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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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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시] 사랑의 완곡어 (외 6수) 댓글:  조회:188  추천:0  2023-09-07
날보고 ‘미워’하는 말이 참으로 미워서 미운 것이라면 그 말 한마디에 등골이 오싹 절망끝에 실련하련만 오히려 그 ‘밉다’는 말에 그대를 더욱 억세게 포옹하며 사랑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그 밉다는 말이 곱다는 뜻의 반의어기때문이다   사랑은 무엇이기에 미움조차도 이렇게 따뜻이 녹여 어머닭이 알을 품은 듯 따뜻한 체온이 온가슴에 찌르르 젖어들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밉다’는 소리에 더욱 상대방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신한다 어린애가 일부러 응석을 부리 듯 투정을 하 듯 가슴에 품은 사랑의 뜻을 ‘미움’으로 에돌려 내놓는 성숙한 녀인의 완곡어법에서     그물2   죽음이 가까울수록 늘어나는 그물들 그 안에 갇힌 물고기처럼 이제 내 몸은 자유로울 수 없다 아프지 않게 그물을 펴는 다리미는 없나? 세월따라 늘어나는 주름을  훌훌 걷어버리든가 아니면 해묵은 종이장 찢 듯 찢어버리든가하고 자유를 살면 얼마나 좋을가만 이제 나로서는 그물을 걷어낼 힘이 없다 그럴바엔 차라리 남은 인생 그물과 함께 동행하자 세월이  씌워준 저 천연의 장애물ㅡ 이것도 헤택이라면 살아있는 것이 내게 준 해택이 아니냐     진달래   하늘에서 내려왔나 땅에서 솟아났나 저기 저 하얀 고무신 사뿐사뿐 마른 나무가지 헤치며 산비탈 내려와 쉬고있는 연분홍 옷차림의 고운 녀인들 더러는 키낮은 잡목림곁에 더러는 이슬묻은 바위 우에서 땀들이고 있네 해마다 오월 제철이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약속없어도 찾아와 온 누리에 봄의 시작을 알리는 그 누구보다 반가운  천사들 아름다운 옷차림에서 풍기는 향내음에 폭 젖어 산도 새 산이 되고 계절도 새 계절이 되네     종소리   목청좋은 개구쟁이 아이들이 훤하게 뚫린 구멍으로 저저마다 숨어들어 나올 줄 모른다 장난에 취했다가 볼기짝을 맞고서야 그제야 뛰쳐나오면서 아프다고 따앙 땅 소리를 지른다       고드름   립춘대길- 세월은 분명 봄계절에 들어섰건만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봄의 도래를 막아보려고 눈과 얼음으로 겹겹이 방어선을 두른 겨울의 힘은 아직 막강하다 그리하여 아직 년소한 봄은 겨울과 정면대결을 피하고 특수부대를 무어 유격전을 벌린다 겨울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한 으슥한 골짜기 처마밑 아찔한 벼랑을 타고 야금야금 봄의 전령병들 하강하나 겨울의 깊이로 침투할 낭창들을 꼬나들고 일렬 종대로 늘어섰다     봄1   봄은 통 큰 엿장수할매 물기가 뚝뚝 흐르는 엿가락을 누구든 마음대로 맛보라고 처마밑에 죽 늘여 놓았다   봄은 부지런한 찜질방아줌마 꽁꽁 언 몸뚱이들에 뜨거운 김 발라준다 또한 봄은 곰탕집 주방장 료리솜씨도 일품이다 옹근 겨울의 통뼈를 썰지도 않고 통채로 가마안에 집어넣고 삶는다 질질 기름이 나오게 고아서 흐늘흐늘해진 고기덩어리 배고픈 바람이 부지런히 날라다 여윈 계절을 몸보신한다     봄 2   처마밑에 왈랑절랑 락수물소리 누가 두드리는 휘몰이 장단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종일 두드려도 힘도 안드는 듯   때로 봄은 장난기 심한 개구쟁이 아이처럼 시끄러운 존재다 길이란 길은 모조리 헝클어놓고 제멋대로 락서를 한다 아무렇게 갈겨놓은 글씨들이 여기 비뚤 저기 비뚤 세상은 온통 락서의 흔적   그러나 봄은 역시 고마운 존재다 저 눈녹아 거밋거밋 때오르고 거친 들에 누가 새옷을 해입일 것인가 재봉사 봄이 스스로 짊어진 의무다 돌돌돌 고르로운 물소리 재봉기 도는 소리   봄은 또한 화가다 재료나 종이를 탓하지 않는 화가 겨울이 남겨준 낡고 초라한 풍경을 새것으로 바꾼다 푸른 붓 톡톡 찍어 연변일보 2023-07-27   
72    가을 소식 (외 4수) 댓글:  조회:281  추천:0  2021-09-10
가을 소식 (외 4수) □ 강효삼 가을소식은 누가 먼저 알리나 서늘함은 가을의 본능 여름의 늦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그 틈사리를 비집고 척후병인 듯 서늘한 바람이 벌써부터 뛰쳐나와 기웃거리고 있으니 가을의 첫 알림인가   하늘이 높아지면 가을이라 했다. 지꿎은 떼구름에 가리워 보이지 않던 하늘이 갑자기 나타난 듯 훌쩍 높아져 우리의 머리 우에 파랗게 비껴있으니 가을은 하늘이 먼저 알리는 건가   푸르던 들판이 소리없이 어느새 노란빛으로 물젖어간다 황금의 빛갈은 가을의 표징 이제 크고 작은 들판과 높낮은 산발들 모두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으니 가을은 들로부터 오는 것인가   선들바람 높은 하늘 황금빛 들판 모두가 다투어 가을의 도래를 암시하는데 아직도 한창 여름 속에 사는 듯 푸른 잎 가득 들쓴 포도넝쿨 아래 언녕 익을 대로 익은 포도송이들은 새까만 눈알만 굴릴 뿐 말이 없다.   사과 풍년 하늘 높고 맑은 가을 과수원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빨간 사과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절집 뜰안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던 빨간 그 련등들을 떠올리네 사과들은 얼마나 깊은 수련을 하였기에 련등처럼 빨갛게 익었을가   수련을 갓 시작한 동자승들처럼 이른봄부터 가부좌하고 앉은 사과나무 폭염에 온몸이 땀벌창 되여도 폭우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물참봉 되여도 정좌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언 수행하는 스님들처럼 오로지 일편단심 가을만 념두에 두더니 끝내는 모두가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는가   아무렴 사과들에게 열반이란 무엇인데? 나무가지 휘도록 풍성한 과일을 가꿔낸 우리네 과농들을 부처님으로 모시고 열심히 수행한 보람이 아닌가.   가 을 여름이 잉태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해산의 계절입니다. 여름에 잉태한 것들 가을은 다투어 해산을 합니다 가을은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계절 얼마나 많은 수확을 땅 우에 내려놓습니까 그래서 가을이 더 풍성한가 봅니다   가을은 지극정성으로 열매란 열매는 다 익히는 계절 익히다 익히다 못해 가을엔 하늘마저 익어서 탱탱 여뭅니다. 가을은 가져가서 가을이 아니요 주고 가서 가을이지요 빛갈과 껍질만 가져가고 알속은 다 남겨줍니다 그래도 가져갈 것이 그리 많은지 가을이 되면 숱한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 모두가 가을을 싣고 갈 배가 됩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서 스적스적 노젓는 소리 순풍에 불려 불려 가을을 실은 배들 다투어 떠나고 나니 가을도 가고 없습니다.   가을 코스모스 계절의 집문턱을 넘어 꽃이라 이름한 것들 다투어 떠나가는데 코스모스만은 아직 여름에 취한 듯 여유만만이다 계절은 코스모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넉넉한 것 아닌데 코스모스는 왜 안달지 않을가   뭇꽃들 다투어 필 땐 아닌 척 모르는 척 키만 껑충한 코스모스는 아직도 와야 할 계절이 오지 않아 긴 목을 빼들고 기다리는 것 같다 여름이 모두 가고 가을이 완연할 때 그때 비로소 꽃을 활짝 피워 오는 가을을 기쁘게 해주려는 코스모스다   삶은 시작만이 소중한 것 아니다 마지막도 소중하다 꽃은 더욱 그러한 것 먼저 피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오래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운 꽃임을 코스모스는 아는 것일가 모두가 서둘러 떠나는 시세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추구와 개성을 고수하는 여유롭고 배짱 있는 코스모스 그래서 가을날에 코스모스가 더 돋보인다.   짧아도 먼길 -락엽을 보면서   높은 나무가지에 단단히 매달렸던 푸른 잎들이 세월의 순리에 좇아 노란 잎으로 변신하더니 뚝ㅡ 하는 절명의 소리 한마디 남기고 지상을 향해 가벼이 추락한다 나무잎이 매달려있던 꼭대기서 떨어져 뒹구는 땅 끝까지는 얼마나 먼길인가 나무의 높이에 따라 그 길이도 다르겠지만 저 길에는 들어있다, 이른봄 첫 행군의 발자국 옮겨서부터 봄을 지나고 긴긴 여름을 지나 드디여 이 가을에 들어설 때까지 잎이 걸어온 길 그래서 이 거리는 짧아보여도 멀다 멀다, 영원히 조화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이 한줄에 꿰여있어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다. 연변일보 
71    가을의 소리 (외 5수)- 강효삼 댓글:  조회:504  추천:0  2021-08-23
시       가을의 소리 (외 5수)        강효삼            해빛을 끓이는 조용한 한낮의 풀숲에   스르라미 목소리가 청아하다   너무 작고 은은해 도정신해 들어야지만   분명 가을을 알리는 첫 소리   저 작은 소리에서 사람들은 이 땅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       아, 그러고보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크고 굉장한 목청만이 아니여라   쩌렁쩌렁한 구호는 더구나 아니여라       작고 가는 목청이지만   거짓없는 진정이 담겨있다면   그 목청만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을 놀래울 수 있는 것       쓰르라미의 작고 가는 목청에도   가을이란 크나큰 계절이   바이올린의 선률처럼 은은히 떨리면서   가을의 한복판을 가벼이 흔드네   듣는 이 가슴을 향수에 젖게 하네       图片           가을은 쓸쓸함의 둥근 술잔       가을은 분명 단풍드는 색고운 계절이고   열매를 익히는 풍요한 시절이지만   쓸쓸한 계절이다   가을에 쓸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가   가을은 풍성하던 나무잎이 다 떨어져   마른나무 가지들만 헐거워서 쓸쓸하다   곡식들로 꽉 채워져있던 들판이   도욱맞힌 듯 텅 비여있어 쓸쓸하다   꽃들은 언녕 누렇게 시스러지고   비틀어질대로 비틀어진 풀잎들은   쿨럭쿨럭 마른 기침을 하고   가을은 모든 것이 끝나가고 떠나가   훤하게 비는 계절   그리하여 훤하게 비인 하늘과 땅은   쓸쓸함의 큰 술잔 이 술잔에   마시지 않아도 절로 취하는   쓸쓸함의 술이 가득 고여있다   쓸쓸함은 그리움을 더욱 북돋우고   그래서 가을이 되면 내곁을 떠나간   그 사람들이 더욱 보고싶고   흘러간 세월이 더 그립다       图片           가을 코스모스       여름이 문닫히고 가을이 오는 길목에   꽃바구니 엮어들고 코스모스 서있다   꽃이사 어느때 피여도 곱지 않으랴만   가을날의 코스모스가 왜 더 고운가   장미처럼 현란하지 않고 그저    시골녀인처럼 수수한 꽃인데       코스모스는 남들의 취향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만의 추구와 개성이 따로 있어   여름 뭇꽃들이 다투어필 땐   키만 껑충하게 자래우다가   가을이 되여 뭇꽃들이 스러질 때   비로소 환히 꽃을 피운다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해서   유아독존 아름다움 뽐내려는것 아니다   가을은 풍성해도 쓸쓸한 계절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놓쳐   조금이나마 허전함을 채움으로써   외롭고 쓸쓸한 계절을 위로하려는거다   접시같은 꽃송이에 아름아름 향기 담아           图片       락엽 1       나무가지를 타고 앉아 마음껏   나래짓 하면서도   날아가지 않던 숱한 새들이   바람타고 포르릉 땅바닥에 내려앉아   부리로 가을을 쪼아먹는다   배고픈 새들 얼마나 부지런히   쪼아먹었는지   가을은 보이지 않고   앉아있는 새들만 수두룩하다       图片       락엽 2       잘익은 나무잎 하나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   발밑에 떨어진다   엽서다, 수신인의 주소가 따로없어   누구든 받아볼 수 있는    한장한장의 엽서다   바람에 마를 대로 말라   쥐면 부셔질 듯 볼품없는 엽서지만   무슨 귀한 말씀을 전하고싶어   이렇게도 많이 던져놓았나       엽서엔 씌여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할 소중한 글귀   -오늘은 나 래일은 너   누구나 한번씩은 죽는다고   당신도 죽는다고   그러니 죽음을 바로 대하라고   인류 수천년 탐구해온   삶과 죽음의 진리를   단 몇마리로 개괄한 명구   - 오늘은 나 래일은 너       *오늘은 나 래일은 너- 이 글은 영국 런던의 한 묘지의 묘비명에 씌여있는 글           图片       락엽 3       나무들이 무더기로 잎을 떨군다   주머니를 톡톡 털어 아낌없이   동글납작 금전같은 나무잎들   그것이 나무에겐 바로 돈이다   가을은 어느 길로 가든 돌아가는   가는 길이 많고도 많아   큰길이든 오솔길이든   가는 길에 려비로 쓰라고   무득무득 떨구어놓고   혹여 길이 없어 낮도 밤같은   숲을 거쳐 가는 가을에겐   가다 힘들면 쉬고 갈 숙비로 쓰라고   목마를 때 물이라도 사마시라고   뭉치뭉치 수북하게 주머니에 넣어주네   주는 돈이 많아서 엄청나게 많아서   이제 가을은 언제 어디로 가든   돌아갈 걱정 없겠다 흑룡강신문
70    민들레꽃 화로 (외 4수)□ 강효삼 댓글:  조회:326  추천:0  2021-06-07
노랗게 피여난 민들레꽃들은 하나하나 모두가 죄꼬만 화로불이다 석탄 한톨 아니 쓰고 기름 한방울 아니 태워도 연기 없이도 잘만 타는 저 앙증맞은 화로불 비물에 젖어도 식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으면서 봄을 굽는다, 그 속살까지   그리하여 별들처럼 총총한 화로불에 쪼일 대로 쪼여 노랗게 익는 봄 화로 곁에 모여앉아 불 쬐는 아이들 없어도 잘 구워진 고구마처럼 구수한 냄새가 사방에 물씬 풍겨 봄이 더욱 봄 같구나 노오란 불덩이가 사그라질 대로 사그라져 더는 타지 못하는 하얀 재로 남을 때까지 계절을 굽는 민들레꽃 화로.   여름은 마라톤의 푸른 경기장   여름은  마라톤의 푸른 경기장 화창한 봄날 작은 주먹 쥐고 스타트를 뗀 후부터 모든 풀과 곡식, 나무들의 달리기 경기는 더욱 극렬해진다   코스가 없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이들의 달리기란 땅이 아니라 하늘 향해 키를 늘구는 것 곡식들 풀들 나무들의 푸른 꿈이 여름구름처럼 부풀어올라 달리면 달릴수록 우썩우썩 키가 큰다   마리톤의 종점은 가을 모두가 결실의 리스트에 도달하면 누구나 다 우승이 되기에 이들의 경기엔 재판이 따로 없다 가을이 재판관이다 태양이 금가루 가득 풀어내려 눈부신 아침부터 달리기를 시작하면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푸른 젊음이 왁자하니 기세 돋구며 달리고 달리는 선수들 푸른 맥박이 툭툭 튀는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름은 온갖 푸른 것들의 마라톤 경기장.   산과 새   새가 없다면 산은 입이 있어도 벙어리 그래서 산은 언제나 가슴을 환히 열고 저녁 아이들을 불러들이듯 새들을 제 품에 맞아들인다   때로 재잘거림이 과묵한 산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산은 그 어느 때도 시끄럽다고 새들을 쫓아낸 적 없다. 항상 반가이 맞아주는  산이 고마워 새들은 부지런히 산의 말을 대신한다 산과 함께 다정한 친구로 살면서…   명랑한 새소리는 산의 언어 새는 산이 숲속에 머리 박고 바람이 엿들을가 봐 소근거리는 산의 낮은 귀속말까지도  다 알아듣는다 그래서 산은 하냥  새들 앞에서는 거짓말을 안한다 새는 또한  산의 대변인 산의 말이 서투르면 바르게 일러주고 산의 말이 낮으면 톤을 높여주며 산의 틀린 말은 쉽게 수정해준다 가끔 새가 읊조리는 새들의 시랑송은 산을 취하게 하여 한낮의 해볕에 피곤한 산이 조을 때 산이 잠간 단잠에 빠지게 도란도란 자장가로 들리기도 한다.   고사리   사랑의 유혹에 몰래 이끌리면서도 아직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안개 같은 숲속에 몸 숨기고 누구인가 찾아주기를 기다리던 고사리 온 산판을 쏘다니던 바람이 나보다 먼저 찾아냈나부다   너무 좋아 부둥켜안고 볼 비비는 바람의 수다스러움에 그만 꽁졌던 머리 확 풀어헤쳤는가 고사리는 이제 수줍은 처녀가 아니고 돛배 달고 시집가는 각시가 되여 내 앞에 서있는데 너를 찾아 높은 산 깊은 계곡을 헤매던 나는 발걸음 늦은 탓에 헛물만 켜고 맹랑하게 놓쳐버린 사랑 앞에서 고사리도 꺾을 때 꺾어야 하듯 사랑도 때가 있음을 더욱 절감한다.   붉은 고추   이글이글 타는 태양의 열도로 활활 제 몸을 달군다 불에 타 소멸되지 않으면 빨갛게 구워져 영생하려고. 연변일보   
69    산다는 것 그리고 건강 댓글:  조회:534  추천:0  2020-09-18
산다는 것 그리고 건강 □ 강효삼 거리 산책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누구든 내가 늘 주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건강상태이다. 의사처럼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해도 겉보기가 속보기라고 건강한 사람은 첫 대면에도 알린다. 내가 환자여서인지 무조건 건강한 사람들이  부럽다. 그래서 때론 상대방이 나보다 나이  많다고 해도 그가 건강하다면 나는 나의 나이와 그의 건강을 바꾸고 싶고 가능하다면 훔쳐서라도 그의 건강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여느 것은 속여도 나이만은 못 속인다고 이제 내 나이 일흔이 넘어 여든, 점점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일가. 도대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여나서 산다는 것은 무엇일가? 결코 굉장하고 심각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우선 필자의 생각에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거뜬히 일어나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이야 그게 뭐 대수겠냐 할 수 있지만 협압이 너무 낮거나 높아 평소에 늘 어지러워하는 사람과 뇌경색,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거쁜히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일어난다는 것은 사는 것이요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다가섰거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경색으로 장기간 머리가 어지러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늘 부담이 되는 나로서는 아침마다 거뜬히 잠자리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최근의 소망이다. 산다는 것은 또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새끼를 배부르게 먹는다는 것이다. 만성 신부전이 와서 속이 메스꺼워 밥은커녕 죽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어 밥상에 그토록 먹을 것이 많아도 먹고 싶기는커녕 쳐다보기 조차 싫어질 때,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너무 깊이 깨달았다. 먹지 않으면 아파죽기 앞서 먼저 굶어죽을 것이라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데 하루 삼시 끼니를 에우는 일이 나에겐 마치 밥과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았다. 인간은 우선 무엇보다 먹어야 산다. 그리하여 이럴 땐 차라리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 쩔쩔 매던 과거로 돌아갔으면 싶다. 후날 병이 나아 시걱이 되여 먹고 싶은 것을 마음놓고 먹으면서 밥이 그토록 맛있는 것임을 다시한번 체감했을 때 산다는 것은 바로 산해진미가 아니고 풋나물 밥이라도 번지지 않고 배불리 먹는 것이라는 것을 더욱 절감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간건강의 표준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삼쾌(快)로 보기도 한다. 잘 먹자면 무엇보다 속이 편해야 하는데 여기가 아프지 않으면 저기가 아파 늘 속편한 날이 별로 없는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배 속이 편안한 것, 좀 쉽게 말하면 똥집이 편안한 것이다. 산다는 것은 또한 잘 걷는다는 것이다. 걷지 않으면 다리가 무뎌지고 다리가 무뎌지면 건강이 무너진다. 로인은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나이 많을수록 더 열심히 걸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의 소설가 박완서는 “중국속담엔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우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다니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반듯하고 쟁쟁하게 걷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라고 했다. 퇴행성 관절염으로 다리맥이 없는 데다 심장이 약해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웬만한 곳은 갈 엄두도 못 낼 때   튼튼한 다리와 심장이 있어 고향의 들길을 자유로이 걸으면서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꽃을 보고 스쳐가는 바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비록 평범한 날이라 해도 아주 행복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걸어가서 보고 싶은 사람이나 경치를 마음대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산다는 것은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며 함께 식사하고 차 한잔 따르는 등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닐가. 친구들과 술상을 벌려놓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유머도 하고 조금 야한 육담이라 해도 허물없이 나누고… 이제 몸이 너무 쇠약해져서 술은 입에도 못 대고 더구나 친구모임엔 갈 엄두도 못 내니 랑만적인 삶은 끝이 난 것이 아닌가. 볼바에 술은 몸에 과하면 해롭다 하지만 술이 먹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의미이다. 건강이 없으면 술상도 없다. 술상이 없으니 오락도 환희도 즐거움도 사라지고 그저 메마른 삶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인 즉 병없는 날이고 건강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제 나에게서 행복이란 별게 아니다. 하루하루 아프지 않을 때 아무리 하찮고 평범한 날이라 해도 그런 날은 아주 행복한 날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산다는 것은 결국 건강을 산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병이 왜 생기는 것일가? 학자들은 인간의 병은 객관적으로 외계의 병균이 인체의 몸에 침입한 것 때문이라고 하지만 주관적으로는 자신이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해 벌을 받는 것이라 했다. 이 미운 병 때문에 한창 살아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때이르게 생명을 결속지었는가. 그 속엔 인류에게 도움되는 많고도 많은 사람들이 아깝게 때이르게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병처럼 두려우면서도 미운 것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질병은 그림자처럼 인간의 삶을 뒤따르는 재앙인 것을. 그런 맥락에서 인류에겐 수많은 귀중한 직업이 있지만 인간의 건강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직업이야말로 가장 귀중하고 성스러운 직업이라는 것을 이번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걸고 환자를 치료하는 수많은 의료진들의 미거에서 보았다. 늘 몸이 아파 병원출입을 하고 약을 쓰면서 바른 량심과 친절한 태도를 가진 의사의 도덕과 의술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죽음에서 구해내는가를 알게 되였고 그 무엇보다 경제가 발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는 의학이 발달한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되였다. 인간은 건강해야 한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의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가? 부에서 오는 것 같지만 실은 건강이란 두 글자에서 온다. 건강해야 부도 가치가 있다.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산더미같이 벌어놓고 암으로 기타 질병으로 죽은 부자들을 보면서 여느 것은 다 잃어도 부디 건강만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와 전쟁을 벌리는 가운데 우리는 다시한번 이 세상에 뭐니 뭐니 해도 목숨이 제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감안하지 않았던가. 바로 이 귀중한 목숨을 유지해지는 것이 건강이 아니던가. 온 나라는 물론 세계적인 대재난이 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인류는 더욱 건강과 생명의 귀중함을 피부로 절감한 것 같다. 그래서 생명을 받쳐주는 건강은 더욱 소중한 재부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다는 것은 건강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번 아프다 하여 건강을 죄다 잃은 것은 아니고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건강을 찾는다면 아픔이 도리여 도움을 줄 때도 있다. 아픔은 건강의 귀중함을 알게 하고 아플수록 생명의 귀중함을 더 알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삶의 참고서이고 교훈이며 삶의 도리를 반면으로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아프고 보면 건강을 지키는 데 경험과 묘리를 터득하게 되여 앞으로 건강을 챙기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건강할 때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인생도리를 깨우치게 된다. 아파서 외롭게 병원침대에 누워 치료를 받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이 병문안 오는 귀익은 발걸음 소리이다. 일부러 찾아와 위안해주는 것이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설사 찾아오지 못해도 희망과 신심을 주는 그 한통의 전화가 얼마나 고마운가. 위챗에 올린 하루빨리 건강회복을 기대한다는 말씀들 또한 고맙고 고맙다. 설사 당장 낫지 않더라도 고무하고 편달해주는 그 말씀들 모두가 가장 좋은 정신적 보약이다. 그래서 아픔을 치유하여 건강이 회복되면서 건강을 회복시켜준 백의천사들과 아플 때 곁에서 위안을 해주는 인간에 대하여 전에 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아프면 미워하던 타인에 대한 마음도 바뀌여지고 욕심도 질투도 삼가하게 되며 따라서 사회적 인간으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리해심도 늘어난다. 그것은 사람들과 어울려 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아프면서 더 뉘우쳤기 때문이다.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일들만 떠올리면서 원쑤진 것 미웠던 것들을  잊어버리자. 고마움으로 하여 세상은 더 아름답고 인간은 더 정겨워서 더욱 삶과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이 살면서 그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의 건강을 관심하고 배려해주는 것이 가장 큰 관심이고 배려라는 것이다. 아플 때 절망은 금물이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웃는 얼굴은 매우 귀중하다. 한바탕  아프고 나서 얻은 교훈은 아픔을 너무 홀시해서도 안되지만 두려워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아플수록 강한 생명의식을 갖자. 족히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 그만큼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없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병이 있어도 치료 못하니 결국 돈이 건강이 아닌가? 그러니 아프면서 알았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아픔과 건강에 대한 글을 쓰노라니 어릴 때 부모들이 타이르던 말씀이 떠오른다. 병 나서 울지 말고 웃으면서 예방하자, 자신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나중에 병에 걸렸을 때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연변일보 
68    한국에서 공부하는 조선족 학생 교육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698  추천:0  2020-05-19
한국에서 공부하는 조선족 학생 교육에 대한 단상 강효삼 코리안드림이 보편화 되면서 한국에 가 장기거주하는 중국조선족들이 늘고 있다. 따라서 결혼적령기가 된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면서 자연 자식들을 출산하게 되는데 필자의 아들 며느리도 한국에 장기 거주 하면서 올해 여섯 살난 손자가 하나 있다. 연령이 늘면서 집에만 처박아 둘 수 없어 어린이학교에 보내는 데는 학비가 만만치 않았다. 아침 늦게 가서 저녁 일 찍 돌아오는 돌봄 어린이학교에 휴식 날을 다 빼고도 남은 날의 한달 학비가 한화 50만 원, 중국 인민페로 3천 원 남아 된다. 실로 뻐근한 금액이다. 그래서 한국정부에서는 어린이가 있는 가정의 학비부담을 줄이려고 어린이가정에 경제적보조를 해주어 학비부담을 덜어주지만 중국 조선족은 외국인이라고 하여 아무런 보조도 없다. 그러니 학비는 물론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는 한국에서 성년이 되도록 공부를 시키자면 얼마나 많은 학비가 소모될까? 저출산에 목 매여 밤낮 출생아 타령하면서 동포자녀들을 잘 우대하면 모국에도 도움되련만 고정 직업이 없이 오늘은 여기 래일은 저기 날품팔이를 하며 사는 우리 아들 내외 같은 상대적인 빈곤층으로 말할 때 집세내고 기타 온갖 세금 내고 나면 자식 학비가 늘 빠듯해서 맵새가 황새걸음하다가 가랑이 째지는 격은 아닐까?? 그래서 “잘산다”는 한국에 가 있는 아들 며느리에게 오히여 “못산다”는 중국의 할아버지가 적은 노임을 아껴 학비로 보태는 판이다. 어쩜 그러지 않으면 공부도 못시킬 형편이니(하긴 가난탓이지만)…그래서 나는 늘 아들 며느리에게 족히 그 곳에서 공부를 시킬 수 있는가? 못시킬 것 같으면 아에 일찌 감치 돈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중국에 돌아와 자식 공부부터 시키라고 한다. 아니면 아들 며느리는 그냥 한국에 남아 돈을 번다고 하고 이제 곧 학교에 보낼 연령이 되였으므로,  손자를 중국에 데려다 키우며 공부시키면 좋으련만, 내가 나이 많은 데다 몸에 병이 있어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그대로 한국에 두고 공부를 시킬 수밖 없다. 그러나 우리 가정과 달리 우리 주위를 보면 자식들의 엄청난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젖이나 겨우 뗀 어린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는 젊은 부부들이 늘고 있다. 헌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맡기니 학비도 적게 들고 먹이고 입히고 병 치료해 주는 것은 그런대로 되는데 공부가 문제다. 지금 어린 것들은 어려서부터 컴퓨터며 스마트폰이며 시대의 최신 전자품들을 사용할 줄 아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런 것들을 모르다 보니 학교 교원들과 소통이 잘 안 되어 손자의 학년이 높을 수록 공부 지도를 하지 못하여 단지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보모의 역할 밖에 하지 못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학비도 절약하고 가정 조건은 되지만 이번엔 아이가 적응하지 못한다. 특히 배움의 입문이나 다름없는 한어가 안 된다. 지금 중국의 조선족어린이들은 도시화 현대화에 빠르게 적응하여 한족애들 못지 않게 한어를 잘한다. 헌데 중국인이면서 중국말을 한마디도 몰라 꿀먹은 병어리다. 서투른 언어를 따라가는 시간을 벌기 위해 한국에서보다 한 학년 낮추어 붙이지만 여전히 한어가 문제다. 더구나 조선족 교원이 부족해 한족 교원을 데려다 쓰는 조선족학교일 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고가 학비를 무름쓰고 울며 겨자먹기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로 아이들 한국에 데려가는 부모도 있다. 어린 때 배움은 바위에 돌을 새기는 것과 같이 인생의 백년대계나 마찬가지라는데 이렇게 시계주처럼 왔가갔다 하다 보면 한창 배울 때 배우지 못하는 그런 자식들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고사리도 꺽을 때 꺽는다고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인데…. 물론 헌국에서  자식들을 키우는 것이 모어의 고향이고 보니 우리민족고유의 예절과 전통은 물론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데는 좋은 기회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밖에 교육반경이 상대적으로 좁은 조선족에 비해 보다 넓고 선진적이고 문명한 교육을 앞당겨 받을 수 있는 여견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을 말할 때 중국조선족학교에서도 한국애들 못지 않게 우리 말과 글을 얼마든지 잘 배우고 있으니 대민족 속에 섞여 살고 있지만 제말과 글을 잃을 걱정은 없다. 더욱이 중국의 조선족학교에 다니면 제 민족 말은 물론 주체어인 한어와 그 밖에 국제통용어인 영어와 일어등 다종언어를 배우는데 필자가 일본에 체류하는 한 조선족애게서 들은 말이다. 그곳에 가있는 조선족들 거의 고학력출신이라선지 조선어(한국어), 중국어, 영어, 일어를 다 잘하니 어떻게 그렇게 글로벌시대를 대비하여 다종의 언어를 배웠는가? 며 중국 조선족의 교육에 감탄하더라면서 중국의 민족정책을 칭찬했다고 한다. 교육은 어릴 때부터 잡아야 한다. 우리 주위엔 이를 잘 아는 부모들이 있어 돈벌이가 좀은 늦춰지더라도 자식공부 잘 시킨다고 아예 한국에서 체류를 접고 자식을 데리고 고향에 돌아와 곁에 두고 다잡아 공부를 시키는 젊은 부부가 있는가 하면 한국에 있더라도 장차 중국에 돌아와 살 것을 대비하여 한국에서 막대한 사교육비가 들더라도 중국어학교에 보내여 미리 중국어를 알아두어 장차 중국에 와서 비교적 빠르게 적응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이야말로 먼 앞낲날을 내다보면서 돈도 벌고 자식도 공부시키는 두마리 코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명지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엄청나게 학비가 많이 들어 족히 감당할만한 경제 조건과 옳바른 교육이념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에게서야 문제가 되겠냐만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보통의 사람들로는 감당하기 뻐근한 것이 한국의 교육비임은 본토 국민들도 잘 아실 것이다. 어느 명인은 부모가 자식에 대한 봉사는 가장 큰 봉사이라고 했다. 물론  자식을 위해 분투하는 만큼 많은 부모들이 결사적으로 일하여 학비가 아무리 많이들더라도 얼마든지 감당해낼 것이이라 믿으면서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중국 조선족이고 장래를 이나라에 맡기고 살아야하는데는 이렇게 양 다리를 걸친 그네들 미래마저 불투명힌 미래를 두고 심각히 고민하고 사고하지 않을  수없다. 구경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일까?  
67    [수필]고개 숙인 벼이삭들을 보면서 댓글:  조회:733  추천:0  2019-07-16
66    이른봄 강물의 소리에서(시, 외5수) 댓글:  조회:684  추천:0  2019-07-09
이른봄 강물의 소리에서 강효삼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린다더니 대동강과 멀리 떨어진 이곳 북방의 강들도 이제 움찔움찔 몸을 풀 차비  뒤척이며 깨여나기 바쁘게  울컥거리며 제 목소리를 낸다    처음은 혼자의 중얼거림처럼   가늘게 떨리더니  여럿의 소리를 합칠수록  강심 아닌 기슭에서까지  웅글은 소리로 범람한다    그 기나긴 혹한의 추위 품속에 가두고 속으로만 외우던 소리  두터운 얼음장에 눌렸어도  침묵하지 않았기에 낼 수 있는 소리다  모두가 제 목청을 감추며 사는 계절에 남먼저 목청 터진 저 강물의 소리는  해동의 봄해살 몸에 잔뜩 바르며  깊은 어둠 쪼개는 칼의 소리로 들린다      락엽에 대하여   이른아침 뜰에 나서니  간밤도 숱한 락엽들 지상에 수두룩이 드러누웠다  락엽들은 하나하나가 노오란 교훈 침묵하는 삶과 죽음의 경륜들    삶에 가장 힘든 것은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라는데  저렇게 말끔히 가진 것 다 내려놓고  시름없이 가벼이 그리고 담담하게 본래의 그 무로 돌아갈 수 있는가   젖 떨어진 아기들처럼 이제  그 믿음직스럽고 든든하던 의지에서 추락하여  가장 낮은 땅바닥에 뒹굴면서  가진 것이란 온통 절망할 것들 뿐이지만  락엽은 후회도 원망도 없이   자유를 만긱하며 즐겁게 뒹군다  더러는 아직 아픔이 남아있는듯  밟으면 아삭바삭 뼈 부스러지는  소리 들리기도 하나 그러나 종당에 다 놓아버리면서  삶과 죽음의 심오한 철학을  가장 쉽게 또 명철하게 공으로 가르치는 락엽  그래서 락엽에 대한 시는 쓰고 써도 그냥 새롭구나     나무가 쓴 문장    오늘 아침 동그란 잎 하나가  또 가벼이 지상에 몸을 눕힌다  잘 익힌 나무의 문장이다 낮게 엎드린 흙의 사상을 하늘의 주제로 길어올리고 가지들의 줄거리로 복잡하게 엮어서   무수한 잎의 언어로 풍성하게 엮은 내용 만일 저 한잎 한잎의 잎들이 한구절 한구절 문장에 찍은 마침부호라면 나무는 얼마나 많은 문장을 품고 있는가   그리하여 수림은(树林)은  나무가 쓰는 대작들을  집성한 방대한 서림(书林) 산은 저 서림을 가득  진렬해놓은 신간 도서관   푸르싱싱한 령혼의 설레임으로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과시하며 글쓰기에 평생을 다 바치는 나무    그러나 아무리 혼신을 다해 쓴 글이지만  세월에 뒤져 낡아지면 나무는 미련없이 훌훌 다 지워버리고  그 긴 한해 창작년보만 단 한줄로  몸속 깊은 곳 폴더에 저장할 뿐  ‘유명하다’ ‘저명하다’ 따위 턱없이 춰올리는 형용사는 외면하고  그저 처음 태여날 때 이 세상이 불러준  나무라는 고유한 자신의 그 한 이름만 적는다     북방   옹기종기 모여앉은 인심 좋은 마을들  진창에 흙이 매달려도 걷고 싶은 길  겨울이면 깨끗한 백설이 가지를 물들여  혹한 속에도 솔나무가 한결 더 싱싱한 곳 아, 북방 나의 사랑이여  깊은 눈길에 허우적거려도  도처에 빙판길 미끄러 넘어져도 떠난 이들에겐 아련한 그리움이 되고 살고 있는 이들에겐 즐거움이 되는 곳   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이 누워있고 강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얀 백골이  물결에 귀를 씻고  추위마저 강인한 의지의 보약이 되는 땅 흑토를 적시는 강물이라 조금은 흐린듯 싶어도  설피도록 검은 흙에 넉넉히  반죽되여  우리를 배불려주는 근기 있는 찰떡이 되나니    언제나 마음 순후하고  반가이 맞아주는 겨레가 있어 아득한 북방은 어디 가나 살 만한 곳  나의 눈동자 북방의 하늘빛 담아 맑고  나의 피 북방의 강물 흘러들어 줄기차고  나의 뼈 북방의 호된 추위 다져 강잉하거니  내 말을 할 수 있고  내 글을 쓸 수 있고  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땅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몸짓을 가지고  어제도 살고 오늘도 살고 래일도 살겠노라  좋은 일 궂은 일이 살이 되고 뼈가 되여     정    듣기만 해도 훈훈하고 따뜻한 말씀 고향이란 말과 어머니란 말처럼  정이란 말은 이 세상에  그렇게도 따뜻하고 좋은 말  정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비빔밥처럼 섞는 것이라 하자  한치 두께도 못되는 인간의 가슴벽이   등을 돌려 장벽이 될 때  턴널처럼 그 벽과 벽을 아프지 않게 살짝 뚫어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가게 하는 마음의 통로 오래 묵힌 포도주 같이 한잔 술에도 대뜸 한몸이 확 달아오르고 꽁꽁 언 사람에게 김이 문문 나는 따끈한 국밥 같은 것   정이 든다는 것은  네 마음속에 내가 들어있고  내 마음속에 네가 자리잡아  누가 누구의 것인지 분별할 수 없이  서로가 서로를 닮는다는 것    정은 추운 겨울날 먼길 떠났다 돌아올 때 동구밖까지 마중 나와 언 손을 문질러주던 어머니의 그 따뜻한 손길이며  색다른 음식이 조금만 생겨도  치마폭에 싸안고 바자돌이를 하던 후한 동네인심  잔잔한 도래굽이 모래알 어루만지는 강물의 여울소리   아, 이른봄 오슬오슬 몸이 추울 때 양지쪽 포슬거리는 해살이라면 어때? 서로가 등을 돌리고 외면했던  산과 산이 손을 꽉 움켜잡은 것이라면 어때?  흩어져 제각기 제 갈길만 가던 물줄기들이 한데 모이는 것처럼      진달래    분명 제 또래들보다 일찍  바람난 시골 계집애가 분명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딱히 몰라도 이성에 대한 집착만은  놀랍도록 무서워서  부끄러움도 잊고 왈칵 터뜨린  빨간 사랑고백 
65    문학상과 문학창작 댓글:  조회:1279  추천:2  2019-05-06
       작품은 발표하면 그만인 것 같은데 발표가 되고나서도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상을 받는 것이 아닐가 생각된다. 이는 글을 쓰는 작자로서는 지금까지 누구도 버리지 못하는 욕망이다. 그것은 또한 한 작가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힘들게 쓴 작품에서 얻는 최대의 향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죄다 상을 받을 수는 없고 그 중에서 극히 개별적이고 우수하다는 작품만이 상으로 선정될 수 있는데는 상이 될 작품을 바르게 평가하는 공정성과 공평성이 우선되여야 하지 않을가싶다. 물론 작품이자 사람이고 사람의 수준이자 작품의 수준으로 작품과 사람을 다 같이 보는데는 의견이 없다.그 사람의 인격도 하나의 작품질이 될 수 있으니깐.   하지만 정작 상을 평할 때는 그렇게 되지 않는지 요즘 우리 문단에서 어떤 문학상에 대하여 진정 옳바르게 상을 평가했는가를 두고 이런 저런 뒤말들이 나돈다.마치 상을 론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 같아서 설사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뒤에서는 쉬쉬 하는 소음이 그치질 않는 것 같다. 요즘 해내외로 이런 저런 문학상이 많아지면서 이에 도전하는 과정에 키가 크면 그림자가 크다고 필자의 견해가 잘못되였는지 몰라 잡음 또한 적지 않은 걸로 짐작한다,   필자가 생각할 때 그렇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리유는 문학상을 줌에 있어서 작품을 보지 않고 사람을 우선하기 때문이 아닐가싶다.   어느 필회에 참가했을 때였다. 필자는 한 모모한 평론가가 자기의 제자라고 하는 한 보통 작자에게 “모 잡지에서 지금 문학상을 평하는데 그 평은 내가 한다. 그러니 나를 믿고 글을 보내라.”라고 로골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그것은 지금 문학상을 평함에 대학교수들이나 모모한 평론가들을 초빙하여 그들의 절대적인 의견을 듣는 것 같은데 바로 우리의 어떤 문학상들은 그렇게 평가되고있는 것인가 하니 왠지 마음이 서글프다. 씁쓸해났다.   필자의 소견에 요즘 우리 문단의 평론가들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가 누구든 작품을 보고 바른 평가를 해주는 평론가이고, 다른 한 부류는 말은 작품을 본다면서도 실은 사람을 보고 내려깎기가 아니면 추어주기식 (주로 추어주기식)절대 평가를 하는데 대개 이런 평론가들의 평론을 읽어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진미가 알린다. 그래서 상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어떤 작품은 번연히 좋은 줄을 알지만 나와의 어떤 관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문풍이나 추구가 아니라는데서 문학상의 선택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닐가?   언젠가 필자가 한 중문잡지에서 보고 놀랐던 일이 하나 있다. 한 초학자가 자신이 쓴 작품에 현지 문단에서 이름 있는 작자의 이름을 달아 잡지에 투고하였는데 글이 발표되었을 뿐 아니라 상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남의 이름을 도용하여 작품을 발표한 것은 문인으로 말할 때 극히 비도덕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아마츄어작자가 리용한 것은 문단에 존재하는 어두운 구석이요 문학비리에 대한 일종의 항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소홀한 편집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하지만 이러한 일이 존재해도 문단에 별다른 반응이 없고 평온하며 작가들 또한 너그럽게 이 같은 현상을 수용하는 것은 상에 대한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우리의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기에 앞서 사람이 되여야 하는 것을 우선적인 작가적 사명으로 명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설사 이런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령혼의 공정사나 다를 바 없다고 자처하는 작가로 말할 때 어쩌면 상을 두고 아웅다웅 따지고 떠드는 일을 수치로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정신적 제품인 문학작품은 여느 물질과 달리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달듯이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때론 그 저울마저 오차가 생기는데) 평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작품에 대한 평가가 공정해야 문단이 바로 선다. 문학상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서 어느 한 사람의 권위나 몇몇 사람의 평가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서 좀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울지라도 충분히 진지하게 론의된 작품을 상으로 준다면 보다 많은 작자와 독자들이 공감할 것이고 따라서 시야비야도 적을 것이며 상의 권위도 높아 진정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뿐 아니라 문단 내 작자들의 공존과 화합에도 좋은 촉진제가 될 것이라 믿고싶다. 이런 번거롭고 복잡한 평의 과정을 거쳐 좋은 작품은 어디까지나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글은 글로써 평가하는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기준을 자대를 적용할 줄 아는 대바르고 정직하며 흉금있는 편집이나 평론가가 많아야 작가들 또한 이에 힘입어 순수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혼신을 다 하는 치렬한 문학정신을 소유할 수 있다.   한편 문학상을 대함에 있어서 상을 주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그 무엇보다 상을 바르게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가싶다. 진정한 작가라면 구차한 인간관계로 살기보다 깨끗한 량심으로 작가의 생명이나 다름 없는 작품으로 도전하여야 할 것이다. 아무리 평가기준이 제각기라 해도 좋은 작품은 역시 좋은 작품으로 종당에 많은 사람의 공인을 받기 마련이다. 누구나 글을 쓰면서 자기 작품이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상을 바란다고 하여 그 어떤 인간관계를 리용하거나 비문학적인 것에 공력을 들일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가짐과 흉금을 가지고 치렬한 문학정신으로 글에 매진하는 것이 진정 글쓰는 사람의 바른 자세가 아닐가.   필자의 경험에 의해도 상을 받겠다고 돌격적으로 쓰는 글이 오히려 좋은 글이 못되고 상을 념두에 두지 않고 평소에 꾸준히 노력한 글들이 오히려 좋은 글이 된다. 때문에 상을 목적이 아니라 글을 잘 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아 글을 쓸 때는 상을 받을만한 표준의 높이에서 작품의 질을 높이기에 최선을 다 하면서도 그렇게 노력한 것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 상을 받으면 좋고 받지 않아도 마음에 부담이 없는, 편안하고 대범한 마음가짐으로 창작에 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작가다운 인격일 것이다. 흑룡강신문
64    술문화가 달라졌다 댓글:  조회:1072  추천:0  2017-08-16
술과 문화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요즈음은 술과 문화가 긴밀히 결합되여 “술문화”라는 하나의 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렇듯 “술”이 “문화”로 부상한데는 술을 마시면서 삶을 담론한다는것 이외에 술상이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락이나 예술을 감상할 때의 정신적 향수를 술상에서 받게 된다는데서 그 의미를  “술”보다는 “문화”쪽에 더 놓는것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보편적으로 제고되면서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술상이 잦아지고 있다. 이젠 단지 술을 마신다는 식욕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친구를 사귀고 사회교제를 진행하며 새로운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 흔히 술상이 리용되면서 술상문화가 확실히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요즈음 들어서서 술상은 참가자들의 자질과 문화수준에 의해 그대로 하나의 독특한 문화장소로 되고 있다. 술상에서 해학과 유머가 곁들여지고 오락과 예술이 융합되면서 정신적 분위기를 돋구게 된다. 술상의 해학이나 유머가 일종의 “특별”안주가 되고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정신을 흥분시키고 고달픔을 위안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영향으로 이제 조선족들도 더는 술상에서 상대방에게 우격다짐으로 술을 권하지 않는다. 한두번 권해보고 대방이 거절하거나 사양하면 더는 예전처럼 억지를 부리거나 성을 내지 않는다. 그것은 과음이 건강에 해롭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이고 술을 권하는 호의가 상대방의 정서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함이다. 하여 요즈음 우리 민족 술상에서도 “술은 권하는 멋에 마신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어디까지나 내 인사는 차려 술을 붓되 마시고 안 마시고는 상대방의 의사에 따르며 대방의 요구에 좇아 적게 붓거나 술 대신 다른 음료나 물로 대신한다. 그래서 술이 약한 사람이라 해도 술상에 가는것이 별로 고뇌거리가 되지 않는다. 술상문화가 이렇게 탈변하는데는 출국과 대도시진출로 술을 함께 마실만한 사람이 날로 줄어드는 원인 외에 보통 어떤 대사나 행사장 술상에서라야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가 있기때문이 아닐가. 술상이 아니면 술을 마실 리유 그리고 자주 만나기가 쉽지 않는 우리들의 삶이다. 그래서 술상은 만남의 장이고 교류의 장이고 스트레스나 고독을 해소하는 장소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 건전한 술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어 전에 술만 마시면 평소에 풀지 못한 스트레스때문에 다툼이 잦고 말썽이 많고 지어는 손찌검까지 하면서 싸우던 낡은 술문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건전한 술문화를 따라배우고 술상을 즐겁고 의미있는 문화장소로 되게 하는것 역시 시대의 진보가 아닐까.▣ 잡지
63    [시] 오 월 (외 2수) (강효삼) 댓글:  조회:719  추천:0  2017-08-01
시 오 월 (외 2수) 강효삼   나무란 나무 꽃이란 꽃 풀들은 풀 봄을 맞아 생성하는 모든 생명에 출생의 자유와 향상의 권리를 마음껏 베풀어준다, 오월은 그리하여 고운 해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배려에 한껏 고무된 푸른 나라 국민들 다투듯 몸을 부풀린다 키를 자래운다 생의 무게를 늘린다 왁자하니 떠들며 오월의 푸른 하늘 향해 무한한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 푸른 비약과 더불어 온갖 꿈들이 무성하는 오월엔 하늘조차 자란다.   상 실 고사리의 가치는 꼭 움켜쥔 그 주먹안에 다 들어있다 그것은 단 한번뿐인 당신의 젊음 놓지 말고 쥐고있어야 알찬 재부가 되는데 그만 다람쥐처럼 당신 주위를 뱅뱅 도는 바람의 유혹에 견디다 못해 손아귀에 들어쥔 재부 훌 놓아버리니 이제 손에 아무것도 없는 고사리 고생금 얼기설기 서려있는 빈그물만 거미줄처럼 바람에 흔들리고있네.   여름의 바람이 없다면 잎새 흔드는 여름의 바람이 없다면 꽃이 어찌 아름다울가 볼을 매만지며 머리를 쓰다듬는 푸른 바람의 애무에 꽃들이 한결 젊어진다 잎새 흔드는 여름의 푸른 바람이 없다면 나무가 어찌 숲이 될가 푸른 잎 스쳐 흐르는 물결 번뜩이는 생명의 파도로 청신하구나 여름의 푸른 바람은 꽃과 나무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청량음료 모두들 저렇게 통쾌하게 마시고 힘을 내지 않느냐. 연변일보  2017-5-18
62    [시] 나무 가을강을 건너다 (강효삼) 댓글:  조회:636  추천:0  2017-07-31
시 나무 가을강을 건너다 강효삼   가을 나무들이 아직 얼어붙지 않은 강을 건너 겨울의 대안으로 노저어 가자면 배가 있어야하는데 그 배는 무엇일가 세월을 등에 업은 락엽들이다 나무가 가을강에 던져놓은 무수한 배들 지친 가을을 싣고 배들은 간다 저기 저 하얀 손수건 흔드는 계절의 마지막 부두로 하여 가을의 산에 가면 무시로 나무잎 떨어지는 소리가 온통 스적스적 노젓는 소리로 들린다. 연변일보  2017-7-20  
61    [시] 억새를 보면서 (강효삼) 댓글:  조회:695  추천:0  2017-07-31
시 억새를 보면서 강효삼   지꾹한 풀숲에서도 환하게 보이는 것은 그 흰빛갈 때문이다 저 깨끗하고 도고한 모습 억새가 도달한 순백의 경지는 자연이 절로 물들여준 것 아니다 온갖 풍상 다 겪으며 때묻은 생을 하얗게 빨아 한 겹 또 한겹 물들인거다 추적거리며 울음그치지 않는 가을비에도 퇴색하지 않아 저렇 듯 담담하면서도 기끗한 백발을 나도 만년에 이고 살 수 있다면? 결코 락엽 같은 존재는 아닐 것인데…   연변일보  2017-7-20  
60    [시] 가을 사과나무에 드리는 소망 (강효삼) 댓글:  조회:541  추천:0  2017-07-24
시 가을 사과나무에 드리는 소망 강효삼 허리가 휘도록 귀한 자식들 어깨 우에 올려놓고 대기하는 당신에게 소망합니다 리별이게 하십시오 보내야 할 때는 선뜻 보내는 행복의 배웅이게 하십시오 비바람 견디며 애지중지 키워서 항상 남들에게 통채로 주는 것을 락으로 아는 당신 귀한 자식 다 떠나보내고 잠시 공허로 몸이 비인다해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사랑으로 응축된 새로운 잉태 래년에는 더 크고 실한 자식들 주렁주렁 아픔의 출산이게 하십시오 기쁨의 흔들림이게 하십시오.   연변일보  2017-7-20
59    대림동에서의 사색 댓글:  조회:1075  추천:0  2016-05-10
       (흑룡강신문=하얼빈) 말로만 자주 듣던 한국 서울의 대림동에서 난생 처음 보름이라는 시간을 체류했다.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특별이 한족과 조선족들이 많이 집거하여 대림동은 명실공히 서울안의 중국거리나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스스럼없이 들리는 중국어,함경도,평안도,경상도 말씨가 한데 뒤섞여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그리고 중국음식점, 중국상점, 직업소개소, 환전소 등 한국사람보다는 중국조선족과 한족을 상대로 하는 크고 작은 간판들 속엔 심지어 사천의 마라탕에 동북타래떡과 만두를 판다는 간판도 있었다.그밖에 노래방 또한 곳곳에 연변사람들을 위한 연변노래방도 있었다.. 대림동은 매우 자유스런 거리다. 법과 질서를 위반하지 않으면 소신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거리다. 어느 계선까지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속에서는 중국사람으로 살아보라는 것인가?   들리는 말에 대림동은 경찰들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선지 아무데나 뱉아놓은 가래침과 되는대로 널린 담배꽁초가 여기 저기 자주 눈에 띄웠다.좀은 부끄럽고 유감스러웠다.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새는 격인가? 중국에서 하던 습관을 못버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대림의 낮은 이렇다 하고 밤은 어떠할까? 살펴보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날 일부러 대림거리를 산책하였다. 지금은 한국행이 아주 편리하여 가족이 나가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 많다고 들었는데 가족을 떠난 외로움과 그리움이 그래도 해소된 것은 아닌지 휴식날 밤 외출이 빈번했다. 곳곳에서 남성들이 술마시고 좋은 기분에 큰 소리로 떠드는 장면과 남녀들이 한데 몰려 다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전에 불법체류 단속을 할때야 어디 이런 풍경이 있었을가? 이런 기회에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며 직장에서, 회사에서, 건설현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는 것 같아 좀은 무질서해 보였지만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또한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오랜 세월 다른 체제에서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했기에 이질적인 차이 때문에 다년간 한국인들 속에 있지만 그들 세계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원인과도 관련이 있다.그러니 한국에 살면서도 부득히 같은 문화권에서 오래 생활해온 조선족끼리 내왕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에 와 가족별로 사는 사람이 날로 많아져 생일도, 잔치도, 환갑연도 심지어는 어린아이 돌잔치까지 한국에서 가진다고 한다.그리고 동창회, 향우회 등 동아리들이 따로 있어 그렇게 자주 만나 스트레스를 풀면서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은 좋은데 소비가 늘어나고 술자리가 잦다고 한다.부조돈만해도 대국의 기질이 있어 통크게 10만원, 20만원,서울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인의 생활패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점차 중국에서 생활할때의 그 생활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그러므로 돈은 많이 벌지만 별로 남지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저런 허점이 있는 와중에도 이제 출입국정책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왕래가 매우 쉬워졌고 합법적인 체류자가 많아 거리를 다니는 사람 역시 자유스러웠으며 불안이나 공포감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반가왔다.이제 한국행은 조선족에게 거의 자유왕래라 해도 되지 않을까? 거의 7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가 있다니 조선족인구의 3분의1 이상이 한국에 정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땅은 서울을 위주로 어디가나 중국조선족이 섞여있는 곳으로 되고 있다.   전엔 월세나 고시원 등에서 거주했다면 이젠 점차 전셋집,더 나아가서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아예 아파트나 빌라같은 개인주택을 사고 눌러앉은 것이다. 대림동에서 필자가 요해한데 의하면 한국에 가 있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젊은 계층들이 더욱 그러한데 만일 그렇다면 조선족의 미래는? 백여년 지켜온 우리의 민족공동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뒤를 이어나갈 후계자가 없다면.그래서 누군가는 조선족의 한국에로의 이민설도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조선족이 한국국적이 되어 한국에 마음놓고 정착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다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욱 좋아진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요즈음 한국에 국적을 올린 사람중에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어떤 사람은 국적을 올렸다가 거액의 돈을 밀어넣고서야 한국국적을 취소하고 중국국적을 다시 회복했다고 한다.   한국행은 날이갈수록 세대차이와 계층차이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의 뒷받침은 바로 같은 민족이지만 국적이 다름으로 하여 받게 되는 차별에서 느끼는 자괴감으로 중국 조선족은 지금 한국에서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한국문화에 많이 적응하여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평등하게 대하기를 바라지만 이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같다. 조선족들의 욕망과 달리 한국인은 엄연히 한국인이고 조선족은 조선족이면서 달리 붙여진 이름은 " 중국동포"아니면 "중국인"이다. 이번 20대 국회위원선거에서 당선 희망자들이 웃움을 지으며 선거공약을 발표하고 심지어 국민 앞에서 도와달라고 엎드려 절을 하지만 어느 여당,야당 할 것 없이 어느 누구의 당선 희망자들도 재외동포에 대한 언약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그만큼 한국정치인들의 심목 중에는 확실이 조선족은 없는 것이다.물론 선거기간이여서 투표를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가 된다.공연히 "이민법이요.국회위원이 나와야"한다고 말하지만 그런 좋은 말 잘못믿었다가는 "떡줄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격이 될 수도 있다.   조선족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조선족이다.그래서 정녕 우리는 누구인가 물음을 수시로 제기하게 되는 곳이 바로 서울의 중국거리-대림동이다.오랜 세월이 흘러가면 처음 우리가 한국땅에 발을 디딜때 낯설듯이 이제 중국에 돌아오면 중국이 낯설어질 것이다. 더구나 점차 중국의 정치제도, 사회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모르는데서 삶에 많은 불편이 제기될 것이다. 특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자라는 아이들이다.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다. 그러므로 중국인이지만 중국어를 모른다. 중국어를 모르고 중국에 와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가? 때문에 시계추처럼 반복하다보면 우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찌해도 중국의 조선족으로 중국의 물을 먹고 자랐기에 중국문화의 영향이 깊이 베여 중국에 살 수밖에 없는 중국사람이다.물론 중국사람으로 산다고 하여 자기민족 정체성을 잃고 살아서는 안된다.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좋은 나라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지키면서 앞서가는 민족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흑룡강신문 2016-5-10
58    조선족 설맞이 패턴 바뀐다 댓글:  조회:1329  추천:1  2016-02-08
설명절은 예로부터 가장 최대의 민족적명절로 각광받았다.하지만 대량적인 해외나들이와 연해도시에로의 진출로 리산가족이 많아지면서 조선족들의 설맞이 패턴은 새롭게 변화하고있다.   조용하고 단출한 설   물질이 결핍하던 년대엔 설이 오면 무엇을 먹을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으로 떠올랐다면 지금은 누구와 함께 설을 쇠는가? 이것이 새로운 고민으로 떠오른다. 설이되면 가장 반가운것은 헤여져있던 가족들이 만나 함께 즐기는 것이다.그래서 가족을 만나기 위해 국외나 연해도시에서 귀향하는 자식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부모들이 자식들을 보러가는 경우가 늘고있다. 상지진만해도 자식이 있는곳으로 설쇠러간 부모들이 20여명, 부모에게로 설쇠려오는 자식들의 숫자는 불과 5,6명밖에 되지 않는다고한다. 실은 한국에 가 있는 자식들로 말할때 전엔 불법체류 단속때문에 설날에 오고 싶어도 못왔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올수있어도 오지 않는데는 설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기때문이다. 설은 아무리 굉장해도 그 며칠뿐이지만 돈은 계속해서 벌어야 하는것이 인생의 삶이다.그래서 요지음 한국에서는 설에 일하면 로임도 높고 서비스까지 두둑히 채워준다면서 설이 되여도 돌아오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고한다.한편 자식들이 먼 외국에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지만 자식들의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피곤을 고려해서 일부러 자식들더러 오지 말라하고 하는 부모도 있는데 어쩌면 무정한것같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들의 후더운 마음이 감지되는 설이기도 하다. 료해한데 의하면 우리 주위에 설을 전에 처럼 온 가족들이 제대로 모여서 참으로 풍요롭게 쇠는 가정은 그닥 많지 않다. 농촌은 말할것없고 도시라하여도 절대 대부분 우리 조선족가정은 부부간 혹은 량주간 단촐하게 설을 지내는것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고있다. 이제 우리 조선족들의 설은 좀은 외롭다.그렇지만 이제 습관이 된듯 조용하고 단출하게 쇠는 설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것은 설에도 만나지 못하거나 만나지 않고 헤여져 사는 가족들이 결코 무정하거나 무심해서가 아니고 설날 그 며칠만이 아니라 인생이 사는 그 많은 날들을 모두 설같이 즐겁고 풍족하게 살기위한 희망을 갖고있기 때문일것이다.   간단하고 소박한 설   한마디로 잘먹고 잘 노는것이 설이다.그래서 평소에도 잘먹고 잘 논 날을 두고 오늘 설을 쇠였다고한다.그러나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그러자면 그에 해당한 물질적기반이 있어야한다.비록 오늘 전에없이 우리민족들의 돈주머니가 불룩하지만 "한해 번돈의 절반을 설에 쏟아붓는다"고 하는 타민족들의 통큰 소비에 비해 우리 조선족들의 설맞이 씀씀이는 상대적으로 소박하고 간단하다. 필자가 3인 식솔을 가진 한 한족( 중등생활수준)에게 설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물으니 한번 설쇠는데 먹거리,선물,세배돈,지어 옷을 사는것까지 3천원이 넘게 든다고한다. 헌데 한 조선족가정은 한국에 가 있던 아들 며느리 와 손자손녀 출가한 딸과 사위 외손녀 등 아홉식솔이 모여 설을 쇠는데도 어린 손자, 손녀에게 세배돈까지 포함하여 2천원이면 넉넉하다고 한다.   상지,연수,방정 등지의 조선족가정들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평소의 생활수준 보다 좀 높게 소비할뿐 별다르게 큰 소비는 하지 않는다는것이다. 리유는 가뜩이나 핵가족으로 가정인구가 적은데다 우리 민족은 사회관계나 인맥에서도 타민족 보다 아주 협소하여 설에 올 사람도 적거니와 찾아갈 사람 또한 많지 않은데다 전처럼 이웃간에 술상을 차리는 습관도 많이 사라져 그렇게 많은 음식을 쌓아둘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특히 지금은 생활이 좋아 전에는 설이라야 맛볼수있는 음식들을 평소에도 얼마든지 먹을수있어 로인들의 말처럼 "날마다 설명절"인셈이다.게다가 설이되여도 휴식하지 않고 여전히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서 구태여 금값이나 다름없는 겨울 채소들을 잔뜩 사둘 필요없이 수요되면 그때그때 사다먹어도 얼마든지 될수있다는것이다.이렇게 간단하고 소박하게 설을 쇠는 대신 그 무엇보다 설에 바라는 가장 큰 소원은 건강한 몸과 편안한 마음인데 그것은 아마 지금 우리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중에 로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기때문으로 인식된다.   더불어 쇠는 즐거운 설   우리민족에게서 설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것인가? 가난한 세월에 우리민족은 음식이라야 고작 이밥에 콩나물,술도 넉넉하지 않은 세월이였지만 친척은 물론 이웃까지 불러다 적은 음식이나마 나누면서 춤추고 노래하며 놀아야 비로소 설을 설같이 쇠였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렇다 하여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인 면을 더 추구하는것이 우리민족설맞이특점이 아닐가? 때문에 비록 지금 설을 함께 지날 사람들이 많지 않아 좀은 외롭고 단출하지만 그것에 얽매이지않고 이빨이 없으면 이몸으로 산다고 합동심이 좋은 우리민족은 지금 특정된 환경에서 우리민족 특유의 새로운 설맞이문화를 만들어가고있다. 그것은 설날 외로운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 더불어 설을 즐기는 풍속이 탄생한것이다.이에 대한 해결사는 바로 로년협회다.   상지시조선족로년협회에는 올해 80을 맞는 분이 세분인데 그들에게 팔순 축하상을 차려주고 그들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윷놀이 등을 조직해 단체로 설맞이를 한다고 한다.뿐만아니라 외로운 로인들이 함께 모여 설을 즐길수 있도록 정월 초하루날도 활동실을 개방한다고 한다.   지난해도 설때 40ㅡ50명의 로인들이 초하루부터 협회에 나와 제각기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면서 화투도 치고 마작도 놀며 설을 즐겼는데 올해도 특별히 협회에서는 명절날 마실 술을 책임지고 공급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외롭게 설을 쇠는 사람들을 관심하여 단체로 설맞이 음식상을 차려주어 더불어 설을 쇠는것으로 외로운 사람들을 위안해주는 새로운 설맞이 문화가 점차 각광을 받고있는 것이다. 한편 아직도 옛정이 돈독하고 인심이 후한 곳에서는 설날이면 마을 사람들끼리 돌림음식을 나눈다. 이제 더불어 즐기는 우리민족의 새로운 설맞이는 가족의 의미를 넘어 협동과 조화를 이루는 민족공동체적인 의미로 승화되면서 오히려 외롭고 조용한 설이 흥성하고 따뜻하며 즐거운 설로 전환하는 좋은 계기를 맞고있다.   민족전통과 타민족의 풍속이 공존하는 설   문화적인 면에서 우리민족설맞이를 고찰해 볼때 아직도 우리 민족에게는 설에 민족의 전통음식을 해먹는 습관이 남아있다.이를테면 찰떡,설기떡,송편,순대,묵 등…그리고 설날 아침 조상에게 차례상을 차려드리고 세배도 하고 있는데 특히 부모의 집에 설 쇠러 온 젊은이들이 설날아침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미풍량속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래서 상지시 신흥촌에서는 귀향한 젊은이들이 일일이 마을 로인들을 찾아다니는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초하루날 아침 로인협회에 모여 단체로 세배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이러한 세배법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만 아니고 집을 떠나 멀리 있는 사람들도 마을 어른들에게 설인사를 올리는 새로운 미덕이 나타나고 있는데 월성촌 출신 기업인 김용화씨는 마을에 남은 분들에게 설 세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설날 매 가정에 귤 한 상자씩 선물했다고 한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정초부터 마음이 훈훈하게 하는 소식이다.   민족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중국 조선족은 우리만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대민족의 설문화를 하나하나 받아들여 자기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를테면 섣달 그믐밤 자정에 물만두를 삶아 먹고 생활에 여유가 있으라는 의미로 설에 생생한 물고기만은 꼭 먹는 음식습관 말고도 최근에 설을 맞으면서 요란스럽게 폭죽을 터트리고 출입문에 주련을 붙이는 가정이 늘고있다. 이것 역시 장차 중국 조선족의 하나의 설맞이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이제 우리민족의 설맞이는 우리의 전통과 타민족의 풍속이 공존하는 설로 변하고 있다.        흑룡강신문 2016.2.5  
57    단 풍 (외 5수) 댓글:  조회:1105  추천:1  2014-12-12
단 풍 (외 5수)  □ 강효삼    죽어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자유 그런 죽음을 누군가 소원하기에 잎이 스스로 제몸에 불을 단다 봄내 여름내 태양빛에 뭉친 성냥가치 심심하면 추켜드는 그 서리빛 가을의  칼날 이제 피하기는 어려울것같다 그럴바엔 내 먼저 내 몸에 불을 지르자 죽음으로밖에 대답할수 없는 나무잎들 잎들은 안다,  죽음을 보기전엔 가지 않는 가을 가을이 가지 않아 오지 않는 봄 그 봄으로 먼저 가고싶다, 단 한번의 봄이 아니라 그 영원한 봄을 위해 아, 그 아름다운 분신 비록 오늘은 한 점 단풍으로  탈뿐이지만 래일은 감동에 젖은 온 산발이 다 뛰여들어 제몸에 불을 달아,불이 되리 부처님 오신날 연등을 켜듯 늦어 가는 길 춥고 어두울가봐 저마다 켜든 그 정의의 빨간 불들 흰 눈 이른 봄 잎이 돋고 꽃움이 터서 활짝 꽃으로  흐드러질때까지 얼마나 로고가 많았다고? 비바람  이기며 결실의 종말까지 함께 가자 깍지 끼고 약속들 했었는데 그런 손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너희들 아아한 지상으로  추락한것은? 너무 많은 희망과 기대 모두가  남아서는 이룰수가 없는 꿈 누구든 희생해야 그 별빛 찬란한 목적에 이를수 있기에 맡도 끝도 없는 심연으로 주저없이 자신들을 추락시킨다 아, 그것은 눈,눈, 흰눈 창 문 창문은 광명이 어둠을 향해 빛을 쏘는 네모꼴 총구 그 총구로 해살을 마구를 퍼붓는다 어둠의 심장이 대번에 펑 뚫리라고 연변 초가집 저건 배였지 대륙을 배밀이해 와 한 기슭에 조용히 닻을 내린 죄꼬만 쪽배 세월의 파도에 흔들릴지언정 밀려가지는 않았다 저건 토기그릇이였지 할아버지 할머니 정성들여 빚어서 따뜻한 해볕에 노랗게 구운 항상 구수한 인정이 된장국처럼 몰몰 끓고있던 곳 저건 또 둥지였지, 바람들가 돌기돌기 벼짚으로 둘러 막아서\ 한 족속의 시린 마음 따뜻히 보듬어주던 얼마니 많은  꿈들 저 둥지에서 콩나물처럼 쏙쏙 자랐던가 저건 우리네 조촐한 산원이다 광막한 대륙을 정복했던  한 민족 고대광실에서 자신을  잃을때 우린 저  초가집에서 자신의 튼튼한 뼈대를 굳혔다. 가장 탐나는 풍경 가장 탐나는 풍경을 보았다, 병원 6층 입원실창문에서 바깥세상 보고파 겨우겨우 쌍지팽이 짚고 건강한 도시의 숨결을 내려다 볼때였다, 봄은 이제 막 오기 시작했는데 파란 가로수가 유난히 신선하구나 첫 봄이라서겠지, 하늘은 더욱 푸르게 돋보이고 살아있는것들은 저렇게 더 없이 씩씩하고 즐겁구나 마즌켠 베란다에 혼자서서 담배를 태우는 중년의 사나이도 빨래를 너는 녀인도 아는가 오늘따라 당신들 그 건강하게 사는  모습을 부러워 쳐다보는 한 사람이 있다는것을 삶과 죽음의 갈림길서 이제 막 해탈된  환자에게 가장 큰 행복이고 기쁨이고 재부는 건강하게 산다는것 하기에 세상에 탐나는 풍경 많고 많아도 가장 탐나는 풍경은 입원실 창문에서 환자가 내다보는 활기찬 바깥세상이다 종소리 내 안에서 나를 비운만믐 더 가득한 소리 내가 맞는 매가 아픈만큼 더 우렁찬 소리     연변일보
56    단풍 (외 3수) 댓글:  조회:975  추천:2  2014-09-12
단풍 (외 3수)  □ 강효삼        죽어야만 비로소 얻어지는 자유 그런 죽음을 누군가 소원하기에 잎이 스스로 제몸에 불을 단다 봄내 여름내 태양 빛에 뭉친 성냥가치 심심하면 추켜드는 그 서리빛 가을의  칼날 이제 피하기는 어려울것 같다 그럴바엔 내 먼저 내 몸에 불을 지르자 ㅡ 죽음으로밖에 대답할수 없는 나무잎들 잎들은 안다,  죽음을 보기전엔 가지 않는 가을 가을이 가지 않아 오지 않는 봄 그 봄으로 먼저 가고싶다 단 한번의 봄이 아니라 그 영원한 봄을 위해 아, 그 아름다운 분신 비록 오늘은 한점 단풍으로  탈뿐이지만 래일은 감동에 젖은 온 산발이 다 뛰여들어 제몸에 불을 달아 불이 되리 부처님 오신날 련등을 켜듯 늦어가는 길 춥고 어두울가봐 저마다 켜든 그 정의의 빨간불들 흰 눈 이른 봄 잎이 돋고 꽃움이 터서 활짝 꽃으로  흐드러질 때까지 얼마나 로고가 많았다고? 비바람  이기며 결실의 종말까지 함께 가자 깍지 끼고 약속들 했었는데 그런 손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너희들 아아한 지상으로  추락한것은? 너무 많은 희망과 기대 모두가  남아서는 이룰수가 없는 꿈 누구든 희생해야 그 별빛 찬란한 목적에 이를수 있기에 밑도 끝도 없는 심연으로 주저없이 자신들을 추락시킨다 아, 그것은 눈,눈, 흰눈 창 문 창문은 광명이 어둠을 향해 빛을 쏘는 네모꼴 총구 그 총구로 해살을 마구를 퍼붓는다 어둠의 심장이 대번에 펑 뚫리라고 고사리 섬섬옥수 머리 곱게 틀어올리고 다소곳이 고개숙인 고사리는 이제 막 님을 기다리는 첫날 각시런가 기다림 커갈수록 더 미끈해지는 몸 맵씨 보동보동한  살결 너를 가졌으면? 쪽진머리 활 풀어헤치고 똘똘 숨긴 정조 누군가 가져가기전 내가 가졌으면  딱 한번에   연변일보 2014-7-31  
55    [수필] 그리움의 고향(외 2편) 댓글:  조회:1082  추천:2  2014-08-25
누군들 고향과 인연이 없으련만 나는 나서자란 고향과 좀 특이한 인연이 있다. 남들처럼 고향에 붙박혀 산것이 아니라 여러번 고향을 떠나다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고향의 귀중함을 깨우쳤다. 내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것은 소학교 6학년 전학기였다. 분가하여 이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아성이란 작은 도시에 이사했다. 갈 때는 전등불이 있는 도시라고 하니 마음이 울렁거렸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촌놈이여서인지 아니면 고향에 정이 들어서인지 은근히 고향산천이 그리워 고향이 자리잡고있는 동쪽을 바라볼 때면 저도 모르게 그리움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첫주의 토요일이 되니 너무 고향에 남아계시는 아버지네 집으로 가고싶어 선생님께서 휴가를 주지 않자 몰래 도망쳐서 50리 길을 간적이 있다. 그때 현성을 벗어나 멀리서 손짓하듯 누워있는 고향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가벼웠고 몇십리 걸음도 힘들지 않았다. 기실 나의 고향은 봉산아래 자리잡은 너무도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뒤로는 마이강이 굽이쳐흐르고 여기저기 크지 않은 들판에 띄염띄염 마을들이 자리잡은것이 보기에 매우 스산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고장이 좋을가? 아마 어릴 때부터 때가 묻은 곳이고 사람도 산천도 익숙하고 친절하기때문일것이다. 그때 고향밖을 많이 나가보지 못한 나는 고향이 제일 좋았다. 산과 물이 제일 좋았고 고항친구가 제일 편했으며 고향의 곡식이 제일 맛있었다. 하여 고향에 오면 특별한 볼거리도 없지만 어릴 때 자주 가던 산에 오르고 물고기를 잡고 이웃을 만나면서 시간이 지루함을 전혀 몰랐으니 그야말로 고향은 그 어떤 특별한 매력과 흡인력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나는 또 고향을 떠나야 했다. 부모님이 이주하면서 아주 멀고 낯선 곳으로 가게 되였다. 신비한 낯선 곳으로 간다기에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는 서러움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고향이 그리웠다. 나는 다시 고향에 돌아왔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고향산천과 고향사람들의 삶을 글에 담았다. 그리고 고향의 젊은이들과 함께 겨울이면 마른 과자를 씹으며 문예종목을 만들어 고향사람들앞에서 공연했다. 영화도 공연도 볼수 없고 텔레비죤과 라지오도 없던 문화갈증의 시대에 전기도 없이 등잔불을 켜놓고 보는 마을청년들의 문예공연이지만 고향사람들은 집안이 터질듯이 모여왔다. 나는 그것이 너무 고마와 고향에 있는 동안 거의 해마다 선두에서 문예공연을 조직했다. 부득이한 사정때문에 나는 또 고향을 떠나야 했다. 《문화대혁명》이 터지면서 교원사업조차 할수 없게 되여 타지 학교로 가게 되였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은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는 나에게 눈총을 쏜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마 내가 고향을 위해 홍보하고 힘쓴 보람일것이다. 나는 《문화대혁명》때 당한 억울함을 시정받은후 고향마을에서 다시 교편을 잡고 고향의 문화사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고향을 노래하는 글을 많이 썼다. 그후 인구대이동이 생기면서 고향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진출하자 나도 얼마후 고향을 떠났다… 이제 고향은 그리움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기때문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은 흙으로 떠나갔고 살아있는 세대들은 고향을 등지고 멀리 연해도시 혹은 가깝지만 농촌이 아닌 도시로 떠나갔다. 어쩜 지금은 고향상실의 시대이고 고향변화의 시대이며 고향을 바꾸는 세월일가. 몇십년 오붓이 이마 맞대고 우리 민족들이 한 고향에 붙박혀 대를 이어 살아가던 삶은 영원히 과거가 되지 않았을가?! 그러나 고향은 의연히 고향이다. 그것은 내가 나서 살아온 곳이기때문에 항상 그립다. 나에게 있어서 고향은 바로 그리움이다.   다문화가족이 되면서   아들의 결혼식때문에 멀리 미국과 일본 등지에 가서 정착한 딸들이 애들을 데리고 왔다. 우리 가족에 참으로 오랜만에 한상에 모여앉아 밥을 먹으면서 재미 있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정작 바랐던 감동적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긱할수 없었다. 나의 자식세대까지는 단일 조선족으로 우리 말 대화가 가능했지만 지금 자식들의 남편들과 애들은 타민족이거나 타국의 사람이여서 소통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제 우리 가정도 다문화가족으로 되였기때문이다. 일본국적인 큰 사위와 큰 외손녀는 일어를 그리고 작은 사위는 한족이다보니 한어를, 미국에 가 출생한 작은 외손녀는 영어를 했다. 이렇게 한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조선어, 한어, 일어, 영어 네가지 언어를 사용하다나니 우리 가족은 작은 《유엔》이 된셈이다. 나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재미 있게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것이 제일 안타까왔다. 누가 이런 세상이 올줄을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여났지만 그때 불과 세살밖에 되지 않아 일어를 배우지 못했다. 그후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어나 영어는 적대국의 언어라고 근본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한때 변화된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고 외국어에 대해 편견을 가졌었다. 이제라도 가능하다면 일어나 영어를 배우련다. 설사 나이 많아 잘 배우지 못하더라도 외국어에 대한 거부감만을 깡그리 버리겠다. 그리고 자식들한테는 더 많은 언어를 배우라고 권장하여 언어가 바로 재부라는것을 깊이 깨닫게 하겠다. 물론 자식들은 조선민족으로서 우리 말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타지방에서 타민족들과 함께 살더라도 우리가 조선민족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어린 손자, 손녀들한테 우리 말과 글을 배우도록 하겠다. 자식들이 떠날 때 나는 유치원에 가서 우리 말 독본을 사주었다. 타국에서 이 독본으로 꼭 아이들한테 우리 말을 가르쳐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조선민족언어는 세계 어디서나 발달한 언어로 주목을 받고있다. 글로벌화시대에 물질의 풍요를 얻는 대신 자기 민족을 잃어서는 안된다. 누군가 《민족적인것이 바로 세계적인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문화적인 삶에 적응하면서도 자기 민족을 잊지 않고 사는것이 중국조선족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가싶다.   미운 가난 고운 삶   나는 지금도 부유하지 않지만 과거는 그야말로 가난하여 서발막대 거칠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때는 20세기 70년대였다. 모두다 가난한 세월이라 하지만 나는 왜 더 가난했을가? 그것은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너무 없는데다 경제대우가 낮은 시골의 교원사업을 했기때문이다. 그때는 한근에 30전씩 하는 소고기도 사먹지 못했다. 단돈 1원도 없어 남에게서 꾸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쌀이라도 팔려고 쌀주머니를 숨겨가지고 온 동네를 다니면서 쌀 사라는 말을 입밖에 낼수 없어 그만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그처럼 주인에게 충실한, 집에서 기르던 개를 닭 한마리 값을 받고 판적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친척들도 가난한 우리와 거래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지어 어떤 친척은 로골적으로 우리를 무시했다.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래도 설인사를 한다고 찾아갔는데 우리가 가지고 간 물건이 너무 적어선지 《주둥이를 끌고 구걸하러 다닌다》고 인격적인 모욕까지 서슴지 않아 지금도 나의 가슴에 못으로 박혀있다. 가난하면 사람대접조차 제대로 못 받는다. 오죽하면 거지에게는 인격도 없다고 했겠는가! 가난때문에 우리는 별의별 기시와 미움을 다 받았다. 나는 가난에서 해탈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분발했다.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면서 길에 나뒹구는 나무토막 하나라도 주었고 모자라는 식량을 보태기 위해 달 밝은 가을밤이면 혼자 콩이삭과 벼이삭을 줏기도 했다. 지어는 50전이면 편하게 타는 뻐스비마저 남기려고 걸어다녔다. 어쩌다 현성에 갈 때면 타래떡 하나 사먹고싶었지만 꾹 참고 그 돈으로 집에서 쓸 사소한 가장집물 하나라도 사왔다. 후에 향의 간부가 되였을 때도 몇십호가 운집해 사는 향소재지 마을에서 직접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내라는 불쏘시개값 3원이 아까와 대신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서 싸리나무를 해 학교에 바친적도 있었다. 이렇게 아글타글 애써 절약하면서 나 혼자의 로임으로 식솔 다섯이 살았다. 더는 남에게 구걸하지 않고 살면서 오히려 힘들게 모은 돈으로 친척들을 도와줄수 있었다. 만일 가난때문에 받는 수모가 괴롭다고 하소연만 하면서 남들이 동정하고 도와줄것만 바라고 남들의 도움을 받는데 만족했더라면 지금도 남의 손만 바라보며 게으름까지 덧붙인 못난 사람으로 살고있을것이다. 가난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혹독하게 불편할뿐이다.속담에 3대 부자가 없고 3대 가난뱅이가 없다고 했다. 누군가 가난이 두려운것이 아니고 기개가 없는것이 두려운것이라고 했다. 가난은 매섭지만 《좋은 스승》이여서 가난해도 마음이 죽지 않고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은 가난하면 변하려 하고 변하려 하면 길이 열리기때문이다. 미운 가난을 고운 삶으로 전변시키는것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서 희망은 가난한자의 빵과 같은것이다. /강효삼
54    겨울의 마음 (외 3수) 댓글:  조회:1000  추천:1  2014-03-11
십자길에 앉아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로인 한분 지금 로인이 앉아있는 곳으로 두갈래 길이 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이 로인은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죽음의 길로는 로인은 부득부득 앉아버틴다 제자리를 뭉개며 얼마를 더 버티려고 정녕 고집부리지 마시고 어서 가시라해도 로인은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의 낡은 철학을 푼다 ㅡ날 그대로 두게 죽음을 앞에 둔 늙은일수록 더 살고싶다네. 영춘화 봄 오는 발자국 먼저 귀 기울여 듣고 줄레줄레 어깨겯고 기다린다 온다는 기별 없이 봄은 아직 저 먼 백설우에서 늦잠을 자고있는데 어느새 번쩍 튕기는 환영의 눈빛 한바탕 자는 세월을 들깨우며 와락와락 꽃몽우리 터치는 소리 꽃이 피네 순진한 소녀의 달거리인양 빨간 꽃들 백설우에 포르르 주저앉으면 이게 바로 봄날의 꽃잎들 뿌리 없이도 활짝 피는 영춘화 서로가 마주치는 눈빛속엔 봄의 의미가 들어있어. 유 혹 속살을 간지럽히여 엄지손가락 내들고 칭찬하는 해살의 얇은 유혹 견디다 못해 그만 가슴을 활 열어준 겨울처녀 해살과 한데 뒹굴며 동침하더니 봄을 출산하였네 쩝쩔한 양수를 쏟으며. 진달래 련가 애틋한 그리움의 사연들로 하여 서러운 리별의 눈물로 하여 일찍 왔다 일찍 가는가 가지 말라 오래 붙잡고싶은 꽃이여 너를 안고 한백년 돌리 ㅡ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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