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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선족 가문의 100년, 그 희로애락의 파노라마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7월7일 14시39분    조회: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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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수한 민족교육자인 계영자 선생이 쓴 중문으로 된《원색 기억 - 어느 동북 조선족가족의 생활사》(《原色记忆:朝鲜族一家在东北》) 장편실기가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의 출간은 우리 조선족문화사에 뜻깊은 한페지를 남기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책을 읽어 내려가노라니 이주와 정착의 조선족 백년사가 실경처럼 눈앞에 펼쳐졌고 주인공들의 이야기 하나하나 그리고 거기에 얽힌 희로애락이 나로 하여금 끝없는 감동으로 잠겨들게 하였다. 아울러 저자의 섬세하고도 예민한 력사의식과 문화의식 그리고 절묘한 구사와 뛰여난 언어적 감각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나의 가족”, “남편의 가족”, “나의 교직 성장기”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계씨, 리씨 두 가족의 5 대에 거친 가족사와 저자가 수십년간 대련조선족학교에서 근무한 경력을 한편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로 연출해내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독자들은 이주민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공민으로 정착해간 조선족의 력사를 볼 수 있고 아울러 한 농민의 자식이 나라와 민족의 동량지재로 성장해간 저자의 성장기를 감명깊게 읽어낼 수 있다. 따라서 이 실기는 한부의 민족변천사인 동시에 민족발전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조선족은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주해 온 뒤 무수한 고난과 질고를 겪으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였는바 중국은 조선족들의 삶의 공간, 문화공간이요 또한 정치공간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조선족들은 땀을 흘려 황무지를 개간하였고 시대적인 호소를 떠받들어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에 뛰여들어 피를 흘려 중국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지울 수 없는 공적을 이룩하였다. 해방후 조선족인민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아래 진정으로 이 땅의 주인이 되여 부지런히 삶을 개척하여 중국의 사회주의 건설과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학자들은 《중국조선족이민사》, 《중국조선족항일투쟁사》, 《중국조선족교육사》 등 력사저서 그리고 인물평전과 력사소설들을 내놓았다. 이러한 저술들은 민족의 력사를 돌아보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며 민족문화의 교육을 진행함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여태껏 조선족가족사를 제대로 담아낸 책이 거의 전무한 것은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문인들이 지은 회고록 같은 저술들에 가족사 관련 내용들이 일부 포함되여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단편적인 서술에 지나지 않았다. 한 민족의 력사를 알아가는데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등이 중요함은 물론이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의 력사, 한 가족의 력사가 모아져 민족의 력사를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계영자 선생의 이 실기는 중요한 문화적, 문헌적 가치를 가진 조선족 생활사와 가족사의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기에서 가장 먼저 돋보이는 것은 저자가 시대정신에 대한 정확한 파악에 기초하여 중국현대사의 맥락속에서 계씨, 리씨 두 가문의 일상과 생활을 중국현대사, 중국조선족사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문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로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살길을 찾아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동북지역에 이주를 하여 거칠고 험난한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의 삶을 시작하였다. 두 가족 중의 진보적인 젊은이들은 시대적 책임을 짊어지고 당의 교육을 받고 항일투쟁에 뛰여들었다. 일제가 패망한 뒤 두 가족은 중국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되였고 토지를 분배받아 진정으로 이 땅의 주인이 되였으며 새 중국의 창건과 민족자치정책으로 새 나라의 국민으로 되였고 세세대대로 안녕과 번영을 누리게 되였다. 그들 가족중에는 교사, 기술자, 과학자도 있고 외국류학을 마치고 외자기업에서 근무하는 이도 있으며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였다. 저자는 부동한 세대의 서로 다른 의식세계를 그려냄으로써 그들에게 각인된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었고 조선족의 백년력사를 생동하게 그려냈다. 조선족 제1세대와 제2세대의 생활이 개간과 저항의 력사로 일관되였다면 제3, 4, 5세대의 생활은 노력과 분투 그리고 다양한 선택과 발전의 력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씨네는 평범한 농민가족으로 생계를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면서 집시와도 같은 생활을 했었고 리씨네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왔다. 이주와 정착의 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두 가족에게 있어서 리산과 정착 그리고 발전이라는 삶의 주도적 리념과 방식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 두 가족의 력사는 중국조선족력사의 한부분이였고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들의 개척과 투쟁의 력사의 일부분인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는 예민한 문화적 통찰력으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전하고 변화하는 조선민족의 의식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조선족의 의식변천은 전통과 현대, 남성과 녀성, 선배와 후배, 민족문화 사이의 경계 등을 통해 보여진다. 제1세대 계씨, 리씨 두 가족에는 남자가 집안일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 녀자는 남자와 같은 상에서 식사를 하지 못한다, 녀자는 집안일만 해야지 사회활동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등 ‘불문률’들이 있었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점차 새로운 가치관에 의하여 밀려나게 되였다. 제2, 제3 세대에 이르러 두 가족의 녀성 중에는 ‘부녀주임’, ‘직장주임’, ‘로동모범’, 교장이 배출되였고 외국류학생과 기업가도 배출되였는바 이는 새로운 사상의 승리요 민족의식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 타민족과의 통혼을 엄금하는 ‘불문률’ 역시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애정과 혼인에 있어서 크나큰 곤혹을 느끼게 하였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이 ‘불문률’ 역시 깨지게 되였고 다민족가정의 출현은 역전할 수 없는 추세로 되였다. 이러한 의식변천을 기성세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세대간의 모순과 충돌 또한 불가피한 현상이 되였다. 저자는 예민한 시각으로 이런 현상들을 포착하고 그려냄으로써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의 등장을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 다음 저자는 민족담론으로 조선족의 정체성 및 그 특징들을 그려냈는바 상당한 편폭을 들여 항일담론, 계급담론, 국가담론 등 주류담론들을 전개함으로써 시대와 일상을 조화로운 화폭으로 그려냈다. 아울러 저자는 한세기 남짓한 세월 속에서 중국조선족들이 어떻게 민족담론을 구축해갔고 어떻게 정체성 확인을 진행해왔는가 하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계씨, 리씨 두 가족은 중국으로 이주한 뒤 어떠한 어려움속에서도 시종일관하게 민족의 문화, 륜리와 도덕을 지키기에 애썼다. 그들은 쌀밥을 먹고 찰떡을 치고 탁주를 빚어 마셨으며 흰옷을 입었는바 이는 백의민족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자아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아리랑’을 부르고 민요와 타령을 즐겼으며 명절이면 그네를 뛰고 화투를 쳤으며 이웃끼리 즐겁게 어울려 놀았다. 언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자녀들에게 열심히 조선어를 가르쳤다. 저자는 또한 조선족의 국가정체성과 중화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바 이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조국과 이 땅에 무한한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이들의 국가정체성은 명확했고 문화정체성은 다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저자는 생동한 필치로 다원문화 배경하에서의 조선족문화의 포용성을 그려냈는바 이들은 자기 민족의 언어를 잘할 뿐 아니라 한어도 잘하기에 애썼고 타민족의 음식, 륜리와 풍속습관들을 포용하면서 시종일관하게 다민족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노력했고 주류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다원문화담론을 써냄으로써 민족문화와 정체성의 다중성을 그려냈고 민족문화의식의 구축과 발전의 추세를 전망했다. 
 
이밖에 저자의 가족사 서사 또한 독특한 풍격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사는 일반적인 력사와 달리 가족의 생활사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내용과 방식을 반영한다. 저자는 가족사의 이러한 특징들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바 글의 구조, 인물, 서사 등 방면에 있어서 치밀한 예술적 구사를 보여주고 있다. 거대서사와 미시서사의 결합, 인물창조와 가치구축의 결합, 지식성과 인문력사의 결합 등을 통해 이 실기는 시대성, 문학성과 지식성을 동시에 구비할 수 있었다. 조선의 망국, 항일투쟁, 토지개혁,항미원조, ‘문화대혁명’, 개혁개방 등 중대한 력사사건을 서술함에 있어서 저자는 명석한 두뇌로 시대정신과 본질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거대서사는 계씨, 리씨 두 가족의 생활서사 즉 미시서사와 치밀하게 결합되여 가족사로 하여금 시대적 궤적과 함께 짙은 삶의 숨결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두 가족의 5대에 거친 삶은 백명이 넘는 인물들의 살아 숨쉬는 미시서사를 통해 선명한 맥락, 뚜렷한 특성과 풍성한 내용을 갖출 수 있었다. 례를 들면 계씨 가문과 신씨, 전씨 두 가문이 술상에서 사돈을 맺은 이야기, 리인섭이 리홍광항일부대에 가담한 이야기, 리원흥이 혁명에 참가한 이야기, 리씨네 가족의 아들이 항미원조에 참가한 이야기, 할머니가 산나물 캐러 갔다가 호랑이 새끼를 살려준 이야기, 계씨네 한족 사위 맹의사가 출중한 의술로 환자를 치료한 이야기, 계씨 가문의 어머니 림씨가 부녀주임을 맡은 이야기, 리씨 가족의 어머니가 자식 대신 시동생을 구한 이야기, 리씨 가족 할머니가 손금을 봐서 손비를 택한 이야기 등 미시서사는 두 가족의 파란만장한 생활사를 피와 살을 가진 따뜻한 이야기로 담아낼 수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생동하고 흥미가 넘쳐 독자들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인물형상 창조와 가치의 발굴 역시 이 실기의 예술적 특성의 하나이다. 이 실기에는 백명이 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말수가 적은 저자의 아버지, 백면서생의 시아버지, 외유내강의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자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할머니와 시할머니,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핀 오빠와 올케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출국로무를 선택한 가족성원들과 외국류학을 통해 우수한 인재로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모두가 개성과 특성을 제대로 살린 인물로 그려졌다. 저자는 이야기속에 가치판단을 융합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읽으면서 삶의 진리와 생명의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한다. 아울러 저자는 시장경제의 격변중에서 뒤틀린 가치관을 가진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이들의 각성을 통해 인성의 자각과 인격적 수련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물을 그림에 있어서 저자는 화룡점정식으로 한 이야기를 통해 한가지 정신적 가치와 성격을 집약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 살아있는 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은 중국조선족의 의식세계와 성격특징, 륜리도덕과 생활방식 및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 
 
지식성과 인문력사의 결합 또한 이 실기의 특색이다. 저자는 풍부한 인문지식을 바탕으로 지역의 력사와 문화를 묘사하여 독자들이 계씨, 리씨 두 가족 삶의 인문적 배경과 생활장면을 리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례를 들면 압록강에 깃든 인문지식, 개원현성, 울란호트 등지의 력사와 문화 등은 이 실기의 인문적 가치와 지식적 밀도를 증명해주고 있다. 이밖에 서사와 서정의 유기적 결합도 실기의 예술적 효과를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서사를 진행하면서 적재적소에 가요와 시가를 삽입하여 작품의 예술적 감화력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을 즐기는 조선족의 문화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실기의 제3부에서 저자는 대련조선족학교에서 근무했던 수십년의 경력에 근거하여 조선족교육의 발전사를 그려낸 동시에 민족교육에 대한 저자의 리념과 실천을 소개하였다. 교육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당의 민족정책과 교육정책 그리고 조국, 민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현대교육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저자의 인식은 상당히 심각한바 교육은 반드시 학생을 근본으로, 교사를 주도로, 사랑을 전제로 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실기를 통해 독자들은 대련조선족학교가 무에서 유로, 소학교에서 고급중학교로, 일반학교에서 명문학교로 성장할 수 있은 것은 당의 민족정책과 갈라놓을 수 없고 이 학교 몇세대 지도부의 로고와 창의력 그리고 민족교육을 사랑하는 교사들의 헌신과 갈라놓을 수 없으며 나아가 조선족사회 각계 유지인사들의 관심과 성원과 갈라놓을 수 없음을 깨달게 된다. 한마디로 이 실기는 조선족 녀교장의 직업생애를 다룬 한편의 훌륭한 성장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독자들은 조선족교육의 발전을 위해 반생을 바친 한 녀성교육자의 사고와 고민, 탐구와 창조 그리고 헌신과 봉사에서 크나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저자 계영자 선생은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대련조선족소학교에 자리를 잡은 뒤 교장까지 력임하면서 조선족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를 창설하여 지역 명문학교로 성장시켰는바 대련지역의 조선족교육의 발전을 위해 리정비적인 업적을 이룩하였다. 그 과정에 대련시정치협상회의 위원, 전국민족단결모범에 당선되는 영예를 받아안았을뿐 아니라 대련의 발전을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도시에 핀 진달래》라는 실기문학의 주인공으로 기록되여 대련 백년력사의 한 페지를 장식하게 되였다. 계영자 선생은 또한 우수한 문필가이기도 하다. 그는 조선어와 한어로 이중언어 글쓰기가 능숙한데 수필집 《마음속 깊은 곳, 그 한떨기 란》을 출간하여 많은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 실기는 저자가 병상에서 완성한 작품으로 그의 뜨거운 사회적 사명감과 민족적 책임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의 교육과 문화의 발전을 위한 저자의 정신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필자는 이 실기가 조선족독자들에게 많은 감동과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한족 및 기타 민족 독자들에게 조선족을 리해하는 좋은 독본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출처:《중국민족》조선문판  글/김병민  편집/리호남  조판/ 한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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