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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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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시 "첫눈"에 대한 평론 묶음 댓글:  조회:3034  추천:5  2017-10-14
동시 "첫눈 " 에 대한 평론 묶음 과 다차원           한설매                                                                                                          하이퍼 동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벌써 첫 돐을 맞이하게 되였다. 하이퍼 동시를 배우면서 동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되였다. 그것은 동시는 전통동시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현대동시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이퍼동시도 있다는 깨침이였다. 며칠전 우연히 읽어보게된 권오삼의 “꾸준히 실험시를 써보라” 문장 중에 “내가 쓴 시 중에도 순전히 내 문학적 욕심으로 쓴게 있어요. 실험시라고 할수 있는건데 독자를 위해 쓴게 아니라 순전히 동시문학을 위해서 쓴거지요. 성인시에서는 실험시가 많이 나오잖아요. 동시도 필요하다고 봐요.” 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큰 계발을 주는 말이다. 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일상적으로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가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란다. 쓴단다. 독자를 위하지않고 동시문학을 위한다는 말의 차이는 엄청 큰것 같다. 독자를 위해쓴다는 것은 이데올로기 문학을 한다는 말이고 남을 교육하기 위해 쓴다는 말일 것이고 순전히 동시문학을 위해 쓴다는 것은 문학을 예술로 생각하고 심미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럼 우리가 쓰고 있는 하이퍼 동시는 어떤것인가? 먼저 하이퍼 시란 무엇인가 알아보자. 하이퍼 시란 무의식으로 쓴 시이다. 무의식으로 쓰게 되면 차원이 다른 이미지가 술술 나오게 된다. 이미지들이 차원이 다르기에 원인과 결과로 나타나는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이미지가 독립성을 띠고, 련결되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게 된다. 그리하여 한수의 시에 성질이 다른 이미지들이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이미지를 둘러싸고 쓰는 종적구성의 시인 것이 아니라 차원이 다른 여러개의 이미지로 구성된 횡적구성으로 된 시가 태여나게 된다.   아래에 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제4회 윤동주 문학상 동시상 수상한 황희숙 동시을 보자 떨어진다 쬐꼬만 은빛 보석이   떨어진다 커다란 그물에   떨어진다 땅거미 반찬으로      의 전문이다. 전형적인 하이퍼 동시이다. 첫째: 동시 “첫눈”은 다차원구조이다. 매련마다 다른 이미지들 움직임이 다. 1련, 2련, 3련서로 련관성이 없는 사물이 한수의 시를 구성하였다. 둘째: 횡적 배렬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매련마다 서로 순서를 바꾸어 놓아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로 구성되던 종적구성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시이다. 셋째: 하이퍼시의 중요한 방법의 하나인 링크 도 있다. 다시 더 자세하게 하나하나 살펴보자 1련에서 여기서 작자는 첫눈 오는 날 빤짝이며 떨어지는 눈꽃을 은빛 보석에 비유하고 있다. 매번 첫눈이 내릴 때면 어린이든 어른이든 다 그 깨끗하고 아름다은 눈꽃에 마음을 빼앗기군 한다. 길가에서 첫눈이 내릴 때 두 손을 들고 눈을 귀중한 보석이라도 받아 가질 듯 서로 앞다투어 달려가 떨어지는 눈꽃을 받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눈처럼 깨끗하고 맑은 어린아이들의 마음도 눈꽃이 되여 반짝이는것 같다. 2련에서  그물이라면 실이나 노끈, 철사 따위로 구멍이 나게 얽은 물건이다. 여기서 작자는 말하는 은 무엇일가? 정말 우리가 흔히 보는 무언가 잡기 위해 무언가 묶기 위해 만든 그물일가? 아니다 작가기 말하는 그물은 은어이다. 작자는 첫눈이 내릴 때 산에 들에 길......등 대지에 눈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마치 온 대지 전체가 그물이 되여 내리는 눈을 받는다고 상상하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먼 하늘에서 내리는 이 아파할가 대지가 그물이 되여 살짝 받아 안는다고 상상해보니 마치 엄마가 달려오는 아이가 넘어질가 두팔 벌려 안아주는것 같다. 정말 따뜻한 마음이 담긴 변형이다. 작자의 사유는 누구든지 정확하게 맞추기 어렵다. 필자만의 생각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대단한 착상이다. 추은 겨울날 눈내리는 모습도 이렇게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표현할수 있다는 것은 동시인만이 갖고있는 동심적 상상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3련에서 . 작자는 정말 대단한 발견을 하였다.  땅거미는 언어적 해석을 하면 해가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의 어스름 할 때를 말한다. 그럼 이건 시간적 환경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땅거미는 입도 다리도 몸둥이도 따로 없다. 작자는 를입도 있고 발도 있는 우리 주위에 흔히 볼수 있는 거미로변형시켰다. 그럼 반찬은 무엇을 말하는걸가? 거미는 메뚜기, 나비, 모기,파리등 곤충을 잡아먹고 산다. 그럼 땅은 거미가 친 거미줄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거미가 줄에 걸린 메뚜기, 나비 모기, 파리 등 먹이감인것이다. 필자는 눈꽃이 땅에 떨어져 녹아 사라지는 순간을 땅거미가 먹어버렸다고 상상한것이다. 즉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먹이감을 먹어치운것과 같은 말이되겠다. 얼마나 기발한 착상인가. 혹자는 눈이 어떻게 반찬이 되는가고 의문스러워 할수도 있다. 언어의 자유결합 기능에 의하여 산생된 이란 말이 처음으로 동시에 올랐으니깐. 언어의 기능에 의하여 산생되는 새로운 조어가 맞는가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조금은 언어 수양이 약한 표현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다. 의 작자들은 이런 현상이 이라고 하였다. ( 천개의 고원 784쪽) 동시 에서 매련마다 링크 작용을 하는 “떨어진다”는 동적 이미지로서 독자들에게 첫눈이 내리는 모습을 구수하게 보여준다고 하겠다.  황희숙 동시 “첫눈”은 다차원 기능을 적용한 동시이다.  도표로 그려본다면 즉 문학적으로 말하면 “첫눈”에서 , , 등 성질이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므로 다차원을 형성하고있다. 다차원이란 언어학적으로 말하면 사물의 다양함을 말한다. 우리는 다차원속에 살고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수림이라고 하면 나무도 있고, 풀도 있고, 돌도 있고, 시내물도 있다. 이것이 자연의 다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더 말하자면 우리 집안에는 걸상도 있고, 책장도 있고, 밥상도 있고, 텔레비죤도 있고, 핸드폰... 등 있다. 우리 이 모든 사물과 긴밀하게 같이 공존하고 있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한가지라도 없으면 더 불편할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동시들은 자연과 우리 주위의 모든 사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자연속 모든 사물들은 땅우에 공존하고있다. 즉 땅이란 한 선에 놓여져있다. 나무있기 때문에 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돌이 있기 때문에 시내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 평등한 선우에 있다. 이것이 다차원이자 하이퍼이다. 그러니 우리 쓰는 한수의 동시에 많은 이미지들 (이미지들은 자연과 우리 주위 사물에서 오는것이다.) 이 공존할수 있다. 아래에 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제3회 윤동주 문학상 동시상을 수상한 김봉순 동시 “양배추”를 보자   해살을 꽁꽁 싸먹는다 바람을 꽁꽁 싸먹는다 새소리 꽁꽁 싸먹는다 어느새 동글동글 배 뚱뚱이 됐네   “양배추”의 전문이다. 양배추는 우리 일상생활에 먹는 일종의 채소이다. 시장에 가면 사시장철 흔하게 보고 먹는 채소가 작자의 손에 의하여 깜직하고 귀여운 동시로 다시 탄생하였다. 동시 “양배추” 전반시가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공력을 들이였다. 1련: . 여기서 해살은 해에서 뿜겨나오는 빛을 말한다. 볼수 있고 느낄수 있는 하나의 자연현상이다. 이런 해살을 양배추 이파리가 겹쳐있는 특성을 살려 해살을 싸먹는다고 하였다. 이련을 읽어보면서 필자는 따뜻한 해살을 먹는 양배추 입은 뜨거웠지 않았을가 하고 걱정도 해보았다. 2련:  바람은 우리가 볼수도 만질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바람으로 인해 다른 사물의 흔들림에서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느낄수 있다. 작자의 필끝에서 바람도 양배추가 꽁꽁 싸서 먹을수 있는 반찬으로 되였다. 바람맛은 무슨 맛일가? 양배추만 알고 있을 것이다. 3련:  새소리는 새의 울음소리를 말한다. 작자는 청각적 현상을 시각화하여 우리한테 보여주었다. 4련:  마지막 련을 읽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의 3개련의 종결이라고 생각하고이 시는 현대동시고 하이퍼 동시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하이퍼 동시를 쓸줄 아는 사람은 절대 이렇게 말을 하지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는 3개련이 종결도 되고 독립적 이미지도 되기 때문이다. 4련을 어떠한 위치에 놓아도 이 동시는 어색하지 않다. 하이퍼 동시의 횡적배렬 특성에 맞으니깐. 다시 말하면 동시 를 1련,2련,3련.4련 순서로 배렬할수 있고, 4련,1련, 2련,3련 순서로도 배렬할수 있다. 또 4련,2련.련 1련, 혹 2련,3련,1련,4련,  3련,1련,2련,4련 이렇게 배렬하여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 동시에서 작자는 손도 발도 눈도 입도 없는 채소 양배추를 배 뚱뚱이로 이인화 하였다. 필자는 이 동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흔히 먹는 보쌈이 떠올랐다. 보쌈집에 가서 보쌈을 먹을 때면 쌈을 싸먹을 소고기, 삼겹살, 족발 그리고 마늘 고추, 양념장... 등 다양한 반찬들이 밥상에 오른다.그럼 여기서 은 소고기이고 , 은 고기 먹을 때 같이 먹는 마늘 고추이고, 맛을 더 해 주는 양념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정확한 해설은 작자만이 알것이다. 너무나도 귀여운 동시이다. 가 . , 를 꽁꽁 싸서 먹는 모습이 마치 배뚱뚱한 아이가 소고기 쌈에 마늘도 놓고 양념장도 넣어 야무지게 쌈을 싸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동시 “양배추”에서 1련 . 2련 , 3련 , 4련 는 어느 한 이미지도 직접 련계를 가지고 있지않고 어느 한 사물도 다른 사물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매련의 이미지들은 독립성을 가지고있다. 이 독립성을 가진 이미지들이 한수의 시를구성하였다. 다시 말해서 다차원 기능을 적용한 동시이다. 도표로 그려보다면 이것이 바로 하이퍼동시의 핵심인 이미지와 이미지사이가 단절되여 있고 서로 련계성이 없다는 특성을 구비한 하이퍼 동시다. 우에 두수의 동시를 보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쓴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나모양, 성질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물로 만들었다. 어떤 규정에 의하여 만들어진 사물인 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 ㅡ 아무런 제한성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으로 부각된 표현들이다. 두수의 시를 학습하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성인시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동시도 여러 갈래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야하지 않을가. 한 격식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되지 않을가. 꾸준히 새로운 실험시를 써보는것이 좋지 않을가. 선자리 걸음을 하면 안되지 않을가. 우리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여야 하지 않을가. 필자의 생각에는 우리가 배우면서 실험하고  있는 동시 ㅡ 하이퍼 동시가 꾸준히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된다.                                                       2017년 9월 20일   하이퍼동시 에 대한 단상                                            윤옥자        황희숙 동시인의 에 대하여 말해 보고저 필을 들었다. 우선 그의 이 어떤시인지 읽어보자         첫눈   황희숙   떨어 진다 쬐꼼한 은빛 보석이   떨어 진다 커다란 그물에   떨어 진다 땅거미 반찬으로       제목이이니깐 시인은을 맞는 기쁨으로 에 대한 시야를 남달리 한것 같다. 이 시를 보면 제목이 인데 시문에는 첫눈이란 말이 없다 이 떨어진다 하였고 이라 했다. 시인은 떨어지는 을 보면서 상상을 뛰여넘어 환상속에서 이질적인 이미지 을 보았다.      쟈크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라고 했다. 이 어록을 살펴보면 사물관계가 시각을 통해 이루어 질때 재현의 여러통로란 다선이란 뜻으로 풀이되고 무의식 공간에서 생소한 이미지로 된 사물 즉 리좀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 무엇인가 빠져나가 사라지고 단계별로 전달되며 숨겨져 들리지 않는 이것이 응사라 했는데 이런 응시가 하이퍼시가 아닌가 싶다. 하이퍼시에서 리좀으로 된 이미지는 무의식 공간에서 환상속을 날아 다니면서 여러 갈래로 접속될수 있는 복잡한 련관성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깨여지고, 부서지며 재생하는 것으로 령토화 되고 재령토화 되며 절편된다. 또 숨겨져있는 그 무엇이 많고도 많다. 쟈크라캉은 또 라고 했다. 응시가 왜곡된 상이란 말은 변형된 사물이란 말이다, 하이퍼시가 환상속에서 얻어지는 허상도 응시라 할수있다. 응시는 하이퍼시고 하이퍼시는 판도라 상자라 말하고싶다. 쟈크 라캉의 어록에서 라 했는데 우의 시에서 시각을 통해 을 보았고 재현의 여러통로란 상상을 뛰여넘은 환상속에서 이미지로 된 이 배열 되였으며 빠져나가고 사라진다 했는데 자리에 이 자리를 차지하고 이 빠져 나가고 자리를 또 그물이 차지하고 은빛 보석은 빠져 나가고 이렇게 단계별로 전달 되였다.  시 첫련에 쬐꼼한  라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황홀하게 빛나는이 떨어지는 것으로 이미지화 했다. 이은 시인의 의도된 생각이 아니다. 무의식 공간에서 상상으로 얻어진 이미지며 리좀이며 령토다 여기에서 이미지란 탈과념 된 사물을 말하는데 그것이  은빛 보석이다. 이 은빛보석이 바로 하나의 응시라고 할수 있겠다. 리좀이란 끊임없이 련결되고 도약하며 일탈하는 련쇄라 했다. 리좀자리에 있는 은빛 보석은 돌과도 련결될수 있고 꽃과도 련결되였다가 도약하여 일탈하는 련쇄이다. 령토란 련결되였다가 도약하며 차지한 자리를 말한다.   두번째 련에서는  이번에는 그물로 이미지화 했다.  삼련에서는  라 한다. 시인은 시를 쓸때 몇십분의 일초, 몇백분의 일초의 것을 쓴다고 한다. 많이 오지 않는 첫눈이 녹으면서 어둠이 깃들때 시인은 어둠속에 사라지는 눈을 보고 환상속에서 땅거미 반찬으로 이미지화 했다. 시는 이미지로 말하고 이미지의 움직임으로 보여 준다 했다. 쟈크 라캉이 말했듯이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레 접하게 되는 경험이겠다. 시인은 을 응시하면서환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고 훌륭한 하이퍼 동시 을 썼다 .   깜찍한 아이들 언어로  횡적구성으로 되여있다. 횡적구성이란 한수의 시에서 성질이 다른 이미지가 함께 생성되여있는것을 말한다. 이란 시에는 도있고 도 있고도 있다.이런 것들은 모두 성질이 다른 것들인데 한수의 에서 공생한다.  그들은 제각기 자기 의미를 가지고 있음으로 련과 련을 바꾸어 놓아도 될수있고 독자가 참여하여 더 내리 써도 무방하다.  이런식으로 말이다. 시인은, 쟈크 라캉이 말했듯이 신비로운 우연의 형태로 갑작스레 접하는 떨어지는  첫눈을 보면서 환상속에서 이란 사물을 떠 올리게 되였다. 은 에 의하여 빠져 나가고 사라지였다. 은 다음련에 의하여 산생된 에 의하여 빠져나가 사라지고 만 남았다. 은 또 에 의하여 빠져 나가고 사라지였고 만남았다. 은 을 대체 하였고 은 을 대체하였고 은 을 대체 하였다. 마치 파도가 솟구쳤다가 물앉고 하는 것처럼, 산봉우리가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 또 각 련마다 같은 말이 있을 때는 링크로 되고 없을 때는 초링크로 되는데 이 시에서는 각 련마다 가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링크로된 하이퍼동시에 해당된다   이상 에 대한 단상을 마친다.                               2017.    9.  21.     다선적인 동시 “첫눈” 에 대한 단평                                           강려   필자는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도 모르고 동북아문학예술연구회 제4회 윤동주문학상 동시상을 수상한 황희숙선생님의 동시 “첫눈”에 대한 필자만의 단평을 감히 몇자 적어본다. “떨어진다 /쬐꼬한 / 은빛 보석이 // 떨어진다 / 커다란 / 그물에 // 떨어진다 / 땅거미 / 반찬으로 // ” 이번 4회 윤동주문학상 동시상을 수상한 황선생님의 “첫눈’의 전문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속에 “은빛 보석”, “커다란 그물” “땅거미의 반찬” 등 서로 다른 이미지가 함께 공존한다고 하겠다 . 즉 동시가 단선이 아닌 다선으로 되여있는 실험적인 동시라 하겠다. 그럼 단선은 무엇이고 다선이란 무엇인가? 단선이란 줄이 한가닥 이라는 말이라 하겠다 . 즉 외줄이라는 말이라 하겠다 다선이란  줄이 여러가닥이란 말이라 하겠다. “숙제 기계, 오 숙제 기계 / 여태껏 본 것 가운데 가장 완벽한 발명품 / 숙제를 넣고 은화 하나를 집어넣으세요 / 그러곤 스위치를 탁 누르면 단 십 초 안에 / 숙제가 끝나서 나옵니다 대단히 빠르고 말끔하게 / 자, 여기 나왔습니다 9 더하기 4의 답은 3입니다 / 3이라고? / 어이쿠 / 생각했던 것만큼 / 완전한 건 아닌 모양이군 //” 미국의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며,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시인, 음악가로 폭넓은 예술활동을 했다는 쉘 실버스타인의 단선적인 동시 ”숙제기계” 전문인데 전반동시가 하나의 이미지에 대한 서술만 있다. 즉 숙제기계가 대신해준 수학숙제의 답이 틀리게 나왔다는 것만 쓰고 있다.  즉 단선구조인것이다 근데 “첫눈”은 “숙제기계” 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하나의 이미지를 갖고 쓰는 종적구성이 아닌 여러개의 이미지로 구성된 횡적구성으로 된 동시라 하겠다 . 1련에서 시적화자는 첫눈이 “은빛보석”으로 떨어지고있는 그림을 보여준다. 누가 떨군 은빛보석일까는 어린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고 하겠다 . 2련에서 시적화자는 그물에 떨어지는 첫눈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아이가 상할가봐 산 들 길 나무 등이 이쁜 그물이 되여 떨어지는 첫눈을 받아준다는 사랑의 그림이라 하겠다. 3련에서 시적화자는 땅거미의 반찬으로 떨어지는 첫눈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어쩜 어둠이 맨 이밥만 먹는게 안쓰러워 구름이 소고기반찬이며 달알채며  준다는 따뜻한 그림이라 하겠다 필자는 1련, 2련, 3련이 차원이 다른 이미지로 씌여졌기에 련과 련을 서로 바꿔도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시작과 끝이 따로 없기에 읽는 독자가 더 써내려갈수도 있는것이다. 종적구성이 아닌 횡적구성으로 된 동시이니까 총적으로 황쌤의 동시 “첫눈”은 동심의 크레용이라 할수있는  “은빛보석 “  “그물’’ 반찬”으로 첫눈 오는 날의 정경을 3장의 이쁜 그림으로 우리한테 펼쳐보여주고 있다. 시적화자는 혼자가 아닌 어울림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복잡한듯 매련마다 링크인 “떨어진다” 는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단순한 연결을 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언젠가 한국 권오삼동시인님의 “여러빛갈의 동시 읽기”란 평론에   라는 단락을 읽은적 있다 . 그러면  황선생님의 동시 “첫눈”은 동심의 눈높이에서 어린 독자를 배려하고 쓴 우리한테 본보기를 보여준 그 여러빛갈의 동시들중의 가히 실험동시라 할수있는 다선적인 동시라고 본다 필자는 황희숙선생님의 새로운 정진을 기대한다.   2017-09-22     도주하는         김봉순     문학창작이란 새로운 예술작품을 쓰는것인 만큼 하이퍼시 10대 촉구중 도주를 갖고 하이퍼동시 “첫눈”에 대한 짧은 소견을 말해보려 한다 하이퍼시 창작론 84페지엔 “ 하이퍼시는 고정이 아니라 도주를 촉구한다. 시간은 도 주를 하고있다…사람도 도주 하고 식물도 도주하고 … 시간의 도주를 따라 모든 사물 들도 따라서 도주한다. 도주를 통하여 ” (210페지)…”라는 단락이 있다 도주란 피하거나 쫓기여 달아난다는것인데 그러면 시적인 도주는 어떤것일가 ? 하나 의 물질에서 그와는 관계없는 새로운 물질이  생성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사물들의 도주로 하여 하이퍼시가 태여난다고 할수 있다. 도주는 행과 행사이 에서 벌어지기도 하고 련과 련사이에서도 벌어지기도 하고 한행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아래 시로서 설명해보자.   떨어진다 쬐고만 은빛 보석이   떨어진다 커다란 그물에   떨어진다 당거미 반찬으로   동북아 문학예술연구회 제4회 윤동주문학상 동시상 수상한 황희숙 동시 의 전문이다. 이 동시는 전형적인 하이퍼동시이다. 찬찬히 읽어보면 매 련마다 사물들이 얼굴을 내 밀었다가 사라지는 경상이다.  한마디로 귀여운 도주이다. 첫눈이 1련에서   으로, 2련에서 로, 3련에서 도주하였다. 이들은 서로 아무런 인연도 련계도 없다.이렇게 련계도 안되는 물질들의 움직임의 련속을 도주라 한다. 이 도주는 련과 련사이에서의 도주라고 할수 있다.   도주를 나누는 기준은 내용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는 세가지 내용으로 도주했다. 도주가 형성되는 경우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현실에서 초월로 도약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초월에서 초월로 이어지는 경우라 하겠다. 의 경우는 련과 련사이에서 초월에서 초월로 이어지는 경우라 할수 있다. 하이퍼시는 여러번의 도주를 집성하여 시를 만들게 되는데 모든 도주는  동시 에서   , , 처럼 새로운 사물을 낳게 된다. 도주는 운동이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되는 운동이다. 하이퍼시는 모순속에서 새로운 모순이 나타난다. 항상 새로운 모순이 나타나는것은 도주의 조건이고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둔갑하는 것은 도주의 완성이며 결실이다. 완성과 결실은 또다시 새로운 도주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도주는 끝이 없다. 에서의 , , 은 앞의 사물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련계도 없이 자유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자유로운 등장이 바로 도주의 표징이며 이 사물에서 저 사물로 뛰여가기이다. 이러한 도주는 어떠한 기준도 없다. 동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자유롭고 귀여운 도주만이 있을뿐이다. 또한 도주에는 링크(련결)가 알리는 도주와 링크가 알리지 않는 도주가 있다. 에서는 링크가 알리는 도주이다.     아래에  더 자세히 이 동시를 살펴보자.   떨어진다 쬐꼬만  은빛 보석이   1련에서 눈꽃을 은빛 보석이라고 비유하면서 도주하였다. 눈이 내릴 때 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마치 하늘에서 은빛 보석이 떨어지는것 같다고 한다. 만약 은빛보석이 떨어진다면 얼마나 희한하랴. 아이들도 어른들도 두 팔을 쫙 벌리고 은빛 보석을 한알이라도 더 많이 받아가지려 할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 눈처럼 깨끗하고 보석처럼 아름다운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의 세계도 엿볼수 있다. 이라고 한것은 아이들의 상상을 나타내는 기발한 착상인것 같다.   떨어진다 커다란 그물에   2련에서 그물로 도주하였다. 아마 작자는 산, 나무, 길, 강을 얼기설기 엮어진 그물로 상상하고 그물 용도에 의하여 하늘에서 모래무치, 버들치, 쫑개들이 내려와 그물에 걸린다고 상상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도주는 시의 공간확장에 속한다. 2련에서 로 도주하여 1련보다 차원이 다르기에  공간이 넓어졌다 할수 있다. 대단한 착상이다.    떨어진다 땅거미 반찬으로   3련에서는 .도주하였다. 땅거미는 해가 넘어가면서 땅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것을 말한다.어둠이 시작되면 밤이 온다. 밤은 모든 사물을 삼켜버린다.   땅거미가 입이 없어도 반찬을 먹는다고 말한것은 어둠에 의하여 내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기발한 착상이다.   이렇게 하이퍼시 사물은 각이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이  여러가지 도주의 경로를 거치면서 차원이 다른 다양체를 형성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도주는 하이퍼시의 중요한 명제같다.     2017년 10월 9일
1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 권오삼 댓글:  조회:1410  추천:0  2017-10-14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 권오삼     만남 동시인 권오삼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취재, 정리 : 최현정     ‘동시인’ 하면 떠오르는 아동문학의 ‘어른’이 있다. 1975년 동시로 등단, 아동문학 시장이싹트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동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시인 권오삼. 수원의 자택으로찾아가 4시간 가까이 살아온 이야기, 권정생 작가의 이야기, 동시에 대한 그리고 아동문학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70년대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80년대에는 장사를 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사업을 접고 동시쓰기에 전념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다양한 인생이 현실 참여 동시집부터 동심이 가득 담긴 저학년 동시집과 고학년 동시집까지 그가 만들어낸 시세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한참동안 망설였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듣다 보니 마치 ‘동시 창작 개론’처럼 경험을 토대로 한 동시 창작의 원칙 혹은 노하우로 정리할 수 있었다. 경험을 토대로 전하는 생생한동시 창작 개론, 이번 호 만남에서는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변의 사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라   “나는 95년에 수원으로 와서 13년 동안 여기 공원에서 동시를 썼어요. 그러고 보니 시집네 권이 여기서 나온 꼴이네요. 시를 쓰려면 사물과 교감이 있어야 해요. 내 가까이 있는것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돼요.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무심히 보면 안 돼요. 여기저기 다니며 많이 보면 인식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시가 되고 글이 되는 건 아니지요. 동시는 성인시와 달라서 삶의 깊이, 무게를 다룰 수 없잖아요. 내가 공원의 도토리나무를 소재로 서너편 쓴 게 있는데, 만날 보는 도토리나무지만 어제 본 것하고 오늘 본 게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고, 또 해마다 보는 느낌이 다르지요. 얼마 전에 울산 암구대 반각화를 보고 왔어요. 같이 간 다른 동시인들은 반각화에 있던 고래랑 아기 고래를 보면서 시를 떠올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길에 버려져 있던 아기 신발을보고 시를 떠올렸어요. 설마 신발을 버렸을까, 잘못 두어서 잃어버렸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돌아오는 내내 그 신발이 눈에 밟혔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신발을 보고 시상이 떠올랐는데 아직 쓰지는 못 했어요. 작은 거라도 나에게 의미를 줘야 그게 시가 되는 거지요. 시인이라면 언제라도 사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사물이 다가오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겠지요. 머리(의식)가 깨어있어야지요. 의식이나 감각이 깨어있어야 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시가 쓰여 진다고 봐요.”     제대로 된 시 열 편만 써라   “일본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가 한 말이 있어요. ‘다섯 편만 쓰면 당신은 시인이다. 열편을 쓰면 당신은 대가다.’ 여기서 말하는 다섯 편이나 열 편은 그냥 다섯 편이나 열 편이아니라 제대로 쓴 다섯 편 열 편이겠지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유명 시인들 중에도 좋은 작품 열 편을 가진 시인은 흔치 않다고 봐요. 김소월, 이상화, 김영랑 등 이들 시인의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이 몇 편이나 되는지 생각해 봐요. 뛰어난 시가 열 편만 된다면대단한 시인이지요. 그리고 그 시들이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어 50년, 100년 뒤에도 남는다면 정말 대단한 거지요. 보들레르나 랭보, 김소월 같은 시인은 시집을 한 권만 냈잖아요. 시집은 평생 한 권만 내면되는데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작품이 나올까 싶어 쓰다 보니 시집이여러 권 되는 거지요.” 퇴고 과정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라     “나는 지금도 습작생이에요. 미당 선생이 이런 말을 했지요. ‘작품은 언제나 미완성이다’라고. 6월호에 발표한 「바람 부는 날」은 작년에 낸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있던 건데 다시 보니까 미흡한 점이 보여 고쳐서 발표했어요. 함께 발표한 「나무」도 다시 보니까 세 군데나 미흡해서 고친 뒤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어요. 쓸 때는안 보이다가 활자로 된 다음에야 꼭 눈에 띈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습작생이에요. 완전하게 써서 첨삭할 때가 한 군데도 없다, 마음에 든다, 그래야 되는데. 김소월도 「진달래꽃」을 스무 번 정도 고쳐서 발표했다고 했나, 가끔은 발표한 작품을 다시 고쳐 보기도하지만 고치지 않은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고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보면 나스스로 혼란에 빠져서 판단이 잘 안서요. 그럴 때는 시간을 두고 봐야 돼요. 쓴 작품을 묵힌 뒤에 다시 보고 나서 만족하면 발표를 해야 돼요. 몇 년 전에 쓴 거라도 계속해서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고쳐야 해요. 얼마만큼 그 작품에 시간을 투여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쉽게 써서 급하게 발표하면 안 돼요. 두고 두고 고친 뒤에 발표해야 돼요. 나 역시 충분히봤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보낸 뒤, 발표된 작품을 보면 또 미진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습작생이에요.”     동화와 비교하지 마라     “동시를 동화와 비교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어요. 7,80년대에는 동화나 동시나 시장이없어 대부분 자비 출판했고, 인쇄 출판은 거의 없었어요. 상대적 박탈감이 없었지요. 90년대 이후부터 동화는 아주 빠르게 시장이 커지고 동시는 느린 상태였으니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동시도 30년 전보다는 시장이 커졌어요. 나도 80년 초에 동시집을 자비출판을 했지만 그때는 거의 그랬어요. 동시는 동시인 지망생이나 동시인들끼리만 보는 거였어요. 돌이켜 보면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아졌어요. 지금은 경제적 여유도 있고, 부모들도 아이에게 동시를 읽히려고 하지요.”   동시는 본래 어려운 장르다     “동시가 동화보다 독자들에게 확산이 안 되는 이유는 운문문학의 특성 때문이라고 봐요.시는 본래 어려운 거예요. 쉬우면 시가 아니고 유행가 가사여야지요. 서사문학은 스토리거든요. 이야기니까 사람들이 그 내용을 따라가면 되지요. 옛이야기는 지금 봐도 재미있잖아요. 시대를 초월해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라든가 재미는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는 정서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정서를 표현하다 보니 그 정서를이해하지 못하면 독자가 못 따라 오는 거지요. 정서라는 건 1학년과 3학년이 틀리고, 5학년하고도 틀리잖아요. 그래서 동시가 참 어려워요. 개선책은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이원수 선생님 동시를 예로 들어볼게요. 이원수 선생님의 동시 200여 편 중에 아이들이좋아할 동시만 4,50편 묶어서 동시집을 낸 게 있잖아요. 그러면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왜 그럴까요? 공감하는 독자도 있지만 공감 못하는독자도 있다는 거지요. 이원수 선생님의 좋은 동시는 삶을 표현한 것인데 요즘 독자들에게는 정서가 안 맞는 거지요. 이런 게 동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요, 한계라고 봐요. 성인시는 그렇지 않지만.   동시가 안 팔린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 없어요. 좋게 생각하면 동시는 동화와는 다른 고고한 물건이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보면 돼요. 그렇다고 동시 쓰는걸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아이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교훈을 주고,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심성을 곱게 하고…….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를 썼어요.그래야 내가 보람된 일을 하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음악이나 그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듯 동시도 그렇게즐겁게 감상하면 되는 것이고, 고급 오락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단하게 여길 건 없다고봐요. 독자가 소수더라도, 그 소수의 독자가 내 동시를 읽고 잠시라도 즐거웠다면, 잠시라도 기쁨을 맛봤다면 그걸로 족한 거지요.” 상상력을 해방시켜 틀 밖으로 나와라     “성인시 쓰던 시인들이 쓴 동시를 보고 나도 많이 느낀 게 있어요. 불성실한 답변일지는모르지만 정직하게 말한다면 시는 고급 오락이라고 생각해요. 동시단에 있는 이들은 전형적인 동시를 고수하지요. 동시의 원줄기가 있다면 거기서 다양한 곁가지들이 뻗어 나와야하잖아요. 그런 시가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나 김기택, 최명란 시인의 동시라고 봐요.말놀이 동시에도 약점이 있어요. 그게 한 권으로 그쳐야 하는데 2권, 3권, 4권 계속되면 첫권의 모방밖에 안 된다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봐요. 정통적인 동시는 새로운 소재를 만나발상이 참신하면 새로운 동시가 되지만, 말놀이 동시의 경우는 양적으로 늘이는 것뿐이지매 권마다 새로울 수는 없지요. 상투성에 빠지기 쉽지요. 아쉬운 건 왜 동시인들은 이제까지 그런 동시 쓸 생각을 못했나 하는 거지요. 오래 전 나도말놀이 동시를 몇 편 썼어요. 그땐 이건 동시가 아니다, 라고 낙인찍어 버리고 더 이상 안쓴 거지요. 이제까지 대다수 동시인들은 틀 안에 갇혀서 벗어날 줄 몰랐어요. 그만큼 상상력이 빈곤했다는 거지요. 최승호 시인이나 김기택, 최명란 시인은 그런 면에서 자유로웠던 거예요. 동시인들은 교육적인 것에 매여서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못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런 게 없었던 거지요. 그들이 그런 동시를 발표하면서 동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었다고 봐요.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동시만 쓰는 동시인들은 동시를 의미 있게 쓰려고 하고, 성인시를 쓰는 시인들은 동시를 그냥 재미있게 쓰려고 한다는 겁니다. 역할이 뒤바뀐 거예요. 표현 방법에서도 동시인이 써야 할 방법을 그들이 쓰고, 성인시인들이 써야 할 방법을 동시인들이 쓰고. 까닭은 성인시를 쓰는 이들은 의미나 메시지 따위는 성인시로 풀어낼 수 있으니 동시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동시를 발랄하게 재미있게 쓰려고 한 거지요. 그들은 성인시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동시로 풀어낸 거지요. 반면에 동시인들은 자신이 겪은 인생이라든가, 하고 싶은 말을 달리 풀어낼 길이 없으니 거꾸로 동시에다가 담아 보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느끼지요. 그러다 보니 동시가 무거워지고딱딱해지고 그러는 거 같아요.”     꾸준히 실험시도 써보라     “동시를 쓸 때는 독자를 배려해야 돼요. 나도 예전에 뭘 모르고 쓸 때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지금은 쓰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요. 작품을 읽을 때도 아이의 눈높이로 작품을 보려고 해요. 아이들이 이 작품을 이해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감응을 할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 동시를 읽고 써요. 내가 쓴 시 중에도 순전히 내 문학적 욕심으로 쓴 게 있어요. 실험시라고 할 수 있는 건데독자를 위해 쓴 게 아니라 순전히 동시문학을 위해서 쓴 거지요. 성인시에서는 실험시가많이 나오잖아요. 동시도 필요하다고 봐요. 3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어려워요. 실제로해 보면 실패할 확률이 높거든요. 지금까지 쓰던 시 쓰면 위험부담은 없지요. 하지만 새로운 것도 시도해 봐야 돼요. 동시문학을 위해서죠. 그렇게 하다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때가 있겠지요. 능력 있는 후배 동시인들이 실험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설령 실험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건 작품이 실패한 것이지 시도 자체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인시도 여러 갈래가 있듯이 동시도 여러 갈래의 시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계속업그레이드 시켜나가야 돼요. 전통적인 방법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냥 대필이라고 할 수있지요. 지금부터 현대적인 작품을 써야 몇 십 년 지나도 구닥다리가 안 되는 거지, 지금부터 현대성이 없는 시를 쓰면 5, 6년만 지나도 낡은 시가 되어 버릴 수 있지요. 오늘 새로운것도 내일이면 낡은 것이 되잖아요. 동시를 쓰다 보면 고민거리가 많이 생겨요. 고민거리가 많다는 건 좋은 현상 아닙니까? 고민거리가 없으면 현실에 만족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면 됩니다. 상품과 마찬가지로작품도 늘 불만을 가져야 새로운 게 나오겠지요. 불만을 가지려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낡은 시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새로운 좋은 시를 쓸 수는없는 거지요. 기성 동시인들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해야 합니다. 나도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쉽지 않으니까 도전해 볼만 한 거지요. 새로운 형식과 내용, 기법으로쓰느라 전달에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린독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시간이 지나 어느 단계 이르면 독자 배려 문제도 해결된다고 봐요.”     최고가 될 수 있다, 용기를 가져라     “어떤 후배가 지금부터 30년 이내에 발표된 동시들을 보니 제대로 된 동시가 별로 없더라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기회가 좋네! 네가 조금만 잘 써도 되겠네.’ 했지요. 그렇지않아요? 이제까지 마음에 드는 시가 별로 없다면 자신이 조금만 노력해서 쓰면 우뚝하게드러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동시는 시시해, 좋은 동시가 없어, 그렇게 냉소적으로 부정만 해버리면 바람직하지 않지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쓰면 내가 아무리 잘 써도 돋보일 확률은 낮지요. 모두가 잘 못쓴다고 여겨질 때 생각을 바꾸어 내가 조금만 잘 쓰면 되겠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동시를 쓰면 좋잖아요. 권오삼 동시를 보니 형편없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권오삼이보다는 더 잘 쓰겠다, 이러고 쓰면 후배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나고 통쾌하고 재미있어요. 그러니 용기를 내어 치열하게 작품을 쓰라고 말해두고 싶어요.” 권오삼 시인은 인터뷰 말미에 필자에게 ‘아동문학을 위해 애쓰는 젊은 사람’ 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해주길 부탁한다’는 말 속에는 아동문학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가 오랜 동안 동시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동시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 권오삼)     194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5 월」이, 1976년 소년 중앙문학상에 「그네 타는 아이」가 각각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으로 『강아지풀』, 『가시철조망』, 『물도 꿈을 꾼다』,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 『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있다. (어린이와 문학 200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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