의 인류와 비슷한 채형을 한 딴 별의 생물) 로봇에게는 로봇 공학 제 1원칙은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제리겔 교수는 몹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오."
베일리는 갑자기 다니엘을 돌아보며 왼손을 내밀었다.
"자네의 열선 총을 이리 주게!"
하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오른 손은 벌써 자기의 열선 총을 뽑아들고 있었다.
다니엘은 침착하게 열선 총을 뽑아 손잡이 쪽을 베일리에게 건네 주었다.
"베일리, 여기 있습니다."
"로봇 공학 제 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되어 있지요. 그런데 제리겔 교수, 다니엘은 무장하지 않은 인간들에게 열선 총을 들이대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쏘겠다고 위협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나는 쏘지 않았습니다.“
하고 다니엘이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쏴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그 자체가 제 1원칙에 위반하는 행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교수님, 그때 그 군중이 만일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면 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요."
"흠…….”
제리겔 교수는 신음했다.
"분명히 그건 이상한 일이군요."
베일리는 지금 다니엘이 건네준 열선 총을 겨누고 안전 장치를 풀고 들이댔다.
"다니엘, 너를 살인범으로 체포한다."
 
비어 있는 열선총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파트너 베일리."
다니엘은 어디까지나 침착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증거는 충분하다. 너는 살인한 시간에 그 현장에 있었다. 너는 로봇 공학 제 1원칙을 위반하는 행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해치울 수 있었으며 또한 너는 흉기를 감출 수도 있다. 너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장소에 말이다."
"어디 말입니까?"
"내 인공 위장 속에 말이다. 그 주머니 속에 감추어 몸 안에 넣어 버리면 누가 안단 말이냐?"
베일리는 로봇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베일리가 제리겔 교수를 돌아보았다.
"교수님, 이 로봇을 전문가의 입장에서 분석해 주십시오. 실험에 필요하신 물건은 모두 이쪽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이 로봇을 전자 두뇌의 제 1원칙을 구비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한시 바삐 알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하기로 하지요. 그렇지만 실험실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을까요?"
"가령 내가 의사라면 환자의 혈액 속의 당분을 조사한다든가, 유전 인자의 검사를 한다든가 하는 경우라면 실험실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환자가 장님인지 아닌지를 조사하려면 환자의 눈앞에서 손만 움직여 봐도 알 수 있어요. 로봇 공학의 제 1원칙은 그만큼 기본적인 것이랍니다."
제리겔 교수는 얘기를 하면서 호주머니 속에서 계산 기 같은 것과 오페라 글라스(쌍안경의 한 가지. 두 개의 갈릴레이식 망원경을 가지런히 고정시킨 것으로서, 먼 거리를 바라보는 데는 적합하지 않으나 통이 작고 휴대하기에 편리하다)와 같은 조그만 기재와 스톱 워치 (경기나 학술 연구 등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초 이하까지 정밀하게 재기 위한 조그만 시계)를 꺼냈다.
"제 1원칙에 따라서 만들어졌느냐 아니냐는 이제부터 행하는 스물 네 가지의 질문에 이 로봇이 올바른 반응을 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리겔 교수는 다니엘을 향해 돌아앉았다. 베일리는 빈틈 없이 열선 총을 들이대고 있었다. 제리겔 교수가 눈에 오페라 글라스를 끼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내게 다섯 살 차이의 사촌이 둘이 있다. 나이가 아래인 쪽이 여자 애라면 나이가 많은 쪽은 여자 애냐, 남자 아이냐?"
"그 힌트만으론 알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곧 대답을 했다. 제리겔 교수는 흘낏 워치를 보고는 계속해서,
"자네의 왼손 셋째 번 손가락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만져 보게.”
다니엘은 교수의 말대로 했다.
그 후 질문과 테스트는 거침없이 계속 되더니 십 오분쯤으로 끝났다. 교수는 계산기로 무엇인가 계산을 하고 오페라 글라스를 벗어 호주머니 안에 넣어 버렸다.
"테스트는 끝났습니다.”
"그 결과는?“
"다니엘은 충분히 제 1원칙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소."
베일리는 저도 모르게 쉰 목소리로 외쳤다. 제리겔 교수는 화가 난 모양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신용하지 못하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어쩌면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로봇은 상대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두뇌는 어떠한 정밀한 과학적 분석을 해도 완전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로봇의 전자 두뇌는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조립할 수가 없었겠죠. 따라서 로봇의 전자두뇌는 어떻게 훌륭한 것일지라도 상대방을 속일 수 있는 능력만은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 로봇이 인간에게 열선 총을 겨눈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습니까? 나는 틀림없이 이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만일 다니엘이 제 1원칙을 구비하고 있다면 그의 전자 두뇌는 파괴되었어야 했겠죠. 적어도 조금은 고장이라도 나야겠죠. 그런데도 그는 아주 정상입니다. 이 일은 어떻게 생각하면 좋단 말이오?"
로봇 공학자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건 이상하군요."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다니엘이 말을 했다.
"뭐라고?"
"파트너 베일리, 내가 준 열선 총을 자세히 조사해 보십시오."
베일리는 겨누고 있던 열선 총에 눈길을 주었으나 별로 다른 데가 없어 보였다.
"에너지 챔버(총의 약실: 탄알을 넣는 곳)를 열고 조사해 보십시오."
베일리는 우선 자기의 열선 총을 뽑아서 옆에, 언제나 들고 쏠 수 있는 위치에 놓고 조심스럽게 로봇에게서 받은 열선 총의 에너지 챔버를 열어 보았다. 그것은 비어 있었다.
"그 열선 총은 처음부터 에너지를 담지 않은 겁니다. 거기다 그 곳엔 공이 치기 (방아쇠를 당기던 용수철이 늘어남으로 인하여 공이 즉 탄환의 뇌관이나 기폭관을 쳐 폭발하게 하는 송곳 모양의 장치)가 없습니다. 즉 쏘고 싶어도 쏠 수가 없는 것이랍니다."
"자네는…… 쏘지도 못할 총을 폭도들에게 겨누었나?"
다니엘은 싱긋 웃으며 말을 했다.
"그 경우 열선 총을 뽑지 않으면 폭도들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만약에 진짜 열선 총을 가지고 있었다면 뜻하지 않은 우연에서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손상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쏠 수 없는 열선 총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나에겐 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것이랍니다.“
베일리는 그만 고개를 힘없이 푹 숙였다. 그리고 천천히 제리겔 교수를 돌아보았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나의 생각은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제지벨이 지하 조직에
 
베일리는 그 날 하루 종일 멍하게 지내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주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그 때까지 이 사건은 우주인 측의 음모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다니엘을 두 번이나 범인 취급을 했다. 한 번은 변장한 우주인으로 생각하고 또 한 번은 살인 로봇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그것은 두 번 다 틀렸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범인은 누구일까? 또 어디 있는 것일까?
"베일리, 여보게, 베일리!"
누군가가 아까부터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뒤돌아보니 필립 노리스라는 형사였다.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이 2, 3일째 뜬눈으로 멍청한 게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아니, 괜찮네."
베일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자네는 엔더비 국장하고 아주 친했지?"
노리스 형사가 갑자기 목소리를 죽여 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는 눈을 들었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아니, 만약에 할 수 있다면 빈스를 위해 말이나 한마디 해 줬으면 해서 그러네. 저것 보게. 오늘도 여기와 있지 않나!"
보니까 사미라는 로봇 때문에 실직한 빈스 바렛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창백한 얼굴을 하고 기운이 없다. 빈스는 베일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베일리 형사님."
"여어, 빈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뭐, 별로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
빈스 청년은 얼굴을 숙이고 기운 없이 대답했다. (불쌍하게 도…….) 베일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매일 이스트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옛날 직장이 그리워서요……. 좀 돌아봐도 괜찮겠습니까?"
"아아, 괜찮네."
빈스 청년은 할 일 없이 걸어나갔다.
"이런 일은 어떻게 해서든 못하게 해야지. 놈들은 이번엔 첸 로우를 짜를 모양이던데."
하고 노리스 형사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뭐라고?“
"못 들었나?“
"아니, 듣지 못했네. 그렇지만 그는 C3급 형사가 아닌가? 벌써 10년째나 여기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네. 그렇지만 그 녀석들은 다리가 달린 기계 쪽이 인간보다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다음은 또 누구 차례지?“
"알 수 없지.“
"그 소문 들었나? 입체 텔레비전의 인기 댄서인 라이런은 사실은 로봇이라면서?"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겠어!"
"글쎄 그럴까? 어쨌든 소문으론 우주인들은 로봇을 사람과 똑같이 만들 수 있다고 그러더군."
노리스 형사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말을 했다.
"반 로봇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것이 맞을는지도 알 수 없어. 우주인들은 우리들 지구인을 증오하고 있는 걸세. 그래서 우리들을 파멸시키려고 하고 있다네."
베일리는 패스톨프 박사의 말을 생각했다. 약 4,5일 전이라면 그도 노리스 형사가 하는 말에 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순순히 그 말에 찬성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패스톨프 박사의 말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다. 노리스 형사는 이윽고 돌아갔다. 거기에 다니엘이 돌아왔다.
"할 얘기가 있습니다."
"뭔데?"
"극비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세워야지요?"
"그래. 그럼 국장실을 쓰기로 하지. 지금 분명히 없을 테니까."
두 사람은 엔더비 국장실로 갔다. 사미가 도어를 열어 주었다. 의자에 앉자마자 곧 다니엘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파트너 베일리, 당신은 어제부터 아주 사람이 달라져 버린 것 같군요."
베일리는 흠칫 놀라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텔레파시를 할 수 있나?"
다니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요."
"그러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나?"
다니엘은 그 맑은 눈으로 베일리의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하며 말했다.
"나는 본시 지구인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과학자 로봇입니다. 어젯밤부터 당신의 뇌 분석을 해 본 결과 당신은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려서 올바른 사고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뇌 분석을? 혼자서 할 수 있나?"
"예, 그렇습니다. 엔더비 국장의 뇌 분석을 한 것도 접니다."
베일리는 더욱 불쾌해졌다. 모르는 사이에 자기 서랍 속을 누군가가 휘저었다면 누구나 그런 감정이 되리라. 더욱이 휘저어버린 것은 책상 서랍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인 것이다!
"내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야. 그리고 지금 마음이 뒤숭숭해서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도 네가 말하는 데로다. 그래서 어쩐다는 거야?"
"당신은 아주 간단한, 기본적인 것을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지하 조직의 일당 말입니다. 다음은 당연히 그 일당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그리고…….”
로봇은 약간 망설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당신 부인 제지벨 말입니다."
"뭐라고?"
베일리는 화가 나서 다니엘을 쏘아보았다.
"나는 제지벨도 반대 운동가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수작 마라!"
"그러나 어째서 제지벨은 내가 로봇이라는 것을 그렇게 빨리 알고 있었습니까?"
"그건 곧 뉴욕에 그런 소문이…….”
"소문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것은 엔더비 국장에게 들어온 보고로도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보는 어디서 나왔냐면 그것은 제지벨이 지하 조직원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냐, 아니야. 절대로 제지벨이 그럴 리가…….”
"그렇지만 파트너 베일리, 당신은 나를 지금까지 두 번이나 살인범이라고 했습니다.“
베일리는 화가 치밀어 가슴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그 보복으로 제지벨을 들먹이고 있는 건가? 제지벨을 살인범이라고 할 텐가?"
"아니, 그렇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부인이 지하 조직의 일인이라고 말씀드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부인을 심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그 때 책상 위에 붙은 시그널에 불이 켜졌다.
"뭐야?"
마이크를 향해 묻자 사미의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베일리 형사님 부인께서 면회를 오셨습니다. 아주 흥분하고 계십니다."
베일리는 일순 다니엘하고 얼굴을 마주 보고 가만히 있었으나 잠깐 지나자 결심한 모양으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라고 말했다.
 
나타난 용의자
 
제지벨은 새파란 얼굴로 들어서자마자 비틀비틀 넘어질 것 같았다. 베일리는 당황해서 달려가 제지벨을 소파에 앉혔다.
"왜 그래, 제지벨?"
“아아,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잠도 잘 수 없고 음식도 통 먹을 수 없어요. 이 이상 가만히 있으면 난 죽을 것만 같아요. 당신께 말해 두고 싶은 게 있어요!"
"뭐야, 그게?"
"그건……."
하고 말을 꺼내고 제지벨은 그 때 비로소 다니엘이 있는 것을 알았다.
"안녕하세요. 제지벨."
다니엘이 인사를 했다.
"아…… 당신은, 저, 로봇이군요."
"네 , 그렇습니다."
"당신은 로봇이라고 불러도 불쾌하지 않아요?"
"물론이죠. 난 로봇인 걸요."
제지벨은 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깐 동안 머뭇머뭇하다가
"저, 부끄러워서. 뭐라고 해야할지……. 제가 반 로봇 운동의 지하 조직에 들어있다는 말을 지금까지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제지벨! 그런 말을 이런데서 얘기하면 어떻게 해!"
베일리가 황급히 말렸지만 제지벨은 듣지 않았다.
“아아뇨, 당신의 파트너이니까 알고 있는 편이 좋을 것이어요. 전 인재 이런 비밀을 혼자서 몰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괴로워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제지벨은 눈물을 흘리며,
"이 일이 알려져 형무소에 끌려간다고 해도 할 수 없어요. 이스트하고 물만 먹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해도 할 수 없어요. 무서워요! 두려워도 할 수가 없죠."
베일리는 결심하고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국장이 돌아올 때가 됐네. 빨리 패트롤카를 준비해 주게. 지하 차도에서 얘기하세."
제지벨이 놀란 얼굴을 지었다.
"지하 차도는 싫어요."
비명 같은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그 곳 밖에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어. 우리들이 있으니까 하나도 무서워할 것은 없어. 다니엘. 패트롤카는?"
"언제든지 탈 수 있습니다."
"그럼 가지."
세 사람은 함께 시경을 나았다. 패트롤카를 타고 모두 다 묵묵히 지하 차도까지 왔다. 지하 차도의 조금 작은 길로 가 보니 주위가 아주 조용했다. 베일리는 제지벨을 돌아다보았다.
"자, 똑똑히 말을 해 봐! 제지벨, 당신이 범죄를 저질렀나?“
“.........”
제지벨은 말을 안 했다.
"왜 대답을 못하지? 빨리 대답해 봐! 아니면 사람을 죽였단 말이요?"
제지벨은 늘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리고 화가 났는지 큰 소리로 외쳤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이어요?"
"죽였어, 안 죽였어!"
"물론 안 죽였어요."
"그럼,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이지? 남의 물건을 훔쳤나? 배급을 속였나? 사람을 다치게 했나? 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 말이오?"
제지벨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
"전 그런 일 하나도 안 했어요."
"그럼,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저, 딴 게 아니고…… 제가 반 로봇 운동의 조직에 들어가 있었어요. 그건 저의 옛날 친구 중에 반 로봇 주의자가 있었거든요. 그녀가 그랬어요. 우리들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모두 저 우주인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로봇 때문이라고. 그래서 언젠가 우주인을 내쫓아 버리고 로봇을 때려부수고…….”
제지벨은 말하다 말고 흘낏 다니엘을 보았지만 로봇은 전혀 표정이 없었다.
"전 그 말이 정말인 줄만 알았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비밀 집회가 있는데 한 번 나가 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거기서는 아무나 자유롭게 자기의 불만 불평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나가기만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고요. 그렇게 권하길래 거기에 제가 나가 보았죠."
베일리가 물었다.
"그 집회는 어디서 열렸지?"
"여기여요."
"여기라니?“
"여기란 말이어요. 바로 이 지하 차도였어요. 그래서 전 여기 오는 게 싫었던 거예요. 그렇지만 집회 때는 참 좋은 장소였어요. 조용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몇 사람이나 모였었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6,70명 가량은 됐어요. 조립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누군가의 연설을 듣는 것이었어요. 대개는 옛날엔 얼마나 멋진 생활을 했는가 라든가, 언젠가는 우주인과 로봇을 해치우자 라든가 그런 연설이었죠. 연설은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언제나 그렇고 그런 얘기뿐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비밀 회합에 출석하면 뭔가 잘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베일리는 점점 초조해져서 제지벨의 말을 막고 물었다.
"집회에서 들은 얘기들은 모두 그것 뿐이야? 할 수도 없는 음모 얘기뿐이었냐는 말이오?"
"그것뿐이었어요."
"그것뿐이었다면 당신은 걱정할 것 없어! 당신의 지하 조직이 실제로 로봇을 습격해서 때려 부셨던가 폭동을 선동했던가 물건을 파괴한 일은 없었소?"
"어림도 없어요. 전 폭력은 반대인 걸요. 무서워요. 그런 단체라면 제가 가입했을 까닭이 없잖아요?"
"그런데 왜 그렇게 무서워하지?"
"그건…… 이번 일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번 일이라니!"
"당신하고 다니엘군이죠. 그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왔어요. 우주인의 로봇이 뉴욕으로 들어왔다는 소문 말이어요. 그 사람들은 '행동을 개시하자' 라든가 '놈들을 본보기로 한 번 멋지게 때려부수고 로봇 반대 운동을 더욱 성황리에 이끌어 나가자' 라든가 하고 떠들어대고 있었어요. 다만 그 때는 모두들 당신과 다니엘의 얘기인 줄 몰랐단 말이어요. 그렇지만 저는 금방 알았어요."
베일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었군……. 더 빨리 알려 줬으면 좋았을걸."
"그렇지만 전 아주 무서웠어요. 만약에 그 사람들이 말하듯이 살인이나 폭동이 일어나면 당신은 살해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 전 또 그 폭동을 일으킨 지하 조직의 멤버로서 형무소로 끌려갈는지도 모른다하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베일리는 그제야 납득이 갔다.
"알았어. 제지벨, 당신 모임의 지도자가 누구지?"
제지벨은 얼마간 냉정을 되찾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조셉 크레밍이라는 사람이어요. 하지만 그 사람도 온건한 사람이어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고 오히려…….”
"오히려 뭐야?“
"때때로 본부에서 연설을 하러 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진짜 지도자라고 생각돼요."
"그 사나이의 이름은?"
제지벨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언제나 '본부 사람'이라고만 하고 이름은 부르지 않았으니까요."
"다니엘, 자네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의 인상을 말해보게. 어쩌면 제지벨이 알아낼지도 모르니까.“
다니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지벨은 한참 동안 듣고 있다가 이윽고 머리를 내저었다.
"안 되겠어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전……."
그 말을 하다말고 문득 제지벨은 다니엘을 향해 앉았다.
"다니엘, 그 속에 어쩌면 이스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프란시스 크로사아라는 사나이가 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 본부 사람은 언제나 이스트 냄새가 났어요. 항상 이스트를 취급하고 있으면 그 냄새가 옷이나 몸에 배는 게 아니겠어요?"
"그럴지도 모르죠. 허지만 분명히 그렇다고도 할 수 없죠."
베일리는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다니엘을 눈짓으로 저지하고 제지벨에게 말했다.
"자, 이젠 괜찮으니 집으로 가지. 사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어. 그 정도라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자, 내가 데려다 줄께."
"당신은 괜찮을까요?“
"난 괜찮아.”
제지벨은 아직 근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얼마간 마음이 안정된 듯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지벨을 집으로 보내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패트롤카를 타고 지하 차도로 돌아왔다.
제지벨하고 헤어진 후 베일리의 표정은 다시 어둡고 침통해졌다.
"파트너 베일리, 설마 그 본부 사람이라는 사나이가 프란시스 크로사아라는 걸 의심하시지는 않으시겠죠?“
"물론이지, 다만 아내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기 싫었네."
"그건 어째서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네."
"그렇지만 그건 옳은 태도가 아니죠."
“때로는 옳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는 거라네, 다니엘.“
다니엘은 지그시 베일리의 얼굴을 지켜봤다 (이 자식, 또 내 두뇌 분석을 하고 있군.) 베일리는 곧 그렇게 알아차렸지만 아무 말도 않고 다니엘을 계속 바라보았다.
“잘, 알았습니다. 파트너 베일리, 당신 말을 믿겠습니다.“
다니엘이 이윽고 말을 했다. 베일리는 패트롤카의 속력을 내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다니엘의 물음에 베일리는 대답했다.
"이스트 타운에. 이스트 회사로 가서 프란시스 크로사아를 체포해서 진상을 심문할 걸세."
"고백할까요?“
"나는 고백시킬 재주가 없지만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건 어떤 뜻일까요?"
"이제 곧 알게 될 걸세.“
패트롤카는 맹렬한 스피드로 지하 차도를 달려갔다.
 
이스트 농장
 
이스트 농장이 가까워짐에 따라 이스트균의 냄새가 조금씩 강하게 풍겨 왔다. 베일리는 돌연 아주 옛날의 소년 시절이 생각났다. 열 살 무렵이었다. 그 때 베일리는 항상 굶주리고 있었다. 집에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고 아주 엄한 배급 제도라서 언제나 조금 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베일리는 이스트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보리스 아저씨한테 놀러 가곤 하였던 것이다. 보리스 아저씨는 베일리를 귀여워해 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조금이기는 하지만 맛있는 이스트 과자를 두었다 주곤 했었다. 그때 받았던 과자며 초콜릿이며 고양이나 개 모양을 한 비스킷을 지금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어렸을 때였지만 베일리에게도 보리스 아저씨가 배급하는 식량을 갖다가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자를 받으면 구석으로 가서 몰래 서둘러 먹었던 것이었다. 먹으면서도 혹시 들키지나 않을까 해서 겁을 집어먹곤 했었다. 그래서 그 과자는 더욱 맛이 있었으며, 보리스 아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보리스 아저씨가 이스트 농장의 거대한 기계 사이에 끼어 죽었을 때는 진심으로 슬퍼서 며칠 동안이나 울었던 것이다. 어쩐지 그때까지 몰래 과자를 먹은 벌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저씨가 자기 대신에 죽은 것만 같아서 마음이 무척 괴로웠던 것이었다.
이스트 타운이란 것은 몇 만 평방 킬로미터라는 거대한 이스트 농장 지구였다. 그 곳에는 몇 층으로 된 이스트 농장이며, 공장, 창고, 운반 장치들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뉴욕 돔 입구의 5분지 1의 인구가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5분의 1의 인구가 여기에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이 이스트 농장이 파괴된다면 단번에 시민들은 굶어 죽고 만다. 만약 이스트의 원료가 없어지던가, 공장의 동력이 멎어버린다거나 해서 이스트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면 1년 동안에 온 지구 인구인 80억 중에서 60억이 굶어 죽을 것이다. 그래서 강철 도시는 하루도 빠짐없이 활동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패트롤카는 끝없이 계속되는 농장 사이의 좁은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서 이윽고 커다란 출입구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차를 내려 출입구 옆에 있는 수위실로 들어갔다.
"어느 분에게 면회하러 오셨습니까?"
"경찰에서 왔습니다. 프란시스 크로사아를 만나게 해 주시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잠시 기다리니까 이윽고 훌륭한 복장을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내가 인사과 주임 프레스 코트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형사님."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프란시스 크로사아에게 물어 볼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없습니까?"
"아, 있기는 있습니다만……."
"그러면 거기에 안내해 주셨으면……."
"좋습니다. 그러면 이 안내봉을 가지고 가십시오. 사용법은 아시겠지요?"
주임은 길이 15센티미터, 두께가 2센티미터 가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봉을 베일리에게 건네주었다. 안내봉 사용법은 간단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 안내봉이 따뜻해져서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그 온도가 올라간다. 반대로 목적지에서 멀어질수록 차가워지는 것이다. 베일리는 안내봉을 들고 넓은 이스트 농장 안을 자꾸만 걸어갔다. 안내봉 덕택에 몇 백이라는 구역 사이를 한 번도 어김없이 곧바로 목적지까지 갈 수가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밝은 조명이 달린 커다란 농장으로 들어섰을 때 안내봉이 뜨거워졌다. 베일리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한 노동자에게,
"프란시스 크로사아는?" 하고 물었다.
"저깁니다.“
하며 그 사나이는 항 한구석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한 떼의 사나이들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베일리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주임이 연락을 취해 두었던 모양이어서 그 중의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프란시스 크로사아요. 무슨 용건입니까?."
베일리는 흘낏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다니엘은 알았다는 신호로 끄덕여 보였다.
"얘기가 있는데 어디 그럴 만한 장소가 없을까7"
"곧 일이 끝날 텐데요, 내일이면 안 되겠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선 식사시간이 아주 까다롭습니다. 저녁 17시인데 그때를 놓치면 굶고 자야 한답니다."
"식사는 갖다 주지."
"그건 너무 황송하군요. 마치 C 급 형사라도 된 호사로군요."
크로사아는 아주 비꼬아 말했다.
"농담할 때가 아니야. 어디서 얘길 할까?"
"전자 계량실이라면 당분간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좋아. 그럼 다니엘, 식사를 여기로 가져오도록 하게. 그리고 부를 때까지 밖에 나가 있어 주게."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베일리는 크로사아와 마주 보고 앉았다.
"자네는 화학자인가?"
"아니. 나는 발효학자요."
하고 크로사아는 거만하게 말했다.
"화학자라는 것은 지금 세상에 아무런 가치도 없지만 발효학자는 틀리지요. 우리들은 온 지구의 80억 인구의 식량을 만들고 있지요. 말하자면 온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베일리는 과학자가 기술자들과 만나면 반드시 모두가 서로가 딴 분야 사람들을 헐뜯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가 서로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방을 경멸하고 조금도 협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크로사아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여서 계속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들은 여기서 매일 여러분의 식량이 되는 이스트균이 불순한 것이 되지 않도록 실험을 하거나 검사를 하고 있지요. 우리들 덕분에 여러분들은 모두 위생적이고 영양이 풍부한 이스트를 먹게 되는 겁니다."
베일리는 상대방의 얘기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 불쑥 물었다.
"자네는 어젯밤 18시에서 20시까지 사이에 어디 있었나."
크로사아는 약간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산책을 했죠. 나는 저녁 후 조금씩 산책하는 게 습관이니까요."
"친구를 찾아갔나, 아니면 술이라도 마시러 갔나?"
"아니, 그냥 목적 없이 거닐었죠."
"그렇다면 자네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사람이 아무도 없군."
"글쎄요.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군요. 그런데 어째서 그게 필요한지 그것도 알 수 없군요."
크로사아는 도전이라도 하듯이 말을 했다.
"그저께 밤은?"
"같습니다. 산책을 했지요."
"그렇다면 두 밤 다 알리바이가 없군."
"어째서 알리바이가 필요하죠? 만약에 내가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다면 가짜 알리바이라도 만들었겠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알리바이가 없는 거요."
베일리는 수첩을 조사했다.
"자네는 앞서 폭동을 선동한 죄로 한 번 체포된 일이 있군."
크로사아는 코웃음쳤다.
"아아, 그 일 말이오. 로봇 녀석이 나를 밀치길래 나도 같이 밀쳐 버렸을 뿐이오. 그게 무슨 폭동을 선동한 것이 됩니까?"
"재판에서 자네는 유치 판결이 내려 벌금을 물었어."
"그래서 벌금을 물었지요. 또 벌금을 내라는 겁니까?“
"그저께 밤 브롱크스 구둣방에서 폭동이 일어날 뻔했지, 자네는 그곳에도 있었어. 증인이 있어."
“호오, 그 증인이란 게 누구요?"
베일리는 말문이 막혔다. 다니엘을 증인으로 내놓을 수가 없다. 재판에서는 로봇은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작전을 바꿨다.
"그때는 여기 식사시간이었지. 그저께 밤 자네는 저녁을 먹었나? 거짓말을 해도 기록을 조사하면 곧 알게 돼."
크로사아는 잠깐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위가 좋지 않아서……. 이스트를 먹으면 때때로 그렇게 된답니다."
“어제 윌리엄스 버그에서도 폭동이 일어날 뻘 했지. 자넨 거기에도 있었다는 증인이 있네."
"글쎄, 그게 누굽니까?"
“그렇다면 자네는 양 쪽 다 거기에 있었다는 걸 부정하나?"
"물론이죠.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러시는 거죠? 그리고 날 봤다는 증인은 또 어떤 사람이오? 어째서 말을 못 하죠?"
크로사아는 베일리를 비웃으며 대들었다.
“무슨 일인지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지. 자네는 반 로봇 주의 지하 단체의 유력한 멤버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 쪽의 자유지만 증거가 없는 데야 어떻게 하겠소."
"이제 증거를 보여 주지."
베일리는 전자 계량실 도어를 열었다. 다니엘이 저녁 식사를 들고 있었다.
"그 쟁반을 크로사아 씨 앞에 갖다 놓게."
크로사아는 창가에 있는 의자에 자리 잡고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다니엘이 옆으로 가까이 가자 크로사아는 몸이 꼿꼿이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자, 크로사아, 나의 파트너인 다니엘 올리버 형사를 소개하오."
그러자 다니엘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프란시스 크로사아 씨."
크로사아는 그래도 대답하지 않고 다니엘이 내민 손을 내려다볼 뿐 자기는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언제까지나 손을 내민 채로 있었다. 크로사아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상기되었다.
베일리가 말했다.
"크로사아, 실례가 되지 않나? 아니면 경찰관 따위하곤 악수를 할 수 없단 말인가?"
크로사아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테이블 위에 놓인 식사 쪽으로 향했다.
"실례하고 식사를 들겠오. 배가 고파서 못 참겠으니…….”
베일리는 다니엘을 보며 말했다.
"다니엘! 크로사아 씨는 경찰관이 싫은 모양일세. 그렇지만 자넨 화를 내지 않을 테지?"
"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시로 어깨에 손을 얹어보게."
“예. 좋습니다.“
다니엘이 앞으로 다가서서 크로사아 씨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하자 크로사아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그 손을 뿌리치면서,
“이 차가운 로봇 놈아! 손대지 마!”
하고 외쳤다.
그 바람에 쟁반은 뒤집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흩어졌다. 크로사아는 훌쩍 뒤로 물러섰다. 다니엘은 조금도 서두는 빛 없이 천천히 크로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로 흘낏 도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베일리가 도어 앞에 막고 서 있었다. 크로사아는 온 얼굴이 공포의 표정으로 일그러지고 애써 다니엘을 피하려고 했다.
“이놈을, 이 로봇을 내 옆에 오지 못하게 해 주시오. 저 더러운 손으로 나를 만지지 못하게 해 줘요!”
“다니엘, 멈춰서라.”
베일리의 명령에 다니엘은 딱 멈춰 서서 크로사아를 지켜보았다. 크로사아는 몹시 허덕이며 주먹을 쥔 채 험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크로사아, 자네는 어째서 다니엘이 로봇이라고 생각했나?”
“그런 건 보기만 해도 아무라도 알 수 있소!”
베일리는 다니엘을 돌아보며,
"시경으로 연락해서 프란시스 크로사아를 과격한 로봇 운동가로서 체포한다고 연락해 주게.“
다니엘이 끄덕이고 나가자 베일리는 크로사아 쪽으로 돌아섰다.
 
 
인간은 인간이다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것은 특별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전문적인 로봇 공학자도 몰라보게 돼 있어. 그런데 어째서 네가 알고 있었는지 시경으로 와서 자세히 설명해 주게."
베일리의 이 말에,
"변호사를 불러 다오!"
하고 크로사아는 고함쳤다.
"물론, 불러 주지."
베일리는 크로사아를 지긋이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어째서 반 로봇 운동가가 됐는지 그 이유를 말해 보게."
크로사아는 들은 체도 않았다.
"이건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 묻고 있는 게 아니야.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물어 보고 싶은 걸세. 대체 자네들의 단체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거요. 이 강철 도시를 버리고 저 넓은 야외로 나가 밭을 갈며 살아가자고 하는 뜻이오.“
"말로 하긴 쉽지.“
베일리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실행하는 건 어려워. 도대체 어떻게 80먹이나 되는 지구의 인구를 먹여 살린단 말인가?“
"물론 하루나 이틀로 하라는 건 아니오. 1년이라도 좋고 2년이라도 좋소, 아니 백 년이 걸려도 좋아요.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그건 문제가 아니오. 그렇지만 지금 행동을 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그러기 위해서는 로봇을 쫓아내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요. 그리고 우주인의 간섭을 배격한다는 것이 둘째요. 그래서 우리들은 이 강철 도시를 버리고 더 넓은 저 야외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밭을 갈고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자는 것이오.“
크로사아는 점점 흥분해져서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은 힘찼다.
베일리가 부드럽게 되물었다.
"크로사아, 자네는 그 신선하다는 야외 공기를 마시고 햇빛에 접한 일이 있었나?"
크로사아는 눈에 보이게 당황한 빛을 보였다.
"아, 아니죠.“
"자네도 무서울 걸세. 저 밖에……”
라고 말하며 베일리는 저 멀리 돔의 지평선을 가리켰다.
“……. 나갈 용기는 없을 걸세.“
크로사아는 분연히 베일리를 되돌아보며 말했다.
"그렇다! 나도 쓸개 빠진 인간이다. 그렇지만 애들은……어린애들은 아직 쓸개가 빠지진 않았어. 어린애들은 모험심의 덩어리요, 저돌적이다. 그리고 그 아기들이 자꾸만 태어난다. 우리들의 힘으로 그 애들을 저 야외로 내보내 주자는 거다!"
베일리는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강한 충동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저 밖으로 내보내서 굶어 죽게 만들 심인가? 적은 식량을 서로 빼앗느라고 서로 죽이고 죽게 할 참인가? 이미 지구상에서는 몇 백 년 동안 없었던 전쟁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것을 또다시 부활시켜 몇 백 만이라는 인간을 죽일 셈인가? 그것으로 인구를 줄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크로사아가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베일리는 그것을 가로막고 계속 말했다.
"자네가 얘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실현 불가능한 일이야, 자네들은 공연히 불만을 터뜨리려고 하는데 지나지 않아.“
베일리는 온몸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왜 역사를 역행시키려고 하나? 어째서 앞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지? 지구의 인구를 억지로 줄이려고 할 필요가 없단 말이다. 다른 세계로 이주시키면 되는 거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아. 그렇지만 이 지구의 자연이 아니라 다른 행성의 자연으로 돌아가란 말이다.“
크로사아가 쉰 듯한 목소리로 웃어 젖혔다.
"무슨 말씀을, 그런 일을 우주인들이 하라고 내버려둘 것 같소? 그렇지 않아도 우주 국가에 이민을 금지하고 있는데…….”
"우주 국가로 이민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거다. 그리고 지금의 우주 국가하고는 다른 새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는 거야. 그것이 우리 지구인의 운명이란 말이다!"
베일리는 자기가 말하고 있는 중에 우주인 패스톨프 박사가 한 이야기와 똑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패스톨프 박사의 말을 그대로 흉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이 마치 몇 십 년 전부터 자기의 생각이었던 것처럼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크로사아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을 했다.
"어리석은 소릴. 지금 우리만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 아무것도 없는 딴 행성을 개척한단 말인가?"
"로봇의 힘을 빌리면 된다.“
"농담하지 말아!"
크로사아는 무서운 기세로 고함쳤다.
"절대로 싫다! 로봇의 힘을 빌리다니, 죽어도 싫다!"
"대체 어째서 싫지? 너는 그 원인을 분명히 생각해 본 일이 있나?“
베일리도 지지 않고 큰 소리로 마주 고함을 질렀다.
"나도 로봇은 싫다. 그렇지만 편견만은 갖고 싶지 않다. 잘 생각해 보면 절대로 로봇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거야. 나보고 말을 좀 해 보라면 로봇을 싫어하는 것은 로봇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야. 로봇이 인간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어리석은!"
크로사아가 외쳤다.
"아니, 틀림없다. 로봇 보다 못하다고 자기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로봇이 싫은 거다. 아니,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자네처럼 로봇을 증오하기조차 했다.“
베일리는 다니엘이 걸어나간 도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오늘까지 사흘 동안 저 로봇하고 밤낮을 함께 지냈다. 다니엘을 자세히 봐라. 그 놈은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세고,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했다. 신체도 우주인하고 똑같이 만들어졌다. 기억력도 지식도 컴퓨터와 같은가 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 잠을 잘 필요도 없거니와 먹을 필요도 없어. 아프다던가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범죄를 일으킬 만한 유혹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우리들보다 훨씬 훌륭해 보이지.“
베일리는 여기서 한층 힘을 주어 말을 계속했다.
"그렇지만 요컨대 그는 기계야. 그에게 무엇이든 명령 할 수 있다. 바로 저기에 있는 전자 계량기나 마찬가지지. 전자 계량기를 때렸다고 해서 전자 계량기가 우리를 때리지는 않지. 다니엘도 그 것과 마찬가지야.“
크로사아는 어느새 지그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요컨대 로봇은 기계에 불과하지. 인간이 아니란 말일세. 어떠한 과한 기술의 힘을 빌려도 인간과 같은 능력을 갖춘 로봇은 만들 수 없어.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동하거나, 해서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하는 능력은 결코 없지. 로봇에게는 본시 그런 것은 무리한 주문일세. 로봇의 전자 두뇌가 제 아무리 뛰어났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 마지막 소수점까지 전부 계산해 놓았기 때문이지. 그러나 인간의 머리는 틀려. 계산하는 속도가 늦을지는 몰라도, 또한 잘 잊어버릴지는 몰라도 유혹에 지거나 슬퍼도 하고 괴로워할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보다 높은 것을 지향하는 힘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로봇보다 못한 게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로봇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자네는 이러한 원리를 모르느냔 말이다!"
크로사아는 다만 묵묵히 베일리의 열정적인 말을 듣고 있었다.
 
로봇 살해 사건
 
마침 베일리가 잠깐 말을 끊었을 때 다니엘이 방으로 돌아왔다.
"파트너 베일리, 잠깐만 이리로 와 주십시오."
그는 도어 옆에 서서 베일리에게 손짓을 했다.
"뭐야?“
베일리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다니엘이 그의 귀에 입을 갖다 데고 속삭였다.
"시경에서는 지금 큰 소동이 일어났어요. 또 살인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뭐라고?“
베일리가 눈을 크게 뜨고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누가 죽었나?“
"사미입니다.“
"사미라고?“
베일리는 다니엘을 쏘아 봤다.
"살인 사건이라고 했지않나?“
"정정하겠습니다. 로봇 사미의 전자 두뇌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엔더비 국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습니다. 하여튼 시경 안에서 국장의 로봇이 누군가에게 파괴 됐으니까 말이죠. 국장은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잡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곧 돌아오라는 전갈이었습니다.“
베일리는 크로사아에게 말했다.
"크로사아, 함께 가세."
크로사아는 억지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세 사람은 함께 전자 계량실을 나와 이스트 농장을 지나 출입구로 향했다. 도중에서 갑자기 크로사아가 멈춰 섰다고 생각하자 말릴 새도 없이 갑자기 다니엘 앞으로 다가서서 로봇의 얼굴을 세게 갈겼다.
"무슨 짓을 해!"
베일리가 달려들어 크로사아를 뜯어 말렸다. 크로사아는 이제는 저항을 하지 않았다.
"한 번 해 본 거죠. 이제야 속이 후련하다.“
크로사아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했다. 다니엘은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크로사아를 마주 보고 있었다. 맞은 뺨은 빨개지지도 않고 또 맞은 흔적도 없었다.
"그런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요. 크로사아, 내가 머리를 뒤로 젖히지 않았더라면 당신 손이 상했을 테니까요.“
크로사아는 다만 빙글빙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입구에서 세 사람은 패트롤카에 올라탔다.
베일리가 운전을 하고 다니엘과 크로사아는 한구석에 앉았다. 다니엘이 바로 옆에 앉아 크로사아는 또다시 부자연스럽게 긴장된 표정으로 될 수 있는 한 다니엘에게서 떨어져 앉으려고 애썼다.
"당신은 자기의 직업을 로봇에게 빼앗길까봐 겁이 나는 거죠. 크로사아?"
다니엘이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내가 하는 일뿐인가? 어린애가 할 수 있는 일마저 모조리 빼앗겨 버릴 거야. 머지 않아 몽땅 로봇에게 일을 빼앗기고 실업자가 되어 버릴 거야.“
크로사아는 증오의 눈초리로 다니엘을 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다른 일? 이스트 농장의 운반책 말인가? 그것도 직업이라고? 그게 무슨 일이냐!"
"아뇨. 그런 일이 아니라 예를 들면 당신의 어린애들이 우주 이민 교육을 받으면…….”
"농담하지 마라! 하지도 못할 것을 잘도 뻔뻔스럽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주 이민 훈련 학교를 나온 사람은 일정한 계급과 수입, 그리고 장래는 그 능력에 따른 승진이 보장됩니다. 자식들의 장래가 걱정된다면 이야말로 가장 좋은 직업이 아니겠습니까?"
"네 이놈, 로봇인 주제에 인간에게 설교를 할 생각이냐?“
크로사아는 이제 당장에라도 로봇에게 달려들 듯이 보였다. 베일리가 앞좌석에서 말을 했다.
"다니엘, 만일에 크로사아가 손찌검을 하거든 붙잡아서 팔 하나쯤 부러뜨려도 괜찮다.“
"할 테면 해 봐! 로봇 공학 제 1원칙에 로봇은 인간을 손상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
"타인이나 자기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선 팔 하나나 두 개쯤 부러뜨려도 괜찮아."
크로사아는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윽고 패트롤카는 시경 앞에 닿았다. 베일리는 크로사아를 구류계 경찰관에게 인도하고 다니엘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는 편이 빨랐지만 베일리는 잠깐 동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크로사아의 대질 심문은 내일이나 되겠군요."
라고 다니엘이 말했다.
"응, 로봇 사미 사건을 먼저 처리해야 될 테니까. 그렇지만……?“
그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이 사건도 전연 별도의 사건은 아니지. 반드시 관계가 있을 걸세.“
"크로사아의 두뇌 분석 결과는…….”
베일리는 다니엘의 입을 바라다보았다.
"결과는?“
"이상한 변화를 보였습니다. 맨 처음하고 당신네들이 전자 계량실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부터 말입니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음......”
베일리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아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거기서 씨 에프이 문화에 관해서 패스톨프 박사에게 들은 얘기를 말해 주긴 했지만…….”
"그렇다면?“
"말하자면, 로봇과 협력해서 지구의 인간을 딴 행성으로 이주시킨다는 얘기 말일세.“
"아, 그랬었군요……. 그건 그렇고 로봇에 관해서는 어떤 얘기를 하셨습니까?“
베일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알고 싶다면 얘기해 주지. 나는 로봇은 기계에 지나지 않으니까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얘기했네.“
"아마 이렇게도 말씀하셨겠죠. 로봇은 기계이기 때문에 때려도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보복도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건…… 그랬지."
베일리는 다니엘이 알아맞히는 바람에 약간 쑥스러워졌다.
"그럼, 분석의 결과하고 일치합니다. 크로사아가 내 얼굴을 때린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실지로 실험을 해서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털어 버리려고 한 겁니다. 이렇게 되면 모두가 명백히 들어맞습니다.“
다니엘은 마지막 한 마디를 혼잣말 같은 말투로 말했다. 베일리는 그 말뜻을 몰라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그때 이미 에스컬레이터는 목적한 곳에 닿아 있었다. 국장실에 들어가니, 엔더비 국장이 책상 뒤쪽에 대단히 좋지 않은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불안할 때 하는 버릇대로 안경을 벗어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베일리를 보자마자 그는 고함 지르듯이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어디 있었나? 베일리 형사!"
베일리는 대답하려다 국장 옆에 제리겔 교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리겔 교수, 아직 뉴욕에 계셨습니까?"
"아아, 베일리 형사, 또 만나 뵙게 됐군요.“
엔더비 국장은 또 초조한 듯 베일리에게 물었다.
"여태껏 어디 갔었냐고 묻고 있쟎나? 베일리?“
그는 안경알을 번득거리며 말했다.
"온 시경의 직원 전부가 심문을 받았었데. 나까지도 심문을 받지 않으면 안됐으니까. 아직 받지 않은 건 자네하고 그 다니엘 뿐이야."
"사미가 망가진 게 뭐 그리 큰 문제라고 떠들어댄단 말이오? 국장님?“
"당연하지. 시경 안에서 공용의 로봇이 파괴됐다는 건 실로 불명예스러운 노릇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릴세. 나는 이 범인을 그냥 두진 않을 테니까!"
엔더비 국장은 그렇게 말하며 흘낏 베일리를 보았다.
"모두가 조사를 받았는데 자네가 없어서 다들 이상한 얼굴을 하더군, 지금까지 어디 갔었나 말일세?"
"이스트 타운에요. 그건 다니엘에게 물어 봐도 알텐데요.“
베일리는 화가 치미는 것을 꾹 누르고 그 말만 하고는 이번에는 국장에게 대들었다.
"대체 사미는 어떻게 해서 파괴됐단 말이오? 어째서 사고가 아니라 일부러 파괴 됐는지 알게 됐단 말입니까?“
"그건 내가 얘기해 드리지요.“
제리겔 교수가 옆에서 말하고 나섰다.
"나는 뭐 그리 서둘러서 워싱턴으로 돌아갈 일도 없고 해서 뉴욕에서 한가히 보내기로 했죠. 그리고 당신의…… 그 로봇을 분석해 볼 수 있도록 허락도 받을 겸해서요'"
그는 다니엘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어떻습니까?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아니, 안 됩니다.“
"아니, 지금 당장이 아니라 나중이라도 좋습니다.“
베일리는 아무런 대답도 않았다. 그리나 제리겔 교수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만나려고 연락을 했더니, 당신은 계시지 않고 당신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도 없었오. 그래서 엔더비 국장에게 부탁을 하니까 시경으로 와서 기다리면 좋을 거라고 그러시더군요."
국장이 찌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문제일지도 몰라서 그랬지. 자네가 무척 교수를 만나 보고 싶어했으니까.“
제리겔 교수가 말을 계속했다.
"시경에 도착하니까 안내 재원이 안내봉을 주더군요. 그런데 그 안내봉이 고장이 생겼는지, 아니면 내가 정신을 딴 데 두고 잘못 알았든지 그만 방향을 틀려서 미아가 되어 버렸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저 작은 방에 와 있었지요.“
"사진 용품실 말일세."
하고 국장이 설명을 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방에 들어간 순간 그 로봇이 방바닥에 엎드려져 있는 걸 발견했지요. 잠깐 조사해 보기만 해도 이미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것이 분명하더군요. 즉 죽어 있었오. 아니, 살해되었소!"
"파괴된 원인은 무엇이었소?"
베일리가 날카롭게 반문했다.
"로봇의 오른손에 길이가 약 5, 6센티미터, 폭이 2센티미터 가량의 반짝반짝 빛나는 장원형의 물건을 갖고 있었오. 그리고 그 끝이 로봇의 머리에 닿아 있었오. 그건 알파선 분사기였소."
"알파선 분사기?“
베일리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것은 물리학의 실험 기구로서 여러 가지 물질에 투사시켜 그 변화를 테스트하는 극히 드문 기구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거의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으나, 로봇의 전자 두뇌에게는 가장 위험한 도구요. 알파선의 에너지가 전자 두뇌의 회로를 엉망으로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오. 그 로봇은 자기가 자기의 머리에 알파선 발사기를 대고 스위치를 눌렀소. 그래서 당장에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지요. 말하자면 인간으로 치면 폭사했다는 것이죠."
국장이 옆에서 말했다.
"그렇지만 로봇이 자살할 까닭도 없고, 그 사진 용품실에는 알파선 분사기가 없었으니까, 로봇 사미가 자기 자신이 어디서 갖고 왔을 리도 만무하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사미에게 들려주고 스위치를 누르라고 시켰던 걸세. 로봇은 사람의 말에는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스위치를 누르고 죽었어. 즉 사미는 누구에겐가 파괴된 거야."
"그건 틀림 없습니까?“
"틀림없어. 사미가 넘어진 방향에 있던 사진 필름이 모두 감광되었는 걸."
엔더비 국장은 제리겔 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참으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 사건이 끝날 때까지 뉴욕에 머물러 계셔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은 호위하는 사람을 딸려 드리지요.“
"그럴 필요까지야…….”
제리겔 교수는 충격을 받은 모양으로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있지요. 이 범인은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죠.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어쩌면 당신도 노릴지 모르니까요.“
엔더비 국장은 경찰관을 한 사람 불러 호텔까지 제리겔 교수를 전송하도록 했다.
 
동기는 어디에
 
제리겔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국장은 긴 한숨을 쉬고 베일리를 보았다.
"범인은 틀림없이 우리들 중에 있어. 베일리, 외부의 인간은 이 시경 안까지 들어와서 사미를 습격할 수가 없지. 그리고 만약에 외부 사람이라면 뒤에서 습격했을 게 아닌가?"
"그렇군요.“
베일리가 끄덕였다.
"또 하나 흉기인 알파선 분사기는 그렇게 쉽게 손에 넣을 물건이 아니란 말일세. 그렇다면 범인은 그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되네.”
"그렇지만 대체 이 사건의 동기는 뭐요? 어째서 범인은 사미를 살해했습니까?”
그때까지 잠자코만 있던 다니엘이 돌연 엔더비 국장을 향하여 물었다. 국장은 잠시 망설였다가 대답했다.
"경관도 같은 인간이니까 로봇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게 아닌가?"
그러면서 흘기는 눈초리로 베일리를 쏘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베일리, 자네는 사미를 무척 싫어했지 "
"그것만으로 로봇을 살해한 동기는 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물론이지. 하지만 베일리, 자네가 마지막으로 사미를 만났던 게 언제였나?"
베일리는 국장의 얼굴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어째서요?“
"별로 특별한 이유는 없네. 모두 같은 질문을 받았다네.”
"오늘 점심때쯤 나하고 다니엘이 당신 방을 썼소. 그 때 사미가 문을 열어 주었오. 그 때 만난 것이 마지막일 거요.“
"내 방을 썼다고? 그건 또 왜?”
“사건에 관해서 아주 극비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오. 마침 당신도 안 계시고, 또 거기는 완전 방음 장치가 되어 있어서 도청을 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아주 편리했습니다.“
"아, 그랬었군…….”
엔더비 극장이 잠깐 망설였으나 이제는 그 이상 추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 사미를 본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나?"
"그렇소. 아니, 그렇지만 한 시간쯤 지나서 그가 실내 전화로 연락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들었군요."
"분명히 사미의 목소리였나?"
"예, 틀림없어요.“
"틀림없습니다.“
다니엘도 옆에서 대답했다.
"시간은 언제쯤이었나?“
"15시 30분 경이었지요.“
"흠…… 그럼 빈스 바렛의 용의는…….”
엔더비 국장은 입술을 질근질근 씹으며 혼잣말처럼 말을 한다. 베일리가 이 말을 듣고 극장을 바라보았다.
"빈스가 어떻게 했습니까?"
"자네는 빈스 바렛이 오늘 여기 온 걸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장님, 빈스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자는 훌륭한 동기가 있지. 그의 직장을 빼앗았고 그를 실직시킨 것이 사미였으니까. 그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심정이었을지 나는 잘 알 수 있어. 필경 어떻게 해서라도 복수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걸세. 더욱이 오늘 빈스는 여기에 왔었어. 우연히 그를 만나 전후에 분별 없이 흥분해 버려서 이전부터 알고 있던 알파선 분사기를 끌어내 사미의 뒤를 밟아 죽여버렸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일세.“
"그를 이미 체포했습니까? 아니면 행방을 알 수 없나요?"
"체포하진 않았네. 행방을 찾고 있었는데 자네 말을 들으니 그의 혐의도 풀렸으니까 이젠 그만 두라고 해야겠네.“
"왜요?“
"빈스 바렛이 시경을 나간 게 15시었으니까. 그리고 자네가 사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15시 30분 경이라고 하니 말하자면 빈스가 여기를 나갈 때 사미는 아직 살아 있었다는 것이 되지."
"아, 잘 되었군요.“
베일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베일리, 자네가 15시 30분에 사미하고 얘기했을 때 사미가 뭐라고 하던가?“
베일리는 흠칫 놀랐다. 엔더비 국장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돌연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잠깐 생각하고 나서 주의 깊게 입을 열었다.
"기억에 없소.“
"어째서?"
"아마 대수롭지 않은 얘기라서 그랬던가 보오. 그리고 우리들은 곧 여길 나가서 이스트 타운에 갔기 때문에 잊어버렸소. 그렇소. 국장님, 우리들은 이스트 타운에서…….”
"잠깐만 베일리, 오늘 자네 부인이 여기 왔었지?"
“…………”
"조사해 두어서 오늘 시경에 출입한 사람은 전원 기록했네. 증인들도 많이 있네."
"알겠습니다. 제지벨이 왔었지요."
"제지벨은 무슨 용건으로 왔었나?"
"개인적인 용건으로요."
"어떤?"
"아주 하찮은 일입니다. 그것보다도 국장님, 알파선 분사기는 어디서 끄집어 낸 거요? 그걸 조사했나요?"
"그건 했지.“
엔더비 국장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어딥니까?“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야."
베일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집어냈는지 그 수법 같은 건 알았습니까?“
"아니 알 수 없네. 어느 틈엔가 없어졌단 말일세."
"그건 이상하군요. 그런 특수한 실험 도구의 관리는 굉장히 엄중한데요. 누군가 책임자가 있을 게 아니요. 그 사람을 엄하게 심문하면…….”
"베일리씨, 그건 다른 사람이 하고 있어. 자네 담당은 우주인 살해 사건이야. 그러니 로봇 살인 사건에 간섭할 필요는 없네. 자네는 자네 일만 열심히 하면 되네. 그럼 이걸로 심문은 끝내세."
엔더비 국장은 책망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그리고,
"하여튼 이 사건은 동기만 알면 곧 해결되는데…….”
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베일리는 화가 난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그 국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때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찰카닥' 하고 소리를 내며 결합되는 것을 느꼈다. (그랬었군, 국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가? 제지벨, 윌리엄스 바그 원자력 발전소, 동기, 그리고 알파선 분사기. 모조리 사미하고 결부시키는 일 뿐 아닌가! )
"베일리,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돌아가 일을 하게. 나는 바빠."
엔더비 국장이 쫓아내듯 말했다. 베일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다니엘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누 명
 
베일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시경 안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저녁을 들었다. 먹으면서도 그는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 통 알 수 없었다. 다 먹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접시 위에 낙서하듯이 접시를 휘젓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뭐라고? 농담 마라!"
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좀 떨어진 테이블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다니엘을 재빨리 돌아보고,
"다니엘!"
하고 불렀다.
다니엘은 곧 앞의 의자로 다가와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파트너 베일리.“
베일리는 다니엘을 향해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을 들여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내게 협력해 주겠나?"
"어떤 협력 말입니까?“
"머지 않아 나는 국장에게 또 질문을 받을 걸세. 아마 제지벨이 지하 조직에 들어 있는 일을 물어 볼 테지. 그 때 나는 부정할 테니 자네는 그 때 잠자코 있어주기만 하면 되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진실이 은폐되는 걸요.“
"그건 잘 알고 있어. 어떤 이유로 지금은 진실을 좀 숨겨 두고 싶어서 그러네. 그 이유는 지금 얘기하겠지만 그전에 자네가 협력해 줄는지 어떨지를 먼저 알고 싶어서 그러네."
다니엘은 약 2분 동안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베일리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알았습니다. 협력하지요. 그렇지만 만약에 국장이 내게 직접 물어 보면 거짓 대답을 한 수 없다는 걸 아시죠? 내 전자 두뇌는 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답니다.“
"물론이지. 그 때는 할 수 없네. 다만 이쪽에서 미리 정보를 제공하지만 않아 줬으면 해서 그러는 걸세. 그렇게는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죠. 다만 당신의 이유가 옳은 거라면, 혹 내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이 다치는 일이 없다면 말입니다.“
베일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말했다.
"자네가 말을 하면 나하고 제지벨이 상하네. 즉 사미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된단 말일세."
“그건 안 될 말이오. 파트너 베일리, 그건 당신이 사미를 죽이지 않았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대요."
"자내는 로봇일세. 로봇은 법적으로 증인이 될 수 없네. 그런데 내 행동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건 자네 하나 뿐이거든.“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리는 말을 계속했다.
"국장은 아까 동기 얘기만 자꾸 했는데, 빈스 바렛은 사미를 죽일 만한 동기를 충분히 갖고 있었지만 그는 알리바이가 성립되었어. 그런데 또 한 사람 빈스 못지 않게 사미를 죽일 만한 훌륭한 동기를 가진 자가 있어."
"그건 누굽니까?“
"날세, 나야. 이 베일리란 말일세.“
다니엘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얘기를 들어보게. 오늘 제지벨이 나를 만나러 왔을 때 사미가 안내를 했네. 그때 제지벨은 몹시 흥분하고 있었네. 그것을 사미는 알고 있어. 만일 엔더비 극장이 그 일에 흥미를 갖고 조사해 보기만 하면 제지벨이 지하 조직의 멤버라는 건 금방 알게 되네. 형사의 아내가 법률에 반하는 단체의 멤버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건 큰 문제가 되네. 필경 파면 될 테지. 즉 내가 사미와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 그를 없애버렸단 이런 얘기가 되지.“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 아닙니까? 생각하는 게 너무 비약적이군요.“
"아니, 그게 아니야. 이건 내게 로봇 살인 사건의 범인의 누명을 씌우기 위해서 신중하게 계획된 음모란 말일세, "
베일리는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지금 추리에 들어맞거든. 로봇 살해 사건에 어째서 알파선 분사기를 썼느냐? 이건 꽤 위험한 방법이다. 첫째로 손에 넣기 어렵고 혹시 손에 넣었다고 쳐도 출처를 곧 알 수 있네. 그렇기 때문에 범인은 일부러 이 알파선 분사기를 사용한 걸세.“
"그건 또 어떤 이유에서요?"
"다니엘, 그 알파선 분사기는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에서 훔쳐냈단 말일세. 나하고 자네가 여기 반 로봇 운동가들에게 쫓겨서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갔지. 이건 숨기려고 해도 기록에 남아 있으니 금방 알 수 있어. 즉 내게는 알파선 분사기를 훔쳐 낼 기회가 있었다. 이런 얘기가 되네. 알아듣겠나? 다니엘.“
다니엘은 냉정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로봇이기 때문에 당신이 알파선 분사기를 훔치지 않았다고 증언해도 아무 소용이 없죠.“
“더욱이 사미가 살해된 것은 나하고 자네가 시경을 떠난 바로 직후야. 즉 내가 살아 있는 사미를 본 마지막 인간이다……. 이렇게 되는 거지.“
"국장은 당신의 친구니까 당신이 하는 말을 신용하겠지요?“
"그러나 국장도 자기의 지위가 중요하네. 만일에 이 사건이 흐지부지되면 시장한테서 공격을 받을 게 틀림없네. 그리고 국장은 벌써 나를 의심하고 있어. 아니, 날 사미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믿고 있는 걸.“
베일리는 번득번득 빛나는 눈으로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다니엘이 물었다.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어. 한시 바삐 서튼 박사를 죽인 장본인을 찾아내는 일이네."
"서튼 박사를 살해한 범인하고 사미를 죽인 범인이 같은 사람이란 말입니까?"
베일리는 강하게 끄덕였다.
"내 말대로다. 어째서 내가 사미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는가? 그것은 물론 나를 경찰에서 쫓아내기 위해서지. 그럼 왜? 나를 경찰에서 추방하려고 하느냐? 그건 서튼 박사 살인 사건 수사에서 내가 손을 떼게 하기 위해서야. 범인은 나를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필경 우리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서튼 박사 살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고 있었던 게야.“
베일리가 입술에 침을 발랐다.
"범인은 역시 틀림없이 반 로봇 주의의 지하 단체의 멤버임이 분명해, 우리가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온 걸 알고 금방 그것을 내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서 이용한 것은 우리를 뒤쫓아온 그들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베일리는 다니엘의 아주 침착한 모습을 묘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니엘은 로봇이다. 그러니까 아무 감정도 없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베일리는 온 세상의 어느 인간보다도 강한 우정과 신뢰를 느끼는 것이다. 다니엘은 힘세고 충실하고 자기 자신의 일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친구였다. 이 이상 믿음직한 친구가 또 어디 있으랴 하고 생각 될 만큼 훌륭한 친구이다. 그리고 지금 베일리는 다니엘의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부탁이다. 다니엘, 내게 힘을 빌려주게. 그래서 이 사진을 해결하세.“
그러나 어째서인지 다니엘은 분명히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베일리. 그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협력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다니엘은 아주 깨끗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주시의 결정
 
"어째서, 왜 안 되나? 다니엘."
베일리는 긴장해서 질문했다.
"나는 패스톨프 박사하고 연락을 취했는데…….”
“뭐라고?”
베일리는 깜짝 놀랐다.
"언제?“
'당신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입니다.“
"어떻게?“
"나는 필요하기만 하면 언제나 우주시하고 연락할 수 있는 통신기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패스톨프 박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 결과 우주시로서는 오늘 서튼 박사 살해 사건 수사를 중지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그리고 우주시를 폐지하고 지구에서 영원히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처럼 중대한 일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처럼 아주 조용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힘을 빌려 줄 수 없는 겁니다. 오늘로써 나는 우주시로 들어갑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씌워진 사미 살해 사건의 누명을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베일리는 다니엘이 하는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사실 같지가 않았다.
(우주인이 우주시를 버리고 지구를 떠난다……?) 만약에 4, 5일 전에 그 말을 들었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그의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뉴스였을 것이다. 지구인은 오랜 동안의 우주인의 탄압에서 해방돼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이젠 우주인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싫은 로봇을 억지로 쓰라고 강요당할 일도 없게 되었고, 일일이 우주인의 의견을 물어 보지 않아도 되었다.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뻐했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베일리는 전혀 그런 마음이 일어나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우주인이 떠나버리면 지구 인류의 앞날이 정말 암담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 하나의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더욱이…… 만일 지금 우주인이 떠나버린다 하면 가장 곤란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서튼 박사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기는커녕 그는 사미 살해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경찰에서도 추방된다. 아니, 어쩌면 강철 도시의 지하 맨 밑바닥에 있는 형무소에 한 평생 잡혀 있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제지벨과 베일리는 비참하게 되겠지. 베일리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21 시 55 분이었다. (아아, 앞으로 두 시간 5분만 지나면 오늘도 끝난다. 아아, 몹시 피로하다. 이것저것 다 귀찮고 다만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다니엘에게 물어 보았다.
"헌데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우주인들은 그렇게 결정했지?“
다니엘이 눈썹을 치떴다.
"그래도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정말 모르겠네.“
"우주인들이 우주시를 만든 최초의 목적은 지구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발전을 하라는 뜻으로, 즉 다시 말해 우주로 진출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건 이미 들은 얘기고, 그래서?"
“그 이야기는 잘 아시죠? 그러나 중요한 얘기이기 때문에 또다시 말씀드린 겁니다. 또한 서튼 박사 살해범을 발견하려고 한 것도 서튼 박사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구인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고 지구인이 자멸하는 것을 기다리자는 다른 우주 국가의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말도 패스톨프 박사에게 들었어."
베일리는 다니엘에게 다가가서 격렬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자네들 우주인은 그 우주시를 버리고, 즉 지구를 버리고 왜 고향인 별나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건가? 서튼 박사 살해범을 잡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야. 문제의 실마리는 모두 잡고 있어. 이제 한 가지 단서만 잡으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거야. 단 하나면 되는 거다.“
베일리는 억울하고 안타까워 목이 다 쉬었다. 다니엘의 표정 없는 그 차가운 눈초리가 안타까워하는 베일리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째서 우주인은 서튼 박사 사건의 조사를 중지하기로 했나?“
"그것은 물론 우리들의 계획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구인이 우주로 나가서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리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호오 그건 어째서 또 그렇게 갑자기 낙관적으로 변하게 되었지? 여기 우주인들은 항상 그렇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기분파들인가?"
"아닙니다.“
다니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오랫동안 우주인들은 지구의 경제적인 구조를 바꾸어 지구인의 사고 방식을 개량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주인이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지구에서는 엉뚱한 로봇 운동이 번성해져서 우주인의 최초의 목적이 도저히 성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베일리는 초조하고 신경질이 났으나 참고 다니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니엘의 말은 계속됐다.
"계획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이 바로 서튼 박사였습니다. 박사는 우리들 우주인과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지구인을 보다 많이 얻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지구인들을 격려하고 원조하지 않는 한 되지 않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밖에서 억지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지구인 스스로가 자진해서 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선
그런 인물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죠. 그래서 뽑힌 인물이 바로 당신이랍니다. 베일리, 당신은 그런 인물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실험 인간으로 뽑혔던 것입니다.“
"내가 실험 인간이었다고?"
베일리는 화가 치밀어 저도 모르게 한 발 다니엘에게 다가갔다.
"그건 무슨 뜻인가?"
"처음 엔더비 국장이 당신을 이 사건의 담당자로서 추천해 왔을 때 우리들은 당신에 관해 모든 것을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물론 완전한 두뇌 분석도 하였지요. 당신이 우주시에 가서 패스톨프 박사하고 회담하였을 때 잠깐 정신을 잃었었던 바로 그 때 말입니다.“
베일리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얼마 동안 잊어 버렸던 우주인과 로봇에 대한 증오심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올랐다.
"너희들은 나를 모르모트(실험용으로 쓰이는 쥐의 일종)처럼 해부했단 말이군. 그래서 그 결과 무엇을 알아냈단 말이지?“
"그것은 당신이 아주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신은 옛날 지구의 역사에 관해서 진지한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만 한번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해서 미련을 갖는 따위의 약하디 약한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현실주의자이지만 지금의 이 돔 도시와 이 강철 동굴 같은 상태에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또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으며, 무엇이나 무턱대고 믿어 버리는 광신자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당신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우주시에 와서 우주인을 향해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우주인이 꾸며낸 음모라고 항의할 만큼 끈기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러한 인물이야말로 우리가 실험대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말하고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떤 실험이었나? 무엇을 어떻게 증명하려고 했었지?“
"그것은 지구의 장래는 이 돔 도시를 벗어나 우주로 진출해서 새로운 우주를 개척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당신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는 실험이었습니다.“
베일리는 문득 가슴에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는 같은 직업인 노리스 형사며 , 반 로봇 주의자인 프란시스 크로사아에게 패스톨프 박사에게 들은 대로의 이야기를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렇습니다.“
하고 다니엘은 마치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그 악랄한 반 로봇주의 파인 프란시스 크로사아조차도 설득했습니다."
"그렇지가 않아. 그는 끝까지 반대하지. 지금도 우주 개척 따윈 믿고 있지 않다.“
"아닙니다.“
다니엘은 부드럽게 말했다.
"전자 계량실에 들어갔을 때와 나왔을 때하고는 프란시스 크로사아의 두뇌 분석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말로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설득하면 그는 반드시 우주 계획을 믿게 됩니다. 당신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했다.
“그런데 반 로봇주의 가운데는 프란시스 크로사아 같은 인물이 꽤 많이 많습니다. 아마 당신 부인인 제지벨도 그럴 겁니다. 즉 반 로봇주의라고 반드시 우주인의 적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거랍니다.“
다니엘은 거기서 빙그레 웃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패스톨프 박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는 우리들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생각해서 서튼 박사 살해 사건 조사를 그만 두기로 했던 겁니다. 이만하면 다 아셨을 테지요?"
베일리는 말없이 한참 동안 다니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속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꼭두각시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우주인과 다니엘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그는 제 정신으로 돌아와 말을 했다.
"그렇지만 다니엘, 만약에 이대로 사건을 미해결인 채로 내버려두면 우주 국가가 가만있지 않을 테지. 오로라의 정부는 지구에 대해서 손해 배상을 청구해 오겠지. 그렇지만 지구인도 이 이상 참고만 있을 수는 없어. 그렇게 되면 전멸할 것을 각오하고 일대 반란을 일으킬텐데. 그래도 좋은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오로라 정부는 일체 배상 요구를 하지 않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주시를 파괴한 뒤에는 지구는 일체 간섭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베일리의 입에서 괴로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 다니엘! 나는 사미 살해범으로서 경찰에서 추방당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제지벨도 벤트리도 내일부터라도 당장 부랑자가 되어 버린단 말일세.”
다니엘의 렌즈로 된 눈이 잠깐 흐린 듯이 보였다.
“베일리, 매우 안 됐다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손해쯤은 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서튼 박사께서도 부인과 두 분 자녀와 누이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박사를 살해한 범인이 잡혀 처벌되지 않은 것을 침통히 생각하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참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랍니다.“
"그렇지만 곧 범인이 잡힐 텐데 왜 조금만 더 참아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 않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아니 어쩌면 오히려 거북스러운 결과가 될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말을 하는군. 다니엘, 그러면 결국 서튼 박사 사건은 지구인을 연구하기 위한 구실이었군. 당신네들은 맨 처음부터 서튼 박사 사건의 범인을 잡는 일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 그래서야 박사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아닌가!"
"아닙니다. 우리들도 물론 범인을 잡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과 온 인류하고 어느 쪽이 중요하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지금 수사를 계속한다면 도리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범인은 유력한 반 로봇 운동의 멤버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인물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말이겠군?“
베일리는 쓰디쓴 기분으로 내뱉듯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
다니엘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자네의 전자 두뇌 극의 정의 회로는 어떻게 되어버렸나? 설마 고장난 게 아닐 테지? 이런 부정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그러나 다니엘은 까딱도 않는다.
“아니, 잘 알고 있습니다, 베일리. 정의에는 큰 의미의 정의와 작은 의미의 정의가 있습니다. 작은 의미의 정의는 커다란 정의의 앞에서는 무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이 약삭빠른 로봇 놈을 그냥......!) 하고 베일리는 마음 속으로 욕했지만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니엘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생각했다.
“자네는 호기심이란 게 없나?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고 싶다는 호기심 말일세.”
“호기심이란 게 무엇입니까?"
“보다 지식을 넓히고 싶다는 욕망일세.“
"그런 욕망이라면 제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무엇인가 소용이 되는 지식이 아니면 원하지 않습니다. 지구인들처럼 소용도 없는 것을 많이 갖는 습관은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거기서 일단 말을 끊고 장난꾸러기 같은 눈초리가 되었다.
"지구인은 말하자면 엔더비 국장의 안경처럼 아무런 소용도 되지 않는 방식을 좋아하는 이상한 습관이 있더군요. 제게는 도저히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순간 베일리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격렬히 폭발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엔더비 국장의 안경! 그렇다.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사건을 풀 수 있는 마지막 단서는!) 그의 두뇌는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단번에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하게 범인과 그 수렵을 해결하였던 것이었다. 베일리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다니엘, 우주시는 오늘 하루로 서튼 박사 살인 사건 수사를 중지하는 것이 틀림없나?"
"네 .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는 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지금 22시 30분이야. 오늘이 끝나려면 한 시간 30분이 남았어.“
베일리는 다니엘의 팔을 잡았다.
“그 동안만이라도 좋으니까 지금까지처럼 수사에 협력해 주게. 다니엘,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반드시 그 사이에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 보이겠네. 결코 자네들에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 걸세.“
다니엘은 약 1, 2초 가량 베일리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파트너 베일리, 오늘이 끝날 때까지 협력해 드리지요.“
그는 또다시 베일리를 파트너로서 인정했던 것이다! 베일리는 신이 났다.
"자네는 우주시 쪽에서 녹음한 살인 테이프의 복사를 가져올 수 있나?”
"있습니다. 파트너 베일리. 그게 지금 곧 필요한데……."
"시경의 송신기를 쓰면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그럼 부탁하네! 시작해 주게.“
 
수수께끼는 풀리다
 
22시 53분, 베일리와 다니엘은 또다시 엔더비 국장실로 왔다. 베일리의 호주머니 속에는 지금 다니엘이 우주시에서 전송해 온 비디오 테이프의 복사가 한 통 들어 있었다. 엔더비 국장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안경을 만지며 말 없이 한참 동안 베일리를 바라보기만 하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제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에 갔었지?”
“예. 갔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물으면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서투르군. 아주 서툴러!”
엔더비 국장은 신음하듯 말했다.
“말하자면 내가 사미를 살해한 흉기인 알파선 분사기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싶은 거군요. 그렇지만, 이 다니엘에게 물어 보십시오, 우리들은 다만 발전소 안을 지나쳐 왔을 뿐입니다.“
국장은 더욱 쓰디쓴 표정을 지었다.
"로봇의 증언이 법률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리고서 책상 뒤로 몸을 반듯이 하고 물었다.
"자네는 제지벨이 이 곳에 온 이유를 개인적인 용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는 폭력으로 정부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과격한 반 로봇 운동가들의 지하 조직의 멤버일세. 아니, 부정해 봐도 소용이 없네. 내게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까. 크로사아가 분명히 증언을 했거든. 이 자린 베일리는 조직 멤버의 한 사람이라고 말이네 "
엔더비 국장은 베일리를 쏘아 봤다.
"제지벨이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공상적인 조직의 집회에 몇 번인가 출석했던 것은 사실이오. 그렇지만 그건 별로 굉장히 떠들어댈 만한 일은 못 됩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생각지는 않을 걸세. 그리고 의회에서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걸. 그러니 불가불 자네는 자문 위원회에 회부될 걸세.“
“그래서 사미 살해 용의자로 심문을 받게 된다, 이런 말씀이군요.”
엔더비 국장은 부드러운 눈빛이 되어 한숨을 쉬었다.
"할 수가 없네. 베일리, 자네에게는 불리한 증거가 너무나 많아. 자네가 사미를 싫어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 또 제지벨이 참가하고 있는 지하 조직 일로 자네를 만나러 왔던 일도 다 알고 있네. 사미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자네는 틀림없이 이 사실을 사미가 누설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을 걸세. 더욱이 자네는 윌리엄스 바그 원자력 발전소에서 흉기를 손에 넣을 기회가 있었어. 즉 동기와 기회도 모두가 구비되어 있어.“
엔더비 국장의 말은 자신으로 넘쳐 있었다.
"그건 함정이오.“
베일리는 분명히 말했다.
"이건 모두가 교묘하고 신중하고 세밀하게 꾸며진 함정이란 말이오.“
엔더비 국장은 지그시 베일리를 바라보며,
“엉터리 같은 소리 말게, 베일리. 그런 말은 범죄자들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하는 소리야. 그런 소릴 하면 위원회에서 동정하기는커녕 도리어 자네에게 반감을 갖네.“
하고 말했다.
"동정은 필요 없소. 반감을 갖는다고 해도 무섭지 않아.“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아니, 바보 같은 소리가 아니오. 이건 내게 서튼 박사 살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 진짜 범인이 꾸며 놓은 함정이란 말이오. 난 모든 것을 규명했단 말입니다.“
"뭐라고?“
엔더비 국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베일리는 시계를 보았다. 23시였다.
"자넨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자네는 이미 패스톨프 박사 앞에서 당치도 않은 과실을 했었네.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하면 이번엔 용서한 수 없네.“
국장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번은 절대로 틀림없어.“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누가 내게 함정을 팠는지, 그걸 생각해 주면 좋겠네. 그건 어제 저녁 내가 윌리엄스 바그 원자력 발전소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지.“
"그렇군. 그럼 그게 누군가?"
"나는 그전부터 반 로봇 운동가들에게 감시와 미행을 당하고 있었소. 그러니까 그 중의 누군가가 나를 따라 와서 나하고 다니엘이 발전소를 지나온 것을 봤을 테지.“
"그렇군. 그렇다면 프란시스 크로사아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군. 알겠네, 그럼 조금 후에 심문할 때 모조리 토해 내도록 하지."
엔더비 국장은 조금 침착해져서 말을 계속했다.
"암, 그랬었군. 크로사아는 자네가 윌리엄스 바그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걸 보았지. 그리고 그는 전부터 제지벨이 멤버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미를 죽인 죄를 자네에게 뒤집어씌울 음모를 계획했다. 우선 발전소에 있는 동지를 통해 알파선 분사기를 손에 넣고 다음에는 시경 안에 있는 동지에게 연락해서 사미를 아무도 모르게 파괴해 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네가 사직하도록 해서 사건에서 손을 떼게 만들려고 했다.“
엔더비 국장은 거기서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이것으로는 안 되네. 베일리, 크로사아라고 하면 의문이 너무 많아. 그리고 억지가 눈에 선해. 그리고 또 한 가지 크로사아는 우주시에서 살인이 일어났던 날 밤에서부터 아침까지 절대적인 알리바이가 있네. 지금 막 그걸 알았다네. 그러니까 그를 범인으로 생각하는 건 무리란 말일세."
엔더비 국장은 베일리의 어깨에 다정스럽게 손을 얹었다.
"여보게, 베일리, 모든 걸 체념하고 사표를 내면 어떨까? 자네가 그렇게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위원회 쪽에 잘 얘기를 해서 될 수 있는 한 파면되지 않도록 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시청이나 아니면 어디든 새로운 직장이 마련 되도록 노력해 주겠네.“
"사절하겠네.“
베일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엔더비 국장이 실망한 듯 힘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아니, 나는 범인이 크로사아라고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네. 반 로봇 운동가임에 틀림없지만 크로사아는 아닐세. 크로사아보다 더 유력하고 중요한 멤버가 있네.“
"그게 누군가?“
엔더비 국장은 묘한 얼굴을 하고 베일리를 쳐다보았다.
"그 사나이는 제지벨이 지하 조직의 멤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네. 제지벨은 아주 하찮은 말단 멤버였는데……..”
"어쩌면 제지벨은 사실은 중요 인물인지도 알 수 없지.”
"국장님, 크로사아는 정말로 제지벨 베일리가 지하 조직의 멤버라고 말했나?"
엔더비 국장의 얼굴색이 변했다.
"자네는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제지벨은 보통 결코 제지벨이라는 정식 이름을 쓰지 않거든. 그런데 어째서 크로사아가 그걸 알고 있었을까?"
국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음, 그것 말인가? 그건 내가 말을 잘못했군. 나는 항상 제지벨이라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게 말을 했네. 크로사아는 제시 벤트리라고 했을 걸세.“
"그랬을까? 사실은 크로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크로사아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건 자네가 만들어 낸 얘기 아닌가?"
엔더비 국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미쳤나? 베일리.“
"아니. 지극히 정상일세.“
베일리는 국장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당신은 오늘 점심 후 어딜 갔었나? 적어도 두 시간 동안 당신은 어딘가 갔었지?"
"질문하고 있는 건 날세, 베일리.”
"그렇다면 내가 대신 답해 주지. 당신은 윌리엄스 버그 원자력 발전소에 갔었지."
엔더비 국장이 갑자기 의자를 덜커덩 밀어붙이고 일어섰다. 이마에는 비지땀이 배어 있었다.
"대체 자네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발전소에 갔었나 안 갔었나 대답을 하게, 엔더비.“
"자, 자네는 상관을 모욕했어, 자네를 파면하네, 열선 총과 배지를 내놔.“
국장은 고함쳤다.
"아니, 내가 하는 말을 다 들은 다음에 하지."
"그 따위 말을 누가 들어, 너는 역시 유죄란 말이다. 사미 살해범이야, 자기가 위험해지니까 그 죄를 엉터리로 내게 뒤집어씌우려고 하고 있어.“
"그건 정반대군, 당신이야말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려는 장본인이야.“
"닥쳐라! 일라이저 베일리, 너를 체포한다.“
엔더비 국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을 때 베일리는 재빨리 허리의 열선 총을 꺼내 겨누었다.
"체포할 수 있으면 어서 해 봐. 난 하고 싶은 얘기를 모조리 해 버릴 테니까. 방해를 하면 사정없이 쏴 버릴 테다.“
국장은 튀어나올 것 같은 눈으로 열선 총과 베일리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런 일을 해 봐, 베일리. 정신 개조 병원에 간다. 나를 열선 총으로 위협한 죄만으로도 20년 징역은 충분해. 그 총을 빨리 거둬라.“
다니엘이 돌연 굉장히 재빠른 행동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베일리 옆에 오는가 싶더니 열선 총을 잡고 있는 베일리의 손목을 꽉 잡았다.
"이건 용서할 수 없군요. 파트너 베일리, 국장에게 무기를 겨눠서는 안 됩니다.“
"놔라! 다니엘.“
베일리는 손을 뿌리치려고 해 봤지만 로봇의 힘은 황소 같아서 끄덕도 하지 않았다.
"안됩니다. 나는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국장이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놈의 열선 총을 뽑아라. 다니엘, 체포해서 유치장에 처넣어라.“
베일리는 재빨리 말했다.
"그를 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체포되면 안 돼. 다니엘, 자네는 사건 해결에 협력하겠다는 약속하지 않았나? 아직 45분이 남아 있네.”
다니엘은 베일리의 손목을 잡은 채 국장을 향해서 말을 했다.
"엔더비 국장, 베일리 형사의 발언을 허용해 주십시오,”
"쓸데없어! 그런 말을 들을 시간이 없다! ”
"듣지 않는다면 그건 불공평합니다.“
"로봇인 주제에 인간에게 명령할 순 없어. ”
"이건 우주시의 패스톨프 박사의 충고입니다. 나는 지금 박사하고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어떻게 연락을 취했어?"
"제 몸 속에 있는 통신기로 하고 있습니다. 패스톨프 박사도 아까부터 이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만일 베일리 형사의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에게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테지요.“
엔더비 국장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말고 무너져 내리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니엘이 베일리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그는 열선 총을 다시 허리에 찼다.
"당신은 그때, 윌리엄스 바그 원자력 발전소에 가 있었던 게요. 그래서 알파선 분사기를 끄집어내서 그걸 사미에게 건네주고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라'하고 명령했단 말이오. 그 때문에 사미는 죽었지. 당신은 그걸 모두 내가 한양 꾸며댔어. 그래 놓고선 마침 제리겔 박사가 나를 찾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겨 일부러 고장난 안내봉을 주어서 그 사진 용품실로 가게 해 사미의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 거야."
"듣기 싫다!"
엔더비 국장이 우는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안경을 닦았다.
"내게 사미를 죽이거나, 또한 그 죄를 자네에게 뒤집어씌울 만한 동기가 어디 있어?"
"사미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또 내가 사건의 진상의 일보 전까지 접근하였기 때문에 나를 추방해야 하겠다고 생각한 거란 말이지.“
"무, 무슨 말을, 통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릴…….”
“닷새 전에 우주인 서튼 박사가 살해됐다. 그를 죽인 사람은 당신이야. 국장, 그리고 사미는 그걸 알고 있었던 게야.“
 
우 정
 
엔더비 국장은 흠칫하고 몸을 움츠렸다.
"파트너 베일리, 그건 틀린 말이오. 국장은 서튼 박사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옆에서 말을 했다.
"잠자코 듣고만 있게. 엔더비는 나보다 높은 계급의 형사들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맡겼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와 나는 대학생 때부터 친구이자 후배이기 때문이겠지. 그건 내가 친구이자 선배며 상관인 그를 범인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네. 베일리는 엔더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 둘째는, 만일에 내가 진상을 규명하게 될 것 같은 경우에는 제지벨이 비밀 조직의 멤버인 것을 이용해 나를 위협해서 수사에서 손을 떼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네.“
"아니야!"
엔더비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지하 조직의 멤버가 아닐세. 더욱이 제지벨이 멤버라는 건 전연 몰랐단 말이다. 모두가 엉터리다!"
그는 다니엘을 보며 말했다.
"다니엘, 우주시의 패스톨프 박사에게 말하게. 이건 모두가 엉터리고 거짓말이라고.“
다니엘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베일리는 목청을 높였다.
"엉터리가 아니라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그 첫째가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사실이 어째서 그렇게 빨리 반 로봇 운동의 지하 조직의 귀에 들어갔나 말이다. 국장은 먼저 구둣방 사건 때 거기 모인 군중 속에 전문가가 있어서 그 사나이가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그러나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다니엘을 만났을 때 틀림없는 우주인이라고 생각했네. 딴사람들도 그랬을 걸세. 아니…….”
베일리는 말을 뱉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지구에서 가장 훌륭한 로봇 전문가인 그 제리겔 교수조차도 이쪽이 힌트를 줄 때까지는 다니엘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이야. 그렇다면 왜 그런 소문이 퍼졌느냐? 그것은 물론 처음부터 반 로봇 운동가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꼭 지하 단체의 유력한 멤버가 그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걸 로봇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은 것은 우주인하고 나, 그리고 다니엘하고 당신, 엔더비 뿐이었단 말이다. 나는 물론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며, 다니엘도 말하지 않았고, 우주인도 역시 말을 할 리가 만무지.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당신이야!"
"그, 그런 말은 증거가 될 수 없어. 시경이라고 반대 주의자들의 지하 조직에 침투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나?“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베일리는 아주 침착한 태도로 더 한층 혼란을 일으키려 하는 국장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이치에 들어맞는 일뿐이었지. 당신은 내 수사가 진상에 다가서면 걱정을 하고 멀어지면 안심했지. 내가 우주시를 찾아갔을 때 당신은 걱정이 돼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내가 당치도 않는 착각을 일으켰을 때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기뻐했지. 그렇지만 내가 제리겔 교수를 부르자 또다시 당신은 걱정하기 시작했지. ”
그 때 다니엘이 돌연 손을 들었다.
"국장이 반 로봇 주의의 유력한 멤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그가 당신에게 누명을 씌운 것 같다는 것은 대강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튼 박사 살해범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이제 곧 알게 돼! 내가 제리겔 박사를 부른 것은 이 살인 사건엔 반드시 로봇이 한몫 끼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그 일은 분명히 해 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인간과 로봇이 협력해서 힘을 합해서 저지른 범죄 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군요."
"왜? 자네들은 씨 에프 문명을 인간과 로봇이 함께 협력해서 이룩하는 문명이라고 하면서 이런 지극히 단순한 CF 범죄를 알아 볼 수 없단 말인가?“
다니엘은 이해하기 곤란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내가 설명 해 주지. 로봇은 야외를 얼마든지 걸어다닐 수 있으나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또 한편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는 있으나 한밤중에 혼자서 야외를 걸을 수는 없다. 자,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되지?"
"오오!"
다니엘이 사람과 꼭 같은 신음 소리를 냈다. 베일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엔더비는 우선 사미에게 열선 총을 들려서 목적지와 출발 시각을 가르쳐 주었다. 엔더비 자신은 언제나처럼 정식 수속을 밟아 우주시로 갔다. 우주시로 가서 그는 또 다른 출입구에서 사미를 만나 열선 총을 받아 가지고 서튼 박사를 쏴 죽였다. 그리고 다시 열선 총을 사미에게 돌려주었다. 사미는 그것을 가지고 야외를 걸어서 뉴욕 돔 안으로 돌아 왔다. 국장은 그 뒤로 시치미를 떼고 서튼 박사의 죽음을 처음으로 안 것 같이 했다. 이런 줄거리였어. 자아, 이게 사건의 진상이다!"
다니엘은 한참 동안 잠자코 베일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파트너 베일리, 내게는 곧 납득이 안 가는군요. 첫째로 당신의 추리는 굉장히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는 먼젓번에도 말했던 것처럼 사건 직후에 그가 행한 두뇌 분석의 결과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즉 그는 범인일 수가 없습니다.“
"고, 고맙다, 다니엘…….”
엔더비는 다시 자신을 되찾은 듯한 얼굴이었다.
“베일리, 나는 어째서 자네가 있지도 않은 일을 갖고 나를 공격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네. 그러나 이렇게 된 이상 위원회에 나가서 어디까지나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네. 그러니까 아마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걸세.“
"잠깐만, 이걸 보고 말하지."
베일리는 호주머니에서 비디오 테이프의 곽을 꺼냈다. 엔더비 국장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 그게 뭐냐?"
“폭탄이 아닐세. 비디오 테이프야. 지금부터 돌리지.“
"무엇이 찍혀 있나?"
"보면 안다.“
베일리는 비디오 테이프의 스위치를 누르다가 말고 잠깐 망설였다. 사실은 그도 그 속에 무엇이 찍혀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그가 기대하고 있는 것이 찍혀 있을는지 없을는지 전혀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에 그가 바라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찍혀 있지 않은 경우, 그때는…… 그도 마지막인 것이다. 그는 스위치를 눌렀다. 국장실 한쪽 벽면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전혀 다른 방안의 광경이 홀연히 떠올랐다. 입체 텔레비전이기 때문에 마치 전혀 딴 방이 그 곳에 생긴 것 같았다. 그것을 본 엔더비 국장의 입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방안에는 보기에도 끔찍한 너덜너덜하고 새까맣게 탄 시체가 뒹굴고 있었다.
"우우우…… 이, 이런…… 이런 걸 왜 보여 주나…… 어서 꺼버려!"
엔더비가 괴로운 듯 허덕이며 말을 했다.
"안 된다. 좀더 자세히 봐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흘깃 자기의 시계를 보았다.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베일리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국장이 살인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를 처음부터 용의권 밖에 두었다. 그러나 다니엘, 아까 우리가 호기심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자네는 국장의 안경이 소용도 없는 장식품이라고 말했었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이 사건을 푸는 열쇠를 발견했네. 그렇다. 열쇠는 바로 국장의 안경이었단 말이다!"
"당신의 말뜻을 잘 알 수 없군요."
다니엘이 말했다. 그러나 베일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국장을 향해서 말을 했다.
"엔더비, 당신은 언제 안경을 깨뜨렸지?“
"그건 또 무슨 뜻이야? 베일리.“
"이 사건에 관해서 맨 처음으로 회합했을 때 당신이 안경을 망가뜨려 바꿨다고 했어. 나는 그래서 당신이 서튼 박사 살해 사건을 보고 놀라서 넘어져 깨졌나 하고 생각했지. 그랬었나?"
"그, 그렇다…….”
엔더비 국장은 괴로운 듯이 그리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 중얼거렸다.
"안경을 떨어뜨린 곳은 어디지? 회의실에선가?"
"그랬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아니 기억하지 못하겠네…….”
엔더비는 점점 더 말하기 거북한 듯했다.
"파트너 베일리, 나는 당신의 질문하는 뜻을 모르겠군요. 아니 정말 무슨 뜻이 있는 겁니까?"
"잠자코 보고만 있어."
베일리는 비디오 레코드의 움직임을 끄고 수동 장치를 써서 시체가 나오는 장면을 자꾸만 확대 시켰다. 무참한 시체의 화면이 온 벽을 차지했다. 시꺼먼 육체의 굉장한 악취가 풍겨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리하고 어깨와 몸은 상처가 없었지만 가슴에서 허리께 까지 타 들어가서 거의 탄소화해버린 새까만 살 사이로 등뼈의 잔해가 보였다. 베일리는 엔더비를 힐끗 보았다. 엔더비는 지금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베일리도 가슴이 메슥거렸지만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카메라는 시체의 주위에 방바닥을 핥듯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베일리는 또 시계를 보았다. 23시 55분. 나머지 5분! 그는 또 입을 일었다.
"엔더비는 계획적인 살인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어떠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돌발적인 살인을 할 경우는 있다. 그는 결코 서튼 박사를 죽일 생각이 아니었어. 다니엘, 자네를 죽이려고 했던 걸세. 기계를 파괴하는 건 살인은 아니야. 그랬기 때문에 그의 두뇌 분석의 결과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던 걸세.“
베일리가 담담히 말했다. 다니엘은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베일리는 말을 계속했다.
"엔더비는 서튼 박사의 계획에 따른 지구 측 협력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만들어지는 목적도 알고 있었지. 또한 서튼 박사의 우주 이민 계획도 알고 있었다. 기기다 그는 우주를 두려워했다. 지구인이 또다시 우주를 향해 진출하게 되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네를 파괴해 버리려고 결심했던 걸세. 자네를 파괴하기만 하면 우주 국가들은 지구가 아직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우주 이민 계획을 중지시키리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었어.“
베일리는 엔더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있었다.
"그는 서튼 박사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아마 새벽녘쯤이었을 테지……. 그때, 우주시에 왔어. 서튼 박사는 아직 자고 있겠지만 자네가 일어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기가 온다는 것을 알면 자네가 나오겠지…….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걸세.“
베일리는 엔더비 국장의 바로 앞에 버티고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엔더비, 당신은 사미에게서 열선 총을 받아 들고서 돔의 도어까지 와서 내버렸어. 그리고 다니엘에게 열선 총을 퍼부어 다니엘을 파괴한 후 새벽녘의 인기척이 없는 우주시의 거리를 빠져 사미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돌아갈 심산이었지. 사미에게 열선 총을 건네 뉴욕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 사이에 누군가가 다니엘의 시체를 발견하리라.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지. 그리고 사실 또 그렇게 됐다. 틀린 것은 당신이 다니엘이라고 생각하고 죽인 것이 다니엘이 아니라 서튼 박사,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자아, 엔더비, 이젠 고백하면 어떤가?”
“아냐, 난…… 안 했네…… 아니, 난 몰라!“
엔더비는 약하디 약하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일어서, 엔더비. 그리고 다니엘을 정면으로 바로 봐라. 당신은 지금까지 다니엘을 바로 쳐다본 일이 없다. 그 뿐인가, 다니엘의 이름조차도 오늘까지 분명하게 부르지 않았다. 아니 부르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다니엘이 너무나 서튼 박사와 똑같이 닮았기 때문이다. 마치 서튼 박사의 유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엔더비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 때 스크린이 바뀌어 서튼 박사의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문이 열려서 금속으로 팬 홈이 나타나 보였다. 베일리는 그 홈 속에서 무엇인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보고 또 보았다. 틀림없다! 베일리는 엔더비를 향해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돔에 들어섰을 때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분하면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았다. 그런데 그 때 너무 지나치게 흥분했었기 때문에 손이 떨려 그만 안경을 떨어뜨렸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황해서 찾느라고 하는 순간 밟아버렸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그 때문에 안경은 망가져 버린 걸세. 그때 다니엘하고 똑같은 인물, 사실은 서튼 박사가 도어로 들어왔던 것이다.“
베일리는 화면을 가리켰다.
"엔더비, 당신은 열선 총으로 그 인물을 쐈다. 안경을 끼지 않은 당신에겐 그 인물이 서튼 박사인지 아니면 다니엘인지 분명히 구별할 수 없었던 거다. 하여튼 당신은 상대방이 쓰러지는 것을 보자 떨어진 안경을 긁어모아 도망쳐 나왔다. 그렇지만 당황해 있던 당신은 도어의 홈 속에 멀어진 렌즈의 파편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그게 바로 저거다. 저것이야말로 엔더비의 깨어진 안경의 파편인 것이다. 저것이 엔더비가 범인이었다는 숨길 수 없는 증거품인 것이다! 만약 의심스럽다면 엔더비의 안경의 도수를 측정해서 비교해 봐라.“
그 순간 엔더비가 미친 듯이 자기 안경을 벗어서 망가뜨리려고 했다. 베일리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그 안경을 빼앗아 다니엘에게 주었다. 다니엘은 그것을 받아 들자 정중하게 베일리에게 절을 했다.
"이제 알찼습니다. 우리들이 졌습니다. 파트너 베일리. 당신은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였습니다.“
그 때 베일리는 시계를 보았다. 꼭 2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
 
엔더비 국장은 책상 위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착오였다……. 결코, 결단코 죽일 마음은 아니었는데…… 과실이었어.“
그 목소리는 비명 소리에 가까웠다. 그것이 일순간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 같이 변했는가 싶더니 갑자기 의자에서 미끄러져 방바닥에 실신하고 말았다. 다니엘이 재빨리 그 옆에 무릎을 꿇고 맥이며 눈을 뒤집어 보았다.
"정신을 잃었군요, 베일리."
"곧 낫겠지. 굉장한 충격이었을 테지. 내게 당한 게. 하지만 이렇게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경찰에서 인정할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몰아세워서 자기 스스로 자백할 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야. 그래서 그가 자백을 하였지.“
"네, 들었습니다. 패스톨프 박사도 들었답니다."
그 때 엔더비가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의식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그는 비틀비틀 일어서서 베일리하고 다니엘을 번갈아 가며 바라_보았다.
"나는…… 대체 어떻게 되나? 우주시의 재판소에서 심판을 받게 되나? 우주시에는 사형이 있는가?"
베일리는 다니엘을 보았다. 그리고 다니엘이 잠자코 끄덕이는 것을 지긋이 보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되오. 만약에 당신이 우리들에게 협력만 해 준다면."
"뭐라고? 날 용서해 주겠단 말인가?"
엔더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당신은 뉴욕 돔을 속에 있는 반 로봇 운동 단체의, 아니 전 지구의 반 우주 주의자 단체 안에서도 필경 상당히 중요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이 있어. 당신의 힘으로 그들에게 우주 개척의 필요성을 설득시켜 주기 바라네."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알 수 없네.“
"반 우주 주의자들은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지.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우주의 새로운 행성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걸세. 우주인들이 요구하고 있는 깃도 실은 바로 그것인 것이었네. 패스톨프 박사하고 얘기해 본 결과 나도 그것을 믿게 되었네. 만약에 당신의 힘으로 지구의 우주 개척 열이 왕성해진다면 우주인은 서튼 박사 살해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걸세."
엔더비는 천천히 다니엘 쪽을 보았다. 다니엘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베일리 형사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국장님. 우리들에게 힘을 빌러 주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우리들도 깨끗이 과거를 잊어버릴 겁니다. 이것은 패스톨프 박사와 우주시의 시장도 똑같은 의견입니다. 만약에 나중에 배신하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물론 당신의 죄는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만 하면 나는 처형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예, 약속합니다.“
엔더비 국장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해 보기로 하세. 그건 순전히 사고였네. 그 사고를 보상하는 뜻으로 힘껏 해 보기로 하겠네. 그런데 사미 사건은 어떻게 되지?"
베일리가 말했다.
"그건 사고로 해 두지. 자, 이젠 이걸로 끝났다.“
베일리는 커다랗게 한 번 심호흡을 챘다.
숨을 토해내는 것과 함께 지금까지의 고생도 근심도 괴로움도 모두가 몸에서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럼, 난 집으로 돌아가겠네. 제지벨과 벤트리가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함께 나갑시다. 베일리, 나도 우주시에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되나? 우주시가 폐지되고 우주인들이 우주로 돌아가 버리고 나면?"
다니엘은 눈을 깜박거렸다.
"그건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만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베일리는 약 1, 2초 동안 말을 못하고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이윽고 얼굴을 들자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니엘, 나는 자네가 가고 나면 쓸쓸해……. 자네는 나의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자네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네.“
"나도 당신의 능력을 존경하고 신뢰합니다. 그렇지만 쓸쓸하다는 감정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베일리, 나는 당신하고 언제까지나 함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정이라는 감정이라네, 다니엘."
베일리는 진심으로 다니엘의 손을 잡았다. 로봇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손과 인간의 손이 서로 굳게 마주 잡았다. 베일리는 그 때 틀림없이 전류도 아니고, 자력도 아닌, 더욱 단순한 기계의 힘만도 아닌 무엇인가 특별한 힘이 온몸을 흘러오는 것처럼 느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나왔다. <끝>
작품 해설
 
로봇의 선조들
 
로봇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SF를 읽지 않는 사람들도, 과학 기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로봇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질문을 받으면, “기계로 조립한 인조 인간이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만큼 로봇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로봇의 아이디어는 아주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4, 5천년 전에 그리스 신화에 로봇의 선조가 등장되었습니다. 크레타 섬의 왕이 재산과 보물을 지키기 위하여 청동 인간 ‘달로스’를 만들었습니다. 달로스는 키가 10 미터나 되는 거인인데 온몸을 청동으로 만들어 화살도 튕겨 나가고 칼로 쳐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배가 그 섬 가까이 오면 큰 바위를 들어 던져 그 배를 침몰 시킬만한 무서운 괴물이었습니다. 미국 해군에 지대공 미사일에 ‘타르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크레타 섬을 충실히 지킨 로봇의 이름 달로스에서 따온 것입니다.
또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유태인의 전설에도 거인 골렘이라는 로봇의 선조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 골렘은 유대교의 사원에 두고 있었는데 키가 3미터나 되는 찰흙으로 만든 인형입니다. 유대교도가 박해를 받을 때에는 생명을 불어넣어서 활동하도록 하여 순식간에 적을 멸망시키곤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 같이 옛날에 로봇의 선조들은 사람에게 충실한 노예로 일하는 일종의 초인간적 마신 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과학 기술 대신에 미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과학 기술로 생각해 낸 최초의 로봇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이라는 괴물입니다. 이것은 19 세기에 유명한 시인 셀리의 부인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에 등장되었습니다. 의학 실험을 하기 위하여 죽은 사람과 동물의 시체를 끼워 맞추어 부활시킨 인조 인간입니다. 지금의 로봇과는 대단히 다르지만 생명의 창조라든가 의학적으로 생명을 되살리게 하는 과학적인 생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로봇이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사람 같이 생각하는 능력과 사람보다 힘이 훨씬 세고 불사신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미워지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고독한 슬픔으로 자기를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미워하여 드디어는 죽이고 맙니다.
 
새로운 로봇
 
공상의 로봇이 기계와 동력을 가지게 된 것은 역시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되기 시작한 19 세기 말 경이었습니다. 맨 먼저 프랑스 작가 리라단은 「미래의 비보」라는 작품에 마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로봇을 등장시켰습니다.
마다리는 기어, 코드, 모터, 레코드, 계산기 등으로 만든 완전한 기계 로봇인데 부드러운 인공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으며, 사람과 똑같은 소리로 말을 한다고 합니다. 현대 로봇에 가장 가까운 인조 인간이었습니다. 리라단은 이 인조 인간의 발명자에게 에디슨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 전등과 축음기, 축전지 등을 만들어 전 대 발명가 에디슨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직 로봇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로봇은 보통 안드로이드('사람에 닮은 것' 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라든가 오토맨(자동 인형)이라든가 매케니컬 맨(기계 인간) 등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로봇이라는 맡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카렐 차펙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조인간(R.U.R)"이라는 희곡 중에서 처음으로 로봇을 등장시켰습니다. 이 로봇이라는 말은 체코 말로 “로보터 (robots)" 인데 ‘일한다', ‘봉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을 생각하고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로봇은 사람을 위하여 일하는 것, 봉사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차펙이 쓴 로봇은 금속 기계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해저에서 새로 발견한 새 물질로 만든 합성 인간이었습니다. 그 특징은 사람같이 희로애락의 감정과 감각을 없도록 하여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로봇들은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사람에게 반항하지도 알고 항상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공장을 만들고 노동 로봇, 서비스 로봇, 비서 로봇 등을 대량 생산하여 지금까지 사람이 하던 일을 전부 로봇에게 맡겼습니다.
이들은 피로를 느끼지 않고 반항도 하지 않고 임금도, 식량도, 주택도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 편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로봇은 분쇄기에 넣어서 분쇄하면 새 재료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전 세계 안에는 몇 억, 몇 십 억이 되는 로봇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던 중 이 로봇을 군인으로 만들어 군대를 조직하여 전 세계를 점령하려는 나라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돌연 이 로봇의 군대가 무기를 들고 사람에게 달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이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감정을 가질 수 있게 개량시킨 로봇이 선두에 서서 사람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모든 것을 로봇에게 맡긴 사람들은 도저히 로봇에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차츰차츰 사람은 로봇에게 정복되고 맙니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기계를 너무 믿고 의존하다가는 반대로 기계에게 정복되고 말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 로봇이라는 말은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현대 SF 로봇
 
현대 SF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로봇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해밀턴의 「싸우는 미래인」에는 클라크와 오토라는 로봇이 활약하는데 클라크는 키가 2미터가 넘는 강철제의 로봇, 오토는 사람 비슷하게 만든 플라스틱 재인데 선장 가디스의 부하로서 충실히 일합니다.
바인더의 작품 「아담 링」에 나오는 로봇은 전선의 신경과 이리듐의 스펀지로 만든 뇌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과 가장 많이 닮았습니다.
델 레이의 작품, 「그리운 헬렌」에 나오는 전자 로봇 헬렌과 러셀의 「제이 스코아」에 나오는 로봇 파일럿은 사람 이상의 사람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로봇 중에서도 특히 「 강철 도시」를 쓴 아시모프의 로봇들은 가장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합니다. 그 까닭은 로봇들은 법칙에 따라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법칙을「로봇 공학의 3 원칙」이라고 합니다. 이 3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1원칙: 로봇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또 사람이 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보면 중지시켜야 한다. 제 2원칙: 로봇은 사람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해칠 명령은 따라서는 안 된다. 제 3원칙; 로봇은 제 1원칙, 제 2원칙에 위반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아시모프의 로봇의 초 전자 두뇌 기록 장치는 모두 이 3원칙을 지키도록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봇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해치지나 죽여서는 아니 되고 누구든지 상처를 입게 된다든지 살인을 당하는 것을 볼 때에는 아무 명령 없어도 곧 구조하게 됩니다.
또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해도 그 명령에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해치지 않고 죽이지 않으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해를 당차거나 죽게 되는 경우에는 로봇은 제 2원칙을 따르는데 그럴 때는 로봇의 전자 두뇌가 스스로 고장을 일으켜 죽고 맙니다. 제 3원칙은 누군가가 로봇이 방해가 되었을 때 제 2원칙을 써서 자살시키려 하여도 자살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세워 놓은 원칙입니다. 이 3원칙으로 인하여 아시모프의 로봇은 대단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시모프는 이 3원칙을 이용해서 많은 로봇 SF를 썼습니다. '나는 로봇(본사 SF 명작집 7권 로봇 머신 X)' 이라는 단편집에는 로봇이 처음에는 말도 할 수 없고 딱딱한 기계 인형 시대에서 점점 발달되어 사람에게 좋은 협력자가 될 때까지의 역사, 말하자면 로봇 발달사라고 말한 수 있는 로봇 SF가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이 보는 로봇 로비」라는 SF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가정에서 가정 교사용 로봇을 샀습니다. 그 집에는 글로리아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글로리아는 이 로봇 로비가 마음에 들어 대단히 좋아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놉니다. 이윽고 글로리아는 인간 친구와는 놀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
“글로리아를 이대로 두면 사람을 싫어하는 성질을 가진 채 그대로 어른이 되겠다.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렇게 생각한 양친은 어느 날 로비를 글로리아 모르게 로봇 공장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것을 안 글로리아는 매일 울기만 하고 웃음을 모르는 아이로 변하였습니다. 양친은 어떻게 하든 글로리아를 전과 같이 명랑한 아이로 만들려고 여러 군데 여행을 데리고 갔으나 아무 호전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잔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글로리아는 로비가 기계로 만든 로봇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를 잊지 못하고 잇다. 글로리아를 로봇 제조 공장에 데리고 가서 로봇을 만드는 광경을 보여 주면 이해하겠지."
그래서 양친은 글로리아를 데리고 공장 견학을 갔습니다. 공장은 모두가 자동 장치로 된 사람이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들이 이쪽 저쪽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리아는 신기하게 여러 곳을 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로비가 저기 있네! 로비! 로비!' 하고 외치면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자동 장치의 트럭이 글로리아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모두는 놀라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였습니다. 이젠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글로리아의 소리를 듣고 이 쪽을 돌아보던 한 대의 일하는 로봇이 비호같이 달려와서 글로리아를 끌어안고 그 자리를 피해 나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비였습니다.
로비는 일하는 로봇으로 개조되어 있었는데 그의 전자 두뇌는 아직까지 글로리아를 기억하고 있고 그리고 사람이 해를 당하는걸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로봇 제 1원칙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로비는 다시 가정 교사용 로봇으로 개조되어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성 로봇' SF에는 3원칙을 잘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무대는 수성 지하 정거장이며, 이 곳에는 두 대원과 한 대의 로봇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수성은 태양계의 행성 중에 태양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 쪽을 향한 곳은 납을 녹일 만큼 더운 곳인데 사람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도저히 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지하 기지에 있고 밖의 일은 대개 로봇을 시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로봇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로봇이 없으면 일이 안될 뿐만 아니라 기지의 연료도 보급 받을 수가 없어 기지 내의 냉방 장치를 가동시킬 수 없게 되어 결국 사람은 죽게 됩니다.
“고장이 난 모양이다. 찾으리 나가자."
두 대원은 내열복을 입고 로봇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이윽고 로봇이 태양열이 내리 쬐는 넓은 들판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로봇의 행동은 이상하였습니다. 연료로 쓰는 희고 번쩍이는 광석을 파내는 곳의 둘레를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가스 같은 것이 무럭무럭 오르고 있습니다.
“역시 고장이다. 불러 보자.“
두 사람은 소리 높이 로봇을 불렀습니다. 로봇은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비틀걸음으로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간쯤 오더니 휙 돌아서서 또 다시 광산 있는 곳으로 걸어가 가스가 풍겨 나오는 곳까지 가더니 뒷걸음질하여 광산이 있는 둘레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큰소리로,
"딕! 돌아 오라!“ 라고 명령을 하니 또 중간까지 오더니 뒤돌아 서서 전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흡사 정신 나간 사람같이……
"그 원인을 찾았다.“
한 대원이 말했습니다.
“그 광석 곁에 풍기는 가스는 로봇의 금속을 상하게 하는 유독 가스다. 로봇은 제 2 원칙에 의해 우리들이 명령한 대로 연료를 채취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곳까지 가니 유독 가스가 있다. 그래서 로봇은 자기 몸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제 3원칙을 생각하여 연료가 있는 곳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런데 가스에서 멀어지니 또 명령을 기억해 내서 연료를 채취하러 간다. 이렇게 하여 갔다가 또 왔다가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지? 그대로 두면 동력이 소모되어 파괴되고 말겠고……. 그렇다고 하여 이렇게 더운 들판에서 그 곳까지 가면 내열복이 견디어 내지 못하여 우리가 죽고 만다.“
두 사람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한 사람이 좋은 생각을 해냈습니다.
“둘 중에 한사람이 벌판을 걸어서 로봇에게 가까이 가는 거다. 그러면 내열복이 듣지 아니하여 쓰러지고 말 것이다. 로봇은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면 3원칙 중 제일 중요한 제 1원칙, 즉 로봇은 사람이 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기억을 되살려 구조하러 올 것이다. 위험하지만은 큰 맘 먹고 한 번 해 보자.“
두 사람은 그렇게 해서 무사히 로봇을 구출 할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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