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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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액막이 - 허련순
2019년 07월 15일 08시 57분  조회:47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허련순
 
액막이
 
 
 
1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에 한 녀인이 가까스로 서있었다. 수시로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마치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나가지 못해 안깐힘을 쓰는듯 보였다. 날아가거나 폭삭 주저앉거나 두가지중 하나일것 처럼 위태로워보인다. 그렇게 버티고있은 시간이 벌써 두시간째이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눈물인지 비물인지 분간할수 없다. 초점이 풀어진 그의 시선은 몇메터 앞의 아스팔트바닥에 향해있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파여있던 홈채기에  덧난 상처자국처럼 콜타르가 칠해져있다. 그우로 파죽지세로 쏟아지는 비물이 수시로 비누거품 같은 하얀 거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흩어지고 또다시 흩어지려고 다시 거품이 인다. 그것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속삭임 같았다. 당장 밖으로 불거져나올것 같은 녀인의 눈빛이 집요했다. 그것은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인간의 자동적인 반응이였을터다.
“나영아, 엄마가 왔다!”
쉴새없이 되뇌이는 말은 입속에서 새여나가지 않은채 비속에서 처절하게 울었다. 석달전에 바로 이곳에서 고중생이였던 그녀의 딸이 차사고를 당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다. 그 이후로 녀자는 비가 오는 날이면 에누리없이 이곳에 찾아온다. 비속에서 혼자 떨고있을 딸의 령혼이 가여워서 따뜻한 집에 혼자 머무를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숨을 쉴수 있었다. 딸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야 했는데 그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이곳에 이러고 서있는 일밖에 없었다.
딸과의 갑작스러운 사별은 끔찍한 상처가 되여 그녀를 온전히 살수도 없고 온전히 죽을수도 없는 무거운 형틀에 가둬버렸다. 그것은 가혹한 형벌이였다. 차라리 죽는것이 사는것보다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사고를 겪기전의 과거는 모두 무효가 되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예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무엇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죽음과 같은 절대 고독과 같은 고요와 멍함 속에서 그녀는 하루하루를 시체처럼 보내고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로했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가면 모두 해결된다고… 하지만 그 말조차 상처가 되여 모진 아픔으로 돌아왔다. 누가 그리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어냈단 말인가? 자식을 잃었는데 시간이 약이라니, 어찌 시간이 지난다고 자식을 잊을수 있겠는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이상 시간이 갈수록 가슴은 썩어서 문드러질뿐이다. 자식을 잃어보지 못한 사람은 자식을 잃은 엄마를 함부로 위로해서는 안된다. 고통이요 슬픔이요 불행이요 하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 그들은 슬픔이 뭔지, 아픔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엄마는 슬프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불행하다는 말도 입밖에 내지 못한다. 자식과 함께 이미 죽었는데 죽은 자가 어찌 감히 아프단 말을 할수 있겠는가.
비가 점차 뜸해졌다. 녀자는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다리를 더듬거리며 푸른 등이 켜져있는 인행도를 걸었다. 덜거덕거리는 무릎관절이 자기것인데도 제것이 아닌듯 제멋대로 움직인다. 인행도를 벗어나 극장앞을 꿰질러 우정국앞을 지나면서 녀자는 홀연 누군가 자기의 뒤를 따라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은 없다. 다만 헌책을 파는 란전앞에서 머리가 희슥희슥한 남자가  책을 뒤적거리다가 그녀를 보고 웃었다. 왜 웃지? 어디서 본듯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도 같다. 엉겁결에 녀자도 상체를 앞으로 굽혀 목례를 하였다. 혹시 아는 사람일수도 있어 인사는 하고보자는 심사였다. 남자는 나이는 꽤 있는듯 하나 깨끗하게 나이 들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하얀 얼굴피부와 하얀 손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처음 보는 사람이였다. 녀자는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 발길을 틀었다. 그런데 남자가 그녀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저기요!”
그가 말을 걸어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터라 녀자는 눈심지를 크게 키운채 우두망찰 서있었다. 남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절 모르시겠어요?”
태도가 깍듯하고 친절했다.
녀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를 아세요?”
“잘은 모르지만 한번 본적 있죠.”
“무슨?”
녀자가 뒤로 물러서듯 주춤하면서 경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을 어디서 보았던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뇌의 회로가 끊긴듯 생각할수록 기억속이 하얗게 바래질뿐이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보았는지 저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요…”
“아, 그래요? 그럴수도 있겠네요. 혹시 석달전에 화장터에 가신적 있죠?”
“예…”
녀자가 뜨아한 눈빛으로 남자를 훑는다.
“거기서 신발 한짝 잃어버렸죠?”
그 말에 녀자는 소스라쳤다.
“예. 그때 제가 정신을 잃어버리는바람에… 그런데 그건 왜요?”
“그 신발을 제가 주었습니다.”
남자의 표정에 반가움 같은것이 움찔 일어섰다. 비로소 임자를 찾았다는 희열이였을것이다. 하지만 녀자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아… 그랬군요.”
녀자가 몸을 작게 움츠렸다. 신발을 찾았다는것이 기쁨이라기보다 순식간에 괴기스러운 기운이 전신을 휩싸면서 섬찍하고 소름이 돋아 오스스했다.
그날 딸의 시신을 화장하고나서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한쪽발이 맨발이였다.
“내 신!”
의식에서 깨여나자마자 그녀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자 친정언니가 대뜸 그랬었다.
“지금 그까짓 신발이 없어진게 대수냐?”
“그건 나영이가 사준건데…”
“액막이를 했다 생각해라. 차라리 잘됐다.”
“액막이요?…”
순간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였다. 액막이란 사후에 나쁜 기운을 방지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주술적행위를 말한다. 웬지 께름직하고 섬찍하다.
“그 신발이 액땜을 했으니 너에게 다시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다. 그건 이 언니가 보장한다.”
언니가 무슨 예언가이기라도 되는듯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했다. 위로라고 한 말이지만 그 말은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되였다. 나영이가 사준 선물이 사된 기운의 액막이라니 그 말이 오히려 나쁜 기운이 될가봐 두려웠다. 그리고 다시 더 이상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것이란 말도 마찬가지다. 가장 절실한것을 잃었고 살아야 하는 리유마저 없어졌는데 더 이상 나쁜 일이 뭐며 액땜을 해야 할 리유가 무엇이겠는가. 언니가 한 말을 기억에서 지우고싶었다. 그래서였던지 한동안 그녀는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까맣게 잊고있었다.
신발을 주었다는 남자의 말에 녀자는 황당하고 당혹스러울뿐이다. 믿어지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주은 신발을 버리지 않고 석달가량이나 보관하고있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화장터에서는 그것이 신발이 아니라 돈다발이라도 선뜻 줏고싶지 않았을텐데 어찌 그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주었을가? 액막이라고 했던 언니의 말이 다시 떠오르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설령 그것이 액막이였다면 왜 다시 되돌아오려고 한단 말인가? 새삼스럽게 불길한 사건이라도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영이가 사고 난 날에도 아침에 숟가락을 세번이나 떨어뜨렸다. 사고가 난후에야 그것이 일종의 징조나 예감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맞은탓인지 몸이 오싹해나면서 자꾸 땅속으로 파고들것 같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어서 그 남자로부터 벗어나고싶었다. 녀자는 눈살을 찌프리면서 두팔을 들어보였다.
“보시다싶이 제가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녀의 옷에서는 아직도 비물이 떨어지고있었다. 만류하기는 어려웠다.
“그럼, 래일 이 시간에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 신발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버리세요.”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신발이 다시 액운을 가져올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기다리겠습니다.”
남자가 일방적인 약속을 하고있었다. 신발외에도 다른 할말이 있는듯 보였다.  녀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발끝만 보면서 걸었다. 다리에 기운이 없는지 수시로 휘청거렸다. 그것이 안스러운지 남자가 녀자의 뒤를 따라 몇걸음 걸었다. 발자국소리를 의식한듯 녀자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도 걸음을 멈추고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당신이 뭔데 그런 눈으로 나를 봐?
웬지 녀자는 몸속에서 분노가 요동을 치는것을 느꼈다. 요즘은 가끔 그랬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리유 없이 화가 나고 울음을 터뜨리고싶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딸을 잃은 트라우마가 측두엽을 훼손시켜 분노회로를 각성시켰기때문이라고 했다. 나이를 먹은 주제에 추근거리는 꼴이라니! 욕이라도 퍼붓고싶었다. 하지만 삶의 모든것이 덧없고 귀찮았다. 숨을 쉬고있는것조차 싫은데 누구와 시비 걸고 말을 섞는다는 자체가 군더더기 같다.  
녀자는 애써 울음을 안으로 삼키면서 돌아섰다.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석달 내내 울었는데도 계속 울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다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눈물마저 없다면 나영이한테 얼마나 미안할가? 온몸의 살과 뼈와 장기들을 모두 녹여 눈물로 만들어 다 털어내고나서 거미처럼 빈껍데기만 남을 때 그때면 딸을 만나러 가게 되겠지. 요즘은 꿈속에서 자주 나영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살아있을 때와 똑같다. 너무 같아서 가끔씩 아이가 살아서 돌아온걸로 착각하고 대답을 하면서 벌떡 일어나군 한다. 하지만 모든것은 허상일뿐이였다.
 
 
2
 
 
사고는 예감처럼 온다고 하지만 일상처럼 평범하게 온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알기는 어렵다. 숟가락이나 저가락을 떨어뜨렸다거나 그래서 사고가 오는것은 아니다. 사고는 우연하게 일어나는것이고 미리 정해진것은 없다. 그날 나영이는 오전 공부를 마치고 밥 먹으러 집으로 오면서 그녀한테 전화를 하였다. 비가 와서 춥고 배가 고프니깐 뜨끈뜨끈한 된장찌개가 먹고싶다고 하였다. 그리고 두부를 넣는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리고 나영이는 5분도 못되여 차사고를 당했다. 5분전까지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가 먹고싶었다. 그리고 춥고 배가 고팠다…
나영이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와 함께 농촌에서 살다가 고중시험에서 높은 성적으로 연변고중에 합격되여 도시에 들어와 살게 되였다. 농촌태생이여서 그런지 시래기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나  호박이나 두부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를 각별히 좋아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당연히 그 두가지를 꼽는다. 왜 그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없었겠는가. 그 또래들이 다 좋아하는 떢복이, 라면볶이, 어묵꼬치, 우동을 나영이도 좋아한다. 하지만 엄마가 파출부로 일한 돈으로 겨우 공부하는것만 해도 벅차다는것을 알기에 길거리에서 절대 군것질을 하지 않았다. 돈을 아낄려고 학교에서 주는 급식도 사먹지 않고 점심에도 집에 와서 먹었다. 그날도 점심 먹으러 오던 길이였다.
나영이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슈퍼에 가서 두부 한모와 호박 한개를 샀다. 그리고 오는길에 어물가게앞에서 동태 한마리를 살가말가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 시간에 나영이는 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매고있었다. 다른 예감은 느끼지 못했다. 있었다면 류달리 그 시간에 동태를 사고싶었을뿐이다. 평소에는 생활비를 아끼느라고 어물전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는데 그날은 유난히 그랬다.
그녀는 동태를 깨끗하게 씻어서 토막을 내여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정성들여 거품을 거둬내고 호박과 두부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풋고추 한개를 썰어넣었다. 아이가 집에 들어설 시간에 찌개가 완성되여 가스불을 껐다. 그런데 올 시간이 지나도 나영이가 오지 않았다. 아빠트 층계를 오르는 소리만 나도 귀를 기울이고 나영이겠지 했지만 발자국은 모두 웃층으로 올라갈뿐이다. 예정시간보다 벌써 한시간이나 넘었다. 그동안에 십분에 한번씩 가스불을 켰다껐다하면서 동태찌개를 덥혔다. 그러다가 나영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련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도시생활 2년만에 처음 끓인 동태찌개다. 그런데 나영이는 먹지 못했다. 그래서 동태찌개는 그녀에게 더욱 아픈 이름이 되였다. 한달이 넘도록 그녀는 동태가 들어간 찌개를 버리지 못했다. 매일마다 가스불을 올려 덥히고 또 덥혔다. 물이 잦아들면 또 새 물을 부어 다시 끓였다. 이제 그녀에게 된장찌개는 끓이기만 하고 먹을수 없는 음식이 되였다. 동태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생활은 농촌생활과는 판판 달랐다. 배추이파리 하나 감자 반쪽이라도 모두 돈을 주어야 구할수 있었다. 지어 물도 돈을 주고 사야 하니 물조차 마음대로 먹을수 없었다. 파출부 일을 하여 번 돈으로는 아빠트값과 학자금을 내고나면 생활비가 늘 빠듯했다. 할수없이 맛있는 반찬은 생각지도 못하고 끼니마다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자주 끓였다. 그래도 나영이는 불만없이 잘 먹었다. 친구들이 왜 학교급식이 맛있는데 집으로 다니느냐 하면 난 엄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아니면 밥을 못 먹거든 하고 말하군 하였다. 그 아이의 당당함에 다른 애들은 나영이가 가난해서 집으로 밥 먹으러 다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석달째 파출부 일을 그만두었다. 누구를 위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가?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짬만 있으면 잠만 잤다. 자는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그저 방치되여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잠만 자다보니 흰머리 남자와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요즘은 기억력도 깜빡깜빡한다. 멍한 고요속에서 슬픔만 있을뿐 다른 어떤 의식도 들어서지 않았다.  먹고싶지도 않았지만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도 않다. 그러다 비소리만 들리면 정신이 번쩍 들어 딸의 사고현장으로 달려가군 했다. 비가 오는 날이 그나마 그에게는 가장 살아있는 날이였다…
남자가 기다린다고 약속했던 그날부터 사흘후, 또 비가 내렸다. 그녀는 우산도 비옷도 쓰지 않은채 딸을 만나러 갔다. 맨몸으로 비를 맞아야 추위에 떠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비가 짧게 끝나서 한시간도 채 안되여 그녀는 집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우정국 앞마당에 있는 낡은 책 란전앞을 지나다 그녀는 하얀 머리 남자를 보았다. 그는 어물전에서 성한 고등어를 고르듯 헌책을 이리저리 번지고있었다. 하얀 손이 병약해보인다. 그는 들었던 책 몇페지를 펼치다가 이내 내려놓고 또 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몇페지 번지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책을 고르기 위한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러고있는 사람 같았다.
그를 보는 순간 남자가 했던 약속이 탄력 있는 고무공처럼 튕겨올랐다. 일부러 그런것은 아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이 마음에 켕기였다. 그냥 모르는척 지나가기가 머쓱하여 잠간 주춤거리는데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기다리고있었던 모양이였다.
“아, 드디여 오셨군요.”
“지난번에는 미안해요. 제가 약속을 까먹어서…”
“까먹었군요. 일부러 그런것이 아니여서 다행입니다. 오늘은 무조건 나올것 같아서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어떻게 나올줄 알고…”
“비가 오니깐요. 비가 오는 날이면 나오잖아요.”
“아, 아셨군요.”
“예. 많이는 몰라도 적지 않게 알고있습니다.”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신지…”
녀자는 뒤말을 흐렸다. 남자는 우선 조용한데 가서 말하자면서 우정국 길건너 맞은편 2층에 있는 카페로 그녀를 안내하였다. 남자가 따뜻한 커피 두잔을 주문하고 녀자의 맞은켠에 앉았다. 그는 가방을 열더니 하얀 종이에 싼 신발 한짝을 꺼내서 신중하게 그녀의 앞으로 밀었다.
“이 신발을 돌려드릴려고 여러번 이곳에 나왔는데 오늘에야 돌려드리게 되였네요.”
굽이 낮은 하얀 구두였다. 구두에는  하트모양의 은색 장신구가 달려있었다. 그것이 마치 딸인듯 녀자는 두손으로 신발을 끌어안더니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나영아…”
나영이가 죽기 며칠전에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준 구두다. 신발에 달린 장신구가 네모진것도 있고 타원형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나영은 하트모양이 있는 구두를 골랐다. 그리고 두손을 머리우로 모아 하트모양을 만들면서 엄마 사랑해! 영원히! 하며 활짝 웃었다. 그날에는 미처 몰랐다. 매일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밥먹듯 했으니 그저 그런 날의 련속이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영원히란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맺힌다. 그렇게 빨리 가려고 그런 말을 한것은 아니였는지 목이 멘다. 그녀는 신발을 품에 보듬었다가 다시 쓰다듬고 쓰다듬다가는 다시 보듬었다. 딸의 체취를 느끼려고 모지름을 쓰는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는 신발을 만지면서 눈물은 났지만 속은 오히려 안정되였다. 허전하고 막연하여 떠돌았던 자신의 정신이 비로소 조용히 어딘가에 깃드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주우셨어요?”
“아, 그날은 저도 슬픈 날이였습니다.”
“당연히 그랬겠죠. 그곳에는 슬픈 사람만 가는 곳이니깐요.”
“안해의 화장(火葬)을 끝내고 나오는데 앞에서 한 녀인이 마주 걸어오더군요. 곧 쓰러질듯 걸음이 위태로워보였어요. 저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었어요. 비틀거리면서 걸어오는 그녀가 어느쪽으로 올지 몰라서였죠. 그런데 녀자가 바로 저의 앞에까지 와서 폭 꼬꾸라지는거예요. 저는 엉겁결에 그 녀자를 부축했습니다. 녀자가 나의 품에 쓰러졌고 저는 두손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녀자는 왼편으로 고개를 꺾고 저에게 안겨있었는데 저는 그녀의 오른쪽 입가에 있는 작은 기미를 보았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남자는 목이 마르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를 마셨다. 입안의 커피가 목젖을 지나가는 소리가 아주 짧게 들렸고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그의 손은 류달리  하얗다. 마치 오랜 병을 앓고있는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있는듯 손길이 담담했다.
“저의 안해도 오른쪽 입술 웃쪽에 기미가 있었어요. 위치도 똑같아요. 안해를 보내고 정신이 허약해진 상태에서 안해를 닮은 녀자를 보고 저는 일시 환각에 빠졌어요. 안해가 살아서 돌아온것은 아닌지… 그런 환각말입니다. 저의 팔에 기대여있는 그 무게마저 안해와 비슷했습니다. 부피가 전혀 느껴지지 않더군요. 안해를 안고있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군요. 그때 가족분들이 와서 나의 품에서 그 녀자를 받아서는 둘쳐업고 가버렸습니다. 그때 그 녀자가 이 신발을 떨어뜨렸구요. 제가 신발이 떨어졌다고 소리치는데도 누구도 듣지 못하고 그냥 가버리더군요.”
“그냥 내버려둘수도 있잖아요? 왜 주었죠?”
남자가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도 처음에는 줏지 않았어요. 그대로 둔채 몇걸음 가다가 돌아서 보니 신발이 조문객들의 발길에 이리저리 밟히고 채우는거예요. 그들도 자기 발길에 채우는 웬 신발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며 소스라치는데 아마 죽은 사람의 신발인줄 아는것 같았어요. 그것을 보면서 그냥 오지 못하겠더라구요.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을 하는 그들에게 분노 같은게 치밀더라구요. 웬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안해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주었던것 같아요.”
“참 따뜻한분이군요.”
“그렇지도 않아요. 저의 안해와 비슷해서 그럴수 있었던것 같아요. 지금 보니 기미외에는 닮은데가 전혀 없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아이를 떠나보내고 길에서 가방을 메고다니는 녀자애들만 봐도 다 우리 나영이가 아닌가싶어서 숨이 멎는듯한 전률을 느끼군 했습니다.”
“그리움이라는것은 아마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아닌가싶습니다. 그렇게  닮은 사람을 만나가면서 서서히 슬픔도 잊어가겠죠. 그렇게 살다가 우리도 언젠가는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멍에처럼 남기면서 죽겠죠. 그게 삶이고 인생이니깐요.”
남자는 슬퍼보였다. 하얀 손등의 푸른 혈관이 겁에 질린듯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는것을 녀자는 보았다. 죽음을 말하면서 그는 태연한척했지만 분명 두려워하는것처럼 보였다. 두려우면서도 그녀를 위로하기 위하여 애써 참는것 같았다.
“아무리 애달파도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갈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슬픔까지 떠안게 되였지만 그것도 살아있는 자의 짐이고 운명입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하여서라도 살아야죠. 죽었는데 슬퍼하는 사람도 없고 기억해주는 이도 없으면 얼마나 가엾겠어요? 그러니 나영이는 죽었어도 어머니가 있어서 행복한 아이죠.”
남자의 말에 녀자는 가슴이 뭉클했다. 그가 나영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한마디가 왜 그리 따뜻하고 가깝게 느껴지는지… 녀자는 비로소 살아야 하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그 말이 맞아! 나까지 없으면 우리 나영이의 죽음을 누가 슬퍼하겠는가? 내가 있어야 딸의 제사밥이라도 지어주지. 또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자식의 죽음을 슬퍼해주기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은 슬픈 일이지만 자식을 잃은 이 세상 어머니들에게는 그조차도 위안이 되지 않겠는가. 자식의 죽음에 해줄수 있는게 있다는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녀는 큰숨을 몰아쉬였다. 그동안 깊은 동굴속처럼 웅크렸던 가슴이 조금씩 열리고 그 삐죽이 열린 틈사이로 오렌지빛 같은 노랑빛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때 배에서 꼬르륵 꽈리 우비는 소리가 났다. 녀자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시무룩이 웃었다.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배고프니깐 식사하러 갑시다.”
남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그래도 신세가 많은데 밥까지 얻어먹을수 없다며 녀자가 거절했지만 소용없었다. 남자는 기어이 그녀를 식당으로 이끌었다. 녀자는 이 사람한테 자신이 점점 끌려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뻐할 일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냥 어정쩡한 기분이였다.
“랠 오전 9시에 헌책 란전앞에 다시 나와요. 제가 함께 갈데가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헤여지면서 남자가 또 다른 약속을 하였다.
“그게 어딘데요?”
“가보면 압니다.”
도대체 어디로 데리고 간다는것일가?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거절하면 그 사람이 서운해할것 같았다. 무조건 따라가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는것은 왜서인지, 그녀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믿다니… 
 
3
 
이튿날 녀자는 약속한 시간에 헌책란전앞으로 나갔다. 남자가 먼저 나와있었다. 남자의 하얀 머리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는 파란 체크무늬가 있는 와이샤쯔에 계란색 바지를 입고있었다. 여전히 나이는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칠십대초반은 되지 않았을가싶었다. 그녀는 까만 원피스를 입고있었다. 딸을 보낸 뒤로 밝은 색의 옷을 통 입은 일이 없었다. 남자가 자신이 너무 밝게 입은것이 어색한듯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가 얼마나 되여보입니까?”
“년세가 있는것 같긴 한데 그만큼  들어보이지는 않습니다.”
남자가 소리를 내여 크게 웃었다.
“나이는 있어보이는데 그만큼 들어보이지 않는다. 참 말씀을 재미있게 합니다. 그럼, 그쪽의 나이를 제가 맞추어보겠습니다. 사십대이지요?”
녀자가 눈을 크게 뜨며 두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오십이 넘었습니다.”
“그러세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참 동안이시군요.”
녀자는 웬지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죽고싶었고 그래서 살고싶지 않았는데 겨우 젊어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기가 막혀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눈앞에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좋은 기운을 가지고있는 사람인것은 틀림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있으면 화선지에 고운 물감이 번지듯 함께 젖어드는 느낌이 든다. 좋은 사람인것은 틀림없지만 그래도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아있다.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주는지, 그렇게 하는 리유가 도대체 무엇때문인지, 단지 죽은 자기 마누라와 기미가 같은 녀자라고?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납득이 되지 않았고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는다.
남자를 따라간 곳은 “체험실”이라고 쓴 건물이였다. 2층으로 통하는 좁은 통로에 사람들이 빼곡이 줄을 서있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뭐하는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요?”
“그러게요. 별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이리 많이 모였을가요?”
남자가 줄을 선 사람들의 옆으로 간신히 비집고 층계를 오르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찾아볼 사람이 있어서 그러니 자리 좀 비켜주십시오.”
사람들이 벽쪽으로 붙어서면서 그들에게 자리를 내여주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해빛에 타버린 지렁이 같은 주름살이 곰실곰실하고 검버섯이 참나무에서 돋아나는 목이버섯처럼 피여있었다. 그나마 허리라도 굽지 않은 사람이 한두명이고 나머지는 전부 허리가 구십도 각도로 굽어있었다. 거기다 중풍후유증으로 팔이 불편하거나 다리가 불편하여 나무지팽이에 겨우 의지하고있는 사람도 있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기도 불편할 분들이 이 좁은 층계에서 줄을 서야 하는 리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2층에 올라가니 큰 강당이 있었는데 그안에는 밖에서 줄을 서고있는 로인들과 비슷한 년배의 늙은이들이 꽉 차있어 발을 옮겨디딜 자리조차 없었다. 온 도시의 로인들은 모두 여기에 모인듯 했다. 벽 사면에는 온통 약광고 포스터로 도배되여있었다. 죄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에도 좋고 중풍이나 뇌출혈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고 씌여있었다. 그 나이대의 로인들에게는 진단 없이도 누구나 먹어도 좋을 약이였다. 그 약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란 5개씩 공짜로 주고있었는데 로인들은 그 공짜 계란을 타가기 위하여 이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있었다. 결국 약을 팔기 위하여 계란 5개씩 공짜로 주는것이다. 방송국이나 언론에 비싼 광고비를 내기보다 광고비가 직접 소비자의 호주머니에 들어가게 하는 새로운 광고전략이라고 업주가 말했다.
사람이 많아 그들 둘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채 문어구에 잠간 서있다가 도로 층계를 내려왔다.
“살만큼 사신 분들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러시는걸가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것 같아 추해보이네요.”
녀자가 개탄을 했다.
“그렇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자주 보니깐 차츰 달리 보이더라구요.”
“어떻게요?”
“삶이란 끝까지 노력하는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녀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리해하고싶지는 않았다. 새파란 나이에도 죽음을 당하는데 저 나이에 저러고싶을가? 그저 렴치없고 주책을 부리는것처럼 보일뿐이다. 적어도 자식을 먼저 보낸 분들은 아닐것이다. 자식을 앞세우고도 오래 살려고 악을 쓰는 부모는 없을테니깐. 그러고보니 그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이였다. 부러웠다.  
그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듯 남자가 이 상황을 리해시키려는듯 길게 설명을 하였다.  
“체험실이라는게 말입니다. 모두 로인네들이 다니는 곳이지요. 주로 약을 팔거나 의료기계들을 파는데 그것을 팔기 위하여 로인네들에게 일정한 공짜 써비스를 제공하죠. 오늘은 계란이지만 어떤 날은 휴지를 주고 어떤 날에는 가루비누를 주고 어떤 날에는 죽염(竹盐)을 주고 어떤 날에는 치약을 주기도 한답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로인들의 심리를 리용한것이죠. 어떤 로인네들은 저 공짜를 받기 위해서 먹지도 않는 약을 사 재이기도 한답니다. 한심하죠?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공짜 한개라도 챙기겠다고 여기까지 와서 줄을 서고있는 저분들은 적어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분들이죠. 살아있다는것은 언제나 경의롭지요. 죽으면 끝이니깐요. 그래서 저분들이 존경스러워요.”
남자의 말은 언제나 끝에 가서 꼭  살아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마도 최근에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삶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는듯 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말에 녀자도 깊이 공감되였다. 계란 다섯알이나 휴지 한통이라도 공짜로 얻겠다고 매일 저렇게 해볕에 줄을 설수 있다는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나영이를 보더라도 죽으니깐 끝이다.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남자가 말하는 존경심일것이다.
두 사람은 아무말도 없이 걸었다.  금방 들어갔던 건물에서 백메터도 되지 않는 곳에 또 다른 체험실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약을 팔지 않고 각종 의료기구들을 갖추어놓고 고객들에게 써비스를 제공하고있었다. 그곳의 고객들도 그쪽과 다를바가 없이 전부 로인들이였다. 하얀 위생복을 입은 젊은 녀자가 로인들의 혈압을 체크하거나 손가락의 피를 뽑아 당장에서 혈당을 체크해주고있었고 애된 남자가 로인들에게 “이얼싼쓰(一、二、三、四)”를 부르면서 손벽을 치고 목을 돌리고 어깨를 치는 로인체조를 가르치고있었는데 대부분 로인들이 팔이 우로 쑥쑥 올라가지 못해 엉거주춤하고 어눌한 동작이나마 진지하게 따라하고있었다. 이렇게 한동안 공짜로 써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효과를 보게 해놓고 다음 절차는 의료기구들을 파는것이였다. 업체 사장의 말로는 처음에는 이 장사가 잘됐는데 요즘에는 로인들도 약아빠져서 공짜로 써비스만 받고는 의료기구는 잘 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들을 고기밥만 떼여먹고 가는 “늙은 고기”들이라고 지칭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 먼저 들렸던 체험실에서 십여명의 할머니들이 한손에 약봉지를 들고 한손에 계란을 들고 줄을 쳐서 나오더니 마치 강으로 향하는 오리들처럼 허리를 구부정하고 두팔을 뒤로 내저으면서 헤염을 치듯 차도를 건너가고있었다. 오가던 차들이 급정거를 하면서 빵빵 경적을 울렸지만 이들 “늙은 오리”들의 행렬은 당황하지 않고 도도하게 차사이를 요리조리 빠져서는 건너편의 다른 건물안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저분들은 어디로 저리 급히 가시는거죠?”
“또 다른 체험실로 가는거지요. 하루에 세곳 아니면 네곳은 보통이랍니다.”
“그렇게 많이요?”
“많긴요. 하루에 일고여덟곳에 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이들은 아예 체험실에 상주하는거지요.”
세상에 이런 일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녀는 웃어버렸다. 한심했다.
“그렇게 웃으니 보기 참 좋군요. 오늘 어땠어요? 좋은 구경했죠?”
“기가 막히면서도 리해가 가요. 하루라도 더 살고싶은 마음이야 로인이라고 다르겠어요. 저분들에 비하면 저는 너무 아무 생각도 없이 산것 같아요.”
남자가 박장대소를 하자 녀자가 얼굴을 붉혔다.
“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
“아닙니다. 너무 잘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제가 이루고자 했던 목적에 도달했으니 말입니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스스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것을 깨닫게 하고싶었던것이다. 녀자는 자기안의 우울함이 조금씩 옅어지는것 같았다. 남자는 헤여질 때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말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여기로 전화해요.”
녀자는 전화번호를 받아서 빽에다 넣었다. 
 
4
 
집에 돌아와 아직 옷도 벗지 않았는데 아빠트 주인이 찾아왔다. 주인은 그녀가 세 들어있는 바로 아래층에서 살았다. 아마도 그녀가 돌아온 기척을 알고 따라 올라온 모양이다.
“나영이 엄마, 집세가 밀린지 석달째인것은 알죠?”
“아, 죄송해요. 제가 아이를 보내고 정신이 없어서 못 갚았는데 래일부터라도 당장 일자리를 찾아보겠습니다.”
“오늘 볼라니깐 애인도 있는것 같던데 애인보고 집세 먼저 달라고 하지.”
“애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 볼라니깐 체험실에서 나영이 엄마가 어떤 남자와 같이 온것을 봤소. 돈도 꽤 있어보이더만.”
“아, 그분은 애인이 아니고 그냥 아는 분입니다.”
“그냥 아는 분이랑 손도 잡겠소? 퍼그나 가까운 사이 같던데?”
“절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이제 안지 하루밖에 안되는데…”
“안지 하루밖에 안되는데 손을 잡고 다니요? 암튼 빨리 집세를 갚아줬으면 좋겠소. 사실 다른 집은 일년치를 한꺼번에 받는데 나는 나영이네 형편이 하도 딱해서 월세를 받는거 알잖소?”
“알죠. 제가 신세 많이 지는걸 알고있어요.”
“알면 월세는 제때에 내야지 이게 뭐요. 좋은 제 돈을 받으면서도 맨날 달라달라 사정해서 받으니 내가 성가시고 구차해서 못살겠소. 방법대서 이틀안에 밀린 돈 다 내고 다음달부터는 집을 비워주었으면 좋겠소.”
말을 마친 집주인이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끌신을 탈싹거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돈을 어디 가서 빌린단 말인가? 언니가 생각났지만 그에게 돈이 없는것을 잘 안다. 언니의 돈 사정은 뻔하다. 한해농사를 지어 한해를 산다. 언니한테는 돈보다 된장이나 옥수수쌀 같은것을 달라고 하면 바로 가져다먹으라고 할것이다. 느닷없이 머리 흰 남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안될 소리다. 아직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게 말이 되는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빌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럴 때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것 같고 그래서 그런 내가 하찮게 느껴지고 어디 하나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진다. 맨날 죽고싶다고 하다가도 이럴 땐 왜 죽고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빽속에서 남자의 전화번호를 꺼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전화를 할 사람도 없다. 렴치불구하고 눈을 딱 감고 낯가죽이 두껍다는 소리를 듣거나 사기군이 아닐가는 의심을 받더라도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볼 심산이였다. 그래서 핸드폰 번호를 찍었다. 하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그녀는 핸드폰을 접어 빽에 집어넣고는 집주인을 찾아 사정해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문벨을 울리자 곧 문이 열리며 주인녀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녀가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본 사람처럼 와들짝  놀라는것이였다. 기분이 언짢았다.  
“산 사람을 보고 왜 그렇게 놀래요?”
“아… 금방 봤는데 또 이렇게 보니 갑작스러워서… 그런데 무슨 일이요.”
주인녀자가 말을 둘러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틀동안에 돈을 준비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 제발 한달만 시간을 주면 제가 밀린 빚을 다 드리고 그 다음달 무조건 집을 비우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어려웠지만 집세를 내지 않은적은 없지 않습니까? 한번만 사정을 봐주세요!”
주인녀자가 손을 휙 내젓더니 툭 털듯 말했다.
“그래, 알았소. 그쪽 사정이 어려운걸 다 알면서 안된다고 하면 내가 나쁜 년이지.”
이렇게 쉽게 허락을 해줄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너무 감사한 나머지 녀자는 한참 문밖에 서있었다. 그때 집안에서 주인녀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부러 들으려고 했던것은 아닌데 들어버렸다.   
“그 녀자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어요.”
“왜?”
굵은 남자의 목소리로 보아 아마 주인녀자의 남편인듯 했다.
“얼굴에 액운이 짝 깔린거예요.”
“딸을 잃은지 얼마 안됐으니 당연히 그렇게 보였겠지. 액운은 무슨.”
“정말이예요. 상가집에서 풍기는 그 서늘하고 섬찍한 기운이 확 끼쳤다니깐요. 그런데 더 기막힌것은 어떤 늙은이와 련애를 하는것 같았어요. 딸이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늙은 남자와 손을 잡고 다니고싶었을가요?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올라앉는다고 사람은 겉으로 보고는 아무도 몰라요…”
녀자는 더 이상 그곳에 서있을수 없었다. 더 심한 말을 들을게 뻔했다.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와 비슷한  말은 전에도 들었다. 이쁘기는 한데 표정이 너무 쓸쓸해서 액이 끼여있는것 같다고 했다. 결국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겠는가. 녀자는 집주인이 자식을 잡아먹은 녀자란 말을 하지 않은것으로도 감사했다. 그 말을 들을가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는데… 나영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모질고 사나운 운을 타고난 자기때문에 딸이 그렇게 된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다른 사람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것이다.
더 이상 앉아서 신세타령만 할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엄살이였다. 한달사이에 집세를 갚지 못하면 다음달부터는 집을 비워야 한다. 농촌에 갈수도 없다. 이미 집이고 땅이고 다 처분하여 나영이의 학비에 보탰다. 이 집을 나가면 당장 갈데가 없다. 그녀는 파출부 일을 시작하려고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서 가정부나 파출부 일을 찾기도 쉽지 않다며 등록을 해도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다.
할수 없었다. 녀자는 빽에서 머리 흰 남자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꺼냈다.  그 사람한테 전화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할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경우가 말이 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녀자는 자신이 그 남자한테 의지하고싶다는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다. 그에게 의지하여서 도대체 어쩌겠다는것인가. 그녀는 그 생각을 부정하고싶어서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일만 시작하면 그를 다시 찾을 일은 절대 없을것이다…  
결국 그녀는 헤여진지 한시간도 못되여 그 남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남자가 일자리가 있으니 당장 헌책 란전앞으로 오라고 했다. 아, 이제 살았다! 녀자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웬지 그는 모든것의 해결사인듯싶었다. 녀자가 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남자도 마침 도착했다. 남자가 앞에서 걷고 녀자가 뒤에서 바짝 따라붙었다. 녀자가 무심코 물었다.
“액운이라는것이 무엇입니까?”
금방 집주인한테서 들은 말이 마음에 내려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액운이요? 그게 별게 아닙니다. 밥먹고 이 닦고 세수하고 물 마시고 해빛 보고 잠자고 하는 이 하찮은 일상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게 되여버리는것입니다. 왜 갑자기 그것을 묻습니까?”
남자가 뒤돌아보면서 물었다.
“아니, 그냥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서요.”
녀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헌책 가게에서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오백메터쯤 걸어가니 명성아빠트 대문이 나왔는데 남자는 그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고급아빠트여서 돈이 있는 사람들만 산다는 곳이다. 가정부나 파출부도 보통 고급아빠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고용한다.  
그들은 엘레베터를 타고 11층에서 내렸다. 남자가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고 녀자가 따라들어갔다. 집은 깨끗하고 정갈했지만 웬지 병원에서나 맡을수 있는 크레졸 냄새와 한약냄새가 골고루 났다. 남자는 그녀에게 오늘부터 이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해주면 되는데 식구가 한 사람이라 별로 일이 힘들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보수는 다른 집이랑 같이 주겠지만 석달치를 앞당겨주겠으니 밀린 집세를 먼저 갚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방을 쓰세요. 그렇게 하면 별도로 아빠트 세낼 필요는 없겠죠.”
“혹시 집주인은 어떤 분이세요?”
“저의 집입니다.”
녀자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저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일부러 이러는거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런게 아니라 저도 마침 일하는 분을 구하려고 하던 참이였습니다.”
남자의 마음은 진심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웬지 그와 묘하게 자꾸 엉키는것이 께름직했다. 집주인이 하던 말도 켕긴다. 체험실에 한번 같이 갔던 일로 애인으로 보는데 한집에 단둘이 함께 있으면 누가 집주인과 일하는 사이라고 보겠는가. 남자는 강요는 하지 않겠지만 생각이 바뀌면 아무때든 들어와도 된다면서 집열쇠는 문앞에 있는 나무상자안에 있는 신발속에 넣어두겠다고 했다. 그는 절대 강요하지 않았고 매번 선택의 권리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의 의사에 따랐던것은 모두 그 자신의 선택이였다. 그가 무슨 체면술을 부리는것도 아닌데 그를 만나면 그의 말을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가 하자는대로 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하는 조건은 그녀에게 너무 좋은 조건이다. 어디 가서든 이런 조건으로 주인을 만나지 못할것이라는것을 잘 안다. 하지만 하면 안될것 같은 이 찜찜한 기분은 왜서일가? 그것은 불안함까지는 아니고 곧 화장실에 가야 할 때와 같은 초조함이나 불편함 같은 기분이다. 그녀는 집에 가서 생각하고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나왔다.
 
5
 
남자와 단둘이서 한집에서 산다는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였다. 녀자는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다른 소개소 몇곳을 더 찾아보았다. 그런데 며칠 더 기다리라는 같은 대답만 되돌아왔다. 더 이상 기다리다간 일도 못하고 한달이 흘러갈판이다. 이제는 더 미룰것도 없이 흰머리 남자의 말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남이야 무엇이라 씹든 무슨 상관인가? 내 코가 석잔데… 그녀는 가방을 챙기고 남자한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남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전화를 받지 못할 다른 상황이 있을수도 있겠다싶어 십여분 더 기다렸다가 다시 했다.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십여번 했는데도 먹통이다. 그녀는 무작정 가방을 들고 바삐 집을 나왔다.
곧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있었다. 비오기전의 안개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다행히 그녀가 남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녀자가 엘레베터에서 내려 다시 전화를 돌렸다. 여전히 받지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들으니 집안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혹시 전화를 집에 놓고 어디를 간것일가? 그녀는 문벨을 울렸다. 그래도 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가?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는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어둠을 감싼 축축한 안개의 미립자들이 가슴을 질척거리며 달라붙는다. 불길한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였다. 그녀는 금방 태엽을 준 인형처럼 빠르게 복도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안에 있는 낡은 구두안을 더듬었더니 열쇠가 손에 닿았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손이 자꾸 떨렸다. 열쇠가 두번 허망 돌아가는듯싶더니 세번만에 딱 걸리며 문이 열렸다.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은 하수도 구멍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물고기내장 썩은 냄새 같기도 하였다. 녀자가 신발을 벗고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휭하니 가슴을 휘젓고 빠져나가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거실복판에 남자가 큰 대자로 엎드려있었다. 정체 모를 이상한 냄새는 바로 남자의 몸에서 나오고있었다. 그녀가 남자의 어깨를 흔들며 선생님! 선생님! 하고 련속 불렀다. 하지만 남자는 미동도 없다. 이미 숨이 멎은것 같았다. 너무 무섭고 당황하여 그녀는 도망치듯 그곳을 뛰쳐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것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살인죄를 덮어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섭게 덮쳤다. 잘못한것이 없으니 두려울것은 없지만 그런 시선이 무섭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고싶었다. 그래서 엘레베터의 단추를 눌렀는데 누르자마자 문이 열렸다. 타고 가면 모든것은 끝난다.
그런데 그녀는 결국 타지 못했다. 자기한테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준 남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싶었다. 그 도리라는것이 바로 도망가지 않고 현장을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했다. 녀자는 “120”에 련락을 하고 구조대원들이 올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 5분도 안되여 구조대원들이 도착했고 그중 한 사람이 현장검사에 대한 소견을 말했다.
“이미 사망되셨고 시체가 부패된 상황으로 보아 적어도 삼일은 되는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분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 저는 가정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왜 이제야 신고를 하신겁니까?”
“사실 오늘 처음으로 일하러 왔는데 들어와보니 이분이 여기에 이러고있었습니다.”
“그럼, 문은 어떻게 여신겁니까?”
“열쇠는 바깥에 숨겨놓은데가 있어서 열고 들어왔습니다.”
“오늘 처음 왔다면서 열쇠가 거기 있다는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며칠전에 일을 맡을 때 알려주셔서 알고있었습니다.”
“사망한 분 가족분들에게 련락을 하세요.”
“저는 가족분들을 모릅니다.”
“대체 아는게 뭡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버럭 짜증을 냈다. 녀자는 기분이 상했다. 사실대로 말했는데 그들이 믿지 않는것 같았다. 그때 와르르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졌다. 녀자는 나영이 사고현장으로 가고싶어 그 사람들에게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런데 첫 목격자이니 집사람들이 올 때까지 있는게 좋겠다고 하였다. 녀자는 태엽이 떨어진 시계바늘처럼 선자리에서 바르르 떨었다. 몹시 불안정해보였다.
그때 구조대원중 다른 한 사람이 책상우에서 가족의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를 찾았다며 전화를 하더니 딸이 바로 올것이라고 말했다. 그들도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시체를 옮길수 없었다. 가까운 어딘가에 있었던지 십분도 안되여 젊은 녀자와 남자가 도착했다. 딸과 사위라고 하였다. 녀자가 문어구에서 가방을 들면서 가족이 왔으니 이제 가겠다고 집을 나왔다. 그러자 금방 도착한 딸이 물었다.
“누구세요?”
“이 집에서 일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녀자 말에 딸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버지한테서 일하는 사람을 쓰겠단 얘기는 못 들었는데요.”
“오늘 처음 왔어요.”
“오늘 언제요?”
“금방, 아버님이 쓰러진후에요.”
“왜요? 왜 하필 쓰러진 다음 와요? 그게 말이 돼요? 오늘 처음이라면서요? 그럼 집에는 어떻게 들어오구요. 우리 아버지는 언제부터 안거예요?”
딸은 련주포를 쏘듯 한꺼번에 많은 질문들을 쏟아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녀자는 갈피를 잡지 못한채 멍청하니 쳐다보고있을뿐이다. 어떻게 말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것이며 그런 그들을 녀자는 설득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스스로도 자신이 왜 여기 와있는지 설명하기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진실이라는 자체가 충분치 않고 의문투성이여서 설명하려고 해도 온전히 설명할수 있는 근거가 없어보였다. 그저 구차한 설명을 지루하게 해야 하는데 그 설명을 다 듣고도 그들은 믿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의심만 증폭시킬것이다.
그녀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나타났다가 아흐레만에 사라진 남자의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녀자는 그에 대하여 아는것이 너무 없었다. 심적으로는 알지만 물증으로 안다고 내세울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가 하면 모르지도 않고 아는가 하면 제대로 알지도 못한 그 남자의 죽음을 어정쩡하게 목격하게 되였고 그 리유로 지금 곤난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그제야 녀자는 그가 자기 죽음의 첫 목격자를 찾느라고 그리 열심히 쫓아다니지 않았나싶었다. 믿고싶지 않겠지만 결국 그런 꼴이 나고말았다.
“저는 고인의 딸이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장에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는것이 너무 의심스러워요.  철저히 조사해주세요.”
구조대원들중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사람이 심장약병을 들어보이면서 신중하게 말했다.
“자세한 조사를 하면 다 나오겠지만 평소에 심장약을 드신걸로 보아 심장병 발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나싶습니다.”
“아버지가 심장병이 있긴 했지만 갑자기 돌아가실 정도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 녀자가 의심스러워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제가 살인이라도 했단 말이예요? 제가 왜요? 왜 제가 살인을 한단 말이예요?”
“그거야 본인이 더 잘 알거 아니예요. 언제부터 우리 아버지를 알고 지냈어요?”
“열흘도 안됐어요.”
“그럼 열흘전에 아버지께서 아빠트를 파셨다는 사실도 알겠군요.”
“몰라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 모르는지 증명해보여요!”
“어떻게 증명하라는거예요.”
“그 손에 들고있는 가방을 열어보시지요.”
녀자가 가방을 뒤로 감추면서 거세게 항의하였다.
“왜 남의 가방을 열어보려는겁니까?”
“그속에 혹시 아버지의 돈을 감추지는 않았는지 해서 말입니다. 떳떳하면 당당하게 열어보이시지 왜 감춥니까?”
그 말에 녀자는 비칠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것일가? 안그래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인데 왜들 이리 괴롭히는것인가? 남자의 딸은 기어이 녀자의 가방을 열고 그대로 휘딱 뒤집었다. 배를 가른 짐승의 배에서 내장이 흘러나오듯 녀자의 가방속에서 잡동사니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화장품과 속옷들 그리고 여름옷 몇벌이 전부다. 값이 나갈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속에서 유독 하얀 구두 한짝이 유표하게 눈에 띠웠다. 왜 구두 한짝이 가방속에서 나왔는지 그들이 알리 없다. 남자의 딸이 기어이 하얀 구두를 들고 빈정거렸다.
“웬 구두 한짝? 신은 한짝만 신고 다니는가?”
녀자가 달려들어 그의 손에서 구두를 빼앗아낸다.
“줘요! 그것은 우리 딸이 저한테 사준 선물이요.”
“선물인데 왜 한짝뿐인가?”
“한짝은… 한짝은…”
녀자가 못할 짓이라도 저지른듯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홱 젖히며 큰소리로 말했다. 잘못한것도 없는데 주눅 들 필요가 없었다.
“한짝은 우리 딸의 령혼을 달래기 위하여 태웠소. 그 한짝은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에 화장터에서 내가 잃어버렸는데 당신의 아버지가 주어다가 나한테 주었거든. 그래서 그 신발을 볼 때마다 주어다준 당신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려고 보관하였는데 당신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 구두 한짝도 보관할 필요가 없게 되였네요. 이제 이 구두를 어떻게 할까요? 자식이라는게 아버지가 홀로 돌아가서 시체가 부패될 때까지 모르고있다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해준 목격자에게 고맙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도적놈 취급을 하는 당신의 죄를 받게 해달라고 제물로 태울까요?!”
그 말에 녀자는 들고있던 신발을 홱던지고는 두손을 탁탁 털었다.  
“그 신발을 가지고 어서 이 집에서 나가요! 당장!”
녀자는 가방에서 쏟아져나온 물건들을 챙기지 않은채 구두 한짝만 가방에 넣고 휭하니 그 집을 나왔다.
“이 물건들을 가지고 가요!”
집안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지만 녀자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녀자는  엘레베터도 리용하지 않고 비상층계를 따라 내려왔다. 밖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있었다. 멀리서 기적소리가 울먹이며 지나간다. 서럽다. 어떻게 하다 일이 이 지경으로 꼬인것일가?
불쌍한 사람! 죽을 때 혼자 죽는것이 두려웠을거다. 그래서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원했을거고… 만약 내가 시간을 끌지 않고 처음부터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있어주었더라면 그래도 그가 죽었을가? 호흡곤난이 올 때 약을 챙겨주었더라면 고비를 넘겼을것이다. 결국 그는 곁에 사람이 없어서 혼자 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죽음의 첫 목격자가 되였다. 그 무거운 기억을 어찌할가? 비속에서 녀자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나영이의 사고현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조용히 비가 끊고있었다. 안개비 같은 이슬만이 촉촉히 그녀의 머리와 옷에 내려앉는다. 녀자는 가방에서 구두 한짝을 꺼냈다. 그리고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나영아, 이 구두는 니가 사준것인데 지난번 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잊어버렸었어. 그랬는데 어떤 마음씨 착한 아저씨가 이 구두를 주어서 석달이나 집에 보관하고있다가 나한테 돌려주었어. 그런데 그 아저씨가 오늘 갑자기 돌아가셨거든. 생각해보니 이 신발은 나와 같이 있은 시간보다 그 아저씨와 같이 있은 시간이 더 길더라. 그 아저씨가 가는길에 외롭지 않도록 이 신발을 보내드리려고 한다. 엄마가 그래도 되지? 만일, 만일에 말이다. 저세상에서 그 아저씨를 만나거든 엄마가 마지막을 지켜드렸다고 말씀드려라. 그리고 고맙다고 전해줘! 그분은 엄마가 가장 슬프고 외로울 때 살아야 하는 리유를 알게 한 분이야. 그런데 살았을 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거든. 나영아, 비가 오는 날 다시 올게…
녀자는 다리에 질척거리는 어둠을 걷어차며 처벅처벅 인행도를 건넜다. 극장앞을 지나 우정국앞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이미 헌책 란전은 거둬들이고 리어카에 책들이 비닐로 동여진채 꽁꽁 묶여있었다. 그앞에서 서성거리던 사람이 떠나고나니 그녀는 마치 긴 꿈을 꾸고난것 같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던것은 꿈이고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진것이 원래의 모습인양 아무렇지 않게 시간은 어둠과 함께 자취도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의 흔적은 여기 꽁꽁 묶어놓은 낡은 책갈피가 기억하고있을것이다. 그곳에서 두런두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움이라는것은 아마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아닌가싶습니다. 그렇게  닮은 사람을 만나가면서 서서히 슬픔도 잊어가겠죠. 그렇게 살다가 우리도 언젠가는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멍에처럼 남기면서 죽겠죠. 그게 삶이고 인생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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