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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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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 모음
2022년 10월 10일 12시 12분  조회:2051  추천:0  작성자: 강려
황지우 시 모음


나는 너다 - 126
나는 너다 503.
메아리를 위한 覺書
우울한 편지
비오는 날, 초년(幼年)의 느티나무
상실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動詞
이 세상의 고요
거룩한 저녁 나무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수은등 아래 벚꽃
화광동진(和光同塵)
눈 맞는 대밭에서

유혹
나의 누드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THE ROPE OF HOPE
붉은 우체통
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타르코프스키 監督의 고향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가을마을과 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인사
세상의 고요
비 그친 새벽 산에서
에프킬라를 뿌리며
눈보라
목마와 딸
아직은 바깥이 있다
게 눈 속의 연꽃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안부 1
안부 2
출가하는 새
비닐새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일 포스티노
발작
雪景
等雨量線 1
늙어가는 아내에게
거울에 비친 괘종 시계
뼈아픈 후회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재앙스런 사랑
겨울산
너를 기다리는 동안
겨울산
재앙스런 사랑
뼈아픈 후회
華嚴光州
비 그친 새벽 산에서
이 문으로
들녘에서
영산(靈 山)
너무 오랜 기다림
옛집
뜰 앞의 잣나무
서풍 앞에서

황지우 시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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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 126


나는 사막을 건너 왔다, 누란이여.
아, 모래 바람이 가리고 간 그 옛날의 강이여.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 강가에서 울부짖는구나.
독수리 밥이 되기 위해 끌려 가는 지아비, 지새끼들.
무엇을 지켰고, 이제 무엇이 남았는지.
흙으로 빚은 성곽, 다시 흙이 되어
내 손바닥에 서까래 한 줌.
잃어버린 나라, 누란을 지나
나는 사막을 건너간다.
나는 이미 보아버렸으므로
낙타야, 어서 가자.
바람이, 비단 같다, 길을 모두 지워놨구나.

시집<나는 너다>, 풀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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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다 503.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地平線(지평선)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아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經(경)도 없다.
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九萬里 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自己야.
우리 마음의 地圖(지도)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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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를 위한 覺書


불 속에 피어오르는 푸르른
풀이어 그대 타오르듯
술 처마신 몸과 넋의 제일 가까운
울타리 밑으로 가장 머언
물 소리 들릴락말락
(우리는 어느 溪谷[계곡]에 묻힐까 들릴까)
줄넘기하는 쌍무지개
둘레에 한세상 걸려 있네

詩集,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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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편지


한때 나는 저 드높은 화엄(華嚴) 창천(蒼天)에 오른 적 있었지
숫개미 날개만한 재치 문답으로!
어림 턱도 없어라

망막을 속이는 빛이 있음을 모르고
흰 빛 따라가다
철퍼덕 나가떨어진 이 궁창;진흙-거울이어라

진흙-마음밭에 부리 처박고 머리털 터는 오리꼴이라니
더욱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신간은 편하다만

이렇게 미친 척 마음 가지고 놀다
병 깊어지면 이 어두운 심통(心筒),
다시 빠져 나갈 수 있을지 아슬아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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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초년(幼年)의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와 함께
더 큰 줄기로 비맞는 幼年
부잣집 아이들은 식모가 벌써 데려가고
일 나간 우리 엄니는 오지 않았다
齒가 떨리는 운동장 끝
어린 느티나무 몸 속에선 이상한 低音이 우우 우는데
날 저물어 오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우와 함께
더 큰 빗줄기, 보이지 않는 우리 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기어 가는 것 같고
문고리에 매달린 동생들 이름 부르며
두 손에 고무신 꼭 들고
까마득한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었다

그 운동장으로부터 20년 후
이제 다른 生涯에 도달하여
아내 얻고 두 아이들과 노모와 生活水準 中下,
月收 40여 萬 원, 종교 無, 취미 바둑,
政治意識 中左, 학력 大퇴
의 어물쩡한 30대 어색한 나이로
출판사 근처에나 얼쩡거리며 사람들 만나고
최근 김영삼씨 동향이 어떻고, 미국 간
김대중씨가 어떻고, 雜談과, 짜장면과,
연거푸 하루 석 잔의 커피와,
결국 이렇게 이렇게 물들어 가는 구나 하는 절망감과,
현장 들어간 후배의 경멸어린 눈빛 그런 작은 표정에도
쉽게 자존심 상해하는 어물쩡한 30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색한 나이로
남의 사무실을 빠져나오다가
거리에서 느닷없이 기습해 오는 여름비----
소년은 비 맞으면서 비닐 수산을 팔고
비닐 우산 아래서
비닐 우산과 함께
더 큰 줄기로 비맞는 成年
그 비닐 우산 속으로 20년 전 어린 느티나무가 들어와
후두둑 후두둑 몸 떨며 이상한 低音으로 울고
나는 여전히 저문 운동장 가에 혼자 남아 있고

~~~~~~~~~~~~~~~~~~~~~~~~~~~~~~~~~~~~~~~~~~~~~~~~~~~~~~~~

상실


귀밑머리 허옇도록 放心한 노교수도
시집간다고 찾아온 여제자에게
상실감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가버린 낙타여
이 모래 바다 가는 길손이란!

어쩌면 이 鹿苑은
굴절되어 바람에 떠밀려 온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모래밭과 풀밭이 갈리는 境界에 이르러
나는 기를 쓰고 草錄으로 들어가려 하고
낙타는 두발로 브레이크를 밟고 완강히 버티고

결국,어느 華嚴 나무 그늘에서
나는 고삐를 놓아버렸지
기슭에 게으르게 뒹구는 사슴들,
계곡에 내려가지 않고도
물의 찬 혓소리 듣는 법을 알고
목마름이 없으므로
'목마름'이 없는 뜨락
멋모르고 처음 돌아오는 자에게도
돌아왔다고 푸른
큰 나무 우뢰 소리 金剛 옷을 입혀 주는구나

내가 놓아버린 고삐에 있었던 낙타여
내 칼과 한 장의 지도와 經 몇 권 든 쥐배낭
안 그래도 무거운 肉峰에 메고 어느 모랫바람 속에서
방울 소리 딸랑거리고 있느냐
새 길손 만나 왔던 길을
初行처럼 가고 있지 않은지
내 귀밑머리 희어지도록 너를 잊지 못하고
내가 슬퍼하는 것은 그대가 나를 떠났다는 것이지만
내가 후회하는 것은 그대를 끝끝내 끌고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
차라리 그대를 내 칼로 베어버리고
그 칼을 저 鹿溪에 씻어줄 걸
씻어줄 걸

~~~~~~~~~~~~~~~~~~~~~~~~~~~~~~~~~~~~~~~~~~~~~~~~~~~~~~~

나무는 여러번 살아서 좋겠다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生)이 마구 가렵다
어언 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하늘은 컴퓨터 화면처럼 푸르고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왜정 시대의 로마네스크식 관공서 건물 그림자를
가로수가 있는 보도에까지 늘어뜨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마흔인가
병원을 나와서도 병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11월의 나무는
아직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환자처럼, 추하다

그래도 나무는 여러 번 살아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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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詞


한다.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다. 온다. 온
다. 온다. 소리난다. 울린다. 엎드린다. 연락한다. 포위
한다. 좁힌다. 맞힌다. 맞는다. 맞힌다. 흘린다. 흐른
다. 뚫린다. 넘어진다. 부러진다. 날아간다. 거꾸러진
다. 패인다. 이그러진다. 떨려나간다. 뻗는다. 벌린다.
나가떨어진다. 떤다. 찢어진다. 갈라진다. 뽀개진다. 잘
린다. 튄다. 튀어나가 붙는다. 금간다. 벌어진다. 깨진
다. 부서진다. 무너진다. 붙든다. 깔린다. 긴다. 기어나
간다. 붙들린다. 손 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
아, 이제 다가는구나. 어느 황토 구덕에 잠들까. 눈감
는다. 눈뜬다. 살아 있다. 있다. 있다. 있다. 살아 있
다. 산다.


詩集,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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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고요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바깥으로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릴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듣지 않는 라디오에서 일기예보가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古宮으로 드리운 늦가을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이 땅만 보면서 바삐 지나가는 것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버스에서 힐껏 보았을 때

빽밀러에 國道 포플라 가로수의 먼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목탄화 같은 겨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도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거릴 때

흰 여구차가 따뜻한 봄 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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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저녁 나무
-김용택 시백(詩伯)에게


치마로 생밤을 받는 신부처럼,
아니, 급식소로 가는 사람들처럼,
맨 처음인 듯, 아니 맨 마지막인 듯
그렇게 저녁을 받는 나무가 저만치 있습니다
兄이 저 혼자 저무는 섬진강 쪽으로 천천히
그림자를 늘리는 나무 앞에 서 있을 때
옛 안기부 건물 앞 어느 왕릉의 나무에게
전, 슬리퍼를 끌며 갑니다 ; 그 저녁 나무,
눈 지긋하게 감고 뭔갈 꾸욱 참고 있는 자의 표정을
하고 있대요, 형, 그거 알아요
아, 저게 <거룩하다>는 형용사구나
누군가 떠준 밥을 식반에 들고 있는 사람처럼, 혹은
신부처럼 生을 부끄러워할 때
거룩한 저녁 나무는 이 세상에 저 혼자 있다는 거 땜에
갑자기 울고 싶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서 있습니다
형이나 저나, 이제 우리, 시간을 느끼는 나이에 든 거죠
이젠 남을 위해 살 나이다,고 자꾸 되뇌기만 하고
이렇듯 하루가 저만큼 나를 우회해서 지나가버리는군요
어두워지는 하늘에 헌혈하는 사람처럼 팔을 내민
저녁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저는 지금 이 시간 교실 밖
강물소리 듣는 형의 멍멍한 귀를 잠시 빌려가겠습니다
그 강에 제 슬리퍼 한 짝, 멀리 던지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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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황지우(1952~)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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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등 아래 벚꽃


사직공원(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그때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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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광동진(和光同塵)


이태리에서 돌아온 날, 이제 보는 것을 멀리 하자!
눈알에서 모기들이 날아다닌다. 비비니까는
폼페이 비극시인(悲劇詩人)의 집에 축 늘어져 있던 검은 개가
거실에 들어와 냄새를 맡더니마는, 베란다 쪽으로 나가버린다.
TV도 재미없고 토요일에 대여섯 개씩 빌려오던 비디오도 재미없다.
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건 자꾸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뜯긴 지붕으로 새어들어오는 빛띠에 떠 있는 먼지.
나는 그걸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사상>, 겨울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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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맞는 대밭에서


단식 7일째
도량 뒤편 눈 맞는 대밭에
어이없이 한동안 서 있다
창자 같은 갱도를 뚫고
난 지금 박장을 막 관통한 것이다
눈 맞는 대밭은 딴 세상이 이 세상 같다
눈덩이를 이기지 못한 댓가지 우에
다시 눈이 사각사각 쌓이고 있다
여기가 이 세상의 끝일까
몸을 느끼지 못하겠다
내 죽음에 아무런 판돈을 걸어놓지 않은 이런 순간에
어서 그것이 왔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후련한 죽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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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돌아다녀보면
朝鮮八道,
모든 명령은 초소다

한려수도,內航船이 배때기로 긴 자국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세상에, 할 고민 없이 괴로워하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
가다보면 길이 거품이 되는 여기
내가 내린 닻, 내 덫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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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여름 동안 창기 紫薇꽃이 붉게 코팅한 통유리;
잘못 들어온 말벌 한 마리가
유리 스크린을 요란하게 맴돈다
환영에 銀날개를 때리며

어? 여기가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無明盡亦無無明盡

바깥을 보는 것까지는 할 수가 있지,
허나, 바깥으로 한번 나가보시지

아아, 울고 싶어라; 투명한 것 가지고는 안돼

그해 겨울, 그 통유리창에 눈보라 몰려올 때
나, 깨당 벗고 달려나가
흰 벌떼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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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누드


공중 목욕탕에 앉아서 제 손으로 제 몸을 구석 구석
훑어 나가는 것은 한두 주일 동안의 때를 밀어내는
일만이 아니다, 一生이여. 이 부피만큼 살아왔구나.
질그릇처럼 아슬아슬하다. 대저
나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내가 있었던가. 나의 容積이 탕 밖으로 밀어내는 물?
거짓이 나를 만들어 놨을 뿐,
두뇌의 격한 질투심. 열등감. 뭐 드러내기 좋아하는
허영으로 적재된 서른 몇 해. 헐떡거리며 나는
하프라인을 넘어왔다. 살아 있다면 내 나이쯤 되는. 가령
전태일 같은 이는 聖者다.그의 짧은 삶이 치고 간
번개에 들킨 나의 삶. 추악과 수치. 치욕이다. 그의
우뢰소리가 이 나이 되어 뒤늦게 나에게 당도했구나.
벼락맞은 靑春의 날들이여. 나는 피뢰침 아래에
있었다. 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요행이었을 것이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묵묵부답인 소작농이여. 그는
그가 떠나지 못한 新月里 北平의 防風林 아래 윤씨
땅을 새마을 모자 채양으로 재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웃 도암재를 넘어 그는 장독 굽는 陶工이 되려 했으리.
그는 小木이었을까. 말없고 성깔 괴팍한 미쟁이였을까.
아 그는 대처에 나와 그의 바람기로 인해 노가다가 되었으리라.
극장 간판쟁이였거나 공직공장 경비원이었거나 철도 노동자였거나
추운 삶의 시퍼런 정맥을 따라 淸溪川
평화시장까지 흘러갔으리라. 그는 땔나뭇꾼. 껌팔이. 신문팔이.
고물장사였었다. 역 뒤. 極貧의 검은 강가에서 사흘 밤과 나흘 낮을 빈 창자로
서 있었고. 내장에 콸콸 넘치는 쓴 하수도. 뜨거운 내 눈알은
붉은 회충알들이 청천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어지러웠다. 현기증 사이로 본 부. 모. 형. 제. 전가족이
각각이 고아였다. 자원입대한 형이 떠난 후
조개석탄을 주우러 침목을 세며 南光州까지 걸어갔었다.
産物을 가득 실은 여수발 화물열차가 지나가고
最低 生計 以下에 내려와 있는 차단기. 赤信號앞에
서 있던 불우한 날들이여.
風塵 세상 살아오면서 나는 내 삶에, 그러나
그 모든 날들을 不在로 만들어 버렸다. 고백은 지겹다.
모든 자화상이 흉칙하듯. 나는 내가 살던 露天을 복개했다.
캄캄한 여러 지류가 나를 지나갔다.
지나갔었다. 그리고 지나간다.
지금 나는 알몸이다.
내 손이 나를 만진다. 이것이 나다.
때를 벗기면 벗길수록 生涯는 투명하다.
낫자국. 칼자국. 자전거에서 떨어져 무릎팍에 남긴
상처가 내 몸과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돌아다보니 몇 바가지 물로 나와 같이
목전의 자기 일생을 씻어내는 알몸들.
알몸들이여. 나의 현장부재중인 '나'들이여.
그러나 등 좀 밀어 달라고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있다.
이태리 타월을 들고 나는 한 노인의 등 뒤로 다가갔다.
닿지 않는 나의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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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무궁)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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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PE OF HOPE


極樂(극락) 싣고
정박중인 배
無爲寺(무위사) 極樂殿(극락전) 처마에
이크, 물고기 한 마리 낚였다
배가 출렁거렸고
쨍그랑
쨍그랑,
구리물고기, 배때기를 팽팽하게 부풀린 虛風(허풍)
THE ROPE OF HOPE라고나 할까
닻줄에 의해 끌어올려지는
수렁 속의 전갈女子
우리마누라는 내가 글을 쓰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으면
지가 시름시름 앓는다
無爲도 아프다는 거다
'희망의 끈'에 걸린 주둥일 괜히
잡아채면서 구리물고기,
여기가 極樂이오
여그가 긍낙이여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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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우체통


버즘나무 아래
붉은 우체통이
멍하니, 입 벌리고 서 있다
소식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思想이 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여, 비록 그대가
폐인이 될지라도
그대를 버리지 않겠노라
고 쓴 편지 한 통 없지만,
병원으로 가기 위해
길가에서 안개꽃 한 묶음을 사는데
두 다리가 절단된 사람이
뱃가죽에 타이어 조각을 대고
이쪽으로 기어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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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벗고 들어가는 그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쫙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 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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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 監督의 고향



고향이 망명지가 된 사람은 폐인이다.
출항했던 곳에서 녹슬고 있는 폐선처럼
옛집은 제자리에서 나이와 함께 커져가는 흉터;
아직도 딱지가 떨어지는 그 집 뒤편에
1950년대 후미끼리 목재소 나무 켜는 소리 들리고, 혹은
눈 내리는 날,차단기가 내려오는 건널목 타종 소리 들린다.
김 나는 국밥집 옆을 지금도 기차가 지나가고.
나중에는 지겨워져서 빨리 죽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파자마 바람으로 누워 계신
그 옛집, 기침을 콜록콜록, 참으면서 기울어져 있다.
병들어 집으로 돌아온 자도 폐인이지만
배를 움켜쥐고 쾡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신 아버지,
삶이 이토록 쓰구나, 너무 일찍 알게 한 1950년대;
새벽 汽笛에 말똥말똥한 눈으로 깨어 공복감을 키우던
그 축축한 옛집에서 영원한 출발을 음모했던 것;
그게 내 삶이 되었다.
그리움이 완성되어 집이 되면
다시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내 삶이었다.
그러나 꼭 망명객이 아니어도 결국
폐인들 앞에 노스탤지어보다 먼저 와 있는 고향.
가을날의 송진 냄새나던 목재소 자리엔 대형 슈퍼마켓;
고향에서 밥을 구하는 자는 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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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진흙에 가까워지는 존재


원목 옷걸이에 축 처진 내 가다마이, 일요일 오후의
공기 속에 그것은 있다
나를 담았던 거죽,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깨닫는 나의 한계;
내가 채운 나의 용량, 그것은 있었다
누군가 감아놓은 태엽의 시간을 풀면서
하루종일 TV 앞에서
오른팔이 아프면 왼팔로 머리를 받치고
길게 모로 누워 있는 일요일; 이 내용물은
서서히 금이 가면서 점점
진흙에 가까워지고 있다
KAL기 잔해에서 실신한 여자를 헬기가
끌어올릴 때 바람이 걷어올리는 붉은 팬티;
죽음은 그렇게 부끄러움을 모른다
강 수심으로 내려가는 돌처럼
어디까지 내려가나 보자, 아예 작정을 하고
맨 밑바닥까지 내려온 덩어리; 하품하면서
발가락으로 마감 뉴스를 끌 때도
옷걸이에 축 처진 내 옷, 어떤 억센 힘에
목덜밀 붙잡힌 자세로
그것은 월요일이 된 공기 속에 있다
이것이 삶이라면, 삶은 욕설이리라
TV 위엔, 바람을 묶어놓은 딸아이 꽃다발;
바르르 떠는 셀로판紙가 알려주는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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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마을과 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



가을 마을

저녁해 받고 있는 방죽둑 부신 억새밭, 윗집 흰둥이 두 마리 장난치며 들어간다 중풍 든 柳氏의 대숲에
저녁 참새 시끄럽고 마당의 殘光, 세상 마지막인 듯 환하다 울 밖으로 홍시들이 내려와 있어도 그걸 따갈
어린 손목뎅이들이 없는 마을, 가을걷이 끝난 古西 들에서 바라보니 사람이라면 핏기 없는 얼굴 같구나
경운기 빈 수레로 털털털, 돌아오는데 무슨 시름으로 하여 나는 동구 밖을 서성이는지 방죽 물 우으로
뒷짐진 내 그림자 나, 아직도 세상에 바라는 게 있나

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

아침마다 머리맡에는 15층이 있다

이부자리에 엎드려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이건 삶이 아냐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어,
속으로 울부짖는 나는
비닐 봉지 속의 금붕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한겨레신문'이 놓여 있다

주가 470선도 무너져

러시아를 순방하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할 때처럼
전표들이 빌딩에서 쏟아져내리는 명동 증권가;
이 生에는 밑바닥이 없는 듯하다

내심,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하고
소설가 Y에게 찾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약간 불었기 때문에
내 살갗에 와 닿는 비닐막 같은 거;
나는 내 生이 담겨서 들려간다는 걸
느끼고 있었던 거다

그거다
베란다에서 1미터만 걸어가면
아침마다 머리맡에는 15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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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시집<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미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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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개가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색종이 뿌리듯
가을 금남로 은행잎들이 마구 쏟아지는 걸
넋 놓고 잠시 바라보았더니
뒤에서 빵빵거린다
뒤돌아 보며 은행나무를 가르키자
영업용 택시 기사도 은행나무를 가리키며 웃는다
차라리 모르는 얼굴에는 인간의 光背가 있다

집에 도착해서도 프라이드 차창에 붙어 있는
금빛 스티커:오늘은 하느님이 색종이 뿌려 주시는
황금나무 밑을 지나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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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고요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밖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렸을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없는 방, 라디오에서 일기 예보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古官으로 드리운 늦가을의 짙은 그림자,
그리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 버스에서 힐끔 보았을 때

백미러에 國道 포플러 가로수의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야산 겨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오랜만에 돌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거릴 때

흰 영구차가 따뜻한 봄산으로 들어갈 때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한없이 나른하고 無窮과 닿아 있다
자살하고 싶은 한 극치를 순간 열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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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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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킬라를 뿌리며


여기는 초토(焦土)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
파리는 파리 목숨입니다
이제 울음 소리도 없습니다.
파리 여러분!
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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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 소나무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 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 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남기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 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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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딸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은 시장이 있고 그 길로 한
백 미터쯤 위로 올라오면 호남 정육점이 있는데요,
거기서 오른쪽 생선 가게 있는 샛길로 올라오면 신
림탕이라고 공중 목욕탕이 있고요, 그 뒤 공터에 소
금집과 기와 공장이 있지요. 소금집은 루핑으로 지
붕을 얹은 판잣집인데요, 거기서 다시 연립 주택이
있는 골목길로 쭉 타고 올라오면 여덟번째 반슬라브
가옥이 바로 우리집이지요. 이 집에서 나는 번역도
하고 르포도 쓰고 가끔 詩도 쓰면서 살지요. 마누라
가 신경질 부리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소금집
공터에 나와 놀지요. 공터의 큰 포플러나무 그늘에
앉아 노인들은 화투를 치고.
어떤 날은, 리어카에 목마 여섯 대를 달고 아이들
에게 백 원씩 받고는 한 이십 분이고 삼십 분씩 태
워주는 할아버지가 그 그늘 아래로 오지요. 나는 환
호하는 딸을 하얀 백말에 앉혀주고 그 하얀 백말의
귀를 잡고 흔들어주지요. 아, 나의 아름다운 딸은
내 눈앞에서, 네 발을 묶은 용수철을 단방에 팍 끊
고 튀어가는 듯하지요. 말갈기를 흩날리며 나의 아
름다운 딸은 기와 공장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 속
으로, 아, 노령 연해주 땅으로, 멀고 안 보이는 나
라로 들어가버린 듯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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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바깥이 있다


논에 물 넣는 모내기 철이
눈에 봄을 가득 채운다

흙바닥에 깔린 크다란 물거울 끝에
늙은 농부님, 발 담그고 서 있는데
붉은 저녁빛이 斜繕으로 들어가는 마을,
묽은 논물에 立體로 내려와 있다

아,
아직은 저기에 바깥이 있다
저 바깥에 봄이 자운영꽃에 지체하고 있을 때

몸이 아직 여기 있어
아직은 요놈의 한세상을 알아본다

보릿대 냉갈 옮기는 담양 들녘을
노릿노릿한 늦은 봄날, 차 몰고 휙 지나간 거지만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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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1

처음 본 모르는 풀꽃이여, 이름을 받고 싶겠구나
내 마음 어디에 자리하고 싶은가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기간,
나는 또 하품을 한다

모르는 풀꽃이여, 내 마음은 너무 빨리
식은 돌이 된다, 그대 이름에 내가 걸려 자빠지고
흔들리는 풀꽃은 냉동된 돌 속에서도 흔들린다
나는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 짐승이다

흔들리는 풀꽃이여, 유명해졌구나
그대가 사람을 만났구나
돌 속에 추억에 의해 부는 바람,
흔들리는 풀꽃이 마음을 흔든다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
불을 기억하고 있는 까마득한 석기 시대,
돌을 깨트려 불을 꺼내듯
내 마음 깨트려 이름을 빼내 가라

2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보광(普光)의 거품인 양
눈꼽 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 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그러나, 볼 수 있었다

3

투구를 쓴 게는
바다로 가네

포크레인 같은 발로
걸어온 뻘밭

들고 나고 들고 나고
죽고 낳고 죽고 낳고

바다 한가운데에는
바다가 없네

사다리를 타는 게,
게좌(座)에 앉네


1994년 제8회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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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아니면 사랑하기 뿐


내가 먼저 待接받기를 바라진 않았어! 그러나
하루라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다시 이쪽을 바라보기 위해
나를 對岸으로 데려가려 하는
환장하는 내 바바리 돛폭.
만약 내가 없다면
이 강을 나는 건널 수 있으리.
나를 없애는 방법,
죽기 아니면 사랑하기뿐!
사랑하니까
네 앞에서
나는 없다.
작두날 위에 나를 무중력으로 세우는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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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1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마조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인가?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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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2


안녕하신지요. 또 한 해 갑니다
일몰의 동작대교 난간에 서서
금빛 강을 널널하게 바라봅니다
서쪽으로 가는 도도한 물은
좀더 이곳에 머물렀다 가고 싶은 듯
한 자락 터키 카펫 같은
스스로 발광하는 수면을
남겨두고 가대요
그 빛, 찡그린 그대 실눈에도
對照해 보았으면, 했습니다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지난번 엽서,
이제야 받았습니다
숨쉬는 것마저 힘든
그 空中國家에 제 생애도
얼마간 걸쳐놓으면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나겠지요마는
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
하냥 멍하니, 있고 싶어요
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
게으른 새처럼
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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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는 새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라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아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風速을 거슬러 갈 줄 안다
生後의 거센 바람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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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새


흐리고 바람 부는 날
언덕을 오르는 나에게
난데없이 대드는 흰 새를 나는
쌱 피했다
피하고 보니, 나는 알았다, 누가 버린
農心 새우깡 봉지였다
칠십세 이하 인간에게 버림받은 비닐새,
비닐새여
내 마음을 巡察하는 흰 새여
흐리고 바람 마음대로 부는 날의 언덕은

이 세상 참 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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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쭬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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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내가 지도교수와 암스테르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커피 솝 왈츠의 큰 통유리문 저쪽에서 당신이
빛을 등에 지고서 천천히 印畵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세계에 당신이 처음으로 나타난 거였다.
그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니었지만,
암스테르담은 어떤 이에겐 소원을 뜻한다.
구청 직원이 서류를 들고 北歐風 건물을 지나간 것이나
가로수 그림자가 그물 친 담벼락, 그 푸른 投網 밑으로
당신이 지나갔던 것은 우연도 운명도 아닌,
단지 시간일 뿐이지만 디지털 시계 옆에서
음악이 다른 시간을 뽑아내는 것처럼,
당신이 지나간 뒤 물살을 만드는 어떤 그물에 걸려
나는 한참 동안 당신을 따라가다 왔다.
세계에 다른 시간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어느 축선에서 만난다 믿고 나는 돌아왔던 거다.
지도교수는 마그리트의 파이프에 다시 불을 넣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당신은 홍대 앞을 지나갔다.
암스테르담을 부르면 소원이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마그리트 씨가 빨고 있던 파이프 연기가
세계를 못 빠져나가고 있을 때
램브란트 미술관 앞, 늙은 개가 허리를 쭉 늘여뜨리면서
시간성을 연장한다. 권태를 잡아당기는 기지개;
술집으로 가는 다리 위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그친 음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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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하게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 숏, 롱 테이크되고;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땜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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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


삶이 쓸쓸한 여행이라고 생각될때
터미널에 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다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여
그대를 환영하며
이곳에서 쓴맛 단맛 다 보고
다시 떠날때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초록빛과 사랑: 이거
우주 기적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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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景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壽衣)에 덮여 있다.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일러주는 눈발
살아서 나는 긴 그림자를
그 우에 짐부린다.

『게 눈 속의 연 꽃』, 문학과 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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等雨量線 1


1
나는 폭포의 삶을 살았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폭포 주위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처럼 살 수는 없었을까
쏟아지는 힘을 비켜갈 때 방울을 떠 있게 하는 무지개 ;
떠 있을 수만 있다면 空을 붙든 膜이 저리도록 이쁜 것을

나, 나가요, 여자가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아냐, 이 방엔 너의 숨소리가 있어야 해
남자가 한참 뒤에 중얼거린다


2
이력서를 집어넣고 돌아오는 길 위에 잠시 서서
나는, 세상이 나를 안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 실평수처럼 늘 초과해 있는 내 삶의 덩어리를
정육점 저울 같은 걸로 잴 수는 없을까
나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이 마구 자라
수위가 바로 코밑에까지 올라와 있는 생활

나는 언제나 한계에 있었고
내 자신이 한계이다
어디엔가 나도 모르고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차마 내 앞에선 말하지 않는
불구가 내겐 있었던 거다
커피 숍에 앉아, 기다리게 하는 사람에 지쳐 있을 때
바깥을 보니, 여기가 너무 비좁다


3
여기가 너무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인도에 대해 생각한다
시체를 태우는 갠지스 강 ;
물 위 그림자 큰 새가
피안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기저해 쓰러져버린 인도 청년에 대해 생각한다
여기가 비좁다고 느껴질 때마다
히말라야 근처에까지 갔다가
산그늘이 잡아당기면 딸려들어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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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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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괘종 시계



나,이번 생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손만 댔다 하면 중고품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쾌종 시계가 오후 2시가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
쾌종 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막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벨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면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쾌종 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평의 삶: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그래,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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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을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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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初經을 막 시작한 딸 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리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 ;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
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자의 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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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스런 사랑



용암물이 머리 위로 내려올 때
으스러져라 서로를 껴안은 한 남녀;
그 속에 죽음도 공것으로 녹아버리고
필사적인 사랑은 폼페이의 돌에
목의 힘줄까지 불끈 돋은
벗은 생을 정지시켜놓았구나

이 추운 날
터미널에 나가 기다리고 싶었던 그대,
아직 우리에게 체온이 있다면
그대와 저 얼음 속에 들어가
서로 으스져라 껴안을 때
그대 더러운 부분까지 내 것이 되는
재앙스런 사랑의
이 더운 옷자락 한가닥
걸쳐두고 싶구나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아무리 하기 힘든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화산암 속에서든 얼음 속에서든
하얀 김처럼 남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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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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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 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욱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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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光州


하늘과 땅을 溶接하는 보라色 빛
하늘의 뿌리 잠시 보여준 뒤
환희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帝釋天,
저 멀리 구름장 밑으로
우뢰 소리, 도라무깡처럼 우르르르르 굴러오네
이윽고 비가 빛이 되고
願을 세우니, 거짓말이나니
희망은 作用하는 거짓말이므로

전남대학교 정문
문짝 없는 문, 해탈했네
아구탕처럼 입 쩍 벌리고 털난 鐵齒 드러낸
아수라 아귀, 울퉁불퉁 종기 난 쇠방망이 들고
無門 앞에 서 있고, 어?
없는 것들이 있네,
좋은 것으로 나아가는 문 앞에는
어째서 꼭 나쁜 것들이 있을까?
푸르스름한 고춧가루 안개라
용과 봉황 모양으로
버즘나무숲 위로 자욱하게 기어오르고
눈물을 담은 능금 열매들이 후두두두둑
다시 그 자리에 떨어지네
어메, 저 잡것들, 헛것들이 힘쓰네이
헛것들아, 헛것들아, 문 한번 지나간다고
해탈할까마는 이 문은 지나가는 것이제
빠져나가는 구멍이 아니랑게
선남선녀들, 아름다운 舌音과 母音으로
일렀으나 아귀들, 헛것들인지라
그리고 대저 헛것들일수록 불안감이
증가시키는 더 큰 힘을 쓰는지라
종기퉁성이 쇠방망이 휘두르며 더 날뒤네
이에 선남선녀들, 해탈문 아래 도솔천 계곡에
내려가 지천으로 불꽃핀 불꽃들 꺾어
이 헛것들, 물러가라
이 헛것들 뒤의 더 큰 헛것들, 물러가라
이 헛것들 뒤이 더 큰 헛것들 뒤의 더 더 큰
헛것들, 물러가라, 물러가라, 외치며 던지니
그 꽃들만 성층권 밖으로 뚫고 나가
보이지 않네

상점 주인들이 수도 호스로 길을 씻고
그날 밤, 꽃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
獅子座, 환히 點燈하고 나타나네
돌덩어리에다가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넣으면
별이 되었을꼬

공용 터미널
나는 이렇게 들었네
이 종점은 다시 모든 곳 十方世界로 출발한다고
떠나고 돌아오고
업 싣고 갔던 소 달구지, 적재량 초과되어
입에 진득한 비누 거품 물고
때로는 낮은 클라리넷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만겁 인연의 낡은 驛舍로 돌아오고
떠나고 돌아오고
돌아오고 떠나고
좀체 브레이크가 없는 수레바퀴 아래
풀을 먹는 벌레
풀을 먹은 벌레를 먹는 딴 벌레
풀을 먹은 벌레를 먹는 딴 벌레를 먹는 물고기
그 물고기를 먹는 새
그 물고기를 먹은 새를 먹는 짐승
그 물고기를 먹은 새를 먹은 짐승들을 먹는 사람들
아, 수레바퀴여
결과를 다시 밟아 잡아먹는 원인이여
그해 佛紀 이천오백스무네 번째 부처님 오신 날
어찌하여 진리는 말도 안 되는 역설로
복수하였는지요

약국 앞 길에 괴어둔 자전거
뒷바퀴를 한 아이가 돌리고 있네
시계 톱니 음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아름다운 바퀴살
짐을 내린 그 자전거 타고
그 아이, 벌써 몇 세상 갔네

광주 공원
나는 여러 군데서 여러 번 이렇게 들었네
화엄도 말짱 구라고
부처도 베어버리자고
옳도다, 화엄도 구라엿고
부처도 이미 베어져 있었네
잔뜩 바람먹은 떡갈나무숲 위로 펄럭이던
天幕 갑자기 暗電되던 날
사람 대가리가 뽀개진 수박 덩이처럼 뒹굴고
사람이 없어졌으므로
부처도 없어졌네
사람이 없어졌으므로 부처도
터져나온 내장은 저렇게 순대로
몸뚱어리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다만
대가리만 남아 푸욱 삶아져
저렇게 눈감고 소쿠리에 臥禪하고 있는 거이네

광주때
두개골 파손된 사진
광주때
두개골 파손된 사진

나무관세음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떡갈나무숲 공원 광장 건너편 순대국집 앞
아저씨는 프로판가스 화염 분사기로 돼지머리를
지지고 아주머니는 합성고무 다라이에 든
출렁출렁한 내장들 피를 씻어낸다
그 핏물 광주천으로 흘러내리고
그 검은 궁창, 멀리 하남 땅
흰 극락강으로 가고 있다

어는 날
극락강 사구에서
목 없는 돌부처들,
洪水에 씻겨
올라왔지
國會 光州特委 위원들이 혹시나 하고 다녀가고
그렇지만 부처는 이렇게
없어진 채로,
늘,
있네
부활도 하지 않고
죽지도 않고

광천도
我聞如是
광주보다 먼저 있는 이름,빛의 샘
그래서 무등 경기장 왼쪽 외야석 상공
새털구름 깃털에 노을이 살짝 비낀,
부끄럼타는 듯한 아름다운 서광을
프로야구 중계 화면이 전국에 보여주기도 하네
광주로 빛을 다 보내고
어둑어둑해지면
일신방직공장 정문 앞 여공들 삼교대하고
윤상원의 누이, 형광등 아래에서
끊긴 실을 찾고 있네

오빠, 아직 이 실 끝에 있능가

세상은 죄다 사람이 지은 거라고
쬐그만 들불로 비춰주었던 오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은
형광등 아래
아직도 이 세상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세상을 다감고도 남을 실타래 어디에 걸려 있구만이
노동자 보살이 이렇게 해서 끄집어낸
형광등 아래의 빛실이
충장로 밤거리를 걷는 사람의 옷 솔기에서
풀리고 있네

끝없이 북으로 뻗친 비단江
광천동을 돌아 금남로에 이른 영업둉 택시,
양쪽에 물날개 달고 억수 속을 질주하네
물은 맑아 물 저 및
거뭇거뭇한 아스팔트가 보이고
옛날에는 이 강 밑으로 길이엇는가보죠,
묻고 싶엇네
불과 몇 달 전 일 같은데 벌써 유적이 되어
밑바닥으로 내려가 있는 길,
수면에 기총소사하듯 소나기 두드러기
무수히 돋는 먹물강이구나
나는 그렇게 들었네
검은 무쇠소가 이 강에 들어갔다 나오면
흰 羽緞 같은 소가 된다는데
보면 깊어도 서면 발바닥에도 못 미치는
이 비단 두께의 강에 어떻게 들어가랴
그 당시 자기도 큰 코끼리 등에 타고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하는 기사님
그래서인가, 나이에 비해 머리카락 어느새 허옇네
그 당시 가로수였던 은행나무들 물 위로 올라와
호우주의보가 몰고 온 비바람에도 휘지 않고
맞서 함성을 지르네
도청 앞 Y건물에 내려서 보니
왔던 길,
끝없이 북으로 뻗친 비단강, 뿌우옇게
보이지 않는 靑天江 하늘 아래로 흘러드는 듯하네

도청
약속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온다던 사람 아직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못해 사자좌에서 일어난 사자
몸을 털며 크게 포효하니 고막이 찢어지게
하늘이 번개표 모양으로 찢어지고
이윽고, 꽃이 되었다가 별이되었던
돌, 우박 덜어지는구나
이 비에 사람이 어떻게 오랴만
때로 진실은 약속을 깸으로써 오기도 하지
우리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건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 가장 온전하게, 와있듯이
이 비 그치면
이 비 그치면

저 도청 앞 분수대에
유리 줄기 나무 높이 올라오르리라
그 투명 가지가지마다
지금가지 참았던 눈물 힘껏 빨아올려
유리나무 상공에 물방울 뿌린듯
수많은 魔尼 보배 꽃, 빛 되리라
그때에 온 사찰과 교회와 성당과 무당에서
다 함께 종 울리고
집집마다 들고 나온 연등에서도 빛의
긴 범종 소리 따라 울리리라
상점도 은행도 창고도 모두 열어두고
기쁜 마음 널리 내는 강 같은 사람들
發光體처럼 절로 비나는 얼굴들 하고
젊은이는 무든 태우고 늙은이는 서로 업고
어린이는 꽃 갓끈 빛난 신 신겨 앞세우고
금남로로, 금남로로, 노도청으로, 도청으로
十方으로 큰 우레 소리 두루 내는 강처럼
흘러들고 흘러나오고
그때여, 須彌山에서 날아와 궅어 있던
무등산이 비로서 두 날개 쫘악 펴고
羽化昇天하니, 정수리에 박혀 잇던
레이다 기지 산산조각나는구나
땅에서는 환호성, 하늘에서는
비밀한 불꽃 빛 천둥음악
마침내 망월로 가는 길목 山水에는
기쁜 눈으로 세상 보는 보리수 꽃들
푸르른 억만 송이, 작은 귓속말 속삭이고
오시는 때 맞춰 황금 깃털 수탉이 숲 위로
구름 憧奇 일으키며 힘차게 우는 鷄林
그때에 도둑, 깡패, 마약범, 가정파괴범,
국가보안법 관련자, 장기수 공산주의자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교도소 문을 나오고
그날 밤, 연꽃 달 환히 띠우고
여어러 세상 흘러온 굽이굽이 千江이
산기슭에 닿아 있는 月山, 처음으로
물 속 연꽃 다 보았던 개 한 마리
늑대 울음 울며 산으로 돌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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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새벽 산에서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槍 꽃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이제는 그대를 잊으려 하지도 않으리
산을 내려오면
산은 하늘에 두고 온 섬이었다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
내 希望의 한 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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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으로


이 문으로 들어가면 넓고
이 문을 나오면 좁다
이 문에는 종교성이 있다
풀잎 하나가 풀잎의
전체를 보여 준다
제자리 걸음으로
수십 킬로 먼 곳까지 다녀온다
끼니 때마다 내 밥의
1/3을 비둘기에게 던져 주고
갇혀 있음으로
내 몸이 무장무장 투명해진다
새들이 내 흉곽으로 기어들어와
날개 짓는 소리가 소란하다
내려가고 싶다
유리 같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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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서


바람 속에
사람들이......
아이구 이 냄새,
사람들이 살았네

가까이 가보면
마을 앞 흙벽에 붙은
작은
붉은 우체통

마을과 마을 사이
들녘을 바라보면
온갖 목숨이 아깝고
안타깝도록 아름답고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장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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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靈 山)


마을 가까이 오면
산은 의인화된다
마을 사람들은 앞산을 의상대라 부르고 있었다
의상대는 겸재식 부벽준의 도끼로 도끼로 깎여 있다

천여 년 전 의상은 저 앞산에서 천공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는 이
사실로써 그의 라이방 원효에게 재고 싶어졌다. 여수 돌산 영구암에서
놀고 있던 원효가 어느 날 저녁 의상에게 들렀다. 이튿날 한식경이 되
어도 의상은 원효에게 공양을 갖다줄 생각을 아니하는 거디었다.
"의상 이놈아, 형님한테 밥 안주냐?"
"형은 왜 이리 촐삭거려? 좀 기다려봐. 곧 소식이 올 거야."
그러나 그놈의 소식은 오질 않았다. 배고프다고 투덜거리며 원효는
그 길로 내려가버렸다.
원효가 간 뒤 의상은 천공을 받았다. 그는 또 한번 뼈아픈 질투심의
도끼에 찍혔다. 의상은 그 산을 버렸다.

산을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몸무게에 의해 실존주의자가 되
었다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유물론자가 된다.
서울을 빠져나올 때, 아내에게 "아무도 책임지려 하질 않아. 이건
내가 내린 유배야"라고 말했던 것도 우스꽝스럽고 부끄럽더군.
불행은 마력을 갖는다.
천년 전 의상이 버린 산을 오늘 내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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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 기다림


아직도 저쪽에서는 연락이 없다
내 삶에 이미 와 있었어야 할 어떤 기별
밥상에 앉아 팍팍한 밥알을 씹고 있는 동안에도
내 눈은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간
현대중공업 노동자 아래의 구직난을,
그러나 개가 기다리고 있는 기별은 그런 것은 아니다,
고 속으로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보고 있다
저쪽은 나를 원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어쩌다가 삶에 저쪽이 있게 되었는지
수술대에 누워 그이를 보내놓고
그녀가 유리문으로 돌아서서 소리나지 않게
흔들리고 있었을 때도
바로 내 발등 앞에까지 저쪽이 와 있었다
저쪽, 저어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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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집


산수동(山水洞) 옛집엘 가보았더니 철로도 없어지고 옛 그 집에 약국이 들
어서 있었다. 거기에 웬 원숭이가 있어 철창 사이로 손을 넣어 한참
을 같이 놀았다. 갓난아이같이 볼그레한 원숭이 손바닥에도 손금이
제 운명을 그려놓았다는 게 신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으로 돌아와, 그날 밤부터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며
배때기며 낯짝이며 득득 긁어대고 있자니, 도반이 다가와, 웬 잔나
비가 들어앉았냐며 문을 밖에서 잠가버린다. 내 귀를 뚫고 1940년대
산 기차가 침을 퇴퇴, 뱉으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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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의 잣나무


텔레비전 가게 앞을 지나가다 얼핏,
그 집 안집으로 난 문이 거울인 줄 알고
얼른 내 얼굴을 비췄더니
거울이 아니라 문이었어
보려고 했으니까 보였지 않겠어, 쯔쯧
쯔쯔쯔쯧
쓰러져 있는 노동자들을 발로 지근지근 밟고
터진 머리를 또 때리러 가는 쇠파이프들이
16인치, 20인치 화면에 줌 인, 중인
거울인 줄 알았더니 문이었어
그리 가면 들어가버리는 문
뜰에는 한 그루 잣나무
잡으면 평면인 나무
그렇지만 활처럼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자라나는 잣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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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西風) 앞에서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


-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문학과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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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시인 소개


시인.
본명 : 황재우
활동분야 : 시인
출생지 : 전남 해남
주요수상 : 김수영문학상(1983) 등
주요저서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 《뼈아픈 후회》(1993)

195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1968년 광주제일고교에 입학했다. 1972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 강제 입영하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1985년부터 한신대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 서강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였다.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 지성》에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 등단하였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전혀 다르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극단 연우에 의해 연극으로 공연되었다. 《나는 너다》(1987)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또한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하였다.

《게눈 속의 연꽃》(1991)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199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다.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가 있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는 '시 형태 파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시적 화자의 자기 부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탕하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또한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 밖에 《예술사의 철학》 《큐비즘》등의 저서가 있고,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1985),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 《등우량선》(1998)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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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황지우

* 음울했던 80년대, 거침없는 시어와 새롭고 낯선 형식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 지식인과 소시민의 허위의식과 맞서 싸웠던 시인 황지우. 그는 80년대 한국시에 있어 하나의 상징이었다.
황지우가 새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를 냈다. ‘게 눈 속의 연꽃’(1990)을 낸 지 꼭 8년만이다.

격랑의 시대를 헤쳐온 한 시인이, 이념이 무너져버린 90년대의 진공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 공황을 겪었던 한 시인이, 지금 세기말의 끝자락을 어떻게 건너가고 있는지. 이 시집엔 그러한 고뇌와 사유의 흔적이 짙게 깔려 있다.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뼈아픈 후회’중)

이 시집은 우선 그 제목부터가 낭만적이다. 삶의 허무가 짙게 풍겨나기도 하고 어쩌면 속세에 연연해하지 않는 초월의 모습 같기도 하다.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니 과거의 ‘내’가 속절없어 보인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생이 끔찍해졌다/…/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중)

그러나 그의 시는 상실과 허무에 매몰되지 않는다. 상실이나 결핍은 출발이고 힘이기 때문이다. ‘내장사 가는 벚꽃길;어쩌다 한순간/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저 화엄탕에 발가벗고 들어가/생을 바꿔가지고 나오고 싶다’에서처럼 화엄(華嚴)이나 선(禪)의 불교적 색채도 어른거린다. 이념 투쟁보다 더 깊은 곳으로 그의 시는 가고 있다.

그는 87년 시집 ‘나는 너다’의 후기에서 다스 카피탈(Das Kapital·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뜻함)과 화엄 사이, 그 좌와 우의 깊은 간극에 대해 고뇌했고 그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시에 대해 고뇌했었다. 당시 그는 물론 다스 카피탈에 가까웠고 지금은 화엄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시는 하나에 편향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양자의 포괄을 추구한다. 황지우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도인(道人)의 길로 가면 시가 필요하지 않고 그렇다고 시가 투쟁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는 둘 사이의 경계선,그 떨림이 아닐까.”

떨림이 없으면 시의 감동도 없다. 그가 종종 ‘아, 옛날에 내 노래를 들어주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다시 탄압이나 받았으면’하고 말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떨리고 그의 시는 더욱 긴장한다. 미세한 떨림은 어쩌면 그의 촉수가 더 예민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다른 새로움을 찾아나서는 출발이기도 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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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당선작>유마주의적 세계관의 변주-改作을 통해 본 황지우의 시세계


1. 詩적 전략과 개작 한 시인이 자신이 이미 발표했던 작품을 개작(改作)하여 세상에 다시 내놓았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내적 동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 내적 동인을 찾아내면 시인의 시작과정과 개작속에 드러나는 마음의 지도까지도 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황지우의 일곱번째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1998,문학과지성사·이하 ‘어느 날…’로 약칭) 는 그런 점에서 여러가지로 주목되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각종 잡지에 발표했던 작품들이 작게는 한 두 행, 많게는 거의 전면적으로 개작되어 실려 있다. 그 중에는 시집에 수록되지 못한 작품들도 여럿 있다. 특히 ‘조각시집’이라 불리는 이전 시집‘저물면서 빛나는 바다’(1995,학고재·이하 ‘저물면서…’로 약칭)에 실렸던 작품들도 여러 곳에 걸쳐 수정되어 실려있는데, 그 수정의 과정은 황지우의 시작과정과 90년대 이후 변모해가는 마음의 지도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만큼 그가 보여주는 개작의 과정은 집요하고도, 전면적이다.


80년대를 노도와 같이 통과해온 시인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있어 90년대는 표면적으로 일종의 휴지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황지우는 1990년 ‘게 눈속의 연꽃’을 펴낸 이후 시 대신 조각에 몰두해 전시회를 가졌고, 그 기록을 ‘저물면서…’에 남겼다. 그가 시집을 펴낸 것은 ‘게 눈속의 연꽃’ 이후 8년만의 일이다. 그가 그 사이 시집 형태로 시를 발표한 것은 시화집 성격인 ‘저물면서…’에 실린 12편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3년 뒤 ‘어느 날…’을 펴내면서 여기에 실린 12편의 작품중 3편은 버리고, 나머지 9편만 살려놓는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여러 곳에 손을 댄, 전면적이라 할 수 있는 개작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내놓았다. 그가 얼마나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짧은 시의 개작에서 쉽게 드러난다.


1)물기 남은 바닷가에 긴 다리로 서 있는 물새 그림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서서 멍하니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욱 빛나는 저녁 바다를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전문, ‘저물면서…’, 19952)긴 외다리로 서 있는 물새가 졸리는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전문, ‘어느 날…’, 1998 3년의 시차를 두고 개작 발표된 위의 작품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1)의 작품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에 무게가 주어져 상실감을 강조하는데 반해 2)의 작품은 졸리는 옆눈에 무게가 주어져 권태와 더불어 존재와의 그 어떤 거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멍하니’라는 표현이 ‘맹하게’라고 바뀐 것도 이같은 변화 때문이다. 특히 1)은 ‘물새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자아, 혹은 자기 내면에의 침잠이 도드라지는데 반해, 이를 삭제한 2)는 ‘긴 외다리’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존재의 근원적 외로움이 강조되고 있다.


이처럼 황지우는 짧은 시의 개작에서도 섬세한 변화를 주어 울림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 변화는 군살을 빼고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는 형식의 수정에서부터, 의미를 덧대거나 변모시키는 내용수정, 그리고 위의 작품처럼 자신의 시를 패러디하는 차원으로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개작 과정의 추적을 통해 황지우의 시작과정과 90년대를 통과해가는 마음의 지도를 밝혀 낼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한 시인에게 있어 개작이 지닌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작게는 퇴고의 부족을 자인하는 결과일 수도 있고, 크게는 한편의 시 속에 담은 세계관의 변모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퇴고의 부족을 자인하는 결과라 할 지라도 시인의 시작과정을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물며 세계관의 변모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문제제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황지우의 경우처럼 여러 편의 작품에 동시적으로 개작을 진행했다면 그것은 주목받을 만한 현상이다.


황지우의 개작이 주목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시를 대하는 그의 시관(詩觀)에서도 연유한다. 그는 80년대를 ‘나는 시가 아니라 시적인 것을 추구한다’라는 명제를 앞세우고 온몸으로 통과해 나갔다. 이 명제속에 담긴 전언은 시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 시인에 의해 얼마든지 발견되어질 수 있는 ‘움직이는 실체’ 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시적인 것을 들추어 내는 발견이자 발상이다. 황지우는 이를 두고 “시를 언어에서 출발하지 말고,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해보라” (‘버라이어티 쇼, 1984’시작메모, ‘겨울 -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민음사)고 표현했다. 그는 이와 함께 ‘전략’이란 용어도 공공연히 사용했다. 즉 황지우에게 있어 시쓰기는 시적인 것을 발견해내 시로 만드는 ‘전략’인 것이다. 해체적 시쓰기는 이러한 시관의 핵심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발견과 전략을 시쓰기의 기둥으로 삼고 있는 황지우에게 있어 개작은 발견된 대상의 수정 내지 전략의 수정을 뜻한다. 그것은 곧 개작과정이 시인이 90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통과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시적 궤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문안에서 우는 검은 소 발견과 전략이라는 황지우식 시쓰기의 두 기둥으로 ‘어느날…’이전의 시세계를 일별해보면 크게 두가지 세계를 발견해낼 수 있다. 부정적 현실 인식과 바깥의 세계를 향한 낭만적 열망이 충돌하는 초기의 시세계가 그 충돌의 원인이 된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것이 시적’이라는 전략속에 쓰여졌다면, 87년 대선 패배와 공산주의 몰락이후 우울한 자기 성찰과 불교적 사유를 결합시키고자 한 그의 시세계는 선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라는 전략속에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인 것이 시적이라는 전략이 필연코 풍자를 동반한다면, 선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라는 전략은 깨달음이라는 화두를 전제로 한다. 그가 ‘게 눈 속의 연꽃’에서 수시로 깨달음을 내세우는 것은 이러한 전략적 장치의 하나라 볼 수 있다. “넘기면 없어질 것 같은 한 장/ 아, 저것을 넘기면 과연 空일까/송곳으로 내 눈알을 찔러버리고 싶다.”(‘광양길’ 부분)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세계는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변모하게 된다. 다음 작품은 그 변모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1)아, 눈 먼 것은 聖스러운 병이다, 지렁이 하나가 진흙을 기어 갔구나 해를 지탱시켜 주는 원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어찌 하랴,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어 있을 때다 雨後, 붉은 봉숭아 꽃잎 진 곳 눈 먼 삶이 한가닥 선을 마쳐 놓았구나 -‘바깥에의 반가사유’ 전문, ‘저물면서…’, 19952)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전문, ‘어느 날…’, 1998 먼저 발표된 1)에서 시를 끌고 가는 중심 이미지는 ‘지렁이 하나’이다. 이 지렁이에 대한 이미지가 ‘눈 먼 삶이 한가닥 선을 마쳐 놓았구나’라는 마지막 행을 이끌어 내 시 전체의 무게가 ‘한가닥 선을 마쳐놓은 눈 먼 삶’에 기울게 된다. 이는 나중 발표된 시에는 없는 ‘雨後, 붉은 봉숭아 꽃잎 진 곳’이라는 행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에 의해 더욱 고조된다.


그러나 나중 발표된 2)에서 시를 끌고 가는 중심 이미지는 ‘검은 장수하늘소’이다.


이 검은 장수하늘소에 대한 이미지가 문 안에서 우는 ‘검은 소’를 이끌어 내 시 전체의 무게는 ‘알지만 나갈 수 없는, 無窮의 바깥’을 꿈꾸며 우는 ‘검은 소’에 실리게 된다.


‘한가닥 선을 마쳐놓은 눈 먼 삶’에 대한 경도에서, ‘알지만 나갈 수 없는, 무궁의 바깥을 꿈꾸며 우는 검은 소’에로의 변화속에는, 시인이 삶을 단순하게 수락하는 대신, 안과 바깥이라는 대립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 의지에 대한 표명이 깨달음이란 화두를 표현하는 어조까지 바꾸어 ‘어찌 하랴,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어 있을 때다’라는 영탄조의 구절을 ‘어찌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라는 완곡조의 구절로 변형되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에다 앞선 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를 등장시켜 시를 보다 입체화시키고, 나아가 인간화시키고 있다. 눈이 없는 ‘지렁이 하나’가 열어주는 공간은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단순화 되고, 관념적인 공간인데 반해, 짐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보는 넙치가 열어주는 공간은 입체적이고, 인간화된 공간이다. 시제목이 ‘바깥에의 반가사유’에서, 보다 지향점이 명확한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로 바뀐 것도 이러한 변모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시의 개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시인이 ‘무궁의 바깥’에 대한 사유를 통해, ‘안’의 세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눈 먼 삶이 마쳐 놓은 한가닥 선’의 절대성보다는, 문 안에서 우는 검은 소의 구체적 울음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절대성보다 안과 바깥에 대한 사유를 통해 시간적 공간적 확장, 혹은 열림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변모된 태도는 다음의 개작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1) 그리고 사람들이 땅만 보면서 바삐 지나가는 것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버스에서 힐낏 보았을 때 (중략)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무한하다 -‘이 세상의 고요’, ‘저물면서…’, 19952) 그리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을 재판 받으러 가는 호송 버스에서 힐끔 보았을 때 (중략) 그때, 이 세상은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한없이 나른하고 無窮과 닿아 있다 자살하고 싶은 한 극치를 순간 열어준 것이다 -‘세상의 고요’, ‘어느 날…’, 1998 ‘이 세상이 문득 이 세상이 아닌 듯 한 때들을 포착해 일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생의 이면을 들추어내는 위 작품도 황지우의 개작이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황지우는 1)에서 재판받으러 가는 호송버스안에서 본 것이 땅만 보면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가, 개작한 시에서는 투명하고 추운 하늘이었다고 했다.


1)은 지금 나는 절박하게 끌려가는데 유리창 너머의 사람들은 무심하게, 혹은 의식적인 외면을 통해 바삐 지나간다는 느낌을 주어 나와 세계의 단절, 불화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데 반해 2)는 이 단절과 불화 대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이라는 존재론적인 외로움, 소외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힐낏 ’이라는 조소조의 표현이 보다 단정한 ‘힐끔’이라는 표현으로 바뀐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마지막 연의 개작도 의미심장하다. 1)이 고요하고 나른하다는 단순한 표현으로 그치고 있는데 반해 2)는 그 세계가 무궁과 닿아있기 때문에 자살하고 싶은 한 극치를 순간적으로 열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시적화자가 말하는 무궁이란 바깥의 세계와 대립되는 안의 세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무궁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바깥에 대한 사유도 없다는 점에서 무궁에 대한 인식은 다분히 존재론적인 인식이다. 시인이 ‘저물면서…’에는 없던 ‘무궁’이란 표현을 개작을 통해 덧붙였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황지우에게 있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시세계를 지배했던 ‘선적인 것이 시적’이라는 태도는 개작에서도 드러났듯 변모되었다. 그 변모는 이 세계가 무궁과 닿아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고, 그 무궁의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속에서 부풀어 오른 것이다. 그 인식과 열망은 수동적인 삶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관념적인 절대성에의 추구를 보다 입체적이고 인간적인 존재 탐구로 변모시켰다. 그 변모는 영탄, 조소조의 어조보다 완곡하고 단정한 어조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3. 문안에서의 초월 80년대 후반의 방황을 담고 있는 ‘게 눈 속의 연꽃’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어휘가 길, 집, 산 등이었다면 90년대를 통과하는 궤적을 담고 있는 ‘어느 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어휘는 삶(生),막(膜), 거울 등이다. 특히 길과 삶(生)은 양 시집에서 각각 70회 이상씩 등장하는데 이는 거의 수록된 작품수와 비슷한 분량이다.


길, 집, 산등이 떠도는 자의 방황과 회한을 드러내는데 적절한 이미지라면 삶(生), 막(膜), 거울등은 무엇엔가 갇힌 자의 응시와 탐구를 드러내는데 합당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이들 이미지를 받쳐주는 공간적 모티프가 각각 겨울과 대낮으로 대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황과 회한으로 떠도는 자의 공간이 눈 내리는 겨울이라면, 무엇엔가 갇힌 자의 응시와 탐구는 햇빛 환한 낮에도 별(‘낮에 나온 별자리’)을 보는 환(幻)과 착란의 공간에 머문다. ‘이는 작품들의 제목에서도 나타난다. ‘게 눈 속의 연꽃’에 실린 작품들이 ‘길’,‘집’,‘겨울숲’,‘눈보라’,‘雪景’, ‘겨울산’등의 제목을, ‘어느날…’에 실린 작품들이 ‘낮에 나온 별자리’,‘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우울한 거울’(연작), ‘태양 연못속에 칼을 던지다’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갇힌 자는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나가거나, 초월을 꿈꾸며 갇혀 있다는 마음을 벗어나려고 애쓴다. 이때 초월은 완전한 탈출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갇혀 있다는 마음은 탈출시켜준다. ‘게 눈속의 연꽃’에서 “날 새고 눈 그쳐 있다/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있다”(‘雪景’) “날기 위해 절벽으로 달려가는 새처럼/내 희망의 한가운데에는 텅 비어 있었다”(‘비 그친 새벽 산에서’) 고 절망과 상실감을 노래하던 시인이 초월을 꿈꾸며 어떻게 회생해가고 있는가는 두 번의 개작을 거친 다음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1)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고향…… 무한한 지평선에 게으르게, 가로 눕고 싶다; 印度, 인디아 ! 無能이 죄가 되지 않고 삶을 한번쯤 되돌릴 수 있는 그곳 -‘노스탤지어’ 전문, ‘문학과사회’ 1993년 봄호2)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건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고향… 짐승과 성자가 한 水準에 앉아 있는 지평선에 남루한 이 헌옷,벗어두고 싶다 벗으면 생애도 함께 따라 올라오는 나의 인도, 누구의 것도 아닌 인디아 ! 무한이 무능이고 무능이 무죄한, 삶을 몇 번이고 되물릴 수 있는, 그곳 -‘노스탤지어’ 전문, ‘저물면서…’, 19953) 나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고향………무한한 지평선에 게으르게, 가로눕고 싶다; 인도, 인디아! 무능이 죄가 되지 않고 삶을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그곳 온갖 야한 체위로 성애를 조각한 사원; 초월을 기쁨으로 이끄는 계단 올라가면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 이 있는 그곳 -‘노스탤지어’전문, ‘어느 날…’ , 1998 2, 3년의 시간차를 두고 각각 수정 발표된 이들 시편들은 시 한 편을 완성해가는 황지우의 공력과 고향찾기로 상징되는 초월에의 경사, 그리고 황지우가 90년대를 지나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가장 먼저 발표된 1)은 시적화자가 삶을 한번쯤 되돌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인도를 상정해놓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함을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직도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는 표현은 시적화자가 아직도 길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길은 ‘게 눈속의 연꽃’의 세계처럼 방황과 회한의 길이 아니라 고향에 비유되는 인도라는 구체적 목표지점을 갖고 있는 길이다. 길은 길이되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품들과 구별된다.


2년뒤에 발표된 2)는 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근원이 무엇 때문인지를 시적화자 스스로가 자문해보는 작품이다. 그 고향은 짐승과 성자가 한 수준에 앉아 있고, 남루한 헌옷을 벗으면 생애도 함께 따라 올라오는 곳이다. 시적화자는 그곳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인도’임을 강조한다. 1)에 없던 ‘나의’ ‘누구의 것도 아닌’이란 표현은 두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인도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 인도가 아니라 내가 나의 상상속에 그린 인도임을 강조한 것으로, 인도를 그냥 문맥 그대로의 인도로 보지 못하는 타자 혹은 독자에 대한 짜증이 묻어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인도 자체가 아무에게나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인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1)과 2)의 중요한 차이는 마지막 행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적화자는 1)에서 인도를 ‘삶을 한번쯤 되돌릴 수 있는 그곳’이라고 했다가 2)에서는 ‘삶을 몇 번이고 되물릴 수 있는, 그곳’이라고 표현했다. 되돌린다는 것은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함의한 과거지향적 표현인데 반해 몇 번이고 되물린다는 것은 매번 새롭게 태어나고 싶다는 신생(新生)의 의미를 품고 있다.


3)에 와서 시인은 2)의 설명투 표현을 버리고 돌연 1)로 다시 돌아간다. 제목까지 1)로 되돌아간 시인은 대신 인도를 꿈꾸는 다른 이유를 덧댄다. 그 덧댐은 두가지 층위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하나는 온갖 야한 체위로 성애를 조각한 사원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다 인간적(세속적)이고, 보다 역동적 깨달음을 주는 곳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바깥을 열어주는 문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2)에 나온 ‘몇 번이고’라는 표현 대신 ‘한 번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러번 되물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한번쯤 되물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보다 지순한 깨달음 혹은 보다 순정한 신생에의 열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1) 2) 3)은 각각 발표된 시기에 따라 다른 울림을 준다. 1)이 단순한 동경 차원에서 인도를 상정했다면 2)에서는 그 동경의 근원을 시인이 자문함으로써 동경의 대상에 관념의 외피를 입혔다. 그러나 3)에서는 처음에 동경했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아가 2)에 입혔던 관념의 옷을 벗기고 대신 인간적 체취와 순정한 신생에의 의미를 덧댔다. 그 과정에서 ‘노스탤지어’는 과거지향적에서 미래지향적인 노스탤지어로 변했으며, 관념적 공간에서 보다 생생한 공간으로 옮겨갔다. 미래지향적 노스탤지어는 달리 말하면 문 안에서의 초월이자, 자기회생의 길이라 할 수 있다.


4.돈오점수(頓悟漸修)적 시쓰기의 의미 ‘선적인 것이 시적’이라는 전략속에 쓰여진 ‘게 눈 속의 연꽃’에서 황지우가 펼쳐보인 세계는 불교용어를 빌리면 돈오돈수(頓悟頓修)적 시쓰기의 세계이다. 깨침과 닦음이 둘 다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완성된다는 의미의 돈오돈수를 시쓰기에 차용하면 직관적 시쓰기를 중시하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개작을 통해 이루어진 ‘어느날…’의 시세계는 직관적 깨달음에 도달한 세계라도 오랜 세월을 두고 되새김질을 해서 의미를 덧대야 한다는 돈오점수적 글쓰기의 태도라 할 수 있다. ‘불교의 돈점논쟁’에서도 알수 있듯이 돈오돈수식 글쓰기는 직관의 힘을 과신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기 쉽고, 돈오점수식 글쓰기는 알음알이(知解)에 치우쳐 직관의 절대성을 흐리게 하기 쉽다.


황지우가 어떻게 돈오돈수식 글쓰기에서 돈오점수식 글쓰기로 옮겨갔는가는 다음 시들의 변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천변 수양버들 아래 간지럼을 멕이는 이 아리아리한 봄밤 아, 뭐라고 말해야지 肉欲的인 봄밤 수은등 아래 사직공원 사쿠라곶잎 다 지고 이 스펀지 같은 봄밤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한낱 착각 같은 아름다움을 보고 갈 뿐인가 -‘봄 밤’부분 , ‘게 눈속의 연꽃’, 1990 2) 사직공원(社稷公園)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사춘기 때 수음(手淫) 직후의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罪意識)처럼 벚꽃이 추하게, 다 졌다 나는 나의 생(生)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벚꽃’ 전문, ‘실천문학’ 1992년 봄호 3) 사직공원 비탈길, 벚꽃이 필 때면 나는 아팠다 견디기 위해 도취했다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들이 수은등을 받고 있을 때 그 아래에선 어떤 죄악도 아름다워 아무나 붙잡고 입맞추고 싶고 깬 소주병으로 긋고 싶은 봄밤이었다 사춘기 때 수음 직후의 그 죽어버리고 싶은 죄의식처럼, 그 똥덩어리에 뚝뚝 떨어지던 죄처럼, 벚꽃이 추악하게, 다 졌을 때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때 이미 다 알았다 이제는 그 살의의 빛,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 이젠 나를 떠나라고 말한, 오직 축하해주고 싶은, 늦은 사랑을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서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 수은등을 올려다본다 -‘수은등 아래 벚꽃’전문, ‘어느 날…’, 1998 벚꽃 지는 봄날의 정경을 노래한 위의 시들은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변화되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1)에서 시인은 ‘이 아리아리한 봄밤’을 ‘아 뭐라고 말해야지’라고 고민하다가 ‘肉欲적인 봄밤’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서 ‘사람들은 세상에 와서 한낱 착각 같은 아름다움을 보고 갈 뿐인가’라는 깨달음을 노래한다. 시인은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사태에 고민하다가 마침내 이름 붙이기에 성공하고, 동시에 이 사태가 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이 과정이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직관의 힘을 믿는 시쓰기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진행형에서 과거회상형으로 바뀐 2)는 젊은 시절로 상징되는 벚꽃 피던 시절의 도취와 광기를 돌아보고 그 벚꽃이 지고 난 뒤 다가온 절망감,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나는 나의 생이 이렇게 될 줄 그 때 이미 다 알았다’라는 표현은 ‘삶이 착각같은 아름다움만 보고 갈 뿐’이라는 1)의 깨달음에 대한 확인이다. 시인이 만약 2)의 세계에서 사유를 멈추고 말았다면 이 시는 단순한 회고와 확인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에 머물지 않고 개작을 통해 3)의 세계로 나아간다. 3)에서 중요한 것은 벚꽃이 아니라 벚꽃을 비추는 ‘수은등’이라는 존재이다. 시인은 똑같은 정경에서 1)과 2)에서는 없었던 수은등을 ‘발견’ 해낸다. 어떤 죄악이나 광기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수은등이 피안에서 이쪽으로 터져나온 꽃을 비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오직 축하해주고 싶도록 지순한 ‘늦은 사랑’을 통해 이를 깨닫는다. 늦은 사랑을 통해 그 죄마저 부럽고 그립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고, 나는 비로소 이번 생을 눈부시게 했던 벚꽃들 사이에서 수은등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수은등을 발견해냄으로써 시인은 죄악과 광기로 얼룩졌던 지난 시절에 대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껴안음의 세계에 닿을 수 있었다.


1)에서 3)으로의 변모는 되새김질을 거듭한 돈오점수식 시쓰기의 태도에서 가능한 세계이다. 개작을 통해 도달한 ‘어느 날…’의 시세계는 이 돈오점수식 시쓰기의 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5.유마주의적 세계관의 변주 황지우의 시세계를 끌고온 지배적인 정서는 환멸과 초월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부터 선을 보인 이 환멸과 초월은 이후에 나온 시집들에서 그때 그때 시인이 처한 상황과 세계인식의 변화에 따라 변주된다.


“나는 너다’와 ‘게 눈 속의 연꽃’이 환멸의 정서가 두드러진 시집이라면, ‘겨울-나무로부터 봄 나무에게로’는 초월이 두드러진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병든 자의 투병일기 같은 이같은 환멸과 초월의 변주를 이끌고 가는 황지우의 세계관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유마주의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유마는 무엇 때문에 병이 생겼느냐는 질문에 “모든 중생이 앓고 있으므로 나도 병을 앓고 있다. 만약 일체중생의 병이 사라지면 내 병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황지우는 이 유마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병에 대한 자각과 병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환멸,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초월의 이중주를 연주할 수 있었다.


황지우의 유마주의적 세계관에 대해서는 일찍이 김현도 지적(‘고난의 시학’, ‘말들의 풍경’)한 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황지우 자신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세계관으로 개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지우는 ‘어느 날…’의 후기에서 “나는 환자로서 병을 앓으면서 병을 가지고 깨달음을 실행했던 유마힐 생각이 많이 났다”고 고백했다. 이 후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이 유마힐에 대하여 ‘병을 가지고 깨달음을 실행’한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러므로, 길 가는 이들이여/ 그대 비록 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藥과 마음을 얻었으면,/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山經’,“게 눈 속의 연꽃’) 고 노래했던 이전의 낭만적 유마주의와는 구별된다. 앞서 인용한 작품들의 개작에서도 드러났듯이 황지우의 집요하고도 전면적인 개작속에는 이러한 변화된 유마주의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 문안에서 우는 검은 소에 대한 자각과 문안에서 꿈꾸는 초월은 이의 시적 표출이다.


유마주의적 세계관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문 안에서 우는 검은 소에 대한 자각은 자기 병듦에 대한 인식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눈 먼 삶이 마쳐 놓은 한가닥 선’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알지만 나갈 수 없는, 무궁의 바깥’에 대한 처절한 인식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聖스러운 병’이되 차원을 달리 하는 병이다. 초월에 대한 사유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무능이 죄가 되지 않는 곳’이라는 이유로 초월의 지향점이 된다면 그것은 무능한 자의 넋두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초월의 지향점에 대해 스스로 되묻고 인간적 호흡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곳이 보다 인간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이 되도록 했다. 초월이 기쁨으로, 과거지향적인 노스탤지어가 미래지향적인 노스탤지어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변화된 유마주의적 세계관은 길, 집, 산 (‘게 눈 속의 연꽃’)등이, 삶(생), 막, 거울 (‘어느 날…’)등으로 대체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길, 집, 산 등의 소재들은 병든 자의 방황과 회한을 드러내기에 합당한 반면 삶(생), 막, 거울 ‘어느날…’등으로 대체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길, 집, 산 등의 소재등은 병든 자의 구체적 모습을 직시하기에 적합한 소재들이다. 황지우의 시에서 전자의 소재들이 주로 낭만적 유마주의를 보여주었다면 후자의 소재들은 병의 근원을 입체적으로 조명, 이전의 낭만적 유마주의가 지닌 과장과 엄살기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황지우는 이러한 변모를 돈오점수식 글쓰기라 명명할 수 있는 개작을 통해 일구어 냈다. 돈오돈수와 대비되는 돈오점수식 글쓰기의 세계는 의미의 덧댐, 즉 발견을 거듭하는 정신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세계이다. 발견이란 곧 한발짝 더 나아간 깨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벚꽃이 아니라 벚꽃을 비추는 수은등을 발견해냄으로써 벚꽃시절에 대한 진정한 껴안음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지우에게 있어 90년대는 이 껴안음에 도달하는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개작은 변화된 유마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거듭된 발견을 성취하고, 마침내 진정한 껴안음의 세계에 다다르려는 시적여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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