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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전》과 수석(1)
수석과 새당예
신 철 호
《수호전》에 금창수(金槍手) 서녕(徐寧)이라는 장수가 있다. 동경 전수부(殿帥府) 금창반의 교두로서 한자루의 구렴창(鉤鐮槍)을 아주 출중하게 다루는데 그 구렴창법은 그 집안에서만 대대로 익히고 전수하여 서녕에게까지 내려온 세상에 둘도 없는 무술이다. 지금 같으면 무형문화재로 될만한 비법(秘法)이다.
서녕에게는 또 조상으로부터 4대에 걸쳐 물려받아온 세상에 둘도 없는 가보(家寶)가 있는데 기러기 깃털로 테두리를 엮어 만든 새당예(賽唐猊)라는 갑옷이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었기에 입으면 몸에 딱 맞고 가벼운데다가 견고하기를 이를데 없었다. 서녕은 이 갑옷을 목숨같이 애지중지하여 평소 누가 보자고 하여도 쉽사리 내놓지 않았으며 매양 붉은 양가죽주머니에 정히 넣어서는 침실의 중간대들보에 높직이 걸어두었다. 말하자면 자나깨나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면서 신주 모시듯 하였다. 일찍 송휘종의 매부되는 왕태위(王太尉)가 3만관(貫)에 팔라는데도 그예 팔지 않았으니 어찌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랴. 3만관이면 금창반의 교두고 뭐고 싹싹 때려치우고 여생을 편안하게 살만한 어마어마한 돈인데 말이다.
이 면에서 서녕은 청면수(靑面獸) 양지(楊志)보다 퍽 어른다워 우리 수석인들이 정신적으로 높이 숭앙해야 할 인물이다. 수석인들은 수석(壽石)을 생명처럼 여기니깐.
양지는 왼쪽 얼굴에 퍼런 큰 기미가 있어서 별명이 청면수이다. 오후 양령공의 손자라고 하는데 오후(五侯) 양령공(楊令公)이면 저 유명한 《양가장(楊家將)》의 양업(楊業)이다. 대대로 장군가문이라 양지도 무예가 출중하고 사람이 소상해서 전사제사관(殿司制使官) 이라는 벼슬을 하였는데 그가 어데 가나 성씨와 이름을 속이지 않고 제사관으로 있었던 과거를 약국의 감초처럼 언급하는것을 보면 그가 후에 북경대명부에서 하였던 제할관(提轄官)벼슬에 비해 훨씬 높은 벼슬이였을것이다.
양지가 제사관으로 있을 때 동료 아홉명과 함께 수석으로 유명한 태호에 가서 궁궐을 짓는데 쓸 관상석(花石綱)을 실어오던 중 그만이 신수 사납게 황하에서 풍랑을 만나 배를 번지고 말았다. 동경에 돌아오면 십중팔구 목이 뎅겅할것이라 그 자리로 도망길에 올라 여러 해를 이곳저곳 떠돌며 숨어살았다.
그러다가 사면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간 밑천을 마련한 후 동경에 돌아왔다. 원래의 직무를 회복하려고 있는 밑천을 다 팔아 추밀원과 전수부로 다니면서 물밑사업을 벌렸다. 끝내 고태위를 만나게 되었으나 밑천을 말아먹은 보람이 꼬물만큼도 없이 고태위로부터 된욕만 얻어먹고 쫓겨나고 말았다.
살길이 막막한 양지는 별 수 없이 조상적부터 물려내려온 보도(寶刀)를 천관(千貫)에 팔게 되였는데 이 칼은 쇠를 찍어도 날이 무디지 않고 날우에 머리카락을 놓고 훅 불면 끊어지며 사람 목을 쳐도 칼날에 피가 묻지 않는다는 예리하기 짝이 없는 보도중의 보도였다.
양령공의 후대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을 양지는 살기 어렵다고 내다 팔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는 림충(林冲)같은 백락을 못 만나고 호랑이라 불리우는 망나니 우이(牛二)를 생뚱같이 만나 시비끝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결국 살인죄로 사람은 정배 가고 칼은 몰수되였으니 말그대로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은 셈이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제사관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도 배는 아니 곯겠는데 그는 그러지 않고 가문의 최후의 표징인 칼을 내다 팔았으니(결국 못 팔았다) 이는 어찌 보면 가문을 배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수석인이 양지가 칼을 팔듯이 수석을 팔 때에는 이미 수석인이 아니라 장사꾼이다. 더구나 먹고살기 위해 수석을 판다면 그는 진작 수석인으로서의 자격과 인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물론 끊임없이 탐석해서 들여오니 소장 공간이 제한되여 차요한것들을 팔기도 하지만 이 경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활동과 차원이 다르다.
수석인은 팔기보다 교류와 증여로 마음의 풍요를 만끽하는 사람들이다.
수석은 문화인들이 즐기는 고급스런 여가활동이다. 우리의 회원들을 보면 부장, 주필, 사장으로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맡은 직무가 천차만별하고 공무원, 편집, 시인, 학자, 교수, 수필가로 종사하는 주직업과 부직업이 다종다양하다. 그리고 환갑이 넘은 백발부터 서른을 갓 넘은 홍안에 이르기까지 나이의 락차도 아주 계획적으로 배치되었다.
참으로 수석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어느 명인이 말했듯이 수석인은 바로 그런 선물을 찾고 받아보는 사람들이다. 그 선물에 천관이니 3만관이니 값을 매기고 짚을 꽂아두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2006년 6월에 열린 제1회두만강수석전시회 때에 우리의 두만강수석회 회원들은 수석을 단 한점도 팔지 않았다. 수백점이나 되는 수석들을 정성껏 진렬하여 방방곡곡에서 온 해내외 관광객들에게 두만강 수석의 매력을 자랑하였다가 전시회가 끝난 후에는 고스란히 집에 가져가서 다시 신주 모시듯 하였다.
두만강수석회 회원들에게 있어서 수석은 그저 멋있게만 생긴 돌이 아니다. 새당예이다.
《수석은 내 인생이다.》
《수석과 더불어 한생을 살리라.》
《수석에 울고 수석에 웃으리.》
《부모, 형제, 처자, 수석은 나의 혈육이다.》
《영원히 사랑하노라 수석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돌이여.》
《수석은 나의 최고의 애인이다.》
《안해가 없이는 살아도 수석이 없이는 못 살리라.》
…
이것이 우리 두만강수석회 회원님들이 저저마다 평소 탐석을 가서나 정기총화모임에서 편지의 문안처럼 꼭꼭 외우고 드팀없이 그대로 실행하는 어록이다. 웨침이다. 행동지침이다. 삶의 목표이다.
진짜로 부모, 형제, 처자, 수석은 나의 영원한 혈육이다.
고종명은 수, 부, 강녕, 유호덕과 더불어 오복(五福)이다. 수석까지 넣어서 육복을 만들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제 50년후(?) 이 세상에서의 소풍이 끝나는 날이 오면 수석을 안고 수석을 베고 조용히 귀천을 하리라.
2008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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