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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평]뿌리는 껍질 안에서 길을 찾는다
2019년 07월 18일 09시 52분  조회:29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뿌리는 껍질 안에서 길을 찾는다

— 허련순작가와의 어느 만남

엄정자

 

“아, 오랜만이예요! 반가워요.”

석양빛이 비낀 연변국제호텔 정문으로 매미 날개 같은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반갑게 다가오는 이가 있으니 바로 허련순작가님이였다.

“여전히 우아하고 보기 좋네!”

늘 그랬듯 칭찬부터 하시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도요!”

그러면서 다시 바라보니 우아한 옷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비닐봉지 하나를 달랑 들고 있었다.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손에 든 비닐봉지를 들어보이며 “내가 엄선생한테 줄 책만 생각하다 보니 현관 앞에 놓은 지갑이 든 가방하고 핸드폰은 그만 두고 나왔네. 열쇠도 가방 안에 있어서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식사 대접한다고 해놓고 지갑을 두고 나왔다면 누가 믿겠나? 참 내가 이렇다니깐…” 하며 멋적게 웃었다. 생각보다 허술했다. 하지만 돌담에 틈이 있어 단단하듯이 인간은 실수가 있어 더 완벽한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실수에서 그의 인간적인 면이 느껴져 편안해졌다.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식사대접 하기로 했잖아요.”  

“무슨 소리! 엄선생은 먼곳에서 왔는데 내가 대접해야지. 좀 있다가 남편에게 전화하면 돼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더니 우리가 식사하려고 했던 국제호텔 레스토랑이 휴업하는 날이여서 우리는 ‘큰가마밥집’이라는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련순작가님은 자리에 앉기 바쁘게 다른 사람의 전화를 빌어 남편한테 돈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익숙한 솜씨로 날렵하게 번호를 누르는 그녀를 보면서 “선생님은 남편 분의 번호를 기억하고 계시네요.”라고 하자 “남편하고 딸애 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의 번호는 모두 머리로 기억해요.” 하며 웃으신다.

수자에 약한 내가 감탄하자 “남편이 집안의 주요한 일을 맡아주니 내가 사소한 일을 기억하는 여유가 있는 거죠.”고 롱담을 했다.

허선생님은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컴퓨터 앞에 가서 앉는다고 한다. 메일을 체크하고 필요한 답신을 하고 글쓰기에 돌입하는데 그 사이에 남편은 아침준비를 하고 다 되면 안해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료수집은 물론이고 잡지사와의 미팅이나 계약도 다 남편이 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글을 안 쓸 때는 아무 것도 안해줘요.” 하며 허선생님은 허탈하게 웃었다.

“아주 격이 있는 매니저이시군요!”

“그런 셈이지. 남편은 자신이 격은 모든 일이 소설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그 날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계속 말하는데 정말 귀찮을 때가 있어요. 그 분의 말에서 소재를 얻을 때가 많으면서도 말입니다.”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아B정전>같은 소설들은 다 남편의 이야기에서 령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고 하였다.

그는 소설이 끝나면 제일 먼저 딸한테 보이는데 딸이 감동이 없다고 하면 주저없이 버린다고 했다. 그는 버리는 것에 린색하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새것을 담을 자리가 없다나. 아무튼 젊은 감각은 딸을 통하여 아쉬움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허련순작가의 남편인 홍성빈씨가 돈을 가지고 음식점으로 찾아왔다. 미남으로 불리웠던 옛날 모습이 중후함 속에서도 아직도 남아있었고 친화적이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투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안해에게 페 끼칠가 미련없이 떠나는 뒤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허선생님의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를 전해받을 때도 허선생님 대신 남편인 홍성빈씨에게서 전해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허선생님은 참 복도 많다.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매니저 같은 남편에 엄한 비평가 딸이 있어서 허련순은 소설가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작가는 어떤 문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현실적 제한성을 극복해야 하는지에 화제를 모았다.  허련순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문학은 위축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경을 터닝 포인트로 삼고 더 높은 레벨로 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가 오히려 문학하기 좋은 적기라고 말이다. 장편소설 <춤추는 꼭두>를 쓰게 된 동기를 묻자 허선생은 한국에서 있은 어느 문인대회에서 만났던 뉴질랜드의 엡스타인교수와의 일화를 꺼냈다. 그는 4개 국적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자유로운 번역가였는데 디아스포라 개념에 대하여 별로 의식하지 않았으며 국경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디아스포라의 주제에 집착하고 있었던 허련순에게 있어서 그와의 만남은 조금은 충격이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국가 안에 갇히지 않은 인간과 인간의 대등한 관계 안에서의 정체성의 확립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가치를 찾는 길이라는 인식을 가져오게 된다.

그는 ‘디아스포라문학의 선구자’ 재일동포작가 서경식교수의 영향으로 디아스포라문학의 동기를 확립했다가 엡스타인교수의 의식과 라이프 스타일에서 힌트를 받고 다시 그 속에서 나오는 즉 디아스포라문학을 넘어서야 하는 필요성을 깨달은 셈이다.

절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저 하는 명철한 작가의식, 문제의식, 이는 허련순이 조선족문단의 대표적 작가로 될 수 밖에 없는 필수적 조건이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는 여전히 허련순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그는 까고 까도 끊임없이 새것이 나오는 양파를 닮은 작가였다. 아직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안타까웠다. 나는 국제학술회의 때문에 연길에 왔었기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도 허선생님에게만 마음이 쏠려 다른 사람의 발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회의 도중에 나와서 전화를 걸어 그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급히 마무리지어야 할 글이 있어 시간 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오전시간을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연변대학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백산호텔 커피숍에 도착하니 허련순작가님은 벌써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밥을 사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선생님은 기어이 비싼 홍차 값까지 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연길에 올 때마다 허선생님은 나에게 밥을 사줬던 것 같다. 이 같이 친구나 지인에게 린색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 내밀어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씀씀이는 그의 글에서도 그대로 표현되고 있다. 

허련순 소설의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가 사회에서 소외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인물들이다. 사람을 중히 여기는 따뜻한 인간애가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는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차별당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그들의 아픔을 아파하며 살뜰하게 쓰다듬어줄 수 있었다.

《바람꽃》의 주인공 홍지하는 비록 작가이기는 하지만 교도소에 갔다 왔고 안해에게 리혼당했고 ‘사기군’으로 ‘호모’로 몰리여 억울한 류치장 신세까지 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의 주인공 세희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고 이모부에게 유린당했고 결혼생활도 여의치 않아 두번이나 리혼했으며 남의 집 강아지가 먹는 쏘세지도 아이들에게 마음껏 사줄 수 없는 빈궁한 생활을 해야 한다.

<중국색시>의 단이는 한족인 아버지와 조선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여난 ‘짜구배(혼혈아)’인데다가 ‘부모를 잡아먹는 사주’를 가지였고 그래서 어머니가 남편의 릉욕을 참지 못하고 목을 매여 자살하였을 때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의식을 느낀다. 거기에다가 어머니 대신으로 의지하던 외할머니, 첫사랑 룡이까지 죽으면서 그는 있을 곳이 없게 되여 15살이나 이상이고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없는 한국남자와 결혼한다.

디아스포라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람꽃》,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중국색시> 3부작을 통해서 허련순은 조선족의 뿌리 찾기, 정체성 찾기, 인간의 소통을 통한 치유의 과정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사회학적 접근으로부터 인문학적 접근을 하는 창작양상의 변화를 보여준 <중국색시>는 새로운 문학에로 승화하는 전환점이 되였으며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변화양상을 연구하는 교과서적 역할을 하게 되였다. 이로써 디아스포라 문학을 완성하는듯 보이다가 최근에 <춤추는 꼭두>를 보여주어 깜짝 놀랐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가? 억압된 인간의 심적 목소리를 복원하고 인간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매번 놀라운 느낌이지만 허선생님은 자신의 작품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데에 너무 정확하고 투철했다. 늘 깨여있고 사유가 명석한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허련순은 자기 문학의 근원은 아버지라고 했다. 다섯째 딸로 태여났다는 태생의 조건으로 아버지의 소외를 받아야 했고 이름마저 없어서 친척 오빠가 지어준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허련순은 “어린 시절에 벌써 인간의 소외와 차별과 슬픔을 경험했고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해지는 가장 큰 부정과 비애임을 체험했다.”(허련순 문학자서전 《문학은 죽음을 통하여 거듭 문학으로 태여난다》)

하지만 허련순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저녁 밥상머리에 그녀가 보이지 않아도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그녀였지만 스스로 개구리, 물고기를 잡아 팔아서 자기 학용품을 해결했는데 고기 잡는 채발마저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마당에 뒹구는 나무토막을 대패질도 하지 않은 채 틀을 만들고 버려진 양철 바게쯔를 펴서 못으로 구멍을 내서 바닥을 댔다. 그것은 어린 소녀가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씩씩하게 고기 잡으러 다니였고 지금도 그는 어린 시절 손바닥에서 파닥파닥거리던 물고기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한다.

놀음에 탐해 혹시 늦어진 날에는 아버지에게 책망받을가 두려워서 밖에서 부모님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키높이 자란 옥수수밭에 쪼그리고 앉아, 뒤마당의 짚가리 속에 들어앉아서 개구리의 개굴개굴 우는 소리, 풀벌레의 찌르륵 찌르륵 우는 소리를 들었다. 매미는 맴맴,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철 따라 다른 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구름 속을 헤염치는 달님을 따라가면서 그는 미래의 꿈을 키워왔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하는 마음의 빈자리를 자연의 아름다움, 풍요함으로 채워갔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소외한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았고 대학교를 다닐 때는 주말마다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 그런 딸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불효녀가 효자였다”는 말을 남기셨다. 딸로 태여난 것이 ‘불효’였다면 아들보다 더 부모에게 효도했으니 ‘효자’인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아이 같이 자유롭게 자라온 그런 풍만한 정서가 있었기에 허련순은 ‘슬픈 이야기를 아름답게 쓰는 작가’로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뿌리가 껍질 안에서 길을 찾듯이 허련순은 부단히 겹겹이 두꺼운 껍질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길을 모색해가고 있다. 다음은 또 어떤 작품으로 자신을 선보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어느 문학노트에서 그는 “작가는 문제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자유롭다. 나는 소설로 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 현실에서 나는 늘 벽걸이 뒤면처럼 현실의 내 삶에서는 물러나있었다. 그리고 생계 그 이상의 소명의 자리에서 문학으로 수십번 죽고 다시 태여나면서 오늘까지 버텨왔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지만 아직 아무 것도 아니였던 시절에 다른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소설을 쓰면서 견뎌냈다. 나의 경험에서 문학창작이란 결국 자신의 가장 불안한 상태를 견디여내는 일이였다고 믿는다.”고 쓴 적이 있다.

대학 선배이면서 문학선배인 허련순소설가, 우리 문단에 이렇듯 멋진 작가가 있다는 것이, 그렇듯 훌륭한 그의 작품을 내가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인 것 같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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