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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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시]님의 침묵(한용운) 댓글:  조회:1560  추천:31  2008-09-26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 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58    [시]소(김기택) 댓글:  조회:1374  추천:26  2008-09-26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57    [시]혼자가는 길(허수경) 댓글:  조회:1354  추천:29  2008-09-26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56    [시]봄(김기림) 댓글:  조회:1663  추천:27  2008-09-26
사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 넘는다.
55    [시]가난한 새의 기도(이해인) 댓글:  조회:1346  추천:29  2008-09-26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 다니는 흰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54    [시]접시꽃 당신(도종환) 댓글:  조회:1360  추천:24  2008-09-26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53    [시]너 없음으로(오세영) 댓글:  조회:1373  추천:23  2008-09-26
너 없음으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너로 하여 이 세상 차오르듯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승의 강변 바람도 많고 풀꽃은 어우러져 피었더라만 흐르는 것 어이 바람과 꽃뿐이랴 흘러 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 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52    [시]목마와 숙녀(박인환) 댓글:  조회:1374  추천:11  2008-09-26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燈臺)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51    [시]별들은 따뜻하다(정호승) 댓글:  조회:1275  추천:14  2008-09-26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50    [시]아름다운 수작(배한봉) 댓글:  조회:1282  추천:14  2008-09-26
봄비 그치자 햇살이 더 환하다 씀바귀 꽃잎 위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 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 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 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 초록 치맛자락에 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 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던가 잠시 꽃술이 떨렸던가 나 태어나기 전부터 수억 겁 싱싱한 사랑으로 살아왔을 생명들의 아름다운 수작 나는 오늘 그 햇살 그물에 걸려 황홀하게 까무러치는 세상 하나 본다
49    [시]와리바시라는 이름(이규리) 댓글:  조회:1532  추천:15  2008-09-26
젓가락과 사타구니 사이 여자라는 상징이 있다 벌린다는 것, 좋든 싫든 벌려야 하는 그런 구조가 있다 여학교 때 체육선생은 개각(開脚)하는 아이들 등을 꾹꾹 눌러 나무젓가락 가르듯 기절시키곤 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간혹 젓가락이 반듯하게 나뉘질 않고 삐뚤어지거나 엇나가는 건 젓가락의 저항이다 말 못하는 다리의 저항이 삐긋 다른 길로 들게 했을까 와리바시란 이름 딱지 영 못 떼고 생을 마감하는 불운처럼 사타구니 불안을 영 마감할 수 없는 여자이야기, 참 길고 질긴 이야기  
48    [시]잘 익은 사과(김혜순) 댓글:  조회:1447  추천:11  2008-09-26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47    [시]녹색비단 구렁이(강영은) 댓글:  조회:1577  추천:11  2008-09-26
어머니. 천둥번개 치고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 있는 생각을 벗어 버리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어요 모과나무 가지에 매달린 모과 열매처럼 시퍼렇게 독 오른 모가지를 공중에 매달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신부가 되어 한 번의 낙뢰, 한 번의 키스로 죽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몸의 죽 은 강물을 퍼 나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뿐이에요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의 징검다리뿐이에요 내 몸에 똬리 튼 슬픔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수 없는 슬픔에 눈이 부셔요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깊이 모를 슬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46    [시]능소화(강영은) 댓글:  조회:1581  추천:14  2008-09-26
엄마가 내 푸른 담요를 걷었을 때 나는 꽃이 될 거라는 예감을 가졌어요. 꽃이 나에게 노크를 했거든요. 엄마가 내 몸 속에 얼마나 많은 꽃씨를 숨겨 놓으셨는지 보세요, 저리도 많은 발가락과 손가락들을 마구 뻗어난 음부의 길들을 늙은 소나무의 축 늘어진 그것이든 버드나무 휘어진 허리춤이든 낭창낭창 휘감는 붉은 뱀들이 절정으로, 꼭대기로 치닫고 있잖아요? 폭염에 술 취한 딸처럼 주홍빛 얼굴을 울컥울컥 게우고 있잖아요? 그게 나라구요, 나였다구요 그러니 엄마, 습한 문 열고 나 장마 지게 꽃다운 나답게 꽃답게 툭, 툭, 모가지를 떨굴 때까지 그냥 피어나게 내버려 두세요
45    [시]비의 뜨개질(길상호) 댓글:  조회:1467  추천:9  2008-09-26
너는 비를 가지고 뜨개질 한다 중간 중간 바람을 날실로 넣어 짠 비의 목도리가, 밤이 지나면 저 거리에 길게 펼쳐질 것이다 엉킨 구름을 풀어 만즐어내는 비의 가닥들은 너무나 차거워서 목도리를 두를수 있는 사람 그리 흔하지 않다 거리 귀퉁에서 잠들었던 여자가 새벽녘 딱딱하게 굳은 몸에 그 목도리를 두르고 떠났다던가 버려진 개들이 물어뜯어 올이 터진 목도리를 보았다던가 가끔 소문이 들려오지만 확실한 건 없다 비의 뜨개질이 시작되는 너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다는 것 말고 빗줄기가 뜨거운 네 눈물이었다는 것 말고
44    [시]먼 길(문정희) 댓글:  조회:1269  추천:12  2008-09-26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 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 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뒤똥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새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살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같은 자유를 배울수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43    [시]콩나물의 물음표(김승희) 댓글:  조회:1437  추천:17  2008-09-26
콩에 햇빛을 주지 않아야 콩에서 콩나물이 나온다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긴 시간 동안 밑 빠진 어둠으로 된 집, 짚을 깐 시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콩이 생각했을 어둠에 대하여 보자기 아래 감추어진 콩의 얼굴에 대하여 수분을 함유한 고온다습의 이마가 일그러지면서 하나씩 금빛으로 터져 나오는 쇠갈고리 모양의 콩나물 새싹, 그 아름다운 금빛 첫 싹이 왜 물음표를 닮았는지에 대하여 금빛 물음표같은 목을 갸웃 내밀고 금빛 물음표같은 손목들을 위로위로 향하여 검은 보자기 천장을 조금 들어 올려보는 그 천지개벽 콩에서 콩나물로 가는 그 어두운 기간 동안 꼭 감은 내 눈 속에 꼭 감은 내 눈 속에 쑥쑥 한시루의 음악의 보름달이 벅차게 빨리 검은 보자기 아래ㅡ우리는 그렇게 뜨거운 사이였다
42    [시]벌레 잡는 책(유홍준) 댓글:  조회:1661  추천:13  2008-09-26
이 책이 없었다면 저 벌레를 때려잡지 못했을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 뜨거운 냄비를 내려놓지 못했을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 삐꺽거리는 개다리 소반을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이 책으로 얼굴을 덮지 못했다면 나는 벤치 위의 저 낮잠을 즐길수 없었을것이다 이 책이 없었다면, 화장지 없는 자 공중변소에서 나는 뒤를 닦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수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자, 이 책이 없었다면, 벌레잡는 이 책이 없었다면 미사여구에 밑줄 긋는 저 독자 놈의 뒤통수를 갈겨 주지 못했을 것이다 벌레를 잡고 사람을 잡는 이 책, 이 책이 없었다면
41    [시]물도 불처럼 타오른다(김기택) 댓글:  조회:1378  추천:10  2008-09-26
아직 김이나 수증기라는 말을 모르는 아이가 끓는 물을 보더니 물에서 연기가 난다고 소리친다 물에서 연기가 난다? 그렇지, 물이 끓는다는건 물이 탄다는 말이지 수면을 박차고 솟구쳐 오르다 가라앉는 뿔같이 생긴, 혹같이 생긴 물의 불길들 그 물이 탄 연기가 허공으로 올라가는거지 잔잔하던 수면의 저 격렬한 뒤틀림! 나는 저 뒤틀림을 닮은 성난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심장에서 터져나오는 불길을 견디느라 끓는 수면처럼 꿈틀거리던 눈과 눈썹, 코와 입술을 그때 입에서는 불길이 밀어올린 연기가 끓는 소리를 내며 이글이글 피어오르고 있었지 그 말의 화력은 바로 나에게 옮겨 붙을 듯 거세였지 물이나 몸은 기름이나 나무처럼 가연성이었던 것 언제듯 흔적없이 타버릴수 있는 인화물이었던 것 지금 솥 밑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솥 안에서 구슬처럼 동그란 물방울이 되어 무수히 많은 뽈처럼 힘차게 수면을 들이받는다 악을 쓰며 터지고 일그러지고 뒤틀리던 물은 부드러운 물방울 연기가 되어 공기속으로 스며든다
40    [시]등(김선우) 댓글:  조회:1374  추천:16  2008-09-26
아이 업은 사람이 등 뒤에 두 손을 포개 잡듯이 등 뒤에 두 날개를 포개 얹고 죽은 새 머리와 꽁지는 벌써 돌아갔는지 검은 등만 오모록 하다 왜 등만 가장 나중까지 남았을가 묻지 못한다 안보이는 부리를 오물거리며 흙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듯한 그때마다 작은 등이 움찟거리는 듯한 죽은 새의 등에 업혀있는 것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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